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13 15:07:06
5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박스오피스
잼바르는 백창기와 폴리스 다크 아미 장이수의 쉴 틈 없이 웃기는
유쾌 상쾌 통쾌 영화 <범죄도시4>. 3주 연속 1위는 물론 시리즈
최초 4000만 달성 까지 이뤄냈다고 합니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한국영화 시리즈 최초 누적 관객수 4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범죄도시4>는 둘째 주 주말 누적관객수 970만 명을 넘어서며 조만간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한편 새롭게 등장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주말 관객수 32만 명을 기록하며 2위, <쿵푸팬더4>가 누적관객수 175만 명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습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개봉 첫 주 전 세계에서 1억 29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CG와 영상미에 대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어 준수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1위를 지키고 있던<스턴트 맨>이 2위로 내려오고, <챌린저스>가 지난와 같이 3위를 유지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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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의 여정이 수직적인 세상에 가져올 변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소영(이지은)'은 부산의 한 교회 베이비 박스 앞에 아기 '우성'을 내려놓고 떠난다. 때마침 베이비 박스 당직을 서던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소영이 남긴 쪽지에 아기의 이름이나 연락처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그러나 다음 날 빚에 시달리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이 불법 입양 브로커로서 길을 나서려는 찰나에, 예상치 못하게 엄마 소영이 아기를 되찾기 위해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결국 자신들이 브로커임을 고백한 상현과 동수. 이에 소영은 우성이의 양부모를 찾는 여정에 동행하기로 한다. 한편 이 일련의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한 형사 '수진(배두나)'은 후배 ‘이형사(이주영)'와 함께 두 브로커를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그들의 뒤를 쫓는다.
베이비 박스는 부모의 사정상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로, 한국에서는 2009년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처음 시작된 후 현재 3곳의 종교시설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실 베이비 박스는 선한 목적과는 별개로 논란의 대상이었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아이를 유기하게 만든다고 말해왔고, 긍정하는 쪽에서는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미혼 부모처럼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현실과 이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의 태도가 중첩된 결과 베이비 박스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양측 모두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촬영하고 연출하여 제75회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브로커>가 베이비 박스 앞에서 시작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이미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은 가족이나 소외된 이들의 삶처럼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문제들을 스크린 위로 끄집어 올리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작품은 서늘한 현실감을 유지한 채 해당 문제들을 파고들면서도, 섣불리 비판할 대상을 정하는 대신 그 문제를 겪는 당사자들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경우도 많다. <브로커>도 마찬가지다. 영아 납치와 인신매매를 자행하는 브로커의 여정을 포착한 이 로드무비는 악행과 선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수직적인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순
그 아이러니는 울진의 한 수산물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우성이를 사려는 한 부부를 만난 소영, 동수, 상현. 부부는 우성이의 눈매나 눈썹을 살펴보면서 못생겼다며 외모를 품평하고, 친부의 직업이나 과거사를 따진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본래 약속보다 낮은 가격에 할부로 우성이를 구매하겠다는 제안하는 부부. 이에 당황한 상현과 동수는 어떻게든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 흥정을 해보지만, 아기를 비하한 부부에게 분노한 소영 덕분에 흥정은 이내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수산물 시장에서 생선 대신 아기가 거래 대상인 것이나, 아기를 파는 사람이 아기의 가치를 존중해 달라고 구매자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는 것이나, 브로커에게 더 나은 구매자를 찾아달라는 소영의 모습은 무엇 하나 말이 되지 않는다. 아기를 팔려고 하는 순간 이미 도덕과 윤리와는 거리가 멀어진 듯 한데, 그 안에서 또 도덕을 따지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이처럼 악행을 저지르는데 정작 그 안에서는 선의가 느껴지는 모순은 러닝타임 동안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때 작중 모순은 서로 다른 세상의 논리가 충돌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직적인 세상 안에서 수평적인 관계가 부딪힌 결과다. 우선 <브로커>의 세상은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 계급 우화"인 <기생충>처럼 수직적으로 묘사되며, 영화는 꾸준히 오르고 내린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날에 소영은 아기를 버리기 위해 골목길을 올라가고, 수진과 이 형사는 그런 소영을 내려다본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친구를 만나 꿈을 이룰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헛헛한 인생 이야기를 한 동수는 보육원으로 향하는 긴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동선과 시점에 더해 인간관계도 수직적이다. 조폭들에게 5,000만 원을 빚진 상현은 일원 중 하나인 태호 앞에서 쩔쩔매고, 후반부에는 그와 담판을 짓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간다. 영화의 배경마저도 수직적인데, 부산답게 걸어 올라가기조차 벅찬 계단들이 잊을 법하면 등장한다.
거듭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선, 시점, 관계는 세 인물이 사회적 시스템에서 가장 아래에 있고, 밀려난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러 상자인 베이비 박스, 네모난 봉고차와 보육원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베이비 박스가 상현, 소영, 동수 개개인의 삶이라면, 자동차는 가족을 상징하며, 보육원은 가족보다 조금 더 큰 사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육원 밖에는 사회라는 가장 큰 상자가 있다. 이때 가장 큰 상자로부터 작은 상자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어려움은 결국 베이비 박스에 아이가 들어가게 만든다. 상현은 조폭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불법 브로커로 활동한다. 보육원을 떠났지만 이렇다 할 희망을 찾지 못한 동수는 상현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밀매한다. 가족을 이룰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소영은 아기를 베이비 박스 앞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영화는 수직적인 세계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사연을 베이비 박스 안에 담는다.
