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22 19:38:40
박찬욱이 사랑한 말러의 음악
영화감독이 사랑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영화감독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라고 하면 여러분은 누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구스타프 말러'를 뽑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이름은 생소할지 몰라도 그의 음악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특히 국내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 말러의 음악이 중요한 장치로 등장해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감정적 깊이와 철학적 주제를 담은 교향곡으로 유명한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입니다. 그는 '교향곡 제5번' 등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성악을 결합한 작품으로 독창성을 드러냈습니다. 생전에는 지휘자로 주목받았지만, 그의 음악은 후대에 재평가되어 현대 클래식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박찬욱을 포함해 마틴 스콜세지, 짐 자무쉬, 알폰소 쿠아론 등 영화 감독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럼, 말러의 음악이 흐르는 영화를 관람하러 떠나볼까요?
**말러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가 10월 24일 (목)에 씨네픽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헤어질 결심>, 박찬욱

줄거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셔터 아일랜드>, 마틴 스콜세지

줄거리
보스턴 셔터아일랜드의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는 수사를 위해 동료 척과 함께 셔터아일랜드로 향한다.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이 병원은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를 격리하는 병동으로 탈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식 셋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여인이 이상한 쪽지만을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지고, 테디는 수사를 위해 의사, 간호사, 병원관계자 등을 심문하지만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꾸며낸 듯한 말들만 하고, 수사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폭풍이 불어 닥쳐 테디와 척은 섬에 고립되게 되고, 그들에게 점점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브래들리 쿠퍼

줄거리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과 그의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콘 번스타인의 평생에 걸친 인연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
<칠드런 오브 맨>, 알폰소 쿠아론

줄거리
세계 각지에서는 폭동과 테러가 비일비재해 지고, 대부분의 국가가 무정부 상태로 무너져 내린 가운데, 유일하게 군대가 살아남은 국가 영국에는 불법이민자들이 넘쳐 난다.
한편, 아들이 죽은 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 따위는 모두 잃어버린 남자 ‘테오’ 그의 앞에 20년 만에 나타난 전 부인 ‘줄리안’은 기적적으로 임신한 흑인 소녀 ‘키’를 그에게 부탁한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눈 앞에서 마주한 ‘테오’. 그는 ‘키’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인간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만 하는데…
인류 종말의 끝, 기적이 다시 시작된다!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

줄거리
시끄럽고 허름한 카페, 로베르토와 스티븐은 커피에 중독되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도 연신 진한 커피를 들이켜댄다. 커피와 담배에 대한 예찬으로 일관된 선문답은 희한하게도 계속 이어지고 로베르토는 어이없게도 스티븐의 치과 약속을 대신 가주려고 하는데….
<타르>, 토드 필드

줄거리
무대를 장악하는 마에스트로, 욕망을 불태우는 괴물,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 이 이야기는 그녀의 정점에서 시작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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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 - 잘 안 섞인 비빔밥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기존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었다. 바로 코로나 때문이다. 상영 한번 당 관객 50명이라는 숫자는 사실상 모든 상영작이 전석 매진되는 광경을 불러왔다. 이 중에 특히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는 그 해 개막작인데다가 여고괴담 간만의 신작이라는 이유로 티켓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필자는 운좋게 취소표를 구해 관람했는데, 개인 SNS에 영화 티켓 인증을 올리자 몇몇 사람들이 DM으로 영화가 어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매력적인 요소들은 많은 영화다. 먼저 한국 공포영화의 대표적인 시리즈인 여고괴담의 간만의 신작이라는 점과, 학교라는 여전히 흥미로운 공간, 그리고 세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특색을 보이는 캐릭터(주로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스포일러라 정확히 언급은 안 하겠지만(GV 당시 감독도 되도록 언급하지 말아달라함) 시대의 아픔을 담아냈다는 점까지. 