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07 17:36:18
믿고 보는 소지섭 투자 예술영화들
51k
한국 영화계를 다채롭게 해주는 예술, 독립 영화들.
그 중심에는 소지섭 배우가 있는데요.
작품성이 높은 해외작품에 자비를 들여
수입 배급해오는것으로 유명하죠.
벌써 작품수가 30편이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소지섭의 회사 51k에서 공동제공을 맡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오는 5월 15일
개봉합니다.
제 7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전설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삶, 예술, 투쟁, 그리고 생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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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히어로에게도 행복과 일상을 묻다.
이 글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목이 너무 길어서 아래의 글들에서는 모두 닥스 2로 줄여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Phase4로 향하는 마블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새로운 히어로를 앞세운 영화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익숙한 히어로들의 빈자리는 새삼 크게만 느껴졌다. 모든 영화가 다음 편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는 마블 시리즈의 최대 불만은 적시타를 맞은 공처럼 튀어 올라 마블 관계자들이 하늘만 쳐다보게 하기 충분한 것만 같았다. 게임이 끝난 것 마냥 허망한 눈으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살얼음판 같던 마블의 명성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로 겨우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리셋해놓은 판이었지만. 이 판의 우세한 승자가 마블이 될 것이라는 것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마블의 구원투수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과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거리 두기까지 끝난(?) 시점에 침체된 영화계의 부흥이라는 기대까지도 어깨에 얹은 채 5월의 징검다리 휴일에 개봉했다.
그가 부리는 마법이 이번에도 모든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을 발휘했을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포 영화의 형식을 접목한 접근법도 꽤나 신선하고, 멀티 버스라는 장점을 십분 살려 볼거리도 가득하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닥스의 어깨에 놓인 책임감.;다시 생각해도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명배우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역은 마치 캐스팅부터 마블의 운명을 짊어진 것만 같다. Phase3까지는 아이언맨 등의 걸출한 영웅들에 가려져 할당된 분량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능력이 출중한 캐릭터임을 드러냈을 때 이 점을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큰 무리가 없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했다.
제작진은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모든 촬영 일정 등을 그에게 맞추는 등의 공을 들인 덕에 그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태 배우가 쌓아온 커리어 덕에 솔로 영화 한 편만으로도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진 히어로로 각인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새로운 마블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야 함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런 히어로에게도 마블의 현재 상황은 꽤나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멀티 유니버스라는 특성상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것도 경험과 부담을 동시에 가진 작업이었을 테고.
그러나 영화 속 베니를 보고 있자면.
제작진의 직감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는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각각의 도플갱어들을 완벽히 다른 인물들로 재연해 내고. 피터 파커에 이은 아메리카의 훈육(?)도 완벽하게 해 낸다. 자신이 애써 피했던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하고 일상생활의 불안함을 즐기는 연기까지 보고 나면. 다시 한번 그가 얼마나 위대한 배우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어마어마한 중압감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배우의 모습은 언제 봐도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왜 하필 공포인가;남은 자들에 집중하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마블은 이번 작품이 공포영화가 될 것이라 말해왔다. 대형 프랜차이즈 히어로 영화에 공포라는 장르가 언뜻 매치가 되지 않을 듯 보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마블이 취하는(혹은 바뀐) 자세와 공포가 그 어떤 때보다도 잘 맞아떨어진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마블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누가 뭐라 해도 타노스의 블립이었다."5년전 그 일"이라는 단어로 불리며 제대로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인물들이 늘 존재했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장면들을 매 영화마다 넣어 희생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고개를 떨구는 히어로들을 그리곤 했다. 하지만 이 "의식"은 마블의 침체기와 맞물리면서 팬들에게 떠난 영웅들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그러나 마블은 이제. 혹은 "드디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남은 자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부재로 가끔 긴 한숨을 몰래 쉬어야 하고. 다시는 누구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과 지키겠다는 마음이 뒤엉켜 늘 불안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일상으로 돌아와 내 몸 하나 있을 자리를 겨우 유지해야만 했다.
이 불안함과 공포는 히어로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수많은 희생 위에 쌓아올린, 아직은 위태로운 평화를 위해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진 인물들이 영화에서 충돌하지만. 모든 히어로 영화에서 그렇듯 반드시 한 쪽은 패하게 되어 있고, 그들의 염원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들에서 공포를 느끼기 충분한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생소하다고 생각한 공포는 요소는 영화에서 크게 겉돌지 않는다. 가끔 이게 진짜 마블 영화가 맞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도 만들어 낸다. 공포를 순수한 무서움이라는 좁은 의미보다 두려움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영화는 정말 성공적인 시도를 해낸 셈이고. 마블이라는 이름 하에 조금은 격하되었던 영화의 "격"도 함께 올라갔음을 느낄 수 있다.
히어로에게도 행복은 존재한다.;행복은 환상이 아닌 현실에 존재한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케이크는 한 조각만 먹을 때 제일 맛있는 거예요.
스쿼트를 몇백 개(?) 하고, 울기 직전의 상태로 주저앉아있는 내게 트레이너 선생님이 해준 말이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인바디를 측정할 때마다 그 말이 조금씩 마음에 와닿았다. 고난이 없으면 케이크가 달게 느껴질 리가 없고. 그 감정을 느껴보지 못하면 고난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돌려 말해주신 것이었다.
완다는 케이크 한 판을 한 번에 먹는 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했다. 그녀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우주에 있는 것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늘 케이크보다는 쓰디쓴 맛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완다는 인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꾼 셈이다.
