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07 17:36:18
믿고 보는 소지섭 투자 예술영화들
51k
한국 영화계를 다채롭게 해주는 예술, 독립 영화들.
그 중심에는 소지섭 배우가 있는데요.
작품성이 높은 해외작품에 자비를 들여
수입 배급해오는것으로 유명하죠.
벌써 작품수가 30편이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소지섭의 회사 51k에서 공동제공을 맡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오는 5월 15일
개봉합니다.
제 7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전설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삶, 예술, 투쟁, 그리고 생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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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스터 헌터 / Monster Hunter, 2020
게임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는 징크스가 조금씩 깨지고 있습니다.
<수퍼 소닉>이나 <명탐정 피카츄>까지 성공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다음 후속작들에서도 이어나갈지는 모를 일인데요.
그런 점에서 <레지던트 이블>의 시리즈는 게임 원작 영화들에게는 가장 본받아야 하는 실사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2년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총 6편의 영화로 나왔고, 특히 마지막 6편은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할 만큼 성공 사례로 남겨져 있는데요.
그렇기에 이들 부부가 작업하는 게임 원작의 영화 <몬스터 헌터>에 거는 기대는 컸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레지던트 이블>시리즈가 흥행은 성공했지만, 평가는 그에 반비례하기에 어느 정도 감안하고 봐야 합니다.
근데, 영화 <몬스터 헌터>는 영화의 호불호를 넘어서는 논란에 휩싸입니다.
북미 개봉에 앞서 중국에서의 개봉이 1일 만에 중단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양손으로 눈을 찢으며 "Chinese, Japanese, Dirty Knees, look at these."라고 운율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종차별"이 포착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국에도 1억 달러를 넘긴 <크루즈 패밀리: 뉴 에이지>와 <소울>의 중국 흥행이 5000만 달러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고요.
그렇게, 북미에서 개봉해 현재까지 총 수익 $21,559,714로 제작비 6000만 달러의 절반도 못 벌고 있으니 마지막 후속작 예고를 머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몬스터 헌터>를 그것도 IMAX로 본 느낌은 어땠는지? - 영화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는 한 사막에서 행방불명된 군인들의 행방을 조사하는 이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던 중, 뜬금없이 사막에 번개를 동반한 폭풍이 몰아치고 이에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이곳이 어딘가 정리도 안되는 가운데 본적도 없는 괴물이 이들을 향해 공격하는데...
1. IMAX로 본다는 것에 영화관에 감사히 여기세요.
블로그에 있는 1년 전 오늘을 살펴보니 "코로나19"가 게시글에 나오는데요.
극장가에 "코로나19"가 덮치면서, 개봉이 줄어진 장르는 큰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장르입니다.
국내 영화에는 <백두산>이 마지막이고, 외화로는 최근 <원더 우먼 1984>가 있었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볼거리보다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죠.
그렇기에 관객들이 느끼는 "블록버스터"에 대한 갈증은 저에게만 있지 않을 겁니다.
해당 영화를 IMAX로 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몬스터 헌터> "시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볼거리들을 빵빵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쓰여있듯이 괴물에 중점을 둔 영화는 외양 말고도 설정에도 신경을 썼다는 것이 보입니다.
마치, "좀비"가 출연하는 이야기에는 감염이 일어나는 조건처럼 괴물들의 규칙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디아블로스"는 땅에 있는 괴물이지만 진동이나 소리에 민감하고, "네르스큐라"는 햇빛에 약하고, "리오레우스"는 이번 끝판왕이나 불을 뿜는 준비가 약점들을 관객들에게 공지합니다.
이를 알려주므로 관객들도 해당 이야기에 점점 몰입시키는 것이죠.
2. 근데, 예상한 거라 조금 다른데?
그러나 영화는 전반전과 후반전에 보여주는 분위기가 달라 이에 맞춰나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극 중 초반은 괴물의 추격도 있지만, 극의 분위기는 "네르스큐라"라는 괴물이 주도합니다.
해당 괴물들이 나오는 장면들을 살펴보면, 거미처럼 먹이를 칭칭 감안두고 어두운 땅굴에서 사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특히, 어두운 땅굴에서 보여주는 시퀀스에서 "점프 스케어"도 종종 보여주니 "액션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꽤나 으시시한 "호러 영화"에 놀랄 겁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토니 자"가 맡은 "헌터"가 출연하면서, 달라집니다.
영화는 이들이 합심해 "디아블로스"를 잡는 과정으로 전개하는데, 이에 대한 드라마는 앞서 괴물의 설정보다 촘촘하지 못합니다.
말이 안 통해 서로의 입장을 말하지 못해 이후 싸우는 개연성까지 이해하나 이를 "초코렛"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당황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어리숙한 발음으로 "초코렛"을 하는 모습은 예전 한국전쟁에서 미군들에게 해온 "give me chocolate(기브 미 초코렛)"을 연상케합니다.
