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채원2025-02-11 22:01:20
특별한 시선으로 특별하지 않음을 말하다.
영화 <나는 보리 (2018)> 리뷰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 <나, 다니엘 브레이크>, <말아톤>, <7번방의 선물>과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영화는 비록 상업영화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국내외 영화계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앞서 예시를 든 영화들처럼, 장애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흔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해당 인물이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되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의 고난→ 조력자 혹은 특정 사건과 만남→ 주인공의 극복/ 희망’과 같은 클리셰를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는 관객에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고, 몰입해볼 기회를 제공하며,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행방식은 영화의 전반을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때로는 영화의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들이나 그들이 겪는 사건, 영화 전반에 걸쳐 숨겨져 있는 의도와 영화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하락시킨다는 단점을 보이기도 하며 ‘주인공의 고난과 극복’이라는 전형적이고 반복적인 클리셰에 관객이 흥미를 잃게 될 가능성 또한 있다. 이런 ‘사회적 약자’라는 같은 소재를 가진 영화들의 어떤 공통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 속에서 영화 <나는 보리>가 갖는 시선은 특별하다. <나는 보리>는 농인을 바라본다. 소수가 아닌 다수로서, 장애인 가족이 아닌,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가족으로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소통하는 존재로서, 그리고 농인과 청인을 다르지 않은 시선에서 말이다.
1. 경계를 허무는 시선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는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용어로, 2020년에 개봉한 김진유 감독의 <나는 보리>는 ‘코다(CODA)’인 소녀 ‘보리’의 일상과 그런 보리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을 담은 영화이다. 김진유 감독은 실제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CODA)’로, 영화<나는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유년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문에 <나는 보리>의 주인공이자, ‘코다(CODA)’인 소녀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있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보리>의 주인공인 11살 ‘보리’는 어린 시절 김진유 감독처럼 농인인 부모님을 대신해 은행 업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등 주로 가정 내에서 아이보다는 어른들이 하게 되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영화 속 “나는 누나 귀 안 들리는 거 싫어. 치킨 못 먹어.”라는 농인 동생 정우의 대사를 통해서, 아침에 혼자 알람을 듣고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고 등교하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서, 보리가 “내일 할아버지 집에 갈거야.”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도 따라나서 엄마와 동생의 몫까지 기차표를 구매하고, 택시 앞자리에 탑승해 길을 안내하고,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농인인 엄마 사이에서 수화를 통역해주는 장면을 통해서 보리의 가족들이 생활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보리에게 맡기고 의지하고 있으며, 보리가 가족들 사이에서 어떠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는 보리가 이러한 책임들을 도맡음으로써 결코 불행하다거나 힘겹다거나, 가족들이 보리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여 보리가 없이는 아예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불리하고 힘든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영화에서 보리네 가족은 따스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넘치는 화목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가족 구성원 내에 농인이 없는 일반 가정보다 더욱 화목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는 은정이가 자신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고 매번 걸려오는 전화와 부모님의 심부름은 다 자신의 몫이라고 투덜대며 보리를 부러워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화목하고 따뜻한 가족의 묘사는 농인인 부모님과 청인인 자녀로 구성되었지만, 보통의 가족들처럼 따뜻하고 화목했던 김진유 감독의 가정환경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화목한 가족 내에서도 왠지 모르는 소외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보리’이다. 들리지 않는 부모님 혹은 동생 정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수에 속하는 청인 ‘보리’ 말이다. 이러한 설정은 <나는 보리>가 농인의 문화와 세상을 특별하지 않게 바라봄으로써 가지는 미덕을 돋보이게 해준다. 보리는 가족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알 수 없는 소외감에 매일 아침, 자신도 부모님과 동생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기도 하며, 심지어는 소리를 잃기 위해 MP3를 최대 음량으로 키워 이어폰을 귀에 바짝 꽂은 채 음악을 듣거나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청력이 감퇴한다는 TV 속 해녀의 인터뷰를 보고 직접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보리의 행동과 소외감은 일반 청인 관객들이 보기에 이질적이고 쉽게 공감할 수 없으며 한편으로는 충격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보리의 심리와 행동, 영화의 설정이 <나는 보리>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가족 내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존재로서, 사회적으로 우리가 흔히 다수라 말하는 청인에 속함에도 보리가 농인으로 사는 삶을 원하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는 장애인은 약자, 청인은 일반인이라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농인의 삶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불편할 것이라 섣불리 동정하는 우리의 선입견을 깨트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보리>에는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있는 그대로의 농인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 보리는 물품을 구매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은행 업무를 보는 등 흔히 보호자가 해줄 법한 일들을 모두 맡아 하는데, 이렇게 가족들의 생활편의를 도울 뿐 아니라 보리는 사회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이는 보리가 동생 정우의 축구경기 출전과 엄마와 함께 옷을 사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생 정우 역시 농인인데, 정우는 축구 실력이 뛰어남에도 귀가 들리지 않아 경기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출전선수가 아닌 후보 선수로 지목된다. 이에 정우가 후보선수라는 것을 알게 된 보리는 이장님인 아버지를 둔 친구 은정이를 통해 정우가 축구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보리가 엄마와 단둘이 옷가게를 방문한 장면에서 보리는 옷가게의 직원들이 자신과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와 비하를 서슴지 않고, 옷 가격 또한 원가보다 높게 책정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후 보리는 잘못된 거스름돈을 점원에게 돌려주며 엄마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있었을 뿐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다 보고 들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보리는 가족의 도우미와 더불어 보호자의 역할도 소화한다.
