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3-12-18 00:01:48
노동자 커플의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
<사랑은 낙엽을 타고> 영화 시사회 후기
시놉시스
202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안사는 점원 일을 하고 있지만 마트 매니저와의 불찰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되고 식당 보조 일을 하기 시작한다. 홀라파는 공장에서 지게차로 가스 운반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일하다가 다쳐서 해고당하고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한다. 이 둘은 가라오케(노래방)에서 우연히 만났으며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러다가 둘의 만남은 우연에서 필연으로 바뀌게 되는데...
안사는 하루하루가 지겨운 일상이었고 마트 점원 일과 식당 보조 일을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홀라파도 타고난 술꾼이었으며 공장과 공사장에서 술을 마시고 일했다. 또한 홀라파는 자신이 담배를 많이 피워 폐암에 걸릴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었고 술 마시기만 좋아했지 딱히 연애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사를 만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술병에 있는 술을 세면대에 쏟아버리지 않나 일절 술에 대한 걸 완전히 끊는다.
사실 안사는 집에 초대해 밥을 먹을 때 홀라파가 지독한 술꾼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런 그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충고를 한다. 홀라파는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안사가 잔소리꾼이라고 생각했지만 펍에서 나오는 노래와 가라오케에서 나오는 노래로 인해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 방식에 대해 고쳐먹는 계기가 되면서 천천히 술을 끊었던 것이다.
핀란드에서 만든 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무언가 딱딱한 분위기에 무뚝뚝한 대사인데 그래도 재미있었다. 일단 이 영화의 장점을 말하자면 핀란드의 헬싱키라는 도시에서 있을 법한 연애 이야기를 다뤘고 남주인공과 여주인공 모두 노동자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실이나 누구나 공감할 만한 노동 문제라든지 이런 걸 다뤘다.
필자가 시사회에 갔을 때 핀란드 주한대사가 직접 와서 무대인사를 했는데 핀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연과 같이 공존하고 연대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있는 그대로를 보며 살아가는 핀란드 사람들의 행복함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기에 사랑은 낙엽을 타고라는 영화가 신선하게 다가온 건 아니었을까?
남주나 여주나 노동자들이라서
노동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로맨틱한 코미디로 풀어낸 웰 메이드 영화!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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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게 온 DCEU의 마지막 편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부동생 '옴'(패트릭 윌슨)의 야욕을 꺾고 아틀란티스 왕국의 왕좌를 차지한 '아쿠아맨/아서 커리'(제이슨 모모아). 왕비 '메라'(엠버 허드)와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아들을 키우며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던 그에게 과거의 악연이 다시 찾아온다. 아쿠아맨에게 아버지를 잃은 '블랙 만타'(야히아 압둘마틴 2세)가 지구를 파괴할 무기인 '블랙 트라이던트’를 손에 넣고 아틀란티스를 공격한 것.
예기치 못한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아서는 과거 블랙 만타와 손을 잡은 바 있는 옴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다. 사막 감옥에 갇힌 옴을 찾아가고, 그를 감옥에서 꺼내준 아서. 의심과 불신 속에 한 팀을 이룬 아서와 옴은 이제 남태평양의 한 섬으로 향한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켜 지구를 파괴하려는 블랙 만타와 그를 조종하는 사라진 왕국의 '코닥스 왕'을 무찌르기 위해서.
<아쿠아맨 2>를 보는 두 시선
2018년에 개봉한 DCEU(DC 확장 유니버스)의 <아쿠아맨>은 시리즈 초석 역할에 충실한 영화였다. 전작 <저스티스 리그>에서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해 그저 '물고기랑 대화하는 애'였던 아쿠아맨. 그의 이미지는 '호쾌하고 상남자스러운 바다의 지배자'로 180도 달라졌다. <컨저링> 시리즈와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메가폰을 잡았던 제임스 완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흥행 성적도 훌륭했다.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국내에서도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국내에 개봉한 DC 원작 영화 중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조커> 다음으로 좋은 성적이었다. "물맨(아쿠아맨) 봄은 온다"는 밈이 유행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1편의 평가와 성적만 놓고 보면 5년 만에 돌아온 속편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을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DCEU의 현황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연출한 제임스 건이 총괄 기획을 맡은 DC 유니버스가 새 출발을 알리면서 세계관 자체가 취소됐기 때문. 그 결과 DC 유니버스로 편입되지 못한 <아쿠아맨 2>은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숱한 재촬영과 재편집 뉴스도, 조니 뎁과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한 엠버 허드의 출연도 희소식은 아니었다.
엇갈린 시선 속에 도착한 <아쿠아맨 2>는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전편에서 스쳐 지나간 환경 문제를 주요 소재로 삼아 예상 못한 큰 그림을 보여줬고, 아쿠아맨의 서사도 한층 풍성해졌다. 근래 히어로 영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액션의 쾌감도 강렬하다. 하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미처 못 지운 재촬영의 흔적 때문에 영화는 전반적으로 산만하다. 특히 존재 의의가 없다는 한계를 뒤엎을 한 방은 끝끝내 보여주지 못했다.
다급한 현실을 직시한 큰 그림
MCU의 전성기였던 2010년대 후반만 해도 MCU의 장점은 현실성이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호크아이 등은 당장 지구에서 활동해도 위화감이 없어 보이는 영웅이었다. 그랬기에 관객들도 그들의 서사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반면에 DCEU의 다소 비현실적인 히어로들은 감정적으로 이입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솔로 영화가 나온 슈퍼맨과 원더우먼만 해도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외계인과 신화 속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MCU와 DCEU에 대한 평가가 마침내 뒤바뀐 듯 보인다. 멀티버스 사가에 힘을 쏟은 마블은 점점 공허해졌다. 다중 우주와 양자 영역, 시간여행이 중심 소재가 되면서 MCU 영화들은 관객들이 발 딛고 있는 지구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반면에 DCEU는 오히려 지구에 가까워졌다. 지구 온난화라는 환경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아쿠아맨 2>의 메시지는 그 어떤 히어로 영화보다도 현실적인 위협과 맞닿아 있으니까.
