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12 17:12:32
향긋한 꽃내음과 함께, 꽃이 가득한 영화 -7-
봄
❣️[Cinelab Curation]❣️
이번 주에는 봄을 맞아 꽃내음이 가득한 영화들을 큐레이션 해보려고 해요!
부쩍 날이 따듯해졌어요. 이제야 정말 봄이 왔구나 싶어요!
그리고 벌써 꽃이 하나둘 피고 있죠.
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같은데요.
새해를 맞아 열심히 달리셨던 분들.. 조금씩 지쳐가고 있지는 않나요?
꽃이 가득한 영화로 기분 전환 해보는건 어떨까요?
그럼, 씨네랩 큐레이션과 함께 향긋한 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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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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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허우적대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립 이후 PTSD에 시달리기 시작하자 '닉 퓨리'(새뮤얼 L. 잭슨)는 우주 방공 시스템 'S.A.B.E.R.'로 숨는다. 하지만 그가 우주에서 마음을 달래는 사이, 지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퓨리가 새 집을 찾아주겠다는 30년 전 약속을 배신했다고 판단한 스크럴이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
새로이 스크럴 저항군의 리더가 된 '그래빅'(킹슬리 벤아디르)은 인류를 절멸할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고, 지구는 제3차 세계 대전 직전에 빠진다. 그 사이 퓨리의 절친 '탈로스'(벤 멘델슨), 아내 '프리실라'(샬레인 우더드), 그리고 탈로스의 딸 '가이아'(에밀리아 클라크)는 목숨을 위협받는다. 이에 퓨리는 마침내 지구로 돌아온다. MI6 국장 '소냐'(올리비아 콜먼)의 도움을 받아 그래빅을 막기 위해서.
닉 퓨리도 구하지 못한 MCU
MCU가 위기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정도를 제외하면 '마블'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흥행도, 비평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앤트맨: 퀀터매니아>로 막을 올린 페이즈 5도 표류 중이다.
디즈니+ 드라마도 반응이 안 좋다. <완다비전>, <호크아이>, <팔콘과 윈터솔져> 등 익숙한 히어로가 등장한 작품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변호사 쉬헐크>, <미스 마블> 등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는 작품은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연계도 악수가 됐다. 드라마를 보지 않으니 시리즈에 연계된 영화 역시 자연히 흥미가 떨어진다.
MCU는 여전히 두 리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셈이다. 이에 마블은 아끼던 카드를 꺼냈다. <엔드게임> 이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만 잠시 모습을 비춘 닉 퓨리가 첩보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젼>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어벤져스 프로젝트의 기획자도 MCU의 구세주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크릿 인베이젼>이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인간 닉 퓨리를 보다
<시크릿 인베이젼>을 <변호사 쉬헐크>, <미스 마블>과 같이 분류하면 닉 퓨리 기분이 꽤 나쁠지 모른다. '닉 퓨리'가 주인공이라는 개성과 재미만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퓨리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나 <캡틴 마블>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조연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항상 베일에 가려 있었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MCU가 10년이 넘도록 감춘 인간 닉 퓨리를 보여준다.
퓨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약하다. 동료들을 잃고, 나이가 들었다. 그는 지키지 못한 30년 전 약속에 짓눌린다. 자기가 초래한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도통 갈피를 못 잡는다. 그는 아내와 친구 등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찾아가 도움을 구한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그의 결점과 인간적인 면모를 들려줄 기회를 잡는다.
각 에피소드는 퓨리와 특정 인물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마리아 힐과의 동료애. 탈로스와의 애증 섞인 신뢰. 그래빅과의 갈등.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이아와 퓨리의 동병상련. 퓨리를 중심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학적인 대사가 곁들여져 품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시 '마지막 단편'을 인용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결국 <시크릿 인베이젼>은 외관이 첩보물일 뿐, 퓨리의 인생을 들려주는 드라마에 가깝다.
이민자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물론 퓨리만 있지는 않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퓨리를 중심으로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나간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서사는 탈로스와 그래빅의 대립이다. 퓨리가 새로운 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종족의 생존을 위한 길을 선택해야 했던 둘.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 방식은 달랐다.
