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3-12-28 22:45:28
작은 아이의 세계, 그 속의 감정들
-<클레오의 세계>(2023)
개봉 전 시사회에서 영화를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영화 속 감정 읽기] 라는 연재를 합니다. 영화리뷰안에 각 인물이 대표하는 감정을 적고 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갓난아이들에게 옆에 있는 엄마는 의지해야 할 꼭 필요한 존재다. 먹을 것을 해결해 주고, 아직 뭐가 뭔지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엄마는 그 아이의 전부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의 세계다. 꼭 엄마만 그런 존재가 되라는 법은 없다. 아빠도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친척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이와 오랜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내고 도움을 준다면, 그 자체로 아이의 세계에 포함될 수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주 좁고 작은 세계지만, 아이에게 그 세계는 무너지면 안 되는 무척이나 큰 세계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주인공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를 어릴 적부터 키운 보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는 어쩌면 클레오의 전부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게 고향으로 떠나야 할 사정이 생기고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클레오의 반응과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겪는 상실감과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클레오는 마음 한 구석이 시리고 슬프다. 흔들리는 클레오의 세계를 영화는 담담하고 강렬하게 담고 있다.
첫 번째 감정 - 클레오의 두려움
클레오의 세계에는 아빠도 있고,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도 있고, 보모인 글로리아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글로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이 웃고 떠들면서 감정을 공유한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적어도 클레오의 세계에 엄마는 없다. 그 엄마라는 존재를 대신하는 사람이 바로 글로리아다.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자 엄마 같은 존재다. 같이 샤워를 하고, 같이 병원을 가고, 같이 밥을 먹는다. 그러니까 일상을 공유하는 두 사람은 어쩌면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영화 초반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수다와 장난을 지나면, 고향에 계신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온다. 그 전화를 받고 글로리아가 우는 그 순간부터 클레오에게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조금씩 생겨난다. 슬픔을 잠시 묻어둔 채 클레오를 챙기고 재우는 글로리아의 모습도 그렇게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어느 순간에 클레오에게 이제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해 버린다. 클로에는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냐는 물음을 다시 던진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글로리아의 말에 클레오는 기운이 없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에겐 자신이 알던, 무척이나 친숙했던 큰 세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의 두려움은 학교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운을 없애고 때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하지만 곧 그 세계는 무너진다. 아빠에게 위로받고 또 장난도 곧잘 치지만, 그런 아빠의 노력이 텅 비어버린 클레오의 세계를 전부 채울 수는 없다.
두 번째 감정 - 클레오의 질투
글로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클레오는 마음속에서 글로리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글로리아의 고향으로 놀러 가게 된다. 여기서 클레오가 겪는 일들의 대부분은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순간들이다. 오랜만에 자신의 모든 세계인 글로리아를 만났고, 그의 가족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클레오에겐 잃어버린 세계를 찾은 기쁨을 선사한다. 자신의 집이 있는 파리보다는 열악한 시골 섬의 작은 마을이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도 하고, 바다에서 수영도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게는 임신한 딸과 아들이 있다. 글로리아의 딸이 출산하게 되면서 그의 집에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이때부터 글로리아는 자신의 손주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클레오는 자신이 받던 글로리아의 사랑을 갓난아이가 빼앗아갔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느끼는 온 세상을 그 아이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이 작은 클레오의 마음속에 큰 질투의 불씨를 불어넣는다. 그가 글로리아의 손주에게 하는 어떤 행동은 조금은 충격적으로 느껴지지만 클레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클레오의 세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클레오와 갓난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과 클레오가 하는 행동을 본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때부터 클레오는 달리기 시작하고, 해변까지 간 클로에는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든다. 폭발하는 질투심과 죄책감이 동시에 그를 괴롭힌다. 어쩌면 클레오의 세계는 이미 없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당황한 클레오의 표정은 그 모든 붕괴를 표현하고 있다. 클레오의 감정은 그가 해변으로 달려가는 그 모든 순간에 완전히 방출된다. 그걸 보고 있으면 보는 이들도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게 된다. 클레오의 질투는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속에 일종의 파괴본능을 만들어냈고, 스스로 악마가 되고 싶었던 클레오는 부끄러움에 바다로 몸을 던진다.
세 번째 감정 - 글로리아의 슬픔
이 영화가 클레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글로리아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클레오를 키워온 글로리아 역시 클레오에게 많은 감정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서로 나눈 감정은 마치 보이지 않는 끈처럼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고향으로 떠나야 하는 순간에 글로리아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의 마음에 글로리아의 자리는 꽤나 크게 만들어져 있었을 것이다. 담담히 그 상황을 설명하고 떠나는 글로리아는 자신의 힘으로 키워낸 작은 아이의 세계를 잠시 바라보고 돌아선다.