물론 전편에서도 환경 문제는 중요한 소재였다. 해양 오염 문제 때문에 옴이 이끄는 아틀란티스 군대가 육지 침공을 계획했을 정도였다. 단지 1편이라는 특성상 부각되지 못했을 뿐이다. 거시적인 문제를 화두로 던지기 전에 아쿠아맨 캐릭터 소개, 아서와 옴의 왕위 싸움, 아서와 메라의 로맨스만 다뤄도 러닝타임이 부족했으니.
<아쿠아맨 2>는 다르다. 빌런의 동기, 행적, 계획 모두 지구 온난화와 맞닿아 있다. 당장 극지방이 녹지 않았다면 블랙 만타는 블랙 트라이던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더해 블랙 만타를 통해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켜 남극 빙하에 갇힌 사라진 왕국 '네크루스'를 부활시키려는 코닥스 왕의 음모도 이뤄질 수 없다. 이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영구 동토층에 얼어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환기시킨다.
야심 찬 그림 위에서 뛰어놀다
이처럼 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야심 찬 큰 그림은 아쿠아맨이라는 영웅의 서사를 풀어내는 데 최적화된 도구이기도 하다. 여러 능력이 있지만, 아쿠아맨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소통'이기 때문. 특히 기껏해야 물고기와 대화한다고 놀림거리가 되는 이 능력이 의외로 가장 영웅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 신화적 관점에서 볼 때, 영웅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인물이다. 영웅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예언을 실천하는 이다. 동시에 인간 중 가장 뛰어난 자로서 신이 정한 운명에 도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간극은 그리스 비극의 원천이었다. 오이디푸스도, 아킬레우스도, 테세우스도 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세계에 도전하다 파멸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아서 커리의 서사도 다르지 않다. 그는 아틀란티스의 왕이자 육지와 바다의 전쟁을 막은 영웅 아쿠아맨이다. 육지와 바다를 자유로이 오가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두 세계의 공존을 가능케 한 셈이다. <아쿠아맨 2>는 이제 그의 영웅성을 다른 방향으로 확장시킨다. 두 세계의 가교 역할을 넘어서서 두 세계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업을 아서에게 부여한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인간과 아틀란티스인 모두의 생존을 위한 일이니까.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블랙 만타는 아버지를 죽인 아쿠아맨을 증오하고, 인간은 미지의 국가인 아틀란티스를 막연히 두려워한다. 옴을 비롯한 아틀란티스인들은 바다를 파괴하는 육지에 세계에 분노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아서는 블랙만타와 그를 조종하는 코닥스 왕과 대적하고, 자기와 반목했던 이부동생의 마음을 되돌려 협력해야 한다. 모든 적개심을 극복할 때 비로소 바다와 육지가 협력하는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장점을 계승하는 중입니다
더 나아가 <아쿠아맨 2>는 슈퍼 히어로 영화다운 방식으로 아쿠아맨의 과업을 보여준다. 바로 액션이다. <아쿠아맨 2>의 액션은 영화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남태평양의 한 섬에 도착해 블랙 만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대표적이다.
아서와 옴은 정글에서 거대해진 메뚜기와 식충식물에게 불시에 기습당한다. 블랙 만타가 가공할 만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동안 섬의 생태계가 불안정해졌고, 그 결과 돌연변이 동식물이 등장한 것. 지구의 이상 징후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액션 시퀀스의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셈이다. 그렇기에 괴물이 된 동식물과 아서 형제의 추격전은 마냥 유머스럽지 않다. 꽤 징그럽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물론 메시지, 서사와의 연결성을 빼고 보더라도 <아쿠아맨 2>의 액션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다. 비록 스케일이 전편보다 줄어들었고 CG 티가 나는 부분도 있지만, 아틀란티스에서 펼쳐지는 수중전이나 네크루스 전투는 여전히 화려하다. 다양한 색상의 광원을 활용한 덕분에 액션의 움직임과 흐름을 따라가는 데도 무리가 없다. 이는 너무 어둡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탈로칸 연출과 대비를 이룬다.
초기 DCEU 영화의 느낌이 되살아난 장면도 눈에 띈다. 히어로와 빌런이 일 대 일로 맞붙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경쾌한 리듬감과 명확한 카메라워크의 조합 덕분에 아쿠아맨과 블랙 만타가 각자 삼지창을 들고 일기토를 펼치는 장면은 문자 그대로 눈이 호강한다. 잭 스나이더가 제작에 참여한 <맨 오브 스틸>, <원더우먼> 등이 빠른 템포의 액션씬을 통해 히어로의 초인적인 힘을 강조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대목이다.
부실할 수밖에 없는 기초 공사
하지만 야심 찬 소재와 메시지, 히어로 영화로서 부족함 없는 액션의 완성도는 온전히 빛나지 못한다. 영화의 기본 토대인 각본과 편집이 상당히 불안정하기 때문. <아쿠아맨 2>의 플롯은 크게 세 개다. 1) 숙적이었던 아서와 옴이 함께 모험을 떠나는 버디 무비. 2) 복수심으로 가득 찬 블랙 만타와 그 배후인 코닥스 왕의 계략. 3) 왕이기 이전에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 아서의 가족 이야기.
