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채원2025-02-11 22:01:20
특별한 시선으로 특별하지 않음을 말하다.
영화 <나는 보리 (2018)> 리뷰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 <나, 다니엘 브레이크>, <말아톤>, <7번방의 선물>과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영화는 비록 상업영화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국내외 영화계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앞서 예시를 든 영화들처럼, 장애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흔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해당 인물이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되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의 고난→ 조력자 혹은 특정 사건과 만남→ 주인공의 극복/ 희망’과 같은 클리셰를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는 관객에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고, 몰입해볼 기회를 제공하며,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행방식은 영화의 전반을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때로는 영화의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들이나 그들이 겪는 사건, 영화 전반에 걸쳐 숨겨져 있는 의도와 영화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하락시킨다는 단점을 보이기도 하며 ‘주인공의 고난과 극복’이라는 전형적이고 반복적인 클리셰에 관객이 흥미를 잃게 될 가능성 또한 있다. 이런 ‘사회적 약자’라는 같은 소재를 가진 영화들의 어떤 공통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 속에서 영화 <나는 보리>가 갖는 시선은 특별하다. <나는 보리>는 농인을 바라본다. 소수가 아닌 다수로서, 장애인 가족이 아닌,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가족으로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소통하는 존재로서, 그리고 농인과 청인을 다르지 않은 시선에서 말이다.
1. 경계를 허무는 시선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는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용어로, 2020년에 개봉한 김진유 감독의 <나는 보리>는 ‘코다(CODA)’인 소녀 ‘보리’의 일상과 그런 보리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을 담은 영화이다. 김진유 감독은 실제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CODA)’로, 영화<나는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유년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문에 <나는 보리>의 주인공이자, ‘코다(CODA)’인 소녀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있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보리>의 주인공인 11살 ‘보리’는 어린 시절 김진유 감독처럼 농인인 부모님을 대신해 은행 업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등 주로 가정 내에서 아이보다는 어른들이 하게 되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영화 속 “나는 누나 귀 안 들리는 거 싫어. 치킨 못 먹어.”라는 농인 동생 정우의 대사를 통해서, 아침에 혼자 알람을 듣고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고 등교하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서, 보리가 “내일 할아버지 집에 갈거야.”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도 따라나서 엄마와 동생의 몫까지 기차표를 구매하고, 택시 앞자리에 탑승해 길을 안내하고,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농인인 엄마 사이에서 수화를 통역해주는 장면을 통해서 보리의 가족들이 생활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보리에게 맡기고 의지하고 있으며, 보리가 가족들 사이에서 어떠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는 보리가 이러한 책임들을 도맡음으로써 결코 불행하다거나 힘겹다거나, 가족들이 보리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여 보리가 없이는 아예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불리하고 힘든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영화에서 보리네 가족은 따스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넘치는 화목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가족 구성원 내에 농인이 없는 일반 가정보다 더욱 화목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는 은정이가 자신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고 매번 걸려오는 전화와 부모님의 심부름은 다 자신의 몫이라고 투덜대며 보리를 부러워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화목하고 따뜻한 가족의 묘사는 농인인 부모님과 청인인 자녀로 구성되었지만, 보통의 가족들처럼 따뜻하고 화목했던 김진유 감독의 가정환경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화목한 가족 내에서도 왠지 모르는 소외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보리’이다. 들리지 않는 부모님 혹은 동생 정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수에 속하는 청인 ‘보리’ 말이다. 이러한 설정은 <나는 보리>가 농인의 문화와 세상을 특별하지 않게 바라봄으로써 가지는 미덕을 돋보이게 해준다. 보리는 가족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알 수 없는 소외감에 매일 아침, 자신도 부모님과 동생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기도 하며, 심지어는 소리를 잃기 위해 MP3를 최대 음량으로 키워 이어폰을 귀에 바짝 꽂은 채 음악을 듣거나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청력이 감퇴한다는 TV 속 해녀의 인터뷰를 보고 직접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보리의 행동과 소외감은 일반 청인 관객들이 보기에 이질적이고 쉽게 공감할 수 없으며 한편으로는 충격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보리의 심리와 행동, 영화의 설정이 <나는 보리>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가족 내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존재로서, 사회적으로 우리가 흔히 다수라 말하는 청인에 속함에도 보리가 농인으로 사는 삶을 원하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는 장애인은 약자, 청인은 일반인이라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농인의 삶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불편할 것이라 섣불리 동정하는 우리의 선입견을 깨트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보리>에는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있는 그대로의 농인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 보리는 물품을 구매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은행 업무를 보는 등 흔히 보호자가 해줄 법한 일들을 모두 맡아 하는데, 이렇게 가족들의 생활편의를 도울 뿐 아니라 보리는 사회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이는 보리가 동생 정우의 축구경기 출전과 엄마와 함께 옷을 사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생 정우 역시 농인인데, 정우는 축구 실력이 뛰어남에도 귀가 들리지 않아 경기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출전선수가 아닌 후보 선수로 지목된다. 이에 정우가 후보선수라는 것을 알게 된 보리는 이장님인 아버지를 둔 친구 은정이를 통해 정우가 축구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보리가 엄마와 단둘이 옷가게를 방문한 장면에서 보리는 옷가게의 직원들이 자신과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와 비하를 서슴지 않고, 옷 가격 또한 원가보다 높게 책정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후 보리는 잘못된 거스름돈을 점원에게 돌려주며 엄마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있었을 뿐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다 보고 들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보리는 가족의 도우미와 더불어 보호자의 역할도 소화한다.
그렇다면 청인인 보리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족들의 도움 없이도 모두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보리가 가족을 돕듯, 보리 또한 가족의 도움과 관심,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영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족과 함께 시장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부모님의 손을 놓친다. 안내방송을 해도, 전화를 걸어도 들을 수 없는 부모님과 동생이기에 이들을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보리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 순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밝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보리는 처음으로 11살 제 나이 또래처럼 어린아이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이렇게 가족 내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보리 또한 가족들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하며, 우리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농인도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큰 힘과 도움이 되어 주는 존재라는 걸 알려준다. 다음 소주제에서 더 언급하겠지만, <나는 보리>와 유사한 작품으로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라는 음악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코다(CODA)’인 주인공 소녀가 “지금까지 가족 없이 뭘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망설이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자신이 가족들을 도와야 하지만 역으로 자신도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는 청인과 농인이 모두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이기도 함을 보여주는데, 결국 <나는 보리>가 이야기하는 바는 이러한 영화의 장면들과 보리의 아빠가 보리에게 반복해서 뱉는 말을 통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들리든, 들리지 않든 우린 똑같아.” <나는 보리>가 바라보는 청인과 농인은 연약한 존재이자 때론 강한 존재로서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저 똑같은 한 사람일 뿐이다.
2. 다르고도 같은 소녀들– 영화 <코다>의 루비, <나는 보리>의 보리
<나는 보리>의 보리와 유사하게 ‘코다(CODA)’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는데, 바로 2021년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이다.