드라마는 이들의 갈등을 단순한 선악으로 가르지 않는다. 그래빅이 빌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살핀다. 그래빅에게 퓨리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탈로스는 퓨리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퓨리의 배신이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그래빅이 인간을 얕보는 이유와 탈로스가 믿는 인간의 강점까지. 퓨리와의 관계 안에서 그들의 신념이 만들어진 과정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니 둘의 대립은 마치 <엑스맨> 시리즈 속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갈등 같다. 탈로스는 인간과 돌연변이가 공존할 수 있다는 프로페서 X와 같은 의견이다. 그는 그래빅을 막고, 지구를 구한 대가로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요청하려 한다. 반면에 그래빅은 매그니토에 가깝다. 인간을 모두 죽이고 지구를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혐오를 선동하는 지도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을 전쟁터로 내모는 역사가 반복된다.
최근 멀티버스에 집중하는 MCU에 지친 팬들에게 이 대목은 퍽 반갑다. 잠시 과거의 마블이 보이기 때문.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세계관을 확장한 덕분이다. <캡틴 마블>이 스크럴을 난민에 비유해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시크릿 인베이젼>은 스크럴을 이미 한 사회에 녹아든 이민자로 대한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이 미국이 아닌 유럽인 점도 무게감을 더해준다.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간과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크릿 인베이젼>은 꽤 만족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각 인물의 서사는 잘 쌓아 올렸지만 정작 첩보물로서의 재미가 부족하다. 케빈 파이기가 이 드라마를 두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밝힌 것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까지 등장했지만 첩보물다운 서스펜스는 부족하다.
이유는 명백하다. 마블 스튜디오가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연속성이다. 영화는 한 편의 완결성만 갖추면 된다. 속편 예고는 선택사항이다. 드라마는 다르다. 다음 화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회별로 기승전결을 가지되 전 회차 역시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드라마에 이중 플롯이 필요한 이유다.
이 작업은 정교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각 에피소드에 어떤 이야기를 분배할지, 각 회의 핵심 사건은 뭔지, 다음 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엔딩은 뭘지, 전 회차를 아우르는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낼지. 이 모든 작업이 이뤄져야 드라마의 이중 플롯이 안정적으로 완성된다.
모아 놓고 보면 부실한 이유
그런데 <시크릿 인베이젼>은 이중 플롯을 살리지 못했고, 첩보물로서의 연속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시도는 했고, 편린이 보이기도 한다. 동료도 조직도 잃은 채 그래빅의 음모에 대응하지 못하는 퓨리. 그 빈자리는 MI6 국장 소냐가 채운다. 그녀는 영국 정부에 침투한 스크럴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그래빅을 추적하고, 그의 계획을 조금씩 알아챈다.
하지만 그녀의 활약은 피상적이고, 부분적이다. 극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활용될 뿐이다. 적은 아니지만 친구도 아닌 퓨리와의 팽팽한 줄다리기도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한 퓨리부터 헛되이 희생한 셈인 탈로스, 어벤져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다 강해진 가이아와 허망하게 퇴장한 그래빅까지. 여러 캐릭터의 마지막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 두 에피소드의 러닝타임은 50분 남짓이다. 이후 나머지 4개 에피소드는 40분 분량도 채우기 힘들어한다. 약 4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6개로 나눈 셈이다. 그러니 각 화의 플롯은 챙겨도 전체 에피소드를 연결할 플롯까지 온전히 챙길 여유가 없다. 주인공인 퓨리만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나머지 캐릭터와 이야기를 희생한 격이다.
물론 퓨리의 뒷이야기를 감상하고, MCU의 확장을 본다는 점은 여전히 만족스럽다. 그러나 이 작품에게 기대한 첩보물의 성격이 옅어진 이상 주객전도라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특히 누구로든 변할 수 있는 스크럴 종족의 특성, 곧 첩보물에 가장 걸맞은 능력도 온전히 살리지 못했으니 더더욱. 결국 드라마를 제작한 기획부터 의문이 남는다. 6개 에피소드로 쪼개기보다 과감히 편집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마블의 현재를 요약해 준다. 마블은 디즈니+ 출범과 맞물려서 드라마 제작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라마라는 형식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도통 감을 못 잡는 듯 보인다.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었다가 영화로 제작하기로 변경된 <아머워즈>가 방증하듯.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만달로리안>과 <안도르> 등의 드라마를 영리하게 활용해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는 것과 자연히 대비를 이룬다.
