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13 17:38:37
엠파이어 디자인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한국 작품 포스터 모음
<파묘>,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엠파이어 디자인 스튜디오]는 영화 포스터, 예고편, 클립등을 제작하는
영국 회사로 감각적이고도 강렬한 포스터를 제작합니다.
해외 작품으로는 <007 노 타임 투 다이> <서부전선 이상없다> <스펜서> <가여운것들>등의
대표작들이 있는데요. 등장인물을 살린 한국 영화 포스터와 달리 엠파이어 디자인 스튜디오는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려 표현해 내는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2024 천만영화 <파묘>의 캐릭터의 표정을 가득 담은 포스터가
큰 이슈가 되기도 했죠. 엠파이어에서 제작한 한국 영화, 시리즈 포스터들 같이 보아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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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과 추억, 그 어디쯤에서 기억될 여행
이 영화는 어느 부녀의 터키 여행을 그린다. 겉보기에는 친구 같아 보이지만 이 부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고 서로 간의 벽이 있다. 어딘가 나이에 비해 철없어 보이는 아버지와 조숙한 편이지만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딸아이의 여행, 이 여행은 과연 잘 끝날 수 있을까?
1 .영화 속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의 기운
이 영화는 세 가지의 시점을 가진다. 소피와 아빠 캘럼이 여행하는 과거 시점, 어두운 클럽 안에서 해매이고 있는 캘럼의 모습, 카메라에 담긴 이들의 여행을 어른이 된 소피가 지켜보는 현재의 시점이 있다. 부녀의 과거 여행 시점에서는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자고 먹고 수영하고 간혹 가다 게임하고 이혼 가정의 부녀가 간만에 만나 할 법한 웬만한 일들을 한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하지만 이들 부녀가 공유하는 공통의 정서가 있다면 '우울감'이 될 것이다. 소피가 침대에 누워 마치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자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지는 캘럼의 모습을 통해 캘럼이 느끼는 우울함을 소피 또한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캘럼은 소피와 함께 있을 때는 한없이 어린아이 같은 아빠이지만 혼자 있을 때 그는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사람이기에 소피의 말에 캘럼은 찔렸던 듯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캘럼의 우울은 점점 가시화된다. 그에게 어떤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음을 짐작하게 되는데 캘럼은 그 어떤 공동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지난날이 있었지만 안정은 찾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소피와의 관계가 살짝 삐끗하자 갑자기 한밤중에 바다로 성큼성큼 뛰어들어가기도 하고 소피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호텔방에 와 혼자 오열하기도 하는 그의 행동을 통해 그가 소피와의 이번 여행을 끝으로 그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2. 클럽씬이 가진 의미
중간중간 등장하는 클럽씬에서 캘럼은 향락적인 불빛이 난무하는 어둠 속에서 해맨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장면은 왜 계속 등장해 몰입을 방해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영화가 가진 루즈함을 전환시키는 화면이기는 하지만 뜬금없고 어둠이 지배해 인물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루즈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하지만 캘럼이 어둠 속 클럽을 해매는 모습을 통해 마치 소피가 아빠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꿈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클럽 장면에서는 글리치처럼 전개가 끊어질 듯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클럽은 소피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향락의 공간에서 춤을 추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아빠를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하면서 끝내 아버지의 손을 놓아버리는 연출을 통해 소피가 아빠에 대한 기억에 몸부림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길을 잃은 영혼의 종착지처럼 죽은 캘럼의 영혼과 현생의 소피의 영혼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설정된 것은 아닐까.
예상해 보건대 현재의 시점에서 캘럼은 더 이상 생존해 있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장면, 여행이 끝나고 소피와의 작별 후 카메라를 끄고 허탈하게 공항 문을 열어 클럽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통해 캘럼은 심연, 소피의 무의식에서만 만날 수 있는 존재로 남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죽었고 여행 직후 죽은 것이 아닐까 예상한다. 그들은 계속 여행을 카메라로 기록하는데, 그 녹화된 테이프를 감상하는 현재의 소피 또한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그가 느꼈던 우울을 느끼는 듯하다. 카메라를 통해 기록된 재기발랄한 소피의 모습과는 달리 현재의 소피는 무표정한 표정과 공허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볼 뿐이다.
