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7-09 16:45:24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원래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을 유추할 수 있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My Salinger Year, 2020
드라마 / 12세 이상 관람가 / 101분
감독: 필립 팔라르도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꿈은 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있다. 현실이 꿈보다 매번 먼저 우릴 찾아와 문제지.
슬프지만, 현실은 늘 꿈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다. 그래서 우린 매 순간 현실과 꿈 사이에 표류하면서 안전지대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현실도, 꿈도 모두 포함된 이상적인 공간. 그 공간을 단 한 뼘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혼을 팔아도 좋을 만큼 꿈은 우리에게 절실하며 애틋하다. 꿈꾸던 시절이 곧 '나'의 찬란한 인생의 한 겹이며, 그 투명하고 얇은 겹이 하나둘 겹쳐지면 앞으로의 나를 예견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니까. 현실에서 꿈꾸는 일은 언제나 가치 있다.
조안나의 꿈은 뉴욕에서 시작된다. 그것도 아주 즉흥적으로.
남자 친구에게 버클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일방적인 말에서 왜 활기찬 희망이 느껴지는 걸까. 그렇다, 그녀는 작가란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을 선택했다. 싸구려 아파트에 살면서 카페에서 글 쓰는 유명 작가들의 노선을 경험하기 위해, 진정한 작가는 바로 그런 사소하면서도 운치 있는 환경에서 탄생한다는 학습된 환상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라면 갖고 있는, 특별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조안나에겐 그게 결정적으로 필요했다.
조안나는 작가 지망생이란 신분을 숨긴 채 전통 깊은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마가렛의 첫 번째 업무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샐린저에게 온 편지를 빠짐없이 읽고 정해진 형식에 맞춰 답장하는 일. 첫 만남에 딱 잘라 작가 지망생은 비서로 뽑지 않으며 오로지 내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마가렛의 말에 조안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마가렛의 비서가 냉정하다 못해 서늘한 직업이라 느껴졌지만, '작가의 세계에 다가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기에 만족했다. 그러니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일도 자신의 글쓰기에 분명 좋은 영감을 줄 거라 막연하게 여겼던 그녀였다. 아주 긍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독자들의 편지를 분쇄기에 넣을 때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을 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원초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짓밟고 무시하고 있다는, 나아가 '작가'로서 독자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독자인 동시에 작가였기 때문이다. 정해진 양식으로 독자에게 답장하는 일은, 독자가 존재함으로써 살아 숨 쉬는 작가로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정말 못 할 짓이었다. 그때부터 조안나는 마가렛이 준 임무를 말도 안 되는'허튼소리'라 명명한다.
그러나 조안나는 새내기였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을 것을 과감히 선택했으나 사회생활이라 말하는 사회 구조의 한 일원으로서의 경험이 부족했다. 자신의 뚜렷한 기준 갖고 마가렛의 비서로 일하는 건 나쁘지 않은 자세였지만, 그녀는 직원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왜 작가 에이전시에서 독자에게 똑같은 편지 형식을 고수하는지, 왜 소속된 작가의 작품을 '감상'이 아니라 '판매'에 중심을 두는지, 왜 슬러시 파일(개인 출판사가 없이 활동하는 작가들의 원고)을 대부분의 헛소리로 평가하는지... 조안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고 강압적이며, 열정적인 마음을 식게 하는 부정적 시선만을 눈여겨봤을 뿐이다. 그녀는 작가 에이전시가 지금까지도 그런 메마르고 인정머리 없는 감성을 고수하고 있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직원으로서 말이다.
조안나가 못 박은 허튼소리는 법률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수많은 경험과 데이터가 쌓아 올린 최소한의 울타리이자, 가장 안전한 지침이었다. 답장 하나를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의 처지를 '비서일 뿐'이라고 깎아내렸지만, 애석하게도 조안나는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비서'가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해야 할 일을 잘 해냈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히란 말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킬 길이 있다면 바꾸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는 말인데, 다들 알다시피 뭐... 그게 어디 쉽나. 다 실수를 해봐야 아는 거지.
고심하던 조안나는 결국 회사의 타자기를 훔쳐, 허튼소리 대신 자신의 이름을 쓰고 독자에게 정성스럽게 답장한다.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기둥처럼 받쳐주던 관계들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새로 사귄 남자 친구(돈)와의 관계, 냉정한 사장 마가렛과의 관계, 전 남자 친구(칼)와의 관계 마지막으로 내 꿈과 내 현실의 관계까지. 귀중한 관계들이 하나씩 엉키면서, 그녀는 자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드는 샐린저의 전화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또 반응한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내가 뭘 하려고 했었더라?'
