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12 17:12:32
향긋한 꽃내음과 함께, 꽃이 가득한 영화 -7-
봄
❣️[Cinelab Curation]❣️
이번 주에는 봄을 맞아 꽃내음이 가득한 영화들을 큐레이션 해보려고 해요!
부쩍 날이 따듯해졌어요. 이제야 정말 봄이 왔구나 싶어요!
그리고 벌써 꽃이 하나둘 피고 있죠.
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같은데요.
새해를 맞아 열심히 달리셨던 분들.. 조금씩 지쳐가고 있지는 않나요?
꽃이 가득한 영화로 기분 전환 해보는건 어떨까요?
그럼, 씨네랩 큐레이션과 함께 향긋한 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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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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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에게 바치는 따뜻한 편지
돼지의 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일본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사오리(안도 사쿠라)와 미나토(쿠로카와 소야)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대형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모자는 타오르는 불길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근데.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사람일까?” 아들이 엄마에게 묻는다. 무슨 말이 그래? “누가 그런 말을 해?” 되묻는 사오리. 아들은 학교 담임 선생님인 ‘호리 선생님(나가야마 에이타)’이 그랬다고 답한다. 아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의아한 사오리. 이후부터 아들에게 이상한 우연이 겹친다. 아들이 갑자기 머리를 자른다.”왜 머리를 잘라?”라는 질문에 어물쩡 대답하는 미나토. 이뿐만이 아니다. 텀블러에서 흙이 나오거나 귀에 상처가 났던 일도 있다. 불안한 사오리. 미나토가 다니던 학교에 방문한다. 사오리에게 대응하는 학교 교직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영혼 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교장과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호리 선생님은 사오리를 화를 돋우기만 했다. “호리 선생님에게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있나요?”라고 묻는 사오리. 분명 아들 미나토의 학교생활에 뭔가 문제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학교에 있는 그 누구도 사건의 정확한 경과를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미스터리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미스터리다. 이 영화를 중반부까지 이끄는 힘은 ‘괴물이 누구야?’다. 이 괴물의 근원지를 좇는 각본의 힘이 탁월하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여러 사람의 관점을 엇갈리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래 사람들끼리 갈등이 있었다고 하면(내지는 여러 사람 사이에서 안 좋은 일을 만든 ‘괴물’을 찾는다고 하면) 양 쪽의 입장을 듣는 게 당연지사다. 이 영화는 이 형식의 플롯을 차용한다. ‘괴물 찾기’에 최적화된 이야기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1차원적으로 특정 누군가의 입장에서 원인-결과의 해결방식만 나열한다면 이야기가 지루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인 이상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짓기도 불가능하다. <괴물>은 이를 탈피하는 각본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A의 관점을 쭉 전개하다 새로운 의문점을 만든다. 그걸 B의 관점에서 해결해 준다. 그런데 B의 입장을 보여줄 때 A의 시점에서 보여준 상황을 바탕으로 새로운 궁금증을 만든다. 그걸 C 서사에서 해결한다. 이렇게 물리고 물리는 플롯은 해소되지 않는 물음표를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아, 이렇게 쌓아 올린 미스터리가 엔딩에서 어떻게 치환되는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엔딩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선생님
영화의 두 번째 장점은 윤리의식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 수많은 소재들을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이것은 이 영화가 악인을 어떻게 설정했는지와도 관련이 있다. 보통 세상이 만든 괴물을 설명하는데 악인은 필수적이다. '이 인간이 나쁘다'로 영화의 많은 부분을 편의적으로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많은 분들이 ‘이 <괴물>에는 악인이 없다’라고 하실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의 핵심 인물들을 영화가 그리는 방식을 보면 양면적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 악인은 분명히 있다고 보는 쪽이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특별하다. 이 악인들은 인물의 형태(?)로 등장하긴 하지만 특정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왜 이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는가’를 주인공의 시점에서 설명한다. 이 주인공(들)이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보시길 바란다.
아역 명가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을 맡은 쿠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는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가진 장점 중 하나를 그대로 승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전 세계에서 아역의 연기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톡톡히 수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나토가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또 극후반부에 어떤 인물과 독대하는 장면이 있다. 이 두 장면에서 느껴지는 진한 울림은 많은 분들의 관객들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글쓴이가 요리의 명장면으로 뽑은 것은 어떤 일을 겪고 씩씩하게 일어서는 장면이다. 이 사소한 장면 하나가 요리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장치인데, 미묘한 표정 차이를 이끌어낸 감독의 역량이 돋보였다.
