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3-20 16:55:36
우린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키리에의 노래>
코가 시큰거리는, 노골적인 치유의 방식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리에의 노래 KYRIE, 2023
일본 / 드라마 / 119분
감독: 이와이 슌지
우리는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 <키리에의 노래>
여기, 이름을 버린 두 소녀가 있다.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실패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로 살기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따라서 두 사람은 이름을 잊기로 했다. 이름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부여되는 명칭으로, 우린 이름을 갖게 된 순간부터 대체 불가한 단 한 명으로 살다 죽는다. 이름, 고작 한 단어지만 삶을 지칭하는 동시에 지탱한다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름값'은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인생값'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두 소녀가 버린 건 이름이 아니라 자기 삶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온 시간과 그만큼 쌓인 기억,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나 자신이다. 그렇게 대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마오리는 형형색색 가발과 선글라스 없인 살 수 없는 잇코가 됐고, 발레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던 어린 루카는 노래가 아니면 말을 할 수 없는 싱어송라이터 키리에가 됐다. 마오리와 루카, 잇코와 키리에. <키리에의 노래>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발버둥 치지만, 끝내 본래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를 맞이하는 이들을 담아낸다. 그 과정은 자연의 순리처럼 필연적이라, 익숙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어느 날, 거리를 걷던 잇코는 노상에서 버스킹 중인 루카를 한눈에 알아본다. 루카는 가발과 선글라스를 벗은 잇코를 보고 나서야 그녀가 마오리임을 알아차린다. 이미 과거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자신을 다시 소개한다. 대학생을 꿈꾸던 마오리가 왜 자신을 감추고 살게 됐는지, 루카가 어쩌다 노래할 때만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그들이 싱어송라이터 키리에와 그녀의 매니저 잇코로 만났다는 게 더 중요하다. 두 사람은 삶의 기준을 가수와 매니저로 잡고 함께 나아가려 한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만 했던 것처럼, 운명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주기적으로 과거 조각들을 끼워 넣는다.
시련과 고통의 집합체인 조각의 역할은 단순하다. 가수와 매니저로,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려는 두 사람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의도는 없다. 단지,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라 믿는 소녀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다각적으로 보이도록 노출할 뿐이다. 목적은 보여주는 것에서 끝난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겼으나, 이미 영화는 결정했다. 나아가 그 결정은, 이야기 내내 진득하게 깔린 키리에의 노래처럼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며 자리한다. (참고로, 그녀의 노래는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싱어송라이터 키리에의 이름은, 과거 루카의 언니 이름에서 왔다. 루카의 언니, 키리에에겐 약혼자(나츠히코)가 있었다. 의대 진학을 꿈꾸던 나츠히코는 고심 끝에 임신한 키리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지만, 쓰나미로 인해 약혼자를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키리에의 동생이 살아있단 소식에 루카만큼은 꼭 지키겠다 다짐하지만, 그마저도 꺾이고 만다. 자연재해만큼이나 단호하고 냉혹한, 법 때문이었다. 혈연관계가 아닌 자는 어린 루카의 삶에 관여할 수 없었다. 이후 루카가 나츠히코를 찾아오면서, 다시 그에게 루카를 돌볼 기회가 주어지지만, 또다시 현실 앞에 무릎 꿇는다. 그렇게 루카는 혼자가 됐고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키리에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다 마침내 잇코와 재회하게 된다. 키리에의 공연은 잇코의 뛰어난 매니저 활동으로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점차 키리에는 거리의 가수들이 찾는 아티스트로 소문나고 각자 따로 노래하던 이들과 동료가 되어 함께 공연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키리에의 노래>란 제목처럼 키리에(루카), 단 한 사람만 중심에 세운다. 키리에가 만나는 사람들의 서사는 주인공 성장 서사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될 뿐이다. 특히 잇코와 나츠히코의 과거와 현재는 키리에의 '과거가 된 오늘'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제 몫을 다하는데,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영향을 적지도 과하지도 않게, 딱 '적절하게' 준다는 점이다. 키리에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다. 그들은 키리에에게 선뜻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같이 아파하며 삶을 긍정한다. 악심을 품은 사람은 소녀의 곁에 다가오지도, 쫓아오지도 않는다. 그 힘으로 키리에는 내일이 아닌 오늘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된다. 슈퍼스타가 되는 것보다, 오늘 같은 하루를 내일도 똑같이 보내고 싶어 하며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소한 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규칙은 서로 주고받는 일, 그렇다면 그들은 환대에 대한 보답을 받았을까? 