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3-12-28 22:45:28
작은 아이의 세계, 그 속의 감정들
-<클레오의 세계>(2023)
개봉 전 시사회에서 영화를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영화 속 감정 읽기] 라는 연재를 합니다. 영화리뷰안에 각 인물이 대표하는 감정을 적고 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갓난아이들에게 옆에 있는 엄마는 의지해야 할 꼭 필요한 존재다. 먹을 것을 해결해 주고, 아직 뭐가 뭔지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엄마는 그 아이의 전부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의 세계다. 꼭 엄마만 그런 존재가 되라는 법은 없다. 아빠도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친척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이와 오랜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내고 도움을 준다면, 그 자체로 아이의 세계에 포함될 수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주 좁고 작은 세계지만, 아이에게 그 세계는 무너지면 안 되는 무척이나 큰 세계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주인공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를 어릴 적부터 키운 보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는 어쩌면 클레오의 전부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게 고향으로 떠나야 할 사정이 생기고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클레오의 반응과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겪는 상실감과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클레오는 마음 한 구석이 시리고 슬프다. 흔들리는 클레오의 세계를 영화는 담담하고 강렬하게 담고 있다.
첫 번째 감정 - 클레오의 두려움
클레오의 세계에는 아빠도 있고,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도 있고, 보모인 글로리아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글로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이 웃고 떠들면서 감정을 공유한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적어도 클레오의 세계에 엄마는 없다. 그 엄마라는 존재를 대신하는 사람이 바로 글로리아다.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자 엄마 같은 존재다. 같이 샤워를 하고, 같이 병원을 가고, 같이 밥을 먹는다. 그러니까 일상을 공유하는 두 사람은 어쩌면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영화 초반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수다와 장난을 지나면, 고향에 계신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온다. 그 전화를 받고 글로리아가 우는 그 순간부터 클레오에게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조금씩 생겨난다. 슬픔을 잠시 묻어둔 채 클레오를 챙기고 재우는 글로리아의 모습도 그렇게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어느 순간에 클레오에게 이제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해 버린다. 클로에는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냐는 물음을 다시 던진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글로리아의 말에 클레오는 기운이 없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에겐 자신이 알던, 무척이나 친숙했던 큰 세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의 두려움은 학교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운을 없애고 때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하지만 곧 그 세계는 무너진다. 아빠에게 위로받고 또 장난도 곧잘 치지만, 그런 아빠의 노력이 텅 비어버린 클레오의 세계를 전부 채울 수는 없다.
두 번째 감정 - 클레오의 질투
글로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클레오는 마음속에서 글로리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글로리아의 고향으로 놀러 가게 된다. 여기서 클레오가 겪는 일들의 대부분은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순간들이다. 오랜만에 자신의 모든 세계인 글로리아를 만났고, 그의 가족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클레오에겐 잃어버린 세계를 찾은 기쁨을 선사한다. 자신의 집이 있는 파리보다는 열악한 시골 섬의 작은 마을이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도 하고, 바다에서 수영도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게는 임신한 딸과 아들이 있다. 글로리아의 딸이 출산하게 되면서 그의 집에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이때부터 글로리아는 자신의 손주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클레오는 자신이 받던 글로리아의 사랑을 갓난아이가 빼앗아갔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느끼는 온 세상을 그 아이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이 작은 클레오의 마음속에 큰 질투의 불씨를 불어넣는다. 그가 글로리아의 손주에게 하는 어떤 행동은 조금은 충격적으로 느껴지지만 클레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클레오의 세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클레오와 갓난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과 클레오가 하는 행동을 본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때부터 클레오는 달리기 시작하고, 해변까지 간 클로에는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든다. 폭발하는 질투심과 죄책감이 동시에 그를 괴롭힌다. 어쩌면 클레오의 세계는 이미 없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당황한 클레오의 표정은 그 모든 붕괴를 표현하고 있다. 클레오의 감정은 그가 해변으로 달려가는 그 모든 순간에 완전히 방출된다. 그걸 보고 있으면 보는 이들도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게 된다. 클레오의 질투는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속에 일종의 파괴본능을 만들어냈고, 스스로 악마가 되고 싶었던 클레오는 부끄러움에 바다로 몸을 던진다.
세 번째 감정 - 글로리아의 슬픔
이 영화가 클레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글로리아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클레오를 키워온 글로리아 역시 클레오에게 많은 감정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서로 나눈 감정은 마치 보이지 않는 끈처럼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고향으로 떠나야 하는 순간에 글로리아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의 마음에 글로리아의 자리는 꽤나 크게 만들어져 있었을 것이다. 담담히 그 상황을 설명하고 떠나는 글로리아는 자신의 힘으로 키워낸 작은 아이의 세계를 잠시 바라보고 돌아선다.
클레오가 자신의 고향으로 찾아온 방학기간 동안, 글로리아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신만의 사업을 준비하면서 딸의 출산을 돕고, 태어난 아이를 챙겨야 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잠시나마 찾아온 클레오가 너무나 반갑지만, 온전히 그에게만 신경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글로리아는 자신의 가족을 좀 더 신경 쓰며 챙길 수밖에 없다. 여전히 클레오에게 다정한 글로리아지만, 그런 모든 상황을 지나면서 클레오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엔 글로리아가 울음을 터뜨린다. 클레오를 공학까지 배웅하며 돌아서는 그의 마음은 복잡하다. 결국 클레오와 완전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펑펑 눈물을 쏟는다. 아마도 클레오의 방학기간 동안 클레오도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클레오는 비행기로 향하며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지만 글로리아는 끝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의 눈물은 클레오의 세계에서 완전히 떠나게 된 그 상황에 대한 슬픔이 담겨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클레오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상황들을 따라간다. 다양한 클로즈업을 통해 클레오가 진짜로 볼만한 장면들을 화면으로 담고, 느낄만한 감정들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전환 장면은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통해 클레오의 세계가 가진 따뜻함을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작은 아이 클레오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협소한 작은 공간만 존재했던 클레오의 세계는 아마도 이 영화 속의 일을 겪고 나면 엄청나게 거대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겪은 성장기처럼. 글로리아는 비록 엄마는 아니었지만 클레오에게 중요한 존재였고, 두 사람이 나눴던 감정의 교류는 모두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영화는 그 거대한 사랑을 클레오의 얼굴과 표정으로 잘 보여준다. 영화의 원제에는 보모의 이름인 글로리아 가 들어간다. 하지만 한국에 수입되면서 <클레오의 세계>로 제목이 바뀌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클레오의 세계가 곧 글로리아였으니.. 어쩌면 이 상황을 잘 표현한 완벽한 번역이 아닐까.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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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작이 5개 이상인 배우 모아보기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차기작이 다섯 개 이상인 배우를 한번 살펴볼까 하는데요!
