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2-19 10:52:49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웡카> 3주 연속 1위
<웡카> 3주째 1위, <건국전쟁> 70만 돌파, 예매율 1위 <파묘>!
2월 3주차 박스오피스 분석 시작합니다.
<건국전쟁>이 누적관객 수 7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웡카>가 3주 연속 주말 1위에 올랐으며 현재 추세라면 250만 관객을 넘어 300만 명도 가시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는 22일 예매율 11만 명을 넘어선 <파묘>가 개봉하면서 4주 차 박스오피스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밥말리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밥 말리: 원 러브>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혁명적인 음악으로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 시대의 아이콘 ‘밥 말리’의 전설적인 무대와 나아가 세상을 바꾼 그의 뜨거웠던 삶을 그린 감동 음악 영화며 국내는 3월 13일 개봉예정입니다. 한편 마블 코믹스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마담 웹>이 2위를, <아가일>이 3위를 차지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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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속 감춰진 ‘WOW’ 한 인생 스토리
정말 ‘WoW’한 인생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제목 그대로 평범하지 않은 질환을 가진 한 청년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 속 비범한 인생 스토리를 그린다. 가족도 몰랐던 이 청년의 삶은 저마다 고통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큰 의미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평생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게임을 즐기다 세상을 떠난 그의 인생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청년의 이름은 두 개다. 실제 삶은 마츠, 그리고 온라인 게임 내에서는 이벨린으로 불린다. 마츠는 태어나면서 뒤셴이란 근육 질환을 가진 채 태어난다. 어렸을 때부터 성장이 더디고 자주 넘어지는 건 물론, 휠체어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었으니 바로 ‘WoW’였다. 가족이 말릴 수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있었던 그는 안타깝게도 25살로 생을 마감한다. 부모는 아들의 부고를 그가 생전 운영하던 블로그에 올리기로 하고, 아버지 로버트는 글 하단에 메일 주소를 남긴다. 이후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로버트의 메일함에는 마츠를 향한 고마움과 명복을 비는 소식이 도착하고, 이로 인해 가족들은 아들의 또 다른 인생을 알게 된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첫째는 손만 움직일 수 있는 장애인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 둘째는 현실 세계가 아닌 온라인, 그것도 게임 내에서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감독은 마츠이자 이벨린의 믿기 힘든 삶을 오롯이 영상으로 옮기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두 고정관념에 쌓여 있는지를 확인시킨다. 그리고 주인공의 온·오프라인 삶 속 비범함을 일깨운다.
일단 마츠의 삶은 암울하다. 점점 죽어가는 근육처럼 마츠의 인생도 점점 행복을 잃어간다. 하지만 ‘WoW’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뒤바뀐다.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말처럼 그는 온라인에서는 실제 모습이 아닌 다른 역할로 살아갈 수 있다. 마치 <아바타>의 제이크(샘 워싱턴)가 아바타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자유롭게 걷고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그가 온라인상에서 탐정 이벨린으로 살아가면서 페이커처럼 영웅적 성과를 올리는 것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함께 게임을 하는 유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도 했다. 게임을 통해 빚어진 부모와의 갈등을 봉합해 주고, 자폐증 아들과 소원해진 엄마의 고민을 듣고 이를 도움도 준다. 마치 대화하면서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말했던 이벨린의 고마움은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 그만큼 마츠는 이벨린이었을 때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긍정적 요소만 나오는 건 아니다. 마츠 또한 인간이기에, 자신과 달리 평범하게 사는 온라인 친구들에게 시기와 질투, 자격지심을 얻는다. 이로 인해 이간질을 서슴없이 하고,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불편한 행동을 일삼는다. 점점 죽음을 향해 가는 실제 삶의 고통이 온라인으로 번진 것. 이때 게임 속 친구들은 자신들이 받은 도움만큼 그에게 손을 내민다. 물론,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는 등의 과정을 겪기는 하지만, 결국 이들은 다시 이전의 관계를 회복한다. 마치 현실 속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런 마츠의 숨겨진 인생을 좀 더 흥미롭게 따라가기 위한 형식도 눈에 띈다. 감독은 실제 가족의 인터뷰와 홈비디오 영상을 통해 가족이 생각하는 마츠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게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영상 구현과 마츠의 블로그 글, 온라인 친구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벨린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는 실제 그의 삶을 보여준 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삽입 후 게임에 접속해 몰랐던 이벨린의 생각을 엿보고, 감정을 느끼게 한다. 형식 자체로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나눠 표현한 건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하며 좀 더 마츠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마츠의 숨겨진 인생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거시적인 성과의 기폭제가 된 건 아니다. 그냥 한 청년의 평범하면서도 놀라운 삶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제목에 낚였다고 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을 듯하다.