글쎄, 아무도 알 수 없으니 영영 모르는 일로 남는다. (영화가 의도한 각자의 몫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키리에는 바다 위에 뜬 부표 같은 존재다. 거센 물결에 이리저리 치여도 절대 뒤집히지 않는 불굴의 신념을 품고 있는 자. 나츠히코가 그동안의 일에 대해 루카에게 간절히 용서를 구할 때도, 사기 결혼으로 수억 원의 피해액을 낸 잇코가 한 피해자의 칼에 맞고 쓰러질 때도,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축제가 아수라장이 되어도 키리에는 중심을 잃지 않는다. 물론 키리에가 자기 역할을 알고 의식적으로 행동한 건 아니다. 그럴 정신도, 마음도 가질 수 없는 친구니까. 하지만 그녀는 성공적으로 모두의 부표가 된다. 오직 주인공에게만 한정된 '적절하게'의 효과다. 노골적인 따뜻함과 노골적인 치유과정‥ 전부 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코가 시큰해지는 걸 막을 순 없을 거란 감독의 자신감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잇코의 생사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키리에는 여전히 한 곳에 정착하지 않은 채, 홀로 버스킹을 한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노래하며 다시 매니저가 찾아오길 기다린다. 이젠 그녀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굳이 않아도 된다. 뒤집히지 않은 부표의 비밀은 쓰나미가 무서웠냐는 잇코의 물음에 답한 키리에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모르겠어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왠지 바다는 그리운 느낌이에요. 모두가 바다에 있을 것만 같아요.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쓰나미를 용서할 수는 없다. 마치 내 이름을, 내 삶을 버릴 수 없고,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지문을 남길 수 없는 것처럼. 키리에는 모르겠단 표정과 그립다는 노래로 받아들였다. 마오리가 잇코로 살기 위해 몸부림칠 때, 루카는 본능적으로 키리에를 품었다. 앞서 말한 익숙한 외로움과 두려움과 함께 필연적인 과정을 걷기로 했다. 깊은 트라우마가 자신을 삼키는 것을 용인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에서 살아남은 어린아이가 자신을 치유하고, 각자의 슬픔을 버티며 사는 이들에게 치유의 매개체가 되는 이야기. 마침내 키리에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된 이야기. 흘러가는 강물만큼이나 잔잔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텁텁한 뒷맛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별개로, 완벽한 결말이란 외피 안에 숨긴 의도적인 결말이, 너무나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그렇다. 키리에의 노래만으로도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잡았을 거다.
키리에는 노래한다.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오늘 같은 날을 맞닥뜨릴 거라고, 그런데도 우린 자유로울 것이라고. 그녀의 울부짖음이 계속 귓가에 맴도는 건, 작은 신사 앞에 서서 기도했던 그녀의 기도 내용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오리의 말처럼, "그래 기도는 기도지. 더는 묻지 않을게." 가 <키리에의 노래>를 유일하게 대변한다는 점에서 설원을 걷는 루카와 마오리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름값을 남겼음을 밝힌다.
우리는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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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라는 불가해한 존재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어린 시절 상처받은 경험을 객관화해서 말할 수 있게 됐을 때, 심지어 농담의 소재로 삼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경험에 휘둘리지 않는 어른이 된 게 좋아진다. 어떤 날엔 내가 쓸모 있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됐고, 또 어떤 날엔 내 부족함이 엄마를 불행하게 할까 봐 불안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어떤 형태로 내 삶에 관여했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된 지금, 비로소 어린 시절에서 분리되는 통쾌함을 느낀다.
노아 바움벡의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의 다 큰 남매들도 어린 시절에 관한 불만을 터뜨린다. 이들은 자의식 강한 예술가 아버지로 인해 각기 다른 상처를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의 작품 활동과 재혼으로 인해 누군가는 방치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과한 관심을 받았다. 부모 자식 관계도 각각의 인간관계라 그 사이에서 주고받는 감정은 균질하지 않다. 아버지 해롤드는 매슈의 이름을 딴 조각 작품을 남겼지만 대니라는 작품도, 진이라는 작품도 남기지 않았다. 이는 성장 과정에서 남매들 사이의 질투와 열등감을 유발했고, 여전히 다 큰 어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첫째 아들 대니가 “아빠는 나를 이류 시민처럼 취급했”다고 분통을 터뜨릴 때, 둘째 아들 매슈는 “아빠 관심이 나한테만 집중돼서 내 인생이 개판이 됐”다고 소리친다.
영화에서 주로 갈등을 겪는 쪽은 두 이복형제와 아버지다. 반면 유일한 딸인 진이 아버지와 부딪히는 장면은 없는데, 갈등에 참여하지도 못할 만큼 소외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 아들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혹은 자신의 성공을 인정받지 못해 힘들었지만 진은 힘들 기회조차 없었다. 진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에게 분노하는 것조차 부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전히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는 대니나 매슈와는 달리, 어떤 관심도 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진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가족에서 나로 사는 게 어떤지 너흰 절대 몰라.”
