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3-27 17:07:34
알쓸삼잡
넷플릭스 1위 <삼체> 훑어보기
현재 넷플릭스에서 가장 핫한 작품 <삼체>
2015년 아시아 최초로 SF의 노벨문학상이라고 불리는 휴고상을 받은 중국 작가 류츠신의 '삼체'를 원작으로
삼아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팽팽한 긴장감으로 드라마를 완성시켰다고 하는데요.
<삼체>는 400년 뒤 미래에 올 위협에 대비한다는 독특한 설정과 함께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하니 오는 주말 <삼체> 어떠세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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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미셸 공드리가 좋은 5가지 이유
- 어떤 사람 곁에 10년을 머무르려면, 반드시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10년의 세월을 함께하기가 쉽지 않죠. <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는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와 10년간 함께한 조감독 출신 프랑소와 네메타 감독의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미셸 공드리를 향한 애정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당신, 미셸 공드리를 안 좋아하고 배겨?" 하고 귀여운 으름장을 놓는 느낌이랄까요. 그렇다면 관객도 대답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리하여 적어봤습니다, 미셸 공드리가 좋은 5가지 이유.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Michel Gondry: Do it YourselfSummary<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첫 번째 비디오 클립부터 2023 칸 영화제 감독주간 상영작 <공드리의 솔루션북>에 이르기까지, 그의 독창적이고 특이한 창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Cast감독: 프랑소와 네메타1. 장점이 많다.미셸 공드리는 장점이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좋아하기에 장점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걸까요? 장점이 많아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어쨌든 <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에는 그와 작업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해 미셸 공드리의 장점들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죠.- 따라 하고 싶어지는 결과물을 창작한다.- 끊임없이 창작물을 낸다.- 유행을 팔지 않는다.- 추상적이면서 완결된 표현을 한다.- 일상을 초현실로 만들 줄 안다.- 터무니없는 발상에도 논리를 부여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디어도 다듬어 쓴다.- 고전적이면서도 독창적이다.어떠한 방식으로든 직업으로서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그의 장점으로 거론한 항목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미셸 공드리는 이걸 해내는 대단한 창작자입니다.2. 창작을 사랑한다.'창작자' 하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는 완벽주의자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 영화에도 미셸 공드리가 겪는 창작의 고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공드리다웠다'는 영화 <무드 인디고>를 제작하는 미셸 공드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창작자'처럼 힘들고 지치고 괴로워 보였습니다.그러나 그는 창작을 사랑해 마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신기한 창작자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자신의 좌우명이 무어라고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는데요. 그의 삶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한 문장이 있다면, 그것은 누가 봐도 'Do it yourself(스스로 해라)'입니다. 자신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D.I.Y라 하지요. 미셸 공드리는 D.I.Y가 바로 창작의 기본이라고 말합니다.사실 그는 D.I.Y 그 자체를 무척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밴드 위위(Oui Oui)의 드러머이던 시절, 미셸 공드리는 앨범 홍보에 필요한 모든 창작물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죠. 이 영화에 프랑소와 네메타 감독의 애정이 묻어 있었듯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미셸 공드리의 주변에는 '애정'이라 쓰인 공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습니다.미셸 공드리는 지금도 자신의 방 한구석에 있는 책상에서 연필, 펜, 가위, 풀로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만든답니다. 그가 돌아갈 곳은 언제나 D.I.Y의 세계인 것이죠.3. 비상하다.미셸 공드리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가 한 컷씩 직접 그리고 오려 만든 위위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미셸 공드리의 능력을 보아하니 위위를 해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밴드 멤버의 말처럼, 그는 밴드 해체 이후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영화감독으로서 미셸 공드리도 대단하지만,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미셸 공드리는 정말 남다릅니다. 