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6-24 10:14:03
6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1조원 넘긴 올해 최고 흥행작 <인사이드 아웃2>
<인사이드 아웃2>가 전 세계 총매출액 1조원을 넘기며 올해 최고 흥행작에 올랐습니다.
국내는 개봉 2주차 400만 명을 넘겼고, 북미 누적 매출액 3억 돌파, 북미 외 전세계에서 7억 달러를 넘기며
기록 경신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수요일 개봉 관례를 깨고 금요일 개봉한 <하이재킹>은 48만 명의 관객 수를 모으며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고,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원더랜드>를 밀어내고 3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나쁜 녀석들: 라이드 오어 다이>가 장기 흥행을 이어가며 2위,
조디 코머, 오스틴 버틀러, 톰 하디 주연의 미국 중서부 오토바이 바이크 모임의 이야기를 다룬 <더 바이크라이더스>가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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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 The Conjuring: The Devil Made Me Do it, 2021
13년, 대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했던 그 해에 영화 <컨저링>이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개봉을 앞두었던 영화의 광고 카피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는 8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잊히지 않습니다.
박수만 쳤음에도 <킹스맨>에서 보았던 "뇌꽃놀이(?)"장면처럼 팝콘들이 흩날렸으니까요.
물론, 8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의 상황이 더 무섭지만 이를 시작으로 영화 <컨저링>은 하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포함해 본편 3개과 4편의 외전만으로도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다가올 텐데요.
이를 제작진들도 알기에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은 많은 변화들을 시도들이 눈에 보입니다.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보기에 앞서, 팬들은 <컨저링>시리즈는 초자연적 현상을 바탕한 "오컬트 호러"임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법정"과 "수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이식해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에 거는 기대감이 남달랐습니다.
이제는 고착화된 시리즈를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지?' -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였습니다.
퇴마 의식을 진행하던 워렌 부부는 무사히, 일이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악령은 사실 다른 이에게 옮겨진 것이고, 악령에게 빙의된 대상자는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에 워렌 부부는 법정에 선 범인이 '악령에게 빙의되었다'라는 증거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을까?1. 3편까지 왔으니까, 변해볼까?
앞서 말했듯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에서 우리가 집중할 건 '숫자 3'입니다.
1에서 2로 커진 숫자만큼 스케일도 비례하듯이 커지는 것이 보이지만 ,'숫자 3'은 다르게 풀어 나가야 하는 숫자입니다.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시켰던 2편과는 다르게, 3편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눈에 익었기에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앞서 말했듯이 "수사극"의 기법과 "법정"을 배경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죠.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게끔…그래서인지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기존 시리즈와 비슷한 분위기임에도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이전 시리즈들이 피해자들의 모습만을 비췄다면, 이번 영화는 사건의 배후를 단면적으로 드러내는데요.
보통 추리와 같은 수사극 장르에는 '범인이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때문에 관객들은 이야기에 참여 즉, 몰입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화는 "신비함"이라는 큰 윤곽으로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차별화를 두니 8년이나 알고 지낸 영화라고 해도 새로이 보일 겁니다.
2. 장르의 호불호, 관객들이 갈라진다.
다만, 아쉬운 건 차용된 장르가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주 장르로 대체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오컬트 호러"로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관객들을 놀래는 영화입니다.
보통의 법정극이나 수사극이었다면, 법정에 서있는 범인이 영화의 평가를 좌우할 반전 카드로 쓰겠지만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이미 부제부터 "악령"의 존재를 인정하는 영화입니다.
이에 모자른지 이미, 초반부터 악령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니 이런 모호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주객전도가 되었어야만 했나?그렇기에 수사극과 법정 장르물을 기대했다가는 실망스러울 텐데, 특히 이를 수사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장르물은 '범인이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므로,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시켜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수사하는 과정은 관객들을 해당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중요한 부분인데, 이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증거의 논리보다는 해당 장면의 감정들이 보이고 무엇보다 <컨저링>시리즈에서 "로레인"의 능력이 "영매"이기에 "이거다!"라고 정해둔 상태라서 맥이 빠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3. 1차적인 해석, 조금만 더 풀었으면...
변화의 시도가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만들었다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공포"는 어땠을까요?
