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7-09 16:45:24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원래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을 유추할 수 있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My Salinger Year, 2020
드라마 / 12세 이상 관람가 / 101분
감독: 필립 팔라르도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꿈은 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있다. 현실이 꿈보다 매번 먼저 우릴 찾아와 문제지.
슬프지만, 현실은 늘 꿈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다. 그래서 우린 매 순간 현실과 꿈 사이에 표류하면서 안전지대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현실도, 꿈도 모두 포함된 이상적인 공간. 그 공간을 단 한 뼘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혼을 팔아도 좋을 만큼 꿈은 우리에게 절실하며 애틋하다. 꿈꾸던 시절이 곧 '나'의 찬란한 인생의 한 겹이며, 그 투명하고 얇은 겹이 하나둘 겹쳐지면 앞으로의 나를 예견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니까. 현실에서 꿈꾸는 일은 언제나 가치 있다.
조안나의 꿈은 뉴욕에서 시작된다. 그것도 아주 즉흥적으로.
남자 친구에게 버클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일방적인 말에서 왜 활기찬 희망이 느껴지는 걸까. 그렇다, 그녀는 작가란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을 선택했다. 싸구려 아파트에 살면서 카페에서 글 쓰는 유명 작가들의 노선을 경험하기 위해, 진정한 작가는 바로 그런 사소하면서도 운치 있는 환경에서 탄생한다는 학습된 환상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라면 갖고 있는, 특별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조안나에겐 그게 결정적으로 필요했다.
조안나는 작가 지망생이란 신분을 숨긴 채 전통 깊은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마가렛의 첫 번째 업무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샐린저에게 온 편지를 빠짐없이 읽고 정해진 형식에 맞춰 답장하는 일. 첫 만남에 딱 잘라 작가 지망생은 비서로 뽑지 않으며 오로지 내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마가렛의 말에 조안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마가렛의 비서가 냉정하다 못해 서늘한 직업이라 느껴졌지만, '작가의 세계에 다가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기에 만족했다. 그러니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일도 자신의 글쓰기에 분명 좋은 영감을 줄 거라 막연하게 여겼던 그녀였다. 아주 긍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독자들의 편지를 분쇄기에 넣을 때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을 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원초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짓밟고 무시하고 있다는, 나아가 '작가'로서 독자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독자인 동시에 작가였기 때문이다. 정해진 양식으로 독자에게 답장하는 일은, 독자가 존재함으로써 살아 숨 쉬는 작가로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정말 못 할 짓이었다. 그때부터 조안나는 마가렛이 준 임무를 말도 안 되는'허튼소리'라 명명한다.
그러나 조안나는 새내기였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을 것을 과감히 선택했으나 사회생활이라 말하는 사회 구조의 한 일원으로서의 경험이 부족했다. 자신의 뚜렷한 기준 갖고 마가렛의 비서로 일하는 건 나쁘지 않은 자세였지만, 그녀는 직원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왜 작가 에이전시에서 독자에게 똑같은 편지 형식을 고수하는지, 왜 소속된 작가의 작품을 '감상'이 아니라 '판매'에 중심을 두는지, 왜 슬러시 파일(개인 출판사가 없이 활동하는 작가들의 원고)을 대부분의 헛소리로 평가하는지... 조안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고 강압적이며, 열정적인 마음을 식게 하는 부정적 시선만을 눈여겨봤을 뿐이다. 그녀는 작가 에이전시가 지금까지도 그런 메마르고 인정머리 없는 감성을 고수하고 있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직원으로서 말이다.
조안나가 못 박은 허튼소리는 법률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수많은 경험과 데이터가 쌓아 올린 최소한의 울타리이자, 가장 안전한 지침이었다. 답장 하나를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의 처지를 '비서일 뿐'이라고 깎아내렸지만, 애석하게도 조안나는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비서'가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해야 할 일을 잘 해냈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히란 말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킬 길이 있다면 바꾸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는 말인데, 다들 알다시피 뭐... 그게 어디 쉽나. 다 실수를 해봐야 아는 거지.
고심하던 조안나는 결국 회사의 타자기를 훔쳐, 허튼소리 대신 자신의 이름을 쓰고 독자에게 정성스럽게 답장한다.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기둥처럼 받쳐주던 관계들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새로 사귄 남자 친구(돈)와의 관계, 냉정한 사장 마가렛과의 관계, 전 남자 친구(칼)와의 관계 마지막으로 내 꿈과 내 현실의 관계까지. 귀중한 관계들이 하나씩 엉키면서, 그녀는 자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드는 샐린저의 전화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또 반응한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내가 뭘 하려고 했었더라?'
점차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언제부터 제멋대로 선을 넘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감정이 확 솟잖아요!'라 소리치던 독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답장이 기계적인 편지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불이 꺼지기 시작한 관계는 다시 보살피고 필요 없는 관계는 단호히 잘라내면서 마침내 "그들의 편지가 저를 바꿨죠."라고 읊조릴 수 있게 된다. 과거의 나를 책임질 줄 아는 '내일의 조안나'가 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자기만의 속도로, 또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매력이 폭발하는 지점이다.
자기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즐겁게 춤추고 뛰어다니며, 끝까지 나를 잃지 않는 힘까지 갖게 된 조안나.
이제 그녀는 샐린저의 외투에 몰래 독자들의 편지를 넣어버리는 걸 들켜도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게 됐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도 마가렛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듣는 사람이 됐다. 그녀는 처음 뉴욕에 눌러앉으면서 평범한 사람이 되기 싫다 말했었다. 반드시 특별해지고 싶다 했다. 하지만 더는 자신이 평범하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됐으며 이를 불안해하지 않게 됐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나를 이끌어낼 방법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린 언제든 특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 평범하다는 말속에 잠시 나를 위로하고 돌보는 거지.