클레오가 자신의 고향으로 찾아온 방학기간 동안, 글로리아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신만의 사업을 준비하면서 딸의 출산을 돕고, 태어난 아이를 챙겨야 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잠시나마 찾아온 클레오가 너무나 반갑지만, 온전히 그에게만 신경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글로리아는 자신의 가족을 좀 더 신경 쓰며 챙길 수밖에 없다. 여전히 클레오에게 다정한 글로리아지만, 그런 모든 상황을 지나면서 클레오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엔 글로리아가 울음을 터뜨린다. 클레오를 공학까지 배웅하며 돌아서는 그의 마음은 복잡하다. 결국 클레오와 완전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펑펑 눈물을 쏟는다. 아마도 클레오의 방학기간 동안 클레오도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클레오는 비행기로 향하며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지만 글로리아는 끝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의 눈물은 클레오의 세계에서 완전히 떠나게 된 그 상황에 대한 슬픔이 담겨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클레오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상황들을 따라간다. 다양한 클로즈업을 통해 클레오가 진짜로 볼만한 장면들을 화면으로 담고, 느낄만한 감정들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전환 장면은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통해 클레오의 세계가 가진 따뜻함을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작은 아이 클레오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협소한 작은 공간만 존재했던 클레오의 세계는 아마도 이 영화 속의 일을 겪고 나면 엄청나게 거대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겪은 성장기처럼. 글로리아는 비록 엄마는 아니었지만 클레오에게 중요한 존재였고, 두 사람이 나눴던 감정의 교류는 모두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영화는 그 거대한 사랑을 클레오의 얼굴과 표정으로 잘 보여준다. 영화의 원제에는 보모의 이름인 글로리아 가 들어간다. 하지만 한국에 수입되면서 <클레오의 세계>로 제목이 바뀌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클레오의 세계가 곧 글로리아였으니.. 어쩌면 이 상황을 잘 표현한 완벽한 번역이 아닐까.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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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폭력의 낭만화, 낭만의 폭력화, 예쁜 영화는 아니야
예쁜 영화는 아니야 (Not a Pretty Picture,1976)
이 작품은 마샤 쿨리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간 기록이자 ‘강간’이라는 폭력이 어째서 문화가 되었는지에 공론을 시도한 작품이다. 2022년 복원되어, 2024년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마샤 쿨리지 감독은 미국에서 영상 창작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이다. 72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감독 조합에서 최초의 여성 조합장을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미국에서 ‘여성 창자가’로서의 위치를 계속 지킨 선배인 것이다.
영화의 계기는 시작과 동시에 바로 밝혀진다. 쿨리지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재현하여, 이를 통해 당시의 감정과 이유를 찾아보고, 이 경험을 나눔으로써 ‘강간 문화’를 공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강간’에 관한 ‘피해자-가해자’의 구조를 분해하고, 피해자의 수치심에 이의를 제기한다. 또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오류를 짚어내며 (당시) 현대의 뒤틀어진 성문화에 관하여 자연스럽게 고발하는 모습을 띄기도 한다. 이는 기존에 갖고 있던 사고의 흐름과 다른 방식의 해석을 제시한다. 더불어 만티 배우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쿨리지 감독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여 객관성을 찾고, 내가 갖고 있던 주관적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시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한계가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 트라우마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힘이 어느 정도 부축될 수 있어야 실현 가능한 급진적인 치료법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실제로 재현(연극)을 통하여 나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기 전에 다른 사례를 보면서 미리 괴로움의 타격감을 낮춰보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재현의 방식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므로, 우리는 이런 방안의 존재를 인식하고, 다른 시선의 해석을 고려해 볼 수 있게 된다.
영화의 구조가 독특한데, 쿨리지 감독의 실제 있었던 강간의 경험과 미셸 만티 배우의 경험도 포함하여 이루어진 ‘믹스-다큐멘터리’이다. 픽션이기도 하면서 논픽션이며, 다큐멘터리이면서도 극이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다큐멘터리에서 ‘극(재현)’과 ‘내레이션’이 같이 등장하는 경우, ‘극’에 해당되는 장면은 예시로서 등장하고, 이후 내레이션이 설명과 전개를 담당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재현’을 극의 밖으로 꺼내온다. 허구성을 최대한 덜어내고, 객관성을 살리고자 하는 방식이지 않았나 싶다. 제4의 벽이 눈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우리가 극에 관한 이입에 방지턱을 넣어주는 역할이 되어준다.
‘강간’이라는 주제는 아직도 우리에게 낯설고, 피해자에게 부당한 감정을 당연시되는 고질적인 폭력 중 하나다. 그래서 그런 만큼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해서 쉽게 가해자를 동조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구조에 응할 수 있다. 가해자의 폭력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피해자의 수치심은 반비례하게 된다. 여전히 사건의 연장선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역설적인 부당한 폭력인 ‘강간’에 관하여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재현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크’라는 장치가 중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쿨리지 감독은 극과 다큐멘터리의 틀을 깨트리고, 간섭하고, 혼합하여 새로운 구조를 만든 것이다. 어찌 보면 통일되지 않는 비 완성성이 안정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그래서 내게 구조적으로도 참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다루기 어려운 주제일수록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여 순응 대신 어떻게든 반기를 들겠다는 강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이런 강렬한 도전은 파격적인 형태로 비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강력히 파고들어가 인식해 볼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된 계기는 요 근래 내가 ‘섹스-강간’에 관한 주제에 관심 많았고, 이에 걸맞은 영화라 안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낭만, 설렘이라는 낭만, 성(SEX)라는 낭만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낭만이 폭력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폭력’이라 인지하기가 어렵다. 언뜻 ‘낭만’이란 포장지가 폭력을 정당화하고,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아예 사건을 파악할 수 없도록 교란시킨다. 우리가 사랑하던 낭만이 어째서 폭력이 되는 걸까. 이는 ‘성(SEX)’의 문화가 치밀하게 권력구조를 계속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극중 강간의 장면을 재현하면서 가해자를 맡은 배우와 피해자를 맡은 배우 그리고 그 사건의 당사자인 쿨리지 감독은 중간중간 서로의 견해를 밝히고, 각자의 의견에 반응을 숨김없이 표현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남성에게는 ‘강간’이란 심각하게 다가와서는 안 되는 성취이자 달성 목표이고, 여성에게 ‘강간’이란 남성의 성취욕을 방해한 치욕의 대가로 작용한다. 오래전부터 이어온 악습인데, 여성과 남성이란 성별 이분법의 권력구조가 ‘강간 문화’를 용인해 줬다. 이 문화를 통해 사건의 제공자는 분명하게 남성이지만, 여성이 자초한 일로 해프닝으로 정리되고, 걸맞지 않은 고통을 부여받는다. 이는 피해자인 여성에게 수치심이라는 잘못된 감정을 심어주고, 불쾌감이라는 권리를 놓쳐 버리게 된다. 이렇게 낙인은 계속 유지되고, ‘강간 문화’는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비키지 않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여기에 쿨리지 감독은 ‘직시하기’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오류를 파악하고, 놓쳐버린 권리를 깨닫는다. 우리가 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권리, 우리가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낭만을 즐길 권리를. 남성은 가해자지만 동시에 그들도 받은 피해가 있다. 그들은 사회가 부여한 가부장에 ‘폭력’이란 잘못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해, 이내 저지르게 한다. 폭력을 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늘 ‘성범죄’와 관련하여 끝마무리를 할 땐, ‘성교육’을 빼놓기가 어렵다. 만약에 남성들이 성교육을 받았더라면 폭력을 인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여성들은 폭력 이후의 거듭되는 폭력에 벗어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사회는 피해자에게 범죄를 조심하라고 한다. 그리고 예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전에 가해자가 가해를 저지르지 않게 알리는 것이 피해를 줄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낭만이란 허울에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폭력의 재생산을 방지한다. 폭력이란 피해를 대처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예방하는 것도 힘들다. 그러니, 부디 폭력의 발생부터 짚어지길 바란다.