해당 영화를 먼저 챙겨 본 다른 분들의 평가처럼 초반 오프닝은 강렬했습니다.
다만, 이후 보이는 공포들은 이에 못 치는 감이 있어 금방 피로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공포 연출이 "점프 스케어", 즉 깜짝 놀래는데 주력을 든 것이 클 겁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를 풀어가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포는 없더라...이전 <어른들을 몰라요>의 리뷰에서 풀었듯이
"사람들이 많이 오인하는 것은 아이를 임신함으로 모성애가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지만, 이때 사람이 가지는 감정은 공포입니다. 자신의 몸을 숙주 삼아 끊임없이 성장하고 이내 밖으로 나오는 건 암과 같은 질환과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요. 소재를 바꾸어 '스킨십'과 '감염'에 대해서도 비교해도, 이 역시 똑같습니다. 흔히, 연인들은 서로의 살을 부대낌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데 이는 아기가 엄마와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절은 '비대면'과 '비접촉'입니다. 좀비 영화에서도 깨무는 것을 비롯해 침과 피와 같은 타액으로 감염되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과 감염도 한 끗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는 해석처럼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사랑도 충분히 공포로 해석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극 중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워렌 부부"도 있지만, 살인을 저지른 남자친구를 믿어주는 연인이야말로 공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가 이를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됩니다.
4. 아이디어는 많았는데...
결국, 1차원적인 해석에 그친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인상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겁니다.
그만큼 감정에 기댄 나머지 무서운 장면도 무섭게 느껴지지 못한 건 <컨저링>을 떠나 "공포 영화"로서의 정체성이 뒤흔들리는 말로 들릴 겁니다.
물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가 보여준 시도들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오컬트 호러 시리즈에 법정과 수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접목해 관객들의 몰입을 도왔다는 점과 "사랑"과 "공포"라는 감정의 연결 지점을 생각하면 시리즈에서 가장 신선한 속편입니다.
다만, 시도에 비해서 결과물이 시원찮았다는 것이 그렇지만요.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파천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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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날 탈(脫)
불일부이(不一不二), 오프닝부터 기이한 거문고 소리와 함께 전면에 떠오르는 한자어는 아리송하다. 불교 철학에서 출발한 위 구절은 ‘너와 나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 (다르게 말해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라는 뜻이다. 의미를 풀어보니 이해가 더 복잡해진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을 짐작케 한다.
불치병에 걸려 삶의 막바지에 선 영목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108배에 매진한다. 죽음을 맞기 전, 마치 열반의 경지에 이르려는 듯 여자친구의 애닳은 전화에도 굴하지 않고 단지 절을 할 뿐이다. 숭고하게 절을 하고, 물잔을 비우고, 산책을 하고, 단상을 기록하며 번뇌를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려하지만 도리어 생각이 많아지는 역설을 발견하는 나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다가 홀린 듯 나무 더미 속 공간으로 기어들어가 붉은 꽃 한 송이를 보게 된다. 그 날 이후 영목은 붉은 옷의 형상을 목격하기 시작한다. 신경이 쇠약해져 헛것을 보게 된 걸까, 혹은 부다의 현현인가. 공포에 휩싸인 영목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지우는 작가다. 애니메이션으로 입문했지만 이내 그만두고 그림을 그린다. 전시를 앞두고 있지만 번아웃이 온 탓에 마감기한에 쫓기고 있다. 영감을 기다리다가, 예전에 그렸던 애니메이션이나 내보라는 기획자의 독촉 전화를 받고는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그만 둔 이유를 반추해보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끝을 두려워한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 모든 것은 끝내 멈추어야 하는가? 왜 모든 이야기는 끝이 나야 하는가? 과거 남자친구와 함께한 니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들춰보다가 어렴풋이 답을 찾고 다시 애니메이션을 그리기 시작한다.
