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2-15 11:05:10
2월 3주차, 최신 씨네뉴스
<건국전쟁> 이례적 흥행
설 연휴 상업 영화들이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둔 가운데, 박스오피스에서 의외의 활약을 펼친 <건국전쟁>.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보이고 있는데요.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적 행적 등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설 특수’ 노린 영화들 줄줄이 부진
극장가 대목인 이번 설 연휴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는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웡카>였습니다. 국내 영화 중에선 <시민덕희>를 제외하곤 <도그데이즈> <데드맨> <소풍> <아가일>이 줄줄이 부진한 성적을 보였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를 조명한 <건국전쟁>이 다큐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들 와도 흥행 부진, 사라진 ‘내한 특수’
코로나19 이후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지만 작품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내한한 <아가일> 주연 배우들이 레드카펫 행사와 무대인사에 참석해 팬들을 만났지만 상영 7일째인 13일까지 11만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습니다.
에리보, 그란데 뮤지컬 영화 <위키드> 11월 개봉
2019년도에 개봉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에 들어갔던 <위키드>가 오는 11월에 개봉을 알렸습니다. 뮤지컬 원작 <위키드>는 전세계 6000만 명이 관람한 21세기 브로드웨이 최고 뮤지컬 대작으로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양자경이 만나며 환상적인 세계를 담아내었다고 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영화 파죽지세 흥행 벌써 43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흥행 역주행 속에 누적관객수 43만명을 기록했습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영화에 대한 관심을 쏟아내며 ‘건국전쟁’의 여야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상영관별 좌석1% 장애인 관람석 시행령 개정 추진
영화관의 전체 좌석 기준이 아닌 상영관별 좌석 1% 이상을 장애인 관람석으로 하는 관련 법 시행령 개정이 추진된다고 합니다. 현재 전체 영화관의 1%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보니 장애인 관람석인 휠체어 좌석이 없는 상영관도 많고,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한 곳도 많은 등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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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이례적이지만 흠잡을 곳 없는 개막작
[BIFF 데일리] 이례적이지만 흠잡을 곳 없는 개막작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리뷰
줄거리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감독: 김상만
출연: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독립 영화를 중심으로 개막작을 선정하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OTT 영화. 그것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OTT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0월 2일 영화제의 개막을 앞두고 진행된 기자회견에선 'OTT 영화인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과 응답이 연속적으로 오갔다.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은 이에 대해 ‘대중적이고 재밌고, 완성도가 높은 영화이며 OTT 작품에도 문이 열려있음을 말씀드리기 위해’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답했다.
이후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전,란>의 개막작 선정이 앞으로의 시장을 어떻게 바꿀진 알 수 없지만 일단 <전,란>은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의 말처럼 대중적이고 재밌고 완성도 높은 영화다. 쟁쟁한 배우들과 양면에 각각 다른 색을 장착한 각본, 다방향으로 치고 나오는 다채로운 액션, 빠르게 돌파하는 과감함까지 모두 갖춘, 흠잡을 곳이 없는 작품이다.
<전,란>은 선조의 재위 기간에 일어난 임진왜란의 전, 후사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영화는 비슷하지만 다른 운명을 타고난 두 남자 종려와 천영의 우정과 증오, 각자의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인물들의 의지를 연료 삼아 나아간다. 그리고 흑과 백, 적과 청, 진실과 오해를 맞붙여 스파크를 튀기다 끝내 커다란 불꽃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은 이 커다란 불꽃을 가운데 두고 맡은 인물을 마음껏, 맛있게 요리해 내놓는다. 영화 <군도>이후 약 10년 만에 양반이 아닌 노비 천영이 되어 나타난 강동원 배우는 헤진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귀신같은 몸놀림을 보여주고 그에 대척하는 양반 종려를 맡은 박정민 배우는 변화하는 인물의 감정을 진중하게 무너뜨리고 재조립한다. 비겁한 임금 선조를 맡은 차승원 배우는 자칫하면 모든 게 과도해 보일 수 있는 인물을 한 끗 차이로 비틀어 단단하게 만든다. 의병대와 일본군의 선봉장 겐신을 맡은 진선규, 김신록, 정성일 배우의 김자령, 범동, 겐신은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깊은 매력을 뽐낸다.
<전,란>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각자의 정도(正道)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들은 주어진 운명과 계급에 순응하기보단 그에 맞서길 선택하고 자신에게 꼭 맞는 무기를 손에 든다. 각 무기에 주인의 운명과 의지가 투영되고 그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단단히 막혀있던 계급과 운명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간다.
