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4-12 17:42:15
곰은 정말 없다. 이게 영화이듯이, <노 베어스>
카메라의 위치는 우리가 인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 베어스> No Bears, 2022, 이란, 드라마
감독: 자파르 파나히
고백하건대 곰은 정말 없다. 이게 영화이듯이, <노 베어스>
박티아르(남편)가 가게에서 일하는 자라(아내)를 급히 불러낸다. 그는 아내에게 훔친 여권을 건네며 먼저 프랑스로 떠나라고 사정한다. 자라는 남편이 없는 삶은 의미 없다며 그의 호소를 단호히 거절한다. 아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괴로워하던 남편은 행인과 시비가 붙고, 격한 감정을 토해낸다. 그 순간 카메라가 쭉 멀어지면서 화면 안으로 조감독 레자가 등장한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계속 멀어지고, 마침내 노트북으로 화상 연결 중인 파나히 감독이 모습을 드러낸다. 박티아르와 자라는 감독이 찍는 작품의 주인공으로, 연기 중인 배우들이었다.
그는 현재 국경 인근의 작은 마을에 숨어있다. 촌장님의 소개로 간바라(집주인)의 방을 빌렸고, 인터넷이 끊기기 전까지 방 안에서 일주일 내내 영화 촬영만 진행했다. 사실상 촬영 말고는 와이파이가 설치되지 않은 마을에서 다른 할 일이 없던 그는 예비부부의 발 씻기 행사에 간다는 간바라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녹화를 부탁하고, 자신도 카메라를 들고 옥상으로 나간다. 아랫집 입장에선 안방 천장인 옥상에서 감독은 훗날 엄청난 폭풍의 씨앗이 될 사진을 찍는다.

그날 밤, 간바라는 오전에 들고 갔던 카메라를 감독에게 돌려준다. 녹화 영상 안엔 감독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신랄한 평가가 들어있었고, 대부분 감독을 의심하고 있었다. 감독은 국경을 넘으려고 숨어 들어온 사람이며, 마을의 골칫거리가 될 운명이었다. 뒷담화 영상에 당황하는 간바라와 달리 감독은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영상을 보고 또 볼뿐이다.
빛 한 점 없는 밤, 레자가 촬영본이 든 하드 디스크를 갖고 감독을 몰래 찾아온다. 감독은 레자의 설득에 밀수업자들만 이용하는 도로를 지나 국경경비대가 지키고 있는 언덕에 올라간다. 그들이 선 곳은 이란과 튀르키예의 국경이었고, 감독은 그 사실을 안 순간 조감독의 손을 뿌리치고 마을로 돌아간다. 자국(이란)의 출국금지와 영화 제작 금지 명령을 받은 감독이 국경을 넘지도 않을 거면서 굳이 국경 마을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명료하다. 마을이 영화 촬영지(튀르키예)와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영화 내내 유지된다. 오직 ‘촬영’만이 감독을 동요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그 누구도, 어떤 사건도 그를 흔들지 못한다. 이는 마을의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집요한 행동 방식과도 연결되며, 관객을 향한 <노 베어스>의 일관된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젊은 여자를 시작으로 감독은 마을 사람들이 예견한 미래에 빠르게 도달한다. 간바라의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감독을 찾아와 젊은 남녀의 사진을 찍었냐고 묻는다. 촌장은 마을에서 갖는 자신의 위신을 언급하며 노골적으로 사진을 달라고 한다. 감독은 젊은 남녀의 사진을 찍은 적 없다고 짧고 굵게 대답한다. 그의 세계에선 “컷!”이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가 있는 곳은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미래의 남편 이름으로 탯줄을 자르는 전통을 목숨처럼 여기는 마을이다. 스스로를 선량하고 착한 사람이라 주장하며, 어떠한 위협도 용납하지 않는 자들을 그가 무슨 수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간바라의 빠른 눈치로 국경에 몰래 갔다 온 일은 숨겼지만, 관습으로 엮인 남녀가 아닌 진짜 사랑으로 맺어진 연인을 기록한 행위는 모른 척 묻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저항할 힘을 갖고 있어도 쓸 수 없는 무력한 이방인과 달랐다. 스스로를 그렇게 굳게 믿었기에 마을 사람들과의 입씨름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사태가 점점 난폭해지고 심각해지자, 촌장은 감독에게 맹세의 방에 가서 사진은 없다고 선언할 것을 요구한다. 촌장에겐 마을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장 여권을 구하는 부부의 상황’과 ‘국경 인근 마을에 숨어 영화 작업 중인 감독의 환경’은 <노 베어스>의 주축이 되는 이야기들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수시로 전환되며 진행됐다. 전자는 감독이 창작한 허구, 후자는 실제 상황이었으며 서로의 사건에 관여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별 탈 없이 쭉 이어졌다. 대본대로 알맞게 연기하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감독에게 말을 걸고 분노를 표출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없었다. 박티아르와 자라의 생존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들은 약혼식을 촬영한 간바라와 맹세의 방에서 ‘맹세하는 나’를 담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한 감독처럼, 자기들의 삶이 영화화되는 것을 허락했다. 해피엔딩은 없었다. 박티아르의 여권은 가짜였고, 자라는 끝나지 않는 절망과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바다에 뛰어들었다. 맹세하는 것조차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겠다고 우긴 감독은 마을의 전통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다, 기어이 평화로운 마을을 폭력과 의심으로 얼룩지게 했다. 두 이야기의 마침표는 철저하게 ‘감독이 촬영한다는’ 전제하에 고려된 결괏값이었다.
분명 부부와 감독의 이야기는 진짜였다. 카메라의 빨간불에 노출된 채 아내의 시신을 마주한 남편과 국경을 넘다 총에 맞아 강가에 죽은 채로 발견된 연인(사진 속)의 모습이 이를 증명했다. 두 이야기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지만, 이러한 시각은 지극히 표면적이며 단편적일 뿐이다. <노 베어스>의 초점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도 만들어진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를 구성하는 ‘말과 행동’에 있다. 감독이 내놓은 결과물보다 그가 주인공으로서 행한 모든 방식이 더 중요하다. 초반에 일상 대화처럼 지나갔던 “자라, 감정을 절제해요.”란 감독의 한마디가 “곰은 없어요.”만큼이나 치명적이고 가혹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인물들이 전부 각자의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 마음대로 타인의 선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베어스>는 그 선의 실체를 관객에게 공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의 위치가 우리가 인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카메라는 모든 이야기의 끝, 마지막 장면 그 뒤에 있다. 경비대가 오기 전 서둘러 마을을 떠나던 감독이 죽은 연인을 보고 차를 세운 순간이다. 그는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국경을 넘지 않은 이유와 같은 걸까? 아니면, 인간으로서 갖는 죄책감 때문인가? 어찌 됐든 감독은 두 이야기를 비극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마을 사람들은 또 어떤가? 역시 같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감독은 부부의 세상을, 마을 사람들은 감독의 세상을 침범했다. 그들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젊은 연인의 사진이 영화 속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박티아르의 가짜 여권과 자라의 시신이 두 눈에 박힌 적이 없는 이유와 같다. 영화 속 감독은 어느 순간 멈춰 섰고, 이야기는 끝났다. 주인공이 카메라를 들지 못했기에 끝난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인물인 ‘그’ 역시 포기했다는 뜻인가? 혼란과 혼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노 베어스>는 한 가지 팁을 건넨다.