서보형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벗어날 탈은 실험적이다. 전형적인 영화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병치시켜 풀어내다가, 종국에는 이어버린다. 죽음을 연료삼아 깨달음으로 나아가기위해 노력하지만, 죽음(미지의 형상)을 두려워하는 영목. 멈춤을 두려워하여 영원히 유예하려고 하지만, 사진(정지한 것)에서 생명을 포착하고 애니메이션(움직이는 것)을 다시 그리게 된 지우. 서로가 두려워하는 것을 열망하고 열망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먹고 먹히는 관계. 영화는 순환하며 점에서 거대한 고리 모양의 구조를 띠고 있다. 마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대비되는 것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다름을 부각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 상승과 하강, 멈춤과 움직임 그리고 물과 불. 영목(남성)과 지우(여성)은 각각 수직운동과 정지-움직임을 반복하며 삶(물)과 죽음(불)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가장 짜릿한 지점은 서로 다른 개념이 접합되는, 말하자면 불일부이가 실현되는 때이다. 영목과 지우가 만나는 순간, 죽은 줄만 알았던 해변의 사나이가 영목으로 환생한 순간, 저승사자 같은 빨간 옷의 여인이 지우로 치환된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치 영혼을 주고받듯 성스럽게 입을 맞추며 이어진다.
지우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두 사람이 합쳐지는 장면은 불일부이를 더욱 명료하게 나타낸다. 이야기 속에서 한 남성은 한 여성의 자궁으로 기어들어가 잉태된다. 남성의 모습에서 꽃을 찾으러 나무 더미 세상으로 기어들어가는 영목이 겹쳐진다. 지우는 둥그런 베개를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출산해내는 연기를 하는데, 마치 지우가 영목을 출산한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 대비되는 것을 좇던 두 인물이 결합하게되니, 영목은 죽음을 연료삼아 추구했던 깨달음보다 삶의 기쁨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지우는 끝의 두려움을 극복하여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고 이어지니 만물은 서로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는 뫼비우스의 띠가 완성되는 것이다.
2018년 제작한 단편영화 <탈날 탈(頉)>에서 확장된 <벗어날 탈(脫)>은 정해진 포맷 안에서 제작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4대 3비율을 사용하며, 남녀 한 명씩만 등장시키고 거문고 음악을 사용할 것. 가히 제한된 조건 속에서 창의력이 극대화된 경우라 할 만하다.
4:3, 정확히는 1.375:1(아카데미 비율)의 화면비를 사용하면서 회화적 연출이 두드러진다. 수직운동을 반복하는 영목의 움직임을 담기에 탁월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수행에 정진하거나, 몸을 꼿꼿이 편 채로 좌선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났다. 또한 프리즈프레임을 활용하여 회화적 특성을 부각하면서도, 1초 24번 이하로 프레임을 분절하여 달리는 지우의 모습을 간격있게 표현한 장면은 움직임을 중시하는 지우의 특질을 강조하는 것에서 나아가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Pictures)라는 영화 매체의 본질까지 환유한다.
박우재 음악감독의 거문고 연주는 혼란스러운 극의 분위기를 선율로서 충실하게 표현한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 채 무작정 구도하는 마음, 미지의 형상과 조우하여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영목과 지우가 만나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까지. 작은 단위로 특정 비트를 표현하는 것에서 발전하여 하나의 선율로서 장면을 뒷받침하기까지 다양하게 기능한다.
로베르 브레송은 시네마토그래프를 ‘움직이는 이미지와 소리를 가지고 하는 글쓰기.’라고 표현했다. 영화는 태동 이래 끊임없이 존재론적 위협을 받아왔다. ‘제7의 예술’로 명명되며 독립된 예술로서 지위를 공고히하는가 했지만, 회화, 문학, 연극, 음악, 무용의 특징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송의 표현은 독자적인 영화의 정의를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벗어날 탈>은 회화의 특징을 끌어들이면서도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승화시켜 시네마토그래프로서 구현해내었다는 점이 신선하면서도 반갑다. 이미지(쇼트)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역학과 탁월한 사운드를 잘 버무려 영화의 본질을 존중하면서도, 인접 예술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저변을 확장한 실험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3년 만에야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익숙하지 않은 불교 교리를 영화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표현의 한계가 직관적 동요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정신적인 것을 시각화하여 필름 위에 환원해냈다는 점만으로도 괄목할 만하다.