두 영화의 주인공 보리와 루비는 모두 코다 중에서도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소리가 들리는 자녀 'OHCODA’이자, 미성년자 코다 ‘KODA’에 속한다는 점, 그리고 영화가 청인과 농인의 화합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두 영화 속 소녀의 가정 환경이나 농인의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인물의 선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관심이 가족들과 보내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과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면, <코다>의 루비는 졸업과 성인을 앞둔 나이로 진학과 가족의 생계 등 자신의 삶과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고민하는 데에 몰두한다. 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차이는 보리는 가족들과 동일시 되어 자신도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반면, 루비는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졸업 학년과 11살이라는 인물의 나이 차이 때문에 나타난 차이 만은 아닐 것이며, 두 소녀의 가정 환경과 제작자(감독)의 배경과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문화적 배경 또한 영화의 관점과 주인공의 선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루비의 가족은 아빠와 오빠가 운양하는 어선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가는데, 일정치 않은 수입과 틈만 나면 중간에서 이익을 떼가는 중개업자들 때문에 루비의 진학비용 걱정은 물론, 늘 생활비 걱정을 안고 지낸다. 또한, 루비의 가족은 가족 내의 강한 유대와 결속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루비의 엄마가 식사할 때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가족의 일에는 꼭 모두가 함께 자리하게 하는 장면을 통해 루비의 엄마가 가족의 소통과 결속을 강조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거 알아? 엄마도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해.”라는 루비의 대사와 “들리는 년들은 나랑 말 안 해.”라는 엄마의 대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사실 엄마의 이러한 행동은 청인과의 교류는 두려워하며 피하고, 농인에 공감할 수 있는 가족 내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하려는 엄마의 방어기제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 내의 유대를 강조하는 엄마의 행동과 자신도 부양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저절로 심어지게 되는 루비네 가정의 분위기와 환경은, 루비가 가족에게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반면, 보리의 가족은 루비네 가족과 같은 입장으로, 농인으로서 겪는 불편함과 어려움이 분명 있음에도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의 본보기라고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부모님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술비조차도 전혀 상관없다며 정우와 보리의 귀를 위해선 큰 비용지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코다>에서는 가족의 생계수단이던 낚시도 <나는 보리>에서는 보리 아빠의 오랜 취미이자, 어린시절부터 아빠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존재, 아빠와 보리가 속마음을 교감하게 되는 시간과 배경으로 나타난다. <코다>는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이며 원작 영화인 <미라클 벨리에>는 프랑스에서 제작되었고, <나는 보리>는 우리나라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이에 루비와 보리의 선택 차이에는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의 면허취득과 독립을 맞이하는 서양의 문화와 개인주의, 그리고 한국의 가족공동체 정신과 협동, 한국의 ‘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가정과 사회에 대한 루비와 보리의 관점과 선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두 영화 모두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물고, 화합과 이해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같다. <코다>의 경우 영화의 후반부. 음악 영화답게 음악을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루비의 오디션과 대학 진학을 내내 반대하던 루비의 부모님은, 교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모습과 루비의 노래에 환호하는 관객의 모습,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하는 듯한 루비의 태도를 보고 오디션 당일 아침, 직접 운전을 해 오디션장까지 함께 간다. 오디션장에서 루비가 부르는 노래는 “Both sids now”. 앞서 말했듯, 영화의 메인 사운드 트랙이자 주제를 나타내고 있기도 한 이 루비의 오디션 곡은 “하려던 일들이 많았지만 구름이 내 앞을 막았지. 이제 구름을 양쪽에서 보게됐어. 위와 아래에서”, “이제 사랑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주는 쪽과 받는 쪽에서”, “이제 인생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이기는 쪽과 지는 쪽에서”와 같이 성장하며 주변에 있던 것들에 대해 달라진 이해와 시선에 대한 가사를 담은 곡으로, 루비가 ‘코다(CODA)’로서 살아가며 때로는 농인인 가족이 자신의 인생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때로는 농인 가족 속에 속한 유일한 청인이 자신이 소외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던, 때로는 다른 가족들과 다른 자신의 가족이 부끄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루비가 이제는 농인과 청인의 입장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가족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디션 현장에 몰래 들어온 가족들을 위해 루비는 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가사에 맞추어 수화를 하는데, 이 장면을 통해 영화 <코다>는 루비의 성장과 이해, 농인과 청인의 교류와 화합을 완벽히 실현시킨다.
<코다>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이해와 화합에 중심을 두었다면 <나는 보리>는 서로 간의 이해와 더불어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자아정체성 확립과 농인과 청인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농인도 청인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점을 더 강조해 말한다. <나는 보리>의 미덕은 바로 이렇게 농인 가족이 등장하지만, 비장애인 가족과 다르지 않은 보편적 정서를 다룬다는 점에 있다. 다름보다는 같음을 느끼게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게 한다. 실제로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처음부터 장애를 어떻게 다루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리의 감정에 집중했고, 그 감정선을 따라 보리 가족의 모습을 묘사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존의 장애를 다룬 영화와 차별점을 갖게 된 것 같다.”라며 특별한 의도를 담기보단 오히려 그저 농인을 향한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영화 <나는 보리>의 후반부에서, 보리는 시장에서 구매했던 부적인 ‘악마의 눈’을 바다에 던지는데, 이러한 보리의 행동을 통해 일시적이지만 농인의 입장을 직접 체험해보고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을 경험해본 보리가 더 이상 가족에 대한 타인의 차별적인 시선이나 편견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으며 ‘코다(CODA)’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확립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나는 보리>는 보리가 도로와 바다 사이 좁은 방호벽 같은 길 위를 양팔을 벌린 채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배우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며 마무리되는데, 도로도 바닷가도 아닌 사이 도로 방호벽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 농인과 청인 사이에 놓여있는 ‘코다(CODA)’ 보리의 정체성과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완성한다.
