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2-19 10:52:49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웡카> 3주 연속 1위
<웡카> 3주째 1위, <건국전쟁> 70만 돌파, 예매율 1위 <파묘>!
2월 3주차 박스오피스 분석 시작합니다.
<건국전쟁>이 누적관객 수 7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웡카>가 3주 연속 주말 1위에 올랐으며 현재 추세라면 250만 관객을 넘어 300만 명도 가시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는 22일 예매율 11만 명을 넘어선 <파묘>가 개봉하면서 4주 차 박스오피스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밥말리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밥 말리: 원 러브>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혁명적인 음악으로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 시대의 아이콘 ‘밥 말리’의 전설적인 무대와 나아가 세상을 바꾼 그의 뜨거웠던 삶을 그린 감동 음악 영화며 국내는 3월 13일 개봉예정입니다. 한편 마블 코믹스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마담 웹>이 2위를, <아가일>이 3위를 차지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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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를 잊는 시인의 여백으로 매운 시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미자는
시를 써보고 싶다.
자꾸만 단어를 잊지만
단어들을 주섬주섬 기록한다.
병원에서 본 어떤 사건,
그녀의 손자가 저지른 어떤 사건,
이후 그녀가 해야 할 어떤 사건들이
겹쳐지며 이야기를 잇는다.
단어를 잊는 시인의
이야기는
끝내 함구하며 이어지는데,
그 여백이 만든 운율은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시각적으로든, 청각적으로든 여백이 가득한 이 영화는 암울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끝없이 반복되며 패러프라이징되는 이야기들은 또 다른 운율을 만든다.
예컨대, 병원에서 우는 여자와, 밭일을 하는 여자, 사과를 받는 여자의 세 이미지는 병치되고 반복되며,
같은 여자에게서 전혀 다른 얼굴들을 발견케 한다.
같은 현상을 다르게 보는 것
하지만 그에 딱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것
반복되는 시도와 실패는
이 영화를 시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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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치밀하고 꼼꼼하게 덫을 팠다
잊힐 때쯤 돌아온 우리나라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우리나라에 OTT가 정말 많다. 디즈니플러스도 있고 쿠팡플레이도 있고 왓챠도 있다. 다 가지각색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왓챠의 <좋좋소>와 <시멘틱 에러>, 쿠팡플레이의 <안나>, 티빙의 <돼지의 왕> 등등 방송사 드라마의 퀄리티를 상회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이 유행의 선두주자는 단연 넷플릭스다. 작년 <오징어 게임>으로 초대박을 치더니 <지옥>은 국내에서 좋아하는 평론가도 있을 정도로 웰메이드 드라마를 쏟아내고 있다.
넷플릭스라는 OTT가 가지는 장점이 있으니 이는 시너지가 분명하다. 다른 나라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넷플릭스. 이 덕에 <종이의 집>이나 <퀸즈 겜빗>까지 다양한 나라들의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이런 쉬운 접근성이 완성도와 관련이 있을까? 뭐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지만 좋은 건 세계가 방구석에 앉아서 우리의 컨텐츠를 보고 감탄할 수 있으니 2022년을 사는 우리나라는 이점을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2022년 6월, 넷플릭스에서 우리나라에서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바탕으로 스페인 드라마 리메이크작을 발표했다. 통일이 된 대한민국에 강도사건이 일어났다.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 큰 일
20대 중반, MZ세대의 한가운데에 있는 나지만 난 방탄소년단의 음악 5곡 이상을 알지 못한다. 물론 훌륭한 보이그룹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근데 이 사람은 달랐다. 북한에 살던 주인공 홍단이는 아미의 회원이라고 한다. 헤드셋 끼고 계단에서 춤추는 것도 창피하지 않나 보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덕후로 살아남기란 어렵다. K-POP의 팬으로 그렇게 아슬아슬한 덕후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왠지 모르게 덕업 일치가 성사된 느낌이 든다.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에서 끝나는 수준이 아니었던 그녀. 홍단은 알고 보니 직업 군인이었다. 그렇게 군 복무를 지속하던 홍단. 이때, 사건이 터졌다. 통일이 된다고 한다. 모두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일이 벌어졌다.
남북한은 '공동 경제구역'을 만들어 조폐국을 만들었다. 지금 당장 나라를 합쳐 운영하기엔 걸린 제약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일단 조폐국을 만들어 통일 진행에 있어 바운더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조폐국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부서는 돈을 찍어내는 곳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조폐국에는 직원이 있다. 웬 중년의 아저씨는 시선을 어디로 둘 지 불안정하다. 시선이 도착한 곳은 미녀 여직원이다. 나 자기 보고 싶었어. 남자와 여자는 뭔가 숨어 지내야만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남자에게 말한다. 나. 당신 아이 임신했어요.
