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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긴장감의 서부극!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은 작은 긴장감이 늘 자리한다. 혼자 있는 시간만 있다면 그런 긴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그리고 직장 동료와 보내는 시간 등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삶이라는 그림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런 상호작용의 시간 속에는 크고 작은 긴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 긴장이 작으면 보통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지만 불편함이 커지면 큰 긴장이 따라오고 평상심을 잃게 만든다. 우리가 평소에 눈치 채지 못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긴장은 시종일관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삶에 영향을 준다.
다른 어떤 관계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런 긴장감이 일상에 배어들어있다. 부모와 만들어지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은 아이가 자라나는데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가족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이벤트들도 각 가족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긴장의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생각하는 관계의 모습과 미래도 다르다. 그 긴장을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것으로 인한 고통을 그대로 받을 것이고, 그것일 시답잖은 것으로 느끼면 무시하고 외면할 것이다. 각자가 느끼는 긴장감에 따라 가족 안에서 자신의 위치나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해 나가게 된다.
각 인물들 사이의 긴장을 다루는 영화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일상 속에 스며든 인물들 사이의 긴장을 다루는 영화다. 1925년 미국 몬태나를 배경으로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그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필 버뱅크(베네딕트 컴버비치)와 조지 버뱅크(제시 플레먼스)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룬다. 영화 초반에 필과 조지가 일 때문에 로즈가 운영하는 숙박 업소에 방문하게 되면서 두 가족이 만나게 된다. 이들이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대할 때 만들어지는 그 긴장감은 영화의 끝까지 시선을 잡아놓는다.
이들이 만나는 모습을 통해 인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는다, 필은 호탕하고 조금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다. 반면 그의 동생 조지는 좀 더 섬세하게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인물로 필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 받는 로즈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는 인물이다. 그의 관심을 받는 로즈는 남편을 잃은 이후 아들과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숙박업과 식당을 운영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아들인 피터는 조화 만드는 것을 좋아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등 손으로 하는 세심한 작업들을 잘한다. 그래서 피터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여리여리하고 감성적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에 이 네 인물이 만나게 되고, 그중에서 조지와 로즈는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자세하게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데 어찌 보면 이렇게 누군가를 만나고 가족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소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영화가 좀 더 집중하는 건 각 인물들의 감정과 표정이다. 비록 로즈에게는 재혼이긴 하지만 조지의 관심을 받은 그는 결국 조지를 선택하면서 그의 가족 일원이 되는 선택을 했다. 어느 정도 재력이 있고 안정적인 일이 있었던 조지를 택한 로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조지의 형인 필의 시선은 무척 좋지 않다.
로즈와 피터가 필과 조지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간단히 보여주던 영화는 피터를 대학에 보낸다는 설정으로 잠시 이야기에서 제외시킨다. 그 이후 집중하는 건 조지의 집에서 살고 있는 로즈의 감정이다. 비록 시부모님이 같은 집에 살지 않지만 조지의 형인 필은 남성주의적인 성향으로 갑자기 자신의 무리에 들어온 여성인 로즈를 곱지 않게 보고 있다. 그는 로즈를 무시하고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조지는 로즈가 부담스럽지 않게 최대한 애쓰지만 로즈는 말이 없고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결국 그는 술에 의지해서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데 그렇게 로즈가 술에 의지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화면 속 로즈의 얼굴은 매우 불편해 보인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그런 로즈의 심리를 무척 세세하고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의 서부극
사실 이 독특한 서부극의 내용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예상하기는 무척 힘들다. 초반 조지와 로즈에게 집중했던 영화는 로즈와 필의 관계에 중점을 두는 듯하다가 다시 피터와 필의 관계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정통적인 서부극이었다면 분명히 총을 이용한 격투가 긴장감을 높이는 요소로 등장했을 테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비슷한 장면조차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묘사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 속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은 영화의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만큼 이 영화는 각 인물들의 위치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긴장감을 무척 잘 활용하고 있다.
영화 속 로즈의 아들인 피터는 영화 중반 이후에 학교의 방학기간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다. 사실 필은 피터의 여리여리한 모습과 취미를 조롱하고 무시했던 인물이다. 그렇게 시작된 피터에 대한 조롱은 로즈에 대한 무시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 구도는 영화 후반부에는 완전히 깨진다. 다시 집에 돌아온 피터의 모습을 보던 필은 어느 순간 그에게 따뜻한 말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건 사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것이 조금은 독특한 패션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른 남자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피터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그가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필과 피터가 먼 산등성이에 만들어진 개 모습의 그림자를 같이 봤을 때 무언가 특별한 동질감을 느낀다.