그런데 <아쿠아맨 2>는 플롯 간의 연관성을 제때 못 보여준다. 1번과 2번의 연결은 자연스럽다. 블랙 만타를 막기 위해 전편에서 그와 관련이 있는 옴을 활용한다는 내용이므로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반면에 세 번째 플롯은 코닥스 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나머지 플롯과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세 플롯 중 등장은 가장 빠르다. 그러다 보니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영화는 전반적으로 산만하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또 각 플롯은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아서의 가족 이야기에서는 아버지로서 아서 커리의 정체성을 강조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 엠버 허드의 분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내용이 대폭 삭제된 흔적이 역력하다. 할머니가 된 '아틀라나'(니콜 키드먼)의 등장 타이밍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가족 이야기가 펼쳐지는 초반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틀란티스가 습격당할 때 갑자기 등장해 존재감을 뽐낸다.
아서와 옴의 버디 무비는 진부하다. 특히 <토르: 다크월드> 속 토르와 로키의 이야기를 답습한다. 선조가 패퇴시킨 고대의 적과 맞서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도, 감옥에 갇힌 동생을 형이 몰래 구해 모험에 참여시킨다는 전개도 빼닮았다. 그나마 옴이 로키보다 콤플렉스가 덜하고 진중한 게 차이점이다. 그런데 이조차도 장점은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아서 형제의 서사가 토르와 로키의 갈등보다 덜 극적이라는 뜻이니까.
근본적인 한계는 못 넘은 마지막 인사
그뿐만이 아니다. 디테일의 부족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시퀀스 간의 전환은 종종 부자연스럽고, 음악도 전편에 비해 활용법이 어색하다. 전편이 분위기를 환기시킬 때마다 음악을 적재적소에 삽입한 반면, 이번에 활용된 음악은 분위기를 자꾸 끊는다. 개그씬도 맥락이 어색한 경우가 잦다. 그 결과 <아쿠아맨 2>는 전반적으로 마치 밀린 과제를 해치우는 듯하다.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가기 바쁘다는 인상이 진하게 남는다.
인상적인 큰 그림과 확실한 장점을 갖추고도 세밀한 완성도가 부족하다면, 결국 불안정한 제작 환경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제임스 완이 주연 배우 사망으로 인해 각본을 수정하고 숱한 재촬영을 진행하면서도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키는 전례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그에게도 DCEU와 DC 유니버스 사이에서 표류 중이던 <아쿠아맨 2> 구조작업이 얼마나 난관이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기대 이상의 완성도와 재미를 갖췄지만 <아쿠아맨 2>의 끝은 공허하다. <아쿠아맨 2>의 결말은 <블랙팬서>와 유사하다. 아서의 결단 덕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틀란티스는 육지와의 협력을 약속한다. 만약 DCEU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이는 세계관의 일대 변화를 기대케 하는 가슴 뛰는 마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럴 일은 없다. 그렇게 <아쿠아맨 2>는 무의미한 자기소개를 마지막으로 DCEU의 문을 닫는다.
Acceptable 무난함
조금만 빨리 왔다면 DCEU의 미래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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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지대에서 던지는 질문
<플랜 75>의 이야기는 한 가지 위험한 아이디어로 시작된다. 대상이 확실한 죽음. 그리고 특이하게도 제목의 의미를 곧바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바로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죽음을 선택한 권리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지원금이 있고, 원하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죽음이 허용된 근미래의 사회를 배경으로 <플랜 75>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플랜 75’는 언뜻 보면 꽤나 설득력 있고 괜찮은 정책처럼 보인다. 원치 않는 인생을 중단할 권리, 존엄사를 향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사람들은 계속 있어 오지 않았나.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고통 없이 숨을 거둘 수 있고, 원하면 중단할 수 있고, 또 미리 고심할 시간도 충분할 것 같다. 노령인구는 줄어들 것이고, 어쩌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극화된 세상에서, 흑과 백 사이 회색 지대에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불현듯 떠오르는 이 생각을 한쪽 극단으로 만든다. 각자 대변성을 지닌 훌륭한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가 세심히 설계되었고, 그들이 가진 세상의 가장자리를 조금씩 맞닿게 하면서 질문들을 가운데로, 또 가운데로 밀고 나간다.
<플랜 75>는 러닝타임 전체에 걸쳐서 이 제도를 소개한다. 그럼에도 제도 안에 있는 다양한 배경과 연령의 인물을 배치하면서 세계관을 소개하는 데에 그친 미완의 작품이 아닌 ‘이야기’로서의 힘을 획득한다. ‘플랜 75’가 ‘괜찮은 정책’처럼 보인다는 점이 위험한 이유는 죽음을 복지서비스처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 정책 뒤에 있을 긍정적인 효과만을 바라보는 동안, 변화하는 인식은 고려하지 않게 된다. 사람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냈고 그래서 통제와 관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은, 정책이 곧 개인의 인식과 관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완전히 간과한 결과이다. 홍보 문구를 걷어낸 ‘플랜 75’의 실상은 죽음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장려하고 또 죽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영화 속 사람들은 이미 75세 이상이 되면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존엄사가 지향하는, 삶과 죽음,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품위있게 삶을 마감하길 원할 만큼의 고통에 대한 고심 끝에 이루어지는 복지라는 점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이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그린 근미래의 일본에서, ‘플랜 75’의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죽어도 된다’는 생각은 결국 노인에 대한 혐오를 허용하는 현상까지 나아간다. ‘괜찮은 정책’의 반대 급부는 바로 여기이다.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은 영화 내내 제도를 소개하고 있지만 결코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는 점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 살고 노동하는 모습을 모두 보여주면서 영화는 자신의 역할만을 완수하고, 생각은 관객 스스로가 하도록 한다. 그러자면 이 제도 내에 있는 인물들이 각자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보인다. ‘플랜 75’는 직접 여기에 참여해 죽음을 선택하려는 인물을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인물, 노인들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 ‘플랜 75’가 시행되는 시설의 노동자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꽤 괜찮아 보이는 복지 정책조차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음을 제시한다. 정책이 시행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배제되는 것처럼, 일자리 창출이라는 멋진 현상은 ‘사람을 죽여주는 직업’이라는 실상을 가린다. 청년들은 결국 노인들과 상담하면서 죽음을 장려하는 사람이 되고, 시설에서 사체를 관리하고 유품을 처리하는 일은 또 다시 저임금 노동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맡겨진다. 이런 방식으로 <플랜 75>는 회색 지대에 안착한다.
