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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두 편 - 코코, 모아나
내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두 편 - 코코, 모아나
개봉일: 2018. 1. 11. 목
관람일: 2020. 11. 29. 일
가족들 모두가 반대하지만 오로지 뮤지션만을 꿈꾸는 소년 미겔 리베라는 '망자의 날' 축제를 위해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 델라크루즈의 기타에 손을 댔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이미 사망한 가족들의 축복을 받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미겔은 델라크루즈의 친구라 주장하는 헥토르와 함께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과정을 그린 픽사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일단 정말 재미있게 봤다. 무려 인생 영화로 꼽아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영화였고,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픽사의 애니메이션이었다. 우선 영화의 메시지부터 칭찬을 해주고 싶은데, 최근에 개봉한 [소울]이 철저히 개인을 다루고 있었다면 [코코]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다루고 있었다. 언제나 각자 다른 꿈과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모두 존중해 줘야 한다는, 그러니까 '가족 중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인 '코코'부터가 주인공이 아닌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진외조모인 것부터가 이러한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하고 있고, 가족들 머릿속에서 잊혀지면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 또한 이러한 메시지에 더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시지 외에도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스토리라인 또한 훌륭했다. 주인공 미겔이 자신의 꿈을 향해 도달하고, 진정한 자신의 가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성
장물로서는 정말 완벽하다는 표현을 쓰게 만든다. 여기에 끝내주는 OST까지 깔아놓으니 환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Remember Me'는 충분히 누군가의 인생곡이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메시지와도 잘 어울리고, 클라이맥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데 일조했다 보니 더더욱 애착이 가는 곡이다. 심지어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화려한 비주얼까지 들어가 버리니 대체 단점이 무엇인지 의문이 갈 지경이다. 특히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는 정말 감탄이 나왔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애니메이터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역대급이었다고 본다. 그냥 모든 면이 다 훌륭했고 현재까지 필자에겐 인생 영화임은 물론이요, 픽사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개봉일: 2017. 1. 12. 목
관람일: 2020. 12. 27. 일
반인반신 마우이가 테 피티의 심장을 훔치고 달아난 후 몇 십 년 뒤, 항상 평화로울 줄 알았던 모투누이 섬에 저주가 쓰이게 되고 바다의 선택을 받은 소녀 모아나는 섬을 지키기 위해 먼바다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선 마우이의 도움이 필수적으로 필요했고, 결국 모아나는 마우이를 찾아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놓고 모투누이 섬을 구하려는 과정을 그린 디즈니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코코]와 마찬가지로 정말 재미있게 봤다. 기본적으로 [코코]처럼 스토리, 메시지, 캐릭터, 음악, 연출 모두 훌륭했다. 특히 이 영화의 메시지인 '진정한 자신을 찾으라.'는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중에서 모투누이의 족장이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한 모아나는 자신이 원했던 모험을 마무리했고, 마우이는 인간들에게 모든 걸 바치는 것을 그만두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등 여러모로 뜻깊은 메시지였다고 본다. 이 외에도 주인공의 고난과 성장을 잘 담아낸 각본도 정말 칭찬받아야 마땅하고, 이를 청각적으로 드러낸 음악 또한 매우 끝내줬다. 특히 모아나의 대표곡인 'How Far I'll Go'는 이 영화에서 총 3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소름 돋는 건 둘째 치더라도 곡의 내용이 조금씩 변경이 되며 모아나의 내면이 어떻게성장하였는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성장물로서 봐도 훌륭하지만 이 영화는 [겨울왕국]과 마찬가지로 디즈니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솔직히 기존의 디즈니 로맨스 영화는 개인적으로 정말 별로였다. 추억 보정 때문에 심한 말은 하기 힘들지만 그저 왕자에게만 의지한 채, 수동적으로만 묘사되는 디즈니 공주들이 썩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러나 [겨울왕국] 1편을 시작으로 [모아나]도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데 성공하며 디즈니의 긍정적인 변화가 정말 좋게 와닿았다. 캐릭터의 매력도 더 살고, 페미니즘적 관점으로도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비주얼적으로도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고, 연출 또한 매우 우수했기 때문에 [모아나]를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다만 후반부의 급전개는 좀 아쉬웠다. 작중에서 모아나와 마우이가 서로 다투다 헤어지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우이가 다시 나타나 모아나를 도와준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마우이의 심리 묘사가 나오지 않는 탓에 후반부에 몰입감이 살짝 깨졌다. 물론 이 외에는 다 마음에 들었지만.