어른 캐릭터 중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도 아주 뛰어났다. 글쓴이는 그녀가 등장한 모든 장면이 다 기억에 남는다.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는 미나토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신이다. 여기서 미나토를 격려하는 장면은 아들을 홀로 키우는 어머니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다 축약한 듯한 애처로움이 있다. 그리고 이 인물은 서슬 퍼런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교장 선생님 역을 맡은 타나카 유코와 대면하는 모든 순간이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영화의 질문을 다채롭게 만드는 좋은 연기였다. 또 호리 선생님을 맡은 나가야마 에이타는 감정적으로 진폭이 가장 큰 인물이다. 왜 감정적으로 진폭이 클까? 역시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어쩔 땐 웃으면서 분노를 삭이고 있고, 다른 때는 굉장히 불쾌해하지만 표정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이 양면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의 역량이 극에 이입하게 만든다.
사카모토 류이치
이 영화의 음악은 아름답다는 점에서 작품과 잘 어울린다. 이 영화가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마냥 스트레스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 와중에도 아름다움과 추함을 오고 가는 교묘한 연출방식을 감독이 구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인물들의 밝고 어두운 내면을 모두 상징한다는 점에서 극에 윤활유가 되는 요소다. 특히 예고편에도 삽입된 ‘Monster 2’라는 트랙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엔딩에 삽입되는 음악은 이 영화의 아름다움에 방점을 찍는 곡이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느낄 수 있었던 처연한 아름다움을 이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에게
글쓴이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봤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는 건 쉬울 수도 있다. 영화가 시점을 확 넘기는 것도, 인물들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도 관객 입장에서 바라보면 판단이 용이하다. 하지만 이 판단이 쉽다는 것에 근거해서 답해보자. 우리 역시 이 영화의 인물들과 별 차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 모두 다 이렇게 모난 부분이 하나쯤은 있고, 그래서 세상이 함부로 들 대한다. 근데 또 우리는 모났기 때문에 세상을 함부로 대한다. <괴물>은 이 아이러니에 다룬 영화다. 왜 내가 세상을 함부로 대하는지. 그 대하는 이유가 내가 괴물이기 때문은 아닌지. 그런 우리가 정말 괴물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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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범인류적인 문제를 다룬 코미디
영화 좋아한다고 하니 어떤 분이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다만, 뇌를 빼고 봐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이 영화는 코미디영화인데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나만 이상해지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보게 되었던 이유는 여성 주연 4명의 개성이 각기 달랐고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에 대한 생각, 또한 그들 자신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자각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인종적 비주류로 살아본 적 없어서 영화에서 그들을 묘사한 지점이 정확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말이다.
1. 핫한 키워드들의 집합
이 영화는 핫한 키워드들은 다모아놓았다. 인종차별, 특히 아시아인 차별, 바디 포지티브 운동, 미국 사회 속에서 받아들여지는 k-pop 등등. 그런데 모든 키워드에 깊이가 느껴지진 않는다. 뭔가 대단한 혁신적인 내용인 척 하는데, 사실 모든 내용이 클리셰이다. 백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양인에 대한 클리셰가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핫하게 떠올랐던 바 있는 '내 몸을 사랑하자' 운동에 심취한 롤로는 내 몸을 사랑하다 못해 욕망에 과도하게 솔직하다. 욕망에 솔직한 것은 좋지만 모든 대사가 그런 쪽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모든 캐릭터가 다 가볍게 그려지지만 그 와중에 범생이로 나오는 오드리 마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닌 척하지만 사실은 남자에 관심도 많고, 성공에 욕심도 많고, 뭐 하나 제대로 버리지도 못하면서 다 가지고 싶어하는 약간은 위선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이해가 되는 캐릭터들도 분명 있는데, 오드리는 표면적으로는 선해 보이지만 크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엄마를 찾고 싶으면서 솔직하게 표현하지도 않고, 마치 롤로 때문에 엄마를 찾아야만 한다면서 남탓하는 모습에서, 그 솔직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오드리에게 이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시아 여성 주연 4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면서,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야 하는 그녀들의 캐릭터를 코믹 그 이상의 어떤 매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지점이 이 영화의 인종차별적인 시선이 아닐까 싶었다. K팝을 사랑하는 한 캐릭터는 미국 사회에서 일종의 찐따로 분류되며 주류 문화에 편승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2. 차별은 의도보다는 무지가 아닐지
성공한 변호사가 된 오드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의 말을 듣는다. 생김새는 아시안이지만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녀에게 회사 사람들은 같은 미국인으로서 대우하지만은 않는 느낌이다. 오히려 차별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고 겉으로 티내지 않으면서도 은연 중에 더욱 심한 인종차별을 남발한다. 미국이 그녀에게 고향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채 중국에 가게 된 그녀에게 모국에 가게 되어 기쁘겠다는 둥 소위 친절한 개소리를 시전한다.
