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3-25 11:31:23
3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2024 첫 천만 영화 등극
2024 첫 첫만 영화! 오컬트 장르 첫 천만 영화!
최민식 배우 <명량>이후 두번째 천만 영화!
유해진 배우 네 번째 천만 영화!
김고은 배우 데뷔 12년만의 첫 천만 영화!
이도현 배우 스크린 데뷔 첫 천만 영화!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
영화 <파묘>가 올해 들어 개봉한 영화로는 처음으로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습니다.
또한 오컬트 장르 증 최초의 천만 영화이며, 비수기로 꼽히는 설 연휴 직후에 개봉한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배우 최민식은 <명량> 이후 2번째 1000만 영화 주인공이 됐고, 이도현은 스크린 데뷔작으로 1000만 배우가 되는 행운을 안게 되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순위]
<고스트버스터즈: 오싹한 뉴욕>이 개봉주 1위에 올랐습니다. 영화는 고대 유물의 사악한 힘으로 빙하기에 이르게 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버스터즈들이 힘을 합쳐 펼쳐지는 모험을 담았으며, ‘뉴 고스트버스터즈’와 ‘오리지널 고스트버스터즈’가 짜릿한 팀플레이를 펼치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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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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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가 아동학대인건 알겠는데 주제는 뭘까?
김남길의 팬으로서 하정우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클로젯>에 대한 기대감이 낭낭했었다. 아무리 내가 팬이라지만 마냥 좋다고 평할 수 없을 정도로 말문이 막히는 작품이었다. 심지어 영화 평점을 후하게 주는 친구가 왓챠에 2.5점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클로젯 시놉시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원과 그의 딸 이나. 상원은 소원해진 이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 상원은 이나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긋난 사이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나가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며 웃기 시작한다. 하지만 평온도 잠시, 이나의 방 안에 있는 벽장에서 기이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이나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그리고 상원마저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 지 얼마 후, 이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나의 흔적을 쫓는 상원에게 의문의 남자 경훈이 찾아와 딸의 행방을 알고 있다며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이나의 ‘벽장’. 10년간 실종된 아이들의 행방을 쫓고 있는 경훈은 믿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고 상원은 딸을 찾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어서는 안 될 벽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조했습니다.
하정우에게서 어색함을 느낄 줄이야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하정우에게서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졌다. 무당이 자해를 하는 비디오 테이프 영상 이후 상원과 이나 차를 타고 이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상원이 이나에게 아빠가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정말 어색했다. 전혀 아빠같은 느낌이 아니라 삼촌인데 조실부모한 조카와 어색한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상원이 없어진 이나를 찾는 이유도 잘 와닿지 않았다. 나를 찾아줘의 이영애나 박해준과 같은 모성과 부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대뜸 경찰한테 화를 내거나 방송사에 출연하며 아이를 찾는 노력이 분명 아빠인데도 내가 느끼기에는 굳이?? 이런 감정이 들었다. 이나를 찾으러 이계를 향했을 때도 이나를 찾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구했을 때도 전혀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정우에게 아빠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어울리지 않았던 것인가? 하는 의문점이 들었던 작품이었고, 하정우식 특유의 유머 없이 시종일관 진중함으로 영화를 끌고가다보니 어울리지 않는 옷을 계속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회수하지 못한 떡밥이 있는데?
영화 <클로젯>을 보면서 물음표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막판에 엄청난 떡밥을 던지고 회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영화 초반에 떡밥을 하나 둘 뿌려놓고 마지막 절정에서 파바박 회수를 하고 결말이 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상원이 이나를 찾으러가는 절정 부분에서부터 이상한 떡밥들이 나오더니 결국 설명해주지 못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도대체 왜? 상원의 아내는 이계에서 상원을 죽이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명진의 엄마는 어쩌다가 나타난 것이고, 왜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인가? 상원의 아내는 사고사였고, 명진의 엄마는 남편의 살인이었는데 명진의 엄마는 이계 속 괴물로 남지 않고 상원의 아내만 괴물로 남았을까? 도통 이해를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 이렇게 찝찝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가지고 있으면서 설명은 제대로 안되고 굉장히 허무하고,, 루즈하고,, 영화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빨리 끝나면 저 떡밥들을 회수할 수 없을 것 같고, 걱정만 하다가 결국 회수하지 못하는 영화를 보며 굉장히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풀어내야 했을까?