그렇다면 청인인 보리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족들의 도움 없이도 모두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보리가 가족을 돕듯, 보리 또한 가족의 도움과 관심,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영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족과 함께 시장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부모님의 손을 놓친다. 안내방송을 해도, 전화를 걸어도 들을 수 없는 부모님과 동생이기에 이들을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보리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 순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밝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보리는 처음으로 11살 제 나이 또래처럼 어린아이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이렇게 가족 내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보리 또한 가족들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하며, 우리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농인도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큰 힘과 도움이 되어 주는 존재라는 걸 알려준다. 다음 소주제에서 더 언급하겠지만, <나는 보리>와 유사한 작품으로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라는 음악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코다(CODA)’인 주인공 소녀가 “지금까지 가족 없이 뭘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망설이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자신이 가족들을 도와야 하지만 역으로 자신도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는 청인과 농인이 모두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이기도 함을 보여주는데, 결국 <나는 보리>가 이야기하는 바는 이러한 영화의 장면들과 보리의 아빠가 보리에게 반복해서 뱉는 말을 통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들리든, 들리지 않든 우린 똑같아.” <나는 보리>가 바라보는 청인과 농인은 연약한 존재이자 때론 강한 존재로서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저 똑같은 한 사람일 뿐이다.
2. 다르고도 같은 소녀들– 영화 <코다>의 루비, <나는 보리>의 보리
<나는 보리>의 보리와 유사하게 ‘코다(CODA)’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는데, 바로 2021년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이다.
두 영화의 주인공 보리와 루비는 모두 코다 중에서도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소리가 들리는 자녀 'OHCODA’이자, 미성년자 코다 ‘KODA’에 속한다는 점, 그리고 영화가 청인과 농인의 화합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두 영화 속 소녀의 가정 환경이나 농인의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인물의 선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관심이 가족들과 보내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과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면, <코다>의 루비는 졸업과 성인을 앞둔 나이로 진학과 가족의 생계 등 자신의 삶과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고민하는 데에 몰두한다. 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차이는 보리는 가족들과 동일시 되어 자신도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반면, 루비는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졸업 학년과 11살이라는 인물의 나이 차이 때문에 나타난 차이 만은 아닐 것이며, 두 소녀의 가정 환경과 제작자(감독)의 배경과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문화적 배경 또한 영화의 관점과 주인공의 선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루비의 가족은 아빠와 오빠가 운양하는 어선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가는데, 일정치 않은 수입과 틈만 나면 중간에서 이익을 떼가는 중개업자들 때문에 루비의 진학비용 걱정은 물론, 늘 생활비 걱정을 안고 지낸다. 또한, 루비의 가족은 가족 내의 강한 유대와 결속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루비의 엄마가 식사할 때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가족의 일에는 꼭 모두가 함께 자리하게 하는 장면을 통해 루비의 엄마가 가족의 소통과 결속을 강조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거 알아? 엄마도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해.”라는 루비의 대사와 “들리는 년들은 나랑 말 안 해.”라는 엄마의 대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사실 엄마의 이러한 행동은 청인과의 교류는 두려워하며 피하고, 농인에 공감할 수 있는 가족 내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하려는 엄마의 방어기제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 내의 유대를 강조하는 엄마의 행동과 자신도 부양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저절로 심어지게 되는 루비네 가정의 분위기와 환경은, 루비가 가족에게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반면, 보리의 가족은 루비네 가족과 같은 입장으로, 농인으로서 겪는 불편함과 어려움이 분명 있음에도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의 본보기라고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부모님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술비조차도 전혀 상관없다며 정우와 보리의 귀를 위해선 큰 비용지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코다>에서는 가족의 생계수단이던 낚시도 <나는 보리>에서는 보리 아빠의 오랜 취미이자, 어린시절부터 아빠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존재, 아빠와 보리가 속마음을 교감하게 되는 시간과 배경으로 나타난다. <코다>는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이며 원작 영화인 <미라클 벨리에>는 프랑스에서 제작되었고, <나는 보리>는 우리나라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이에 루비와 보리의 선택 차이에는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의 면허취득과 독립을 맞이하는 서양의 문화와 개인주의, 그리고 한국의 가족공동체 정신과 협동, 한국의 ‘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가정과 사회에 대한 루비와 보리의 관점과 선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두 영화 모두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물고, 화합과 이해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같다. <코다>의 경우 영화의 후반부. 음악 영화답게 음악을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루비의 오디션과 대학 진학을 내내 반대하던 루비의 부모님은, 교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모습과 루비의 노래에 환호하는 관객의 모습,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하는 듯한 루비의 태도를 보고 오디션 당일 아침, 직접 운전을 해 오디션장까지 함께 간다. 오디션장에서 루비가 부르는 노래는 “Both sids now”. 앞서 말했듯, 영화의 메인 사운드 트랙이자 주제를 나타내고 있기도 한 이 루비의 오디션 곡은 “하려던 일들이 많았지만 구름이 내 앞을 막았지. 이제 구름을 양쪽에서 보게됐어. 위와 아래에서”, “이제 사랑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주는 쪽과 받는 쪽에서”, “이제 인생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이기는 쪽과 지는 쪽에서”와 같이 성장하며 주변에 있던 것들에 대해 달라진 이해와 시선에 대한 가사를 담은 곡으로, 루비가 ‘코다(CODA)’로서 살아가며 때로는 농인인 가족이 자신의 인생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때로는 농인 가족 속에 속한 유일한 청인이 자신이 소외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던, 때로는 다른 가족들과 다른 자신의 가족이 부끄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루비가 이제는 농인과 청인의 입장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가족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디션 현장에 몰래 들어온 가족들을 위해 루비는 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가사에 맞추어 수화를 하는데, 이 장면을 통해 영화 <코다>는 루비의 성장과 이해, 농인과 청인의 교류와 화합을 완벽히 실현시킨다.