사실적 풍경으로 리듬감을 표현하고, 끝없는 줌(Zoom) 기법으로 유기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비트를 시각화하는 방식은 뮤직비디오 시장에서는 전례가 없는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세상에 없었고, 노래와 어울리며, 인상적이고 기발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뮤직비디오를 계속, 말 그대로 계속 만들어냅니다. 크, 멋지지 않습니까.4. 결단력이 있다.미셸 공드리는 더 오를 곳이 없으면 무대를 옮기는 사람입니다. 그곳에 안주할 수도 있지만, 편안한 곳에 머물면 고인다고 말하는 멋쟁이죠. 뮤직비디오만 찍어도 먹고살 수 있었을 텐데 영화를 만들어 보고자 할리우드로 갔고, <이터널 선샤인>으로 큰 성공을 경험한 후에도 다시 저예산 영화를 찍었죠. 미대 학생, 밴드 드러머, 뮤직비디오 감독, 영화감독, 드라마 감독, 아마추어 영화공장 운영자까지,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창작'을 향해 끊임없이 결정하며 지금의 자리에 왔습니다.미셸 공드리 덕분에 저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보게 됐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결정을 해왔나?- 나의 결정들은 어떤 방향을 향했나?- 나는 주도권을 쥐고 결정하고 있나?<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를 관람한 이후, 그는 창작자로서, 직업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나아갈 방향을 안내해 주는 저만의 나침반이자 이정표가 되었습니다.5. 귀엽다!마지막으로 미셸 공드리는 귀엽습니다. 장담컨대, 귀여움보다 강한 매력은 없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귀여움은 진솔함에서 나옵니다. 사소하거나 하찮아 보이는 일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꺼내놓는 사람은 귀엽고도 대단합니다.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감독 스파이크 존스와 미셸 공드리의 대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된 학교 있당. 너 있냥?(공드리)", "나도 있엉!(존스)" 엄청난 역량의 두 감독이 나란히 앉아 이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대단한 성과를 주머니에 꿍쳐놓은 사탕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떻게 귀엽지 않을 수 있을까요?⊙ ⊙ ⊙미셸 공드리가 좋은 5가지 이유, 공감하시나요? 만약 공감되지 않으시다면, <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를 감상해 보세요. 분명, 공드리 덕후가 되실 테니까요.One-Liner나는 지금껏 <이터널 선샤인> 덕후였으나, 오늘부터 공드리 덕후가 되었음을 선언한다.Schedule in JIFF2024.05.02(목) CGV전주고사 5관 13:002024.05.04(토) CGV전주고사 8관 13:302024.05.09(목) CGV전주고사 5관 13:30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5월 01일 -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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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트 레이더스>, 결국 그들을 구원해 낸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나이트 레이더스>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나는 디스토피아 영화를 좋아한다.
현실에서 만나볼 수 없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어떤 억압이나 규제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하지만 이러한 삶들 속에서도 항상 희망과 구원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떤 한 개인에 의해서, 혹은 개인이 여럿 모인 단체에 의해서 이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에는 균열이 일어나고, 결국은 희망이 온 세상을 뒤덮게 된다.
이런 이유들로 디스토피아 영화를 꾸준히 찾곤 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버석하고 어둡게 변한 세상이 다시 인간으로 인해 구원받게 되니까.
서기 2043년, 캐나다 북부는 독재국가 '에머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 독재국가는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을 세우려고 한다. 대제국을 세우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시민권이 없는 어린 아이들을 납치하여 '인간병기'로 양성하고자 한다. 이에 반대하며 '니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는 딸 '와시즈(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를 데리고 외딴 숲에서 숨어 지낸다.
하지만 독재국가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드론을 도망쳐 다니다가 와시즈는 다리를 다치게 된다. 감시는 점점 더 그들을 옥죄어오고, 와시즈의 상처는 깊어져만 가서 결국 니스카는 딸 와시즈가 독재국가 에머슨에 끌려가도록 내버려둔다. 독재국가 에머슨에 끌려가면 강제로 군사교육을 받고, 인간병기로 길러지지만 그곳에서는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을 잃은 뒤,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가던 니스카는 독재국가에 대항하며 숲에서 지내던 캐나다 북부의 토착민 '크리족'을 만나게 된다.
크리족은 그녀를 구원자, 수호자라고 믿었고, 그녀는 크리족의 도움을 받아 '아카데미'에서 인간병기로 길러지고 있는 딸을 구출하고자 한다.