지나치게 예민하게 보는 것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논란이 있기에 그렇게 보이게 되더군요. 물론, 이런 과정들을 거친 영화 <몬스터 헌터>는 앞서 언급한 볼거리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3. 역시, 이야기는 거들 뿐인가?
예상하지 못한 호러의 느낌과 순탄치 않은 전개를 끝내고 보여주는 <몬스터 헌터>의 액션은 기대했던 대로 보여줍니다.
원작 게임도 다양한 무기들로 괴물을 잡는 콘셉트라 주인공이 지난 쌍검을 제외하더라도 활, 태도 등 많이도 등장합니다.
근데, 이번 영화에서 게임과 달라진 점은 "이 세계"로 드나듬으로 현재 세계의 무기들까지 더해져 화끈한 폭발들을 연쇄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초반 "디아블로스"에는 기관총과 RPG도 있지만, 자동차로 추격전이 대표적이며 이후 "리오레우스"와는 폭파되는 탱크와 헬기들이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이렇게, 큼직큼직한 볼거리에는 아쉬움이 없지만 한껏 인중을 찌푸리고 보는 이야기나 캐릭터들은 아쉬움이 생깁니다.
앞에서 보여준 논란 아닌 논란도 있지만, 이후 "영어"를 쓰는 "제독"과의 만남도 급하게 이뤄져 아쉬운데요.
아무래도, 게임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이 세계의 설정 때문에 새로이 이야기들이 추가된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깊게 다루지는 못할뿐더러 엔딩에서 보여주는 협업을 보아도 이들의 관계가 역시, 생각보다 깊지 않아 납득 가기가 어렵더군요.
그리고, 일명 '빻빻이"로 알려진 "접수원"과 게임에서도 밥해주는 고양이 "아이루"가 빠르게 퇴장한 것은 원작 팬들에게는 아쉬운 처사가 아닐까요. (무엇보다 "접수원"이 그리 이쁘게 나왔는데 말이죠)
※ 후속작에서 잡은 괴물을 미리, 공개하는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처럼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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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복탄력성을 잃은 사람들에게
간만에 좀 울림이 있는 드라마를 보았다. 요 근래 한국의 콘텐츠들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액션이 필수인가 싶을 정도로 몰아치는 서사에 지쳐있었는데, 잔잔한 듯 하면서 몰아치는 드라마를 만났다. 정신병원이라는 일종의 금기시되어 있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부터 그 병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따뜻하긴 한데 알게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으로 치유받는다는 진리를 담은 이야기이기에 오늘도 어디선가 마음이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인간에 대한 혐오가 생겼다가도 사람을 갈구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전까지의 콘텐츠들은 정신병 환자들을 집중 조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체로 주인공의 애물단지 주변인물 정도로는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왜 아픈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다양한 정신병도 보여주기도 하지만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암흑 속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새계로 자신을 몰아넣는다든지, 갑자기 다운된 자신을 극 하이텐션으로 끌어올린다던지 등등 모두 암흑 속에 갖힌 자신을 지켜내려고 발버둥치는 그들의 각기 다른 모습들을 다양한 연출적인 요소들을 이용해 표현해내었다.
조울증 환자들이 왜 감정 기복이 심한지, 그 기복 속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혹은 망상 환자가 왜 갑자기 게임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지 등등 그들의 시각을 대리경험할 수 있게 한 연출이 탁월했다.
참 별거 아닌 말들인데, 상처가 오래 남는 말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러니"
이건 누군가에 희생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이런 말 다음에 아프다는 사람에게 소심하다는 둥, 의지가 박약하다는 둥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또다른 공격이 시작된다. 너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사실은 착각이지만) 혼구녕을 내든, 각성을 시키든 나약한 아이를 다시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징징대지마 너 누구 닮아서 이러니"
앞선 멘트 뒤에 항상 따라붙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듣다보면 내 말은 그저 투정으로 밖에 안보인다고 생각해 점점 말이 없어진다. 좋은 말만 하고 나쁜 말은 삼켜버리니 속이 답답하고 나의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니 항상 자기를 방어하는 데에 익숙하고 당하지 않으려고 항상 곤두서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다시 깨닫는다. 나에게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왜 이말을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오를까. 항상 이게 궁금했었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항상 화가 나는데, 나는 왜 화가 나는지 모르겠었다. 그런데 최근 조금 달라진 내 자신을 마주한 것이,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회복탄력성을 잃은 것 같다고 느낀 지점부터였다. 분명 예전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다시는 그런 말을 안들으리 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었는데 지금은 절망만 하고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누워있고 약속이 잡혀 나가려고 해도 침대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사는 현 시점에서 드라마 속 인물들을 보니 느껴졌던 것이, 이들은 각자의 삶에서의 절망에서 회복 탄력성을 잃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그럼 혹자는 말하겠지. 무슨 말을 해야 네가 낫겠냐라고 묻는다면 그냥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정신병은 설득으로 해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몸이 아픈 게 아니니 당신의 말이 만병특효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말을 하면 얘가 낫지 않을까 착각하는 것이다. 이유가 그사람의 소심함이었든 뭐였든간에 이미 낙오되어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도로 오라고 재촉하는 것만큼 비수가 없다.
