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12-18 07:38:19
연애와 연대 사이의 사랑
〈사랑은 낙엽을 타고〉

2023년, UN 자문기구에서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핀란드를 꼽았다(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인 57위다).* 무려 6년 연속 1위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을 테다. 지상에 천국은 존재하지 않고, 행복은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핀란드 헬싱키를 배경으로 하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핀란드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핀란드 노동계급의 삶을 비춘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국제비평가연맹이 선정한 2023년 최고의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
안사는 마트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홀라파는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물건을 정리하는 안사와 기계로 무언가 작업을 하는 홀라파의 표정은 건조하고 권태롭다. 색깔에 비유한다면 무채색의 느낌이다. 기분 좋은 일은 없어 보이고, 조금은 염세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안사와 홀라파는 한 술집에서 처음 만나 호감을 느낀다. 통성명도 없이 데이트를 이어가던 둘. 그러던 중 안사가 홀라파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며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런데 홀라파는 그만 그 종이를 잃어버린다. 홀라파는 둘이 함께 있던 곳을 돌며 안사를 수소문하고, 홀라파의 연락 없음에 실망하고 있던 안사를 다시 만난다.
영화에서, 노동 현장에서의 생기 없는 표정과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때의 표정은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 대비는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닌, 안사와 홀라파 안에 함께 존재한다. 이들은 일할 때는 활력을 잃고, 사랑할 때는 기운이 샘솟는다. 불안정한 직장에서 당장 눈앞의 생계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 설렘과 애타는 마음으로 감정이 들끓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이토록 선명한 대비의 공존은 둘의 사랑을 ‘연애’인 동시에 ‘연대’로 만들기도 한다. 안사와 홀라파는 비정규직이다. 그들의 고용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관리직원에게 자그마한 트집이라도 잡히면 바로 해고다. 실제로 둘의 직업은 수시로 바뀐다. 안사는 마트에서 버리는 물건을 챙겨가다가 해고당하고, 고용주가 마약 거래를 하다가 체포돼 직장이 사라져 일거리를 잃는다. 홀라파는 항상 조금은 술에 취해 있는 것이 걸려서 해고당하고, 장비 노후화로 산재를 당해도 그 원인이 술로 돌려져 해고당한다. 그럼에도 빈털터리인 둘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는 흐릿하게만 보이던 미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연애와 연대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라디오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듯싶다. 라디오가 전하는 전쟁의 참상은 채널을 바꾸거나 꺼버리고 싶을 만큼 끔찍하지만, 안사와 홀라파는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방송을 들으며 같은 감정을 느낀다. 커다란 폭력은 사람들의 유대와 연대, 일상을 파괴하며 개별 인간을 단절시키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위축된 채 서로 떨어져 있다는 공통적인 처지에서 무언가를 벼려내기도 한다. 안사와 홀라파가 그러하듯이.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연출이다. 투박하고 고전적인 화면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는, 종종 능청스럽고 뻔뻔하며 동시에 비장한 대사와 만나 웃음을 자아낸다. 사회적 체면이나 가식 따위에 대한 고려 없이, 때로는 ‘망상’에 가까운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들은 영화가 그려내는 핀란드 노동계급의 삶과 그럴듯하게 어우러져 잔잔하면서도 파격적인(?) 코미디의 효과를 자아낸다. 산재로 병원에 입원한 홀라파에게 안사가 키스한 후, 그가 눈을 뜨는 장면은 이와는 또 다른 패러디의 효과를 낸다. 연애와 연대 사이의, 안사와 홀라파의 사랑은 생기 없는 표정으로 일상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삶이 바로 그들이 거주하는 세계로부터 반전될 수 있음을 무채색 세계에 따뜻한 유머를 곁들여 알려준다.
*https://www.joongdo.co.kr/web/view.php?key=20231210010002697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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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에게 인간의 흔적이 보일 때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 반공 학살의 가해자들에게 직접 살인의 재연을 요청하며, 그들의 심리와 기억의 구조를 파고든다.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가지만, 그들은 과거를 끊임없이 연극처럼 재구성하고, 때로는 뮤지컬이나 느와르 영화의 형식을 빌려 연출한다. 학살이 벌어졌던 장소는 화려한 색감과 음악 속에서 환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 장면들은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는 망각의 연출에 가깝다.