같은 시간, 딸 와시즈는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에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라는 애국강령을 매일 반복하여 외우게 하는 등의 군사교육과 정신교육을 주입받고 있었다. 이 독재국가는 어린 아이들을 전선에 투입시키기 위해 강제로 학교에 소집하고, 남은 어른들에게는 바이러스가 담긴 음식을 유포하여 죽게 만들고 있었다.
이 장면들을 보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 땅에 살고 있던 기존 토착민들의 전통과 역사는 무시해버리고, 자신들의 사상만 주입시키려는 모습.
가치관을 형성해나가는 중요한 시기의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긋난 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지난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모든 권리를 장악한 나라가 자기들만의 구실을 내세워 '교육'을 식민지 지배의 수단으로 삼던 모습. 우리나라의 역사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역사만 주입시키려던 모습.
이 영화는 이렇게 유난히 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니스카도, 와시즈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니스카는 딸 와시즈를 구하기 위해 크리족과 함께 아카데미를 찾아갔으며, 와시즈 또한 함께 갇혀 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아카데미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독재국가 에머슨에 맞서 싸우겠다는 일념 하에 이들은 모두 용맹하게 움직였고, 결국 와시즈와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에 성공해냈다.
이는 단순히 한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재국가가 그렇게 용을 써서 어린 아이들을 모으려고 했던 이유는 아직 덜 성장한 이들을 대상으로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을 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치관을 형성해내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군사훈련을 받아 '자신들만의 인간병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결국 니스카와 크리족은 이렇게 미래사회의 주역인 아이들을 구출해냄으로써 독재국가의 계획을 무너뜨렸다.
뿐만 아니라, 이는 토착민의 문화와 역사, 삶을 지켜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의 초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와시즈는 남들보다 드론에 대해 더 잘 안다. 그리고 이는 영화의 후반부, 토착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투입된 독재국가의 여러 드론들을 조종하는 와시즈의 모습과 이어진다. 와시즈는 자신의 능력으로 드론을 토착민들에게 유리하게 움직이도록 조종했으며, 토착민들은 이런 니스카와 와시즈를 보호하며 국가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
'그 아이를 데려온 건 그의 어머니였다.
그들은 북쪽에서 부족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이다.
우리는 그녀를 수호자라고 부른다.'
결국 이 땅의 원래 주인인 토착민들을 구원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드론을 조종하는 와시즈와 그녀를 데려온 엄마 니스카를 통해 사람들은 희망을 목격했고, 다함께 힘을 합쳐 단결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은 그 희망을 스스로 이루어내기 시작했다.
영화를 곱씹다보면 현재 국제사회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곤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 나라를 망가뜨리고, 그 나라의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모습.
오히려 이 영화보다 현실이 더 고통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영화를 다 본 후에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한 토착민은 이런 대사를 한다.
'식민 지배자와 싸우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배를 강요하는 국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들의 굳은 의지와 용맹하게 맞서 싸우고자 하는 태도'이다.