비슷하지만 다른 운명을 타고난 종려와 천영은 허물어지고 있는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지키는 자와 허무는 자가 되어 대립한다. 두 사람은 적, 청색의 도포를 두르고 흑, 백의 검을 든 채 마주 선다. 서로의 거울이자 한 덩어리의 실체와 그림자 같기도 했던 두 사람은 갈등의 끝에서 서로를 그림자로 둔 하나의 온전한 실체로 독립한다. 이 과정은 마치 애증 관계 연인의 이별 같기도 하고 고상한 성장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쟁쟁한 배우들과 양면을 가진 각본, 다방향으로 치고 나오는 다채로운 액션까지. 흠잡을 곳 없이 매력적인 영화 <전,란>은 다가오는 10월 1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며 10월 2일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과 이어지는 영화제 기간 동안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상영시간]
10월 2일(수) 18:00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10월 3일(목) 16:30 영화의전당 중극장
10월 4일(금) 12:30 CGV센텀시티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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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 작품. 폴란드 유대인 슈필만의 생존기를 다룬 영화이면서 독일군이 유대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했는가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있던 유대인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혹독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들 가운데 수십만 명이 독일군이 운영하는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사건 또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지금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일본의 이익을 위해 거짓 논문을 써내는 램지어 같은 인간과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유대인 학살 문제는 매우 신중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역사적 사건으로, 비유대인 유럽인들은 독일의 만행에 대한 공분과 함께 비유대인으로서의 도의적 책임감을 느끼는 태도를 보인다. 즉, 자기들(독일인이 아닌 비유대인 유럽인)은 유대인 학살에 직접 책임은 없으나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히틀러와 독일사회민주당과 결별하면서 독일의 역사적 과오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피해자인 유대인에게 사죄한 바 있다. 또한 앞으로 히틀러의 나찌즘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극우 정당의 출현, 극우 집단의 발호를 근본에서 막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자서전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헐리우드의 영화자본을 쥐고 흔드는 유대인 집단은 헐리우드에서 유대인이 박해당하는 내용의 영화를 주기적으로 생산하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박해받던 유대인들은 전쟁이 끝나고 곧바로 '이스라엘'을 건립했고, 미국의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폭력으로 차지하고, 자기들이 당한 것 이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과 과거 유대인 박해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건 옳지 않다. 유대인 박해 사건은 그 자체로 심각한 전쟁범죄이며, 보편적 인류의 자유, 평등, 존중의 정신을 말살한 최악의 사태였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은 그렇게 박해당한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유대인의 의지로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하는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독일이 저지른 것보다 더 잔인한 행위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독일군에 의한 유대인 박해, 집단 살해 사건을 상업영화로 만들거나 다큐멘터리, 자서전, 역사책 등으로 만들어 꾸준히 알리는 것은 유대인의 권리다. 하지만 그 권리를 남용하면서 마구 휘두르면 그건 더 이상 권리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우리(한국인)는 유대인을 바라볼 때, 양가 감정을 갖는다. 유대인과 한국인은 역사적 피해자라는 사실에서는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유대인은 가해자인 독일이 진심으로 참회하고, 공식적, 역사적으로 사죄했으며,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인을 가해한 일본은 전쟁에서 패한 이후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코스프레를 하며 피해국과 그 국민들에게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헌법을 바꿔 침략전쟁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는데, 일본은 패전 이후 지금까지 극우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피해국에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나라이기도 하다.
유대인은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국가'가 없었지만, 전쟁 끝나고 '국가'를 세웠다. 유럽과 다른 대륙을 떠돌던 유대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물적 공간을 마련한 것이니 그들로서는 전쟁과 박해가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끔찍한 경험을 한 유대인들이 가까이 사는 다른 민족을 야만적으로 학살, 학대하기 시작한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당한 박해와 학살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이어나가고 있으니, 세계 사람들은 유대인을 보면서 인지부조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유대인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유대인 '개인'이 당한 경험과 서사는 비극이다. 하지만 집단으로써의 유대인이 저지르는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학살은 피해자 '개인'으로의 유대인까지 혐오하게 만드는 범죄이자 만행이다. 유대인 가운데도 노엄 촘스키처럼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비판적, 합리적 유대인도 많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주거지를 침략하며, 원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을 빼앗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서서히 말려죽이는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 지역에서 패권 국가로 행세하고 있다. 그들은 기고만장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즐거워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를 파괴하고, 마치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자원을 수탈하고, 한국인을 학대하며, 농락했던 것과 똑같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대하고, 농락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이런 만행과 오만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폭력으로 흥한 자는 폭력으로 망한다는 진리도 있듯이, 이스라엘은 폭력을 기반으로 서 있는 국가이고, 폭력을 휘두르면서 쾌락을 느끼고 있다. 그런 행동이 정신분석에서 '가해자와 동일시'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동 인근 국가들을 모두 적대적 관계로 만들고, 멀리 떨어진 미국과 유럽의 몇 나라들-그들이 지금은 가장 폭력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겠지만-을 등에 업고 폭력을 휘두르는 건 마치 어린아이가 칼을 쥐고 휘두르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이다.
이 영화에서도 유대인들이 독일군의 폭력으로 서서히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웠다. 독일군의 만행은 끔찍하고, 말할 수 없이 잔인하며, 악랄했다. 유대인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스실로 끌려가야 했고, 강제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의 비참함에 감정이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까닭은, 현재의 유대인 '이스라엘'이 어떤 짓을 하는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유대인 슈필만을 팔레스타인으로 바꾸고, 독일군을 이스라엘군으로 바꾸면 완벽하게 똑같은 그림이 나온다.
이미 너무 많은 '피해자 유대인'을 그린 영화가 나왔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이제 '피해자 유대인'을 다룬 영화는 더 이상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 유대인'은 이미 과거의 역사가 되었고, 지금은 '가해자 유대인'의 이미지가 뚜렷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그동안 저지른 학살과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하고, 팔레스타인의 회복을 돕지 않는 이상, 유대인은 전쟁 때의 '독일군'과 같은 이미지로 오래도록 남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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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할 수 없는 어딘가에 갇혀있는 사람들
'여름에 공포 영화를 보자'라는 말은 누가 만들어냈을까? 난 특히 여름에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공포 영화는 라면 같은 존재다. 어느 순간에든 보기 좋은 그런 장르다. 그리고 공포 영화라고 해서 특히 여름에 개봉하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다. 로맨스 영화라고 봄에만 개봉하라는 법 있나?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도 겨울이 주요 소재인 영화인걸? 사실 계절에 특화된 장르라고 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냥 잘 만들면 모두가 행복하다.
