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4-22 16:10:25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사는지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랜 75(Plan 75), 2022
일본 / 드라마 /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플랜 75>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가 국회를 통과한다.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를 대처할 방안”이란 일본 정부의 덧붙임은 “넘쳐나는 노인이 청년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총으로 노인들을 죽이고 자살한 한 청년의 유언과 노인들에게 오랫동안 은밀히 분노의 손가락질을 겨눴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합일되어 파생된 결과다. 플랜 75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아닌 국민 과반수의 직접적이면서도 암묵적인 동의로 탄생했다. 나의 죽음을 나보다 제삼자가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플랜 75를 전례 없는 문제 해결의 묘수로 믿는 과반수 안에 고령자가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랜 75는 간편하다. 가족의 동의나 건강진단 결과가 신청자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과정도 일사천리로 평범하게 진행된다. 신청자의 조건은 딱 하나, 자기 의사에 의한 결정(신청)이다. 신청 후엔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금 10만 엔을 받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세하고 단호한 필수조건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 감시 없이 신청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신청자를 위한 맞춤 콜센터도 운영된다. 심리상담소 역할을 하는 콜센터는 신청자의 마지막 날 전까지 함께 한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신청과 신청을 취소하는 일 모두 본인의 자유다. 이미 죽을 날짜를 받은 한 할머니는 플랜 75 홍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라고. 플랜 75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저물어 가는) 세대의 숭고한 결정이란 순풍을 타고, 신청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일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은 결정,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도 판단하고 선택하려면, 플랜 75 안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플랜 75를 샅샅이 해부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서비스 대상자 ‘78세 미치’와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신청받는 ‘시청 직원 히로무’, 신청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들은 플랜 75의 뼈대가 드러난 설계도를 세상에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플랜 75>에서 유일하게 강제 적용된 조치였다는 것만 알아두자.
플랜 75에 대해 고령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인터뷰한 할머니처럼 긍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사는 데만 집중하는 자가 있다. 78세 미치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텔 객실 청소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치는 삶을 긍정한다. 몇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문을 열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모습과 낙상사고를 당한 친구(이네코)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고 모든 동료가 불만을 터트리며 떠날 때 홀로 개인 사물함 앞에 서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이지만, 외로움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꿋꿋하게 구직 활동에 힘쓴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치 또한 플랜 75에 가입한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이네코)의 고독사를 직접 접한 탓이고, 집이 철거될 예정인데 구직 활동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고령이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굶주린 자신에게 시청 직원 히로무가 무료 급식(플랜 75 홍보 목적)을 건넨 탓이다. 미치는 과반수가 찬양하는 순리대로 준비금을 받고, 콜센터 직원(요코)을 배정받는다. 과반수 안에 포함된 미치를 통해,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들이 왜 자기 생을 내놓는 것에 동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직접 신청서를 받는 일 말고 직원 히로무에게 주어진, 특별한 다른 일은 없었다. 수천 장의 신청서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신청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 그의 앞에 앉아 상담도 없이 신청서를 불쑥 내민 순간 히로무의 가슴은 요동친다. 삼촌은 과거 건설업자였다. 전국을 다니며 터널과 댐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헌혈은 일과였다. 히로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을 받는다. 다량의 헌혈증은 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고,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국민, 한 사람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헌혈증이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삼촌의 업적과 흔적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게 분명했다. 그는 범법자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본인과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무는 플랜 75의 끝을 몰랐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의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플랜 75의 신청 조건뿐이었다. 히로무는 광고판에 날아드는 토마토를 맞으며,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플랜 75의 유골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휩싸인다.
아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센 유품정리사로 일하기 전, 이주노동자 마리아의 직업은 요양보호사였다. 과거엔 살아있는 노인들을 따뜻한 눈과 마음으로 보살폈으나 지금은 죽은 노인들의 옷을 벗기고 유류품을 수거하기 바쁘다. 현금이나 고급 시계 같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어차피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으니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자고 우기는 동료를 따라, 마리아 역시 떠난 자들의 것을 훔친다. 그리곤 어찌 됐든 본인은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열심히 합리화한다.
콜센터 직원 요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신청자 한 명당 15분 동안 감정은 배제하고 열심히 입만 움직인다. 지나친 감정적 대처와 신청자 대면 금지만 지키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미치와의 통화를 특별하게 느낀 요코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미치의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대면한 순간, 동요한다. 긴 대화를 나눠주어 고맙고 잘 지내라는, 오직 미치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플랜 75의 보이지 않던 장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눕는 히로무 삼촌과 미치. 담당 직원은 간호사 복장과 유사한 옷을 입고 두 사람에게 울렁증을 막아주는 약을 건넨다. 친절함도, 냉정함도 아닌 도통 모르겠는 직원의 미소가 미치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참이었다.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이 감기는 미치, 그 순간 커튼 사이로 히로무 삼촌과 눈이 마주친다.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툭 아래로 떨어지자, 미치는 극한의 두려움에 호흡기를 떼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한발 늦게 온 히로무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삼촌을 마주한다. 미치가 죽은 자들에게서 벗어날 때 히로무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 시신을 빼돌린다. 마리아 또한 더는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플랜 75는 완벽한 통제와 촘촘한 계획, 그리하여 대부분 만족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났고 고령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었다. 정부가 신청 조건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정도니, 플랜 75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플랜 75가 잘못된 방식임을 노골적으로 노출했다. 자발적이며 비강제적이고, 자유로우며 신청자를 향한 따뜻한 지원들로 채워진 플랜 75는 묘수가 아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악수란 사실을 말이다. <플랜 75>는 단순히 영화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의 유언을 총소리 전에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살로 인해 시작된 플랜 75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총을 겨눌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인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배한다. 동시에 앞선 목적과 같은 이유로 본인들이 만든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플랜 75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탄생한 집단적 합리화가 계속 연장되었기에 흥행에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던 히로무에서 요코를 거쳐 유품을 정리하는 마리아까지, 그 누구도 75세가 기준이 된 이유와 왜 이들만 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준비금에 조건이 왜 붙지 않는지, 콜센터는 왜 대면은 금지하고 전화 서비스만 진행하는지, 진짜 이유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작 폭탄을 미치와 같은 이들에게 넘겨버렸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미치와 같은 이들을 플랜 75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삼촌의 미래는 히로무의 미래였고, 미치의 뜀박질은 요코와 마리아가 이어받게 될 게 분명했다.