현재의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그리고 먼 훗날 이 나라에서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지켜내야 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결국은 희망을 마주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의 희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섬세한 감정선과 스릴감을 지닌 <나이트 레이더스>는 이전까지 우리가 자주 접한 디스토피아 영화와 닮은 부분도 있지만, 그 결이 조금은 다른 영화이다.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많은 이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관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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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분위기 속 경쾌한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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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에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다. 부모이기에 앞서 여러 가지 행동과 선택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스승 같은 존재로 그가 걸어가는 삶의 모습은 아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준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일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비슷한 직업을 갖게 되거나 그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일을 찾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보호자로서 가장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인 엄마는 아이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아이 옆에서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보호자이면서 스승이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아이는 굉장한 혼란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간 엄마가 해주었던 모든 일들을 받지 못하게 되면 아이는 절망 속에 보내다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청소년 정도의 나이라면 아이는 엄마에게 배웠던 것을 이용해 자신의 다음 삶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했던 일들, 행동들을 떠올리며 자신 만의 커리어를 만들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간다.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잠적해 버린 엄마를 잊고 스스로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사라진 엄마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샘(카렌 길런)은 킬러 생활을 하는 엄마 스칼렛(레나 헤디)을 보며 성장기를 보냈다. 성장기의 어느 시점, 스칼렛은 갑자기 샘을 떠나 잠적해버린다. 그 후 샘은 떠난 엄마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하면서 성인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사라진 엄마에게 엄청난 서운함과 무수한 질문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와 똑같은 일을 택해 같은 길을 걸어간다. 그의 차가운 말투와 넘치는 에너지는 스칼렛이 가지고 있던 모습이다. 자신의 일을 할 때, 그에겐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한 편으론 여전히 엄마를 잃고 슬퍼하는 소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샘을 돕는 회사의 간부인 네이선(폴 지아마티)은 과거 스칼렛을 도와줬고, 이제는 샘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일하는 지금의 샘에게 네이선의 도움은 필요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회사라고 불리는 청부살인 업체의 간부는 모두 남자가 중심이 된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대표자 격인 네이선은 선한 의도를 가진 듯 보이고 마치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샘이 가야 할 길을 지정해 알려준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네이선이 가진 의도가 회사라는 시스템 보호라는 것이 천천히 드러난다.
사실 네이선은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안정감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시켜나갔던 인물인지 모른다. 그가 만든 그 안정감은 한순간에 엄마가 사라진 샘에게 어느 정도 의지할 구석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형성된 안정감은 샘에게도 실력 있는 킬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만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그 회사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에게 가진 신뢰는 깨지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샘이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어떤 사건은 회사의 안정적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다시 그 안정을 찾기 위해 네이선은 샘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자기반성 없는 보수적 시스템과 철저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조직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다르게 보면 시스템의 안정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조직과 대결을 벌이는 여성들에 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회사로 명칭 되는 조직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그리고 그 회사의 안정을 깨트려 부도덕을 드러내고 대결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렇게 이 영화를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도 볼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인 시스템과 진보적인 사람들 간의 대결을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보수적인 시스템은 영화 속에서 한 순간도 반성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정화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반면 시스템과 대항하는 입장에 있는 샘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하며 반성한다.
샘의 반성을 이끄는 건 그가 죽인 어떤 인물의 딸인 에밀리(클로에 콜맨)이다. 실수로 에밀리의 아빠를 죽였지만 그 이후 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갑자기 혼자 남겨진 에밀리를 보며 그를 지키기 위해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또한 후반부에 샘을 돕는 조력자로 다시 등장하는 엄마 스칼렛, 애나(안젤라 바셋), 플로렌스(양자경), 매들린(칼라 구기노)은 그들의 위치와 지위를 정확히 인지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시스템에 대항해 싸운다.
영화의 전반적인 등장인물과 구성을 보면 영화 <존 윅> 시리즈가 떠오른다. <존 윅>에서 킬러들이 도움을 받는 호텔은 이 영화에서 도서관이 되고, 킬러들에게 임무를 주고 대가를 주는 회사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존 윅>은 개인과 시스템의 대결이 좀 더 강조된다면,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시스템에 반기를 든 작은 조직이 대결을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존 윅>에는 꽤 유능한 킬러들이 존 윅을 죽이기 위해 대결을 자처했다. 하지만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의 조직에서는 그런 유능한 킬러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위기를 맞은 시스템을 지켜줄 유능한 존재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샘과 친구들을 제거하려 하는 건 시스템의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경쟁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다. 이런 무능한 시스템은 영화의 전반적인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구성이 어떠하든 이 영화는 액션 영화다. 배우 카렌 길런이 보여주는 액션은 꽤 다채롭고 사실감이 넘친다. 