역시나 집요하고 일관된 태도로, “곰은 없다”라고.
‘곰이 없다’라는 말은 ‘맹세의 방으로 향하는 길에 곰이 있다’는 말에서 왔다. 맹세의 방은 신성한 공간이다. 신성한 곳으로 향하는 길목엔 항상 악이 존재하고 그 악은 사람들이 생산하는 공포로 몸집을 부풀린다. 따라서 맹세의 방에서 고백하는 모든 말은 틀림없는 진실과 사실로 확정된다. 문제는, 마을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를 넘은 탓에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은 평화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도 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맹세의 방을 정당화의 도구로 쓰고 있었다. 난제를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이 고작 입만 움찔거리는 맹세라니. 맹세의 방으로 가던 감독을 불러 세워 두려움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하며, 거짓말해도 아무 상관없다는 한 마을 주민의 말이 더욱더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다.

<노 베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파나히 감독의 뒤에 서서 지켜보게 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본 작품이 영화인지 아닌지 묻는다. 나아가 영화라면 어디까지 영화이고, 영화가 아니라면 어디까지 영화가 아닌지, 경계를 정해보라고 요구한다. 관객을 자꾸만 두리번거리게 하고, 카메라의 빨간불을 찾게 만든다. 빨간불이 계속 깜빡였으면 하는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의 충돌을 계속 부추긴다. 물론 본 작품이 주인공(파나히)과 똑같은 상황에 있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만의, 자국의 탄압에 대한 저항 운동이란 사실은 변함없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은,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할듯싶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무력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든 해야겠다는 강인한 의지 사이에 핀 <노 베어스>.
고백하건대 세상에 곰은 정말 없다, 이게 영화이듯이.
Relative contents
-
-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음악의 힘
혼자 산 지 오래된 사람들은 혼잣말을 잘한다. 혼잣말은 대개 말로 끝나지 않고 리듬을 부여받는데, 나이듦의 증거라고도 한다. 난 주로 '안경이 어디 갔을까'를 노래한다. 안경잽이들에게 가장 난제는 안경찾기이다. 안경이 있어야 안경을 찾는데, 안경이 없어서 안경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어디에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책 싫어하고 운동 싫어하고, 미술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음악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동서고금 어디에도 그들만의 음악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슈퍼스타K, K팝스타, 위대한탄생,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국민가수, 싱어게인... 노래 경연 프로그램만 해도 벌써 몇 개인지.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다들 어쩜 그리 노래를 잘하는지.
그덕에 내한 온 해외가수들이 감격하고, 음악영화들이 대박을 터뜨린다. 나도 음악영화들을 참 좋아하는데, 3일차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두 개의 음악영화를 보고 왔다. <코다>와 <노래로 쏘아올린 기적>이다.
이 영화들을 음악영화라고 감히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노래가 주제이니 거칠게 음악영화로 분류해본다.
장애인 가족 속 비장애인 자녀, <코다>
<코다>는 농인가정의 청인 자녀를 뜻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아카데미에서 상 받았다 정도나 알았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터라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찾아보니 프랑스 영화인 <미라클 벨리에>의 리메이크판이었다. <미라클 벨리에>의 주인공 폴라는 초등학생이고 <코다>의 루비는 고등학생이다. 폴라 엄마랑 루비 엄마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폴라의 부모는 목축업에, 루비의 부모는 어업에 종사하고 폴라에게는 남동생이, 루비에게는 오빠가 있다, 정도가 바뀐 설정이다. 주인공이 청소년으로 설정되면서 남학생과의 풋풋한 하이틴 로맨스도 한 스푼 첨가되었다.
장애인을 부모로 둔 비장애인 아이는 한 번도 아이일 수 없다. 세상으로부터 부모를 지켜야 하고, 비장애인들의 세상에 부모의 언어를 통역해주어야 한다.
농인의 가정에 청인, 게다가 노래 잘하는 자식이라니. 이건 축복일까? 자식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아예 노래라는 게 어떤 것인지 들어본 적이 없어 그저 물고기를 잘 잡은 것과 비슷한 기분일까. 감히 추측할 수 없지만, 그냥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로 느껴본다.
영화는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자식인 루비마저도 부모를 도와야 할 사람, 지켜야 할 사람으로 여기고 자기 자신을 가족에게로 갈아넣고자 한다.
그러나 오빠의 말처럼, 루비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의 가족들은 잘 살았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그럭저럭 살아왔다. 장애인을 보는 우리의 시선도 비슷하지 않은가. 정상인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 사회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장애도 있으면서 왜 애를 낳아서는, 거기에 속된 말들까지 덧붙여.
노래가 뜻대로 되지 않자 루비는 말한다. 한 번도 부모님 없이 해본 적이 없다고. 루비의 부모는 좋은 부모였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다뿐이지 스스로의 역할들을 해내며 살아간다.
장애인을 재단하고, 범주화하고, 자신만의 개념 속으로 밀어넣는 것, 즉 대상화는 혐오이고 폭력이다. 그건 장애인이 아니야, 내가 아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행동해야지, 바람직한 장애인의 모습이 아니니 도울 필요도 없지, 장애인이면 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이런 문장들이 랜선을 타고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폭력을 자행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음악은 <미라클 벨리에>가 좋았고, 영상미는 <코다>가 좋았다. 두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 오디션을 볼 때 수어를 함께 사용하는 장면은 <미라클 벨리에>에서도, <코다>에서도 눈물이 났다. 다 알면서도.
폐허 속에서도 음악이 흐르네,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
영화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네 명의 아이들이 냄비 따위를 들고 노래를 해서 돈을 버는데, 벌이가 영 시원치 않다. 그중 노우르는 유일한 여자아이이자 모임의 리더이다. 어지간한 남자아이들보다 배포도 크고 용감하며, 똑똑하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 났지만 꿈이 크지 않은 동생 무함마드에게, "유명해져서 세상을 바꿀 거야"라고 말하라며 협박하는 무서운 누나이기도 하다.