원을 그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벗어날 탈>은 부서지면서 생겨날 것을 권한다. 멸(滅)의 끝은 생(生)의 시작이고, 생의 끝은 곧 멸의 시작이니 매끈하게 이어진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진정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순환의 길 위에서 마음을 기울일 것은 바라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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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소중함에 대한 시간의 역설이 멜로와 가족애를 모두 잡았다.
<러브레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돌아보면 꽤 많은 일본 영화를 봤었는데, 그중 단연 많이 보는 장르라면 멜로나 가족 장르가 되겠다. 특히 국적을 불문하고 2010년 이후 작품들보다 2000년대 초중반에 나온 작품들이 유난히 마음에 드는데, 특유의 투박한 감성과 어딘지 낡아 보이는 장면들이 가장 마음에 드는 매력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포인트가 많다. 국내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이기도 하고, 포스터 자체가 워낙 눈에 익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왠진 한 번 봤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꽤 많은 영화를 봤지만, 리뷰를 쓸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찾질 못했다. 와중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만나게 됐고, 새벽녘에 맥주 한 캔과 함께 조용히 빠져들었다.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꽤 깊은 공허함과 동시에 따뜻함이 남는 매력 있는 영화였다.
일본 영화가 가진 청록색의 청량함은 유난히 푸르게 느껴진다. 주위 배경과 이질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게 신기할 다름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오프닝은 영화의 배경을 알리듯 가볍게 끊는다. 청량한 배경과 긴 여백으로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의미심장한 장면을 던짐으로써 관객에게 호기심을 끌어낸다. 대부분의 일본 영화들이 그러던데, 특유의 클리셰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시놉시스와 다르게 꽤나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분위기는 산뜻하게 이끌어간다. 마치 '불행한 일 같은 건 있지만, 괜찮아!'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진중한 현실의 사건을 가볍게 풀어낸다는 점에서부터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남편과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아이오 미오(다케우치 유코 분), 어느 날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고 돌아오게 된다' 소재 자체만 두고 보았을 때는 사실 치트키에 가까운 수준이다.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는 주제임과 동시에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조금 보태 이런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재미없게 만들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 꽤나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가벼운 도입부를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 이별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두고 시작하기 때문에 알게 모를 밀당이 영화 전반적으로 흐른다. 관객에 마음을 아릿하게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다가도 동시에 허탈하게 웃을 수 있도록 놓아주기도 한다. 동시에 비의 계절이 되면 돌아오는 엄마라는 사실 자체가 연출적으로 낭만적이다. 비의 계절, 그러니까 계절 상 장마가 끝나버리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관객에게 인지시킨다. 때문에, 관객은 결말로 달려가면서 끝까지 오묘한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
새까맣게 태운 빵과 풋내기 부자, 귀여운 음악, 배우 특유의 말투, 쉬어가는 듯 보여주는 여백의 장면들까지 이러한 조합들이 의외의 밸런스를 유지한다.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지 않고 영화 내내 적당한 균형감을 유지해준다. 영화 전체적인 소재를 잊게 만들 만큼 연출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꽤나 쓸쓸해 보일 법한 연출도 여러 번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은 슬쩍 웃음 짓다가도 눈밑이 천천히 시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마, 누군가의 빈자리라는 점을 현실에 빗대어 연출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도 빈자리가 영원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상기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연출가의 밀당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영화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연출이나 대사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초반에 비의 계절을 바라보는 부자와 동시에 우연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비디오 테이프의 미오의 장면은 연출가의 섬세함이 극대화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함께하는 것 같지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닌 묵직하면서도 서글픈 연출이 마음을 여러 번 울린다. 이처럼, 관객의 감정을 끌어당기기 위해 여러 도구들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방금처럼 장면 연출 외에도 대사, 주인공의 모습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영화로 불러일으킨다. 관객은 여러 번 영화 속으로 들어가 여러 주인공들을 교차해가며 동기화되어가는 감정을 느낀다. 다른 영화들보다, 이 영화에 유난히 눈물을 많이 흘렸던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 같다. 너무 동요하지도 않는 적당한 감정선이 우리에겐 더 애틋하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모든 것이 우연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개연성이나 접점을 찾아보기에는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뻔할지도 모르는 결말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점에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헌신과 순수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이해가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개성 없는 캐릭터성과 상투적인 흐름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나, 이 모든 것을 뒤집을 만큼 감성적인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신파극 감싸주기'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이 영화가 다르게 보이지도 않을까 싶다. 