뭔가 묘하게 기분 나쁜데 상대의 표면적 의도가 나름의 친절이라서 앞에서 쌍욕도 박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뭐랄까 나는 중국 음식 좋아한다고 외치면서도 그 중에서 덴뿌라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는 격인데 그걸 듣고 있는 나는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분명 의도가 있는 차별도 있겠지만 그냥 몰라서 하는 소리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난 비주류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는 인격자'라는 자부심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영화는 비단 백인들의 차별만 그리지 않는다. 아시안들 사이의 편견도 있음을 보여준다. 저기 시끄럽고 똑같이 생긴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라는 둥 말하는 롤로를 보면 인종차별은 백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 조차 한 사람을 바라볼 때 더이상 인종적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여전히 우리나라 방송가에서는 외양은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인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진행자는 그들에게 '한국인 다 됐네' 이런 멘트를 날리곤 한다. 이제 이런 멘트도 한국에서도 더 이상 칭찬이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제 결혼이 많아진 한국에서 정체성이 외모가 아닌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은연 중에 대한외국인들에게 '김치 잘 먹네요'라고 칭찬하는 것이 의도치 않은 무지이자 차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무슨 말은 할 수 있겠냐고 되묻겠지만 오랜기간 폐쇄적인 단일민족으로 살아왔기에 의도가 좋은 말을일지언정 그 말이 배려가 될지는 알 수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차별의 반은 열등감이고, 그 남은 반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는데 열등감은 개인이 알아서 극복할 일이지만 무지는 가르치면 조금 나아지기 때문이기에 국제 결혼이 늘어나는 현 시점에서 한국인들도 외양이 다르면 무조건 외국인으로 분류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나도 실천해야 하는 지점이니 사실은 이것은 내가 하는 반성이다.
영화에 대한 감상보다 사족이 더 길었던 거 같은데, 하나의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들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정도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든다. 그저 잡생각을 날리고 싶다거나 나는 웃기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가볍게 볼 코미디 영화를 찾고 있다면, 킬링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 번만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예상하건대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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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타인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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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건 '우리는 저런 게임 해도 광고나 게임초대 밖에 안 온다'는 후기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월식이 일어나던 날, 호수이자 바다인 영랑호에서 불장난(사실 얼음낚시이지만)을 하다 주먹다짐을 했던 어린이들은 약 40년 뒤, 또 다시 월식이 일어나는 날 석호와 예진의 집들이에서 새로운 불장난을 한다.
40년 지기 친구들과 그 아내들이 휴대폰으로 오는 모든 알림들을 공유하는 게임.
이 영화는 낯선 게임의 형식을 빌려 내부의 클리셰들, 너무 흔한 가정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배신과 타자성 보다는 오히려 풍자에 가깝다.
더 바랄 것도 없을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 석호-예진 부부. 그들의 공부 잘하고 착한 딸.
유방 성형외과 의사인 석호는 자상하고 가정적이며, 정신과 의사 예진은 딸에게 엄격한 엄마다.
대학생 때 혼전임신으로 낳은 딸인 만큼 딸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예진의 아버지도 의사인 걸로 보아, 처음부터 석호가 결혼을 승낙받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석호는 예진 몰래 투자한 속초 리조트에 사기를 당한다. 정신과 의사인 예진은 성형을 정신적 문제라고 인식하고, 성형외과 의사인 석호는 정신과 의사를 꿀 빤다고 여긴다. 하지만 예진은 가슴 성형수술을 예약했고, 석호는 정신과 치료 6개월차다.
한국 영화, 아니 한국 가정의 클리셰들을 몽땅 모아둔 것 같은 태수-수현 부부를 들여다 보자.
고시 뒷바라지 해서 변호사 만들어 놓았더니 이제는 식모 취급하는, 보통 성격 아닌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만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니야!"를 외치는, 아내 모르게 다른 여자와 야한 사진을 나누는 태수. 친구 아내의 옷차림을 보고 "너무 꽉 끼는 거 아니야?"라며 평가질까지.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면서 자존감이란 자존감은 뉘집 개나 준 듯한 수현.
문학반 수업을 들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레파토리는 제법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문학반 다니는 사람에게 예진을 험담하는 것도 낮은 자존감에서 온다. 자기 자신이 없으면 남이 기준이 되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음주운전 후 수현 대신 태수가 자수을 하면서 죄책감까지 가중된다. 죄책감과 자존감은 디커플링.
거기다 슬쩍슬쩍 몰래 술도 마신다. 알콜중독과 자존감은 커플링.
준모-세경 부부를 보자. 준모는 부잣집에 맨몸으로 장가간 남자의 전형이다. 사업병에 걸려 온갖 사업을 벌이고, 망하고, 그리고 또 하고.
뒤에서 호박씨 까면서 앞에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사랑꾼인 척. 사업장의 어린 알바생과 바람피우는 것까지 완벽하다.
그러면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늘 무시받는, 사업이라도 해서 '사장님' 소리를 들어야만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한없이 약한 존재.
한편 세경은 여기서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세경은 말한다. "결혼할 생각 없었어요. 저 인간이 하자고 하자고 해서"
마지막으로 애인 '민서'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지만 몸이 아프다며 혼자 온 영배.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사싱 잘리고), 친구들끼리의 골프 약속에도 소외된다. 40년지기 친구에게도 사실 애인은 민서가 아니라 '민수'임을 비밀에 부친다.
