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6-11 10:48:50
6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새로운 감정들과 돌아온 <인사이드 아웃 2>!
9년만에 돌아온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와 [스낵 무비] 등장?
현대차와 협업한 손석구 주연의 10분 무비,
CGV에서 단돈 1000원에 개봉한다고 하는데요.
6월 14∼16일 21~23일 상영예정입니다.
영화산업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손석구의 새로운 도전!
씨네픽이 응원합니다
인사이드 아웃 2
Inside Out 2
개요: 드라마 | 미국 | 96분
감독: 켈시 맨
더빙: 에이미 포엘러, 마야 호크, 루이스 블랙
개봉: 2024.06.05.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디즈니·픽사의 대표작 <인사이드 아웃> 새로운 감정과 함께 돌아오다! 13살이 된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매일 바쁘게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를 운영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그러던 어느 날, 낯선 감정인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가 본부에 등장하고,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며 제멋대로인 ‘불안’이와 기존 감정들은 계속 충돌한다. 결국 새로운 감정들에 의해 본부에서 쫓겨나게 된 기존 감정들은 다시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2024년, 전 세계를 공감으로 물들인 유쾌한 상상이 다시 시작된다!
너는 달밤에 빛나고
You Shine In The Moonlight
개요: 멜로/로맨스 | 일본 | 101분
감독: 츠키카와 쇼
출연: 키타무라 타쿠미, 나가노 메이
개봉: 2020.06.10.
배급: ㈜라이크콘텐츠
시놉시스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 생이 끝나 갈수록 몸에서 빛이 나는 발광병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소녀, ‘마미즈’ 가족이 떠난 슬픔으로 시간이 멈추어 버린 소년, ‘타쿠야’ 푸르고 푸른 시절, 한 장의 롤링 페이퍼로 만나 서로에게 빛이 된 소년소녀의 처음 그리고 마지막 봄날 이야기
퀸 엘리자베스
Elizabeth: A Portrait in Part(s)
개요: 다큐멘터리 | 영국 | 90분
감독: 로저 미첼
출연: 엘리자베스
재개봉: 2024.06.12.
배급: 영화사 진진
시놉시스
“우리는 여왕을 사랑하며 자랐습니다” -비틀즈 폴 매카트니-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좌에 머무른 퀸 엘리자베스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다.
밤낚시
NIGHT FISHING
개요: SF, 스릴러 | 대한민국 | 13분
감독: 문병곤
출연: 손석구
개봉: 2024.06.14.
배급: CJ CGV
시놉시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낚싯대를 놓치지 말 것! 아무도 없는 한산한 강변, 밤새 홀로 텐트를 지키는 한 남자(손석구). 그의 차 안에선 수상한 무전이 계속 이어진다. 전기 충전소로 향한 그는 홀로 자리 잡은 채, 입질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오늘밤, 가장 위험한 밤낚시가 시작된다!
Relative contents
-
- 다른 모양의 사랑
어제는 아빠의 일흔 일곱번째 생일이었다. 지난주말에 부모님을 뵈러 대구에 다녀왔는데…불과 몇달만에 갑자기 기력이 쇠한 느낌이 들어 코 끝이 시큰해졌다. 아빠는 요즘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쓸고, 아빠의 작은 이발소 문을 연다. 성실히 하루 하루를 꾸려 가는 분이고, 늘 일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갑자기 늙으신 것 같은 얼굴을 마주 하는게 믿기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아빠는 나에게 특별한 분이다. 40년대에 태어나셨는데…요즘 MZ같은 마인드로 80년대생인 나를 키웠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감정적인 결핍이 없도록 나를 키웠다. 엄마 뿐 아니라 아빠에게도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를 믿어주셨다.
경상북도 깊은 시골에서, 자주 술에 취하고 폭력적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도망 나와 서울로 간 게 중학교쯤이었다 하니, 아빠의 학력도 아마 그 즈음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수성가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당장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족을 떠난 사람.“아빠 그렇게 어렸는데…어떻게 혼자 살았어?” 겨우 열몇 살이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면. 아빠는 “ 뭐어. 잘 먹고 잘 살았어.” 하고 이야기를 끝내버렸다.
아빠는 그랬다. ‘오늘 뭐 하고 놀았니? 무슨 책을 읽었어? 기분은 어때?’ 학교를 다녀와 이발소로 뛰어 들어오는 나에게 백가지 질문을 퍼붓고, 온갖 수다를 받아주고, 장난을 걸고, 대화를 하면서도 ‘아빠가 옛날에는 말이야…’하는 영웅담이라던가,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같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당신의 고단함과 괴로움을 자식이 알아 주지 않아도 상관없이 온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
꽤나 이기적으로 살아온 터라 아이를 낳기 전엔 잘 몰랐다. 나의 마음 보다, 상대방의 마음과 상황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일.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마음이 쓰여서 때때로 나의 일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는 것을. 그런 일은 거의 대부분 모두 내 배에서 탯줄을 끊고 태어난 아이 때문이었다. 배 속에 품어 낳은 것이 아닌 아이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내어 주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모든 가정은 다르기에 ‘아빠의 사랑’ 역시 수십만 개의 모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름답고, 기쁨의 감정이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애틋하거나, 적당한 무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장난기가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여자로 태어난 나는 결코 알지 못할 다른 모양의 사랑을 늘 궁금해 왔다. 이런 영화의 좋은 점은 내가 아빠가 될 수 없기에 과한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담담하게 지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혹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서 내내 마음을 아리게 했던 아빠의 영화들 중 많은 영화가 평범하기 보다는 조금 부족한 아빠에서 시작한다. 영화<아이엠 샘>에서 샘은 지적장애로 7살의 지능을 가진 아빠로 나온다. <파더 앤 도터>의 제이크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교통사고 이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소설가이며, <더 웨일>의 찰리는 아내와 이혼 후 동성연인의 죽음을 겪고 그로 인해 270kg의 거구의 몸집으로 살아가고 있다. <애프터 썬>의 캘럼은 어린 나이에 소피의 아빠가 되었지만 이혼을 했다. 딸과 함께 튀르키예 여행을 떠나왔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슬픈 감정에 쌓여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언급한 영화들의 자녀는 모두 딸이다. 영화 속 아빠는 경제적으로 부족하거나, 정신적으로 부족하거나,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이런 결핍과 상황이 딸을 지키는 못하는 일이 될까 두려움을 느끼는 일들이 생긴다. 영화는 아빠의 지능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사랑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돈과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한한 사랑이라고. 아빠들은 입양을 보내는 쪽보다 끝까지 딸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찰리는 죽음이 가까워 왔음을 느끼며,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캘럼은 위태로운 마음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화가 딸의 시선이라 짐작만 할 뿐이지만) 딸에게 즐거운 시간이라는 선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일지…혹은 작고 연약한 존재를 지켜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이 더 큰 위로가 되기 마련이다.