관객을 매혹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미지와 치밀하게 설계되어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모두를 휘두르는 영화들이 있는 반면,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오래도록 사유하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이 수많은 생각과 질문을 극장 밖까지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바로 그것이 <플랜 75>가 영화로서 가지는 힘이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자주, 계속 필요한 서술일 것일지도 모른다.
*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아 참석 및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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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이별을 알아가는 8살 과거의 나에게
반려견 루와 헤어진 8살 소녀 사야카의 가슴 뭉클한 이별 여정을 담은 성장 이야기로
아쿠타가와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꼽히는 나오키상을 수상한
재일 교포 2세 작가 이주인 시즈카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한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40여 년간 꾸준히 작품을 출간하며 나오키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몇 차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일본 대표 문학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아이의 순수한 시선을 따라 전개되는 차분함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주연을 맡은 니이츠 치세의 연기 또한 이를 확실히 강점으로 만들 만큼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근래 자극적인 영상에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기에는 더없이 좋았던 시간으로
이런 은은한 느낌을 좋아하시는 관객분들이시라면 나쁘지 않게 보실 것 같네요.
첨부터 끝까지 이런 분위기예욤
왠지 나랑 똑같다고 느꼈던 것 같다
8살 사야카는 등에 큰 점이 있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지만
용감하고 당찬 성격에 씩씩하게 다니는 밝은 아이입니다.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집으로 가던 중 거위 소리에 발길을 옮긴 펫샵에서 천덕꾸러기 루를 만납니다.
입양을 가기엔 너무 커버려서 아무도 데리고 가려고 하지 않아 샵 밖에 있었지만
소녀는 루를 보자마자 동질감을 느끼며 운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매일 루를 보러 가던 중 데려가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내다 버려지게 될 거라는 직원의 말에
부모님을 설득하게 되는데, 아빠에게서 개는 사람보다 빨리 죽는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죠.
그리고 엄마에게서도 어렸을 때 키웠던 개가 죽었을 때 슬펐다면서, 지금도 떠올리면 슬프다는 말을 듣지만,
루에게 빠진 마음이 컸기에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며 루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서로 친구가 된 루와 사야카는 아침, 저녁으로 동네 곳곳을 누비며 우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몸집이 작은 그들만 들어갈 수 있는 바닷가 근처 벽의 조그마한 틈 너머 넓은 들판을 발견하고
둘만의 공간으로 여기고 매일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철로를 발견하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駅までの道をおしえて, 영제 : Show Me the Way to the Station│감독·각본(각색) : 하시모토 나오키
│원작 : 이주인 시즈카의 동명의 단편 소설│출연진 : 닛츠 치세, 오이다 요시 외 多│장르 : 드라마│상영 시간 : 126분
│개봉일 : 2022년 2월 17일│국가 : 일본│등급 : 전체 관람가│평점 : IMDB 6.6, 야후 재팬 3.4점│시청 가능 서비스 : 17일부터 극장 상영
소중한 친구가 사라진다는 건 상심이 크겠죠.
이별을 받아들이는 8살 소녀의 마음
영화는 반려견 루가 세상을 떠나 그리워하는 사야카를 보여주며,
성인 역의 아리무라 카스미의 내레이션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만난 지 그리 반년쯤 지나 병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 어린 소녀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낯선 의미였고 볼 수 없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준비가 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여주죠.
그리고 루를 만나 온 동네를 누비며 둘만의 추억을 쌓았던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만 소중한 친구의 모습을 그립니다.
극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잔잔하게 깔리는 카스미의 목소리는 그 당시의 순수했던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며
어른이 되고 나서 되돌아보는 기억의 행복과 이제는 완전히 받아들이는 이별에 대한, 죽음에 대한 단상을 보여줘
아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분들이라면 공감 가는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겁니다.
죽음은 늘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나이가 들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조금은 덜 힘든 것도 사실이니까요.
둘의 케미가 참 좋아요
이어서 둘만의 공간에서 추억에 빠져있던 소녀는 우연히 갈색 개 루스를 만나 이를 통해
학교 앞 재즈 카페의 주인 후세 할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어갑니다.
처음엔 혼나기도 하지만, 후세 할아버지에게 어릴 적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이치로라는 아들을 잃은 슬픔,
어렸을 때 루와 똑같이 생긴 강아지가 있었다는 사실로 동질감을 느끼며 나이를 뛰어넘는 친구 사이가 되죠.
결말을 생각한다면 루와 과거의 비슷한 개, 그리고 현재의 루스가 두 사람을 이어주며
서로의 상처를 보다듬게 만들고 이별을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준 느낌을 받습니다.
어른들을 위로하는 아이
어른이 되어서도 소중한 사람을 잃는 슬픔을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건 매우 힘든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아직 어린 소녀가 루를 잃은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그리워만 하는 것처럼
후세 할아버지가 아들을 잃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디는 모습은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재미있는 점은 사야카가 할머니를 떠나보낸 할아버지의 마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토닥여 준 것처럼
후세 할아버지에게도 적절한 위로를 해주는 모습으로,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는 아픈 진실보다는 착한 거짓이라도 배려가 더 좋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죠.
본인의 마음도 아플 텐데 다른 이들을 감싸주는 8살 소녀의 모습은 아마도 이 여정의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강아지 연기력 갑!