어느 날 삶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낄 때, 혹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머뭇거릴 때 어릴 적 유약한 자아가 나를 발목 잡고 있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유년시절의 케케묵은 장면들이 떠오르고, 그 장면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속 세 남매들이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을 들먹이며 싸우는 장면이 웃기고 한심해도 짠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 해롤드가 병상에 눕게 되면서 남매들은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가게 된다. 아버지를 극진히 돌보고, 간호사의 처치를 함께 받아 적고, 의사에게 항의한다. 가족 내 역할과 되풀이되는 갈등으로 인해 찐득하게 달라붙은 감정들이 고통스럽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어쩔 수 없는 보살핌이 가능해진다. 가족이라는 존재의 이상한 점은 이런 것이다. 대화를 시작하면 해묵은 감정이 먼저 튀어나와 부딪히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서로를 돕게 되는 것. 가족은 완전한 화해도, 영원한 원망도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런 불가해한 순간을 맞이하는 건 가족끼리만 가능하다.
진뿐만 아니라 이 가족 안에서 대니로도, 매슈로도 사는 것 또한 그들 자신만 아는 고통이다. 그렇지만 아버지 앞에서 힘든 감정은 자식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낡은 짐 속에 나뒹구는 선글라스는 서로 네 것이라며 가족들의 손을 여러 차례 옮겨 다니는데, 영화 말미엔 매튜와 대니가 서로 자신의 것이라 주장한다. 한 가족 안에서 자란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복잡하고 엉망인 유년 시절의 기억이 네 것인지, 내 것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그게 내 감정이기도, 네 감정이기도 한 것. 그게 우리의 정서가 되는 것. 아버지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대신 다 큰 자식들은 상처받은 서로를 감싸 안는다. 함께 시간을 보내서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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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가부장적인 편견은 아닐까?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가부장적인 편견은 아닐까?
지금 여기 풍경 부문 <경아의 딸> 리뷰
감독] 김정은
시놉시스] 홀로 살아가는 경아에게 힘이 되어 주는 유일한 존재인 딸 연수는 독립한 뒤로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남자 친구가 유출한 동영상 하나에 연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 버리고 이 사건은 잔잔했던 모녀의 삶에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킨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급지원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던 영화 <경아의 딸>. 전주국제영화제 다녀왔었지만 그때는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게다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최수연 변호사로 봄날의 햇살같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하윤경 배우를 다시 볼 수 있어 기뻤다.
세상의 편견 속에서 더 상처를 받는 피해자사별 후 홀로 살아가는 경아에게 힘이 되어주는 딸 연수. 교사로 취직하면서 독립한 뒤 연수는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학교 생활에 바쁘게 적응해나가던 차 전남친의 집착어린 전화가 부담스럽고 거북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계속해서 전화를 피하고 만나주지 않자 앙심을 품은 전남친은 연수의 지인을 비롯한 연수의 엄마에게까지 자신과의 성관계 영상을 보내버리고, 이에 연수의 일상은 처참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가장 믿었던 존재인 엄마에게서 마저도 ‘걸레’라는 소리를 들으며 의지할 곳이 사라진 연수는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원래 살던 오피스텔의 보증금을 인터넷에 퍼진 영상을 지우는 데 모조리 사용하고, 원룸텔로 이사를 가며 이 일이 교직계에도 소문이 날까 두려웠던 연수는 그렇게 고생해서 된 선생님이라는 직업마저 포기하고 만다. 한 번은 바꾼 자신의 전화번호로 영상을 보고 팬이 됐다며 전화를 오는 상황까지 찾아오면서 사람들이 많이 타는 대중교통 역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워 이용하지 못하고,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의 연락도 거의 끊어버리게 된다. 연수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사람 속을 알 수 없었던 점이다. 이 사람이 나의 동영상을 봤는지, 봐놓고도 내 앞에서 안 본 척 천연덕스럽게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에 연수는 거의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전남친이 경찰에 붙잡히고 재판까지 가지만 정작 연수의 일상은 경제적인 것부터 사회적인 삶까지 모두 파괴가 됐다. 연수는 불법 촬영에 있어서 피해자지만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게다가 가장 믿었던 가족에게서 마저도 ‘여성’이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며 손가락질을 받는다. 같은 관계를 맺은 남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이 이러한 동영상이 유출됐을 때 여성에 대한 비판만 이뤄지고, 결국 무너지는 것은 여성일 뿐이라는 점을 너무나도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거의 살인과 비슷한 수준의 충격임에도 왜 ‘성’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입에 더 오르내리는 것일까? 의문이 들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가부장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는 그들
불법촬영 동영상 유포로 인해 가장 힘들었던 인물은 그 어느누구도 아닌 연수일 것이다. 피해자 본인이면서 그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하고, 문제를 본인이 다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연수는 가장 의지를 하고 싶었던 엄마에게서 마저도 들어서는 안되는 말까지 듣는 상황에 놓이고 그렇게 상처를 받은 연수는 엄마와의 연을 끊어 놓는 수준으로 연락을 피하고 수단을 막아버린다.