이토록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때로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아빠는 딸을 살게 하고, 딸은 아빠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
- 두 도시가 비극을 기억하는 방법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가깝게 세월호 사건은 벌써 7주기가 되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그때 세월호의 모습은 잊기 힘든 장면이다. 하지만 여전히 진상규명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망자를 완전히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제 이만 그 일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그 일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누구의 잘못으로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원인을 파악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다음 한 발자국을 떼어 걸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조금 먼 과거를 보면 광주 민주화 항쟁을 떠올릴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일 년에 한 번씩 맞이하는 추모일에만 그 일을 한 번씩 생각한다. 하지만 유족들은 1년 365일 여전히 그 일을 생각하고 잃은 가족을 마음속에서 꺼내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희생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잊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희생자들을 폭도라고 이야기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과거는 과거로 묻고 아픈 것을 그만 들추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이제는 과거를 묻어두고 앞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말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원인도 같이 묻어두자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원인에 대한 명확한 것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과거의 기억인 광주에서의 아픔을 찾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군부 독재의 비극적 역사를 똑같이 경험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는 한국의 광주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비슷한 사건 이후 남은 유족과 과거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파헤치는 것보다는 그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적인 부분과 그들이 지금 해나가고 있는 일들을 천천히 보여준다. 두 도시는 모두 독재 군부에 의해 자행된 학살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벌어진 행태도 비슷하다. 갑자기 길거리나 학교에서 사람들을 잡아가 폭도 세력으로 몬다. 그리고 죽이거나 특정 장소에 가두고 고민했다. 잡은 민간인들을 고문하는 일도 많았다. 마치 거울처럼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이 슬픈 역사는 굉장히 비슷해 보인다.
영화는 두 도시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실종자들의 유골을 찾는 일이다. 그 당시 두 도시에서는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가 많았다. 하지만 실종자도 굉장히 많았고 그렇게 갑자기 연락이 끊긴 사람들은 유골조차 찾지 못한 경우가 많다. 몇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실종된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특정 기관 주도로 땅속 어딘가 묻혀있는 유골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 작업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 자체가 남은 가족들에게는 작은 희망을 선사한다.
가족을 잃는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위로할 수 없다. 가족을 잃은 이후, 남은 가족들은 망자를 편안히, 그리고 곱게 보내려 애쓴다. 장례절차를 통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가족의 모습을 마음에 꾹꾹 넣어둔다. 그 마지막 인사는 작별을 의미하지만 남은 가족들이 그 슬픔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신을 찾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 유족들은 그나마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만 그런 작별의 기회 조차 가질 수 없는 가족들은 삶을 이어가면서 잃어버린 가족과의 마지막 인사를 꿈꾼다.
과거를 보존하고 실종자를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좋은 빛, 좋은 공기>에서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희생자들의 가족 인터뷰를 담았다. 남은 가족들의 소원은 이미 나이 든 자신이 죽기 전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땅에 편안히 묻어주는 것이다. 그들은 군부 학살 당시 겪었던 일들을 마치 어제처럼 묘사한다. 가족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들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어떤 사람은 죽은 자식의 시체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단서가 끊겨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한 경우가 모두 나온다. 그들이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묘사할 때 그들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인다. 그 눈물을 아는 사람들은 남은 유골을 찾으려 무던히 애쓰고 하나하나의 유골을 찾고 분석해 나간다. 이것이 두 도시가 과거를 기억하고 정리해나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두 번째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다. 이 역시 양쪽의 의견이 있다. 그 당시의 건물이나 물건을 옛날 그대로 보존하여 그때의 비극의 역사를 그대로 현재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견과 아픈 과거를 새롭고 더 밝은 모습으로 덮어쓰자는 의견이다. 이 영화는 그 아픈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 당시의 역사가 있는 그대로 기록된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당시 군의관이었던 한 의사가 그 당시 군 병원 건물을 걸어가면서 내뱉는 말들이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40년이나 더 지난 일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고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가 느끼는 감정과 주변 인물들이 느끼던 감정이 전달됨과 동시에 그 당시의 처참함이 그의 말에서 느껴진다. 그 당시의 병원이나 옛 전남도청 건물을 있는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과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이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지는 그 당시 실종자들이 갇혀있던 건물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비슷한 느낌으로 전달된다. 결국 잘 보존된 역사적 현장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런 과거에 대한 복원과 보존 노력 역시 남은 유가족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 당시 희생자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신들의 권리인 자유와 민주주의가 이들의 희생으로 조금이나마 지켜지길 바라는 것, 그리고 국가 권력이 가면 안 되는 길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는 두 도시에 남은 유가족의 그 당시 기억에 대한 발언을 함께 보여주며 이러한 노력이 중단되면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기록과 복원에 대한 노력에서 조금 벗어나 과거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덧붙이고 있다. 그 당시 자녀들을 잃었던 어머니들이 비슷한 처지의 다른 어머니들과 하나둘 모여 투쟁을 하게 된다. 광주뿐만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을 시작했다. 대부분 여자인 그들을 무시했지만 그들은 조금씩 세력을 키워 큰 투쟁의 불씨로 키웠다. 또한 그들은 나이가 든 현재 시점까지도 진상규명과 실종자 유골에 대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현재까지 두 도시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실상과 아픔이 전달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연약하게만 보였던 어머니들이 끝까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그들은 얼굴에 슬픔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은 미래에 다시는 그런 아픈 일이 일어나면 안 되고 그것에 자신들이 할 일을 끝까지 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머니들의 투쟁
영화 속에는 현재 두 도시의 10대 학생들이 그 당시의 모습을 바탕으로 영상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간간히 나온다. 아주 먼 거리지만 영상으로 인사하고 그들이 느끼는 과거의 슬픔을 작품으로 담아내려는 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임흥순 감독은 과거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타기도 한 미술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의 영상 속에 담긴 과거의 여러 모습들은 하나의 미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빛이란 뜻을 가진 도시 광주와 좋은 공기라는 뜻을 가진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군부 학살은 굉장히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이때 나온 희생자, 그리고 유가족들의 모습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 흑백으로 구성된 화면은 광주와 브에노스아이레스스를 교차로 비추는데, 언뜻 보다 보면 이곳이 광주인지 부에노스아이레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만큼 두 도시가 겪은 상황이 비슷하고 남은 과거의 건물이나 잔재들도 같은 모습이다. 결국은 두 도시가 하고자 하는 앞으로의 방향성도 같아서 두 도시가 과거를 담고 그리는 모습이 마치 하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상이나 매체를 통한 연대로 이 두 도시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영화에 담겼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얀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는 군부에 의한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항쟁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에 대한 지지도 더하고 있다.
-
- 2002년부터 이어진 스파이더맨 사가에 대한 헌사
샘스파, 어스파, 톰스파 모두를 하나의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기발한 장치, 멀티버스
2002년부터 시작되어 2021년까지 이어진 스파이더맨 실사화 영화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이 오랜 기간 동안 시리즈에 변화가 없지는 않았으며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이자 속칭 샘스파, 마크 웹 감독의 어스파, 존 왓츠 감독의 톰스파까지 총 2번에 걸친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는 각 시리즈마다 본연의 특색을 가지고 있도록 하여, 스파이더맨이란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있을 뿐 등장하는 스파이더맨의 성격이 천지차이일뿐더러 등장하는 빌런들도 전혀 겹치지 않는 등 별개의 시리즈로 보아도 무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개개인별로 어떤 시리즈를 특히 더 좋아하는지와 같이 선호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 스파이더맨 시리즈 모두를 좋아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세 시리즈의 스파이더맨과 수많은 빌런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와 같은 팬들의 염원은 무시 못 할 정도로 거대해졌습니다.
