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7-09 16:45:24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원래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을 유추할 수 있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My Salinger Year, 2020
드라마 / 12세 이상 관람가 / 101분
감독: 필립 팔라르도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꿈은 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있다. 현실이 꿈보다 매번 먼저 우릴 찾아와 문제지.
슬프지만, 현실은 늘 꿈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다. 그래서 우린 매 순간 현실과 꿈 사이에 표류하면서 안전지대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현실도, 꿈도 모두 포함된 이상적인 공간. 그 공간을 단 한 뼘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혼을 팔아도 좋을 만큼 꿈은 우리에게 절실하며 애틋하다. 꿈꾸던 시절이 곧 '나'의 찬란한 인생의 한 겹이며, 그 투명하고 얇은 겹이 하나둘 겹쳐지면 앞으로의 나를 예견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니까. 현실에서 꿈꾸는 일은 언제나 가치 있다.
조안나의 꿈은 뉴욕에서 시작된다. 그것도 아주 즉흥적으로.
남자 친구에게 버클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일방적인 말에서 왜 활기찬 희망이 느껴지는 걸까. 그렇다, 그녀는 작가란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을 선택했다. 싸구려 아파트에 살면서 카페에서 글 쓰는 유명 작가들의 노선을 경험하기 위해, 진정한 작가는 바로 그런 사소하면서도 운치 있는 환경에서 탄생한다는 학습된 환상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라면 갖고 있는, 특별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조안나에겐 그게 결정적으로 필요했다.

조안나는 작가 지망생이란 신분을 숨긴 채 전통 깊은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마가렛의 첫 번째 업무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샐린저에게 온 편지를 빠짐없이 읽고 정해진 형식에 맞춰 답장하는 일. 첫 만남에 딱 잘라 작가 지망생은 비서로 뽑지 않으며 오로지 내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마가렛의 말에 조안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마가렛의 비서가 냉정하다 못해 서늘한 직업이라 느껴졌지만, '작가의 세계에 다가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기에 만족했다. 그러니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일도 자신의 글쓰기에 분명 좋은 영감을 줄 거라 막연하게 여겼던 그녀였다. 아주 긍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독자들의 편지를 분쇄기에 넣을 때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을 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원초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짓밟고 무시하고 있다는, 나아가 '작가'로서 독자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독자인 동시에 작가였기 때문이다. 정해진 양식으로 독자에게 답장하는 일은, 독자가 존재함으로써 살아 숨 쉬는 작가로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정말 못 할 짓이었다. 그때부터 조안나는 마가렛이 준 임무를 말도 안 되는'허튼소리'라 명명한다.

그러나 조안나는 새내기였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을 것을 과감히 선택했으나 사회생활이라 말하는 사회 구조의 한 일원으로서의 경험이 부족했다. 자신의 뚜렷한 기준 갖고 마가렛의 비서로 일하는 건 나쁘지 않은 자세였지만, 그녀는 직원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왜 작가 에이전시에서 독자에게 똑같은 편지 형식을 고수하는지, 왜 소속된 작가의 작품을 '감상'이 아니라 '판매'에 중심을 두는지, 왜 슬러시 파일(개인 출판사가 없이 활동하는 작가들의 원고)을 대부분의 헛소리로 평가하는지... 조안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고 강압적이며, 열정적인 마음을 식게 하는 부정적 시선만을 눈여겨봤을 뿐이다. 그녀는 작가 에이전시가 지금까지도 그런 메마르고 인정머리 없는 감성을 고수하고 있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직원으로서 말이다.
조안나가 못 박은 허튼소리는 법률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수많은 경험과 데이터가 쌓아 올린 최소한의 울타리이자, 가장 안전한 지침이었다. 답장 하나를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의 처지를 '비서일 뿐'이라고 깎아내렸지만, 애석하게도 조안나는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비서'가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해야 할 일을 잘 해냈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히란 말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킬 길이 있다면 바꾸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는 말인데, 다들 알다시피 뭐... 그게 어디 쉽나. 다 실수를 해봐야 아는 거지.

고심하던 조안나는 결국 회사의 타자기를 훔쳐, 허튼소리 대신 자신의 이름을 쓰고 독자에게 정성스럽게 답장한다.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기둥처럼 받쳐주던 관계들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새로 사귄 남자 친구(돈)와의 관계, 냉정한 사장 마가렛과의 관계, 전 남자 친구(칼)와의 관계 마지막으로 내 꿈과 내 현실의 관계까지. 귀중한 관계들이 하나씩 엉키면서, 그녀는 자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드는 샐린저의 전화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또 반응한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내가 뭘 하려고 했었더라?'
점차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언제부터 제멋대로 선을 넘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감정이 확 솟잖아요!'라 소리치던 독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답장이 기계적인 편지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불이 꺼지기 시작한 관계는 다시 보살피고 필요 없는 관계는 단호히 잘라내면서 마침내 "그들의 편지가 저를 바꿨죠."라고 읊조릴 수 있게 된다. 과거의 나를 책임질 줄 아는 '내일의 조안나'가 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자기만의 속도로, 또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매력이 폭발하는 지점이다.