영화 중반부까지가 로즈와 필의 관계로 인한 긴장감이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면 후반부는 필과 피터의 관계로 인한 긴장감이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두 사람 간의 특별한 감정이 될 수도 있고, 두 사람 간에 남아있는 앙금과 적대적인 부분이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영화의 어떤 인물에 감정을 대입하는지에 따라서 느껴지는 긴장감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필과 피터가 다시 만난 시점에서는 분명히 그것은 적대적인 긴장이지만 둘 사이에 어떤 사건 이후로 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바뀌는 긴장으로 변경된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더 흥미진진해진다.
필로 인해 발생한 관계의 긴장에서 로즈는 나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다. 술에 의지한 방식인데 그것에 의존하면서 어떤 기회가 생겼을 때 소심하게 필의 심기를 건드린다. 즉 그가 가진 힘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 방식이 조금은 무력해 보이는 방식인 것이다. 반면 피터는 필에게 느껴지는 친숙감을 이용해 둘 간의 신뢰를 만들어낸다. 두 사람에게 만들어진 동질감은 피터가 필과의 관계를 조금 더 가까운 관계로 만들게 되는데 두 사람 각자가 진심으로 서로를 신뢰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이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각자가 서로 적대감을 갖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고도의 심리전이 바탕에 깔려있다.
조화로운 세 가지 : 훌륭한 연출, 좋은 영화음악 그리고 뛰어난 연기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절대 마음을 놓고 볼 수 없는 서부극이다.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볼 수 있는데, 이런 긴장감과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음악도 굉장히 효과적이다. 영화 음악을 담당한 조니 그린우드는 그룹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다. 하지만 여러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작곡을 하기도 했다. <펜텀 스레드>나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영화 음악에 참여했는데 음악으로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심리를 음악을 통해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영화 음악 역시 각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적 상태를 음악을 통해 극대화시켰다.
영화를 연출한 제인 캠피온 감독은 영화 <피아노>로 20대 미혼모의 이야기와 그의 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을 했었다. 이후 <여인의 초상>과 같은 영화를 연출했었는데 다작을 하는 감독은 아니어서 연출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이번 <파워 오브 도그>에서도 여성을 비롯해 남성의 심리를 꿰뚫는 연출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필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 비치의 연기가 훌륭하고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술에 의지한 채 망가져가는 로즈 역의 커스틴 던스트의 연기도 무척 실감 난다. 또한 인물의 실제 마음이 어떤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인물인 피터를 연기한 코디 스밋 맥피의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이렇게 연출, 음악,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무척 독특하고 몰입감 있는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의 제목인 <파워 오브 도그>는 성경의 구절인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주시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 개 입에서 빼내 주소서’라는 말에서 나온 표현이다. 영화가 직접적으로 이 구절에 담긴 의미를 포함하고 있겠지만 영화 속 필과 피터가 함께 보는 산등성이의 개의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던 해석은 보는 관객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파워 오브 도그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makOjhOAw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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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매운 맛에 대해 알려줄게
좋은 선생님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인자한 얼굴과 다정한 말투 <죽은 시인의 사회>와<굿 윌 헌팅> 로빈 윌리엄스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삶을 가꾸어 나간다는 것. 미래를 꿈꾼다는 일이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 선생님.
하지만 꿈을 이루어 가는 현실은 꽤나 팍팍해서 막연한 응원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목표에 다다르기 쉽지 않다. 엄청난 노력과 숱한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일이 다 반사다. 인자하고 다정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 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꿈을 성취 할 수 있도록 강하게 밀어붙이는 조련자…아니 조력자인 선생님을 만나기도 한다.
영화 <위플래쉬>는 뉴욕의 명문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입학하게 된 ‘앤드류’는 1학년 가을학기에 ‘플레쳐’ 교수에 눈에 띄어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첫 연습에서부터 ‘플레쳐’ 교수의 모욕적인 폭력에 직면하지만, 밴드의 메인 드러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져 목숨을 걸고 독기를 품고 연습하게 된다. 영화의 초반 ‘앤드류’가 실력을 인정받아 밴드에 발탁되고, 호감이 가는 ‘니콜’에게 말을 걸고,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다. 밝고 에너지가 가득했다.
‘플레쳐’교수는 셰이퍼 음악학교의 교수로 학교 재즈 밴드의 지휘자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고, 최고를 추구한다. 평범하게 좋은 것은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재능있는 사람들의 잠재능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채찍질 하는 스타일이다. ‘플레쳐’의 비정상적인 훈육 방식 때문에 우울증을 겪고 자살한 제자까지 생겼지만, 자신의 가혹한 방식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다.