영화 클로젯의 전체적인 소재는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들이 벽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유는 명진이라는 아이가 벽장 속에서 아빠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억울해 어둑시니가 되었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 집에 나타나 한 명씩 자신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당한 폭력, 언어적 모욕, 방치, 무관심 등과 같은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명진이라는 아이가 성불을 했음에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또 다른 아이가 벽장으로 들어가려는 듯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아동학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왜 이렇게 어렵게 풀어내야 했을까? 어둑시니라는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괴담과 연결을 하려는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어둑시니와 이계라는 설정이 더욱 부각이 되고 하정우의 모험이라는 테마가 전방에 먼저 제시되다 보니 오히려 아동학대라는 큰 주제는 묻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막판에는 김남길이 그냥 대사를 통해 “다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이었네요.”라고 퉁쳐서 얘기를 하는 바람에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의 절박했던 그 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 영화의 주제가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주변에 많으니 관심을 기울여라 인건지 당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김남길 배우를 좋아하기도 했고, 스릴러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기대를 많이 했던 영화 <클로젯>. 하지만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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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2020)> 리뷰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쉽게 지나갈 수 있을까. 내가 넷플릭스에서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이하 당신의 눈을 속이다)>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다큐멘터리를 튼 건 불가항력에 가까웠다.
예술의 역사만큼 위작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기실, 인간의 욕망과 돈이 결합된 분야라면 스캔들이 없을 수가 없다. 가치가 높은 대상이라면 스캔들의 폭은 더욱 넓고 깊어지리라. 당장 떠오르는 스캔들만 해도 적지 않다. 베르메르 위작으로 유명한 반 메헤렌은 물론이요, 올해 미국 올랜도 미술관에서 발생한 바스키아 위작 스캔들도 있다. 시선을 국내로 돌린다 해도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으로 인해 미술계가 크게 흔들렸던 적이 고작 5년 전이다. 어쩌면 위작 스캔들은 전 세계의 박물관이나 갤러리라면 어디든, 또한 누구든 안고 있는 점화되기 전의 폭탄일 터다. 그러하므로 내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기 전 가장 궁금해했던 건 이런 것이었다. 165년 전통을 자랑하는 갤러리가 위작 스캔들에 휘말렸던 이 사건을 대체 왜 공개했을까? (만일 다큐멘터리의 목표가 갤러리의 무고함을 밝히는 것이라면) 이미 자취를 감춘 갤러리의 결백을 주장한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출처: Netflix
일단 <당신의 눈을 속이다>가 다루는 사건은 위에서 언급한 노들러 갤러리 스캔들이다. 이 사건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노들러 갤러리는 1846년에 문을 연, 긴 역사를 지닌 명망 있는 갤러리인데, 본디 1950년대 추상 표현주의에 퍽 취약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들러 갤러리의 전 직원이 글라피라 로잘레스라는 (자칭) 미술품 중개인을 노들러 갤러리의 전 관장이었던 앤 프리드먼에게 소개하였고, 글라피라는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과 등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화가의 그림을 거뜬히 가져왔다. 가문의 힘조차 업지 않았던 글라피라의 수완은 정말이지 대단했던 모양이다. 노들러 갤러리는 그를 통해 거의 20년 동안 60여 개의 위작을 판매하며, 총 8천만 달러(약 1,054억 원) 규모의 사기에 발을 디뎠다. 단순한 개인과의 거래였다 해도 문제가 작지 않을 텐데, 일류 컬렉터와 유명한 미술관들도 노들러 갤러리에서 위작을 구매했으니 미술계가 발칵 뒤집힌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앤 프리드먼이 Freedman Art라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이 사안은 종결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는 수사극, 추리극의 형태라기보단 일종의 인터뷰의 연속체로 기능하는 듯하다. 제작진은 영리하게도 시청자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는 방법을 택했다. 사법부가 호명한 피의자가 이미 명확히 존재하는 만큼, 굳이 다른 이를 지목하는 자극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고, 어떻게 이 ‘파렴치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느슨하게 재구성한다. 이를테면 그들의 태도는 이런 식이다. 사건은 이미 발생했다. 사기꾼이 있는 건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기꾼의 범주인지를 밝히는 게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부분을 재조명하고 싶다. <당신의 눈을 속이다>에는 그렇게 초대받은 예술계 인사들과 심리학자가 있으며 모두가 한통속이라며 억울함을 강력히 호소하는 피해자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첨언하는 기자가 있다.