벌써 차기작이 다섯 개 이상인 배우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요?
그럼,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교환
ⓒ 나무엑터스
차기작 목록
<길복순>
<탈주>
<D.P. 시즌2>
<신인류 전쟁: 부활남>
<기생수: 더 그레이>
차기작 관련 소식
<길복순>
영화 <길복순>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변성현 감독 작품으로 전도연, 설경구, 이솜 배우와 함께 구교환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2021년 12월에 크랭크인했다.
<탈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로 이제훈과 구교환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탈주>는 철책 반대편의, 내일이 있는 삶을 꿈꾸는 북한군 병사 임규남과 그를 막아야 하는 보위부 장교 리현상의 목숨을 건 탈주와 추격전을 담았다. 2022년 상반기 크랭크인 예정이다
<신인류 전쟁: 부활남>
<신인류 전쟁: 부활남>은 웹툰 '부활남'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만년 취준생 석환이 죽은 뒤 3일 후, 부활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이다. 아직 다른 배역 캐스팅과 관련된 소식은 없다.
안은진
ⓒ 빅보스엔터테인먼트
차기작 목록
<시민 덕희>
<올빼미>
<연인>
<종말의 바보>
<나쁜 엄마>
차기작 관련 소식
<시민 덕희>
영화 <시민 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40대 주부가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보이스피싱 조직 두목을 잡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배우 등과 함께 출연한다.
<올빼미>
영화 <올빼미>는 조선 인조시대를 배경으로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일을 담은 영화이다. 유해진, 류준열, 박명훈, 안은진, 김성철 배우가 영화에 출연한다.
<종말의 바보>
<종말의 바보>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200일, 눈앞에 예고된 종말을 앞두고 혼란에 빠진 세상과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아인 배우와 안은진이 주연을 맡았다.
신혜선
ⓒ YNK엔터테인먼트
차기작 목록
<그녀가 죽었다>
<타겟>
<용감한 시민>
<이번 생도 잘 부탁해>
<밀랍인형>
차기작 관련 소식
<그녀가 죽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SNS 인플루언서 집 안에 몰래 들어간 남자가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이다. 신혜선과 변요한 배우가 주연을 맡았으며, 캐스팅이 완료되면 최대한 올해 안에 크랭크인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한다.
<용감한 시민>
영화 <용감한 시민>은 한때 복싱 기대주였지만, 기간제 교사가 된 소시민이 정규직 교사가 되기 위해 참아야만 하는 불의와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신혜선과 이준영 배우가 주연을 맡았고, 올해 4월 5일 크랭크업을했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며 19회차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드라마이다.
주지훈
ⓒ 에이치앤드
차기작 목록
<사일런스>
<피랍>
<젠틀맨>
<지배종>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
차기작 관련 소식
<사일런스>
영화 <사일런스>는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 붕괴 직전의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예기치 못한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선균과 주지훈 배우와 함께 김희원, 문성근, 박주현 배우 등이 출연한다.
<젠틀맨>
영화 <젠틀맨>은 웨이브 오리지널 영화로 명을 벗고자 검사 행세까지 하게 된 흥신소 사장 '지현수'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검사 '김화진'이 악의 축 '권도훈'을 잡기 위해 공조를 벌이는 범죄 오락 영화다. 영화는 작년 12월 5일 크랭크업했다.
<지배종>
<지배종>은 인간의 식탁에서 피 흘리는 고기가 사라진 새로운 ‘인공 배양육의 시대’를 그리는 드라마이다. <비밀의 숲> 시리즈, <라이프>, <그리드> 이수연 작가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다.
이현우
ⓒ 어썸이엔티
차기작 목록
<영웅>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2>
<드림>
<도그데이즈>
<오늘도 사랑스럽개>
차기작 관련 소식
<영웅>
영화 <영웅>은 뮤지컬 영화로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담았다. 이현우 배우는 유동하 역을 맡았다.
<드림>
영화 <드림>은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작품으로 선수 생활 최대 위기에 놓인 축구선수 ‘홍대’와 생전 처음 공을 잡아본 특별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홈리스 월드컵 도전을 그린 유쾌한 드라마를 그린 영화다. 박서준, 이지은(아이유)와 함께 출연한다.
<도그데이즈>
영화 <도그데이즈>는 반려견 덕분에 예기치 않게 엮인 이들의 기분 좋은 인생 반전 스토리를 담은 작품으로 윤여정, 유해진, 다니엘 헤니 등과 함께 출연한다. 영화는 3개월 간의 촬영을 마치고 크랭크업했다.