시네마 베리테는 관찰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다큐멘터리 방식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이러한 형식을 빌려 극적인 연출과 동화적인 배경을 활용한다. 카메라는 인물의 삶을 관찰하는 듯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학살자들의 환상과 자기기만이 영화적 장치를 통해 과장되게 표현된다. 이 작품은 인물에게 연기를 요청함으로써 기존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진실을 구축한다. 연출과 재연, 현실과 환상이 뒤엉키는 충돌 속에서 관객은 깊은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되고, 가해자는 카메라 앞에서 과거를 미화하며 거침없이 자기 연기를 이어간다. 이때 시네마 베리테가 지향하는 현실성은 왜곡되거나 조롱당하고, 그 틈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거리감은 관객을 윤리적 혼란 속에 빠뜨린다. 진실에 다가가는 대신, 연출은 그것을 은폐하거나 외면하려는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며, 이 불협화음은 관객에게 안전하지 않은 시청 경험을 제공한다.
안와르 콩고는 전형적인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그는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촬영을 기대하며, 친구와 농담을 나눈다. 그 일상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평범한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괴물을 연기하지만, 결국 그 연기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 스스로 연출한 장면을 다시 본 후 구토하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면죄가 아닌 자각의 흔들림을 마주하게 된다. 안와르 콩고는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국가적 폭력의 체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하고 기억을 조작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처럼 작동한다. 2023년에 개봉한 조너선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역시 마지막 장면에서 ‘액트 오브 킬링’을 연상케 하는 구토 장면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구토는 현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교차하며, 그 어떤 인간적 감정조차 스며들 수 없는 차가운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반면 ‘액트 오브 킬링’에서의 구토는 인물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감정의 찌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인간성의 흔적은 오히려 더 큰 불쾌감을 자아낸다. 악마처럼 보였던 인물에게서 반성 혹은 죄책감과 같은 감정이 비치기 시작할 때, 그는 더 이상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감정과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그 폭력을 실행했음을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만든 환상의 장치는 외형적으로는 아름답게 꾸며졌지만, 그 내부는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다. 도덕적 판단이 유보되고,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관객은 감정적으로 발을 디딜 곳을 잃는다. 이 거리감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안와르 콩고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쉽게 자기 자신을 분리해 낼 수 없다. 망각과 자기 정당화의 욕망, 권력 앞에서 무뎌지는 양심, 그것을 이야기로 포장하려는 태도, 이 모든 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관객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환상은 사실보다 더 정교하게 죄를 감추고, 재연은 고백보다 더 철저히 감정을 마비시킨다. 이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함을 외면하려는 인간의 태도는 또 다른 불편함을 낳는다.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그 불편함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진 출처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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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션 X 터널 / The Martian, 2015 X Tunnel, 2016
#마션 X 터널 / The Martian, 2015 X Tunnel, 2016
이 글은 "터널(2016)"이 개봉했을 때부터 써보고 싶었습니다. 네, 내내 머릿속에서 몇 번을 되뇌고, 이제야 써보는 글입니다.
영화 "터널(2016)"과 "마션(2015)"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화입니다. 먼저, 같은 점은 주인공들은 서로, 어느 곳에 고립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외부에 있는 이 사람들은 이 주인공을 구하려 애를 씁니다.
이 점을 본다면 이 영화는 배경만 다를 뿐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명백하게 다릅니다. 네, 구하는 분위기가 말이죠.
영화 "터널(2016)"의 경우는 자동차 세일즈맨인 "정수"는 큰 계약건을 전화로 성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터널이 무너지는 사고를 겪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망가진 차량, 아이의 생일 케이크 그리고, 배터리가 닮고 있는 핸드폰만이 전부입니다.
그는 곧바로 "소방서"에 연락을 취하지만, 오는 대답은 "상황이 파악되는 대로 구하러 갈 테니 기다려달라."라는 답이 옵니다. 그리고, 현장에 온 "소방대원"이 이 사건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곧바로, 영화 "마션(2015)"을 보면 이 영화는 한 술 더 떠서 이 남자는 "화성"에 고립되는 이야기입니다.
화성에 대한 조사를 하던 탐사대는 조사 중에 마크 와트니를 모래폭풍으로 잃고 맙니다. 그렇게, 뭔가 챙길 여유도 없이 이들은 화성을 떠납니다.
하지만, 모래폭풍이 그치고 죽은 줄 알았던 "와트니"는 살아있었습니다.
이유는 안테나가 몸을 뚫었고 산소가 누출되는 줄 알았지만, 피가 나옴으로 그대로 굳음으로 다시 밀폐되었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팀원들이 그를 두고 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참 뭣 같은 상황에 휩싸이지만 그는 일단, 여기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로 하는데...
공교롭게도 두 영화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입니다.
그만큼 이야기에 대한 흠을 잡는 것이 큰 무리가 있습니다. 원작 소설은 정확히 말하고 있지만 영화화를 거치면서 "각색"과정에서 빠진 것을 제가 미쳐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들의 차이는 그 첫 번째는 과학일 겁니다.