영화를 보면서 ‘피해자’의 생각뿐 아니라 ‘가해자’의 생각도 함께 듣게 됨으로 전체적인 틀을 바라보고, 더 큰 시야에서의 불합당함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공론을 시도한 쿨리지 감독의 용기와 도전에 인상이 참 크다. 미시적인 출발이 거대한 가시성을 이뤄냈다. 개인에서 사회 전체로까지 생각을 폭을 넓힐 수 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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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변화하는 고전의 목록이 던지는 질문
잔느 딜망/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샹탈 아커만/벨기에, 프랑스/1975/202min/'25주년 특별전 RE:Discover' 세션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주의 영화의 역작. 잔느는 사춘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집에서 성매매를 한다. 평범한 일상이 되풀이되던 어느 날, 잔느는 한 손님의 방문을 계기로 폭발한다. 가정을 성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로 은폐하는 공간으로 폭로하는 동시에 주부의 시간성을 말 그대로 경험하게끔 하는 도발적인 영화. 왕립벨기에필름아카이브 시네마테크와 샹탈아커만재단에서 복원했다.(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년, 전 세계 씨네필이 들썩였다. 영국영화협회가 발간하는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의 역대 최고 영화 순위 1위에 〈잔느 딜망〉이 오른 것이다. 1952년부터 10년마다 전 세계 영화 전문가의 추천으로 역대 최고의 영화를 선정해온 이 잡지에서 2002년까지 부동의 1위를 차지해온 건 〈시민 케인〉(1941)이었다. 2012년, 이 자리를 히치콕의 〈현기증〉(1958)이 대체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22년, 여성 감독 샹탈 아커만이 연출한 여성 영화 〈잔느 딜망〉(1975)이 이 자리를 다시금 대체했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꼽은 영화 순위를 그 자체로 존중할 이유는 없다. 이 순위만으로 영화의 권위와 영향력을 확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우습다. 하지만 〈잔느 딜망〉이 역대 최고의 영화로 꼽힌 데서 우리는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다. 동시대 영화계의 거대한 변화와 거기에 투영된 욕망의 지형 말이다.
고전의 목록이 늘 남성 감독의 작품으로만 채워지고, 이렇게 확립된 고전이 다시금 남성 작가/남성 서사의 권위를 재확증해온 영화(그리고 예술)의 역사는 유구하다. 〈잔느 딜망〉은 바로 여기에 주목할 만한 균열을 낸다. 고전의 목록은 시대마다 다시 작성되어야 하고, 새로 작성된 고전의 목록은 변화한 시대의 가치관을 담지해야 한다. 우리는 〈잔느 딜망〉이 〈시민 케인〉과 〈히치콕〉을 뒤로 하고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로 꼽힌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무엇이 50여 년 전 영화를 우리 시대로 소환했는지를 살펴보자.
잔느에게는 정해진 일상의 규칙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비누로 손을 씻는다. 청소년 아들의 구두를 닦고 그의 아침 식사를 챙긴다. 설거지를 마친 후 아들의 침구를 정리하고, 오후에 올 성매매 남성 손님을 받기 위해 자신의 침구 역시 정돈한다. 오전 일과를 마무리하면 외출해서 장을 보고 은행, 옷 수선 등의 볼일을 본다. 카페에 가면 늘 마시던 커피가 나오지만 입을 데지 않고 금세 나온다. 집에 도착해서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성매매 남성을 맞는다. 손님이 나가면 씻은 후, 아들에게 그 흔적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 욕실도 깔끔하게 정리한다. 곧 아들이 집에 돌아온다. 아들과 저녁을 먹은 후에는 뜨개질, 편지쓰기 등의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세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영화는 잔느의 3일을 천천히 좇는다. 3일 내내 잔느는 위의 루틴을 따라 움직인다. 잔느의 일상을 담는 정적인 카메라의 시선은 그녀 일상의 패턴과 리듬을 관객에게 새긴다. 그녀의 행동에는 군더더기와 낭비가 없다. 우리는 잔느가 이다음에 무엇을 할지 알 수 있고, 잔느가 그 일을 하며 짓는 표정을 보며 그녀의 감정과 기분 상태를 추측할 수 있다(어쩌면, 함께 느낄 수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첫째 날에는 모든 게 완벽했고, 둘째 날에는 살짝 헝클어지며, 셋째 날에는 어제보다 조금 더 어그러졌다. 그래서 셋째 날은, 잔느가 침대 위에 누운 성매매 남성을 찔러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무엇이 그토록 짜임새 있게 구성된 그녀의 일상을 흐트러뜨리고 끝내 그녀를 일상의 완전한 파괴로 내몰았을까? 몇몇 단서를 따라가 보자. 첫째 날, 아들이 잠들기 전 잔느에게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잔느의 남편은 2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 해방군 신분으로 잔느를 만났다. 잔느는 그를 열렬히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 결혼을 선택했다. 아들은 아빠가 죽은 지 한참 됐는데 재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다시 묻는다. 잔느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다시 누군가에게 적응하며 살기는 싫다는 게 이유다. 아들이 학교 친구의 뻗치는 성적 욕망을 언급하며, 그는 자신이 여자라면 사랑 없이 섹스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을 잇는다. 이번에는 잔느가 네가 여자가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한다.