점차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언제부터 제멋대로 선을 넘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감정이 확 솟잖아요!'라 소리치던 독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답장이 기계적인 편지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불이 꺼지기 시작한 관계는 다시 보살피고 필요 없는 관계는 단호히 잘라내면서 마침내 "그들의 편지가 저를 바꿨죠."라고 읊조릴 수 있게 된다. 과거의 나를 책임질 줄 아는 '내일의 조안나'가 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자기만의 속도로, 또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매력이 폭발하는 지점이다.
자기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즐겁게 춤추고 뛰어다니며, 끝까지 나를 잃지 않는 힘까지 갖게 된 조안나.
이제 그녀는 샐린저의 외투에 몰래 독자들의 편지를 넣어버리는 걸 들켜도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게 됐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도 마가렛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듣는 사람이 됐다. 그녀는 처음 뉴욕에 눌러앉으면서 평범한 사람이 되기 싫다 말했었다. 반드시 특별해지고 싶다 했다. 하지만 더는 자신이 평범하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됐으며 이를 불안해하지 않게 됐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나를 이끌어낼 방법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린 언제든 특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 평범하다는 말속에 잠시 나를 위로하고 돌보는 거지.
조안나,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자기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지금도 열심히 꿈꾸고 있는 자들을 위한 작품이다. 조안나를 통해, 꿈을 위해 현실을 이용하는 당차고도 용기 있는 자의 현재와 현실과 꿈의 괴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을 구현해낼 줄 아는 자의 미래를 모두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긴 여운을 남기는 좋은 응원이 될 것이다.
현실이든 영화든 당연한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처럼, 조안나처럼, 앞으로의 우리처럼, 그리고 오늘의 나처럼.
Relative contents
-
- 학교생활! - 정녕 실사화는 답이 없는 것인가
-
필자가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일본 만화가 있다. "학교생활!"이라는 일상물을 탈을 쓴(?) 좀비 아포칼립스 애니메이션인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게 봤다. 귀엽고 예쁜 여자 캐릭터들이 몇몇은 죽고, 좀비 소굴 속에서 버틴다니. 그 뿐만 아니라 진중하고 상당히 암울한 스토리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작품을 평가도 좋아서 애니메이션화도 됐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실사화까지 되었다. 일본 애니 실사화는 거의 일본 영화계의 적폐(?) 수준으로 평을 받다보니, 이것도 역시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제작년 BIFAN에서 스크린으로 소수의 관객들과 관람을 했다. 그 당시 든 생각은 이 영화는 여기서 안 보면 스크린으로는 볼 기회가 절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고. 그런데 아뿔싸. 결론은 역시다. 이번에도 실사화의 저주는 계속 되었다.
보통 이러한 모에 계열 만화(좀비 아포칼립스라고는 소개했지만 모에 요소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를 실사화하는 경우에는 만화와 실사의 괴리감이 심한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문제점이 본 작품에도 존재한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이 중 심각한건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도 어설퍼서, 정상적으로 관객이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리고 좀비 영화에서 보기 힘든 12세 관람가라는 등급은 보기 전부터 불안감을 선사했는데, 그에 보답하듯 좀비와의 전투씬은 심심하기 짝이 없다. 피도 볼 수 없고, 잔혹한 현장도 없다. 그나마 원작의 전개를 영화화 하기 위해 바꾼 스토리는 볼만하지만, 실사화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인해 볼만한 스토리도 못볼게 되버리고 말았다.
