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4-22 16:10:25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사는지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랜 75(Plan 75), 2022
일본 / 드라마 /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플랜 75>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가 국회를 통과한다.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를 대처할 방안”이란 일본 정부의 덧붙임은 “넘쳐나는 노인이 청년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총으로 노인들을 죽이고 자살한 한 청년의 유언과 노인들에게 오랫동안 은밀히 분노의 손가락질을 겨눴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합일되어 파생된 결과다. 플랜 75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아닌 국민 과반수의 직접적이면서도 암묵적인 동의로 탄생했다. 나의 죽음을 나보다 제삼자가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플랜 75를 전례 없는 문제 해결의 묘수로 믿는 과반수 안에 고령자가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랜 75는 간편하다. 가족의 동의나 건강진단 결과가 신청자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과정도 일사천리로 평범하게 진행된다. 신청자의 조건은 딱 하나, 자기 의사에 의한 결정(신청)이다. 신청 후엔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금 10만 엔을 받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세하고 단호한 필수조건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 감시 없이 신청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신청자를 위한 맞춤 콜센터도 운영된다. 심리상담소 역할을 하는 콜센터는 신청자의 마지막 날 전까지 함께 한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신청과 신청을 취소하는 일 모두 본인의 자유다. 이미 죽을 날짜를 받은 한 할머니는 플랜 75 홍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라고. 플랜 75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저물어 가는) 세대의 숭고한 결정이란 순풍을 타고, 신청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일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은 결정,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도 판단하고 선택하려면, 플랜 75 안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플랜 75를 샅샅이 해부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서비스 대상자 ‘78세 미치’와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신청받는 ‘시청 직원 히로무’, 신청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들은 플랜 75의 뼈대가 드러난 설계도를 세상에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플랜 75>에서 유일하게 강제 적용된 조치였다는 것만 알아두자.
플랜 75에 대해 고령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인터뷰한 할머니처럼 긍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사는 데만 집중하는 자가 있다. 78세 미치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텔 객실 청소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치는 삶을 긍정한다. 몇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문을 열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모습과 낙상사고를 당한 친구(이네코)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고 모든 동료가 불만을 터트리며 떠날 때 홀로 개인 사물함 앞에 서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이지만, 외로움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꿋꿋하게 구직 활동에 힘쓴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치 또한 플랜 75에 가입한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이네코)의 고독사를 직접 접한 탓이고, 집이 철거될 예정인데 구직 활동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고령이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굶주린 자신에게 시청 직원 히로무가 무료 급식(플랜 75 홍보 목적)을 건넨 탓이다. 미치는 과반수가 찬양하는 순리대로 준비금을 받고, 콜센터 직원(요코)을 배정받는다. 과반수 안에 포함된 미치를 통해,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들이 왜 자기 생을 내놓는 것에 동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직접 신청서를 받는 일 말고 직원 히로무에게 주어진, 특별한 다른 일은 없었다. 수천 장의 신청서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신청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 그의 앞에 앉아 상담도 없이 신청서를 불쑥 내민 순간 히로무의 가슴은 요동친다. 삼촌은 과거 건설업자였다. 전국을 다니며 터널과 댐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헌혈은 일과였다. 히로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을 받는다. 다량의 헌혈증은 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고,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국민, 한 사람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헌혈증이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삼촌의 업적과 흔적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게 분명했다. 그는 범법자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본인과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무는 플랜 75의 끝을 몰랐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의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플랜 75의 신청 조건뿐이었다. 히로무는 광고판에 날아드는 토마토를 맞으며,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플랜 75의 유골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휩싸인다.
아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센 유품정리사로 일하기 전, 이주노동자 마리아의 직업은 요양보호사였다. 과거엔 살아있는 노인들을 따뜻한 눈과 마음으로 보살폈으나 지금은 죽은 노인들의 옷을 벗기고 유류품을 수거하기 바쁘다. 현금이나 고급 시계 같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어차피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으니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자고 우기는 동료를 따라, 마리아 역시 떠난 자들의 것을 훔친다. 그리곤 어찌 됐든 본인은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열심히 합리화한다.
콜센터 직원 요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신청자 한 명당 15분 동안 감정은 배제하고 열심히 입만 움직인다. 지나친 감정적 대처와 신청자 대면 금지만 지키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미치와의 통화를 특별하게 느낀 요코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미치의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대면한 순간, 동요한다. 긴 대화를 나눠주어 고맙고 잘 지내라는, 오직 미치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플랜 75의 보이지 않던 장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눕는 히로무 삼촌과 미치. 담당 직원은 간호사 복장과 유사한 옷을 입고 두 사람에게 울렁증을 막아주는 약을 건넨다. 친절함도, 냉정함도 아닌 도통 모르겠는 직원의 미소가 미치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참이었다.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이 감기는 미치, 그 순간 커튼 사이로 히로무 삼촌과 눈이 마주친다.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툭 아래로 떨어지자, 미치는 극한의 두려움에 호흡기를 떼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한발 늦게 온 히로무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삼촌을 마주한다. 미치가 죽은 자들에게서 벗어날 때 히로무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 시신을 빼돌린다. 마리아 또한 더는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플랜 75는 완벽한 통제와 촘촘한 계획, 그리하여 대부분 만족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났고 고령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었다. 정부가 신청 조건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정도니, 플랜 75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플랜 75가 잘못된 방식임을 노골적으로 노출했다. 자발적이며 비강제적이고, 자유로우며 신청자를 향한 따뜻한 지원들로 채워진 플랜 75는 묘수가 아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악수란 사실을 말이다. <플랜 75>는 단순히 영화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의 유언을 총소리 전에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살로 인해 시작된 플랜 75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총을 겨눌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인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배한다. 동시에 앞선 목적과 같은 이유로 본인들이 만든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플랜 75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탄생한 집단적 합리화가 계속 연장되었기에 흥행에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던 히로무에서 요코를 거쳐 유품을 정리하는 마리아까지, 그 누구도 75세가 기준이 된 이유와 왜 이들만 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준비금에 조건이 왜 붙지 않는지, 콜센터는 왜 대면은 금지하고 전화 서비스만 진행하는지, 진짜 이유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작 폭탄을 미치와 같은 이들에게 넘겨버렸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미치와 같은 이들을 플랜 75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삼촌의 미래는 히로무의 미래였고, 미치의 뜀박질은 요코와 마리아가 이어받게 될 게 분명했다.