마지막에 접어들며 다시금 맞닥뜨린 이별의 순간, 장르가 살짝 판타지 분위기가 바뀌지만
이미 이전 장면들에서 환상을 통해 그런 느낌을 나타냈기에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다만, 잔잔하고 슬픈 드라마에서 조금은 많은 듯해 보이는 슬로 장면들은 감정선을
끝까지 이어가기에는 너무 늘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슬픈 이별에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사야카를 연기한 닛츠 치세,
소녀와의 우정으로 한층 성장하게 만드는 후세 할아버지의 오이다 요시는 이별을 기리는 특별한 이야기를 잘 마무리해줍니다.
여러 면에서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은 물론, 좋은 OST가 가득했고 전하고자 하는 의미도 확실했으며
이를 표현해 준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딸이자, 4살부터 연기 활동을 한 닛츠 치세와 루의 호흡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적절한 템포를 맞췄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런 잔잔함을 선호하신다면 나쁘지 않게 보실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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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무채색의 꿈을 채색하는 영화
무채색의 꿈을 채색하는 영화 '오랜만이다'의 이가섭 배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영화로 선정된 '오랜만이다'는 같은 꿈을 꾸는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담아낸 영화다. 8월 13일, 엽연초하우스에서 이가섭('오랜만이다' 현수 역) 배우를 만나 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라는 작품에서 현수 역할을 맡은 배우 이가섭입니다.
영화 '오랜만이다'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오랜만이다’라는 영화는 누구나 다 겪었던 꿈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음악의 가사가 굉장히 와닿고,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로 만들어졌습니다. 음악이라는 소재, 꿈이라는 스토리, 색감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영화입니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주목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연경의 서사를 조금 주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된 연경이가 사회를 생각하면서 버스를 타고 있는 장면에서 연경이의 눈을 보면 뭔가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연경이의 감정선을 따라가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악 가사와 이런 게 잘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통해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릴 때는 꿈이라는 게 항상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꿈이라는 단어 자체가 되게 무채색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저는 되게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극 중 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꿈에 대한 위로를 주는 장면이 많았는데 배우님께서 위로받은 장면은 무엇인가요.
위로보다는 공감을 한 장면이 많았습니다. 내 손 앞에 있는데도 안 잡히는 느낌을 봤을 때, 그것을 보면서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그랬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극 중에서 피아노를 치셨는데 원래부터 피아노를 치셨나요?
아니요. 이번에 역할을 위해 연습했어요. ‘떴다 떴다 비행기’도 한 손으로만 할 줄 아는 실력이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노력하니까 되더라고요. 뭔가 취미가 생긴 것 같아 즐겁고 좋았습니다. 극 중에 ‘비창’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헤드폰 쓰고 혼자서 치고 있으면 괜히 ‘나 좀 뭔가 멋있어 보여’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웃음).
영화 속 가장 좋아하는 OST는 무엇인가요.
‘너의 말들은’이라는 곡이요. 가사에 ‘내가 나의 말은 나를 좀 무너지게 만드는데 너의 말은 나를 안정적으로 만든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과거 연경이가 현수한테, 현수가 연경이한테 해줄 수 있는 말들이었다고 생각해서 더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영화 풋풋한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편한 영화이고, 좋은 음악들이 많이 있는 영화이니 즐겁게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혜지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민서, 신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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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와일라잇: 시리즈> 의 컬트적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2000년대 초반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두 시리즈가 있다. 바로 ‘트와일라잇’과 ‘해리 포터’ 시리즈. 이들은 창작물을 넘어 세대가 공유하는 거대한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때는 열광했으며 지금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설과 그 영화본.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비해 조금 더 컬트적 성격이 강하며, 성장보다는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었다. 필자는 항상 해리포터의 편이었다. 어릴 적에도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소설은 첫번째 권, 영화는 첫번째와 마지막 편 밖에 본 적이 없다. 그렇게 근 20년이 지난 2025년, 필자의 모 영상 앱 알고리즘에 자꾸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클립이 뜨기 시작했다. 댓글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영화의 과장된 연출이나 서사를 비웃고 ‘밈’화 시키는 댓글 반, 여전히 시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댓글 반. 클립과 댓글을 자꾸 보다보니 관심이 생겼다. 생각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기도 했다. 필자의 오랜 친구가 어릴 적 트와일라잇에 미쳐 있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살아났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18살짜리 여자애와 뱀파이어, 늑대인간의 삼각관계에 열광하는가? 도대체 그 매력이 무엇인가? 20년 늦게 내 또래가 공유한 컬트적 문화현상에 뛰어들어 보기로 하였다.
연휴를 맞아 이틀만에 5편의 영화를 다 봤다. 그런데…이거…재밌잖아?
그렇다.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너 없으면 차라리 죽겠다며 러브 이즈 올을 외쳐대는 주인공의 나이가 한명은 18살, 한명은 16살..(한명은 109살…) 이라는 점이 생각날 때마다 조금 웃기긴 했으나 그건 나이가 들며 시니컬 해진 나의 영혼을 탓하자. 에이, 저런 게 어디 있어. 쟤는 쟤가 왜 저렇게까지 좋다는건데? 얘야, 인생 길다-남자 따라 뱀파이어가 되겠다는 게 말이 되니? 근데 너네 입시 준비는 안 하니?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영원한 사랑’ 을 이루어 내고야 마는 주인공을 보면 묘하게 구미가 당긴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극단의 낭만성에서 나온다. 시리즈의 서사는 어디 하나 샐 구석이 없는 해피 엔딩을 보여주고, 서사의 설정은 현실이 가져오는 그 모든 찝찝함을 해소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뱀파이어가 되는 순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갖게 되며, 뱀파이어는 햇살에 나갈 수 있되 햇살 아래서는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남자주인공과 그의 가족 뱀파이어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의 피만 마시는 소위 ‘채식주의자’들이다. 에드워드와 벨라 사이에서 낳은 딸은 7년만에 25살의 모습으로 자라 불멸의 존재가 되기에 육아로 신혼이 망가지는 일은 없다. 주인공이 자식을 먼저 보내고 영생을 살 필요도 없다. 또, 벨라를 짝사랑하다 외롭게 남겨질 뻔한 친구이자 벨라의 세컨드(?) 제이콥은 벨라의 딸의 운명적 보호자가 됨으로서 그들 곁에 남는다.