이들은 물고기를 잡아 번 돈을 밀수꾼자에게 날렸지만 사원에서 코란 성가를 불러 돈을 벌어 악기를 마련한다. 무함마드는 동네 음악선생에게 과외도 받는다. 이후 결혼식 축가 등 돈 되는 대로 일을 하다가(그 어린 아이들이) 갑자기 누나 노우르가 신부전으로 쓰러진다.
너무 비싼 수술비 때문에 신장이식을 받던 노우르는 투석 중 사망하는데, 그 이후 무함마드는 대학에 진학하여 노래가 아닌 택시기사로 학비를 번다.
그러나 우연히 음악경연대회에 원격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옛날 누나와 함께 투석하던 아밀을 만나게 된다. 무함마드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는 아밀을 보고 무함마드는 다시 한번 누나를 떠올리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다짐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TV에서 '아랍 아이돌'이라는 경연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된다. 장소는 이집트. 가자지구에서 이집트까지는 사실상 갈 수가 없다. 그때, 무함마드는 예의 돈 떼먹은 밀수업자를 찾는다. 비자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밀수업자도 폭탄으로 인해 다리를 잃었다. 전쟁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파괴한다. 무함마드는 가까스로, 또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 겨우 이집트에 도착하지만, 표를 구할 수가 없다. 절망한 무함마드는 화장실에서 노래를 부른다. 무함마드의 노래소리를 듣고 옆칸에 있던 사람이 표를 주고, 무함마드는 경연에 나간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무함마드가 노래를 부를 때 가자지구의 사람들이 열렬히 환호하는 모습이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도 음악은 축제가 되고, 한 명의 영웅을 응원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모은다.
음악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폐허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부르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를 구원하는 소리.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은 사실 스토리라인이 허술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클리셰가 지나치고, 또 신파적이기도 하다. 부자연스러운 대사들과 연기들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한다.
<코다>가 헐리우드식의 전형적인 영화라면,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은 우리에게 너무도 낯선 문법이다. 배우, 이름, 음악, 배경, 모든 것이 낯설다. 두 영화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에는 상대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음악은 너무도 생경하였는데, 나는 외국의 음악이라면 팝이나 알지 그 외 문화권의 노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감동 포인트를 찾는다는 것도 사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고, 지금도 수많은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의 사람들이 학살되고 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신의 이름으로 백린탄 등의 미사일을 쏘며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죽인다. 한때 홀로코스트를 겪었으면서도 팔레스타인의 민간인들을 다 죽일 기세이다.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정치적인 것을 동시에 말하는 것이 상당히 꺼려지지만, 한 개인으로서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의 편을 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 관심을 가진다. 자원과 관련되기 때문이 아닐까? 러시아의 석유, 천연가스와 우크라이나의 밀 농사가 각국의 경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직까지도 내전이 그치지 않는 아프라카 대륙의 르완다, 최근에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내전, 그리고 수십 년째 지속되는 팔레스타인 전쟁, 미얀마의 민주항쟁에는 관심이 덜하다.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예상해 본다. 가자지구에 미사일이 날아가도 우리나라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목소리로 가자지구의 상황을 알렸다.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나라일지라도 한 가수가 유명해짐으로써 가자에 대해, 팔레스타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실화여서 슬프고, 실화여서 다행이지만 또 불행이기도 하다.
폐허에서도 예술은 살아있고, 당장 집이 날아가고 사람들이 죽어도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한다. 그것이 음악의 힘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 이래 음악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고,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를 어찌 기존의 문법으로 재단하고 비평하겠는가. 그건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찾아왔을 때 해도 늦지 않다.
-
- 빛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음을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그럼 어제는? 영화를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과거도 그냥 과거일까? 그렇다기엔 현재와 미래보다는 영향력이 큰 것 같다. 지금도 다음도 필연적으로 과거가 되니까 말이다.도쿄에서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일상은 굉장히 규칙적이고 단조롭다. 이웃의 빗자루질 소리는 그의 알람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전날 밤에 읽었던 책 페이지를 확인하고, 양치하고, 키우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현관 앞 선반에 습관처럼 올려둔 짐들을 챙겨 출근을 한다. 문을 열자마자 매일 조금씩 다른 아침 하늘이 보인다. 그걸 보며 히라야마는 개운한 숨을 내뱉는다. 익숙하게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마시고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정해진 화장실을 순회하며 깨끗하게 청소하고, 공원으로 가 사온 점심을 먹는다. 주머니에서 작은 필름 카메라를 꺼내 렌즈를 위로 향하게 꺾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찍는다. 뷰파인더는 볼 필요 없다. 그의 시야를 꽉 채우는 나무는 흑백의 과거로 남는다.퇴근하면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대중목욕탕에 가 깨끗하게 씻는다. 적적하지 않게 지하철 식당가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주말에는 밀린 빨래를 하고 사진을 인화한 뒤 새 필름을 구매한다. 다 감긴 카스트테이프는 익숙하게 연필을 꽂아 다시 원래 대로 돌려놓고, 자주 가는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고른 후 단골 술집을 찾는다. 은근히 자신을 더 신경 쓰는 여사장에 옅은 고양감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몸에 익은 나른한 시간들이 흐른다.히라야마의 일상을 보면 그가 꽤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장실 청소는 단순 노동처럼 보이지만 제시간에 끝내기 위해서는 순서가 중요하다. 안에 손님이 이용 중이신지 확인도 해야 하고, 놓치지 쉬운 곳이 많아 거울로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또한, 화장실은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곳이니 청소를 한다고 이용객들에게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다. 늘 기다리는 건 히라야마다. 홀대하는 시선마저도 익숙한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가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자연스럽게 가늠할 수 있다. 