해서 영화는 타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미치는 물론이고 세 청년, 이들을 훔쳐보는 관객까지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마치 우리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듯 고집스럽게 장막을 둘러싼 거짓과 폭력을 응시하게 했다. 플랜 75의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설계한 집단 살인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벗어난 미치가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어둡기만 했던 관객의 얼굴에도 빛이 스며든 때였다. 마침내 플랜 75의 장막이 내부에서 걷힌 것이다.

<플랜 75>는 관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희망이 깃든 안도를 전달한다. ‘3의 법칙’이 관객에게 제대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숫자 3은 사회 심리학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환되는 기준점으로 세 명 이상이 되는 순간 개인들의 힘은 집단의 힘이 되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확실하게 이용했다. 나약한 인간들의 움직임(플랜 75)이 아니라, 진짜 악수를 진짜 묘수로 바꾸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자가 나약한 인간인 동시에 충분히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했다. 플랜 75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소멸도 얼마든지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직 인간(나)만이 용기를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히로무와 요코, 마리아 그리고 미치를 통해 전달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건, 당사자인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서, 유일한 강제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이 된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인간들의 끝은 굳이 묻지 않기로 하자. 답은 ‘히로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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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친 관음증에 가려버린 야심 찬 재해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모른 채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노마 진(릴리 피셔)'은 정신병에 시달리던 엄마에게 학대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후 그녀는 아버지가 할리우드에서 일했다는 말 한마디를 간직한 채 보육원에서 지내게 되고, 노마는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꿈을 키워 나간다. 이후 염색한 금발 머리와 섹슈얼리티가 두드러지는 외모를 무기 삼아 '마릴린 먼로(아나 데 아르마스)'로 거듭난 그녀는 스타덤에 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공허함 때문에 먼로는 남자에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아울러 스타로서 화제의 중심에 서야 하는 독특한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그녀는 마릴린과 노마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아나 데 아르마스가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론드>는 개봉 전부터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라는 점과 아나 데 아르마스의 높은 싱크로율은 기대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반면 원작인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 소설이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라는 점을 두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미국의 영화 평론가 그레이스 랜돌프가 이 작품을 "전기 영화인 척하는 강간 판타지"라며 평론을 거부했다. 마침내 공개된 <블론드>는 이처럼 상반된 기대와 우려가 모두 옳았음을 보여준 영화였다. 시대의 상징을 재해석하려는 감독의 야심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지만, 야심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넘어 불쾌한 대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론드>는 자칫 단순히 금발의 섹스 심벌이라는 이미지에 갇힐 수 있는 마릴린 먼로를 더욱 입체적인 인간상으로 그려내려 한다. 그녀를 둘러싼 사건과 루머가 너무나도 유명한 만큼 과감한 접근법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빛나는 할리우드 스타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며 먼로를 치열한 정체성 싸움을 펼치는 역동적인 캐릭터로 재해석하려 했던 야심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뿌리 없이 자란 꽃과도 같은 그녀의 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정신병에 걸린 엄마와 함께 지난 유년 시절을 보여주면서 배우 이전에 자연인 '노마 진'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자세히 묘사한다. 할리우드에서 일한다는 아버지는 사진만으로도 엄마의 폭행과 학대에 시달리는 어린 노마에게 큰 위안이 된다. 더 나아가 보육원에서 자라게 된 그녀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안정되고 따뜻한 가정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
동시에 영화는 마릴린 먼로라는 스타와 노마 진이라는 자연인의 간극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 무섭게 열광하는 레드카펫의 군중들과 카메라를 비추는 모습. 그 유명한 치마가 바람에 휘날리는 먼로를 찍는 사진기들까지. 마릴린 먼로에 가까워질수록 노마 진이 사라지는 삶, 유명세를 감당하고 시대의 심벌로 거듭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는 커리어의 정점에 도달한 순간 LA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는 그녀처럼 노마 진의 흔적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한 여성을 역으로 포착할 수도 있다. 이처럼 <블론드>는 어릴 적 트라우마, 스타로서 소비되는 이미지, 이중적 생활로 인한 불안 심리 상태에 초점을 맞춰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새로이 구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녀의 염문과 가십은 단순한 스캔들의 영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노마 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강조한다. 그녀가 여러 남편을 '아빠 Daddy'라고 호칭하는 것이 단적이 예시다. 노마 진은 거듭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쫓고, 그 아버지와 행복할 가정을 이룰 아이에게 집착하며 공허한 자신의 뿌리를 채워 넣으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가십을 항상 날아갈 듯한 희망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의 이미지로 대비시켜 보여준다. 스타가 아닌 한 개인의 시점에서 제시하기에 그 명암은 더 짙다.
작중 처음으로 마음의 안식처로 생각했던 '찰스 채플린 주니어(제이비어 새뮤얼)'와의 관계는 사랑하던 아이를 포기해 두고두고 그녀의 원죄가 되어 버리는 낙태로 귀결된다. 그녀가 가장 화려한 스타로 발돋움하는 찰나에, 또 아버지를 만날 거라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던 순간 마주해야 했던 '조 디마지오(바비 카나베일)'의 프러포즈는 노마를 학대받던 어린 시절로 되돌려 보낸다. 극작가인 '아서 밀러(에이드리언 브로디)'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정작 아서가 그녀의 사연을 영화 시나리오의 한 조각으로 활용하는 사실을 알게 되자 깊이 좌절한다. '존 F. 케네디(카스파르 필립손)'와의 루머를 풀어내는 대목은 마릴린과 노마 사이에서 결국 체념해버린 그녀의 모습을 암시하듯 고통스럽고 기괴하다.