해서 영화는 타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미치는 물론이고 세 청년, 이들을 훔쳐보는 관객까지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마치 우리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듯 고집스럽게 장막을 둘러싼 거짓과 폭력을 응시하게 했다. 플랜 75의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설계한 집단 살인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벗어난 미치가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어둡기만 했던 관객의 얼굴에도 빛이 스며든 때였다. 마침내 플랜 75의 장막이 내부에서 걷힌 것이다.

<플랜 75>는 관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희망이 깃든 안도를 전달한다. ‘3의 법칙’이 관객에게 제대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숫자 3은 사회 심리학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환되는 기준점으로 세 명 이상이 되는 순간 개인들의 힘은 집단의 힘이 되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확실하게 이용했다. 나약한 인간들의 움직임(플랜 75)이 아니라, 진짜 악수를 진짜 묘수로 바꾸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자가 나약한 인간인 동시에 충분히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했다. 플랜 75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소멸도 얼마든지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직 인간(나)만이 용기를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히로무와 요코, 마리아 그리고 미치를 통해 전달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건, 당사자인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서, 유일한 강제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이 된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인간들의 끝은 굳이 묻지 않기로 하자. 답은 ‘히로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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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가 외면한 로맨스 명작 TOP 12
누구나 인정할만한 최고의 로맨스 명작에 대한 순위도 있을 것이다. '오스카' 시상식은 그들의 92년의 역사 속에 시대를 막론한 로맨스 명작 대부분을 인정해왔다.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이나,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와 같은 영화들에 축배를 올리지 않는 건 범죄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버라이어티 지는 2001년부터 지난 20년 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혹은 각색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최고의 로맨스 작품 12편을 취합해보았다. 몇 편은 충분히 명백하다고 느껴지는 작품이겠지만, 몇 편은 사랑의 복합성을 파고드는 작품이며, 이 모든 작품들은 다른 시대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리스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 12편에 포함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이 게시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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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위 - <The 40-Year-Old Virgin>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2005)
각본 - 주드 아패토우, 스티브 카렐
감독 - 주드 아패토우 | 제작 - 유니버셜 픽쳐스
출연 - 스티브 카렐, 캐서린 키너, 폴 러드, 세스 로건 등
'앤디 스티처'는 40세까지 자신의 동정을 지키면서 진실로 마음이 통하는 상대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전자제품 대형 매장에서 일하는 남자이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그가 동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동료들은 그를 가만 놔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운명적인 여자 '트레이시'을 만나게 되고 그가 한번도 못해본 일을 트레이시와 시도하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러한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주면서 폭소는 물론 따뜻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선정 이유 : 보통 외설적인 섹스-코미디 영화는 '로맨스' 장르의 그럴듯한 예시가 될 수 없겠지만, 이 영화의 두 각본가의 '사랑'을 불어넣겠다는 불굴의 의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오스카에 두 차례 노미네이트 되었던 배우 '캐서린 키너'의 연기는 이를 극도로 끌어올려 화려한 성공을 만들어냈다.
11위 - <A Ghost Story>
<고스트 스토리> (2017)
각본 - 데이빗 로워리
감독 - 데이빗 로워리 | 제작 - A24
출연 - 케이시 애플렉, 루니 마라 등
교외의 작고 낣은 집, 작곡가인 C와 그의 연인 M은 조용하지만 단란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C는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M은 무거운 슬픔에 잠긴다. 창백한 조명의 병원 영안실, 고스트가 되어 깨어난 C는 마치 홀린 듯 M이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무는 그녀와 고스트는 사랑했던 기억을 추억하며 무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몇 년 후, 다시 집,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며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M은 결국 집을 떠나고, 남겨진 고스트는 영원히 그녀를 기다릴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선정 이유 : 이 영화는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호불호가 확실했던 영화이다. 한 쪽은 지나치게 질질 끄는 '침묵'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고, 다른 한쪽은 비탄과 절망의 가장 순수하고 가슴 아픈 초상이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결국, 모두가 동의할만한 영화여서는 안 된다. 영화는 열띤 논란을 만들어야 한다.
