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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4-05-05 12:29:40

[JIFF 데일리] 우리를 평안케 할 ‘궁극의 수학 공식’을 찾아서

영화 〈수학영재 형주〉

 

수학영재 형주

코리안시네마 

 

시놉시스

16살 수학영재 형주는 엄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고 의심을 하게 되고 몰래한 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에서 친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혼란에 빠진 형주는 자신의 수학적 능력을 이용해 생물학적 아버지를 추리해 나가고 단짝인 지수와 함께 친부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스케이트 타기를 좋아하는 16살 수학영재 형주는 종종 이렇게 되뇐다. “나는 수학을 믿는다. 교과서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는 수학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을 안정화한다. 수학의 렌즈로 보면 오류와 변수로 가득한 세상이 순식간에 질서정연해진다. 형주가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다. 하지만 수학은 형주에게 기쁨의 원천인 동시에 필요의 대상이기도 하다. 형주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는 의심에 비밀리에 친자 확인 검사를 진행하고,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친부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물론 수학적인 방식으로.     

 

  영화는 기괴한데 따뜻하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형주가 엄마가 남긴 옛 일기장을 통해 친부 후보 세 명을 추리자, 형주의 친구는 온갖 공공기관을 해킹해 그 세 명이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형주가 최단거리로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준다. 영화는 평범한 학생이 갑자기 노련한 해커처럼 구는 이 짓궂은 장면을 능청스레 내놓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 자연스럽고 능청맞은 전개에 절로 웃음이 난다. 서사를 ‘매끄럽게’ 풀어내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수학영재 형주〉는 자기만의 호흡과 문법을 가졌다. 독립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러한 연출이 극에 몰입을 방해할 때도 종종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되레 수학으로 세상을 보는 형주의 관점에 더 깊이 몰입하게 해주고, 이 영화만의 인장으로 작용한다.     

 

 

  세 명의 친부 후보를 만나며 형주는 알지 못했던 엄마의 과거를 접하고 친부를 찾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형주와 마찬가지로 엄마에게서 똑똑한 머리를 물려받은 형주의 엄마는 언젠가는 형주가 친부를 찾아 나서리라고 여긴 듯하다. 그래서 형주의 여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남겨두었다. 형주는 엄마가 남긴 문제를 ‘풀면서’ 조금씩 삶과 가족을 대하는 자신의 공식을 바꿔나간다. 기존 공식과 풀이법이 적용되지 않으면 조금 더 복잡한 환경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공식과 풀이법을 업그레이드하고 또 다음 문제를 풀어나간다. 삶에는 오류와 변수가 무한하기에 형주의 공식도 그에 맞춰 점점 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그 어떤 복잡하고 대단한 공식도, 증명하는 데 수백 년이 걸렸다는 수학 정리定理도 변수와 오류를 통제하는 곳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형주는 때때로 삶이 수학을 초과한다는 사실, 나아가 이 명제야말로 ‘궁극의 공식’이라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이것이야말로 엄마가 형주에게 전하고 싶은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친부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지금껏 형주를 아끼는 마음으로 보듬어준 사람이 누구인지이다. 나아가 지금의 형주를 아끼며 그의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이다. 영화의 마지막, 늘 자신을 키워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민규 씨’라고만 부르던 형주가 마치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듯 ‘아빠’라는 말을 마침내 입 밖으로 낼 때, 영화는 굉장한 온기를 뿜어낸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대구 남자 둘이 만들어내는 이 뜻밖의 다정함에 입을 헤 버리고 미소 짓지 않기는 정말 어렵다.     

 

 

  〈수학영재 형주〉가 특히 인상 깊은 건 이 영화가 남성 어린이, 청소년의 성장을 다루는 다른 영화와 구분되는 지점에 있다. 모든 성장 영화에서 아이, 청소년이 마주한 세계는 부정적인 대상이다. 아름답기만 한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지양해 성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독립영화에서 어린이, 청소년이 마주한 세계의 부정성은 유독 도드라졌다. 이들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는 비판적으로 극복‧지양할 대상이라기보다는 폐쇄적인 미로, 절대적 폭력이 영구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경향이 남성 어린이, 청소년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더욱 도드라졌다는 점이다. 여성 어린이, 청소년이 주인공인 영화는 마찬가지로 답답한 세계에서도 숨이 트이는 지점을 마련해놓는 일이 잦다. 폭력적인 세계일지라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 어린이, 청소년 성장영화에서는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암울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 주요 정서였다. 각 성별에 부여된 문화적 관습과 젠더 역할의 영향일 터다. 그런데 〈수학영재 형주〉는 이 구도를 비껴간다. 마치 지금껏 그런 구도는 없었다는 듯 따뜻하고 다정하고 남성 청소년의 성장을 그린다. 〈수학영재 형주〉는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기존 한국 독립영화의 궤적에서도 주목할 만한 놀랍도록 매력적인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수학영재 형주〉 상영 시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영화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2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113)

-5월 4일 17:30 CGV전주고사 4관(343)

-5월 8일 17:30 CGV전주고사 4관(725)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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