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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박성웅이 1인 7역을 소화한 <필사의 추격>이 오는 21일 개봉합니다.
할아버지 역할을 위해 무려 5시간에 걸쳐 분장을 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곽시양의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자, 윤경호의 광둥어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영화 속 다채로운 볼거리를 예고했습니다.
필사의 추격
The Desperate Chase
개요: 코미디, 액션 | 한국 | 109분
감독: 김재훈
주연: 박성웅, 곽시양, 윤경호, 정유진, 박효주
개봉: 2024.08.21.
배급: TCO㈜더콘텐츠온
줄거리
완벽한 변장술로 형사들을 크게 뺑이 치게 만들어 빅뺑이라 불리는 사기꾼 김인해, 말보다 주먹이 빠른 분노조절장애 형사 조수광, 피도 눈물도 없는 보스 주린팡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제주도에서 운명적으로 조우한 세 사람! 도망칠 곳 없는 제주에 발을 디딘 그들의 쫓고 쫓기는 대환장 추격이 시작된다!
늘봄가든
SPRING GARDEN
개요: 공포, 스릴러 | 한국 | 90분
감독: 구태진
주연: 조윤희, 김주령
개봉: 2024.08.21.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줄거리
대한민국 3대 흉가 곤지암 정신병원, 경북 영덕횟집, 그리고... 늘봄가든
소희는 언니 혜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유일한 유산인 한적한 시골의 저택 ‘늘봄가든’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을 방문한 후 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당장 그 집에서 나와! 늘봄가든 괴담의 실체를 밝힐 진짜 공포가 시작된다!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
HERO: LIVE IN CINEMA
개요: 드라마, 액션, 뮤지컬, 공연실황 | 한국 | 159분
감독: 박재석
주연: 정성화, 정재은, 김도형
개봉: 2024.08.21.
배급: (주)위즈온센, 메가박스중앙㈜
줄거리
1909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대한제국 의병 참모 중장 안중근과 그의 동지들은 단지 동맹으로써 독립운동에 결의를 다지고 명성 황후의 궁녀 설희 또한 독립운동에 동참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한일병합의 야망을 품고 하얼빈 역에 발을 내딛자 총성이 울려 퍼진다.
대한제국 의병 참모 중장 안중근,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믿음직한 남편이었던 안중근은 민족과 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 안중근은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을 빼앗은 적국의 수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전쟁 포로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법정은 안중근을 국제법을 위반한 테러리스트라고 판결하며 사형에 처한다.
극장판 블루 록 -에피소드 나기-
Blue Lock The Movie -Episode Nagi-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89분
감독: 이시카와 슌스케
더빙: 시마자키 노부나가, 우치다 유우마, 오키츠 카즈유키
개봉: 2024.08.21.
배급: CJ CGV
줄거리
“귀찮아”가 말버릇인 고등학교 2학년, ‘나기 세이시로’는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다. 축구로 전 세계 제패를 꿈꾸는 동급생 ‘미카게 레오’가 그의 재능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레오’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하게 된 ‘나기’는 압도적인 축구 센스를 발휘하고 어느 날, 그들에게 ‘블루 록’ 프로젝트 초대장이 도착한다. 그곳에서 ‘이사기 요이치’, ‘바치라 메구루’, ‘이토시 린’ 등, 전국에서 선별된 스트라이커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기 위한 꿈의 도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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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 그곳은 정말 유토피아였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 시스템은 개개인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살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집이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면,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개인, 가족, 사회는 국가 단위로 그 단위를 확장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어왔다. 규율과 법을 만들고 국가를 통치할 지도자를 뽑는다. 그렇게 뽑은 대표는 사회 전반적인 부분을 넓게 조망하면서 잘 되지 않는 일을 해결하고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부족 사회에서도 작은 단위에서 늘 지도자와 그 주변은 다양한 논의를 거쳐 사회를 이끌어왔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면 정치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앞에 서서 사회를 이끌어왔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을 따르고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계속 정쟁이 끊이지 않고 갈등은 계속된다. 어떤 경우에는 불합리한 결정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사회에서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현재 시점에서 판단할 수 없다. 그 갈등들이 지나간 후에 돌아보아도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의 이야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회 체계가 무너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파괴되고 하나의 공동체만 유일하게 남게 된 것이다. 여기에 외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멀쩡해 보이는 아파트로 몰려든다. 식량, 추위 등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지만 선뜻 누군가 먼저 나서 상황을 끌어가지 못한 채 사람들은 점점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때 아파트에 불이 나고 한 인물이 갑자기 달려 나와 그 불을 꺼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 인물은 바로 영탁(이병헌)이다.