"마션(2015)"의 경우는 이를 참 즐겁게 해결합니다.
영화는 이를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제4의 벽"을 깨는 방법을 사용합니다.(정작, "와트니"가 말을 거는 존재는 나중에 여기서, 이 자료를 볼 누군가입니다.)
영화에서 "제4의 벽"을 깨는 것은 그 이야기만이 가지는 경계가 없어지면서, 그 이야기만이 가진 리얼리티를 죽이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이 방법을 과감하게 사용하고,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이야기를 거리를 두게 만들고 "소격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영화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진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현실성에 대한 논란을 가져옵니다. 물론, 영화는 여러, 화학식으로 이를 가능케 말하지만 정작 이를 알아먹는 관객들은 극 소수일겁니다.
이렇게, 알아먹기도 힘든 공식이지만 관객들은 "진짜, 가능한 일이구나."로 이 영화의 진실됨을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서, "터널(2016)"은 이야기의 경계를 잘 지켜나갑니다. 네, 분명, 영화가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관객들이 속한 세계에 일어났음직한 일들을 그리고, 왠지 닮은 인물들을 보여주지만, 이에 그칩니다.
그리고, 정작 생존에 대한 공식은 우연 혹은 느낌에 좀 더 맞춰져 있습니다.
누가, "케이크"의 열량을 알겠지만 이런 육감적인 부분은 오히려, 우리들 관객들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네, "마션"의 경우가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지만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극의 분위기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상반되어있습니다.
먼저 "터널(2016)"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를 개그의 요소로 많이 사용하는데 가령, 예를 들면 라디오에서 '어디 가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어디 갈 데도 없다.'라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정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워셔액으로 차를 닦고, 집게로 수염을 정리하는 "정수"의 모습을 통해서 "터널"안에서도 삶은 계속됨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물론, 이외에도 "강아지"의 등장도 이 영화를 좀 더 가볍게 만듭니다.
하지만, 정작 이를 구하는 바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점점 이를 구하자는 분위기는 사그라들고, 구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까지 속출하면서 영화를 좀 더 무거운 방향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두 영화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차이가 이 상황에 나옵니다. "터널(2016)"에서 한 의원이 "도롱뇽 서식지"에 대한 말을 합니다. 그는 이가 개발에 대한 손실액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대경('오달수'분)"은 이 사람에게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네, 여기서 영화는 '우리가 한 사람의 목숨을 가치를 금전적으로 매길 수 있는가?'에 말을 건넵니다.
그에 비해서 "마션(2015)"은 돈보다는 시간에 쫓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네, 영화는 사실적으로 공식을 내세우면서 "마크"의 생존에 사실성을 더했음에도 정작, "돈"이라는 현실성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왠지, 현실 같은 영화와 영화 같은 현실 이 똑같은 두 영화가 결정적으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인간관입니다.
네, 제가 "터널(2016)"을 보았을 때 "마션(2015)"만큼의 현실성 있는 공식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마음에 안 들었 것이 사람을 대하는 이들의 차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흘러흘러 끝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엔딩을 보여줍니다. 먼저, "마션(2015)"의 경우는 결국, 손에 손잡고의 1988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처럼 화합의 장을 이루어냅니다.
우주선을 제공한 "중국"의 도움으로 "마크"를 구하는 데에 성공하고 "나사"는 이후 "중국 우주인"과 함께 나사의 우주선을 탐으로 "지구촌"이라는 단어를 실현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이 꽁꽁 숨긴 우주의 기술력을 홍보한다는 다른 속마음도 있지만 결국, 이도 "마크"를 구하려는 마음이 배경이 되었기에 부정적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커 보입니다.
그에 비해서 "터널(2016)"의 경우는 구출이 멈췄다가 다시 진행되어 구출이 됩니다. 하지만, "정수"가 세상에 나와서 꺼낸 첫 마디는 "다 꺼져. 이 씨발 새끼들아"입니다.
무엇이 그를 분노케했을까요? - 화는 이전에 보이던 구출 작업을 멈춘 소식을 접한 "정수"의 마음이 여기에 담겨있을 겁니다. 구해준다고 해놓고서는 구해주지 않는 이들의 일처리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설문을 돌려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 말이죠.
이러면서, 정작 나오니 생색을 내려는 이들의 모습이 맘에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작, 구해주기는 했지만, "정수"는 이게 이들의 선처가 아닌 내가 누려야 할 권리로 비쳐 보았을 점으로 보면, 이들의 업무태만과 태도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네, 자기가 세금 내서 일하는 놈들이 봉급 주는 사람한테 이렇게 굴었으니 말이죠.