게임은 점점 과열되고, 그만 두자고 하는 사람과 한번 폭로되면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다.
서로를 속이고, 속였다는 것이 발각되는 걸 관음하는 것이 관객의 역할이다.
게임-스릴로 흥분되는 순간은 잠깐이다. 그 이후는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는 관음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메타포다. 마치 타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화려한 생활을 관음하며 그 뒤에 어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행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완전무결하지 않은 타인에 대한 비난은 너무도 쉽다.
그렇기에 기존 포스터에서 차용하지 않는 방식인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는 마치 "너, 나 보고 있었지?"라고 말하는 듯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훔쳐보고 있는 걸 다 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동성애자.
자존감이 낮은 이가 SNS에서 화려한 삶을 거짓으로 꾸미듯이ㅡ물론 자존감도 높고 화려한 사람도 있겠다만은ㅡ세경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사회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영배와 보통 수준의 자존감을 가진 세경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결핍 그 자체다.
인정받고 싶지만 능력이 없는 준모, 책임감 없지만 책임감 있는 척 해야 하는 태수, 아내에게 금전적으로 달리는 석호, 자신을 잃어버린 수현, 성(性)적으로 억압된 예진.
예진의 억압된 성은 희한한 방향으로 가지를 친다. 첫째가 딸 소영에게 보이는 반응이 그렇다. 스무 살이 넘은 딸의 연애사를 일일이 간섭하며, 딸의 가방을 뒤져 기어이 콘돔을 찾아낸다.
딸이 만나는 남자를 격렬하게 거부하며 딸에게 순결을 강요한다. 둘째로는 유방 성형외과 의사인 남편으로 말미암은 신체 컴플렉스다.
성형은 정신적 문제임을 인지하지만, 결국 가슴 수술을 감행하려 한다. 그것이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의 두 가지 요소는 자신의 삶과 몸을 완전히 부정한다.
마지막으로 준모와의 관계다.
<인셉션>에서처럼 세경이 빼 놓은 반지가 테이블 위에서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그 순간 관객들은 이 모든 일이 가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영화 끄트머리에서는 게임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설정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돌아가는 차 안, 준모는 예진에게 온 문자를 확인한다. '자기랑 있고 싶었어'
하필이면 준모일까. 남편은 의사고 태수는 변호사, 준모는 사업병 걸린 백수다. 그럼에도 준모를 선택한 것은, 억압된 욕망의 육화 그 자체가 아닐까.
계산 없이 몸만 생각할 수 있는 상대.
마지막까지 관객의 관음 욕망을 채워준다. 이로서 가상이라고 여겨졌던 1시간 50분을 진짠가, 가짠가 헷갈리게 한다. 하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진짜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라고 믿고 싶은 건 아닐까.
태수의 말처럼 누구나 '공적인 삶, 개인의 삶, 비밀의 삶이라는 세 가지 삶'을 살고 있음이 영화의 주제일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옆에 있는 타인들을 속이며 '완벽한 타인'들로부터 결핍을 채워가는, 그것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영랑호에서의 불장난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한강이 보이는 서울 고급 아파트에서의 불장난으로, 친구 아내와의 불장난으로ㅡ불장난이라 순화하고 싶지는 않지만ㅡ 끝난다.
어쩌면 '완벽한 타인'이라는 제목은 40년지기 친구도, 가족도 아닌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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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10월 넷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
이번 주는 맑지만 쌀쌀하고 건조한 날씨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또,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다고 하니 외투를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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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자백> (NEW)
▶ 개봉과 동시에 최고의 서스펜스 추리 영화라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강렬한
연기가 최고의 몰입감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주말 동안 (10월 28일 ~ 10월 30일) 관객 수 17만 2,567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5만 1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향한 호텔에서 의문의 습격을 당한 유민호(소지섭).
정신을 차려보니 함께 있던 김세희(나나)는 죽어있고, 범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루아침에 성공한 사업가에서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누명을 쓴 유민호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김윤진)를 찾는다.
눈 내리는 깊은 산속의 별장에서 마주한 두 사람,
양신애는 완벽한 진술을 위해 처음부터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사건의 조각들이 맞춰지며 유민호가 감추고 있던 또 다른 사건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2. <리멤버> (NEW)
▶ 세대 초월 버디 호흡으로 색다른 케미를 선보였으며, 자비 없는 복수로 통쾌한 복수극이라는 점이
관객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고 있다.
주말 동안 (10월 28일 ~ 10월 30일) 관객 수 14만 1,57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3만 9,35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뇌종양 말기, 80대 알츠하이머 환자인 한필주.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에게 가족을 모두 잃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필주는 60여 년을 계획해 온 복수를 감행하려고 한다.
그는 알바 중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절친이 된 20대 알바생 인규에게
일주일만 운전을 도와 달라 부탁한다.