일찍 퇴근해서 여유롭게 밥을 먹거나 목욕탕에 가는 것도 제시간에 일을 끝내야 가능하니 말이다. 히라야마의 일상에는 정제된 규칙과 순서가 있다. 그것들을 지켜야 사랑하는 책과 올드팝을 계속 곁에 둘 수 있다.그러나 히라야마의 일상은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다. 같이 일하는 후배 다카시(에모토 토키오)는 말도 많고 제멋대로에 일도 대충 한다. 곁에서 징징거리는 탓에 남은 돈을 다 빌려줬더니 저녁을 사 먹을 돈이 부족해진 히라야마는 꽤 값이 나간다는 올드팝 카세트테이프를 들며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집에서 대충 컵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자신과 합의를 본다. 이 소동에 의외의 즐거움도 있었다. 시니컬해 보이는 후배의 여자친구 아야(야마다 아오이)는 히라야마의 올드팝 카세트테이프를 꽤 좋아한다. 물론 말도 없이 가져가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듣고 싶다는 아야의 부탁으로 둘은 차 안에서 함께 노래를 듣는다. 울적해 보이던 아야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히라야마의 볼에 짧게 키스하고 사라진다.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오기도 한다. 훌쩍 커버린 조카 니코(나카노 아리사)의 방문으로 히라야마의 고정된 일상은 미세한 변화를 맞이한다. 타카시와 함께 할 때와 달리 조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자신에겐 너무 익숙해진 풍경을 제삼자인 니코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어쩐지 10대인 니코는 히라야마의 조용한 일상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이나 카세트테이프에 관심을 갖는 조카에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에 작은 진동이 생긴다.‘테라핀’에 나오는 빅터라는 남자애 꼭 나 같아. 얘 기분 완전 알겠어.책이 마음에 든다며 조잘거리는 니코에 이미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히라야마의 표정은 약간 복잡해진다. 이후 니코의 어머니이자 그의 동생인 케이코(이누야마 이누코)와 몇 년 만에 재회한다. 딱 봐도 부유해 보이는 케이코의 모습과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니코의 반응으로 우리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짐작한다.빅터처럼 될지도 몰라.안 돼. 그런 말 하지 마.니코가 말한 <11>이라는 단편집 속 <테라핀>에서 어머니에게 학대당하는 소년 빅터가 어머니가 사 온 식용 자라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결국 자라를 먹기 위해 끓이고, 그 모습을 본 빅터는 어머니를 살해한다. 케이코를 꼭 끌어안은 히라야마는 차가 떠나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린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인 신이다.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평소처럼 책도 읽지 못하고 잔뜩 충혈된 눈으로, 그는 규칙적이고 정제된 일상을 통해 멀어지고자 했던 과거와 고독을 생각한다.히라야마는 굉장히 신사적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어딘가 벽이 느껴진다. 근무태만에 자신에게 매달려 돈타령을 하는 다카시를 향해 쓴소리를 할 법도 하지만 말없이 지갑을 연다. 그러나 그 모습이 젊은이를 이해해 주는 참된 어른의 넓은 아량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히라야마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쩐지 방어적이다. 사람이 많은 장소를 찾긴 하지만 그들과 간단한 대화만 나누고 가게 문이 닫혀 있어도 굳이 새로운 것을 찾지 않는다. 자기만의 단골집을 만드는 이유는 소박한 취향을 가진 탓도 있지만 동시에 삶의 변화를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것들을 일상에 촘촘히 박음질 함으로써 그는 과거와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한다.그러나 히라야마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꿈’이다. 필름 카메라를 여러 장 겹친 듯 보이는 그의 꿈은 가까운 과거를 비추기도 하고, 아주 먼 기억을 꺼내 그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지금과 다음을 만든 과거.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처럼 과거가 되어버리는 지금. 히라야마는 언제나 ‘다음’과 ‘지금’을 말하지만 꿈을 꾸지 않으면 내일은 오지 않는다. 과거는 내일로 가기 위해 필연적인 것이다.아무리 담백하다 한들, 삶이라는 것은 그리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영원한 건 없다. 결국 다카시는 전화만 한 통 남기고 일을 그만둬 일을 독박으로 혼자 다 해야 했고, 평소보다 늦게 문을 연 술집에서는 여사장이 어떤 남자와 포옹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좌절한 그는 술과 담배를 사 강가로 간다. 히라야마에게 다가온 남자는 자신이 7년 전 여사장과 이혼하였으며, 암에 걸렸다고 설명한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데.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남자가 지나가듯 툭 던진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히라야마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무언가를 제안한다. 그리고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환한 빛 아래에 선다.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꿈과 사진을 닮은 그림자. 히라야마는 남자와 천진난만하게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그림자를 피하겠다고 자신의 삶에 들어오는 환한 빛을 더는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같지만 전혀 다른 아침을 맞이하며 비로소 자신이 선택한 삶을 온전히 만끽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고요한 삶조차 살아냄이라고. 그러나 나의 선택이니 만큼, 이번에는 후회는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이 기분은,‘Feeling Good.’
-
- 이 영화의 후속작은 없어야만 해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기 전이었다. '텔레그램'이라고 하는 것을 적당히만 알던 나. 충격적인 기사를 읽게 된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정 누군가가 누구를 조종해서 성착취 물로 만들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묘사가 현실로 이어졌다. 곧이어 이 가해자가 몇 만 명이라는 기사가 우후죽순 뜨기 시작한다. 제일 첫 번째로 이 기사를 읽던 때가 생생하다. 강박증이 심한 나. 강박증이 심하면 신체화 증상이 제깍제깍 나타난다. 읽고 헛구역질을 했다. 큰 스트레스가 쑥 들어오니 몸이 반응했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추적단 불꽃의 한 멤버는 현재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영상 내부 검열이 아닌 성 범죄물의 코드를 검사하는 'N번방 방지법'이 입법과정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19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엔데믹 추세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 트위터에 #일탈계라고 검색하면 이상한 사진들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지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서로에게 반문해야 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에 이 질문을 대신 전해주는 영화가 업로드됐다,
생각하지 못했던 문자
문자가 왔다. 트위터 DM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닉네임이 뭐 이렇게 생겼어? 발신자는 대충 확인하고 문자 내용을 본다. 엥? 내 사진이 도용됐다고? 뭔 소리야? 정체 모를 이상한 인간은 누군가의 사진이 도용됐다고 말해줬다. 내 사진이 왜 도용이 되지? “장난하지 마세요”라고 답장을 보내는 발신자. “장난치지 마세요, 누구세요?”라는 답장에 발신자는 “걱정돼서 알려드리는 거예요”라고 답한다. 링크 안을 들어갔다. 충격적이었다. 다 발신자의 사진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거 누가 올렸는지 아세요?”라고 묻는 발신자. 문자 수신자는 어떤 이의 소속 학교와 이름을 말해준다.