가혹한 교수법으로 제자를 몰아부치는 선생과 자신의 꿈에 대한 욕심으로 ‘앤드류’의 드럼 실력은 점점 성장하지만, 그에 비해 삶은 조금씩 피폐해져 간다. 버스를 타고 드럼영상을 보며 공부하는 중에 온 ‘니콜’의 문자로 흐름이 끊어지고, ‘니콜’의 존재는 꿈을 향한 여정에 방해물로 여겨진다.
가족은 실패하고 쓰러질 때면 안아주는 존재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직접 도와 줄 순 없다. 아버지를 관객석에 앉혀 둔 적도, 아버지를 위해 연주한 적도 없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오롯이 혼자서 나아가야한 하는 ‘앤드류’에게 성과지향주의인 ‘플레쳐’는 좋은 선생이었을까? 무조건 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가 참 어렵다.
‘플레쳐’는 목적이 분명하며,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고 심플한 사람이다. 항상 시간을 지키고, 극한으로 몰아붙이지만, 제대로 해냈을 때 상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를 내세우면서 자신을 포장하면서도 자신을 쫓겨나게 만든 앤드류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는 사람이다. 천재음악가의 탄생을 기다리면서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이 인간을 욕하고 싶으면서도 ‘앤드류’의 마지막 연주를 보고 나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사실은 결국 ‘앤드류’의 성장은 모두 ’플레쳐’ 덕분인 것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객인 나는 억압에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이뤄내는 성장에 뿌듯한 함을 느끼게 되는 모순감정에 둘러 쌓이고 만다. 그리고 ‘플레쳐’의 말을 다시 생각한다.
“너희가 한계를 넘어서는 걸 보고 싶었어. 난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 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이 해로운 말이 ‘그만 하면 잘했어’야.”
나도 한 때 원대한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시간이 꽤 오래 지나 마음 깊이 묵혀 둔 그런 이야기말이다. 마음의 안심을 주는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 그리고 채찍질로 빠른 속도로 꿈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선생님. 둘 다 갖춘 선생님을 만나면 좋겠지만, 둘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나는 어떤 쪽의 선생님을 바랄까. 만약 ‘플레쳐’와 같은 선생을 만나서 채찍질을 당했다면 나는 지금 그 꿈을 이뤘을까? 그 꿈을 이룬 세상의 나는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부질없는 가정을 해본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한다. 미래에 나의 아이들의 위플래쉬는 어떠해야 할지. 영화는 아마도 나의 위플래쉬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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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들의 우정 이야기 영화 '클로즈' 언론배급시사회 후기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클로즈
(2023.05.03 개봉)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린, 구스타브 드 와엘
안녕하세요! 씨네랩 크리에이터 에깸입니다 ♥
소년들의 풋풋한 우정을 그려 더욱 관심 받고 있는 영화
'클로즈'의 언론배급시사회에 다녀왔어요
영화관 내 오열하신 분도 계셨구 ㅠㅠ
감정선을 정말 톡톡 잘 건드리는 영화였던 거 같은데요
어땠는지 평을 한번 남겨 볼게용
클로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는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클로즈>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 후기 글이니까 엔딩 말씀드리자면
레미가 괴한에게 습격당해 죽습니다
그제야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던 자신을 반성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이 나는데요
뜬금포 괴한 습격이... 사실 좀 당황스러웠어요
사실 괴한인지 뭔지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집 문이 박살나 있고 레미가 죽었다고 말하거든요
차라리 저는 레미가 자살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레미의 자살로 인해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 왕따를 견디지 못한 아이
두 개의 교훈적 엔딩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 아이들의 대사 중에 '호모', '생리하냐', 등 편견 섞인 대사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엔딩이 더 맞았다고 보고요
레오를 원탑 주인공(감정선)으로 두려다가 오히려 분위기가 축축 쳐지기만 하고
레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벅차단 느낌까지 들더라고요...
레미의 엄마를 또 다른 주연으로 둔 건 좋았어요
레오-레미-레미엄마 세 캐릭터의 구도로 가니까 레미가 죽고 나서도 이어갈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다만, 레미 엄마의 태도가 급변하는 게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달까요
아들이 죽기 전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 달라고 하지만
말하지 않는 레오도 다정하게 대해 주거든요
우물쭈물하다 말하니까 바로 차에서 내리라고 합니다
여기까진 오케이죠 당연한 감정이에요
근데 5초도 안 돼서 찾으러 가요
이 부분이 약간... 정신사나웠던 듯해요
레오의 감정선을 토대로 영화가 흘러가다 보니 다른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돌보지 못한 느낌?