마츠는 이벨린으로 살면서 평범한 현실 속 자신을 온라인 상에서 투영한 것처럼 보인다. 현실이든 온라인이든 그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았다는 걸 영화는 오롯이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모습을 비범하다고 표현한 건 앞서 말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의해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장애인으로서 이런 삶을 살 수 있구나, 너드 커뮤니케이션으로써 활용되는 게임에서 이런 일들일 벌어지는구나 하는 놀라운 그러나 편협한 생각들. 이 생각들로 마츠의 삶이 비범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아이러니하지만 비범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그 순간, 비로소 이 작품이 가진 비범함을 알 수 있을 듯하다.사진 제공: 넷플릭스
평점: 3.0 / 5.0
한줄평: 온라인에서도 인생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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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십 년 지기도 결국, <완벽한 타인>
캐릭터 분석에는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품 분석 부분에는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1. 통제 심리 5점: 모든 상황을 제어하려는 듯한 모습
2. 눈썰미 4점: 쓱 보고 딱 아는
3. 법 지식 5점: 변호사의 면모
4. 표현력 2점: 각목 같아요
5. 무심함 5점: 뭔가 잘못된 문과와 문과의 만남
통제 심리, 모든 상황을 제어하려는 듯한 모습
친구들과의 약속에 갈 준비하기까지 3분 남았는데 왜 더 일찍 알려주느냐고 핀잔을 주는 모습부터 범상치 않았다.
아내의 화장 정도, 심지어 친구 부인의 옷차림까지 통제하려는 듯 신경 쓰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눈썰미, 쓱 보고 딱 아는
아이들을 맡기며 어머니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는 짧은 시간,
자세히 본 것 같지도 않은데 어머니의 헤어스타일 변화를 바로 알아채는 눈썰미의 소유자이다.
법 지식, 변호사의 면모
사법고시를 패스한 변호사.
깐깐한 성격에 법 지식이 더해져, 논리적으로 컨설팅을 해주는 모양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태수가 법 해석으로 도움을 준 적이 적어도 한 번씩은 있다.
표현력, 각목 같아요
굉장한 딱딱이. 심리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어릴 적, 영랑호가 바다냐 민물이냐를 두고 뜨겁게 논쟁하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무심함, 뭔가 잘못된 문과와 문과의 만남
아내는 취미로 문학 모임에 참여한다.
시를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이라는데, 모임에 가는 동안에도 자기 마음을 대변하는 감성적인 시를 읊는다.
하지만, 태수는 들은 척 만 척할 뿐이다.
이제부터 스포일러 주의!
굉장히 연극적인 영화.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우리나라에 맞게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워낙에 연극적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원작이 연극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라서 의외였다.'연극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영화 <맨 프롬 어스>와 유사한 특징이었다.
물론, <맨 프롬 어스>는 현실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철학적 소재를 주로 다루고 있고, <완벽한 타인>은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를 다루므로 더 몰입하기 쉬웠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연극적인 영화'라는 특징으로 인해 두 작품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많았다.집들이하는 친구의 집, 그 한정된 장소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영화를 보는 시간과 극 중 흘러가는 시간이 얼추 비슷하다.코스에 따라 요리를 바꿔 담아오는 시간, 월식을 감상하는 시간 등 잠시 쉬어가며 다음 사건의 발단을 준비하는 시간이 명확하게 주어진다.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연극적이다'라는 생각을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2021년 세종문화회관의 공연 라인업에 연극 <완벽한 타인>이 올라와있다! 2021년 5월~8월!
반갑고,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올해엔 불안에 떨지 않고 공연 관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세종문화회관 2021년 라인업
스포 없이 캐릭터 분석하기 참 어려운 작품.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우르르 나와 지루하지 않게 사건을 끌어나가는 작품.
그러나 캐릭터 분석을 하기엔 참 어려웠다.
한 인물에 대해서 분석해 글을 쓰려면 그 인물이 영화 전반에 걸쳐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언급해야 하는데, 이 작품을 리뷰하면서 작품 중후반부에 관한 내용을 최대한 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본다면 경악과 놀라움, 답답함 등을 아주 생생히 느껴볼 수 있을 테니까.
리뷰를 읽는 사람들의 생생한 영화 관람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어렵사리 선택한 캐릭터 '태수', 그에 대한 분석을 보면 다소 밋밋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아주 머리 아프지만 흥미로웠다.
친근한 배우들의 안 친근한 모습을 마주하는 재미.
삼시세끼, 윤식당과 윤스테이에서 더 많이 봤던 이서진 배우와 유해진 배우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자니 어색하기도 했다. 또한, 스카이캐슬로부터 삼시세끼 속 이미지로 변신한 모습도 인상 깊었던 염정아 배우는 이 영화에서 또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영화,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에서도 자주 얼굴을 보여주던 배우들의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나보는 재미가 있었다.