영화의 초반에도 나오는 "안전한 대한민국"의 표지판이 무너지는 것처럼 영화는 영화이지만, 현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마션(2015)"은 "화성 유인성"이라는 아직 현실에 일어나지 않는 일을 현실처럼 보여준 영화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터널(2016)"은 엔딩이 그렇게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보여준 그 설명을 뒤집어 버린 것 같아서 그런데, 차라리 "마션(2015)"처럼 촌스럽지만 톤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지금도 "터널"이라는 영화는 "하정우"로 기억될 텐데,
※ "마션(2015)"이 더 놀라운 것은 감독이 "리들리 스콧"이라는 점인데, 그의 이후 작품인 "에이리언: 커버넌트"만 보더라도 그에게 '희망찬가'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로 보였는데, 이도 선입견이었나 봅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파천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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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코 명가 넷플릭스의 개봉예정작
넷플릭스는 다양한 영화 및 드라마 시리즈 등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의 부활을 이끌며 New 로코 명가로 떠올랐는데요.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작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이어 배급 시장에까지 뛰어들어 라인업 맛집을 예고하였습니다.
과연, 넷플릭스가 직접 pick한 신선한 로코 작품엔 어떤 작품들이 있으며,
어떤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을지
지금부터 같이 알아볼까요?
잇츠 CINE PICK!!
<키싱 부스 3>, 2021
코미디, 멜로/로맨스 | 영국, 미국 | 113분 | 15세 관람가
감독 : 빈스 마셀로 | 출연 : 조이 킹, 조엘 코트니, 제이컵 엘로디
? 82% • 230만 명 평가
절친이 있는 버클리? 아님 남친이 있는 하버드?
둘 중 어디에 입학할지 못 정한 엘.
역대급 여름을 위한 버킷 리스트부터 세운다.
근데 구 썸남의 등장으로 묘해진 이 분위기, 어쩔거야?!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2021
코미디, 드라마, 멜로/로맨스 | 미국 | 115분 | 15세 관람가
감독 : 마이클 피모냐리 | 출연 : 라나 콘도어, 노아 센티네오, 저넬 패리시
? 90% • 3.22천 명 평가
한국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대학 입시는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라라 진.
하지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나의 미래, 거기에도 피터가 있을까?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2021.9.22 개봉 예정
코미디, 멜로/로맨스 | 이탈리아 | 91분 | 12세 관람가
감독 : 알리체 필리피 | 출연 : 루도비카 프란체스코니, 주세페 마조
? 83% •Google 사용자
언제 죽을지 몰라도 뜨거운 사랑은 하고 싶은 마르타.
데이트 앱을 켜 운명의 남자를 찾기 시작하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째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포기 직전의 마르타에게도 기적은 있었으니...
이 시대의 안벽남 아르투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르타는 아찔한 흑역사를 생성하고,
그 대가로 단 한 번의 저녁 식사 기회를 얻게 되는데...!
우리가 사랑에 빠질 확률 9.5%
마르타의 목숨을 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로코 맛집 넷플릭스의 명성을 이을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는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며, 속편 제작까지 확정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데요. 넷플릭스로 직행한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극장에서 볼 수 있어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9월 22일 개봉할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를 기다리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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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을 독립영화로 만든다면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영화는 앳된 얼굴의 남녀와 갓난아기 한 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모델하우스 안에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루한 옷차림의 그들은 커다란 캐리어와 터질 듯이 싸맨 다회용 쇼핑백이 손에 한가득이다. 번듯하게 꾸민 모델하우스와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가 바로 영화 〈홈리스〉가 천착하는 지점이다. ‘인간’과 ‘공간’의 좁혀지지 않는 위계 말이다. 인간이 만들었으나 인간을 소외시키는 ‘집’이라는 공간이 집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남기는 상흔의 궤적을 따라가 보자.
남편 한결은 배달 대행사에서 일하고, 아내 고운은 아기를 돌보며 틈틈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열심히 모은 돈을 전세사기를 당한 후 찜질방을 전전하는 그들. 그러나 찜질방은 갓난아이를 키우기 적합한 곳이 아니다. ‘사소한’ 고난이 쌓일 때마다 한결과 고운의 얼굴에 묻어나는 표정은 가난과 ‘부동산 없음’이 야기한 일상적 체념의 정서를 훌륭히 대변한다.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던 중 한결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가져온다. 자주 배달을 나가 친하게 지내던 혼자 사는 할머니가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한 달간 집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오래되고 투박한 주택이긴 하지만 한결과 고운에게는 지친 몸을 쉬이고 아이를 건강히 양육할 최적의 장소다.