수평의 동행이 만든 가족
그러나 <브로커>는 아픈 사연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지상과 지하, 계단 위와 아래 사이에 냄새조차 넘어가서는 안 될 명확한 선이 있었던 <기생충>과는 달리 <브로커>는 비극으로 치닫지 않는다. 상승과 하강의 세계가 극한으로 향하기 전에 동행이라는 이름의 수평축을 새로이 끼워넣기 때문이다. 소영이 동수에게 자신이 꾸는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수평적 동행이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꿈속에서 비를 맞고 깨끗해지는 꿈을 꾼다는 소영은 그 꿈이 그저 꿈일 뿐이라고 자조한다. 그러자 동수는 두 명이 쓸 수 있을 만큼 큰 우산이 있으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소영이 비를 맞으며 아이를 버렸던 것을 생각하면, 고물이 되어버린 봉고차 안에서 만난 이들과의 관계가 그 비를 피할 우산이 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봉고차를 세차하던 중 다섯 일행이 비눗물을 뒤집어쓰고, 상현과 소영이 각자 쓰던 가명 대신 본명을 털어놓으며 깨끗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수직적인 세상과 대조되는 수평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봉고차의 여정과 인천으로 향하는 KTX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동행은 수직적인 세계에서 지친 이들, 특히 가족이 부재한 이들이 봉고차 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치유하는 과정이라서 특별하다. 성매매 여성인 소영은 상현과 동수를 만나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소속된 느낌이 무엇인지를 새로이 깨닫는다. 보육원 출신인 동수는 소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다. 이혼 후 딸과 별거 중인 상현은 몰래 보육원을 빠져나와 봉고차에 탄 해진에게서 딸의 모습을 본다. 이는 오르내리는 대관람차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유독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 찬가로 이어지는 봉고차
이때 영화는 유대감과 치유의 이야기를 인간 내면의 순수함과 도덕성에 대한 믿음으로 확장한다. 사실 상현과 동수, 그리고 소영은 예기치 못하게 만났고 또 좋은 일로 만난 것도 아니었다. 아기를 유기하는 소영의 행동이나 그 아기를 교회에서 맡아 기르는 대신 팔아버린 상현과 동수의 행위는 누가 뭐라 해도 범죄였다. 그러나 영화는 악행 기저에 깔린 선의들의 만남에 주목한다.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두고 떠났지만 되돌아온 소영의 모성애, 아기를 잘 키워줄 적임자를 찾아주려 했다는 상현의 배려심, 버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동수의 동병상련은 한 데 모여 치유의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 물론 자신들의 행적을 둘러대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진심인 선의가 만나 새 가족을 만들고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이 감동은 엄마이자 딸로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기로 결심한 소영이 모두에게 전하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로 함축되어 있다. 달리 말해 이 대사에는 악행을 저지른 모든 이들의 내면에도 미처 꺼내지 못했을 선함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함 덕분에 모두의 생명이 특별하다는 인간 찬가가 담겨있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의 끝에 다다르면 모두가 최선을 선택하며, 자신들이 마주해야 했던 인생과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책임을 아이 엄마에게 묻는 대신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인간의 선의에 대한 희망은 <브로커>만의 따스함이 감도는 영상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인위적인 설정 대신 햇빛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있는 그대로 포착해 찍어낸 덕분이다. 상현과 소영의 진심이 튀어나오는 KTX 안에서의 대화 장면이 밝음과 어둠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처럼 수직의 세상에 피어난 선함이라는 주제는 송강호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이 돌아간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도 소시민적으로 수직적인 세상을 사는 인물이면서도 수평적 여정의 끝에서 인간의 선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인 상현은 영화에 담긴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흔들리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렇다고 해서 <브로커>가 마냥 따뜻하고, 희망적이고, 밝은 태도만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답게 상현, 동수, 소영을 무조건 미화하거나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즉 수진의 시점에서 따라가도록 권한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은 수진의 세계를 보여준다. 수진이 소영을 내려다보는 구도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소외된 이들을 보는 시점으로, "버릴 거면 낳지를 말라"는 수진의 태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또 아기를 실은 상현의 봉고차를 수진이 조용히 쫓는 장면에서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것도 관찰자이기에 관객이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그녀의 관점을 강조해준다.
그리고 수진의 관점과 태도가 뚜렷하기에 브로커 일행을 쫓는 그녀의 여정에는 더욱 깊은 드라마가 담긴다. 단순한 관찰자였던 그녀가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동행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이면을 마주하고, 자기 내면에 찾아온 혼란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녀의 냉철한 신념과 태도는 "낳고 나서 죽이는 게, 낳기 전에 죽이는 것보다 죄가 더 가볍냐"는 소영의 반박에 꺾인다. 아이를 매매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그들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편견과 제도의 공백이 그녀를 흔든다. 또 멀쩡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만 비로소 우성이가 행복할 거라는 그녀의 고정관념은 "아이를 가장 팔고 싶은 건 나였나 봐"라는 대사를 통해 고발된다.