경영을 잘하는 사람의 경영 못 하는 사람 연기, 리더십 있는 사람의 끌려다니는 연기,
그리고 다정한 사람의 안 다정한 사람 연기!
완벽한 타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뭐였을까?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타인이지만, 속을 파헤쳐보면 다치고 문드러지고 망가진 면이 보인다는 말?
아니면, 30년 지기 친구로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다고 여기던 사람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은 오직 완벽한 타인이라는 것?
과연, 계속 환상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영화 마무리 즈음, 식탁 위에서 반지가 돌아가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영화 <인셉션>에서 팽이가 돌아가는 장면과 매우 흡사해 보였다.
반지가 돌아가다가 월식이 끝난 달로 화면이 바뀌고, 집들이를 마치고 이상하리만치 좋은 분위기로 아파트를 나서는 친구들의 모습이 비친다.나는 이 장면을
만약 진실게임이 진행되었다면 관객들이 본 것처럼 난장판이 벌어졌겠지만,
진실게임을 하지 않고 평화로운 집들이를 마쳤다는 것으로 이해했다.하지만,
과연 이 꿈같은 난장판은 강원도 출신 4인의 친구들과 그 연인들의 다음 모임에서도
'만약'이라는 상상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서로 숨겨주는 비밀과 알지도 못하는 비밀들이 들통나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피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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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신들> 리뷰: 인간과 AI의 불안한 동거
씨네랩의 초대로 아내와 함께 용산 CGV에서 영화 <귀신들>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황승재 감독과 배우 이요원, 강찬희, 정경호, 오희준이 무대 인사를 했다. 영화 <귀신들>은 가까운 미래, 인간을 형상화한 인공지능(AI)들이 인간과 공존하는 이야기를 그린 옴니버스 작품이다.
황승재 감독의 <귀신들>은 다섯 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를 통해 인간과 AI의 경계를 흐리는 미래 사회의 불안을 그려낸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AI가 인간에게 가져올 충격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며, 기술이 가져올 불안을 현실감 있게 묘사한다.
영화는 AI가 인간의 외형뿐만 아니라 감정과 기억까지 모방하는 세상을 그리며, 과연 AI 시대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다섯 개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구조 덕분에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
영화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전통적인 공포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AI와 공존하는 미래가 마치 귀신과 함께 하는 것처럼 섬뜩하게 느껴진다. AI가 허상이라는 의미에서 귀신과 유사성을 가지니 영화의 제목이 왜 <귀신들>인지 추측하게 한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 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력과 심리적 긴장감이 돋보이는 <귀신들>은 공포영화를 넘어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현실과 맞닿아 있는 설정과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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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
영화 <로스트 도터> 포스터
로스트 도터 (THE LOST DAUGHTER, 2021)
장르 : 미국·영국·이스라엘·그리스, 드라마 │ 감독 : 매기 질렌할
출연 : 올리비아 콜맨(레다), 다코타 존슨(니나), 제시 버클리(젊은 레다) 외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22분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모성을 잃은 여자, 레다.
왜 하필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기간에 이 영화를 보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갖기 전에 잘 생각해보라는 신의 경고였을까. 이 영화는 아이를 키우는 환희와 즐거움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희생’의 무게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그것도 아주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말이다.
대학교수 ‘레다’는 혼자 휴가를 즐기러 그리스 해변에 왔다. 그녀는 모래사장에 책을 펴고 앉아 누구의 간섭도 없이 홀가분한 시간을 즐기려 하지만, 그곳에 놀러 온 또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대가족 단위의 시끄러운 어떤 가족들이다. 그 가족의 무리에는 한 젊은 여자가 있다. 서너 살쯤 된 딸을 키우는 듯한 그 여자의 이름은 ‘니나’. 어린 딸과 동행하는 젊은 니나에게, 레다는 자꾸만 시선을 빼앗긴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아름답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
레나에게도 니나와 같이 젊은 시절이 있었다. 이른 나이에 낳은 두 명의 딸도 있었다. 그러나 레다의 회상에서 그려지는 그녀의 젊은 시절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딸아이는 징징거리며 레다를 보채고, 레다는 그런 아이들이 지겹다. 유망한 대학원생이었으며 꿈이 있었던 레다에게 아이들은 축복보다는 힘겨운 짐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다 레다는 대학교수를 사랑하게 됐고, 그 길로 3년간 아이들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말이 통하는 지적이고 섹시한 대학교수, 아이로부터의 해방감. 그런 것들이 지친 레다를 유혹했고 환상을 갖게 만든 것이다. 물론 레다는 결국 아이들이 그리워져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일에 대한 죄책감까지 씻어지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 일을 벌인 지 십수 년이 지난 레다는, 뭔가에 씐 듯 해변에서 니나의 어린 딸이 가지고 놀던 인형을 훔쳐서 숙소로 가지고 온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행복을 잃은 여자, 니나
휴가를 즐기는 동안 레다는 니나와 부딪힐 일이 많았다. 니나가 잠시 어린 딸을 잃어버렸을 때 레다가 찾아다 준 날도 있었고, 딸 때문에 힘들고 불행하다는 니나의 하소연을 듣는 날도 있었다. 그녀와 만나면 만날수록 영락없이 레다는 자신의 젊은 시절이 겹쳐 보인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숙소로 훔쳐온 인형에 대고 자신의 젊은 시절과 두 딸들을 투영시켰다.