3. 독특한 연출
이 영화는 감정 관계를 명쾌히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감정을 다른 물건의 잔상에 숨겨버린다. 꺼진 티비에 비친 부녀의 모습을 관객이 관찰하게 하기도 하고 그들의 모습을 물에 비추어 보여주기도 하고 거울을 이용하기도 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기도 한다. 직관적인 시각보다는 어떤 물체에 비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연출로 부녀의 시시껄렁한 농담과는 달리 이들 부녀는 각자의 속마음을 한 겹씩 숨기고 있음을 강조한 것 같다. 관객들이 솔직하지 못한 부녀의 모습을 제 3자의 시점에서 관찰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하다. 클럽씬의 묘사만큼이나 독특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재미있는 연출을 꼽는다면 엔딩 씬의 카메라 워크를 들 수 있겠다. 마지막 씬에서 여행에서 소피와의 작별을 녹화하던 캘럼의 카메라가 녹화를 멈춘다. 이후 카메라의 시선이 녹화본을 보고 있는 어른 소피의 방을 비추고 녹화본을 보는 소피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또다시 옆으로 움직이며 클럽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캘럼의 모습을 논스톱으로 담는다. 이 카메라 워크가 인상적인데 녹화본을 보는 소피의 모습이 마치 소피 없이 혼자 있을 때의 공허한 캘럼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4. 총평
영화에서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그들의 휴가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왜 우울한 것인지, 이들 부녀에게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등 디테일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불친절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상상의 여지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여행 막바지에 그들은 춤을 추는데 이 장면에서 가족 간의 유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해석을 한다면 이전부터 알 수 없던 춤을 추던 캘럼이 소피와 함께 춤을 추며 자신의 인생의 화양연화를 맞이하는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과거에 소피는 캘럼의 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지막에 함께 춤을 춰주는 소피의 모습을 통해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던 캘럼이 소피에게만큼은 이해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소피의 이해로 그의 인생은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른이 된 소피에게 큰 잔상을 남겼을 이 여행에서 카메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메라 녹화본을 보면서 아빠와 나눴던 대화, 사춘기 시절 첫 키스를 하며 이성에 눈을 뜨는 과정 등등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카메라 녹화본은 자신은 없는 미래에 남겨질 소피에게 아빠가 전하는 사랑이 담긴 유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녹화본을 보는 소피에게 터키 여행은 여전히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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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픽 어워즈 '2022년 올해의 영화' 6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씨네픽 인스타그램을 통해 씨네픽 팔로워분들의 올해의 영화는 무엇인지 설문을 받아봤는데요!
과연 씨네픽 팔로워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는 무엇일지?!!
지금 한번 만나러 가보시죠!
헤어질 결심
ⓒ 네이버 영화
응답자 중 반 이상의 선택한 올해의 영화는 바로 <헤어질 결심>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매혹적인 배우 앙상블로 호평을 받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보니 N차 관람
열풍이 돌기도 하였다. 뉴욕타임즈, BBC, 포브스 등 주요 외신에서 2022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전 세계를 매혹시킨 마스터피스 다운 저력을 입증했다.
▶ 줄거리: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리멤버
ⓒ 네이버 영화
두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이성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 주연의 영화 <리멤버>
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자비 없는 복수 이야기를 탄탄하게 그려내고 이성민 배우와 남주혁
배우의 세대 초월 절친 케미로 호평을 받았다. 개봉 첫날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였고,
상영 당시 관객들의 입소문이 꾸준히 이어졌다.
▶ 줄거리: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의 이야기
수프와 이데올로기
ⓒ 네이버 영화
세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양영희 감독의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입니다.
영화는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과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고,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로부터 열띤 지지를 받으며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다큐멘터리로
떠올랐다. 10월 20일 개봉 이후 끊이지 않는 호평과 입소문으로 장기 상영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 줄거리: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따뜻한 수프를 나눠 먹게 된 한 가족의 어머니가 평생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되며 점점 서로를 마주하는 이야기
썸머 필름을 타고
ⓒ 네이버 영화
네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청춘, 로맨스, 시대극, SF 장르가 어우러진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입니다. 영화는 2022년 재팬 필름 페스티벌 온라인 상영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알려졌고, 이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를 장악하며 정식 개봉 요청이 쏟아졌다.