이 영화는 모녀 사이의 ‘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부분의 딸이라면 느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 말할 수 있지만 절대 엄마에게 만큼은 말을 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왜 그럴까? 왜 ‘성’에 관련된 문제가 등장할 때만큼은 그토록 엄마의 눈치를 봐야하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러한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을 하는 딸들이 많은 것일까. 이러한 이유에 대해 영화 <경아의 딸>은 경아의 집과 직업을 통해 설명을 하고 있다. 경아는 아주 오래전 남편과 사별했지만 여전히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이 물려준 집에서 살아가고, 돌봄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밤이 늦어지면 술먹고 밖을 돌아다녀서는 안되고, 옷을 입을 때 속옷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안되고, 밤늦게 택시는 혼자 타서는 안되고 여성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줄줄 읊어댄다. 그런 엄마에게 연수는 그럼 ‘집에서만 살아?’하고 일침을 놓는다. 이렇게 가부장적인 것을 체화한 엄마에게 연수는 자신이 누구와 만나는지, 어떠한 관계인지에 대해 털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털어놓는 순간 이제 이 분쟁이 될 것이 뻔한 이 폭탄을 선뜻 엄마에게 말할 수 있는 자녀가 어디있을까?
하지만 불법촬영이라는 사건을 겪은 경아와 연수는 이를 계기로 사회 속에서 숨어버리는 대신 다시 전진한다. 경아는 자신이 남편의 그늘 속에서 너무 남성주의적인 시각 속에서 자신의 딸을 대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이 물려준 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향해 떠난다. 그리고 다시 복직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학교에 원서를 내러가는 연수의 모습을 통해 그저 피해자로 남기보다 일상을 살아내고 그들과 맞서 당당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임을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우리가 욕을 하고 비난을 해야할 사람은 가해자다. 피해자를 우리 사회 속에서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영화 <경아의 딸>을 보는 내내 들었다. 우리가 무심결에 한 말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들이 ‘피해자’라는 굴레 속에 갇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28 10:00
메가박스 상업월드컵경기장 6관
3062022-08-30 19:30
메가박스 상업월드컵경기장 5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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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그들이 유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그루(탕준상)'는 모든 유품에는 생전의 삶이 깃들어 있으며, 따라서 작은 흔적도 세심히 챙겨야 한다는 아버지 '정우(지진희)'의 교훈을 실천에 옮기며 아버지와 함께 유품 정리 업체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루 앞에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삼촌 '상구(이제훈)'가 법적 후견인으로 등장한다. 정식 후견인이 되기 위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상구는 본래 직업을 숨긴 채 그루와 함께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겠다고 나서고, 이에 그루는 새롭게 만난 삼촌 상구, 평생을 함께한 절친 '나무(홍승희)와 함께 고인의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다.
의학 혹은 법정 드라마의 서사에는 두 개의 축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개인적인 서사와 환자 혹은 의뢰인(혹은 범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주인공들은 새로운 환자를 치료하거나 의뢰인 혹은 범인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을 깨닫거나 인생을 관통하는 교훈을 배우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의 완성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새롭게 등장하고 또 퇴장하는 외부인의 이야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비록 의학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 두 장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엄연히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그루와 상구가 죽은 이들이 미처 전하지 마지막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만큼, 주인공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고인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공장에서 사고사 당한 대학생을 비추며 시작되는 드라마는 뒤이어 노모와 절연한 아들, 스토킹 피해 여성, 퇴직한 노부부, 동성애자 커플, 미국 입양아 등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다양한 죽음을 보여준다.
특히 각각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가 된 후로도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이슈를 담고 있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흡입력이 강하고, 가슴 아프다. 당장 비정규직의 산업재해는 본래 의도에서 적잖이 후퇴한 채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안을, 스토킹범에게 살해당한 유치원 교사는 올해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가해자 처벌에 비해 피해자 보호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은 스토킹 처벌법을 둘러싼 논쟁을 연상시킨다. 이에 더해 십수 년 전에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에서도 심금을 울리는 소재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관심을 필요로 하는 국외 입양아 문제, 동성애 커플의 이별에 담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급변하는 가운데 당장 눈 앞에 닥친 노인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때 작중 단편적이고 분리되어 있는 듯한 일련의 죽음들을 잘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모두는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한 기준선을 충족시키지 못한 실패자 내지는 사회가 규정한 경계에서 제외된 소외자의 삶을 공유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난 몇십 년간 한국 사회의 거시적 목표이자 과업이었고 동시에 현재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두 축인 산업화와 민주화 신화에 속하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드라마는 녹여낸다.