그러던 중 레다는 니나가 남편을 두고 숙소 종업원과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레다가 편해진 니나는 불륜남과 거사를 치를 수 있도록 숙소를 빌려달라는 부탁까지 청해오는데. 레다는 그러기로 약속은 하지만 석연치 않고, 그걸 모르는 니나는 기쁜 마음으로 숙소의 키를 받으러 온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 지겨운 일상을 벗으려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려는, 자신과 너무도 닮은 니나를 꾸역꾸역 남처럼 대하려 했으나… 레다는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네가 겪고 있는 그건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아이를 키우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 수도 있다고, 그 산물이 바로 나라고.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삶의 판도를 많이 바꾸어놓는 듯싶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이를 케어하기 위한 품이 들기에, 아이가 얼마나 예쁘냐 와는 상관없이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는 모든 엄마들의 소망이 ‘육퇴(육아 퇴근)’일 수가 없잖은가.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짓눌리는 것들
물론 젊은 시절 레나의 일탈과 방황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가보지 못한 자유의 길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가정을 저버리지는 않으니까. 다만 모성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 너무나 큰 인내와 희생이라는 요소가 있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하고 싶다. 레나에게도 니나에게도 그리고 모든 엄마들에게도 모두 비슷한 위기와 고비가 있었으리라 이해하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레나는 자신이 니나 딸의 인형을 훔쳤음을 고백한다. 다 큰 어른이 돼서 왜 아이의 인형을 훔치고 모른척했는지 니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관객인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아이를 버리고 3년간이나 외도를 했다가 돌아온 여자의 그 죄책감의 깊이를. 부디, 영원히 그 감정을 모르길 바라며 살 뿐이다.
* 해당 포스팅은, 씨네랩(CineLab)으로부터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언론 배급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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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7회 크리틱스 초이스 TV드라마 부문 <오징어 게임> 주요 3개 부문 후보선정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2022년 '제27회 미국의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의
주요 후보작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는 미국 방송영화비평가협회에서 선정하는 시상식으로
비평가들이 선정하는만큼 권위있는 시상식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올해 TV드라마 부문에 <오징어 게임>이 드라마 시리즈상, 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이정재),
그리고 외국드라마상의 총 3개 부문 후보에 올라서 화제가 됐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주요 부문 후보작들을 함께 살펴보실까요?
작품상
1.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 <틱,틱!..붐!>
3. <파워 오브 도그>
4. <듄>
5. <돈 룩 업>
6. <코다>
7. <리커리쉬 피자>
8. <킹 리차드>
9. <나이트메어 앨리>
10. <벨파스트>
▶ 정말 쟁쟁한 후보작품들이 많습니다. 얼마전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가 발표가 됐는데요. <듄>은 골든글로브에 이어 크리틱스 초이스에도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아마 이번 아카데미/오스카의 작품상 후보에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감독상
1. <리커리쉬 피자> (폴 토마스 앤더슨)
2.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3. <듄> (드니 빌뇌브)
4.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5. <나이트메어 앨리> (기예르모 델 토로)
6. <벨파스트> (케네스 브래너)
▶정말 감독상 후보군들도 쟁쟁합니다. 주목할 점은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감독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감독상 재대결 매치입니다.
1993년에 <피아노>를 연출한 제인 캠피온 감독과 <쉰들러 리스트>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다시 만났습니다. :)
남우주연상
1. <시라노> (피터 딘클리지)
2. <맥베스의 비극> (덴젤 워싱턴)
3. <킹 리차드> (윌 스미스)
4. <틱, 틱!...붐!> (앤드류 가필드)
5. <파워 오브 도그> (배네딕트 컴버배치)
6. <피그> (니콜라스 케이지)
▶ 오랜만에 남우주연상 후보로 돌아온 <피그>의 니콜라스 케이지입니다. 피터 딘글리지 배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배우들이 오스카 후보나 오스카 수상의 전적이 있는 배우들인데요.