그렇게 잘 만든 영화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충분하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세상이 알아봐 주지 않아서 혼자서 불행하다. 왠지 많이 언급된 것 같은 영화 <소름>, 초중반부의 잔잔함과 쉽지 않은 이미지도 없어 '뭐가 무서운가'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일단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뭐야 재미없을 것 같은데?' 어림짐작하기 쉽고 손도 안 갈 것이다. 네이버에 들어가서 일일이 1200원 주고 결제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리뷰어들과 평론가들, 또 팬들이 '왜 우리 호러영화의 클래식 중 하나'라고 언급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영화 <소름>은 갑툭튀 점프 스케어 없이, 잔인한 비주얼 없이 머릿속에 오래오래 남는 공포영화다. 은근히 많이 못 본 영화 <소름>. 집에서 연인 혹은 가족, 친구들과 불 끄고 태블릿(모바일)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분명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2001년 낡아 무너질 것 같은 금화 시민아파트로 가보자.
문을 열고 들어온 이방인
낡은 아파트에 새로운 입주자가 생겼다. 미금 아파트 504호에 새로 들어온 남자의 이름은 용현이다. 504호에는 끔찍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용현이 입주하기 전에 소설가 광태가 불에 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집주인은 사람이 죽었다는 부정적인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사후처리를 깔끔하게 마무리짓지 않았다. 같은 5층에는 선영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다. 선영은 아이를 잃어버리고 남편에게 맞고 산다. 남편은 이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매일 도박에 빠져 선영을 때리고 있다.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돈도 다 뺏어가는 나쁜 놈이다. 용현의 이웃사촌으로는 출판사 하다 망한 남자가 살고 있다. 이 남자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공포소설을 쓰고 있다. 선영의 이웃에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강사 은수가 살고 있다. 이 은수는 화재로 사망한 작가를 사랑하던 여자였다. 선영과 은수는 금세 친해지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용현은 선영에게 관심이 있다. 내면이 상처 투성이인 선영. 용현을 그냥 무시하지만 보유 중인 택시로 선영을 데려다준 일을 계기로 어느 정도의 친분이 쌓이게 된다. 근데 남편은 세상 둘도 없는 찌질이다. 이를 보고 선영을 구타하는 남편. 이 폭력사태는 가라앉을 틈을 주지 않는다. 점점 더 심하게 맞는 선영. 선영은 참다못해 남편을 살해하게 된다. 선영과 용현은 남편의 사체를 유기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선영과 용현은 예견조차 하지 못했던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가장 무서울 법한 것
작년에 <랑종>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난다. 호불호가 강력하게 갈렸던 이 영화. 나는 극장에서 나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는데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영화가 무서웠던 이유는 '설마 이렇게 될 것 같아'가 죄다 맞아떨어져 서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점점 수위를 높이면서 커졌으니 눈을 질끈 감고 봤다. 이 <소름>이 견지하고 있는 공포도 이와 유사하다. 모두의 인생에 있어 가장 무서운 일이 뭘까? '설마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만약에의 공포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태도로 이 '만약에의 위기'를 벗어나곤 한다. 근데 이 위치에 한번 쳐해 보면 삶을 살아가면서 이 기억이 계속해서 든다. 또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 사람처럼 되면 어떡하지. 이 두려움과 함께 인생의 과제들을 이겨낸다. 그게 나를 포함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인생일 것이다. 영화는 우리 내면에 있을법한 구멍을 포착해서 촘촘하게 그물을 짜 놓았다. 이 영화가 호러 분위기를 만드는 설정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짐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게 짜여 있는 소설처럼 이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얼핏 던져졌던 키워들이 하나하나씩 모여 광폭하게 폭주한다. 이 폭주하는 이야기는 '왜 예견하지 못했음에도 이 운명에 기시감이 드는가'를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아파트의 안과 밖
아리 애스터의 <유전>이 생각난다. 이 <유전>에서 중요했던 설정 중 하나는 네 명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 집은 애니가 구현했다. 애니는 디오라마 아티스트다. 애니는 이 집을 디오라마로 묘사했다. 이 '집과 인물'사이의 관계는 이 영화의 키워드와도 어울린다. 세상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애니의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공간인 '집'과 애니의 직업이 공포를 만드는 소재로 쓰인 것이다. 이와 별개로 오두막이라는 공간은 또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사용된다. 누가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 와 같은 사소한 포인트 하나하나가 엔딩신을 향해 달려가는 디딤돌이니 아리 애스터가 설정한 공간적 배경은 영화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공포영화에 있어 공간 세팅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는 우리나라 공포영화 <불신지옥>에서도 재현됐다. 아파트라는 공간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 <소름> 역시 앞 두 영화처럼 아파트라는 공간 세팅이 중요하다. 일단 분위기를 만드는 미술의 비주얼이 눈에 띈다. 당시 금화 시민아파트의 외관에서 오는 낡은 비주얼은 낡았기 때문에 압도적이다. '저주가 걸린 집'의 개연성을 주는 듯한 공간 설정이었다. 또 이 아파트 안에 깔려있는 수많은 유사 쓰레기들, 듬성듬성 붙어있는 벽지, 누리끼리한 아파트의 색감까지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아파트라는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아파트만큼이나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는 공간은 '아파트 밖'이라는 설정이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서서히 조여드는 압박감과 패배감이다. 