물론 주변인들은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느려진 그들의 속도에 맞춰 다시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도록 그저 바라만 봐주는 게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정신병은 당신이 고쳐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잔인하지만 그저 지켜보시라.
아, 그런데 황여환과 민들레의 러브라인은 좀 필요없지 않았나 싶긴 한데, 물맞는 씬은 읭스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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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고, 일상은 전쟁처럼 평화롭다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
The Earth Is Blue as an Orange
Cast
감독: 이리나 칠리크
Synopsis
싱글 맘 ‘안나’는 아이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전쟁 지역 최전방에 살고 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 깊은 ‘안나’ 가족은 전쟁 속 자신들의 삶을 영화로 찍어 나간다. 그들에게 있어 트라우마를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다. (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Review
영화 상영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굉음이 들려옵니다. ‘사운드 조정이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 이게 바로 전쟁의 소리구나. 러시아와의 국지전이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사는 ‘안나’ 가족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사운드 하나만으로 늘 포격의 위험이 도사리는 전쟁의 중심지로 관객을 데려갑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안나’ 가족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 ⊙ ⊙
고통을 견디며 삶의 터전을 지키는 사람들
무너진 건물,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 포탄이 떨어진 흔적, 도로를 달리는 군용 트럭.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에는 전쟁의 피해가 그득한 돈바스 지역과 그 안에서 고통을 고스란히 견디며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래도 주민들은 전쟁에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포탄이 떨어졌을 때 고막이 찢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웃으며 줄줄 읊어대는 돈바스의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안나'의 아이들은 인터뷰 장면에서 전쟁 지역에서 사는 소회를 털어놓습니다. 포탄이 집으로 날아오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감각이 생겼다는 아이,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었을 거라며 서글프게 미소 짓는 아이, 모든 걸 사라지게 한 전쟁이 공허하다고 고백하는 아이. 도대체 아이들에게 이러한 트라우마와 고통을 안기면서까지 러시아는 무얼 얻고자 하는 걸까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포격에 대비해야 하는 ‘안나' 가족과 돈바스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터전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마냥 답답해할 수만은 없습니다. 폭력으로 터전을 파괴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법은 그 안에서 삶을 지속하는 방법뿐이니까요. 만약 돈바스 지역을 지킨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전쟁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았을 겁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인 돈바스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주요 갈등 지역 중 한 곳입니다. 2014년 3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무력 점령했고, 뒤이어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돈바스의 일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2015년 휴전 협정이 이뤄졌으나, 국지전은 끊이지 않았죠.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한 이후, 돈바스 지역에서 끊임없이 벌어진 국지전의 실상을 '안나' 가족의 목소리로 고발하는 작품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이제 좀 살아보려고 애쓰는 '안나' 가족의 이야기가 알려진 지 고작 2년 만에 러시아의 공격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올해 자행된 침공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의 전시 상황이 이렇게 오래 지속된 일인지 몰랐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이나 오랜 전쟁의 시간을 견뎌온 돈바스 주민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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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서 삶을 지탱하는 법
'안나' 가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쟁통의 비참한 가족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비극을 아등바등 견뎌내지 않고, 어쩐지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악기를 연습하고, 실을 묶어 흔들리는 이를 뽑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졸업 공연을 진행하고, 대학 합격을 기원하며 연등도 날립니다. 비록 졸업 사진의 배경이 무너진 건물이고, 그 사이로 군용 트럭이 지나가지만요.
그들이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은 다름 아닌 영화 제작에서 비롯됩니다.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영화를 찍는 가족을 찍는 영화입니다. 그들은 집 한쪽 벽면에 검은색 천을 걸어 인터뷰 공간을 만들고,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전시 상황의 돈바스를 묘사하는 영화를 만듭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어 각본을 쓰고, 영화를 연출하죠. 언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포탄이 날아오는 척 연기하며 영화를 찍습니다.