정식 개봉 후, 영화는 폭발적인 입소문을 바탕으로 최고의 좌석 판매율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 줄거리: 시대극 찐팬인 고교생 ‘맨발’이 절친인 ‘킥보드’, ‘블루 하와이’ 그리고 미래에서 온
의문의 소년 ‘린타로’와 함께 영화를 찍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화이트 노이즈
ⓒ 네이버 영화
다섯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블랙 코미디 장르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노이즈>입니다. <결혼 이야기> 이후 노아 바움백 감독과 아담 드라이버가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영화는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으며, 올해 부산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영되며 공개 전부터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 줄거리: 불확실한 세상에서 사랑과 죽음, 행복의 가능성이라는 인류 보편의 수수께끼와
씨름하는 동시에 일상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려 애쓰는 오늘날 미국 가정의 모습을 담은
블랙 코미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네이버 영화
여섯 번째 씨네픽 팔로워 선정 '올해의 영화'는 마블 루소 형제가 제작하고, 다니엘스 듀오가
연출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입니다. 영화는 해외에서 개봉 당시 10개 관에서
시작해 3,000개 이상 확대하였고, 1억 달러 수익을 올리는 등 글로벌 흥행을 이끌었다. 이에 이어
국내에서도 N차 관람이 이어졌으며, 개봉 4주차에도 좌석 판매율 2위를 유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 줄거리: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 분)’이 어느 날 자신이 멀티버스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주인공임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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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세 얼간이> 이후 인도 영화를 고르라면
시놉시스
2001년 인도의 어느 시골을 배경으로 한<뒤바뀐 신부들>은 같은 기차에서 길을 잃은 두 어린 신부의 모험을 그린다.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사건들과 예상치 못한 일들을 통해 두 사람은 자신과 여성성, 인생 자체에 대해 엄청난 발견을 한다.
EDITOR AMY
인도의 국민 배우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아미르 칸이 제작하여 화제를 모은 <뒤바뀐 신부들> .
결혼식을 마치고 풀과 디팍은 발디딜 틈도 없는기차에 오른다.
기차에서 졸던 디팍은 도착지에 도착한걸 알게 되자 베일에 쌓인 신부를 깨우고 황급히 내린다.
하지만 신부는 폴이 아닌 다른 신부임을 깨닫는데..기차에 남겨진 신부 풀, 비밀을 숨기는듯한 또다른 신부 자야.
폭력적인 자야의 남편과 애타게 풀을 찾는 풀의 남편 디팍까지, 인도의 전통적인 문화를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낸다!
인도문화
‘인도의 결혼식’이 주 내용인 만큼 영화는 인동의 전통적인 문화와 특성을 녹여냈다.
인도의 사회적, 종교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카스트제도는 물론, Pativrata라 하여 결혼한 여성은 남편에 복종하고 정절을
지킬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하는 힌두교 도덕관, 결혼을 할때 신부측에서 과도한 지참금을 마련해야하는 악습,
인도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 가정폭력 등 듣기만 해도 구시대적이고 무거운 내용들이지 않은가?
영화는 사회고발을 택하는 대신, 블랙 코미디를 활용하여 뒤트는 방식을 선택했다.
부패한 경찰들은 최선을 다해 돈을 뜯고, 이제 막 결혼한 커플의 남자에게 어른들은
지참금을 얼마나 받았냐며 대놓고 조롱한다. 이런 당당한 태도들이 관객을 더 웃음짓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의 여성
뒤바뀐 두 여성 풀과 자야. 그 둘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소극적이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풀은 본인이 살던 주소는 물론 시댁 주소도 모르는 멍청한(?) 면모를 보인다.
지식은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생활면에서 야무진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금기시 되는 남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것
뿐만 아니라, 명문 대학교에 갈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있는 자야는 결혼한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해
홀로 탈출 계획을 세운다. 전통적인 여성, 현대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주체적인 여성을 제시한다.
폴과 자야, 최선책을 택해야만 할까?
두 여성은 자신이 선택한 삶에 최선을 다한다.
폴은 그토록 바래왔던 남편과 재회에 성공하고, 자야는 사람들의 오해와 의심의 눈초리를 벗겨내어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나 꿈꿔왔던 대학교로 향한다. 영화는 전통과 현대 둘 중 한편에 발을 올리지
않고 공존을 택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질문은 한국에도 대입을 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비혼이 급증하면서 결혼과 비혼에 관한 토론이 뜨겁다.
서로가 맞다며 기혼자는 비혼자를 비난하고 기혼자는 비혼자를 비난해야만 하는걸까?
스스로 택한 삶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해봐야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폴과 자야처럼 우리가 행복할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게 최선책이 아닐까.
EDITOR 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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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비단을 닮아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주요 줄거리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보기 원하시는 분은 나중에 다시 읽어주세요.
1992년 싱가포르. 노이즈가 자글거리는 필름 너머로 습기와 열기가 푹푹 전달되는 것만 같다. 그 안에 안경을 끼고 카메라를 든 십대 여자아이가 웃는다. 영상 속 어린 샌디 탠 감독은 친구들과 로드무비를 찍고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옛 사진과 영상으로 싱가포르 역사와 그 안의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시작한다.