자기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즐겁게 춤추고 뛰어다니며, 끝까지 나를 잃지 않는 힘까지 갖게 된 조안나.
이제 그녀는 샐린저의 외투에 몰래 독자들의 편지를 넣어버리는 걸 들켜도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게 됐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도 마가렛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듣는 사람이 됐다. 그녀는 처음 뉴욕에 눌러앉으면서 평범한 사람이 되기 싫다 말했었다. 반드시 특별해지고 싶다 했다. 하지만 더는 자신이 평범하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됐으며 이를 불안해하지 않게 됐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나를 이끌어낼 방법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린 언제든 특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 평범하다는 말속에 잠시 나를 위로하고 돌보는 거지.
조안나,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자기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지금도 열심히 꿈꾸고 있는 자들을 위한 작품이다. 조안나를 통해, 꿈을 위해 현실을 이용하는 당차고도 용기 있는 자의 현재와 현실과 꿈의 괴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을 구현해낼 줄 아는 자의 미래를 모두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긴 여운을 남기는 좋은 응원이 될 것이다.
현실이든 영화든 당연한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처럼, 조안나처럼, 앞으로의 우리처럼, 그리고 오늘의 나처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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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유의 팔레트는 누군가의 페르소나가 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페르소나는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4명의 감독이 가수 아이유이자 배우 이지은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후 만들어낸 각기 다른 단편 영화들의 모음집이다. 그 중에서 나는 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게 오래"의 해석의 키가 될 노래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글은 페르소나 전체에 대한 리뷰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단편을 본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보고 난 후에 느낀 점이 있었다면, 이 단편들을 나름대로 해석한 글을 자신있게 발행하기에는 내가 느낀 느낌들이 너무 모호해서 내 해석을 독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싶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난해하기도 했고, 나조차도 이 영화를 이해했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뷰를 쓸 생각이 없었던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을 해석할 때 도움이 될 만한 포인트를 뒤늦게 찾아내어 주연배우의 앨범이 영감이 되어 하나의 영화가 된 것이 신기해 뒷북이지만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출처 아이유팬카페 러브유
나는 배우 이지은보다는 가수 이지은의 팬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수로서의 그녀가 발매한 수록곡들을 많이 찾아듣는다. 그 중에서 많이 듣는 앨범은 Palette 앨범인데, 그 앨범 속에 Jam Jam이라는 노래를 다시 듣다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최소 수십번은 들었던 노래인데, 가사가 갑자기 꽂히면서 이 가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데자뷰를 느꼈다. 그 전에는 사실 이 노래를 들었던 이유는 가수의 음색이 도드라지는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왜 이 가사가 섬뜩할까 싶었다. 기억을 되돌려보니, 난 이 가사를 영상화했던 한 단편을 본 적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이 단편이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알 만한 사람끼리 이 정도 거짓말엔
속아주는 게 예의 아닌가요
될래 그깟 멍청이 뭐든 해봐요 우리
생각할 겨를조차 주지 마요 (JAM)
설탕이 필요해
난 몸에 나쁜 게 좀 필요해
뜨뜻미지근한 건 그만해
막 솔직하겠다고? 그게 뭐라고
I need some sugar
I need something fake
진심이란 게 뭐야? 난 상관 안 해
둘 다 알잖아 Limit 곧 끝날 텐데
식기 전에 날 부디 한껏 녹여줘 Babe
Jam, 설탕 탕 탕 사랑 랑 랑
Jam, 설탕 탕 탕 사랑 랑 랑
사랑한다고 해, 입에 발린 말을 해 예쁘게
끈적끈적 절여서 보관할게
썩지 않게 아주 오래
I need some sugar
I need something fake
천연 그런 거 몰라 자극적이게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의미 그놈의 의미
어서 다 녹여줘 Babe
내가 가사만 보고, 해석한 바로는, 의미없는 인간 관계에 대해 비웃는 사람의 시니컬한 모습을 상상했었다. 현대인들의 인간 관계 속에서 진심이란 생각보다 찾기 힘들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웃어야 하는 일도 다반사이고, 진심을 주었다고 생각한 관계 속에서 미묘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이 노래에 등장하는 설탕은 인간 관계에 고통받던 내가 진심인 척 다른 이들 앞에서 페이크를 연기한 나는 지금 너무 지쳤으니까 내 몸에도 페이크 같지만 확실한 자극을 주는 매개체를 선물하고, 너무 남에게 보였던 위선에 대해 곱씹지 말고, 의미 같은 건 찾지도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곡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보인 fake, 내가 남에게 보인 fake 모두 다 의미없는 것들이니까. 그런데 이 단편을 보고 나서 가사를 다시 읽어보니, 여자주인공을 사랑을 게임처럼 하는 팜므파탈로 설정한 이 해석이 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사랑과 여자의 위대함을 운운하며, 남자는 여자의 사랑 없이는 의미없는 존재라는 둥 특유의 개소리를 시전하는 남자, 자신은 다른 남자와는 차원이 다른, 여자를 존중하고, 아끼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남자라는 자부심이 있는 이 남자도 결국은 보통 남자였다. 그런 남자의 하찮음을 꿰뚫어본 여자는 진정한 사랑은 구속일 뿐이고, 의미있는 관계 따위는 없다고 비웃으면서 자신이 현재 처한 미적지근한 애정관계에 돌파구를 찾고 싶다면 네 마음, 네 심장을 내보여 증명이라도 하라고 요구하며 오히려 적반하장의 역설을 보여준다. 그런 적반하장을 시전하는 여인의 마음으로 이 가사를 읽어보면, 이 여자의 팜므파탈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영화를 보면, 가사에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끊어진 연결고리를 다시금 이을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여자는 남자를 가지고 고단수로 밀당을 시전한다. 남자는 자신에게 관심없는 여자에게 자신이 뭘 포기했는지 구구절절 읊어가면서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지만 여자는 그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한다. 여자가 자신을 떠나갈까 노심초사하면서도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남자의 고군분투가 애잔해 보일 때가 있다.