이렇게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가 필요 없는 세상을 원한다면 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사람의 선의를 믿으며, 미리 단정 짓지 말자고 설득한다. 정당화될 수는 없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직과 수평의 충돌 안에 담는다. 사회 제도에 대한 의문과 통념으로 자리 잡은 윤리적 판단에 대한 의심으로 악행과 선의의 딜레마를 장식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수진과 동일한 입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결말을 마주한 순간 긴 여운 속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다만 영화적 뚝심과는 별개로 <브로커>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크다. 다루려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여정, 곧 소영과 우성이/브로커인 상현과 동수/브로커를 추적하는 수진과 이 형사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사실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를 고려하면 이 많은 캐릭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이는 특히 최후반부에 얽히고설키는 상현, 소영, 동수, 수진의 선택에서 그들의 심경 변화가 한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보육원 시퀀스처럼 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도 감상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물론 이러한 단점은 이지은의 연기가 눈부시게 빛나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을 하나로 묶는 접점도 소영이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것도 소영이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의 퍼포먼스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덕분에 언제나 수심 가득하던 얼굴에 슬며시 웃는 미소를 지나 당찬 의지가 담기고, 진한 스모키 화장이 지워지는 그녀의 변화만 따라가도 <브로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다만 완성도 때문에 영화의 온기와 따스함이 지닌 설득력이 약화되는 게 결국 문제다. 인신매매와 살인처럼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심각성을 지닌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낙관적이고 편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 듯한 경향성이 살짝 엿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상적이고 작위적인 화법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 끝내 설득되지 않는다면, <브로커>는 그저 순진하게 풀어낸 인간 찬가로 기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가 갖는 중요성과 가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역량과 명망을 생각하면 이는 퍽 안타까운 결과다.
A(Acceptable, 무난함)
인간의 선함을 믿어보자는, 따뜻함과 나이브함 사이에 있는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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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어버린 삶을 위한 환대의 공간
이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증명하는 삶의 고달픔
언제나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은 얼마나 고달픈가. 토리(파블로 실스)는 도로를 위험하게 건넜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주의를 듣는다. 여기까지는 어린이를 염려하는 경찰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경찰관은 토리와 로키타(졸리 음분두)에게 신분증을 요구한다. 아이들은 위축된 상태로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카드와 종이를 내보인다. 아프리카에서 함께 배를 타고 건너와 벨기에에 정착하려 하는 11살 토리와 16살 로키타에게 이것은 익숙한 일상이다. 자신이 이 땅에 머물러도 괜찮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체류증은 중대한 문제다. 토리는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것이 인정되어 체류증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로키타는 토리와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워 체류증 발급 인터뷰에 번번이 실패한다. 두 사람은 가족 그 이상의 관계지만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자격이 인정된다.
로키타는 가짜 체류증이라도 얻기 위해 마약을 재배하는 폐쇄된 창고에서 일하게 된다. 이 나라에 머무를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은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로키타는 체류증을 얻기 위해서 마약을 키우고 팔며 성추행과 성폭행과 같은 온갖 무례함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의 자격조건은 ‘얼마나 처리하기 쉬운가’에 달려있고, 사라져도 누구도 찾지 않을 로키타는 이 일에 적합한 인재였다. 로키타의 쓸모는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만 빛을 발한다.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
체류증을 받지 못해 절망하는 로키타에게 “우리는 환영 못 받잖아”라고 토리는 말한다. 아이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 사실을 잘 아는 토리의 살아남는 방법은 ‘숨기’다. 눈에 띄지 않는 것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이다. 김현경 작가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환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 환영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자리는 없다.
이탈리아 사람에게 배웠다는 노래의 가사처럼 토리와 로키타는 고양이에게 먹히는 생쥐의 신세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먹히는 먹이사슬의 가사처럼 끊어낼 수 없는 불행의 고리가 아이들을 잡아먹는다. 로키타가 궂은일을 견디며 얻은 돈은 밀입국 브로커와 엄마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로키타를 착취하는 것은 유럽 땅의 사람뿐만이 아니다. 교회에서 나왔다는 흑인 밀입국 브로커도 아프리카 땅에 있는 엄마도 로키타를 착취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땅 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로키타의 잔인한 현실 속 유일한 안식처는 토리다. 석 달 동안 토리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 대마초 키우기를 로키타는 독한 마음으로 견뎌낸다. 체류증을 얻어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토리와 함께 살고 싶다는 꿈 때문이다. 때때로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로키타에게 텔레비전보다 토리의 사진이 심신안정에 도움이 된다. 두 사람은 피를 나눈 가족보다 서로를 아낀다. 누구도 돌봐주지 않고 친절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에게 다정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살아갈 희망 그 자체가 된다.