드라마는 조폐국 외부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통일 한국에 살던 교수라는 남자는 강도단을 모으고 있었다. 교수의 목표는 조폐국이었다. 홍단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홍단은 이 강도단에 영입됐다. 서로 신상정보도 모르는 채로 '도쿄' '베를린' '나이로비'와 같은 주요 수도국으로 닉네임을 정한다. 그렇게 계획을 실제로 움직이는 강도단. 하회탈을 쓴 채로 조폐국을 잡고 인질극을 벌이는 데 성공한다. 그 인질 중에는 불륜 중에 아이를 임신했던 영민과 미선이 있었다. 이 긴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남북한은 경찰을 꾸려 협상팀을 만들었다. 북한의 차무혁 대위와 선우진 경감은 이 사태에 맞서 인질극을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만전의 노력을 기한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파트 1의 1화 내용이다. 앞으로의 줄거리도 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장점이 분명 있어
시놉시스를 내 나름대로 쓰며 느낀 건 소재가 굉장히 신선했다. 보면서는 못 느꼈는데 이런 키워드의 드라마/영화가 몇 편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소재를 잘 구현하듯 드라마의 강점은 시각화와 사운드 활용이다. 일단 하회탈이라는 소재 잘 골랐다. 그 묘하게 기괴한 무드를 표현한 느낌이 좋았다. 또 인질과 강도단이 입는 옷의 색감, 조폐국의 비주얼화까지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좋았다. 또, 통일 직후에 그냥 생각 없이 '다 잘될 거야' 식의 묘사가 아니라 조폐국이라는 중간 바운더리를 제시해서 상상력에 힘을 부여한 것도 좋았다. 감독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사운드 편집에도 강점을 가졌다. 이 드라마의 다른 강점 중 하나는 액션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액션 생동감에 사운드가 한몫을 차지했다. 피 터지는 소리, 펑 발포하는 소리까지 배우들의 고생뿐만 아니라 제작진분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 드라마를 보다 보면 BGM이 좀 자주 들린다. 이때 자주 들린다는 것도 3화 좀 넘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이 말은 즉슨 적재적소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냈다는 뜻이 될 것이다. 특히 교수와 선우진 경감과의 인물관계를 묘사할 때 삽입됐던 OST가 기억에 남는다. 연출의 디테일함이 빛났던 부분이다.
또 이 드라마의 강점은 이야기 전개다. 어느 부분에서는 그동안 봐왔던 범죄물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양 진영 간의 두뇌싸움 묘사가 빛을 발했다. 어느 부분은 '아 이거 이렇게 반전 있을 듯' 생각하다가도 '헉' 싶은 부분도 있으니 나름 서사의 꼼꼼함이 장점으로 발현된 셈이다. 그냥 단순히 기발한 방식으로 논파해서 생각 외의 문제 해결 솔루션이 쨘하고 나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 각본이 하나 둘 단계들을 잘 닦아놔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 전개에 시점을 철저하게 맞춰 의외의 반전에 타격감을 부여하니 이 역시 연출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이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도 하는 부분이 6화 안에서 대응을 이루는 부분도 있어서 이 나름대로도 극의 개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이 드라마가 공개되고 2일이 지났다. 이미 많은 분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 드라마 관람 후기가 떴을 것 같다. 그리고 많지 않겠지만 적지 않은 평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평을 반영할 때 1화의 조악함은 좀 심각하다. 일단 1화의 극초반부 장면은 홍단이 시청자들에게 방탄소년단의 팬임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리고 계단에서 춤을 춘다. 텍스트라서 춤을 추는 모습을 묘사 못 하는 게 애석할 정도다. 이 부분 보고 끄는 사람 적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버닝>에서 그레이트 헝거를 찾으며 안무를 보여주던 배우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의 공감성 수치다. 뭐 '아미'라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하면 후의 액션이 어색하지 않게 된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굳이 이런 방식으로 안 만드는 게 나은 장면을 넣어 인물의 성격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가? 는 의문점이 든다. 그리고 홍단이 총기류 다루는데 능하다는 특성을 굳이 방탄소년단의 음악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지도 않다. 그냥 직업군인이라고만 제시해도 후반부의 이야기 전개에 아무 지장이 없다. 또 K팝의 팬이라는 설정 하나에 좀 많은 상황을 퉁 치고 넘어가는 감이 있다. 뭔가 그럴듯한 이유 없이 인물의 운명을 가로지르는 일들이 많이 오고 간다.