<코다>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이해와 화합에 중심을 두었다면 <나는 보리>는 서로 간의 이해와 더불어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자아정체성 확립과 농인과 청인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농인도 청인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점을 더 강조해 말한다. <나는 보리>의 미덕은 바로 이렇게 농인 가족이 등장하지만, 비장애인 가족과 다르지 않은 보편적 정서를 다룬다는 점에 있다. 다름보다는 같음을 느끼게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게 한다. 실제로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처음부터 장애를 어떻게 다루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리의 감정에 집중했고, 그 감정선을 따라 보리 가족의 모습을 묘사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존의 장애를 다룬 영화와 차별점을 갖게 된 것 같다.”라며 특별한 의도를 담기보단 오히려 그저 농인을 향한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영화 <나는 보리>의 후반부에서, 보리는 시장에서 구매했던 부적인 ‘악마의 눈’을 바다에 던지는데, 이러한 보리의 행동을 통해 일시적이지만 농인의 입장을 직접 체험해보고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을 경험해본 보리가 더 이상 가족에 대한 타인의 차별적인 시선이나 편견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으며 ‘코다(CODA)’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확립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나는 보리>는 보리가 도로와 바다 사이 좁은 방호벽 같은 길 위를 양팔을 벌린 채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배우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며 마무리되는데, 도로도 바닷가도 아닌 사이 도로 방호벽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 농인과 청인 사이에 놓여있는 ‘코다(CODA)’ 보리의 정체성과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완성한다.
3. 보리가 보여주는 농인의 세상
<나는 보리>에서 보리는 가족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에 농인이 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잘 들리지 않는다는 TV 속 해녀의 말에 직접 바다에 뛰어들며, 이상 없이 무사히 구조되었음에도 보리는 이후로 계속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척, 자신도 농인이 된 척 행동하는데, 이렇게 농인으로서 생활하는 동안 보리는 농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가족들이 농인으로서 겪었을 어려움과 외부에서 받았을 차별들을 경험하게 된다. 앞서 <나는 보리>의 미덕은 농인 가족이 등장함에도 비장애인 가족과 전혀 다른 바 없이 느껴지는 보편적인 정서를 다룬다는 점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영화 전반에 걸쳐 경계를 허물고,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지만, 보리가 직접 농인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생활들을 담음으로써 일상 속에서 농인이 겪게 되는 불평등한 차별과 시선 또한 짧은 내에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 또한 <나는 보리>의 또 다른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보리가 가족들처럼 농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학교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보리와는 상의 없이 보리에게 화장실 청소 당번임을 통보한다던가, 은정이와 보리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보리를 투명인간처럼 쏙 빼놓고 은정이에게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식으로 말이다. 학교와 또래 친구들 내에서뿐만 아니라 보리는 주변 어른들에게서도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부모님 대신 정우와 농인이 된 척하는 보리를 데리고 병원에 간 고모가 ‘착한 거짓말’이라는 명분으로 병원에 다녀온 후 엄마, 아빠에게 수술하게 되면 정우가 앞으로 축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또한, 엄마가 함께 간 옷가게에서는 보리와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몰래 점원들끼리 상의하여 더 높은 가격으로 옷을 판매하는 것을 보게 되며, 지나가는 보리를 본 동네 어른들이 “어린 것이 딱해서 어떡해.”라며 들리지 않게 된 보리를 안타까워하며 안쓰러운 시선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보리가 농인인 체를 하며 겪게 되는 주변의 변화와 상황들은 우리가 영화 밖 현실사회에서 농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흔히 장애를 섣불리 안타깝다는 식으로 바라보거나 ‘힘들겠다’라는 식으로 동정 같은 공감을 한다. 작은 시선, 별 의미 없는 말 한마디일 수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툭툭 나오는 시선과 말들은 당사자의 마음에 꽂히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11살 소녀가 특별히 큰일 없이 지나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하도록 한 것에도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김진유 감독의 바람과 유년 시절 감독이 겪었던 감정, 그리고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진유 감독은 “제가 만났던 농인 부모 중 60% 정도가 자녀가 농인으로 태어나길 바랐다. 농인이라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사회에서 우리가 농인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감독이 영화에서 보리가 직접 농인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농인이 일상 속에서 빈번하거나 흔하게 겪게 되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그 어떤 가정보다 따뜻하고, 온전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그림으로써 현실에서의 농인을 향한 특별한 시선을 제거하고자 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4. <나는 보리>에 대한 글을 마치며
영화 <나는 보리>는 농인의 삶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코다(CODA)’라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존재를 알리고, 이런 ‘코다(CODA)’ 소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단순히 농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농인과 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경계를 허물고 농인 가족이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가족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보리가 농인이 되고 싶어 하는 바람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사고에서 전환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장애인 가족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묘사도 하고 싶지 않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농인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자신이 살았던 모습만을 보여줘도, 대중이 농인을 조금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라고 인터뷰에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 영화 <나는 보리>와 그것을 보는 관객에게도 통한 것일까. <나는 보리>의 보리네 가족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더불어 따뜻해질 정도로 그 누구보다 화목하고 행복해 보이며, 영화를 통해 그들의 삶과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더 이해하고,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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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진정한 어른의 역할
2023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 방문했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내'어른들을 부탁해 - 단편'을 감상했다. 해당 섹션은 어른의 마음으로 바라본 어린이에 관한 보다 깊은 주제를 다룬 11편의 단편영화가 소개된다.