그렇다고 플랫폼을 포기할 수도 없으니 이런 딜레마도 따로 없다. 이미 <로키> 시즌 2, <에코>, <아이언하트>, <데어데블: 본 어게인> 등 8개 드라마가 공개 예정인 가운데, 과연 마블은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지만, 낙관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Poor 형편없음
디즈니+, MCU의 계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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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교차하는 순간, <곤돌라>
<곤돌라> Gondola, 2025
조지아, 드라마, 81분
감독: 바이트 헬머
우리가 교차하는 순간, <곤돌라>
푸르른 산 위로, 따뜻한 노을을 머금은 곤돌라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평화로운 산골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일상이 곤돌라의 궤적을 따라 차근차근 소개되고, 관객은 잔잔한 호수를 유영하는 나뭇잎처럼, 서두를 일 없이 구석구석 탐색한다. 개개인의 삶에 정보의 범람과 기술의 개입이 당연한 세상과는 정반대인, 유일한 교통수단 곤돌라마저도 자연의 일부로 인식되는 동화 같은 세상. 붉은 곤돌라가, 맞은편에서 오는 주황 곤돌라와 교차할 때마다 터지는 즐거운 미소와 곤돌라에 탑승한 인물들의 관계성이 전하는 따스함. 우린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모두 ‘곤돌라’에 있음을 눈치챈다. 본 작품이, 무성 영화의 아름다운 매력을 현대적으로 잘 풀어냈음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말이다.
<곤돌라>의 언어는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다양한 음향과 전체 분위기를 잇는 배경 음악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인물 대부분이 이야기의 포인트가 되는 음향을 직접, 또 함께 연주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곤돌라를 타고 내리는 존재들이 화합해 만든, 가사 없는 멜로디와 완성된 음악이 전개하는 사건, 그리하여 탄생한 새로운 관계까지, 영화는 곤돌라 두 대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면서 불안과는 아주 먼 행복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는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이바’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외지인이란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그녀는 곤돌라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점차 마을의 일원이 되어간다. 마을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승무원 선배 ‘니노’와도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과연 무엇이 이바를 공동체 안에, 그것도 단기간에 들어가게 했을까. 승무원 유니폼이 그녀 체형에 꼭 맞아 채용됐다는 위트도 한몫했지만, 지대한 영향을 준 건 역시 곤돌라다. 체스로 시작한 두 사람의 소리 없는 대화는 곤돌라를 기꺼이 변형하면서 더 깊어진다. 프로펠러를 달고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바퀴를 달고 경적을 울리며 가는 자동차, 물살을 가르는 거대한 배, 화성이 목적지인 우주선까지 이들의 귀엽고 재미난 교류는 어떠한 경계도, 현실적 제약도 없이 이뤄진다. 또한 둘의 소통은 이야기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틈틈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를 헤아리는지 알려준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곤돌라 운행이 얼마나 많은 이의 마음을 간지럽고 따뜻하게 하는지도.
특별한 마법을 부리는 듯한 곤돌라는 교통수단으로써의 유일성 외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자유로운 소통’, 사람들에게 곤돌라는 자기를 포함한 모두의 일상에 평안을 주는 귀중한 소통 창구다. 사람, 가축, 시신을 담은 관은 물론이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도 실어 나르는, 없어선 안 될 마을 집배원 같달까. 분명 인간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수동적인 기계에 불과한데, 날개를 단 듯 무척이나 자유롭게 하늘을 누빈다. 이동이란 단순한 움직임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낭만적인 과정으로 변주되는 것이다. 관이 곤돌라에 담겨 옮겨지자 하던 일을 멈추고 떠난 자를 가슴 깊이 추모하고, 이브와 니노의 사랑을 응원하기 위해 다 함께 음악회를 여는 사람들의 모습, 유일한 악당인 곤돌라 사장의 횡포에도 지지 않고 모두를 위해 곤돌라를 운행하는 승무원들의 의지가, 그 모든 마음의 합일이 이를 증명한다. 이바와 니노의 이야기에서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순간이며, 영화는 이 과정을 마지막까지 따스하고 아름답게 풀어낸다.