다만 문제는 이 흥미로운 요소들이 잘 섞이지 않는다. 마치 단편을 보는 것 마냥, 이 좋은 요소들이 좋기는 한데 갑자기? 라는 물음이 나온다. 그리고 필자가 공포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공포도도 크게 높지 않았다. 일부 갑툭튀나 그로테스크 요소나 일부 연출은 괜찮았지만, 특별히 이 영화만의 뛰어난 공포 포인트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최근 한국 공포영화들이 대부분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비교적 그럭저럭 볼만하다. GV 당시 씨네2000 대표님도 참석하셨는데, 그 당시 언질에 따르면 여고괴담을 10편까지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 퀄리티라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기존의 여고괴담 시리즈 팬덤을 '적당히' 만족시켜줄 뿐, 새로운 팬덤과 일반적인 공포영화 매니아들을 사로잡기는 매우 어려워보인다. 그래도 한국 공포영화가 답이 없는 '처참' 수준까지는 아니구나 라는 희망을 주기는 하는 영화라는 평 밖에 못하겠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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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되는가'보다 중요한 '무엇을 하는가'
사람은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어. 따분한 일을 하고 누구랑 입씨름을 하고, 그런 보잘 것 없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생활이, 인생이 완성되지.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만약 그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려 들면 그런 변함없는 일상은 생략돼버려. 결혼이나 이혼, 출산, 전직 같은 커다란 사건은 남겠지만 일상은 생략되지, 소박하고 시시하니까. ‘아무개 씨는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인생을 보냈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거야. 하지만 말이야.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건, 요약되어 사라져 버린 일상의 일이라고,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거지. 요컨대.
이사카 코타로, 『모던 타임스 』中삶의 대부분이 일상으로 채워진 것과 다르게. 이력서에는 일상이 생략되어 있다. 우리는 왜 일상을 살면서, 이력서에는 일상을 거세해놓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사람의 행적을 요약함으로써 대상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일 텐데. 가끔은 누군가의 일상을 통해 이력서보다 더 효율적으로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는 자기 자신을 인스타그램 피드로 드러낸다던데,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에는 SNS나 그가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카톡 대화 습관을 살펴보는 쪽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픽사가 새롭게 발표한 작품 <소울>은 언뜻 에덴동산 신화 처럼 보인다. 평화롭지만 조용하고 지루한 ‘탄생 이전의 세계.’ 주인공 ‘조’와 ‘22’는 부끄러움도, 쾌락도 없는 ‘준비된 땅’에서 현실 세계로 추방된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 ‘종신토록’ 고생해야 했듯. ‘조’와 ‘22’도 이승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다. 두 이야기에 다른 점이 있다면, 에덴 동산이라는 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아담과 이브와는 다르게, ‘조’와 ‘22’는 현실 세계에 남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쾌락만큼 고통도 따르지만, 그 고통마저도 생을 감각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한편 이 이야기는 『어린왕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낯선 곳을 표류하게 된 주인공(어른인 ‘나’)이 독특한 어린아이를 만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발견하며,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닮아있다. 『어린왕자』에서는 ‘어린왕자’가 ‘나’에게 각각의 별에 살고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상’을 보여준다면 <소울>에서는 ‘22’가 ‘조’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한 가지 트릭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조’가 자신의 천직을 찾아 기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파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해나간다. 사람은 각자 타고난 재능(Talent)이 있고, 그 재능을 직업과 결부시킬 때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만난 이발사나, 자신의 어머니, 지하철에서 기타를 치는 버스커 등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경제활동을 하고, 그 안에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22’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파크’라는 것은 인생을 감각하는 일종의 ‘영감’이고 우리는 각자 지닌 ‘영감’에 따라 많은 것을 느끼며 그저 상호작용하면 된다. 우리는 소박하고 시시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 지점에 이르면 주인공이 왜 다름 아닌 재즈 연주자였는지도 알게 된다. 그렇다. 인생은 클래식과 같이 악보를 따라 치는 연주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즉흥 재즈와 같다. 세상에 똑같은 재즈 연주가 하나도 없듯, 똑같은 인생도 없다. 우리는 각자의 스케일과 리듬으로 인생을 연주하는 존재다.