'사랑하는 상대의 죽음’ 이외에는 도무지 진지하게 불행이 끼어들 틈이 없는 설정이다. 이런 촘촘한 설정이 세계관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혹자는 인위적이라 비판할 수 있겠지만, 시리즈가 <트와일라잇 공식 설정집> 이라는 책 본권과 비슷한 두께의 단행본이 있을 만큼 자세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용의 호불호가 어떻든,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소비자들이 시리즈의 서사에 깊이 파고들 만한 풍부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2000년대의 인디- 컬트 문화로 재탄생한 것이다.
시리즈의 설정 중 가장 핵심 명제는 '뱀파이어의 사랑은 영원하다’ 이다. 뱀파이어는 자신의 운명의 짝을 만나면 웬만해서는 영원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따라 죽거나 미쳐버린다는 설정이다.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불멸의 삶이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낭만적인 세계관이란 말인가. 이처럼, <트와일라잇>의 서사는 ‘낭만적인 영원함’을 바탕으로 수렴한다. 영화의 아주 훌륭한 사운드트랙 역시 이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를 장식한다. 영국 락밴드 뮤즈의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로맨틱한 <Neutron Star Collision> 은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며, 누구 하나가 죽는다면 우리는 함께 죽을 것(Our love would be forever, And if we die, We die together)” 이라 노래하며, 크리스티나 페리의 엔딩곡 <Thousand Year> 은 천년간 당신을 사랑해왔으며, 앞으로도 천년 동안 당신을 사랑하리라 속삭이며 시리즈의 막을 닫는다. ‘Happily ever after’ 의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고, 영원이라는 가능성만을 남겨둔 채로 영화가 끝날 때 많은 사람들이 남몰래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믿는다. 누구나 한번은 영원히 변치 않는 운명적 사랑, 같은 해피 엔딩을 꿈꿔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칼럼의 주제와는 별개의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연출과 색감, 촬영 또한 받는 비판에 비해 훌륭하다. 뱀파이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관객이 간접 체험하게 만들기 위하여 특수 촬영 효과와 카메라의 무브먼트(eg. 뱀파이어의 POV샷일 때는 꼭 whip pan을 쓴다) 를 자주 이용하는데, 효과적일 뿐더러 많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온전한 판타지의 영역을 현실의 감각으로 들여오기 위하여 쓴 연출이 대부분 훌륭하다. 인물의 불친절한 감정선을 카메라로 표현하여 관객의 몰입을 돕는 연출 또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편의 색감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지만..감독이 하차한 관계로 <뉴문> 부터는 <트와일라잇> 특유의 푸른 색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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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 2 |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위선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우승자가 되어 456억 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넣었지만, 게임에서 죽은 친구와 동료를 잊지 못하는 '성기훈'(이정재). 그는 사람들이 돈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이 게임을 중단시키기로 결심하고, 게임 진행의 총책임자인 '프론트맨'(이병헌)을 쫓는다. 그 출발점으로 기훈은 2년간 서울 지하철을 뒤진 끝에 게임 참가자 모집책인 '딱지남'(공유)을 찾아낸다.
딱지남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기훈은 마침내 프론트맨을 만나만, 곧바로 그의 계략에 당한 나머지 다시 한번 오징어 게임에 끌려간다. 경험을 살려 경마장 친구 '박정배'(이서환)를 포함해 모든 참가자를 살리고, 게임을 멈추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기훈. 그러나 '타노스'(최승현) 등 상금에 눈이 먼 참가자들은 그의 말을 부정하며 혼란을 초래하고, 그 사이 가명으로 게임에 참여한 프론트맨은 기훈과 그의 계획을 더 자세히 파헤친다.
1승을 더한 속편의 저주
<오징어 게임>이 쌓아 올린 금자탑은 화려했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 중 하나였고, 제74회 에미상에서도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비롯해 여섯 부문을 석권했다. 자연히 시즌 2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겉모습은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남았다. 주연 이정재는 <스타워즈>에도 출연하면서 더 중요한 배우로 성장했고, 임시완, 강하늘, 이진욱 등 각각 드라마 한 편의 주연을 맡을 수 있는 배우들도 결집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공개된 <오징어 게임 2>는 전 세계적인 흥행력과는 별개로 실망스럽다. 시작은 좋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힘이 부족하다. 여러 이유가 있다. 다음 시즌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점이 명확하다 보니 극의 완성도가 부실하다. 지난 시즌에 비해 캐릭터들의 매력도 명확하지 않다. 새롭게 등장한 게임들도 지난 시즌에 비해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메시지다. <오징어 게임>은 잔혹하고 원초적인 자극을 통해 적자생존, 계급사회, 승자독식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발했다. 3년 만의 속편은 주제의식을 계승하고, 확장시키려는 듯하다. 그러나 속편의 완성도와 존재 자체가 작품과 브랜드 간의 갈등을 극대화한 결과, <오징어 게임 2>는 위선자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오징어 게임>과 경제적 합리성
자본주의 질서는 한 가지를 전제한다. 모든 사람이 경제적 합리성을 갖췄다는 가정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올 효용이 극대화되는 선택지를 자율적으로 고른다. 이익이 되는 행동을 선택하고, 피해를 주는 선택은 포기한다. 3년 전, <오징어 게임>은 경제적 합리성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상황을 보여줬다.
'상우'(박해수), '일남'(오영수)과 기훈의 대립이 그 예시다. 상우는 456억 원을 얻기 위해서 우정, 연민처럼 인간적인 가치를 기꺼이 포기한다. 일남은 기훈과 마지막까지 내기를 한다. 눈 오는 밤에 얼어 죽기 직전인 노숙자를 아무도 돕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인간의 선악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인간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명제에 대한 판단이다. 일남이 보기에 남을 도와서 얻는 정서적 만족은 경제적으로 무의미하다.