물론 마냥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빛이 빛일 수 있는 건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이듯, 해피엔딩 역시 극복하기 힘든 고통(악인)을 품고 있기에 해피엔딩이니까. 이바와 니노 사이를 질투하고 방해하는 곤돌라 사장은 시작부터 돈과 자기 자신만 중요시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곤돌라 운영을 독점하고 고객도 가려 받는 못된 심보를 가졌는데, 결국 어린이 동화 속 악당처럼 선한 이들의 합심에 통쾌한 웃음을 주며 자멸한다. 동시에 사장의 존재는 곤돌라가 가진 의미를 더 넓게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독재를 무너트리고 자유를 수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아가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 곤돌라가 품은 다양한 가치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지 않기에 가능한 상상들이다. 이바와 니노가 서로를 위해 만든 언어를 바탕으로 담백하면서도 평화롭게 알리는 <곤돌라>만의 부드러운 화법이랄까.
곤돌라는 귀한 소통 창구다. 피하고 싶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교차는 곧 타인과의 연결이며, 낯선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다. 너와 내가 손잡고 함께 걷는 과정이고,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설령 강제로 운행이 중단돼도 함께 하고자 하는 다짐과 용기로 서로를 믿고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바와 니노, 마을 사람들이 들려준 경험담이 충분한 격려가 됐으리라 믿는다. 다시 붉은 곤돌라가 출발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주황 곤돌라, 중간 지점에 도착한 순간 두 곤돌라가 정차한다. 미래의 이바와 니노가 될, 귀여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서로를 향해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곤돌라>, 함박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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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여고 야간반 열등생이 바라본 잘난 사람들의 조건이란?
시놉시스
1997년 대만의 중졸인 여자 학생인 펑원아이는 사범대를 나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일을 하는 엄마의 가르침에 따라 제일여고의 야간반에 입학한다. 제일여고는 최고의 대학 입학률을 자랑하는 여고이며 주간반과 야간반이 있는데 집안 사정과 더불어 성적도 안되는 펑원아이에게는 안타까운 선택이었다. 펑원아이가 제일 여고 야반간에 다니면서 주간반의 수재인 뤄야민을 만나고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선택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제일여고는 주간반을 태양으로 야간반을 달로 비유하는게 대체적으로 내려오는 학교의 전통이었지만 1990년도 당시에도 대만이란 나라의 학생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주인공인 펑원아이가 엄마의 잔소리에 야간반이라도 진학한 걸 보면 교육열이 상당하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펑원아이는 항상 잘난 수재들이 있는 주간반을 부러워했다. 야간반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교실 공간 마저도 없어서 열약한 환경에서 공부해야만 했고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교실을 얻었다.
펑원아이는 가장형편도 좋지 않고 성적도 그닥이고 자신이 그저 짝퉁이라고 생각하는 여학생이다. 자신의 영어 작문 실력은 부족하지만 니콜 키드먼에게 자필로 편지를 써서 친척 오빠인 파오에게 번역해서 보내달라고 할 정도로 니콜 키드먼한테는 진심이다. 그리고 불안한 가정형편이 나아지려고 탁구장 알바까지 할 정도로 노력을 해보는 불굴의 의지를 가졌다.
뤄야민(위 사진의 인물)을 만나면서 펑원아이는 자신의 열등감을 계속해서 드러낸다. 뤄야민이 주간반에서도 3등안에 들고 일찍 끝나서 하교하는 것도 그렇고 제일여고의 정식 학생이라는 점과 수학 학원을 다녀서 성적도 계속 오른다는 점을 펑원아이는 부러워한다. 하지만 뤄야민도 결국 재수생이었으며 자신도 펑원아이처럼 짝퉁이라고 느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우등생이라고 불리우는게 그저 그랬다고 한다.