그렇기에 원작 제목 <블론드 Blonde>를 고수한 것 역시 도미닉 감독의 야심이 집약된 선택으로 보인다. 마릴린 먼로가 금발로 염색해서 이미지를 확립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는 통념과 달리 마릴린 먼로로 변모하는 과정 이면에 숨어 있던 심상을 금발에 투영한다. 섹슈얼리티한 이미지의 구축보다는 노마 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노마 진으로 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필사적인 노력을 제목에 담는다.같은 맥락에서 흑백과 컬러를 오가고, 현재 영화 제작 시 사용되는 대부분의 화면 비율을 한 번 이상 활용하며, 심리 변화에 따라 화면이 늘어지거나 휘어지는 연출도 눈에 띈다. 쉽사리 짐작하기 어려운 노마 진과 마릴린 먼로의 내면을 영상으로 풀어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감독의 야심이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느냐다. 여기서 <블론드>는 패착을 두었다. 다만 영화 속 마릴린 먼로와 실제 먼로의 삶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원작자인 조이스 캐롤 오츠부터 자신의 책이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라고 공언한 만큼, <블론드>의 내용이 실제 사건과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립 스토리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가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는데도 실제 사건과 여러 차이점이 있다는 것, 그런데도 봉준호나 타란티노와 같은 감독들이 이 작품을 201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작품 속 묘사가 실제 사건과 다를 경우 그 이유는 제시되어야 한다. <소셜 네트워크>가 실제와 다르게 표현한 대목은 마크 저커버그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지 않으면 타인의 심리를 파악하고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 덕분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연결해줄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SNS를 탄생시킨 주인공의 주변에 정작 친구도, 연인도, 동료도 남아있지 않는 아이러니한 엔딩의 비극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제목의 이중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데 톡톡히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블론드>는 실제와 달라야 하는 그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영화는 아버지와 가정의 부재가 남성들과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라는 캐릭터의 고통을 더 과장하고 그녀의 내적 혼란을 부추겼다. 실제로는 없었던 사건인 먼로의 낙태가 스토리 라인에 삽입되고, 연인 관계가 아니었던 남성들과의 관계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적잖은 분량을 부여받은 것은 극적 전개를 위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을 보여주는 방식은 영리하지 않다. 2시간 30분이 넘는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각 에피소드 사이에서 널뛰는 먼로의 감정선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의 부재와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는 한 원인에서 모든 이야기가 비롯되었다는 단순한 불행 포르노를 답습하는 데 그친다. 그 결과 왜 먼로가 몇십 년 동안 그토록 불안정한 상태여야 했는지를 전혀 납득시키지 못한다.
더 나아가 마릴린 먼로를 소비해 왔던 기존의 시각을 비판하면서, 정작 감독 본인도 같은 행태를 반복하는 내로남불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카메라의 압박, 그녀를 착취하는 영화 업계 사람들의 무자비한 태도, 그녀를 성적으로 소비하고 활용하는 언론과 대중들을 마치 굶주린 괴물처럼 묘사한다. 결국 먼로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어 결과적으로 그녀를 자극적으로 탐닉한 이들이 한 여성을 비극으로 몰고 간 과오를 비판하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 영화는 먼로가 캐릭터를 재해석해서 원작자인 아서 밀러조차 깨닫지 못했던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충하는 장면처럼 숱한 스캔들의 주인공이기 이전에 연기에 진심이었던 여배우의 모습도 단편적으로나마 제시한다.
문제는 <블론드>의 시점도 먼로에 대해 마찬가지로 선정적이고, 소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관음증적인 앵글과 시선을 통해 집중적으로 포착된 마릴린 먼로의 사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그저 정신적으로 쇠약한 인물로 그려낸다는 인상을 준다. 또 그녀가 단지 성적인 존재로만 남겨졌다는 식의 묘사 역시 불쾌함을 남긴다. 그래서 이러한 연출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해명과 반론은 케네디와 먼로의 만남 장면처럼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불필요한 대목에 힘을 준 순간 의미를 잃어버린다. 결국 영화의 결말은 그저 불편하고 찝찝할 뿐, 재해석의 의도나 야심은 작품을 곰곰이 따져보지 않는 한 와닿지 않는다. 그렇게 넷플릭스 <블론드>는 그 모든 고통을 표현해 낸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열연만 남긴 채 막을 내린다.
P(Poor, 형편없음)
야심 찬 재해석에 절제의 미덕만 갖추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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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스틱 4 | 지나치게 반듯한 히어로 가족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잘 만든 MCU 영화'의 조건
'잘 만든 슈퍼 히어로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싸움을 잘 붙인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센티넬',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속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 같은 빌런들이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라고 할 수도 있다. 히어로와 빌런의 갈등과 대립이 주목받을수록 빌런 고유의 서사와 특성도 덩달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합의 범위를 '잘 만든 MCU 영화'로 줄이면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싸움은 잘 붙이지만, 히어로와 빌런 대신 히어로와 히어로가 싸움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어벤져스>에서는 뉴욕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6명의 영웅과 닉 퓨리가 뒤엉켜 말다툼을 벌였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아예 어벤져스가 둘로 나뉘어 전투를 치렀으며, 토리와 로키는 시리즈 내내 싸웠다. <썬더볼츠*>도 다르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이는 MCU가 여러 시네마틱 유니버스 중 가장 성공적인 팀업 무비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이었다. 히어로들끼리 싸우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드는 동안, 관객들도 그들의 신념과 철학, 한계와 약점을 목격하고,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유대감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수많은 캐릭터가 한 작품에 등장해도 각각의 개성과 존재감은 묻히지 않을 수 있었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시작>(이하 <판타스틱 4)은 정반대다. '잘 만든 가족 드라마'이지만, '잘 만든 MCU 영화'는 아닌 듯하다. 가족애, 특히 모성애에 집중한 드라마는 인상적이다. 윤리적 딜레마의 활용도, '가족'의 중요성을 시의적절하게 환기하는 메시지도 영리하다. 하지만 정작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해야 할 네 명의 주인공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MCU 팀업 무비답지 않게, 싸울 줄 모르나 싶을 정도로 반듯했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4가 딜레마를 푸는 법
지구-828의 수호자인 '판타스틱 4'. '수 스톰/인비저블 우먼'(바네사 커비)의 임신을 축하하며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그들은 돌연 위기에 빠진다. '실버 서퍼'(줄리아 가너)가 나타나 행성 파괴자 '갤럭투스'(랠프 아인슨)의 공격을 경고했기 때문. 자신을 막으려 우주로 향했 판타스틱 4에게 갤럭투스는 제안한다. '리드 리처즈/미스터 판타스틱'(페드로 파스칼)과 수의 아들이자 우주적 능력을 지닌 '프랭클린'을 넘기면 지구와 인류를 살려주겠다고.
그 순간 판타스틱 4는 '트롤리 딜레마'라고도 불리는 공리주의적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 딜레마는 고장 난 기차가 다섯 명의 작업자가 있는 선로로 달려가고 있을 때, 레버를 당겨서 한 명의 작업자가 있는 선로로 변경할 수 있다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판타스틱 4의 입장에서는 작업자 다섯 명의 목숨이 온 인류와 지구의 운명이고, 한 명의 작업자가 그들의 가족이라는 게 차이점일 뿐이다.