그래도 끝내 레오가 오열하던 병원 씬에서는 많은 분들이 따라 울더라고요
예술 영화로선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공부하는 제가 보기에 딱이었달까요?
인물의 감정선을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지 굉장히 공부가 되었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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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각지지도, 뾰족해지지도 않을 중간의 직사각형.
배우 이희준의 두 번째 연출작 <직사각형, 삼각형>은 첫 번째 연출작인 <병훈의 하루>와 함께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에서 묶음 상영된다. <병훈의 하루>는 공황장애를 앓았던 실제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황장애가 있다가 좋아졌던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으며 ‘나만 이상하다. 나만 괴물이다’란 생각으로 혼자만의 감옥에 갇혀만 가는 이들에게 ‘괜찮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두 번째 작품인 <직사각형, 삼각형>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에서 영감을 받아한 빌라 안의 한국 가족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했다고 한다.
<병훈의 하루> 영화 정보
이희준 LEE Heejun
Korea | 2018 | 18min | DCP | Color | Fiction | 전체관람가
시놉시스
오염강박,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병훈은 남들에겐 별일 아닌 숙제를 전쟁처럼 치러낸다.
그 하루 끝에 승패를 떠난 진짜 선물이 있었다. 늘 가지고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이대로도 감사하다.
* 해당 상영작은 코리안시네마 섹션의 <직사각형, 삼각형>과 함께 상영됩니다.
<직사각형, 삼각형> 영화정보
이희준 LEE Heejun
Korea | 2025 | 46min | DCP | Color | Fiction | 12세 이상 관람가 | World Premiere
시놉시스
다 같이 사이좋고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가족 모임입니다. 이런저런 농담으로 시작한 이야기들은 점차 해묵은 갈등으로 번집니다. 다들 잘 지내보고자 풀어보고자 하는 대화들이 점점 꼬여가고 풀리기 어려워 보입니다. 겨우 평화로워진 듯한 가족은 옆집 부부와 시비가 붙으면서 금세 똘똘 뭉친 한 가족이 됩니다. 직사각형, 삼각형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은유하듯이 카메라에 남습니다.
해당 상영작은 특별상영작 <병훈의 하루>와 묶음상영 됩니다.
영화리뷰
병훈의 하루
병훈은 오염강박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 그에게는 버겁고 두려운 일이었다. 병훈의 담당 의사는 그에게 '오늘의 미션'을 준다. 바로,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밝은 색 옷을 구매하라는 것이다. 옷을 사러 가는 길은 그에게 큰 도전이었다. 약을 먹고, 손을 박박 씻으며 나갈 채비를 한다. 명동으로 향하는 버스정류장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 자신을 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 남의 손때가 묻은 손잡이를 잡는 것도 고역이다. 땀을 한 바가지로 흘리는 병훈은 인파가 가득한 명동 한복판에서 '오늘의 미션'을 해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숨 막히고 진땀 나는 하루를 담아낸 만큼 스스로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병훈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화면은 그의 감정에 맞게 초점이 흐려지고 줌이 당겨진다. 그 덕분에 그가 느끼는 불안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극적의 연출인지, 혹은 그가 너무 과민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생관념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오염강박이 없는 나조차 좀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병훈은 전쟁 같은 미션을 치르고 난 뒤에 신발이 젖어도 괴롭지 않았다. 불편했던 엄마의 전화를 받아도, 하늘을 올려다봐도 될 정도의 여유가 생길 정도로 괜찮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떨리게 했던 수많은 사람 사이에 들어가 앞으로 나아가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사람 사이에 섞일 수 있게 되었다. 그 힘든 하루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 상황을 극복하고 난 후의 그 표정과 잔잔한 미소는 진심으로 뿌듯해졌고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사각형, 삼각형.