이유도 모른 채 필주를 따라나선 인규는 첫 복수 현장의 CCTV에 노출되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다.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오고 사라져가는 기억과 싸우며 필주는 복수를 이어가는데…
3. <블랙아담> (▼2)
▶ 개봉 첫 주말 국내와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을 모두 석권하며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블랙아담>이
<자백>과 <리멤버>의 개봉으로 아쉽게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주말 동안 (10월 28일 ~ 10월 30일) 관객 수 11만 8,11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4만 9,12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24회 예측 이벤트는 10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블랙 아담>과 <리멤버>를 1위로 많이 예상해주셨는데, 예상을 깨고 10월 넷째 주 1위는 <자백>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를 보면 그래도 TOP3 안에 들어갈 영화는 <자백>, <리멤버>, <블랙 아담>이라는 반응이 뚜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125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 (-)
▶ 가족 관객 외에도 성인 관객들에게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계속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 극장판 짱구 시리즈 중 역대급 흥행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28일 ~ 10월 30일) 관객 수 4만 4,879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9만 8,537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인생은 아름다워> (▼3)
▶ 역대급 눈물버튼 영화로 극장가에 뜨거운 입소문 열풍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은 <인생은 아름다워>는
뜨거운 호평 속에서 약 한 달간 상영하며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다 아쉽게도 10월 넷째 주에 5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28일 ~ 10월 30일) 관객 수 3만 7,629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06만 7,109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Black Adam>이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Prey for the Devil>이 개봉하면서 순위가 살짝 변화했습니다.
<Black Adam>는 주말 동안(10월 28일 ~ 10월 30일) 매출액은 27,700,333 (한화 약 394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은 111,139,000 (한화 약 1,582억) 달성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블랙 아담> 2,770 달러 (누적 1억 1,113만 달러)
2. <티켓 투 파라다이스> 1,000만 달러 (누적 3,373만 달러)
3. <프레이 포 더 데블> 702만 달러 (누적 702만 달러)
4. <스마일> 504만 달러 (누적 9,238만 달러)
5. <할로윈 엔드> 383만 달러 (누적 6,032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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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10월 넷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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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절반의 몫은 엉망진창 내 인생의 명장면을 향해
※영화 〈반쪽의 이야기〉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작은 마을 스쿼하미시에 사는 유일한 아시아인 여성 엘리는 다섯 살부터 살아온 이곳에서도 딱히 마음이 가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자신의 문학성을 알아주는 선생님만이 친구 비슷한 존재다. 선생님은 엘리가 같은 반 아이들의 에세이를 대신 써 주고 돈을 받는다는 걸 알지만 오히려 능력을 썩히지 말고 촌구석을 떠나 대학에 가라고 조언해준다. 하지만 엘리는 그럴만한 처지가 안 된다.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는 전문 지식을 갖췄음에도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허름한 시골의 기차역장 자리만 주어질 뿐이다. 무기력한 아버지의 보필에 곤궁한 집안 형편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대학 입학은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러던 중 풋볼 선수 폴이 찾아와 짝사랑하는 상대 애스터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써 달라고 제안한다. 말주변은 없고 글솜씨는 더더욱 없는 폴 대신 엘리는 애스터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생각보다 애스터와 취향과 성격이 잘 맞는 엘리는 사실 예전부터 애스터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감정을 숨긴 채 폴과 이어지도록 노력해본다. 대면이 필수인 데이트의 우여곡절 끝에 둘 사이에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엘리의 임무는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감정의 화살은 자유자재로 날아간다. 엘리와 폴이 애스터의 공감을 얻기 위한 사전 조사는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고,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붙어다니며 서로의 내면과 고민을 털어놓던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쩐지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출처: NETFILX
엘리의 단호한 내레이션은 일찌감치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대필 편지 작가라는 오래된 레퍼런스를 변주한 이 로맨틱 코미디를 연애담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고등학생이 짝사랑하는 대상에게 러브레터를 쓴다는, 지금은 생경하지만 어딘가 마음이 간질거리는 상황을 사랑 없이 논하기는 어려울 터. 하지만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 이상으로 영화가 빛나는 지점이라면, 낡은 서사가 가진 익숙함에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추가하며 얹은 캐릭터와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던 이 매력적인 틴에이지 성장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아직 낯선 세상으로 뛰어들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사랑하며 때로는 고민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창피를 무릅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진부하지만 언제나 새로우며, 포기하지 않는 그럴듯한 답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텍스트와 음성이 전하는 진심의 공명
엘리에게 사람이란 인파가 뜸한 기차역을 지나치는 기차와 같다. 늘 같은 시간에 지나가지만, 늘 칸칸이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고 지나가는 신기한 그것. 하지만 엘리는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란 낡은 부스 안에서 앉아 가끔 시간이 되면 의무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영화 속 기차역의 이별 장면에서 엘리는 그 작위적이고도 멍청해 보이는 사람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았던 엘리의 묘책은 다가오는 타인을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는 최대한 자신 앞에 기차가 서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잠을 깨우는 약한 진동조차 원하지 않는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엘리의 비평 능력이 폭발하는 머릿속을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한 뒤 이 모든 것이 비좁은 부스 안에서 이뤄지는 대비를 보여준다. 엘리의 현실을 응축한 신이 지나고, 마음껏 재능을 선보이지 못한 채 용돈 벌이용으로 전락한 일상에 또 다시 기차가 찾아온다. 자신을 일으키는 미세한 떨림은 앞으로 다가올 삶의 변화를 암시한다. 어떤 이유든 엘리는 우연히, 혹은 때맞춰 다가오는 폴과 애스터를 지나치지 않기로 한다. 그 찰나의 선택이 가져온 파동은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던 진공의 삶에 정차한 절호의 기회다.