지옥이 시작됐다. 문자 발신자의 닉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로 한다. 그의 닉네임은 갓갓이었다. 발신자의 이름을 한 번에 맞춘 수신자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사진을 학교에 뿌리겠다”라고 말한다. 텔레그렘 깔고 들어오라는 갓갓. 갓갓은 대화방에서 발신자의 이름, 전화번호까지 모두 대 버린다. “아빠랑 친구들이 네 사진 보면 좋아하겠다 그렇지?” 발신자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뿌리지만 말아주세요”라고 답한다. 갓갓은 이 답에 간단한 문장으로 응수했다. “옷 다 벗고 얼굴 가리지 말고 사진 찍어. 10초 안에 대답 안 하면 사진 유포 시작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2019년의 서울, 일요일 아침. 한겨레 소속의 김완 기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입수한다. 애들이랑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던 김완 기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제보가 왔다는 말이었다. 메일의 제목은 “텔레그램 아동 유포자 제보”였다. 뭔 소리야? 이걸 기사로 쓰라고? 아동 포르노라는 소재는 이미 예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이거 뭐 기사 되려나? 적당한 일거리로 생각했던 김 기자. 김완 기자는 메일에 딸려온 첨부파일을 천천히 확인했다. 충격적이었다. 한 10대 여학생이 9천여 명이 담겨있는 텔레그렘 단톡방에서 자기의 신체가 담겨있는 영상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켜볼 수 없었다. 기사를 송고하는 김 기자. 기사가 발표된 이후 김완 기자의 신상이 털렸다는 제보 메일이 가득했다. 한 텔레그렘 단톡방에서 저급한 언어로 자기가 모욕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김 기자. 누군가가 김 기자의 아들부터 아내의 이름을 목표로 신상 털기를 주문했다. 포상은 “노예 사진 1회 사용권”이었다. 한겨레는 이 사안을 같이 움직이기로 한다. 같이 한겨레에서 일을 하던 오연서 기자는 이 소재를 취재하기 앞서 그렇게 무거운 마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 기자 역시 알면 알수록 분노할 수밖에 없는 성착취물 범죄의 민낯을 맞이하게 된다. 이게 이러다가 끝나는 선이 아니었다. 진짜 성착취물 범죄의 몸통이 ‘박사’라는 유저였다는 제보 메일이 왔다.
더 이상 알면 안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대구에 살았던 익명의 제보자 조커. 조커의 지인이 ‘박사방’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박사를 찾아와서 “내가 이런 피해를 당했다”라고 심하게 울었다는 말을 전하는 조커. 나체 사진 뿐만아니라 ‘박사 노예’라는 인장까지 찍힌 성착취물이 있었다. 박사와 갓갓의 사기 수법은 교활했다. 갓갓은 트위터에 자기 신체 사진을 올리는 유저들에게 해킹 파일이 담겨있는 메일을 보냈다. 박사는 고액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개인 정보를 빼냈다. 다른 주동자 코알라는 아이돌 팬들이 많이 있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피해자들을 만들었다. 수십 명의 피해자들을 모으며 성범죄 가해자들을 린 치하던 갓갓과 박사. 알면 알수록 이들의 범죄수법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 대구에 살았던 익명의 제보자 조커. 조커의 지인이 ‘박사 방’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박사를 찾아와서 “내가 이런 피해를 당했다”라고 심하게 울었다는 말을 전하는 조커. 나체 사진뿐만 아니라 ‘박사 노예’라는 인장까지 찍힌 성착취 물이 있었다. 박사와 갓갓의 사기 수법은 교활했다. 갓갓은 트위터에 자기 신체 사진을 올리는 유저들에게 해킹 파일이 담겨있는 메일을 보냈다. 박사는 고액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개인 정보를 빼냈다. 다른 주동자 코알라는 아이돌 팬들이 많이 있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피해자들을 꾀어냈다. 박사 방을 모니터링하던 한겨레 기자들. 갓갓의 존재부터 시작해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이미 이 소재로 보도물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추적단 불꽃’이다.
요란하지 않고 정확하게
영화는 <스포트라이트>의 제작진, 추적단 불꽃, 한겨레의 두 기자들을 중심으로 이 ‘텔레그렘 N번방 사건’에 대해 추적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이 범죄를 구성하기 위해 가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가해자들의 수법은 더러웠다. 몇 번 방에 누가 들어있고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자그마한 성행위 특징까지 세세하게 담겨있던 N번방. 영화는 이런 범죄 수법을 가감 없이 묘사하며 범죄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모양을 애니메이션처럼 연출한다. 이 과정에서 몇몇 영화가 보여줬던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범죄에 있어 피해자라고 하면 역시 성착취 물에 나왔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때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해 끔찍한 사진/영상물의 내용은 구술로 전하고, 이 외에 범죄 방식을 추적할 때는 시각 애니메이션을 통해 내용을 전개한다. 이때 사운드-시각 그래픽 - 카메라 워킹까지 몰입에 탁월했던 연출 방식을 활용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역시 선을 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영화 뒤의 사람들
영화 <스포트라이트>부터 시작해서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았다. 역시 이 작품도 언론인들을 소재로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언론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차이점은 실화인 범죄 묘사가 현명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N번방과 박사 방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범죄다. 또 텔레그렘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잡히기가 굉장히 어려운 매개체 기도 하다. 이 두 매개체의 특성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허무함과 외로움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정서 중 하나인데, 이 심리 묘사에도 역시 주안점을 둔 것이 영화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감독이 다큐멘터리 몇 편을 찍으셨던 것 같은데 특정 정당 지지를 떠나 경험치가 드러나는 연출법이었다. 적절한 거리를 두며 분노하고, 추적 과정까지 알고 싶다면 이 영화가 좋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이 있고 나서의 몇몇 행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일부 피해자들이 '트위터 일탈계(자기의 신체를 일부러 노출시켜 특정 유저들에게 관심을 받는 행위)'나 스폰을 구하려고 했었던 사람이라는 점에 '이 피해자들이 원인을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어렵지 않게 이 피해자들이 일부였다(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70107/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8637.html/)라는 걸 찾을 수 있다. 일탈계를 운영해서 법적으로 처벌받는 건 그때 가서 따질 일이다. 결국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 끔찍하고 역겨운 성범죄에 노출된 피해자라는 지점일 것이다. 또 이 피해자들(스폰, '일탈계' 운영)이 실질적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해도 멀쩡한 바닥을 핥거나 '박사의 노예'라며 모멸감을 주고, 또 어쩔 땐 신체 훼손 같은 걸 하며 자기의 성적 행위가 담긴 영상을 신상과 함께 공개되는 짓을 받아도 된다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주빈과 문형욱 같은 범죄자들이 딱 한 만큼만 처벌받고 고통받길 바란다. 이 영화는 그냥 성욕이 있는 우리 일반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성욕과 이 영화에 나온 성범죄는 아예 궤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하며 몇몇 10대와 20대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성범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성범죄자들의 이야기다.
-
- 어린이날 기념! 극장가를 찾은 "아이들을 위한" 영화들
봄바람이 살랑이는 가정의 달 5월,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찾아온 어린이날을 맞아 극장가를 찾아온 "아이들을 위한"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1. 엄마를 만나기 위해 어른들 몰래 떠나는 여행! <아이들은 즐겁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5월 5일 어린이 날에 개봉하는 <아이들은 즐겁다>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9살 '다이'가 엄마와의 이별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어른들 몰래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과 마지막 인사를 담았다. 영화는 예고없이 찾아온 엄마와의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다이'가 친구들과 가족, 이웃의 보살핌 속에서 나아가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며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선사한다.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팝재즈 싱어송라이터 이진아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으며, 네이버 평점 9.55점을 기록한 허5파6 작가의 인기 웹툰을 소재로 한 작품인만큼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어른들의 입장이 아닌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에서 바라보는 만남과 이별, 여행의 즐거움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따뜻한 동심의 세계로 우리들을 이끌 예정이다.