<소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며 영화관 바깥으로 힘차게 걸어 나갈 힘을 준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촉감을 느끼고, 기쁘게 씹고 삼킬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울>이 끝났을 때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재징이고, 소울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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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
난 아직 결혼을 못했다. 연애도 안 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난 여전히 책 읽고 공부하고 게임하며 영화 보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이걸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을을 하고 사는 분이 있지 않을까? 그 대신 뭔가 지금만큼 열렬한 덕질(?)을 못하게 될 테니 아직은 난 어린가 보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는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결혼은 먼 이야기니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날 향한 선택은 탁월하다;
근데 뭐 나만 그럴까? 아마 다들 그럴 것이다. 결혼을 한 사람만큼이나 안 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너 당장 내일 결혼할 수도 있어!'라고 말하면 헉 싶을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결혼을 무르려고도 하지 않을까? 결혼은 방구석에 누워서 굴리는 행복 회로가 아닌 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완전 남으로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도 어려운데 같은 집을 구하고 가구를 선택하고 이런 건 난이도가 더 올라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러다 못해 아이까지 낳는다면 고된 일이 따로 없다. 이런 지고 싶을 때 질 수 있는 마음의 짐을, 내가 생각했던 때가 아닌 다른 지점에서 져야 한다는 것은 참 생각만 해도 암담한 일이다. 여기 1963년의 프랑스에 이 부담을 질 위기에 처한 한 대학생이 있다고 한다. <레벤느망>으로 가보자.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대학생 안은 작가를 꿈꾸는 프랑스의 평범한 20대이다. 안은 그냥 술 먹으러 놀러 나왔다. 사실 프랑스의 20대만 하는 게 아니라 2022년의 한국 거주자들도 늘 하는 일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춤을 추고 있는 안. 한 남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저 남자가 너 쳐다보는데? 같이 온 친구가 안에게 무언가를 귀띔 한다. 내 스타일 아냐. 안은 도도하게 남자의 관심을 차단한다. 금세 다른 친구에게로 향하는 안. 글솜씨로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안. 놀러 온 무도회장에서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체감한다. 벗어나고 싶었던 무도회장을 뒤로하는 안. 자기의 몸에 뭔가 이상이 생긴 걸 체감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체크해봤지만 그게 점점 시간이 쌓여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의심하게 됐다. 혹시나 싶어 산부인과로 향한다. 진찰을 받는 안. 산부인과 주치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말해줬다. 임신 3주 차입니다.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된 안.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 외로운 싸움의 시작이다. 혼자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는 안. 낙태를 하고 싶어 이런저런 가능성을 찾아보지만 당시의 프랑스는 이를 불법으로 규제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 난이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세상의 시선, 그리고 장애물들과 싸워야만 한다. 한 집의 딸로서, 대학생으로서, 20대로서 그녀는 자유를 위해 싸워야만 한다. 영화는 이런 꽉 막힌 제도와 사회적인 시선 하에서 분투하는 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단출해서 서늘하다
어떤 영화들은 메시지의 깊이가 너무나도 따뜻해서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소울>이나 <체리 향기>가 그런 쪽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일상 속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통통 튀는 인물들을 묘사한 <소울>은 영화를 비롯한 예술이 할 수 있는 정서 교감이라는 점에서 아주 좋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건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아카데미에서도 수상한 바 있으니 평단의 선택을 받은 셈이다. 어쩌면 영화의 목적은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다.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이니 만큼 그런 것쯤이야 예술가가 고르는 선택지의 차이 아닐까?