영화는 무작정 관객을 붙잡고 '어서 울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화는 생각보다 관객에게 사건의 흐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기승전결의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지루할 수 있겠지만 영화의 스토리가 되어줘야 하는 일련의 과정조차 지루하다고 느낀다면, 볼만한 영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일련의 과정들을 따라가면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점은 스토리의 순서가 생각보다 이래저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교차적이라는 점이었다.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려, 다시 과거로 회상되어가는 연출은 뭐랄까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둘의 첫 만남부터, 연애를 하게 된 시점과 행복했던 기억까지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스토리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푹 빠져들게 된다. 문득, 첫사랑이 떠오르게 만드는 그런 지점들이 많았었다. 이러한 연출의 허점은 스토리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니 교차점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관객에게 혼란의 불편함을 심어주는 실수들이 있는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이런 불편함을 겪어보지 못했다. 아마, 인물이 인물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3자의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친숙하게 느껴져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당신 물건이 그대로 있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대사를 통해 영화는 이별에 대해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건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 사람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이별이 되었든 사별이 되었든 흔적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과거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마지막 장면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떠나야 하는 때를 알고, 슬픔에 잠기기보다 떠난 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해 애쓰는 미오의 모습은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둔 아이오 타쿠미(나카무라 시도)와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하나, 마지막에 서로의 각별한 추억을 떠올려 똑같은 행동으로 마지막을 보내는 모습에서 이별에 대하는 방식은 반대였지만 그 마음만큼은 같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돌아온 아내와 유난 떨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유난 떨지 않아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출이었다. 돌아온 아내와 밥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행복해 보였지만 동시에, 그만큼 이별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슬픈 장면이기도 했다.
영화 전체적으로 메시지가 굉장히 잘 드러나는 편인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지금'에 대해서 수없이 강조한다. 지나간 시간에 후회되고, 다가올 미래가 두렵더라도 지금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기를 이야기한다.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을 통해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로 현재 소중한 것들에 대한 것들을 강조하는 셈이다. 기억을 잃은 아내를 설정함으로써 다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과거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주인공과는 정반대인 면도 메시지 그 자체와 닮아있다. 영화에서야 이별의 기한을 재설정함으로써 주인공의 삶을 대입해 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거리가 있지 않으니까 지금을 온 마음을 다하길. 인형을 거꾸로 매달아놓음으로써 지금의 시간을 조금 더 늦추고 싶은 아이 아이오 유우지(다케이 아카시 분)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현실에서 흘러가는 삶도 중요한 남편 아이오 타쿠미의 삶을 모두 가지고 있는 당신, 당신에게 주어진 지금을 살고 흘러간 시간에 대해 후회하기보다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벽녘에 맥주와 함께 봤던 걸 후회할 정도로 먹먹한 영화였다. 꽤나 당황스러운 전개, 아이러니한 결말을 가지고 있지만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멋대로 단정 짓고 싶다. 소재에 관련해서 소위 말하는 치트키에 가깝지만, 영화가 2005년작임을 생각해본다면 치트키의 시초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결말을 기대하는 분들에게 할 얘기는 아니지만, 해피엔딩은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해피엔딩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 정도로 괜찮았고, 마음이 크게 가는 영화였다. 일본 영화들은 본 이후로도 마음속에 꽤 오래 남기 때문에 한 번 보고 나면 다음 영화까지 보는데 꽤 긴 기한이 필요한 편이다. 그럼에도 보고 싶어 지는 이유는 이런 작품들을 꾸준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슴 먹먹한, 너무나 아름다운, 그냥 괜히 따듯해지는 기분이 드는, 첫사랑이 문득 떠오르는 ... 많은 수식어가 떠오르는 영화였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었던 故다케우치 유코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출처 : <いま、会いにゆきます>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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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교섭 |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영화 교섭 결말 후기 줄거리 쿠키 | 실화를 담아보았지만? | 황정민 X 현빈 주연
요즘 극장에 교섭 VS 유령 VS 아바타 VS 슬램덩크 치열한 대결을 하고 있어요. 저는 그 중에서 교섭을! 선택해서 봤는데... 아?... 내 실수 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램덩크를 봤어야 했지!! 하면서 리뷰 써봅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액션, 스릴러, 시대극, 버디, 모험
감독 : 임순례
출연진 : 황정민, 현빈, 강기영
개봉일 : 2023년 01월 18일
평점 : 6.32
기획 의도
중동에서 납치된 한국인을 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의 이야기 "어떤 경우라도 희생자를 안 만드는 게 이 협상의 기조 아닙니까?" 세계 공인 여행금지 국가 중 최악으로 악명 높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피랍되는 사건이 터졌다.
