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7-04 16:37:30
7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차기작 '감옥' 배경 영화
<위플래시> <라라랜드> <바빌론>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님의 신작소식!
7월 1주차 씨네뉴스 함께해요!
<탈주> <인사이드 아웃 2> 제치고 1위
이제훈, 구교환 주연의 <탈주>가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습니다.
줄곧 1위를 달려온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을 제치고
개봉 첫날 11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탈주>는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 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영화입니다.
케이트 블란쳇 X 정호연 <누군가는 알고 있다> 10월 11일 첫 공개
정호연이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애플 TV+ <누군가는 알고 있다>의 공개 일이 정해졌습니다. 작품은 영국 작가 르네 나이트가 2015년 발표한 동명 소설 원작으로 유명 저널리스트가 어느 무명작가로부터 자신의 비밀이 담긴 소설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심리 스릴러이며, 케이트 블란쳇의 비서 역할을 맡은 정호연은 똑똑하고 활기찬 야망을 가진 여성을 연기한다고 합니다.
<라라랜드> <바빌론> 데이미언 셔젤 차기작 ’감옥’ 배경 영화
‘월드 오브 릴’에 의하면 지난 4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파라마운트와 함께 차기작을 진행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감옥 배경의 액션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 장르로 전해지고 있으며 25년에 개봉 목표를 밝혔습니다. 감독은 <위플래시>, <라라랜드>를 평단의 호평과 흥행에 성공했지만 <퍼스트맨>, <바빌론> 흥행에 실패하면서 할리우드에서의 환영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입니다.
웨이브, 부천영화제 90개 작품 특별 편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에서 내일(5일)부터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을 오픈합니다.
장편영화는 총 16편, 단편영화는 총 74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람건수 500건 초과 작품은 조기 종영될 수 있습니다. 영화제 현장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팬들은 물론 평소 접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장르 영화를 원하는 이용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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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에 관한 영화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경제적인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서 평균적으로 비치는 세상의 모습은 과거에 비해서는 좀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그 사회의 부조리들과 차별은 존재한다. 많은 부분이 세상에 드러났다고 하지만, 사실 무수한 차별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뿌리 박혀 있다. 각 나라의 이민자들을 향한 시선들과 다른 인종에 대한 시각에는 그런 차별의 시선이 여전히 담겨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생활해 나가야 하는 현대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잘 어울리며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일부에 마음 깊이 박힌 마음은 은연중에 밖으로 돌출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특히나 인종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 과거 노예제에서 고통받던 흑인들을 향한 현재의 시선이나, 동양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백인들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백인 경찰과 흑인 피해자의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이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 빈도는 적겠지만 한국에도 이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살아간다. 중국, 일본 사람뿐 아니라 동남아 국적의 사람들도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그들을 대하는 태도나 시선에는 그들을 낮게 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런 보이지 않는 갈등은 바로 해결하기 힘들고, 앞으로도 계속 어딘가에는 존재하며 갈등을 만들어 갈 것이다.
흑인들의 보이지 않는 피해와 차별을 이야기하는 영화 <캔디맨>
영화 <캔디맨>은 그런 소수인종들의 보이지 않는 피해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안소니(아히아 압둘 마틴 2세)는 새 미술작품을 구상 중인 아티스트다. 큐레이터인 여자 친구 브리아나(타요나 패리스)와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작품으로 미술계에서 좀 더 인정받길 원하는 안소니는 도시에서 떠돌고 있는 캔디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어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려고 한다. 거울을 보고 캔디맨을 5번 부르면 실제로 캔디맨이 나타나 부른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는 캔디맨이라는 이름을 누군가 거론할 때마다 불편하거나 조금은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게 만든다.
안소니는 아직 미술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다. 큐레이터로서 인정받고 있는 브리아나의 도움으로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인정받으려고 한다.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모두 흑인들이다. 그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도 안소니는 조금 더 아웃사이더처럼 보인다. 여자 친구 오빠와 만나고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는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그 오빠가 이야기해주는 괴상한 이야기는 안소니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어쩌면 캔디맨이 소외당하고 고통받던 과거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느끼게 되면서 더욱더 캔디맨의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더 빠져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안소니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작품으로 평가받을 뿐이다. 캔디맨 전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관심을 받지만 그것 자체가 안소니를 양지로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영화 속 안소니의 뒤를 따라가게 되는 관객은 그가 캔디맨의 전설에 그토록 몰입하고 빠져드는 이유를 완전히 이해 가긴 어렵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이라면 그가 왜 그렇게 그것에 빠져들 수 없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이야기하자면 안소니는 현재의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캔디맨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그렸던 많은 그림들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고, 그와 가까운 여자 친구조차 그가 그린 그림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영화 중반 그의 작품을 취재던 백인 기자는 그의 작품을 통해 흑인 예술가들이 땅값을 올리는데 이용되는 바보 같은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의 작품을 이용하려 한다. 그런 백인 기자의 말에 안소니는 큰 실망감과 분노를 느낀다.
캔디맨의 전설에서 캔디맨은 한쪽 손이 없어 갈고리로 만든 존재다. 그가 아이에게 캔디를 준 후, 그다음에 그를 잡기 위해 그의 앞에 나타난 백인 경찰들은 인정사정없이 그를 폭력으로 제압한다. 거기엔 어떤 망설임도 없으며 상대방의 말이나 변명을 들어볼 생각조차 없다. 영화는 후반부 이 캔디맨의 전설을 아주 오랜 전으로 돌려 흑인으로서 피해를 받았던 최초의 피해자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게 희생된 최초의 캔디맨은 현대로 오면서 여러 캔디맨을 만들었고, 여러 사람에게 전설을 전달하며 공포심을 통해 여전히 건재하는 것을 보여준다.