그렇게 영탁은 우연하게 사람들 눈에 띄어 영웅과 비슷한 위치에 선다. 그리고 결국 그가 새로운 아파트 대표가 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회 시스템이 붕괴된 곳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도자 그룹의 이야기를 담는다. 부녀회장인 금애(김선영)와 영탁을 중심으로 몇몇의 지도자 그룹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는 보안과 방법을 맡는 민성(박서준)이 포함된다.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있는 민성은 과거 공무원이었고, 간호사인 명화(박보영)와 함께 살고 있다. 민성은 안정지향적인 인물이고, 명화는 좀 더 박애주의적이다. 초반에 외부인을 대하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성향은 영화 중반 이후 갈등을 만들어낸다.
새롭게 지도자가 된 영탁은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그의 초반 모습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모아 황궁아파트 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그가 처음으로 실행한 이 일은 그가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탄탄하게 가질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힘을 얻는 그가 만들어내는 황궁 아파트의 사회는 정말로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간호사를 중심으로 의료 센터를 만들고, 남자들이 외부로 나가 음식을 구해온다. 그렇게 모은 음식과 생활용품은 분배소에서 주민들에게 동일하게 분배를 한다.
완벽하지만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시스템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은 적어도 황궁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완벽하다. 그들은 나름의 룰을 만들어 그곳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애쓰고 그것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을 영화는 여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단, 한 가지 간과하게 되는 건 영화 초반에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이 외부인을 몰아내는 장면이다. 주민들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외부인들을 몰아냈고, 많은 외부인들은 추운 날씨에 얼어 죽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 과연 좋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생존을 위해서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사회 시스템이 하는 모든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모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무엇보다 가장 크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내가 그 안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외부인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사람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생존 시간이 줄어들 거라는 아주 단순한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외부인들은 배제된다. 다 같이 사는 것이 아닌 우리만 사는 결정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민성은 이 영화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 일종의 관찰자다. 그는 영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황궁 아파트라는 사회 시스템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는 그 사회 시스템을 믿고 따른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외부인을 몰아내고, 외부에서 음식을 구할 때 외부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반면 민성의 아내 명화는 같이 사는 방향을 찾아보려 애쓴다. 몰래 숨어있는 외부인들을 돕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의 진실을 밝혀내기도 한다.
민성의 생각이 옳을까? 아니면 명화의 생각이 옳을까? 다르게 묻는다면, 생존을 위해서는 우리만 사는 게 더 좋을까 아니면 다 같이 사는 게 더 좋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어떤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쪽이 더 맞는다고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질문하는 영화
영화 속 리더가 되는 영탁은 중요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도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더 흥미로운 건 그 자신조차 피해자이자 약자라는 것이다. 그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도 그를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는 건 영탁이라는 인물도 결국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황궁 아파트의 대표가 되어 리더십을 발휘하지고 심지어는 악행도 서슴지 않지만 영화는 그가 과연 그 정도로 돌을 맞아야 하는 인물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사회 시스템은 필요하다. 엄청난 재난 상황에서 인간은 생존을 가장 앞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배타적으로 외부인을 배제하지 않았고 포용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결말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속 황궁 아파트의 사회 시스템은 배타적인 방향을 택했다. 그 결정이 될 당시만해도 그것은 옳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 결정은 주민들의 투표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러니까 결정과정도 공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결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것이 더 맞는 것인지 자꾸만 되묻게 만든다.
영화는 결말 부분에서 다른 선택을 한 시스템의 형태를 보여준다. 따뜻하고 새하얀 주먹밥으로 대표되는, 그 다른 시스템은 따뜻해 보이지만, 그이후의 결말은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도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만의 사회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아무것도 없어진 사회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다.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한 국가는 없고,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누구는 배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척하려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포용할 것이다. 가장 쉽게 난민에 대한 여러 국가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난민들은 유토피아를 찾아 떠돌지만 그런 유토피아는 없다. 대부분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국가들은 잔인하게 난민들을 외면한다.