하지만 배경도, 주인공도, 빌런도 모두 다른 세 시리즈를 한곳으로 모이게 하기 위한 합리적이면서도 마땅한 장치가 그동안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단순 팬들을 위한다는 명분만으로 세 작품을 모으기에는 아무리 히어로 무비라고 할지라도 "왜 세 명의 스파이더맨과 빌런들이 한곳에 모이게 되었는가?"란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납득이 가능한 해답, 다시 말해 서사의 핍진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은 MCU의 히어로 중에서 치트키 수준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등장시킴으로써, 더 자세히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을 통해 평행우주의 개념인 멀티버스를 사용함으로써 핍진성도 가지면서 세 작품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무리 최근에 MCU의 멀티버스로 무리한 세계관 확장 시도와 그에 따라 생긴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는 차치하고, <노 웨이 홈>만으로 한정 짓는다면 멀티버스를 적절하고 완벽하게 활용했습니다.
스파이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팬들을 위한 시작점,
멀티버스로 핍진성과 흥미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오랜 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들만 모아놓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최악일 수도
감상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영화이지만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물론 영화 전부가 또렷하게 기억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대부분 감상 도중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씬들을 중심으로 기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때 <노 웨이 홈>은 앞선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인상 깊은 씬들을 차용하여 그대로 사용하거나, 혹은 적절하게 변형하여 오마주 형식으로 영화에 등장시킵니다. 가령 <스파이더맨 2>에서 오토 옥타비우스와 피터 파커가 "잘 지내니?"와 "노력하고 있죠"란 대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장면이 <노 웨이 홈>에서 동일한 배우가 동일한 대사로 안부를 묻는 장면으로 다시 등장함으로써 <스파이더맨 2>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관객에게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 외에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의 피터 파커가 그웬 스테이시를 철탑에서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를 <노 웨이 홈>에서 추락하는 MJ를 구출하는 적절한 변형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씬을 통해 톰스파뿐만 아니라 다른 스파이더맨들 또한 들러리 역할에 그치지 않고 성장의 주체로서 표현한 점을 호평하고 싶습니다.
전작들과의 연계성에 기반한 측면에서 호평하고 싶고 리뷰에 다루고 싶은 부분들이 차고 넘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톰스파는 피터 파커란 일반인으로서, 혹은 스파이더맨이란 히어로로서 전혀 성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점이 스파이더맨의 아이덴티티 부재와 더불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노 웨이 홈>에서 MCU 스파이더맨이 극중 사건들로 발생한 상실이란 아픔을 겪고, 이를 통해 비로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게 된다는 스파이더맨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여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도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들을 위한 헌사가 가득 담겨 있을지언정 어디까지나 <노 웨이 홈>의 주인공은 톰스파입니다. 영화의 모든 서사가 톰스파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수많은 과거의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위상에 가려지지 않도록 적절하고 영리하게 그들을 배치했습니다. 이처럼 관객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줌과 동시에 톰스파의 부족한 면들을 채우면서 마무리 지었단 점에서 <노 웨이 홈>은 톰스파 트릴로지를 넘어 2002년에서 시작된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의 피날레를 훌륭하게 장식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이어진 호평들은 어디까지나 샘스파, 어스파를 모두 감상한 관객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불어 앞선 시리즈들을 단순 감상한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영화들이 극장에 개봉했을 적에 극장에서 감상했던 경험이 있는, 다시 말해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던 관객들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평가입니다. <노 웨이 홈>은 성장을 주된 테마로 하고 있는 만큼 그들과 함께 성장한 관객들에게는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 성장했거나 노쇠한 배우들을 주축으로 다시 보였을 때 감회가 남다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앞선 시리즈들을 한 번에 몰아서 감상한,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함께 성장해 오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이 장면을 여기서 다시 사용했구나'라고만 생각할 뿐, 이와 같은 오마주에 대해 큰 감흥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즉 <노 웨이 홈>은 오랜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팬들에게 바치는, 그들만을 위한 영화일 뿐 일반 관객층들을 위한 영화는 아닙니다. 어찌 보면 MCU의 진입 장벽을 무지막지하게 높여버리는 데 일조한 작품 중에 하나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어쭙잖은 팬들은 나가떨어지도록 하고, 진성 팬들만을 데리고 가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상 깊은 장면들을 활용한 오마주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면서, 톰스파의 성장 서사를 훌륭하게 담아낸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피날레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스파이더맨 팬들만의 잔치일 뿐, 새로운 입문자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만점을 줄 수 없도록 만드는 최악의 오점, CG
이 영화는 서사와 관련된 오마주 외에도 액션에 관련해서도 종전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이 가지고 있는 액션에 대한 오마주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홀로 웹슈터를 사용하지 않고 몸에서 거미줄이 나가는 샘스파에 대해 펼쳐지는 어스파와 톰스파의 질문 공세, 또는 샘스파가 그린 고블린을 내려다보는 자세는 <스파이더맨 1>의 유사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스파이더맨 별로 웹 스윙 이후 착지하는 자세를 각 시리즈별 시그니처 자세로 그대로 표현하는 등 이전 영화들의 크고 작은 액션들을 오마주 하여 이 영화의 액션들로 편성하였습니다. 물론 <노 웨이 홈>이 오마주한 액션들로만 이뤄져 있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수많은 빌런들이 본인만의 특색을 뽐내면서 등장한 후 벌이는 전투씬들을 비롯해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하여 스파이더맨들이 협공하여 빌런들을 하나씩 격퇴해 나가는 이 영화만의 익숙함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액션들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액션이 매끄럽기 위해서는 액션을 뒷받침하는 CG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순식간에 지나가는 장면이라 할지라도 섬세하거나 정교하지 않은 CG 작업물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위화감은 절대 무시하지 못하며, 이는 곧이어 보여지는 액션의 몰입에 적지 않은 방해 요소가 됩니다. 이때 <노 웨이 홈>은 단순히 어색한 정도를 넘어 정말 실망스러운 엉망진창인 수준의 CG가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없이 등장합니다. 아무리 서사, 핍진성, 오마주 등의 구성이 좋을지라도 이 영화의 근본은 액션에 있습니다. 그 근본을 제대로 신경 쓰지는 못할망정 저품질 수준의 끔찍한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선 좋은 평가를 다 깎아먹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20년을 아우르는 모든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를 마무리 짓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인데도 작품의 퀄리티를 신경 쓰지 않았다는 부분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킬 지경입니다. 한 가지 단적인 예를 들자면 위 단락에서 언급했던, 이 영화의 피날레격 액션인 자유의 여신상 액션 시퀀스의 배경은 어두컴컴한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빌런 일렉트로의 특징상 어두운 배경이 필요함을 감안하더라도 어색하고 성의 없는 CG를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한 얄팍한 처세 목적의 비중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액션도 오마주 하면 뭐 하나, 그 액션의 품질이 저품질인 것을
MCU의 고질적인 CG 문제가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물
마지막으로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언급하고 싶었던 내용들에 대해 짧게 짚고 이번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윌렘 대포의 그린 고블린은 19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소름 끼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얼굴이 가면에 가려져 있던 <스파이더맨 1>과 달리 <노 웨이 홈>에서 맨얼굴에 담겨 있는 광기를 직접 직면하니 더 공포스러웠고 강렬했습니다. 두 번째로, 샘스파와 어스파의 테마들을 적절하게 편곡함으로써 그 당시의 영화에 담겨있던 분위기를 훌륭하게 가져온 마이클 지아키노의 노고가 정말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세세한 설정 오류와 함께 빌런들의 비중 분배가 아쉬웠습니다. 물론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다는 측면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활약하는 부분을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끝내 사라지지 않습니다.