캔디맨이 보여주는 흑인들의 피해
이런 캔디맨은 바로 온갖 차별 속에 희생당한 보이지 않는 흑인들을 의미한다. 무차별적으로 차별을 받고 폭행당해 목숨을 잃은 흑인들은 세상에 제대로 항의도 해보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세대를 이어가며 내려온 그 차별과 폭력은 현대로 오며 그 방법을 달리했을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영화 말미 캔디맨은 그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라는 말을 브리아나에게 전한다. 그 이야기는 어떤 권리 없이 희생당한 흑인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언론이나 대중매체가 제대로 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게 다루는 희생자들의 이야기는 캔디맨 같은 도시 괴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그 문제가 알려질 때, 다시 그 문제가 반복되지 않고 조금이나마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안소니가 하는 역할은 현재에 소외당하는 조금은 이상한 존재를 대표하는 것이다. 조금은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그는 조금씩 캔디맨의 이야기에 동화되며 캔디맨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리고 세상에 널리 알리라는 캔디맨의 말처럼 그가 겪은 일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어떤 사건들을 만들어나간다. 관객이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선택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결말부에 밝혀지는 그의 과거를 통해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해준다. 캔디맨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누구나 캔디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캔디맨을 실제로 목격했을 때, 그것을 본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그 사건이 얼마나 주변에 알려질지 결정된다. 이 영화는 그런 상황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관객들을 향해 널리 이야기하라고 강조한다.
영화 <캔디맨>은 1992년에 만들어진 1편의 뒤를 잇는 영화다. 1편 이후 만들어진 2편과 3편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1편에 이어 현대에 캔디맨의 서사를 이어간다. 캔디맨은 모두 배우 토니 토드가 맡아 연기했으며, 이번 리메이크작에서도 그가 캔디맨 역할로 등장한다. 1편과 이어지는 두 편의 시리즈는 정통 호러 영화 장르 속에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1편은 공포 영화로서도 훌륭하고 메시지를 주는 내용으로 볼 수 도 있어 꽤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었다.
이번에 만들어진 <캔디맨>은 호러 영화 장르의 색을 끼고 있지만 사실은 메시지가 강력하게 들어가 있는 영화다. 미국 내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사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인종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은연중에 그것을 드러내기보다 아주 직접적으로 캔디맨의 전설과 그 차별을 연결함으로써 관객에게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렇게 메시지가 강력하게 표현되면서 호러 영화로서의 수위나 효과는 상대적으로 덜 돋보인다. 그래서 호러 영화라는 느낌이 덜하고 공포스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캔디맨의 배우 토니 토드가 분장하고 잠깐잠깐 등장했을 때 무서운 느낌이 조금 들긴 하지만 영화 전반적으로는 다소 지루하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사회비판 영화로서는 흥미롭게 볼 수 있지만 정통 호러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조금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니아 다코스타는 흑인 여성 감독으로 2018년에 <두 여자>라는 영화로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또한 2022년에 개봉 예정인 <캡틴 마블>의 두 번째 영화 연출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 영화의 제작도 맡고 있는 조던 필 감독과 같이 각본 작업을 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래서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조던 필 감독 특유의 기괴한 감성이 담겨 있기도 하다. 비록 공포스러운 느낌은 덜하지만 과거 조던 필 감독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각기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평가가 어떠하든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은 명확히 전달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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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발 떨어지니 더 격렬히 끓어오른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592년 4월, 왜군은 단 15일 만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점령하며 파죽지세로 북진한다. 그러나 '이순신(박해일)'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앞세워 남해안을 장악하자 이내 왜군은 보급에 난항을 겪는다. 이에 용인 전투에서 10만 명의 조선군을 격퇴한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는 해전을 통해 이순신을 꺾고 보급품을 전달함과 동시에 명나라로 진격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부산포에 수군을 집결시키고, '나대용(박지환)'이 설계한 거북선의 도면을 훔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이순신(박해일)'은 '원균(손현주)'의 방해에 맞서가면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는 등 수세에 몰린 조선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작전을 고민하며 한산도로 출전한다.
전쟁 이론을 다룬 유명한 경구들을 이야기할 때 프로이센의 군인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속 다음 말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전쟁은 다른 수단을 동원하는 정치의 연장(延長)"이라며 전쟁이 대립하는 의지들의 충돌이라고 보았다. 모든 전쟁은 본질적으로 다른 국가에 자기 의지를 강요하려 하는 한 국가가 많은 수단 중 선택한 한 가지 옵션에 불과하다. 즉, 전쟁의 명분과 목적, 승패의 기준점은 그 전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전쟁 영화들도 단지 전쟁과 전투의 양상을 그려내는 것만큼이나 그 전쟁의 명분과 정치적 의미를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례로 <300> 시리즈는 (비록 역사 왜곡 논란이 있지만) 러닝타임 동안 자유 대 압제라는 이데올로기적 대결에서 전자가 승리하는 쾌감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해준 바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도 비록 패배한 전투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분기점이 되었던 덩케르크 퇴각의 의미를 스크린 위에 온전히 재현해냈다. <고지전>은 아예 전쟁을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아이러니함을 꼬집은 바 있다.
170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작의 반열에 오른 <명량>의 후속작이자 프리퀄로, <최종병기 활>과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은 <한산: 용의 출현>도 다르지 않다. 1592년 음력 7월 8일에 펼쳐진 한산도 대첩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한산>은 전쟁의 두 주체, 조선과 일본의 의지를 각각 의(義)와 불의(不義)로 설명한다. 이는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과도 정합한다. 일본군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는 이유로 아무런 명분 없이 조선을 침략했기에, 조선과 일본은 순도 100%의 가해자와 피해자다. 그러니 임진왜란이 의와 불의가 싸우는 전쟁인 것은 명확하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의와 불의의 전쟁을 풀어내는 드라마적 측면이다. 특히 <명량>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은 <한산>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명량>은 전쟁을 왕과 종묘사직이 아닌 백성을 위한 싸움이라 규정하며,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메시지를 극대화했다. 실제로 왕에게 버림받았다가 다시금 전쟁에 나설 것을 명 받은 백전노장은 국가와 군주를 위한 충성심에 앞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울돌목으로 향했고, 역으로 백성의 도움을 받아 기적처럼 승리한다. 이러한 정치적 함의는 2014년 개봉 당시 <명량>이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던 부분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다만 이 민심의 중요성을 전하는 방식이 다소 올드하고 일차원적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말을 할 수 없어 치마를 흔들며 위기를 알리는 '정 씨(이정현)'의 모습이나 백성의 희생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던 '임준영(진구)'처럼 부자연스러운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극의 흐름을 툭툭 끊었다. 이 고생을 몰라주면 후손들이 전부 후레자식이라던 대사 역시 영화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한산>은 다르다. 오히려 형보다 더 낫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일본군의 시점을 강조하며 이순신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 영화는 가장 먼저 부산의 일본군 진영을 비춘다. 또 일본군이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비하는 모습을 착실하게 그려낸다. 걸핏하면 조선인들을 죽이는 평면적인 악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빈자리는 두려움이 곧 전염병이라면서 아군의 패잔병을 죽여 혹시 모를 불씨를 제거하는 주도면밀함, 간첩의 침투와 그로 인한 정보의 유출을 경계하는 치열한 첩보전, 군사적 약점을 지우기 위해 전력을 증강하고 작전을 가다듬는 철저함이 대신한다.