긴 팔과 다리를 이용해 격투 액션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꽤 빠르고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액션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그의 액션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액션 장면을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샘을 도와주는 애나, 플로렌스, 매들린과 스칼렛은 총기나 도구를 활용한 액션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로 근접 액션을 보여주는 샘의 액션 장면과는 다른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레트로 한 액션과 분위기, 그럼에도 떨어지는 긴장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2,000년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등장하는 음악과 레트로 감성이 듬뿍 담긴 화면은 과거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런 이미지들은 영화의 액션이 벌어지는 볼링장이나 작은 식당의 이미지와 융합되며 꽤 근사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음에도 액션만큼은 돋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샘과 에밀리가 유사 모녀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샘은 자신의 엄마 스칼렛이 범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자신의 엄마의 실수를 바로잡고, 또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까지 반성하면서 에밀리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과 상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에밀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시스템에 대항하는 용기로 전환된다. 샘은 자신이 엄마에게 받지 못한 신뢰와 믿음을 에밀리에게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아마도 에밀리도 샘이 하는 일과 행동을 따라가겠지만 적어도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겪었던 혼란과 아픔을 에밀리가 겪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샘은 그렇게 엄마에 의지하고 신경쓰던 삶 뿐만아니라 자신이 얽매고 있었던 조직에서도 독립함으로써 진정한 독립을 이루어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나봇 파푸샤도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스릴러나 공포 영화들을 주로 연출해 왔다. 특히 그가 2013년 연출한 영화 <늑대들>은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연출작인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그가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첫 장편 영화다. 그가 가진 감각과 연출 스타일을 그대로 뽐냈는데 여러 가지 좋은 이미지와 액션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진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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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강하게, 공포는 약하게
우리는 종종 가슴 아픈 일들을 만난다. 그렇게 만난 아픈 과거는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을 완전히 잊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심한 상처를 남긴 과거를 완전히 잊기는 어렵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괴롭히는 그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마음에서 멀어져 간다. 그것도 단지 생각이 멀어질 뿐이지 마음 깊은 곳에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은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서 과거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또한 그렇게 아픈 기억을 지우는 것만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과거의 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대처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따라 마음의 짐이 가진 무게가 달라진다.
<인시디어스> 1편과 2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인시디어스: 빨간 문> 은 2012년과 2013년에 연달아 개봉했던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에서 9년이 지난 현재를 다루고 있다. 조쉬 램버트(패트릭 윌슨)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일을 다루는 영화는 ‘저 너머 세상‘ 로 불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조쉬와 그의 아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기이한 일들로 고통받던 조쉬의 가족은 영매인 엘리즈(린 샤예)와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 나타나는 기이한 일의 원인을 알게 된다.
특히나 ‘저 너머 세상’에 있는 악령은 현실에서 넘어온 조쉬와 그의 아들 달튼(타이 심킨스)의 삶이 큰 영향을 준다. 지난 이야기 속에서 악령에 의해 조정되어 움직이는 아빠 조쉬는 그의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적이 있다. 그건 악령의 조종이라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모든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나서 최면을 통해 그 기간에 벌어진 일을 잊게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니까 조쉬와 달튼은 아픈 상처를 계속 떠올리는 것 보단 완전히 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시리즈의 1편과 2편이 흥미로웠던 건 '저 너머 세상'의 모습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가족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습을 담았다는 데 있다. 특히나 악령에 씌인 아빠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가장 친숙한 존재가 망치를 들고 가족을 해치려 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평소엔 아주 좋은 아빠이지만 어느 순간 돌변해서 가족들을 해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마치 영화 <샤이닝>의 정신 나간 아빠를 보는 듯한 모습은 무척 공포스러웠다.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전편에서 9년의 시점이 지난 후를 다루고 있다. 본의 아니게 가정폭력의 상흔을 가지고 살아온 가족들 중 모든 것을 기억하는 아내 리나이(로즈 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그 상흔을 가지고 살아왔다. 비록 조쉬와 달튼은 최면을 통해 그 당시의 기억을 지웠지만 조쉬는 다시 과거와 같은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달튼도 성장과정에서 일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조쉬와 아내는 이혼을 했고 조쉬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아이들을 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하는 아빠 조쉬
영화는 마치 아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아빠에 대한 공포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조쉬와 달튼은 서로 가까워지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아 보인다. 조위와 달튼의 대화를 딱 그 시점만 보면 그저 사춘기 소년과 아빠의 어색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시리즈의 1편과 2편까지 생각하면 과거에 겪었던 폭력적인 일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5편에서는 조쉬와 달튼의 상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왠지 모르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기억을 지웠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과거의 상처를 그냥 덮어놓는 방식으로는 서로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서로 이해해야 비로소 진짜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인시디어스: 빨간 문>에서 훌륭한 건 이렇게 과거의 상처를 덮은 가족이 다시 그 기억을 복원하고 그 공포를 이겨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 자체로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아빠와 아들이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정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 두 사람은 다시 '저 너머 세상'에서 만나 힘을 합한다.