이때 판타스틱 4는 철저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을 내린다. 어렵게 임신한 아들인 만큼 리드와 수는 절대 프랭클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다섯 명의 작업자가 기다리는 선로, 곧 지구와 인류가 기다리고 있는 선로를 선택한다. 이에 시민들은 판타스틱 4를 의심하고,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이 보기에 판타스틱 4의 결정은 특별한 힘에 따르는 책임을 포기하고 도망친 꼴이니까.
흥미롭게도 그들의 사적인 선택 덕분에 딜레마는 해결된다. 시민 앞에서 수는 연설한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두려워하는 그들의 심정에 공감을 표한다. 판타스틱 4가 본인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시민들을 설득한다. 그 덕분에 판타스틱 4의 신뢰도가 다시 높아지고, 리드는 갤럭투스와의 전면전을 피할 전 지구적 프로젝트를 실행할 기회를 잡는다.
수의 연설이 특별한 이유
혹자는 이러한 전개를 작위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고, 분명 일리 있는 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 중 판타스틱 4에 대한 이중적인 묘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수의 연설 이후 편의적인 전개가 의도된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지구-828에서 판타스틱 4는 그 어떤 MCU 히어로보다도 독특한 지위를 누린다. 그들은 토니 스타크만큼 유명하고, 캡틴 아메리카만큼 존경받고, 토르만큼 고결하며 브루스 배너보다 영민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조니 스톰/휴먼 토치'(조셉 퀸)와 '벤 그림/씽'(에번 모스배크랙)은 모든 아이와 시민들의 완벽한 우상이자 친구다. 수는 '닥터 둠'의 라트베리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협력을 끌어내는 범지구적 정치적 리더다.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인 리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영감 그 자체다. 영화는 이들의 업적과 위대함을 중간에 삽입된 방송 인터뷰 화면, 과거 자료 등을 통해 계속해서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정작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일상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임신 때문에 걱정이 많은 부모와 그저 신난 삼촌들의 모습은 바로 옆집, 옆 동 아파트에서 볼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반면에 초인적인 활약상은 그들의 능력을 확인하는 수준으로만 묘사된다. 영화 자체가 초능력자들의 영웅담보다는 조금 독특한 사람의 일상을 엿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처럼 소소한 히어로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수의 연설은 특별해질 기회를 얻는다. 모두가 바라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그녀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새로운 <판타스틱 4>는 정치, 사회, 경제적 지도층과 그 외 계층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그 어느 때보다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일종의 영화적 위로처럼 기능한다.
지금, 필요한 가족 드라마
근래에 많은 사람들은 의심한다. 과연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사회적 문제를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는지를. 더 나아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같은 걱정거리를 공유하며 살고 있는지, 같은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지 문을 표한다. 지도자들이 공익보다는 그저 사익만 추구한다고 의심하는 시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포퓰리즘에 기반한 극단적 정치 세력도 나날이 발흥하는 중이다.
MCU의 판타스틱 4는 시민들이 품은 의심과 느끼는 거리감을 해소하는 존재다. 그들은 시민들 앞에서 솔직하다. 가족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시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을 안다는 수의 공감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아무리 우월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라 해도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는 솔직함이 사람들에게 믿음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즉, 수의 연설은 철저히 개인적이라서 오히려 공동체적이다. 가족애라는 공통점을 확인하면서 시민들은 판타스틱 4, 곧 사회적 지도층과 자신들이 같은 목표와 걱정, 미래를 공유하는 한 공동체이자 가족임을 실감하고 거리감을 좁힌다. 이는 단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보호하기 위해 갤럭투스와 싸울 것이라는 판타스틱 4의 다소 뻔해 보이는 다짐에 전 지구적 차원의 신뢰가 모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판타스틱 4를 영웅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 선택이 서사적으로 영리한 이유다. 하나의 공동체나 하나의 가족과도 같다는 연대 의식보다는 개인과 집단 간의 차이가 주목받고 갈등과 분열이 확산는 현시점에 꼭 필요한 영화로 <판타스틱 4>를 포장해 냈으니까. 설령 그 희망이 비현실적인 꿈과도 같을지라도, 지금 누구나 바라는 정치적, 사회적 희망을 선사하는 영화가 바로 <판타스틱 4>인 셈이다.
가족은 보이는데, 히어로는 안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히어로 영화로서, 특히 MCU 영화로서 <판타스틱 4>는 한계가 명확하다. 프랭클린을 지켜야 한다는 수의 모성애가 갤럭투스와 갈등을 빚는 핵심적인 동기인 이상 그녀를 제외한 세 히어로의 존재감이나 역할이 눈에 띌 수가 없는 상황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리드의 천재성도, 조니의 유쾌함도, 벤의 내적인 고뇌는 돋보이지 않을뿐더러, 캐릭터의 매력으로도 기능하지 못한다.
만약 판타스틱 4 내에서의 갈등이 강조되었다면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갤럭투스의 요구를 두고 수와 리드는 다툰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수와 달리 리드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두어야 한다며 비교적 이성적으로 문제 상황에 대처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을 부각한다면 리드만의 신념, 개성, 존재감이 돋보일 수도 있었다. 아이언맨과 대립각을 세운 캡틴 아메리카가 그랬듯이.
하지만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견해 차이 정도로 비치고, 화해도 신속하게 이뤄지다 보니 기대한 효과는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극을 평면적으로, 모범적으로 느껴지게 할 뿐이다. 마치 판타스틱 4라는 이상적인 가족상을 통해 가족애와 모성애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정작 그 구성원들이 완벽한 가족이라는 이데아에 눌려버린 꼴이다. 심지어 수도 예외는 아니다. 헌신적인 어머니라는 이미지 외에는 드러난 바가 없으니까.