드라마의 시작을 맡은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 늙은 어머니를 외면한 아들의 회한,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갑질의 피해를 온몸으로 떠안은 할아버지의 말년은 산업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람을 공장 기계와 같은 도구로 여기고, 인륜보다도 눈에 보이는 현금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동등한 사람을 서열과 계급으로 나뉘어 차별하는 잘못된 인식, 가치관, 관행을 꼬집는다. 한편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취했으나,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정립되지 못한 한국 사회의 한계를 비판한다. 동성애부터 입양아, 스토킹 피해에 이르기까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라는 이유로, 또 약하다는 이유로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수없이 차별과 피해를 경험한 가운데 과연 실질적으로 다양한 삶과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생활로서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의 배경은 두 주인공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상구가 형과 가족을 등지고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며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그는 이윤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비롯해 책정할 수 없는 가치마저도 돈과 숫자로 치환시켜온 사회와 가정이 낳은 또 한 명의 피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그루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면서도 친구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당당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동시에 입양아이면서도 아버지의 큰 사랑 속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상구와 남부럽지 않은 가족을 이루어 나간다. 이렇게 드라마는 그루의 삶을 통해 목적지향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삶을 요구하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제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무브 투 헤븐>이 말하는 메시지는 사회적 기준선에 속하지 못해 소외된 주인공 그루와 상구의 직업이 유품 정리사이기에 더욱 풍성해진다. 작중 그루와 상구가 하는 일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의 작업은 오염된 장소를 청결하게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달리 말해 오염과 청결을 가르는 기준선을 해체하고 다시 긋는 것이 본질이다. 또한 그들은 삶과 죽음의 마지막 기준선을 지키는 이들이자, 고인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어내고 전달하면서 삶과 죽음의 기준선을 일시적으로 넘을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특정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유품 정리사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오염과 청결의 범주가 단지 위생의 측면이 아니라 도덕과 사회 질서, 체계의 근원을 이루었다는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녀는 특정 영역의 경계나 기준을 상징하는 존재들, 특히 특정 존재의 오염 혹은 청결 여부는 문화적 분류와 사회 질서의 가장 기초가 된다고 파악했다. 경계 밖에 위치한 것으로 상정되는 존재들을 더럽고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는 과정을 통해서 기준선 안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 질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통합된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무언가 더럽고 불결하다고 인식되는 것을 정리 정돈하거나 청소하면서 청결과 더러움의 기준선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이 넓게는 사회 질서의 범주와 영역, 경계까지도 바꾸는 함의를 포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사망한 이들의 공간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루와 상구의 작업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분위기, 인식, 제도의 변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은 혈흔과 체액, 벌레와 쓰레기들로 더럽혀진 장소를 깨끗하게 만듦과 동시에 일원화된 기준선을 맞추지 못해 사회로부터 배척받고 낙오된 개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투영하면서 보듬어 안는다. 그렇게 상구와 그루는 주변 주민들로부터 더럽고 불결한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받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의뢰받은 공간을 청결의 영역으로 다시 옮겨 놓는 것에 정성껏 최선을 다한다.
사실 <무브 투 헤븐>의 구성이 의학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와 유사하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아주 새롭고 기발하면서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못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브 투 헤븐>이 넷플릭스에서 공개 직후부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은, 지나치기 아까울 만큼 뭉클하고 따뜻한 휴먼 드라마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유품정리사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착잡한 사연들을 차분히 제시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의 진정성을 모자이크를 채워 나가듯이 전달하며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룬 단단한 이야기의 힘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유언을 남긴 이와 유언을 들으려는 이의 진심이 한데 모여 그려낸 희망의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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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K로 담아낸 거대한 무의미
다큐멘터리에 스포일러랄 게 있겠으나, 그래도 스포일러를 포함한다고 미리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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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라 함은 현실이 아닌 것일진대, 현실은 참으로 지난하고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현실적인' 고민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현실적으로 먹고 살 만한지, 현실적으로 내 수준에 맞는 사람은 누구인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투자하는 게 옳은지. 나아가 '현실적인 조언 구합니다'라는 게시판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실적인'이라는 말이 앞에 붙는다는 것은, 극대의 행복이 아니라 어느 정도 고만고만한, 내 능력 한에서 최대로 가능한 정도를 말하는 게 대부분이다. 턱걸이 같다. 턱걸이를 넘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고군분투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의미는 턱걸이를 할 철봉 위에 있다. 그것을 넘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요즘은 주식에, 부동산에, 코인에, 그러니까 돈이 곧 의미다. 자산을 증식하지 못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하므로 행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이라는 아름다운 착취 속에서 삶의 의미를 부지런히 찾아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건 무엇인가. 모이지 않는 월급, 오르지 않는 노동가치, 그러므로 살 수 없는 부동산, 애프터 없는 소개팅에서 지불한 돈, 건설적이지 않은 잡담, 뭐 그런 것들일까.