아들은 잔느의 성노동/성매매에 기생한다. 하지만 자기 존재를 가능케 하는 돌봄의 물질적 기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악의 없이 엄마를 모욕한다. 성매매/성노동은 잔느에게 자립의 토대다. 이 덕에 재혼할 남편에게 자신을 맞출 필요 없이 일상을 조직할 수 있고 자신과 아들의 삶을 꾸릴 있다. 그러나 아들은 이 모든 것에 무지하다. 심지어 아들이 아직 아버지의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중인 데도 그렇다. 아들은 남성 성기가 칼, 불과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엄마와 섹스한(즉, 엄마를 ‘칼로 찌른’) 아빠를 미워하고 악몽을 꾼 적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여자는 사랑 없이 섹스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세계를 배반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는 남자와의 섹스가 여자에게는 근본적으로 폭력이라는 아들의 말, 즉 자기 삶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 조건을 부정하는 아들의 말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근본적인 폭력 상태에 머무름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간파가 역설적으로 잔느의 현실을 비가시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이를 원해 결혼하고,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성매매/성노동하는 잔느의 노동/행위는 그 근본적인 대상인 아들로부터 배반당한다.
잔느를 살인으로 이끄는 또 하나의 동기는 성매매 남성들이다. 잔느가 자립의 근거로 삼은 성매매/성노동은 그녀가 직접 선택한 일이지만 그녀의 통제하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성매매 남성이 잔느의 예상보다 집에 오래 머물 경우, 혹은 그녀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려 할 경우 잔느가 구축한 일상의 리듬과 패턴은 깨진다. 잔느는 성매매/성노동하는 동안 주방에서 감자를 삶는다. 그런데 남자가 예상보다 오래 머무르면 감자는 타 버린다(즉 일상이 어그러진다). 또한 성매매/성노동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구매자 남성의 욕망에 가중치를 두기에 잔느의 욕구와 일상은 줄곧 뒷전으로 밀린다. 즉 성매매/성노동의 구조는 잔느의 자립을 제한적으로 조건 짓는다. 때문에 잔느가 가위를 성매매 남성의 목에 찌르는 행위, 즉 여성에 대한 남성 폭력의 방향을 뒤바꿔 살인하는 행위는 자립하여 돌봄을 수행하고자 하는 여성의 의지가 불가능해진 데 대한 그녀의 자각이 발현된 사건이다.
잔느의 살인은 버거운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남성 폭력의 중단)의 표현인 동시에 자립의 목적인 일상을 깨버린 남성에 대한 분노 표현이기도 하다. 여성이 자신이 꾸려나가는 일상에 품는 양가적 욕망의 발현으로써 그녀의 살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살인 후 불이 꺼진 거실에서 가만히 앉은 잔느의 표정은 편안하다. 혹은 해탈한 듯하다. 여성의 자립과 일상의 자립 대한 모순적 감각이 이 영화를 5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우리 앞에 소환했다. 동시대 고전의 목록은 동시대인의 삶 감각을 담지한다. 또 다른 고전의 목록이 확립될 때까지, 〈잔느 딜망〉의 의미는 계속해서 탐구되어야만 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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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속 '드 윈터 부인'을 닮은 <레베카>(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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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나', 1940년 영화에서는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라고 명명하는 주인공. 2020년 작품에서는 '드 윈터 부인'이라고 칭한다. 예나 지금이나 작품 <레베카> 속 화자는 이름이 없다. 이렇게 작품 밖에서부터 레베카의 위력이 느껴진다.
작품 특성상, 이 글에서 작중 화자를 지칭할 때 결혼 전은 '나', 결혼 후는 '드 윈터 부인'이라고 지칭하겠다.1. 순진함: 4점 _ 순진함을 앞세운 눈새의 정석.
2. 매력: 2점_ 설득력을 취하고 매력을 버렸... 나?
3. 로망: 4점_ '해본 것' < '해보고 싶던 것'
4. 자존감: 0점_ 유령은 믿지 않지만
5. 서포트력: 5점_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존재감
순진함, 순진함을 앞세운 눈새의 정석
화자는 '반 호퍼 부인'의 말동무이자 길동무로 동행할 때도 순진한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맥심 드 윈터'와 몬테카를로의 호텔 인근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들이었다.반 호퍼 부인 말마따나, 정말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할 줄 알았던 걸까?
옆방에 있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까내리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말동무로 일하면서 이렇게까지 경계심이 없었다니.
좋게 말하면 순진함, 나쁘게 말하면 눈새.
매력, 설득력을 취하고 매력을 버렸... 나?