루커는 키도 184센티미터에 잘생긴 외모 부잣집에 운동까지 잘하는 소위 말하는 우월한 인싸이다. 펑원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뤄야민과 수학 학원에서 아는 사이었으며 뤄야민의 사진도 정말 잘 찍어줬다. 남부러울게 없는 그이지만 사실은 펑원아이를 탁구장에서 봤을 때부터 호감을 천천히 가지다가 뤄야민의 아는 친구로 소개가 되면서 펑원아이와 연인 사이까지 발전하려고 했다. 뤄야민의 질투로 루커의 어머니 미술 전시회에서 펑원아이가 했던 말들이 거짓이었다는게 들통나면서 서로 사이가 어긋나지만 펑원아이를 끝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 영화는 1997년도에서 1999년도의 대만 시대상을 다루고 있지만 당시의 학생들이 겪고 있는 입시 문제라든가 부모와의 관계 또는 연애 문제와 같은 것들을 다루고 있다. 한 번의 대학 입시로 계층이 정해지고 사회에서의 지위가 바뀌는 현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고 나오지만 어찌됐든 학생들은 미래의 출세를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대만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대학 입시는 당연시 하는 거였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학이라는 학벌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을 미리 학생들이 느꼈다.
다만 고등학교를 재수하거나 20세가 되어서도 입학했다는 건 한국에서는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사회를 경험하고 나면 몸소 학벌이 중요하다는 펑원아이의 야간반 짝궁인 위청예의 대사처럼 나이가 지난 학생들은 몸소 체득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동양은 예로부터 교육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서 교육열이 높은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학생이지만 여러가지 시련을 겪는 펑원아이에게는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세상의 모든 것까지 쉬워보일수가 없다. 너무 이른 나이에 실망과 절망과 좌절을 동시에 겪어본 사람은 살아남기가 힘들겠지만 펑원아이는 다시 일어선다.
세상 모든게 감히 쉬워보인다면 그건 완벽한 사람일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있어서 리이팅이라는 완벽녀도 있었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실수도 하고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는건 뤄야민이 캐시라는 물품에 복이 있는 걸 믿으며 펑원아이에게 건냈듯이 언젠가 희망이 있길 바라며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뭐든 쉽지 않았어 내가 그걸 성취하기까지는
하니엘의 영화 주저리 주저리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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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감흥 없는 번역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광풍에도 불구하고 농구와 복싱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2학년 '구진우'(진영). 어느 날, 그는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걸린 나머지 벌을 받게 된다. 모범생 '오선아'(다현) 앞자리에 앉아서 특별 감시를 받으라는 것. 선아를 짝사랑하는 친구들은 진우를 부러워하지만,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진우는 그저 벌을 받아야 해서 불만스러워한다. 선아 역시 시끄럽기만 한 그의 존재를 불편해한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선아가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자, 진우가 자기 책을 선뜻 빌려주고 대신 벌을 받은 것.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선아와 진우. 선아는 진우에게 공부를 알려주고, 진우는 특유의 멋모를 자신감으로 선아를 웃게 만들면서 감정을 쌓아 나간다. 하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속마음과 달리 그들은 자기 마음을 좀처럼 속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한 채 대학생이 된다.
리메이크 대신 번역을 선택하다
국내 영화 시장에서 중화권의 청춘 로맨스 영화는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100만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해도, 수십만 명의 관객을 꾸준히 동원하는 흥행력은 보장되는 장르니까. 2010년대에 개봉한 <장난스런 키스>, <나의 소녀시대> 모두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바 있다. 2023년 여름에 재개봉한 <여름날 우리> 역시 4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팬데믹 이후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처럼 꾸준한 흥행력을 과시하는 중화권 청춘 로맨스가 돌파구로 여겨졌던 모양새다. 비슷한 시기에 과거 인기를 끌었던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 세 편이 일제히 리메이크됐기 때문. 작년에 개봉한 <청설>과 설날 연휴에 공개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각각 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문제는 3번 타자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하 <그 시절>)다. 대만 영화 리메이크 열풍을 이어갈 매력이 안 느껴진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 시절>은 리메이크 대신 번역을 선택했기 때문. 앞선 두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따르되 플롯이나 감성을 차별화했다. 그에 반해 <그 시절>은 배경만 한국으로 바꾸는 데서 그쳤다. 그러다 보니 원작을 이미 본 관객으로서는 굳이 번역본을 읽을 필요성을 못 느낄 법하다.