근데 영화 전반적인 줄거리가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발버둥 치는 내용'이라 '이렇게 했기 때문에 저렇게 대응함'식의 반복이라면 이 영화 하이라이트에 집중되는 압박감이 살짝 퇴색될 수도 있다. 영화는 해야 할 말에 힘을 빡 주고 있기 때문에 선영과 용현이 아파트 밖에서 행복한 모습을 중심으로 극을 이끌고 간다. 이 두 사람이 느꼈던 행복까지 누군가가 설계한 공간 아래에 놓아있는 사람처럼, 영화는 두 인물을 그렇게 묘사한다. 공간마다 임팩트를 주는 윤종찬 감독의 연출이 빛을 발현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반짝반짝 빛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김명민, 장진영 배우다. 지금 2022년 김명민 배우는 드라마 판에서 슈퍼스타다. 그와 반대로 영화 출연작들은 죄다 시원찮다. 솔직히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다; 근데 이 <소름>은 김명민 배우의 영화 출연 이력 중 가장 빛나는 영화가 아닐지 생각이 든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차가운 연기와는 정반대의 퍼포먼스를 소화한다. 비극적인 성장 서사를 갖고 있는 탓에 폭발하는 분노, 선영에게 의존하는 내면, 이기적인 성격, 또 후반부 특정 신의 표정연기까지 파릇파릇한 김명민 배우의 높은 잠재력이 느껴지는 영화다. 또 지금은 별이 된 장진영 배우도 굉장히 뛰어났다. 이 영화에는 베드신이 있다. 또. 남편에게 맞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어 리액션 연기를 이끌고 가야 한다. 내가 배우라면 '이런 역할 해보고 싶다'라고 행복 회로를 굴릴 법한 역이었다. 장진영 배우는 이를 서릿발같이 차갑게 소화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잘 이끈다.
앞의 이 두 배우의 연기도 탁월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기주봉 배우다. 홍상수 영화에서 '사랑이 최고야' 외치는 아저씨로 자주 봤던 기주봉 배우. 이 영화에서의 기주봉 배우는 '아런 역할일 것 같아' 예상하지만 그 외의 방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대사 치는 톤, 표정, 인상, 심지어 글 쓸 때의 자세까지 홍상수 영화에서 봤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테크니컬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을 절제하고 있는가'라는 인물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멋진 연기였다.
맨 위의 위로
많은 분들이 모를법한 영화다. 실제로 관객 수가 10만 명도 되지 않았으니 구체적인 수치도 근거로 들 수 있을 정도다.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도 윤종찬 감독이 비교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분이고 넷플릭스나 왓챠에 서비스하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보니 접근성이 그렇게 높진 않다(그 대신 네이버에서 1200원으로 구매할 수 있다. 나도 이를 통해서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공포는 우리나라 호러 영화 중 위에 있는 이유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장진영 배우의 파리한 비주얼, 소리 지르는 톤, 김명민 배우의 뜨겁게 폭발하는 광기, 낡은 아파트, 깜빡깜빡거리는 조명, 귀가 아픈 빗소리, 어두운 색감 등 이미지에 의한 공포-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도 챙기면서 서서히 내면을 잠식시키는 공포를 많은 분들이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곡성>과 함께 우리나라의 호러 영화 중 가장 돋보이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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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가 외면한 로맨스 명작 TOP 12
누구나 인정할만한 최고의 로맨스 명작에 대한 순위도 있을 것이다. '오스카' 시상식은 그들의 92년의 역사 속에 시대를 막론한 로맨스 명작 대부분을 인정해왔다.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이나,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와 같은 영화들에 축배를 올리지 않는 건 범죄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버라이어티 지는 2001년부터 지난 20년 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혹은 각색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최고의 로맨스 작품 12편을 취합해보았다. 몇 편은 충분히 명백하다고 느껴지는 작품이겠지만, 몇 편은 사랑의 복합성을 파고드는 작품이며, 이 모든 작품들은 다른 시대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리스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 12편에 포함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이 게시글에
'댓글' 창이 있는 이유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공유해주시길 바랍니다.
12위 - <The 40-Year-Old Virgin>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2005)
각본 - 주드 아패토우, 스티브 카렐
감독 - 주드 아패토우 | 제작 - 유니버셜 픽쳐스
출연 - 스티브 카렐, 캐서린 키너, 폴 러드, 세스 로건 등
'앤디 스티처'는 40세까지 자신의 동정을 지키면서 진실로 마음이 통하는 상대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전자제품 대형 매장에서 일하는 남자이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그가 동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동료들은 그를 가만 놔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운명적인 여자 '트레이시'을 만나게 되고 그가 한번도 못해본 일을 트레이시와 시도하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러한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주면서 폭소는 물론 따뜻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선정 이유 : 보통 외설적인 섹스-코미디 영화는 '로맨스' 장르의 그럴듯한 예시가 될 수 없겠지만, 이 영화의 두 각본가의 '사랑'을 불어넣겠다는 불굴의 의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오스카에 두 차례 노미네이트 되었던 배우 '캐서린 키너'의 연기는 이를 극도로 끌어올려 화려한 성공을 만들어냈다.