필름의 질감과 색감을 좋아한다면, 단편소설 속 특색 있는 인물들을 곱씹으며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성 영상과 옛날 사진, 노트 등 오래 간직해온 자료들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편집해 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셔커스: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고, 그 마음 그대로 움직일 만큼 행동력 있던 십대 시절. 샌디는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 복사기로 잡지를 만들고, 콜라주 이미지로 자기 취향을 더덕더덕 붙이고 있다. 그 시절 응당 갖기 마련인 분노와 반항을 자기만의 에너지로 사용하며 성장했다. 검열 아래서도 자기 취향을 확장해 나가는 이들의 생생한 눈빛. 그의 회상대로 "광란은 일상을 앞질렀다" 할 만한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이미 영화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소피와 자스민 두 친구도 함께였다. '조지 카도나'라는 교사가 지도하는 영화 제작 수업을 들었다. 조지는 스스로를 미국 영화 제작자라고 소개했지만, 국적도 출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수업을 마치면 드라이브를 하며 들개들을 보곤 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사랑하는 십대 아이들에게는 큰 영향력을 남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껌 씹는 것조차 금지했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던, 침묵과 미소를 권장했던 당시 싱가포르 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만남이었다. 누벨바그를 사랑하는, 빛이 변해가는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는 어른이라니.
오래된 영화는 스승에게, 또 이어 제자에게도 영감을 남긴다. 샌디는 조지와 찰떡 같은 호흡을 맞추다가, 싱가포르 배경의 로드무비 시나리오를 일필휘지로 써나간다. 1990년대 초반은 '싱가포르 영화'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낯설던 시절이었다. 아예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조차 많지 않았던, 싱가포르 영화의 떡잎이 돋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눈 쌓인 들판에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다닐 생각에 들뜬 아이들처럼, 샌디는 마구 직진하기 시작했다.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소피와 자스민도 영화 <셔커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소피는 공손한 메일을 써서 회의를 잡았다. 테이프 하나 기타 하나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배우 오디션을 치르고, 다들 설렘과 기대를 가득 안고 이 영화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필름과 장비도 제공받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이상하다. 회의를 조율한 사람은 소피지만 정작 회의 직전에 조지는 소피를 부엌으로 보낸다. "영화를 믿은" 소피는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순순히 내어준다. 제한된 장비로 정성껏 만든 음악이 담긴 테이프, 그 하나뿐인 테이프도 조지가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들개를 찍으러 함께 다니던 제자들을 데리고, 조지는 이제 ATM에서 ATM으로 돌아다닌다. 아이들의 모든 저금까지 이 영화에 쏟아부었다. 자스민은 이상한 점을 하나씩 기록하고 지적한다. 영화를 완성시킬 야심에 차서 직진만을 고수하고 있는 샌디에게는 이 모든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시절의 샌디
우여곡절 끝에 촬영이 끝난다. 성취와 동시에 탈진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미 외국의 영화학교에 다니고 있던 소피, 자스민, 샌디 모두 각자의 학교로 돌아가고, 조지만이 싱가포르에 남아 필름 작업을 하기로 했다. 샌디는 간절한 마음으로 <셔커스> 완성을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필름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조지와 필름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다. 모든 이야기를 등에 지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열심을 다했던 셋은, 아니 더 많은 이들은, 충격에 빠진다. 그토록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남은 것은 갈수록 흐릿해지는 기억뿐이다.
그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제작의 내부자가 아니라 외부자였던 것일까? 순식간에 실패로 전락한, 야심만만했던 기획들. 샌디는 괴로운 기억을 닫아두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작부터 <셔커스>를 포함한 영상과 사진으로 편집되어 있다. 1992년 촬영과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 2018년 사이 필름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샌디 탠 감독과 친구들은 <셔커스> 필름을 어떻게 다시 얻게 된 걸까? 조지는 누구였을까? <셔커스>는 잃어버린 필름을 찾는 동시에, 그와 함께 사라진 조지를 찾는 여정이 된다.
조지, 그리고 샌디
조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샌디 탠 감독이 <셔커스> 필름을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샌디 탠 감독에게 조지가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와도 무관하게, 필름에 담긴 시간과 열정까지 절도해간 조지가 이 영화에 갇히면서 체포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샌디 탠 감독의 작품 소재가 되었으니까.
영화를 사랑한다고 영화 속 인물이 되는 건 아니다. 창작을 업으로 삼을 거라면 이야기 바깥에 사는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야기 바깥을 부단히 걸어다니며 자기 길을 만들고 자기 이야기를 쌓아야 한다. 그러나 조지는 그렇지 못했다. 평생 한 편의 영화 감독도 되지 못했고, 오히려 누군가의 이야기의 소재로만 남고 말았다. 소재가 된다고 나쁜 삶은 아니지만, 추측하건대 아마 그가 진정 원한 삶은 아니었을 듯하다.