엘리는 시대의 고전 플라톤의 〈향연〉 속 사랑론을 구시대적 잔재라고 당당하게 외치지만, 사랑을 고백하는 구절은 떠올리기조차 고역이다. 엘리의 문학적 영감은 반작용에서 온다. 감정적 작용을 애써 침잠시킨 세월만큼 축적된 삶의 에너지는 자신의 말 대신 인용구와 영화 대사로 표출한다. 이는 엘리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명대사 몇 마디를 읊조리는 것으로 잠시나마 감정을 표현할 뿐이다. 아마 살아 있을 때는 집 안의 생기를 책임졌을 엘리의 어머니를 잃은 뒤에 터득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둘만 남은 부녀는 감정의 촉매이자 원천이 사라진 집에서 영화와 책으로 표현을 대신한다. 사실 엘리 가족 말고도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말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 진정한 사랑과 사람을 거부한 채 안으로 겉도는 엘리, 내면의 본모습을 감춘 채 남들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애스터, 누구보다 깊은 진심을 가졌으나 전달만 하려면 버벅대는 폴까지. 영화는 나를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들,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고질병인 진심을 표현하는 법을 말하고, 쓴다.
〈반쪽의 이야기〉는 주요 소재인 대필 편지라는 상황으로 엘리와 폴, 애스터의 텍스트가 음성이 되고, 음성이 현실이 되는 공명의 과정을 찬찬히 더듬어간다. 대필 편지와 문자 메시지가 주를 이루는 영화는 텍스트와 음성의 불일치가 가져오는 오해와 단절, 수신 불량의 이야기다. 폴이 엘리에게 자기 대신 편지를 부탁하면서부터 말과 글의 주체는 달라지고, 표현에 서투른 이들은 소통을 위해 알아들을 수 없는 진심을 전달하고자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는 영화 곳곳에서 뒤섞이고 변주한다. 대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은 고해소부터 편지, 휴대전화까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동원하며 비대면 소통을 진행하고, 감독은 표현이 어색한 인물을 스크린 양 끝으로 보낸 채 대화를 이어간다. 폴과 애스터의 첫 데이트에서도 앞에 앉은 폴 대신 애스터의 눈은 엘리의 문자 메시지를 향한다. 폴의 모습에서 엘리의 이야기를 만나는 인식의 불일치는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시대와 문화의 제동으로 전면에 나설 수 없을뿐더러 그마저도 서툰 엘리의 진중함 앞에 관객은 사려 깊게 그의 진심을 눈여겨보게 된다. 나설 수 없기에 인용이 더 편했던 엘리는 짝사랑 상대였던 애스터로 결핍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점차 말문이 트이며 애스터에게 거의 진심에 근접한 말들을 털어놓기에 이른다. 플라톤부터 오스카 와일드, 빔 벤더스에 사르트르까지 인용하던 영화는 대망의 성당 삼자대면 장면에서 마침내 엘리 추의 목소리로 애스터에게 감정을 전한다.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의 입으로 엘리의 말을 전한다. 드디어 영화는 엘리의 말을 인용하고, 그렇게 엘리의 공명은 또 하나의 걸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반쪽을 찾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
엘리스 우는 전작 〈세이빙 페이스〉와 이번 〈반쪽의 이야기〉 두 편의 영화에 공히 고루한 세계에 외떨어진 인물을 등장시킨다.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에는 개인과 충돌하는 소규모 커뮤니티의 오랜 신념이 지배한다. 미국 속 아시아 문화를 간직한 이민자 집단과 백인 기독교 중심의 보수적인 시골 마을은, 어떤 이에게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공허한 독방과도 같다. 존재가 부정되고 일체성을 압박받는 공간은 엘리스 우가 떠올린 현실의 지옥이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것만 같던 집단의 공고한 관습에 홀로 반기를 드러내는 것만큼 스스로를 상처 주는 일도 없으니 말이다. 〈반쪽의 이야기〉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비밀을 간직한 누군가에게 지옥으로 다가온다는 명제에 집중하며 수렁에서 빠져나올 비책을 알려준다.