배두나
ⓒ 샛별당엔터테인먼트
차기작 목록
<바이러스>
<다음 소희>
<리벨 문 1부>
<리벨 문 2부>
<죽이는 이선생>
차기작 관련 소식
<바이러스>
영화 <바이러스>는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진 가운데 바이러스 숙주인 여성과 연구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이다. 배우 김윤석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다음 소희>
영화 <다음 소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고등학생 소희가 겪게 되는 사건과 이에 의문을 품는 형사 유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장 개봉 전, 여러 영화제에 미리 공개를 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죽이는 이선생>
드라마 <죽이는 이선생>은 범죄자를 단죄하는 킬러와 그 킬러의 뒤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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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각종 위험에 맞서 떠나는 모험을 주제로 한 영화
총 디섯 편을 추천드릴까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모험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해적: 바다로 간 산적
ⓒ 네이버 영화
synopsis
조선 건국 보름 전, 고래의 습격으로 국새가 사라진 전대미문의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찾는
해적과 산적, 그리고 개국세력의 바다 위 통쾌한 대격전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
cine pick!
각기 다른 이유로 국새를 찾아 바다에 모인 개성 넘치는 12인은 영화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묵직한 감동과 더불어 강도 높은 액션을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
ⓒ 네이버 영화
synopsis
바다 한가운데, 좁은 구명보트에서 호랑이와 함께 남게 된 소년이 겪은 227일간의 놀라운
여정을 그려낸 영화.
cine pick!
얀 마텔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실사 촬영과 CG를 결합하여 환상적인 시각효과를
구현해냈다. 영화는 뉴욕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최초 상영 후 전세계 언론에서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캐스트 어웨이
ⓒ 네이버 영화
synopsis
페덱스 직원인 척은 연인 캘리와 만나지도 못할 만큼 바쁘게 지낸다. 크리스마스 이브, 데이트
중 급히 호출된 척은 비행기 착륙 사고를 당하고, 정신을 잃은 후 무인도에서 눈을 뜬다.
cine pick!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음향상에 후보에 올라선 <캐스트 어웨이>는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이다. 제작비로 9천만 달러가
소요되었지만, 월드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4억 2963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코렐라인
ⓒ 네이버 영화
synopsis
부모님이 바빠 이사 후 혼자 집안을 돌아다니던 중 숨겨진 작은 문을 발견한다. 그날 밤 우연히
문을 열어 본 코렐라인은 또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데...
cine pick!
세계 최초로 제작된 3D 입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재미있는
스토리 더불어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였다. 귀여운 캐릭터에
반전 넘치는 무서운 스토리로 어른을 위한 공포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문라이즈 킹덤
ⓒ 네이버 영화
synopsis
12살 소년과 소녀가 사랑에 빠져 함께 도망친 후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필사적인 수색을 그린 독특한 드라마 영화.
cine pick!
부드러운 색감, 대칭 구도, 매력적인 미장센이 돋보이는 웨스 앤더스 감독의 영화 <문라이즈
킹덤>은 2012년 제 65회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많은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기도 하였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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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이 슌지의 '편지'는 계속해서 쓰이는 중이다
영화 제목을 <Last Letter> 대신 <Letter Lasts>라고 고쳐도 될까. 'Last'에는 '마지막의'라는 형용사적/부사적 의미도 있지만 '계속하다'라는 동사적 의미도 있다. (이 동사는 자동사와 타동사의 뜻을 둘 다 지녔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라는 김연수의 말처럼, <라스트 레터>(2020)의 이야기는 한 편의 편지가 어떻게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그것이 나아가 소설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계절을 담았다.
감독 이와이 슌지의 고향 센다이에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 먼저 영화(2018)로 만들어졌고 소설판으로도 나왔으니, 마츠 다카코와 히로세 스즈가 주연한 이 <라스트 레터>는 그러니까 세 번째로 쓰인 이야기다. 아니, 정확히는 다섯 번에 걸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만든 단편 영화(2017)가 기반이 되었고 영화에 등장하는 소설 '미사키' 역시 별도의 책으로 썼으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고 또 쓰는 일. 과거가 된 이야기를 거기 내버려 두지 않고 계속해서 꺼내고 발신하고 수신하는 방식으로 쓰여온 이 <라스트 레터>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편지이자 소설의 형식을 닮았다.
<라스트 레터>에서 무엇보다 핵심적인 것은 영화 속 모든 편지가 손으로 쓰인 물리적 실체가 있는 편지라는 점이다. 물성이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수신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도 하며 그것의 발신지(주소)가 존재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2019)에서 20년도 더 지난 얼어붙은 과거를 편지가 녹여내었고 그것이 당사자의 딸을 중심으로 현재에 재소환되었듯, 과거의 '미사키'이자 현재의 '아유미'(히로세 스즈의 1인 2역), 과거의 '유리'이자 현재의 '소요카'(모리 나나의 1인 2역) 그리고 현재의 '유리'(마츠 다카코)와 현재의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를 오가는 이 이야기는 결국 2020년대에 와 편지라는 수단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청량한 여름을 배경으로, <라스트 레터>는 "나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좋아해. 너는 어떤 책을 좋아하니?" 같은 이야기, "잘 지내고 있습니까?" 같은 이야기, 그리고 "바람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의 시절을 능히 지탱하는지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 영화의 촬영과 음악, 음향은 꽤 중요하게 여겨진다) 성공하지 못한 소설가도 누군가에게는 사인을 받고 싶은 '히어로'가 되고는 한다. 지금쯤 다시 떠올려보는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영화를 보기 전의 나'에게 쓰는 긴 편지를 써 내려가야 했다. 1995년 <러브레터>로 시작된 이와이 슌지의 서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 역시 그것을 계속 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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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나는 몇번째 '실패작'인가?
< 미키 17>
나는 몇번째 '실패작'인가?