또 대사의 디렉팅 톤이 다 이상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나아지긴 하지만 뭔가 후시녹음을 한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유지태, 김윤진, 전종서, 김성오, 박명환 같이 영화, 드라마에 나와서 검증받은 배우들이 다 따로 노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얼마 전에 <브로커>를 보면서 느꼈던 부분인데, 문장이 번역체 같다. '혼자 재미보고 싶으면 가서 딸이나 쳐' '너 같은 피라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해' '뽀시래기 입장' '전방 500M. 대기들 타시고' 이런 대사들은 일반인이 쓴 문장 같다. 굳이 거기서 한 인물이 '재미보고 싶으면~'이란 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 또 '뽀시래기 입장'같은 대사들은 우리 영화 팬들이 사랑해 머지않는 대사인 '선수 입장'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각본에서 쓴 대사 문장들이 한동안 안 쓰던 것들을 차용하다 보니 1화에서 주는 난이도가 더 업그레이드된다. 이게 단순히 대사에서 오는 오글거림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 톤이 다 따로 논다. 이 어색함은 보는데 몰입이 안 될 정도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D.P>의 신선함을 기대했던 구독자들에게 하차의 충동이 느껴지는 부분으로 기능하기 충분하다.
넷플릭스 공무원과 그냥 공무원
그렇게 초반부를 넘어가야 보이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끝까지 볼 가치가 있다. 일단 베를린 역을 맡은 박해수 배우의 퍼포먼스가 놀라웠다. 최고 작은 역시 쌍문동 천재 <오징어 게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본작의 베를린은 그렇게 큰 변화가 없는 목소리 톤으로도 청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인물이 갖고 있는 특징은 광기다. 근데 광기에 살짝 구멍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살짝 안 맞을 수도 있는 캐릭터 설정을 베테랑 배우의 노련함으로 돌파한다. 1화와 2화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이 박해수 배우의 흡인력으로 주파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후반부에 이 인물의 연기 내공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아마 6화까지 보고 시청자 분들의 머릿속에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또 유지태 배우의 연기는 오해하기 쉬울 것 같다. 앞서 쓴 '따로 노는 대사 톤'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교수 역이다. 지나치게 설명하는 느낌, 인위적인 톤까지 얼핏 보면 가장 크게 다른 역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 교수 성격상 조폐국 밖에서 오더를 내리는 형식이라 이 고립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가장 결정적으로, <올드보이>와 <봄날은 간다>에서 볼 수 있었던 임팩트와 거리가 있는 느낌이라 글쓴이가 처음 볼 때는 ? 싶었다. 그러나 극이 전개되면 될수록 이 역은 유지태 배우가 갖고 있는 자산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5~6화가 되면 이 인물의 입장이 제시된다. 이때 표현해야 할 인물의 이중성을 눈빛, 목소리톤으로 소화해낸다. 새삼 놀랍지만 유지태 연기 잘하는 배우다.
무난하게 보기 좋아
워낙 명성이 자자한 원작이 있다. 이거 굳이 원작 안 봐도 된다.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보시는 것 추천한다. 이게 나중에 찾아보니까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원작을 알던 분은 이 장면이 어떻게 바뀌었고 우리나라 화 됐는지를 꼼꼼히 챙겨보는 재미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종서, 유지태, 박해수 같은 배우들이 강도단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도 팬들 입장에서 장점으로 발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김지훈 배우가 이런 사람이었어? 하는 놀라움과 이주빈 배우의 미모도 드라마의 강점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근데 뭐 이런저런 걸 빼서라도 갈등구조나 긴장감 묘사, 사건전개 속도가 탄탄한 강점인 드라마 충분히 무난하게 보기 좋다. 1화의 초고난이도 진입장벽만 버틴다면 파트 2를 기다리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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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진실과 진심 사이에
감독] 임찬익
출연] 이주승, 아디나 바잔(Adina BAZHAN), 구성환, 조하석 등
프로그램 노트] 다큐멘터리 조연출 승주는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 꿈이지만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도 역시 조연출 신세로 고려인 결혼식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승주. 그러나 감독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예정된 촬영을 하지 못하고 제작비만 날리고 만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면 승주의 연출 입봉작을 제작하겠다는 대표의 말에 승주는 가짜 결혼식 촬영을 계획한다.
목표가 간절할수록 처해 있는 현실은 더욱 괴롭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유혹에 쉽게 빠지기 마련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이룬 목표는 달콤하기보다는 쓰디쓸 뿐이다. 자명한 인생의 진리를 전하는 이 작품은 카자흐스탄의 아름다운 풍광과 이에 어우러진 배우들의 따뜻한 연기로 그 메시지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승주가 가짜 결혼을 위해 선택한 카자흐스탄 이름 ‘다우렌’의 진정한 의미가 빛을 발하는 결말에 이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정엽)
선혈이 낭자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스크린 중에도 이따금, 부드러운 초록빛이 스크린을 메울 때가 있다. 좀비를 비롯한 이생명체의 공격, 디스토피아의 살벌한 세계관, 고어나 호러 영화를 전혀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자주 찾는 이유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라면 <다우렌의 결혼>이 꽤나 반가울 것이다. 이 영화는 처참한 장면 대신 말갛고 순한 장면으로 마음을 두드리니까.