※ <좋은 집>의 스포일러가 존재하니 유의 부탁드립니다. ※
<좋은 집>중개인 해진의 부동산으로 보호종료아동 연우가 집을 구하러 온다. 해진은 이전 세입자들을 문제 삼으며 연우의 계약을 거부하는 집주인과, 오늘 꼭 집을 구해야만 하는 연우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른들을 부탁해 - 단편' 프로그램의 첫 이야기인 '좋은 집'은 보호종료아동 연우와 중개인 해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이야기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갈등, 그리고 사회에서 처음으로 발 딛는 보호종료아동의 노력을 다룬다. 연우는 집을 구하기 위해 중개인 해진을 만난다. 해진은 처음에는 연우를 돕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계약을 성사시킨다. 그러나 집주인은 연우가 보호종료아동인 사실을 알게 되면 계약을 거부한다. 이때 해진은 집주인의 결정에 동조하지만, 결국에는 연우를 도우려고 한다.
'좋은 집'은 어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며, 사회에서의 어른들의 역할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해진과 집주인의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비교하고, 어떻게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해진은 연우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이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더 나은 삶을 찾는 데 어른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집주인은 연우의 보호종료아동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다. 이로 인해 우리는 사회에서 어른들이 어떻게 돕고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좋은 집'은 연우와 같이 사회에 나온 보호종료아동들을 위한 진정한 어른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아이들은 자립과 독립을 위해 특별한 지원과 안전망이 필요한 현실이다. 그들을 위한 금전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교육, 상담, 직업 훈련 등의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지원을 통해 그들이 사회로 나온 후에도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집'은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문제와 어른들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보호종료아동과 같이 어른으로 성장하려는 이들을 지원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준다.
*영화 전문 웹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프레스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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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은 결국 영화의 한 부분인 이유
6월 25일 감히 말하건데 영화팬들이 기대하던 영화 <F1 더 무비>가 개봉을 했다.
모터스포츠의 특성상 실제 촬영에 제한되기도 하고 스포츠 자체를 영화화 한 작품중에 f1 은 많이 없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모았다.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면서 브래드 피트 같은 메가흥행의 보증수표같은 배우가 출연과 제작을 f1의 가장 유명한 선수인 해밀턴과 했기 때문에 영화광이 아닌 사람들도 막연한 기대감은 고조됐을거라고 생각한다.
<탑건: 매버릭>의 감독이 만든 영화이며 SONY의 아직 발표되지 않은 소형 시네 카메라가 y.m cinema 등 많은 곳에서 다루며 기술적 진보의 쾌감도 기대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아이맥스 필름으로 찍지 않은 아이맥스 포맷의 촬영과 상영이 '듄'과 '탑건'을 통해 증명 됐기 때문에 아이맥스 시대에 대답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탑건 매버릭>의 경우 전투기 조종석 주변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더군다나 아이맥스 카메라는 크기 때문에 기술적 도전이었다.
그래서 촬영팀은 소니 베니스 카메라의 유닛 시스템을 이용해 미해군과 공조해서 조종석에 4의 카메라를 설치했고 그걸 합쳐서 아이맥스 포멧으로 상영을 했다.
한번도 해본적 없는 일이며 그 기술적 도전이 전투기라는 스펙터클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시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톰 크루즈의 말대로 "탑건1 보다 더 좋게 할 일이 없으면 하지 않겠다." 에 부합하는 영화였다.
이야기도 1편에서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2편만 봐도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탑건: 매버릭>은 굉장히 흥행한다. SONY는 이런 기술의 확보와 이미 퍼져있는 아이맥스 상영의 유행을 의식한 것인지 작은 시네 카메라를 만들었고 f1에 적극 활용했다.
(위의 사진이 그 카메라다) 그렇기 때문에 f1 처럼 공기역학적이고 공간이 좁은 곳에서도 아이맥스 포멧으로 촬영을 할수 있었다만....(출처 https://ymcinema.com/2025/02/25/behind-the-scenes-the-cutting-edge-cinematography-of-the-upcoming-f1-movie/)
과연 이것과 같은 기술적 도전이 영화에 도움이 됐는가? 는 실효적으로 글쎄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f1이라는 소재 자체를 살리기 위해 좋은 카메라였겠으나 다른 모터스포츠 영화도 이 정도는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기술적 진보는 맞긴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리는 기술이다. 이유는 영화 자체가 시각적 쾌감을 위한 촬영이 없었고 영화가 관객에게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용산 아이맥스의 입장할 때는 관객들의 기대감이 느껴져서 좋다. 구하기 힘든 표 때문에도 있겠지만 시각적 쾌감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즐기러 온 관객들이기 때문에 각자의 기대감을 갖고 온다.
롤러코스터 줄에서의 기대감처럼. f1도 관객들이 기대하는 그런 영화였다. f1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부터 아무도 찍지 않는 포토 부스에 몇몇이 기다리며 사진을 찍을 정도로.
하지만 영화는 지루했고 관객들도 그렇게 느꼈다. 아이맥스관에서 관객들이 화장실을 그렇게 많이 가는 영화는 처음 봤고, 중간중간 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기대감으로 시작한 영화는 지루함과 느슨한 갈등과 있으나 마나 한 서브플롯의 종말로 레드플래그를 받기 충분했다.
지루함의 핵심은 반복이다. 코메디의 핵심과도 같은 문장이라는 게 재밌는데 '소니 헤이스'는 위기의 팀에 들어와 꼭 그랑프리 중 하나를 우승해야 하고 그것은 9번의 그랑프리 중 한번 우승해야 하는 꼴찌팀의 운명을 짊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실패한 점은 9개의 그랑프리가 배경만 달라지고 경기의 운영이나 앵글이 달라지지 않는 점과 위기의 팀을 구하는 사람으로서의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니 헤이스'는 다른 경기에서 우승하고 떠나는 서부영화의 주인공 같은 사람인데 주인공의 명확한 목표가 설정되지 않는다. f1의 루키 시절 부상과 복귀하지 못한 것에서 관객들은 그래서 얘 목표가 월챔인거 맞지? 하고 마지막에서야 갸우뚱한 고개를 어쩔 수 없이 끄덕인다.