변죽만 울리다 보면 진정 자기가 원하는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쌓아가는 이, 조금씩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자기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혀가는 이에게 이길 재간이 없다. 조지는 그렇게 샌디의 영화 소재, 등장인물로만 이름을 남겼다.
진짜 조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나의 추측에는 내가 반영된다. 자신의 영화는 만든 적 없는 이가 다른 이의 영화를 향해 던지는 비릿한 시선에서 나는내 비겁함을 발견한다.
취미라는 단어에 가둬 두기엔 내게 글쓰기란 너무 의미가 깊은 일이다. 그러나 본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밀려난다. 맹렬하게 고민하고 애쓸 때도 있지만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모르겠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러다가도 특별한 재능을 특별하게 인정받는 남들을 보면 부럽고, 은연 중에 내게도 그런 "한 방"이 찾아와주길 꿈꾸는 마음이 슬쩍 고개를 든다.
그 마음은 망상에 지나지 않단 걸 안다. 어떤 계기를 만나 반짝 주목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의 한 순간일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더듬더듬 확인하고, 이게 최선일까 불안해하면서도 차곡차곡 모자이크화처럼 시간을 채워가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는 걸.
그러다 보면 뭐라도 담겨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건물과 패션의 색감마저 아름다웠던, 지금은 사라져버린 싱가포르 풍경조차 특별하게 느껴지는 <셔커스> 필름 컷들처럼. 특별하기보다 특이한 인물들로 가득한,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로 꽉 차 있는 컷들이었다.
거칠고 투박해도, 온 세계가 공감할 수 없어도, 앞선 시간에서 알게 모르게 배운 것들이 녹아 있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 샌디 탠 감독은 필름을 빼앗기고, 이후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오랜 시간 끝에 결국 <셔커스>를 영화라는 방법으로 완성했다.
타의에 의해 끊긴 피륙은 무명도 비단이 된다고, 박완서 소설 어딘가에서 읽었다. 이건 그 비단을 닮은 이야기였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을, 지금 여기서도 다시 감싸안을 수 있을 만큼 힘 있는 비단. 피륙을 끊은 가위조차 휘감고 계속 너울너울 이어져가는 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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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과 감성의 절묘한 균형,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
"이 일은 자네가 맡아서 처리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
"돌아와서 보지"
"... 저... 제독님, 가족이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아주 딱딱한 업무에 관한 일들만 주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가족들과도 오랜시간 같이 생활하다보면 부드러운 말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속마음은 그렇게 딱딱하지 않지만 겉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건조했고, 또 차갑기도 했다.그렇다고 갑자기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성적인 것이 우선시 되는 관계에서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 생각보다는 어렵다.첫 문단의 대화는 시리즈 [스타트렉 디스커버리] 시즌4에서 주인공 버넘 선장(소네쿠아 마틴 그린)과 상사인 제독의 대화다. 앞쪽에는 임무에 관한 아주 딱딱하고 심각한 이야기가 오랜 시간 이어진다. 그리고 대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도 특별히 따뜻한 이야기를 던질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버넘 선장은 상사인 제독에게 따뜻한 말한마디를 보탠다. 대화를 나눈 시점은 바로 직전에 진행되었던 전 우주적인 재난을 극복하면서 모두가 끔찍한 참사를 피할 수 있었던 때였다. 제독은 버넘이 던지는 따뜻한 말한마디에 뒤를 돌아보며 가벼운 미소를 짓고 화면에서 사라진다.