일상을 군더더기 없이 연기하며 감탄을 자아내는 배우 이주승은 여기서도 적당한 피로와 타협으로 점철한 현대인의 얼굴로 포문을 연다. 난민촌을 담은 다큐멘터리라면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 보호 차원에서 이름을 적당히 가명 처리하고 가명임을 밝혀도 될 것 같은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조연출 승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책상 앞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대로 고민하며, 열심히 일상을 채운다.
꿈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분명 입봉이라는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데, 어쩐지 자꾸 꼬이고 박살나고 멀어지기만 하는 느낌으로 승주는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을 걷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이방인에게 기꺼이 자리와 음식을 내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얼굴만은 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실 고려음식 열전이었던가 싶어질 만큼 멋진 식탁 장면들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에도, 승주만큼은 뚱한 표정이다.
마을 잔치를 결혼식처럼 둔갑시키는 것도, 거짓 결혼식을 만드는 것도, 그는 내켜 하지 않는다. 진짜가 아니니까. 다큐는 진짜를 찍는 작업이니까. 그러나 도저히 물러설 길이 없다 싶자, 그는 결국 가짜 결혼식을 결정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결혼식이라고 믿는다면, 그럼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에 적당히 물러선다. 어쩌면 승주가 이 영화에서 처하는 갈등은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더 정확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인가 사실인가" 하는 질문과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진짜'라는 말의 범위를 가늠하며 영화를 보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는 때로는 진실, 때로는 사실의 의미로 통용되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혹은 진실과 사실에 대한 깊은 고뇌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다. 대신 진짜라는 말의 경계를 슬며시 녹이고 넓힌다.
순한 마음은 진짜다
샤슬릭을 굽는, 그러니까 음식을 만드는 연기와 냄새를 피우면서 결혼식 소식을 알린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 결혼식 소식을 전하고, 어쩌다 마주친 승주의 카자흐스탄 이름 '다우렌'을 연신 부르며 환한 미소로 축하를 건넨다. 그 입소문과 축하의 장면들은 하나 같이 순하기만 해서, 보는 내내 참 좋았다. GV에서 들으니 실제 마을 이장님도 그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던데, 촬영에 열려 있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게 드러난 모양이다.
상대와 나의 관계성이나 거기서 얻게 될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누군가의 행복에 마냥 기뻐하는 마음. 물론 거기에는 아디나가 그 동안 마을에서 쌓아 온 덕망이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그냥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합을 어여삐 여겨 주는 마음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그 순한 마음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다.
같이 옮긴 걸음은 진짜다
가짜 결혼으로 시작했지만 아디나와 승주 일행은 점차로 가까워진다. 기분 좋은 날, 바람 좋은 날 함께 둘러앉아 좋은 음식을 같이 먹고, 같이 걸어다니고, 같이 웃는다. 이러한 과정이 단순히 연인으로서의 과정으로 그려졌다면 이 영화를 굳이 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영화는 그런 진부한 멜로 서사 쪽으로는 힘을 주지 않았다.
가짜 연인 행세를 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애정이 꽃피는 드라마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으며, 심지어 가짜 결혼이라니 얼마나 올드한 틀인가. 이 영화에서 결혼이라는 틀은, 서로를 종속하는 폐쇄적 로맨스가 아닌 순한 동화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기능한다. 멜로 드라마라기엔 개연성이 흐릿하다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디나와 승주 각자의 걸음이 모였다 흩어지는 또 모이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으니까. 다소 거짓말 같은 엔딩도 그럭저럭 납득하게 되는 건, 그래 세상에 이런 이야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지기 때문이다.
마주본 눈은 진짜다
누군가의 방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의 꿈과 소원을 보는 것과 같다. 거기까지 보았다는 것은 상당히 가까운 관계일 때만 가능한 일이다. 순한 마음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같이 걷고, 그의 마음 한 자락을 엿보고, 그의 눈 속에서 자신과 같은 면까지 보고 나면, 이제 그 두 사람은 먼 사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상대에게 턱 튀어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상대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다우렌' 승주와 아디나가 서로를 보고 자신을 본 것처럼, 이 영화를 본 나도 다시 나를 본다. 푸른 갈치를 생각하면서. 나의 '진짜'는 어디에 있는지, 혹시 어디 그물에 걸려 빠르게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영화에서 '진짜'를 느끼게 한 것들은 모두 그저 진심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담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지만, 연출자 따로 감독 따로인 상황에, 아예 가짜 상황을 연출해 담는 상황조차 "다큐도 연출이라니까!" 하는 말에 어영부영 묻히는 상황에서, 그 말은 자꾸 삐그덕거리고 어긋나기만 한다. 대신 이 영화 내내 오롯이 빛나는 것은 진심이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욕심이 없어 희여졌"고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으며,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한 존재들처럼 조용히 새하얀 진심.