장장 20년에 걸친 스파이더맨 사가의 마무리 격인 작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완벽한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근본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조그마한 핸드폰 화면에서도 이렇게 심하게 체감되었는데 IMAX와 같은 대형 스크린에서는 얼마나 더 눈에 띄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이 정말 좋았기에 스파이더맨 사가의 마지막 작품을 IMAX로 접하지 못했다는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여러분들은 <노 웨이 홈>이 어떠셨나요? :)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
-
-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뭐였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방금 생각했는데 말이다. 26살밖에 되지 않은 나. 왜 군데군데 기억력에 구멍이 났을까. 이유는 모르겠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큰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고 말씀해주셨다. 큰 문제 아닌 걸까? 나에게 처방된 약은 안 좋은 것보다 장점을 더 가져다줬지만 이 기억력과 관련한 문제는 왠지 모르게 단점으로 느껴진다. 내가 누군지 기억에 난다. 그런데 오늘 해야 할 일이 가끔 생각이 안 난다. 플루옥세틴이라는 약이 정말 기억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걸까. 아니라는 답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찜찜함이 남는다.
찜찜함. 오히려 이 찜찜함이 내 삶에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우울한 무언가를 분출하기 위해서. 지금의 나는 내가 느낀 걸 감상을 나누고 싶어서 쓰지만 어렸을 때는 그랬다. 이 찜찜함은 '왜 우울해졌을까'도 갉아먹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는 뜻일까. '왜 그랬어?'라고 물으면 줄줄줄 나올 것 같지만 이제는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뭐였지? 분명히 기억에 남아야 할 텐데. 기억하지 않으면 나는 그렇게 멈춰 서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성공해서 누군가의 위에 남아야만 한다고 여겼던 독기가 요즘은 기억나지 않는 것이 가끔 짜증이 난다. 분명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사실인데 말이다. 내면의 분노만 기억에 남았다. 무엇이 그 일을 구성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렇게 나처럼 내면의 분노를 지우지 못했던 인물이 있다. 이 사람은 현재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이 남자의 복수극에 동행해보자. <리멤버>다.
응어리진 채로 뱉은 넋두리
하나하나 다 잊혀간다. 뭐가 기억에 없어졌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덧 여든이다. 80대, 고령에 돌입한 한필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한필주의 머릿속에는 기생충이 있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생충이다. 필주의 일상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간다. 브레이크 타임. 낮잠을 자고 있던 필주. 귀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은 잊은 것이 없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제이슨의 인사에 응답한다. 이번 주면 이 일을 그만둔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일하는 필주. 프레디란 이름으로 탈을 썼던 하루하루도 이제 빛을 발하는 때가 됐다. 자식들은 다 가정을 꾸렸다.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완벽히 혼자가 될 준비가 됐다.
혼자가 될 준비가 됐다. 책임질 것이 없다는 것은 많은 것이 열려있다는 의미가 된다. 눈이 풀려있던 필주. 갑자기 눈에 힘이 들어온다. 필주는 집 안에 있던 허름한 방으로 향한다.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를 앞에 선 필주. 한두 마디 내뱉는다. "저는 한필주입니다. 제 가족들은 일제강점기 때 모두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제에게 누명을 써 몽둥이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유로 광인이 되셨고, 누나는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일제에게 성착취를 당했습니다." 그의 손에 권총 한 자루가 쥐어져 있다.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사진들이다. 정치인, 전직 군인, 일본인 학자 등 한필주는 오랫동안 이들을 목표로 복수극을 계획하고 있었다. 다행히 전등을 쏴서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한필주의 기력은 충분하다. 머릿속이 채 무너지기 전에 먼저 떠난 가족들의 복수극을 실행해야 한다. 한필주는 목표를 달성하고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재미있는 영화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재미있다. 장르적인 특성을 아주 잘 잡았다. 장르를 굳이 따지면 스릴러물에 가깝다. 어? 액션 들어가는 것 같던데?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한필주가 80대인걸 고려하면 빠릿빠릿한 액션이 들어갈 틈이 없다. 그 대신 스릴러물로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식이 다양한 것은 강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는 주인공 한필주의 '알츠하이머' 진단이다. 기억을 잊는 병. 이 기억이 없어지는 시기를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이렇게 들어갑니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 자체로도 서스펜스가 생길 수 있다. 주인공이 언제 기억을 잊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시각적인 이미지와 알약이라는 소재로 짜임새 있는 묘사를 보여줬다. 이 알츠하이머라는 소재가 편의적으로 들어간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점은 한필주의 복수극이다. 주인공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인물은 가족을 죽인 친일파를 처단해야 한다. 그럼 이 복수극이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는가?를 영화 안에서 보여줘야 한다. 이를 영화는 캐릭터의 속성으로 돌파하는데, 구체적으로 이를 위해 초반부의 군데군데 삽입한 한필주의 성격 묘사나 전쟁 영웅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또 복수극을 벌이면서 한필주는 자잘자잘한 문제에 부딪히는데, 이 부분을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창의적인 방식을 썼다는 것도 이 부분의 장르 특성을 강화시킨 좋은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만드는 소재로는 추격극이 있다. 초반부에 피살되는 인물은 굉장히 큰 기업의 CEO로 보인다. 아마 자기가 만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재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죽으면 엄청나게 관심이 끌린다. 이를 기점으로 정만식 배우가 맡은 형사 캐릭터가 한필주의 행보를 좇는다. 여기서 경찰 캐릭터를 단순히 권력에 굴복하거나 무능력하기만 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도 충분히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이다. 주인공 일행을 뒤쫓는 사람의 입장이자 사건의 관찰자로서 일반 관객들을 대면하는 설정이 좋았다.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과하지 않게 캐릭터를 직조한 것이다. 또 다른 요소로는 주인공 인규의 속사정이다. 인규는 그냥 한국의 평범한 20대다. 피시방에서 게임하는 거,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인물이 어떻게 필주의 복수극에 동참할 수 있었냐? 의 원인이 극에서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인물이 왜 동화될 수밖에 없는지를 섬세하게 그리며 극에서 인물에게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네 가지 스릴러 요소가 극 이해를 돕는 윤활유가 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지루하진 않다. <콜래트럴>의 형식을 차용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영화 자체의 오리지널리티가 장르적인 특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치밀하게 그린 큰 그림
그리고 영화에서 장점으로 작용했던 부분은 큰 갈래를 잘 설정했다는 부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인공 한필주의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세팅은 주제와도 이어진다. 주인공이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또 잊어버렸는지가 영화에서 주요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와 관련한 무언가를 잊어버린 묘사가 관객 입장에서 '이 사람이 이런 걸 기억하고 있네'라고 두 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하이라이트 신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때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어떤 인물은 무언가를 기억하지만 다른 중요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 대비가 악한 무리로 속해있는 빌런들의 후안무치를 두드러지게 묘사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이 인물이 이 일을 벌이는 동기부여의 설계는 탁월했다. 이 부분은 극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극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이 한필주의 동기부여라고 생각한다.