그러나 드문드문 보이는 한결의 께름칙한 표정이 암시하듯, 할머니의 부탁은 애초에 없었다. 할머니의 사고사를 목격한 한결은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이를 집 문제를 해결할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 사실을 안 고운 역시 처음에는 팔팔 뛰며 분노하지만 이내 자신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음을 알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빈 집’을 욕망한다. 영원히 손에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집,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반지하가 아닌 집을 그들은 거부할 수가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설득력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연상케 하는 이 기괴한 설정을 관객이 납득하려면 설득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홈리스〉는 ‘가난한 마음’이 서서히 ‘타락’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이를 훌륭히 해낸다. 한결은 떡볶이를 배달시킨 어린이가 음식값 1만 원 대신 5만 원을 내자 다시 그 집으로 찾아가 잔돈을 거슬러주는 사람이다. 즉 그는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가난이 그 마음에 흠집을 낸다.
가난하다는 것은 돈이 없는 상태 그 이상이다. 한결과 고운이 보여주듯 가난은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며, 삶의 매 순간마다 자본주의 사회에 막혀 튕겨 나오는 경험이 일상화된 상태다. 그리하여 한 번 미끄러지면 남들보다 힘겹게 지켜온 양심과 도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상태다. “오빠도 좀 훔쳐와!”라는 고운의 한이 어린 말,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준 사장의 돈을 훔치는 한결, ‘빈 집’을 차지했다는 죄책감보다 평온함이 점차 커지는 젊은 부부의 마음이 이를 증명한다. 양심과 도덕은 계급적 조건이 갖춰져 있을 때에만 단단할 수 있다. 한결과 고운의 자리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을 욕할 수 없다는 소리다.
“누가 우리한테 관심 있는데!” 적당한 때가 되면 할머니 집에서 나가자는 한결에게 고운이 소리친다. 가난이 야기한 분노의 응어리가 느껴진다. 한결과 고운이 괴로워하며 계속 미끄러지는 동안 아무도 이들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은 철저히 방치되고 있다. ‘도둑질’은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량한 부부는 할머니 제사를 지내주며 한결에게 친절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그녀를, 세 가족이 살아갈 집을 기묘한 방식으로 상속한 그녀를 추모한다. 결국 부부가 믿고 기댈 곳은 할머니가 전한/남긴 마음뿐이라는 듯. 집이라는 꿈에 배반당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홈리스〉는 투기 담론이 가린 곳을 밝게 비춘다. 투기에 중독된 우리는 과연 그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을까?
*그녀가 붙이는 전단지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부동산 임대 사업 전단지다. 노동의 영역에서도 부동산은 하나의 상징이 되어 고운을 소외시킨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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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하루를 음미하는 미식가와 그 하루만을 원하는 결식자 사이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퍼펙트한 미식가가 아닌 퍼펙트함을 간절히 원하는 결식자
- 카세트테이프, 필름 카메라, 소설책의 의미
-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 집 정돈을 깔끔하게 하는 이유
- 니코, 여사장의 남편. 그림자 밟기의 의미
- 엔딩 결말 해석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4)
평범한 하루를 음미하는 미식가와 그 하루만을 원하는 결식자 사이
개봉일 : 2024.07.03.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빔 벤더스
출연 : 야쿠쇼 코지, 에모토 토키오, 나카노 아리사, 다나카 민, 미우라 토모카즈, 이시카와 사유리
개인적인 평점 : 4.5 / 5
쿠키 영상 : 없음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부지런하고 구김 없는 사람이다. 히라야마는 해가 뜨기 전에 이불에서 일어나 집과 몸을 단장하고 일터로 나선다. 그는 커피 한 캔, 좋아하는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로 출근길을 채우며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밤새 더럽혀진 화장실을 최선을 다해 치우고 점심을 먹으며 살랑이는 바람과 햇살을 느끼고, 퇴근 후엔 따끈한 온욕. 마지막으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는 단골 식당에서 반주를 하고 나면 그의 하루는 끝이 난다. 히라야마는 아침에 단정하게 게어 놨던 이불을 그대로 다시 펼치고 책을 읽다 잠에 든다. 그리고 또 비슷한 하루를 살아간다.