영화는 완다의 행복을 향한 불가능한 여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히어로들에게도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예전의 마블 영화들은 정체성과 하늘을 찌를 듯한 의무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Phase 4에 다다른 마블은 이제 히어로에게도 능력에 대한 질문보다는 일상에서의 삶과 행복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던진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딛어야 하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냐고 묻는 것을 보니. 이제 진정으로 마블이 새로운 세대를 열 준비가 되었나 보다.
마치면서
마블 관계자들은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이라 부르는 것을 내쉴 수 있을 것 같다.
보는 내내 케빈 파이기와 샘 레이미 감독을 향한 찬사를 멈출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영화였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야 뭐 당연하고.) 애써 되찾은 마블의 명성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이기적으로 바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의 최애 장면]
단연코 자비에 교수가 완다의 의식을 구해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샘 레이미 감독을 썼던 이유에 대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음. 그 장면 때문에 영화를 두 번 세 번은 다시 보고 싶을 정도.
[이 글의 TMI]
1. 오이 오빠 소처럼 일해줘서 고마워요.
2. 오이 오빠 제발 내 시간과 돈과 사랑을 받아.
3. 우리나라 사람들 마블에 진짜 진심임. 개봉날 조조영화가 매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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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지 않는 악만큼 중요한 것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라사와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 딸과 살고 있는 남자 타쿠미(오미카 히토시)다. 조용히 일 하는 중인 타쿠미. 장작을 열심히 팬다. 톱으로 나무도 자른다. 일하다 담배 한 번 피워준다. 이런 타쿠미에겐 일행이 있다. "타쿠미 상!" 타쿠미에게 다가오는 타쿠미의 친구. 타쿠미는 친구에게 자연물의 많은 것들을 알려주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눈다. '땅와사비' 하나를 뽑는 타쿠미. 친구에게 "너희 우동집에 이거 넣어서 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니 친구가 타쿠미에게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그런데, 딸 하나(니시카와 료)는요?" 사실 타쿠미는 건망증이 심하다. 하나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때가 오면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내 정신 좀 봐! 사랑하는 딸을 데리러 가는 타쿠미. 그러나 친구가 타쿠미에게 말 한마디를 더 건넨다. "오늘 우리 동네에 글램핑을 짓겠다면서 워크숍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 올 거죠?"라고 묻는 친구. 타쿠미는 "간다"라고 답한다. 모든 것이 상류에서 하류로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영화는 서늘하게 이 마을에 일어나는 일들을 비추고, 특별한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영화의 결말은 일반적이지 않다. 영화의 느릿느릿한 템포때문에도 그렇고, 인물의 감정선엔 특히 더 그렇다. 영화의 많은 것들은 상황만 몇 개 보여줄 뿐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 덕에 영화가 좀 뭉뚱그려진 채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왜 타쿠미는 타카하시를 죽인 거야? 하나는 어떻게 된 거야?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아 의문점만 생긴다. 단순히 줄거리와 결말만 그럴까?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기이할 정도로 길어서 어느 부분에서 장면이 끊길지 예상이 잘 안 간다. 단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만 직관적으로 들어와서 '이 영화가 복잡다단한 인간성을 보여주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가 엔딩에서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공격하는 일이 영화 내내 반복됐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를 위해 영화의 몇 키워드에 대해 써 볼 것이다.
첫 번째 키워드는 단절이다. 글쓴이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단절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다. 이 팬데믹 사태는 영화에서 두 사건에 개입하며 인물 간의 갈등을 드러낸다. 우선 이 영화의 핵심 갈등은 마을의 어느 곳에 글램핑 터를 짓는 것이다. 이 글램핑 터를 짓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영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졌으니 정부에 보조금을 받기 위해'다. 이 공사는 곧 양 측을 갈라놓는 계기가 되어 중반부까지 인물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또 다른 단절은 의사소통의 단절이다. 워크숍에서 박살이 난 타카하시와 마유즈키. 주민들에게 "사장에게 말하고 오라"라는 피드백을 듣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사장과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 의사소통은 무언가 특별하다. 바로 줌(zoom)으로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 역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고 보기 어렵다. 타카하시와 마유즈키의 상사는 두 사람의 주장을 별로 귀담아 안 듣고 그냥 무작정 "선주민 남자(타쿠미)에게 글램핑 터 부지의 관리인 직을 제의해라"라고 말한다. 이 대화는 방식의 측면에서도 제약이 많은데 내용도 알차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타카하시와 마유즈키 - 둘의 상사 간의 대화가 단절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암시하는 연출이다.