Edgar Wright - How to Do Visual Comedy 에서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신이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아다녀야 하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주인공이 이동한다고 치면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카메라는 패닝 해서 이정표를 찍고 부산이 얼마나 남았나 보여준다.혹은 부산의 해운대 같은 랜드마크 형 이미지를 막찍고 헬기로 찍은 장면을 넣고 신나는 노래를 넣어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이것은 지루한 숏이라고 토니는 말하는데 안타깝게도 f1의 모든 경기가 그러했다.어디 도시이며 몇 번째 랩이고 몇 등인지 까지 경기가 아니라 주인공만 보며 해설하는 것 같은 주입식 부가 설명을 관객들은 들어야 했고 f1경기의 박진감은 하나도 없이 추월하고 몇 등이 됐는지 디졸브 되어 나오는 순위표로 봐야했다.40랩을 돌든 25랩을 돌든 상관없이 보여주고 싶은 랩만 점프해서 자막으로 표시했고 보여줬다.사실 영화의 맨 마지막 3랩이나 마지막 그랑프리만을 위한 과정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경기 내내 같은 구도와 비슷한 사고 그리고 똑같은 운영으로 반복되어 지루함을 남긴다.필요도 없는 로맨스 서사와 갈팡질팡하는 악역과 우승의 제로 괘감은 이 영화가 기억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안타깝지만 <f1>은 <1917>처럼 할 수 있는 영화지 해야하는 목표가 있는 기술의 영화는 아니었다.포뮬러1 의 영화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소재로 남을 것이다.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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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리 몽키스
쓰리 몽키스
'윈터 슬립'을 보고 이 감독이 누구인지,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 찾아보았다. 누리 빌제 세일란. 터키 영화감독이다. '윈터 슬립'은 따로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마치 영화로 보는 또스또예프스키라고 할 정도로,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음에도 긴장감이 대단했던 영화다. 그것은 오로지 대화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철학적이면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공방이었는데, 이 영화 '쓰리 몽키스'에서도 감독의 철학적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부유한 기업가이자 정치가를 꿈꾸는 세르빗은 어느 날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치어 죽인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세르빗은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되므로, 자신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이윱에게 사고의 책임을 떠안는 대신, 감옥에서 나오면 한몫을 주겠다고 회유한다. 가난한 이윱은 아내와 아들을 위해 세르빗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대신 감옥에 간다.
이윱의 아들 이스마일은 자동차를 구입하고 싶어한다. 차를 사면 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 엄마 하레스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세르빗이 아버지에게 줄 돈을 미리 받을 수 없느냐고 묻는다. 하레스는 세르빗을 찾아가고 그와 불륜을 맺는다.
감옥에서 나온 이윱은 약속대로 세르빗에게 큰 돈을 받는다. 세르빗은 지방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개의치 않는다. 이윱은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 세르빗이 살해당하고, 아내 하레스와 세르빗이 간통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다.
하레스는 왜 세르빗을 일부러 찾아갔을까. 전화로만 요구하고 아들 이스마일이 돈을 받아와도 충분한 일이었고, 이슬람 사회에서 - 비교적 자유로운 터키라 해도 - 여성이 일부러 찾아가 만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아닌 다음에는 얼굴을 맞대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아는데, 하레스는 세르빗을 만나고, 쉽게 육체관계를 맺는다. 이건 하레스가 의도하지 않았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뒤로도 세르빗이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않고 단절하자고 했을 때, 하레스는 세르빗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 하레스는 지금의 삶 - 이윱과 아들 이스마일과의 삶 - 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는 지금의 궁핍하고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있다. 그것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적 억압을 느끼고 있으며, 이슬람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의 삶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구조적 억압 아래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하지만, 그와 함께 개인이 갖는 순수한 욕망 또한 언급해야 한다.
어느 사회나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갖고 자신이 놓여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태도이기도 한데, 문제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욕망의 크기만 큰 사람이 보여주는 태도의 역겨움이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 고고한 지식인 흉내를 낸다던가,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사치를 흉내 내는 것은 스스로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짓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하레스도 그런 도착적 욕망의 하수구에 빠진 여성으로 보인다. 하레스가 단순히 '육체적 욕망'만을 충족하기 위해 세르빗을 유혹했다고 보진 않는다. 세르빗은 성공한 사업가이고, 정치가이며 하레스가 보기에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성이다. 반면 이윱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남편이다.
반면, 하레스는 비록 가난한 남편과 살지만 미모가 뛰어난 여성이다. 젊었을 때부터 미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하레스는 그러나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다. 자기처럼 미인이라면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하레스를 괴롭게 하는 원인이다.
아내 하레스가 자기를 감옥에 가라고 한 세르빗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윱은 내색하지 않는다. 아니, 갈등한다.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세르빗이 살해당한다. 누가 세르빗을 죽였을까. 세르빗의 차를 운전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으면서, 이윱은 경찰이 알려준 강력한 단서를 듣게 된다.
집안은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이 흐르고, 이스마일은 자기가 세르빗을 살해했다고 엄마 하레스에게 고백한다. 한밤중, 잠에서 깬 이윱은 옥상에서 아내가 자살하려는 모습을 보지만 그것을 숨어서 지켜보기만 한다. 아니, 그것은 이윱의 환상이거나 상상이다. 하레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것이다. 아니, 이윱은 그런 자기의 바람을 아내 하레스에게 직접 말한다. '가서 잠이나 자, 아니면 뛰어내리던지.' 이렇게 말하지만, 그는 그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다. '바보처럼 굴지 마, 거기서 내려 와.' 이윱은 하레스를 용서한다.