의미와 기호로 가득한 세상 너머,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오제'라는 습지가 있다. 그 습지는 인간으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지 않고, 인간 역시 그 무엇도 앗아가지 않는다. 박혁지 감독은 <행복의 속도>라는 제목으로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아니, 그 속에 살고있는 사람을 담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쫓는 대상은 대략 80kg의 짐을 지게에 싣고 걸어서 산장까지 가는 '봇카' 이가라시, 이시타카이다. 박혁지 감독은 광활한 습지를 4K의 해상도로 보여주고, 봇카들의 걸음을 뒤쫓는다.
나는 자본주의와 얼마간의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 초반 그들이 80kg를 지고 산을 오르고 걷는 걸 보면서 '모노레일을 깔면 안 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우리나라는 산 곳곳에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 필요한 짐이며 도구들을 실어 올린다. 모노레일을 깔면 무거운 짐들을 금방 보낼 텐데. 게다가 '몸빵을 하면 돈은 많이 벌겠지?' 라는 생각까지.
그러다 후반부에 가서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이며 포드주의 비슷한지를 생각했다. 히말라야도 아닌 산을 걸어서 짐을 옮기는 행위를 경제적이지 않다, 즉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그만 자본과 연결시키며,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도 역시 이 체제 속의 인간일 뿐이었다.
영화는 이가라시와 이시타카의 차별점을 조명한다. 둘 다 봇카이지만 둘은 꽤 다르다. 우선 이시타카는 '일본청년봇카대' 회장으로서 봇카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활동가이다. 겨울이 되어 오제의 산장도 문을 닫고, 봇카도 할일이 없어졌을 때 도시로 나가 봇카를 홍보한다.
이시타카가 걷는 도시의 거리는 오제의 속도와는 정반대다. 다급하게 점멸하는 신호등, 그에 맞추어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 다급한 발걸음 사이에 이시타카가 서 있다. 사람들은 봇카 일에서 어떤 보람을 얻는지 묻는다. 이시타카는 말한다. 산장이 있음으로써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산장이 있음이 좋다고.
행위에 보람이든, 의미든, 뭔가가 있어야 하는 걸까?반면 이가라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도 모자라 목에 카메라까지 걸고 걷는다. 오제의 풍경을 카메라에 섬세하게 담는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큰아들을 데리고 짐을 가져다 주던 산장에 가기도 한다. 잠자리를 잡고, 뛰어놀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이가라시의 아내는 농장에서 일한다.
때는 설이다.
이시타카와 이가라시 가족 모두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시타카의 부모는 몸으로 하는 일인데 몸이 상하면 어떻게 할 건지, 그때 되면 어떻게 먹고 살건지를 묻는다. 물론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지만 이시타카의 표정은 어둡다.
이가라시는 노모에게 봇카를 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노모는 마치 아이처럼 그 풍경을 반긴다. 이제 가기 힘들어진 그곳, 그 나무, 그 꽃들. 계절과 햇빛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탄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가라시는 대답한다. 누가 기다리고 있고, 시간이 정해져있다면 힘들었겠지만 자기 속도로 걷다 보면 도착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등산을 할 때 나 혼자 느릿느릿 걸어가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다. 그런데 여럿이 갔을 때 무리의 제일 끝에 산을 올라가면 그보다 힘들 수가 없다. 그때부터는 산의 풍경이고 뭐고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서 질문할 수 있겠다. 우리는 왜 힘든가.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남들보다 빨리 걷기 위하여, 남들보다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들이 등에 지고 있는 짐과 봇카의 짐 중 무엇이 더 무겁다고 말하기 쉽지 않을 거다.
카메라는 봇카들의 가쁜 숨, 무거운 발걸음을 집요하게 담다가, 그들의 가정으로 이동했다가, 또 오제의 광활한 자연을 비추기도 한다.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MSG를 치지 않은, 그래서 맹맹하고 심심한 그들의 일상이다.
초반부에는 영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했고, 계속 이렇게 걷기만 할 것인가 생각했다. 기승전결도 없고 문제도 없으며, 변화라고는 오제에 찾아오는 계절 뿐인데. 114분의 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봇카들이 걸음을 거듭하고, 나는 봇카들의 걸음을 눈으로 좇으면서 나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고, 어떤 의미들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는지, 그 의미는 대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왜 내 눈에 아름다운 오제에 모노레일을 깔지 않는 저들이 이상했는가.