두 번째로 암시하고 있는 이 영화의 단절은 건망증이다. 타쿠미는 뭐든 잘 잊어버린다. 영화 초반부에 딸 하나를 데리러 가는 것을 잊어버린다. 친구 덕에 그 약속을 떠올린다. 사실 처음 볼 때 이 장면을 그냥 별 것 없다고 넘겼다. 깜빡 잊어버리는 건 그냥 우연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잊어버린다'라는 모티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본다면 분명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타쿠미는 앞과 뒤에 일어난 일 중 먼저 발생한 사건을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화가 (후술 하겠지만) 자연의 순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특별하다. 타쿠미는 전을 잊어버리고 이후에 일어난 일만 기억했다. 이 결과로 딸 하나를 데려오는 걸 잊어버렸다. 영화가 전에 일어난 일을 잊어버린 자에게 소소한 벌을 내렸다고 볼 수 있고, 역시 타쿠미는 사건의 전부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않아 '단절'을 체화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하나를 둘러싼 단절도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초반부에 하나는 사슴의 사체(뼈)를 본다. 아빠에게 "얘는 총에 맞았다"는 말을 들은 하나. 이 하나는 연이어서 사슴을 목격한다. 초반에 사슴이 죽은 걸 봤다. 그다음 장면은 사슴이 살아있는 장면이었다. 그다음의 다음 장면은 하나가 사슴에게 공격당한 뒤의 장면이다. 이 장면들이 시간 순서대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글쓴이가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두 번째 장면이 진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어느 순간부터 혼자 다니는 모습만 나온다. 이야기를 이끄는 동력도 뭣도 없는 채 신화의 한 장면 같은 장소를 돌아다닌다. 하나가 공격당했다는 묘사가 있을 리가 없다. 엔딩에서 코피 흘리는 하나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신기루 같은 하나의 행보를 더 신비롭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소파에서 잠을 자는 하나. 카메라는 아버지 타쿠미가 하나를 업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이 끝나면 다시 하나가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과연 뭐가 진짜일까? 어떤 장면이 영화의 메인 플롯인지는 하마구치 류스케도 모를 것 같지만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와 관련된 몇 장면들은 순리를 벗어나는 연출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하나는 "숲 깊은 곳에 들어가면 사슴에게 공격당할 수 있어"라는 경고를 무시한다. 종합해 보자. 하나는 섭리를 어기는 존재다. 이를 영화 안의 이야기로, 또 연출로 보여주고 있다. 단지 하나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그 모든 모순을 이을 뿐이다.
단절 다음으로 설명하고 싶은 키워드는 양 측간의 갈등이다. 영화는 성실하게 두 집단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한다. 이 소시민스러운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우선 전반부. 영화의 주인공이 타쿠미이기 때문에 타쿠미 쪽 서사가 나온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귀여운 딸 하나와 함께 산다. 어떤 장면에선 아버지 타쿠미가 딸 하나를 업고 길을 걷는 장면이나 자연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도 있다. 인물의 이런 감정적인 부분은 사실 영화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쿠미한테 어떤 사정이 있건 없건간에 살인자는 살인자 아닌가? 하지만 이 묘사는 후반부에 타카하시와 마유즈키가 자동차에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차 안 대화 장면은 사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기시감이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에서 자동차 안의 대화를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과정으로 소화했다. 이 장면은 그 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역시 적용된다. 관객들도 인물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 장면의 역할까지 본다면 두 세계에 정을 붙인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다. 소개팅 앱이나 마유즈키의 직업이 요양보호사였다는 사실이 굳이 들어간 이유는 역시 이 둘(타카하시, 마유즈키)도 그냥 평범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 차 안 대화 장면이 들어간 시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야기의 중후반인데, 이 영화가 가령 <매그놀리아> 내지는 <도그데이즈>(2024)같이 각자의 입장이 중요한 옴니버스 영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 타카하시-마유즈키의 인간적인 면모는 초반부에 들어가야 적절하다. 왜? 이 둘에게도 마음을 열 만한 가치가 충분하고 역시 주인공이니까.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과감하게 중후반부에 배치한다. 이 장면 이후 '하나가 실종되고 - 타카하시가 살해당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을 통해 그린 인물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보여주는지 느껴지는 듯하다. 두 사람은 전적으로 동격에 놓인 선량한 사람이다. 악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 영화의 살인사건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더 직설적으로, 우리는 이 영화 하이라이트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100%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세상에 있는 다양한 것들이 서로 충돌하며 작용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위에서 단절과 양 측의 갈등에 대해 서술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필연이다. 사실 글쓴이가 쓰지 않은 부분이 있다. 단절과 갈등에 대한 부분을 더 깊게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위에서 쓴 '단절'과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은 필연이라는 키워드 하에 묶여있다. 첫 번째 예시. 마유즈키가 팔을 다치고 하나가 공격당한 사건이다. 이 둘은 전적으로 별개의 사건이다. 마유즈키는 집에서 쉬는 걸 선택했고 하나는 촌장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절묘하게 공통점을 가지며 반복된다. 두 인물은 자연의 경고를 들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두 인물에게 공통된 필연이 주어졌고 이 필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점이 갈린 것이다. 두 번째 예시. 주인공의 집에 회장님이 와서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후반부에서 다시 반복된다. 무엇으로? 마유즈키와 타카하시가 상사와 비대면으로 대화하는 장면이다. 둘은 겉으로 보기에 목적과 내용이 아예 다르다는 점에서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대화는 상호 간의 입장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렇게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일이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각기 다른 입장에 놓인 인물들이 당연한 순리를 거치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과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을 잊어버린 것 역시 상호 충돌한다. 하지만 둘이 별개의 것인 거랑 이 두 사건은 하나의 키워드로 엮인다. 타쿠미가 건망증이 심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그 줄기다. 이렇게 두 별개의 사건이 하나의 필연으로 이어진다는 방식은 영화에서 하나가 공격당한 것과도 이어진다. 바로 초반부 타쿠미와 하나가 사슴의 뼈를 보고 "총을 맞았다"라고 말하는 장면과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둘은 별개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 장면을 묘사하는 전후의 톤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전반부는 다큐 같은 템포였지만 후반부는 판타지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에 두 사건은 별개의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 같다. 하지만 이 두 장면 역시 공통점이 있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장면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이 간다. 