코스프레로 끝나고 만다는 일본 애니 실사화의 단점을 피하기 위해 배우들의 헤어 컬러를 염색하지 않는 등의 새로운 시도는 참신해보였지만, 그 외의 단점들은 여전히 존재할 뿐더러 더 부각된 부분들도 있다. 만화 실사화의 반면교사들 중 하나. 이 영화는 역시 수입사 측에서도 흥행성이 없다고 평가 되었는지 꼼수 개봉 후 VOD 직행되었다. 혹시 원작을 좋아하거나, 실사화 애니가 어떤지 궁금하다면 한번 봐봐도 좋다. 부디 나를 탓하진 말아달라.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
-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번 주 추천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코미코에서 연재되다가 계약 만료 이후 네이버로 서비스를 옮긴 이라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주인공 정다은 간호사 역할에 박보영이 캐스팅되어 주목을 받았다. 그밖에 이정은, 연우진, 장동윤 등이 주연을 맡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잘 알려진 이재규 감독이 연출을, <조선명탐정> 시리즈, <힙하게> 등의 각본을 쓴 이남규 작가 등이 각본을 맡았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내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로 이동한 간호사 '정다은'을 좇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다은은 내과에서 정신과로 이동하게 된 자신에게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는 다른 간호사들과 유대를 쌓게 되고, 일촉즉발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병동 안에서의 다양한 일상을 마주한다. 결과적으로는 정다은을 포함한 정신과 간호사 및 의료진, 그리고 정다은을 거쳐가는 환자들의 성장기로 맺음되는 훈훈한 엔딩의 이야기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정다은은 이 과정에서 구설수에 시달려야 하고 담당 환자들의 사건사고로 인해 깊은 우울증에 걸려 입원하게 되는 등 우여 곡절을 겪는다. 환자에게 진심을 다하는 간호사와 의사, 보호자들은 아무리 매달려도 속수무책으로 벌어지고 마는 사건들에 매번 좌절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아침이 온다'는 설정이, 이 작품을 빛나게 만든다.
가장 큰 순기능은 '정신 질환'에 대한 허들 낮추기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정신 질환은 사회적으로 터부시되고 있다. 아픔을 숨기며 살아가고, '정상'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충과 사회적인 부조리를,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확하게 짚는다. 특히 치료자인 동시에 환자가 될 수 있으며, 언제든 다시 치료자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인간의 유동성과 질환의 인지 및 치료의 중요성을 정다은 간호사의 캐릭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면들이 몹시 좋았다. 더불어 다양한 정신 질환을 누구든 공감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연출과 대사로 묘사하려고 노력한 부분들에 대한 노고가 다분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드라마의 배우들 모두 극에 완전히 밀착된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어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현한 만큼 그 고민과 깊이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특정 질병에 대해 자극적이게 다루지 않으며 그 질병의 고충을 가능한 한 제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한국 드라마는 그리 많지 않기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선 경계인이다'라는 말이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되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도 언제고 질병과 질환을 겪을 수 있는 예비 환자임을 인지하며 타인을 대하는 방식. 현재의 한국에 턱없이 부족한 역량을 이 작품은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
- <팜 스프링스> - ‘무의미한 오늘 속에서 찾은 가장 값진 의미’
-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2020)
개봉일 : 2021.08.19 (한국 기준)
감독 : 맥스 바바코우
출연 :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시몬스, 피터 갤러거, 메레디스 하그너
‘무의미한 오늘 속에서 찾은 가장 값진 의미’
아마도 올여름, 가장 재기 발랄한 로코물이 아닐까 싶은 영화 <팜 스프링스>.
'타임 루프 로맨스'라는 소재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소재다. 타임 루프 로맨스의 원조 <사랑의 블랙홀>과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같은 타임 루프 로맨스 영화들이 파스텔 핑크와 같은 색감이라면 <팜 스프링스>는 핫핑크 빛이다. 마냥 얌전하지만은 않은 거침없고 유쾌한 로맨스랄까. 통통 튀는 영화의 색과 무해한 농담들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일이 없다는 듯 여러 모험에 도전하며 마음을 나누는 세라와 나일스의 모습과 이들이 던지는 농담은 보는 이에게 대리 만족과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 거기에 시원한 풀장 배경과 청량한 색감이 더해져 그들의 파티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듯한 흥겨움은 덤으로 따라온다.
인생 최고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결혼식 날에 갇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날을 살아가고 있는 나일스에게 누군가의 결혼식 날은 더 이상 특별한 날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능글능글한 말솜씨와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늘어가지만 잠에서 깨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보니 그는 점차 오늘의 소중함을 잊게 된다. 나일스에게 오늘은 그저 똑같고 의미 없는 반복일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당연하게 오늘도 역시 어제와 같은 하루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소한 실수로 인해 오늘이 조금 달라진다. 시간이 흐른 건 아니고, 나일스의 하루에 세라가 들어온 것이다. 어쩌다 보니 갇혀버린 같은 시간 속에서 나일스와 세라는 어제의 오늘과는 다른 특별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하루를 기억해 주는 유일한 사람, 무의미한 오늘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사람. '영원히 반복될 오늘에 갇히더라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일스는 오늘을 기대하게 된다.