백석을 생각하니 더더욱, 이 영화의 배경에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1937년 척박하게 얼어붙은 땅에 대뜸 던져졌으나,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들. 거기서도 국수를 말고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 이 세월 다 가고도 그 마음은 그대로여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는 사람들. 어쩌면 이 영화에 묻어난 진심은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푸른 산과 너른 초원에 곱게 펼쳐진 이들의 톡톡한 존재감을 극장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17:00-18:23 CGV소풍 8관 (상영코드 431)
7월 5일 16:30-17:53 CGV소풍 4관 (상영코드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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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사회 현상으로서 비틀스와 나비
시놉시스
<오늘 우리가 했던 말>은 1965년 8월 비틀스가 셰이 스타디움 공연을 위해 뉴욕에 도착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은 현재의 순간이 되살릴 수도 없고, 잊혀지지도 않는 과거가 되는 때를 예견하는 비틀스의 동명의 곡에서 따왔다. 그러나 영화가 사용하는 레퍼런스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진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안드레이 우지커 Andrei UJICĂ
출연: Tommy MCCABE, Therese AZZARA, Shea GRANT, Sarah MCCLUSKEY
리뷰
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짧은 인터뷰에서 안드레이 우지커 감독은 60년대 미국 음악산업에 지대한 타격을 준 British Invasion을 오늘날 K-pop과 비교하며 <오늘 우리가 했던 말>은 비틀즈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비틀즈가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반증이라도 하듯, 영화는 시종일관 비틀즈가 아니라 비틀즈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6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훑는다. 뉴욕이 마비될 정도로 도로를 꽉 채운 사람들과 흥분을 이기지 못해 내지르는 고성들이 뒤섞인 호텔 앞은 가히 아수라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마치 소요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듯, 정제되지 않은 푸티지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유령처럼 언뜻 내비치는 인물화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프랑스 예술가, 얀 케비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10대 시절의 제프리(시인 제프리 오브라이언)와 주디(소설가 주디스 크리스틴)다.
영화는 제프리를 가이드 삼아 64년 비틀즈 방미 당시 뉴욕의 들뜬 분위기를 서술한다. 현실에 환상을 한 겹 덧씌운 영화 속 뉴욕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시원한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공원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해변에는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로히 햇볕에 취해있다. 그러나 관객은 곧 그러한 평화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깨닫게 된다. 공원에서는 오직 (백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해변에는 수영복을 입은 (백인)들만 한가로히 햇볕에 취해있다. 감독은 이러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모래 위에 빽빽하게 누워있는 백인들 사이로 수영하러 나온 흑인 모자를 비춤으로써 되묻는다. 뉴욕에 거주하는 수많은 유색인종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뒤로 이어지는 영상들-LA 흑인 폭동과 할렘의 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흑인 차별에 대해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프랑스, 어쩌면 알제리인의 인터뷰-은 관객 입장에서 다소 당황스러운 장면 전환이다. 이후로도 주디가 친구들과 부르는 비틀즈 팬송 외에 비틀즈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이거, 비틀즈에 관한 영화 아니었나? 팸플릿의 시놉시스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질 즈음, <오늘 우리가 했던 말>은 다시 비틀즈 공연장으로 향하는 제프리와 주디의 여정을 좇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라디오 스테이션은 계속해서 지금이 1964년임을 알리고, 주디는 비틀즈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친구들과 뉴욕 세계박람회(64년도 세계박람회의 주제는 '평화를 통한 이해'였다)를 구경한다. 영화는 끝까지 이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1964년은 비틀즈가 미국 대중음악계 최초로 공연장의 인종 분리를 철폐한 해이다. 1964년 9월 비틀즈는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잭슨빌 게이터볼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앞두고 인종이 분리된 상태로는 절대 공연하지 않겠다며 인종분리 정책에 완강히 반대했고, 결국 유색인종과 백인이 분리되지 않은 최초의 공연이 시행되었다. 비틀즈는 이후로도 공식적으로 미국의 민권법을 지지하며 6-70년대를 지배한 히피-반문화를 촉발시켰다.