명확한 사건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이럴 땐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필연적인 일들을 엇갈리게 제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필연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것들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가 존재해서 이 사건을 연결시킨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단순히 플롯에서만 이런 맥락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향이나 편집, 촬영 같은 것도 이 충돌을 시청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초반부. 아버지 타쿠미가 딸 하나를 업고 걸어가고 있다. 영화가 있는 그대로 보여줄 거면 하나를 만나고 업히고 하는 장면을 보여줘도 된다. 하지만 영화는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해서 부녀를 보여준다. 이러면 뭐가 생기냐. 이야기가 초장부터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기이하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이 장면에 들어가는 음향은 역시 이 연출의 연장선상이다. 사운드가 부녀간의 감정을 쭉 보여주는 듯하다가 갑자기 끊는다. 단절이다. 우리가 영화까지 가는 감정선은 단절되지만 영화 안의 내적논리는 그 순간에도 재생되고 있다. 심지어 이 장면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들리다가 끊기는 형태는 반복된다. 단절의 이미지를 하나로 이어서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영화의 편집 역시 이상한 리듬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마치 사운드가 들리다가 끊기는 것처럼 영화가 테이크를 길게 뺄 때의 규칙이 안 보인다. 가령 초반에 주인공이 물통에 물을 채울 때를 본다면 그냥 물만 길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들고 지나가는 것까지 다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장면에서는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한다. 또 어떤 장면에선 두 사람의 시점을 고의적으로 충돌시키는 편집까지 보여준다. 가령 주인공이 땅와사비를 뽑는 장면을 보면 재미있다. 카메라에서 땅와사비 뽑는 장면을 보면 땅와사비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장면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이 땅와사비를 뽑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은 자연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자연물의 시점을 동시에 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타쿠미가 자동차를 끌고 주차하는 장면을 보면 초반에는 타쿠미의 차량을 보여주다가 후반에는 차 뒤편에 있는 여자를 카메라가 보여준다. 이 주차 장면이나 땅와사비 장면이나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 안의 누군가도 함께 등장시킨 것이다. 천재적인 발상이다. 이야기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두 사건에 묘한 선후관계를 제시해서 필연으로 만든 걸로 모자라 카메라워킹으로 영화 안에 존재하는 3자를 등장시킨 것이다. 악인이 존재하지 않지만 3자는 존재하다는 것. 그리고 이 3자가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3자는 무엇일까? 영화의 첫 장면과 가장 마지막 장면이 아예 다른 맥락임에도 이야기의 틀을 이룬다는 점에서 수미상관처럼 느껴지고, 엔딩에서 새끼 사슴과 하나를 동일시시키고, 이 폭넓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영화 등장인물들이 지키지 못한 것에 책임을 묻게 하는 것. 그게 무엇일까?
글쓴이는 이 엇갈리지만 영화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을 한 단어로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쓰다가 갑자기 네이버 검색창에 '순리'라고 검색하면 '순한 이치와 도리, 또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이라는 의미가 나온다. 이치와 도리. 당연하게 당면한 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 하나처럼 영화 안에서 독립된 사건으로 움직이는 인물들도, 타쿠미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인물도, 타카하시처럼 사람은 착하지만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은 사람들도 이 순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 생각은 영화에서 하나가 실종되면서 시작되는 장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장면의 시작을 잘 보시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쪼르르 흘러가는 장면이 기점이다. 이 장면은 영화 안에서 맥락이 생기기도 한다. 워크숍 장면에서 마을회장 할아버지는 "상류에서 만들어진 일이 하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하류의 사람들이 상류의 주민들을 원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이에 힘입어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말한다. 영화 안에서 개입을 지양하고 순리에 따르자는 논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하나의 실종도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라는 맥락이라는 걸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하나의 실종이 순리에 따른 결과가 되는 셈이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물론 영화는 하나의 실종만을 순리로 단정짓지 않았다. 순리에서 벗어난 것들은 영화 전,후반부에 두 개나 있다.
순리에서 벗어난 것,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벌인 각각의 실수는 인물들에게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실수를 저지른 인간들은 영화 안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 첫 번째 실수는 타카하시의 것이다. 그 질문이 뭐냐. 영화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는 "사슴은 그래서 어디로 가지?"라는 질문이다. 타카하시는 이 질문에 그냥 대충 얼버무린다. 인간의 개발을 위해서라면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 위협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 사슴의 생사에 대해 깊게 탐구하지 않은 인간의 벌이 뭘까? 타쿠미에게 글램핑 터의 관리자 역할 같은 걸 대안으로 내민 벌은? 살인이다. 목숨을 잃는 것이다. 이 영화가 필연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고 길게 쭉 썼다. 이 필연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인간의 개입에 대해 경고하는 자연을 무시하고 대충 얼버무리다 처형당한 인간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마유즈키가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까? 자연에 의해 팔을 다친 마유즈키는 타쿠미의 집에서 쉰다. 경고를 마지막엔 받아들인 마유즈키는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이다. 만약 타쿠미와 동행했다면 마유즈키가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 '실수에 의한 처벌'이라는 부분에 근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두 번째로 범한 실수에 대해 적는 것이다. 영화가 두 상황을 필연으로 잇는다고 길게 써왔다. 그럼 이 것(타쿠미의 살인)과 유사한 상황이 영화에 있다는 뜻이겠지? 글쓴이는 총성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부. 총성이 탕 울린다. 이 총성 때문에 사슴이 죽었다는 걸 타쿠미는 이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관한다.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큰 소리지만 원인을 규명하지 않는다. 이는 곧 타쿠미도 타카츠키와 유사하게 자연의 경고를 방관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에 노력하지 않은 것. 이는 영화 후반부 타카츠키가 의무를 포기한 것과 겹쳐 보인다. 그럼 어떻게 돼? 당연한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나태한 인간이 방관한 탓에 애 먼 사슴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슴은 총을 쏜 인간에게 분노해서 하나를 공격했다. 심지어 하나는 마유즈키처럼 자연의 경고, 그러니까 회장 할아버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조건이 충분하다. 이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자를 보여주면서 순리를 묘사하는 만큼 엔딩에서 타카하시가 살해당하는 장면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에 연장선상에서 하나가 공격당한 것 내지는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심지어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대신 그 이유를 뭉뚱그려 보여준 것이야 말로 영화의 기획의도를 살리는 좋은 선택이다. 애초부터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있으면 자연 그 자체지 인간이 아니다.