작은 친절과 환대
누구나 무조건적인 환대를 받으며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환대가 그가 있을 공간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면 햇빛 한점 없는 마약 재배 창고와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는 뒷골목은 환대의 저편에 자리한 공간이다. 영화는 이들에게 공간을 허락하라고 외치지 않는다. 인물들의 행동을 한 박자 뒤늦게 따라가는 카메라는 현실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들의 삶을 관조하며 다르덴 형제는 환대의 공간을 만들었다. 로키타의 얼굴을 중심에 가득 채운 화면 구성은 감독이 마련한 환대의 공간이며 적어도 영화 안에서 토리와 로키타는 그 세상의 중심이 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는 분명하다. 토리는 밖에 나올 수 없는 로키타를 대신해 은행에 송금을 하려 한다. 미성년자라 송금을 할 수 없는 토리는 은행에 있는 어른들에게 대신 송금해 줄 것을 부탁한다. 한 남자는 “대가로 무엇을 해줄 것이냐”라고 묻는다. 토리는 지체 없이 다른 어른을 찾는다. 이번 어른은 그저 호의로 토리를 도와준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대가를 바라고 이용할 것인지,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 것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토리와 로키타를 걱정하고 염려했지만, 영화 밖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누군가의 절망을 기회로 삼지 않고 대가 없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로키타를 궁지로 몰고 방아쇠를 당기게 만든 힘은 한 사람의 악의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작은 외면과 무례 그리고 욕심이 모여 방아쇠를 당겼다. 소리 없이 죽어간 수많은 로키타들을 위해,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토리들을 위해 작은 친절과 환대의 노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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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그넌트 / Malignan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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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리그넌트>는 그 소재보다 "제임스 완"의 이름이 좀 더 돋보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노의 질주: 더 세븐>과 <아쿠아맨>으로 각기 다른 프랜차이즈 영화를 맡아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낼만큼 흥행성을 인정받았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컨저링 유니버스>의 총괄 책임자로 정신없이 바쁘니 그가 작품을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작품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느 프랜차이즈에 속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 작품을 위해서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포기했으니 새삼 그 매력이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이 작품이 아니라 '포기한 영화를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새어 나올 만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시국이 시국이라고 해도, 이번 <말리그넌트>는 그가 <데스 사일런트2007> 이후 북미에서 첫 주 오프닝 수익 1000만 달러에 실패한 영화입니다.
이후 추석에 개봉한 국내 극장가에서는 재개봉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게 밀리는 등 체면이 안 섰고요.
그렇기에 차마, 손이 안 갔는데 보는 사람들의 평가들이 너무 확연하게 갈리더군요.
그만큼 취향이 맞는다면 한없이 맞는 코드의 작품이라는 것인데, 과연 <말리그넌트>는 저에게 맞았는지? -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있습니다.임신한 상태의 "메디"는 몸이 좋지 않아 직장에서 집에 돌아왔지만, 집에 기다리는 건 남편의 폭력이었죠.
하물며, 이미 2번의 유산을 겪었던 그녀이기에 화를 내고 싶어도 아이에게 해가 갈까봐 잠자코 화를 삭일 뿐이죠.
그러던 그날 밤, 집에 들이닥친 강도로 남편을 잃고 유산을 한 "메디"는 절망에 빠지고 이번 일에는 자신의 친구 "가브리엘"이 연관되었음을 눈치채는데...제임스 완이 만든 공포잖아요.
1. 내공이 엿보이는 시작
일단, 해당 작품을 소개하는데 앞서 "왜, <말리그넌트>를 공포로 생각했을까?"라는 궁금증부터 해결해야겠죠.
이런 이유에는 이번 <말리그넌트>의 감독, 제작, 그리고 각본을 맡은 "제임스 완"의 대표작이 <분노의 질주: 더 세븐>과 <아쿠아맨>, <컨저링> <인시디어스>도 아닌 <쏘우>이기 때문입니다.
안 봤어도 잔인한 영화로 다 알고 있을 만큼 <쏘우>만으로도 대단한데, 이후 차례로 선보인 <인시디어스>와 <컨저링>은 잔인함이 아닌 으스스한 분위기로 스타일을 바꿨음에도 성공해 "공포"만큼은 거꾸로 찍어도 관객들이 즐기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리그넌트>는 <인시디어스>와 <컨저링>, 그리고 <쏘우>까지 어떤 영화에 좀 더 가까웠을까요?너, 어디서 영화 좀 찍어봤구나?
대개, 2마리의 토끼를 잡다가 1마리도 못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말리그넌트>도 스타일이 극명한 영화로 예상되었으나 도입부에서 보이는 건 "제임스 완"의 내공이었습니다.
최근 "제임스 완"이 선보인 영화들 가운데 "청소년 관람불가"가 없었기에 보여주는 잔인함은 확실히, <쏘우>를 연상시키지만 이는 거들 뿐입니다.
극 중 병원으로 보이는 시설에 수상하리만큼의 실험을 행하는 의사들은 익숙하지만, 분위기를 조성해 극의 신비함을 보여줘 잔인한 비주얼을 살리는데요.