비틀즈뿐만 아니라 30년대 재즈부터 50년대 엘비스까지 음악은 언제나 사회적 장벽을 부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 삽입된 할렘 캬바레 장면은 대중문화가 지닌 사회적 힘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흑인들 사이로 언뜻언뜻 백인들이 그들과 함께 춤과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통해 관객은 음악이 지닌 인류 보편의 환희와 즐거움을 체득한다. 제프리와 주디가 써내려 간 이야기에는 계속해서 나비가 등장한다. 변태하는 존재로서 나비는 새로운 시작과 변화를 상징한다. 우지커 감독은 "한쪽은 흰색의, 한쪽은 유색의 날개를 가진" 나비떼가 솟구쳐 오르는 이미지를 비틀즈의 공연장 영상에 접붙임으로써 음악을 통한 평화의 연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상영스케줄
2025.05.01(목) CGV 전주고사 1관 20:30 (상영코드:162)
2025.05.03(토) CGV 전주고사 2관 13:30 (상영코드:325)
2025.05.05(월) CGV 전주고사 2관 10:00 (상영코드:504)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2025.04.30~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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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칠갑 대잔치 말고는 좀 아쉽지 않았나
내가 극장에서 본 최초의 공포영화는 <고사 : 피의 중간고사>였다. 엄청 어릴 때 본 것이라 그런지 난 이거 되게 무서웠다. 지금이야 <고사 : 교생실습>과 함께 세트로 묶여 졸작이라는 평을 듣는 것 같긴 하지만 뭐 견문이 좁으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때 반전도 지금 생각하면 뻔하지만 꼬맹이 시절의 나에게는 어려웠다. 성적대로 학생들을 처형한다는 콘셉트이나 당시에 문제 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들을 잘 녹인 건 맞다고 생각한다. 편집이나 연기 디렉팅이 좀 오그라들 뿐.
그리고 난 지금 사회복무요원 일을 하고 있는 26살이 됐다. 영화 많이 봤다. '나 영화 좋아해!'라고 자주 말하고 다닌다. 시간이 지나니 나에게 많은 것들이 생긴 셈이다. 또 거의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고사> 시리즈의 후속작은 나왔다. 다행히도 3편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시리즈가 이어지긴 했다. 또 난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견문이 생겼다. 책도 다시 읽기 시작해서 '오잉?' 하는 개연성을 따지기에 충분하다. 이제 자극적인 비주얼에 내가 깔아뭉개 져 지는 그런 일은 드물다는 뜻이다. 이 뿐만 아니라 웬만한 잔인한 것에 막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그러진 않으니까 내가 무뎌지긴 한 것 같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이런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만 나이 먹지 않았다. 넷플릭스에서 <텍사스 전기톱 학살> 시리즈의 신작을 발표했다. 러닝타임은 82분. 홍상수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짧은 영화다. 원래는 야심 차게 이번 주 신작으로 다루려고 했지만 난 좀 별로였다. 이 장르영화의 팬 분들은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는 것 같긴 했는데, 아무래도 허술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쓸 것이니 이런 슬래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의 시청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요즘 유투버, 그러니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생겼다. 아니 사실 생긴지는 꽤 됐다. 그에 따라 많은 사회의 병폐들이 생겼다. <밀양>을 무슨 성접대에 관한 영화로 둔갑시키거나 <중경삼림>을 마약 중매업자와 경찰의 위험한 하룻밤으로 둔갑시키는 둥 유튜브는 조회수 장사에 최적화된 매체가 되어버렸다. 감독은 이러한 세태를 반영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멜로디 자매는 크리에이터다. 자매와 친구들은 텍사스의 한 마을로 도착한다. 한 집을 취재하려고 하는데, 그 집의 주인은 사실 그곳에서 취식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는 듯한 할머니. 계약서상의 문제로 그 집에서 내쫓기고, 그 보육원장에게 신세를 졌었던 과거의 연쇄살인마 레더 페이스가 살육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사랑하는 이를 해쳤던 몰염치들에게 복수극을 벌이는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영화가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매체인 건 맞다. 그동안 이 탭으로 글을 써오던 건 그냥 '아 이 영화가 이래서 좋구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나의 연출 장치(?)였다. 또한 영화가 무슨 메시지를 가져야 할 의무도 없다. <리코리쉬 피자>나 <펀치 트렁크 러브>만 봐도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로코 영화 아닌가. 근데 이런저런 걸 떠나서 생각해도, 이 영화는 대체 뭘 만들고 싶었던 걸까 의심이 든다. 소재는 1번에서 썼다. 1974년의 레전드 호러영화를 컴백시킨 것 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작품의 기획의도에 의문이 생기는 작품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뜻이다. 이는 분명히 각본상의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1974년의 전작을 안 본 것도 맞지만 일단 범죄자 레더 페이스의 설명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또 무슨 초능력자인가 의심이 드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일단 주인공이 너무나도 멍청하다. 너무 멍청해서 이해가 안 될 정도다. 뭐 공포 상황에 놓이면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 또 이런 호러영화가 그런 고구마 캐릭터 보는 맛으로 보는 게 근본 유지인 것도 잘 알고 있다. 근데 좀 인물 간의 인과관계가 초중반부터 삐걱대니 공포에 집중되는 게 아니라 일관성이 분산되는 느낌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보이는 분위기에 치여야 하는데 집중이 안되니 끔찍한 이미지들만 눈에 띄일 뿐이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 텍사스의 비주얼 구현 좋았다. 텍사스 가본 적은 없지만 실제로 가면 저럴 것 같다. 두 번째. 비주얼을 잘 구현했다. 목 잘리고 손 꺾이고 이런 거 되게 사실적으로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또 레더 페이스의 성격 묘사와 액션 좋았다. 아무튼 이런 장점도 분명하긴 하니 장르영화의 팬들이 좋아할 구석은 분명히 있다.