“당신은 몇 번째 미키입니까?” 친구 ‘티모’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지고 못 갚으면 죽이겠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야 하는 ‘미키’. 기술이 없는 그는, 정치인 ‘마셜’의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4년의 항해와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 뒤에도 늘 ‘미키’를 지켜준 여자친구 ‘나샤’. 그와 함께, ‘미키’는 반복되는 죽음과 출력의 사이클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나 ‘미키 17’이 얼음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만난 후 죽을 위기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다.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자알 죽고, 내일 만나”
-네이버 영화 소개-
도망치듯 떠나온 곳에 파라다이스는 있을리 만무하다.
미키는 자신이 어떤 판단을 한지도 모른채, 우주에서 '실패작'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우주세계의 '미키'에게는 성공이란 없다.
실패를 위해 태어난, 삶의 목적이 실패 그 자체인 삶이다.
이곳이 지옥과 다를 것이 뭔가?
불교의 지옥에서는 사람이 죽지도 않고, 끝없는 고통과 형벌이 계속된다.
끝이 없는 고통의 연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주도 미키에는 곧 지옥과 같았으리라.
너는 나, 나는 너.
운 좋게 살아남은 미키 17이 돌아온 곳에는 미키 18이 있었다.
분명 나인데, 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니것도 아니다.
미키 18과 미키 17 중 어느 미키가 진짜 미키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단순히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미키 17이 진짜인가?
이와 비슷한 물음을 하는 재밌는 만화가 있다.
바로,
'오억년 버튼'
사진 출처: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49552
지금 당장 버튼을 누르면 오억년간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버텨야하고, 오억년을 다 버틴 후에는 버튼을 누른 내가 큰 돈을 벌게되는 간단하지만 복잡한 게임이다.
현재의 내가 오억년을 버틴 기억을 잃었다고해서 내가 오억년을 버텼던게 사라지나?
돈을 받은 내가, 오억년을 버틴 나랑 같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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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해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문제이다.
이 만화와 미키들의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존재하는 하는 한, '진짜'를 정의한다는 것은 정말 해결하지 못할 난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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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나 모두 '나'라면, 그 둘을 어느정도 구분할 기준이 필요하다.
여기서 미키가 선택한 새로운 기준은
'주체성'과 '이타성'
이다.
사람은 주체적이며, 그 어떤 동물들보다 관계적이다.
독재자의 무조건 적인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주체성과 타인과의 관계, 더 나아가, 이종과의 관계까지 고려하는 이타성이 더 강한 미키가 '진짜' 미키에 조금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기에는 미키 17이 더 '진짜'답다라고 느끼는 것 아닐까.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주인공을 '미키 17'로 잡은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영화의 모든 구조적 장치들이 미키 17을 주인공으로 보이게끔 했기 떄문에 관객이 그를 진짜라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위의 설명은 이러한 연출 부분을 제외하고 말한다.)자유와 공존.
미키를 끝까지 쫓아오던 빚쟁이, 끝없는 복종을 강요한 독재자 그리고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실패작'으로서의 삶.
이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마침내 마주한 자유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자유'야 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하는 마지막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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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 '미키 17'은 인간에서 더 나아가 '공존'을 말한다.
우리는 혐오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대 사람의 혐오.
더 나아가 사람대 동물의 혐오.
심지어 동물은 일방적으로 혐오를 받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다양한 생명체의 공존과 생태계의 평화를 기저에 강조한다.
우리는 현재 우주로 나아갈 방법을 찾아보기 전에,
지금 당장 맞닥뜨린 지구에서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공존이 곧 인간으로서 가장 존중받으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만으로는 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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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과 외면 사이
<퀴어(Queer)>(루카 구아다니노, 2024)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 본문의 원작 인용들은 윌리엄 S. 버로스의 <퀴어> 2020년 번역본과 <정키> 2009년 번역본에서 가져옴 (모두 펭귄클래식 코리아 발행, 조동섭 옮김)
윌리엄 리와 윌리엄 리
안드레 예치먼이 <그해 여름, 손님>에서 엘리오 일인칭으로 서술하는 경험, 생각과 감정은 편견과 혐오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부모님도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엘리오의 심리나 올리버의 퀴어쉐임 등을 모호한 비언어적 표현에 함축하고 나머지는 미화하는 각색을 택한다. 영화의 엔딩, 모닥불 앞에 있는 엘리오가 회상하는 기억을 재현함에 가까워 보인다.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화면에는 풍화된 그대로 아름다운, 그 여름 두 사람이 본 유물 사진이 흐른다. 리와 유진의 흔적이 남은 소품을 나열하는 오프닝을 연출하는 <퀴어>는 언뜻 그와 유사한 방향을 따르려는 듯하다. 허나 그 사이에는 -윌리엄 버로스가 리의 공포를 은유하는 상징으로 사용했던- 지네가 기어다닌다. 실제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미화된 기억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환상과 환각을 구현해 수면 아래의 모순된 상태와 정서를 드러내는 <퀴어>는 어쩌면 처음부터 나란히 두고 보기 어려운 영화들인지도 모른다.
“너 퀴어 아니지? You’re not queer, right?” 화면에 등장한 리가 가장 처음 뱉는 대사다. 이미 스스로 부정의 답을 짐작하는 의문문에 담긴 단어, “queer”, 영화 <퀴어>에 대해 말하려면 이 표현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퀴어> 속 “퀴어”는 일단 게이를 일컫는 당시 멸칭, ‘남성을 사랑하는 남성’보단 ‘남성과 늘 자고 싶어하는 (비정상적인)남성’에 가까운 뉘앙스의 말이다. 허나 모욕하고 공격하려는 의도로 밖에서 안으로 꽂히는 언어와, 내가 그렇다고 드러내기 위해 발화하는, 혹은 커뮤니티 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아주 같지는 않을 테다. 남들이 아무리 ‘퀴어’가 무엇이라 떠들어도, 퀴어로 정체화했거나 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개인 각각의 경험은 다른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니 195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윌리엄 리와 그 친구들이 자신과 주변인을 일컫는 “퀴어”는, 말하자면 수치심, 혐오, 자기학대, 갈망와 미세한 자긍심의 꼭짓점을 이은, 회전하고 변형되는 비대칭의 도형 가운데에 놓인 복잡한 정체성의 언어다. 이를테면 조는 남성들과 맺은 관계를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자꾸 상대방이 물건을 훔쳐가게 (사실상) 내버려두고, ‘그린랜턴’의 “screaming fags”(이러한 표현들은 오히려 원작의 것을 순화한 편이다.)를 낮잡아 이른다. <퀴어>는 이런 상태와 감정, 역사를 숨기지 않는다.