조안나,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자기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지금도 열심히 꿈꾸고 있는 자들을 위한 작품이다. 조안나를 통해, 꿈을 위해 현실을 이용하는 당차고도 용기 있는 자의 현재와 현실과 꿈의 괴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을 구현해낼 줄 아는 자의 미래를 모두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긴 여운을 남기는 좋은 응원이 될 것이다.
현실이든 영화든 당연한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처럼, 조안나처럼, 앞으로의 우리처럼, 그리고 오늘의 나처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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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가장 씁쓸한 방식으로 ‘한국적인’ 가족 이야기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
한국영화의 오늘: 스페셜 프리미어
Korea/2023/109min
*시놉시스
두 쌍의 부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성공지상주의자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원리원칙주의자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는 형제다. 재완의 아내 지수(수현)와 재규의 아내 연경(김희애)까지 네 사람은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며 고민에 빠진다.
〈보통의 가족〉은 어쩌면 가장 씁쓸한 방식으로 ‘한국적인 것’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을 영화다. 두 엘리트 가족이 있다. 형 재완은 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고, 동생 재규는 대형 병원 의사다. 재완의 두 번째 아내 지수는 재완의 사무실에 떡 배달을 갔다가 결혼까지 하게 된 ‘젊고 예쁜’ 여성이고, 국제 봉사 NGO에서 일한 재규의 아내 연경은 올바름과 정정당당을 강조하는 재규에게 어울리는 짝으로 보인다.
이들의 관계는 묘하게 뒤틀려 있다. 재완은 동생 재규가 원리원칙주의자처럼 보여 답답할 때가 있고, 재규 역시 종종 형 재완이 돈만 아는 속물이라 생각한다. 지수는 상류층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출신 때문에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가졌고, 치매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연경은 어쭙잖게 형님 행세를 하려 드는 지수가 같잖기만 하다.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법한 뒤틀린 관계 역학을 지닌 이 엘리트 가족에게 사건이 생긴다. 고등학생인 재완의 딸과 재규의 아들이 술을 마신 후 노숙자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제 두 가족은 시험대에 든다. 법의 허점을 악용해 승승장구하던 변호사 재완은 과연 딸이 연루된 살인사건까지 무마하려 시도할까? 형 부부를 비웃으며 ‘선하게’ 살고자하는 재규와 연경은 과연 자기 자식 일에서도 지금껏 견지해온 삶의 원칙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새엄마’라는 지위에 늘 불안을 느끼던 지수는 오히려 이번에는 그 거리감에 안도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살인을 저지른 아이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인지할까? 그리고 그들은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을 어떤 방식으로 계승하려 하는가?
〈보통의 가족〉은 설득력 있는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이 인상적인 영화다. ‘멜로 장인’, ‘멜로 거장’이라 불리는 허진호 감독의 재능, 즉 관계성을 탁월하게 감각하고 드러내는 재능이 가족이라는 뒤틀린 이익 공동체에 적용되자 또 다른 빛을 발한다. 허진호 감독이 새로이 천착한 가족 관계는 동시대 한국에 관한 여러 물음을 파생한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엘리트는 ‘신분’이 되었다. 상류층과 하층민의 목숨 값은 다르다.
-가족이라면 다른 가족의 ‘허물’을 덮어줘야 한다.
-각자도생의 원칙이 가족 내부에까지 침투했다. 즉 자기 이익에 반하면 자식까지 버린다.
-뼛속까지 신자유주의의 능력주의, 경쟁주의를 학습한 청소년들에게는 보편적 윤리와 도덕이 없다. 이들에게는 자기 생존만이 윤리이자 도덕이다.
-‘선함’은 본질적으로 위선과 허영이다.
〈보통의 가족〉을 보고 우리가 논쟁할 수 있는 명제들의 대략적인 목록이다. 결이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상호 모순적인 것들도 있다. 관객의 관점과 문제의식에 따라 이는 얼마든지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도발적인 물음들은 문제를 빙글빙글 돌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나아간다. 관객은 매 순간 ‘나라면?’이라고 질문해봄으로써 멜로 장인이 선보이는 ‘기괴한 가족 멜로’의 현장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와 메시지가 마찬가지로 설경구 배우가 출연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022)를 연싱시키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완성도와 몰입도가 더 높게 느껴졌다. 함께 보며 논쟁할 만한 시의성과 오락성을 고루 갖춘 영화다.
*영화 상영시간
10-03/16:0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0-04/09:00/CGV센텀시티 6관
10-07/09:00/CGV센텀시티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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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A Quiet Place: Part II,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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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에 개봉한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두 번이나 했으며, 북미 수익만 $188,024,361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미 절대적인 숫자만 봐도 높은데, 이를 포함한 총 수익 $340,952,971입니다.
제작비 1700만 달러 대비 약 20배로 2배가 총 제작비, 3배부터 흑자인 것을 생각하면 제작사로서는 무조건 만들어야만 하는데요.
그렇게, 등 떠밀려 나온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반응은 억지로 끌려 나온 느낌이 전혀 아닙니다.