1940년 작 <레베카>에서 맥심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반한 건 당신의 외모가 아니라 꾸미지 않은 순수함이 좋아서였어"
그 대사를 들으며 생각했다.뻥 치시네. 저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해? 못 믿을 사람이네.1940년 작에서 '나'는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맥심의 말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그러나, 2020 작에서는 '드 윈터 부인'의 외모가 아름답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관객들에게 고구마를 퍼 먹이듯 답답한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어 '레베카와는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는 맥심의 말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다이아 수저에게만 예뻐 보이는 매력인가 보다.
난 도무지 부인이 왜 매력적인지 모르겠어....
로망, '해본 것' < '해보고 싶던 것'
부인이 되기 전, '나'는 호텔에서 맥심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한 날 이래로 황홀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예쁘게 차려입고 호텔 로비며 테라스로 향하면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맥심의 쪽지를 건네준다.
쪽지에는 오늘의 데이트 코스가 적혀 있다. 그러고 나서 맥심과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나'가 맥심과 시간을 보내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가본 곳보다 많고, 해본 것보다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
맥심으로부터 받은 쪽지를 모아 두고 다시 쪽지를 받을 때로 돌아간 듯, 행복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나'.
"For me?(저한테요?)" 하고 쪽지를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면 예측해볼 수 있다.
'나'는 귀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구나. 꿈꾸는 듯하겠구나.
자존감, 유령은 믿지 않지만
맥심을 따라 맨덜리 저택으로 간 드 윈터 부인은, 유령 따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별한 전 부인 '레베카'에 대해서는 도통 말해주질 않는 맥심, 드 윈터 부인 앞에서 레베카를 회상하고 비교하듯 언급하는 고용인들과 맥심의 친척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레베카의 존재감에 압도된다.무엇보다도, 저택에 처음 왔을 때부터 위기 상황이거나 평화로운 분위기이거나 상관없이 레베카의 이니셜 "R"이 표기된 물품들에 둘러싸여 있다.
실체는 없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저택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레베카와 마주하는 드 윈터 부인은 시종일관 주눅 들어있다. 자신이 아닌 레베카를 '드 윈터 부인'이라고 칭하는 집사 '댄버스'에게도 "이젠 내가 드 윈터 부인이야"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한다.
서포트력,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존재감
드 윈터 부인의 전 직업은 나이 든 귀부인의 말동무 겸 심부름꾼. 그래서였을까?
맥심과 결혼한 후, 저택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내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드 윈터 부인이 영화 후반부에는 돌변한다.
맥심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화끈한 행동력까지 보여준다.
영화를 직접 감상하실 분들을 위해 이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때에만 초능력처럼 발휘되는 냉철함, 판단력, 행동력. 그 모든 능력들이 드 윈터 부인을 더 이상 무기력한 인물이 아닌 존재감이 강한 캐릭터로 자리 잡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히치콕 감독의 동명 영화 1940년 작 <레베카>,
그 영화의 원작인 소설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위협적인 아우라로 유명한 뮤지컬 <레베카>,
그리고 이 작품,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벤 휘틀리 감독의 2020년 작 영화 <레베카>.1940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리메이크 작품을 깐깐한 시선으로 감상했다.
아쉬운 점이 많았다.1940년 작과 비교하며 혹평만 가득 담은 리뷰를 작성하게 되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그래서 대작을 리메이크할 때 느꼈을 법한 고충을 상상해봤다.
'스릴러에서 중요한 요소인 발생 에피소드는 이미 알려져 있는 상황. 더군다나 스산한 스릴감을 멋지게 전달해준 작품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겠지. 힘들었겠다.'라고 생각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풍성해진 사운드와 볼거리
인물들의 대화 뒤에 잔잔히 깔리는 파도소리, 드 윈터 부인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비트 등 청각 효과가 풍성해져 상황 전달이 잘 된다.
게다가 시각적으로 볼거리도 굉장히 많아졌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맨덜리 저택 가면무도회 장면이었다.
레베카를 아는 듯 한, 저택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그 속에서 유일하게 레베카를 모르는 드 윈터 부인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독함, 불안함을 1940년 작품보다 설득력 있게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유일하게 옛 영화보다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는다.
훨씬 친절해진 상황 설명, 그러나 비교적 약해진 스릴감.
줄거리를 완전히 혹은 대충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감상할 때 연출, 즉 상황 표현에 집중케 된다.
그런데, 영화 전체를 통틀어 1940년 작에 비해 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분위기가 많이 약해졌다.1940년 <레베카>에서는 댄버스의 침묵과 시선처리, 인물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화면 연출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에 비해, 2020년 <레베카>에서는 침묵, 화면 연출보다 인물들의 대사 비중이 늘었다.
말이 많아진 댄버스, 처음 보는 캐릭터인 시할머니 등 여러 인물들의 대사로 상황을 설명해주니 편리하다.
하지만, 아무 정보 없는 상태에서 작중 화자와 시선과 정보 공유를 함께하며 느끼던 스릴감은 현격히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컬러, 사운드 등의 기술적 발전은 했으나 연출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생각이 든다.스릴러도 로맨스도 아닌 채 어중간한 곳에서 오락가락하는 영화.
그래서, 언제나 맨덜리의 파도소리가 따라다닌다는 음향 표현이 이해는 가도, 인상 깊지 않았다.
오히려 뮤지컬 음원을 통해 듣는 파도 소리가 훨씬 더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에서는 파도 소리보다도, 히치콕 감독의 <새>를 오마주한 듯한 '철새들의 움직임'이 더 인상 깊었다.
시대 배경 표현에 있어서 안 꾸민 듯, 꾸민 듯?
초반부를 감상할 때는 시대 배경을 현대로 재해석한 작품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등장하는 자동차 디자인과 '얼마 전 찍었다'는 결혼사진이 흑백 가까운 세피아 빛인 것을 단서로 삼아, 소설 레베카의 시간을 따르고 있다고 이해했다.그러나, 시대상에 대한 단서를 몇 가지 발견한 뒤에도 어색함이 느껴져 이상했다.