*본 콘텐츠는 네이버 블로거 콩까기의 종이씹기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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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코 오지 않을 완벽한 해방에 대한 동경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최우수 연기상을, 불과 며칠 전 12월 10일 유럽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2023년 새틀라이트 어워즈 2개 부문(여우주연상, 국제장편영화상) 후보를 비롯해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후보에 노미네이트된 영화 코르사주 리뷰입니다. 바이에른 공국의 둘째로 태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가 되어 당대 사회에서 빛나는 외모로 칭송받았고 지금도 유럽에서는 시씨라는 별명과 함께 아름다운 황족으로 기억되는 황후 엘리자베트를 그립니다. 여성미를 뜻하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숨 막힐 듯한 황실의 통제를 벗어나고 싶어 했던 마흔 살이 된 그녀의 삶을 매력적인 연기와 풍부한 감정선으로 관객에게 표출해냅니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여러 부분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도 이어지는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에겐 뜻깊은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되네요. :)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코르사주 정보 및 예고편
당신은 그걸 대표하는 얼굴이 되면 되는 거요
시놉시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1킬로의 머리를 이고 우아하게 앉아있는 것뿐이다. 갑갑한 황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엘리자베트는 자유를 찾아 자신을 조이던 코르사주를 벗고 스스로의 초상을 완성하려 한다.
예고편│Trailer
원제: Corsage│감독·각본: 마리 크로이처
출연진: 비키 크립스, 플로리안 테히트마이스터, 카타리나 로렌츠, 마누엘 루비, 아론 프리즈, 로자 해야이 외 多
장르: 드라마, 전기, 역사│상영 시간: 114분
국가: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등급: 15세 관람가
평점: 평론가 7.2, 왓챠피디아 예상 3.7, 로튼토마토 신선도 87%, IMDB 6.8, 메타 스코어 80점
개봉일: 2022년 12월 21일
수상 이력: 75회 칸영화제 배우상(주목할만한 시선_비키 크립스), 70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TVE-어나더 룩 상-특별언급 (마리 크로이처), 58회 시카고국제영화제 실버휴고 퍼포먼스상 (비키 크립스), 35회 유럽영화상 수상유러피안 여우주연상 (비키 크립스), 66회 런던국제영화제 작품상 (마리 크로이처)
# 영화 코르사주 후기
우리는 대표적인 인물의 삶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전체적으로 ‘마리 앙투네트’, ‘재키’, ‘스펜서’등과 같은 분위기를 느끼지만 어떻게 보면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는 많이 알려진 황후 엘리자베스 또는 씨시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국내의 미비한 인지도를 생각하면 일반 대중에게 매력을 어필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미를 강제적으로 옥죄는 장치로 알 수 있는 뉘앙스처럼 시대의 어긋난 생각과 행동이 어떻게 여성들을 비상식적으로 학대했고 실패했는지 쉽게 알 수 있기에 흥미를 가지게 합니다. 부가적인 여왕의 타이틀에 대한 설명은 제공되지 않지만, 공식 석상에 나가기 전 코르셋을 한없이 단단히 조이고 허리를 재기 전 물속에서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체크하는 장면은 얼마나 많은 중압감이 그들을 억누르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들려 케이지에 갇힌 여성들을 보며 결코 오지 않을 해방에 대한 동경과 맞닿은 안타까움, 우울함은 완연하게 갈라진 틈에 놓인 그녀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게 관객들을 이끌어갑니다.
감상을 하다 보면 연출을 맡은 마리 크로이처 감독이 한 인물에 대한 전기나 시대극의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다기보다 19세기에도, 그리고 21세기에도 아름다움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자유와 해방에 대한 여성 서사임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름다움으로 일관된 여왕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억압을 일부 받아들이지만, 끝없이 벗어나려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행동들은 쓸쓸한 왕실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마음을 대변해 줍니다. 결국 자신을 평생 압박한 코르셋과 1kg가 넘는 가발, 거추장스러움에도 품위라 여기는 황제의 수염, 썩을 때로 썩은 이빨을 틀니로 가리면서도 끝없이 초콜릿을 먹는 사촌 루드비히 2세까지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왕조에서 느꼈을 부패한 권위와 허울뿐인 위용은 그러한 인내에도 불가피한 도피를 행하게 만듭니다. 자신을 짓누른 겉만 화려한 궁전 실내가 미니어처처럼 바뀌는 시점은 마음속 한계가 임박했음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 속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유명인들의 정신적 괴로움과 다를 바 없는 누군가 간절히 원했을지 모를 호화로운 생활과 하늘 아래 있는 최고의 귄위에 뒤따르는 고통이 참으로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시대상 속 개념과 모습을 떠나 아름다움만을 외치는 행태가 현재에도 이어진다는 묘한 공명이 나아지지 않은 정형화된 초상화에 안타까움이 묻어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마지막 온몸을 내던진 탈출의 짜릿한 해방감은 많은 여성 관객에게 큰 공감과 질문을 던질 것 같습니다. 더불어 비키 크립스는 작품 내 인용된 최초의 활동사진 속 엘리자베트처럼 자신의 캔버스에 완벽히 그를 담아 속박을 벗어나려는 한 여인의 몸부림을 완벽히 소화하며 여운을 남겨주죠. 다만, 여타 유명 인물들보다 낮은 국내 인지도에 세세한 설명이 없다는 점에서 관람 전 잠깐의 검색을 통해 파악하면 더욱 좋은 관람이 되리라고 생각되네요. :)
한 줄 평 : 정형화된 초상화의 해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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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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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핵심 사건은 엄마의 죽음과 뫼르소의 살인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해변에서 동료와 갈등 관계에 있는 한 아랍인 남성을 총으로 쏘는데 재판에서 핵심이 되는 건 살인 행위가 아니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대체로 시큰둥한 태도였고, 바로 다음 날 애인을 만나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눴다. 이는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를 만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된다.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사람을 죽이고도 남는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카뮈가 고발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부모자식 관계를 비롯한 일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권태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이방인》에는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죄’로 여기고 응징한다. 카뮈의 말마따나 ‘부조리한’ 세상이다.