다시 북미에서 2주 1위를 했으며, "코로나19"이후 첫 북미 1억 달러 타이틀까지 거며 쥐는 등 관객들에게 3이라는 숫자를 외치게 만들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속편의 평가들이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이번 속편은 '이전보다 나아졌다'라는 평가들이 들려오며 전작만큼이나 높은 평가까지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전작을 극장에서 놓쳐버려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존재했기에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과연, 영화는 들려온 평가들처럼 만족스러웠는지?' -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작에서 괴물들에게 피난처와 남편 혹은 아빠를 잃게 된 "에블린"과 가족들은 지금껏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떠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들 "마커스"가 덫에 걸려 비명을 지르고, 괴물들의 시선을 이끌고 마는데요.
이에 또 한 명의 생존자 "에밋"이 그들을 구해주지만, 또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른, 다음 영화!
1. 여전히, 신선한 설정!
앞서 말했듯이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제목에는 숫자 '2'가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전작과의 비교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후속작에게는 불리하게 적용될 요소가 많습니다.
첫 번째, 이 영화의 설정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소리"에 한없이 민감해 이전 장에서 신발을 신지 않은 채 까치발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이들의 행동과 길도 모래가 깔려있는 곳으로 걸어나가고, 목재 바닥으로 되어있는 집에는 색칠되어 있는 곳만 발을 디디는 모습, 그리고 수화로 대화하는 등의 디테일이 설정을 신선하게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후속작에서는 이 신선함을 권태감으로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 과제로 다가왔을 겁니다.
캐릭터의 눈으로 보세요.
앞서 수화로 말하는 모습은 "소리에 민감한 괴물"의 설정도 있지만, 딸 "리건"의 극 중 설정이 "농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소리가 안 들리는데, 이번 속편에서는 "리건"의 시점을 종종 빌려 극의 상황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처음으로 그들이 왔던 날이나 이후 열차에서 괴물을 맞이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분명히, 눈으로는 상황이 보이는데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으니 영화는 전작의 콘셉트를 여전히 신선하게 유지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증명해냅니다.
2. 배우의 매력은 이미, 다 알죠.
다음으로 두 번째, 커져가는 숫자들입니다.
흔히, 할리우드에서는 숫자가 커질수록 이야기와 캐릭터는 많아지고 스케일도 점점 넓어지는데요.
이런 이유에는 앞서 언급한 권태스러운 신선함을 유지할 또 하나의 방법으로 부득이하게 쓰는 방법이지만, 기존 시리즈를 이끌어갔던 캐릭터들을 빼내기에는 웬만한 활약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속편은 괴물만큼이나 무서운 생존자들 무리도 있겠지만, "에밋"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출연이 눈에 띕니다.
굴러온 돌이 뺄 수도 있지!
이번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아니더라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괴물보다 무서운 인간"은 많이 보았을법한 클리셰입니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확장시키려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에게는 '이를 어떻게, 혁파할지?'에 대한 고민이 존재했을 겁니다.
이에 "킬리언 머피"라는 배우의 힘이 느껴지는데, 이번 속편에서 딸 "리건"과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중책을 맡았거든요.
문제는 그가 이전 장에서 나온 캐릭터가 아니기에 별도의 설명부터 해야 하는 피곤함이 앞서는 캐릭터인데, 그래서 영화는 과거 회상[플래시백]을 사용합니다.
3. '누가 쓰느냐?'에 다르구나...
대개, "플래시백"은 설명도 이뤄지나 감정을 앞세우는데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해당 기법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 보일 텐데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전편에서 관객들에게 깨진 "괴물"의 위상까지 살려내는 간결함을 보여줍니다.
이미, 전작을 챙겨본 관객들이라면 괴물의 약점을 알기에 이미지는 깨지다 못해서 와장창 되었으니 이미지 회복이 시급했을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과거의 이야기는 "에밋"과의 관계부터 "괴물"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모습까지 설명에 무서운 감정을 일깨우니 영화는 마지막 과제로 부여된 "괴물"의 위상까지 훌륭하게 살려냅니다.
근데, 공포 영화로만 보긴 아쉬운데...
하지만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진정한 매력은 "공포"보다 "성장"에 있습니다.
역시, 전작을 챙겨본 관객들은 알겠지만 딸 "리건"의 행동은 "발암캐"라는 칭호를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기에 전작에서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교훈으로 귀결해 이에 대한 호불호도 분명하게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이번 2편에서도 이어지면서, 잊고 있던 "리건"에 대한 혐오도 고개를 드는데요.
물론, 의도에 있어 선하지만 결과가 답답하니 관객들로서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어린아이에게는 험악한 말까지 올라오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 때문인지 이후 "리건"의 모습은 전작보다 자연스러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4. 엄마는 대견스럽구나.
호러 영화의 흥행을 다시 쓴 <그것>시리즈는 "페니 와이즈"라는 무서운 캐릭터도 있지만, 이를 "성장"이라는 테마에 잘 녹여내 호평까지 이끌어낸 영화인데요.
이와 마찬가지로 이번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리건"을 비롯하여 "마커스"의 모습에 든든해지는 엔딩을 안겨줍니다.
전작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 영화에서도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호해 줘야 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극 중 괴물을 잡을 방법을 알게 된 "리건"이 라디오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하지만, "마커스"를 비롯해 어른들은 이를 말립니다.
마치, 품 속에 안긴 아기처럼 이들은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입장임을 말하는 것이죠.
언제, 또 이렇게나 컸니?
그렇기에 후반부 다친 어른들을 대신해 자신들의 방법들로 지켜주는 모습은 부모도 아닌데도 말랑말랑한 감정을 일깨우더군요.
무엇보다 카메라가 이를 잘 살리는 것이 성인 배우들의 시점을 아역 배우들의 뒤를 바라보게 만들어 "성장"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 깊이 때려 박아 넣습니다.