〈닫힌 방〉의 관계성에 〈시라노〉의 서사를 입힌 엘리스 우는 〈반쪽의 이야기〉로 가족의 굴레에 생채기를 낼 용기와 깨달음을 말한다. 가족의 인정을 위안 삼지만 정작 마음 둘 공간이 아쉬운 인물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진심을 글에 담는다. 애스터와 폴(을 대신하는 엘리)가 주고받는 편지 속 〈닫힌 방〉의 세 사람은 뒤틀린 관계 속에서 탈출을 거부하고, 방문이 열려있어도 나가지 못한다. 영화는 사르트르의 희곡을 레퍼런스 삼아 “타인이 지옥인” 세상의 다음 단계를 일러준다. 엘리와 애스터의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는 마치 천상계에서 진리의 정수를 발견하는 고전소설의 주인공 같다. 오직 둘 뿐인 신비로운 호숫가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교감하는 형상은 그 옛날 〈향연〉에 적힌 고대의 인간처럼 두 개의 얼굴, 네 개의 팔다리다. 그렇게 엘리스 우는 반쪽을 찾으려 필사의 노력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삶이란 저 멀리 사라진 서로의 반쪽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옆에 있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나머지 절반을 깨닫는 과정이다. 다시 사르트르의 방으로 돌아가자. 타인이 내 절반이 아님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알던 지옥은 더는 작은 방이 아니게 되고, 관계에 목매지 않는 결연한 나의 눈으로 곧 열린 문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반쪽을 찾지 않고 깨달을 뿐이다.
지옥을 자각하는 확신의 과정
우리가 타인을 깨달았다면 다음 단계는 이곳이 지옥임을 깨닫는 것이다. 노신부는 잊지 말라는 듯 반복된 성경 구절을 내뱉고, 성당에서는 사탄이 의심을 타고 우리에게 찾아온다고 되뇐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편지 한 통으로 의심이 자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스쿼하미시의 성에서 엘리와 폴, 애스터는 모두 불경한 죄인이다. 세 사람은 각자의 두려움에 갇혀 가면을 쓰고 거짓을 말한다.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미술의 꿈을 접은 채 가족의 뜻에 순종하고, 열등감에 주눅 들어 잠재된 능력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진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엘리와 폴은 대필 편지를 쓰고 애스터는 거짓된 사랑을 이어간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은 ‘두려워하고 거짓말하고 의심하는 자들’을 쫓아낼 성을 지었고, 신을 의심하는 자들은 바깥의 지옥으로 떨어진다(계 21:8). 하지만 엘리스 우는 단호하게 말한다. 거짓은 헛되지 않았으며 황홀한 파국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거짓을 말하는 죄 많은 백성은 오히려 의심을 열쇠로 내가 선 이곳이 지옥이었음을 깨닫는다. ‘일이 벌어지는 곳’ 스쿼하미시 (영화 초반의 안내 푯말 “It’s happening in SQUAHAMISH”)는 사실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일들은 아예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사라지는 곳이다. 스쿼하미시에서 마을 유일의 아시아인 가족이 받는 인종 차별과 성소수자의 정체성, 가족주의에 묻힌 개인의 꿈은 있지도 않았던 일로 치부한다. 따라서 주인공 세 명이 성당에서 서로의 진실을 털어놓는 장면은 더 묵인하지 않겠다는 고해성사이자 강박적인 안온함보다 위태로운 불안을 지지하겠다는 지옥으로부터의 선언이다. 내가 있는 공간이 곧 지옥임을 깨닫는 순간, 나를 감싸던 세계는 깨어진다. 이들 셋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말을 늘어놓는다. 이곳이 어디인지, 내 반쪽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아는 세 사람만이 상황을 이해할 뿐이다. 좋은 작품을 과감히 망가뜨려야 걸작을 만날 수 있듯, 나만의 소시지, 나만의 그림,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지옥은 기꺼이 문을 활짝 열 준비를 끝마쳤다.
겉도는 와중에도 서로에 이끌리며 부딪쳤던 시절이 지나고, 엘리는 걸작을 그릴 대담한 선을 찾으러 스쿼하미시를 떠난다. 사랑의 반쪽이 만나고 헤어지는 그 뻔한 기차 장면처럼 절대 울지 않겠다 맹세했던 엘리는 달리는 기차 밖에서 뛰어오는 폴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엘리는 그 진부한 감정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엉망진창에 예측하는 대로 이뤄진 적이 없는 사랑의 기억은 가장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이고, 그렇기에 낡아 빠졌다는 것을. 엘리는 울음을 그치고 주변을 바라본다. 이 안의 사람들도 어쩌면 자신이 만든 인생 최고의 대사 한 구절쯤 품고 있을 것이라는 작은 깨달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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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 21세기 최고의 괴수 영화... 가 될 수 있었으나..