11위 - <A Ghost Story>
<고스트 스토리> (2017)
각본 - 데이빗 로워리
감독 - 데이빗 로워리 | 제작 - A24
출연 - 케이시 애플렉, 루니 마라 등
교외의 작고 낣은 집, 작곡가인 C와 그의 연인 M은 조용하지만 단란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C는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M은 무거운 슬픔에 잠긴다. 창백한 조명의 병원 영안실, 고스트가 되어 깨어난 C는 마치 홀린 듯 M이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무는 그녀와 고스트는 사랑했던 기억을 추억하며 무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몇 년 후, 다시 집,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며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M은 결국 집을 떠나고, 남겨진 고스트는 영원히 그녀를 기다릴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선정 이유 : 이 영화는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호불호가 확실했던 영화이다. 한 쪽은 지나치게 질질 끄는 '침묵'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고, 다른 한쪽은 비탄과 절망의 가장 순수하고 가슴 아픈 초상이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결국, 모두가 동의할만한 영화여서는 안 된다. 영화는 열띤 논란을 만들어야 한다.
10위 - <It's Complicated>
<사랑은 너무 복잡해> (2009)
각본 - 낸시 마이어스
감독 - 낸시 마이어스 | 제작 - 유니버셜 픽쳐스
출연 - 메릴 스트립, 스티브 마틴, 알렉 볼드윈 등
베이커리 가게를 운영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제인'. 안정된 생활을 유지해가던 그녀에게 어느 날, 20살 어린 젊은 여자와 재혼한 전 남편 '제이크'가 찾아오고, 결혼 전 연애시절을 돌이키려 한다. 이와 동시에 '제인'의 집 인테리어 공사를 맡은 건축가 '아담'이 그녀에게 조금씩 호감을 보여 오는데...
선정 이유 : '오스카'를 3번이나 수상한 '메릴 스트립'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이 영화를 '오스카'는 외면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볼드윈'과 '마틴' 또한, 강렬하면서도 매우 다른 연기를 보여주었다. 60세 이상의 여성을 위해 쓰인 이 이야기는 이혼 가정의 아이들과 그들의 그 이후까지 보여준 소중한 영화이다.
9위 - <Love Actually>
<러브 액츄얼리> (2003)
각본 - 리차드 커티스
감독 - 리차드 커티스 | 제작 - 유니버셜 픽쳐스
출연 -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로라 리니, 엠마 톰슨, 앨런 릭먼, 키이라 나이틀리, 빌 나이 등
사랑에 상처받은 당신을 위해, 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사랑에 확신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선물이 찾아옵니다. 크리스마스에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로맨틱한 고백
선정 이유 : 그 자체로도 과하게 느끼하고 과하게 덧붙여진 듯한 이 영화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으로 이미 한차례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리차드 커티스' 감독이 아이들의 눈을 통한 사랑, 걱정, 불륜, 언어와 비밀까지 다수의 예시를 담아낸 영화이다. 매력적인 역대급 출연진들은 인생에서 가장 기이한 인연 속에서 각자의 존재감을 확실히 뿜어냈다.
8위 - <Baby Driver>
<베이비 드라이버> (2017)
각본 - 에드가 라이트
감독 - 에드가 라이트 | 제작 - 소니 픽쳐스
출연 - 안셀 엘고트, 케빈 스페이시, 릴리 제임스, 에이사 곤살레스, 제이미 폭스 등
귀신 같은 운전 실력, 완벽한 플레이리스트를 갖춘 탈출 전문 드라이버 '베이비'.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에 이상이 생긴 그에게 음악은 필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 같은 그녀 '데보라'를 만나게 되면서 '베이비'는 새로운 인생으로의 탈출을 꿈꾸게 되지만, 같은 팀인 박사, 달링, 버디, 배츠는 그를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는데...
선정 이유 : 액션 장르에서 러브 스토리는 자주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가슴 뛰는 세트피스와 두 주연 배우의 케미는 관객들이 쉽게 이야기에 흡수될 수 있게 했다. 영화의 가장 긴박한 순간에 그와 대조적인 배경음, 베리 화이트의 1937년 명곡 "Never, Never Gonna Give Ya Up."이 흘러나오고 그로부터 전율을 느끼게 된다.
7위 - <500 Days of Summer>
<500일의 썸머> (2009)
각본 - 스콧 뉴스타드터, 마이클 H. 웨버
감독 - 마크 웹 | 제작 - 20세기 폭스 (현 서치라이트 픽쳐스)
출연 -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클로이 모레츠 등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운명적 사랑을 기다리는 순수 청년 '톰'은 어느 날 회사에 새 비서로 온 '썸머'를 처음 본 순간 대책 없이 사랑에 빠져든다. 구속 받기 싫어하고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자유로운 여자 '썸머'는 누군가의 여자이기를 거부하며 '톰'과 친구도, 애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간다. 어딘지 어긋나고 삐걱대는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를 위해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는데...
선정 이유 : 관계에 대한 500일 간의 여정은 양쪽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사실 우리 대부분이 이전에 느껴봤던 감정일 것이다. 두 각본가의 변덕스럽고도 방대한 이야기는 연애 젬병 낭만주의자인 '톰'의 시선에서 이어나가고, 관객들은 '썸머'를 향한 그의 심장 찢기는 고통을 함께 느낀다. 때문에, 관객들은 모두 '톰'이 '어텀'을 만나는 피날레를 그토록 로맨틱하게 느끼게 된다.