10위 - <It's Complicated>
<사랑은 너무 복잡해> (2009)
각본 - 낸시 마이어스
감독 - 낸시 마이어스 | 제작 - 유니버셜 픽쳐스
출연 - 메릴 스트립, 스티브 마틴, 알렉 볼드윈 등
베이커리 가게를 운영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제인'. 안정된 생활을 유지해가던 그녀에게 어느 날, 20살 어린 젊은 여자와 재혼한 전 남편 '제이크'가 찾아오고, 결혼 전 연애시절을 돌이키려 한다. 이와 동시에 '제인'의 집 인테리어 공사를 맡은 건축가 '아담'이 그녀에게 조금씩 호감을 보여 오는데...
선정 이유 : '오스카'를 3번이나 수상한 '메릴 스트립'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이 영화를 '오스카'는 외면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볼드윈'과 '마틴' 또한, 강렬하면서도 매우 다른 연기를 보여주었다. 60세 이상의 여성을 위해 쓰인 이 이야기는 이혼 가정의 아이들과 그들의 그 이후까지 보여준 소중한 영화이다.
9위 - <Love Actually>
<러브 액츄얼리> (2003)
각본 - 리차드 커티스
감독 - 리차드 커티스 | 제작 - 유니버셜 픽쳐스
출연 -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로라 리니, 엠마 톰슨, 앨런 릭먼, 키이라 나이틀리, 빌 나이 등
사랑에 상처받은 당신을 위해, 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사랑에 확신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선물이 찾아옵니다. 크리스마스에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로맨틱한 고백
선정 이유 : 그 자체로도 과하게 느끼하고 과하게 덧붙여진 듯한 이 영화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으로 이미 한차례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리차드 커티스' 감독이 아이들의 눈을 통한 사랑, 걱정, 불륜, 언어와 비밀까지 다수의 예시를 담아낸 영화이다. 매력적인 역대급 출연진들은 인생에서 가장 기이한 인연 속에서 각자의 존재감을 확실히 뿜어냈다.
8위 - <Baby Driver>
<베이비 드라이버> (2017)
각본 - 에드가 라이트
감독 - 에드가 라이트 | 제작 - 소니 픽쳐스
출연 - 안셀 엘고트, 케빈 스페이시, 릴리 제임스, 에이사 곤살레스, 제이미 폭스 등
귀신 같은 운전 실력, 완벽한 플레이리스트를 갖춘 탈출 전문 드라이버 '베이비'.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에 이상이 생긴 그에게 음악은 필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 같은 그녀 '데보라'를 만나게 되면서 '베이비'는 새로운 인생으로의 탈출을 꿈꾸게 되지만, 같은 팀인 박사, 달링, 버디, 배츠는 그를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는데...
선정 이유 : 액션 장르에서 러브 스토리는 자주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가슴 뛰는 세트피스와 두 주연 배우의 케미는 관객들이 쉽게 이야기에 흡수될 수 있게 했다. 영화의 가장 긴박한 순간에 그와 대조적인 배경음, 베리 화이트의 1937년 명곡 "Never, Never Gonna Give Ya Up."이 흘러나오고 그로부터 전율을 느끼게 된다.
7위 - <500 Days of Summer>
<500일의 썸머> (2009)
각본 - 스콧 뉴스타드터, 마이클 H. 웨버
감독 - 마크 웹 | 제작 - 20세기 폭스 (현 서치라이트 픽쳐스)
출연 -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클로이 모레츠 등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운명적 사랑을 기다리는 순수 청년 '톰'은 어느 날 회사에 새 비서로 온 '썸머'를 처음 본 순간 대책 없이 사랑에 빠져든다. 구속 받기 싫어하고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자유로운 여자 '썸머'는 누군가의 여자이기를 거부하며 '톰'과 친구도, 애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간다. 어딘지 어긋나고 삐걱대는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를 위해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는데...
선정 이유 : 관계에 대한 500일 간의 여정은 양쪽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사실 우리 대부분이 이전에 느껴봤던 감정일 것이다. 두 각본가의 변덕스럽고도 방대한 이야기는 연애 젬병 낭만주의자인 '톰'의 시선에서 이어나가고, 관객들은 '썸머'를 향한 그의 심장 찢기는 고통을 함께 느낀다. 때문에, 관객들은 모두 '톰'이 '어텀'을 만나는 피날레를 그토록 로맨틱하게 느끼게 된다.
6위 - <Crazy Rich Asians>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2018)
각본 - 아델 림, 피트 치아렐리 (케빈 콴의 소설 "Crazy Rich Asian" 원작)
감독 - 존 추 | 제작 - 워너 브라더스
출연 - 콘스탄스 우, 헨리 골딩, 양자경, 젬마 찬, 아콰피나, 켄 정 등
뉴요커 '레이첼'은 남자친구 '닉'의 절친의 결혼식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향한다. 처음으로 아시아를 방문한다는 설렘도 잠시, '닉'의 가족을 만난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닉'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자 모두가 선망하는 결혼 후보 1순위 신랑감이었고, '레이첼'은 사교계 명사들의 질투와 더불어 본인을 영 탐탁지 않아하는 '닉'의 어머니의 타겟이 되는데...