그 시절의 소녀가 뇌리에 각인될 두 가지 조건
<그 시절>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결혼식에서 커징텅이 션자이의 남편에게 키스할 때 스쳐 지나가는 평행 세계 시퀀스다. 그들이 연애할 때 마주한 몇 차례 분기점이 등장하고, 그때마다 다른 선택을 내리면 달라졌을 현재와 미래를 파노라마로 펼쳐 보여주는 순간의 임팩트가 핵심이다. <라라랜드>에서 남남이 된 세바스찬과 미아가 과거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결말과 유사하다.
이처럼 클라이맥스가 관객 뇌리에 각인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예뻐야 한다. 예쁜 대상은 다를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의 풋사랑이 귀여울 수도 있고, 연기와 재즈에 몰입하는 두 주인공의 열정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두 주인공이 그 시기를 회상하면 다시 사랑에 빠질 정도로 강렬하게 예쁜 게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이별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명백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낸 과거가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머지, 그 시절로 돌아가거나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더라도 그럴 수 없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과거는 과거에 묻어두어야만 할 때, 즉 가능성이 현실로 될 수 없는 한계와 제약이 있을 때 평행 세계는 간절한 만큼 강렬하니까.
예쁘지만, 충분하지는 않은
하지만 <그 시절> 리메이크가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첫 번째 조건은 절반 정도만 갖췄다. 진우와 선아의 사랑이 시작되는 배경과 분위기는 예쁘다. 2000년대 배경의 고등학교 풍경은 관객에게 자기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교실이나 운동장처럼 한국적 배경에 맞게 바뀐 장소는 필연적으로 대만 원작보다 흡입력이 뛰어나다.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당시의 향취가 주는 아련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작 그 안에서 피어나는 풋사랑이 부자연스럽다는 것. 두 주인공의 톤이 묘하게 어긋나 있다. 진우는 너무 가볍고 동적이며, 선아는 지나치게 정적이다. 그 결과 진우에게 '그 시절의 소녀'여야 할 선아의 매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공부할 생각이 아예 없는 진우와 모범생 선아가 처음부터 잘 어울릴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두 주인공의 톤이 같은 층에서 만나지 못하니까 문제다.
이는 영화가 진우 시점에서 전개되는 데서 기인한다. 진우 관점에서의 사랑 이야기이다 보니 영화 분위기는 자연히 그의 감정선에 따라 달라진다. 그 대가로 선아의 심리 묘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 공백으로 인해 선아와 진우의 연결점도 약화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데뷔작인 다현 개인의 역량으로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 결과 두 주인공의 로맨스는 두고두고 그리울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끝내 못 보여준다.
명백한 이유 없는 이별
두 주인공의 이별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유치함을 못 견디겠다는 선아의 말에 내포된 본 이유를 못 보여줬기 때문. 선아는 진우에게 꿈이 뭐냐고 묻고, 진우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답한다. 실제로도 그는 학생들을 함부로 다니는 교사에게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고, 2년만 공부해서 인서울 대학교에 입학하며 자기 포부를 증명해 낸다. 이에 선아는 진우에게 반한다. 그녀에게 꿈이란 삶의 지향점이었고, 그에게는 꿈이 있었으니까.
그다음이 문제다. 대학에 들어간 진우는 선아가 말리는 일만 골라 한다. 격투기 대회에 출전하고, 취객과도 싸운다. 이에 선아는 진우에게 유치하다며 이별을 고한다. 그녀에게 유치함이란 꿈이 없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꿈을 꾼다는 표현이었던 것. 하지만 상술했듯이 극 중 선아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유치함의 속뜻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별은 가슴 아프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더해 갈림길의 순간도 인상적이지 않다. 이별로 인한 진우의 흉터가 진할수록 클라이맥스에서 '그때 그랬을걸'이라는 회한의 파도가 더 강하게 밀려올 수 있는데, 정작 갈림길마다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하기 때문. 남산 데이트 직후 격투기 동아리 장면, 이별 후 입대로 이어지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진우의 불안함과 아픔이 전해지기도 전에 유머로 상황을 무마한다. 그 대가로 파노라마 장면의 임팩트가 좀처럼 살지 못한다.