3. 보리가 보여주는 농인의 세상
<나는 보리>에서 보리는 가족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에 농인이 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잘 들리지 않는다는 TV 속 해녀의 말에 직접 바다에 뛰어들며, 이상 없이 무사히 구조되었음에도 보리는 이후로 계속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척, 자신도 농인이 된 척 행동하는데, 이렇게 농인으로서 생활하는 동안 보리는 농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가족들이 농인으로서 겪었을 어려움과 외부에서 받았을 차별들을 경험하게 된다. 앞서 <나는 보리>의 미덕은 농인 가족이 등장함에도 비장애인 가족과 전혀 다른 바 없이 느껴지는 보편적인 정서를 다룬다는 점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영화 전반에 걸쳐 경계를 허물고,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지만, 보리가 직접 농인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생활들을 담음으로써 일상 속에서 농인이 겪게 되는 불평등한 차별과 시선 또한 짧은 내에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 또한 <나는 보리>의 또 다른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보리가 가족들처럼 농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학교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보리와는 상의 없이 보리에게 화장실 청소 당번임을 통보한다던가, 은정이와 보리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보리를 투명인간처럼 쏙 빼놓고 은정이에게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식으로 말이다. 학교와 또래 친구들 내에서뿐만 아니라 보리는 주변 어른들에게서도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부모님 대신 정우와 농인이 된 척하는 보리를 데리고 병원에 간 고모가 ‘착한 거짓말’이라는 명분으로 병원에 다녀온 후 엄마, 아빠에게 수술하게 되면 정우가 앞으로 축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또한, 엄마가 함께 간 옷가게에서는 보리와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몰래 점원들끼리 상의하여 더 높은 가격으로 옷을 판매하는 것을 보게 되며, 지나가는 보리를 본 동네 어른들이 “어린 것이 딱해서 어떡해.”라며 들리지 않게 된 보리를 안타까워하며 안쓰러운 시선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보리가 농인인 체를 하며 겪게 되는 주변의 변화와 상황들은 우리가 영화 밖 현실사회에서 농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흔히 장애를 섣불리 안타깝다는 식으로 바라보거나 ‘힘들겠다’라는 식으로 동정 같은 공감을 한다. 작은 시선, 별 의미 없는 말 한마디일 수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툭툭 나오는 시선과 말들은 당사자의 마음에 꽂히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11살 소녀가 특별히 큰일 없이 지나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하도록 한 것에도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김진유 감독의 바람과 유년 시절 감독이 겪었던 감정, 그리고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진유 감독은 “제가 만났던 농인 부모 중 60% 정도가 자녀가 농인으로 태어나길 바랐다. 농인이라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사회에서 우리가 농인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감독이 영화에서 보리가 직접 농인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농인이 일상 속에서 빈번하거나 흔하게 겪게 되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그 어떤 가정보다 따뜻하고, 온전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그림으로써 현실에서의 농인을 향한 특별한 시선을 제거하고자 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4. <나는 보리>에 대한 글을 마치며
영화 <나는 보리>는 농인의 삶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코다(CODA)’라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존재를 알리고, 이런 ‘코다(CODA)’ 소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단순히 농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농인과 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경계를 허물고 농인 가족이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가족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보리가 농인이 되고 싶어 하는 바람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사고에서 전환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장애인 가족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묘사도 하고 싶지 않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농인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자신이 살았던 모습만을 보여줘도, 대중이 농인을 조금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라고 인터뷰에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 영화 <나는 보리>와 그것을 보는 관객에게도 통한 것일까. <나는 보리>의 보리네 가족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더불어 따뜻해질 정도로 그 누구보다 화목하고 행복해 보이며, 영화를 통해 그들의 삶과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더 이해하고,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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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발만 멀쩡하면 살 수 있어
이 글은 영화 [미나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무 모양조차 다르고, 잔디조차 다르고.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처음 외국, 그러니까 영국 공항에 내렸을 때가 기억납니다.
마음 가득 꿈뿐만 아니라 걱정도 함께 쑤셔 넣는 바람에 두 마음이 싸우느라 울렁거리는 속을 끌어안고 싸늘한 공항에, 캐리어 두 개와 함께 한참 동안이나 덩그러니 서 있어야 했죠. 그 와중에도 영국의 스타벅스는 또 어떤 맛인가 싶어 들어간 공항 커피숍에서 인생의 흑 역사를 하나 더 얻고, (참고 1) 기가 많이 꺾인 상태에서 제 픽업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때의 제 위치였습니다.
픽업하러 온 훈훈하게 생긴 청년은 제 짐을 트렁크에 싣고는 제게 웃으며 운전석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얘는 보자마자 차를 맡기네. 내일은 결혼하자 그러려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어째서) 영국은 운전석의 방향이 반대였죠.
난생처음으로 외국에 나와 연타로 흑역사들을 호로록 만든 제게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마저도 낯설기만 했습니다. 나무의 모습도, 공기도. 풍경도. 하다못해 젖소마저도 생긴 것이 달랐죠. 이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앞으로 최소한 6개월 동안은.이라는 생각에 울컥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꾹꾹 삼켰지만.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아 그저 콘크리트 덩어리 같기만 한 집에 도착한 순간 저는 결국 현관에서 무너져 내렸었습니다.
아마 한예리(모니카)가 남편이 약속했던 곳과 너무도 달랐던 집을 보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울고 싶고 속상하고. 그런데도 아이들이 앞에서 보고 있으니 당장 싸울 수는 없는. 이 낯선 곳이 주는 생소함과 남편에 대한 서운함에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는 한예리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제게는 이미 여기서부터 내적 오열 포인트가 시작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집 떠나면 모든 것이 서러운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 [미나리]는 세밀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우리에게 풀어냅니다. 너무 사실적이라 아프기까지 해서 눈을 감고 싶어버리기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남이 보기엔 웃프기만 한 고단한 이민자들의 이야기
겪어 본 사람은 아는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사진 출처:구글 조선일보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렸던 장면은, 딸 한예리(모니카)에게 비닐봉지 한가득 싼 멸치와 고춧가루를 건네는 윤여정(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샌 밀폐용기도 좋은 게 참 많이 나오는데, 세련되지 못하게 꼬깃꼬깃한 하늘색 비닐봉지 한가득 담긴 그 보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모니카에게 내밀죠. 밀폐 용기 무게라도 더 줄여 조금이라도 더 담아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다섯 개의 비닐봉지로 한국에서 날아온 그 정성을 보며 오열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참고 2)
가족 사이에 생긴 불화로 인해 아이들을 훈육하는 장면 역시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부부의 아이들은 이미 한국어보다도 영어에 익숙해 보이는데 제이콥(스티븐 연)은 회초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죠. 이미 할머니에게서 한국 냄새가 난다며 자신과의 이질감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달은 어린 아들 데이빗이 아무 말 없이 회초리를 가지고 오는 장면에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보기 좋게 뒤죽박죽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이 가족의 모습이야말로 미국 사회에서 그들이 겨우겨우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엉망진창인 채로 사는 모습이 영화 내내 우리를 웃게도, 또 울게도 합니다.
농사, 수탉, 미나리.
포기하지 못하는 것, 쓸모 없어지지 않으려는 노력.
사진출처:SBS/수도꼭지 꽂을 때 진짜 어휴.
가장이지만 제이콥은 미련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농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부인 모니카마저도 고개를 저을 정도죠. 그것이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온 소망이었다.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가장 소중한 가족마저도 뒷전으로 미루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어떤 배경 때문에 그런 집착을 보이는지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직업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옵니다.
제이콥은 솜씨 좋고 잘 훈련된 병아리 (성별) 감별사입니다. 십 년이 넘게 일해온 커리어 덕에 버칸소에서도 칭찬받고, 아내에게도 전수한 듯 보입니다.
암탉은 알을 낳기 때문에 "상품 가치"가 있어 살려두지만, 수탉은 그렇지 않아 병아리인 상태에서 그대로 소각장으로 가게 됩니다. 그것을 십여 년이 넘게 보아온 제이콥은 양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익숙하죠. 하지만 어린 아들에겐 단지 저 연기가 무엇인지 물었을 뿐인데 쓸모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완벽히 이해될 리가 없죠 .그런 아들에게, 제이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쓸모 있는 수컷이어야 한다.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실패한 모습만 보인, 쓸모없는 수탉 같기만 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마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쓸모"에 대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또 다른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농사의 성공 유무였겠죠.
그러나 이 영화가 제이콥의 농사에만 모든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농사였거나 제이콥 포레스트였거나, 혹은 제이콥의 동물의 숲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미나리.이고 그것이 바로 당시에 제이콥이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은 이미 충분히 미나리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죠.