두 사람이 따로 떨어졌을 때보다는 함께 있을 때 전달되는 감정의 파고가 더 크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불편함을 크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얼마나 상대방을 아끼고 있는지,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후반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음 속의 아픈 상처를 드러낸 아빠와 아들
이렇게 아빠와 아들, 그리고 조쉬 가족 모두의 서사는 나쁘지 않다.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도 좋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드라마가 아니라 공포 영화라는데 있다. 과거 시리즈에서 '저 너머 세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벌어졌던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이번 영화에서는 덜 느껴진다. '저 너머 세상' 이 초반에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고 후반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게 보여지는 공간이 오히려 작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악령이나 '저 너머 세상' 보다는 조쉬와 달튼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공포 영화로서의 매력이 과거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은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을 맡았었다. 그는 <컨저링> 시리즈를 연출했던 것처럼 집안과 가족들의 주변을 활용해 무척 효율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 이후 <인시디어스3>과 <인시디어스: 라스트 키>는 각각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극 중 조쉬 역할을 연기한 배우 패트릭 윌슨이 직접 연출을 맡았다.
패트릭 윌슨은 자신이 <컨저링>이나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서 연기를 하면서 경험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번 영화를 첫 연출작으로 택했다. 그는 조쉬와 달튼의 부자 관계를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더 강화했고,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 효과인 점프 스케어 등을 활용하면서 공포 영화로서의 효과도 높이려 했다. 드라마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게 전개되었지만 시리즈 특유의 공포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인 연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조쉬의 가족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들은 과거의 가슴 아픈 일을 잊는 것을 택했지만, 영화는 그렇게 잊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조쉬와 달튼이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순간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공포 영화로서의 힘은 조금 떨어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풀려가는 과정 자체는 무척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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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한 스릴러를 펀하게. [넷플릭스]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이 후기에는 결말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합법적인 약을 마약처럼 활용하는 주인공 애나는 독특하고 처절한 방식으로 딸을 잃은 여자다. 부모님의 직업을 참관하는 미국의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그녀의 딸은 FBI 프로파일러인 아버지의 일터에 방문한다. 그 방문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연쇄 살인마를 인터뷰하는데 딸을 데리고 간 것? 어쩌다 우연히 불운하게 딸과 연쇄 살인마가 한 공간에 갇히게 된 것? 하필 부모님 직장에 방문해야 하는 날이 연쇄 살인마를 인터뷰하는 날이었던 것? 핑계 댈 곳은 많지만, 주인공 애나는 딸을 잃은 슬픔을 그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잘못이라 자책하고, 슬퍼한다.
그래서였을까? 딸을 보냈던 그날, 내렸던 비에 트라우마가 생긴 애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한 발도 딛지 못한다. 혹시 비를 맞게 되면 기절하기 일수. 그녀가 삶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술과 약. 그리고 술과 약을 섞어 먹으며 딸의 환영을 보는 일.