카메라와 편집도 이 이야기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그대로 구현한다. 하나 보여준 다음 사슴 보여주고 사슴의 피살 보여준 다음 하나를 비춘다. 이건 편집이 의도적으로 두 존재를 동일시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살인을 저지르고 하나와 함께 도망가는 타쿠미를 먼발치서 익스트림 롱쇼트로 찍는다. 어느새 형상조차 보이지 않으면 의식이 흐릿한 타카하시가 몸을 비틀거리면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중후반부 차에서 일어나는 대화와 가락국수집에서의 장면을 통해 강박적으로 대칭을 이룬 것과는 대비된다. 균형을 어긴 인간이라는 걸 영화가 기술적인 부분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그냥 뚝딱 만든 각본 같아 보이지만 영화 안에 잡혀있는 내적 체계가 굉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영화 안에서 구현하는 것. 이거야 말로 영화의 목적이자 모든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천천히 쌓아 올려 한 번에 터트렸던 <드라이브 마이 카>의 정성이, <우연과 상상>에서 인간이 서로를 마주하며 일어나는 묘한 스파크가 터졌던 그 순간을 엔딩으로 치환시켜 관객에게 강력한 충격을 선사한다. 또한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예술의 속성과 동일시했던 것이 굉장히 신선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철저하게 우리 세상에 살고 있는 무형의 존재를 등장시키는 괴력을 보여준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치를 거부한 인간에게 응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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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영화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어느 날 문득,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마음이 불쑥 찾아 올 때가 있다.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어 질 때. 나는 영화를 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한가지가 아닌 복잡한 자기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 고민은 때로 세상을 멸망시키거나 구해야 하는 상상하기 힘든 것일 수도 있고, 점심메뉴로 다투고 난 뒤, 남자친구와 헤어질까 생각하게 되는 일상적인 것도 있다. 누군가에겐 ‘이게 무슨 고민이라고.’ 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일상을 회복하기 힘들 만큼 어려울 수도 있는 일.
일, 사랑, 가족, 친구…
인생에서 걱정과 고민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여러 괴로움이 어깨동무를 하고 덮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때 영화 속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로 부터, 혹은 별을 지나 우주 저 어딘가의 누군가로부터 뜻밖의 위로를 받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별것 없는 상황 평범한 대사 하나가 마음을 울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새로운 도전할 용기를 내기도 했다. 영화가 가진 힘은 그런 것이었다.
2011년, 나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 10년 동안 방송 일을 하며 체력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많이 소모되었던 때였다. 회사에서 긴 휴가를 낼 수 없다면 퇴사를 하고 자발적으로 휴가를 가자 ! 하고 생각 했던 때.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를 보았다.
주인공 두얼은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바람이었던 누구나 꿈꿀 법한 따스한 카페를 오픈했다. 전직장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오픈식도 거창하게 하는데, 열정이 넘치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뜸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카페를 운영하던 여동생 창얼은 개업 선물로 친구들에게 받은 잡동사니들의 물물교환을 제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매의 카페는 타이페이의 명소로 자리잡게 된다. 사실 두얼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이 카페의 분위기가 어쩐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35개의 비누에 담긴 35개의 도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남자와 마음을 주고 받게 되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물건을 바꾸는 것에 대해 지금 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나아가 공간을 주고 받는 카우치서핑에 대해 알게 되고, 먼 곳에서 온 손님을 카페에 카우치서핑으로 받으며,마침내 자신도 36번째 이야기를 찾기 위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두얼은 미술이 좋아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이모가 상하이로 떠난 다는 소식에 기회를 잡아, ‘진짜 꿈’이라는 자신만의 카페를 시작한다. 영화 시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아한 카페를 하고 싶었던 꿈과 다르게 우아한 카페는 아니네요. 최근에 바뀐 두얼의 가치관을 들어볼까요?” 하고.
두얼이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원했던 카페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 일은 두얼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 “나에게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것은 심리가치다.” 라고 말하는 이 오프닝이 영화에서 내가 좋았던 모든 깨달음을 함축하고 있었다. 삶을 살아나는 것에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정하는 가치와 기준이 아닐까?
인생의 고민이 하나가 아니듯, 꿈도 하나가 아니다. 내가 알던 세상에서 꾸던 꿈이 하나였다면, 꿈을 이룬 세상에서는 새로운 상황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또 새로운 생각과 꿈이 생겨난다. 경험이 다양해질 수록 나의 세계는 확장되고 그렇게 나는 더 커간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을 10년전에는 알지 못했다. 회사 안에서, 지금 하는 일이 최고 인줄 아는 작은 아이였다.