물만 있으면 더러운 물이라도 상관없이 뿌리를 내리는 미나리. 씨가 있어도 자랄 수 있지만 튼튼한 줄기만 있어도 꺾어 심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
반드시 농사를 성공해야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닌,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대도시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가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을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겨우 받아들인 제이콥은 아들과 함께 묵묵하게 미나리를 땁니다. 마치 자신들처럼 엉망진창인 채로 자라고 있지만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장하고 맛있어 보이는 미나리를 말입니다. 그 시간 동안 제이콥의 머릿속에서 " 쓸모"라는 단어가 재정비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엔딩 요정, 윤여정 배우
윤여정 유니버스의 시작
사진출처:상상대로 이뤄지는 꿈/ 이 장면이 오버랩 된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스티븐 연의 경우가 제일 걱정이었습니다. 한국어로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컸는데 오히려 영어를 어눌하게 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공을 들였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남들 걱정하지 말고 저만 잘 하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소싯적에는 연기가 아닌 배우들의 허우대만 보았습니다. 그러니 잘생기고 신체 조건이 좋은 배우들을 보며 제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죠. 이젠 제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에게 제 지갑과 시간을 갖다 바치고 있지만, 그런 관심조차 "이미 나이가 든" 배우들에게는 많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윤여정 배우는 이 영화로 인해 내가 너무도 좁은 측면에서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손자의 말처럼 할머니 같지 않은 철없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이 기분 좋은 불청객은 손자의 마음도 돌리고 우리의 마음마저도 쓸모를 찾느라 밖으로만 내도는 제이콥을 대신해 영화의 초점조차 가족으로 구심점을 잡아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이 배우의 또 다른 영화인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까지 합니다. 불에 타버린 자신의 전부인 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오열하는 아들 배성우 배우를 보며 치매 걸린 어머니인 윤여정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들의 등을 쓰다듬습니다. 손발만 멀쩡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단다.라는 말을 무덤덤하게 읊조리면서요.
마치 [미나리] 영화의 포인트를 이미 대사로 다른 영화에서 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꼴 보기 싫거나 거슬리지 않죠. 오히려 윤여정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한 번의 사고로 인해 다시 영화의 처음과 같은 사정으로 돌아가 버린 가족들을 조용히 쳐다보는 엄마 순자의 시선이기에 더더욱 말입니다.
마지막의 비참함을 영화는 끝까지 따라가며 비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침묵하고 툴툴 터는 또 다른 시작을 보여주죠. 아마 순자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 사고 때문에 아예 맨땅에서 다시 시작을 또 한 번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딸 부부가, 그리고 자신도 잘 해낼 것이란 걸 말입니다. 그들이 다시 겪을 고통에 가슴이 아파 흘린 눈물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게 부모가 자식을 보며 갖는 마음일 테지요.
가족애 역시 이 영화의 다른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단지 작정한 것처럼 이야기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지 않죠. 그러나 결국 힘들 때 자신이 기대야 하는 것은 가족이고, 가장 힘들고 절체 절명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결국 생각나는 것이 가족이란 메시지를 참 절묘하게 집어넣었습니다.
함께 있으면 지옥 같을 수 있지만. 떨어져 있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인 가족. 그들과 함께 질척이는 땅에서도 미나리처럼 꿋꿋하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일상인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어요.
참고 1
아이엘츠 점수가 each 7.0인가 했을 때여서 자신감이 눈썹까지 차 있을 때였음. 공항 스타벅스로 가서 Can I have iced americano, tall size with extra ice to stay, plz?라고 했고, OK라는 말을 들었음. 당당하게 영어 이름을 말하고 결제를 하려고 했는데 Black or white?라고 묻는 거임. 그래서 뭐래 아메리카노 달라고.라고 했더니 그래 인마 블랙이야 화이트야.라고 묻는 거임. 이걸 한 세 번 반복하고 나니 직원이 웃으며 설명해 줬음. 우리가 원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반드시 블랙이어야 함. white는 아님. 아니라고. 아니라고요.
참고 2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영국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택배 비용이 그 당시에 1킬로다 1만 원이었음. 그래서 너무 비싸니 정말 없는 것들만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엄마가 무게 줄인다고 모두 비닐봉지에 싸서 보내줬었음. 터질까 싶어 꽁꽁 묶은 비닐봉지에 싸인 고춧가루와 기타 등등을 보면서 울고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의 TMI]
1. 영화 보며 마시려고 커피를 샀는데 진짜 핵노맛이었음. 하. 내 돈
2. 휴지 가지고 가세요. 꽤 울 수 있어요.
3. 패딩 드디어 찾았음. 세탁소 주인분도 드디어 오셨군요.라고 하셔서 빵 터짐.
4. 오늘도 만오천보 걸었다. 이러다 지구 횡단할 기세.
5. 내일 첫 번째 팟캐 녹음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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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베스(2015년)
박제욱
1. 맥베스 서사
'서양 문학은 결국에는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다.' 라는 우스겟소리가 있다. 그만큼 그둘은 역사속에서 가장 강력하고 새로운 문학가들이었다. 그 중 셰익스피어는 여러 희곡들로 특히 4대 비극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아마 전세계 누구나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내가 그 중 가장 매력적으로 끌리는 작품은 맥베스였다.