‘안나’ 가족은 황폐해진 도시에서 좋아하는 영화 촬영에 있는 힘껏 집중합니다. 그들에게 영화는 삶을 지탱하는 방법인 동시에 돈바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죠.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영화를 찍는 ‘안나’ 가족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면밀히 들여다보며, 전쟁 속에서 한 가족이 어떻게 삶을 영위해 나가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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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를 차용한 제목입니다. 파란 오렌지, 오렌지 같은 지구. ‘파랗다, 오렌지, 지구'는 논리적으로 전혀 연결되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라는 문장 안에서만큼은 세 단어가 모두 동등하게 존재하죠. 돈바스의 ‘안나’ 가족에게는 ‘전쟁, 평화, 일상’도 이와 같습니다. 전쟁도 일상이고, 평화도 일상이고, 결국 전쟁은 곧 평화인 거죠.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그들의 삶 속에 세 단어는 동등하게 존재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쟁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일상은 전쟁처럼 평화롭습니다.
Schedule in SIWFF
2022.08.27(토)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10:00
2022.08.28(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9관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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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도 모른 채로 답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영상의 ㅇ자도 모르지만 난 언론을 전공한 사람이다. 전공 학과의 거의 모든 것이 싫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누군가를 취재했던 기억이다. '누구는 잘할 거야!'라고 날 믿었던 적은 많은데 저널리스트 비슷한 걸 하면서 재밌다고는 못 느껴본 것 같다. 기자로서의 글쓰기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 나. 낯을 안 가리고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며 만드는 걸 좋아하는, 언론사가 좋아하는 특성은 다 갖고 있어도 난 그게 재미있지는 않다. 나는 나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니면 재미를 못 붙일 것 같아서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냥 딱 지금 정도로만 쓰고 읽는 게 좋은 것 같다.
근데 그러기엔 사람 만나는 게 뭔가 기 빨리는 MBTI I형의 특징이 오롯이 담겨있다.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 사실 세상이 궁금해할 것 같은 게 아니라 내가 묻고 싶은 것들이다. 또 세상이 관심 있어할 주제가 아니라 내가 호기심이 있는 주제를 고르는 것이다. 만약 이게 내 일 외적으로 작용해서 내가 궁금해하지 않는 부분을 뭔가 세상에게 묻는다면 재미없어 질게 뻔해 2년 버텨야 오래 살아남는 게 안 봐도 비디오가 될 것 같다. 근데 사실 이런 마음에는 내가 아직까지 내 지난 일에 대해 완벽하게 답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다. 그게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물음이 여러 개 생기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근데 가끔은 이 짐이 무겁다고 생각한다. 무거우니까 영화를 보는 거겠지? 시간에 집중하고. 글로 소통하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 세상에 의문을 가졌던 남자 둘이 있다. 이 두 남자는 삼촌과 조카 사이다. 헤어질 결심을 여러 번 명심했던 남, 녀를 뒤로하고 두 사람의 여행에 같이 합류해보자.
어색한 전화 한 통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자세히 보아하니 남자의 여동생인 듯하다. 뭔가 어색해 보이는 둘. 남자는 결혼하지 않은 것 같다. 여자는 아마 아들이 있는 듯하다. 금세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둘은 남매인 것 같다.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여동생 비브는 오빠 조니에게 부탁한다. 오랜 시간 동안 거리를 두고 살던 남매. 그 원인에는 엄마의 죽음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자주 보지 않았던 남매. 엄마가 아프다는 이유로 둘은 꽤나 자주 싸웠던 것 같다.
그렇게 드문드문 연락만 하고 지내던 남매. 원래 같으면 거의 먼저 연락 안 할 사이지만 오빠가 용기를 낸 것 같다. 오빠에게 사정을 들어놓는 여동생. 아마 여동생의 아들을 맡겨달라는 부탁인 것 같다. 아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오빠 조니. 조니는 아이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을 한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에 대해, 그리고 올바르게 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질문하는 조니. 그렇게 세상과 인터뷰하는 조니는, 조카 제시와 함께 세상이라는 거대한 의문을 하나, 둘 씩 채워나간다.