영화의 제목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콘크리트로 만든 아파트, 황궁 아파트를 의미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아파트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낡은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자산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사전적 의미로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모든 사람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충분한 자금이 없으면 그런 집을 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현대 사회에 꽤 만연해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배타적으로 변해가는지도 모르겠다. 이 집은 내 집이니까 외부인은 나가라는 그 편한 말은 그들에게 안정감으로 돌아온다.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초반 민성이 통조림을 떨어뜨려 소파밑으로 굴러간다. 그것을 집으로 소파 밑에 팔을 뻗어 통조림을 꺼내자 바퀴벌레들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아파트 사람들은 기겁하며 모두 바퀴벌레를 밟아 죽인다. 이 영화에서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그 영화 초반 장면 자체가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관객에게 ’ 너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아?‘라고 묻는다.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어쨌든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질문은 꽤 난해하고 아픈 질문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는 올여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지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적어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초반의 어눌한 모습의 영탁이 후반부로 갈수록 광기에 휩싸이는 것을 표현한 이병헌의 연기가 무시무시하다. 민성 역을 맡은 박서준은 사회 시스템에서 안정적인 방향의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지만 예상과 다른 결말을 보게 되어 황망해하는 모습을 무척 잘 표현했다. 그 밖에도 명화 역의 박보영과 부녀회장 김선영의 연기도 훌륭하고 그 외의 인물들도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 극에 현실감을 높인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표현해 낸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이 가장 돋보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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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 근래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내가 나인지 일이 나인지 모를 일(?)아일체의 상태가 되었다고나 할까. 나 자신으로 불리기보다는 직책이나 일 그 자체로 불리기가 비일비재했던 요즘, 괜스레 센치해져서는 '삶이란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따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존재한다는 것.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가장 본질적인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되는걸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 봤을 거라 생각된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의 주인공, 산드라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1. 이도 저도 아닌 삶
산드라의 삶은 미적지근하다. 평온함에서 오는 미지근함이 아니라 언제든지 끓어오르거나 얼어버릴 수 있는 애매한 상태라고나 할까. 그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다정하고 충실한 딸이자 사랑스러운 외동딸을 소중히 보살피는 한부모 가정의 엄마이다. 또 한편으로 어머니의 방임 아래 자라난 소녀였고, 더 이상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여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마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살아갈 뿐인 이 삶에서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퇴행성 질환으로 인해 점점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잊어버리는 아버지를 보며 산드라는 수없이 되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거기 육체(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는 껍데기일 뿐이고 책(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모은 유산)은 영혼이니까'라고. 이는 아버지를 두고 한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을 얼마쯤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 않을까.
2. 눈 먼 사랑
그런 그에게도 삶의 낙이 있다. 전남편의 친구인 클레망은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산드라의 곁을 지켜주며 그를 살뜰하게 위로해 준다. 클레망을 만나면 재미없고 우울한 나날들도 잠시 잊히고, 산드라는 온전히 그 자신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취한다. 클레망은 자신을 온전히 '산드라'로 봐주는 것만 같다. 산드라는 그가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존재하게'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잊었던 것만 같은 사랑이 다시 불타오르자 그의 삶은 활력이 돈다. 그것이 너무 달콤해서일까. 그는 그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 클레망이라는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것. (그렇다. 프랑스 영화가 프랑스 영화했다.) 산드라에게는 클레망이 무엇보다도 절실하지만, 언제나 한쪽 다리는 '자기 가정'에 담그고 있는 클레망에게 산드라는 언제나 2순위다. 아무리 달콤한 말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들,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산드라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를 끊지 못한다. 이런 사랑이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을테니까. 그것은 담배나 술과도 성질이 비슷하다. 해로울 게 분명한데도 끊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아마도 산드라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미적지근하게. 때때로 위태롭게 불타오르면서.
3. 존재한다는 것
다시 산드라의 아버지의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산드라의 아버지인 게오르그 교수는 퇴행성 질환으로 읺평생에 걸쳐 쌓아온 지식을 잊어간다. 얄궂은 뇌의 착각으로 인해 시력이 남아 있는데도 앞을 보지 못하고, 어느 장소에 있으면서도 그 장소에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버린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 없이 지키고자 써내려갔던 게오르그의 수첩은 그의 절실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딸인 산드라도 어쩌면 아버지와 사정이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보다도 상황이 나쁜 것 같다. 적어도 아버지인 게오르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끝사랑이 남았지 않은가. 그는 여자로서의 자신을 잊고, 사랑을 잊었다. 나중에는 클레망을 온전히 독차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잊고, 잊은 척을 하는 사이에 그는 점점 약해진다. 희미해진다. 이리저리 휩쓸리는 미적지근 한 삶 속에서. 어느 쓰고도 멋진 아침을 맞이하면서.