2015년에 저스틴 커젤 감독의 손에 의해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다시 한번 각색 되었다. 간단히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자비로운 왕 던컨 왕이 집권중인 스코틀랜드. 역적 맥도널드가 내란을 일으켜 던컨왕의 지위를 위협하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스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나선다. 맥베스는 맥도널드를 처치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전쟁이 끝나고 맥베스와 그의 동료 영주 뱅코우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이자, 코더의 영주, 그리고 장차 위대한 왕이 될 맥베스"라는 예언과 뱅코우는 "맥베스보다는 못하나 자손 대대로 왕을 낳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느다. 그 예언에 의해 맥베스는 심한 고뇌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부인의 욕심에 못이겨 이내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뱅코우의 아들에 대한 불안함과 심한 광기에 휩싸여 미쳐버리고 세 마녀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버넘 숲이 던시네인 언덕을 넘지 않는 이상 너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낳은 남자는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라는 예언을 받는다. 그 말에 맥베스는 다시 광기를 다스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버넘 숲이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맥베스는 어미의 배를 찢고 나온 맥더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단순한 예언에 의해 정의롭고 용감했던 한 영주가 광기에 휩싸여 한 나라의 왕이 되고 그 이후에는 폭군이 되고 자신의 동료들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왕의 검을 들고 있는 왕궁 속에서의 멜컴 왕자와 전장 속 맥베스의 시체 앞에 있는 뱅코우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된다.2.미장센
영화 맥베스를 보게 되면 실제 스코틀랜드의 당시 시대가 이랬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고 셰익스피어의 각본이 실제 이야기라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 만큼 감독이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여러 미장센과 연출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극대화 시키고 갈등 상황을 독특하게 표현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재 눈에 띄는 점은 불이다. 영화 초반 불의 이미지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 및 감정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 낸다. 불이라는 이미지는 여러가지 의미로 계속 반복 제시된다. 영화는 맨처음 맥베스는 자신의 딸을 화장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불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 이후 영화 중반부에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던컨왕 살해를 두고 심각한 고뇌와 갈등을 겪게 된다. 맥베스가 처음 예언을 들었을 때는 자신의 충성심과 죄책감 때문에 불안함에 빠져 왕을 살해할 수 없다고 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레이디 맥베스는 자신의 남편을 왕의 자리에 추대할 수 있다는 여왕이 될 수 있다는 탐욕에 빠지게 된다. 대립되는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항상 레이디 맥베스쪽에 머무는 물체가 있다. 바로 빛, 불이다. 항상 레이디 맥베스의 등 뒤에는 횃불 또는 초 등이 비추고 있다. 왕위에 대한 도전과 그 의지가 그녀에게만 머물었지만 그 불이 맥베스 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맥베스가 스스로 다짐하게 되고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영화 중반부 불은 곧 의지를 뜻한다. 극의 중.후반부 맥베스에게 반기를 든 맥더프의 가족 모두를 맥베스의 병사들이 잡아와 사형에 처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아이까지 화형을 하는 이 장면은 아마 의지를 뜻하기도 하면서 맥베스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버넘숲이 던시네인을 넘어 오는 장면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맬컴 왕자와 맥더프 그리고 잉글랜드 군 1만명이 버넘숲의 나뭇가지로 위장을 하여 던시네인을 넘어오는 버넘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맥더프가 버넘 숲에 불을 지르고 그 불에 탄 버넘숲의 재가 던시네인을 넘어 맥베스의 성으로 향하면서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버넘숲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불은 맥베스의 최후를 뜻하는 종말이자 죽음이 될 것이다. 이렇듯 불은 영화 처음부터 죽음의 이미지를 담으면서 의지, 광기, 종말 및 죽음까지 이어졌다.3.등장인물
맥베스 원작 자체에서부터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서양 문학사 최고의 악녀라고 할 수 있는 레이디 맥베스를 탄생시키면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을 볼 수 있다. 위에 첨부한 맥베스 포스터를 보게 되면 마치 마이클 패스벤더(맥베스역)의 머릿 속에 마리옹 꼬티야르(레이디 맥베스 역)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극중에서 둘의 관계가 이러하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로부터 예언을 듣게 된 후로 완전히 맥베스의 머릿속에 들어서 그의 욕망과 탐욕을 일 깨우는 것에 노력한다. 하지만 맥베스의 광기는 통제 하지 못한 그녀는 이내 질병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필자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관계는 맥베스와 뱅코우의 관계이다. 맥베스와 뱅코우는 세마녀에게 예언을 듣게 된다. 재밋는 점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예언과 자손 대대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맥베스와 뱅코우가 동시에 같이 듣는 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맥베스는 자신의 탐욕에 의해 왕이 되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그 후 자신의 왕위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 뱅코우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뱅코우 역시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가 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이 예언이 진실일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되고 전우였던 맥베스를 멀리하고 아들과 함께 도망치려 할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는 두 예언이 동시에 한 장소에서 들었다는 이유로 영화의 가장 큰 비극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되어준다.4. 무엇이 맥베스를 타락 시켰는가
맥베스는 본래 신분이 명예롭고 위대한 장수이자 영주였다. 그런 지위와 명성덕에 그의 몰락이 더 돋보이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타락 시켰을까. 첫째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기후 혹은 풍경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에 맥베스를 접할 때는 커젤 감독의 영화처럼 실제 스코틀랜드의 척박한 풍경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 높은 산 하나 외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없는 황량한 토지, 그리고 괴물이나 나올 것 같이 어두침침한 나무들로 빽빽한 버넘숲을 영화는 잘 표현해주며 심지어 흐릿하기만 한 스코틀랜드의 날씨까지 영화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둡고 우울한 기후와 배경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비롯하여 맥베스의 감정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가장 맥베스를 타락시킨 것은 세마녀의 예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말'일 것이다. 처음 맥베스를 혼동시킨 것은 예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뱅코우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두가지 예언을 듣게 됨으로서 두 인물은 서로 대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곤경을 치루게 된다. 레이디 맥베스의 탐욕에 빠진 속삭임도 맥베스 그를 타락하게 만든다. 그 이후에 새로 듣게 되는 세 마녀의 예언 또한 다시 한번 맥베스를 안심시키기도 하지만 곧바로 그가 몰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언이 될 수도 예언이 될 수도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맥베스를 혹은 맥베스의 주변인물들의 운명을 타락시킨 비극의 근원일 수도 있다.5.대사
맥베스는 역설의 영화로도 보인다. 영화의 초반 세 마녀로부터 우리는 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선한 것이 악한 것, 악한 것이 선한 것"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 속 전쟁이 끝난 전쟁터에서 빠져나오면서 맥베스가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흉하고도 좋은 날은 처음이오." 이 두 대사는 사실 말이 안되는 서로 상반 되는 개념들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일 된다는 느낌을 우리는 받을 수 있다. 나는 이 대사를 통해서 세 마녀의 예언이 사실은 예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은 사실 맥베스 내면의 욕구였을 수도 있다. 다만 선한 것이 악한 것이고 악한 것이 선한 것이 듯이 맥베스 또는 우리는 매사에 갈림길에 놓이지만 그 갈림길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갈림길에 들어서게 됬는 지도 모른다. 어떠한 선택지가 있는 지 모른채 자신의 욕구와 의지에 따라 역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치 스코틀랜드의 거대한 대자연 풍경처럼 인간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에 거스르려고 한자의 비극을 맥베스라는 작품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6.고전이 주는 힘
고전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할 때 아마 처음 이런 질문에 스스로 빠질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것인가 혹은 성공한 사례들을 모방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완벽한 창조물을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어 할 것이다. 나도 예술가라면 당연 그렇게 해야된다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수세기전 과거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큰 호응을 끌어낸 작품들의 방식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이 곧 고전의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 그 자체의 본성을 건드리는 예술. 그것이 고전들의 장점이 아닐까. 그 고전들을 현대의 기술과 멋으로 새롭게 각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재능이라고 생각 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계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B급이 되어버린 과거의 인기있던 장르들의 요소들을 섞어서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낸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이다. 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명한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왜 로마시대에 가능했던 돔 형식의 건물(판테온)이 왜 지금은 불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이 장르를 막론하고 고전이 주는 힘은 예술에게 있어서 고귀한 가치이다. 그저 고리타분하다고 오래됬다고 밀어두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옛것을 바라보고 재창조하는 일도 예술의 긍정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젤 감독의 영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틀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 선택을 취하면서 그 속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여러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새롭게 맥베스를 각색했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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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그 땅에 영화가, 사람이 있다
DIRECTOR. 가자의 영화감독들
SYNOPSIS.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는 팔레스타인 영화감독 스물두 명이 전쟁 중인 가자 지구에서 그들 각자의 삶을 포착한 이야기의 모음집이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픽션의 혼합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인간 정신의 굳건함을 강력하게 증언한 작품.
“내가 죽는다면, 세상에 울림이 있는 죽음이 되길 바란다. 그저 한 줄 속보에 실리거나, 희생자 숫자로만 남고 싶지는 않다. (…) 나는 세상이 듣는 죽음,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묻히지 않을 불멸의 이미지로 남고 싶다.”