이 영화 역시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한 단면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영화는 앞에서 썼듯 원치 않은 아이를 가진 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안이 겪는 사회적인 시선이 영화의 밑바탕이 된다. 무슨 말이냐? 일단 안이 감내해야 할 시선은 '잘 돼야 한다'라는, 성공에 대한 목표다. 근데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에도 붙고 작가로서도 잘 나가려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면 안 되겠지? 영화는 안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극에서의 주인공은 그렇게 잘 나가는 집안의 딸이 아니다. 금수저랑은 거리가 먼 안. 사회적인 계급이 몇 단계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녀가 바쳐야 할 노력이 있다. 영화는 이 안이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를 묘사했다. 또 1975년 프랑스가 관련 법을 제정하기 전까지 낙태는 불법이었다. 당연히 법적인 문제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좌절을 마주하게 된다. 이에 대한 묘사도 빼놓지 않았다.
이런 영화의 주요 설정은 감독이 어떤 정서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을까? 와도 닿아있다. 러닝타임 동안 이 사람이 전하고 싶었던 건 이 당시 안이라는 20대 여성이 짊어져야 했던 심적 부담감이다. 이는 영화의 내용 전개가 살짝 심심하지만 어떤 장면은 임팩트가 크다는 점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극을 보면서 안이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했던 특정 행위가 몇 개 묘사되는데, 이때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다 아픈 기분이다. 연출의 몰입도가 강점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각본을 쓴 사람이 관객에게 전하는 스토리 텔링이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소화기 쪽이 안 좋다. 속이 안 좋거나 배가 아픈 경우가 부지기수란 뜻이다. 지금도 이 리뷰를 쓰다가 속이 안 좋아서 10분은 고통받았다. 언제 나을 수 있을까? 이런 행복 회로는 사실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난 이걸로 병역처분도 바뀌었던 사람이었다. 그냥 약 먹으면 적당히 나은 상황에 만족하며 사는 게 최고다. 이 병으로 뭐 위로를 받고 싶다던가 그런 건 아니다. 이해를 구하고 싶은 것도 어쩔 땐 있다. 일상 속에서 엄청 심각한 지장까진 없으니 그냥저냥 살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아이를 낳는 차원이 된다? 이건 다른 문제가 된다. 내 몸에서 어떤 짓을 해도 의도하지 않는 짐을 진다는 건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물론 임신은 축복이다. 어머니, 아버지들은 위대하다. 그러나 자기가 원 영화는 이 답답한 인물의 처지를 갑갑한 내러티브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이 답답함의 정수는 카메라 비에 나온다. 카메라의 C도 모르는 나지만, 이 인물들을 촬영했던 방식이 다른 작품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 충분하다. 그리고 실제로 1.37:1의 비율로 촬영했다고 한다. 가로의 너비를 줄여 촬영 자체가 인물이 비좁아 보이는 효과다. 그리고 얼굴, 그러니까 한 상황에 대한 리액션이 바탕이 되는 영화다. 안 역할을 맡은 배우의 답답한 표정연기가 중심이 되니 번잡한 것들은 제외하고 인물에게만 집중되는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 영화의 심의 등급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5세다. 그런 등급에도 불구하고 수위가 센 편이다. 여성의 신체가 자주 나온다. 그러나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잔인한 느낌이다. 고어한 묘사가 나오지 않는 잔인함 때문이라도 감독의 연출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신체 부위가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야하지도, 고어하지도 않게 잔인함'이라니, 이게 뭔 소리야?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비현실적인 조건을 가감 없이 묘사해낸다. 그리고 엔딩으로 이 이야기를 끝내는데, 이 영화의 엔딩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면 이 영화의 플롯이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당당하게 또 꿋꿋하게
프랑스 여배우 하면 누가누가 있을까? 이 문장을 쓰자마자 떠오르는 얼굴이 몇 사람 있다. 마리옹 꼬띠아르도 프랑스인이고, 레아 세이두도 그렇다. 칸의 나라답게 연기 잘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들이 많이 나왔다. 이 영화에서 이 주인공을 맡은 아나 마리아 바토로 메이는 프랑스 안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한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아역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이 작품에서 꽃이 피었다고 전해진다. 비행기 타고 14시간 걸리는 한국에 사는 나도 이 배우의 열연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마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것으로 보이나) 안은 마치 1대 다수의 싸움을 벌이는 느낌이다. 남자, 여자 갈리는 것 없이 세상에게 고통받는 안. 외롭고 불안하지만 결국 당당한 모습으로 성장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솔직한 모습으로 소화했다. 중반부가 넘어가면 이 배우가 이 인물에게 마음이 갔다는 느낌이 있다.