이윱도 아들이 세르빗을 살해했다는 말을 듣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깊은 밤, 인적이 끊긴 골목, 밝은 전등 아래 홀로 서성이는 이윱의 그림자가 짙다. 그는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하고, 오래 망설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청년 바이람을 찾아간다. 찻집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는 바이람은 돈을 벌어 찻집을 열고 싶어한다. 이윱은 감옥에 갔다오면 한몫 챙겨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윱은 옥상에 올라 먹구름 사이로 치는 번개와 천둥소리를 들으며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굵은 빗줄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굳은 결심을 할 때 이슬람 사원을 찾는다. 이스마일이 세르빗을 살해하기 전, 이슬람 사원을 찾아 깊이 생각하고, 이윱이 바이람을 찾아가기 전, 역시 사원에 들러 오래 생각한다. 두 사람은 모두 알라신의 뜻을 알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가 그들 자신의 의지로 결행되는 사건이다.
사건의 흐름과는 관련이 없다고 보여지지만, 이 가족에게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존재가 있다. 고통스러워 하는 이윱의 등 뒤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어린 아이. 불과 서너 살에 세상을 뜬 이스마일의 형이자 장남이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그 어린아이의 존재는 이 세 명의 식구를 붙들고 있는 강력한 원심력이기도 하다.
세 명 가운데 적어도 이윱은 어릴 때 죽은 아이를 내내 마음에 묻고 살아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 자체가 이미 커다란 비극이지만, 이윱은 어디에서 비극이 시작되었는지 어렴풋하게 느낀다. 아내 하레스의 불륜도, 아들 이스마일의 범죄도 모두 자기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의 앞날이 저 마르마라해, 에게해에 드리운 먹구름과 천둥, 번개처럼 무겁고 두려운 것이라는 걸 이윱은 잘 알지만, 그 앞에서 오로지 침묵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견뎌내는 것임을, 오로지 침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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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대학살은 왜 기억되어야 하는가?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대 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 주의
감독: 고훈
출연진: 양경인, 파치스
시놉시스: 제주 4.3 사건의 구술 작가인 양경인과 르완다 출신 한국 유학생 파치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 4.3 사건과 르완다 제노사이드 사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딸이라는 것. 이런 두 사람이 한국과 르완다를 오가며 '그날'이 남긴 상흔과 그 아픔을 딛고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1. 비극은 지척에 있다
전쟁과 학살 소식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요즘이다. 몇 천 명, 몇 만 명이 넘게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 숫자가 너무나 거대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 중 많은 수(특히 2-30대의 젊은 세대)는 아마도 그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는 있되 그 참혹함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분단 국가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럭저럭 평화로운 시기를 살고 있지 않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참혹함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순진하게도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들을 '어느 머나 먼 딴 나라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거친 귀납적 도출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필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랬다.
그러나 쉽게들 착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이러한 학살의 비극은 우리와 그다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그럭저럭 누리는 평화의 이면에는 수많은 죽임과 죽음이 있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매카시즘(반공 열풍)의 광기에 인해(좀 더 깊고 우울한 배경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다루지 않겠다.) 2~3만여 명이 살해당한 제주 4.3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다른 한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한 이 사건은 충분히 경계되고 기억되어야 마땅할 것인데, 4.3이라고 하면 '아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정작 사건의 발단과 경위, 결과의 끔찍함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고, 한국 역사 교과서에서 그 진상을 명확히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2014년의 일이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제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학살의 끔찍한 상흔은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이들에 의해 오래도록 묵인되었다. 이토록 가까운 학살의 추억을! 우리는 그래서인지 때때로 이것을 기억하고 되새겨야만 하는 이유조차 모르기도 한다.
영화 <그날의 딸들>은 제주와 르완다의 학살을 경험한 피해자의 입과 그 딸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이러한 인류사의 어두운 이면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그것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풀어 나간다.
2. 그날의 딸들
영화는 제주 4.3 사건 구술 작가인 양경인 씨와 르완다 출신 대학생인 파치스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국적도 세대도 다르지만 대학살의 피해자의 딸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제주 4.3 사건과 르완다 제노사이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누군가들의 정치적인 야욕과 선동에 의해 민간인이 잔혹하게 살해되었고 그것이 오래도록 묵인되었으며 그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이 평생토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주에서는 '속슴허'라는 말이 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인데, 4월 3일부터 시작된 '그날'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하다가는 잡혀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또 제주에는 이름을 특이하게 짓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행여나 잘못 불려나갔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제주에는 비슷한 시기에 온 마을이 제사를 지낸다. 제주 인구의 열 중 하나가 '그 사건'으로 인해 희생되어서다. 제주도의 활주로 아래에는 숱한 죽음이 있었고, 천지연 폭포의 밑바닥에는 스러져간 억울한 영혼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르완다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있는 집이 드물다. 거대한 '인종 말살'의 과정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생을 다했기 때문이다. 구원과 가르침의 장이어야 할 성당과 학교는 살육의 장이 되었고, 학살의 생존자들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친다. 서로 죽고 죽이던 투치족과 후투족이 공식적으로 '화해'한 지는 2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민족이나 과거를 묻는 일은 금기시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십년이 흘렀지만 학살의 흔적은 아직도 생생하다.
3. 학살의 상흔을 치유하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양경인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그를 통한 피해자들의 용서"로 말미암아 가능해진다.