가족들이 한 집에 모인다. 오랜만에 본 이들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어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연한 농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서로의 신경을 긁으며 싸움으로 번진다. 둘째 딸 부부가 싸우기 시작하고 아들이 끼어들며 싸움은 격해진다. 어떻게든 풀어보려 애쓰지만 싸움의 불똥이 다른 쪽으로 튀며 점점 꼬여가고 풀릴 겨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영화의 제목인 '직사각형 삼각형'은 법륜 스님의 설법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부부싸움으로 인해 힘들다고 하는 부부에게 법륜스님이 종이를 꺼내서 접어 입체 삼각형을 만든 다음에 보는 관점에 따라 삼각형으로도 보이고 사각형으로도 보이는데, 삼각형으로 보이는 쪽에 있는 사람은 사각형으로 보이는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셨다고 했다. 나라든, 정치든, 부부든. 다른 관점을 이해하면 서로 이렇게까지 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에 맞게 이 영화의 갈등도 '다른 관점'을 이해하면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현실적으로 풀어내며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의 세세한 갈등은 앙금이 쌓이고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았지만 '이해'를 통해 '갈등'을 봉합하고 또 다른 문제를 향해 돌진한다. 다시 반복될 이야기겠지만 이 갈등을 어떻게든 넘어설 방법은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소녀가 바라본 삼각형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영화는 재치 있는 말의 맛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배우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생동감 있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첫 번째 연출작에 이어 두 번째 연출작 또한 매우 인상 깊었다. 특히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갈등을 영화 속의 공간에 담아 현실감을 더하고 감독이 전하고픈 이야기를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털어놓는 듯한 연출이 인상 깊었다. 싸우는 어른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감독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주는 듯했다. 갈등과 충돌은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며 지나칠 수 없지만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래서 서로를 긁지 않으려 노력하고 갈등을 피하려 노력하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평화를 갈망한다기보다는 피곤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갈등이 생겼을 경우, 어떻게 지혜롭게 해소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는 멀리 보았을 때,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하니까 자신의 관점이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희준이 배우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자연스러움과 재미는 관객을 매료시키고 있어 앞으로의 연출자로서의 행보가 더욱 기대가 된다.
상영스케줄
2025.05.01 13:30 CGV전주고사 4관
2025.05.02 10:30 CGV전주고사 6관
2025.05.03 14:00 메가박스 전주객사 8관
2025.05.09 17: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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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이 꼿꼿한 사람
SYNOPSIS.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플랜 75'의 세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POINT.
✔️ 초고령화 사회, 인간성을 잃어가는 듯 느껴지는 뉴스가 쏟아지는 지금, 볼 가치가 있는 영화
✔️ 주인공 ‘미치’ 역의 배우 ‘바이쇼 치에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소피 성우이기도 합니다. 극중에도 언급될 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 ‘미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 난 이게 미치 씨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눈여겨본 단편 감독의, 첫 장편 작품. 봉준호처럼 현실 인식이 서늘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처럼 풀어가지만, 그보다 단단하고 무게중심이 낮은 느낌입니다. 차기작이 벌써 기대됩니다.
✔️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주목받은 작품
✔️ 2월 7일 개봉
오래 전 누군가에게 들은 적 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그러니까 처음 5-10분은 그 영화를 이끌어가는 내용이자, 나중에 돌아보면 그 부분만 봐도 영화를 다 본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적극 동의하는 동시에 소름이 끼칠 것이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가 되는 ‘플랜75’ 정책은 결국 오프닝 시퀀스에 나온 사건을 아주 천천히, 공적인 탈을 쓰고, 풀어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권리인가? 이 질문은 결국 존엄사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논쟁이 언제나 편치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존엄’을 지킬 선택이겠지만,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죽음을 선택할’ 자리까지 떠밀린 사람들에게 마지막 버튼을 눌러 주는 것이거나, 의료라는 흰 베일을 뒤집어쓴 살인이 훨씬 많으리라는 기분 나쁜 예상 때문이었다.
유독 인물들의 뒷모습을 많이 담아낸 이 영화 속에서, 나는 마치 서래를 본 해준처럼 생각했다. 미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난 그게 미치 씨에 대해서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꼿꼿한 등처럼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이다. 꼼꼼하게 일하고, 퇴근해서 장 본 식재료를 정리하고, 베란다에 걸어 두었던 옷을 다시 들여놓는 사람. 퀴즈 쇼에 도전하고 상품을 노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도 그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정갈한 식사를 한다. 호기로운 도전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마음 같은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정하고 알뜰한 일상.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미치의 일상을 보지 않는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예산 들어갈 곳’을 줄이기 위해 7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존엄사 신청을 받는 국가에게, 미치는 그저 75세를 넘은 노인일 뿐이다. 국가가 국민을 죽이는 방법으로 명맥을 유지하다니. 누군가의 미래를 짓밟아서 도달하는 곳을 우리가 감히 미래라 불러도 될까.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미래는 무엇인가. 영화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좋은 영화가 으레 그렇듯, 무거운 질문에 답안이 될 수 있을 여러 가지를 그저 보여준다.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부유하지는 않아도 자기 일과 머리 누울 집이 있던 미치에게서, 국가는 그의 세상을 하나씩 잘라내고 몰아낸다. 죽음이 아니면 선택할 수 없는 자리까지 사람을 몰아세우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노인의 가난을 단지 그의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책 <가난의 문법>이 생각났다. 나아가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의 상관관계를 떠올리며, 노인 자살률이 OECD 압도적 1위라는 한국의 통계치 또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연 그러한 죽음은 ‘자’살인가? 미치를 끊임없이 몰아간 끝에, 라바콘 불빛이 경고등처럼 온통 붉게 번쩍거리는 어느 밤. 온통 빛이 번쩍번쩍하지만 온기는 없는 밤이 마치 이 사회 같았다.