나일스와 세라는 "이 사람들은 어차피 내일이면 잊을 거야!"라고 외치며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귀여운 일탈과 과감한 장난을 반복한다. 두렵고 신경쓰이는 게 많았던 현실을 벗어나 모든 걸 예상할 수 있는 '오늘'에 갇히다니.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 해가 될 것도 없고, 모든 게 내 손안에 있는 편안함이 나름 나쁘지 않다. 불안감과 위험 따위가 없는 시간들은 이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하지만, 이내 결국 사라질 것이 뻔한 오늘에 대한 무력감을 몰고 온다. 당장 무서울 것이 없으니 반복돼도 괜찮겠다 싶었던 하루가 무의미한 것이 되자 이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두려움을 외면하며 영원히 함께 갇혀있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사랑을 이대로 지키고 싶은 남자 나일스와 미뤄뒀던 두려움을 다시 마주하며 내 삶을 찾고 싶어 하는 여자 세라. 다른 목표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닮아있는 운명 같은 두 사람은 이 사랑을, 내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하루에서 만난 내 삶의 가장 큰 의미가 된 당신. 이 로맨스의 끝엔 오늘이 있을지 내일이 있을지 궁금하다면 <팜 스프링스>를 추천한다.
팜 스프링스 시놉시스
“오늘은 어제고, 내일도 오늘이에요…”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오늘 기분 어때요?”
“오늘, 내일, 어제 다 똑같죠.”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나는 탈라와 에이브의 결혼식 날. 홀로 결혼식 날에 갇힌 나일스에게 어제, 오늘, 내일은 모두 똑같은 날이다. 나일스는 같은 날을 살아가며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모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상황극을 즐긴다.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여친 두고 바람피우기, 동성의 인물들 꼬셔보기, 결혼식 방해하기까지.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수많은 일탈들은 처음엔 즐거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루하고 무의미한 행위로 변한다. 거기에 점점 더 사라져가는 ‘나 자신’에 대한 기억들. 나일스는 타임루프 속에서 나를 잃고 조금씩 지쳐간다.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라와의 하루를 시도하던 날 밤, 세라가 나일스를 따라 타임 루프에 들어온다. 신부 탈라의 언니인 세라는 결혼식에서도 온갖 눈치를 보고 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실패한 결혼과 순간의 판단 미스로 저질러버린 신랑 에이브와의 하룻밤. 이 행복한 결혼식에서 죄책감과 눈치에 맘 편하게 웃지 못하고 술을 잔뜩 들이켜고 있던 세라에게 타임 루프는 안전한 도피처다. 세라도 역시 나일스처럼 처음엔 어떤 사고를 쳐도 깔끔하게 사라져버릴 오늘을 마음껏 즐긴다. 오늘의 실수를 책임질 내일이 없으니 사고도 마음껏 쳐보고 이런 일 저런 일에 뛰어들어본다. 그리고 어딘가 나와 닮은 나일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나일스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쳤다는 걸 알 게된 후 나일스와 거리를 두고 형체 없이 반복되는 하루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오늘의 내 실수와 어제의 후회를 책임질 필요 없는 타임 루프는 분명 안전한 도피처다. 실수에 대한 책임도 그에 대한 죄책감도 어차피 내일이면 없는 일이 될 하루. 하지만 다른 이들은 오늘 나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타임 루프에 갇힌 나는 나의 실수와 후회를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나일스는 타임 루프 속에서도 타인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실수와 후회이기에 그것을 꼭 되돌릴 필요는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실수를 되돌리거나 변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내일이,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 인생을 되찾아야겠어요"
우리는 보통 지난 실수와 후회를 떠올리며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다. 하지만 타임 루프 속에선 이러한 성장을 이뤄야 할 이유도 이룰만한 기회도 없다. 세라는 타임 루프에 빠진 후 매일 아침 에이브의 침실에서 눈을 뜬다. 세라는 처음엔 그저 타임 루프가 선사하는 자유를 즐기기 바빴지만 나일스의 거짓말을 듣게 된 후 타임 루프를 방패 삼아 거짓말을 하거나 실수를 모르는체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로 돌아가면 분명 전처럼 눈치 보는 날이 반복될 테고, 어쩌면 결혼식 전날에 저질러버린 실수를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무의미한 하루를 반복하는 것 대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한 뼘 더 성장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나일스는 이제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현실로 돌아가길 두려워한다. 세라가 동굴을 폭파시켜 현실로 돌아갈 거라 말하자 나일스는 “당신과 남고싶어요.” “여기 남아줘요.”라고 말하며 세라를 붙잡지만 세라는 단호하게 자신의 인생을 되찾겠다며 자리를 뜬다. 나일스는 세라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깨닫고 함께 현실로 돌아갈 용기를 낸다. 혼자 무의미한 오늘에 남아 현재에 안주하며 사느니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을 살아가는 것. 그게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자네만의 안식처를 찾아봐."