교섭 전문이지만 이번에 처음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외교관 재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 사정에 능통한 국정원 요원 대식과 함께 인질을 구하기 위해 작전을 세운다.
여담
영화 교섭은 민감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영화로써, 억울하게 탈레반에게 잡힌 것이 아닌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알려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린다. 개봉 당시 유령과 큰 기대를 모았으니, 두 영화다 관람객 평점이 좋지 못하여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교섭의 결말을 살펴보자면 교섭 전문가인 황정민이 직접 탈레반 소굴 안으로 들어가 협상을 진행하며 한치에 물러섬 없는 정직한 수 싸움을 이겨 피랍되어 있는 한국인들을 구출해 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가 다 끝난 후 예전에 이 사건이 엄청 큰 이슈화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사가 집중 됬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영화로 다시 재각색하여 만들다 보니 호불호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무엇보다 교섭을 한다는 주제로 교섭 -> 실패 -> 교섭 -> 실패 무한 반복을 2시간을 늘려서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영화 교섭은 쿠키영상은 없지만, 시즌 2를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이 있었다. 과연 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속에서 교섭 2가 나올까?! 극장가에 재미있는 영화가 안 나와 박스오피스 1위 하고 있긴 한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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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약함은 연대한다 ‘디피컬트’
블랙 프라이데이, 환경 단체가 대형 쇼핑몰을 점거하며 외친다. “1도, 2도, 3도, 오르는 기후. 소비는 반인륜적 범죄” 싼값에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들과 소비를 막으려는 사람들은 과격하게 대치한다. 격렬한 시위 장면으로 시작하는 <디피컬트>는 기후 위기와 환경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원제 ‘A difficult year’가 암시하듯 이 영화는 삶의 힘듦과 우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환경 운동가 캑터스는 기후 우울증으로 무력감을 느낀다. 브루노와 알베르는 대출을 반복하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 거주지도 불분명한 신세가 됐다. 브루노는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까지 했고, 알베르는 공항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물건을 되팔아 근근이 돈을 마련한다. 환경 운동가와 리셀러,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세 사람이 환경 운동으로 엮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는 것은 환경 운동과 가난이 맞닿는 지점들이다. 알베르와 브루노는 공짜 맥주와 음식에 혹해서 환경 단체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기후 위기에 코웃음 치지만, 자선 바자회가 물건을 빼돌려 되팔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환경 운동에 가담한다. 환경 운동에서 떨어지는 콩고물과 캑터스에 대한 알베르의 호감, 시위 현장이 주는 묘한 흥분 등은 이들로 하여금 환경 운동에 가담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유가 된다.
빈곤과 환경 운동은 또한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캑터스는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한다. 하나의 물건을 들일 때는 하나의 물건을 버리는 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유지한다. 알베르와 브루노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 전문가는 물건을 사기 전에 세 번 생각해 보라고 강조한다. ‘꼭 필요한가? 정말 필요한가? 지금 당장 필요한가?’ 최소한의 소비는 환경 문제와 재정적 문제에 봉착한 개인들의 실천이자 투쟁이다.
이는 기후 위기와 빈곤이 끊임없이 달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루노가 자본의 중심지인 프랑스 은행을 점거하자고 설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이 화석 연료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기후 재난을 가속화한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는 채무 변제 서류에 접근하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환경 운동과 연결되는 의외의 상황들은 삶의 취약함이 여러 지점에서 우연히 연결됨을 보여준다. 우리의 우울이 결코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때 취약함은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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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 <야구소녀> 리뷰
*스포일러 포함
살다 보면 세상일에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 많다. 노력이 전부 결과를 이어지는 건 아니며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게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막막한 괴로움에 포기를 해야 하는 건지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건지 매 순간 갈팡질팡 하게 된다. 하지만 그저 모든 생각을 다 지우고 앞으로 묵묵히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때가 온다는 전제로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그저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때도 있다.