지난 4월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자택에 있던, 이스라엘군의 로켓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여성 파티마 하수나(25세)의 말이다. 그는 사진 기자인 동시에 다큐멘터리 작가로, 그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칸영화제 독립영화 병행 섹션에 초청된 다음 날 사망했다. 일곱 명의 일가족이 함께. 영화 <그라운드 제로>를 보며 얼마 전 보도로 접한 그의 소식을 떠올린 건, 마치 그에 이어지는 느낌의 편지로 이 영화가 시작했기 때문이다.
익명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상정한 <셀카>는,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 편지가 상대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멋지게 살았던 걸 알아 줬으면 해. 그곳의 삶과 사랑을 사랑했음을.”이라는 말은 파티마 하수나의 말에 화음처럼 울린다.
사실 22개의 작은 이야기 조각이 모여 있는 <그라운드 제로> 자체가 거대한 화음처럼 울려퍼진다. 뉴스 보도 속 숫자와 통계, 머나먼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 쉬운 가자의 소식은 22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피부에 서늘하게 와 닿는다. 그 중에는 땅에 떨어진 밀가루를 두 손으로 주워담으며 스스로의 삶을 비참하다 말하는 순간, 폭격으로 시신이 분해될 경우에 대비해 아이들의 팔과 다리에 이름을 굵직하게 남기며 우는 엄마들의 마음 (그리고 그건 이름이 아니라 죽음임을 알고 함께 우는 아이들의 마음), 24시간 안에 3번이나 폭격을 당해 몇 번이나 구조된 사람의 마음, 종일 줄을 서고 또 서도 물과 음식과 전기를 얻지 못한 하루를 보내는 마음, 건물 잔해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울부짖는 마음, 심지어 가족의 죽음 소식을 듣고 영화 촬영을 멈출 수밖에 없던 감독의 코멘트로 영화를 닫는 (그야말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마음…처럼 우리가 마음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는 깊은 절망과 참담함도 있다.
이 절망은 아주 거대하지만 동시에 아주 미시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폭격을 피해 도망가느라 두고 갔던 고양이를 다시 만났을 때 터지는 눈물, 좋은 평가를 받았던 미술 과제들을 먼지 덮인 잔해 속에서 하나씩 끄집어내는 착잡한 손길, 과거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기분이 들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인공들의 상황에 자꾸 내 상황이 겹쳐 보이는 공포, 설거지와 목욕과 청소 마지막으로 변기 물까지 한 동이 물을 여러 차례 재활용하는 손길…
재난은 언제나 거시적인 동시에 미시적이다. 산불 피해가 닥쳤을 때 사라진 건 집과 과수원만이 아니었던 것처럼, 가자지구를 덮친 전쟁은 건물을 부수고 가족만 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당장 얼굴에 바를 로션이 없는 것, 피난하느라 두고 온 책이 생각나는 것, 아침에 마실 차 한 잔이 없어진 것, 북적거리는 텐트 한가운데서 아침을 맞는 것… 삶에서 사라진 것들을 추어 보면 언제나 손끝에 닿는 작은 것까지 변해 있다. 그곳에서 절망은 일상 언어이고, 현실이 악몽처럼 느껴지는 날들은 너무나 많다.
22개의 작품 절대 다수가 3개 로케이션으로 거칠게 요약되는 상황은 이 제약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건물의 잔해로 덮인 길거리, 텐트촌, 그리고 잃어버린 시절을 상징하는 듯한 바다. 허락된 장소가 없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가자지구 사람들의 삶이 집약된 장소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영화인들은 목소리 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달려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꼭 쥐고 있었고, 모든 것이 한정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삶이 어떠한지, 가자지구가 지금 어떠한지를 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여주려 애썼다. 다큐멘터리도, 극영화도, 아이들과 함께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나 인형극도 모두 마찬가지다.
22개 중 편지를 상정한 <셀카>를 상영 첫머리에 넣은 것은 아무래도 이 영화가 하나의 유리병 편지로 이곳에 도달했다는 의미 아닐까.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차라리 기억을 잃고 싶을 만큼 끔찍한 현실, 악몽 같은 현실, 눈뜬 이곳이 어제의 미래인지 과거인지 헷갈리는 현재를 노래로 덮으며 마무리한다. 평화와 꽃, 음악과 예술 안에서 아이가 천천히 글쓰기를 배우고 노래는 계속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하나의 선언이다. 그 땅에 영화가 있다. 목소리가 있다. 사람이 있다. 너와 나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이 목소리, 이 선언은 더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목소리는 기이하리만큼 그 비극에 대해 침묵하고 있거나, 아니면 인간의 생명과 가장 먼 이야기를 끌어오며 과장된 크기로 발화되고 있지만… 이제는 이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the untold stories from Gaza”, 가자 지구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이제는 말해져야 할, 이야기들이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29-05.09) 상영일정]
2025.05.01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상영코드 160)
2025.05.05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상영코드 519)
2025.05.09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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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주 최신개봉영화
9월의 마지막! 10월의 시작!
9월 5주차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하는지 한번 볼까요?
9월 5주 개봉영화 5편!
007 노 타임 투 다이 007 No Time To Die , 2021
007 시리즈가 스물 다섯 번째 작품
007시리즈는 1962년 개봉한 '007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2021년 컴백을 알린 "007 노 타임 투 다이"까지
공식 25편의 작품으로 관객들의 폭발적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번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모든 것이 역대급인 스케일로 찾아와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데요
영국, 이탈리아, 노르웨이, 자메이카 등 4개국 글로벌 로케이션에서 펼쳐지는 압도적 스케일은
꼭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는 가장 강력한 운명의 적의 등장으로 죽음과 맞닿은 작전을 수행하게 된
제임스 본드의 마지막 미션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시리즈 사상 최고 제작비, 시리즈 최다 캐릭터 라인업, 시리즈 최초 IMAX 카메라 촬영 등
모든 것이 역대급인 스케일로 컴백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역대 최장 기간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미션을 담아 큰 의미를 지니기에 더욱 주목 받고 있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선보일 압도적 액션 시퀀스가 담긴 마지막 미션!
첫번째 추천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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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자 The Recon , 2021
DMZ에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스릴러
교육장교가 의문사한 날,
탈영병이 발생하고 출입통제구역 DMZ로 수색 작전을 나간 대원들이
광기에 휩싸인 채 알 수 없는 사건에 맞닥뜨리게 되는 밀리터리 스릴러 "수색자"가 개봉을 합니다.
40여 년 넘도록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는데요
어두운 밤, 타 부대 GP에서 병사 하나가 총기를 휴대한 채 DMZ로 탈영 도주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3소대가
탈영병 검거 작전에 투입되고 야생이나 다름없는 숲의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수색 작전은
긴박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러닝타임 내내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감을 흐르게 합니다.
또한 "수색자"에는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들과 실력파 신예 배우들이 총출동해 폭발적인 연기 앙상블을 선보이는데요
송창의, 송영규를 비롯해 이현균, 장해송, 도은비, 김철윤, 김영재의 실감나는 메소드 연기도 관점 포인트라고 할수 있습니다.
미스터리의 중심, 미지의 공간 DMZ에서 펼쳐지는 미제 사건!
두번째 추천영화 "수색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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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아웃 포에버 School's Out Forever , 2021
14년 전 팬데믹 예견한 베스트셀러 영화화!