반면에 스크린 속 조선군은 취약하다. 거북선을 잃고, 거북선의 설계도를 탈취당하며, 학익진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즉, 영화는 의롭지 못하다는 단편적인 인상 대신 신중하고 영리하며 강대한 불의 앞에 흔들리는 의로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순신의 학익진은,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거북선의 등장은 역으로 더 큰 감동을 준다. 철저하고 신중했던 불의가 의로움으로 쌓은 바다의 성 앞에서 필연적으로 궤멸되는 모습은 이른바 품격 있는 '국뽕'으로 이어진다. 한산 바다에 수군 군영을 구축하며 단단한 방패를 만드는 모습으로 영화가 결말을 맺는 이유이자, 작중 최고의 씬스틸러인 거북선이라는 소재가 단지 눈요기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거북선을 장님 배라는 의미의 '메구라부네'라고 줄곧 부르던 왜군 장수들은 거북선을 마주친 순간 영화 초반 패잔병들이 그러했듯이 해저 괴물이라는 의미의 '복카이센'이라고 말한다. 이는 일본군의 거북선에 대한 두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내며, 곧 의로움의 힘을 보여준다.
그래서 자칫 억지스럽거나 정서적으로 과장될 수 있었던 항왜 '준사'의 서사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한산도 대첩과 맞물린다. 아군을 보호하지 않는 왜군의 악의를 경험한 왜장 준사는 이순신을 만나 마음을 고쳐 먹고 의라는 글자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의병과 함께 전투에 임한다. 이 모습의 함의는 굳이 과장된 감정선이나 대사를 통하지 않아도 국가와 백성을 보호하는 강력한 성인 학익진과 자연히 오버랩된다. 그렇기에 전쟁과 전투에 담긴 의미를 전달하는 <한산>의 방식은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련되게 느껴진다. '정보름(김향기)'와 '안준영(옥택연)' 캐릭터의 분량이 전편에 비해 적어서 인위적이고 신파적인 연출이 줄어든 것도 영화의 담백함에 기여한다.
또 영화가 이순신의 활을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칼을 대조해 의로움의 필연적 승리와 그 쾌감을 강조하는 것도 흥미롭다. 와키자카의 칼은 명나라로 진격하려는 야욕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두려움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패잔병을 죽이는 그의 칼은 왜군끼리도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분열의 칼이며, 명나라까지 향하는 지도가 그려진 황금 부채로 변하기도 한다. 반면에 이순신은 죽을 위기에 처한 부하 나대용을 구하기 위해 총을 맞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활을 쏴 나대용을 보호하고, 약점이 드러난 거북선을 구해낸다. 그리고 나대용과 거북선은 찰나의 순간 이순신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으로 보답한다. 그래서 와키자카의 칼도 조총도 이순신을 위협할 수는 없다. 의로움이 담긴 이순신의 활 앞에서 악의로 가득한 그의 무기는 무용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한산 대첩에서 갑옷에 화살에 맞았다는 역사적 기록을 영리하게 활용한 드라마의 힘이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장수가 자신의 무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대비되는 점도 드라마에 입체감을 더한다.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칼을 뽑는 와키자카와 달리, 작중 이순신이 활을 쏘는 장면은 딱 세 번 등장한다. 이는 신중함을 기하면서도 끝내는 자신의 경험을 답습하는 와키자카와 달리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신중한 이순신의 차이를 드러낸다. 와키자카는 한산도 바다가 용인 전투와 같은 지형이라는 이유로, 또 이순신의 학익진이 과거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드러난 학익진의 약점을 공유할 것이라고 판단해 과거의 전술을 반복한다. 반면에 꿈속에서 녹둔도에서의 전투를 다시 한번 마주한 이순신은 와키자카의 선택을 예측한 후 마지막까지 확실한 한 수를 기다리다 왜군의 공격을 되받아 역공한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배우의 서로 다른 스타일의 연기가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요한은 본래 신중하고 치밀하지만 전투에 돌입하면서 야망에 부풀었다가 학익진 앞에서 좌절해 절망하는 와키자카의 입체적인 변화를 잘 짚어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대사와 비중에도 불구하고 박해일의 절제된 표정 연기가 지장(智將)으로서의 이순신을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이유다.
물론 모든 드라마적 측면은 결국 전투와 전쟁의 양상을 알기 쉽게, 또 박진감 있게 펼쳐 보인 연출과 구성 덕분에 빛난다. 우선 당포에서 견내량과 한산으로 이어지는 전투의 흐름 속에서 매 순간 변화하는 조선 수군의 학익진과 일본 수군의 어린진이라는 진형을 넓고 수직적인 구도로 잡아내 그 형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밑바닥이 둥근 일본군 함선과 밑바닥이 평평한 판옥선의 차이점을 활용해 전투의 변수를 만들기도 하며, 거북선들의 충파로 인한 박진감이나 전방위 포격으로 적을 섬멸하는 모습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또 전반적인 임진왜란의 흐름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도 영리함이 돋보인다. 지형적으로 유사한 용인 전투의 전황을 상세히 설명해 한산도 대첩의 전술적 가치까지도 부각하는가 하면, 선조의 몽진을 강조하며 한산도 대첩이 지니는 전략적 측면에서의 의의도 스크린에 담는 데 성공한다.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으로 각색한 지점도 눈에 띈다. 일례로 영화는 역사 속 이치 전투와 웅치 전투의 특징을 합쳐 가상의 전투를 만들어 낸다. 본래 전주성이었던 일본군의 목적지를 전라좌수영으로 변경해 한산도 대첩 전후의 위기감을 더 고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적 서술을 충실히 따르며 서스펜스를 끌어올린다. 원균의 활용법이 대표적이다. 다른 미디어들과는 달리 무능하고 비겁한 원균의 캐릭터성을 온전히 묘사하면서 일본군과의 전투라는 외적 위기는 물론 진이 뚫릴 수 있다는 식으로 조선군 내부의 위기도 조성한다. 그 결과 거북선의 기습과 돌격 , 학익진의 위력, 평소와 달리 화약을 잔뜩 준비한 이순신의 지략 등의 임팩트는 모두 극대화된다.