출처: IMDb
사기꾼의 경계를 결정하기 전, 시청자라면 앤 프리드먼을 딱하게 여기든, 수상쩍게 여기든 ‘어떻게 그들이 취급한 작품이 위작이라는 걸 모를 수가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앤 프리드먼은 누구든 자신의 처지에 있었더라면 위작임을 알 수 없었으리라고, 자신 역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폐쇄적인 예술계의 특성상 특별한 이유 없이 감정을 맡기는 것 자체를 노들러 갤러리의 명성에 흠이 간다고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갤러리의 주인 측에서 압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또한 위작은 인류의 역사 내내 번번하게 유통되었고 카렐 아펠 등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때로는 작가들조차 진품과 가품을 판별하지 못하니, 그의 말이 정당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이었던 토머스 호빙조차 자신이 15년간 살펴본 미술품 중 40%가량이 위작이었다고 말한 바 있지 않은가. 만일 프리드먼이 명예욕과 금전욕에 의해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그의 잘못은 앤의 말마따나 ‘미술품과 사랑에 빠져’ 관습적으로 일을 처리한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명예욕에서든, 금전욕에서든 그가 “위험 신호를 무시”했다는 사실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IFAR에서의 감식 결과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허술한 프로비넌스를 눈 감은 것, 친분 있는 학자에게만 기댔던 것, 피상적인 몇 개의 견해에만 귀 기울이며 모든 신호들을 대수롭지 않지 여긴 시간들은 단숨에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러나 앤 프리드먼의 동기가 어떠하든, 위작 구매자이자 사건의 피해자인 아트 컬렉터 데 솔레 부부의 분노를 달래는 데엔 역부족이다. 소더비, 톰 포드 인터내셔널 회장이라는 명성과 자부심에도 흠집이 생겼고, 금전적으로도 손해를 보았으며,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에서 시간 싸움까지 진행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동시에 미술계의 특수성에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때로는 이렇게 믿을만한 이력서조차 없는 작품을, 화랑의 명성 혹은 딜러와의 친분만으로 거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왜곡된 시장이지 않은가? 작품 감별을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 고작 프로비넌스를 확인하며 극장의 우상에 기대는 것에 불과하다니. 무려 하나의 작품에 800만 달러를 지불하면서!
물론 미술계가 위작에 대해 늘 침묵하는 건 아니다. 당연하지만 모든 갤러리가 이토록 허술하진 않을 것이며, 위작 감별에 관한 전문가들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위작 거래를 최소화하기 위해 투명한 거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엄정한 처벌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과연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출처: IMDb
값어치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던 그림은 위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후 앤 프리드먼의 변호사의, 루크 니카스의 사무실에 걸린 벽화가 되어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정교한 위작이라는 걸 알기 전 감상자들이 경험했다는 작품의 아우라는 대체 언제 증발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노양진의 해석을 인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물리적 대상은 유기체의 기호적 경험, 즉 우리의 ‘기호적 사상’을 통해서 비로소 기호적 해석의 대상인 ‘기표’가 된다(노양진, 2020)”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작품의 가치는 작품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작품 외부에 있다는 이야기다. 위작이 활개를 치는 미술시장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미술품 외부에 있는 우리의 인식을 해체하고 바꾸는 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시장이 예술을, 혹은 예술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삼켜버린 시대이므로. MZ세대의 아트테크 열풍과 같은 기사가 신문의 경제면을 휩쓸고, 이제 손에 쥘 수도 없는 토큰인 NFT를 이용해 작품을 쪼개어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동시에 예술은 뒤샹과 워홀의 등장 이후 소비 이데올로기 하위에 존재하던 온갖 상품까지 넉넉하게 받아들였다. 보드리야르의 입장을 알고 있었다지만, 예술의 종말은 진작부터 거론되었다지만, “예술이 그저 상품으로만 남을 것인가?”따위의 질문이 아니라, “어쩌면 미술품이란 ‘상품’이라는 속성이 본질임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많은 가치를 입혀 두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그야말로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여 나는 두렵다. 세계를 해석하는 인간의 능력을 꺾어버리고, 사유를 헐값에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가 어떠한 도덕적 양태를 잉태하거나 공유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출처: IMDb
같은 작품이라 해도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메시지를 읽어낸다.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읽어낸 메시지는 앤 프리드먼이 운 좋게 풀려난 범죄자가 맞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었다. 21세기의 미술품은, 그 어느 때보다 상업 기호에 가까워졌다는 것. 어쩌면 ‘기호’조차 사라지고 예술이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당신은, 아니 어쩌면 나는, 한때나마 예술이 존재했다는 흔적만을 쥔 채,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오로지 그뿐이다.