전작에서 "샷건"으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연출했던 장면처럼 3편에서는 이들의 활약이 기대되는데요.
'과연, 누가 더 불쌍하게 될지?'라는 조금만 더 기다려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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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제사 이야기가 아니다
SYNOPSIS.
3대 대가족이 모두 모인 제삿날 일가의 명줄이 달린 가업 두부공장 운영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는 와중, 장손 ‘성진’은 그 은혜로운 밥줄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 갑작스레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이별로 가족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는데…
핏줄과 밥줄로 얽힌 대가족의 70년 묵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진다!
POINT.
✔️ 익숙한 한국 가족 관계, K-유교 문화와 제사와 명절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풀어냈나 싶을 만큼 섬세하게 풀어내는 영화
✔️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까지 당신을 데려갈 영화. 볼 때도 좋았는데 보고 나서도 자꾸 떠올라요.
✔️ 연기 경력이 어마무시한 배우들이 더없이 자연스럽게 펼치는 가족 연기 (정말 명절 풍경 같아서 사람에 따라서는 트라우마가 올라올 수 있을 정도...)
✔️ 작년도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작으로 이미 인정 받은 영화
✔️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한국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와중에 매우 아름답고 섬세한 로케이션과 미술! 촬영이 정말 아름다우니까 꼭 극장에서 보아주세요.
*아래 리뷰에는 <장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세요.
영화 <장손>은 얼핏 제사와 명절 풍경, 그 안에 얽히고설킨 가족 갈등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인다. ‘장손’에 대한 조부모 대의 굳건한 믿음이 손녀에게는 분배되지 않는 모습, 차분하게 굄돌처럼 역할을 다하는 며느리와 큰소리만 뻥뻥 치는 아들, 큰 재산 없이 부모 곁을 지키는 큰딸과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느지막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딸의 역할 차이 또한 더없이 익숙한 풍경이다. 영화 <이장>을 비롯해 우리는 이런 가족 드라마에도 꽤나 익숙해져 왔다. 지고지순 금슬 가족애 이런 단어들 아래서 누군가에게는 안온함을 또 누군가에게는 숨이 턱 막히는 시간을 안기는, 원앙 금침 같은 이 한국식 가족 관계.
연기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초반부는 그야말로 명절 풍경 그 자체이고, 아직 철없는 ‘장손’을 포함해 적당히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노인은 두부 맛에 깐깐하게 굴고, 장손이 나타나니 그제야 에어컨을 켜거나 제사 시간을 바꾸는 (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행위마저 은근슬쩍 눈감아 줄 만큼 익숙한 공기를 내뿜는다.
그 익숙한 풍경 안에는 유머러스한 장면만 있지는 않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의 고성 뒤로, 할머니는 익숙한 듯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한글로 쓰는 연습을 흥얼흥얼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 눈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장면들이, 가족 안에서는 적당히 넘어가진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를 장손은 괴로워하지만, 어머니는 지긋지긋할 만큼 익숙한 솜씨로 이불을 가지고 내달려 오고, 할머니는 베개를 놓고 선풍기를 돌려 놓는다. 어둑한 집안, 가족이기에 그 태연함이 이해되는 장면이다.
기실 가족 관계란 절대 단편적인 색깔로 칠해질 수 없다.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 인간과 인간이 맞부딪는 순간 또한 완벽할 수 없기에. 오랜 세월을 머금은 관계는 어디에선가 반드시 삐걱이기 마련이고, 사건은 각자에게 다른 생채기를 남기고,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된다. 가족 간에는 그런 사건이 지근거리에서 너무 많이 쌓이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감정이 실꾸리처럼 돌돌 말려 그 끝을 파악하기 어렵다. 대충 애증이라고 눙치고 지나가기 쉬운 관계 속 감정이나 사건들을, <장손>은 훌륭한 솜씨로 풀어낸다. 기나긴 대하소설을 읽으며 파악할 법한 정보들을 잘 녹여내어, 한 가족의 전사를 관객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다.
영화의 결이 뚝 바뀌는 것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이다. 마치 배우 이정은의 얼굴이 영화 <기생충>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뚝 갈랐던 것처럼, 배우 손숙의 얼굴이 담긴 영정 사진이 불에 오그라들면서 <장손> 또한 제사와 갈등 이면으로 관객을 깊이 데려간다.
이전에도 자식들은 서로 처한 상황이 달랐고 이해 관계도 달랐지만, 할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고모의 갈등을 주축으로 이해는 더욱 멀어져 간다. 다만 영화 <괴물>의 경우와 달리, 보면서 진실이 무엇일까 궁금해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흑 혹은 백으로 명확하게 정리되는 문제보다 입장의 차이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문제가 훨씬 많고, 가족 관계 안에서는 특히 그러하기에. 증조부 증조모의 무덤이 비어 있어도,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해도, 범죄 스릴러처럼 범인을 찾기에 급급한 마음 같은 건 올라오지 않는다. 뭔가 이유가 있었으려니. 그리고 그런 이유의 가닥들을 하나하나 모아 틀어 쥐고 있던 것이, 이 집안 안에서 할머니가 해온 역할이려니.
제사의 아우라를 부여하려고 아무 말이나 하거나 장손이 올 때서야 에어컨을 켜주는 귀여운 일면도 있지만, 할머니는 분명 이 집안의 구심점이었다. 꼬장꼬장하게 두부 맛을 보며 가풍을 지키고, 통장이며 모든 대소사를 관할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펼쳐내는 돌봄의 모양새가 그렇다. 큰고모네 의료비를 대주거나 월급을 조금씩 여투어 놓는 일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든 장미꽃을 잘라 솥 아래 불에 쓸어 넣을 만큼 알뜰살뜰하게.