데카르트의 말처럼 '생각하는 이는 곧 존재하는 것'일까? 혹은 김춘수의 시처럼 '타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진정한 나로서 산다는건 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남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만은 확실하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멋진 아침>을 보며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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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없으니 목소리만 커지는 법이지
첫째 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한부 환자 사미라(루피타 뇽오)다. 재미없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만 기다리는 삶이라서? 그게 아니라 이 병원에서의 삶이 재미없다. 음식도 싫고 위치도 별로고 시설도 맘에 안 들고 그냥 다 싫다. 그러나 그 와중에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사람들이다. 간호사(알렉스 울프)에게 투덜대는 사미라. 밖에 나가자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피자 먹으러 갈 거야!"라고 응수한다. 공연장 앞까지 왔다. 귀여운 고양이가 내 옆에 있다. 그렇게 공연만 보면 끝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지구를 강타한 크리처 '데스 엔젤'이 뉴욕 시를 공격하고 있다. 소리 내면 죽는다. 그리고 오늘은 그 재앙의 첫째 날이다. 살아남아야 할까? 왜? 표류하는 사미라. 하지만 왜 표류하는지 스스로 모를 뻔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
콰이어트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했던 건 감각을 강조하는 연출이다. 우선 첫째. 시각이다. 이 영화에서 시각은 이야기의 전개라는 측면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왜? 영화가 기본적으로 청각적인 요소를 캐릭터 간의 장애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야기를 이끄는 데 있어 중요한 게 뭐지? 보는 것이다. 말하는 건 어려울지언정 보는 건 똑바로 봐야 소리를 내면 죽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걸 곧바로 이야기에 넣으면 긴장감이 덜하다. 영화는 여기에서 변화구를 뒀다. 이 시각을 영화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가 이 영화가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제목에 ‘콰이어트’가 들어가지만 오히려 시각으로 승부를 둔 영화의 선택지가 된 것이다. 다음은 촉각. 이 영화에서 뭔가를 느낀다는 인간의 특성은 인물이 가진 거대한 장애물이면서 인물들 간의 관계를 두텁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 촉각과 관련이 있다. 각자 인물의 입장에서 촉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주의 깊게 보시면 이 영화가 뭘 의도하고 줄거리를 짰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이 시각과 촉각보다 중요한 건 미각과 청각이다. 미각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인물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강력한 스포일러라 구체적으로 쓰긴 어렵지만, 아마 영화에서 많은 관객들이 단점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사실 이 미각과 관련한 묘사는 영화의 주제의식에 의해 희생당한 감이 있다. 이 낡은 전개를 보완하기 위해 영화가 더 부지런했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영화 안에 제시된 인물의 동기를 전면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 동기가 맥없이 배회하니 많은 관객들이 ‘이게 뭐라고 여기까지 하나’라고 느끼기 충분하다.
이 영화에서 미각만큼 중요한 건 청각이다. 당연히 시리즈가 영화를 거쳐 청각적인 요소로 서스펜스를 유발하고 있으니 많은 관객분들이 이 기대를 가지고 영화관에 갈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측면을 잘 살렸다. 가령 남자주인공이 어떤 상황에 처한 장면이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장면이 만들어지는 이유나 카메라의 동선이나 심지어 CG 퀄리티에 배우 연기까지 모든 게 시너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운드가 장점이라는 것을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점프 스케어라는 연출 기법이 있다. 소위 말하는 ‘갑툭튀’다. 이 영화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점프 스케어가 많다. 그리고 사운드가 엄청나게 커서 사람이 깜짝 놀라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는 호러라는 장르를 어느 정도는 포기했다. 왜? 디스토피아라는 세상과 이 영화의 공간을 강조하기 위해. 이것을 위해 영화는 호러라는 장르가 가진 것들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이걸 영화가 너무 잘 알아서인지 억지로 점프 스케어를 강조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갑자기 무언가가 맥락 없이 튀어나온 것만 기억에 남는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가 이런 느낌이었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관객을 압박하는 영화 아니었나? 글쓴이는 시리즈를 미적지근하게 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엉성한 플롯이 영화의 발목을 잡는다.
플레이스
이 영화는 감각만큼이나 공간적 배경을 강조했다. 어떤 공간? 바로 지역이다. 이 영화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뉴욕이라는 도시를 감독과 각본가가 해석한 바를 그대로 녹여 내렸다. 어떤 식으로? ‘콰이어트 플레이스’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근거를 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뉴욕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걸 1대 1로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못하겠지? 당연히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되어 아수라장이 된 뉴욕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건 무리가 있다. 그 대신 디스토피아에 맞게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이 장면이 줄거리 안에서 엄청나게 통제가 잘 된 것 같지는 않다(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전제조건과 전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가 어떤 걸 반복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을 비롯해 영화의 군중들은 후반부를 제외하고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이 모티브의 반복은 디스토피아 장르의 근본 그 자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한국사회에 깊게 깔려있는 아파트에 대한 집착을 꼬집고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가 여성 해방 서사를 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도 이 장르의 근본을 살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현재를 보여주려고 했던 감독의 야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재즈 카페
사실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건 호러가 아니다. 이 디스토피아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함이 있다. 이 아기자기함 자체는 영화가 잘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그 전후관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영화가 그걸 다 설명했다. 또 그 아기자기함을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도 사랑스럽게 잘 표현했다. 영화의 감정에 몰입하지 못하는 분들도 하이라이트 신이 인상 깊기에 충분하다. 영화가 짜 맞춰진 연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마법 같은 순간들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영화에서 그 장면은 연출가가 마법을 부렸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으로 이어지는 플롯은 우리가 아는 전작과의 동어반복에서 벗어났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소리 내면 죽는다는 설정으로 1,2편에 프리퀄까지 끌고 들어오면 그건 단지 같은 패턴의 반복일 뿐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다른 동력을 만들어서 나름의 결론을 낸 셈이다.