또 초반부의 이야기 전개가 후반부에서 잘 회수되는 부분도 각본의 큰 그림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 한필주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인물이다. 영화의 다른 한 구석에서 한필주가 그렇게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럼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인물이 이런 곤궁한 상황을 겪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전직 군인이라는 설정은 후반부까지 무력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부분과도 이어진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서 인물의 행보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각본의 큰 그림은 후반부에 그대로 이어진다. 가령 인규의 속사정을 알 수 있는 부분에서 3자의 인물이 끼어든다. 이 3자의 인물이 끼어든다는 암시가 초반부에 인규가 어떤 걸 확인하면서 나온다. 그리고 이 인물이 중반부에도, 후반부에도 등장한다. 그냥 단순히 떡밥 회수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인규의 동기부여와도 관련이 있으며 인물의 행보를 가로지르는 주요 인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나름 꼼꼼했던 인물 설정을 느낄 수 있다. 극에서 크게 막히는 부분이 없으니 몰입이 잘 되는 것이다.
바퀴에 칼이 꽂힌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은 있다. 바로 각본의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선 초반부에 한필주가 얼마나 섬세한 인간인지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어떤 진상 손님이 제이슨(인규)의 4만 원을 갖고 튀게 생겼다. 억울한 인규. 이런 인규를 대신해서 4만 원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이 설계까진 좋았다. 지갑을 놓고 간 것을 빌미로 센스를 보여주던 필주. 그런데 이 사람이 4만 원을 뺏기기 위해서 음식점에서 계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뭔가 먹을 때 언제 계산할까? 바로 다 먹고 계산한다. 계산 딱 하고 일행이랑 차 타고 집에 안녕하고 사라지는 게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 이 일반적인 과정을 살짝 무시한 느낌이 있다. 물리적인 시간이 안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이와 비슷한 부분에서 경찰 캐릭터랑 한필주 캐릭터가 대면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있고 나서 한필주 캐릭터와 경찰 캐릭터의 행보는 굉장히 편의적으로 끼워 맞춘 부분이 있다. 우리가 만약에 경찰 캐릭터의 입장이라고 봤을 때, 이 시퀀스의 후반부쯤에 그럴만한 객관적 이유를 제시하긴 하지만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이런 김새는 느낌은 대사 작문법에도 이어진다. 군데군데 조악한 대사들이 눈에 보인다. 일단 초반부. 인규(제이슨)와 필주(프레디)가 우정을 묘사하는 방법이 없다. 핸드사인을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눈다. '야. 우리 PC방 갈래? 나 롤 배웠는데.' '(음식을 먹으며) 너무 JMT야!' 전부 80대 할아버지 필주의 입에서 나온 대사다. 글쓴이는 1997년 생이다. 글쓴이의 입에서 'JMT'란 단어가 나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 '리그 오브 레전드'를 안 한지 거의 2년이 넘어간다. 굳이 할아버지와 20대 청년과의 우정을 이런 식으로 묘사할 이유가 있을까? 굉장히 불필요한 부분이 들어간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두 사람의 우정을 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정을 보여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근데 그걸 어울리지도 않는 방식으로, 현실성도 느껴지지 않는 말을 하면서 보여줄 이유가 있나?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런 조악함은 러닝타임 도중에도 몇 번 더 나타난다. 후반부에 한필주가 복수극을 펼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직접 자기 입으로 '나는 친일파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때 인물 간이 처해있는 입장에 굉장히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거지! 이거 위해서 영화 만들었지! 그런데 그 '친일파다!'대사가 들어가니까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굳이 그 장면에서 그게 들어가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들끓는데 말이다.
또 영화 극후 반부에서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이 끝마무리되고 극에서 굉장히 중요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신이 있다. 여기서 나누는 모든 대화가 전부 다 사족같이 느껴졌다. 여기서 어떤 인물이 한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 영화를 봤던 모든 사람이라면 이 문장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쓰고 있는 글쓴이도 역사의 죄인들이 합당한 벌을 받았으면 한다. 그런데 이 말을 굳이 꺼내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는 의문이다. 이는 바로 직전 시퀀스에서 이 평가를 말했던 인물의 대사와도 어울리지 않으며 신파극처럼 느끼기도 쉬운 데다가 얼핏 보면 이 친일파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초를 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왜 이 영화를 볼까?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왜 카타르시스를 느낄까? 현실에서 이뤄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왜? 어떤 친일파는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한국사회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또 우리가 사적 복수로 누군가를 처단하는 일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대체역사물의 느낌으로 영화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평가를 굳이 입으로 말한 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친일파들은 감옥에 가서 자연사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 평가가 전체적인 흐름을 크게 비트는 것처럼 들린다. '이 정도면 잘 만든 스릴러' '이 정도면 잘 설계한 메시지' '친일파를 잊어버리면 안 되지' 싶은 것이 '?????' 싶은 결함을 남기는 옥에 티였다.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많이 아쉽다. 기대를 아예 안 하고 갔다. 그런데 의외로 재밌었다. 올해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준비하며 일제의 만행에 대해 공부했다. 그 공부했을 때 느꼈던 화가 스르르 생각나기도 했다. 얼마 전에 어떤 정치인이 이와 관련된 망언을 했다. 이 부분도 생각났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폭력을 저질렀다. 그 타인이 누군가를 해친 것이 아닌 한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폭력을 벌이는 짓이 잘하는 건 당연히 아닐 것이다. 마치 이를 합리화하는 듯한 그 국회의원의 말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그 국회의원의 말을 반박하는 것 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뿐일까? 극에서 2022년 10월 말의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에 한 기업체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 노동자 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키워드가 극에서 중요하게 쓰였다. 당연히 나 역시 화가 났던 일이기 때문에 같이 분노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을 후반부에서 중요하게 작동시키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사회에 산재해 있는 언급되지 않는 사건사고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윗 문단, 그러니까 후반부에서 대사가 아쉬웠다고 썼던 그 시퀀스를 보고 나니 상기했던 단점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쉽다. 더 꼼꼼했으면 이런 단점이 생각나지 않았을 텐데, 싶은 것이다. 이성민, 남주혁 두 배우 연기 엄청 잘했다. 이성민 배우는 <남산의 부장들>보다 더 잘했고, 남주혁 배우는 <한산>의 와키자카를 연상케 하는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메시지도 좋고. 서스펜스 좋고. 배우 연기 잘했고. 캐릭터 캐스팅 좋았고. 그런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 뚜렷하니 좋은 평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산>보다 더 흥행할 수 있는 영화가 꼼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굉장히 아쉬웠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분기마다 한 번씩 가는 분들에겐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다.