이 내내 ‘장손’ 성진은 관찰자처럼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본다. 장녀였다면 갖지 못했을 거리감이다. 기묘한 죄책감과 불편함 안에서 갈수록 무거워지는 표정으로, 그럼에도 충실한 인터뷰어처럼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씩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듣는다. 고모와 어머니, 누나까지 한 명씩 만나 속마음을 각각 듣게 되는, 서술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오직 성진뿐인데, 독특한 점은 집안 식구 중 여성들만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고모부, 툭하면 고주망태가 되는 아버지와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착실한 성품의 (그래서 누나 말대로 공장을 “신경 쓸” 예정이며 사실상 이미 쓰고 있는) 매형은 공장을 물려받을 대상으로는 거론되지 않아 사실상 집안 식구라 보기 어렵다. 성진과도 역할을 분담하는 동료 느낌의 대화만 주고받는다.
‘무능한 아버지’ 대신 현명했고 인내했던 어머니(들)를 하나하나 마주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은 조부다. 마치 퀘스트를 하나하나 깬 후 최종 보스를 마주하듯이. 이 엄숙한 대화를 마무리하며 그는 무언가를 건네받는다. 최종 보스를 지나는 주인공이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열쇠처럼.
이것은 계승이다. 그동안 한 걸음 밖에서 관조적으로 맴돌던 장손은 이제 손에 쥐어진 것을 들고 계승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구한 현대사 속에서 인물들의 삶을 찾아온 이리저리 꼬인 사건들, 그 안에서 서로 주고받은 말과 애정과 상처들, 그것들의 흔적을 손에 쥔 채, 그는 햇살 아래 눈을 찌푸린다. 영화 첫 장면이 연기로 희뿌연 공장 내부(“문 열어라, 문! 이러다 죽겠다!”)였음을 생각할 때, 영화 <장손>은 제사의 계승이나 갈등의 표출만이 아닌, 그보다 더 깊은 뿌리의 계승을 둘러싼 이야기다. 계승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뿌리에 빛을 비추어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건 아름다운 원경이다. 할머니의 장례 행렬에 꽃상여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눈 내리는 겨울 산으로 자분자분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 폭 그림처럼 펼쳐진다. 꽃상여는 불에 타오르고, 눈 내리는 소리는 어쩐지 불을 닮아 있다. 무언가의 죽음 뒤에는 불이 뒤따른다. 타고 남은 재를 앞에 두고, 우리는 이제 다음 걸음을 고민해야 한다. <장손>이 한 경상도 가정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세대의 어떤 것으로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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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6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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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 줄거리 /
'2046년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는 작가 '차우'는 평소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고 많은 여성과 일회적인 만남만 지속한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바이양'과도 육체적인 관계만 즐기지만 '바이양'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호텔 사장의 딸 '징웬'의 도움을 받아 소설을 함께 쓰기 시작한 '차우'는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차우'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투영된 소설의 결말은 무엇일까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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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기대하고 봤는데... 실망스러웠던 영화.
미쟝센이나 시각적인 부분이 화양연화나 중경삼림에 비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스토리다.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 차우가 가장 실망스러웠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이 영화는 차우의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해서 스토리텔링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곧 '차우'다)
화양연화에서는 수리진의 손을 잡는 것 조차 망설이던 남자가 여기서는 아주 잘도 날아다닌다.
화양연화와는 대조되는 그의 태도를 보고있자니 '어우 저질스러워'라는 생각도 들며, 솔직히 꼴보기 싫었다.
과거에 연연하면서 자기연민,자기미화,자아도취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늙은이.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본인의 외모와 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다니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하..
그러면서 다 홀려놓고, 그 여자가 본인에게 사랑에 빠지면 과거에 연연하며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짜증났다.
특히 가장 화가 났던 씬이 두개가 있는데,
1. 바이링과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돈을 쥐어주는 장면
2. 바이링이 모든 여자에게 다 이렇게 대하냐고 물을때 "아니 한명 빼고. 우리 엄마." 라고 대답하는 차우, 그리고 바이링이 하루만 차우를 빌리고 싶다고 할 때 "내가 모든걸 다 빌려줄 수 있다고 했는데, 하나 안되는게 지금 생각났어." 라고 차우가 답하는 씬.
진짜 장난하냐?
아니 화양연화에서는 아슬아슬 선 잘 타며 매너있게 행동하더니 여기서는 선이라는게 없다. 이미 그 선을 넘어버린지 오래.
그러면서 중간에 징웬을 사랑하게 되니까 '사랑은 타이밍이다.' 를 시전하는 모습을 보니.. 하..
화양연화가 차우의 미화된 기억이라는 설이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그게 확실해졌다.
차우 본인의 직업이 기자,작가인만큼 이 사람은 본인의 생각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능숙한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미화시키면서 풀어가는건 덤.
주인공 차우는 아직도 본인만의 화양연화에 갇혀사는 것 같아 보였다.
2046이란 번호에 집착하는것만 봐도 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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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우에 대한 내 생각이 곱지 않다보니,
영화에 나오는 2047소설 내용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마저도 차우의 본인미화, 자기연민 덩어리의 내용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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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화양연화가 화양연화인 이유는 스쳐지나가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연연하면 더이상 화양연화가 아니예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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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중경삼림,화양연화가 종합적으로 합쳐진 왕가위 영화의 믹스
= 2046
그래서.. 궁금하신 분들은 뭐 보셔도 좋긴한데..