여기서 출발해 리를 이해해보자. 거의 모든 배경음악은 리의 심리를 반영한다. ‘이래서 퀴어와는 친구하기 어렵다’던 두 남자의 뒷말 후 늘어지던 음울한 음악은 곧 ‘Come As You Are’(Nirvana)로 이어진다. 이 강렬한 곡이 유진과 마주치기 이전부터 시작되는 까닭은, 그 찰나의 경험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번져 리를 물들여서다. 유진과 함께 걷던 도중 흘러나오던 재즈(변주가 많은, 틀린 음은 없다는)는 리가 거실 전등을 켜자마자 뚝 끊겨버린다. 리가 테이블에 도구를 늘어놓고 익숙하게 약물을 준비하는 긴 숏에서 흐르는 것도 처음엔 정적이다. 약을 주사하면 들리는 것은 ‘Leave Me Alone’(New Order). (흥미롭게도 <본즈 앤 올>이 뉴 오더의 전신 조이 디비젼의 ‘Atmosphere’를 삽입한 것과는 사뭇 구별되는 쓰임이다.) 화면 사이드에 우울하게 머무르던 리의 얼굴이 컷된 후 뒤따르는 건 술병과 잡동사니가 널린 거실 전경. 인식의 중심에서 스스로를 밀어내는, 자신을 돌보기를 거부하는 상태. 리의 손이 늘 지저분한 건 단지 ‘중독자라서 물을 기피하는 탓’(-<정키>)만은 아니다. 그가 자주 장황한 스토리텔링을 전시하는 건 나르시시즘보단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행위로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그가 뱉은 “homosexual”을 듣고 옆 테이블 여성이 기겁하는- 리는 그런 취급을 유도하며 자신을 공격한다. 한편으로 그는 교감을 바란다. 리가 ‘보보’를 인용한, “지식과 성실과 사랑으로 편견과 무지와 증오를 극복할 의무가 있다”는 말은 원작에서 보보의 끔찍한 죽음에 관한 묘사로 이어진다. 그 묘사를 잘라내고 인용하는 영화 <퀴어>가 다다르는 곳은 버로스의 자학적 ‘공연 무대’도 아니고 <네이키드 런치>(1991)가 같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끄는 장소와도 다르다.
윌리엄 버로스가 쓴 ‘대사’의 상당부분을 그대로 가져온 <퀴어>가 추측하거나 각색하는 중요한 지점은 리와 유진의 서로에 대한 감정이다. 먼저 버로스 자신은 리의 사랑을 의심했고 유진은 애초에 퀴어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1985년에 덧붙인 프롤로그에서 유진을 “유령 같은 존재”, 리가 고른 “실패할 대상”으로 묘사한다. “리가 앨러턴에게서 찾는 것은 다름 아닌 관객”, “앨러턴은 어쩔 수 없이 그 이야기들에 찬성하는 뮤즈의 역할을 떠안은 채 그 안에서 당연히 불편해한다.” 버로스는 리의 갈망은 사실 유진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적는다.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성적 접촉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리는) 기꺼이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p.14~19)
<퀴어> 이전 리의 약물 중독을 다룬 <정키>에서 버로스는 동성애를 은근히 그리고 꾸준히 약물 중독과 동일선상에 놓는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지 않는 무리’를 관찰하듯 서술된 이 경멸들은 반사돼 그 자신을 겨냥하는 것처럼 읽힌다. 영화 <퀴어>, 리의 어떤 환각에는 팔에 주사를 꽂은 여성의 나체 상반신이 등장한다. 리의 손이 몸을 쓰다듬자 그는 비웃으며 묻는다, “당신 퀴어 아니야?”, 리의 손은 답한다, “난 퀴어가 아니야, 그저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거지.just disembodied.” 자신을 퀴어라고 전시하는 리는 내심 성적인 이끌림을 “정신과 분리된” 육체적 욕구로 좁혀 인식하며 약물중독에 비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리는 사랑을 느끼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동시에 제 사랑을 의심하고 그것을 깎아내리는, 모순된 상태에 놓여 있다. 초반 영화는 펍에서 조의 이야기를 듣던 리가 홀로그램화되는 초현실적 연출을 넣은 바 있었다. 이 꾸준한 disembodiment의 감각에 숨은 심리는 버로스 자신의 글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정키>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약의 효과는 특별한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 어쩌면 나는 내가 마약과 대마초와 코카인에서 찾고 있었던 것을 야헤에서 찾을지도 모르겠다.”(<정키>, p.258) 구아다니노와 커리스케츠는 이 모호한 서술에 닿아 있는- 리의 동성애가 약물중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기성사회가 비정상으로 낙인찍은 자신을 달리 바라보려는 시도, 그리고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갈망의 발현 중 하나가 약물 사용이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다시 오프닝 크레딧으로 돌아가면, 그 마무리에 리가 쓴 글은 삼차원의 반투명한 결정으로 형상화된다. 평면 종이에 쓰인 소설 결말부에 위치한 입체적 미궁, 스스로도 ‘<퀴어>를 쓴 정확한 동기를 알 수 없다’는 버로스의 고백, 영화 <퀴어>는 그런 실마리들을 발견하고 풀어내, 리와 유진을 어쩌면 원작자가 의도한 바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으나 그의 무의식과는 포개질지도 모르는 새로운 인물들로 재구성하고 있다. ‘퀴토에서 산 단검을 갈러 가는 길에 눈물을 흘린’(p.23) 버로스의 경험을 영화는 나체 여성 이전에 배치된 꿈 안에 레퍼런스한다. 하지만 버로스가 유진을 바로 그 (리가 자신을 찌르는) 칼에 비유했던 반면, 영화에서 리의 꿈은 상징들을 경유해 유진의 얼굴로 수렴한다.