참고문헌
노양진 "기호의 역전" 담화와 인지 27.3 pp.47-62 (2020)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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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고 나면 편지할게요
씨네픽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는데 다들 건강 잘 챙기고 계신가요?
다가온 연말연시로 인해 편지 쓸 일이 많아졌죠.
에디터는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편지를 쓰고 받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편지와 가까운 사람인가요?
편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어색한 사람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불쑥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예요.
그럼, 영화 보고 나면 또 편지할게요.
사랑을 담아,
씨네픽 드림.
줄거리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
줄거리
아빠와 20여 년 전 갔던 튀르키예 여행.
둘만의 기억이 담긴 오래된 캠코더를 꺼내자 그해 여름이 물결처럼 출렁이기 시작한다.
줄거리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편지를 몰래 읽어본 딸 '새봄'은 편지의 내용을 숨긴 채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윤희'는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이 뛴다. '새봄'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는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데…
줄거리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전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유언의 내용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자신이 남긴 편지를 전해달라는 것. 또한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있다.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중동으로 떠난 남매는 베일에 싸여 있던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끝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줄거리
“오늘은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오후, 세미는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하은에게로 향한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마음을 오늘은 반드시 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쳐 흐르는 마음과 달리 자꾸만 어긋나는 두 사람.
서툰 오해와 상처를 뒤로하고, 세미는 하은에게 진심을 고백할 수 있을까?
줄거리
용돈 벌이를 위해 폴의 러브레터 대필을 맡게 된 엘리.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자꾸 만나다 보니 이 친구, 정이 든다. 그런데 그건 둘째 치고, 러브레터 상대에게 자꾸 설레는 걸 어쩐담?
줄거리
"1998년 1월엔 눈이 많이 왔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일마레'로 이사온 성현(이정재 분)에게 이상한 편지가 남겨있다. 1999년, 2년 후로부터 온 편지. 그 편지에 있던 내용들이 예언과도 같이 현실 속에 나타난다. 그날은 거짓말 같이 함박눈이 내리고. 자신의 편지가 1998년 12월로 갔다는 것을 믿게 된 은주(전지현 분)는 자주 그곳으로 편지를 보낸다.
줄거리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즈. 80세의 외모를 가진 사내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
부모에게 버려져 양로원에서 노인들과 함께 지내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12살이 되어 60대의 외모를 가지게 된 그는 어느 날 6살 소녀 데이지를 만난 후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잊지 못하게 된다. 청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 벤자민은 숙녀가 된 데이지와 만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비로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벤자민은 날마다 젊어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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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갔을까? 엄마 이전의 나 자신으로 살던 삶은.
‘나 자신’으로만 살던 내가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불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단한 수식어가 붙은 삶을 살게 되었다. 엄마인 나와, 직업인 나라는 2인분의 인생. 한 사람이 갖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사회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수행하기에 녹록지 않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엄마라는 역할과 나 자신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가, 하나를 포기하던가. 후자로 마음이 저울이 기울게 되는 순간, 엄마가 된 이상 엄마라는 단어를 지울 수는 없으니, 나 자신은 사라지고 엄마가 남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 된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우리는 그렇게 엄마로 살아가게 된다.
버나뎃은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천재건축가이다.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그 시절 건축계에서 독보적인 아이콘이 되었지만, 유망한 프로그래머인 남편 ‘엘진’을 따라 LA에서 시애틀로 이사를 온다. 네 번의 유산을 겪고, 어렵게 낳은 딸은 심장이 약한 상태로 태어나, 출생 후 여러번의 수술을 받게 된다. 버나뎃은 자신을 지우고 딸 ‘비’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건축계를 떠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 딸이 어느새 중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을 넘어 사회불안장애라 칭해도 될 만큼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 인 탓에 도움이 필요한 일은 온라인 비서 만줄라에게 의지하고 자발적으로 고립된 삶을 택하고 있으면서도 딸에겐 한없이 다정한 엄마 버나뎃.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지만, 딸 ‘비’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며 가족이 함께 떠나는 남극 여행을 소원으로 말하자 어쩔 수 없이 남극행 티켓을 끊는다. 남극여행을 어떻게 가야 하나 두려움과 피하고 싶은 마음들이 겹겹이 쌓여 예민함을 표출하는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오랜만에 친구이자 동료인 폴을 만나, 남편이나 딸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데, 폴은 그녀에게 간단한 처방을 내린다. ‘너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해. 그러지 못하면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야. 다시 일을 시작하고 뭐라도 만들어.’
