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2024-01-11 11:09:00
결혼 이야기 또는 이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결혼 이야기>
백마 탄 왕자가 나오는 그런 사랑 이야기는 감흥이 없는 편이다. 이전 영화 리뷰 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처럼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는 매우 좋아하는 편이고, 주인공들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바닥을 치는지까지 디테일하게 나오는 이야기에 끌리는 편인데, 그 속에서 내가 마주할 수도 있는 문제를 미리 볼 수도 있고 해결 방법을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설명하기 전에 이 영화를 보게된 계기를 먼저 말하자면 올해 중순쯤 아담 드라이버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모델이자 배우인 이솜의 인생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이었고, 이솜이 좋아하는 배우라 그래서 눈여겨보다가 같이 빠져든 케이스. <패터슨>에서는 패터슨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며 잔잔하게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는데, <결혼 이야기>에서는 굉장한 스펙트럼의 연기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애덤 드라이버의 완전한 팬이 되어 버렸다.
<결혼 이야기>를 마침 2023년이 가기 전에 보게 된 영화라 너무 좋았어서 2023년 베스트 영화 중 하나로 기록할 겸 얼른 후기를 남겨본다. 영화는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이 서로에게 반했던 이유 = 각자의 장점을 내레이션 하고, 그에 적합한 화면들이 나온다. 가령 극 중 배우로 나오는 니콜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장면에서는 극장에서 집중하여 연기를 하고 있는 니콜의 모습이 나오고, 극단의 인턴도 동등하게 존중해 주는 찰리의 모습들이 나오며 둘 사이 있었던 좋은 추억들을 쫙 보여 준다.
그 장면들만 보면 정말 행복하고,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 가족의 생활이 나와서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순간들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그런 행복한 가정을 상상할듯하다. 그렇게 행복한 가정의 모습도 잠시 둘의 내레이션이 끝나면서 보이는 공간은 이혼 상담소, 상담사가 둘에게 작성한 장점을 서로에게 읽어달라고 하지만, 니콜은 그럴 생각이 없다. 둘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북극의 얼음이 언 것 마냥 냉담하다.
찰리는 사실 니콜이 이혼을 결심했는지 모르는 듯했다. 니콜의 희생이 당연했고, 잘 나가는 예술가가 되고 있는 자신이 제일 잘났다 생각해서 일까 잠깐 LA로 떠난 니콜이 금방 들어올거라 생각한다. 초반에 나오는 애덤 드라이버는 굉장히 유쾌하고, 리더십 있는 능력과 책임감이 모두 있는 훌륭한 감독으로 비쳤지만 갈수록 그의 이기심이 드러난다. 연애 때 이걸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아이를 일찍 가져버린 니콜은 참고 참다가 그와의 이별을 결심한 것. 니콜은 찰리를 아래 대사처럼 표현했다. '섹스보다 대화가 좋았던 사람이고, 섹스도 대화처럼 느껴지던 사람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맞는 사람이었는데, 둘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니콜은 그래도 아직 그를 사랑했기에 원만하게 헤어지려고 했지만, 아이의 양육권을 가져오기 위해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를 선임하게 된다. 노라 또한 이혼 경험이 있어 그녀의 고통을 이해해 주고, 위로해 준다. 그렇게 법정까지 가서 부부가 각자 선임한 변호사는 각자의 치명적인 단점을 들추며 그들의 삶을 변호한다. 둘은 그 상황이 도저히 아니라고 느꼈는지 둘이서 협의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하지만, 결국 끝은 서로에게 바닥을 보이는 싸움이었다.
'난 매일 눈뜰 때마다 당신이 죽길 바라! 헨리(아들)가 괜찮다는 보장만 있다면, 당신이 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고!'
이전 장면에서는 화를 내지 않을 것만 같던 그가 이렇게 절절한 증오의 말을 내뱉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영영 볼 수 없을 수도 있고, LA와 뉴욕을 왔다 갔다 하느라 그토록 기대했던 브로드웨이 공연도 못하게 되고, 극단을 운영할 수 있는 상금마저 이혼 소송을 진행하느라 파산 직정인 상황이니 현실적인 부분에서 공감되긴 했다. 찰리는 바로 사과를 하고, 싸움을 마무리하지만 둘의 사이는 더 이상 합의도 힘들고 회복도 힘든 것처럼 보였다.
감독 노아 바움백을 포함하여 스칼렛 요한슨과 그녀의 변호사 역할 로라 던은 이혼 경험이 있고, 애덤 드라이버는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고 한다.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경험까지 더해져 어느 영화보다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이혼의 과정을 풀어낼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조금은 행복한 결혼 이야기일 줄 알았지만 매우 불편하고, 현실적인 이혼 이야기였고, 결혼을 한다면 이런 과정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다. 나처럼 결혼 고민이 있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배우들의 명연기를 보는 걸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니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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