이처럼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여러 스타일을 섞어내 관객들에게 낯선 공포보다는 익숙한 공포를 빚어내 보다 무서운 작품으로 태어납니다.2. 액션 좋아, 근데...
이렇게 이번 영화의 스타일을 알았다면 다음으로 본 작품의 제목이 Malignant(악성)인지를 알아봐야 하는데요.
간호학에서 '암세포와 태아'의 차이에 '숙주의 몸에 기생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숙주의 생명을 위태로이 만드는 것은 똑같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가?'에 고민을 합니다.
실제로, 모 드라마 작가가 꺼낸 희대의 명대사 "암세포도 생명이잖아요"도 이런 고민에서 시작했다면 조금은 다르게 기억되었겠죠?
아무튼, 극 중 초반 주인공 "메디"는 임산부로 설정된 것을 봐서는 가벼운 공포 영화로 만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언가에 쫓길 때 윗선으로 보여주는 것은 "갇혀있다"라는 물리적 반응을 계속해 새어 나오는 후두부의 피는 '벗어날 수 없다'라는 이야기의 의미까지 더해내거든요.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타입
근데, 본 작품을 공포 영화로 소개했지만 정작 이를 고민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 액션이 짙게 남아있습니다.
무슨 소리이냐면, 영화 <말리그넌트>는 액션이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극 중 후반부 "가브리엘"의 정체의 밝혀지면서 유치장부터 경찰서 내부까지 액션 시퀀스가 이어집니다.
여기에 해당 작품의 관람가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것에서 크게 걸리는 것도 없어 여타 영화들과 비교해도 이 영화를 택할 만큼 잘 나왔습니다.
다만, 마음이 걸리는 건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의 반응이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습니다.3. 한데 연결되지 않는 장면들
일단, 해당 액션에 앞서 준비해서 보여주는 비주얼은 <엑소시스트>의 계단 오르내리기만큼이나 가히 충격입니다.
이까지는 관객들이 예상했던 "공포"의 맥락과 맞지만, 문제는 이후 보여주는 액션이 너무 능수능란하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장면을 보여주었던 영화 <업그레이드2018>는 "인공지능"이라는 설정이 있었지만, 해당 영화에는 이런 세세함이 없기에 기분이 좋기보다는 당황부터 앞서는데요.
여기에 이후 보여주는 이야기의 전개와 개연성은 미봉책에 그쳐 111분이라는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만들고 싶었어.
이런 이유에는 영화 <말리그넌트>가 온전하게 공포 영화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서 스타일을 논하는데, <컨저링>과 <인시디어스>, 그리고 <쏘우>의 스타일을 적절하게 섞어냈던 것처럼 또 하나의 영화 <아쿠아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카메라 워킹으로 보여준 말도 안 되는 액션 시퀀스도 있지만, 도입부에서 보여준 신비스러운 실험과 초자연적인 능력은 코믹스의 느낌을 풍깁니다.
이외에도 주인공이 사건을 목격한 장면들로 수사극스러운 부분과 끊임없이 농담을 뱉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봐서는 온전하게 공포 영화로 즐기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4. 너무 힘을 주셨다!
이에 어느 블로거의 말마따나 "와일드 피치(폭투)"는 야구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가 공을 받는 포수가 받아내지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로 타자 주자는 "낫아웃"으로 1루 베이스로 나갈 수 있거나 다른 이동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왜 직면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투·포수 간의 사인이 맞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일단 투수의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물론, 힘을 뺀다면 그만큼 구속이 느려져 딱 치기 좋게 들어올 테니 선수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을 세워 힘을 넣는데요.
그런 점에서 이번 <말리그넌트>는 "제임스 완"의 힘 빼기는 커녕 힘 더하기입니다.넣는 것보다 빼는 게 힘들다.
앞서 말한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비주얼, 액션, 수사극에 농담까지 이 모든 게 각 장면별로 본다면 정말 훌륭합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합쳐내는지?'에 있습니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이를 받지 못하면 포수만 힘들겠지만 투수의 뒤에 서있는 수비수들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어집니다.
특히, 투수가 던지는 공에 따라서 다양한 수비 위치에 있어야 하니 이는 "포수"뿐만 아니라 연쇄적인 작용으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디로 던질지 몰라 상대방 타자도 긴장해야 하는 장점(?)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팀원에게는 피해는 끼치지 않아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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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력 없는 안티 히어로, 모비우스
평생 앓고 있는 병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병을 고치려고 평생 매달리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안고 받아들이며 적응하겠지만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다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의료의 발달로 꽤 많은 병의 치료제가 만들어졌다. 꽤 긴 시간 동안 많은 연구진들이 매달리고 임상실험을 통해 얻어낸 결과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지를 주었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치료되지 못한 병과 그것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만약 그들에게 단기간에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영화 <모비우스>는 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모비우스 박사(자레드 레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와 동생 마일로(맷 스미스)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계속 몸이 불편해 일반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모비우스는 열심히 공부에 매달려 스스로 의사가 되었고, 이후 계속 자신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는 그의 연구가 성공하면 자신과 동생 마일로까지 치료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전 인류에 존재하는 질병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 연구에 집중했다.