마치 호러영화처럼
이 영화를 1줄로 요약하면 잘 만든 영화다. 서스펜스나 스릴 같은 단어 없이도 몰입하기 좋고, 엔딩도 합리적이며 캐릭터들도 살아 숨 쉰다. 이 말은 '낙태'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우리에게 어렵지 않게 전달한다는 뜻과도 통할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나도 남자다. 낙태는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소재였다. 그러나 이런 나도 이 감상문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분들도 잘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장르영화로서 무섭고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조여 오는 압박감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드린다.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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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의 대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며,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난하고 증오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를 공격하면서,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한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한다. 특히 현대 사회처럼 복잡하고 고립된 환경에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은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런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많은 이들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거나, 명상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으려 한다. 피부 관리를 통해 외모를 가꾸거나, 식단을 조절하며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외모에 대한 불만족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성형수술을 받거나, 심지어 약물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런 노력들은 표면적으로는 자기애를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부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는 아름다움에 대한 구체적이고 강박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개인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그 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한다. 외모는 개인적인 만족도와 직결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평가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며 외모가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는 태도는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평가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바꾸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증오가 더 커지고, 진정한 자기애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첫 번째 감정] 엘리자베스의 상실감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한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스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인기는 사라졌고, 그녀 자신도 나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활동을 이어가지만, 주변의 시선은 과거의 영광과 비교하며 그녀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특히, 프로듀서의 대체 인물을 찾으려는 행동은 엘리자베스의 상실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을 되찾을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다.
이런 상실감은 그녀의 자존감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영화 초반, 화장실에서 자신의 몸을 거울로 바라보는 장면은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순간에도 카메라는 그녀의 몸을 아름답게 비추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나이 든 모습을 감당하지 못한다. 외부의 평가에 좌우되던 그녀의 자존감은 이제 그녀 자신조차 부정하게 만든다.
결국,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자신을 다시 만들기 위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이 약물은 그녀의 몸에서 새로운 자아인 '수'(마가렛 퀄리)를 탄생시킨다. 젊고 매력적인 수는 엘리자베스의 이상을 현실로 만든 듯하지만, 상실감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엘리자베스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수에게 내어주며 점차 파괴의 길로 접어든다.
[두 번째 감정] 수의 자신감
수는 엘리자베스가 잃어버린 젊음과 자신감의 상징이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의 젊은 시절을 현실로 구현한 듯하며,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단숨에 스타로 떠오른다. 프로듀서와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그녀를 무대의 중심에 올려놓는다. 수는 외부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엘리자베스와 수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수가 빛날수록 엘리자베스는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빠져들며, 자존감은 더욱 바닥으로 떨어진다. 영화는 이 둘을 대비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수의 매력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연출은 엘리자베스의 고통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며, 그녀를 파괴의 길로 몰아넣는다.
결국, 수는 엘리자베스의 몸을 완전히 지배하려고 한다. 약물의 설명서에는 "두 캐릭터는 모두 당신이다"라는 경고가 있지만, 수는 이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간다. 그녀의 자신감은 엘리자베스의 존재를 파괴하며, 결과적으로 엘리자베스를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로써 영화는 자아와 외부의 평가 사이에서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세 번째 감정] 프로듀서의 징그러움
영화에서 가장 불쾌한 인물은 단연코 프로듀서다. 그는 쇼 비즈니스의 냉혹한 현실을 상징하며, 엘리자베스와 수를 상품으로 취급한다. 프로듀서는 자신의 투자자들 앞에서 수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그녀를 하나의 상품처럼 다룬다. 그 장면은 쇼 비즈니스의 추악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관객에게 깊은 혐오감을 안긴다.