온기 없이 휘황찬란한 세상에서, 미치는 계속해서 꼿꼿하게 걷고, 정갈하게 먹고, 조용히 배려하며, 더없이 예의 바른 언어를 구사한다. 그 중에서도 “신세(お世話)”라는 단어는 세 번 이상 쓴다. 이 단어는 사전에 “도와줌, 보살핌; 폐, 신세, 귀찮은 일”로 등장하데, 도움을 받으면서 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한 마음을 담을 때 쓴다. 꽃다발을 받으며 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의 의미로, 플랜75 상담원과의 첫 통화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통화에서 “마지막까지 신세 지게 되네요”로 차차 등장한다.
기초 일본어 회화에서 배우는 문장인데, 퇴직하면서 마지막으로 사물함을 깨끗이 닦고 감사 인사를 남기는 미치의 성격상 자연스러운 문장인데, 유독 귀에 툭 걸렸다. 생각해 보면 이 영화 속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단어들은 죄다 귀에 툭툭 걸렸다. 스스로에 대한 낮춤말이 존댓말 못지않게 발달한 일본어에서는 과히 이상할 게 없는 표현들인데, 왜 그 겸양의 표현들이 마음에 걸렸을까. 공적인 탈을 쓰고 무례한 죽음이 판을 치는 세상에 끝내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건 아닌지.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장애인에게도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문장만큼이나, 노인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말 또한 당연한 소리다. 너무 당연해서 흰소리처럼 느껴져야 하는, 힘주어 말할 필요 없는 문장이어야 한다. 당연히 노인은 ‘우리’와 ‘그들’로 나뉘는 개념이 아니어야 하며, 사람이니까 당연히 다르지 않다. 그 모습이 무너진 세상을 표현하면서도, 오히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인간의 면면을 비춘다.
미치와 직장 친구들의 대화,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보면 젊은 직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 영화 속 젊은이들과 노인들은 여러 차례 같은 자리에 선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 기차 차단봉 앞에 잠시 서는 것은 미치도 히로무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플랜75로 사망한 노인들의 짐을 정리하고 물건을 털어 보는 마리아와 동료의 모습에서는, 누구라도 아우슈비츠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서로, 그리고 현실의 어떤 면과 끊임없이 공명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르냐고.
비슷한 스토리라인을 담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에서 주인공 프레드가 남겼던 말, “너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게다”는 문장이 그렇게 이 영화에서도 우리에게 파고든다. 플랜75는 노인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하지만, 히로무와 요코를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는 더 큰 내상을 입히고 있음이 영화에 절절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 속 ‘플랜75’가 지향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성과로 들이미는 것은 “경제적 파급 효과”다. 그건 정말 좋은 것일까? 어쩌면 그건 군더더기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부가 가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밭에서 “농작물 가격을 잘 쳐주지 않다” 수확할수록 손해가 나서 농작물을 갈아엎는데, 마트에서는 너무 비싸서 못 사먹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면, 이 ‘부가’된 것은 가치일까 군더더기일까. 그 군더더기를 만들기 위해 진짜 중요한 가치들을 버린다면, 그걸 어떻게 부가 가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팔을 베고 식탁에 엎드린 미치가 이내 응시하는 어둠. 낮잠에서 깨어난 마리아가 같은 자세로 팔을 베고 응시하는 어둠. 그 시선 끝에, 절대 자구책이 될 수 없는 군더더기가 구더기처럼 우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등에 이야기를 매달고
친구에게 몇 번씩 걸어도 도저히 가 닿지 않던 미치의 전화는, 역설적으로 플랜75 상담원과 연결되면서 그제야 전화기의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비록 마음 주고받는 일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상담에 타이머로 시간 제한을 걸고 있고, 우리가 아는 가치들에 붙었던 이름(예컨대 “용기”)을 뒤죽박죽 섞어 쓰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연결이지만… 그 연결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귀여운 하이파이브가 있고, 멜론 소다 아니 크림 소다의 추억이 있고, 지나간 시간이 한 결씩 곱게 펼쳐지고 겹쳐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역할로 단단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모든 등장인물을 품었던 바에쇼 치에코의 목소리로, 꼿꼿한 등으로 해주는 이야기들은 어쩐지 자꾸만 더 듣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히로무 삼촌의, 어쩐지 지친 듯한 등과 방에 놓인 물건들의 이야기도… 어쩐지 더 듣고 싶어서 슬퍼지는 기분이었다.