영화 〈썬다운〉은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다. 런던에서 거대 육류사업을 하는 어머니를 둔 닐과 그의 동생 앨리스 그리고 앨리스의 두 자녀가 멕시코의 아카풀코로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고급 호텔과 아름다운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던 그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앨리스와 그 자식들은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닐도 그에 동참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닐은 공항에서 여권을 놓고 왔다며 다음 비행기로 런던에 가겠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그는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지독히 평온한 표정으로 허름한 호텔로 가 다시 휴가를 즐기기 시작하는 닐. 런던으로 돌아간 앨리스는 계속 그에게 전화하여 여권은 찾았는지, 언제 비행기에 탈 것인지를 묻는다. 닐은 계속 거짓말하며 상황을 모면한다. 멕시코인 여자친구를 사귀기까지 한다.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 듯한, 그러나 동시에 자유가 깃든 닐의 표정이 압권이다. 닐의 얼굴은 해방과 자유가 반드시 환희를 동반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닐이 보여주듯, 해방과 자유는 ‘오랫동안 갈망하던 것’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 평온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결국 폭발한 앨리스는 직접 멕시코로 닐을 찾으러 오고 그에게서 적당한 연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회사 경영권과 상속권을 포기한다는 서명을 받는다. 사실 이는 앨리스의 요구가 아닌 닐의 제안이다. ‘상식’의 세계에 속한 앨리스는 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닐의 제안에 ‘만족’한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닐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던 택시기사가 앨리스를 강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닐은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그가 앨리스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살인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그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은 그의 범죄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주요 ‘근거’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쓰러진 닐은 암이 발병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듯 홀로 병원을 걸어 나온다. 닐은 돈도, 가족도, 여자친구도 버리고 떠난다. 여전히 예의 그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그러나 이제는 자유를 갈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표정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점에서) 동시에 소극적이기도 한(모든 것에서 그저 도망칠 뿐이라는 점에서) 닐의 저항은 일상의 부조리를 인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닐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 듯 다르다. 바닷가에서 친구와 신경전을 벌이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아랍인이 지니고 다니는 칼에 비친 태양 빛에 이끌려 그를 살해한다. 《이방인》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논쟁적인 장면이다. 〈썬다운〉에도 뫼르소가 보았을 태양 빛을 담은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러나 그 태양빛은 닐을 살인하게 하지 않는다. 닐의 자유는 누군가를 죽일 필요가 없는 자유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였음에도 엄마의 장례식을 트집 잡는 사회에 부조리를 느낀다.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의식의 깊이를 더해가며 자유에 도달한다. 여기서 아랍인은 그의 깨달음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닐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도구화하지 않는다. 내내 계급적 조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닐이 가진 재산에 비해 그가 연금으로 요구하는 돈은 ‘소탈’해 보이기까지 하다. 닐의 자유에는 《이방인》에서 도드라지는 여성혐오도 없다. 멕시코 출신의 미셸 프랑코가 〈썬다운〉에서 그린 자유는 분명 《이방인》의 자유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뫼르소, 닐…. 카뮈가 쏘아 올린 자유의 계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내가 센 것이 맞다면 총 여섯 번이다.
**카멜 다우드는 소설 《뫼르소, 살인사건》(문예출판사, 2017)에서 아랍인의 관점으로 《이방인》을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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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시리즈 순위
분노의 질주 시리즈 순위
#10 : 외전 홉스 & 쇼 (Fast & Furious Presents: Hobbs & Shaw, 2019)
<데드풀2>의 데이빗 레이치는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타뎀의 출연작에 대한 메타유머를 활용하고, <007 시리즈>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다. 런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모아로 공간적 배경을 옮겨 다니고, 007의 국제 범죄조직'스펙터'에서 영감을 받은 '에테온'을 등장시킨다. 또 런던 리든홀 활강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의 부르즈 할리파 장면을 오마주했다.
<홉스 & 쇼>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라기보다는 '버디 액션 코미디'에 가깝다. 또 이야기가 허술한 것은 이해한다 손치더라도 액션조차 히어로영화스럽다. 또 '해티 쇼(바네사 커비)'는 등장할 때마다 빛나지만, 블랙 슈퍼맨 '브릭스턴(이드리스 엘바)'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진다.
#9: 2편 패스트 & 퓨리어스 2 (2 Fast 2 Furious, 2003)
전편의 답습, 마이애미로 이사 간 브라이언은 새로운 파트너 로만 피어스(타이리스 깁슨)와 콤비를 이루지만, 빈 디젤의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테즈(루다크리스)가 코믹하게 등장한다.