하지만 그 마법 이면에 깔려있는 것들이 과연 탄탄했나?라는 의문이 든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기본 전제조건. 두 주인공간의 관계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영화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생각할만하다. 하지만 글쓴이도 이 관계가 현실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주인공이 갖고 있는 병의 문제?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이 특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영화가 그걸 잘 살렸나? 병을 면밀하게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무리수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영화에서 감독이 정말 하고 싶은 말에 해당하는 부분이 매가리가 없으니 플롯이 겉돈다. 어떤 입장에서 야심만 가득한 채로 윽박지르는 영화로 보기에 충분하다.
94%쯤 완성된 듯
장르적인 것도 취하고 나머지의 목표도 달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밀하게 잘 짜였다고 보긴 어려운 영화다. 세세한 각본 오류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뉴욕 시가 폐쇄된 건지 미국 정부가 폐쇄된 건지 알 수 없게 연출된 것은 영화의 개연성이라는 밑 빠진 독을 채우겠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글쓴이는 영화의 약점이 거기 있다고 보지 않는다. 두 장르를 동시에 잡겠다는 과욕 때문에 뭔가를 포기했다. 근데 그 뭔가를 굳이 포기해야 했을까? 글쓴이는 아닌 것 같다. 점프 스케어를 아예 빼던지, 추격전을 더 강화하던지의 선택지를 골랐다면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적당히는 볼만할지 몰라도 시리즈의 팬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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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데렐라를 꿈꿨던 또 다른 아노라에게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웃음과 슬픔이 뒤섞인 신데렐라 스토리
- 아노라와 이반 사이의 간격을 보여주는 장면들
- 계단과 엘리베이터의 의미
-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은 대 환장 공방전
- 엔딩 결말 해석
아노라 (Anora, 2024)
신데렐라를 꿈꿨던 또 다른 아노라에게
개봉일 : 2024.11.06.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코미디,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 139분
감독 : 션 베이커
출연 : 미키 매드슨, 마크 아이델슈테인, 유리 보리소프, 카렌 카라굴리안, 바체 토브마시얀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아노라>는 진정한 사랑과 부를 꿈꿨던 여성 아노라의 이야기다. 아노라는 돈을 받고 잠깐의 사랑과 육체를 파는 성 노동자(스트리퍼)다. 그는 진심은 없지만 친절함은 가득한 말투와 아름다운 미모로 가게에 찾아온 남자 손님들을 홀려 돈을 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저분하고 천한 일이라 생각하는 직업이지만 아노라는 아무 불평 없이 그저 묵묵히 일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 러시아어가 가능한 스트리퍼를 찾는 부자 손님이 나타나고 아노라는 사장의 손에 이끌려 테이블로 향한다. 이번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기대보다 그냥 또 일이 생겼구나-싶은 딱딱한 마음으로 향한 한 테이블. 아노라는 그 테이블에서 지금껏 만난 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남자 이반을 만난다.
아노라에게 이반은 특별한 남자였다. 보통의 부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의 재력은 기본이고 아노라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첫 시작은 손님과 구매자였지만 이반은 아노라에게 쉴 틈 없이 사랑을 속삭이고 돈 한 푼 없어도 너랑 함께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프러포즈와 함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선물한다.
이반의 프러포즈 이후 마음을 활짝 열게 된 아노라는 한순간에 밀려온 거대한 행복을 만끽한다. 그리고 이반을 진정한 사랑이자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신분 상승 엘리베이터라 믿으며 온 마음을 다해 그를 붙잡는다.
하지만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 이반의 부모님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 하수인 3인방을 급파하고 이들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얼마 못가 위기를 맞이한다. 아노라는 그런 와중에도 우리의 사랑을 믿고 기대하지만 이반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아노라는 하수인 3인방과 시끄러운 공방전을 벌인다.