저들의 행위가 무의미하고 현실적이지 않게 보인 거지. 저렇게 힘든 일을 할 거면 도시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게 좋지 않을까, 같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생각.
그래서 행복의 속도는 무엇일까.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라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속도는 방향을 포함한 벡터값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속도란 행복의 속력과 방향을 내포한 제목일 것이다.
느림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속력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가는지가 더 중요하겠다. 사물에서, 사람에게 덕지덕지 붙은 의미와 상징과 기호들을 걷어내야만 비로소 그것 자체가 보인다.
봇카들은 오제에 거대한 의미를 두지도 않고, 그들이 하는 일에서도 역시 내일은 더 빨리 가야지, 내일은 더 무거운 짐을 들어야지 하고 포부를 갖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자기 속도로 걸어갈 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어쩌면 너무 뻔하게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우리들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어쩌면 지난하고 외로울 길을 각자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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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진흥위원회, 한국 영화배우 대표 200인 선정! 해외홍보 나선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 영화계 대표 배우들의 글로벌 홍보를 위해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 영화배우의 해외 홍보는 올해의 주요 영화제를 앞둔 3월부터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유럽영화진흥프로그램이 진행한 ‘슈팅스타즈’ 운영과 유사한 캠페인인 ‘한국 배우 200 캠페인’은 한국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 100명 그리고 여자 배우 100명을 선정해 진행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0년간의 배우들의 흥행력, 한국 영화 참여도, 국내외 영화제 수상 기록, 독립영화 출연, 국제 프로젝트 참여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별도 스페셜 웹페이지를 오픈하여 3월 중 캠페인을 전면 공개할 예정이라고 알리며, 배우의 대표 필모그래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무빙 트레일러 및 한국 배우 200인의 다채로운 포트레이트, 배우별 필모그래피를 집약한 동영상 200편 등 양질의 캐스팅 자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캠페인을 위한 사진 촬영 및 책자와 무빙 트레일러 제작 등은 영화 전문 미디어 <더 스크린>이 전체 진행을 총괄하여 완성도를 강화하였으며, 포트레이트 촬영은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김중만 작가와 안성진 작가가 전담했습니다. 김중만 작가는 1977년 프랑스 아를 국제사진 페스티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이래 40여 년 간 국제적인 명성을 이어온 세계적 사진가이며 안성진 작가는 1992년 이후 한국에 셀러브리티 CF를 선도한 사진가로 수많은 영화, 드라마, 연극 포스터와 앨범 재킷을 촬영해 온 한국 대표 사진가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최고의 영화제 및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OTT 제작사, 에이전시, 미디어 등 전 세계 영화계의 핵심 관계자들에게 직접 홍보물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캠페인의 일환으로 발간하게 될 책자의 타이틀로, 전 세계를 감동시킬 배우가 ‘여기 있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버라이어티는 ‘영화 <기생충>이 여러 개의 오스카상을 거머쥔 이후 한국 배우들은 해외 언론과 영화제에서 많은 주목과 함께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다’라고 전하며 ‘배우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를 통해 찬사를 받고 있으며, 배우 김민희는 <도망친 여자>에서 보여준 연기로 작년에 찬사를 받았고 배우 이주영은 뉴욕 아시아 영화제에서 국제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도 배우 이민호는 애플TV플러스가 제작하는 미국 드라마 <파친코> 주연으로 발탁되고, 배우 송강호, 배우나, 그리고 강동원은 2018년 영화 <어느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한국 연출작 <브로커>(가제)에 출연 확정 소식을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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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영국]영국 첩보 영화의 새로운 바람; 영화 [블랙백]리뷰
이 글은 영화 [블랙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렇다. 편애를 했다.
이미 포스터를 본 순간부터 사로잡혀 버려서 손가락 발가락 가리지 않고 하염없이 꼽아 가며 이 영화를 기다렸다. 내가 좋아하는 점은 다 갖고 있는 작품을 만난 순수한(?) 관객의 입장으로 지내온 기다림의 세월이 정말 오랜만이라 이 두근거리는 마음이 부정맥인 줄 알았다니까 글쎄?
내게 심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게 해 준 이 스파이 영화는, 굳이 따지자면 본 시리즈 같은 화려한 액션보다는 스카이 폴 이후의 007 시리즈에 좀 더 가깝다. 한국 영화로 치자면 [공작]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모든 장면들은 푸른색으로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차갑고 정제되었지만. 영화 속의 모든 대사들은 날이 번쩍 선 채로 뜨거운 붉은 불씨가 되어 상대방에게 날아가 꽂힌다.
