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안테벨룸], 도서 [82년생 김지영]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크게 두 종류의 면역체계를 가진다.
하나는 선천적, 다른 하나는 이미 백신으로 몇 년간 단련된 우리가 익히 알만한 후천적 면역체계가 그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섬세하게 말하는 학자들의 경우는 피부 역시도 면역체계에 포함하기도 한다. 피부가 벗겨진 우리를 상상해 본다면. 이보다 더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물리적 장벽이 없음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실제로 물리적인 장벽의 역할 외에도 피부에는 많은 면역 체계가 포진되어 있으며. 우리가 문신을 했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는 이유도 피부 안에 있는 면역세포 중 한 종류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 1)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이 피부를 한낱 멜라닌의 분포 차이로 차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시절은 겨우 몇백 년 전에 존재했으며 지금도 그 잔재들이 남아 차별로 인한 큰 사건 사고들을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작 [겟 아웃]과 [어스]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차별에 대한 생각은 영화 [안테벨룸]에서도 이어진다. 제작진의 특기가 십분 발휘된 기발한 트릭 아래에서 그들이 고수하고자 하는 목소리에 얼마나 더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해 본다.
119도 구해낼 수 없는 차별 속의 사람들.;모든 것을 압축한 장면이 아닐까 한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는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인종차별이 예나 지금이나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0년 전 노예들은 직접적인 방법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폭언을 하고. 허락하기 전까지는 말도 할 수 없었으며, 자신의 이름조차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쥐고 흔드는 백인들을 흘겨보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삶이었다.그러나 이런 차별은 현재로 무대를 옮기면서 아주 교묘하고 간접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눈빛과 대화 속의 단어로. 그리고 이 "상태"가 결국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한 태도로.
그것이 어떤 형태의 차별이든. 베로니카(자넬 모네)는 피할 수 없었고 이 차별의 폭격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죽음이 약속된 탈출을 감행한다. 들켰다가는 목숨을 기꺼이 지불해야만 하는 이 절체 절명의 순간에 베로니카가 911에 연락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준다.
삶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수단인 911조차. 베로니카가 처한 이 "차별"이라는 상황에서는 그녀를 구해줄 수가 없다는 것.영화에서 차별은 그런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어디에 연락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지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 개인을 죽을 만큼 힘들게 하고 있는 그 상태. 그렇기에 베로니카의 살려달라는 외침이. 안절부절을 넘어 위태롭기까지 한 그녀의 몸짓들이 더욱 마음 아프고 처절하게 다가온다.
말 위에서 울부짖으며 탈출하는 베로니카의 모습을 소 닭 보듯 쳐다보는 백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로 베로니카를 쫓으며 사진기를 척 들이미는 그 모습을 보자. 문득 책 [82년생 김지영]의 결말이 겹쳤다. 백인들의 오만방자한 그 태도처럼.
이 "상태"는 형태만 바꿔 존재할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차별에 대처하는 방법. 문제없을까.;문제밖에 없어 보이는데.
사진 출처:다음 영화
사람들은 타인을 비난할 때 항상 자신에게 없는 "흠"을 좋은 변명으로 사용한다. 어떤 사람과 다투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늘 뒤돌아서면 상대방을 향해 저러니까 이혼했지.라고 말해버리는 것처럼. 이런 열등감(혹은 자괴감)은 스스로가 기꺼이 떠안을 때도 있다. 어떤 사람과 다투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늘 뒤돌아서면 스스로를 향해 쟤는 내가 이혼해서 무시하는 건가.라고 말해버리는 것처럼. 분명 영화 속에서 차별을 받는 존재들을 향한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차별이 있었던 것이 변하지 않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이 차별을 다루는 영화 후반부의 태도에 있다.