그렇긴한데..흠...
( 보신다면 위의 아비정전,중경삼림,화양연화 다 보시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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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 3.5
"괜찮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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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역사 속에서 피 흘리며 사라진 이들을 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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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참전용사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오클라호마에 다시 돌아온 남자 어니스트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미국 오클라호마. 1900년대 초 미국은 인디언 오 세이지 부족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하지만 미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오클라호마에 석유가 터진 것이다. 부자가 된 원주민들. 다른 부족의 원주민들과는 다르게 오세이지 부족은 엄청난 부를 누린다. 현대문명을 정면으로 누리는 오세이지 부족. 전쟁도 끝났으니 돈 쓸 일만 남았다.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은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하는 윌리엄 킹 헤일이다. 조카 어니스트를 불러들인 킹. 두 사람이 연락을 자주 하던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킹이라고 불러.”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킹. “너 여자 좋아하냐?” 격식 없는 몇 마디를 나눈다. 어니스트는 격하게 답한다. “당연하죠.” 킹 헤일의 입에서 신기한 말이 나온다. “너. 오세이지 부족 중에 돈 많은 ‘몰리’라는 애가 있어. 걔랑 결혼해 봐라.” 마침 어니스트는 택시 운전사로 취업했다. 몰리? 기억이 난다. 몰리라는 여자는 어니스트의 단골손님이었다. “아. 그 여자 제 단골이에요.” 몰리에게 접근하기로 한 어니스트. 어니스트의 인위적인 로맨스 이면에 깔리는 살인사건들이 있었다.
아이리시맨
이 영화는 그동안 마틴 스코세이지가 유지해 온 영화의 톤을 유지하고 있다. <비열한 거리>부터 <아이리시맨>까지 마틴 스코세이지는 미국의 흑역사를 들추고 조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대표작인 <택시 드라이버>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 망상에 사로잡히다가 몇 명을 살해하고 미국사회의 히어로가 된다. 이 트래비스 비클 서사는 20세기 중반의 미국과도 겹쳐 보인다. 냉전이라는 이념 대립이 망상이라는 정신병력과 대치되고, 살인이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으로 비유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주인공이 ‘베트남전 참전 도중에 얻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미국사회가 사회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영화가 지적한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를 시작으로 수많은 누아르/갱스터 영화를 만들며 미국사회의 단면을 폭로한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선 돈이라면 영혼까지 바친 미국사회의 자본주의를 조롱하고, <아이리시맨>에선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톺아보며 이민자들과 마피아들과의 관계를 비튼다.
이 <플라워 킬링 문>은 역시 미국의 어두운 역사 한 장면을 들춰낸다. 오세이지 족을 착취하고 부숴버렸던 미국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삼았다. 이 소재를 위해 두 가지 연출법이 사용됐다. 첫째로 비극과 시대배경과의 상관관계다. <아이리시맨>에서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지미 호파라는 인물이 전국구적인 인기도를 끈 환경이었다. 이 환경에는 대공황이라는 시대 배경과 마피아라는 집단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인물들의 전락극을 보면 이 두 요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전적으로 감독이 의도한 바다. <플라워 킬링 문> 역시 오세이지족의 강제이주와 인디언들을 차별하는 시대배경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대표적으로 영화에서 극 중 등장인물이 사망한다. 사망했으니까 관을 짜야한다. 이때 관련 업자가 오세이지 족에게 바가지를 씌웠다는 묘사가 있다. 미국인들이 오세이지 족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영화에서 플래시백이 사용되는 부분이나 극 중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 보면 ‘이 일 이면에 깔린 것’때문에 영화 플롯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둘째로 영화의 톤을 잔잔하고 건조하게 짰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이리시맨>과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경력이 50여 년이 넘는다. 이 영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백인들의 악행을 더 뜨겁고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다. 영화는 극적인 고양감 없이 악행들을 묘사한다. 이는 악행이 주인공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인물들의 악함을 보여주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 장면을 잔인하거나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면 이 영화의 핵심이 범죄 그 자체가 되어 작품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플라워 킬링 문
이 영화의 원작은 논픽션 소설 <플라워 문>이다. 이 책은 논픽션이라는 특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게 실화라고?'를 충격적으로 전달하려면 역시 장르는 미스터리/스릴러물이 적당하다. 잘 읽힌다는 뛰어난 가독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물음표 투성이었던 오세이지 족 연쇄 살인사건을 탐구한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톰 화이트라는 인물이다. 극 중에는 톰 화이트라는 인물의 비중이 크지 않다. 하지만 책에서는 중요한데, 저자 데이비드 그랜이 장르적인 재미를 잡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고른 것으로 보인다(또 책에서는 에드가 후버를 위시로 한 FBI라는 집단을 소재로 쓰기도 했다).