조니와 씽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조니는 실버 서퍼와의 접점 덕분에 비중을 챙겼지만, 씽은 그조차도 없다. 변하기 전 외모를 의식하거나 대중들의 반응에 싫증을 내고, 연애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려 보려는 모습은 있지만 수의 모성애에 비하면 깊이가 충분치 않다. 이 불균형은 액션씬에서도 유지된다. 나머지 멤버들이 별다른 상황을 못 만들어낼 때, 수는 모성애로 증폭된 능력을 살려 압도적인 활약상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장점으로도 못 가리는 한계
다행이라면 시각적 요소가 단점을 일정 부분 상쇄한다는 것. 갤럭투스의 첫 등장 장면은 셀레스티얼 '아리솀'의 <이터널스> 등장씬에 비견될 수준의 위압감을 선보인다. 막상 지구에 도착한 후에는 기대에 비해 압도적이지 않지만, MCU에서 드물게 접할 수 있었던 우주적 공포감이 오랜만에 느껴지는 장면임에는 분명하다. 이에 더해 중성자별을 배경으로 펼쳐진 실버 서퍼와의 추격전도 MCU에서 기대하지 못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세계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임신 테스트기, 주방 도구, TV 같은 일상적인 소품뿐만 아니라 뉴욕의 스카이라인에 이르기까지 복고적인 문화와 혁신적인 기술력이 결합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레트로퓨처리즘의 정수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이는 우주 개발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 더 나아가 판타스틱 4를 향한 존경과 선망 어린 시선과도 조화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도 <판타스틱 4>의 한계를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나머지 히어로 영화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쾌감 중 일부가 지워진 듯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 또 공들인 가족 서사도 지나치게 모범적이라서 도리어 매력이 반감된다는 것. 이는 설령 MCU에 편입되기 이전에 제작된 과거 '판타스틱 4'에 비해서는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호불호가 나뉠 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MCU의 새 방향성으로 인한 문제 같기도 하다.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겠다는 케빈 파이기의 발표 이후 공개된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의 장단점이 같기 때문. 현대인의 정신 건강, 현대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라는 현실적 이슈를 반영한 서사가 전자라면, 기대에 못 미치는 액션은 후자다. 이러한 시도가 MCU의 진짜 부활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쿠키 영상이 예고한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기다리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Acceptable 그럭저럭
MCU 답지 않게 너무 반듯한 팀업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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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이번주 씨네 뉴스는 국내외 다양한 소식으로 알차게 준비 해 보았는데요!
그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500억원 투자한 <무빙> 예고편 공개
디즈니 플러스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15일, 오는 8월 9일 공개를 확정 지었습니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액션 시리즈입니다. ‘무빙’은 누적 조회수 2억 뷰를 돌파한 원작 웹툰 ‘무빙’의 강풀 작가와 드라마 ‘킹덤 시즌2’ 박인제 감독을 비롯해 ‘오징어 게임’, ‘파친코’ 등에 참여한 최고의 제작진이 만들어낸 웰메이드 프로젝트로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류승범, 김성균, 김희원, 문성근 등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들의 출연과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이정하, 고윤정, 김도훈 배우의 만남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냥개들> 넷플릭스 비영어 부문 글로벌 1위
넷플릭스
넷플릭스(Netflix) '사냥개들'이 공개 2주 차에 톱 10 리스트 1위에 올랐습니다. 사채업의 세계에 휘말린 두 청년이 악의 세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이 공개 2주 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 TV(비영어) 부문 정상에 올라 핫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21일 넷플릭스 톱 10 웹사이트에 따르면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비영어) 부문 1위에 올라섰고 전 세계 83개 국가 톱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D.P. 2> 7월 28일 공개
넷플릭스
'D.P.' 시즌2는 군무 이탈 체포조 준호와 호열이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입니다. 'D.P.'는 여러 작품상을 수상하고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부조리한 사회를 꼬집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준호역 정해인은 "시즌1과 이어지는 하나의 작품이며 조금 더 밀도 있고 깊어진 이야기를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해 헌병대 103사단 D.P.조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캐스팅 공개
넷플릭스
시즌2에 새롭게 합류하는 배우들의 라인업이 공개되었습니다.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동안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임시완, 강하늘, 박성훈, 양동근의 캐스팅도 확정되어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습니다. 한편 1차 라인업에 여성캐릭터가 보이지 않아 많은 팬들의 아쉬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 <지옥> 아이스너 어워드 아시아 작품상 후보
네이버 웹툰
연상호 감독, 최규석 작가의 <지옥>이 '아이스너 어워드' 아시아 작품상후보에 올랐습니다. ‘윌 아이스너 어워드’는 미국 만화의 거장 윌 아이스너(Will Eisner)의 이름을 따 1988년에 탄생한 미국의 대표 만화 시상식이며 미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만화 시상식입니다.'지옥'은 어느 날 갑자기 초자연적 현상을 겪은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지옥 같은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며 넷플릭스에서 공개와 동시에 흥행1위를 차지했습니다.
박찬욱감독 <전,란>제작 이유, "넷플릭스 가장 좋은 지원"
넷플릭스
박찬욱 감독님은 <전,란>을 넷플릭스와 함께 하게 된 과정을 밝혔습니다.
넷플릭스가 간섭없이 가장 좋은 지원을 약속해 줘서 즐겁게 작업을 임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회사들이 영화계에 본격 진출하면서 생긴 변화를 언급하며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똑같은 영화임에도 100억원으로 찍느냐, 150억 원으로 찍느냐에 따라 결정적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전,란>은 300억 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넷플릭스 CEO 테드 서랜도스는 박찬욱 감독과 협업에 대해 정말 기쁘게 생각하고 영광이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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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찾아 전력질주
'북한군의 탈영'을 이렇게까지 쫄깃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과몰입하게 만든다. 이것이 영화 '탈주'의 매력이다.
'탈주'는 모두가 잠든 시각, 휴전선 일대 위치한 북한군 내무반에서 눈을 번쩍 뜨고 잽싸게 밖으로 향하는 남자 규남(이제훈)의 행동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개척한 비밀 통로를 통해 향한 곳은 휴전선 부근 비무장지대. 탈영 전 지뢰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 수 없는 나라를 빠져나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한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지만 뜻하지 않는 변수가 찾아온다. 반드시 북한에서 탈출해야 하는 규남의 앞에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변주되기 시작한다. 두 캐릭터 사이에 무언가 숨어있는 듯한 서사가 드러나면서 관계성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고, 이는 규남의 탈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요소로 작용한다.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앞만 보고 전력질주하는 규남과 그를 막으려는 현상의 추격전을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짧은 러닝타임이 말해주듯, 군더더기는 최대한 덜어내고 두 인물의 숨 막히는 추격전에만 집중했다. 단순히 속도감만 뛰어난 게 아니라 세련된 영상미와 만듦새,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까지 더해지니 영화 속으로 금세 빠져든다.