4.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무난하게 볼 수 있다.
5.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슬래셔 무비에 익숙한 분들은 그냥 보고, 잔인한 거 잘 못 분들은 그냥 안 보는 걸 추천한다. 좀 많이 고어하다.
6.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일단 2번에서 쓴 바와 같이 인물 간의 인과관계가 너무나도 약하다. 만약 길거리에서 당신이 전기톱 하나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어떨 것 같은가? 또 사람을 살인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목격한다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하는 게 우선 아닌가? 학살극이 꽤나 긴 시간 동안 벌어지는데 주인공 둘만 외로운 싸움을 펼쳐야 한다는 게 좀 납득이 안 됐다. 보안관이 오기 힘든 장소로 퉁치기엔 난 이 설정이 꽤나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레더 페이스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사람의 선택지가 그냥 납득이 안 된다. 너무 납득이 안돼서 오히려 클리셰를 따른 느낌? 내가 만약에 그 입장이면 난 선택을 두 번 세 번 할 필요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엔딩부다. 인물의 처지 자체를 그렇게 설정한 건 좋았지만 거기에 이르기 위해 선행해야 할 전제조건이 있겠지? 이 선행되어야 할 사건이 좀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2번에 쓴 것처럼 인물 간의 설명도 너무 약하다. 주인공 멜로디-라일라 자매가 굳이 할로의 지니 할머니를 쫓아낼만한 이유가 없다. 그냥 무리에 자연스레 휩쓸려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굳이? 이 사람에게 돈이 급하다거나 관심이 필요하다거나 그런 서사 없이 굳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선택지를 골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또 라일라는 영화의 초중반부에 테러를 당했던 인물로 묘사된다. 난 이거 왜 굳이 넣었는지 모르겠다. 전기톱 들고 다니는 미친놈의 피칠갑 잔치가 영화의 주요 플롯인데, 그거 없으면 극이 전개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일단 분량이 너무 짧다. 영화의 주요 지점을 넘어갔는데 러닝타임 30여분 남았다. 뭐 하려니까 끝난 셈이다. 굳이 러닝타임을 80여분으로 할 필요가 있나 싶은 플롯이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쓸데없는 것 잘랐고 무섭다라는 장점을 어느정도는 타고 있는것도 맞으니까. 또 3번에 썼던 바와 같이 비주얼적인 묘사는 좋아서 슬래셔 무비의 팬들은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각본의 구멍이 너무나도 많다. 전 시리즈들의 레더 페이스의 악랄함을 승계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그 외에는 좀 많이 헐거웠다.
7.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1974년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의 공식적인 속편이기 때문이다. 그거 외에는 딱히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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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의 숫자가 시간이 되는 순간
나이는 대부분 숫자에 불과하지만, '시간'이라는 의미를 품는 순간 그 이상이 된다. 11살의 키와 무게에서 보이는 것과 30대 초반의 시야는 다르므로. 어떤 시간은, 다시 말해 어떤 나이는, 직접 그때가 되어보아야 안다. 당시에 아무것도 모르고 넘긴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누구의 부족도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시간대가 달랐다. 영화 속 소피와 그의 아빠 캘럼이 그러했듯.
*아래로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름.
그리고 여행.
생각만 해도 밝고 경쾌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시원한 밤바다, 기쁨으로 그득한 웃음소리와 유쾌한 감탄사들 따위가. 소피와 캘럼의 여행은 어딘지 차분하고 점잖다. 튀르키예에 도착한 둘의 여행은 피곤에 절은 몸을 침대에 눕히는 것에서 시작된다. 잠든 건 딸 소피 혼자다. 침대 2개라던 방엔 왜 하나밖에 없는 건지. 여행 첫날 으레 겪는 사소한 꼬임.