어쩌면 우리는 항상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걸지도 모른다. 내일은커녕 당장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일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거창한 비유를 내려놓고 가볍게 말하자면 오늘 먹으려고 결정해둔 저녁 메뉴가 갑자기 품절이 되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긴다면 또다시 고민을 반복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타임 루프 속에서 겪는 오늘은 모든 게 다 예상되는 정해진 일들의 연속이지만 진짜 인생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나일스와 세라 역시 인생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나일스는 정해진 길과 결과가 있는 타임 루프를 ‘나만의 안식처’라고 느끼며 타임 루프를 벗어나길 꺼리지만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세라를 보며 다시 삶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세라의 존재가 진정한 오늘의 의미이자 안식처임을 알게 된다.
내일이 오지 않는다는 건 결국 새로운 기회와 조금 더 발전할 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타임 루프는 그저 반복되는 나의 실수를 가볍게 외면해도 괜찮다는 특권일 뿐, 달라진 나와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배경은 아니다. 시간은 의미 없이 낭비되고 있고 무의미에 갇힌 사람은 변하지 않는 오늘처럼 변하지 않는 삶을 산다.
변화도 의미도 없는 타임 루프 속에서 만난 최고의 인연은 서로에게 내일을 꿈꾸게 될 동력이 된다. 무의미한 하루 속에서 발견한 가장 의미 있는 그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조금 더 나아갈 우리를 궁금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내일’은 꼭 맞이해야 할, 가장 필요한 존재로 변한다. 내일을 맞이하게 되면 무의미한 시간을 반복할 때보다 걱정도, 부딪혀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것도 어마 무시하게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적어도 지루하고 힘들진 않겠지-싶다. 더 아름다워질 우리의 내일과 한 발자국 나아갈 나를 상상하며 내딘 내일을 향한 한 걸음엔 용기와 사랑, 믿음이 가득하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
-
- 리메이크가 주는 힘에 대하여
‘리메이크는 절대 원작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기대와 달리 실망감을 줄 때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리메이크작에서 재미를 찾은 경험이 더 많았기에 그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소피아 코폴라의 <매혹당한 사람들>모두 이전 작품만큼이나 섬세하고 매력적이다. 단순히 리메이크 작품 뿐 아니라 <센스 앤 센서빌리티>, <히든 피겨스>, <재키>처럼 소설이나 실존인물의 삶, 실제 사건, 뮤지컬 등을 영화화한 멋진 작품이 많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오션스 8>처럼 시퀄을 이전 시리즈보다 재미있게 본 경험도 있다. 2016년작 <고스트 버스터즈>를 본 후에 원작을 접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는 위의 작품들처럼 원작의 아이디어를 더 멋진 비주얼로 구현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이다.
2016년 <고스트 버스터즈>에 대해 ‘농담은 끔찍하고, 케빈처럼 멍청한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원작에 대한 실례라는’ 식의 리뷰를 여러 번 보았다. 역설적이게도 84년작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한 이유는 그러한 혹평 때문이었다. 당시의 기술로는 압도적이었을 비주얼, 초자연현상을 유쾌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변모시켰다는 점, 4인조의 고스트버스터즈가 유니폼을 갖춰 입은 이미지는 당시 관객의 인기를 끌고 과거에 대한 향수가 되기 충분했다. <아바타>, <해리포터>시리즈, <인터스텔라>를 보고 자랐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폴 페이그의 <고스트 버스터즈>의 개연성과 현실성이 전작에 대한 실례라는 비판을 들을 만큼 엉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오히려 라이트먼의 캐릭터들은 부적절한 농담을 구사하고, 캐릭터들의 동기가 다소 결여되어 있으며, 로맨스에는 원인이 없다. 작품의 그런 성격이 오락 영화, 코미디 장르라는 점과는 별개로 영화를 통해 살아본 적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경험을 불가능하게 했다.