-
- 20세기 소녀 (2022)
* <20세기 소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20세기 소녀 (2022)
감독: 방우리
출연: 김유정,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
장르: 로맨스, 드라마
상영시간: 119분
공개일: 2022.10.21
<20세기 소녀>. 제목만 들어도 이야기의 서두와 결말이 완벽하게 예측되는 고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 90년대 배경, 공중전화와 비디오 테이프, 삐삐가 상징하는 아날로그 문화, 왈가닥 하는 성격의 소녀와 엄친아 소년이 티격태격 하다 사랑으로 발전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스토리는 청춘 로맨스 장르의 클래식이자 클리셰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스물다섯 스물하나>, 혹은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를 과몰입해 시청했던 사람들이라면 더 이상 새롭게 느끼기 힘든 서사이기도 하다. 첫사랑 이야기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이름만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심지어 국가가 달라져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첫사랑 이야기의 공식은 여전히 통한다. 뻔하고 유치할 지라도 네 청춘남녀의 떼 묻지 않은 우정과 사랑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작중 주인공 ‘보라(김유정)’는 아픈 심장을 수술하러 미국으로 떠난 단짝 친구 ‘연두(노윤서)’를 대신해 친구가 짝사랑하는 ‘현진(박정우)’을 주도 면밀하게 관찰한다. 매일 같이 뒤를 쫓아 관찰 일지를 쓰고, 이메일로 친구에게 보고를 할 정도로 큐피드 역할에 꽤나 진심이다. 하지만 ‘현진’의 절친 ‘풍운호(변우석)’에게 곧바로 들킨 이후 투닥거리는 사건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소년소녀 사이에는 풋사랑의 감정이 싹 튼다. 드라마틱한 흐름의 감정선은 아니지만 ‘보라’와 ‘운호’가 붙는 장면마다 설렘을 일으키는 동시에 그 때 그 시절 첫사랑의 경험 유무와 관계없이 추억 조작의 필터를 덧씌운다.
하이틴 청춘물 장르의 작품은 주연 배우의 역할이 특히나 중요하다. 비주얼은 물론이며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감성의 대사까지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는 연기력도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정’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는 감독의 판단은 탁월했다. ‘나보라’를 연기한 ‘김유정’은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나희도’,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시원’, ‘성나정’ 못지 않게 기분 좋은 활력과 사랑스러움을 마구 발산하며 뛰어난 존재감으로 극을 휘어잡는다. 가벼운 코미디와 풋풋한 로맨스, 절절한 감정신까지 ‘김유정’의 20년 연기 내공은 본작에서도 빛을 발한다. ‘현진’과 ‘운호’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이 통통 튀는 매력의 소녀에게 한눈에 빠져들었듯이 관객 역시 ‘김유정’의 모습에 연신 미소를 띠게 된다. 그동안 연기로 크게 두각을 나타낸 적 없었던 ‘변우석’도 싱그러운 첫사랑 소년 그 자체로 분했다. ‘연두’와 ‘현진’을 포함한 네 친구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운호’와 ‘보라’의 러브 스토리를 장편의 에피소드로 볼 수 있는 드라마로 제작되었더라도 재미가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사랑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는 공식이 있듯 ‘연두’의 오해로 인해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보라’의 첫사랑은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일이 제대로 꼬인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 결단을 내려야 하다니. 열일곱 인생의 최대 난관이 아닐 수 없다. 비슷한 플롯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는 대개 중반부부터 더욱 뻔한 구조를 취한다. 같은 남자를 좋아한 두 친구의 우정이 깨지고, 주인공들의 오해로 인해 결국 이들의 첫사랑은 허무하게 이뤄지지 못한다는 식의 전개. 이와 차별화된 구성을 택한 <20세기 소녀>를 보며 해당 장르에 대한 감독의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느꼈다. 본작은 친구와의 우정, 이성 간의 애정 모두 형태만 다를 뿐 본디 상대방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피어났음을 나타낸다. 오해가 있었지만 ‘보라’와 ‘연두’의 우정은 깨지지 않았고, 두 친구는 끝까지 서로를 위한 선택을 했다. 애초에 우정에서 촉발된 이들의 풋사랑이기에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치정을 이유로 관계가 파국으로 이어졌다면, 작품의 청량감과 몽글몽글한 감성도 빛을 잃었을 것이다.
사랑으로 뒤엉킨 친구들의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되었음에도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보라’와 ‘운호’는 기차역에서 눈물과 함께 진심을 고백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운명의 장난은 잔인했다. 누군가의 오해도, 친구와의 엇갈린 삼각관계도, 현실적인 문제도 아닌 알 수 없는 연락 두절을 이유로 관계가 끝났으니까. ‘보라’는 그 이후로 ‘운호’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소년이 담긴 마지막 선물을 확인함으로써 애틋한 사랑의 잔상을 떠올린다. 카메라 렌즈 너머 늘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자신을 지켜보던 소년의 진심은 비디오 테이프 시대를 넘어 스트리밍 시대에 접어들 때까지 낡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했다. 운명적으로 이뤄질 수 없던 두 사람이다. 하지만 20년 전 발송한 영상편지를 통해 전해진 첫사랑의 온도는 홀로 남은 당사자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절한 정서를, 그리고 영화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렸을 관객에게는 쉽게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공식 페이스북
-
- 크루엘라 (2021)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주인공이 필요하다.” 영화를 소개하는 이 문장처럼, 영화 <크루엘라>의 주인공은 디즈니가 다룬 과거의 순수하고 결백하며 완전하게 선하기만한 주인공들과는 다르다. 영화 <크루엘라>는 디즈니가 자사의 작품인 <101 마리의 달마시안개>에서 달마시안의 모피를 호시탐탐 노리는 악역 크루엘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전 작품과의 접점은 많지 않아 보인다. <크루엘라>는 전작의 악역인 크루엘라라는 캐릭터의 설정을 그대로 쓰되 캐릭터를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전작을 기억하지 못하는 입장에선 전작과의 연결고리가 어찌되었든 별로 신경쓰지 않고 봤다. 전작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봐도 영화 <크루엘라>는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고,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악당을 잡기위해 악역이 된다는 설정이나 복수담과 성장담을 담은 스토리, 주인공의 출생부터 시작되는 순행적인 플롯. <크루엘라>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평이한 편이다. 특별히 부족한 점도, 특별히 뛰어나다고 말할 부분 역시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가치없는 영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과감한 컷연출과 엠마 톰슨과 엠마 스톤의 불꽃튀는 대립구도, 1970년대의 런던, 러닝타임 내내 쉴새없이 파괴와 혁명을 부르짖는 헤비메탈과 락 사운드의 음악들, 크루엘라가 자신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 적합한 창조적 파괴의 펑키룩,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격하고 파괴적인 영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간중간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가미된 깨알같은 개그코드까지. 영화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의 컷들이 높은 밀도를 갖고 있는 영화로, 그 과함탓에 피로를 느낄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꽉찬 영상으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방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속박하는 금기라면 얼마든지 깨부수고, 한껏 열망하라.