프로듀서의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탐욕을 넘어 시스템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그는 수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 하며, 그녀를 철저히 이용한다. 그의 존재는 엘리자베스와 수의 고통을 증폭시키며, 쇼 비즈니스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후반, 괴물이 등장하며 상황이 급변하지만, 관객에게 더 큰 충격을 주는 것은 이러한 괴물을 만들어낸 프로듀서와 같은 시스템이다. 영화는 쇼 비즈니스가 가진 추악한 이면을 통해 외모 지상주의와 성공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프로듀서의 역겨움은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선 사회적 비판으로 기능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강렬함
영화 <서브스턴스>는 현대 사회가 외모와 성공에 집착하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는 자신의 외모와 자아를 사랑하지 못하고, 외부의 평가에 의존하며, 그 평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바꾼다. 영화는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배우 데미 무어는 실제로도 외모와 나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싸워온 인물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듯 진솔한 연기를 펼친다. 수를 연기한 마가렛 퀄리는 젊음과 매력을 극대화하며, 관객들조차 그녀에게 매료되게 만든다. 두 배우의 연기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서브스턴스>는 단순히 미스터리와 호러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는가?" 이 질문은 우리의 자아와 외부의 평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의 클로즈업과 음향 효과는 자아가 만들어지고 파괴되는 과정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현대 사회의 자기애와 외모 집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이 영화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고어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 괴물이 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브스턴스>는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로,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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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부수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던 마녀 시리즈가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긴 공백 끝에 개봉한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은 김다미 배우가 아닌 새로운 신인, 신시아 배우가 새로운 마녀로 등장하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또한 사라졌던 캐릭터들이 다시 그 자리를 채우면서 새로운 발견까지 함께하며 영화의 재미를 더 한다. 자윤이 사라진 뒤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과거의 뿌리부터 시작하여 1보다 더 강력한 존재들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강렬한 액션과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가 꽤 인상적이다. 다만 영화에서 표현되는 잔인함과 욕설의 정도에 비해 15세 관람가라는 게 약간 걱정스럽다. 그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다시 시작하는 마녀 두 번째 이야기는 이야기의 확장을 더한 마녀2는 자윤이 사라지고 난 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자윤이 사라지고 어떤 집단의 습격으로 아크가 초토화되면서 탈출한 소녀가 길을 서성이게 된다. 우연히 만난 경희에게서 처음 느껴보는 따스함이 그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한편,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 대상은 같은 그들이 모이면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소녀의 능력이 발산되기 시작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소녀의 존재는 멀어질수록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을 구원하는 순간, 소녀도 구원받게 되었다.
늘 그렇듯 목적을 위한 목적이 가치를 잃으며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조차 잊게 만드는 순간을 조명하며 순진무구한 표정에 떠오르는 광기를 강렬한 액션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또한 마녀의 뿌리를 찾아가듯 이야기의 흐름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며 어떤 존재의 탄생을 알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끔 만든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서 자윤과 소녀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왜 모체가 소녀를 그렇게 찾았는지를 다루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을 능가하는 힘 앞에서는 그저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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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최고의 화제작! 영화 <티탄> 리뷰
영화가 시작하면 어린 알렉시아와 그녀의 아버지가 함께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다.
뒷 좌석에 탄 알렉시아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이상하게 흉내내며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다.
점점 소리가 커지자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다 결국 교통사고를 당한다. 결국 알렉시아는 어린 나이에 뇌에 티타늄을 심게 된다. 그날부터일까?
이 부녀가 서로에게 애정이 식어버린 것이. 영화는 이들의 전사(前史)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분명한 점은 이를 기점으로 이 부녀는 서로의 존재를 거의 모르는 척하며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관계로 살아간다.
영화는 티타늄을 장착한 소녀 알렉시아에서 금방 훌쩍 자란 성인 알렉시아(아가트 루셀)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모터쇼장으로 보이는 어둡고 복잡한 공간에서 자동차 위에 올라타 다소 외설스러운 춤을 추는 알렉시아는 이곳에서 가장 인기 많은 댄서다.