영화 속에서, 차분히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실행해 가는 두얼이 좋았다. 친해지고 싶었다. 세계일주를 떠난 그 어딘가에서 배낭을 메고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타이페이를 다녀오고, 실제 영화 배경이 된 카페도 다녀오고, 당시에는 구할 수 없었던 OST도 구입해왔다. 그리고 2년 뒤, 마침내 세계일주를 떠나 두얼처럼 카우치서핑도 했다. 카우치서핑이라는 것이 마치 돈을 아끼기 위해 남의 집에 자는 것 처럼 보이지만 , 사실 그 집에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그리고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세계일주는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덕분에 불편하고 어려워도 여행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쌓여, 두얼처럼 나의 가치관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 십년이 지난 요즘도 넷플릭스에서 자주 이 영화를 본다. 두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꿈과 현실 사이를 오르내리며 앞으로 뚜벅 뚜벅 나아가고 있을 그녀를 생각한다. 덕분에 나도 이렇게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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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이야기를 살짝 비튼 로맨스
우리 모두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태어난 이후, 나 자신에 대해 서서히 알게 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평가도 가지게 된다. 자아라는 것, 즉 나 자신이라는 것은 유아기,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조금씩 그 모양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죽기 직전까지도 그 자아의 모양은 계속 변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이해를 하고 나면 자아를 가만히 들여다볼 기회도 생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가진 자아가 어떤 모양인지를 보면서 그것에 대해 평가를 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듣고 싶어 한다.
그 자아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꽤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자아의 모양을 바꾸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자아의 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아를 무척 사랑하고 소중하게 대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자아를 싫어하고 부끄러워한다. 그런 내외부의 시선들이 모이면서 자신이 가진 외모와 성향들에 대해서 판단하게 만든다. 특히나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로 남들 앞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아를 부끄러워하는 남자와 그를 만나는 여자의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러브하드>는 자아를 부끄러워하는 한 남자와 그를 만나게 되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화 초반, 중심인물은 나탈리(니나 도브레브)다. 그는 계속 연애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연애 실패담을 통해 잡지사에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직장인이다. 그는 정말 자신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 연애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가 우연히 데이트 앱에서 한 남자의 사진을 보고 대화를 시작한다. 그가 메시지를 보낸 조시(지미O.양)는 사진에서 남성적인 외모를 뽐내고 있다. 또한 나탈리와 조시는 대화 코드가 아주 잘 맞아 수시로 메시시를 주고받게 된다.
사실 영화 속 나탈리는 자신의 매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자신이 가진 자아의 모양도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그저 좀 더 완벽한 남자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것이 계속 실패할 뿐이다. 어찌 보면 자존감이 높은 인물이기 때문에 특별한 고민 없이 자신에게 맞을 만한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연애가 계속 실패할지라도 그의 앞에 완벽한 남자가 나타날 거라는 희망은 놓지 않고 있다.
반면, 나탈리가 채팅 앱에서 만난 조시는 사진의 외모나 대화를 통해서 보면 완벽한 남자로 보인다. 그래서 나탈리와 더욱 완벽한 커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을 준다. 먼 거리에 살고 있어 실제 조시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나탈리는 갑작스럽게 조시가 살고있는 집으로 방문하기로 하고 그 때문에 조시의 실제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동양인 계열의 사람이고 사진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조시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은 인물이고 그 자신이 가진 자아의 모양도 잘 알지 못한다. 남들에게도 크게 인기가 있었던 인물이 아니기에 그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이성을 만나라고 시도를 했던 것이다.
조시는 외모적으로 훌륭하지 않고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너드 정도로 보인다. 또한 그는 외모 뿐만아니라 자신의 성향조차 숨기려고만 하는 캐릭터다. 그가 나탈리를 실제로 만났을 때, 크리스마스 때까지만 가짜 연인이 되어달라고 하지만 그의 모습은 대체로 자신 없고 미안한 감정이 담겨있다. 축 처진 어깨와 재미없는 농담들은 그가 가진 그 우울함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진정한 매력은 나탈리로 인해 조금씩 발견되어 간다. 영화는 조시가 가진 매력을 나탈리가 하나씩 발견해 내는 과정이 재치있게 담겨있다.