과연 이번 크리틱스 초이스에서는 어느 배우가 수상할지 기대가 됩니다.
여우주연상
1. <타미 페이의 눈> (제시카 차스테인)
2. <하우스 오브 구찌> (레이디 가가)
3. <잃어버린 딸> (올리비아 콜먼)
4. <빙 더 리카르도> (니콜 키드먼)
5. <리커리쉬 피자> (알레나 하임)
6. <스펜서> (크리스틴 스튜어트)
▶<리커리쉬 피자>의 알레나 하임 배우가 수상을 할지 기대가 되는데요.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 모두 상을 받을 만한 자격과 실력이 있지만,
씨네랩의 예상으로는 <하우스 오브 구찌>의 레이디 가가의 수상이 유력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남우조연상
1. <벨파스트> (제이미 도넌)
2. <빙 더 리카르도> (J.K 시몬스)
3. <하우스 오브 구찌> (자레드 레토)
4. <벨파스트> (키어런 하인즈)
5. <파워 오브 도그> (코디 스밋 맥피)
6. <코다> (트로이 코처)
▶ <파워 오브 도그>의 코디 스밋 맥피는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쟁쟁한 남우조연상 후보 중에서 <벨파스트>의 2명의 배우들이 후보에 올랐네요.
남우조연상 수상도 <벨파스트>의 배우 중 한명이 수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우조연상
1. <벨파스트> (커트리나 발프)
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리아나 드보스)
3. <킹 리차드> (안저뉴 앨리스)
4. <파워 오브 도그> (커스틴 던스트)
5.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타 모레노)
6. <매스> (앤 다우드)
▶여우조연상 후보는 꽤 낯선 배우들이 많아보이지만, 올해 모두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훌륭한 배우들입니다.
씨네랩은 조심스럽게... <파워 오브 도그>의 커스틴 던스트의 수상을 예측해봅니다.
앙상블 연기상
1. <벨파스트>
2. <돈 룩 업>
3. <파워 오브 도그>
4.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5. <리커리쉬 피자>
6. <더 하더 데이 폴>
▶ SAG의 앙상블 연기상처럼 크리틱스 초이스에도 연기 앙상블상이 있네요. 아무래도 배우들의 합을 주요 수상 기준으로 보는 바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작품이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벨파스트>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수상 가능성이 높을 것 같네요 :)
각본상
1. <리커리쉬 피자> (폴 토마스 앤더슨)
2. <돈 룩 업> (애덤 맥케이, 데이빗 시로타)
3. <벨파스트> (케네스 브래너)
4. <킹 리차드> (자흐 바일린)
5. <빙 더 리카르도> (애런 소킨)
▶ 감독들은 본인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죠? 봉준호 감독도 대표적인 케이스이구요.
<리커리쉬 피자>의 폴 토마스 앤더슨도 천재 감독이자 각본가로 유명한데요. 폴 토마스 앤더슨 VS 애런 소킨 VS 애덤 맥케이의 삼파전이 예상됩니다.
각색상
1.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2. <잃어버린 딸> (매기 질렌할)
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토니 커쉬너)
4. <듄> (존 스파이츠, 드니 빌뇌브, 에릭 로스)
5. <코다> (시안 헤더)
▶올해는 <파워 오브 도그>가 평단의 엄청난 칭찬을 받으며 올해 영화의 다크 호스로 평가 받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VS <잃어버린 딸>의 매기 질렌할 감독이 대결이 눈에 띄는데요. 아! <듄>의 드니 빌뇌브 감독도 있네요. 각색상 후보군들도 정말 쟁쟁해서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외국어 영화상
1. <드라이브 마이 카> (일본)
2. <신의 손> (이탈리아)
3. <플리> (덴마크)
4.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프랑스)
5. <A 히어로> (스페인)
▶ 올해 외국어영화상 후보도 정말 쟁쟁합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인 것 같습니다.
올해 정말 많은 평단과 관람객의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외국어영화상까지 수상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씨네랩의 전신인 하이,스트레인저의 공동배급 작품입니다. 정말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입니다! :)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 중에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크리틱스 초이스 외국어 영화상의 수상도 간절히 기대해봅니다!
<오징어 게임> TV드라마 부문 총 3개 부문 후보
▶마지막으로 올 한해 전세계 콘텐츠 시청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자랑스런 대한민국 콘텐츠 <오징어 게임>의 크리틱스 초이스 후보 선정 소식입니다.
크리틱스 초이스는 영화 뿐만 아니라 TV드라마 부분의 수상도 진행되는데요. <오징어 게임>이 바로 드라마 시리즈상, 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 (이정재), 외국 드라마상 등 총 3개 부문에 올랐습니다.