1시간 반 남짓한 2편은 드라마를 듬뿍 덜어낸 대신 존 싱글턴은 '스트리트 레이싱'에만 집중한다. 문제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 속도감은 있지만 우스꽝스럽다. 아무리 저예산 B급 액션 영화라고 해도 동선조차 조잡하다. 이상 2편은 1편과의 연계성도 거의 없고, 엉성한 캐릭터와 부실한 볼거리, 뼈대만 남은 앙상한 스토리라인이 아킬레스건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로만과 테즈 콤비를 득템했다.
#8 : 3편 도쿄 드리프트 (Fast And The Furious: Tokyo Drift, 2006)
그야말로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인 ‘스트리트 레이싱’에만 올인한 3편이다. 특히 ‘드리프트’의 속도감과 긴박감을 살리기 위해 현역 드라이버 중심으로 구성된 스턴트 스태프들이 온몸을 불사른다. 이쯤 되면 <트리플 X>와 <분노의 질주>를 제작한 닐 오비츠의 성향이 나온다. 플롯, 캐릭터, 드라마, 리듬은 약하지만, 속도감과 볼거리만큼은 끝내준다. 설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설득력을 갖춘 캐릭터가 없다. 이것이 패착이다.
새로 합류한 저스틴 린 감독은 시리즈의 전통인 '길거리 경주'와 '자동차 문화', '범죄' 등 향후 프랜차이즈를 구성할 방향성을 대폭 수정한다. 바로 '다민족 캐스트'를 강조하고, '해외 로케이션'을 적극 반영할 준비를 이미 3편에서 끝마쳤다. 향후 블록버스터로 나아갈 기초공사를 마친 셈이다.
#7 : 8편 더 익스트림 (The Fate Of The Furious, 2017)
프랜차이즈를 책임지는 작가 크리스 모건과 범죄영화에 특화된 F. 게리 그레이는 사망한 폴 워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분노의 질주>만의 포뮬러(공식)을 깨버린다. 리더 돔 토레토(빈 디젤)이 자신의 패밀리를 배신하는 영리한 조치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한을 살해한 데커드 쇼(제이슨 스테이섬)에게 별다른 속죄 없이 면죄부를 부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특유의 가족드라마가 깨졌지만, 홉스(드웨인 존슨)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워커의 부재로 말미암아 실종될 버디 코미디를 되살렸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캐릭터쇼와 볼거리가 다양하고 액션 규모를 키운 반면에 메인 빌런인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
5편부터 그 조짐이 보였지만, 액션 스타일이 007시리즈를 자꾸만 연상시킨다.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분)가 차량을 비스듬히 기울여 운전하는 장면은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설원의 카 액션은 <007 다이 어나더 데이>를, 최종 병기로 잠수함을 활용한 클라이맥스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007 언리미티드>을 떠올리게 한다.
#6 :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F9: The Fast Saga, 2021)
유니버설은 ‘더 패스트 사가(The Fast Saga)’로 명명된 지난 시리즈를 정리하고 후속작(F10, F11)에 쓰일 복선을 미리 깔아놓는다. 그래서 9편은 드라마 비중이 상당하다. 또, 5편에서 '드웨인 존슨'을, 6편에서 '제이슨 스타뎀' 같은 유명 배우를 추가해서 얻은 효과를 존 시나를 통해 노리고 있다. 그래서 토레토의 가정사부터 3편<도쿄 드리프트>의 등장인물 백스토리까지 캐릭터 개발에 공을 들인다. 동창회처럼 시리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총집결한다.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터무니없는 액션과 캐릭터 쇼로 끊임없이 팬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존 시나를 추가하는 바람에 페이스가 느려졌다. 가족 드라마를 그리기 위해 긴박감과 박진감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 얼개가 탄탄해진 것도 아니다. 이 시리즈는 불가능한 것이 없도록 스스로 세계관을 바꿔왔다. 이제 이 전략이 한계 지점에 다다른 것 같아 불안하다.
#5 : 4편 더 오리지널 (Fast & Furious, 2009)
4편은 사실상 리부트에 가까운 '기능적인 영화'다. 저스틴 린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 모건은 폴 워커와 빈 디젤을 다시 등장시키며 1편을 리뉴얼한다. 초기 영화(1·2·3)의 스트리트 레이싱 드라마와 후기 영화(5·6·7)의 액션 블록버스터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이런 불균질한 영화의 톤이 몰입을 방해한다. 그리고 차량 투척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액션이 별 특색이 없다.
1편의 전개와 구도, 캐릭터를 동어반복한지라 작품 자체의 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레티(미셀 로드니게스)에 대한 부주의한 대접은 <분노의 질주> 특유의 가족 드라마를 방해한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이후부터 저스틴 린은 캐릭터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유일한 장점은 ‘한(성강)’을 도미닉의 친구로 등장시켜 외전에 가깝던 3편을 시리즈의 세계관에 편입시켰다는 정도다.