인터뷰어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조니의 질문하기와 제시 키우기다. 일단 극을 이끄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제시 키우기다. 육아 난이도 최상의 제시. 모든 9살 아이들의 특징이 잘 나타나듯 제시는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 맘대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고 조니의 본업인 아이들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한다. 역시 초등학교 2학년이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섭다. 그런데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톡톡 튐은 영화와 조니에게 긍정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하라는 건 일단 다 안 하는 제시. 직장인 조니가 쉬고 있을 때 엿이나 먹으라는 듯 방 안에 큰 음악을 튼다. 이어 절 땐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제시의 동거 난이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증가하기 시작한다. 자기한테 들어온 인터뷰 제의는 콧방귀를 뀐 조카 제시. 오히려 인터뷰어인 조니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엄마랑 왜 오랫동안 연락 안 했어요?" "결혼은 어떻게 됐어요?" 9살이라 가질 수밖에 없는 순수함을 가진 제시. 이렇게 뜨문뜨문 찾아오는 변수에 조니는 삶을 새로운 각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조니의 시각 변화와 함께 관객인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는데, 이 색다른 감정이 영화의 주요 소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시할 수 없던 이야기들
사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감정과 기분은 조니가 무시하면 안 됐던 내면의 상처와도 맞물린다. 왜 여동생과 교류하지 않았나. 여동생과 조니는 사실 자주 싸웠던 것 같다. 엄마에게 치매가 생겼다는 건 남매가 예민해진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자주 싸웠던 조니. 조니에게 제시는 그렇게 갖고 있던 내면의 흉터와도 관련이 있다. 이 맞이해야 했던 내면의 상처는 하나 더 있다. 사랑하던 이와 있던 이야기다. 인터뷰는 직업의 특성상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직업이다. 물론 답변을 어떻게 할지는 그 사람 마음이지만 좋은 질문은 양 쪽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게 도와준다. 이렇게 '인터뷰'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조니가 떠나보내야 했던 것에 대해 묘사하는 방식의 이야기 전개는 분명한 영화의 강점이다.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인물이 제시와 함께 이겨내야 하는 것에 대해 의문문을 던지는 이중의 효과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상호에게 계속되는 질문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영화의 메시지와도 관련 있다. 사실 인터뷰어 조니는 의문이 많은 사람이다. 날 떠났던 연인, '이 직업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회의감, 여동생과의 갈등까지 남겨진 기억에 답을 찾아 나서기 위해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근데 이 질문의 해결책을 뾰족하게 남겨두지 않는다. 그 대신, 그 구멍을 상회할 정도의 어떤 것으로 채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조니의 내적 성장은 아마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미괄식 영화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다. 늦깎이 삼촌 조니의 우당탕탕 육아일기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의 명대사들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제시의 매력보다 후자에 더 마음이 갔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보면 좋은 영화다. 그러나 어른들이 보고 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에서 조니가 제시의 대화가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그러면 조니가 제시하게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아니다. 이는 조니가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극의 후반부에 어떤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조니의 대사에서도 다시 조명된다.
우리는 어른이다. 직장에 치일 때, 취업이 안될 때, 연애에 실패할 때, 인간관계에 질릴 때, 수도 없는 무엇에 포기하고 싶거나 혼자 일어날 힘이 없을 때 항상 숨겨야 이득이 된다고 믿고 있다. 지금 당장 글을 쓰다 말고 '나 힘들어요'를 한 2천 자 쓰면 읽는 이들이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또 세상을 향한 걱정을 주변 사람에게 전부 늘어놓기도 참 두렵다. 왜냐면 그 사람들도 같은 고민하고 사는 거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비슷한 상황 연출과 그에 맞는 설루션까지 잔잔한 로드무비로서의 역할에 300% 충실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대사는 호아킨 피닉스가 맡은 조니가 내레이션을 통해 전하기도 한다. <어머니 : 사랑과 잔인함에 대한 에세이>, <카메라맨이 할 수 있는 불완전한 목록>까지 에둘러 말하면서도 우리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 그냥 무작정 빛나는 삶의 위로를 전하는 게 아니다. 보다 깊이 있는 대사들, 또 배우들의 연기, 시각적으로 중요한 흑백 연출까지 영화는 뭐가 중요해서 어떤 걸 보여줄지에 대해 깊게 알고 있는 듯하다.
날 키워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마이크 밀스 감독의 <가족 3부작>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의 전작 <비기너스>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의 20세기>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또 이 작품 <컴온, 컴온>에는 동생과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앞 두 작품에서 장점을 승계하기도 했다. 두 작품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의 본인으로 돌아가세요" "깊은 말보다 함께 있는 것의 힘"일 텐데, 영화는 앞 두 작품과는 아주 살짝 방식으로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우선 비슷한 방식은 대사 뉘앙스의 힘이다. 영화 대사 좋다. <우리의 20세기>에서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됐어요?'라고 묻는 게 생각난다. 근데 영화가 온 힘을 다해서 그 말에 힘을 빡 주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게 관계를 통해 이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사실 중요한 건 여기에 있다. 말은 오래 남는다. 근데 그 말을 한 사람은 더 가까이 우리 주위에 있다. 한 번 위로가 되는 존재는 다음번에 계속 봐도 좋다. 