시의적절하게도 현실의 코로나를 반영한 듯한 "스쿨 아웃 포에버"가
무려 14년 전에 현재의 팬데믹을 예견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코로나 직전에 촬영을 마친 리얼 팬데믹 영화임이 알려져 화제인데요
영화 "스쿨 아웃 포에버"는 원인불명의 전염병으로 전 세계 인구 95%가 사망하고
오직 Rh- O형만 살아남은 세상에 남겨진 십 대들의 팬데믹 틴 서바이벌입니다.
2007년 영국을 휩쓴 스콧 K. 앤드루스의 원작 소설은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전 세계에 번역본이 출간되었는데요
절묘한 현실 팬데믹 상황으로 영화의 리얼리티가 극대화된 가운데,
Rh-O 혈액형만 면역력을 가졌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학교를 주무대로 십 대 아이들로 이뤄진 집단의 특수성까지 더해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 서바이벌의 스릴과 재미를 증폭시킵니다.
초유의 팬데믹 시대에 불시착한 아이들이 주도하는 서바이벌!
세번째 추천영화 "스쿨 아웃 포에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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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재세요왕 西游记之再世妖王 , Monkey King Reborn , 2021
5년 이상의 제작 기간 애니메이션 영화
"서유기: 재세요왕" 은 1천만년의 시간을 거슬러 깨어난 요괴의 왕인 원체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손오공의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영화입니다.
5년 이상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된 이 영화는 장면마다 공을 들인 흔적이 묻어있습니다.
화려한 색감으로 물들여 완성한 자연경관과 천계, 신선계, 인간계로 나뉘는 영화 속 공간을 특징에 맞게 구분하는 볼거리,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손오공의 액션 신!
또한 마지막 요괴들과 맞붙는 대규모 액션 신은 화려함이끝판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
유고와 라라' 시리즈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던 왕운비 감독의 신작!
네번째 추천영화 "서유기: 재세요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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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주근깨 공주 竜とそばかすの姫 , Belle : The Dragon and the Freckled Princess , 2021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3년만의 신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부터 시작해 '썸머 워즈',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까지,
3년 주기로 새 작품을 선보여온 일본 애니메이션계 거장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가 개봉을 합니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노래할 수 없게 된 소녀 '스즈'가
50억 명이 모인 가상세계 U를 통해 화제의 가수 '벨'로 다시 태어나며 펼쳐지는 메타버스 힐링 판타지입니다.
이번 영화는 제74회 칸영화제 ‘칸 프리미어’ 부문에 공식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 상영됐으며
일본에서는 개봉 57일 만에 누적 관객 423만 명, 흥행수익 58.7억 엔을 돌파해,
감독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하는 쾌거를 안았습니다.
영화 속 가상세계 U는 전세계 등록 계정 50억 명을 돌파한 사상 최대의 인터넷 공간으로
As라 불리는 ‘또 하나의 나’, 곧 아바타로 이뤄진 세상입니다.
2021년 현실에서 한발 더 나아가 VR 기술을 접목한 개인화된 메타버스 세상을 배경으로 하죠.
가상과 현실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진 특별한 세계관으로 메타버스 시대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통찰력 있게 담아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예정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다섯번째 추천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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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헌·유아인의 찐 연기가 만난 영화 <승부> 리뷰
두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의 생일 축하를 받으며 함께 점심을 하고 아내와 함께 용산 CGV를 찾았다. 며느리가 준비한 골드클래스 티켓 덕분에 집처럼 아늑한 공간에서 영화 <승부>를 관람했다.
김형주 감독의 <승부>는 단순한 바둑판 위의 수 싸움을 넘어, 승부의 세계에서 제자와 스승 사이의 뜨거운 감정과 관계의 깊이를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바둑알을 놓는 순간, 스크린 너머로 전해지는 손끝의 떨림과 상대를 보는 눈빛은 영화에 온전히 빠져들게 했다. 어느새 승부(대국)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몰입을 경험하며,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영화는 김형주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과 이병헌, 유아인, 조우진이라는 탁월한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시너지를 이룬 작품이다. 바둑판 위에 앉은 두 인물의 대결이 마치 권투 링 위에서 몸이 부딪히는 한 판 승부처럼 숨 가쁘게 펼쳐지는 건 감독의 섬세한 연출 덕분이리라. 바둑을 전혀 모르는 관객까지 끌어안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조훈현이 다리를 떨면 그 판은 무조건 잡는다’ 등의 긴장 포인트를 요소요소에 심었다. 클로즈업과 침묵의 활용, 교차 편집을 통한 긴장감 조성, 그리고 배우들의 내면 연기를 끌어내는 디렉팅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다.
영화 <승부>는 배우들의 찐 연기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병헌과 유아인, 두 배우의 대립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처럼 느껴질 만큼 강렬했다. 이병헌(조훈현 역)은 오랜 시간 바둑세계에서 군림한 노련한 바둑황제로서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유아인(이창호 역)은 젊고 날이 선 도전자로서 스승과 제자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이병헌은 공격적인 기풍으로 냉철한 승부사 역할을 맡아 강렬한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유아인은 인내하며 지키는 기풍으로 스승에 맞서 승부욕이 가득한 도전자 캐릭터를 탁월하게 소화한다. “물고 뜯고 덤비고 싸우라”고 말하는 스승에게 “그건 선생님 스타일이고 내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맞서며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을 응축시킨다.
스승과 제자의 대결은 두 배우의 환상적인 연기로 폭발적인 긴장감을 만들며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 제자는 이기면서도 흔들리고, 스승은 지면서도 패배로 무너진 좌절감을 끝내 극복하려고 한다.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가르친 제자가 스승을 넘어섰을 때의 씁쓸함과 허탈함을 이병헌은 극도의 절제와 깊은 눈빛으로 보여준다. 이병헌은 어린 제자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긴 쓰라림을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핑그르르 차오르는 눈물에 담는다. 이기지 못하는 초조함, 결국 져버린 초라함, 지울 수 없는 열패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유아인은 승자의 기쁨과 스승에게 패배의 고통을 안겨드렸다는 송구함을 동시에 안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선을 놀라운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조우진(남기철 9단 역)은 두 인물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배우려고 하지 말고 이길 궁리를 해보라”며 이창호를 자극하고, 제자에게 진 조훈현을 진심으로 격려한다.
투자배급사 바이포엠(BY4M)이 배급한 이 작품은 원래 창고에 묵혀있던 영화였다. <소방관>에 이어 <승부>도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덕분에 OTT(넷플릭스)가 아닌 극장에서 큰 화면과 생생한 사운드로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못하다. 때때로 실수를 하고, 그 때문에 대가를 치른다. 유아인은 큰 잘못을 저지르며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배우는 연기로 그를 성원하는 관객에게 보답해야 한다. 그가 대가를 치르고 영화계에 복귀해서, 보다 성숙한 연기로 관객에게 다시 빛나는 스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승부>는 바둑이라는 정적인 소재를 긴박한 드라마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바둑판 너머 치열하게 사는 인생의 의미를 보여주며,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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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압축 파일을 풀다.