제주 4.3 사건은 양경인 작가를 비롯한 진상 규명을 위해 애쓴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실제'하게 되었다. 정부는 마침내 국가 권력의 과오로 인해 수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비로소 마음 놓고 아픔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르완다는 국가 차원에서 투치족과 후투 족의 화해를 주도했다. 그들은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사과와 용서의 필요'를 설파했다. 후치족에게 남편과 아이들을 잃은 여인은 가족을 살해한 이웃을 용서했다.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서는 남은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웃이자 원수인 남자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4. 비극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우리가 비극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는 한층 선명해진다.
그것은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다. 가해자와 희생자가 참상의 트라우마 혹은 죄악감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참상의 당사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1947년 4월 3일에 벌어진 대학살은 그로부터 47년 후인 1994년 4월 7일에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날'의 처참함을, '그날'의 아픔이 어떻게 이어져 내려오는지를, 그것이 오늘날에 어떤 방식으로 잔존해 있는지를. 우리가 '그날'을 끝 없이 경계하고 되새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비극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므로.
[상영 일정]
[부산국제영화제 10.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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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때우기 좋은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
가문의 영광: 리턴즈
23.09.21 개봉
코미디, 15세 관람가
한국, 99분
감독: 정태원, 정용기
출연: 윤현민, 유라, 탁재훈 등
너무나 유명한 코미디 영화 시리즈인 가문의 영광!
11년 만에 시즌6 , '가문의 영광: 리턴즈'로 돌아왔는데요
시사회 때부터 평이 너무너무 안 좋았고
현재 네이버 평점도 6점대로 떨어졌는데 ㅋㅋ
전 네영카에서 나눔 받아 공짜로 봐서 그런지
재미없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싶었어요
당연히! 15,000원 주고 볼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넷플릭스 같은 데 뜨면 시간 때우기용으로 볼 만한 영화랄까요?
그도 그럴것이 촬영 기간이 올해 7~8월이더라구요?
추석 연휴를 노리고 급하게 제작한 영화 같은데
딱 그 정도 퀄리티가... 눈에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아! 노파심에 미리 말씀 드리는 건데
추석 연휴 때 가족이랑 볼 만한 영화 절대 못 됩니다,,,
애초에 스토리부터가
진경과 대서의 원나잇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단어가 나와서...
특히 애들 데리고 가지 마세요 절대절대절대로
줄거리 요약은 이제야 봤는데......
왜 기껏 정해 놓은 로그라인을 따르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네요
저대로만 진행했어도 평점 7점 정도는 땄을 것 같은데요
비혼주의를 선언한 막내딸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한 대작전?
-> 진경이 비혼주의라는 건 캐릭터들 대화 중에 등장하지
처음부터 그녀는 비혼주의! 절대 연애, 결혼에 관심이 없음!
이라고 못을 박아 놓진 않아요...
애초에 첫 씬부터가 클럽 가서 남자가 주는 술 마시는 건데,,
대서와 진경을 결혼시키기 위한 장씨 가문의 음모?
-> 그게 에필로그 가서야 겨우 나와요
전 정말 이런 음모였던 줄 모르고 오 생각 외로 반전도 있네 했는데
그걸 줄거리에 이미 오픈해 놓다니...... 무슨 생각이지
어쩐지 왜 장씨 가문이 자꾸 대서에게 집착하나 했네요
리뷰 쓸 때야 그 비밀이 밝혀지다니 최악...... ㅋㅋ
'가문의 영광: 리턴즈'를 한 줄 평으로 남겨 보자면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누렸던 영광을
꽁으로 또 먹고 싶어 리턴즈 한 영화 같다는 거예요
심지어 가문의 영광에서 활약하던 기본 캐릭터들도 안 나오고
윤현민, 유라 님이 주인공 격으로 흘러가는 거라서
걍 다른 영화 같아요
등장하는 캐릭터 많은데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았고
스토리는 어딜 향해 가는 건지 정립되지 않았고
나름 웃겨 보겠다고 만든 몸개그도 생각보다 안 웃겨서 실망했어요
무엇보다 주인공 캐릭터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건데요
대서는 진경과 원나잇(실은 아니지만 보이기론 그렇게 보이니까)을
한 것을 여자 친구 유진에게 바로 들켜요
그런데 유진 역시 남자 돈 빼먹는 여자라서
남자 친구인 대서의 원나잇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후반부로 가서는 유진이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대서가 보는데
처음엔 뒤에만 숨어 있다가 (대사 칠 타이밍 기다렸다가)
"니가 왜 여기 있어?" 라며 되도 않는 모습을 보여요
감독님이 상황 정리하는 법을 모른다는 게 눈에 보이죠
호감 가는 캐릭터로 만들 거였으면
남자 주인공인 대서가 무조건 여자 친구가 없어야 하고
혹시 있더라도 찌질+댕청한 너드남 콘셉트,
그리고 여자 친구인 유진을 많이 사랑하며
유진은 뒤로 몰래 바람을 피우는 나쁜 여자였어야 해요
걍 여기 아메리칸 그잡채임,,,,,, 서로 꺼리는 게 없어요
이렇게 혹평을 했음에도 웃긴 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단 거예요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ㅋㅋ
영화 시간 자체가 짧아서 그런가
이제 30분 지났을까 하고 시계를 봤는데
20분 남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김
암튼...... A부터 Z까지 잘 만든 구석은 없지만
혹시 특전 준다면 영화관 가서 봤겠지만...
그것도 아니라서,, 걍 아무도 안 볼 것 같다는
그런 후기입니다
*스토리: 1/5점
*연출: 1/5점
*영상미: 1/5점
*OST: 1/5점
*연기: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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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에 있다 I am Here 범죄 스릴러 속 휴머니즘
불량 남녀와 브라더를 감독했었던 신근호 감독이 12일 개봉을 앞둔 ‘나는 여기에 있다’로 새 작품을 내놓았는데,
주연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는 VIP 시사회 이벤트에 선정되어 서울에 다녀왔다.