물론 세상에 케빈 같은 남자는 없다. 하지만 능력을 저평가당하면서 가정부와 식당 종업원 일이나 찾아보라는 말을 들어도 괜찮은 여자도 없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 캐릭터가 악마적인 힘 때문에 섹스 심벌 같은 이미지로 변신한 후, 주인공에게 구출되는 연출을 즐길 관객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러한 점에서 2016년의 <고스트 버스터즈>가 기존 캐릭터들의 성 반전을 시도한 점은 시대에 발맞췄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설정을 새로이 소개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굳이 그러한 시도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 깔끔한 인상을 준다. 동시에 어떤 농담에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새로운 여성 히어로를 만나는 게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세계관의 대부분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성별만 바꾸는 시도가 이전에 평범한 것으로 여겼던 설정들이 실은 차별적이었다는 점을 짚어내기 때문이다.
멋진 비주얼 이상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를 더 특별하게 한다. 리메이크의 의미는 단순히 기존 작품보다 더 높은 완성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그 시대의 관객들과 제작자들이 원하는 바를 반영하기도 한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2016년 시사회에 유니폼을 입은 여자 아이들과 오랜 팬들이 함께 모여 배우들과 인사하는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 부모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
미국 최대의 낙태 클리닉, 가족계획 연맹에서 일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애비. 애비도 대학생 시절에 낙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낙태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태도"로 그들의 낙태를 결정하기까지 설득하는 일을 너무나 능률적으로 잘 해왔다. 그렇게 그녀는 가족 계획연맹에서 최연소 소장으로 임명받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도 잘 알지 못했던, 어쩌면 그녀도 알고 싶지 않아했던 광경을 목격함으로써 그녀가 삶에서 행한 합리화의 온상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뀌게 되는데..........
1.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린 결과
기혼 상태가 아닌 여성에게 임신은 저주와도 같다. 하물며, 기혼 여성에게도 계획되지 않은 임신은 당황스럽기 마련일 텐데, 미혼 상태에서 생겨난 아이는 아직 육체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은 순간에도 축복받기는 힘들다. 영화 속 애비가 그렇다. 첫 번째 임신을 확인했을 때에는 남편의 권유로 그 아기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두 번째 임신을 했을 때에는 그녀의 가정이 파탄이 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아이와 이혼한 전남편 사이의 연결고리를 아예 없애버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낙태를 결정했다. 그녀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에 불과했기 때문에 태어날 아이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하나의 생명을 품고 있었을 때의 그 만감의 교차하는 과정은 그녀만이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 감정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 아이와 함께했던 잠시 동안의 시간을 되새기려면 그의 전남편을 떠올려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 기억을 악몽으로 취급하며, 자신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자신의 실수를 경험삼아 다른 이들에게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지 않게끔 도와주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족계획연맹의 이념을 굳건히 믿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녀의 합리화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족계획연맹의 장점만을 보고, 소위 말해 '회사의 개'가 되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충실한 사원이었겠지만 그녀가 보고 싶은 부분만을 보는 그 버릇으로 그녀가 여지껏 무시해왔던 감정의 쓰나미를 한꺼번에 벌받듯이 느끼게 된다.
가족계획연맹에서는 낙태 가능 시기에 대한 기준을 대외적으로 제시하고, 그 가능 시기를 가늠해보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지만 검사지를 신청자에게 보여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초음파 검사는 그저 요식행위일 뿐이고, 가능시기와 상관없이 낙태를 진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계획연맹의 수익 모델은 기타 다른 공익적 활동에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낙태 수익에서 나오기 때문에 낙태가 가능한 시기와는 별개로 그저 신청자의 의지만 있으면 신속한 낙태가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수술을 진행하지는 않고, 행정, 상담 업무만 보던 애비는 가족계획연맹의 이런 행태를 뒤늦게 깨닫고,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전에 자신이 상담했던 사람들부터 자신이 없애버린 두 명의 아이에게까지. 그녀가 자신의 과거에 갇혀, 자신이 묻어둔 감정들을 직시하지 않아 착상된 이후로 하나의 생명이 된 존재가 가질 권리를 무시한 대가였다.
