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2023-09-18 00:44:44
[SICFF 데일리] 소년, 혜성의 꼬리를 잡다
영화 <외계인이 부모님을 납치해서 난 이제 혼자 남겨졌어>
감독: 제이크 밴 왜거너
출연: Emma TREMBLAY, Jacob BUSTER
시놉시스: 여고생인 잇치는 부모님과 함께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하게 된 후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잇치는 학교에 우주복을 입고 다니는 괴짜 남학생 캘빈을 알게 되고, 뉴욕에 갈 수 있는 학생 저널리즘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캘빈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그의 괴상한 계획에 동참한다. 캘빈은 사실 제스퍼 혜성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십여년 전 제스퍼 혜성이 왔을 때 그의 부모님이 ‘외계인에게 납치됐기’ 때문이다. 긴 제목만큼이나 발랄한 기운으로 가득 찬 이 영화는 트라우마를 안고 성장한 십대가 마침내 받아들이게 되는 아픈 현실과 외계인에 대한 판타지 모두를 끌어안는다.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를 연상시키는 판타스틱한 첫 장면부터 알콩달콩한 십대 소년 소녀들의 좌충우돌 모험기까지, 틴에이지 무비의 정석을 따라가는 동시에 미국적인 낙관주의로 가득한 작품. (최은영)
바야흐로 우주시대가 펼쳐졌다지만 우주선이 정말로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가 든다. 우주선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주'선이 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어머니 행성의 끈질긴 만류를 뿌리쳐야만 한다는 소리다. 그래야만 궤도를 벗어나 진짜 우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우주선만의 사정이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려면 기존에 자신이 머물던 곳(세상, 관념,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그 유명한 <데미안>의 글귀처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하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그렇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세계를 깨부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춘기에 불어 닥치는 폭풍은 그 중 가장 보편적인 '알 깨기' 통과 의례일 것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도 바로 이러한 시기를 거치는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 도시 소녀, 우주 소년을 만나다.
평생 도시에 살 것만 같던 잇지는 어느날 갑자기 시골 한복판의 다 쓰러져 가는 마을로 이사간다. 그가 공들여 가꿔 놓은 삶의 일부는 도시에 남겨두고 온 것만 같고, 기자가 되겠다는 꿈도 그로부터 몇 마일은 멀어진 것만 같다. 곁에 있는 거라곤 모험기에 심취한 성가신 동생과 과할 정도로 금슬이 좋은 부모님과 다 무너져가는 집 뿐. 아, 그는 정말이지 돌아가고 싶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잇지는 도시로 돌아갈 기회를 찾는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사는 마을에서 가장 '기묘한 대상'을 취재해 '저널리즘 대회'에 공모하는 것. 너무나 도시로 가고팠던 잇지는 학생 신문사 편집장인 헤더의 조언에 따라 학교에서 가장 이상한 괴짜, 캘빈 케플러에게 접근한다.
2. 소년, 혜성을 쫒다
외계인이 자신의 부모를 납치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캘빈은 언제든지 부모님과 함께 우주로 떠날 수 있게 우주복을 입는다. 홀로 사는 그의 집은 우주기지가 된 지 오래고, 기지의 벽에는 혜성과 별 사진들이 빼곡하다. 한편에 줄지어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는 우주의 신호를 탐지하는 곡선이 넘실거린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하늘로, 하늘로 향해 있다. 언젠가 부모님이 제스퍼 혜성을 따라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리며, 사람들이 아무리 그를 괴짜라고 무시하고 폄하한다고 해도.
잇지는 이런 저런 모험과 사건을 함께하면서 캘빈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의 순수한 열정과 재능, 그리고 부모가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소년이 이토록 우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연까지. 피차 페블폴즈에 발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잇지가 그의 가장 친밀한 이해자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별과 우주와 혜성에 대해 논하는 사이 두 사람의 사이는 아주 긴밀해진다.
3. 알을 깨고 나오기
꿈과 낭만은 언제나 지독한 현실의 방해를 받는 법이다. 잇지는 캘빈에게 그의 '잠입 취재' 사실을 들키고, 캘빈은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믿음 혹은 기대와는 미국 어느 한편에 살아 있었으며 그 자신의 꿈과 삶을 위해 아들을 버리고 떠나갔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인생 최대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두 사람은 각자의 사정으로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 대한 진심과 꿈에 대한 열의로 다시금 일어서고, 마침내 제스퍼 혜성을 찾는다. 그리고 캘빈이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도! 그리고 캘빈은 비로소 그를 10년 넘게 족쇄처럼 잡아두었던 '혜성'과 '잃어 버린 부모님'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삶 살아나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청소년 성장 서사를 다룬다. 잇지와 캘빈은 서로를 마주함으로써 자신이 기존에 고수하던 세계(그러니까,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잇지'와 '캘빈'이라는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잇지는 캘빈을 통해 페블폴즈에서의 삶의 즐거움을 깨달았고, 캘빈은 잇지와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부모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홀로서기를 한다. 마침내 그들이 그들만의 로켓을 궤도 밖으로 쏘아 올린 것이다.
SF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유쾌하고도 독특한 소녀, 소년들의 성장기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가끔은 우주적인 상상과 몽상에 빠져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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