정말로 축하드리며. 1월 9일 수상도 간절히 기도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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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뤽 다르덴 & 장 피에르 다르덴, 로제타 (1999)
뤽 다르덴 & 장 피에르 다르덴, 로제타 (1999)
- 와플 왕국 노동자의 평범한 삶
karenine
# 이야기를 시작하며
살면서 아주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어른다운 부모를 두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대학생 때부터 집을 뛰쳐나가 그야말로 신입생 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친구였다. 나는 그에 비해 관심도 애정도 통제도 많은 부모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사실은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 감각도 있으면서 아이를 적당히 외롭지 않게 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아버지는 성실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성실함은 할아버지로부터 왔다. 할아버지는 6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일을 하셨고 65세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중간에 크게 아팠을 때 빼고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가가 새벽에 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성실한 노동자 집안의 맏이인 나는, 고학력 실업자가 된 이후로 아무도 눈치 안주는 데도 눈치가 보인다. 예컨대 코로나 시대에 청년 취준생이 29만 명이라는 뉴스를 아버지와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에서 듣는 일은 참 불편한 일이다. 결국 다른 뉴스가 나올 때까지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오늘도 아침을 먹고 약간은 무거운 표정으로 출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무슨 부업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누군가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기도 했고 내가 직접 지원하기도 했다.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열심히 쓸 것이다. 뿌듯함은 잠시였고, 앞으로 내가 벌린 일을 수습할 생각에 아찔했다. 어릴 적엔 작가, 글 노동이라 함은 멋들어진 서막을 열면서(예컨대 등단, 문학상 수상, 등등) 시작하리라 예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로제타가 뒷문을 통해 리케의 자리를 몰래 염탐하듯이 궁상맞고 은밀하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리케의 자리를 바라보는 순간에, 언젠가는 사장의 여러 와플 가게들 중 하나의 점장이 되리라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메이저 지면에 기고하리라는 섣부른 야망을 가지면서 내 기분은 점차 상승했다가, 다시 땅에 내려앉았다.
# 로제타가 겪는 윤리적 각성
딸에게 양육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둔 로제타(에밀리 드켄)의 삶은 매일이 진창 같은 전쟁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맨몸으로 싸우는 육박전이다. 사실 로제타의 가장 큰 적군은 엄마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로제타가 남이 준 생선을 버리려고 할 때 딸에게 칼을 들이미는 '어미'다. 유아적이고 파렴치하며, 사창가의 여인 같기도 하고 돌아온 탕자 같기도 한,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제타의 생모, 어머니, 엄마.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은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이다.
로제타가 "나는 엄마랑 달라 Moi, c'est pas toi (*직역하면 난 엄마가 아니야.)"라고 선언하며 만들어가는 삶의 궤적은 철저하게 스토익하고 윤리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영화는 카메라 기법부터 어지러울 정도로 현장감을 그대로 가져오는 리얼리즘(핸드-헬드) 기법을 쓰고 있다. 반면 로제타의 삶의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감독의 목소리를 은연중에 대변하는 것과 같은 교훈적일 정도로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인물은 마치 순교자의 일생을 기록한 것처럼 의지로 가득 차 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물을 고지식하고 때로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며, 로제타라는 인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형성한다.
이 심리적 거리감이 철저히 전복되고 깨지는 것은 극 후반부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로제타는 이미 어떤 윤리적 각성을 한 소녀이다. 소녀는 엄마의 삶의 방식을 보고 겪으며 절대로 '엄마처럼 살아가는 건 안 된다'라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사회로 나갔을 때 더 넓은 층위의 문제에 직면한다. 자신을 돕고자 하는 리케(파브리지오 롱기온)의 선의를 어디까지 받아야 하는지, 비슷한 처지나 좀 더 나은 처지인 그가 동료인지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인지를 로제타는 아직 판단하지 못한다. 동료 노동자는 그녀에게 자리를 뺏을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자 적이다. 지난 직장에서 경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동료의 모함 때문에 그렇게 허무하게 해고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J'ai une vie normale (나는 평범한 삶을 산다)
그런데 리케가 엄마와의 몸싸움 때문에 잃어버린 장화를 주었을 때, 로제타는 그날 밤 비로소 그를 '친구'라고 부른다. 머릿속에 생존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찬 소녀에게는 집에서 재워주는 것도, 오토바이로 태워서 데려다주는 것도, 토스트를 구워주는 것도 아닌, 자신의 생존품인 장화를 주는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일 것이다. 전쟁통에서 군화를 잃어버려 행군을 못하는데 군화를 도로 찾아준 이에게 느끼는 전우애랄까. 그런데 리케의 사정은 다르다. 로제타가 리케의 눈을 안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 리케가 그녀에게 인간적인 호감 이상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로제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눈치를 챘을 것이다.