그런 그녀를 견디지 못한 남편은 떠나고, 그의 슬픔을 동정하던 이웃들도 그녀의 파괴적인 행동에 동정 대신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애나의 앞집에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가 이사를 온다. 늘 자신을 돌보지 않던 애나는 앞집의 소녀를 보며 자신의 딸을 떠올리고 손놓았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앞집의 소녀에게 반한 애나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와 썸을 탄다고 느끼는 순간, 남자의 여자친구가 나타나고 애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남자의 애인은 될 수 없지만, 자신의 딸을 닮은 당돌한 소녀와는 잘 지내고 싶었던 애나. 소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자 하지만, 남자의 애인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틈틈이 소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애나는 소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막 전학 온 소녀를 위해서 쿠키를 사주는 일처럼 소녀에게 도움이 되는 일. 그런데 이 과정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럽다. 특히 애나와 함께 이웃 여자를 험담하는 장면은 어린아이라기엔 묘하게 이질적으로 보였다. 소녀가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둘이 살아서 성숙한 걸까라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라는 제목을 떠올리며, 이 아이는 곧 모두의 뒤통수를 치겠구나 싶은 깊은 의심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이 드라마는 불안정한 정신의 애나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평온한 일상도 불안하게 보여준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극의 진행. 그리고 그 예상처럼 애나는 살인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술을 마신 상태에서. 그동안 이웃의 신임을 잃었던 애나의 말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고, 살인을 당했다고 추정되는 사람은 여전히 문자로 연락이 된다. 애나 역시 자기 자신을 의심할 정도.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애나가 술을 마시고 환각을 자주 보기 때문에 헛것을 본 건 아닐지 같이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애나의 의심은 사실이었고,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아내의 죽음으로 수사를 받은 소녀의 아버지. 애나의 집 앞에서 몇 주가 지나도록 우체통을 고치고 있는 수상한 남자. 살해당한 여자의 숨겨진 애인이자 사업 파트너(사기). 그리고 술에 취하면 필름이 끊기는 애나 자신까지.
치밀하진 않지만, 인과관계는 확실하게 짜인 판의 범인은 애나였다. 애나가 아무리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는 사람은 없고,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사람들은 애나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애나는 전화로만 상담하는 상담사가 있었는데, 그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애나에게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그의 말처럼 애나는 범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애나가 또다시 앞집의 살인을 의심하게 된 날. 비 내리는 길로 뛰어든 애나는 소녀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기어서 앞집으로 향한다. 자신의 딸은 잃었지만, 앞집의 소녀만은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가 목격하게 된 것은 자신이 지키려 했던 소녀의 민낯. 아버지를 죽이고, 우편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방문한 남자 역시 찌르고, 애나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시도하는 소녀. 애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소녀에게 대항하지만, 과할 정도로 소녀는 힘이 셌다.
사실 이 작품을 특별한 해석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극의 종반부에 닿으면 친절하게 모든 상황을 설명해준다. 소녀가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의 애인과 아버지까지 살해한 과정. 모든 죄를 애나에게 덮어 씌우려고 한 상황까지 모두 알려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식상하지 않았던 이유는 30분 단위로 끊어지는 회차의 빠른 진행과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있었다. 특히 보통은 아이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결말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수사물이나 스릴러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제목 때문에 소녀를 바로 의심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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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대사 중.
난 당신을 사랑해. 근데 사랑하지 않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대사 중.
생각이 많은 듯 한 여자가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첫 시작 장면이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녀의 이름은 율리에. 율리에는 하고 싶은 일은 참 많은데,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정확히 모르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이 없어보이기도 하고, 행동 또한 산만하여 정신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용감하고 추진력 있는 인물로 비추어질 수도?
성적을 잘 받으면 자신이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열심히 노력해서 들어간 의과 대학을 자신과는 맞지 않다며 바로 접질 않나, 육체가 아닌 정신 쪽 분야를 배우고 싶었다며 전과한 곳에서도 또 맞지 않다며 포기하질 않나, 이번에는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등 율리에는 수차례 이러한 일을 반복 거듭한다.
율리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나였으면 어땠을까?
사실 율리에의 이러한 모습은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나는 율리에의 거침없는 모습을 통해 웃음도 웃음이지만, 진지한 측면으로 굉장히 용감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율리에였다면?
원하는 것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선뜻 용기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한다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변화는 꿈도 꾸지 못했겠지.
인생에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 역할만 하다가 끝났을 것이라는 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자 세상을 누비던 율리에, 그녀는 어느 파티에서 '악셀'이라는 만화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율리에와 악셀은 나이 차이가 좀 있는데, 그래서인지 세대 차이 때문에 서로 갈등을 겪는 부분이 많아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 겪는 힘듦이 사랑의 힘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는지 서로를 사랑하며 지내는데...