선정 이유 : 기념비적인 문화적 돌파구 영화이자, 박스오피스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낸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각색'에 대한 칭찬을 받아왔다. 때로는 "사랑해" 라는 가장 명백한 대답이 최고의 한 마디일 수도 있다.
5위 - <Drive>
<드라이브> (2011)
각본 - 호세인 아미니 (제임스 샐리스의 소설 "Drive" 원작)
감독 - 니콜라스 윈딩 레픈 | 제작 - 필름디스트릭트
출연 - 라이언 고슬링, 캐리 멀리건 등
삶의 의미라곤 오직 스피드밖에 없었던 남자. 그런 그의 일상에 작은 파장을 일으킨 한 여자.
어느덧 또 하나의 의미가 된 그녀가 위험해지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거는데...
선정 이유 : 레픈 감독의 장기는 아미니 각본가의 대본을 기반으로 액션, 드라마, 그리고 코미디까지 많은 장르를 매력적으로 섞어놓는 것이다. 2010년대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이름도 없는 '드라이버'가 그 자신 속에 있는 "전갈"을 드러낼 때이다.
4위 - <Weekend>
<주말> (2011)
각본 - 앤드류 헤이
감독 - 앤드류 헤이 | 제작 - 선댄스 셀렉트
출연 - 톰 컬렌, 크리스 뉴 등
이성애자인 룸메이트와의 홈파티에서 많이 취하게 된 러셀은 파티가 끝난 후 게이클럽으로 향한다. 영업 종료시간을 얼마 앞둔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 글렌을 만나고, 원나잇스탠드로 끝날 거라 생각했던 만남은 전혀 다른, 특별한 것이 되어가는데...
선정 이유 : 이 영화는 매우 정직하고도 결백한 두 남자의 사랑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그들 각자 모험을 떠난다. 서로를 향한 부정할 수 없는 끌림은 꽤나 분명하다.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애정을 향한 깊은 갈망이다.
3위 - <Moulin Rouge!>
<물랑 루즈> (2001)
각본 - 바즈 루어만, 크레이그 피어스
감독 - 바즈 루어만 | 제작 - 20세기 폭스
출연 -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등
1899년 파리,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세계 '물랑 루즈' 최고의 뮤지컬 가수인 '샤틴'은 신분 상승과 성공을 위해 투자자를 구하다가 우연히 사랑을 찾아 몽마르트로 흘러온 영국의 낭만파 시인 '크리스티앙'을 만나게 된다. '샤틴'에게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 '크리스티앙'은 그녀가 있는 '물랑 루즈'라는 신비의 세게에 발을 들여놓게 되지만, 그 둘에게 거역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 서서히 다가오는데...
선정 이유 : 이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는 거의 모든 의미에서 매우 훌륭하고,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하여 오스카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각본과 감독 부문에서는 외면당하였다. 영화는 꽤나 직관적이고, 모든 뮤지컬 넘버들은 서로를 보완해 나가며 관객들의 시선을 그 사이에 접합시킨다. 특히, '엘튼 존'의 넘버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이완 맥그리거'에게 빠져드는 순간을 포착하였고, 어떻게 '니콜 키드먼'이 그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는지 납득시켰다.
2위 - <The Perks of Being a Walflower>
<월플라워> (2012)
각본 - 스티븐 크보스키 (본인 소설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원작)
감독 - 스티븐 크보스키 | 제작 - 써밋 엔터테인먼트
출연 - 엠마 왓슨, 로건 레먼, 에즈라 밀러, 니나 도브레브 등
말 못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찰리'는 고등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삶을 즐기는 '샘'과 '패트릭' 남매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멋진 음악과 친구들을 만나며 세상 밖으로 나가는 법을 배워가는 '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샘'을 사랑하게 되고, 그는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가슴 벅찬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불현듯 나타나 다시 '찰리'를 괴롭히는 과거의 상처와 '샘'과 '패트릭'의 겉잡을 수 없는 방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우정을 흔들어 놓기 시작하는데...
선정 이유 : 스티븐 크보스키의 '마스터피스'가 이 목록에 있는 것은 꽤나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로 선정한 건 아니다. '샘'을 향한 '찰리'의 헌신이 주된 서사이지만, "월플라워"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얻을 수 있는 사랑의 왜곡된 면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찰리'의 내적 분투에 공감할 것이다. 그중 일부는 그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행운을 누렸겠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하루하루 그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어떠한 나쁜 기억들이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당신은 '사랑'을 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1위 - <Disobedience>
<디서비디언스> (2018)
각본 - 세바스찬 렐리오, 레베카 렌키에비츠 (나오미 알더만의 소설 "Disobedience" 원작)
감독 - 세바스찬 렐리오 | 제작 - 블리커 스트리트
출연 - 레이첼 맥아담스, 레아첼 와이즈 등
유대인 사회에서 쫓겨나 뉴욕에서 살던 사진작가 '로니트'는 랍비였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후계자 '도빗'이 그녀의 옛 연인 '에스티'와 결혼했다는 소식도 접한다. '로니트'가 돌아오자 모임에서는 '도빗'에게 부인 단속을 잘 하라며 훈수를 두고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는 다시 '로니트'와 '에스티'의 이름이 거론되기에 이르는데...