하지만 그녀는 제 일을 열심히 할 뿐, 팬들에게나 동료들에게나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서늘한 인물이다. 마치 차가운 금속처럼.
어느 날, 그녀는 귀가 도중 사인을 요청하는 한 남성 팬을 맞닥뜨리는데, 그는 알렉시아에게 다짜고짜 자신과 만나보지 않겠냐며 부담스러운 구애를 펼진다.
그의 요구를 승낙하는 듯하던 알렉시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꽂고 다니던 금속 비녀로 순식간에 그를 죽이고 만다.
영화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살인하는 알렉시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린 여성에서 보이는 연약함이라는 편견을 짓밟듯이, 큰 체격의 남성마저도 단번에 죽음으로 내모는 그녀의 모습이 당당하게 그려진다.
작년 제74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은 그만큼 매섭고 저돌적인 기세로 젠더에 관해 고찰하고 인간의 충동을 유심히 묘사하는 작품이다.
당시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파이크 리가 가장 늦게 발표해야 할 최고상을 가장 먼저 발표하는 실수를 저지른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은
그 자체로도 화제 거리이지만 무엇보다 칸영화제의 선택이 이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칸영화제 역사상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은 줄리아 뒤쿠르노가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이후로) 단 두 번째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티탄>의 스타일과 메시지는 그간 칸영화제에서 애정해온 작품들의 내력과는 사뭇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거친 미장센과 도발적인 서사, 애정을 갖기 어려운 인물들의 모습은 딱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작품의 특징이었다.
특히 <티탄>은 자동차와의 성애 장면으로 개봉 전부터 이목을 모았다.
그러나 집중해야 할 것은 그 자극적인 장면보다, 그 이후 알렉시아에게 닥치는 임신이라는 상황이다.
자동차와 성관계 후 임신이라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티탄>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상식으로 고수한다.
인간이 인간 외의 다른 종, 예를 들면 동물이나 외계인과 결합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꽤 있었지만, <티탄>의 상대는 금속의 자동차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흔히 생각하는 ‘여성성’의 중요한 지표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상태가 서사에 사용된다면, 여기서 알렉시아는 살인범 용의자로 본인의 신분이 모든 미디어에 노출되자 남성으로 위장하여 살아가길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의 코뼈를 부러뜨려 오래 전 실종된 소년 아드리앵처럼 얼굴을 바꾸고, 가슴과 배에 단단한 복대를 착용해 남성으로 패싱되는 삶을 선택한다.
이로써 자신의 아들을 드디어 찾았다고 믿게 된 아드리앵의 아버지 뱅상(뱅상 랭동)의 따스한 보호 아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영화가 그리는 관계는 무미건조했던 알렉시아 부녀(父女)의 삶에서 온기가 가득한 아드리앵 부자(父子)로 변모한다.
그만큼 <티탄>은 길지 않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꽤나 가득한 볼거리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고정적인 상식이나 기준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남다른 방식의 인물, 관계가 등장한다.
그리하여 <티탄>은 그 거칠고 파격적인 볼거리 속에서 새로운 삶의 탄생을 축복하는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데이빗 린치, 데이빗 크로넨버그 등이 떠오르기도 하는 <티탄>의 기괴함은 올해의 가장 문제작 중 한 편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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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메이커> 캐릭터 예고편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 앞에 그와 뜻을 함께하고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찾아온다. 열세인 상황 속에서 서창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을 펼치고 '김운범'은 선거에 연이어 승리하며, 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서게 된다. 대통령 선거를 향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고 그들은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던 중 '김운범' 자택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로 '서창대'가 지목되면서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치열한 선거판, 그 중심에 있던 두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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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서울대작전> 티저 예고편
1988년, 초특급 미션이 시작된다? 더 빨리! 더 대담하게! 더 요란하게! 모두 안전벨트 메고 준비! 《서울대작전》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