이 영화는 영화가 인물의 마음을 보여줘야 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이용한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에게는 각기 다른 아이러니가 있다. 삼촌 헤일은 스스로의 내면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인물이 원주민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이해가 된다. 대표적으로 극 중 인물 중에 누군가가 사망하고 난 다음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킹은 영화의 모든 전후사건을 통제하면서도 유일한 변수를 만드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또 후반부에서 어니스트가 특정 인물들에게 둘러싸이는 장면을 보면 이 인물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타인에게까지 옮겨간다는 특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잘 아는 킹과는 다르게 어니스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의문점이 많은 인물이다. 어떤 식으로 의문점이 많은지는 사실상 영화의 핵심이 되어 후반부까지 극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자기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나도 어려운 어니스트. 끊임없이 고뇌하고 생각하지만 어니스트는 이 상황들을 돌파할만한 힘이 없다. 어니스트를 둘러싼 또 다른 딜레마는 아내 몰리에 관한 것이다(이 부분은 여러분이 직접 보시길 바란다). 두 딜레마는 이야기를 이끄는 미스터리가 된다. 당연히 미스터리를 받아줘야 할 주인공이 필요하다. 이 무력감을 디카프리오라는 명배우가 표정연기로 보여준다. 이는 책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영화의 가시성이 가진 힘이다.
탐구하는 카메라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각본이다. 영화를 끌고 가는 두 가지의 흐름이 흥미롭다. 첫째로 어니스트 서사다. 어니스트라는 인물에게 중요한 건 몰리와 자식들이다. 주인공은 가족들을 지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지키는 방법에 대해 영화가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다. 삼촌 킹 헤일이 조카(어니스트)에게 지시하긴 하지만 어니스트는 이에 대해 더 캐묻거나 '이게 진짜인가?'확인하지 않는다. 간단한 설정 같아 보이지만 이 부분은 영화의 핵심과도 닿아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메시아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어니스트가 자기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건 적어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게 선한 일이라고 영화가 규정짓는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기도 모르는 일을 벌이고 있고, 영화도 이것이 어떤 일인지 모른다. 마치 백인이 인디언들에게 도움이 된 적이 있을까?라고 관객에게 묻는 것처럼.
둘째로 이 영화의 나긋나긋한 템포를 살린 이야기 전개가 흥미롭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3시간 26분이다. 200분에 다다르는 장대한 분량이다. 눈을 확 잡아끄는 사건이 있으면 집중이 쉬울 텐데, 초반부는 이야기의 진상을 일일이 다 설명해주지 않는다. 비슷하게 영화에서 범죄가 일어날 때 촬영한 방식을 보면 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범죄/수사물 장르 형식을 띠고 있는 것 치고는 희귀한 케이스다. 이 빠르고 강한 전개 대신 카메라가 선택한 것은 일상성이다. 오세이지족이 더듬거리면서 카메라를 만지는 장면, 킹 헤일과 어니스트가 잡담 나누는 장면, 어니스트가 차 운전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일상성의 묘사는 주인공 어니스트와 몰리의 내면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화가 둔 수로 보인다. 이 영화 자체가 두 사람의 내적 변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영화의 핵심과도 닿아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를 담기 위해서 관객은 카메라와 같은 시선에 놓인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템포가 느린 것이다. 영화는 이 느린 템포를 바탕으로 단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논픽션 여부를 떠나) 이야기의 중심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천천히 폭력에 스며들어간다. 물론 영화가 폭력 묘사를 게을리 한 건 아니다. 폭발이 일어나는 몇몇 장면은 끔찍하다. 하지만 이 폭력 묘사보다 영화의 후반부가, 또 초반부의 어니스트, 몰리의 모습 그리고 사라져 간 오세이지 족이 기억에 남는다.
곰 때려잡은 지 7년 차
이 영화에서 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릴리 글래드스톤이 보여준 연기는 탁월하다. 세 사람 모두 아카데미 후보군에 충분히 오를 수 있을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장면은 주사에 관한 부분이다. 거기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특유의 화내는 연기가 아닌 신선한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어니스트라는 인물이 가진 역설적인 모습이 여기 다 드러난다. 또 디카프리오는 발음, 발성도 평소와는 영 다르다. 얼굴 이목구비 구조도 우리가 알던 모습과는 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인물 자체가 기존 디카프리오가 맡던 배역들 중에서도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이런 연기법이 더욱 두드러진다. 몰리 역을 맡은 릴리 글래드스톤은 분기점이 되는 연기를 보여준다. 한 지점에서 인물의 성격이 변하며 영화의 흐름이 바뀌는데, 이야기에서 이 장면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영화를 2 회차하게 되면 눈에 띈다. 이 인물은 모순되지 않음이 핵심인 듯하다. 겉과 속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양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후반부 두 인물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특히 그렇다. 이 사람은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해 온 행적의 연장선상을 보면 이 인물은 그답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고, 이에 흐트러짐이 없다. 악함을 새롭게 해석한 베테랑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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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살과 13살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5월은 푸르른 나무들이 싹을 틔우는 계절이고, 12월은 잎을 거두고 추위를 견디는 계절입니다. 영어권에서는 'May-December'가 5월과 12월의 간극처럼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커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영화 <메이 디셈버>는 관용어를 사용해 제목에서부터 영화의 소재를 내걸고 시작하는 작품입니다. 5월의 남자와 12월의 여자, 그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의 사랑은 정말 '사랑'일까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메이 디셈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메이 디셈버>는 2024년 3월 13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메이 디셈버
May December
Summary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충격적인 로맨스의 주인공들인 ‘그레이시’와 그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영화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게 된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가 캐릭터 연구를 위해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다. 부부의 일상과 사랑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엘리자베스의 시선과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잇따른 질문들이 세 사람 사이에 균열을 가져오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나탈리 포트만, 줄리안 무어, 찰스 멜튼
강렬한 스캔들을 둘러싼 세 인물
: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갇힌 사람
이 영화의 'May-December' 커플은 60살이 다 된 아내 '그레이시'와 36살 남편 '조'입니다. 23년 전, 유부녀였던 '그레이시'는 자신이 일하던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자 아들의 친구였던 13살 '조'의 아이를 가집니다. 감옥에서 아이를 출산한 '그레이시'와 '조'의 이야기는 뉴스 1면을 장식하는 희대의 스캔들이 되었죠. 강렬한 그들의 사랑은 이십여 년이 지나 영화화가 결정됐고, 연기 인생의 또 다른 한 획을 그을 작품을 찾던 배우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 역을 맡습니다. <메이 디셈버>는 'May-December' 커플의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엘리자베스'가 부부의 집을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영화는 세 인물을 가까이에서, 또 멀리서 바라볼 수 있도록 시점을 조금씩 바꿔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이십 년 전의 스캔들을 중심에 둔 세 사람을 각각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갇힌 사람으로 정의하죠.