특히 이는 영화를 제작할 때 한산도 대첩이 명량 해전에 비해 여러 핸디캡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명량 해전은 이순신 개인에게도, 조선 수군의 입장에서도 절대적인 어려움이 있는 전투였다. 총지휘관은 억울하게 파직당하고 어머니를 잃은 상태였고, 조선 수군도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후 12척의 판옥선만 남아 있었다. 그 와중에 130여 척이나 되는 일본군을 패퇴시켰으니 명량 해전은 별다른 각색 없이도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반면에 한산도 대첩 당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연전연승 중이었고, 전력도 온전했다. 이순신 개인 입장에서도 사천 해전에서 총탄을 맞아 부상당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일신상에 크게 특이한 부분이 없다. 즉, 한산 대첩은 전략적인 관점에서는 중대한 승전이지만 오히려 처절함과 승리의 쾌감이 덜 직관적인 전투다. 이러한 핸디캡을 강렬한 스펙터클이 돋보이는 긴 분량의 해전 씬과 영리한 각색을 통해 극복했기에 <한산>의 임팩트는 결코 <명량>에 뒤처지지 않는다.
아쉬움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다. 시리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안준영과 정보름 캐릭터는 왜군과의 첩보전을 담당하면서 이번에도 일정 부분의 분량과 비중을 분배받는다. 그런데 그들은 전반적으로 담백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신파의 감정선을 유지하면서도, 시리즈의 연속성을 부각한다고 보기에는 역할이 작다. 그러다 보니 찰나의 순간 삽입된 그들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영화의 최대 장점인 영리한 각색과 전투씬도 단점이 없지는 않다. 영화는 한산도 대첩 이후 조선 수군이 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 부산까지 진격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그런데 정작 부산진 전투가 한산도 대첩이 포함된 3차 출정이 아닌 이순신의 4차 출정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굳이 한 데 합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한편 거북선이 나타나는 전투씬은 배와 배가 충돌하며 원초적인 쾌감을 느끼게 해 주는데, 다만 거북선에 사용된 CG의 수준이 부자연스러운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인 작전 도중 암초 바다를 해쳐 나오는 조선군과 그대로 좌초되는 일본군을 묘사할 때처럼 순간순간의 장면에서도 부자연스러운 그래픽이 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이순신 장군이 와키자카 야스하루에 비해 적게 등장하고, 인간적인 고민이 두드러지지 않는 점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물론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명량 해전에서는 용장(勇將)을, 한산해전에서는 지장(智將)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기는 하다. <명량>이 영웅 이면의 고뇌에 주목했다면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젊은 장군이자 리더인 이순신의 자질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량: 죽음의 바다>가 인간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한층 원숙해진 현장(賢將) 이순신을 그려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다면, 이 단점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한산: 용의 출현>은 전편의 단점은 수정하고, 객관적인 접근법을 통해 같은 주인공의 또 다른 면모를 부각하면서, 품격 있는 사극이자 영웅전, 그리고 전쟁 영화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해낸다.
A(Acceptable, 무난함)
온 국민이 아는 해전에 영화적 재미를 더하는 데 성공한 의와 불의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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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으로 압축된 스파이 세계
영국의 비밀정보부 요원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는 소련의 이중 첩자를 색출하는 미션에 실패한 후 은퇴한다. 그러나 소련의 고위급 장교를 감시 중이던 현장요원 ‘리키 타르’(톰 하디)는 서커스라 불리는 MI6의 최고위급 간부 중 팅커, 테일러, 솔저라는 코드 네임을 부여받은 '퍼시(토비 존스)', '빌(콜린 퍼스)', '로이(키어런 힌즈)' 중 한 명이 스파이임을 본부에 알리고, 이에 본부는 조지에게 다시 한번 비밀 색출 작전을 맡긴다. 유일하게 믿을 만한 동료 '피터(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지는 어제까지 동료였던 정보부 모든 이들을 상대로 한 작전에 다시 나선다.
에스피오나지 장르, 곧 첩보물은 통상적으로 두 가지 서사를 기본 골격으로 삼아 살을 붙여나간다. 거시적 관점에서의 냉혹한 서스펜스와 미시적 관점에서의 씁쓸한 개인사가 그것이다. 영화 속 스파이들은 소속된 국가와 기관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료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편인지 아닌지를 거듭 분간해 내야만 한다. 실패의 대가가 목숨일 수도 있는 만큼 이 과정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한편 적군과 아군이라는 철저한 흑백의 이분법만으로 이루어진 스파이의 세계는 첩보원이기 이전에 다양한 색을 지닌 개개인의 이야기를 짓밟으며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두 이야기 사이의 균형은 시리즈 중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007 스카이폴>이 보여주듯 잘 만든 첩보물의 기준이 된다. 2012년 이후 9년 만에 재개봉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역시 이 균형을 아주 잘 잡은 영화 중 하나다.
사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낯설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서스펜스를 보여주는 방식이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다. 많은 첩보물들은 특유의 서스펜스를 액션씬에 담아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상술한 <007> 시리즈를 비롯해 <미션 임파서블>, <제이슨 본>, <킹스맨>과 같은 첩보물 프랜차이즈들은 나날이 거대해지고 기상천외해지는 화려한 액션을 통해 명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와 첩보물의 만남도 이러한 트렌드에 일조했다.
하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멋진 액션 대신 등장인물들의 동선에 집중한다. 그들이 특정 공간에 도착하는 순간을 에피소드의 시작점으로 삼고, 그전까지는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만나는 이들이 누군지, 목적인지를 좀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이 걷는 장면은 그 자체로 긴장감을 자아낸다.
더 나아가 영리한 카메라 워킹을 통해 스파이의 세계를 표현한다. 카메라는 인물들이 거리를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영화의 내용이 하나의 직선 위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부다페스트 작전에서도, 런던에서 목적지를 향할 때도 작중 첩보요원은 항상 좌우로만 걸으며, 카메라 역시 그들을 쫓아 좌우로만 움직인다.