<야구소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가 그것을 극복하는 서사도 아니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으로 불타는 열정으로 모두를 감동시키는 스토리도 아니다. 주수인은 구속 150킬로가 넘는 '남자를 뛰어넘는' 천재도 아니다. 여자 선수를 부원으로 받아 학교의 이름을 알리려 한 고교 야구단이나 그녀를 프런트에 영입해 야구단 이미지 마케팅을 하려 했던 구단들은 그녀의 재능이나 열정에 크게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여자 선수로서 던질 수 있는 만큼의 구속으로 공을 던졌고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라서 할 수 있는' 것에 치중했다. 그리고 학교와 프로 야구단은 그녀를 과대평가 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고 딱 실제로 지닌 실력만큼 평가하고, 여자 선수라는 상징성을 자신들이 이용하는 대가로 적절한 연봉을 제시한다. 이 영화의 기승전결은 주수인도, 그녀의 부모님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모두가 만족하는 레벨에서 딱 끝난다.
그러니까 사실, 복권에 당첨되고 싶거나 불로소득을 벌고 싶다는 한탄들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바라는 것은 적정 수준의 합리성이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고, 기대한 만큼 결과를 내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합리성이 필연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길들도 내 길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즉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딛고 또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성장이라 부르는 그것은 복권 당첨보다도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 세상은 최소한의 합리성도 우리에게 보장해 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아직 오늘의 몫으로 이뤄내야 할 성장이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수인이 '여자 중에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여자 구단으로 가기 싫었던 이유는 뭘까?
여성으로 태어난(그게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그냥 가장 보편적으로)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해할 것이다. '여자 치고 털털하다' '여자 치고 잘한다' 같은 말은 몇 백번을 들을수록 기분만 나쁘다. 여자라는 집단을 통째로 비하하면서 그 집단에 속한 너는 집단의 부정적 속성에 물들지 않은, 긍정적으로 구분되는 개체라는 말인데 이게 어떻게 칭찬인가?
하지만 영화 속에서 수인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항변도 설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공을 던진다. 왜냐면 그러고 싶으니까. 자신이 남자라면 듣지 않았을 말들에 속이 상하고 '현실'과 '경제적' 문제를 보라고 윽박지르는 세상이 짜증 나지만, 어쨌든 거기에 순응해서 살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계속 공을 던진다. 그리고 그것이 수인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하던 영화의 관객은 트라이아웃에서 정제이미를 만나는 순간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수인과, 나와, 다르겠지만 비슷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또 있구나, 같은 안도감이다. 꼭 서로 팔짱을 끼고 같은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그 안도감에 너도 이 자리 오기까지 참 뭣 같은 일 많이 겪었겠구나, 라는 약간의 공감과 연민이 섞인 감정도 연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구속을 더 이상 올릴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인정하게 된 시점에서 수인은 진태의 도움을 받아 너클볼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아빠는 더 이상의 시험 응시를 포기하고 엄마는 수인을 응원하고 지원해 주기로 했고, 수인이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여자 선수들의 지원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흔히들 문이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한다. 글쎄, 실제의 삶은 그것보다는, 문이 다 닫히면 닫힌 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에 가깝다. 나의 존재가 아직 존재하는 한 정말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뭘 어떡해, 그래도 해야지.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다고 해도 지금 내가 알 수 없는 부분 때문에 모든 걸 미리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세상일을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지만 오늘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그래도 어떡해? 그냥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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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7월 4주 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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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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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흘> 1차 예고편
2024년 대미를 장식할 역대급 오컬트 호러 영화가 나왔다! 박신양X이민기X이레의 색다른 연기 변신! [사흘] 1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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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2 공식 예고편
오직 나만을 위해, "Say Oui!" 이번 크리스마스,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거야. 돌아온 《에밀리, 파리에 가다》,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