▶ Synopsis
신나는 만남, 함께 한 여행, 그리고 마지막 인사 "고마워"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있는 엄마와 항상 바쁜 아빠,
조금은 외롭지만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에 9살 다이는 즐겁다.
어느 날, 엄마와의 이별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다이,
친구들과 함께 엄마를 만나기 위해 어른들 몰래 여행을 떠난다.
9세 인생 최초! 전재산을 탈탈 털어 떠난 여행.
그리고 엄마와의 만남 끝에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인사.
2. 손끝으로 세상을 느끼는 아이와의 특별한 만남!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5월 12일 개봉 예정인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국내 유일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단독법 '헬렌켈러 법' 제정을 응원하는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돈만 좇아서 살아가던 '재식'이 손끝으로 세상을 느끼는 아이 '은혜'의 가짜 아빠를 자처하면서 시작된 특별한 만남을 담은 작품이다. 오직 돈만 생각하며 막무가내로 살아온 재식이 시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은혜와 특별한 유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또한 은혜를 통해 여지껏 사회에서 소외되어 온 시청각장애인들에 대한 현실을 담담한 시선으로 이야기하며 장애인의 복지 현실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극 영화로는 국내 최초로 '시청각장애'에 대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진정성있는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귀여우면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가득 채워져 과연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기대를 모은다.
▶ Synopsis
가짜라도! 아빠가 되어야 한다!
돈만 빼고 세상 무서울 게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재식'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영'의 전재산을 먹튀하기 위해
'지영'의 딸 '은혜'의 가짜 아빠를 자처하게 된다.
앍 보니 '은혜'는 시각과 청각 장애를 모두 가진 아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은혜'를 귀찮아 하던 '재식'은 손끝으로 세상을 느끼는 '은혜'만의 특별한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는데...
3. 아이들의 행복한 등교를 위해 나선 용감한 엄마들! <학교 가는 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와 함께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봉하는 <학교 가는 길>은 장애 학생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 다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선 용감한 어머니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강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의 개교를 위해 무릎까지 꿇는 강단과 용기로 17년째 멈춰 있던 서울 시내 신규 특수학교 설립을 이끌어 낸 용감한 어머니들의 사연을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딸을 키우고 있는 같은 학부모로서 엄마들의 마음에 공감한 김정인 감독이 학교를 짓기까지의 여정을 밀도 있게 담으며 깊은 감동을 자아낼 예정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어머니들이 아이의 장애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 자녀로 인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매일을 기쁘게 보내는 모습, 장애 자녀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아이들이 각자의 속도에 맞춰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모습 등은 자녀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애틋한 모성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 Synopsis
전국 특수학교 재학생의 절반은 매일 왕복 1~4시간 거리를 통학하며 전쟁같은 아침을 맞이한다.
장애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특수학교 아이를 위해
거리로 나선 엄마들은 무릎까지 꿇는 강단으로 맞서는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활력으로 주위가 가득 채워져야 할 지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뭇 조용하게 지나가는 듯 해 아쉽고 또 쓸쓸한 마음이 드는 5월이다.
봄을 채 느낄 새도 없이 찾아온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어린시절 품었던 따뜻하고 순수했던 마음으로 오늘 소개한 세 작품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느껴보는 건 어떨까?
씨네랩 에디터 Jade.
-
- 벗어날 수 없는 삼각형이라는 세계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슬픔의 삼각형>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이전 작품인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을 매우 인상 깊게 봤었다.
인간의 웃기고 추한, 하지만 주변에서 봐 왔던, 혹은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모습이 잘 담긴 작품이기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이렇게 감독의 전작처럼 현실과 많이 닮아 있는, 현실의 많은 부분을 흡수시켜놓은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모델 커플인 '칼(해리스 디킨슨)'과 '야야(샬비 딘)'의 이야기, 2부는 초호화 크루즈 안에 탑승한 부자와 선원들의 이야기, 3부는 사고로 인해 크루즈가 전복된 뒤 무인도에서 살아남게 된 크루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영화는 모델 오디션을 보러 간 칼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의 제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가 언급된다.
면접관은 칼에게 미간의 주름을 펴보라는 말을 빗대어서 '슬픔의 삼각형을 펴보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이 '슬픔의 삼각형'은 뷰티 업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미간의 주름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를 지녔다.
칼과 야야는 식당에서 계산 문제를 가지고 다툰다.
칼은 여자친구인 야야가 식탁 위에 있는 계산서를 모른 척 했다며, 자신은 돈 때문에 시비 거는 게 절대 아니라고, 돈 때문에 이런 말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고 계속 주장한다.
야야는 계산서를 모른 척 한 것이 아니라고, 결국 식당값을 계산한 칼에게 현금을 주겠다고 하지만 이들의 말다툼은 식당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계속 지속된다.
이 장면에서도 웃음 포인트가 곳곳에 있다.
대표적으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주기적으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계속 막으며 말다툼하는 둘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칼은 조금은 찌질한 면모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사실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나. 상대방의 찌질한 모습들이 보일 때 순간 짜증은 나지만 이걸 이유로 마냥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다.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부터 현실과 많이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말다툼을 했다고 해서 칼과 야야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야야는 모델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수명이 있으므로 자신을 과시용 와이프로 삼지 않을, 자신을 진짜 사랑해줄 남자를 찾는다.
그리고 칼은 그녀에게 그런 남자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인플루언서인 야야의 협찬으로 둘은 초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둘은 또 다툰다.
야야가 상체를 탈의한 남자 승무원에게 웃으면서 인사했다는 이유로 또 작은 말다툼을 나눈다.
하지만 이런 말다툼이 모두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야야도, 칼도, 그리고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도 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 역시 우리네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크루즈 안의 모든 승무원들은 무조건 손님들에게 웃어보이고, 무엇이든 다 긍정의 대답을 할 것을 교육받는다.
절대 '안 된다'라는 말은 쓰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이 승무원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
승객들을 대한 뒤 받을 돈을 생각하며 열광하고, 춤춘다.
하지만 '선장(우디 해럴슨)'은 승객들 응대에는 관심이 없다. 책임감도 없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지게 된다.
승객 1명이 자신을 응대하는 승무원에게 지금 당장 수영하라고, 선장이 와서 저지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명령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근무시간에 수영할 수는 없어서 승무원이 적당히 거절하려고 하지만, 이 부자 승객은 넘어가지 않는다.
현실에서 만났던 이런 진상들이 생각나서 이 장면은 좀 많이 머리가 아팠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선장은 당연히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고, 결국 모든 승무원들은 이 승객의 명령에 따라 수영복을 입고 다함께 수영하게 된다. 이 승객 1명의 명령 때문에 각자 쉬고 있는 배 안의 청소부와 같은 직원들도 모두 강제로 수영을 한다.