엄청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이 문장은 우리가 놓치고 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이 '놓친 것'에 관한 영화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아주 살짝 다른 것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관한 질문을 묻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어린아이에게 물어 올바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또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의문 투성이었던 지난 과거에 조니가 대답을 하는 형식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 둘은 기존의 영화들이 갖고 있는 것에서 살짝 뒤집어 각자의 동심에게 질문을 요청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의문 투성이인 세상에게 지나간 일을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대답을 했나? 의 답변은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이 <컴온 컴온>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아마 우리는 살아있는 평생 동안 이 질문에 끊임없는 대답을 하며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내가 살아온 삶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의 연속이었다. 이 의문에 끊임없이 질문한다. 어쩌면 내가 만든 불행일 수도, 행복일 수도 있다. 이거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스티븐 스트레인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건 참 질리지만 사실이다. 영화는 이런 현대인들에게 손을 건네며 '컴온!'이라 외친다. 답을 한 번 얻었다는 건 두 번, 세 번 얻을 수도 있으니 이들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좋은 작품이었다. 괜히 <탑건 : 메버릭>과 <토르 : 러브 앤 썬더>, <범죄도시>, <헤어질 결심>에 묻힐까 아쉽긴 하다. 그래도 시원한 극장에서 이 영화와 함께 나를 만들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조커>만큼은 아니더라도 와킨 피닉스의 호연 역시 빛나는 영화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선한 힐링 로드무비를 원했던 분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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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가 최악인가, 사람이 최악인가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 글 분량을 채울 수가 없겠더군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제목에서 최악이 되는 대상은 누구인가. 언뜻 들어서는 상대방에게 최악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과연 그럴까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영화 안에서 두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 분)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최악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율리에와 사랑에 빠진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리 분)과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롬 분)는 각자의 매력을 지닌 이들이긴 하지만 완벽한 연애 상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도 연애할 수 있을 것 같은 율리에는 왜 악셀과 에이빈드를 만나 자기 자신에게 못할 짓을 하게 되는가. 악셀과 에이빈드를 만나며 활기차 보이는 율리에지만 정작 가장 밝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다. <라우더 댄 밤즈>를 통해 한 가족을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파헤치고, <델마>에서는 사랑에 빠진 초능력자 레즈비언 여성의 성장기를 보여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 두 이야기를 합친 것 같은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율리에는 에이빈드를 만나기 전 이미 악셀과 연인 사이였고,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되는 오랜 커플의 전형처럼 보인다. 미디어에서 흔히 그려지는 오랜 커플이 그렇듯 권태기가 찾아오고, 서로에 대한 의리가 있어 대놓고 바람을 피우지는 못한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에이빈드는 악셀보다도 잘 통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옷이 쌓인 침대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급기야 서로 화장실에서 배설하는 모습까지 공유하지만 선을 넘는 신체 접촉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치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듯이 헤어질 무렵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바람은 아니라고 도장찍듯 대화를 나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율리에는 에이빈드의 이름을 묻지 않고 헤어지지만 역시나 많은 영화에서처럼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우연히 다시 만난다. 율리에는 연인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만큼 악셀에게 더 이상 설렘을 느끼지 못하면서 왜 헤어지지는 못하는 것일까. 이 장면은 율리에가 악셀에게 최악의 연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악셀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기 자신에게 못할 짓을 하는 율리에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율리에가 에이빈드를 만나기 전 악셀의 가족을 만났을 때 악셀과 나누는 대화는 도통 두 사람이 연인인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대화를 나누는 주제마다 부딪히고, 특히 아이를 갖는 문제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는 율리에와 악셀은 가족을 이루는 문제에 있어서는 율리에가 철저하게 약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자고 싶지 않다며 떼를 쓰는 아이를 혼내고 보채는 건 결국 장면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이기에 율리에에게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세세한 과정에서 실익을 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악셀은 같은 장면을 보고도 율리에의 입장에 공감해주지 못한다. 심지어 임신과 출산의 주체가 여성인 율리에가 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할 때 율리에는 악셀과의 관계에서는 가족을 이룬다는 전제 하에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치만을 점유한다. 영화 중반부 만화 작가로 일하는 악셀이 과거에 그렸던 여성 비하적인 내용이 문제가 되면 악셀이 율리에(를 포함한 여성)에게 최악의 사랑이 될 것을 관객은 짐작하게 된다.