호텔 직원이 식당 예약을 하려 했을 때 협조적이지 않았던 것은 전화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매뉴얼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또한 백인인 친구의 방만 치워져 있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백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물론 베로니카의 방에 문제가 있었던 것을 관객들은 미리 알고 있긴 했지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에 대한 뉘앙스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행의 원인들을 모두 자신이 "흑인이기"때문에 그렇다.로 비약하는 모습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로 인해 영화는 훌륭했던 전반부의 묘사를 조금씩 말아먹는다. 더 이상 갉아먹을 것이 없어진 영화는 결국 후반부마저 말끔히 먹어치운다.
[안테벨룸]에서는 전작에서 느꼈던 세련됨이나 우아함을 느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제작진이 선택한 방법은 열등감 쪽이었고. 영화 내내 내가 흑인이니까 그러는 거지?라고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통에 없던 선입견도 생길 지경이다. 스스로가 흑인의 반대는 백인이고, 나는 그것에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선을 그어버린 셈이다.
분노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그 어떤 것도.
사진 출처:다음 영화
우리는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음을 알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그를 찾아볼 수 없다. 영화가 감독 개인을 노출시켰을 때는 이득을 보는 부분이 있거나, 혹은 분위기 환기가 필요할 때다. 마치 류승완 감독이나 장진 감독이 그러듯이.
그게 아니라면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런처럼 존재해야 한다. 그래 이 영화가 바로 이 감독의 영화구나.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감탄으로 입이 쩍 벌어질 때마다 감독들의 필모가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가서 내가 이 감독의 영화에 쏟은 노력이 아깝지 않음을 스스로가 확인할 수 있도록.
그러나 [안테벨룸]에서는 감독의 입김이 느껴진다. 그것도 노골적이고 강렬하다는 느낌조차 벗어나 사적(Private)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뿜어지는 더운 공기를 담았다.
감독은 현실 세계에선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마치 베로니카라는 인물을 통해 마음껏 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말미에 베로니카가 번쩍 든 횃불을 타오르게 한 것은. 뿌리 깊은 차별과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기 힘든 운명의 굴레라고 하기 보다. 감독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순수한 분노 덩어리라고 보는 것이 더 알맞을 듯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타오르다 못해 마구잡이로 백인을 죽여대는 것으로 분풀이를 해댄다.
그녀가 횃불을 든 모습도. 장엄한 척하며 그곳을 벗어나는 장면도. 전혀 멋있다거나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는다. 죽어 마땅한 백인들이 죽었는데도 전혀 시원하다거나 통쾌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응원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감독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취해 만든 장면처럼 보인다. 문제는 관객도 함께 취할 수 없다는 점에 있겠지.
마치면서;너네 좀 그래.
사진 출처: 이데일리/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타이라 뱅크스는 자신의 토크쇼에 출연한 한국계 모델에게 백인처럼 보이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받은 것을 인정하라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자신은 백인처럼 보이기 위해 갈색 머리로 염색한 것을 숨기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과연 그녀가 말하는 차별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인종 차별은 200년 전이건 지금이건 여전히 심각한 문제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감독이 취한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를 마치 커피숍 알바를 3년쯤 한 뒤 인간이라는 종자 자체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영화를 가져와 우리 앞에 툭 던졌다.
덕분에(?) 영화는 매우 직관적이며 두 번 세 번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화면에서 감독의 분노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기만 하면 된다. 코코 샤넬이 말했다지.
항상 마지막에 걸친 액세서리를 덜어내야 완벽한 옷차림에 가깝다고.
영화를 관통하는 이 알 수 없는 증오나 분노는 마치 감독이 마지막에 추가한 요소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과해졌고. 훌륭했던 몇몇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가려버렸다.
카카오뷰도 있어요!!+_+
참고 1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몸에 있는 Physical barrier들이 immune system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임. 문신을 했을 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는 이유는 진피로 투입된 잉크를 대식세포(Macrophage)가 이 침입자들을 냅다 물어가기 때문임.
[이 글의 TMI]
1. 안경 새로 맞췄는데 진작 맞출 걸 그랬다.
2. 딸기 끝물일 때 딸기 청 만들어야지.
3. 좋은 영화 많이 개봉해서 너무 좋다ㅠ
4. 요가 덕에 드디어 붓기가 쭉쭉 없어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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