그리고 승선 파티에서 부자 승객들이 본격적으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난기류라는 상황 속에서 마구 흔들리는 배 안에서 고급진 음식들을 먹던 승객들은 하나둘 토하고, 설사한다. 결국 변기도 역류하게 되어 배 안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러시아 부자이자 자본주의자인 '디미트리(즐라트코 부리치)', 유명한 모델 인플루언서인 칼과 야야, 세계 평화를 위해 수류탄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노부부를 포함한 수많은 '부자 승객'들은 체면 차릴 겨를도 없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이들이 떠난 자리를 치우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배에서 꼿꼿이 균형을 유지하며 서 있는 승무원들과 청소부들이다.
하지만 해적들이 이 배에 수류탄을 던져, 결국 배는 전복되고 무인도에 도착한 일부 사람들만 살아남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수류탄은 앞서 수류탄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는 노부부의 수류탄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주된 내용인, 3부가 시작된다.
기존 크루즈에서는 선명한 삼각형의 계급이 있었다.
가장 위에는 이 배의 손님인 여러 '부자 승객들'.
그 밑에는 승객들을 직접 응대하며 종종 두둑한 팁도 받는 '승무원들'.
그리고 가장 밑에는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과 같은 사람들.
계급의 가장 맨 아래에 있던 이들은 2부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은 '섬'이다.
개개인들이 지녔던 모든 것들이 '무'로 변하고, 오직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만이 필요한 곳.
이곳에서 기존의 삼각형은 뒤집힌다.
유일하게 물고기를 잡을 줄 알고, 불도 피울 줄 아는 애비게일이 삼각형의 맨 꼭대기로 향하여 강한 권력을 쥐게 된다.
사실 섬에 있으면 모든 계급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존의 계급이 뒤집힐 뿐, 계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강한 권력을 쥐게 된 애비게일은 이제부터 자신이 이곳의 '선장'임을 모두에게 선포하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 것을 강요한다.
이것도 현실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여전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들이 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리고 권력을 쥐게 되는 사람들은 꾸준하게도 자신이 지닌 힘을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용한다.
참 씁쓸한 현실이다.
그리고 섬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애비게일은 칼에게 먹을 것을 조금 더 챙겨주는 대신 자신의 성적 욕구를 풀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야야는 그런 칼을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아이러니했고, 복잡했고, 흥미로웠던 관계이다.
나는 칼이 단순히 음식을 더 챙겨먹기 위해 애비게일이 원하는대로 모두 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존에 야야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어떤 부족한 감정을 애비게일과의 관계를 통해 채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씁쓸하면서도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쭉 나온다.
러시아 자본주의자인 디미트리는 파도에 떠밀려 온 부인의 시체를 보며 잠시 슬퍼한 뒤, 부인의 반지랑 목걸이를 따로 빼서 챙긴다. 무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구해달라는듯이 계속 울부짖던 다친 당나귀를 사람들이 힘을 합쳐 때려 죽인 뒤 식량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또 서로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한 뒤, 자신들이 해냈다며 벽화까지 남긴다. 남자들은 애비게일에게 가는 칼을 짓궂게, 노골적으로 놀리기도 한다. 나름 무인도 생활에 적응하여 상대방의 수염도 깎아주고, 웃고 떠들며 그렇게 생활을 이어나간다.
영화는 야야와 애비게일, 칼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야야는 섬 구석구석을 더 찾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고, 애비게일은 이런 그녀를 따라간다.
마침내 야야는 이 섬에 존재하는 리조트의 것으로 추정되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한다.
야야는 선뜻 발걸음을 내딛지만, 애비게일은 주저한다.
왜냐하면 애비게일은 다시 저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삼각형의 맨 아래로 추락하기 때문에.
애비게일이 삼각형의 맨 꼭대기에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슬프게도 무인도 안에서만 한정된다.
결국 애비게일은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야야를 몰래 뒤에서 죽이려고 하고, 야야는 이런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한다. 자신의 비서가 될 것을.
그리고 본능적으로 야야가 위험함을 느낀 칼이 그녀를 찾아 섬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중간중간 계속 씁쓸하던 감정이 결국 끝부분에서 극에 달했다.
자신이 지닌 권력을 지키기 위해 눈앞에 있는 야야를 죽여야 하는 애비게일,
이런 애비게일에게 부자 인플루언서인 야야가 추천한 직업은 자신의 비서.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남자 칼.
'슬픔의 삼각형'은 결국 궁극적으로 계급사회를 뜻하는 것이었다.
단, 이 삼각형은 사라지지 않는다. 순간 뒤집힐 수는 있어도 여전히 삼각형은 존재한다. 계급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를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 개인의 욕망과 욕심'이다.
크루즈에서는 부자 승객들의 이기적인 욕망과 위선으로 인해 삼각형이 존재했고,
섬에서는 애비게일의 욕심으로 인해 또다른 삼각형이 존재했다.
현실과 많이 닮아 있어서, 영화 속의 인간들이나 현실의 인간들이나 다를 게 없어서 더 웃음이 나오고, 씁쓸해지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배우는 야야를 연기한 샬비 딘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이 작품이 그녀의 유작임을 알게 되었다.
샬비 딘은 관객들이 <슬픔의 삼각형>을 본 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싶어하면서 극장을 떠나길 바랐다.
그녀의 소망대로 이 영화는 지금도 끊임없이 많은 궁금증과 이야깃거리를 관객에게 던져줬으며,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 그녀를 향한 슬픔과 좋은 연기를 보여줬음에 감사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담아본다.
-
- 부모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미국 최대의 낙태 클리닉, 가족계획 연맹에서 일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애비. 애비도 대학생 시절에 낙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낙태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태도"로 그들의 낙태를 결정하기까지 설득하는 일을 너무나 능률적으로 잘 해왔다. 그렇게 그녀는 가족 계획연맹에서 최연소 소장으로 임명받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도 잘 알지 못했던, 어쩌면 그녀도 알고 싶지 않아했던 광경을 목격함으로써 그녀가 삶에서 행한 합리화의 온상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뀌게 되는데..........