리메이크는 번역이 아닌데
사실 리메이크는 원작을 뛰어넘기 힘들다. 특히 추억이라는 최고의 아군이 함께하는 이상, 원작의 첫인상에 범접하기가 특히 어렵다. 오래전 작품일수록 관객은 그 영화의 장단점, 완성도보다는 그 영화가 남긴 추억을 간직하기 때문. 따라서 리메이크는 원작이 남긴 추억을 존중하되, 원작과는 또 다른 메시지나 의도가 담긴 포인트를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작 대신 리메이크를 보게 하는 소구력을 갖출 수 없다.
이 대목에 있어서 <그 시절>은 다소 안일해 보인다. 공간, 시대, 설정만 한국적으로 바꿨을 뿐, 알맹이는 원작 영화의 것을 고스란히 따왔다. 재구성 대신 번역만 한 셈이다. 원작을 재구성한 다른 리메이크 작품들과 비교하면 방향성 문제가 더 도드라진다. 일례로 <청설>만 하더라도 원작의 소재나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여름이라는 계절감을 강조하는 각색을 통해 원작과의 비교를 영리하게 피할 수 있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그 시절>은 추억을 되살리고, 그 추억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외에는 굳이 리메이크 영화를 보면서 예전 감성을 찾아야 하는 차별화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한국판 특별히 모난 구석이 없지만, 되려 그래서 특별한 것 없는 하이틴 로맨스로 귀결됐다.
Poor 형편없음
원작을 읽은 이상 사족인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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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군대를 모른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 영화가 실제 군대 모습을 잘 투영했다고 말하면 나는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첫 학기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발표주제로 이 영화를 정해주셨다. 첫 대학 수업이었고, 잘 하고 싶은 수업이었고, 팀플에 대한 기대가 있기도 했다. 대학생활에도 짬이 있다면 나의 짬은 없었다. 짬 많은 고학번들의 'PPT를 다룰 줄 몰라요' 같은 속 보이는 거짓말을 보고도 정말 그 말을 믿는 사람처럼 그러시구나, 하며 나 좋자고 온갖 고생을 다 했다. 영화 자체로는, 당시에는 진지하게 봤지만 시간이 지나니 많은 것이 사라졌다. 우습게도 나는 어리버리한 후임을 가르치는 태정의 웃음 섞인 '교육' 씬만 기억에 남을 뿐이었다.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보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될까' 정도의 생각이 남았다. 살을 부딪히듯 닿는 슬픔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젯밤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감겨오던 눈이 어느새 잠에서 완전히 깨버렸다. 결국 다 보고 잘 수 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여전히 나는 군대를 모르는데도, 대립되는 영화 속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이 익숙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나랑 같구나. 내 생활과 같구나. 분명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같구나.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정신이 차갑게 맑아졌다. 나는 태정과 승영 사이에 있었고, 지훈이처럼 감정에 휩쓸려 있었다. 누군가 말해준 적 있었다. 직장은 군대보다 좀 더 할 만한 버전이라고. 직장도 힘들긴 한데 여러모로 군대보단 나으니까 할 만하다고. 나는 그 말을 이제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태정과 승영, 지훈, 모두 같은 부대의 선후임 사이다. 셋 모두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는 사이. 태정과 승영은 중학교 동창이었고, 늘 후임을 잡기로 유명하던 태정 역시 승영에게는 마음이 쓰이는 만큼 관대할 수 밖에 없었다. 태정의 성격일 수도 있지만 승영에게 좀 더 마음이 약했던 것 같기도 하다. 군대라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승영은 사사건건 부대원들과 부딪힌다. 그에겐 비장하고도 원대한 꿈이 있다. 이 비합리적이고 불평등한 문화를 바꾸고 말거라는, 나만큼은 다른 선임과 다르게 '좋은 선임'이 되겠다고. 승영은 어찌보면 태정의 그늘 아래서 원하던대로 지훈에게 '좋은 선임'이 되는 듯 했다.