영화가 마지막에 가까워 갈수록, 어쩐지 나는 “생은 존엄이구나”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화 속 ‘플랜75’ 광고에서는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는 순간은 선택할 수 있다”고 호기로운 광고를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깨달음을 준다. 태어남을 선택할 수 없었듯, 죽음도 선택할 수 없는 자리에 남겨두어야 맞겠구나.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을 만큼 두려운 것이지만, 그것이 생의 본질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당신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도 궁금하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말마따나, 계속해서 흑백의 명확한 답을 요구하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아주 복잡하고... 중요한 이야기들은 회색 지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플랜75' 식이 아닌 답을 찾아내려면, 이 영화가 던진 무거운 질문에 우리 각자의 답을 하나하나 꽃다발처럼 풍성하게 엮어내는 편이 좋을 테니까. 내가 이 영화에서 엿본 것은, 정말 너무 무거워서 좀처럼 쓰고 싶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생의 존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삶이 바닥을 쳐도 생은 존엄하다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삶의 어느 순간, 결기 어린 눈빛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때가 있을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식의 부드럽고 달콤한 말로 로맨스 영화처럼 혹은 청춘 영화처럼 갈무리할 수 없는 엔딩이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꼿꼿한 등으로 서서, 나의 노래를 한 소절 부르고 또 발걸음을 옮기면 그저 그뿐이다. 이 생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꼿꼿한 등에 이야기와 노래를 매달고 걷는 것뿐이다. 여전히, 저는 그게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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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갖추지 못한 것들
6★/10★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퓨리오사는 핵전쟁이 야기한 문명 붕괴 후 황무지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시타델의 임모탄에게서 탈출한다. 임모탄에게 건강한 아이를 낳아주는 것만이 중요한 그의 아내들도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떠돌이 맥스를 만나 녹색의 어머니 땅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녀 기억 속 녹색의 땅은 사라지고 없다. 사막에서 유일하게 풍요롭던 퓨리오사의 고향은 다른 모든 곳처럼 황폐해졌다. 또 다른 녹색 땅을 찾아 떠나는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아내들. 그때 맥스가 말한다. 당신들이 가야 할 곳은 시타델에서 멀리 떨어진 환상 속의 녹색 땅이 아니라 바로 시타델의 심장부라고. 퓨리오사는 운전대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초남성 계급사회 시타델의 수장 임모탄을 죽이고 시타델을 차지한다. 여기까지가 체제 밖의 혁명과 변혁이 아닌, 모순의 핵심으로부터 시작하는 혁명과 변혁의 이야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야기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이야기의 시곗바늘을 되돌린다. 퓨리오사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녀가 어쩌다 녹색의 땅에서 납치되어 임모탄 아래서 총사령관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그녀에게 녹색의 땅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그녀의 한쪽 팔은 살‧뼈‧피가 아니라 기계 장치인지, 무엇이 그녀를 혁명과 변혁의 길로 이끌었는지, 왜 혼자 시타델을 탈출하지 않고 임모탄의 아내들과 함께했는지 등의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어린 시절, 황무지의 약탈자 디멘투스 일당에게 납치된 퓨리오사는 자신을 구하러 온 어머니가 녹색의 땅 위치를 추궁당하다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퓨리오사의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가 깊게 새겨진다. 이제 그녀에게 중요한 건 생존해 복수하는 일이다. 뜻밖에도 기회는 여성, 노인 등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임모탄에게서 온다. 임모탄의 또 다른 요새 가스타운을 점령한 디멘투스는 임모탄과의 협상장에 퓨리오사를 데리고 가는데, 그녀를 발견한 임모탄이 협상 성사의 대가로 퓨리오사를 자신의 아내로 삼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퓨리오사는 초남성 계급사회의 동맹을 가능케 하는 상징적인 재화, 방사능 오염으로 희귀해진 유전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아줄 가치 있는 상품으로 교환‧증여되며 두 남성의 일시적 동맹을 성사시킨다.