이처럼 마치 인물들을 하나의 직선 위에 올리는 듯한 연출은 꼭 액션이 아니어도 긴장감이 팽배한 스파이들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타인이 아군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분간해야만 하는 영화 속 스파이들은 양쪽 끝을 향해 뻗어 있는 하나의 직선 위를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속 첩보 요원인 해리와 전 세계 인구의 반을 죽이려는 빌런 밸런타인 대화를 보자. 밸런타인이 본래 제임스 본드와 같은 젠틀맨 스파이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하자, 해리는 007 시리즈 속 악역이 되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다면서는 둘 모두 꿈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받아친다. 긴장감과 유머스러움이 같이 녹아든 이 장면은 서로가 서로의 적대자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스파이의 속성을 꿰뚫는다. 단지 <킹스맨>과 달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스파이의 삶과 세계의 본질로부터 고조되는 서스펜스가 간단하면서도 영리한 카메라 워킹에 담겼을 뿐이다.
더불어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배경인 시대상과도 조화를 이루며 양 극단으로 갈린 세계에 사는 이들이 느낄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액션이 배제된 것은 냉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전면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의 편을 확인하고 포섭하려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적절히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매 등장마다 좌와 우를 넘나드는 영국의 첩보 요원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미국과 소련 사이를 바쁘게 움직이며 새로운 위치를 설정해야 했던 냉전 당시 영국의 국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낯설게 느껴진 두 번째 이유는 영화의 비중이 스파이들 간의 갈등이 아닌 스파이 개개인의 씁쓸한 이야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의 존재로 대변되는 상이한 이념 간의 갈등이 개개인의 아픔들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점은 첩보물 블록버스터들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전복시킨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열심히 편을 가른다. 누가 소련의 이중첩자인지를 찾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중간중간마다 현재의 맥락과 상황에서 다소 어긋난 장면들을 삽입하며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는 신호를 숨기지 않는다. 영화는 현재 상황과 과거의 기억을 유려하게 넘나들고, 중간중간에 새로운 인문들을 등장시키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오다가 잠깐 끊는다. 이런 교차 편집이 한두 번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수 차례에 걸쳐 반복되며 현재 상황을 진행하다가 필요할 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 신호들은 직선 위에서의 편 가르기가 끝나는 찰나에 마침내 온전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마지막 5분 사이에 인물 들 간의 과거는 전모를 드러낸다. 리키가 러시아 여성과 나눈 비운의 로맨스, 소련과의 첩보전으로 인해 파괴되어 버린 조지의 가정사와 2차 세계대전 참전 전우들의 우정, 사랑하던 두 남성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죽여야만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운명에 휘말리는 것까지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 결과 영화는 더 이상 첩보원들의 눈치와 두뇌 싸움을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스파이의 세상, 그 직선 너머에 있는 개인들의 입체적인 세계를 들여다본다. 냉혹한 서스펜스의 첩보물은 애절한 드라마가 되고, 흥겨운 음악을 만난 결말은 아이러니가 가득한 비극으로 장식된다. 이는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인물이 첩보 활동 외의 과거사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피터이고, 첩보전에서 손을 뗐다가 다시 돌아오며 가슴 아픈 과거를 모두 보여준 조지가 정작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낯설고 장르의 주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대목을 통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첩보물의 현실적 감각,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인간사에 대한 통찰을 모두 담아 장르 영화로서의 균형점을 확실하게 잡는다. 그리고 거대한 시각에서 하나의 직선으로 표현된 세계와, 그 세계가 온전히 담을 수는 없는 개인들의 현실이 충돌하는 모순이 담긴 이 균형점은 9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가 여전히 빛이 나는 이유다. 국가와 공동체의 이익이 화두인 팬데믹 상황에서, 두 번째 냉전의 시작을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가득한 세상에서, 100년이 넘게 이어졌던 역사와 전통이 자본의 이름으로 공격받는 세상에서 개인의 삶과 권리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 생길 비극을 보여주는 장르 영화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스파이의 삶을 스릴 있으면서도 가슴 아프게,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으로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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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정신의 유효함을 되묻는 팽팽한 범죄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들을 부양해야 했던 '강인구(하정우)'. 그는 막무가내로 '혜진(추자현)'과 결혼한 후 여러 사업을 벌여 가정을 지탱하지만 이내 한계에 봉착한다. 그런 인구에게 학교 동창 '응수(현봉식)'는 한 가지 사업 아이디어를 준다. 수리남에서 버려지는 홍어를 국내로 공급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 이에 곧장 수리남으로 넘어간 인구는 나름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간다. 어느 날, '첸진(장첸)'이 이끄는 중국 삼합회와 갈등을 빚게 된 그는 한인 교회 목사 '전요환(황정민)'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다. 그러나 안도할 틈도 없이 인구는 그의 홍어에 코카인을 숨겼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로부터 전요환이 그의 사업을 마약 거래에 이용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이에 국정원의 전요환 체포 작전에 협력하기로 한 인구는 다시금 수리남으로 향한다.
