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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바다2025-02-12 19:34:24

결코 지루하지 않는 일상의 변화가 주는 행복

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


▷영화 :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2024

▷평점 : ★★★★

▷한줄평 :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해 보이는, 그러나 나의 존재를 충만하게 채우는 일상들


 

‘완벽한 일상’(퍼펙트 데이즈)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일까?

 

하루하루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정과 에너지를 쏟는 삶, 

무가치해 보이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도전하고 이뤄내는 삶, 

우리가 속한 세상 속 성공의 방정식에서는 으레 그런 것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루 일과를 반성하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강요된 일기 쓰기에 익숙한 우리의 ‘충실한 하루 살기’는 충효(忠孝) 사상만큼이나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의 방식이다. 

열심히 살지 못한 것 같은 날은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다'라는 경구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러나, 그 어느 누가 우리 일상을 ‘완벽하다’, ‘완벽하지 않다’고 평할 수 있을까? 

늘상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완벽주의'게임의 올가미에 또다시 갇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이런 의심에서부터 출발한다.

 

영화는 도쿄 시부야 공공시설 청소부(The Tokyo Toilet)인 '히라야마'(야코쇼 코지)의 단조로운 일상을 지루하리만큼 반복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히라야마(야코쇼 코지) /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이른 새벽 동네 주민의 빗질 소리에 깨어나기, 가지런히 이부자리 정리하기, 화초에 물 주기, 집 앞을 나서면서 하늘 쳐다보기, 

주차장 한 켠에 있는 자판기 캔 커피 사기, 출근길 자동차 안에서 카세트 테이프로 팝송 듣기, 점심시간에는 근처 공원에 가서 샌드위치 먹기,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일본어로 ‘코모레비’라고 함)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퇴근 후에는 단골가게에서 생맥주 한잔하기, 

휴일에는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하기, 잠들기 전까지 책 읽기 등 뭐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하루하루 반복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화장실 청소부라는 본업에는 마치 장인의 면모를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최선을 다한다. 

세면대 뿐만 아니라 손으로 직접 만지기 꺼려 하는 좌변기, 소변기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청소하고, 비데 노즐에 묻어 있는 오물도 깨끗이 제거한다. 

청소도구도 직접 제작해서 사용할 만큼 애정을 쏟아붓는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조차도 피해 가는 청소부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하루를 충실하게 채울 수 있는 일상이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습기를 머금은 화초가 싱그럽고, 차 안에서 듣는 올드팝들에 흥이 나고, 샌드위치를 먹는 공원 벤치에서 만나는 아가씨가 반갑고, 

인화된 나뭇잎 사진을 서류함에 분류해서 놓는 일도 뿌듯하고, 화장실 사용법이 서툰 외국인을 잘 안내한 일도 보람차다. 

이 모든 일이 하루를 풍요롭게 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그러나, 가끔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깨뜨리는 일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뺀질이 스타일의 젊은 청소부 동료인 다카시의 갑작스러운 퇴사, 오랫동안 왕래를 하지 않던 조카의 예기치 않은 방문과 여동생과의 재회, 

단골 선술집 여주인의 전 남편과의 만남 등등…… 

그러나 이러한 일들조차 잠깐의 흔들림이 있긴하지만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세상엔 수많은 세상이 있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세상이 있지."

히라야마(야코쇼 코지) / 영화 <퍼펙트 데이즈>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타인과의 ‘관계’(Relationship)를 매우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번화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고립된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군중 속의 고독자’ 히라야마도 어찌 보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인생의 패배자처럼 보인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보듯 그가 도망쳐온 복잡한 세계가 있었을 듯싶다. 그렇게 지금의 단순화된 삶의 방식은 지나온 삶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반복에서도 나뭇잎에 비추는 햇살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조차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있는 일이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단조로움은 타인의 시각일 뿐, 자신만의 의미있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특별한 것은 가치 있는 것일까? 특별하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의 판단일까?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기보다는 단조로운 일상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 자신 스스로의 기쁨을 충만히 발견해 낼 수만 있다면, 누가 특별하지 않다 평가할 수 있을까?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의 규칙적인 리듬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똑같지 않으며 매번 달라진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감독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적 능력일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Feeling Good'을 들으며 출근길로 향하는 히라야마의 변화무쌍한 표정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삶을 지배하는 ‘희로애락’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순간순간 드리웠다 사라지고, 다시 생겨났다가 지워져 버리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니던가?

 

(링크) Feeling Good : https://youtu.be/oHRNrgDIJfo?si=kzA5YAj-S2dv_Jz8

 

그렇기에 지금의 일상에 만족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고!"

(곤도와 곤도, 이마와 이마!)

히라야마(야코쇼 코지) / 영화 <퍼펙트 데이즈>

 

하루하루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채워 살아가는 우리에게 <퍼펙트 데이즈>가 던지는 메세지는 분명하다.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나요?"





작성자 . 제이바다

출처 . https://blog.naver.com/jeijsea/223716748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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