기훈은 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이유로도 타인을 수단화하거나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다면서 상우를 끝까지 설득한다. 우승 상금도 다른 참가자의 목숨값이라 여기며 쓰지 않는다. 일남과 달리 사람들이 아직 경제적인 효용보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경제적 가치 외에 인간성, 신뢰 같은 의미도 같이 고려한다는 것. 기훈은 극단화된 현실의 구조와 논리에 이상적으로 맞서는 인물인 셈이다.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 속 놀이들은 기훈의 이상과도 같았다. 언제나 아름답고, 소중했다.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은 막대한 상금 앞에서 피로 물들었다. 참가자들은 자기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인을 속이고 죽이며 인간성을 내버렸다. 경제적 합리성이 극에 달한 오징어 게임이라는 시공간에서 기훈의 믿음은 추억의 놀이처럼 변색되고 타락했다. 이 간극은 다른 데스 게임보다 오징어 게임이 특히 잔혹하고, 충격적인 이유였다.
무승부로 끝난 러시안룰렛
<오징어 게임>이 기훈의 신념을 외적으로 무너뜨리는 이야기였다면, <오징어 게임 2>는 그 반대다. 기훈 스스로 자기 믿음의 모순에 빠지는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두 번째 시즌의 첫 화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다. 딱지남이 노숙자들에게 빵과 복권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대목, 그리고 기훈과 딱지남이 러시안룰렛을 하는 장면에 에피소드 7개가 전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빵과 복권 중 합리적인 선택지는 빵이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극히 낮으니까. 그러나 노숙자 대부분은 복권을 고른다. 딱지남은 그런 그들 앞에서 남은 빵을 짓밟는다. 일종의 세리머니다. 게임 요원이었던 그는 게임에 참가했던 아버지를 직접 죽인 후 조직에서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다. 즉, 그는 일종의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을 체화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낮은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게임 참가자들은 도태된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
오징어 게임을 내재화한 딱지남과 기훈의 러시안룰렛은 향후 펼쳐질 싸움의 함의를 암시한다. 그가 보기에 기훈의 대의는 모순 범벅이다. 뺨을 맞는 대가로 돈을 받을 때 그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존엄성을 포기했다. 인간적 가치 대신 물질적 효용을 선택했고, 그 끝에서는 우승 상금도 획득했다. 모든 이득을 챙긴 후에야 게임을 파괴하겠다고 날뛴다. 딱지남의 시점에서는 기훈의 정의가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러시안룰렛으로써 기훈의 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기훈이 먼저 게임의 규칙을 어기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훈은 규칙을 깨지 않았다. 이에 딱지남은 규칙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먼저 규칙을 어기는 것은 기훈의 모순을 인정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까지도 부정한다는 말이니까. 다르게 보면 기훈도, 딱지남도 승리하거나 패배하지 못한 셈이다.
모순 끝에 패배한 2라운드
러시안룰렛이 1라운드였다면, 오징어 게임은 2라운드라고 할 수 있다. 프론트맨은 기훈의 바로 옆에서 게임에 참가하며 그의 신념과 믿음을 시험한다. 지난 게임 속 일남과 기훈을 연상시키는 언행을 보여며 기훈을 혼란에 빠트린다. 더 나아가 기훈을 자기모순 속에 가두고자 한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규칙인 투표가 있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이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그때마다 기훈은 딜레마를 마주한다.
거액의 상금보다 생명과 도덕성 등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 기훈의 이상은 투표 때마다 부정당한다. 그의 선의와 이상은 게임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합리성에 앞에서 무력하다. 지금까지 번 상금으로는 게임장 밖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논리는 기훈의 친구와 동료도 설득될 정도로 강력하다. 기훈이 핏대를 높일수록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게임은 중단되지 않는다"던 프론트맨의 말만 거듭 증명될 뿐이다.
결국 기훈은 1라운드와 달리 2라운드에서는 패배한다. 현실의 벽 앞에서 힘없는 이상주의가 얼마나 무용했는지를 증명하고 만다. 딱지남 앞에서와 달리 기훈은 자기 규칙과 소신을 저버린다. 인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던 그가 게임의 중단이라는 '대'를 위해 일부 참가자라는 '소'를 희생한다. 밤 사이 참가자 간에 솎아내기가 자행될 때, 기훈은 싸움에 휘말린 참가자들을 돕는 대신 사망자로 위장해 진행 요원을 공격할 기회만 엿본다.
따라서 <오징어 게임 2>의 클리프행어는 시작과 동시에 예정된 결말에 가깝다. 자신의 영웅 행세가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기훈은 모순 없이 딱지남과 프론트맨의 논리를 진정으로 파훼할 방법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신념을 고수한 캡틴 아메리카와 루크 스카이워커도 한 번 패배한 후에야 타노스와 다스 베이더를 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난 데 없는 클리프행어
문제는 만듦새다. 설령 서사적으로 필요했더라도, 허술한 전개와 불완전한 내용 때문에 클리프행어는 작위적이다. 기훈의 위선을 드러내는 쿠데타만 해도 설득력이 없다. 그의 쿠데타 시도 자체는 자연스럽다. 기훈은 애초에 오징어 게임을 파괴할 작정이었으므로. 그러나 게임 중단을 원한 참가자들이 쿠데타에 순순히 가담하는 전개는 부자연스럽다. 지금까지 챙긴 상금만으로도 그들은 빚을 갚고 수술비를 낼 수 있기 때문.