<퀴어>(2024)
윌리엄 리와 유진 앨러턴
<퀴어>의 베드신들은 리의 심리, 리와 유진의 관계 역학을 드러낸다. 전갈 목걸이를 한 젊은 남자는 리를 바라보며 옷을 벗지만, 리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옷을 벗는다. 섹스 후 남자가 ‘가봐야 한다’고 말하자 리는 주저하며 몰래 지갑에서 지폐를 꺼냈다가 다시 넣는다. 남자는 인사를 건넨 후 망설임 없이 방을 나간다. 서로 원해서 보낸 하룻밤인데 리는 상대방과 자신이 동등하지 않다고 느낀다. 첫눈에 반한 유진을 대할 때도 이런 감각은 늘 자리한다. 리는 유진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면서도, '유진은 나와의 관계를 원치 않는다'고 어느 정도 단정한다. ‘유진을 어루만지는 상상의 손길’은 이미 일부 단념한 와중 어쩌지 못하는 이끌림을 시각화한다. 이들이 실제로 닿는, 유진이 리에게 기꺼이 응하는 섹스들은 유진이 술이나 잠에 취해 있을 때 이루어진다. 두 사람의 첫 베드신엔 이들의 관계 역학이 묻어난다. 리는 유진을 올려다보며 오럴 섹스를 해주는 반면, 유진은 리를 내려다보며 손으로 애무한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유진이 담배를 물자 리가 성냥을 긋고, 유진이 리의 바지 지퍼를 천천히 열면, 얼어 있던 리가 끝까지 탄 성냥을 서둘러 끈다. 리는 늘 어쩔 줄 모르고, 먼저 스킨십을 주도하더라도 유진의 눈치를 보며 불붙인 성냥을 쥔 듯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다른 장면에서 유진은 리가 키스하려 하자 초연하게 응한다.(“If you insist.”) 이들이 키스한 직후 영화는 행위의 묘사를 생략하고 리가 기다리는 가운데 유진이 이를 닦는 숏으로 넘어간다. 리와 키스했기 때문에 이를 닦는 듯한 편집, 이는 아마도 리의 관점이다. 여행중 관계 후 “너도 이 모든 걸 조금은 즐기는 거지?”라고 물으며 흐느끼는 리와 “그럼요, 물론이죠.”라고 답하며 몽롱하게 미소짓는 유진, 영화는 그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해 맞닿은 시선을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마주놓인 얼굴들은 어쩐지 어긋나 있는 것 같다. ‘사랑을 나눈’ 후에 리는 늘 유진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하지만 유진은 둘만의 공간을 기피하거나 리의 손을 걷어내곤 한다.
허면 리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유진 앨러턴은 무엇을 느끼는가. 앞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대부분 미화된 엘리오의 기억이라고 적었다. 허나 영화에는 그 ‘대부분’에 해당하지 않는, 엘리오의 시선 사각지대에 머무는 올리버의 순간들이 있다. 올리버, 그리고 <본즈 앤 올>의 리, 이들은 일인칭의 소설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독립된 상대방의 자리를 얻는다. 약혼으로 인해 관계는 종료되지만 올리버는 엘리오의 기억으로 흡수되고, 자신의 요청으로 먹힌 리는 매런 안에 상징적으로 살아남는다. 리의 시야를 벗어나 사라지는 <퀴어>의 유진은 이들과도 구별되는 위치에 있다. 전지적 작가가 서술하는 원작의 유진은 리가 그 심리를 파악하는 자, 리의 반영이고 자기학대 수단이었던 반면, 영화 속 유진은 모를 존재다.
앞서 언급한 첫 베드신엔 다른 포착도 있다. 리는 유진이 침대 가에 놓아둔 안경을 저도모르게 떨어뜨리게 만드는 자다. 영화는 이렇듯 작은 언행들을 섬세하게 각색하고 추가하며 원작과 별개의 유진을 쉐이핑한다. 원작 속 여행 중에 찾은 해변에서 유진은 물에 들어가길 거부하지만, 영화에서 누워 있는 리를 물로 끌어들이는 건 유진이다. 원작에서 리가 춥지 않냐고 묻자 유진은 춥다고 답한 후 (자신도 추우므로, 마지못해) 곁으로 오라고 하지만, 영화에서 유진은 춥지 않음에도 리를 곁에 오게 해준다. 저절로 움직인 다리로 건드리는 안경, 미처 참지 못한 눈물 한 방울- 언어로 설명되지 않고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 찰나들을 영화는 포착한다. 유진이 리를 만날 때 곧잘 느끼는, “기분이 나쁜데도 그 이유를 꼬집을 수 없는”(p.47) 상태를 영화는 리의 탓이 아니라고 재해석한다. 리에 대한 유진의 맞사랑을 증명하려는 것이라기보단, 유진이 계속해서 낯선 감각을 느끼면서도 부정하고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육체이탈/불일치”로 투명해지는 느낌, 그것은 야헤를 흡입한 후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거울처럼 마주보는 리와 유진에게서도 관찰된다. 유진 역시 리에게 “Lee, I’m not queer, just disembodied.”라고 말한다. 이것은 리의 내면의 반사일까, 아니면 리가 겪은 것과 유사한- 유진의 모순된 심리일까. 시청각이 차단된 채 춤추는 그들을 담는 화면에는 다만 시각화된 촉각만이 남는다. 살이 엉겨붙고 유기체처럼 움직여, 이내 각자의 심장을 뱉어낸 두 사람은 심장 모양으로 웅크린 한 덩어리가 된다. 이 “talking without speaking”은 앞서 바다에 들어간 두 사람이 물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접촉해, 입을 열지 못하는 상태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이 직후 베드씬을 삽입했고, 그 다음으로는 유진이 리를 밀쳐내는 상황을 이은 바 있었다. 이 흐름처럼, 야헤에서 깨어난 리가 눈물을 흘리며 유진을 부르자 유진은 ‘자라’며 대화를 차단한다. 유진의 감은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리에게 닿지 못한다. 유진의 ‘목소리’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장면은 그의 시점숏도, 텔레파시 고백도, 어쩌면 그들의 초현실적 댄스조차 아니다. “네가 어젯밤 널 봤어야 했는데”라며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는 닥터 코터의 시선을 받아내는 얼굴. 늘 여유로운 미소만 짓던 그가 불안과 경계심을 내비치는 순간. 이것이야말로 <퀴어>가 원작을 초월해 짐작한 유진의 솔직한 ‘목소리’다. 영화는 무방비한 유진을 잠깐 화면에 묶어두었다가 이내 놓아준다. 정글에서의 모호한 분리 이후 등장하는 유진 혹은 유진에 관한 말들은 실제의 유진이 아니다.