위에서 로제타에게 갖게 되는 이상한 심리적 거리감은 후반부에 가서 어떤 강렬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휘몰아치고 부서진다. 로제타는 장화를 준 리케가 물에 빠졌을 때 '나 말고 저 사람이 대신 물(진창)에 빠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잠시 한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현실인 것은 계산대에 있는 사장의 돈을 훔칠지 고민하는 것도 아니고 와플을 빼돌려서 수익을 남길지 고민하는 것도 아닌, 내 생존을 위해 다른 노동자를 그 자리에서 악의적으로 제거해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점이다.
로제타는 남의 것을 훔치고 구걸하는 게 나쁜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철두철미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존엄을 해치지 않으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의지로 투철하다. 또한 카라반(트레일러)의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보통의 삶으로 정착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정작 타인의 선의를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지, 같은 노동계급의 동료와 어떻게 공존하고 연대를 이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각성은 로제타가 한 번도 맞닥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늘 대체되는 사람이었으므로.
리케가 해고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로제타는 자신이 당했던 '부당한' 해고를 리케에게 덮어 씌움으로써 자신이 당했던 피해에 대한 복수에 성공한다. 갑자기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 대사가 떠오른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그리하여 그녀는 꿈에 그리던 생산-판매라인의 가장 끝에 오르게 되고, 생전 가장 많은 돈을 만져보게 된다(갖게 된단 소린 아니다). 그러나 사장에게 얻은 신뢰도, 안정적이고 그럴듯한 직장도, 일하면서 그녀의 입가에 걸린 작은 미소도, 리케가 눈앞에 한번 나타나는 순간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 밥벌이의 즐거움과 슬픔
이 영화는 와플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벨기에 출신의 감독들이 만든 영화에 와플이 주연으로 나오는 것은 차라리 어떤 유머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감독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네 벨기에 하면 솔직히 와플밖에 모르지? 와플 말고 벨기에에 대해 아는 게 있나? 그런데 와플 왕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사실 이렇단다.'
와플은 영화 속 다양한 상황에서 등장한다. 첫 등장은 로제타가 해고당하고 얼굴이 벌게져서는 씩씩거리며 와플을 먹는 장면이다. 출근길에 사람들이 하나씩 사가는 아침 대용으로도 나오고, 직장에서 갓 잘렸어도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는 음식이 바로 와플이다.
영화는 특별할 때 먹는 디저트로서가 아니라, 일용할 양식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와플을 보여준다. 이로써 관객들은 와플 생산-판매 라인에 대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나는 벨기에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왠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일상식인 김밥이나 토스트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벽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김밥을 마는 분주한 아침. 출근하는 손님들의 손에 하나씩 들려가는 김밥들과, 철컥 소리가 나며 열고 닫히는 계산대의 소리. 이것은 벨기에식 밥(빵?)벌이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초상화이자 그 뒷단의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지에 대한 성찰과 고발이다.
호흡이 가빴던 도입부에 비해, 와플가게 사장(올리비에 구르메)이 로제타에게 일을 알려주는 장면은 평화롭기까지 하다. 어떨 때 우리는 지긋지긋한 집안에서 벗어나 노동의 리듬 안에서 가장 큰 평화를 찾기도 한다. 로제타의 경우, 그녀에게 버거 워보이는 밀가루 포대를 제법 잘 들어서 반죽에 능숙하게 섞는다. 언뜻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되는 어떤 노동의 배움에 대해서 보여주면서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도 잠시, 로제타는 사장 아들에게 또 밀려나고 만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는 로제타 눈에 비친 와플집 사장, 즉 소부르주아지의 고단함 또한 응시하고 있다. 이것이 다른 영화에서 굉장히 양극화된 계급 묘사와는 사뭇 달랐다. 이미 12개의 점포를 가지고 로제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 것 같은 사장도 실은 무거운 밀가루 포대의 무게 앞에서 쩔쩔맨다. 그 또한 매일같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사장은 부양 의무가 있는 책임감 있는 부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식을 위해 성실한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이렇듯 밥벌이에서 어떤 선택의 순간들은 매일같이 찾아온다. 마음이 불편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야 되는 선택들이 있고 그것이 우리를 지치고 찌들게 만든다.
참고로 올리비에 구르메는 몇 년 뒤 <아들(2002)>이라는 다른 다르덴 영화에서도 소년들에게 목공일을 가르치는 역할로 나온다. 이 때도 무뚝뚝하지만 은근히 마음은 약하고, 자신의 상처와 지친 삶을 내색하지 않고 내면에 간직한 사람의 역할이 정말 잘 어울렸다.
# 다르덴 영화가 유머를 다루는 방식
슬프고 처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임에도, 나는 이 영화가 유머를 잃지 않았음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유머는 아주 머쓱해지는 뚝 끊김, 갑작스러운 포즈(pause)에서 나온다.