보통 북한군 소재를 사용하면 사상과 체제, 이념이 부각되나, '탈주'에선 중요치 않았다. 오히려 '행복'과 '꿈'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췄더니 북한군의 탈영이 제법 신선하게 다가왔다. 규남의 전사에 흘러나온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영화에 잘 녹아들었던 이유도 키워드를 다르게 접근한 덕분이었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인물들의 선택이나 우연이 남발되는 상황 전개 등 다소 개연성이 부족한 단점도 있다. 하지만, 극적 장치들을 촘촘하게 심어놨기에 '저기선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 정도 넘어가게 만든다.
'탈주'는 배우들이 어느 때보다도 돋보이는데, 특히 구교환이 압권이다. '작품을 쥐고 흔든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등장하는 장면마다 관객들을 사로잡는 아우라와 매력을 뿜어낸다.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전사를 가진 현상에 호기심을 유발하게 만드는 것도 그의 영향력 때문이다.
반면, 메인 주인공인 이제훈의 캐릭터 표현은 보는 이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그가 구사하는 북한 사투리가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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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한 듯 새롭게
진부한 듯 새롭게
디즈니가 서사를 변형시켜 가는 방식에 대하여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동남아시아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디즈니의 전형적인 서사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그 탓에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게 된 픽사의 <소울>과도 비교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서사가 어떤 식으로 영화 안에서 작동하는지도 볼 수 있다. 서사는 비록 전형적이지만 서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의의는 조금 뻔하지만 짚고 넘어갈 만하다. 디즈니 최초로 동남아시아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라는 점 이외에도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조력자가 전부 여성 캐릭터라는 점은 시사점이 있다. 서사 속 남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큰 역할을 하지 않거나 초반에 돌로 변해버린다. 그러면서도 여성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전형적인 감정적인 모습도 크게 드러나지 않아, 라야(켈리 마리 트란 분)와 나마리(젬마 챈 분)의 멋진 격투신을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다. 디즈니의 전작에서는 서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가 모두 여성인 적은 없었다(
인어공주 얘기하지 말구요..). 다만 동남아를 배경으로 한다면서도 메인 성우 대부분이 한국계 혹은 중국계라는 점은 여전히 헐리웃이 아시아를 세밀하게 구분해서 보지 않고(전문 용어로 '퉁쳐서')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도 한다. 참고로 주연인 켈리 마리 트란은 베트남계지만 시수 역의 아콰피나는 한국과 중국 혼혈계이며 벤자 역의 대니얼 대 킴, 비라나 역의 산드라 오는 한국계이고 젬마 챈은 중국계다.전형적인 디즈니 공주님 서사를 따르고 있긴 하지만 디즈니가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신뢰에 관한 이야기다. 말 그대로 속고만 살아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나로서는 으이그 저런 쯧쯧.. 싶은 장면이 많기는 했지만 기본 관객층이 어린 연령대를 향하는 만큼 세상을 향한 따스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디즈니의 진심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조력자로 나선 마지막 드래곤 시수는 속고 속아도 사람들의 진심을 믿는다. 디즈니 서사에서 순수한 캐릭터 하나쯤은 있어야 하기에 학습 효과라고는 전무해 보이는 시수가 필요했겠지만 그 캐릭터 대부분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알라딘>의 지니, <인어공주>의 세바스찬, <겨울왕국>의 올라프 등 타인을 속일 줄 모르고 순수 그 자체에 가까워 보이는 캐릭터들은 디즈니에서는 언제나 인간이 아니었다. 언젠가 동물 영혼은 너무 순수해서 인간으로 잘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다음 생에서는 다시 동물로 태어나게 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디즈니 애니메이터들도 이렇게 생각하는걸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인간을 깨우치는 건 언제나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노답(..)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현실 세계에는 시수도 올라프도 세바스찬도 없으니 디즈니랜드를 벗어나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시수의 인간을 향한 믿음은 절대적으로 강력해서 자신의 남매들이 희생해서 만든 드래곤젬이 부숴지고 다섯 조각으로 나눠져 드룬을 도로 불러왔다는 말에도 굴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시수를 포함한 모든 드래곤들이 돌로 남아서 인간이 파멸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인데 시수는 자신을 찾아낸 라야와 라야를 쫓는 나마리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는다. 어쩌면 시수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는 데는 신뢰란 결국 불신을 타파하고 태어나는 것이라는 데 있을지 모른다. 분을 믿지 못하던 라야는 아기 사기단에게 속고 분과 사기단이 배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보고서야 경계심을 내려놓는다. 라야가 태어난 시대는 드룬이 언제든 출몰할 수 있는 시대였으며 모든 드래곤이 돌로 변하거나 잠든 시대였다. 드래곤젬이 있었는데도 돌로 변한 드래곤이 돌아오지 못한 데는 인간들의 불신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젬이 작동되는 방식은 영화의 시작과 후반부가 동일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은 작동시키는 주체다. 서사적으로 라야에게 모험을 제공하기 위해 제작진은 라야가 어느 정도 평화로운 과거를 기억하되 죄책감에 기반한 동기를 제공해야 했고, 이를 위해 '드래곤은 없지만 드룬도 없는' 세상에서 이야기가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드래곤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같은 드래곤젬을 작동시키는 주체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서사구조가 완성된다.