선악과를 먹지 말란 금기를 어긴 아담, 아벨을 죽인 카인 등. 예로부터 죄의 낙인은 언제나 금기를 어긴 자들에게 주어졌다. 영화 <크루엘라> 또한 수많은 금기(-을 하지말라)를 받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거의 모든 금기(맨 마지막, 바로네스를 죽여선 안된다는 금기는 깨지 않았다)를 깨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금기를 깬다는 것은 에스텔라에겐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에선 그녀를 빌런(악당)으로 만드는 모순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금기를 깨고 자신이 열망하는 것을 추구하는 작중 주인공인 크루엘라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금기를 깨는 인물로서 크루엘라가 이 영화속에서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늦은밤, 리버티 백화점 점장의 사무실을 청소하는 크루엘라가 술을 발견하고 술을 들이키고 취기에 쇼윈도를 꾸미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내겐 아담이 선악과를 따서 먹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크루엘라는 금기된 장소에서 탐해선 안될 것(리버티 상표가 붙은 와인)을 기꺼이 탐한다. 금기를 깨트린 그녀에겐 분명히 죄인의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고, 그 이유로 그녀는 빌런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에스텔라는 사회가 정해놓은 금기를 깨서라도 세상이 정해놓은 자신의 한계와 위치를 넘어서고자 한다.
금기를 깨트린 그녀에겐 분명히 죄인의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고, 그 이유로 그녀는 빌런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에스텔라가 와인을 꺼내어 마시는 행위는 신과 같이 군림한 절대적인 체제와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한 종속적인 여성의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며, 취기에 쇼윈도를 자신의 재능으로 장식해 놓는 것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세계에 자신의 재능으로 되묻고 있는 것이다. 마치 카인의 죄를 물으려는 신에게 왜 신께선 아벨만을 찾으시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것처럼, 에스텔라는 내게도 이만한 재능이 있는데, 왜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기꺼이 원죄자가 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에스텔라는 쇼윈도에 전시된 마네킹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거는데, “너를 이 꼴로 둘 순 없어. 그건 너무 잔인해.” 이 말은 에스텔라 자신을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취기에 자신의 재능을 해방하는 에스텔라. 그녀는 자신이 열망하는 바를 위해 사회가 정해놓은 한계와 금기 따위라면 얼마든지 깨고, 넘어서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곧 사회가 정해놓은 종속적인 위치에서 해방되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여성, 내 포효를 들어라.” 영화 <크루엘라>의 곳곳에서 울려터지는 크루엘라의 포효는 열망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사회의 금기를 넘어서서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의 목소리 말이다.
크루엘라, 잔혹한(Cruel) 세상에 맞서다.
금기를 깨는 인물로서 크루엘라가 싸우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인물이 아닌, 금기로 가득 차있는 세상이다. 물론, 이 영화는 바로네스와 크루엘라의 명징한 대립구도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대립구도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본다면 크루엘라와 바로네스의 갈등은 단순히 개인간의 다툼이 아니라, 변화를 요구하는 신세대로 상징되는 크루엘라와 고유명사인 동시에 남작부인이라는 구시대의 권위적인 이름이 의미하듯이, 권위적이며 잔혹한 구세대로 상징되는 바로네스의 대립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크루엘라>는 영화의 초반에서 자신이 싸우고자 하는 대상이 엄마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크루엘라>의 대립 구도는 미래와 과거 각각 크루엘라(futuer)와 바로네스(남작 부인이라는 구시대의 권위적인 이름이 의미하듯이)로 상징되는 부정한 기득권 세력과 기성 사회에 저항하는 신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정의로워 보이는 싸움에는 한가지 덫이 있다. 부정한 세계를 향해 똑같이 부정한 방법으로 저항한다면, 그러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복수를 행한다면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진 것 하나 없는 에스텔라가 이미 사회의 높은 곳에서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로네스를 상대로 정당하게 싸우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에스텔라는 자신이 갖고 있는 폭력적이고 과격하며 킬러같은 잔혹한 본성(Cruel)으로 바로네스와 맞서고자 한다. 에스텔라는 복수를 다짐한 순간, 그녀의 어머니가 예의바르고 착한 아이가 되라며 붙여준 이름인 에스텔라를 버리고, 자신의 진짜 본성을 상징하는 이름, 크루엘라가 되어 복수를 위해 바로네스와의 긴 싸움을 시작한다.
<크루엘라>의 대립구도는 미래와 과거 각각 크루엘라(futuer)와 바로네스(남작 부인)로 상징되는 부정한 기득권 세력과 기성 사회에 저항하는 신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구시대의 유산은 버리고.
이미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의의 경쟁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에스텔라는 저 높은 곳에서 군림하고 있는 악인을 추락시키기 위해서 크루엘라라는 이름의 악인이 된다. 유산을 되찾는 것에서 복수로 목표가 바뀌었을 때, 크루엘라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와 행동을 취한다. 우선, 미래를 상징하는 그녀가 구시대 유럽 귀족들의 단장(短杖)을 들고 나타나서, 재스퍼와 호레이스의 아침 식사를 엎어버리고 자신이 할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는데, 어딘지 불편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복수를 다짐한 크루엘라에게서 보여지는 이 불편한 기시감은 크루엘라가 뒤엎으려는 부정한 기득권인 바로네스의 모습과 닮아 있는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크루엘라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후로 그녀는 마치 자신의 진짜 친모인 바로네스처럼, 얼마든지 타인을, 힘든 유년기 시절을 함께 보낸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호러스와 재스퍼마저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크루엘라는 바로네스가 그러했듯이 한동안은 자신의 재능과 카리스마로 주변 사람들을 사로 잡는다. 하지만, 그녀는 점차 바로네스의 부정한 면들까지 닮아가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결국 킬러의 본능을 가진 바로네스에게 뒤를 잡히고, 죽음의 위기에 놓인다.
유산을 되찾는 것에서 복수로 목표가 바뀌었을 때, 크루엘라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와 행동을 취한다.
“이 목걸이(유산)때문에 나는 죽게 될 거야.”
영화가 시작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에스텔라의 말처럼, 그녀는 결국 유산(가보인 목걸이)을 되찾는 과정에서 좌절하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때의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유산이란 바로네스로부터 물려받은 잔혹한 킬러의 본능, 즉 정신적인 유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에스텔라가 맞이하는 이 첫번째 죽음은 바로네스의 재능은 물론, 킬러의 본능이라는 사악한 유산까지 물려받은 크루엘라의 상징적인 죽음이다. 이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서 크루엘라는 새롭게 태어난다.