2.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태어날 아이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은 태어날 아이에게도, 아이를 낳을 엄마에게도 좋지 않으니, 낙태는 위험하다는 것. 이 영화는 다분히 윤리적인 관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그 소중함을 간과하고 살았던 애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관객들이 도덕과 자신의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불안정한 애비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이다. 자신이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해 생겨난 상처들에 대한 자책을 아기를 없애는 걸로 해소하고자 한 점에 대해서는 그녀가 어리석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무자비하게 욕하고 싶지도 않다. 여자인 내가 애비와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면 나는 전남편의 아이까지 모두 키우며 사는 원더우먼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애비보다도 못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선택이 정확히 무엇일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나는 태아의 생명권이고, 여자의 자기결정권이고를 떠나서 영화의 메시지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부모의 자격에 대해 논해보고 싶다. 사회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는 부모의 사랑의 결실이라고 으레 이야기하지만 부모라는 사회적 역할은 단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랑의 증표로서 주어질 만큼 그렇게 간단한 역할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애비가 죄책감을 느끼기 전까지 가족들에게 그리고 그녀의 고객들에게 얘기하고 다니던 낙태에 대한 찬성적 발언들에 대해 반대할 의사가 없다. 가족 계획연맹이 대외적으로 홍보하던 신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태어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그리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이 세상에서는 안 태어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쌍의 커플이 그저 아이가 예쁘다는 이유로, 내가 내 연인을 사랑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아이를 낳아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반대한다. 다시 말해, 아이를 낳아키우는 이유가 단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키우는 부모의 정신적 성숙도가 모두 비슷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사랑에 의한 결실인지, 그저 육체적 쾌락을 위한 교감에 의한 실수인지에 따라 아이의 인생에서 유년기가 결정되는 중요한 구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모가 된다는 것의 막중한 책임은 심사숙고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부모가 지닌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가르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간단하게 아기는 생명의 신비라는 과학교과서적 지식 말고, 성교육적 지식과 더불어 아기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현실적인 시각도 알려주어 예기치 않은 임신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켜야 한다. 최소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아이를 예뻐라하는 나의 모습을 흘긋 보고,
"너도 이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지"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가는 사회는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계획한다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는 기회가 아니기에 이 주장들은 어쩌면 궤변에 불과할 것이다. 부모가 되는 기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있는것도 아니고, 뭐 좋은 부모 인증이 있는 것도 아닌, 정답이 없는 세계가 부모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생명권, 성적자기결정권의 대립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미혼 주제에 부모의 자격을 운운하며, 긴 글을 쓴 이유가 이유가 있다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나에게도 언젠든지 발생할 수 있는 공포로 다가와서, 뭔가 남일 같지 않아 괜한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쓰다보니, 뭔가 개소리에 가까운 글이 되었는데, 오해를 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총평
마치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수업자료로 쓰이기 좋을 법한 영화이다. 극 중 숀과 메릴리사 측은 생명권을 존중하자는 쪽인데, 그 집단에 맞서는 애비 측간의 경쟁구도가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입장차를 확실히 구분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10대에게는 교육적 측면에서, 20대 이상에게는 부모가 될 자격에 대해 고민해보고, 자신만의 기준을 성립해나가는 데에 치열한 고민의 장을 열어줄 영화라고 본다.
@이 영화는 기독교 기반 ott 플랫폼인 '퐁당'에서 시청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었지만 혹시 이 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플랫폼이 있나 검색을 해봤는데, 해당 플랫폼이 있더라고요. 참고 바랍니다.
-
-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서부시대 어떤 이들의 우정
제86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NYFCC) 작품상 수상과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후보를 포함, 세계 유수 시상식에서 24회 수상 및 143회 노미네이트를 했고 봉준호 감독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답고 시적이다”라는 찬사를 보내며 강력 추천했던 영화 〈퍼스트 카우〉 리뷰입니다. 국내에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정적인 스타일로 자연과 인물을 관찰하며 페미니즘적인 주제의식과 노동자 계급 등 비주류 사회를 주목해 온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켈리 라이카트의 7번째 장편 연출작이죠. 그녀의 작품 중 처음으로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난 제26회 BIFF에 초청되어 특유의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좋은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시사회를 통해 미리 접했는데, 기존 19세기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 흥미롭게 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을 찾으신다면 추천드리고 싶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퍼스트 카우〉 줄거리 정보
쿠키에게는 우유를, 인간에겐 우정을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와 함께 화면이 밝아지고, 커다란 증기선 한 척이 허드슨강을 지나가며 시작됩니다. 그 옆으로 강아지와 함께 강변을 산책 중이던 한 소녀, 진흙으로 뒤덮인 땅에서 나란히 누워있는 두 개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고 시간은 그들이 살았던 1820년대로 전환됩니다.
모피 사냥꾼들의 식량 배급을 담당하며 어느 마을을 향해가던 요리사 쿠키는 여느 날과 똑같이 주변 식재료를 수집하던 중 벌거벗은 채 추위에 벌벌 떠는 중국인 킹 루를 만나 일행 몰래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줍니다. 이후 마을에 도착하고 우연치 않게 다시 마주한 두 사람, 지낼 집이 없는 쿠키에게 루는 자신의 허름하고 좁은 집에서 지낼 것을 권하고 그렇게 함께 지내게 되죠. 그리고 곧이어 그의 베이킹 실력을 확인한 루는 마을의 권력자 팩터 대령이 소유한 유일한 젖소로 부터 우유를 몰래 짜 빵을 만들어 팔자는 계획을 제안하는데...