이 글은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한겨레
명백하게 내가 '불호'라고 외쳐야 할 작품이었다."왜?"라는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는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데다가 어떻게 타임라인이 꼬이는 것인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4화에 걸쳐 한 사건을 설명하는 동안 마치 노래방 간주 점프 마냥 겅중겅중 시간을 건너뛰어 버린다.
그런 것만 있다면 내가 억울하지라도 않지(?). 일 진행 속도가 마치 우리 부장님 수기 사인 한 번 받아내는 속도로 진행 되지를 않나(대충 매우 느리다는 뜻), 사건의 다각화는커녕 내 성격만 다각화되나(?) 싶을 정도의 집요한 원테이크로 사건을 따라가니, 이건 뭐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안 봐도 된다고 말로 해도 충분할 것만 같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덩그러니 내 마음속 저장이 아니라 저장 공간에 덩그러니 다운되어버린 이 방대한 압축 파일은. 자물쇠가 조금씩 열리는 그 모든 순간동안 내 다리를 초조함으로 떨게 하는 대신, 두려움과 숙연함으로 떨리게 했다. 이보다 더한 공포와 숙연함을 담은 파일은 앞으로도 한동안 보기 힘들 것임을 직감한 사람의 심정으로.
사진 출처:매일 경제
네 시간가량의 작품이 던져놓은 화두들 중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어른들로 대변되는 부모의 무지(無知, 존 스노우)가 과연 면죄부가 될 것인가? 였다.
세 명의 도둑이 있는데 한 명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행했고, 다른 한 명은 옆의 걔를 따라왔으며 나머지 한 명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행동했다 했을 때. 과연 어떤 도둑이 제일 나쁜 놈이냐.라는 문제(?)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정답(?)은 세 번째 도둑이었으며, 무지라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 예시가 아니라도 악의 평범성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으로도 알 수 있다.
물론 부모 중 자기 자식이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식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먹고 사니즘에 집중하다 보니. 아이들은 다 커 있었을 것이고. 그런 의도로 키우려 하지 않았음에도 제이미(오웬 쿠퍼)는 "그렇게" 커 버린 채였을 테니까.
게다가 이 작품과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될 법한 영화인 [케빈에 대하여]를 보았을 때. 결과적인 참사는 비슷했지만. 과연 이 두 부모가 모두 똑같이(혹은 유사하게라도) 나쁜가.라고 본다면 당연히 제이미의 나머지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님들이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던 제이미의 갇힌 우주를 상징하는 듯한 벽지로 둘러싸인 아들의 방에서 오열하는 아버지(스티븐 그레햄)를 보면서도 처량함이라는 감정이 불쑥 치고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래도 짧은 이 작품의 모든 시간마저도 가해자를 위해서만 할애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라고 해서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게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는 그저 잔인하게 살해되는 모습으로 CCTV와 수사자료 속 모습에서만 존재할 뿐. 피해자의 부모들에게는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제이미의 아버지가 아들을 범인으로 확정 짓게 한 살해 현장에 가서 추모의 의미로 꽃다발을 놓고 오긴 하지만. 오히려 그 말할 수 없는 심정을 먼저 전달해야 했을 곳은 피해자들의 부모였다. 게다가 제이미 마저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피해자를 위한 사과 따위는 준비조차 되지 않은 듯 보였다.
무지를 인정하지만 의도는 없었던 부모와. 제이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누나는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기로 한 제이미의 결단이 얽힌 복잡하고도 떨떠름한 사건 앞에서. 나는 제이미의 아버지가 마치 스스로가 화를 내며 파란 페인트로 낙서를 덮어버린 그의 회사용 봉고차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덮으면 안 보일 수는 있지만. 신경질적인 페인트 자국 때문에 원래 있던 낙서가 더 궁금해지는 역효과를 낳는 그의 방식.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해 타야 하는 곳이 아닌 반대편으로만 탈 수 있게 되어버린 반쪽짜리 방식. 그의 눈물이 마치 그 정도의 임시방편 정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마치면서
사진 출처:맥스 무비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나니. 그제야 제목이 눈에 띄었다.
Adolescence.
한국말로 하면 청소년기, 혹은 사춘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소년의 시간]이라는 한국어로 번역해 냈다는 것이 처음에는 마더퍼커 장인을 효자로 만들어 버린 사건처럼 느껴져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시간이라는 것에 압축된 모든 감정들을 풀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지를 깨닫자 아보다 더 나은 제목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의 흐름은 담백하다 못해 건조하다고 느낄 정도였기에. 이 부조화에서 오는 복잡한 이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는 채로. 나는 단 한 사람의 관찰자가 되어, 카메라가 인도해 주는 대로 그저 넋을 놓은 채 작품을 감상해야만 했다.
이 시간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려면. 나조차도 수많은 시간을 들여 이 드라마를 소화해야 할 것만 같다.
다음 리뷰 예고.
아마도 파과가 될 것.
[이 글의 TMI]
1. 크로와상 너무 맛있다... 버터 최고...
2. 갑자기 에어컨 켜야 할 정도로 날씨 덥다
3. 이번 달 용돈 아직 10만 원 남음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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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비우스 리뷰 - 베놈2의 단점을 답습하다 (스포일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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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합니다]
1. 베놈, 모비우스는 마블의 작품이지만 MCU와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는 독자적인 소니 스파이더 유니버스를 구축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01:25 ~ 01:27 01:53 ~ 02:02
2. 제가 러프하게 마블의 작품이라고 한 부분이 디테일한 부분에서 부족했던 것을 말씀드리며 다음번엔 조금더 검토를 하고 영상 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상 시청에 불편함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분명 영화 모비어스에도 장점은 있었습니다. 정말 박쥐처럼 공간을 인식하는 시각적인 효과도 인상적이었고, 액션씬 중간중간에 나오는 슬로 모션도 기억에 꽤나 남았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흔히 말하는 겉멋 가득한 무의미한 연출들은 아쉬웠고, 샹치 텐 링즈의 전설에 이은 갑작스러운 에너지파 결말은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습니다.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아쉬운 이야기를 들었던 블랙위도우, 베놈 2, 샹치, 이터널스로 인해 식어가던 마블에 대한 애정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다시금 살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모비우스가 그 불씨를 다시 꺼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쉬움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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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가 어릴 적 만났던 괴물 [몬스터 콜과 BENEE의 Monsta] (가사/해석/lyrics)
매일 밤 우릴 찾아오던 괴물,
어쩌면 우리가 부른 게 아닐까?
A Monster Call X Monsta FMV
*source
Benee - Monsta
몬스터 콜 (2016)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채널입니다.
*추후 수익 발생 시 원저작자에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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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메인 예고편
[2021년 5월 14일, 넷플릭스 공개]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함께 합니다"
누군가의 가장 마지막 이야기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당신의 마음무브 투 헤븐이 전해드립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그들의 물건은 남는다.
거기엔 생전의 삶이 깃들어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청년과 출소한 그의 삼촌.
두 유품정리사가 고인의 못다 말한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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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더 써드 데이> 공식 예고편
샘이 위험에 처한 여자아이를 구한 후, 아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어딘지 불길한 오시 섬으로 들어가게 된다. 오시 섬의 주민들은 마을 축제를 준비 중이고, 샘은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