영화 <러브하드>속 나탈리와 조시의 이야기는 사실 과거 여러 영화들에서 많이 보아 왔던 내용이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과 아주 잘 나가는 인물이 만나 결국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굉장히 진부한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된 <러브하드>는 그런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인물의 특성이나 구도를 살짝 비틀었다. 꽤 잘 나가는 여성 캐릭터와 동양 계열의 남자를 연결시키면서 과거의 진부한 틀에 캐릭터의 변화를 살짝 준 것이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계 남자가 로맨스 주인공을 했던 영화가 거의 없었기에 이 부분만큼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기존 할리우드 로맨스를 살짝 비튼 따뜻한 영화
나탈리와 조시,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들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극은 유쾌한 웃음을 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연인, 가족과 함께 볼만한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많이 보던 로맨스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시감이 많이 들어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온전히 스크린 밖으로 전달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따뜻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영화에서 조시를 연기한 배우 지미 O. 양은 과거 <판타지 아일랜드>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같은 영화에서 짧은 감초 역할을 많이 연기했던 배우다. 홍콩 출신인 그가 로맨스 물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의외로 진지한 연기도 잘 소화해낸다. 나탈리 역의 배우 니나 도브레드도 그렇게 이름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배우다. <더 파이널 걸스>나 <디어 마이 프렌드> 같이 저예산 영화들에 주로 출연했던 배우인데, 이번 <러브 하드>에서 매력적인 커리어우먼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러브하드>는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빨리 벗어난 영화다. 하지만 연말에 볼 영화를 찾는다면 이 영화만 한 영화는 없을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크리스마스이기도 하고 가족과 로맨스 이야기가 같이 펼쳐지기 때문에 연말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익숙하지만 약간은 특별한 로맨스 영화를 찾으시는 관객들은 넷플릭스에서 관람해보면 좋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러브하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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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다들 주말은 건강히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3월의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콘텐츠'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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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NEW)
▶ 3월 9일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예상과 다르게 <더 배트맨>을 뛰어넘고, 1위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동안 어둡고 강렬한 분위기의 영화에 출연하던 최민식 배우가 처음으로 감성적인 영화를 맡아 관객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주말 동안 (3월 11일~13일) 관객 수 13만 987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4만 619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번 주에 기대작인 <스펜서>와 <문폴>이 개봉하기 때문에 1위 자리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 줄거리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기피 대상 1호인 ‘이학성’은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수학을 가르쳐 달라 조르는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난다.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나가는 법을 가르치며 ‘이학성’ 역시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2. <더 배트맨> (▼1)
▶ 1위를 계속 유지할 것 같던 <더 배트맨>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로 인해 2위로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주말 동안 (3월 11일~13일) 관객 수 11만 108명을 동원됐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3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지난주 주말과 비교했을 때
약 20만 명이 증가했습니다. <더 배트맨> 역시 이번 주 개봉작으로 인해 순위에 변동이 생기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3. <극장판 주술회전0> (-)
▶ <극장판 주술회전0>은 지난 주말에 이어 3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예상과 달리 <언차티드>보다 <극장판 주술회전0>이 한 순위 앞섰습니다.
주말 동안 (3월 11일~13일) 관객 수 2만 8724명을 동원됐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4만 748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저번 주 주말보다 약 7000명의 관객 수가 떨어졌으며, 좌석 판매율 또한 0.9가 하락했습니다.
▶ 씨네픽의 이번 주 91회 예측 이벤트는 한국판 굿 윌 헌팅,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영화 <더 배트맨>의 실제 관람객 연령과 성별에 따른 관람 추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성과 30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제90회 씨네픽 주말 박스오피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한 주동안 참여한 씨네픽 유저들이 결과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 한 주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40대 여성이었습니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약 14%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과 우승 상금을 수상한 분에게 모두 축하와 감사의 말씀 전해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89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언차티드> (▼2)
▶ 박스오피스 4위는 바로 톰 홀랜드가 주연을 맡은 액션 영화 <언차티드>입니다.
주말 동안 (3월 11일~13일) 관객 수 1만 332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1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1~2위를 유지하던 <언차티드>가 4위로 떨어지게 되었는데요. 다음 주에도 5위권 안에 남아있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5.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더 무비: 월드 히어로즈 미션> (NEW)
▶ 주말 박스오피스 5위는 나가사키 켄지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더 무비: 월드 히어로즈 미션>입니다.
주말 동안 (3월 11일~13일) 관객 수 1만 274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만 563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번에 4위를 차지한 <언차티드>와 관객 수 차이는 약 570명으로 크게 차이 나지 않고, 좌석 판매율의 경우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더 무비: 월드 히어로즈 미션>가 더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저번 주와 마차 간지로 <더 배트맨>이 차지했습니다.
주말 동안(11일~13일) 북미 기준 주말 매출액 $66,000,000 (한화 약 816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누적 매출액은 $238,520,826 (한화 약 2950억)를 달성했습니다.
영화 순위는 저번과 모두 동일하지만, 전체적으로 주말 매출액이 감소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3월 11일 ~ 2022년 3월 13일)
1. <더 배트맨> 6600만 달러 (누적 2억 3852만 달러)
2. <언차티드> 925만 달러 (누적 1억 1335만 달러)
3. <도그> 534만 달러 (누적 4780만 달러)
4.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407만 달러 (누적 7억 9228만 달러)
5. <나일 강의 죽음> 250만 달러 (누적 4078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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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3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3월 셋째 주도 매일 행복하고 안전한 하루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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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적으로 착한 인간은 없다
한 여자가 법정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는 법정복을 입지 않는다. 수많은 재력가, 사교계 셀러브리티들의 환심을 사고, 그들의 돈을 뜯어간 당돌하다 못해 위험한 여자. 이 여자의 이름은 애나 델비. 본명은 애나 소로킨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이 사기를 치고 다녔다는 증거가 이렇게도 많은데, 끝까지 자신은 소로킨이 아니라 애나 델비라고 우긴다.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각기 다른 상반된 입장을 표출하니, 애나를 취재하는 기자인 비비안은 점점 더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 버린다. 과연 진짜 애나 델비는 어디 있는 걸까, 그리고 그녀의 측근들은 그녀의 어떤 매력에 매료되었던 걸까.
1. 셀러브리티의 시대, 셀럽의 이면.
애나 델비를 두고, 그 주변 인물들이 느꼈던 감정은 복합적이다. 누군가는 불여우로 보았고, 누군가는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연약한 여자로 보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거만한 여자로 보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는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내릴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를 명확히 정의내릴 수 있는 단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셀러브리티". 그녀는 셀럽이었다.