특유의 따뜻함과 공감을 보여주는 스타트렉 스핀오프 시리즈
이런 따뜻한 장면들 때문에 이 시리즈는 아주 많지않지만 고정팬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주인공인 버넘은 무척 이성적인 사람이면서 굉장히 감성적이다. 상황판단능력과 개별 전투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공감능력을 통해 시리즈 내내 빛나는 존재가 된다. 그저 엔지니어에 불과했던 그가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결정과 인식의 중심에는 공감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디스커버리호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같은 우주선에 있는 모든 동료들은 그 공감을 건네고 또 건네면서 모든 결정이 이성적인 잔인함에 묻혀버리지 않게 만든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이성적인 판단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버넘 선장은 꼭 위험한 상황에 처한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서 공감가능하다면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더라도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결정을 주변 동료들에게 설득하려 노력한다. 버넘 선장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는 노력이다. 이런 인식은 더 심각한 위험가 자신에게 닥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방법을 택하게 만든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 시리즈 전체가 가지고 있는 감성이 있다. 그건 일반적인 <스타트렉> 영화 시리즈나 다른 TV시리즈가 가진 감성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스타트렉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추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과 생겨난 문제들이 모두 해결가능하다는 초긍정성이 스타트렉이 가진 고유의 감성이다. 그런 긍정적인 인식과 방향성 때문에 꾸준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을 보여주는 시리즈
[스타트렉 디스커버리] 시리즈는 긍정의 정서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버넘을 중심으로 그 주변인물들이 보여주는 공감과 치유의 감성이다. 그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첫 문단의 대화다. 마지막 한 마디에 포인트가 있다. 무척 심각하고 엄중한 대화를 나눈 이후에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한 마디를 던진다. 꼭 버넘 선장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은 서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한 회차에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한 시즌의 말미에 가면 그들의 갈등은 대부분 서로에 대한 공감으로 따뜻하게 정리된다.사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리즈 전체가 너무 감정이 과잉된 것 아니냐고 공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급박하고 빠른 이야기 속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다른 선원들에게 위로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걸 보고 있자면 마음이 무척 따뜻해진다. 무엇보다 온갖 갈등과 싸움을 보는 현실에서 보지 못했던 공감능력이 충만한 리더들이 활약하는 것을 보는 것이 무척 즐겁다.
매 에피소드는 인류 멸종이나 큰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가득하지만 대부분의 에피소드 뒤에는 치유의 말을 주고받는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정신적인 어려움이나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할지 모를 때, 모든 등장인물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걸 듣던 상대방은 어떤 때는 해결책을 조언하고 어떤 경우에는 마음 깊숙히 들어와 큰 위로를 건넨다. 그 위로가 비록 상황에 대한 해결을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큰 힘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볼 때면 따뜻함과 희망을 느끼게 된다. 엄청나게 기술이 발전된 이야기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바꾸고 이끌어가는 건 결국 그 따뜻한 치유의 감성이 아닐까. 그 치유가 희망을 만들어내고 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현실에서 너무 따뜻함과 공감을 잊은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 뉴스를 보면 날선 말들과 혐오의 말들이 오간다. 하지만 모두는 자신의 말을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마음 속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의 선원들처럼 우리가 먼저 상대방에게 따뜻한 공감의 말을 던지면 어떨까. 현 시대에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공감인 것 같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는 현재 시즌 4가 완결되었다. 시즌 1부터 시즌3까지 시리즈의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김보연 작가가 이번 시즌에는 빠졌지만 시리즈 초반부터 구축된 공감과 치유의 감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스타트렉 시리즈가 큰 인기가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공감과 치유의 정서는 이야기에 빠져든 모든 시청자들을 위로한다. 혹시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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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쾌한 느낌표 대신 도덕적 자문의 물음표
나쁜 짓을 해서라도 짐승만도 못한 이들을 처단하는 이야기가 환영받는 시대! 근데, 그 나쁜 짓이 살인이라면, 그리고 그 횟수가 많아진다면, 과연 우리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을까? <살인자 o 난감>은 법의 사각지대 안에서 한 개인이 범죄자를 처단하는 이야기로, 드라마 <모범택시> <비질란테>처럼 공권력 대신 정의 구현에 힘쓰는 다크 히어로(혹은 자경단)가 등장한다. 통쾌함을 주 무기로 사용했던 비슷한 콘셉트의 작품들과 달리, 이 시리즈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범죄자를 죽이는 행동이 과연 옳고 정의로운 일인지, 죄는 아닌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긴다. 마치 통쾌한 느낌표보다는 도덕적 자문의 물음표를 던지는 것처럼.
삼류대에 다니며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이탕(최우식)은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중 인생이 바뀐다. 근무 중 친절했던 손님과 퇴근길에 마주친 후, 갑작스럽게 몸싸움을 벌이다 편의점에서 가져온 망치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근데 신이 도와준 것일까? 살인 증거는 모두 사라지고, 그 남자는 죽여도 마땅한 연쇄살인범이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이탕의 우발적 살인은 계속되는데, 거짓말처럼 증거는 모두 증발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죽는 이는 모두 흉악범이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 했던가. 이탕은 스스로 악인을 알아보는 능력으로 악을 처단하는 일을 하며, 그들은 죽어도 싸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한편, 편의점 사건 담당 형사 장난감(손석구)은 이어지는 살인 사건을 마주하며, 유력한 용의자로 이탕을 지목, 그의 행적을 뒤쫓는다.
|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난감한 제목?