군대의 시스템을 긍정하는 사람은 영화 속에 아무도 없다. 문제야 많다. 많은데, 다만 지금 이대로가 편하고, 둘쑤셔봐야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게 중론이다. 바꾸는 거, 말은 쉽지.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냐? 라는 태정의 말이 영화를 찌르고 있다. 누구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군생활 내내 선임한테 힘들게 깨지다가 고참되서 대우 좀 받아보자는 모습. 더 다치고 문제가 커질까봐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를 달고 사는 모습. 나는 달라야지 하다가도 결국은 맞춰줄 건 맞춰주자며 이 시스템에 순응하는 모습. 적응하지 못하고 벌어지는 상처에 허덕이는 모습. 사랑하는 이가 서로 필요할 때 함께 하지 못해서 어긋나고 부서지는 모습. 외롭고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상대를 한없이 추락시키고 희롱하는 모습. 마음 한 구석엔 죄책감과 후회감을 안고 사는 모습.
이들 전부가 잘못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시스템으로 모든 걸 합리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곳에 대사 하나 없이도 모두를 움직이는 존재는 바로 군대의 시스템이다. 군대라는 말로 모든 논리는 불필요해진다. 절대적인 고유명사다. 여전히 그런 곳이 있다. 표현만으로 부조리가 생각보다 쉬이 용인되는 곳. 등장인물은 군대라는 감독이자 무대 앞에서 연기한다. 어리버리한 일병을, 위아래로 까이는 상병을, 걸음걸이부터 자신감넘치는 병장을. 같은 사람이 계급이 변하면 연기의 결이 새로워진다. 소심하게 구석에 쳐박혀 맞던 이는 언제 그랬냐는듯 배를 내밀고 거만하게 걸어다닌다. 이들은 누군가에겐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을 수 있다. 동시에 이 모든 걸 유지시켜주는 일원이었다.
자존심이, 내 생각이 대수냐 싶을 때가 있다. 진심이 아닌 바에야 그냥 죄송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 할 때가 있다. 아주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는 좀 맞춰주고 비위도 맞추고, 그래야 나도 편한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문득 멈칫한다. 이러다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 이렇게 하나씩 바꾸다 보면 미래의 내가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 승영처럼 흔들리다 누군가에게 절절하게 매달리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태정처럼 슬픔은 슬픔대로, 적당히 타협하다가도 밥을 입에 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감옥에 갇혀있다는 느낌. 나와 나의 친구들의 갇혔다는 느낌은 영원히 다를 것이다. 그들에겐 누구보다 힘들고 고생스러웠을 이야기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들에겐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과,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군대 밖에서도 이어진다. 끝나지 않고 사회에서도 변주된다. 군대생활이 사회생활, 직장생활로 이름만 수정했을 뿐이다.
태정과 승영, 지훈 모두 스스로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다. 용서를 구할 존재는 따로 있는데 용서를 받지 못하는 존재만 늘어간다. 힘들어서 다른 이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고, 남들도 다 하는 거라서 상처를 준다, 그 땐 어떻게 그랬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잘 적응하려고 후임을 괴롭히고도 미안해서 담배를 주거나 먹을 것을 챙겨주던 태정. 눈엣가시처럼 삐딱선을 타다가 이내 순응하고, 그러면서도 후회하는 승영.마음의 상처까지도 어리버리함으로 묻혀서 홀로 화장실로 들어가야했던 지훈. 정말 모든 추억이 미화되는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묻어두고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닌가. 용서를 구해야 할 군대의 시스템은, 이런 시스템의 군대를 있게 한 이유는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이제는 너무 오래 되어서 당연한 것처럼. 그래서 원칙이 되어버린 것처럼. 새로운 반역자가 들어오면 한 마디 하겠지.
"야, 군대 잘 돌아간다. 너 같은 애들은 예전에도 있었지. 걔네들 다 어떻게 됐는지 알아? 관록이란 건 그렇게 무너지기 쉬운게 아니란다. 시대가 변했으니 조금은 바뀔 순 있지만, 사라질 순 없어."
속으로 웃어넘기면서 용서의 무덤으로 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누구 하나 선뜻 잘못했다 진심으로 입을 열 수는 없는 곳. 크고 작은 잘못이 산처럼 쌓여있는 곳. 자기 자신에게 용서받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등 뒤에 줄 세워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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