예고편│ Trailer
영제 : First Cow│감독 : 켈리 라이카트│원작 : 조나단 레이먼드의 2004년 단편 소설 〈The Half Life〉│각본 : 조나단 레이몬드, 켈리 라이카트│출연진 : 존 마가로, 오리온 리, 토비 존스 외 多│장르 : 드라마│상영 시간 : 122분│개봉일 : 2021년 11월 4일│국가 : 미국│등급 : 12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8.5, 왓챠피디아 예상 3.8, 로톤 토마토 신선도 96% 팝콘 63%, IMDB 7.1, 메타 스코어 89점│수상 내역 : 85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작품상)│시청 가능 서비스 : 11월 4일 극장 개봉
감독의 세계관
마초적인 남성들이 서로 총구를 겨누며 혈투를 벌이는 야만적인 19세기 서부극을 흔히 떠올릴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같은 시대가 배경이지만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로 여성들의 비주류 사회를 비추던 감독이 이번에는 확실한 남성 중심의 시대를 선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고정된 사고를 깨부수는 변주를 보여주고 있죠. 백인이지만 언제나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던 유대인, 그저 생존이라는 위대한 도전을 이어온 중국인, 이렇게 힘의 논리로 지배되던 사회의 약자에 속한 그들을 통해 기존의 사고를 무너뜨립니다. 그렇게 옛날 서부극의 공식을 뒤엎는 평범한 일상 속 두 인물 사이의 대화만큼이나 견고해가는 우정과 연대에 대한 서사를 잔잔한 강물처럼 보여줍니다.
# 〈퍼스트 카우〉는 이러합니다.
예술 영화의 잔잔함
백인 주류의 서부 세계에서 두 사람은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의심하기보다는 우정이라는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으로 더욱 가까워집니다. 벌거벗은 채 쫓기는 자신을 감싸준 친절에 혼자 지내기도 좁은 집으로 불러 함께 살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존재는 미약할지언정 결코 불안하거나 외롭거나 흔들리지는 않죠. 그렇기에 폭력이 난무하며 자본주의로 치닫는 사회에서 그들의 관계는 어쩌면 목숨이 오가는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강렬함이 느껴지는 연기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도, 드라마틱한 액션도 없고, 기존과 다른 1.37:1 화면비의 35㎜ 필름으로 프레임은 작고, 카메라는 고정돼 있으니 동적인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어쩌면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오래 바라보아야 가치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이 작품 역시 두 인물의 인종을 넘어선 우정에 집중하다면 “우리들의 집은 우정이 있는 곳이다"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잔잔한 드라마를 찾으신다면 추천드리며, 이상 글쓰는 식팔이 모모파로였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한 줄 평 :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서부시대 어떤 이들의 우정
-
- 이정재 감독의 헌트, 올 여름 가장 재미있는 영화
?Rabbitgumi 입니다!
올 여름 그동안 개봉하지 못했던 큰 영화들이 극장에 공개되었는데요.
이정재 감독의 헌트는 그 리스트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정재 배우가 감독으로서 첫 연출을 맡은 작품이기도 했죠.
25년 지기 친구 정우성과 같이 공동 주연을 맡았는데요.
이 영화 흥미진진한 액션 스릴러입니다.
첩보 장르의 특성도 잘 담겨 있구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사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한 달 2,000원의 금액으로 매주 3개씩의 글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
지금 구독하시면 첫 구독 3달동안 매달 1,000원으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https://rabbitgumi.stibee.com/
브런치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
-
- 영화 <울림의 탄생> 30초 예고편
소아마비 고아. 한쪽 귀의 청력마저 상실한 그를 품어 준 북 만드는 장인.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북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며 이 악물고 버텨 온 60년.
이제 일흔을 앞둔 임선빈 악기장은 다른 한쪽 귀의 청력마저
잃게 될 거라는 비보를 접하고,
어린 시절 처음 들었던 그 북소리를 담은 대작을 만들기 위해
23년을 아껴 두었던 나무를 꺼낸다.
그러나 날씨도, 몸도, 전수자인 아들 동국과의 협업도 마음 같지만은 않은데...
60년 동안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첫 북소리의 울림.
그 울림이 담긴 북을 만들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