#4 : 1편 분노의 질주 (The Fast And The Furious, 2001)
이 저예산 범죄영화가 이후에 21세기 초 가장 중요한 영화 프랜차이즈 중 하나가 될 것을 알았을까?1편의 줄거리와 캐릭터, 설정은 <폭풍 속으로 (1991)>을 참조했다.
1편의 진정한 가치는 ‘길거리 레이싱’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세운 점이다. 먼 훗날, 탱크와 핵잠수함, 헬기, 우주선, 슈퍼 카들을 고려하면 스케일은 소박하고 싱겁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아날로그 액션만큼은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순수하고, 날 것 그대로의 쾌감이 살아있다.
#3 : 6편 더 맥시멈 (Fast And Furious 6, 2013)
레티 오티즈(미셸 로드리게스)를 복귀시키기 위해 기억상실증으로 엉성하게 처리한 것처럼 이 영화는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다. 이제 질주는 뒷전이고, 고급차를 마구마구 ‘파괴’하는 분노에 집중한다. 게다가 이번 빌런도 '도플갱어'다. '팀 돔과 팀 오웬의 단체 대결'이 줄거리 전부이고, 슈퍼 카(심지어 탱크, 수송기까지도)들을 즐비하게 등장시키고 그것을 아낌없이 때려 부순다.
지젤(갯 가돗), 엘레나 네베즈(엘사 파타키)이 퇴장하거나 어정쩡해졌지만, 이 재밌는 난장판을 통해 도미닉 일당은 동료애를 넘어서서 '가족애'로 승화되고, 쿠키 영상으로 3편(도쿄 드리프트)와의 연결 고리도 확보한다. 007시리즈를 본받아 프랜차이즈는 '저예산 레이싱 영화'에서 '첩보 블록버스터'로 체급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2 : 7편 더 세븐 (Furious 7, 2015)
7편은 촬영 중 사망한 폴 워커에 대한 진심 어린 송사와 더 많은 캐릭터와 물량의 인해전술로 밀어부친다. 아제르바이잔 오프닝부터 관객의 시선을 뗄 수 없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액션 시퀀스를 쏟아 붓는다. 제이슨 스타뎀, 토니 쟈, 커트 러셀, 론다 라우지 같은 액션배우 올스타를 동원하고, 관객들이 지루할만하면 중력의 법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물량공세가 시청각을 장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질주 7>은 뒷골목 레이싱에서 벗어나 판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슈퍼 카들의 무한질주'라는 초심을 놓지 않는다.
특수한 프로그램 '신의 눈'을 가진 테러리스트 '제케이드(자이먼 혼수)'를 찾기 위해 '데커드 쇼(제이슨 스타뎀)'을 만났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쇼와의 대결로 치닫는다. 7편부터 시리즈의 스토리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개별 장면의 뛰어난 완성도에 비해 전체적인 맥락과 개연성은 희생되었지만, 도미닉 패밀리의 캐릭터 드라마만큼은 확실히 챙겼다는 점에서 제임스 완으로써도 쉽지 않은 임무를 훌륭히 처리했다.
#1 : 5편 언리미티드 (Fast Five, 2011)
5편은 프랜차이즈의 '포뮬라(공식)'을 확립된 작품이다. 첫째, <분노의 질주>는 뒷골목 레이싱에서 벗어나 판을 크게 키운다. 둘째, 홉스(드웨인 존슨)가 합류하면서 도미닉 일당의 윤곽이 확립된다. 셋째, 적과 맞써기 위해 '가족' 같은 일당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질주한다가 줄거리의 전부다.
넷째, 레이스 자체는 볼거리중 하나로 축소되고, 대신에 여타 장르(5편은 하이스트 장르, 6편은 첩보물, 외전은 버디물, 9편은 SF물)를 도입한다. 그밖에 5편의 금고 장면 이후 탱크, 비행기, 드론, 헬기, 잠수함, 우주선을 추가되면서 테스토스테론 연료를 새로이 주입한다. 이로써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현대 액션의 총아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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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viction of Everyone, 영화 <브이 포 벤데타>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해 주던 친구가 있었다. 영화 초반에 나오던 독백을 적어서 편지에 적어주면서. 추천받으면 제때 보지 않는 이상한 습관이라도 있었던 건지, 한참이 지나고 이제서야 봤다. 이비의 목소리로 Remember, Remember the 5th of November로 시작되는 대사를 들으면서 그 친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라고 했을까 궁금해졌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그 친구를 마음 한 켠에 두고 시작되었다.
유쾌한 사이다 영화다. 이상적인 전개지만 배경은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미래의 국가이지만 익숙하다. 역사는 패션보다는 좀 더 큰 주기로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리라. 세계대전과 테러, 질병을 겪으면서 등장한 전체주의 국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질병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2차 세계대전은 강렬하며, 생체실험은 저 멀리 일제강점기까지 떠오르게 한다. 히틀러를 떠올리게 만든 것 같은 미래엔 서틀러가 있고 언론을 포함해 수많은 통제가 있다. 늦은 밤엔 통금이 있고, 하나가 되기 위해 다양성은 배척된다. 서틀러와 크리디는 일부러 질병을 퍼뜨려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넣었다. 생화학무기를 만들겠다던 생체실험은 본래 목적 대신 유일무이한 질병을 만들고 치료제를 갖고 있다가 적시에 풀고 이익을 얻는데 쓰였다. 얼마나 짜릿했을까. 온 나라를 내 손에 넣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기분이란.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 조금씩 틈이 생기는 게 보일 때마다. 그래서 자꾸 통제하게 되었겠지.