이런 악셀에게 지쳐갈 때 만난 이가 아이 생각이 없다는 에이빈드였다. 임신 출산의 주체로서 여성을 인정하고 선택권을 온전히 넘겨주는 정도는 못 되지만 최소한 에이빈드와는 가족을 이루는 문제에 있어 다툴 필요가 없다. 악셀과 함께 사는 집에서 일어나 부엌 불을 켠 순간 세상이 멈추고 에이빈드를 찾아 밝은 표정으로 거리를 달려나가는 율리에의 모습은 악셀과의 세상은 더 이상 역동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모두가 멈춘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있는 에이빈드는 멈춘 세상에서 유일하게 매력적인 남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에이빈드와 키스 후 돌아와 부엌 불을 껐을 때 비로소 악셀은 움직인다. 부엌불은 악셀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메타포로서 작용하는데, 밝은 빛 아래에서 결점까지 보이는 악셀을 더 이상 율리에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런 악셀과 살기 위해서는 불을 끄고 어느 정도 흐린 시선으로 악셀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에이빈드라는 선택지가 생긴 율리에는 어둠 속에서 악셀과의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 자리에서 악셀과 이별을 통보하는 율리에는 다른 사람이 생겼느냐는 악셀의 질문에는 거짓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리에가 악셀에게 최악의 인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제 에이빈드를 만나 안정된 것처럼 율리에는 보이지만 파티에서 마약에 탐닉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에이빈드가 율리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에이빈드의 전 여자친구인 수니바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며 자신과 비교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이빈드와의 관계가 안정되어 갈 때쯤 율리에는 두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맞닥뜨린다.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 그리고 악셀이 암으로 죽어간다는 것. 아이 생각이 없던 여성이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취하는 행동은 자신에게 최악인가, 연인에게 최악인가? 임신 자체가 모체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때 어떤 선택을 하든 율리에는 자신에게 최악일 수밖에 없다. 아이 생각이 없었음에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명을 두고 출산을 고민하는 동시에 악셀을 찾아간 율리에는 에이빈드가 아닌 악셀에게 먼저 임신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리에가 에이빈드에게 최악의 연인인가? 임신한 여성의 선택의 결과는 본인이 오롯이 그 책임을 감당할 뿐 주변인의 그 누구도 당사자만큼의 책임을 지지는 못한다.
모호하게 묘사되긴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율리에의 선택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연애하는 내내 자신에게 최악의 선택만을 하던 율리에는 커리어를 이어가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율리에를 인정하지 않고 여성을 공개적으로 비하하던 악셀은 아마도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에이빈드는 율리에를 떠나 새로운 인연을 맞이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에이빈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율리에는 사랑을 떠나고서야 자기 자신에게 최악인 사람으로부터 벗어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자신에게 최악일 만큼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며 이를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을 영화는 밝은 톤으로 보여준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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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기록과 해석의 순간
OVERVIEW
2018년 브라질, 우연히 손에 넣은 16mm 필름에 담겨 있던 낯익게 느껴지지만 먼 곳에서 온, 그리고 오래 전에 촬영된 기이한 이미지들에 충격을 받아 이 영상의 기원을 조사하기로 한다.
REVIEW
이 영화의 감독 자나이나 나가타는 오래된 16mm 영사기 점검을 위해 릴을 하나 구입했는데, 선물로 작은 필름 롤이 함께 들어 있었다. 이 롤에는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한 가족이 휴가를 보내는 19분 분량의 홈무비가 담겨 있었다. 감독은 이 발견의 순간부터 컴퓨터를 떠나지 않고 인터넷과 모든 도구를 동원해 이 휴양지 이미지의 실제 배경을 알아내는 조사에 착수한다. 무해한 필름 롤과 아마추어 이미지가 주는 정보로 단순한 인터넷 검색에서 끝날 줄 알았던 이 특별한 수사 스릴러 형식의 영화는 결국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시기 일어난 인종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드러낸다. (문성경)
"사적인 영화"는 감독이 영사기 점검용으로 "릴+사적인 영화"라는 제품을 온라인 구매하면서 시작된다. 릴과 함께 들어있던 19분 가량의 영상은 누가 봐도 가제 그 이상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제목의, 출처 불명의 무성 필름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미 편집한 영상이었다. 즉 어떤 의도가 이미 반영된 기록물이었다.
검은 화면에서 타이핑되는 글씨로 시작한다. 타각타각 소리와 함께 화면에 타이핑되는 속도대로, 관객은 감독이 겪은 정보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이 영화는 19분의 풋티지 영상, 그리고 영상 속 정보의 조각을 찾아 따라간 감독의 여정을 관객이 고스란히 따라가게 한다. 영화 <서치>에서 딸을 찾는 아빠의 탐색전을 흥미진진하게 본 사람이라면, 다음 장면을 궁금해 하며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단순하게 크루거 국립공원이다. 얼핏 사파리에 가서 재미있었던 시간을 담은 기록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감독이 설치한 음악이 고조되면서 계속 의문을 갖게 만든다. 끼긱끼긱 퉁겨지다 득득 긁히며 끊어질 듯 말 듯한 현, 퉁퉁 불규칙적으로 쏟아지는 타음이 불안을 고조시킨다. 기린이 걸어가거나 원숭이가 움직이고 가젤이 뛰고 물 안의 하마들이 지나가는 그 자연스러운 장면들조차 불안해 보인다. 그러면 궁금해진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 영상을 편집했을까? 코끼리의 걸음이 왜 반복되고 있을까? 앉아 있는 사자를 왜 재차 비출까? 사파리인데 조금도 경쾌하지 않다.