본인조차 스스로를 완전히 모르는 자이기에, 유진은 무언가의 투영이 아닌 온전한 상대방이다. 그는 리의 환상이 건축한 폐쇄된 공간에서 리가 쏜 총에 맞아 죽고 나서조차 증발한다. 허나 좀처럼 파악되지 않던 상대방이 건넨 실제의 터치 하나, 그것만은 리에게 남는다. <퀴어>가 주목하는, ‘리가 죽을 때까지 살아남는’ 촉각은 오히려 성적인 의도가 그다지 없는 접촉에 의한 것이다. 금단현상 탓에 덜덜 떨던 리의 가장 못난 찰나를 감쌌던 유진의 다리. 남성들과 맺는 관계를 일종의 ‘중독’과 연결지었던 리의, (애초에 분리돼 있지 않았던)‘정신’과 ‘육체’를 이어주는 매개가 그 사소한 접촉이었던 게 아닐까. 화면에서 사라진 유진 안에 어떤 감각이 살아남아 있을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퀴어>의 엔딩은 리에게 있어서는 꼭 비극인 것만은 아니고, 유진에게는 열려 있다. “한 번 문을 열면 돌이킬 수 없어. 외면하는 수밖엔 없지. 그런데 그럴 이유가 있어?But why would you?”(-코터) 어떤 ‘인정’은 안락함에서 벗어나는, 불편함을 응시하는 행위다. 사랑과 욕망을 인지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꾸 괴롭히고 부정하게 되는 리와, 감정과 정체성을 외면하기에 편안하게 존재하는 동시에 ‘까닭없이 불편해지곤’ 하는 유진, 일치와 불일치 사이 간극에서 방황하는 두 인물을 탐구하는 <퀴어>는 사실 영원히 완결되지 않는 영화가 아닐까.
<퀴어>(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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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 같은 얼굴을
극장의 존폐 위기를 말하는 시대다. 코로나19의 영향을 영화계만 받은 건 아니지만, OTT 경쟁의 시대까지 겹치면서 영화계는 예상보다도 큰 타격을 입었다. CGV는 한동안 극장을 축소 운영했고, 상상마당 시네마를 비롯한 작은 영화관들도 잠시 문을 닫았으며, 서울극장조차 역사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영화의 주요 수입원인 극장이 휘청거리는데 영화계가 휘청거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좋은 성적이 기대되던 영화들조차 극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겼고, 어렵게 개봉한 영화들도 흥행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흐름이 반복되면서 제작 자체가 위축될 위기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악순환은 현재 진행형이다. 티켓 값에 포함되는 영화진흥위원회 발전기금 또한 고갈 위기라는 말이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긴급 좌담회가 열리고, 의견을 개진하고... 하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극장가의 반등이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와중에 CGV는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 코로나19 이후로만 몇 번째인지. 어려움은 알겠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변방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CGV 이 망할 것들아... 망하지 마... 제발.
그러던 중,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영화의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포스터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강진아 배우의 옆얼굴을 보는 순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아라는 배우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고 꼭 힘주어 말하고 싶다. 그를 자주 본 것은 아니다. 몇 페이지나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내가 제대로 본 것은 <소공녀>와 <빛과 철> 두 작품뿐이다. 그러나 볼 때마다 기억에 남았다. 잠깐 내려와 링거를 꽂으면서도 예의상의 친절함과 싹싹함을 잊지 않는 사회인 문영의 얼굴이.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다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여동생에게 참다 참다 한 마디 건네는 올케 소은의 얼굴이. 평생 문영과 소은으로 살아온 사람이나 지을 수 있는 표정과 아우라를 내뿜고 있어서. 억지로 아우라를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건 더 어려울 것 같은데 강진아라는 배우는 늘 멋지게 해냈다. 그래서 더 길게, 더 자주 보고 싶다 생각하던 배우였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그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영화다. 이 어려운 시국에 봄처럼 찾아와, 들꽃처럼 보는 이의 마음마저 다정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영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태어나길 잘했어' 말해주고 싶은 영화다.