이날 밤, 캘럼은 베란다 창을 닫고 한참 담뱃불을 붙이려 애쓴다. 이때 관람객 귀에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잠든 소피의 평온한 숨소리. 들리지 않을 숨소리에 맞춰 폴은 몸을 움직인다. 팔을 들어 올리고 몸을 비틀어 유연하게. 팔에 닿는 바람을 느끼는 것인지 몰라도 몸에 밴 듯한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캘럼은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거나 오락실에서 쓸 돈을 챙겨 오는 등 보호자 역할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신이 딴 데 팔린 모습이었다. 여행지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쉽게 낭만적으로 변하는지라 현실이 잘 들이닥치진 않아도 몇 상황으로 유추해 볼 순 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던 부녀. 캘럼은 한 구석에서 직원과 짧게 말을 섞는다. 이곳저곳 다 돌아다니다가 결국 고향이 그리워 돌아왔다던 남자. 고향은 그런 존재라던 말. 캘럼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런던으로 옮겨 가 삶을 새롭게 시작 중이다. 그에게 출생지는 고향이 아니었다. 편하고 돌아가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떠났는데. 뜻대로 잘 되진 않는 모양이다.
소피는 아이들이 자주 하는 '왜?'가 없다. 이유를 묻지 않는다. 침묵하면 침묵하는 대로, 답을 하면 답하는 대로, 그리 둘 뿐이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한 캘럼은 소피의 보호자이고, 보호를 받아야 할 소피는 캘럼보다 당차고 강해 보인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언밸런스한 조화를 갖췄다.
영화엔 교차 전환이 많다. 소피가 찍는 캠코더 속 캘럼과 자신. 캠코더 안 소피는 장난스러운데 캠코더 밖에서 똑같은 상황을 보자, 묵묵부답인 캘럼이 주로 보인다. 표정이 자세히 보이진 않는다. 거울에 비친 그들을 마치 주변 조형처럼 조명하므로.
이것 못지않게 의미심장한 컷이 있다. 여행 드문드문 나오던 플리커 컷. 어둑한 공간에서 강하지 않은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한다. 미친 듯이, 그래서 미칠 듯이. 그곳에서 캘럼은 춤을 추었다가 경악했다가 절규했다가 울부짖는다. 그러다 같은 공간에서 캘럼의 나이대와 비슷한 여성, 어른이 된 소피가 캘럼을 바라본다. 마치 과거 캘럼의 마음속을 지금의 소피가 들여본 것처럼.
우울에 잠식된 게 캘럼이라면, 이질감에 혼란을 느끼는 건 소피였다. 소피는 또래 친구들이 아닌, 거의 성인에 가까운 이들과 어울려 논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 나이 대 아이라면 할 법한 행동이나 말, 태도가 전혀 없다. 할 말과 하지 않을 말을 가려할 줄 아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찌 보면 캘럼보다 더 의연하게 상황을 컨트롤하는 것도 같다.
소피와 오락실에서 게임을 몇 번 하던 또래 남자아이. 마르코가 대뜸 소피에게 고백했다. 네가 좋다고, 너도 나를 좋아하느냐고. 소피는 아무 감흥 없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말한 후 둘은 입을 맞춘다. 소피는 눈을 뜬 채로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경험한다. 자신이 어울려 놀던 청년 무리에서 쉴 새 없이 입을 맞추던 여성과 남성들을 흉내 내는 것처럼.
지금의 소피는 아내가 있고 함께 키우는 아이도 있다. 그해 여름, 가장 옆에서 있으면서도 아빠의 우울을 짐작하지 못했던 건 그가 어려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기 바빠서가 아니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모습 중에서 자신에게 무엇이 맞고 맞지 않은지 분별하기 위하여.
결국 소피는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이고, 캘럼은 성장기가 지난 어른이기에. 시간대가 다른 둘은 함께 있어도 다른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캘럼 또한 소피의 이런 과정은 알지 못했을 테다. 어떤 일을 하든 소피가 다 이야기해 주길 바라도, 설령 소피가 다 이야기를 해도, 나 자신만 알 수 있는 게 있으니까.
'그때 몰랐다'는 것. 몰라서 미안하거나 슬플 게 아니라 당연한 게 아닐까. 각자의 문제에 분투하던 와중에 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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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겠어? 사랑이잖나, 사랑.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명대사 모음
:: BGM
My Life (feat HiTydes) by Broken Elegancehttps://www.youtube.com/user/BrokenEl...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 3.0 Unported —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
Music promoted by Audio Library https://youtu.be/1PPq8L3Q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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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풍운3> 예고편
두 영웅의 피할 수 없는 격돌!
가문의 해방을 위해 무술대회에 나선 임가의 ‘임동’과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임동’을 찾아온 광도무관의 ‘오운’
두 영웅의 엇갈린 운명이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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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부를 판 남자> 메인 예고편
자유, 돈, 명예를 원한 '샘'은 악마 같은 예술가 '제프리'가 던진 계약서에 서명한다.
계약은 바로 그의 피부에 타투를 새겨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평생 전시되는 것!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과 5성급 호텔, 그리고 톱스타급의 인기까지!
타투 하나로 180도 바뀐 인생을 즐기던 '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제프리'에게 팔아 넘긴 건 단순히 피부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