그러나 퓨리오사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아주는 도구라는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임모탄의 아내들을 가둬둔 방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머리를 깎고 남성 노동자 행세를 하며 임모탄 수하에서 복수를 위해 자신이 자원화할 수 있는 것들을 빠르게 습득한다.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이 맞물려 차근히 역량을 쌓아나가던 중 현직 총사령관 잭의 눈에 들어 그와 가까워지고, 그의 도움으로 온갖 고난 끝에 마침내 복수에 성공한다. 그러나 디멘투스에 대한 복수는 헛헛한 공허함만을 준다. 퓨리오사는 자기 마음을 다른 동력으로 채워야 함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임모탄의 아내들과 함께 시타델을 탈출한다. 즉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에서 보여준 퓨리오사의 선택과 개성이 우연이 아닌 필연적 운명이었음을 알려주기 위한 또 하나의 매혹적인 이야기다.
〈퓨리오사〉가 웬만한 범작은 너끈히 뛰어넘는 수작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굳이 전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쉬이 즐길 수 있고, 이번에도 노장이자 거장인 조지 밀러의 펄펄 끓는 열정과 그가 선사하는 영화적 황홀경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절대적 기준은 〈매드맥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기준을 놓고 본다면, 〈퓨리오사〉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먼저 서사다. 전작의 핵심은 변혁과 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우정‧사랑‧연대였다. 한편 이번 영화의 핵심은 성장이다. 퓨리오사가 개인적 복수심을 넘어 더 큰 목적으로 나아가는 과정 말이다. 그런데 퓨리오사가 육체적‧정신적으로 강해지는 과정의 연결고리가 그리 튼튼하지가 않다. 단계적으로 차근히 진행된다기보다는 점프하듯 보여준다는 느낌이랄까? 퓨리오사가 강해지는 과정을 체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라는 의문이 솟는 장면이 반복된다.
‘미투 운동(혁명)과 그 이후의 페미니스트로의 집단적 정체화(성장)’라는 사회 조류가 각각의 흐름을 대변하는 두 영화의 개봉 시기와 기묘하게 맞물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이번 영화에 전작처럼 피를 끓게 만드는 요소가 부재한 이유다. 혁명 서사는 현실에 불만인 사람 모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지만, 성장 서사는 특정 인물(혹은 누군가의 삶)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에 제한된 소구력을 갖는다. 이야기의 전제와 완성도 두 측면 모두에서 〈퓨리오사〉는 전작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전작보다 현저히 적다는 점도 아쉽다.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을 디멘투스는 절대 빌런 임모탄을 마주한 순간 포스를 잃고 한없이 가벼워진다. 전작에서 극의 핵심 동력이었던 임모탄의 아내들과 그녀 중 한 명을 사랑하는 워보이, 주름진 여전사 같은 눈길을 끄는 캐릭터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퓨리오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베푸는 임모탄의 총사령관 잭의 역할이다. 도대체 그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퓨리오사를 도울까? 단지 퓨리오사의 전투 능력이 출중해서? 혹은 (달랑 대사 한 줄로 전달되듯) 그의 부모님이 혼란한 세상에서도 정의를 추구한 군인이었기 때문에? 영화는 전작에서 맥스가 담당한 여성 혁명의 남성 조력자 역할을 잭에게 부여하려 하지만 잭 캐릭터의 입체성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성 모두에서 이 시도는 실패한다(이는 뒷모습으로만 짧게 등장하는 맥스로 추정되는 남자의 존재감이 커다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만의 압도적인 사막 드라이빙 액션신도 이 모든 것이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명장면은 영화의 다론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에만 가능하다.
이쯤에서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의 절대적 근거가 전작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전작의 아우라와 감동을 기대한다면 어쩌면 실망은 ‘당연한’ 일이다. 〈퓨리오사〉가 웬만한 영화보다는 훨씬 재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작품을 고대할 정도로 말이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조지 밀러가 시타델 혁명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세 번째 영화로 건강히 돌아오길 염원한다.
*조지 밀러 감독은 페미니스트 철학자에게 영화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자문을 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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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드라마 리뷰(*스포없음)
한줄평: 2화 중간까지는 엄청난 띵작이었지만
그 이후는... 음... 글쎄요ㅎㅎㅎ 샛별이 10화까지가 그립네요
#보건교사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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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몸값> 메인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몸값〉 예고편 공개! "제가 XX가 아니라서 그런 거예요?" 10분의 흥정, 4분의 충격! 〈몸값〉은 3월 30일(수) 17시, 왓챠에서 독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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