웃음과 슬픔이 뒤섞인 신데렐라 스토리
열심히 살아도 신데렐라는 될 수 없다고, 사랑을 믿어도 그것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진 않는다고. 그저 나를 알고 나답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아노라>는 말한다. 이제 ‘누구나 행복한 신데렐라가 될 순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나이인데, 그럼에도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는 매번 내 가슴을 신랄하게 들쑤신다.
그래도 <아노라>가 좋았던 건 ‘나를 알고 나답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을 마냥 나쁘게 하고 있진 않다는 점이다. 아노라는 언제나 최대한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고 적어도 한 명쯤은 그런 아노라를 존중한다. 션 베이커 감독은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내 그 한 명의 호의적인 시선으로 아노라를 바라보고 영화는 그것을 고스란히 담아내 스크린 밖에 있는 또 다른 아노라에게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아노라>를 보다 보면 자연히 아노라의 인생을 응원하게 된다. 이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아노라가 꼭 대단한 신데렐라가 되진 못해도 그가 진짜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션 베이커 감독의 성 노동자 지지 발언,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성매매 행위, 여성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압박 등 누군가에겐 불편함을 줄만한 표현과 장면들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보다 더 큰 웃음과 슬픔이 있다는 점에서, 나는 <아노라>가 좋았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노라와 이반 사이의 간격
두 사람의 계층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들
아노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욕하는 성 노동자(심지어 이반의 어머니 갈리나는 창녀라며 대놓고 욕한다), 이반은 웬만한 부자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재벌 집 아들이다. 아노라와 이반은 거의 하늘과 땅만큼이나 먼 계층에 위치해있다. 아노라가 처음 이반의 집에 방문했던 날, 그는 두꺼운 철문 두 개와 그곳을 지키는 경비원, 커다란 현관문을 통과해 겨우 이반을 만난다. 아노라가 이반 같은 사람에게 닿으려면 이토록 두껍고 높은 관문들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심지어 그 관문들은 아노라가 자력으로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고 건너편에서 누군가 열어줘야만 통과할 수 있다.
여차저차 이반의 호의를 받으며 들어온 집안. 다음 관문은 침실로 가는 긴 계단이다. 이반은 익숙한 듯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 2층 침실로 올라가고 불편한 신발을 신은 아노라는 이반보다 느린 속도로 어렵게 계단을 오른다. 이때 이반은 "아, 기다려줄게.”라고 말하며 잠시 아노라를 배려해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2층에 도착한 이반과 아노라는 함께 침대에 누워 대화를 나눈다. 아노라는 이반이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이런 부를 누리는지 궁금하다. 아노라가 직업을 묻자 장난을 치던 이반은 “니콜라이 자카로프 아들이야.”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아노라는 몸을 갈아서 돈을 버는 게 당연한 삶을 살아왔기에 이반에게 직업을 물어봤는데, 이반은 ‘누구의 아들’인 것만으로도 이런 걸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저 ‘니콜라이 자카로프 아들’이라는 것만으로 소개를 끝내는 이 상황이 참 우습고 슬프다.
아무튼 니콜라이 자카로프? 아노라는 그를 모른다. 사는 세계가 다르고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재벌 이름을 외우고 앉아있겠나. 이반은 구글에 검색하면 나온다며 철자도 알려주겠다고 한다. 이반의 이런 모습(+계단에서 기다려주기)은 얼핏 사랑과 친절함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우위를 점한 자의 여유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올라갈 땐 긴 계단, 내려올 땐 엘리베이터
익숙해질 때쯤 끝나버린 행복
이반은 아노라에게 프러포즈할 때 “너와 결혼하면 돈 한 푼 없어도 행복할 것 같아.” 라고 말한다. 돈 한 푼 없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아노라에게 이런 말을 하니 감미롭다기보단 우습다. 그런데 아노라는 여기에 그대로 넘어가버린다. 무시하기엔 이반이 주는 행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아노라가 사는 집은 지하철의 소음과 진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늘진 공동주택이고 현관엔 오르기 귀찮은 계단이 있다. 그가 일하는 곳은 창문 하나 없고 소음과 어두운 조명으로 가득하다. 이에 반해 사람보다 큰 통창으로 이루어진 이반의 집은 햇빛이 잔뜩 들어오고 그 넓은 공간엔 좋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엘리베이터도 있고 운전기사가 대신 짐을 들어 운반해 주고, 또 고용인들이 청소도 대신해 준다. 이 외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삶이라니.