고전영화 <레베카>에 너무 익숙해져 그런가? 하고 반문해보다가 떠오른 영화가 있다.바츠 루어만 감독의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유행했던 재즈 음악들을 2013년에 맞추어 리메이크했다.
또한, 당대 파티 문화, 의상, 배경이 되는 공간들과 소품들까지 '이 시대가 아니라 그 시대 이야기'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해줬다. 영화가 컬러인가 아닌가는 아무 상관없었다.
시대 배경을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그에 반해 2020작 <레베카>는 시대 표현이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당대 시대상이 개츠비만큼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도, 지금과 다른 시대적 특성을 더 살려줬다면 좋았을 텐데.
리뷰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레베카>가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 되어 버렸다.
작중 '나' 또는 '드 윈터 부인'처럼, 2020년 <레베카>는 1940년 <레베카>와 힘겨운 싸움을 했다.취향 따라 결과 판정은 달리 할 수 있지만,
일단 내게 있어서 이 싸움의 결과는 1940년 작품의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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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개봉 예정, 숨겨진 기대작 5편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2020년 겨울 극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여, 역대급 박스 기록을 갈아치울 거라 전망되었는데요. 특히 1월, 최고의 골수팬을 지닌 시리즈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 이어, 전쟁 영화 <1917> 그리고 윌 스미스 주연의 <나쁜 녀석들: 포에버>까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였고, 2월에도 역시 DC의 <버즈 오브 프레이>, 짐 캐리의 <수퍼 소닉>, 그리고 공포 스릴러 <인비저블맨>까지 박스 기록을 이어나가며 2019년 대비 10% 정도 높은 매출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 시장이 역대급 불황 속에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러던 4월, 한국의 윤여정 배우가 <미나리>로 오스카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극장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윤여정 배우의 수상 소식에 CGV를 비롯한 크고 작은 극장에서 곧바로 기획전을 진행하는 등 확실히 활기차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리고 드디어, 오래 기다려온 액션 블록버스터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5월 19일 개봉을 확정 지으며 극장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고, 뒤이어 공포 스릴러 <콰이어트 플레이스 2>와 팝콘무비 <킬러의 보디가드 2> 그리고 디즈니의 <크루엘라>까지 개봉을 확정 지었지만, 아직 국내 대작들은 개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중 가장 높은 관객 수를 보이는 여름 시장에서 국내 상업 영화의 빈자리를 숨겨진 기대작들이 채우며 극장을 다채롭게 해줄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올여름! 극장을 찾아줄 다양성 영화 중,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숨은 기대작들을 씨네픽이 엄선하여 준비해 보았습니다!
잇츠 CINE PICK!!
트립 투 그리스 (The Trip to Greece, 2020)
코미디, 드라마 | 영국, 그리스 | 103분 | 15세 관람가
감독 : 마이클 윈터바텀 | 출연 :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IMDB : 6.6/10 | Rotten Tomatoes : 87%그리스에서 맛있는 음식과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각자의 인생철학을 공유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두 남자의 여정을 그린 로드 무비
씨네pick :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은 그리스 미식여행. 시리즈 지속이 어려운 다양성 영화임에도 꾸준히 관객을 유지하며 무려 11년을 이어온 작품인 만큼 기대되는 영화인데요. 유서깊은 그리스의 역사부터 오감자극 음식은 물론, 가슴 뻥 뚫리는 자연 풍광까지. 역시 시리즈 피날레는 놓치면 안 되겠죠?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2019)코미디, 멜로/로맨스 | 미국 | 87분 | 등급 미정
감독 : 맥스 바르바코우 | 출연 :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 시몬스
IMDB : 7.4/10 | Rotten Tomatoes : 95%‘팜 스프링스’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한 남녀 ‘나일스’와 ‘세라’가
매일이 반복되는 타임루프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
씨네pick : 믿고 보는 “선댄스 영화제" 진출작이자 <기생충>의 북미 배급을 맡은 제작사 Neon의 작품입니다. ‘폭력과 외국어, 그리고 논픽션에 대해 반감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설립 목적에 맞게 다양성 영화 중에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배급해왔는데요. 타임 루프 로맨스물을 절대 뻔하지 않게 만들어낸 올해 가장 통통 튀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웬디 (Wendy, 2020)드라마, 판타지 | 미국 | 111분 | 등급 미정
감독 : 벤 제틀린 | 출연 : 데빈 프랑스, 야슈아 막
IMDB : 5.7/10 | Rotten Tomatoes : 38%어른이 되기 싫어했고 언젠가 피터팬이 찾아와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었던 벤 제틀린 감독의 어린 시절 추억과 어느 순간 이미 어른이 된 것을 깨닫게 되며 순수했던 동심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색다른 판타지 영화
씨네pick : 믿고 보는 '선댄스' 작품이 또 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환상 동화 <웬디>는 명작 [피터팬]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데뷔작부터 칸 영화제 '카메라상'을 수상한 감독 특유의 색채가 아주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유명 배우가 아닌 아이들을 주연으로 내세웠기에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레타 툰베리 (I Am Greta, 2020)다큐멘터리 | 스웨덴 | 101분 | 등급 미정
감독 : 나탄 그로스만 | 출연 : 그레타 툰베리
IMDB : 6.7/10 | Rotten Tomatoes : 79%기후 변화 법안 마련 촉구를 위해 금요일마다 학교를 결석하며
의회 앞에서 홀로 시위를 시작한 15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
그녀가 쏘아 올린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데…
평범한 10대 소녀에서
어른들의 무감각한 환경 의식에 일침을 가하는
세계적인 청소년 환경운동가가 되기까지! 700만을 움직인 그녀의 외침에 주목하라!