버나뎃은 폴과의 대화 이 후 피하고 싶었던 남극여행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 아주 다른 공간인 남극을 여행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FBI가 찾아온다. 버나뎃이 의지하고 있는 만줄라, 그러니까 온라인 비서시스템이 러시아 범죄조직의 위장회사이며, 이들은 버나뎃으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이들 부부의 재산을 뺏으려 하고 있다.FBI와 심리치료사가 집으로 들이닥쳐, 버나뎃이 지내고 있던 조용한 일상을 뒤흔들고 버나뎃은 떠나버린다. 문제가 생기자 건축계에서 떠나버렸듯, 또 문제를 두고 도망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엘진’ 과 엄마를 찾아가고 싶은 ‘비’
예정되어 있던 남극으로 항하는 버나뎃은 생각보다 사람들과 부딪힐 일은 적었고, 밤이 없는 세계, 사람도 거의 없는 대자연에서 버나뎃은 자유를 느끼고,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열망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차단했던 20년을 지나온 뒤, 마치 스위치를 켠 것 처럼 아이와 남편이 없는 환경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마음만을 따라간다.
이웃을 상대하기도 싫고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은 너무 싫지만, 가족에게는 따듯한 사람. 집안에 싹튼 새싹을 위해 능숙하게 카펫을 찢는 사람. 버나뎃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었을까?
버나뎃의 주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 유튜브 영상같은 타인의 이야기만 듣고 주인공의 마음을 직접 듣지 않는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한 행동이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세상. 빠르게 변화하고, 정해진 길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하고 싶은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삶은 계속 따분해지는데, 그것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 이라고 폴에게 울먹이며 말하던 버나뎃을 떠올린다. 버나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로 사느라 꺼내지 못한 열망을 품고 얼마나 끙끙 거리고 있었을까?
버나뎃처럼 화려했던 과거가 아니더라도 모든 엄마들에겐 엄마가 되기 전의 자기자신으로 살던 인생이 있었다. 그 삶은 지금 어디 갔을까? 지금 나자신은 사라지고, 엄마와 아내 딸과 며느리의 역할만 남아 있는 것 처럼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버나뎃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따분한 삶을 재미있고 가치있게 만들수 있는 것은 나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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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에서 죽었다 살아난 스팸의 이야기
* 영화 줄거리, 결말 스포일러 포함
우선, 쓰기 전에 사담이지만 이 영화가 크리에이터가 되고 씨네랩에서 쓰는 첫 리뷰이다.
블로그에는 여러 영화 리뷰들이 있지만, 어쩐지 첫 리뷰는 새 마음으로 새로 적고 싶었다.
영화를 본 후 딱 드는 감상은, 이 영화 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는데?였다.
내가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를 다 그리고 자세히 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봉준호 하면 기대하는 스토리의 깊이감, 숨 막힘이 이 영화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설국열차도 그렇고, 최근 흥행한 기생충도 그렇고 초반에는 조금 라이트 하게 시작하여 주제를 이끌며 더욱 깊게, 깊게 들어가지 않는가.