특히 조지(마이클 패스밴더)의 경우는 캐슬린(케이트 블란챗)을 비롯한 자신의 동료들을 의심해야 하는 이중 삼중고 속에서 이 푸른 이성과 붉디붉은 몽롱한 감정 사이를 적절히 오고 간다. 그의 필모를 통틀어서 이토록 심약하고 불안정한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패스밴더는 섬세하게 흔들리면서도 절벽처럼 냉정하게 행동한다.
분명 그에게는 지옥 같았을 2주였을 것이다. 그는 복잡한 머릿속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입을 꾹 닫고 앞만 바라보며 그 기간을 버텨냈지만. 차마 숨길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은 아름다운 파랑과 붉음으로 그의 주변을 물들이며 이 인물이 얼마나 번뇌 속에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긴장감은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쌓이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를 그 어떤 폭력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해낸다. 켜켜이 쌓인 이 불안과 두려움들 때문에. 영화의 말미로 갈수록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큰 몫을 하는 것은 식사 장면과 거짓말 탐지기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그 어떤 대사도 계산되지 않은 채 인물들의 입을 떠나지 않았고. 질문에 답을 하는 자들의 답변에 단 한 번도 정보가 담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음식을 서빙하는 일일 직원의 느낌으로 영화를 들여다봤을 때. 그들이 나누는 모든 대화들이 무작위로. 혹은 술에 취했다.라는 핑계로 흘려듣거나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서 뭐 저런 걸 얘기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하지만 일이 끝난 뒤 부부의 집을 나서며 앞치마를 벗어던질 때가 되면. 아 이게 이런 말이었구나. 라며 모공이 송연해지는 감각이 온몸을 덮쳐온다. 그 자리에서 입을 떡 벌린 채 멈춰 서서는 휙 뒤돌아 굳게 닫혀버린 조지와 캐슬린의 대문을 한참이고 쳐다봐야만 한다.
이 영화가 우리의 뒤통수를 까는(?) 모든 과정은 이토록 간결하고 깔끔하다. 그러면서도 명확하다. 그들의 실력처럼. 그리고 그들의 냉정하지만 불타오르는 모든 감정들처럼.
사진출처:다음 영화
이토록 콩깍지가 씌어서 찬양 아닌 찬양을 했지만.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을 비틀면 누군가에겐 반드시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본 시리즈]나 [헌트]처럼 눈에 박힐만한 총격전, 혹은 추격전은 찾기 힘들다. 또한 요즘 영화답지 않게 짧은(93분) 러닝타임 덕에 쉴 새 없이 진행되는 반전의 반전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 이로 인해 갈등의 해소와 불안의 반복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의 영향력이 다소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배경이나, 커리어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적기 때문에 조금은 불친절한 영화로 기억될 가능 성도 있다.
하지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조지가 자신의 부인이 용의자가 되는 순간부터 손을 벌벌 떠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누구보다도 감정적일 것만 같던 캐슬린이 가장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모든 과정들 만으로도. 마치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맛보는 듯한 영화이기에 시간을 투자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만족스러우면서도 여운이 남았으며 행복했다.
[이 글의 TMI]
1. 영화관에서 팝콘 안 먹기 1회 성공
2. 상영관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너무 좋았다(?)
3. 회사 너무 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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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레 tv 파본자들 드라이편 - 등대 출연본 (이 투샷 정말 귀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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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tv_파본자들 영화 '드라이'편에 제가 출연을 했었는데요... O.O !
너무 친절하시고 러블리하신 민아MC님이 잘 도와주셔서 기분좋게 재밌게 촬영하고 왔습니다!
(싸인 받아서 너무 기쁘다구요!)
영화장면은 저작권때문에 업로드할수 없지만...조금더 매끄럽게 해당 영상을 보고 싶으시다면
국내 최고 플랫폼 '시즌'에 회원가입하시면 무료로 '파본자들' 시청하실수 있습니다!
여러분... 시즌 드라이편에 하트 많이 눌러주실거죠...? 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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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세티 킬즈> 메인 예고편
전 세계를 폭파시킬 미사일 테러를 계획하는
억만장자 무기상인 ‘루더 보즈’(멜 깁슨)
정보를 입수한 미국 대통령은 이를 막기 위해
마성의 살인 병기 ‘마세티’(대니 트레조)를 고용하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멕시코로 건너간 그는
예상치 못한 적들과 마주하는데…
과연, 마세티는 전 세계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웃겨주게 죽여줄 Z급 킬링 액션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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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런칭 예고편
모두가 행복한 사랑을 바라는 ‘아카리’(하마베 미나미)와
한 발 뒤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유나’(후쿠모토 리코).
서로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둘.
고등학교 첫 학기가 시작되고
‘아카리’와 ‘유나’에게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상대가 생겼다.
“너도 내 마음과 같을까…?”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로 가는 길
열일곱, 우리들의 성장형 청춘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