질병으로 불편한 자신의 치료제를 만드는 모비우스 박사 이야기
영화의 첫 장면은 모비우스가 어디론가 이동해 동굴 속 박쥐 떼를 만나는 모습이다. 그는 박쥐 떼를 연구실로 데려와 박쥐의 DNA를 이용해 치료제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하고 결국에 혈청 주사를 만들어낸다. 초반 모비우스의 모습은 목발을 이용해 걷고 굉장히 유약해 보인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자신의 온 힘을 기울여 치료제를 만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가게 그려진다. 결국 그는 박쥐를 이용한 혈청을 만들어내고 자신에게 한 임상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받는다. 그런 게 부작용으로 인간의 피를 주기적으로 마셔야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된다.
모비우스가 그의 동료 마르틴(아드리아 아르조나)과 함께 치료제를 만들려는 모습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가 치료제로 자신의 몸을 치료한 이후,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나 모비우스의 동생 마일로의 변화가 그렇다. 마일로는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형 모비우스를 찾아왔다가 우연히 혈청 치료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몸에 주사를 한다. 그 역시 몸은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엄청난 힘을 얻지만 그렇게 얻은 힘으로 다른 인간들을 괴롭히고 피를 빨아먹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인공 피를 마셨던 모비우스의 선택과 대비된다.
문제는 마일로가 갑자기 그렇게 악행을 벌이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마일로 주변에 있던 모비우스나 에밀(자레드 해리스)은 마일로를 최선을 다해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에서 마일로가 세상에 반감을 가질만한 일도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많지 않았다. 그저 힘없고 착해 보였던 그가 갑작스럽게 얻은 힘으로 아무 죄 없는 사람까지 죽이고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또한 그에 대한해 마일로와 대결을 벌이는 모비우스도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힘을 이용해 더 큰 대결을 벌이려 하기 때문에 형제의 싸움에 파괴되는 도시의 모습이 화면에 계속 전시될 뿐이다.
어쨌든 영화에서 모비우스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것의 부작용을 대하는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흡혈에 대한 욕구를 실험적으로 관찰하여 기록하지만 해결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그는 최대한 실제 인간 피를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악행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이번 <모비우스> 영화 안에서 그는 악인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실제로 <스파이더맨> 코믹스에 등장하는 악당 중 한 명인 <모비우스>는 꽤 파괴적인 능력을 가지고 스파이더맨에 대항한다. 영화에도 나오듯 그는 박쥐의 능력과 동일하게 바람을 타고 날고, 빠르다. 또한 초음파를 이용해 멀리 있는 존재의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다. 악인이라는 특성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가 가진 능력은 이번 영화에서 모두 소개되고 있다.
아쉬운 완성도의 안티 히어로 영화 <모비우스>
그래서 영화 <모비우스>는 ‘모비우스’라는 스파이더맨의 악당 캐릭터를 소개하는 정도만 하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캐릭터가 실제로 악한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완전한 악행을 일삼는 동생 마일로와의 대결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대결을 벌이며 모비우스가 가진 능력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영화의 마지막 다른 악당과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향후 그가 스파이더맨과 대립각을 세우며 재등장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전달할 뿐이다.
제작사 소니가 완성해 내놓았던 <베놈> 시리즈의 경우도 영화적 완성도나 재미가 뛰어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에디(톰 하디)와 그의 몸에 들어간 심비오트 베놈이 서로 주도권을 갖기 위해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두 캐릭터가 어느 정도는 흥미롭게 구축되었었다. 하지만 이번 <모비우스>에서는 그런 매력적인 캐릭터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면서 모든 면에서 아쉬운 완성도를 보여주게 되었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마블이 제작하는 <스파이더맨> 영화들에 비해 소니에서 제작하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영화들에 더욱 실망할 수밖에 없다.
모비우스 역을 맡은 배우 자레드 레토는 과거 DC코믹스의 영화에서 조커 역으로 등장했던 적이 있다. 그 영화 역시 나쁜 완성도로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 <모비우스>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꽤 좋은 연기 능력을 가진 배우지만 히어로 영화 장르에서 만큼은 잘못된 작품 선택을 하는 배우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자는 과거 <라이프>나 <세이프 하우스> 같은 긴장감 넘치는 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연출작인 <모비어스>는 과거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들에 비해 많이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제작사 소니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를 계속 구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마블이 만들어놓은 아이디어를 통해 계속 관심을 받게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판권을 잡고 놓고 있지 않는 소니가 향후에 제작할 다양한 <스파이더맨> 관련 영화들이 조금 더 재미있고 괜찮은 캐릭터들을 조합하여 보여준다면 이런 실패들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모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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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아동권리 그리고 영화
세상엔 생각보다 영화제가 많다. 크고 작은 영화제가 많아지는 건 분명 기뻐할 일이나, 다 갈 수 없어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동종업계 인간으로서) 몇 년째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영화제가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운영하는 ‘아동권리영화제’다.
처음에는 ‘아동 권리’라는, 사실 내용은 대강 알아도 용어로서는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말을 더 가까이 느끼게 하기 위한 좋은 단발성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5년에 시작한 영화제는 코로나19를 넘어 지금껏 계속되었다. 아동권리 주간이 있는 매년 11월에 개최하는데, 2023년 11월에도 멋지게 진행했다.