내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낀 점은 봉준호는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아주 작은 초점을 통해 더 깊이깊이 끌고 가며, 결국엔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경계하거나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생충은 "지하철 냄새" 같은 부분에서, 괴물은 장소인 한강에서 특히나 한국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정서와 맞물리며 울리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다만 미키 17은 장르부터 배경까지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SF의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흔히 내가 보던 봉준호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분명 미키 17에도 우리가 알던 봉준호의 것은 존재했다. 미키 17은 어쩐지 우리가 전에 봤던 봉준호의 영화들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주제가 많이 섞여있는 세미 통합판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주제의 포괄성
이 영화에서 어라라? 했던 것은 한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노동계층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듯싶다가, 어떤 섣부른 과학기술의 발전과 윤리의식의 부재도 다루고, 인간성, 악독한 권력 계층 후에는 생명권과 동물에 대한 존중도 주제로 나온다. 한 영화에 많은 내용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은 다르게 보면 그만큼 한 얘기에 다양한 주제를 넣은 지루할 틈 없는 영화라고도 생각되는데, 또 다르게 보면 조금은 복잡하거나 정신없게 느끼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 같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리뷰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보아서 더 그랬는데 그래서 지금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어야 하지?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노동계층과 미키 17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이 확실히 존재한다. 미키 17이 노동계층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다. 나는 원작인 미키 7을 보지 않았고, 또 영화를 볼 때 원작과 영화 사이 연결고리를 찾는데 열중인 사람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짚는 부분이 원작과 얼마나 다를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영화에서 미키 17이 노동자로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현대의 노동자와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것이 나에게는 참 재밌는 포인트였다.
특히나 미키 17은 다른 미키들에 비해서(잘 나오지도 않았지만) 우리가 흔히 사회에서 인지하는 노동 계층과 닮았는데, 돈을 못 벌었으니 이것은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한 벌이라고 여기는 부분이나 권력자에게 의견을 표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부분,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까지... 현대 사회의 수긍하는 노동자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래서 체제에 반항하는 미키 18이 더욱 이질적이거나 독특하게 그려진 것 같았다. 미키 17은 자신을 맛있는 고기라고 표현한다거나 죽어도 되는 존재라고 묘사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소모품, 대체품 등으로 부르곤 한다. "죽는 기분은 어때?" 가끔은 조롱이고 가끔은 진심인 이 말은 미키가 저 우주선에서 가장 하층의 소모품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정작 미키가 없으면 우주 밖으로 나갈 염두도 못 냈을 거면서. 유일하게 이를 막거나 안쓰럽게 보는 것은 그의 여자친구인 나샤 뿐이다.
미키가 돈이 없다고 해서, 혹은 그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해서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키는 꼭 실험 쥐처럼 혹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스팸으로 취급된다. 나는 "스팸"이라는 이 단어가 미키를 그리고 노동자를 권력자들이 어떻게 보는지를 너무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 불량 식품이지만 삶에서 필요한 것. 후에 권력자가 그에게 "너도 죽는 것이 무섭니? 그럼 너도 인간인 거구나."라는 말에 미키 18의 표정이 흔들린 것도 평소엔 그런 대접을 받지 않았음을 그리고 은연중에 미키 자신도 자신을 리필돼도 되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현대의 노동계층을 투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애초부터 미키가 노동자이기도 하고. 특히나 전문직이나 기술직보다는 우리가 블루칼라라고 부르는 육체노동자들의 모습과 같다. 어느 목적을 위해서 미키를 소모품 즉 스팸으로 생각하며 갈아치우려는 권력자 그리고 그 밑 연구직, 기술직의 모습이 노동자가 죽어도 나 몰라라 하는 현대의 누군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멀티플을 경계하는 모습조차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미키를 방사능에 노출시키고, 제일 먼저 바이러스를 마시게 하고 정체 모를 외계 생물체가 있는 곳에 던졌음에도 그가 인간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최후에야 안 권력자가 우스울 뿐이다. 그래서 권력자가 원 앤 온리 엘리트 제시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미키가 몇 번째 미키인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일 테다.
누가 원주민인가이 영화에서 다음으로 인상 깊은 것은 바로 이 대사다.
"얘네가 망할 외계인인 게 아니라 우리가 외계인인 거지!"