선정 이유 : 이 영화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저평가된 로맨스 영화이다. '레이첼 맥아담스', '레이첼 와이즈', 그리고 '알레산드로 니볼라'가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사람들은 이 영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감독이기도 한 '세바스찬 렐리오'는 관객들을 금기된 사랑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알고, 그는 관객을 사로잡는 마법을 부린다. 이 영화는 매우 강렬하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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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의인가 위선인가
천재의 삶은 녹록치 않다는 사실은 마치 운명과도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핵폭탄을 만들던 모든 과학자들의 선택이 다 같지 않았기에 그들의 삶도 전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다만, 가장 비극적이거나 가장 모순적인 사람만이 역사에 남을 뿐이다.
나치를 제압하겠다는 대의 아래 시작했던 맨하탄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가 바로 그 모순적인 인간이다. 나치가 더 이상 위협대상이 되지 못하자, 갈팡질팡하면서도 핵폭탄을 만들어내지만 후에 가선 핵폭탄을 저지하는 법안도 만들어낸다. 삶이 일관적이질 못해서 위선자인지 성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의 일대기를 다뤘지만 그의 인생을 둘러쌌던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게 한다. 세상은 결국 책임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잘된 결과에서도 꼭 영웅을 만들어야 하고 실패한 결과에서도 제낄 사람 하나를 만들어내야 한다. 맨하탄 프로젝트는 마치 오펜하이머가 진두지휘해 그가 이룩한 성과같지만 그는 이론가보다는 그저 쇼플레이어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로브스가 그를 뽑은 이유 중에 그의 연극적인 성향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장 쇼맨십이 강한 사람으로, 그 프로젝트의 성공을 가장 잘 홍보해줄 사람으로 뽑은 게 아닐까. 물론 그 전에 프로젝트 성공이 우선이었지만.
2. 선악의 구분은 한없이 의미없다
모든 면에서 선한 사람은 없다. 그건 동화에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장면들을 보고싶어한다. 선인이 악역이 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생각하지만 악역을 자처하던 인물이 선인이 되면 그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오펜하이머에게 스트로스가 씌우고 싶었던 프레임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스트로스는 뼛속까지 정치인이었기에 과학자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오펜하이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란 다소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오펜하이머와 프로젝트를 함께했지만 다른 길을 갔던 사람들도 학문적 의견은 달랐을지언정 그들은 뼛속까지 학자였기에 정치적인 스트로스를 더 경멸했을지도 모른다. 스트로스 같은 정치적인 사람들은 자리가 사람을 증명한다고 생각해 더 높은 자리를 갈구하지만 과학자나 교수 집단이 가진 자존심을 가끔 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엄연히 학자이며 그 학자라는 자리가 결국 그들의 자존심이기에 그들의 연구가 1순위고 정치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연구의 윤활제일 뿐이라 언제나 후순위로 뒤처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결국 절대적인 선도 없고, 악도 없다. 각자의 이해관계와 입장만이 있을 뿐이다. 입장과 이해관계만으로는 선악을 구분지을 순 없고, 그 이해관계를 위한 특정한 행동만이 그들을 평가할 수 있게 한다.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게 했던 행동만으로 그의 훈장은 의미없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고,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에 대해 찬반을 가로지르는 행보를 보여 그의 진심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기 때문이다.
3. 누구도 위너는 아니다
영화 상에서 스트로스가 장관이 되지 못한 것이 패배자가 된 것 같겠지만 오펜하이머도 보안 인가를 받지 못하는 결말로 영화는 끝이 난다. 현재의 영광이 미래에는 굴욕이 될 수 있는 것인만큼 완벽한 위너는 없다. 그저 잘 연출되었는지 포장이 실패했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고로 현재에 안주하지 말자. 과거는 끊임없이 회고하되, 더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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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판타지
‘매드 맥스’시리즈로 디스토피아 마스터로 우뚝 선 조지 밀러 감독과 매 작품마다 강렬한 임팩트를 남겨주는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가 천일야화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친 매혹적인 영화 3000년의 기다림 리뷰입니다. ‘알라딘’ 속 지니의 재해석이라고 봐도 무방한 감독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통해 장르를 특정 짓기 어려운 묘한 매력이 공존하는 스토리로 굉장히 특별한 시간을 선물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신화에서 시작되어 3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한 인물에 대한 서사는 어릴 적 들었던 전래동화 같은 경험을 주기도 하죠. 그럼 미리 시사회로 만나본 작품의 후기를 통해 좀 더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마음이 갈망하는 건 무엇입니까?