아노라는 처음엔 이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반의 품에 안겨서도 청소해 주는 고용인들을 곁눈질로 쳐다보고 카지노에서도 이반 일행에게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색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반의 사랑을 믿고 혼인신고를 한 후엔 일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이반의 집에 들어와 모든 걸 누리며 살기 시작한다. 아노라는 점점 자신이 신데렐라가 된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신혼여행은 디즈니랜드, 공주방 리조트가 좋을까?” 고민하며 달달한 신혼생활을 기대한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현실이 들이닥치고 이반의 도주와 결혼 무효화까지 순식간에 착착 진행된다. 베가스에서 시작된 아노라의 꿈은 베가스에서 끝을 맺는다. 호화로운 전용기를 타고 베가스로 향한 이반의 아내 애니는 아노라가 되어 아이 울음소리로 가득 찬 좁은 이코노미 석에 다시 몸을 싣는다.
모든 일이 끝나고 이고르와 하루를 보낸 후 아노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침실에서 내려온다. 계단으로 침실에 올라가는 건, 이반과 부부가 되는 건 (이별보다 비교적) 오래 걸렸는데. 침실에서 내려오는 건, 이반과 남이 되어 현실로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다. 이제 잠에서 깰 시간이다. 반야의 아내 애니가 아닌 아노라는 신데렐라가 되지도, 디즈니랜드에도 가지 못한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공방전
이 결혼에 대해 이반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그에게 아노라와의 결혼은 잠깐의 일탈, 그가 즐겨 하던 콘솔 게임 한 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반은 즐거운 미국 여행을 위해 돈을 주고 스트리퍼 아노라를 구매해 잠깐 ‘반야’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됐고, 이제 그것을 버려야 될 때가 왔음을 알고 순순히 결혼 무효화에 동참한다. 그래서 아노라와 어머니가 뭐라고 말하든 이반은 할 말이, 꼭 해야 할 말이 없다. 아노라와의 결혼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고 바꾸려고 노력할 만큼의 가치가 없으니까.
하지만 아노라는 할 말이 참 많다. 그는 이 결혼에 모든 걸 걸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곁가지로 매달린 하수인 토로스, 가닉, 이고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생계, 인생을 위해 꼭 결혼 무효화에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할 말이 많다.
우리는 진짜 사랑한다고, 우리는 꼭 이걸 무효화 시켜야 한다고, 나 이 일하다가 뇌진탕 온 것 같다고. 한바탕 몸싸움이 일어난 이반의 집 거실에서 아노라, 토로스, 가닉의 온갖 말들이 뒤섞이며 대 환장 그 자체인 상황이 벌어진다. 다들 가진 건 없는데 할 말은 참 많다. 이 영화는 그 모든 말들을 하나도 거르지 않고 다 들려준다.
이런 면에서 <아노라>는 성 노동자를 위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모든 노동자를 위한 영화이기도 한 것 같다. 생계를 위해 군말 없이 일을 하는 아노라처럼, 이반을 찾기 위해 캔디 샵을 부수고 견인차에 걸린 차에서 엑셀을 밟는 토로스 일행처럼 그저 생계와 고용인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그런 이들. 영화는 이들의 마음속에 들어있을만한 온갖 불평과 짜증들을 아노라와 하수인들의 입을 통해 한 공간에 풀어놓는다. 이게 정말 우습고 골 때리기도 하고.. 한편으론 공감되고 슬프기도 하다.
내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
결말 엔딩 해석
결혼 무효화가 끝난 후 아노라와 이고르는 이반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이고르는 아노라에게 이고르라는 이름은 ‘워리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라고 알려주며 ‘아노라’라는 이름엔 무슨 뜻이 있냐고 묻는다. 아노라는 “미국에선 이름 뜻 생각 안 해.”라고 말한다. 아노라의 답을 들은 이고르는 휴대폰을 들어 아노라의 이름 뜻을 찾아 알려준다. 석류, 빛, 밝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난 애니보다 아노라가 좋아.”
극 중에서 아노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끔 ‘아노라’라는 이름을 부르긴 하지만 그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존중해 주진 않는다. 아노라 또한 자신의 이름에 관심이 없고 아예 진짜 이름보다 애니라고 불리고 싶어 한다. 아노라는 스트리퍼 아노라, 진짜 아노라의 인생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이반을 만난 후엔 신데렐라 애니의 삶을 꿈꾼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고르가 나조차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내 이름과 내 인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감기 걸린다고 스카프를 주고, 본인도 좁은 비행기 좌석에 불편히 앉아있으면서 내 편의를 챙겨주고, 내 짐을 들어 계단 위로 올려다 주고, 내가 빼앗긴 다이아몬드 반지를 슬쩍해 가져와주고.. 아노라는 이런 이고르의 성의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다. 돈을 주는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해주던 것처럼.