부정한 세상에 반발하여, 부정한 구시대를 무너뜨릴 신세대라면 당연히 부정한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크루엘라는 여전히 폭력적이고 과격하지만, 이젠 자신에게 유산을 물려준 이와 똑같은 형태의 악당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녀가 새롭게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엄마를 비롯한 자신의 가족들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거칠게 저항하고, 열망하며, 꿈꾸지만, 타인을 해치지 않고 타인들의 마음을 돌아본다. 이렇게 정리한다면 다소 순진해보이지만, 그 영악한 순진함이 크루엘라라는 캐릭터의 매력이고, 순진하면서도 영악한 그 본성으로 세계를 뒤흔드는 인물인 크루엘라가 디즈니가 제시하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로 하는 새로운 주인공이다. 덧붙여, 영악한 순진함이란 말은 모순적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태도를 실현하기 어려울 뿐이다.
이 죽음은 바로네스의 재능은 물론, 킬러의 본능이라는 사악한 유산까지 물려받은 에스텔라의 상징적인 죽음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주인공이 필요한 법.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진 크루엘라는 자신의 가족과 동료, 지지자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유산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이때, 크루엘라는 유산을 되찾는 과정에서 순진하게 금기와 권력을 따르는 여성상인 에스텔라에게 죽음을 준다. 그리하여 새롭케 태어난 크루엘라는 바로네스의 잔혹한 유산을 물려받은 인물도 아니며, 캐서린의 금기를 따르는 순진한 인물도 아니다. 크루엘라는 이전 세대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름과 정체성 모두를 죽이고, 자신만의 이름과 정체성을 선택한다.
이 악당의 성공담 또는 성장담은 디즈니가 제시하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도 해치지 않되, 영악하게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여성,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거침없이 드러내는 한편, 기성세대가 유산으로서 물려준 이름과 잔혹한 본능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이름과 자신만의 능력과 열정을 발휘하는 여성. 영화속 크루엘라의 성격을 이렇게 풀어본다면, 디즈니가 새롭게 해석한 빌런 크루엘라는, 그동안 디즈니가 지켜온 전형적인 주인공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인공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 이상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주인공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낡은 시대의 주인공을 두 번 죽인다. 그 첫 번째 죽음은, 바로네스로부터 잔혹한 구시대의 정신을 이어받은 크루엘라의 죽음이며, 두 번째의 죽음은 권력이나 환경에 기대어 순진하게만 살아가는 여성 에스텔라의 죽음이다. 이 두번의 죽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크루엘라는 온갖 사회적 금기들로 속박되고 억압된 여성상에서 해방되어 낡은 금기를 깨부수고, 영악하게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디즈니는 구시대적인 인물에게 두 번의 죽음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끝에서 새롭게 태어난 주인공인 엠마 스톤의 크루엘라는, 디즈니가 1970년대의 런던을 지나 우리시대, 즉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주인공”으로 제시하는 인물상이기도 한 것이다.
요컨대, 영화 <크루엘라>는 과거의 속박되고 억압된 여성상에서 해방되어 거침없이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는 현대적인 여성상을 엠마 스톤의 크루엘라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주인공”으로써 제시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캐릭터의 성격을 한층 더 살리는 <크루엘라>의 미술과 음악
자신의 것을 되찾기 위해서 바로네스와 맞서는 크루엘라의 퍼포먼스는 굉장히 과격하고, 기존의 세계를 흔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파격적이고 과격한 <크루엘라>를 장식하는 음악과 패션도 이 영화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 영화에서 쉬지않고 들려오는 1960년대 ~ 1970년대 런던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헤비메탈 / 하드락 사운드의 음악들하며,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주인공 크루엘라를 장식하는 펑크풍의 패션은 이 영화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고, 크루엘라의 개성을 더욱 강조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주인공이 되기위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영화 <크루엘라>의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해방과 혁명을 부르짖는 과격한 헤비메탈 사운드는 영화속의 낡고 부정한 세계를 뒤흔든다.
평이한 플롯과 스토리는 아쉽지만.
영화 <크루엘라>의 플롯과 이야기는 전형적이고 평이한 편이다. 따라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는 듯한데,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섞인 복합 예술인 영화를 두고 메세지나 스토리, 플롯만 두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평가가 아닌가 싶다. 요컨대, 두 엠마의 불꽃튀는 신경전만 해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가 아니었던가? 물론, 사람에 따라 무엇을 중요시 여기느냐는 저마다 다르고 존중해야겠지만, <크루엘라>와 같은 작품은 일단 플롯은 간결하니 플롯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고, 스토리상으로는 논리적 오류만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크루엘라>와 같은 장르 영화의 매력은 스토리 역시 중요하지만 이야기 자체보다는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시 · 청각적인 요소(배우들의 연기력, 컷 연출, 미술, 음악 등)들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그냥 쉽고 간결하게 질문하고 대답하면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재밌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사적이고 개인적인 대답을 하자면, 이 영화는 분명 흡입력있는 재밌는 영화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가는 다르기야 하겠다만(아마 영상 전체에 흐르고 있는 과한 에너지 탓에 피로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캐릭터의 매력이 강렬한, 재밌는 영화라고 평가하고 싶다.
-
- ? 실화 서울의 봄 - 이 영화에 담긴 감정 ?
-
?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오늘은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이 영화는 1212 사태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인 사건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
? 영화는 전두광과 이태신이라는 두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감정의 격동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전두광의 탐욕과 이태신의 분노, 그리고 국민의 허탈감까지, 이 영화는 다양한 감정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 황정민과 정우성의 연기는 각각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군사반란과 그로 인한 국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 이 영화가 갖는 감정적 가치를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서울의 봄'을 꼭 관람해보세요. 감독 김성수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여러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 '서울의 봄'에 담긴 감정들을 직접 경험해보세요. 영화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저희 채널을 구독하고 다음 리뷰를 기다려주세요! ?
-
- 어벤져스 1편 삭제씬 총정리
#산돌구름 #어벤져스1 #삭제씬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4. 0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34 마리아 힐 & 오프닝
01:35 외로운 캡틴
03:35 캡틴과 웨이트리스
04:37 경찰 비하인드
05:23 앤트맨 힌트
06:09 너무 오랜만에 찾아왔어요 ㅠㅠ
-
-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메인 예고편
- 서기 2043년,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을 세우려는 국가 에머슨.
인간병기를 양성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을 납치하고,
외딴 숲에서 칩거하던 ‘니스카’도 결국 사랑하는 딸을 빼앗긴다.
10개월 후, 예기치 못한 비밀이 하나둘 드러나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니스카’는
딸을 되찾고자 국가의 중심부를 습격하기로 결심하는데…
-
-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투나잇 15초 예고편
“예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
뉴욕 변두리를 장악한 제트파의 일원 ‘토니’(안셀 엘고트)는
어두운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나도 멋지게 내 인생 살아보고 싶어”
제트파의 라이벌 샤크파의 리더 ‘베르나르도’의 동생 ‘마리아’(레이첼 지글러)는
고향인 푸에르토리코를 떠나 정착한 뉴욕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에 부풀고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찾고자 한다.
“널 본 순간 다른 건 무의미해졌어”
무도회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리아와 토니.
하지만 뉴욕의 웨스트 사이드를 차지하기 위한 샤크파와 제트파의 갈등은 점차 깊어지고
‘마리아’와 ‘토니’는 자신들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함께 하기로 하는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