사람들은 서틀러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불만은 있지만 그들에게 서틀러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차악이다. 다시 고통받고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도 그냥 듣고 있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서 그런대로 산다. 때 되면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TV도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허전하다면 그건 사람들의 어딘가 결핍된 표정 때문일 것이다. 미술과 음악 등 예술은 물론 음식까지 제한했다니 서틀러는 정말 고약하기 짝이 없다. 예술은 자유롭게 자신을 비판하는 게 싫어서 그랬던 모양이고, 본인 입에만 넣으라고 있는 버터가 아닌데.
그때 나타난 게 브이다. 이비를 포함해 사람들이 가면을 쓴 그를 마음에 담게 된 건 그는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놓고 이 나라는 뭔가가 제대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권력자들이 가장 큰 잘못을 했지만, 사실은 거울 속에 비치는 당신들이 가만히 있었던 걸 되돌아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놀라워서 귀 기울인 건 아닐까. 당장 나와 함께 하자고 하지 않고 1년 후에 함께 하자는 그 말에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궤변론자나 과대 망상가라고 평가받지 않게 되는 건 정말 세상이 문제가 있고,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을 때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억압적으로 느껴질수록 브이에게 설득력이 생긴다. 누군가에겐 그럴듯하고, 누군가에겐 헛소리가 되어버릴 땐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이상하지, 하나가 되자고 할수록 하나같이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게.
브이의 '11.5 선언'은 묘하게 교훈적이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밉상일 때도 있는데 이상하게 수긍이 가는 건 그는 사람들과 다르게 도전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그 방송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소를 시원하게 폭파하면서 1812 서곡을 들려주었고, 언론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정규 방송을 차단하고 비상 방송을 장악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였다. 방송국에서는 황급히 그를 검거한 것처럼 내보냈지만 이미 사람들은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내년 11월 5일을 기대하게 만든 것이다. 1년 후 11월 5일이 다 되어선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렸다. 모든 집에 자신과 똑같은 가면과 망토를 선물하면서 사람들은 거리에 나올 준비가 되었다. 그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한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났을 때, 400여 년 전 가이 포크스의 생각처럼 시원하게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렸다.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해 준 건물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잃었을 때 쓸모를 다 한다. 국가나 정부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이쯤 되면 다가오는 느낌을 알다마다. 뭔가 술술 풀리는 게 좋으면서도 불편하다. 음악과 함께 펑펑 터지는 건물에 하늘 위를 수놓는 폭죽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러면서도 그 광경이 잠잠해지면 이비가 처음 브이를 만났을 때 경계했던 생각이 그대로 소환된다. 이상은 어디에나,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었지만 왜 우리의 현실은 늘 그러지 못했을까? 한바탕씩 뒤집어지면 이제는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다시 사람들은 무기력해질 것이고 누군가는 권력이나 이익을 위해 기상천외한 일을 벌일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신념(이데아, Idea)에 답이 있다고 하는 건 안도해야 할 부분인지 모르겠다. 개인의 마음속 신념은 절대적일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에 신념은 너무나 다른 의미다. 각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거나 빼앗기까지 하며, 그럼에도 그 신념은 끈질기게 살아있다. 인간이 때론 신념의 숙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내가 잘 사는 것과 우리가 잘 사는 방향은 다를 때가 많다. 국가나 정부가 있는 한 그 부분이 충돌하는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나 정부 없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혼란과 변화 속에서 안정을 찾고 싶어 할 테니까. 둘 다 우리를 공포와 무기력에 잠식하게 만들기는 충분하다.