하지만 이고르는 애초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아노라와 한 공간에 있다는 이유로 그를 강간할 생각도 없었고 다이아몬드로 그의 몸을 살 생각도 없었다. 이고르는 ‘무언가를 받으면 내 몸을 줘야 한다’는 아노라가 믿어온 이치를 부순다.
이고르의 이런 행동이 아노라를 향한 성애에서 시작된 것인지, 연민, 동질감에서 시작된 것인진 알 수 없지만, 이고르는 아노라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대가 없는 호의를 전한다. 아노라가 이반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받지 못한 따뜻한 마음. 결국 아노라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건 저 위에 있는 왕자님이 아닌 무시하고 오해했던, 아노라와 같은 계급의 노동자 이고르다.
인생역전을 시켜줄 왕자와 그의 수혜를 입을 신데렐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노라에겐 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이고르가 있다는 것이다. 둘이 꼭 아름다운 결말을 맺지 않아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그저 이 쪽팔리고 서러운 순간에 아노라의 옆에 이고르가 있어준 것, 조용히 아노라의 눈물을 받아줄 이고르의 가슴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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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 앞에 가려진 개인, 무너진 관계.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에서 사건이 발생하여 북한은 남한의 기습 테러 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의 납치로 주장하고 중립국에서 조사를 맡게 된다. 남한의 ‘이수혁 병장’, 북한의 ‘오경필 중사’ 그사이에 놓인 조사관 ‘소피’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사건에 진실에 다가가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이야기를 필두로 ‘공동 경비 구역 JSA’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진짜 수사관으로서 임무를 다하기 위해 온 ‘소피’의 입장과는 달리 ‘중립국’의 입장은 누가 쐈는지보다는 왜 쐈는지를 밝히고 절차를 따지며 아무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남한, 북한, 중립국 그 누구도 진실을 원하지 않았지만, 소피와 관객은 그날의 진실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 이들의 모습과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는 소피의 모습을 대조하다 그날의 진실로 카메라는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경필이 수혁을 도와주는 일이 계기가 되어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먼 거리에서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이 세 사람의 거리는 어느새 서로가 적이라는 것을 잊고 익숙하게 옆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라는 농담을 나눌 정도로. 교차하는 시선과 침묵을 유지하는 그들로 인해 도저히 알 수 없는 관계를 파악하는 소피는 증거물을 바탕으로 의외의 인물에서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불안 앞에서 한없이 약해진 감정이 관계의 갈고리를 무너뜨리며 총구가 향한 방향과 그 손이 누군가를 가리키는 순간을 목격하고 한없이 무너지는 개인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먼 발치에 바라봤던 그들의 거리는 한없이 멀어진 분단 국가의 현실을 드러내고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 중립국을 보여주며 따뜻했던 서로의 거리가 차갑게 식어 다시 만나지 못할 그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씁쓸할 뿐이다. 개인과 개인이 마주했을 때 서로를 바라보지 않던 총구가 이념 앞에서 끊임없이 불꽃을 일으키는 모습이 마냥 서글프기만 하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역사의 현실을 영화로 투영하여 보여준다. 지나면 지날수록 깊게 패여드는 갈등은 분단의 모습으로 드러났고 가까워질 듯 하면서도 가까워질 수 없는 영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남한과 북한의 모습이 아닐까. 서로에게 들이미는 총구를 내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당시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북한 사람의 모습을 괴물과 악마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사람으로 표현하면서 한국 영화에 명작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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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손] 끝장리뷰 | 발(하체) 상징 | 결말해석 | 수평과 수직 | 멀고 가까움 | 가부장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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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손](2024)은 씨네랩 측에서 제공한 시사회권으로 감상하였습니다)
[장손] (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수평과 수직, 멀고 가까움
Chapter 2 가부장의 진실, 하체의 문제, 결말해석
00:00 장손 개봉
01:34 수평과 수직
05:25 가부장제 비판
08:07 하체의 문제
09:07 결말해석
11:56 별점 및 한 줄 평
12:12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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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벤져스 1편 삭제씬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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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4. 0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34 마리아 힐 & 오프닝
01:35 외로운 캡틴
03:35 캡틴과 웨이트리스
04:37 경찰 비하인드
05:23 앤트맨 힌트
06:09 너무 오랜만에 찾아왔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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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드 원> 1차 예고편
🚨속보🚨 산타💪 납치! 사라진 산타를 찾아 크리스마스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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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메이드 인 이태리> 30초 예고편
오랫동안 비어있떤 집을 팔기 위해 아름다운토스카나에서 뜻밖의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아버지와 아들. 이탈리아에서의 낭만적인 일상이 잊고 있던 두 사람의 행복을 되찾아주고 새로운 사랑도 가져다 주는데.. 우리 여기서 다시 시작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