때문에 서사는 진부한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배경과 주요 캐릭터들의 성별을 여성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신선함을 더한다. 그럼에도 디즈니가 골라잡은 주제가 '신뢰'라는 데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지금껏 디즈니가 다뤄온 주된 주제는 <겨울왕국> 정도를 제외하면 모험과 (주로 이성간의)사랑이었다. 픽사와 결합한 초기작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는 모녀지간의 사랑으로 살짝 변형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디즈니는 모험과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디즈니의 주인공이 대부분 공주(로 대변되는 여성)이기에 모험과 사랑을 지속적으로 다루는 것이 나름의 의의는 있지만 성인 관객에게 소구하기에는 진부한 주제다. <겨울왕국>에서는 자매애로 살짝 변형시켰지만 안나의 연애 서사가 빠지지 않았기에 엘사로 대변되는 능력녀는 그에 걸맞는 상대를 부여받을 수 없는지, 아니면 여성에게 연애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했다. 이에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모든 메인 캐릭터에서 연애 서사를 제거하고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를 모두 왕국의 후계자이자 성인과 청소년의 경계선으로 설정한다. 라야와 나마리는 왕국의 후계자이지만 후사를 걱정할 나이도 아니며 무너진 쿠만드라의 현실에 연애따위 걱정할 겨를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냥 라야랑 나마리가 사겨도 될듯하다..). 이렇게 연애 서사를 제거한 디즈니는 그 자리에 신뢰라는 새로운 주제를 위치시킬 수 있었다.라야의 출신지가 심장의 땅으로 설정된 데는 아마도 주제의식 강화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는 기관이자 감정을 느끼는 기관(실제로는 뇌지만)으로 상징되는 심장부는 쿠만드라의 재건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벤자에게 어울리는 출신지다. 그런 벤자를 닮은 라야는 처음 보는 나마리를 믿고 드래곤젬을 보여주지만 공격을 상징하는 송곳니의 땅 출신인 나마리는 보자마자 라야를 배신한다. 이 배신은 후에 시수를 통해 신뢰로 거듭나게 되는데 거시적으로 라야와 나마리의 불신과 신뢰 회복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래곤젬이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나마리가 라야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시수는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라야가 죽을 때까지 쿠만드라는 분열된 채로 남았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쿠만드라의 재건은 나마리의 배신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어린 나이부터 배신이나 배운(..) 나마리에게 라야가 시수를 믿고 신뢰를 보여준다는 점은 드래곤이 실존한다는 것보다 더한 판타지에 가깝지만 디즈니 계열의 서사에서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시수가 나마리를 믿었다 한들 라야는 나마리에게 결코 신뢰를 보내지 않았을 테지만 드룬이 쿠만드라를 잠식해 라야에게(나마리에게도) 선택지가 남지 않은 상황으로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라야는 나마리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나마리만이 남은 상황에서 나마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지만 이를 신뢰로 포장하는 것 또한 디즈니의 능력이리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디즈니가 아닌 <얼음과 불의 노래>의 저자인 마틴옹의 손에서 탄생했다면 쿠만드라는 결코 재건되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인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장르가 판타지임에도 인간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과 정치 풍자로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야와 나마리가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있었기에 서로에 대한 신뢰라는 순수한 믿음이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기엔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대너리스는 설정상 소설 초반부 10대 초반의 소녀다. 디즈니의 순수한 서사는 현실에서 도피하기에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현실과의 괴리까지도 감싸안아야 한다. 디즈니의 서사는 현실로 나아가지 못하기에 진부하지만 그만큼 서사의 기본 구조에 충실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금씩 다양성을 시도하는 디즈니가 언젠가 주어진 틀 안에서나마 새로움을 제시하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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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필드>가 드라큘라의 가스라이팅을 극복한 방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라큘라’(니콜라스 케이지) 성을 방문했다가 그의 감언이설에 속아 직속비서가 되기로 결심한 ‘렌필드’(니콜라스 홀트). 인간을 뛰어넘는 괴력과 반사신경을 갖게 된 것도 잠시, 그는 밤낮없이 찾아오는 흡혈귀 사냥꾼을 격퇴하고, 드라큘라 입맛에 맞는 순결한 제물을 찾으며 정신없이 살아간다. 어느 날, 드라큘라는 사냥꾼과 싸우다가 햇빛에 쬐여 큰 부상을 입고, 렌필드는 그를 미국으로 옮겨 간호한다. 여느 때처럼 술집에서 제물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던 렌필드는 마피아의 협박에 주눅 들지 않는 경찰 ‘레베카’(아쾨피나)를 만나고, 한 가지를 결심한다. 자기도 레베카처럼 당당하게 살겠다고. 드라큘라와의 관계를 마침내 끊겠다고.
드라큘라가 주인공 아닌 드라큘라 이야기
흡혈귀 중 가장 유명한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드라큘라 백작. 그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고, 100개가 넘는 영화로 재해석됐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1931년 영화 <드라큘라>다. 이 작품에서 그는 '깃을 세운 망토를 입은 채 여자를 꼬시는 흡혈귀'와 같은 이미지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많았다.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처럼 진중한 다크 판타지 장르로 각색하거나, 넷플릭스와 BBC가 협업한 시리즈 <드라큘라>처럼 그를 현대로 불러왔다.
크리스 맥케이 감독은 <렌필드>로 더 과감하게 드라큘라를 재해석했다. 드라큘라를 현재 시간대로 불러왔고, 배경도 루마니아(왈라키아)나 영국이 아닌 미국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 주인공은 드라큘라가 아니다. 원작 소설 속 정신병자, 렌필드가 주인공이다. 그는 다른 생명을 먹으면 장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레를 잡아먹는 기괴한 인물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드라큘라를 돕는 부하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영화는 아랫사람인 그의 시점에서 드라큘라를 묘사한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드라큘라의 면모가 드러난다. 아랫사람을 교묘히 조종하는 악덕 상사의 모습이다. <렌필드>는 이 기괴한 갑을관계에 주목해 고전을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재해석한다.
드라큘라의 '가스라이팅'
영화는 드라큘라에게 붙잡힌 채 그의 뒤치다꺼리를 맡은 렌필드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고성(古城)을 파는 부동산 거래로 큰돈을 벌기 위해 드라큘라에게 접근한 렌필드. 그는 큰 힘을 주겠다는 드라큘라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그의 비서가 됐다. 벌레를 먹으면 괴력이 생기는 능력을 얻은 후, 렌필드는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허드렛일을 맡았다. 뱀파이어 사냥꾼으로부터 드라큘라를 지키는 건 기본이다. 드라큘라가 햇빛 때문에 크게 다친 후로는 깨끗한 피를 가진 사람을 제물로 바쳐 회복을 도왔다.
물론 렌필드도 고민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 건지. 드라큘라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 수는 없을지. 하지만 그의 고민은 항상 같은 곳으로 귀결한다. 그는 드라큘라를 거스르지 못한다. 그에게서 능력을 얻었기 때문은 아니다. 렌필드에게 드라큘라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드라큘라는 렌필드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제물을 데려오면 그를 일부러 공격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렌필드가 용서를 구하면 그제야 자기 피로 치료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렌필드는 드라큘라의 요구나 명령을 거절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처럼 의존적이고, 또 자기 파괴적인 인간관계는 사실 낯설지 않다. 데이트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사례에서 '가스라이팅'이 활개 치는 뉴스는 언제든지 접할 수 있다. <렌필드> 속 드라큘라와 렌필드의 관계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어딘가 씁쓸한 갑을관계 탈출기
그런데 <렌필드> 속 피해자 모습은 단순하지 않다. 렌필드는 단순히 조종당하는 게 아니다. 자기 처지가 당연하다고 자조하며 동조한다. 드라큘라에게 의존하는 악순환을 렌필드 본인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를 저버린 채 드라큘라를 만나러 떠났다. 부와 권력을 원했기 때문에. 드라큘라의 제안도 받아들였다. 더 강한 힘과 능력을 탐냈기 때문에. 이 찰나의 선택 때문에 그는 스스로 퇴락했다. 즉, 자발적인 굴종이 렌필드와 드라큘라의 진짜 관계인 셈이다. 이는 렌필드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화에는 다른 악역도 있다. 마피아가 활개를 치고, 경찰은 그들로부터 돈을 받고 눈감아준다. 그런데 이들과 렌필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힘을 쫓아 권력자에게 스스로 굴복하고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굴복이 드라큘라보다 더 위험한 악인 셈이다.