2015년 초기부터 라인업이 막강했다. <자전거 탄 소년>, <아무도 모른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등 아동을 주제로 잘 큐레이션된 작품들에, 천근아 소아정신과 교수 같은 아동 전문가, 이동진 평론가 같은 영화 전문가를 고루 패널로 초청하여 균형을 잡았다. 2019년에는 ‘아동 권리 관련 영화’ 하면 누구나 첫 손에 꼽을 <가버나움>에, <플로리다 프로젝트>, 촬영 과정에서도 아동 권리와 연결해 나눌 얘기가 많은 <우리들>, 개봉작도 아닌 <브레드위너> (넷플릭스에 <파르바나>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까지 골고루 챙겼다. 패널도 어느 한 명 빼놓을 수 없이 대단하다. 또한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이 나와서 진행한 행사도 있고, 초등학교 교사와 함께 진행한 행사도 있어, 아동과 영화 두 가지 주제를 다 만족시키려고 노력한 점이 엿보인다.
이렇게 훌륭한 큐레이션으로 영화제의 규모가 점점 커지더니, 출품을 받기 시작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권리 보호에 진심인 아동단체이지 영화단체가 아님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아동의 눈높이에 있는 작품의 적은 파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전주국제영화제와 세이브더칠드런은 2019년부터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있어, 영화제 곳곳에서 빨간 세이브더칠드런 부스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동권리영화제 수상작과 함께하는 특별상영에 이어, 씨네아동권리토크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2023년 수상작인 홍승기 감독의 <알록달록>과 김슬기 감독의 <한 숨> 두 작품, 전북 고창 책마을 해리 이대건 대표를 초청하여,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진행으로 토크가 진행되었다.
<알록달록>은 남다른 시각을 가진 다홍이가 보는 색이 진짜 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펼쳐지는, 정말 ‘알록달록’한 이야기이다. 색맹은 일상에 지장을 주는 문제로 분류되지만, 바로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펼친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한 숨>은 반대로, 모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프지 않고 건강한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다. 환경 오염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미세먼지 같은 문제도 너무 심해서, 아프지 않은 게 오히려 보편적인 세상이라는 가정은 오싹하지만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처럼 느껴진다. 설정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두 작품이다.
이대건 대표와 이다혜 기자는 입을 모아, “이전 세대는 이전의 기준으로 ‘아 나도 다 경험해 봤지’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쉽게 재단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경험과 감각은 이전 세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영화를 통해 어른들을 가르쳐야 하고, 어른들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의 관점을 반영하고 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이토록 적다는 것은 그 배움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부족한 것을 반증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대표적인 예시가 <한 숨>에서도 다룬 환경 문제이다. 그레타 툰베리의 “어떻게 감히(how dare you) 그럴 수 있”냐는 질문까지 빌려오지 않아도, 미래 세대는 이전 세대가 어렸을 때에 비해 환경 문제를 훨씬 예리하게 감각하고 이에 반응한다.
아동의 관점과 시선을 배워야 한다는 한 문장은 명쾌하지만 사실 현실에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제작한 두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공유되면서,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한 숨>의 김슬기 감독은 보육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옆에서 많이 들었고, 실제로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야외 놀이를 할 기회가 줄어드는 아이들의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알록달록>의 홍승기 감독은 어린 시절 흰 쌀밥을 분홍색으로 칠했을 때 어머니께서 “이 분홍색 쌀은 어디서 구할 수 있어?” 하며 다정한 관심을 보여주셨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 말이 지금을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따뜻하게 받아주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한 것이다.
교육은, 성장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고 나오는 과정이므로 성장통이 수반한다. 아이가 아파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응당 보호자의 마음일 것이며, 때로는 아이가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고 엉뚱해 보여, 바쁜 일상 속에서 ‘그냥 내가 해주고 말지’ 하고 넘어가는 날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아동권리, 아동의 시선을 반영하는 일은 결국 아이들의 방식과 속도를 존중하며 기다리고, 그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여유를 찾기 너무 어려운 어른들을 위해, 이대건 대표가 인용한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선언문 한 구절로 마무리한다.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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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 자발적으로 입문해서라도 받고 싶은 양질의 팬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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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여파는 극장가에 아직 남아있고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극장가에서 장기적 흥행을 보이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이다. 필자는 원래 일본 애니메이션은 특정 감독과 작품을 빼면 지지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일본에서 보인 놀라운 흥행과 한국에서도 개봉 전부터 보이는 범상치 않은 예매율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일본에서는 일종의 사회 현상이자 신드롬이라고 평가 될 정도이니. TVA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이라 개봉 며칠 전부터 TVA를 정주행했다. TVA를 보고 든 생각은, 영상미와 독창성이 가미된 B급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평하는 이유를 말해보자면, 가장 크게는 스토리이다. 스토리를 풀어놓고 보면 정말 진부하다. 시련을 견뎌내고 강해지는 주인공과 추가되는 일행, 그리고 마치 게임의 보스 레이드마냥 적(혈귀)과 싸우는 내용의 반복. 크게 생각할 것 없이 정말 단순한 서사이다. 다만 이를 보충해주는 것은 상당히 공들인 것이 보이는 작화와 때때로 사용되는 적절한 3D의 사용, 그리고 반복되어 나오는 혈귀들이 상당히 다채롭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복이지만 즐겁고 흥미로운 반복이라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것을 극장판으로 관람한다면 어떨까라는 기대감과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TVA의 러닝타임은 30분인데,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거의 2시간(117분)이다. 영화를 보고나니, 필자가 예상했던 장점과 단점이 그대로 나왔다.