6위 - <Crazy Rich Asians>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2018)
각본 - 아델 림, 피트 치아렐리 (케빈 콴의 소설 "Crazy Rich Asian" 원작)
감독 - 존 추 | 제작 - 워너 브라더스
출연 - 콘스탄스 우, 헨리 골딩, 양자경, 젬마 찬, 아콰피나, 켄 정 등
뉴요커 '레이첼'은 남자친구 '닉'의 절친의 결혼식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향한다. 처음으로 아시아를 방문한다는 설렘도 잠시, '닉'의 가족을 만난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닉'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자 모두가 선망하는 결혼 후보 1순위 신랑감이었고, '레이첼'은 사교계 명사들의 질투와 더불어 본인을 영 탐탁지 않아하는 '닉'의 어머니의 타겟이 되는데...
선정 이유 : 기념비적인 문화적 돌파구 영화이자, 박스오피스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낸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각색'에 대한 칭찬을 받아왔다. 때로는 "사랑해" 라는 가장 명백한 대답이 최고의 한 마디일 수도 있다.
5위 - <Drive>
<드라이브> (2011)
각본 - 호세인 아미니 (제임스 샐리스의 소설 "Drive" 원작)
감독 - 니콜라스 윈딩 레픈 | 제작 - 필름디스트릭트
출연 - 라이언 고슬링, 캐리 멀리건 등
삶의 의미라곤 오직 스피드밖에 없었던 남자. 그런 그의 일상에 작은 파장을 일으킨 한 여자.
어느덧 또 하나의 의미가 된 그녀가 위험해지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거는데...
선정 이유 : 레픈 감독의 장기는 아미니 각본가의 대본을 기반으로 액션, 드라마, 그리고 코미디까지 많은 장르를 매력적으로 섞어놓는 것이다. 2010년대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이름도 없는 '드라이버'가 그 자신 속에 있는 "전갈"을 드러낼 때이다.
4위 - <Weekend>
<주말> (2011)
각본 - 앤드류 헤이
감독 - 앤드류 헤이 | 제작 - 선댄스 셀렉트
출연 - 톰 컬렌, 크리스 뉴 등
이성애자인 룸메이트와의 홈파티에서 많이 취하게 된 러셀은 파티가 끝난 후 게이클럽으로 향한다. 영업 종료시간을 얼마 앞둔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 글렌을 만나고, 원나잇스탠드로 끝날 거라 생각했던 만남은 전혀 다른, 특별한 것이 되어가는데...
선정 이유 : 이 영화는 매우 정직하고도 결백한 두 남자의 사랑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그들 각자 모험을 떠난다. 서로를 향한 부정할 수 없는 끌림은 꽤나 분명하다.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애정을 향한 깊은 갈망이다.
3위 - <Moulin Rouge!>
<물랑 루즈> (2001)
각본 - 바즈 루어만, 크레이그 피어스
감독 - 바즈 루어만 | 제작 - 20세기 폭스
출연 -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등
1899년 파리,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세계 '물랑 루즈' 최고의 뮤지컬 가수인 '샤틴'은 신분 상승과 성공을 위해 투자자를 구하다가 우연히 사랑을 찾아 몽마르트로 흘러온 영국의 낭만파 시인 '크리스티앙'을 만나게 된다. '샤틴'에게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 '크리스티앙'은 그녀가 있는 '물랑 루즈'라는 신비의 세게에 발을 들여놓게 되지만, 그 둘에게 거역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 서서히 다가오는데...
선정 이유 : 이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는 거의 모든 의미에서 매우 훌륭하고,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하여 오스카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각본과 감독 부문에서는 외면당하였다. 영화는 꽤나 직관적이고, 모든 뮤지컬 넘버들은 서로를 보완해 나가며 관객들의 시선을 그 사이에 접합시킨다. 특히, '엘튼 존'의 넘버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이완 맥그리거'에게 빠져드는 순간을 포착하였고, 어떻게 '니콜 키드먼'이 그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는지 납득시켰다.
2위 - <The Perks of Being a Walflower>
<월플라워> (2012)
각본 - 스티븐 크보스키 (본인 소설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원작)
감독 - 스티븐 크보스키 | 제작 - 써밋 엔터테인먼트
출연 - 엠마 왓슨, 로건 레먼, 에즈라 밀러, 니나 도브레브 등
말 못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찰리'는 고등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삶을 즐기는 '샘'과 '패트릭' 남매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멋진 음악과 친구들을 만나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 법을 배워가는 '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샘'을 사랑하게 되고, 그는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가슴 벅찬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불현듯 나타나 다시 '찰리'를 괴롭히는 과거의 상처와 '샘'과 '패트릭'의 겉잡을 수 없는 방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우정을 흔들어 놓기 시작하는데...
선정 이유 : 스티븐 크보스키의 '마스터피스'가 이 목록에 있는 것은 꽤나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로 선정한 건 아니다. '샘'을 향한 '찰리'의 헌신이 주된 서사이지만, "월플라워"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얻을 수 있는 사랑의 왜곡된 면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찰리'의 내적 분투에 공감할 것이다. 그중 일부는 그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행운을 누렸겠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하루하루 그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어떠한 나쁜 기억들이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당신은 '사랑'을 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1위 - <Disobedience>
<디서비디언스> (2018)
각본 - 세바스찬 렐리오, 레베카 렌키에비츠 (나오미 알더만의 소설 "Disobedience" 원작)
감독 - 세바스찬 렐리오 | 제작 - 블리커 스트리트
출연 - 레이첼 맥아담스, 레아첼 와이즈 등
유대인 사회에서 쫓겨나 뉴욕에서 살던 사진작가 '로니트'는 랍비였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후계자 '도빗'이 그녀의 옛 연인 '에스티'와 결혼했다는 소식도 접한다. '로니트'가 돌아오자 모임에서는 '도빗'에게 부인 단속을 잘 하라며 훈수를 두고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는 다시 '로니트'와 '에스티'의 이름이 거론되기에 이르는데...