“Make a wish”
학회 참석을 위해 이스탄불을 방문한 이야기 학자 알리테아는 도착한 공항에서부터 발표가 진행되는 강의실까지 기묘한 환각을 마주합니다. 신기한 체험을 뒤로 한 채 기념품을 사기 위해 오래된 물건들을 파는 가게에 방문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이끌리는 파란색 유리병을 사옵니다. 그날 저녁, 유리병을 세척하던 중 갇혀있던 정령 지니가 빠져나오고 자신의 해방을 위해 3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었던 알리테아는 옛이야기에서 소원은 항상 대가가 따른다며 빌지 않겠다고 하죠. 이에 그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3000년간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예고편│Trailer
원제: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감독: 조지 밀러
각본: 조지 밀러, 어거스타 고어(Augusta Gore)
원작: A. S. 바이어트의 단편 소설 모음집 ‘The Djinn in the Nightingale's Eye’
출연진: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알릴라 브라운, 피아 선더볼트, 버크 오즈투르크 외 多
장르: 멜로/로맨스, 판타지, 드라마│상영 시간: 108분
국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등급: 15세 관람가
수입: (주)엔케이컨텐츠│배급: (주)디스테이션
평점: 왓챠피디아 예상 3.5, 평론가 7.0, 로튼토마토 신선도 72% 팝콘 73%, IMDB 6.7, 메타 스코어 60점
상영 일정: 개봉일 2023년 1월 4일
오랜만에 만난 조지 밀러의 판타지
“어떤 의미에서는 호, 어떤 의미에서는 불호”
우리에게 친숙한 호리병의 정령 지니가 자신의 해방을 위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서사 학자 알리테아를 설득하기 위해 지난 3000년간의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조지 밀러의 신작이지만, 시청각적 요소와 액션이 주를 이룬 전작을 떠올릴 수 없는 정반대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내레이션이 전개의 중심이고, 기원전 시바 왕국의 여왕부터 오스만 제국을 지나 르네상스 시대까지 펼쳐지는 판타지가 뒤섞인 플래시백은 현대적으로 재탄생된 천일야화를 보는 느낌을 줍니다. 스토리텔링이 중점적인 사안이 되다 보니 ‘매드 맥스’ 느낌을 생각하신 분들에겐 실망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재미있었던 이유를 보자면, 전래동화 같은 분위기와 어우러진 화려한 연출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 소원에 대한 불행이 반복되는 대서사는 판타지스러운 개성 있는 비주얼로 눈앞에 펼쳐지고 관객은 오디오북처럼 들리는 그의 절절한 이야기를 화면으로 함께 마주합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상상이 되는 장면들은 세상의 모든 능력을 가졌지만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 불멸자 지니를 더욱 초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감독은 관객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의미, 행동 등에 관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흥미거리와 생각할거리를 함께 질문하는 모양새이지요.
멜로로 변한 지니의 소원
"잊혀가는 것들에 대하여”
그리스어로 ‘진실한’을 뜻하는 알리테아로 추측하건대,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익숙한 내용을 정령 지니가 겪었던 모든 상황들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불행으로 가득했던 과거 사연들을 지나 또다시 불행해질 것임을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하며 사랑은 혼자 하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희생하는 것도 아닌 서로를 위한 행복임을 말하면서요. 어쩌면 너무 뻔한 스토리일지도 모르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에게 현대인들이 목매다는 돈과 권력 같은 물질적인 욕망이 아닌 기피되고 있는 사랑을 택했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자기 삶에 만족한 주인공이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각박해가는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이 잃어버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잊혀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갈망일지도 모르겠네요.
한 줄 평 : 잊히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사랑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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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역대 수상작 & 화제작 모아보기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 베니스영화제는 매년 이탈리아 리도섬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로 최초의 국제영화제인데요. 영화제 상징물인 ‘사자’ 형상이 들어간 ‘황금사자상’이 최고권위상으로,
한국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수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오늘은 역대 황금사자상 리스트와 2023년도의 화제작들을 정리해 보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작품이황금사자상을 수상할 것같나요?
‘황금사자상’이란?
3대 국제 영화제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의 최고 상으로, 영화제에 출품된 최우수 작품에 수여된다.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베를린 영화제의 황금곰상에 해당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제 79회 황금사자상 수상작 /
사진 작가 낸 고린의 커리어와 제약회사 창립가 새클러가의 몰락을 다룬 작품
<레벤느망>
제 78회 황금사자상 수상작 /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 ‘안’은 예기치 못한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낳으면 미혼모가 되고, 낳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하는 현실. ‘안’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끝까지 가기로 결심하는데…
<노매드랜드>
제 77회 황금사자상 수상작 /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남겨진 ‘펀’.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과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노매드들을 만나게 되는데
<조커>
제 76회 황금사자상 수상작 /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 하지만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는 그가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짜 ‘조커’를 만나라!