TVA의 연장선답게, TVA를 보지 않으면 감흥을 느끼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의 시작부터가 이미 TVA를 보고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재하에 시작을 하기 때문이다. 흔히 '팬'들만을 위한 팬서비스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에 자발적으로 입문해서라도 받아야 하는 수준의 팬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상술하였다시피 서사의 독립성이 낮을뿐더러 연출이 아닌 설명과 독백을 통해 풀어나가는 방식은 정말 진부하고 안일하기 짝이 없지만, 이를 보충하는 캐릭터들의 개성과 힘준 것이 보이는 액션씬은 정말 만족스럽다. TVA에서 보여준 훌륭한 작화를 극장판에서도 안정적으로 잘 보여주는데, 극장판답게 전투씬의 규모가 커져서 재미를 더해준다. TVA가 만족스러웠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팬덤이 말하는 것 처럼 명작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상술하였던 서사와 전개의 반복과 안일함의 단점이 장점으로 일부 덮혀질 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서사적 헛점은 팬덤측에서도 보일 정도인데, 극장판으로 만들기위해 불필요한 장면과 연출로 시간을 끈 것이 확연히 느껴지며, 빌런의 교체와 등장이 정말로 뜬금없다. 웬만해선 호평을 남기는 팬덤에서도 비판점이 나올 정도면 일반 관객들은 대체 얼마나 크게 이 단점을 느낄 것이란 말인가. 영상미 측면에서도 애니메이션계의 획을 그었다고는 말하기 힘든 수준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한정시켜보자면 이미 한참전에 아키라와 같은 뛰어넘을 수 없는, 아직도 영향을 끼치는 혁신이 존재하며, 예술성 측면에서는 유럽 애니메이션들에 한참 밀리고도 남는다. 팬서비스라는 것이 이 영화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철저히 팬덤을 저격한 상업성만이 존재할 뿐, 예술적 측면에서는 칭찬할 점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괜찮은 오락성 영화라 평할수는 있겠지만, 애니메이션계에 획을 그었다는 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인해 처참해진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아직 애니메이션화되지 않은 원작의 분량이 상당히 많고, 벌써 2기 발표가 났다는 점을 들어 귀멸의 칼날 프랜차이즈의 미래를 충분히 주목할 만 하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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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복」 제목의 뜻 그리고 영화 속 숨겨진 이야기ㅣ서복 예고편ㅣ서복 영화리뷰ㅣ박보검ㅣ공유ㅣ서북
?'서복' 영화 예고편 리뷰
서복 제목 의미 그리고 스토리 정리 및 예측CJ 엔터테인먼트 제공/배급
스튜디오 101, CJ 엔터테인먼트 제작
TPS 컴퍼니 공동제작감독 : 이용주
출연 : 공유, 박보검, 조우진, 장영남, 박병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
그와의 특별한 동행이 시작된다!과거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건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전직 요원 ‘기헌’은 정보국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마지막 제안을 받는다.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을 맡게 된 것.하지만 임무 수행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되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기헌’과 ‘서복‘은
둘만의 특별한 동행을 시작하게 된다.실험실 밖 세상을 처음 만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서복‘과 생애 마지막 임무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싶은 ‘기헌’은
가는 곳마다 사사건건 부딪친다.한편, 인류의 구원이자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서복’을 차지하기 위해 나선 여러 집단의 추적은
점점 거세지고 이들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소개된 서복 역사는 학계의 주장 중 하나일 뿐,
지나친 맹신은 금물입니다
#서복 #서복_리뷰 #서복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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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언포기버블> 공식 예고편
일부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곧 공개 예정. 강력 범죄 혐의로 장기 복역 후 출소한 루스 슬레이터(산드라 블록). 그러나 다시 발을 들인 사회는 그녀의 과거를 용서하려 들지 않는다. 한때 집이라고 여겼던 곳에서 심한 편견에 부딪히는 루스.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유일한 희망은 어쩔 수 없이 두고 온 여동생을 찾는 것뿐. 산드라 블록, 빈센트 더노프리오, 존 번탈, 리처드 토마스, 린다 이먼드, 애슐링 프란초지, 롭 모건, 바이올라 데이비스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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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로빈 로빈> 티저 예고편
쥐들이 키워낸 새 한 마리.
어느 날 그 새가 의문을 품는다.
내가 있을 자리는 진정 어디일까.
그렇게 자신을 찾아, 용감한 여정이 시작된다.
스톱모션 기법의 단편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