사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언제나 거대한 적을 마주하고 있다. 이야기의 끝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끝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를 두고 등장인물과 관객들이 눈치 싸움을 벌이는 그런 긴장감은 효과가 크지 않다. 오로지 결말이 이르는 과정으로 승부를 봐야 하기에 팔 한쪽을 쓸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항상 단점이지는 않다.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이 민간인의 도움을 받아 퇴각한다는 것,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일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결말을 안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흥미가 없다는 평을 듣지는 않는다. 핵심은 그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어 모두가 아는 결말에 '어떤 감정과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윤종빈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실화를 각본을 바꾸는 재주다. 드라마는 수리남에서 마약 사업을 펼치던 조봉행 검거 작전과 작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민간인 K 씨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는데,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좋다. "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정 대목을 길게 늘어놓다가도 한 순간에 감정을 집약시켜 분출시키는 솜씨는 (그 자체로도 극적이지만) 실화를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1화를 보자. 1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홍어다. 홍어에는 인구 아버지의 부성애가 담겨 있고, 그 가족애를 물려받은 인구 역시 홍어를 즐겨 먹는다. 더 나아가 홍어는 인구 부자가 공유하는 삶의 의지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아내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홍어회를 먹듯이, 가족과 함께 더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겠다며 인구는 홍어를 잡으러 수리남으로 떠난다. 그래서 1화는 예상과 달리 전반적으로 꽤나 밝다. 전요환 목사의 등장이 거슬리기는 하나 인구의 꿈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사업이 더 커지고 한 층 더 잘 살 수 있게 되려는 찰나에 홍어는 절망의 원천이 된다. 홍어에서 마약이 검출되자 밑바닥에 시작해 빛을 보는 듯했던 인구의 삶은 구렁텅이로 떨어진다. 마치 순간적인 킬패스로 상대팀의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다소 길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찰나에 1화의 결말은 곧장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게 만든다. 능수능란한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연출적 특징은 다른 대목에서도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작중 전요환이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그가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힘을 준다. '변기태(조우진)'을 비롯한 전요환의 측근들 중에 누가 국정원의 언더커버일지 시청자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인다. '데이빗(유연석)'이 화장실에서 들어오거나 핸드폰을 사용하는 장면 등은 짧은 힌트가 진짜 힌트일지 아닐지를 고민하게 만들면서 자연히 반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수리남>의 화법은 그 내용 덕분에 더 인상적이다. 특히 캐릭터들의 믿음을 다루는 대목이 흥미롭다. 인구는 노력하고 열심히 산다면 더 좋은 미래가 올 거라는 희망만을 붙잡은 채 지구 반대편 수리남으로 향했다. 이 믿음은 인구만의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 참전 용사인 인구 아버지를 지탱했던 힘이었고, 국정원 요원으로 임무에 충실하면 세상을 더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창호의 신념이었다. 심지어 전요환도 비틀린 방식으로나마 같은 희망을 공유한다. 그간 축적한 자본을 고스란히 재투자해 마약의 생산, 제조, 유통을 단번에 처리할 낙원은 그 믿음의 현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낙관으로 가득한 믿음의 알맹이는 다르다. 특히 믿음을 실천에 옮길 수단이 분기점이다. 믿음을 현실로 불러올 때 그 수단이 될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일견 동일해 보이는 희망을 두 부류로 나누어 대비시킨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구의 믿음은 창호의 신념, 요환의 희망과는 결이 다르다. 국정원과 전요환은 기본적으로 인구를 수단적으로 이용한다. 작전을 위해 인구의 사업을 파괴하고 그의 목숨이나 처지에도 부주의했던 국정원이나 첸진과 그를 저울 위에 놓고 무게를 재던 전요환의 모습은 목적 만을 우선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아무리 돈을 최우선으로 좇는다 하더라도 죽은 친구의 가족과 기일을 먼저 챙기는 인구와의 결정적 차이다. 더 나아가 세 인물 간의 관계 변화를 설명하는 기제이다. 인구와 국정원이 결국 다시 협력하게 된 계기는 창호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인구를 한낱 장기판의 말이 아니라 파트너로 대하기로 합의한 이후부터다. 반면에 전요환은 설령 인구를 마약 사업의 파트너로 삼겠다던 말이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인구에게 그가 체스판 위의 졸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 마약으로 통제되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 그리고 어린아이까지 붙잡아 두는 잔악함 때문에 인구는 끝내 설득되지 않는다. 이처럼 드라마는 믿음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인구와 요환의 대립뿐만 아니라 인구와 창호의 갈등도 부각해 자칫 평면적일 뻔했던 이야기의 흐름에 변주를 주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서로 다른 믿음 간의 충돌이 그저 개인의 욕심과 열망의 충돌에 국한되지 않고 시대정신에 대한 메타포로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례로 전요환은 자신의 교회, 자신의 종교가 마약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작중 수리남으로 향한 한국인들은 요환이나 인구처럼 본국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를 기어코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이들에게 요환의 존재는 한국에서의 실패로 믿음이 약해진 세계에 침투하는 새로운 형태의 희망이다. 사업 초기에 인구가 요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곧장 그에게 도움을 청했듯이. 달리 말해 요환은 목표 지상주의라는 종교의 화신인 셈이며, 또 시대정신의 무용함을 맛보고도 이를 왜곡된 방식으로 반복하는 실패의 굴레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실제 사이비 종교의 작동 메커니즘과도 유사하다. 그래서 요환은 종교가 마약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인구와 요환의 갈등, 창호의 변화와 요환의 파멸은 그저 두 개인의 갈등 이상으로 읽힌다. 목표를 위해 사람들을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고, 동행과 상생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향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일 대 일 승부로 끝이 나는 본작의 결말은 기대만큼 쾌감이 강렬하지는 않으나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비인간적으로 통제당하는 여성과 아이들에게서 가족을 겹쳐 보며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인구에게 목사를 사칭하는 전요환이 직접 붙잡히는 이미지가 필요한 이유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수리남>의 마지막 디테일 때문에 새로운 시대정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메시지가 부정당하는 듯한 인상이 남는 것이다. 요환이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인구는 동두천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끝은 핵심 삼인방, 인구, 요환, 창호의 이야기를 완결하는 데에 열중한다. 정작 그 결말을 가능케 한 결정적 계기인 요환 휘하 교회 신도,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행방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이 구출이 되었는지 아니면 수리남에서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예전 아버지들의 모습을 빼닮은 인구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는 목적을 위해 여성과 아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저 수단으로 소비되어 버린다. 영화의 장르나 실화적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여성 캐릭터의 절대적 수가 부족한 것보다는 그들을 활용하는 태도가 일관성 있던 메시지의 설득력을 마지막 순간에 떨어뜨리며 발목을 잡는 셈이다. 그렇게 윤종빈 감독과 넷플릭스의 첫 만남도 숱한 짤과 밈을 남기는 임팩트와는 별개로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만다.
A(Acceptable, 무난함)
재미와 서스펜스, 메시지까지도 전부 잡았다. 그저 블론세이브가 찝찝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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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PFF] 너와 나의 5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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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나의 5분 (2024)
감독: 엄하늘
출연: 심현서, 현우석, 공민정, 이동휘 외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02분
21세기가 막 시작된 2001년의 대구. 경북 영천에서 전학을 오게된 경환(심현서)은 제이팝과 일본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는 오타쿠다. 원체 소심한 성격인 데다 관심사마저 남달랐던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그의 옆자리에 앉은 반장 재민(현우석)이 본인과 같은 일본 가수(Globe)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이어폰을 나눠끼며 음악을 듣는 사이로 급격히 가까워진다.