공항에서 티켓팅을 한 뒤 브릿지 연결 없이 버스 이동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제주항공은 최근 국내선 항공의 운항 편수를 102편으로 늘렸는데, 제주 도민들의 도외 지역으로의 이동을 편리하게 돕고자 만들어진 제주항공은 해외 운항 노선 또한 늘려가며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요금 금액대와 상관없이 포인트 적립이 모두 이루어지고, 마일리지 좌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적립한 포인트 사용이 비교적 쉬운 편으로 포인트로 티켓 구입 시 부족한 포인트는 현금으로 즉시 보충할 수 있다. 포인트 구매 시 공항 이용료나 유류할증료 부분은 포인트로 구매가 불가하며, 별도로 결제를 해야 한다.
다만 적립된 포인트는 유효기간이 있어 그 기간이 만료되면 사라지니 이 점, 참고하시길 바라고요.
드디어 제주 땅을 벗어난 비행기는 제주의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도에 진입했는데,
예전에 비해서는 건물들이 무척이나 많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휴양지라는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비행기는 순항을 하며 1시간여를 상공을 날아 서울 김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서울 관광을 다닌 뒤 시사회가 진행될 건대입구 롯데시네마까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갔다.영화관으로 들어가니 입구 쪽에서 바로 시사회 티켓을 배부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현장 티켓 수령은 별다른 기다림없이 바로 진행된다.
연락처 뒷자리와 이름, 선정 채널 등을 이야기하니 티켓을 나눠준다.
좌석은 임의 배정이다.
VIP 시사회라면 당연히 무대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뷰피였지만, 단순 영화 상영만을 두고도 시사회 진행이 되는 자리에 몇 번 참석하고 나니, 참석 신청에 신중이 기해지던 차에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 인사가 함께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어 신청 후 선정되기를 무척이나 바래오던 차에 선정이 되어 더욱 소중하고 값진 순간으로 만날 수 있었다.
영화관 내에서뿐 아니라 영화 상영 전 영화관의 한쪽 공간에서는 출연 배우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될 조한선과 정태우 배우 등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기도 했다.
이제는 중견 배우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두 배우의 연기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기념 사진 촬영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 좌석을 배정받은 2층으로 올라가 무대인사를 기다리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고조된 분위기 가운데 있었다.
요즘 한국 영화의 흥행 실적이 저조한 편인데,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러닝타임은 82분으로 억지로 스토리를 질질 끌고 가지 않으며 포인트를 잡으며 깔끔하게 진행되어 가는 작품이었던 터라 짧은 시간 집중해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으셨던 분들에게도 괜찮을 듯싶었다.
7시가 되니 신근호 감독과 조한선, 정진운, 정태우, 노수산나 배우들이 무대로 와 인사를 했다.
범죄, 액션, 스릴러 장르의 ‘나는 여기에 있다’는 2023년 4월 12일 대개봉 예정으로 경찰과 범죄자가 동일한 공여자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은 스토리가 가미되었다.
장기를 기증받은 후 예전 성격이나 생활 패턴이 아닌, 공여자의 성격과 생활 습관으로 반응하며 지내는 경우가 종종 의학계에 보고되곤 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언급됩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 말미에 그러한 실제 스토리를 감안해 만든 작품은 아님을 밝히는 문구가 나온다.
신근호 감독 조한선 정태우 정진운 배우 주연 나는 여기에 있다 VIP 시건대 입구 롯데시네마 ‘나는 여기에 있다’ 무대인사 VIP 시사회
무대인사를 위해 상영관 안으로 입장하는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그들의 무대인사가 담긴 동영상을 첨부한다.
영상에 담긴 배우들의 바램처럼 ‘대박’나시길 바란다.
영화는 범죄 스릴러 장르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느낄 수도 있겠다.
긍휼한 시선으로 범죄자를 바라보는 형사의 마음과 심리를 표현하는 조한선 배우와 아역 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이제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낯설지 않은 정태우 배우의 연기가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왼쪽 눈 밑이 떨리는 조한선 배우의 연기는 인상적!
영화 관람이 끝난 뒤 밖으로 나왔는데, 무대인사를 했던 배우들 외에도 영화에 출현한 배우들 또한 눈에 들어옵니다.
무대인사가 있었던 VIP 시사회라 영화 관계자들도 많이 참석했던 자리였다.
티켓값이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오른 편이라 극장가를 찾는 것에 대한 부담과 망설임이 있는 요즘이지만, 공여자의 삶이 장기를 기증받은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친 부분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연출을 한 ‘나는 여기에 있다’를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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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식물카페, 온정> 메인 예고편
종군 사진기자로 일했던 주인공 ‘현재’는
파키스탄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로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다.
퇴사 후 다시 찾은 할아버지의 수목원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식물과의 특별한 교감을 떠올린다.
식물로부터 살아갈 용기를 얻은 ‘현재’는
도심 속 <식물카페, 온정>을 운영하게 된다.
본인의 반려식물과 함께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카페를 찾은 손님들에게 ‘현재’는 병든 식물은 물론
병든 마음에 필요한 그만의 식물 처방전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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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1차 예고편
모든 것은 악마가 시켰다!
1981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잔혹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악마가 살해하도록 시켰다고 주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그리고 사건의 배후에는 악마에게 빙의된 소년이 있었는데…
초자연 현상 연구가 워렌 부부의 사건 파일 중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실화!
진실 혹은 거짓? 살인사건의 범인, 인간인가 악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