리케네 집에 갔을 때 리케는 그 어색한 공기 속에서 어떻게든 아이스 브레이킹을 해보려 하지만 좀처럼 로제타는 장단을 맞춰주지 않는다. 리케는 음악을 연주하고 들을 만큼 아주 약간은 숨 쉴 틈이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주 법대로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암시한다.
하지만 이윽고 우리는 그에게 변변한 진짜 음반도 하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인이 직접 녹음한 연주 테이프를 들으며 어떻게든 흥을 돋우려는 이 남자아이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로제타는 못 이기는 척 리케가 연주한 이상한 드럼 곡에 맞춰 춤을 춘다. 흥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할 찰나, 갑자기 음악이 뚝 끊긴다. '어, 내가 여기서 틀린 것 같아.' 그리고 연주는 다시 시작되지만 한번 끊긴 '무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 3 안에 꼽을 수 있다.
로제타가 진 삶의 무게는 밀가루포대-엄마-가스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무거운 것들 앞에서 로제타는 한 번씩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마지막 결말 부분의 그 안타까운 순간마저도, 영화는 절묘한 순간에 포즈(pause)를 주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로제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갑자기 가스가 끊기는 장면이다. 죽으려고 할 때까지 가스통을 사서 끌고 와야 한다니. 영화는, 죽을 권리도 돈을 지불해야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강렬한 쓴웃음을 짓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리케의 얼굴을 정면으로 안 보여주는 것은, 로제타를 구원한 사람이 리케, 즉 남성-노동자라는 메시지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라고 짐작한다. 로제타가 마지막으로 삶은 달걀의 껍질을 깨듯, 그녀의 내면에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 끝엔 후회의 쓴맛과 현실에 대한 절망이 뒤따른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깨짐을 통해서 로제타는 자신의 과거와, 또 타인인 리케와도 화해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로제타의 두 눈빛을 통해 그녀가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음을, 아직 자신만의 무인도에서 죽을 힘을 다해 구조 신호를 쏘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마치며
<로제타> 영화가 나온 이후 벨기에 정부의 로제타 플랜은 반짝 효과를 내고 몇 년 만에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 정부가 청년 정책 하며 내놓는 취업지원금이나, 이런저런 임시변통의 대책들도 저렇게 별 효과 없이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질 게 뻔하다.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는 각자가 견디고 자구책을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까진 이 광활한 진창을 없애기 힘드니 최대한 덜 빠지도록 조심하고 자신의 몸과 정신을 드라이로 말리듯이 항상 건조하게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가 준 가장 큰 교훈이 그것이 아니던가. 극악한 환경을 만들어놓았으니, 알아서 생존하시오.
가끔 현실이 팍팍할 때 이 영화를 꺼내어 볼 것 같다. 그 이유는? 에밀리 드켄의 출중한 연기나 블랙 유머 코드 때문에? 아니면 나를 물웅덩이에 밀쳐버리는 엄마가 없으니 차라리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왠지 '진짜 일을 하고 싶어'라는 그녀의 대사를 되새기기 위해 이 영화를 다시 볼 것 같다.
'진짜 일'이란 당최 무엇인가. 최근에 친구랑 통화를 하다가, 친구가 너는 사랑에 있어서 더 원(the one), 일종의 운명적인 사랑이 있냐고 물은 적 있다. 나는 속으로 워너원도 아니고 그게 뭐냐고 생각했으나, 내 속마음은 반반인 것 같다.
친구 말마따나 일에도 나만의 더 원이 있을까? 일찌감치 어떤 직업에 소명 의식을 찾은 사람들이 갑작스레 부럽다.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일'을 찾느라 분투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어떨 때는 아무 일이든 좋으니 일감만 달라고 하다가도 일하게 되면 좀 더 큰 욕심을 품는다. 아무리 같은 돈을 받아도 뒷단의 구질구질한 일은 하기 싫고, 내가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고,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 운명적인 사랑을 찾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일을 찾는 것이 어렵겠다 싶다.
덧, 글을 쓴다고 아직 집에다 말하지 않았다. 그 돈을 버느니 본업에나 충실하라는 말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걸 상상하니 욱하는 마음이 들지만 로제타의 구제불능 엄마를 생각하면서 참아야겠다.
[Eurofilm 6. 벨기에, 프랑스]
<이미지 출처>
www.bonjourtristesse.net/2010/12/rosetta-1999.html
www.simbasible.com/rosetta-movie-review/
https://www.etsy.com/listing/192831475/rosetta-limited-edition-movie-poster
https://www.ioncinema.com/reviews/criterion-collection-rosetta-blu-ray-review2020년 11월 23일 감상 / 2020년 11월 25일 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karenine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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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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