재민과 친구가 되고, 첫 중간고사에서 1등을 기록하며 우울했던 경환의 학교생활에는 변화가 찾아든다. 시험이 끝난 뒤 함께 동성로에서 시간을 보낼 친구들이 생기고, 반 아이들도 더 이상 그를 음침한 오타쿠라며 무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환을 탐탁치 않아 했던 불량배 무리는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그들은 경환의 말투와 행동이 여성스럽거나, 보통의 남자아이들처럼 운동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를 얕잡아 보고, 틈만 나면 시비를 걸거나 희롱하며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
그럼에도 재민은 언제나 경환의 곁에서 그를 지켜준다. 그는 자신의 과거 비밀을 경환에게만 털어놓는가 하면, 방과 후에 따로 시간을 내어 농구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경환은 자신에게 한없이 잘해주는 재민이 좋으면서도, 자신을 유독 다르게 대하는 태도 때문에 점차 혼란에 빠져든다. 재민의 의도가 궁금했던 경환은 "넌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주는데?"라며 직접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건 "너라서", "재밌어서"라는 의미심장한 대답 뿐이다.
재민의 특훈 덕에 경환은 농구 수행평가에서 A+를 받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하기로 한 글로브의 CD를 재민이 양보하기까지 한다. 재민에 대한 고마움이 점점 쌓이며, 그를 친구로서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된 경환은 재민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한다.
경환의 비밀은 과거 동성 친구를 좋아한다는 소문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그래서 전학을 오게 됐다는 것. 경환은 재민을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지만, 그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게 헛소문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재민은 돌연 의 태도를 바꾼다. 재민은 경멸 어린 눈빛과 함께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를 뜨고, 공고할 것만 같았던 둘의 세계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재민과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경환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교실에 경환이 게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반 아이들은 모두 그를 동물원 우리 속 동물 보듯 쳐다보고,조롱과 함께 온갖 폭력을 일삼는다. 경환은 더 이상 재민과 친구로 지낼 수도, 이전처럼 성적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학교 생활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재민 역시 경환과 틀어진 날을 계기로 핀트가 나간 사람처럼 굴기 시작하고, 경환 못지 않게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방황한다. 냉랭해진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경환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마침 엄마의 지하상가 폐업과 맞물려 그는 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차마 정이 들지 않았던 도시, 그리고 아꼈던 친구와의 작별을 앞둔 경환은 그들이 사랑했던 가수의 음악과 함께 마지막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뒤, '너와 나의 5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며 작품 속에 등장한 글로브의 'Departures'와 'Faces Places'를 번갈아 재생했다. 90년대 제이팝을 잘 알지 못하는 내겐 모두 낯선 곡들이었지만, 왜 두 인물이 이 음악에 그토록 빠져들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극중 경환의 최애곡 'Departures'의 길이가 5분이 조금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작품의 결말에 비추어 생각해 보니, 왠지 작품의 제목이 '너와 나의 5분'으로 정해진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경환과 재민이 십 대를 보낸 2000년대 초반의 대구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였다. 가족과 함께 다니던 식당은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으로 바뀌었고, 허름한 건물에 자리 잡았던 오래된 영화관은 문을 닫아야 했으며,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사를 하던 지하상가는 재개발로 인해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많은 것들이 너무나 쉽게 힘 없이 스러져 갔다. 빠르게 타올랐던 경환과 재민의 우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취향을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은 관계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냉정하게 과거를 밀어내는 대구처럼 둘의 우정 역시 찰나의 인연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경환은 한때 사랑이었을지도 모르는 존재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인연을 만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고등학생 시절 사용하던 방을 정리하다 재민이 마지막으로 선물했던 글로브의 CD를 발견한다. 속지에 남겨져 있던 친구의 메시지는 무려 20년 만에 그에게 다시 다가왔다. 재민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그가 만들고 싶어했던 글로브 팬 사이트의 링크였다. 그러나 과거의 부산물들이 모두 세월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듯, 그 메시지에 담긴 내용 역시 끝내 알 수 없었다.
대신, 경환은 잊고 있던 재민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고, 둘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찾아가 그와 함께 들었던 음악을 재생한다. 20년 전의 대구도, 열 일곱을 함께 보냈던 친구도, 그 시절의 마음도 전부 사라졌지만 소중한 추억이 깃든 음악 만큼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너와 나의 5분'은 경환과 재민이 같은 마음으로 머물 수 있었던, 그 5분 남짓한 음악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당시엔 단순히 좋아하는 곡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즐겨 듣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외모가 달라지고, 많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난 지금, 소중했던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음악 하나 뿐이다. 모든 게 쉽게 변하고, 사라질 지라도 딱 한 가지 만큼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경환과 재민은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찬란하고 연약했던 그 시절의 마음 만큼은 멜로디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2024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2024 SIPFF)>에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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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 근래 나왔던 컨저링 영화들 중에서 가장 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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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981년, 코네티컷 주 브룩필드에서 살고 있는 어니 존슨은 악마에게 빙의되어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미국 법정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사실 이 일은 악마의 짓이라는 판단을 내린 워렌 부부는 살인사건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악마의 짓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이 악마를 끌어들인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워렌 부부는 이 사건을 저지른 자가 누군인지를 알아내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컨저링 유니버스'의 8번째 작품이다. 일단 꽤 재미있게 봤다. 근래 나왔던 '컨저링' 영화들 중에서 가장 괜찮았고, 이제서야 괜찮은 공포 영화를 꺼내놓은 것 같아서 참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역대급 오프닝
우선 오프닝은 끝내준다. 역대 '컨저링' 영화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매력적이고 놀라운 장면이었는데, 왜냐하면 [엑소시스트]의 오마주부터 시작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의외의 과격함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컨저링' 영화들을 너무 순한 시리즈라고만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린아이인 데이비드 글라쳇 얼굴에 피가 뿌려지는 장면에서는 꽤 흠칫했고 신부가 집을 올려다보는 장면의 구도나 데이비드가 몸을 기괴하게 비트는 신은 빼도 박도 못한 [엑소시스트]의 오마주라서 정말 반갑고 소름 돋는 시퀀스였다. 물론 이 오프닝이 끝나자마자 영화의 질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하긴 하지만 이 도입부만큼은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거기다 감독인 마이클 차베즈의 연출 또한 꽤 괜찮아서 의외였는데, 알 사람은 다 알다시피 마이클 차베즈는 [요로나의 저주]라는 안일한 졸작을 만든 적이 있는 감독이다 보니 그의 이러한 발전이 의외이기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보기 좋았다.