즉, 기훈과 프론트맨이 대면하는 엔딩을 위해 이야기가 작위적으로 설계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 2>는 전반적으로 산만하다. 시즌 3을 위해 포석을 두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서사를 깔끔하게 갈무리하는 인물도, 눈에 띄는 새 캐릭터도 없다. 극을 주도한 딱지남과 프론트맨은 기존 캐릭터이고, 그 외의 인물들은 조상우나 '장덕수'(허성태)만큼의 생동감을 갖추지 못했다.
그나마 성전환 수술 비용을 벌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특전사 군인, '조현주'(박성훈)가 눈에 띈다. 희생정신과 의리, 정의감과 풍부한 전투 경험을 다 갖춘 그녀는 트랜스젠더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파괴하면서 유의미한 서사와 분량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 탈북자 문제, 전세 사기 피해, 미혼모와 낙태 이슈, 청년층의 영끌 투자 열풍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투영하려 한 시도 중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시즌 2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량을 늘린 듯한 구성도 발목을 잡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기훈과 준호가 섬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준호의 섬 탐색은 곁가지로 밀려난다. 시즌 2에서 아무런 활약도 보여주지 못할 캐릭터를 위해 에피소드 하나를 날린 셈이다. 그 결과 클리프행어를 마주했을 때, <오징어 게임 2>가 다음을 위한 7시간짜리 티저처럼 느껴지는 실망감을 지울 길이 없다.
긴장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징어 게임 2>가 시청자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킨 것도 아니다. 기훈과 프론트맨의 대립각을 강조하기 위해서 장르적 쾌감을 일부 포기한 대가다. 물론 게임 자체가 재미없지는 않다. 새로운 게임을 활용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시도는 나름대로 유효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직후에 제기차기, 공기놀이, 비사치기, 팽이 돌리기 등과 같이 지난 시즌에 없었던 게임을 배치해 예상을 빗겨 나간 구성이 대표적이다.
짝짓기 게임을 전환점으로 활용한 선택도 영리했다. 게임과 투표를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은 나름대로 서로 의지할 팀을 만든다. 그런데 짝짓기 게임을 기점으로 참여자들의 본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로 인해 불신의 씨앗이 커지고, 참가자들의 관계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짝짓기 게임이 일반적으로 단합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과 정반대 되는 양상은 더욱 흥미롭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이라는 예상된 함정을 피하지는 못했다. 동화 같은 세트와 동요가 배경으로 깔린 살육 장면은 본질적으로 지난 시즌이 보여준 폭력적인 스펙터클과 다르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더 지루하다. 한국 한정으로는 캐스팅이 이 문제를 심화한다. 지난 시즌과 달리 각자 드라마 주연을 맡아도 될 배우들이 대거 합류한 결과 누가 살고 죽을지 모르는 스릴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치러진 투표도 역효과를 낸다. 투표는 일종의 사회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대화와 협상, 토론과 설득이 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양극화된 한국 정치 지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아슬아슬하게 갈린 투표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 등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투표도 세 번째에 이르면 긴장감보다는 지루함의 비율이 높아진다.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든 간에 게임이 계속 진행될 거라는 사실이 뻔히 보이기 때문.
위선자의 상술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2>는 속편의 존재 자체가 내재한 모순점을 노출하고 만다.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는 상술했듯이 명확했다. 탐욕으로 인해 극한으로 나아간 자본주의의 끝에 위치한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였다. 가난한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죽일 때, 그 과정마저도 상업화하고 즐기는 현대 사회의 구조와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2>는 본말이 전도됐다. 날카로운 풍자는 잊고, 어린 시절 놀이를 잔인하게 만들면 성공한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즉, 철저히 돈벌이를 위한 작품으로 변했다. 매텔, 크록스, 조니 워커를 비롯해 콜라보 대열에 합류한 수많은 브랜드는 그 방증이다. 황동혁 감독도 시즌 1의 금전적 보상이 충분하지 못한 나머지 계획에도 없던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으니 예견된 상황일지도 모른다.
물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판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미 <오징어 게임 2>가 갖가지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최초로 서비스 중인 모든 국가(93개국)에서 동시 1위를 달성했고, 첫 주에만 6,800만 시청수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역대 첫 주 최다 시청수도 경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 2>는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 보인다. 시즌 1에 비해 덜 흥미롭고, 짜임새도 부족한 어린 시절 놀이만으로는 노골적인 상업성과 지독한 돈 냄새가 다 가려지지 않기 때문. <오징어 게임>이라는 브랜드가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지운 셈이고,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시즌 3의 전개에 따라 시즌 2가 재평가될 여지가 있다' 정도가 아닐까.
Poor 형편없음
돈에 미친 개가 돈 냄새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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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매리 연쇄살인사건 범인은?! - 라떼극장 EP.14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4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차우"를 보며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보자
범죄없는 마을로 공인(?)받은 곳 삼매리에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을 풀기위해 형사 경찰 포수 생태연구가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이지만
문제 해결은 커녕 피해만 늘어난다.
삼매리는 다시 범죄없는 마을로 거듭날수 있을까?
괴수와의 사투를 벌이는 괴작 '차우(2009)'
신형사가 건강 챙긴다면 몰래챙긴 음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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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링 허 백] 끝장리뷰 | 엄마와 딸 | 물, 원(Circle), 눈(eye), 칼 해석 | [톡 투 미]와 연결성 | 아쉬운 지점
#브링허백 #샐리호킨스 #bringherbackmovie
[브링 허 백](2025)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상황정리, 엄마와 딸
Chapter 2 물, 원(circle), 눈(eye) 그리고 칼, 아쉬운 지점
00:00 톡투미 감독 신작
00:45 상황정리
01:47 엄마의 힘
04:32 상징들
06:48 아쉬운 지점
08:10 별점 및 한 줄 평
08:29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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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공식 예고편
“이것은 그 무엇도 아닌 학대다” 2019년 대한민국, 가장 끔찍한 지옥을 추적하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5월 1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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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존: 두 개의 세계>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