<퍼펙트 데이즈>는 평범하지만 충만한 히라야마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과묵한 그는 이런저런 말 대신 깊은 눈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햇살을 볼 때, 신호등을 건너는 작은 아이들을 볼 때, 아이가 손을 흔들어 줄 때,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칠 때. 히라야마는 부드러운 웃음을 보인다. 흔히 잘났다고, 내가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삶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는 매일 작은 행복을 찾으며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
가끔씩 히라야마의 일상에 끼어드는 주변인들은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는 그의 삶에 궁금증을 가진다. 청소부일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왜 청소부 일을 하고 있는지, 그 나이에 혼자 살면 외롭지 않은지, ‘다음’이란 어떤 의미인지. 히라야마는 이에 정확히 답하지 않는다. 그가 남긴 공란은 이야기에 작은 틈을 만들었고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여러 상상을 해보았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퍼펙트한 미식가가 아닌 퍼펙트함을 간절히 원하는 결식자
카세트테이프, 필름 카메라, 소설책의 의미
<퍼펙트 데이즈>는 소소하고 평범한 하루를 완벽하게 음미하는 미식가 히라야마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에겐 히라야마가 미식가임과 동시에 그 완벽한 하루만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배고픈 결식자처럼 느껴졌다.
히라야마는 건강한 삶의 루틴을 가진 사람이다. 처음 이 하루를 봤을 땐 평범하면서 아름다운 하루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히라야마의 동료와 가족들이 그의 일상에 몇 개의 질문을 던지고 그의 일상이 바뀌기 시작한 이후엔 내 감상도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히라야마는 자연스레 반복되는 삶을 완벽하게 즐기는 사람이라기보단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어떠한 상처를 받고 그걸 외면하기 위해 시간을 돌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에 안착하여 버티고 있는 사람 같다.
히라야마가 어떤 아픔을 겪었고 어떤 시절을 그리워했는진 알 수 없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히라야마가 아이들을 눈에 담고 예뻐하던 모습, 다카시가 결혼, 가족에 대해 물어보던 대사. 그가 7-80년대가 깃든 물건들(카세트테이프, 20세기 중후반부 소설들)을 애용하는 걸 보면 사고로 가족(아내나 자식)을 잃었거나 모종의 이유로 가족(아버지와 여동생)에서 제외되고 그걸 부정하기 위해 문제가 생기기 전, 그가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려 한 건 아닐까 싶다.
어제의 흔적을 지워내고 오늘을 사는 히라야마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 집 정돈을 깔끔하게 하는 이유
그는 카세트테이프를 되감듯 시간을 되감아 자신의 완벽한 하루에 안착한다. 그리고 그 하루가 어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반복적인 삶을 살다 보면 가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제 출근길에 본 것이 오늘 출근길에 본 건지 어제 본 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시간의 흐름이 헷갈리는 그런 순간. 히라야마는 이런 착각을 통해 자신이 현재 즐기고 있는 완벽한 하루. 그 하루에만 머문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새 파일을 여는 느낌보단 똑같은 백업 파일을 다시 여는 느낌에 가깝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누워있던 이부자리 주변을 정리하고 간밤에 자란 수염을 깎고,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며 어제가 남긴 흔적을 지워낸다. (이때 다카시는 ‘어차피 더러워질 건데 왜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냐’고 묻는다. 젊은 그는 히라야마와 반대로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인다. 그는 미래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 미래의 여자친구가 될 아야를 위해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턴다.)
세월의 흐름을 외면했던 히라야마
니코, 여사장의 남편, 다카시가 깨놓은 히라야마의 하루. 그림자의 의미
히라야마는 변화와 새로운 날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 그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큰돈이 될 거라는 다카시의 제안도 거절하고 ‘다음 약속이 언제냐’는 니코의 물음에 그저 ‘다음은 다음’이라고 흥얼거리며 답을 피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생겼을 때 크게 흔들리거나 분노한다. 갑자기 조카 니코와 동생이 찾아왔을 때, 다카시가 일을 그만두며 자신의 하루 루틴이 깨졌을 때, 주말마다 들리던 가게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단골 술집의 여사장이 장사를 쉬고 헤어진 남편을 만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이 변화들은 히라야마에게 세월의 흐름이라는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다.
니코의 성장, 아버지와 술집 여사장 남편이 겪는 노화와 병, 오래된 건물의 철거, 평소보다 길게 일한 탓에 확실하게 느껴진 어제와 오늘이라는 차이. 초침만 달린 아날로그시계를 고집했던 히라야마에게 24시간 그 이상의 흐름은 낯설고 무거운 것이다.