실제로 영화가 자기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자기가 시작한 악순환과 인간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뿐이니까. 렌필드에게 레베카와의 만남이 전환점인 이유이기도 하다. 작중 레베카는 마피아의 외압과 회유에 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경관이다. 그녀는 마피아에게 아버지를 잃었지만, 아버지처럼 마피아와 싸우겠다는 경찰다운 소신을 잃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렌필드는 큰 충격에 빠지고, 자기 합리화를 그만두고 드라큘라와의 관계를 다시 맺으려 한다.
드라큘라에게 데려갈 제물을 물색하려고 나가던 집단 심리 치료 모임이 기회다. 렌필드를 비롯한 참석자는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한다.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패션이나 헤어 스타일, 집 인테리어처럼 세세한 것까지 직접 바꿔주며 서로 자존감을 높여준다. 하지만 렌필드의 탈출기는 어딘가 씁쓸하다. 그 안에도 갑과 을이 있기 때문이다. 모임을 주도하는 강사는 피해자에게 자기 책을 판다. 그 책이 마치 성경 마냥 구원을 약속한 것처럼. 이 또한 낯설지 않다. 피해자를 이용하는 두 번째 가해자도 손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 이처럼 <렌필드>는 인간관계로 인한 현대인의 고민을 정확히 지적한다. 주인공을 바꾼 고전의 재해석이 인상적인 이유다.
장르를 넘나드는 피 칠갑 코미디
이러한 메시지와 주제 의식은 영화 전반에 넘쳐흐르는 B급 정서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액션이 대표적이다. 영화 속 액션은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다. 원래 렌필드는 드라큘라를 보호할 때만 자기 능력을 활용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는 다른 목적을 위해 자기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액션이 과격하고 피가 많이 튈수록 드라큘라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의지는 더 잘 전달된다. 만화처럼 뻔뻔하게 피를 튀기다 보니 오히려 거부감이 덜한 셈이다. 실제로 절단된 팔과 다리를 무기처럼 활용하거나, 시체 위에서 키스하는 장면은 잔인하거나 기괴하지 않다. 그저 유쾌하다.
액션 외의 대목도 다르지 않다. 사실 <렌필드>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불편한 점이 있다. 과거 이야기가 현대 배경으로 옮겨오면서 필연적으로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례로 드라큘라가 렌필드에게 '순수한 여성의 피'가 필요하다고 닦달하는 장면은 지금의 젠더 관점에서는 이상한 뉘앙스로 전달될 수 있다. 드라큘라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들도 어색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와 달리 추적이 용이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여러 의문점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렌필드>는 B급 감성을 한껏 활용하면서 위와 같은 의문점이 뇌리조차 스치지 못하게 한다. 노예 계약과 싸우는 렌필드의 모습을 제4의 벽을 깨는 연출을 통해 보여주며 B급 코미디를 선사한다. 마피아와 부패된 경찰조직을 등장하면서 누아르처럼 보일 때는 돌연 분위기를 바꾼다. 망상에 빠진 드라큘라를 활용해 호러와 스릴러적 요소는 코미디로 전환하는 게 대표적이다. 드라큘라의 설정을 역이용한 장면도 웃음을 자아낸다. 기독교적 요소가 가미된 퇴마의식을 정작 마약 가루를 이용해 치르거나, 치유력이 있는 드라큘라 피를 이용해 드라큘라가 죽인 사람을 되살리는 식이다.
물론 <렌필드>에도 여러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마무리가 성급하다는 인상이 짙다. 호러, 코미디, 액션, 누아르 등 워낙 많은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데 러닝 타임은 93분으로 꽤 짧다. 달리 말해 레베카 가족과 마피아 간의 악연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생략하거나 일부러 지나칠 수밖에 없다. 결말로 갈수록 캐릭터가 편의적으로 퇴장하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속도감은 빠르되, 다소 급하게 전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더해 호불호도 극명히 나뉠 수밖에 없다. <데드풀>과 같은 작품처럼 미국식 유머가 워낙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만약 일반적인 한국 영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나 톤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익숙한 소재를 설득력 있게 재해석한 <렌필드>의 매력도 장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Acceptable 무난함
가장 세련된 형태의 재해석 중 하나. 취향만 맞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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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개봉 예정 독립, 예술 영화 Best 7 - ( #프렌치수프 #이소룡들 #니자리 #양치기 #다섯번째방 #생츄어리 #다우렌의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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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영화등대 채널을 사랑해주시고 봐주시는 구독자 및 시청자 여러분들 모두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오랜만에 돌아온 영화등대 채널이 선정한 [6월 개봉예정 영화] 소개 영상을 준비해보았는데요. 해당 작품들은 상황에 따라 개봉 일정이 변경될수 있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정하였으니 작품성이나 별다른 기준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해당 작품들의 관계자나 투자 및 배급사의 어떠한 대가를 제공받고 제작된 영상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럼 바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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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주 최신 개봉영화(건파우더 밀크셰이크, 쇼미더고스트, 리스펙트, 좋은 사람, 내가 날 부를때)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건파우더밀크셰이크 #쇼미더고스트 #리스펙트 #좋은사람 #내가날부를때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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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라그나로크 2> 공식 예고편
노르웨이의 시골 마을 '에다'.
겉보기엔 평화롭지만 빙하는 녹고있고, 심각한 오염과 질병 문제까지 안고 있다.
종말의 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마을엔 한 가족이 이사를 오고,
그곳에 뿌리를 내린 악의 세력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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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리스마스 괴담: 4가지 이야기> 예고편
어밀리아는 동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특이한 물건들을 파는 동네 상점에 간다.
그곳은 사연 있는 물건만 파는 가게로 어밀리아는 동생에게 어울리는 사연의 물건을 고르고자 사장 로즈몽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다양한 사연을 듣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