<태어나길 잘했어>의 주인공은 배우 강진아가 연기하는 춘희. 걸어간 자리마다 척척한 물 발자국이 남을 만큼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을 앓고 있어, 수술을 받기 위해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어려서부터 얹혀 산 친척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서도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성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외로운 이들이 으레 그렇듯, 춘희의 성실도 바라보는 입장에서 속이 편하지만은 않다. 어느 정도 천성이기도 하겠지만, 기댈 데 없이 오래 살아온 이의 노력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일 마늘을 까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식구들이 모두 떠난 옛날 집에서도 어린 시절 쓰던 좁은 다락방에서 잠을 청하고, 그렇게 조용히 성실하게 살던 춘희의 일상에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춘희도 앞으로 나아간다.
<태어나길 잘했어>의 가장 큰 장점은 촘촘하게 설계된 인물들이다. 영화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까지 세심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세필화처럼 꼼꼼하게 그려냈다. 그 결과 생생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이 가득해서, 인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마음이 훈훈해진다. 잘 그려낸 인물은 그 자체로도 이야기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인물들 상당수가 이 각박한 세상을 훌륭하게 헤치고 살아가기엔 좀... 쉽지 않을 것 같은, 어딘가 어수룩하고 그래서 귀여운 사람들이다. 주황과 춘희 사이에서 오가는 연애의 스파크는 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풋풋해 사랑스러우며, 어느 날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는 과거의 춘희와 현재의 춘희를 함께 보고 있노라면 춘희라는 인물이 잘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발돋움해 왔음이 느껴져 뭉클하다. 자기도 넉넉하지 않으면서, 마주친 노숙자의 걸걸한 태도에 겁을 먹었으면서도 그 옆에 신발을 놓아두고 가는 춘희의 다정함 또한, 인물들 사이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 사이에서 춘희의 성장은 정말, 민달팽이처럼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궤적을 남기고 일어난다. 늘 속 없는 사람처럼 미소를 짓거나 덤덤하게 대답하던 춘희가 마침내 하고 싶었던 말을 또박또박 전하는 순간, 옆얼굴임에도 불을 품은 것처럼 빛나는 눈동자에서 형형한 힘이 느껴졌다. 그건 춘희라는 인물의 성장이자, 강진아라는 배우의 빛이었다.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이야기를 나아가게 할 정도로 인물이 힘이 있지만, 정작 사건은 크게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조금 산발적이다. 과거 춘희와 현재 춘희의 교감은 기대보다 훨씬 미진하게 진행되었고, 정작 개인적으로는 크게 기대하지 않은 주황과 춘희의 연애사가 훨씬 재미있었다. (둘의 연애는 정말 너무 하찮고 너무 귀엽다.) 사건이 조금 헛도는 느낌이라,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메시지가 의도만큼 힘 있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는 느꼈다.
아쉽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몇 번이나 손가락을 머뭇거렸다. 나는 왜 이 영화에 아쉬움을 느꼈으면서도 아쉽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가. 사람마다 취향과 기준이 다른데 좀 아쉬울 수도 있지, 그 사실을 왜 이렇게 안타까워하고 있는가. 이유가 뭘까. 이 마음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니, 이 영화의 진심에 공명하는 마음이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주목한 끝에 빚어진 영화라는, 이들을 안아주는 영화라는 진심이 분명하게 전해졌던 것이다. 이 영화만이 가진 힘은 인물을 촘촘히 설계했다는 것도, 배우들이 연기를 감탄 나오게 잘했다는 것도 (강진아 배우만 언급했지만 홍상표 배우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의 호연도 대단히 빛나는 영화다)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을 향한 애정에 있었다.
주황과 춘희가 처음 만난 모임처럼, 어수룩하고 상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신경림의 시 한 구절처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다정하게 보듬는 것. 그게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와 관객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민달팽이 점액처럼, 땀 찬 손처럼 끈끈하게.
모두가 오래 버텨온, 버틸 힘이 점점 사라져 가는, 어렵다고 말하는 시대다. 영화들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어려운 때에, 봄꽃 같은 이 영화의 얼굴을 본다. 독립영화의 면면을 이뤄온 배우들의 든든한 얼굴을, 다정한 마음을 가득 담아 영화를 만든 제작진의 이름을, 영화 속 펼쳐지는 배경의 나지막하고 다정한 길거리를.
망하지 않을 거다. 힘들고 모자란 대로 끈끈한 손을 맞잡는 이런 영화가 있는 한. 이 영화 정말, 태어나길 잘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봄꽃 같은 얼굴을 마주하고 행복해지길. 태어나길 잘했다는 말을 다정하고 질척하게, 더 많이 주고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CineLab'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영화를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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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9월 1주 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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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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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오브 도그] 끝장리뷰(ENG) | 씻지 않는 형, 청결한 동생 | 말과 차 | 기타와 자동피아노 | 수색자 오마주 | 동성애자 형, 이성애자 동생 | 제목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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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2021)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과거 vs 현재(feat. 수색자)
Chapter 2 필의 동성애, 피터의 살인
00:00 은사자상 수상
02:02 대결 구도들
04:44 수색자 오마주
05:59 기타와 자동피아노
06:37 꽃을 태운 이유
07:44 필의 동성애
09:31 피터의 아버지 살해
12:19 별점 및 한 줄 평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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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걸어도 걸어도> 재개봉 메인 예고편
료타’와 가족들은 십여 년 전 바다에 빠진 소년을 구하려다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의 제사를 위해 매 여름 고향 집에 모인다 ‘준페이’가 목숨을 구해준 ‘요시오’ 역시 기일마다 그들의 집을 찾아오고 그런 ‘요시오’를 놓아주자는 ‘료타’의 말과 함께 가족들은 묻어뒀던 속마음을 꺼내 놓는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재개봉: 2025년 5월 21일 -등급: 전체관람가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 #고레에다히로카즈 #걸어도걸어도 #5월영화 #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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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1994년 홍콩,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술집을 찾은 경찰 223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술집에 들어온 금발머리의 마약밀매상
"그녀가 떠난 후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고 있는 경찰 663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쥔 단골집 점원 페이
네 사람이 만들어낸 두 개의 로맨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