여러 변화가 생긴 하루. 히라야마는 단골 술집에서 술을 먹는 것 대신 강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선택한다. 그때 술집 여사장의 남편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삶을 대화로 한 주제들. 그러다 여사장의 남편이 히라야마에게 묻는다. “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 히라야마는 바로 직접 그림자를 겹쳐보면 알 거라며 남편을 이끈다. 그리고 촉촉해진 눈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림자 두 개가 겹쳐지면 더 진해지듯 하루에 또 다른 하루가 겹쳐지면 이틀이고 그것이 모이면 세월과 인생이 된다. 지금까지 세월의 흐름을 외면해왔던 그가 드디어 모든 걸 인정하는 순간이다. 히라야마는 그다음날, 어제와 같은 하루가 아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두려움, 회한, 떨림이 뒤섞인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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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우리가 사랑한, 우리가 사랑할
Director] 이혁래
Program note]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봉준호 감독의 첫 단편 <룩킹 포 파라다이스>를 본 이들은 ‘노란문 영화연구소’의 멤버 십여 명뿐이다.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의 고릴라가 똥벌레의 공격을 피해 낙원으로 향하는 이야기의 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청년 봉준호가 속해있던 ‘노란문’의 송년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30년간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봉준호의 서재에 깊숙이 숨겨져 있던 8mm 필름 상자가 열리자 90년대 초 시네필들의 추억도 와르르 쏟아진다. “다들 미친 듯이 영화 공부를 하던” 영화광 시대에 ‘노란문’은 그들만의 시네마테크이자 영화학교였고 무엇보다 이상적인 청년공동체였다. <노란문>은 한국 영화 문화의 르네상스를 여는 아주 특별한 시대에 대한 꼼꼼하고 생생한 보고서다. 깨알 같은 일화들 속에 영화사 걸작들의 클립을 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강소원)
갑작스러운 고백. 사실 나는 ‘라떼 토크’ 듣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 누군가의 호시절 이야기는 언제나, 지금으로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아련한 반짝거림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므로,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들이 ‘라떼 토크’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게 옛날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그 안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라)’ 식으로, 현 세대를 향한 은은한 책망이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은은한 책망도 기묘한 질투도 서리지 않은, 순수하게 호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마음 편히, 아름답게 들을 수 있는 거니까.
하물며 지금도 빛나는 이들이 열심과 야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시절의 이야기라면, 탐나지 않을 길이 없다. (GV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독 인사 영상 대신 나온 봉준호 감독의 영상에서도, ‘부럽습니다’라는 말이 몇 번이나 튀어나왔다. 이 감독과 이 영화의 의의를 관객에게 짚어주고 ‘노란문’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을 분명히 알뜰살뜰 챙겨 말했건만, 체감하기론 ‘부럽습니다’만 듣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영상이었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미싱타는 여자들>을 공동 연출한 이혁래 감독의 작품인 동시에, 10월 27일 공개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그 시절 시네필’들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 ‘청년 봉준호’를 엿볼 수 있는 영화에 수많은 영화 팬들의 티켓팅 경쟁이 몰릴 것은 자명했다. 감독의 전작을 인상 깊게 보았지만 티켓팅에 취약한 나로서는 일찌감치 물러나 넷플릭스 공개를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터였다. 그러나 어영부영 티켓이 잡혀서 영화를 보았는데, 보면서 깨달았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아야 더 좋을 수밖에 없는 영화구나.
https://www.youtube.com/watch?v=ZHMHMl83JI8
영화는 봉준호 감독뿐 아니라, 이미 중년이 된 다양한 이들의 얼굴을 담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냥 모여 들었던, 카메라의 작동 원리도 모르는 상태로 모여 초점 나간 사진을 찍으면서 시작했던, 젊고 보송했던 얼굴들. 그냥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그냥 즐겁게 모여서 그러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 원대한 목표와 계획을 차르르 펼치는 게 아니라 모여서 뭐라도 거창하게 해보았던 시절.
빛나는 시절은 그 빛을 스스로 몰라야 완성이 된다. ‘나는 이렇게 빛나고 있지’라고 인지하면서 빛나는 시절은 없다. 내가 ‘라떼 토크’를 좋아하는 이유도 하나 더 깨닫는다. “그냥 좋아서” 만난 이들의 그 시절 이야기는, 그냥 좋다는 바로 그 이유로 더없이 빛난다는 걸. 에너지를 미친 듯이 분출할 수 있는 건 젊은 시절의 특권이고, 그렇기에 어떤 노래 가사처럼 ‘한 밑천’이며, 또 다른 노래 가사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니까.
이들은 영화를 의식적으로 공부해 영화계에 들어선 영화인으로는 한국에서 거의 첫 세대다. 장산곶매를 비롯한 다양한 시네필 모임들이 영화를 공부하고, 상영하고, 만들고… 여기에는 비디오 문화라는 기술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일시정지> 혹은 최근 개봉한 <킴스 비디오>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같이 묶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처럼 OTT나 유튜브로 영화를 보는 시절이 아니라, 서로 알음알음 복제한 비디오를 통해 영화를 보는 시절. 다시 말해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타인과의 교류 없이는 어렵던 시절.