선정 이유 : 이 영화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저평가된 로맨스 영화이다. '레이첼 맥아담스', '레이첼 와이즈', 그리고 '알레산드로 니볼라'가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사람들은 이 영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감독이기도 한 '세바스찬 렐리오'는 관객들을 금기된 사랑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알고, 그는 관객을 사로잡는 마법을 부린다. 이 영화는 매우 강렬하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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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과 영문 제목 사이의 괴리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치가 싫었던 인권 변호사 문재인은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 청와대 5년, 그는 왜 권력의 칼을 휘두르지 않았을까? 사저 시위대의 욕설 속에서 그는 왜 묵묵히 꽃만 심었을까? 그를 지켜본 이들이 한 조각씩,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는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 시절은 왜 '대통령 문재인'을 원했을까?' 그 퍼즐이 비로소 완성된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양날의 검
노이즈 마케팅. 가장 많이 알려진 마케팅 기법 중 하나다. 이 기법의 핵심은 이슈다. 자극적이거나 부정적이어도 좋다. 사람들의 입에만 많이 오르내리면 된다. 품질에 관계없이 관심을 끌고, 일단 제품을 알리는 것. 노이즈 마케팅의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입니다>는 노이즈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줬다. <사이에서>, <길위에서>, <목숨>, <노무현입니다>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의 신작은 공개 전부터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다. 정치적 갈등을 초래할만한 발언이 담긴 영상을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258회에서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 영상은 본편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품 품질과 무관하게 관심을 끈다는 목적을 120%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은 양날의 검이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구설수를 호평으로 바꾸지 못하면 역효과가 난다. 제품 품질에 대한 평가가 구설수에 먹힐 수도 있다. <문재인입니다>도 마찬가지다. 메시지에 쏠려야 할 관심이 정치적 공방에 묻혀 버렸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안타깝다. 지지 정당이나 정치인 문제를 떠나서 보더라도 <문재인입니다 This is the President>는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헤치다
이창재 감독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영화는 <노무현입니다>다. 하지만 이 영화로 이창재 감독을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하다. 정치적 성향을 지우고 나며 그의 작품에 깃든 독특한 세계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매개체는 달라져도 그의 필모그래피는 일관적이다.
<사이에서>는 신내림과 속세 사이에서 갈등하는 무속인의 삶을 그려낸 영화다. <길위에서>는 비구니 스님을 통해 속세를 떠나야 하는 운명을 관찰한다. <죽음>과 <노무현입니다>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에 대해 묻고, 한 시대의 얼굴이 되었지만 죽음을 선택한 대통령을 그려낸다.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삶과 운명의 관계를 찾으려는 사색으로 가득하다.
<문재인입니다>도 같은 길을 걷는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에서 퇴임한 한국 대통령은 이상한 존재다. 그 자체로 운명과 인간적 삶이 충돌하는 아이러니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아무나 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아는 정치인이어도, 가장 유력한 후보도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다.
하지만 끝은 가혹하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현직 못지않게 무겁다. 죽거나, 망명하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자살하거나... 누구 하나 희극을 맛본 이가 없다. 그러니 퇴임 후 조용히 잊히고 싶다는 대통령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마모되고 부서지기 일쑤인 자리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지지와 비난이 맞닿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문재인입니다>는 그 삶의 의미를 찾는다.
대통령의 두 얼굴, 아틀라스와 프로메테우스
영화는 대통령이라는 운명을 마주한 인간을 둘로 쪼개 카메라에 담는다. 한쪽에는 아틀라스가 있다. 지구만큼이나 무거운 과업을 5년 동안 수행하는 사람이다. 다른 한쪽에는 헤라클레스를 만난 프로메테우스가 있다. 그는 마침내 형벌에서 풀려나 자유를 찾았다.
처한 상황이 상이한 만큼 두 이미지를 묘사하는 분위기도 다르다. 오랜 변호사 동료와 임기 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의 진술은 아틀라스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들의 증언은 단순한 '문비어천가'가 아니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의 특징을 나름 객관적으로 들려준다. 인내하는 사람, 듣는 사람, 과묵한 사람의 장단점이 빠르고 날카로운 리듬으로 제시된다.
그 과정에서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도 등장한다. 주한미군 방위금 문제, 일본과의 무역 전쟁, 조국 사태 등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정치적 평가에는 관심이 없다. 굵직한 현안을 헤쳐 나오는 주인공의 습관과 태도, 정치 방식을 전할 뿐이다.
반면에 자유로워진 프로메테우스는 평화롭다. 대통령 퇴임 직후 그가 아내와 비서진의 도움을 받아 정원을 가꾸는 일상을 보여준다. 반려 동물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산책에 나서는 모습이 뒤따른다. 전 대통령의 일상은 긴 템포로, 차분하게 전시된다. 물론 운명의 무게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반대파의 외침이 그의 집을 감싼다. 과거의 결정이 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지울 수 없다.
조롱과 욕설에 침묵하며 농사짓고 반려 동물을 돌보는 삶. 이 전원생활을 보다 보면 천성적으로 정치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 난리 끝에도 조국 전 장관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차라리 대통령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동정과 비난 사이로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이는 <문재인입니다>가 영화적으로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듯 보이는 이유다. 아틀라스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프로메테우스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과중한 운명을 마주한 인간의 두 얼굴을 성공적으로 포착한 셈이다.