<로마>
제 75회 황금사자상 수상작 /
멕시코시티 내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 가족의 젊은 가정부인 클레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는 흘러간다. 감독 자신을 키워낸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이 작품은 1970년대 멕시코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가정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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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욕망과 불화하는 가부장제
8★/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이더르의 형수는 아들을 낳기 위해 네 번의 임신을 했으나 막 태어난 넷째 역시 딸이다. 아버지는 하이더르가 남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염소 도축을 지시하지만 하이더르는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메이크업 일을 하는 아내 뭄타즈와 달리 하이더르는 몇 년째 백수 상태여서 아버지와 형은 그를 은근히 무시한다. 가부장제가 살아 숨쉬는 그의 가족에서 가사노동을 돕고 조카들을 돌보는 하이더르는 번듯하지 못한 존재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취업 자리를 제안한다. MTF 트랜스젠더 댄서 비바의 백댄서 일이다. 안 그래도 남성성을 의심받고 조롱당하는 하이더르는 춤을, 심지어 트랜스젠더 뒤에서 출 수는 없다고 거절하지만 그러기에는 보수가 너무 크다. 가족 내 낮은 지위를 단번에 보상해줄 만큼 큰돈 앞에서 하이더르는 결국 댄서 일을 수락한다. 하이더르가 일자리를 얻자마자 아버지와 형은 뭄타즈의 경제 활동을 금지한다. 얼마 후 뭄타즈는 남자아이를 임신한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낳고 가사노동을 하는 가부장제의 질서가 복원된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부장제가 재확립되었음에도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역설이 생긴다. 하이더르는 열정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댄서 비바에게 매혹되고, 그가 댄서로서 큰 인기를 얻는 데 공헌하자 비바 역시 하이더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집에만 머물며 답답함을 느끼는 뭄타즈 역시 새로운 욕망에 눈을 뜬다. 밤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며 자위하는 남자를 몰래 훔쳐보며, 그 역시 자위를 시작한다. 하이더르와 비바의 일상과 친밀성은 아버지와 형이 구획한 질서와 조화하지 못하고 은밀한 곳에서 조금씩 그 궤적을 넓혀나간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가부장적 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아버지는 행복할까? 아버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배우자가 죽은 옆집 여자와 서로에게 이끌린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고, 심지어 같이 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옆집 여자의 아들은 그런 짓은 집안의 수치라며 극렬히 반대하고,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피던 아버지도 자못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옆집 여자에게 더는 자신을 방문하지 말라고 선언한다. 당연히 진심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진심보다 체면과 규범이 더 중요할 뿐이다.
도대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가부장제의 덕을 보는 자는 누구일까? 하이더르의 형 정도인 듯 보인다. 직장이 있고, 자식이 있으며, 육체적 힘도 아직 상실하지 않은 나이의 장남. 그렇다고 그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는 딸만 넷이기에, 하이더르와 뭄타즈 부부가 아들을 낳는다면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대의를 상실할 것이다. 즉, 가부장제가 공고한 이 가족에서는 아직 천진한 아이들을 빼고는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
하이더르와 뭄타즈는 끝내 자살한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늘 행복할 자격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가부장제를 더 이상 온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뭄타즈는 아들을 품은 채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맞는다. 억지로 직장을 그만두고, 집 안에서도 감시당하는 자신에게 미래는 없음을 감각한 뒤의 선택이다. 하이더르도 마찬가지다. 비바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것이 실은 남몰래 숨겨둔 자신의 게이 욕망의 어긋난 발현이었음을, 즉 비수술 트랜스젠더인 비바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자기 욕망을 표출한 것이었음을 깨달은 하이더르에게도 미래는 없다. 가부장제하에서 퀴어 정체성이 불우하게 교차하는 장면이다. 더불어, 서로를 아꼈던 하이더르와 뭄타즈가 결혼 전 나눴던 짤막한 대화, 즉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집안 어른들끼리 결정한 결혼을 두고 두 사람이 가족 몰래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대화가 끝내 두 사람의 자살로 귀결된다는 것은 가부장제가 조그마한 숨구멍을 뚫어놓는 정도로는 견디기 어려운 체제임을 폭로하기도 한다. 누구도 온전히 행복할 수 없지만 누구나 그 권위를 인정하는 가부장제의 동시대적 곤경과 그로 인한 파국이 밀도 높은 드라마로 형상화된 〈조이랜드〉를 향한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유수 영화제의 호평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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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이 더 무서워할 봉인된 기억
*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가장 무서운 영화’! ‘롱레그스 신드롬’을 일으키며 북미를 점령한 <롱레그스>의 강력한 마케팅 문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영화는 완성도를 떠나 오롯이 미국 관객들에게 더 큰 공포로 다가올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잊고 지냈던 그 무언가의 봉인이 해제되어 이들의 심연에 자리 잡은 공포를 끄집어내는 느낌이랄까.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혹은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다분히 정치적인 호러 영화로서도 보인다.
자신도 모르게 남다른 직감으로 사건을 해결한 FBI 요원 리(마이카 먼로). 그의 능력을 알아차린 상사는 영원한 미제로 남은 뻔한 사건에 리를 투입한다. 그녀의 일은 30년간 계속되는 연쇄 가족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하는 것. 기억을 되짚는 것처럼 그동안 쌓인 사건 파일을 확인한 그녀는 피해자의 공통된 생일이 14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일 또한 14일인 그녀는 지금껏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암호를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과거 잊힌 기억을 떠올리며, 이 사건과 자신이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길어 올리다!
<롱레그스>는 단서를 흩어 뿌리는 것처럼 영화 속 감춰진 공포심을 유발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중 하나가 1974년이다. 어린 시절의 리가 9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롱레그스(니콜라스 케이지)를 처음 만나는 시점이다. 감독은 하필 1974년으로 시간을 설정했을까?