씨네pick : 201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의 다큐멘터리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 추천 기대작이기도 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인물과 문제를 다룬 극인 만큼 더욱 기대되는 작품입니다.너의 결혼식 (가제) (My Love, 2021)멜로/로맨스 | 중국 | 115분 | 등급 미정
감독 : 티안 한 | 출연 : 허광한, 장약남
IMDB : 5.3/10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공식에 관한 영화로, 한 남자와 여자의 첫 만남부터 15년 간의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 영화
씨네pick : 한국에서 대히트를 거둔 첫사랑 멜로 영화 <너의 결혼식> (2018)의 중국 리메이크작으로, 요즘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는 배우 [상견니]의 배우 '허광한'이 주연을 맡은 작품입니다. 개봉과 동시에 예매율 1위를 달성하고, 노동절 연휴 5일 동안 1100억의 매출을 올렸다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 작품입니다.다섯 편 중 특히 기대되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최고 기대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영화에 대하여 더 알고싶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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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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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애니메이션 - 끝내 불발해버린 불꽃,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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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영화를 시각 예술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시청각적 예술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초기 영화들은 청각적 요소가 없는 무성영화였으며, 그렇기에 초기 때부터 부각되어 온 것은 시각적 요소였기 때문에 영화를 시각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개인적 성향을 얘기하자면, 솔직히 필자는 영상미 중시 성향이 센 편이라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영상미가 좋다면 웬만해선 호평을 하는 편이다. 김문생 감독의 "원더풀 데이즈"도 스토리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이러한 비판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영상미와 음악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니다, 너무나도 커다란 단점이 있다. 장점 하나로 절대 커버할 수 없는.
본 영화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동명의 단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단순히 실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바꾼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스토리가 존재하고 있다. 필자가 원작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에 비교 리뷰는 어렵겠지만, 실사를 따로 놓고 봐도 이 애니메이션은 확실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장점부터 얘기하자면 영상미와 OST를 꼽을 수 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력이 있는 샤프트 제작인 만큼 영상미는 정말 매력적이다. 특히 색감과 연출들은 따로 놓고보면 정말 스틸 하나하나가 화보라고 해도 될 정도. 그리고 OST도 정말 호평받을 만한데, DAOKO와 요네즈 켄시의 합작곡이자 본 영화의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打上花火)은 원작보다도 더 인지도가 높을 정도이며 유명 DJ인 Porter Robinson이 직접 호평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할 정도이다. 그리고 마츠다 세이코의 유리색의 지구(瑠璃色の地球) 또한 후술하겠지만 본 노래가 나오는 파트는 비판점이 있지만 음악만 따로 놓고 보면 좋은 음악에 속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영화관의 사운드와 스크린으로 음악과 영상미를 듣기위해 예매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이 영화의 가치는 이 두가지 뿐이다. 다만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은 작중에서는 단 한번도 안 나오고 엔딩 크레딧에서만 나오니, 만약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접할 기회가 있다면 엔딩 크레딧까지 꼭 보고 나오길 강력히 추천한다.
장점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단점 뿐이다. 누가 뭐라해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이다. 위에서 필자가 영상미를 중시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스토리가 형식이 갖춰져있을 때의 이야기이지 심각할 정도의 미달 수준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원더풀 데이즈에 호평을 한 것도 서사가 급전개에 난잡한 부분이 있지만 심각한 미달 수준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스토리가 심각할 정도로 미달이다. 이러한 미달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너무 길게, 자주 반복되는 쉽게 말하자면 '만약에' 세계의 반복인데, 사랑을 이루기 위해 반복하는 만약에가 너무 길게, 여러번 나온다. 그렇기에 비록 이미 본 부분을 빠르게 보여준다고 해도 지루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늘어지는 모습은 원작에 비해 40분 가량 늘어난 러닝타임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인데, 실제로 반복되는 부분은 20~30분 가량을 잘라내도 이해에 영향이 없을 정도라고 느꼈다. 또한 열린 결말이라는 것도 좋게 말해 열린 결말이지, 나쁘게 말하자면 결론을 내지 않고 끝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후반부의 연출에 비해 너무나도 허무한 엔딩이기에, 이러한 아쉬움은 배가 되어간다. 그리고 위에서 색감과 연출들을 따로 놓고보면 좋다고 했는데, 일부 장면의 연출들은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 유리색의 지구 파트에서는 뮤지컬 영화 색채를 보이는 파트인데, 갑작스럽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연출이 나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식 연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앞과 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연출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연출과 영화의 서사가 조화롭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이다. 또한 일부 연출 또한 선정적 요소가 세 불편함을 느꼈다. 특히 선생님의 가슴을 가지고 친구들 사이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도 섹드립을 날리는 거나, 선생님의 가슴을 선생님의 남자친구가 가슴이 작아진 것 같다며 만지려 하는 것도 전혀 유쾌하지 않고 불편하기만 하다. 후자의 경우에는 현실과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라고는 하나, 영화를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눈치채기 힘든 요소이며 이러한 또 다른 세계임을 상기시키는 연출은 불꽃의 모양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완벽한 실패작은 아니다. 영상미와 OST는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주목해볼만 하다. 하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은 엔딩 크레딧에서만 나오는지라 본 작품의 평가에는 영향을 끼치기 어렵고, 영상미 또한 서사와의 조화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이 영화를 불꽃에 비유해보자면, 분명 하늘을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불꽃이었는데, 끝내 불발해버린 불꽃이고 만것이다. 아예 불량품이 아니었다보니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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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를 이끌어 가는 대화