어디에나 통용될 법한 뼈가 있는 대사다. 특히나 이 영화가 할리우드를 겨냥하고 나온 영화인 것을 생각하자면 "원주민" 대사에 움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외계인은 우리가 알법한 고생대...? 그전으로 되돌아가서 곰 벌레 같은... 그런 생물체를 닮았다. 겉으로 봤을 때는 아메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능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물론 인간이 그들을 말살시키자고 마음먹은 것은 그 때문이 다는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혹은 타 생물에 대한 존중이 없는지는 괴물이나 옥자에서도 충분히 봉준호가 다룬 내용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도 마음먹고 다루어졌다. 특히나 지구의 환경을 망친 주범이 다른 행성까지 가서 그 나라의 환경을 다 망친다는 것은 꼭 <빠삐용>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인간이 만든 SF 영화에서 나오는 흔한 전개다. 인간은 늘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이 더욱 판타지같이 그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이 사는 모든 터전에 공생은 없다. 우리의 지구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얼마나 많은 전쟁과 학살을 겪고도 그 조그마한 자원을 위해 무의미하고 잔인한 사투를 벌이는지 알고 있다. 미키 17에 마샤와 카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그 인류라면 그 세계는 얼마 안 가 망가질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이 더욱 SF처럼 와닿았다. 미키의 트라우마로 남은 빨간 버튼이 엔딩에서는 제대로 미키의 복사 기기를 터트렸듯이, 그들은 인간사에 남은 트라우마를 동화처럼 터트렸다. 인류가 아직 발전하지 않았을 때의 터전인 동굴에서 그곳의 원주민과 농사를 가꾸며 사는, 꼭 책 <사피엔스>의 예정된 절망이 오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 같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꼭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권력자 부부가 기어코 그 생물체를 학살하기 시작해서 인류나 그 외계인 둘 중 하나는 멸망하는 것이 어찌 보면 예정된 시나리오인데 영화는 아주 화목하게 권력자의 목을 베고서 아기도 엄마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그들은 생각 외의 평화를 찾았다. 하지만 나는 이 결말이 관객이 생각하는 스토리를 엉성하게 만드는 포인트라 하더라도 만족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영화에서는 그 권력자가 당선에 실패한 것으로 나오지만, 현실은 그런 권력자들이 깃발을 잡는다. 사람들은 허황되고 편향된 것에 쉽게 홀리고 영화 속 마샤만큼 이성을 잘 잡고 있지 않다. 그래서 기생충의 기우가 꿈꿨던 꿈이 실현된 영화도 몇 개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나의 조그마한 소망이 있었나 보다. 심신이 지치니 해피엔딩이 좋다. 그들이 언제까지 해피할지는 모르지만 영화관에서 한대 맞은 머리로 나오는 멍한 기분을 느끼지 않은 것이 내심 좋았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스토리와 결말 그럼에도 이러한 주제들을 다뤄줬다는 것부터 고맙다. SF라는 장르가 쉽지 않은 것을 모두가 알고 특히나 자연스러운 CG를 만들어내는데 들인 공, 그리고 매끄러운 연출과 지루할 틈 없는 전개까지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비주얼이 참 좋았다. 이런 평 조금 저급할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영화는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젊은 배우들의 비주얼이 훌륭해서 눈이 즐거웠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심 사심이 들어간 평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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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외설적 돈키호테가 쟁취한 표현의 자유
7★/10★
이 영화는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산골 집안에서 밀주를 팔던 소년 래리 플린트가 세계적 성인 잡지 《허슬러》를 창간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수성가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영화에는 래리 플린트가 법정에서 무수한 시련을 겪는 과정과 그의 조력자인 변호사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법정 영화인 것도 아니다. 〈래리 플린트〉는 어느 외설적 돈키호테가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며 법, 체제, 규범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며 질문을 생산하는 영화다.
동생과 함께 허접한 스트립 바를 운영하던 래리는 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뉴스레터를 제작하다 성인 잡지 시장의 틈새를 발견한다. 그 영역의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는 《플레이보이》는 선정적이긴 했지만 ‘고급’스러웠다. 외설적인 사진과 수준 높은(혹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기사를 함께 배치하는 전략이었다. 래리는 확신했다. 《플레이보이》를 사는 사람 중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를 읽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그래서 사진과 어울리는(그러니까 ‘저속한’) 글을 실은 잡지 《허슬러》를 만들었고, 금세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대놓고 ‘외설’을 표방한 래리는 무수한 법적 시비에 휘말렸다. 음란물 유포 조직 범죄를 비롯해 법정 모독죄로 처벌받는 등 감옥신세를 졌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였다. 나중에는 수백만 명의 신도를 가진 유명 목사 제리 폴웰을 풍자하는 글을 실었다가 천문학적인 명예훼손 소송에 시달리기도 했다. 특히 폴웰과의 소송이 중요했는데, 일부 진보 언론의 지지가 있긴 했으나 당시 언론은 이 재판을 두고 ‘성직자 대 포주, 하나님 대 악마’의 재판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래리는 끝내 승리했고 표현의 자유의 수호자가 되었다. “수정헌법 1조가 저 같은 쓰레기를 보호한다면 모든 국민을 보호하겠죠.” 래리 플린트는 음란과 외설의 모호한 기준,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위계,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도덕 규범의 정치적 허점 등을 파헤치며 무수히 많은 유의미한 논쟁을 촉발했다. 설령 쓰레기 같은 방법을 통해서일지언정.