<살인자 ㅇ 난감>은 시작도 하기 전에 난감하다. 과연 이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설마 오타가 아닐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동명 웹툰 제목도 마찬가지이니 원작자 꼬마비나 이창희 감독이 등장해 이건 이렇게 읽어줘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제목에 대해 이창희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공식적으로 ‘살인자 ㅇ(이응) 난감’이다. 하지만 누구의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는가에 따라 제목이 달라지지 않는가 싶다.
공식적으로 부르는 제목이 궁금하기도 전에, 누구의 관점에 따라 제목이 달라진다는 그 말이 확 와닿는다. 감독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듯, 최우식은 제목을 ‘살인자 장난감’으로 읽는 게 많이 끌렸다며, 뭔가 장난감처럼 놀아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손석구와 이희준은 ‘살인자 ㅇ(오) 난감’으로 읽었다고 밝혔고, 이희준은 ‘모두가 다 난감한 상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관객은 물론, 출연 배우들도 제목을 받아들이는 게 제각각인 영화는 각각의 관점에 따라 각 인물과 상황이 달리 보인다. 주인공 이탕만 봐도 우발적이지만 악랄한 죄인을 살인한 그의 행동을 놓고, 누군가는 죄인으로, 누군가는 영웅으로 바라본다. 전자는 난감, 후자는 이탕에게 자경단 활동을 하자고 권한 사이드킥 노빈(김요한)의 시선이다.이탕 뿐만 아니다. 그에게 살해당한 첫 인물인 편의점 손님(조현우) 경우, 친절한 겉모습과 달리 살인을 일삼은 연쇄살인범이고, 두 번째 인물인 선여옥(정이서)도 시각 장애인처럼 보였지만, 한 쪽 시력은 남아있고, 부모의 사망보험금을 받아내기 위해 존속살인을 저지른 패륜아였다. 이처럼 겉선속악(겉으론 선하지만, 속으로 악한) 인물들은 매회 등장해 이탕과 우리의 눈을 교란한다. 감독 또한 극의 긴장감을 부여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장치로 매치컷(match cut, 시각적으로 유사한 두 장면을 이어 붙이는 편집 방식)을 자주 활용한다.
감독은 이런 이중성을 각 인물에게 투영하며, 각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 중 난감은 후배에게 형사라는 직업의 경험에 기반, 가해자에서 한 글자만 바꾸면 피해자가 되는 것처럼, 한순간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이탕을 비롯해 난감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인물을 관통하는 주제로 마지막 8회까지 묵직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 도스토옙스키가 배트맨, 다크 히어로는 로빈?
<살인자 ㅇ 난감>의 큰 뼈대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배트맨을 앞세운 다크 히어로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배트맨(히어로), 다크 히어로는 로빈(사이드킥)이라 할 수 있다. 시리즈에서 이탕은 흉악범을 감별하는 능력으로 다크 히어로의 옷을 입는다. 하지만 이 능력이 신이 준 선물인지, 아니면 저주인지 매번 되묻는다. 살인을 거듭할수록 첫 살인 때보다 두려움과 고뇌는 줄어들지만, 꿈이나 환상에서 죽인 놈들이 나타나 그를 괴롭히는 건 똑같다. 능력이 곧 그에겐 족쇄인 셈. 그의 살인 행각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장면들이 즐비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캐릭터의 성향은 곧 기존 다크 히어로와 궤를 달리하는 드라마의 특성을 대변한다. 배트맨의 고뇌 중 가장 큰 부분은 과거 부모의 죽음과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기인한다. 흉악범들을 처단할 때 그는 살인에 대한 정당성의 고민이 크지 않다. 이런 부분에 있어 이탕은 다크 히어로의 옷만 입은 채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옷을 입은 주체는 따로 있다. 바로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 그는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이복여동생을 죽인다. 완전범죄였지만,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수한다. 그 또한 자기합리화에 빠져 정당한 살인이라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인물로서 이탕과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편, 극 중 ‘죄와 벌’이란 책은 이탕의 마음을 대변하는 매개체이자, 다크 히어로 활약하는 그의 약점으로 활용된다. 후반부 이탕과 대척점에 있는 변질된 다크 히어로이자 빌런인 송촌(이희준)은 이 책을 훔치고, 이탕에게 가져가라고(한번 뺐어 보라고) 말한다. 이탕의 약점을 제대로 간파한 송촌의 공격이다.