역시 나이차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율리에와 결혼하여 아기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큰 40대 악셀과
아기보다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기에 꿈을 포기할 수 없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간 율리에.
이 둘의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은 둘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도록 만든다.
비록 여성을 혐오하는 듯한 만화를 그리지만,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유명한 만화가로 거듭난 악셀을 바라보는 율리에는 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와 자신을 비교했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회의감과 정체성을 게속해서 돌아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율리에는 도피하다시피 들어간 아무런 연관도 없는 파티에서 '에이빈드'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첫 만남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며 알게 모르게 서로를 향한 호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 둘은 서로 끌리지만, 각자 자신의 연인이 있기에
우린 바람 안 피웠어요. 전혀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대사 중.
라는 말을 하며 친구로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며 헤어지게 된다.
그렇게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
어느 날, 서점 일을 하던 율리에는 우연히 에이빈드를 보게 된다.
에이빈드도 그녀를 알아보고 자신이 일하는 곳을 알려주고 떠나는데..
악셀과의 관계에 지치던 중 에이빈드를 만나 행복해하던 율리에는 그가 알려준 장소로 곧장 향하게 된다.
여기서 포인트! 영화 기법에 주목하라!
율리에가 에이빈드를 만나러 찾아갈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율리에가 스위치를 누르자 모든 것이 멈춰버리며 세상에 움직이는 거라곤 율리에와 에이빈드밖에 없는데..
모든 게 멈춰버리고 율리에와 에이빈드, 둘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연출과 기법이 새로운 둘 사이의 관계를 집중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그 속에서 율리에가 그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엿볼 수가 있었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행복해하는 모습들이 단연 돋보였기 때문이다.
약간의 해방감이 엿보였다고 할까.
에이빈드를 통해 자기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해 향하는 모습이 이 연출과 기법으로 인해 돋보여지는 것 같아 가장 인상 깊고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재차 서로의 호감과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둘은 각자 자신의 연인과 헤어질 준비를 하게 된다.
에이빈드와의 만남을 통해 확신과 깨달음을 얻게 된 율리에는 악셀과의 만남을 정리하려 한다.
난 너의 괴짜 같은 면이 좋았어.
악셀은 그런 율리에를 말리며 잡아보려고 애쓰지만, 생각이 굳어진 율리에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지 않는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당신을 사랑해. 근데 사랑하지 않아.
라고.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율리에는 자신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던 중 덜컥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더불어 전남친인 악셀이 암에 걸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며 또 한 번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럼과 동시에 율리에는 에이빈드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조금씩 엇나가게 된다.
그러는 사이, 율리에는 악셀을 만나면서 그를 통해 과거에는 발견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영화는 사랑을 통한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도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찾아보게끔 고민하게 만든다.
사실 사랑도 사랑이지만, 한 여자가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더 집중해서 보면 또 다른 느낌의 깊이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다양한 인간관계는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아마 이 영화는 여러 인간관계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보고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깨닫게 해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니까 되도록이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자!
*가장 눈여겨 봤던 점!*
율리에의 성장 과정
2. 영화의 연출과 기법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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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의 기억 영화 후기 / 논란의 여주인공 / 나름 객관적인 감상평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내일의 기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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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강릉> 메인 예고편
강릉 최대 조직의 '길석'. 평화와 의리를 중요시하며 질서 있게 살아가던 그의 앞에 강릉 최대 리조트 소유권을 노린 남자 '민석'이 나타난다. 첫 만남부터 서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둘, '민석'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두 조직 사이에는 겉잡을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는데. . .거친 운명 앞에 놓인 두 남자 그들의 이양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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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쿄 리벤저스> 메인 예고편
기대 없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20대 청년 타케미치는
어느 날 뉴스를 통해 첫사랑 여자친구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유일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었던 그녀를 떠올리던 타케미치는
특별한 타임리프를 통해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되고
그녀를 살리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