1.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린 결과
기혼 상태가 아닌 여성에게 임신은 저주와도 같다. 하물며, 기혼 여성에게도 계획되지 않은 임신은 당황스럽기 마련일 텐데, 미혼 상태에서 생겨난 아이는 아직 육체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은 순간에도 축복받기는 힘들다. 영화 속 애비가 그렇다. 첫 번째 임신을 확인했을 때에는 남편의 권유로 그 아기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두 번째 임신을 했을 때에는 그녀의 가정이 파탄이 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아이와 이혼한 전남편 사이의 연결고리를 아예 없애버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낙태를 결정했다. 그녀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에 불과했기 때문에 태어날 아이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하나의 생명을 품고 있었을 때의 그 만감의 교차하는 과정은 그녀만이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 감정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 아이와 함께했던 잠시 동안의 시간을 되새기려면 그의 전남편을 떠올려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 기억을 악몽으로 취급하며, 자신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자신의 실수를 경험삼아 다른 이들에게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지 않게끔 도와주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족계획연맹의 이념을 굳건히 믿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녀의 합리화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족계획연맹의 장점만을 보고, 소위 말해 '회사의 개'가 되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충실한 사원이었겠지만 그녀가 보고 싶은 부분만을 보는 그 버릇으로 그녀가 여지껏 무시해왔던 감정의 쓰나미를 한꺼번에 벌받듯이 느끼게 된다.
가족계획연맹에서는 낙태 가능 시기에 대한 기준을 대외적으로 제시하고, 그 가능 시기를 가늠해보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지만 검사지를 신청자에게 보여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초음파 검사는 그저 요식행위일 뿐이고, 가능시기와 상관없이 낙태를 진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계획연맹의 수익 모델은 기타 다른 공익적 활동에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낙태 수익에서 나오기 때문에 낙태가 가능한 시기와는 별개로 그저 신청자의 의지만 있으면 신속한 낙태가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수술을 진행하지는 않고, 행정, 상담 업무만 보던 애비는 가족계획연맹의 이런 행태를 뒤늦게 깨닫고,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전에 자신이 상담했던 사람들부터 자신이 없애버린 두 명의 아이에게까지. 그녀가 자신의 과거에 갇혀, 자신이 묻어둔 감정들을 직시하지 않아 착상된 이후로 하나의 생명이 된 존재가 가질 권리를 무시한 대가였다.
2.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태어날 아이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은 태어날 아이에게도, 아이를 낳을 엄마에게도 좋지 않으니, 낙태는 위험하다는 것. 이 영화는 다분히 윤리적인 관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그 소중함을 간과하고 살았던 애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관객들이 도덕과 자신의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불안정한 애비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이다. 자신이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해 생겨난 상처들에 대한 자책을 아기를 없애는 걸로 해소하고자 한 점에 대해서는 그녀가 어리석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무자비하게 욕하고 싶지도 않다. 여자인 내가 애비와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면 나는 전남편의 아이까지 모두 키우며 사는 원더우먼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애비보다도 못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선택이 정확히 무엇일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나는 태아의 생명권이고, 여자의 자기결정권이고를 떠나서 영화의 메시지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부모의 자격에 대해 논해보고 싶다. 사회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는 부모의 사랑의 결실이라고 으레 이야기하지만 부모라는 사회적 역할은 단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랑의 증표로서 주어질 만큼 그렇게 간단한 역할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애비가 죄책감을 느끼기 전까지 가족들에게 그리고 그녀의 고객들에게 얘기하고 다니던 낙태에 대한 찬성적 발언들에 대해 반대할 의사가 없다. 가족 계획연맹이 대외적으로 홍보하던 신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태어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그리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이 세상에서는 안 태어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쌍의 커플이 그저 아이가 예쁘다는 이유로, 내가 내 연인을 사랑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아이를 낳아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반대한다. 다시 말해, 아이를 낳아키우는 이유가 단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키우는 부모의 정신적 성숙도가 모두 비슷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사랑에 의한 결실인지, 그저 육체적 쾌락을 위한 교감에 의한 실수인지에 따라 아이의 인생에서 유년기가 결정되는 중요한 구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모가 된다는 것의 막중한 책임은 심사숙고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부모가 지닌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가르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간단하게 아기는 생명의 신비라는 과학교과서적 지식 말고, 성교육적 지식과 더불어 아기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현실적인 시각도 알려주어 예기치 않은 임신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켜야 한다. 최소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아이를 예뻐라하는 나의 모습을 흘긋 보고,
"너도 이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지"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가는 사회는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계획한다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는 기회가 아니기에 이 주장들은 어쩌면 궤변에 불과할 것이다. 부모가 되는 기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있는것도 아니고, 뭐 좋은 부모 인증이 있는 것도 아닌, 정답이 없는 세계가 부모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생명권, 성적자기결정권의 대립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미혼 주제에 부모의 자격을 운운하며, 긴 글을 쓴 이유가 이유가 있다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나에게도 언젠든지 발생할 수 있는 공포로 다가와서, 뭔가 남일 같지 않아 괜한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쓰다보니, 뭔가 개소리에 가까운 글이 되었는데, 오해를 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총평
마치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수업자료로 쓰이기 좋을 법한 영화이다. 극 중 숀과 메릴리사 측은 생명권을 존중하자는 쪽인데, 그 집단에 맞서는 애비 측간의 경쟁구도가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입장차를 확실히 구분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10대에게는 교육적 측면에서, 20대 이상에게는 부모가 될 자격에 대해 고민해보고, 자신만의 기준을 성립해나가는 데에 치열한 고민의 장을 열어줄 영화라고 본다.
@이 영화는 기독교 기반 ott 플랫폼인 '퐁당'에서 시청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었지만 혹시 이 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플랫폼이 있나 검색을 해봤는데, 해당 플랫폼이 있더라고요. 참고 바랍니다.
-
- ?씨나병의 영화정보 #4? ?외국 배우 내한이 궁금하다고?!?
?씨나병의 영화정보 #4? ⠀ ?네 번째 주제? ⠀ ?외국 배우 내한이 궁금하다고?!⠀
-
- [영화흥신소-아이스라떼극장] 심령사진촬영전문 사진작가 '셔터'
영화 흥신소 -(아이스)라떼극장 EP.05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공포영화를 보며 무더위를 날려버리자
뺑소니 교통사고를 저지른 후 카메라에 찍히는 귀신
어깨와 목이 뻐근한 게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데....
움짤 귀신등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태국산 호러영화 '셔터'
-
- 넷플릭스 <뮌헨 : 전쟁의 문턱에서> 공식 예고편
로버트 해리스가 집필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원작의 영화. 1938년 가을, 전쟁의 위기에 내몰린 유럽. 아돌프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준비하고, 네빌 체임벌린 정부는 절박한 심정으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중이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긴급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 뮌헨으로 향하는 영국 공무원 휴 레것과 독일 외교관 파울 폰 하르트만. 협상이 개시되자 두 오랜 대학 친구는 자신들이 얽히고설킨 정치적 음모와 거대한 위협의 정중앙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
-
- 영화 <드라이> 30초 예고편
불미스러운 일로 고향을 떠났던 '에런'은 친구 '루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가족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루크' 유가족의 요청으로 사건을 파헤치던 '에런'은 여자친구였던 '엘리'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묻혀있던 두 개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