미국인이라면, 미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1974년은 잊지 못할 역사적인 일이 떠오를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1972년 재선을 준비했던 닉슨이 민주당의 선거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고, 이를 은폐하려고 했던 일이다. 이 진실이 밝혀진 건 1974년. 결국 닉슨은 대통령직을 내려놓는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유추하라는 듯, 극 중 리의 직업은 FBI다. 과거 사건 은폐를 위해 FBI 수사 방해 지시를 내린 닉슨을 저격하는 것처럼, 리는 집요한 추적을 벌여 끝내 진실에 닿는다. (참고로 닉슨 또한 FBI 출신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담대한 사기극을 벌인 닉슨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소환한 감독은 과거 야만과 불신으로 점철된 1970년대 미국의 상황이 곧 기억 속에 잠자고 있는 공포라 규정짓는다. 그리고 언제든 그 공포는 스멀스멀 올라와 아무도 모르게 우리는 잠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긴다. 극 중 연쇄 살인이 일어나는 집 거실에 닉슨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롱레그스의 거처가 아무도 모르는 지하에 위치한 것만 봐도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롱레그스>는 독일 근현대사를 알고 보면 더 다층적으로 볼 수 있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냉전 시대의 막바지 시기였던 레이건 시대의 상황을 녹여낸 맷 리브스의 <렛 미 인>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미국의 과거를 잘 모르는 이들은 <롱레그스>를 조금 특색 있는 호러 영화로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미국의 근원적 공포, 정치 상황까지 영역 확장
감독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넘어 미국인이 가진 근원적 두려움과 공포도 건든다. 바로 미국 역사에서 인종차별과 폭력의 상징인 KKK단이다. 롱레그스는 화이트에 집착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얼굴도, 옷도, 차도 모두 하얀색이다. 과거 어린 리에게 접근한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집에 비해 리의 집이 더 하얗게 빛났기 때문이다.
9살이 되는 아이들 모두 천사라 부르지만, 자신이 믿는 사탄을 위해 표적이 된 가족을 살육하는 그는 하얀 가면을 쓴 악마와도 같다. 이런 이유에서 기괴한 모습의 롱레그스를 본다면 백인우월주의로 똘똘 뭉쳐 유색인종은 물론,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이들을 무참히 살해한 KKK단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강한 스포일러라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롱레그스의 무서움은 사람의 가장 약한 마음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고, 이를 전염시킨다는 데에 있다.
여기에 이단 종교를 향한 두려움과 맹신, 천사의 모습을 한 악마의 존재 등 미국 호러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호러 요소까지 믹스하면서 공포감을 증대한다.
<롱레그스>가 미국 역사 속 근원적 공포의 대상을 끄집어냈다는 점은 일본 귀신을 등장시킨 <파묘>를 떠올리게 한다. 결은 다르지만 두 영화는 현 시대적 상황(미국은 대선, 한국은 친일파 역사 왜곡)에서 개봉한 터라 정치적으로도 다가오기까지 한다. 특히 극 중 민주당 클린턴 시대임에도 조금씩 닉슨 시대를 위시한 그 시절 공화당의 잔재가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닌 듯하다.
| 독특한 미장센,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
앞서 소개한 근원적 공포를 모르더라도 범죄 스릴러와 오컬트 장르를 적절히 믹싱한 <롱레그스>는 그 자체로 무섭다. 총 3개의 챕터를 통해 사건을 풀어가는 영화는 사건 비밀 봉인이 풀리기까지 화면 비율이나 미장센, 음향, 그램록 사운드를 통해 조금씩 감춰진 수수께끼의 단서를 보여준다.
눈에 띄는 건 인물을 화면 정중앙에 배치하며 여백을 강조하는데, 때때로 명확하지 않은 피사체들의 움직임에 의해 불안감을 조성한다. 여기에 인물 머리 위로 클린턴 대통령에서 롱레그스의 얼굴을 전시하는 등 소름 끼치는 장면도 나온다. 회상 장면은 4:3 비율로 화면 구성을 달리하고 어린 리의 시점으로 구성해 정보를 제한적으로 전달하는 점도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요소다.
영화의 극강 공포는 후반부 리의 과거 기억의 봉인이 풀린 후 비로소 시작하는데, 그 에너지가 엄청나다. 감독은 그동안 빌드업해 놓은 것을 한 번에 풀어버려 관객이 맥을 못 추게 한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가 순탄하지는 않다. 극 중 해독하기 힘든 암호처럼 사진, 기사, 통화 녹취록 등 정보량이 적은 단서들만 흩어 뿌려져, 리의 추리를 따라가기 쉽지 않고, 전개가 다소 느려 종종 긴장감이 와해되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하는 건 롱레그스 역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존재감이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자의 기분 나쁜 여유(?)와 기운, 이 세상을 자신 믿고 있는 사탄의 세상으로 바꾸겠다는 그릇된 신념 등이 점철된 그의 표정은 공포 그 자체다. 적은 분량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탄 만세’를 외치며 강한 임팩트를 날리는 연기는 엄지척! 극을 이끄는 마이카 먼로 또한 강인함과 유약함을 번갈아 보여주며 차세대 호러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롱레그스>의 연출은 오스굿 퍼킨스로, 그 유명한 <사이코>의 노먼 베이츠 역을 맡은 앤서니 퍼킨스의 아들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감독은 단순히 비명을 지르는 공포가 아닌 사회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공포의 근원을 가져와 조금씩 조금씩 관객을 옥죈다. 아마 아들의 솜씨를 본 아버지는 박수를 보냈을 터. 이제 그 솜씨는 스티븐 킹의 소설 원작 영화 <더 몽키>로 이어진다. 일단 창백한 긴 다리 아저씨의 공포부터 즐감하길 바란다.
사진 출처: 그린나래미디어, IMDB
평점: 3.0 / 5.0
한줄평: 미국인이 더 무서워할 봉인된 기억
* 〈씨네랩〉 초청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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