물론 이들의 영화 사랑이 기술에만 기인하지는 않는다. 극중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덕후의 원동력은 집착”이라며 눈을 빛내고, 이들은 집요하게 롤랑 바르트, 기호학, 포스트모더니즘, 그놈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같은 것들에 열중한다. 지금 돌아보면 “거창했네요”, “뭐가 이렇게 거창했어”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과도한 진중함이 조금은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잘 모르기에 더욱 무겁고 거창하게 말할 수 있는 시기의 사랑이란 것이 있다. 젊은 서툶에 기인하기에 더욱 무거운 언어를 사용하는, 아주 조금 지난 후에 보면 수치스럽고, 아주 오래 지난 후에 보면 그조차 정겹고 사랑스러운.
봉준호 감독이 아르바이트비를 털어서 샀다는 첫 장비의 긴장과 기쁨과 설렘. 그 장비로 소중하게 남긴 기록들. 힘들게, 처음으로 만든, 그걸 보여준 시절이 있었다. 귀 밑까지 빨개질 만큼 긴장해서, 상영되는 내내 뒤에 숨어 있어야 했던 기록이.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이들이 사랑한 거장들에게도,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위대한 대작을 만들어낸 거장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가 사랑한 거장으로 기억될,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인 봉준호에게도.
이들의 대화 속에서 7080년대 초기 시네필들이 한국에 영화제와 영화 학교 없음을 슬퍼하고 한탄했다는 말을 듣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영화를 꾸준히 사랑하고 공부하고 가까이 한 이들의 존재와, 90년대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영화제들, 2000년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는가’ 하는 평을 받았던 다양한 영화인들과, 산업이 커지고 대기업이 들어오고… 이제는 K-컬처라는 말조차 진부해진 세상에서, 이토록 커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파행 위기에도 놓였고 어떤 사건들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영화제와 영화가 계속된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꼭 생물체가 아니어도, 공동체에도 흥망성쇠가 있지만. ‘노란문’이라는 모임의 끝이 꼭 슬프기만 하지는 않았다. 영화 속 김민향 님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고 싶고, 시작이 되어주고, 그곳을 떠난 후에도 이어지는 길이 되어 준 곳이라면. 영화 속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영화인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이 출연자 분들과 나는 세대가 다르다”고 연령의 선을 명확히 그으신 이혁래 감독님도 포함된다.) 영화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계신 분들도 많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냥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때 어느 순간 같은 것을 미치도록 사랑했던 기억 있음이. 그 호시절을 간직하고 행복하게 돌아볼 수 있음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도 대개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감상과 사랑에 있어서도 혼자 할 때보다 집단으로 할 때 더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영화제는 집단의 경험 그 중에서도 정점에 있다. 영화제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은 대목에서 웃고,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고, 가끔은 졸다 깨는 영화조차 어쩐지 아름답게 회상되고… 그래서 예산 삭감이라는 차가운 말이 걱정된다. R&D 예산조차 삭감된 세상에서 반 토막 나버린 영화제 예산을 누가 챙겨줄까 싶어 한숨이 나오면서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시간. 이 영화 끝에서 생각해 본다.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때 어느 순간 같은 것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어느 순간. 그 순간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그러므로 영화제도, 영화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2023.10.04-13) 상영시간표]
10월 06일 16:30 CGV센텀시티 6관 (090)
10월 08일 20:30 CGV센텀시티 5관 (243)
10월 11일 13: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467)
*10월 27일 넷플릭스에도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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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리뷰ㅣ쫄보기자들과 바이럴에 낚였습니다...ㅣ랑종 후기ㅣ
? "랑종" 리뷰(*스포없음)
- 랑종 정보
장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페이크 다큐멘터리, 오컬트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각본: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제작: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원안: 최차원, 나홍진
- 랑종 스토리 시놉시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 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은
조카 ‘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는 ‘밍’.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
#랑종 #랑종리뷰 #랑종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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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농구의 질감을 가지고 돌아온 슬램덩크
?Rabbitgumi 입니다!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습니다.
송태섭의 서사를 중심으로 북산과 산왕의 전국대회 경기를 보여주고 있죠.
산왕과의 경기가 무척 흥미롭게 전개되는 영화인데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저의 간단한 리뷰를 영상에서 말씀드릴게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서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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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좋은 사람> 30초 예고편
고등학교 교사 '경석'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반 학생인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세익'을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만,
세익은 무조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다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의심과 믿음 그 사이에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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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루시퍼 마지막 시즌> 공개 예정 예고편
모든 좋은 것엔 끝이 있기 마련이지. 나쁜 것도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