셀럽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유명하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녀가 유명하다는 사실은 그녀 한 명을 판단내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쥐고 흔드는 잣대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녀는 인스타 셀럽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외면을 부러워하며, 그녀를 추종했던 수많은 팔로워들이 있었지만 그녀를 질투하며, 그녀를 까내리려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녀의 관종력에 박수를 쳤든, 비판을 했든 그녀를 판단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라는 한 사람을 상대로 각자의 경험, 편견을 대입해 그녀를 판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애나 델비가 제공한 제한된 정보로 그녀를 보고 싶은 대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셀럽들이 보여주는 한정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한 사람을 모두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는데, 우리들은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들이 전부라고 "착각"하고, 그 한정된 정보들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인생, 행동 등을 단정짓는다. 마치 자신이 홈즈라도 되는 듯이, "내가 다 경험해 봤어"라고 으스대며, 경험의 늪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확증 편향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2. 하이에나들이 득실거리는 뉴욕 사교계
애나 델비라는 사람에 대해 각기 평가가 달랐지만 그녀에 대한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그녀는 돈 많은 독일의 상속녀였다는 것이고, 그녀는 항상 자신의 부를 드러내어 상대의 호의적인 태도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항상 도도했고, 높은 수준의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애나의 일부 성격만을 보고, 그녀의 전체를 단정지어 섣불리 판단했던 그들, 이 드라마는 그들이 오히려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상류층들은 그녀의 높은 취향과 도도한 성격에 시선이 사로잡혀 그녀의 거짓말의 맹점을 보지 못헀다. 이런 걸 보고 있자면, 확증 편향은 사회적 지위, 경제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범할 수 있는 오류인 것이다. 하지만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그들이 범하는 오류는 그들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기에 자신의 판단이 무조건적으로 옳을 것이라는 자신감, 오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를 판단할 때에 내 판단이 전부 옳다는 오만 이전에 열등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경우가 그녀의 친구인 네프였다. 그녀의 친구들 중 하나였던 네프는 그녀의 사기행각의 전말을 눈으로 보고도 그녀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어준다. 그녀의 사기 행적의 증거들을 보고도 끝까지 그녀의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녀는 그 삶이 거짓이었다고 하더라도 애나가 선사한 상류층의 삶을 맛보게 해준 것만으로도 애나에 대한 충성심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애나가 네프에게 충족시켜 준 것은 가난한 자신의 삶에 한 줄기 화려함이었기 때문에 애나가 무너진다는 것은 자신이 누려온 화려함이 끝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나의 실패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혹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그녀가 그 정도의 화려함을 이룩해내었다는 점에서 그녀를 존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로 시작했지만 원수로 끝난 레이첼의 경우도 독특하다. 레이첼이 애나와 친구가 된 동기는 네프와 비슷하다. 애나의 화려한 삶의 일부라도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이첼은 네프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레이첼은 애나와의 관계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둘은 서로를 그저 이용당해 주고, 이용했을 뿐이었다. 애나는 레이첼을 시녀처럼 이용했고, 레이첼은 애나가 가진 이름값을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애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애나에게 이용당했다고 주장헀지만 사실은 그들도 애나를 이용하고 있었다. 사실 애나를 취재했던 비비안조차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정의로운 글을 쓰는 척했지만 사실 그녀도 자신의 망가진 커리어를 되살리기 위해 애나를 이용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3. 애나를 두고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성
애나 델비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fake self를 현실화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 과정이 사기였지만. 그런 그녀의 처절한 노력의 근원에는 그녀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자신이 되고 싶은 fake self를 재창조해내는 사람들이 많다. 애나 델비는 그 수많은 인스타 스타들 중 안 좋은 쪽으로 배짱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드라마를 보다보면, 상류층의 오만에 어퍼킥을 날렸다는 이유로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비안과 애나의 변호사,네프 등,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애나의 변호사가 그녀에게 시달리면서도 그녀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상류층의 오만, 판단에 지쳐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질려버린 상류층의 독단적인 태도에 폭탄을 던져버린 애나의 모습에 되려 그가 대신 통쾌함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비비안이 애나를 취재하면서 애나와 싸워가면서 정드는 모습, 그녀에 대해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모습 등을 통해 애나 델비라는 문제적 인물을 두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고, 그 감정들이 모두 입체적이라는 데에서 인간은 정말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이 드라마에서 애나델비는 수많은 착한 사람들에게 범죄를 저지른 용서할 수 없는 나쁜 사람으로 설정하지 않고, 그녀에게 당한 사람들도 무조건적인 착한 사람으로 설정하지 않아 도대체 인간에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 나는 오히려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내 자신이 관계에 대한 불안으로 복잡한 생각을 오래하기 싫어 사람에 대해 쉽고 빠르게 단정지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결국, 이 드라마는 한 여자의 사기극을 관망하기 위해 가볍게 시작하지만 관계에 대한 무거운 고민으로 끝맺게 되는 드라마인 것이다.
한 줄 평
사람은 인간을 평가내릴 때, 빠른 단정적 판단으로 안정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인간이 왜 다른 이들을 한정된 정보로 단정지으려 하는가에 대해 성찰해보면, 결국 인간의 복잡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그에 대해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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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독전 2분만에 끝내는 리뷰, 그래서 이선생이 누구야?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 영화나 특정인물에 대한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영화 '독전'을 감상했습니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이자, 故김주혁 배우의 유작이죠.
영화의 스타일은 독보적이지만 단점도 명백한 영화였습니다.영화 '독전'을 2분만에 제 나름대로 재밌게 구성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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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전 #류준열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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