|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이탕, 장난감, 송촌의 공통점 중 하나는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된 사례라는 점이다. 이탕은 학폭, 장난감과 송촌은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인해 오랜 시간 피해자로서 살아간다. 마치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어 놀아나다가 싫증 나면 바로 버리는 존재처럼, 이들은 피해자로서 많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다 한 사건으로 인해 응축된 분노가 쏟아져 나오고, 결국 가해자의 길을 간다. 종국에 이르러 저마다 비슷한 내상을 입은 채 마지막 대결을 치른다.세 인물과 더불어 성폭행 이후 자살한 딸의 고통스런 사연을 지닌 강상묵(이중옥), 안타까운 가족사를 가진 노빈 모두 피해자였지만, 살인을 담보로 한 가해자가 된다. 그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드라마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계속해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며,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살인이 용인될 수 있는지, 그 목적이 살인이란 죄를 사해줄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피가 끓고, 사적 복수에 통쾌함도 느끼지만, 한편으론 살인이란 두 글자에 머뭇거리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 사회가 하지못하는 일을 개인이 했음에도 행하는 이도, 보는 이도 남는 건 죄책감 뿐이다.
| 살아 있네, 살아 있어! 캐릭터
<살인자 o 난감>이 추구하는 이야기와 주제 의식을 생생하게 살리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주요 캐릭터인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은 각자 맡은 캐릭터를 자신만의 가공법으로 특색있게 만든다.
최우식은 목표 없이 살아가는 20대의 모습은 물론, 죄의식에 사로잡힌 다크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거인> <기생충> 등 그의 불안한 눈빛으로 발화하는 청춘의 모습은 물론, 피해자로서의 아픔과 가해자로서의 죄책감 등 기민한 감정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망치, 벽돌 등 둔기를 사용해 살인을 범하는 액션 또한 현실감 있게 구현한다.
손석구는 또 한 번 디테일한 설정이 돋보인다. 원작에서 가져온 껌을 계속 씹으며, 세상을 관조적으로 보는 특유의 눈빛과 걸음걸이는 장난감의 성격을 충분히 유추하도록 한다. 특히 껌을 씹는 건 마음 속 화와 분노를 조절하는 복용약처럼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법, 죄, 사회적 규칙 등 자신이 믿었던 것에 배신당하며 울분에 쌓이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에 질세라 이희준은 느리고 친근한 말투와 빠르고 과격한 행동의 간극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특히 개인의 기준으로 흉악범이라 생각한 이를 포박해 반성하면 죽이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도 결국 살인을 저지르는 그의 의외성은 극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극 중 당뇨 환자에 나이 든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다크 히어로이자 빌런으로서의 잔인함을 더 세게 가져가며 송촌이란 캐릭터를 쌓아 올린다.
이뿐인가. 최고의 사이드 킥으로, 등장하는 노빈 역에 김요한, 이탕의 첫 살해를 목격하고 그를 협박하는 선여옥 역에 정이서, 딸의 비통한 죽음에 결국 칼을 든 아비 강상묵 역에 이중옥, 리벤지 포르노에 당해 이름과 얼굴을 바꾸고 살아가는 최경아 역에 임세주와 약혼녀가 있음에도 그녀에게 접근해 착취하는 하상민 역에 노재원 등 이들은 각 회차를 잡아먹을 정도의 연기력으로 승부한다.
물론, <살인자 ㅇ 난감>도 제목처럼 난감한 부분이 있다. 기존 다크 히어로를 내세운 드라마와 다른 매력을 지녔고, 살인 및 성적 수위와 흉악범들의 턱 빠질만한 악행 구현, 5회부터 떨어지는 극적 긴장감,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는 유사 장면 등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다크한 장르 드라마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이창희 감독의 전작이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였던 것만 봐도 진보했지 퇴보하지는 않았다. 이는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 부문(비영어) 2위, 지난 11일 기준 한국·인도·태국·베트남 등 11개국에서 시청시간 1위(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르는 등 각종 수치가 대변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구독자들이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주제에 충분히 공감했다는 것. 시간이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시즌 2를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낸 드라마의 다음 행보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난감한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아이러니하게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평점: 3.5 / 5.0
한줄평: 성장형 다크 히어로를 내세운 현대판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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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롭 라이너
출연: 톰 크루즈,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케빈 베이컨#결말포함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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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버지의 길> 티저 예고편
세르비아의 작은 시골마을.
부당해고를 당해 일용직으로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두 아이의 아버지 니콜라.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회사에 대한 분노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부패한 사회 복지과는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두 아이들의 양육권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버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힘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들을 빼앗겨 버린 니콜라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단 하나의 일념으로
300km가 넘는 거리인 수도 베오그라드까지의 긴 여정을 결심한다.
모든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되찾을 권리와 정의를 위해
아버지 니콜라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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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달링> 메인 예고편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아름다운 커플 로빈과 다이애나.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으로 로빈의 전신이 마비되면서 두 사람의 빛나는 순간은 끝나는 듯 보인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로빈,
하지만 다이애나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에게 용기를 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