또 다른 불안감의 원인은 브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후에 브이처럼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해 줄 존재가 있을까? 브이는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불렀지만 영화 속의 그는 적잖이 멋진 영웅이었다. 위트가 넘친다. 문학은 셰익스피어, 영화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좋아하며, 총보다 칼을 선호하고, 재즈를 즐겨 듣고, 자신만의 갤러리를 갖췄다. 심지어 앞치마를 곱게 두르곤 아침엔 몰래 구한 버터에 계란 넣은 토스트도 만들어주지 않나. 이비에겐 첫 만남부터 핑거맨에게 붙잡혀 있는 걸 구해줬을뿐더러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만큼의 온갖 V를 가져와 언어유희를 펼쳤다.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전신이 불타 있는 걸 알고도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면 왜일까? 흔들리지 않는 신념 혹은 그 신념을 내뱉는 깊은 목소리의 덕일까? 부정하지 말자. 브이는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만큼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팬텀이 크리스틴에게 한 것처럼 이비에게 소유욕을 보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물론 브이 역시 팬텀 못지않게 몹쓸 구석도 많다. 애초에 이비를 이 모든 사단에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처음 만났는데 재판소를 터뜨리는 그 자리에 데려가서 공범으로 만들지 않았나. 이비가 일하고 있는 BTN 방송국에서 때마침 '11.5 선언'을 하면서 건물을 장악했고, 이비가 그를 구해주자 예상에 없던 전개인지 고민을 하다가 자신의 집에 데려와 안전하게 내년 11월 5일까지 나갈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 이비의 신분증을 제 것처럼 훔쳐서 자신의 복수에 이용했고 두려움을 없애주겠다는 이유로 그녀를 고문하고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기에 고문을 해줬어. 머리를 밀고, 물에 집어넣었지. 왜 그렇게 오래 고문했냐고? 네가 굴복하지 않았잖아. 용서를 바라진 않지만 넌 덕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되었다면서. 가만 보면 상당히 뻔뻔하다.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 건 고문 장면 이후에 이비가 브이를 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둘 사이에 애틋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좀 더 시간을 할애하며 전달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제삼자가 보기엔 방금 전까지 자신을 고문했던 브이를 이비가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에라도 걸린 것처럼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물론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초반부터 이비는 모두가 11월 5일을 기억하지만, 자신은 한 남자, 브이를 기억하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한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사랑도 깊어졌다. 심지어 두려운 게 없다던 브이는 막판에 이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들은 통했다.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이 확고한, 단단한 존재가 되었다. 11월 5일 전날 밤 그들은 마지막으로 Cry me a river을 듣고 춤을 추었다. 사랑을 느낄 수 없으리라고 했던 브이에게 이비는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그렇다고 브이가 이비를 고문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 둘이 애초에 결사단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넘치던 증오가 갑자기 진정된다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사랑을 전하려 했던 발레리의 편지가 아니었으면 이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장담할 수도 없다. 둘이 애틋해지는 걸 보고 함께 100퍼센트 애틋해지진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브이가 이비를 무척 아꼈기 때문에 고문까지 했겠다 싶다. 브이는 왜 그녀에게 빠져들었을까. 그가 우연을 믿지 않아서는 아닐까. 브이로 현란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이 이비(Evey)라는 이름에 v가 들어가서? 혹은 E-V라고 생각하니 너무 인연처럼 느껴져서? 마침 재판소를 터뜨리러 가는 저녁에 Eve라는 뜻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혹은 그녀에게 고마워서는 아닐까? 마침 방송국에서 위기의 순간 이비가 자신을 구해줘서?
혹은 얄팍하게도 그의 곁을 먼저 떠나서는 아닐까. 브이가 복수를 위해 그녀를 미끼로 썼을 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도망쳐 일하던 방송국의 PD 고든에게 찾아갔다. 고든은 묘하게 브이와 닮았다. 재즈를 틀은 채로 계란 넣은 토스트를 해주고, 집에 자신만의 위험한 갤러리가 있다. 그가 자신이 브이라고 장난칠 때, 왠지 그게 장난이 아닌 것도 같았다. 좀 더 평범하고 힘이 세지 않다고 해서 그가 브이와 다른 것은 아니다. 고든은 간판 프로그램의 PD고 무슨 바람인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풍자적인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브이에게 고든과 그의 결정적 차이점은 이비가 고든의 집에서는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단 점은 아닌가? 고든이 프로그램 내용으로 붙잡혀 가고 나서 도망치던 이비를 붙잡아 고문을 시작한 걸 보면, 지극히 공적인 이유만으로 고문을 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궁금했겠지. 그에게서 도망치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지 않을지 확인하고 싶었을 갓이다.
Ideas are bulletproof.(My turn!)
고문 후에 이비가 브이를 떠난 걸 보면 브이가 준 교훈과 별개로 이비가 다행히(?) 완전히 그를 용서한 건 아닌 듯싶다. 이비와 브이는 복수라는 지점에서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복수를 하는데 피를 흘려야 하는가. 이비는 자신의 온 가족을 이 나라에 빼앗기고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영화를 보고도 복수에 눈이 멀어 외면당한 메르세데스가 안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만약 브이가 복수할 대상이 마침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때도 우리는 지금처럼 브이를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가 복수할 대상들이 이제는 힘을 잃은 약자가 되었다면 애초에 그는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도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들의 힘을 빼앗고 모든 것을 정상화하는 방법이 브이에겐 죽음뿐이었다.
한 가지 더 아쉬웠던 건, 이비가 그저 브이를 기억하는 어느 특별한 누군가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만약 그 고문이 이비가 자신을 대신할 또 다른 브이가 될 수 있는 걸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해도 설득력은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이비에게 집과 심지어 10년을 넘게 노선을 깔고 만들어놓은 지하철 폭탄을 넘기는 걸 보면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브이는 복수가 삶의 목표였지만, 이비는 복수가 목표인 사람이 아니다. 그녀에겐 이름처럼 삶이 있고, 그 삶은 국회의사당이 폭파된 이후에도 이어진다. 원작에선 실제로 이비가, 이후에는 도미닉이 브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그 부분이 살아났어도 좋았을 것이다.