영리한 점프 스케어
그런데 사실 이 영화에서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은 [요로나의 저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분위기를 조성해놓다가 빵하고 터트리는 방식, 그러니까 점프 스케어로 가득한데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 점프 스케어를 굉장히 영리하게 잘 사용했다. 비록 패턴 자체는 똑같지만 분위기를 조성해놓는 타이밍에서 긴장되는 음악을 까는 것이 아니라, 뮤트 효과를 넣어서 침묵시킨 뒤 터트릴 때 효과음을 몰빵해 놔서 타이밍을 눈치챈 사람도 놀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거기다 물에 불려진 시체가 로레인을 공격하려는 장면은 점프 스케어가 아닌 분위기로 조이기 때문에 기존 '컨저링'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포를 느낄 수 있고, 분위기 자체가 워낙 어두워졌다 보니 워렌 부부가 악마와 관련된 사건의 실마리를 밝혀내는 과정이 판타지스럽다기 보단 굉장히 진지해서 몰입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줄거리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워렌 부부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 덕분에 이 두 캐릭터의 서사의 폭이 더 넓어졌고, 피해자 가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1,2편과는 다르게 역대 '컨저링' 영화들 중에서 워렌 부부의 분량이 가장 많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컨저링의 그 느낌 그대로!
그리고 '컨저링' 시리즈 특유의 정서들도 잘 옮겨왔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컨저링' 시리즈라 하면 공포도 공포지만 기본적으로 가족애나 사랑을 중심으로 내세우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보기 매우 좋은 공포 영화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데,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시리즈의 정서인 사랑과 가족애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이 영화가 '컨저링' 영화임을 제대로 증명한다. 특히 후반부에 에드가 악마 숭배자에게 정신이 세뇌되어 로레인을 공격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에드가 자신의 정신을 되찾게 되는 원인이 사랑이고, 신규 캐릭터인 어니와 데비의 사랑까지 넣어서 이러한 정서를 극대화시킨 덕분에 마이클 차베즈 감독이 이 시리즈를 잘 이해한 것 같아서 참 다행일 따름이다. 물론 전작인 [요로나의 저주]에서도 가족애가 중심으로 나오긴 하지만 캐릭터 묘사의 실패로 와닿기는 커녕 오히려 오글거렸는데, 이번에는 나름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이러한 요소를 혹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컨저링' 시리즈를 안 본 건가?... 아니면 그냥 질린 건가.. 참 의문이다.
개연성은 절망적
그러나 단점 역시 많은 작품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개연성 측면에서는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머리에 ?를 띄우면서 봐야 하는데, 대표적으로 작중 어니의 여자친구로 나오는 데비가 왜 사람을 죽인 어니를 계속해서 믿고 사랑하는지에 대한 묘사가 불충분하다. 분명 남다른 애정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무려 사람을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살해한 남자친구를 왜 계속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건 캐릭터 묘사의 실패라고 볼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메인 악역이라고 볼 수 있는 악마 숭배자는 아버지가 신부임에도 불구하고 왜 악마를 섬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물론 작중에서 어머니가 죽었다는 대사가 나오긴 해서 모친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건 단순 추측에 불구하고, 워렌 부부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이 악역도 훨씬 더 깊이 있고 설득력 있게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 외에 아쉬운 점
그리고 데이비드의 몸에 붙어있던 악마를 자신에게 빙의시킨 어니가 어찌 된 일인지 본인이 악마에 빙의되었다는 사실은 까먹는다는 것도 의문이 간다. 물론 악마가 어니의 기억을 컨트롤하고 있다면 개연성에서 크게 어긋나는 대목은 아니지만, 악마가 기억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묘사도 없고 분명 초반부에는 자신이 악마에 빙의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데도 워렌 부부나 타 신부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거기다 초반부에 너무 많이 들어간 페이드아웃도 문제다. 분위기 좀 내려는 건 알겠는데, 페이드아웃이 하도 많이 들어갔다 보니 이야기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도리어 영화 자체에 몰입을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악마 디자인이 진부해터진 것도 아쉬웠고, 영화 끝날 때까지 전신을 다 보여주지 않다 보니 영화를 보고 나서도 악마의 디자인이 머릿속에 별로 안 남는다. 한 번쯤은 제대로 보여줄만 한데..
결론
비록 아쉬운 점이 넘쳐나긴 했지만 그럭저럭 볼만했던 공포 영화. 근래 나왔던 '컨저링 유니버스' 영화들 중에서 가장 나았고, 가볍게 즐기기엔 무리가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엑소시스트] 뿐만 아니라 [샤이닝] 오마주도 들어가 있다. [샤이닝]을 단 한 번만 봤어도 알아차리기 쉬울 정도로 대놓고 나오니 해당 영화의 팬이라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평점: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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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 피해자, 아줌마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지난 20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공동 대상을 수상한 영화 갈매기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씨네랩의 초청으로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하고 왔는데요.
김미조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데 인디 영화임에도 매우 흥미롭게 본 영화입니다.
한 중년 여성이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그 이후에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을 세심히 보여주는데요.
피해를 당하는 모습은 영상에 담지 않고 오로지 피해자의 모습을 통해 모든걸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줌마라고 불리는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중년 여성이라서 그의 피해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어려워하는 장면도 나오는데요.
결국 꿋꿋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그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우리가 흔히 아줌마라고 부르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이 많이 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 하세요!
영화는 7월 28일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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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각의 여름> 메인 예고편
뒹굴뒹굴 무기력증에 빠진 시인 지망생 ‘현실’.
공모전에 내야할 마지막 시가 데굴데굴 산으로 가자,
새로운 영감을 찾아 집을 나선다.
시가 산으로 가면, 산으로 가는 게 답?
‘현실’은 생각의 여름 속에서 집 나간 영감도 찾고,
호구 잡힌 자신도 찾을 수 있을까?
남다른 현실의 한여름 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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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공자> 메인 예고편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