말하는 사람은 과거의 스캔들을 '엘리자베스'에게 들려주는 '그레이스'입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레이스'에게는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36살 유부녀가 13살 소년과 사랑을 나눠 아이를 가졌는데도, 아들 친구와 바람이 났는데도, 심지어 아들의 생일 전날에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는데도요. 손자와 자식이 같은 날 졸업하는 진 광경의 자리에도 당당하게 '엘리자베스'를 부릅니다. '그레이스'는 진실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더 중요시하는 인물로 비칩니다. 그래서 언제나 태연하고 뻔뻔할 수 있었죠. 그는 자신이 순진한 사람이길 원하고, '엘리자베스'가 자신들의 사랑을 완벽한 사랑으로 보길 원하며, '조'가 영원히 이 관계를 사랑으로 보길 원합니다.
듣는 사람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부부를 취재하는 '엘리자베스'입니다. 그는 '그레이시'와 '조' 사이에 자리 잡은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빌미로 부부의 과거를 헤집고, 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죠. 그런데 단순히 취재라고 포장하기에 '엘리자베스'의 취재 여정은 다소 기만적입니다. '그레이시'와 '조'의 딸이 있는 자리에서 "배역을 선택할 때는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에 매력을 느낀다"라고 말하거나, 13살에 '그레이시'를 유혹한 '조'의 매력을 가늠하기 위해 그와 잠자리를 갖는 것도 마다하지 않죠. 어느새 진실 찾기는 핑계가 되고, '엘리자베스'의 눈빛에는 야심만이 이글거립니다.
갇힌 사람은 스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어린 남편 '조'입니다. 영화 초반부의 '조'는 공동체의 기억 속에 남은 강렬한 이야기와는 달리 더없이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상 '조'는 그때 그 이야기 속에서 조금도 크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죠. "네가 나를 꼬신 거야", "나는 순진해"라는 '그레이시'의 함정에 빠져 죄책감과 부도덕함을 느끼고, 속죄와 책임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신이 원한 삶이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나비의 알을 주워다가 성체로 키워 날려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감정의 배출구였습니다. 이러한 삶을 평화로운 일상으로 여겨왔던 '조'에게 '엘리자베스'의 등장은 균열이었습니다. 진실을 찾는 '엘리자베스'로 인해 마음속 물음표가 떠오른 '조'는 외면해 왔던 진실에 향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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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모호한 회색의 스펙트럼
영화를 만든 토드 헤인즈 감독은 <메이 디셈버>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거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인물의 공통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 '자기 자신'이라는 진실을 대하는 방식 말입니다. 세 인물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진실을 바라보길 거부합니다. '그레이시'는 원하는 대로만 말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렸고, '엘리자베스'는 남의 이야기를 파헤침으로써 자기 자신을 덮었으며, '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숨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이 있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기꺼이 들여다보려 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그랬듯이, 함부로 직시하죠. 이렇듯 세 인물의 도덕성과 옳고 그름에 관해 끝없이 생각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이런 생각에 가닿습니다. 극 중에서 나오는 '도덕의 회색지대'라는 말처럼, 바로 그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모호한 회색의 스펙트럼이 곧 인간의 본질이구나.
<메이 디셈버>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이 인간의 모호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샘솟는 질문들도 모두 비슷한 철학적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 36살 여인은 정말 13살 소년을 사랑했을까?
- 13살 소년은 정말 36살 여인을 사랑했을까?
- 13살 소년을 사랑한 36살 여인의 잘못은 무엇일까?
-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 도덕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 타인의 진실을 향한 '엘리자베스'의 열망은 인간으로서의 도덕인가, 배우로서의 야심인가?
- '엘리자베스'의 선을 넘는 야심과 '그레이시'의 순진한 가면 중 어느 것이 더 부도덕한가?
질문의 답을 고민하다 보면 머릿속은 계속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정확한 답 하나 없이 모호함만이 두둥실 떠다닙니다. '누가 옳은가?', '누가 그른가?', '옳은 사람이 있긴 한가?',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아, 하지만 복잡하고 모호한 인간처럼 흥미로운 것이 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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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디셈버>는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맛을 크게 살렸습니다. 가히 연기 대결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는데요. 줄리안 무어의 '그레이시'를 완벽하게 내재화해 연기하는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 돋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조'를 사랑의 감옥에 가두는 '그레이시'의 순진한 얼굴을 그려낸 줄리안 무어의 얼굴은 또 어떻습니까. 여기에 이 작품으로 연기상 21관왕을 휩쓴 찰스 맨튼의 활약도 빼놓으면 섭섭하지요. <리버데일>의 반가운 얼굴을 다시 만나 기뻤습니다. 쉽지 않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에게 손바닥에 불나도록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One-Liner5월과 12월, 알과 나비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으나, 인간만은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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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소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