<우연과 상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이자 세 편의 단편을 엮어 만든 소품같은 영화다. 걸작임에도 러닝타임이 길고 등장인물이 많아 관객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던 전작과는 달리 <우연과 상상>은 두 시간여의 적당한 러닝타임에 편당 주요 등장인물의 수가 세 명을 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등장인물의 자리를 꿰찬 것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다. 이들의 대화는 때로는 독백의 형태로, 때로는 낭독의 형태로, 때로는 상황극의 형태로 발현되어 우연을 드러내거나 상상을 이끌어 낸다. 보다 스케일도 크고 로케이션도 다양했던 전작과는 달리 <우연과 상상>은 등장인물 수도 적고 배경도 한정되어 있지만 이들의 대화를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드라이브 마이 카>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세계의 주목을 집중시켰던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는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 <열정>의 전개 방식에 <해피 아워>의 서사를 담은 것만 같은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감독의 초심을 담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어째서 복잡한 비유나 상징을 이용하는 대신 직설적인 발화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영화 언어에서 발화 언어를 통한 서사 전개는 촌스러운 방식으로 여겨진다. 직접성보다는 간접성을 통해 수용자의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예술은 정답을 이끌어낼 여지가 있는 직설적인 표현을 꺼려한다. 아예 언어가 배제되는 회화나 무용의 경우는 색감이나 예술가의 신체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발화 언어를 사용할 선택지가 있는 영화 예술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예술성을 평가받기도 한다. 대사에 복잡한 비유와 상징을 담아 직설성을 배제하기도 하지만 대개 발화 언어는 직접적인 표현 방법에 쓰인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담보로 하는 예술인 영화는 대사를 알쏭달쏭하게 꼬는 대신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의미를 함축하더라도 직접적인 의미 전달과 간접적인 의미 함축이라는 두 역할을 수행하게끔 만들곤 한다. 이는 추리물을 포함한 반전 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관객에게 반전의 충격을 안겨주려면 간단한 대사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전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더라도 나레이션을 사용해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우연과 상상>은 소소한 반전을 품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플래시백이 전혀 없다. 등장인물들은 현재 시점에서만 존재하며 과거의 이야기는 전부 대사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플래시백을 영화 기법에서 제외하는 경우 관객은 한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사는 전부 진실에 기반하는 것인가? 3화 「다시 한번」에서 아야(카와이 아오바 분)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반전은 아야만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은 아야의 말에 의구심을 느끼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야가 드러낸 진실이 진실인지 아닌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과 상상>의 대화들은 내용의 진실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관객이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다. 대개는 즐거움인데 대화가 <우연과 상상>을 한층 좋은 영화로 만들어주는 이유는 정작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들에게는 진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연과 상상>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그야말로 충실하게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첫 에피소드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퇴근길 택시에 합승한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분)와 츠구미(현리 분)의 대화를 오래도록 보여주지만 대화의 내용은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츠구미가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이 대화 직후에 이루어진다. 메이코는 택시에서 내려 어딘가로 향하고 그 곳은 바로 츠구미가 만난 남자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 분)가 일하는 곳이다. 카즈아키와 이코는 역시나 긴 대화를 이어가지만 대화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메이코가 이 장소를 떠나는 순간이 되어야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카즈아키가 메이코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대화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물들의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대화가 거의 들리지 않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다. 그리고 카즈아키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유리창 내부의 공간으로 이동했을 때 발생하는 대화는 주로 메이코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는 대화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화를 인물들의 행동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혹은 맥거핀으로 유연하게 사용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문은 열어둔 채로」에서 관객의 시선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아두는 발화 언어는 나오(모리 카츠키 분)가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 분)의 책을 낭독하는 부분이다. 상당히 오랜 시간 일부러 민망한 부분을 골라 낭독하는 나오의 목소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유도하지만 동시에 세가와 교수가 보이는 반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민망해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멈추게 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며 낭독을 듣는 세가와 교수는 이 낭독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일까. 문을 닫으려는 나오의 행동만을 저지하며 긴 낭독을 듣고 나오의 고민상담을 해준 세가와 교수는 나오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고서야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나오의 질문에 대한 세가와 교수의 대답은 일반적으로 관객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관객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가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이 에피소드의 결말 또한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다. 특히 가장 충격적인 결말은 나오의 발화가 아닌 오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2화 또한 대화를 훌륭한 매개체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화를 발화 언어의 목적 그 자체에 가장 충실하게 활용한 에피소드는 3화인 「다시 한번」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에피소드의 가장 큰 반전은 아야의 입을 통해 전달되지만 아야와 나츠코(우라베 후사코 분)는 결론적으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츠코를 자신의 집에서 대접하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야는 사실 대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어떤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던 것임이 드러난다. 반면 대화 자체가 목적이었던 나츠코에게 이는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이후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 쪽은 나츠코가 아니라 아야다. 관객에게 가장 큰 충격을 전달하는 것은 이후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지만 서사를 마무리짓는 것은 폭로 이후에 이어지는 상황극이다. 특히 아야가 나츠코를 배웅하며 역 앞의 육교에서 벌이는 상황극은 대사는 상황극일지언정 두 캐릭터의 감정만큼은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 에피소드에서도 대화는 아야와 나츠코의 과거를 들려주고 스스로를 힐링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실제로 심리 치료에도 사이코드라마라는 비슷한 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다지 변화가 없는 배경, 적은 수의 등장인물을 가지고 대화만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이끌어 냈지만 사실 대화가 서사를 잇는 매개로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우연과 상상>은 영화 예술에서 대사의 활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이 어려운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지 않아도, 혹은 대사 없이 이미지로만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대사는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하마구치 감독이 증명해낸 셈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는 영화지만 <우연과 상상>은 초심으로 돌아간 감독이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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