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남규2024-06-25 00:00:42
[마거리트의 정리] 너 자신을 알라
증명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다
[마거리트의 정리]
2보다 높은 짝수, 그러니까 ‘4 6 8 10 ~’는 두 개의 소수의 합으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1742년, 프로이센 수학자 골드바흐는 오일러에게 편지로 자신의 추측을 전달했다. 4는 2+2로 표현할 수 있고, 6은 3+3, 8은 3+5와 같이, 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1보다 큰 양의 정수로 짝수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영화 리뷰에 짧은 수학 지식을 가져온 이유는 이번 ‘마거리트의 정리’ 영화 내내 주인공 마거리트가 세계의 난제인 ‘골드바흐의 추측’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이것이다. 관객에게 어떤 수학적 정보나 이해를 도울 예시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작을 해본 적이 없는 내게는 똑같이 어려운 비유였다. 마작이란 게임을 알고 계신 관객은 중간마다 놀라움을 표현하시기도 하셨다. 부끄럽지만 수학을 놓고 산지 아주 오래전이라 영화 속에 나오는 다양한 수학 기호와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리뷰를 써야 편할지 걱정된 적은 또 처음이다. 공포영화는 온 힘을 다해 부술 텐데.
하지만 수학적 설명을 하지 않은 이유도 알고 있다. 영화에서 ‘무엇을 설명한다’는 것은 굉장히 늘어지는 작업이자 붙잡고 있던 서사의 긴장감을 끊어버리는 행위다. 영화가 굉장히 어려운 난제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줄지 고민을 한 흔적이 이곳에서 느껴졌다. 애초에 수학적 지식을 나열하는 단순함은 짧게 보여준다. 대신 주인공 ‘마거리트’에게 벌어지는 드라마에 가까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서사를 부여한다. 즉,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평소 수학과 밀접한 연관이 없는 사람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영화다.
사실 조금 걱정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확인하고 주인공 마거리트의 모든 행적을 걱정했다. 상업 영화가 아니며, 칸 영화제와 세자르영화제에서 수상을 받은 작품이라면,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돌변에 매번 긴장한다. 독특한 소재로 관심을 얻었으나 눈이 피곤할 정도로 선정적이거나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는 PC요소로 재미가 반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애초에 처음부터 각오하고 보았기에 놀라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내가 말하는 건 정말 갑작스레 행동하거나 튀어나오는 억지스러움이라는 것이다.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마거리트’는 스스로 위대한 행보를 걷는다. 늦은 사춘기를 맞이한 것처럼 격정적인 감정에 휩쓸리기도, 매혹적인 상대에게 집중하기도 한다. 마치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가던 암탉이 담장 밖 세상에서 다양한 생물과 환경을 만나는 것처럼 ‘마거리트’는 세상을 경험한다. 재밌는 점은 마거리트가 경험하는 일들은 이미 익히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성인인 마거리트는 이미 클럽에서 춤을 춘다는 정보는 알고 있는 상식이다. 수학 천재 마거리트는 도박은 불법이며 도박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본 마거리트는 믿음, 배신, 사랑이란 감정들에 대해서 머리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모르는 것은 ‘골드바흐의 추측’을 해결할 열쇠지, 인생이 아니었다.
이 부분에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떠올랐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도 누구나 경험했을 일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저 수학과 암호 해독을 좋아해서 일반인이 자주 하는 일상을 보내지 않은 것과 똑같았다. 보통 영화에서 묘사하는 천재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강박’이다. ‘마거리트’는 수학에 대한 강박을 가졌고, 이것은 자연스레 오로지 학교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하는 단순함으로 이어진다. ‘실내화 신은 수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여인이 일련의 사건으로 학교 밖을 자의적으로 나간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앨런 튜링이 세상에서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 조안, 휴 같은 친구를 만나는 것과 반대로 말이다.
마거리트는 실내화 대신 운동화를 신으며 앞서 언급한 다양한 사건을 경험한다. 심지어 수학 천재답게 머릿속으로 마작의 모든 수를 세며 도박판의 실력자로 급부상하기도 한다. 반드시 연구 논문을 마치고 교수님의 애제자로서 성공해야 했던 그녀에게 이런 일상은 가혹한 일탈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사춘기 늦바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로지 숫자에만 매몰된 그녀의 눈을 뜨게 해주는 휴가였다고 생각한다. 최근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를 읽으며 든 생각이 있다. 제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정보를 알고 있지 않다면 바보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책이나 대중 매체로 알고 있던 미술 작품이나 자연경관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경이로움 말이다. 그래서 마거리트가 음습한 수학 천재 모습 대신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파리의 대학생 같은 행동을 할 때 반가웠다. 의외로 많은 관객이 그녀의 엉뚱한 행보에 웃으셨다.
드라마 ‘퀸즈갬빗’은 1950년대 체스 천재 베스가 세계 정상에 올라가는 과정을 다룬다. 천재가 어떻게 주목을 받으며,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부활하는지에 대해 주인공을 극한으로 내몰며 뼈저리게 알려준다. 이번 ‘마거리트의 정리’도 마찬가지다. 113분이라는 시간 동안 주인공 마거리트에게 무수히 많은 시련이 몰아친다. 퀸즈갬빗에서 느꼈던 ‘드라마 자체가 하나의 체스 경기’와 같이 이번에도 ‘영화 자체가 하나의 수학적 증명 과정이다’라고 느꼈다. 영화 초반부 증명에 실패한 마거리트가 몇 걸음 물러나 머리로만 알고 있던 정보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하나하나 다시 인생 전체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관객으로서 증명 과정 전체가 독특해서 즐거웠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련을 독특한 방식으로 하나하나 배워가며 흔들리는 것에서 인간적인 공감을 느꼈다. 비록 그녀가 어떤 난제를 풀어가는지 그 과정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미치도록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거리트의 욕망, 결심, 뛰어남을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아마 전국에 계신 수학 선생님들이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 전, 남는 시간에 틀어주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