서론
2014년 샌프란시스코 사태에 의해 아들을 잃은 엠마 러셀과 마크 러셀 부부는 서로 떨어져 쓸쓸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모나크' 기지에서 테러리스트 집단의 습격으로 인해 엠마와 그녀의 딸 매디슨 러셀이 납치당하게 되고, 괴수와 소통할 수 있는 기계인 '오르카'까지 훔쳐 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에 마크는 모나크 사람들과 함께 이를 구출하러 가나, 엠마의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괴수인 '킹 기도라'가 깨어나게 되고, 온갖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모나크와 마찬가지로 큰 위협을 감지한 '고질라'는 기도라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적수를 죽여 괴수의 왕으로 각성하는 이야기를 그린 '몬스터버스'의 3번째 영화다. 일단 굉장히 실망했다. 2019년 최고의 기대작이었음에도 완성도가 너무 낮아서 쓸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 작품이었다.
비주얼과 원작 오마주는 인정!
단점을 말하기 전에 우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비주얼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비주얼만 놓고 보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한참 뛰어넘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영상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괴수들 CG는 물론이고, 불을 뿜는 장면이나 날개를 펼치는 장면은 영화의 단점을 잠시나마 가려줬을 정도로 임팩트가 넘치는 시퀀스였다. 거기다 1편과 달리 괴수들의 비중을 굉장히 늘린 덕분에 시종일관 눈이 즐겁고, 원작에 대한 오마주도 빼먹지 않으면서 괴수물 팬들에게는 2시간짜리 선물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필자는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고질라의 오리지널 테마가 흘러나오는 모든 장면들에선 소름이 제대로 돋았고 중반부부터는 몰입해서 봤으니, 재미의 측면에서만큼은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나쁘지 않았고, 엑스트라 괴수들에게도 나름의 특징을 부여하여 개성을 챙겼다는 점도 그나마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라고 본다.
캐릭터 묘사는 최악
그러나 위에 장점들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각본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각본은 '끔찍하다.'라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그저 괴수들의 액션을 향한 길목일 뿐, 기본적으로 담겨 있어야 할 서사나 심리 묘사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흝고 지나가 버린다. 이 때문에 인물들의 행동에 개연성이나 설득력 따위는 전무하다시피 한다. 특히 이 점이 가장 부각된 엠마는 기도라를 풀어준 이유랍시고 내뱉는 말이 '인간은 병균이야.' 따위의 대사고, 심지어 기도라와 같은 괴수들에 의해 아들을 잃었음에도 왜 엠마가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고 인간을 혐오하게 되었는지를 묘사해 주질 않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고구마 100개 정도는 먹은 듯한 답답함이 느껴지게 된다.
괴수 액션마저 엉망일 줄이야...
심지어 이 정도는 양반인 게, 남편 마크는 초반부에 괴수를 끔찍하게 혐오하다가 어떠한 계기도 없이 갑자기 괴수에게 반하질 않나, 메디슨은 본인 아버지가 같이 도망가자고 손을 뻗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머니만 바라보다가 괴수들이 깨어난 걸 보고 '엄마는 괴물이야.' 대사를 내뱉는 등 캐릭터 묘사에 완벽하게 실패했다. 주연 캐릭터가 이 정도니 조연 캐릭터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그저 설명충일 뿐 그 이상의 매력 포인트가 없으니 인간 서사는 굉장히 지루하다. 그렇다면 괴수 액션으로 이 지루함을 해소시켜줘야 하는데, 문제는 이것 또한 제대로 못했다. 그러니까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장면들이 나오긴 하는데 막상 전투신에 도입하면 시점을 계속 끊어먹어서 괴수들의 깽판을 제대로 즐기기가 힘들다. 개인적으로 이게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 영화를 보러 온 대다수의 관객들은 분명 화끈한 괴수 액션을 기대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그 기대를 처참히 짓밟은 것이니 말이다.
결론
생각 없이 괴수 액션을 보려니 액션신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스토리에 집중하려니 각본이 너무 엉망이고, 배우들을 보려니 캐릭터들이 너무 엉망이고 (특히 샐리 호킨스라는 명배우를 그 따구로 소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로지 원작 팬들만을 위한 선물세트. 킬링타임 용으로는 적당히 즐길 만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졸작이다. 정말 명작이 될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작품이었다.
평점: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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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독립시대
01:20 대만 은유
02:45 유자의 곤혹
04:07 제목 분석
04:57 아킴과 채플린
08:18 양덕창 예술론
09:40 오프닝, 결말해석
11:39 별점 및 한 줄 평
11:5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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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대 공감! 올 봄 따뜻한 감동을 선사할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메인 예고편 대.공.개? 탈북 천재 수학자 #최민식 이 펼치는 불꽃 열연? [#이상한나라의수학자?] #3월9일 극장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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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사라졌다! 평소와 다를 바 없던 귀갓길, ‘윌’(제라드 버틀러)이 주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 ‘리사’(제이미 알렉산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소한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한 ‘리사’ ‘윌’이 그녀를 찾기 위해 분투할수록 드러나는 증거들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 그녀를 찾을 때까지, 추격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