영화는 이 과정에 그가 겪은 개인사적 어려움을 더한다. 래리는 총격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이 통증으로 한때 마약성 진통제 남용 문제에 시달렸다. 자기가 운영하던 바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만난 아내이자 래리가 가진 외설적 상상력의 원천인 알시아 역시 마약 문제에 시달리다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래리가 법정에서 도발을 이어가자 판사는 그의 정신 건강을 의심하며 구속복을 입어야 하는 정신병동에 넣었다. 래리는 이 모든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압박하는 것들에 굴복하기를 거부했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와 마찬가지로, 래리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 미국식 자유를 체득한 ‘자유인’이었다.
굴복하지 않는 래리의 정신을 그의 남성성과도 연계해볼 수 있겠다. 하반신 마비 후 래리는 성적 기능을 상실한다. 래리가 더한층 투사가 되는 건 이 이후부터다. 그의 캐릭터는 일관됐다. 하지만 이전에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경제적 성공, 젊고 아름다운 아내, ‘외설’과 화제성의 정점에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식 능력을 상실한 후에 그의 지위는 조금 애매해진다. 무려 《허슬러》 발행인이 발기조차 되지 않는 남자라니? 그의 ‘투쟁’은 어쩌면 꺾여버린 자기 남성성의 일부를 여전히 빳빳하게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존 인물 래리가 지미 카터의 시대와 레이건의 시대를 모두 거친 인물이라는 점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는 래리가 종교 생활에 열중인 카터의 누나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카터의 시대에 래리는 소송에 시달렸을지언정 삶이 위태로운 상태까지 몰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레이건의 시대에는 달랐다. 그가 마주한 모든 투쟁의 수준이 더한층 심화되었다. 그를 표현의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만든 건 역설적으로 래리를 지워버리고자 했던 성적 보수주의, 엄숙주의자들이 득세한 세상이었다. 1960~70년대의 페미니스트 해방운동에 대한 반동이 뜻밖에도 래리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래리 플린트라는 인물을 통해 한 사회의 성 문화와 규범, 도덕과 법의 모순을 폭넓게 살피는 이 입체적인 영화의 유산은 2024년 베니스영화제 상영작 〈디바 푸투라〉로 이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포르노/외설 혁명가’의 얼굴이 왜 늘 여성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성애자 남성 포르노 제작자인가 하는 점이다. 앞선 두 영화뿐 아니라 션 베이커의 〈레드 로켓〉 등 포르노/외설 제작자 혹은 스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개별 주제 의식과 완성도를 떠나 ‘포르노-자유-(이성애) 남성’의 상관관계가 굳건하다.* 왜 성을 ‘착취’하는 것도, ‘해방’하는 것도 모두 포르노/외설 제작자 남성인가? 고민해볼 일이다.
*물론 포르노/외설 소재 영화가 늘 그런 건 아니다. 미국 사회와 포르노 스타의 흥망성쇠를 연계한 〈부기 나이트〉, 어느 남성 스트리퍼가 자신과 일을 긍정하는 과정을 그린 〈매직 마이크〉, 게이 포르노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킹코브라〉, 여성 스트리퍼들의 이야기를 담은 〈허슬러〉, 여성 성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아노라〉 등의 영화도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에서 주인공은 성과 자유의 구원자라기보다는 그 한가운데에서 휩쓸리며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존재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남성) 포르노 제작자는 ‘해방’과 ‘자유’의 아이콘인데 반해 포르노 스타는 성별과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어딘가 스산한 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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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후에 1개 총 2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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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춘권의 고수 견자단 이번엔 핵주먹 타이슨과 대결 엽문3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엽문3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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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꿈꾸는 고양이> 메인 예고편
우리는 개발로 인해 유용한 삶을 누리게 되겠지만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잘 알지 못한다.
건물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길 위 고양이들의 삶.
우린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켜줄 수 있을까?
무너지는 그곳에서 만난 아이에게 꿈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공존하는 삶을 꿈꾸는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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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메이크 마이 데이> 공식 예고편
3월 1일, 가장 유쾌한 집사 면접 시작! #청년경찰 김주환 감독의 [멍뭉이] 1차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