불안 안에서 궁금해하고 있노라면 전통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춤이 나온다. 사파리에도 있던 백인 아이가 춤을 지켜보며 슬며시 화면을 지나간다. 불안한 예감은 어두운 냄새를 맡는다. 도시의 길거리와, 현란한 복장의 인력거꾼과, 놀이기구가 있는 해안 도로와, 푸르게 어두운 아쿠아리움, 잔디밭, 사람들, 부유한 옷차림의 백인들과, 들판의 오두막들... 영상이 나아갈수록 어둡고 불편한 감각이 느껴진다.
감독은 꼼꼼하고 성실하게, 차곡차곡 파고든다. 영리한 구성을 따라가다 보몀 어느새 불안은 경악이 된다. 생각지도 못한 얼굴과 이름들을 마주하게 된다. 평화로운 여행의 기록일까 싶었던, 아니 실제로 상당 부분 그랬을 이 영상에는 착취의 역사가 배어 있다. 타인의 피를 팔아 제 배를 불린 사람들의 기억이 스며 있다. “사적인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전혀 사적이지 않은, 역사 교과서에 길이 실릴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보다 보면 궁금해진다. 사적인 기록은 정말 사적인가? 기록은 언제까지 "사적"일 수 있는가? <안네의 일기>가 그랬듯, 기록은 서랍 안에 있을 때만 사적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읽히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가끔은 작가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의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안네가 일기를 쓸 때 안네가 차마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처럼, 19분의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한 이가 이 영화를 상상했을 리 없다. 그냥 값비싼 취미였는지도 모른다. 코끼리가 걷는 장면이 반복되는 게 단순히 재미있어서 별 생각 없이 했는지 모른다. 아이의 미소를 사랑해서 계속 담다 보니 모인 영상들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의도였든, 영상엔 단순히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것만 담기지 않았다. 길 가다 불려와 쭈뼛거리며 카메라 앞에 선 여자의 얼굴에 어린 경계와 불안, 그 자리를 피해보려고 얼굴을 가리는 사람, 환하게 웃는 백인 아이 옆에서 현란한 옷을 입고 등짝보다도 커다란 모자를 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인력거를 끌어야 하는 사람.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분리되어야 한다고 허울 좋은 단어를 끄집어내면서도 착취의 순간에는 옆에 있는 걸 불편해 하지 않았던 누군가들의 얼굴. 영국 여왕처럼 차려입은 여자들과 말쑥한 정장을 한 남자들의 만찬, 연설.
마치 그 대조를 의도한 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19분의 영상 바깥에서도 동일한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감독은 영상이 촬영된 시점에서 서서히 현재까지 이야기를 끌어온다. 역사가 이 영상이 찍히던 시절의 남아공을 지독한 인종차별의 시절로 기록함에도, 어떤 이들은 해안도로와 수영장과 원색의 옷자락과 환한 미소에서 풍기는 부유한 기운을 잃어버린 천국으로 기억했다. 없던 추억까지 제조해 버리는 힘이 있는 밴 모리슨의 음악을 배경 삼아, "비티지"하고 "레트로"한 색감 속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러나 모두에게 추억의 풍경일까? 다른 누군가에게도 천국이었을까? 영화는 희생을 담아내지 않고도 희생의 얼굴을 비춘다. 그렇게 누군가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사적인 기록은 공적인 역사의 순간으로 읽힌다.
다큐멘터리가 역사적 순간을 말할 때, 한 축이 기록이라면 다른 한 축에는 해석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해석을 통해 기록과 해석의 존재 의의를 동시에 비춘다. 기록을 읽어내는 과정에 관객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동참시키고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우리를 내려놓고 묻는다. 1960년대의 일에서 지금 여기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지. 여전히 허울 좋은 말에 가려진 차별과 격리로 누군가를 투명하게 만드는 시도들은 없는지. 그 현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눈은 어디에 있는지. 영리한 영화는 이렇게 존재 의의를 스스로 증명한다.
2023. 04. 28 19:30 메가박스 전주객사 9관 (172)
2023. 04. 30 14:00 메가박스 전주객사 9관 (338)
2023. 05. 05 17: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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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 1부] 감상평 - 팝콘무비로써는 합격이지만, 어딘가 헐거운 l 아주 약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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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팀업무비의 특성상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몇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매력적인 빌런, 혹은 적대자일 것,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능력들을 최소 한 번이상 임팩트있게 연출할 것.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관이 관객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될 것. 그밖에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제가 말씀드린 이 세가지만 갖춰져도 분명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일정 부분 긍정하게 만들 수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는 어땠을까요? 오늘 영상은 스토리보다는 전체적인 감상평으로 이뤄져있으나, 리뷰의 특성상 캐릭터, 혹은 개연성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시는데 큰 무리가 없는 선에서 작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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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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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오기 전 영혼들이 머무는 '태어나기 전 세상'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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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부쟁이> 메인 예고편
어제의 일진, 차원이 다른 학생(?)들을 만나다! 역대급 코믹 학원 액션 [아부쟁이] 메인 예고편 최초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