국문과 영문 제목의 괴리감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문재인입니다>의 영화 외적인 선택은 더욱 의아하다. 마케팅을 비롯한 선택 하나하나가 영화의 본질을 가리고 불필요한 논쟁과 소모전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제목부터가 문제다. 물론 전작 <노무현입니다>와 이어지는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열망이 읽히기는 한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 분량도 일부 있다.
하지만 <문재인입니다>라는 제목은 내용이나 메시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영화는 문재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통령직을 수행한 한 인간을 살핀다. 그런데 매개체에 불과한 문재인이라는 이름에는 수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 이름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는 한국 사회를 둘러싼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논쟁이 함축되어 있다. 이슈 하나하나가 찬반이 격돌하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탈원전, 한일관계 등. 즉, 문재인이라는 이름 석 자는 역으로 영화의 참뜻을 가려 버린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영문 제목인 <This is the President>가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본질에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다가간다. 잘못 번역된 외국 영화 제목이 오해를 초래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문재인입니다>는 보기 드문 반대 사례인 셈이다. 국문과 영문 사이의 괴리감은 영화 외적 요소가 평가와 해석, 감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어떤 이유 때문이든 과소평가한 결과처럼 보인다. 감독의 전작이나 정치적 성향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Poor 형편없음
의도는 흥미롭다. 그러나 방해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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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고 있던 삶의 감각과 진중한 사유의 장, <트립 투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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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삶의 감각들
지금과 같은 팬데믹을 관통하는 시기에, 영화 <트립 투 그리스>(2020)는 잊고 있던 감각을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우리는 무엇을 잊고 있었나. 밥을 먹으며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 휴가철을 맞아 떠나는 타국으로의 여행.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삶의 일부는 어느덧 감각하기 어려운 낯선 무언가로 변모했다. <트립 투 그리스>에서 영국의 배우인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그리스 전역을 돌며 매일 레스토랑에 들러 열심히 대화를 나눈다. <트립 투 그리스>는 ‘트립’ 시리즈의 종착역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트립’ 시리즈는 영국-이탈리아-스페인을 거쳐, 그리스에서 10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여행지로 초대한다. 롭과 스티브의 익살스러운 성대모사라든가, 수상 경력을 언급하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현실 속 배우들의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극영화의 허구성을 흐릿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정에 균열을 내는 순간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두 남자의 대화, 레스토랑의 고급스러운 음식들, 따사로운 그리스의 풍광들이 계속해서 감각기관을 자극한다. 오감을 건드리는 영화의 이미지들 가운데 낯선 무언가가 불쑥 끼어든다. 여행은 그 자체로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들을 잠시 잊게 한다. 특히나 그리스와 같이 다층적인 매력들로 여행자를 매혹하는 도시에서는 더욱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뚜렷이 느껴진다. 롭과 대화를 나누던 스티브는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할아버지가 위독하세요, 그래 알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렴. 비일상의 연속이던 여행지에서 스티브가 악몽을 꾸는 장면은 종종 흑백으로 처리된다. 죽음과 맞닿은 듯 보이는 아버지의 형상은 그를 결국 일상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한편으로 두 사람의 여정에 불쑥 누군가 끼어드는 상황 또한 영화를 흥미롭게 가공한다. 스티브와 함께 작업했던 난민 캠프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카림이 두 사람과 잠시 동행하면서 묘한 긴장감이 생성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관광지와 파인 다이닝을 곁들인 여행 코스에 난민 캠프라는 이질적인 공간이 은근슬쩍 편입된다. 카림은 자신이 하는 일을 상세히 설명한다. 카림에게 난민 캠프는 현실의 영역이자, 일상과 맞닿은 곳이다. 롭과 스티브에게 그리스는 잡지사의 미식 여행 기획안에서 비롯된 비일상의 여행지이지만, 카림의 현실이 은근슬쩍 개입되므로 두 사람의 여행이 함의하는 바를 어딘가 모호하게 만드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차에서 직접 내려 난민 캠프를 바라보는 롭과 스티브의 미묘한 표정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진중한 사유의 장을 환기하는
시청각적인 여행 대리 체험과도 같은 <트립 투 그리스>는 종종 방황한다. 서사성이 가미된 극영화의 리듬과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리얼리즘의 질감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 영화는 종종 균형감을 지키지 못하며 표류하기도 한다. 특정 대화 신(scene)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구간들 말이다. 하지만 <트립 투 그리스>는 그런 한계를 두 남자의 서사를 대비시키면서 생성하는 텐션으로 극복해 나간다. 롭은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들은 스티브가 급하게 집으로 떠나자 때맞춰 오기로 한 아내와 함께 그리스에서의 일정을 스티브 없이 마무리한다. 롭은 친구를 떠나보낸 상황에서, 아내에게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의 감정에 관해 가볍게 언급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가벼운 스몰 토크가 지배하던 영화의 초반부는 후반부에 이르러 사뭇 진지한 태도로 여행이 곧 인생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표면과 심연, 일상과 비일상이 혼재된 그리스에서의 경험은 결국 두 남자의 분화된 서사로 귀결된다. 아름다운 이국의 휴양지에서, 휴식과 대화로만은 온전히 채워낼 수 없는 짙은 무게감이 영화를 감싼다. 잊고 있던 삶의 감각을 깨우던 <트립 투 그리스>는 여행지라는 비일상의 공간을 경유하여, 진중한 자세로 죽음과 맞닿은 일상의 단면을 환기하며 여운을 남긴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은 '영화 <트립 투 그리스>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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