20년을 걸었던 도미노
영화는 브이의 원맨쇼이자 이비와 브이의 콤비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팀워크였다. 그래서 더더욱 반드시 브이라는 '한 남자'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브이였고, 브이이며, 브이가 될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이제서야 그 영화를 보게 된 게 현실과 무관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우리의 과거는 지구 상 어딘가에서 되풀이된다. 그 과거는 누군가의 현재이자 미래다. 조금 가깝고 먼 나라들에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억압에 맞서 저항하려 하지만 영화처럼 속 시원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브이는 피의 복수에 성공했지만 현실엔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흐른다. 마음이 아파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대리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역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초인적인 힘을 가졌던 영화 속 브이를 찾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건 브이가 아닌, 이비, 발레리, 핀치 경감, 고든 PD, 그리고 안경잡이 소녀다. 이비가 브이가 방송국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돕지 않았다면, 발레리가 고문당하면서도 모두를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당에 27년이나 충성해 온 핀치 경감이 이 나라가 권력을 위해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알고 이비가 레버를 당길 때 말리지 않았다면, 고든 PD가 사람들에게 코미디를 가장해 서틀러를 풍자하지 않았다면, 안경잡이 소녀가 브이의 상징을 스프레이로 그리지 않았다면, 술집과 식당, 집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한 곳에 모여있지 않았다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1812 서곡이 그렇게 통쾌하게 들릴 리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끝까지 브이와 이비를 뒤쫓다가 걸음을 멈췄던, 모든 걸 알고 밤잠을 설쳤던 핀치 경감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그의 촉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고, 언제 총을 내려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V가 들어가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남는 건 모두(everyone), 그리고 신념 혹은 유죄(conviction)이란 단어다. 신념이자 유죄라는 뜻을 가진 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반드시 처벌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더라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유죄다. 신념 없이 살아서 유죄가 되기도 하고, 신념이 있더라도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유죄가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특정한 정치체제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목격한 건 통제와 억압 사이에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었다. 어떤 해결 방법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영화도 무조건적인 답을 주진 않는다. 브이 역시 완전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느 누구도 완전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가 남긴 말들 중 스스로에 마음에 남았던 말을 기억하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뭔가가 제대로 잘못되었을 때, 그 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으면 된다. Voil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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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우연들과 상상들이 모이고 모여 일으키는 강력한 힘
2021년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있어 의미있는 해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이렇게 한 해에 두 작품을 공개했을 뿐더러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 영화제 각본상, 우연과 상상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감독 세계를 인정받아왔지만, 그의 감독 세계와 우상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이 중 필자는 <우연과 상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3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로, 이 3편의 단편은 서로 연계되지 않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전작들에서 보여주는 일부 씬들에 대한 실험적 시도나 재편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첫번째 단편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서 택시 씬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후반부 가후쿠랑 다카츠키가 차에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문은 열어둔 채로"는 대화 스타일이나 영상의 톤이 전체적으로 '열정'이 연상됐으며, "다시 한번"은 해피아워에서 온천으로 놀라가서 서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처럼 옴니버스이기에, 3가지 단편을 통해 감독이 보여줄 수 있었던 각자의 스타일을 보여줬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는 설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화를 통해 상황과 설정을 나열하는데, 그것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흥미롭게 전개되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특유의 담담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영상미 덕분에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현실적이면서 신비롭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영화는 SF, 판타지 같이 비현실적이지 않으면서 그 상황과 분위기는 전혀 평범하지 않고, 때로는 서스펜스까지 존재하는 신비로움을 풍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의 사건들은 정말 제목 그대로, '우연'과 '상상'들로 부터 이루어진 사건들이다.
우연히 만나고, 어떠한 상황을 떠올리고, 누군가를 떠올리고, 우연이 알아채는 수많은 우연들과 상상들이다.
이런 작고 작은 우연들과 상상들은 개별적으로는 정말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모이고 모여 보이지 않게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점점 영화의 힘에 사로잡히고, 그렇기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면 큰 여운을 남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인 <아사코>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해 장소의 변환이나 인물이 적어 소품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지닌 영화적 연출과 영화적 힘은 여전히 강력하게 발휘한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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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패? 때려잡으려고 '무운도장' 장풍? 단기속성 마스터 클래스 등록한 경찰? - 라떼극장 EP.12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2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를 보며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보자
허약체질 경찰 상환 강도를 잡다 우연히?? 도착한 '무운도장'
그곳에서 공중부양과 장풍을 일삼는 '7선'을 만나고
도에 눈을 뜨게 되는데...
이 영화속 장면에 영감을 받아 만든 방송 프로그램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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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님 단편영화 이렇게 만드는거 맞죠..?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영화를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끼리 결국...!! 영화 제작까지 도전 합니다 ٩(๑• ₃ -๑)۶
많.관.부 ◟( ˘ 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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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로커> 30초 예고편
"우리 이제 행복해지자꾸나"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가장 특별한 여정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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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화란> 메인 예고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옥이 되다 올가을 가장 깊고 강렬한 느와르 드라마? [화란] 메인 예고편 공개 10월 11일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