이미 식어버린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주어진 똑같은 상황 속에서 남자의 경우, 남자는 위선이 가미된 충성심을 요구하고, 여자는 관계의 일시성을 강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사랑했던 표식, 심장을 요구한다. 심장은 한 인간의 혼, 정신, 마음을 상징하는 기관이다. 사랑이 끝난 여자에게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낸 남자의 표정은 세상을 잃은 듯했다. 마치 혼을 잃은 것처럼. 이미 사랑이 식은 여자에게 그 남자의 혼을 상징하는 심장은 그저, 한 때, 사랑을 했던 자신과 연인을 기억하기 위한 일종의 전리품이어서였을까,
그리고 노래가사와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예의". 남자는 자신의 약혼자까지 버려가면서 어린 여자를 선택했는데, 사회적으로 매장되지 않으려면 이 어린 여자와 계속 사랑을 지속시켜 나가야할 사회적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남자에게 예의란 자신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충성심을 내보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오히려 남자에 대한 사랑이 식었음에도 가식으로라도 사랑한다고 일종의 거짓말하고 있는 자신이 더 예의있지 않냐고 맞받아친다. 그리곤 사랑이 식어버린 이 상황을 외면하려는 남자에게 굳이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야 겠다면, 너의 심장이라도 나한테 보여준다면, 유효기간을 늘려주겠다고 딜을 한다.
개인적으로 두 남녀의 각기 다른 비틀린 욕망을 예의라는 단어로 단정지으려고 하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 영화의 여자를 단순히 팜므파탈이라고만 하기에는 여자의 역할이 너무 가벼운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 진지한 척만 했을 뿐 사실은 그저 젊고 예쁜 여자의 미모에 취한 한낱 위선적인 남자를 치명적인 매력과 적당한 무례함으로 참교육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어떨까.
*본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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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우리에게 부른다
8번째 지브리 영화는 <모모노케 히메>다. 8번째까지 보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얼추 지브리 영화들의 특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주체적인 여성상을 통해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를 힘차게 이끄고, 바람과 풀, 하늘 등과 같이 자연주의 모습을 지브리 특유의 따뜻한 색채와 편안한 OST로 꾸며 세월이 지나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연출을 한다. 게다가 몇몇 작품은 단순히 자연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생태주의 관점으로 자연에 대한 감사함과 인간의 욕심으로 생긴 잘못을 독창적이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생태주의 관점과 인본주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넣어 현대에 일어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창의 있게 표현한 작품은 <모모노케 히메>라고 생각한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모노케 히메> 네이버 스틸컷
생태주의
서론에서 말했듯이 필자는 <모모노케 히메>가 인간과 자연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싸움을 독창적이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저지른 무분별한 자연 훼손으로 피해받는 숲의 수호신들이 더 이상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인간들과 싸우는 내용에서 에보시네 마을은 사철을 녹여 철을 만드는 제철 작업을 하는 마을이기에 더더욱 높은 열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왕의 명령으로 숲을 수호하는 사슴 신의 목을 베기 위해 각 마을의 사냥꾼들과 병사들이 저지르는 만행은 근대 사회에 산업 혁명으로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했던 인간의 만행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만행을 저항하는 자연의 모습도 흥미롭게 연출한다. 모로 일족이라는 거대한 흰 들개 무리와 대장 옥코토누시가 이끄는 멧돼지 집단이 인간과 전투를 펼치는데 마치 오늘날 자연 훼손으로 먹이가 없어진 서식지에서 마을 인가로 내려오는 야생 멧돼지나 들개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런 두 집단의 갈등 속에서도 중립자가 있으니 바로 아시타카다. 인간이 저지르는 자연 훼손에 대한 잘못을 따지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생각하는 인물로 후반에 옥코토누시 집단과 에보시 마을의 전투에서 아시타카는 양측을 모두 도와주고, 에보시가 끝내 자른 사슴 신의 잘린 목을 용서를 구하며 다시 사슴 신에게 바치는 모습에서 보기만 해도 숨이 가쁜 노력들을 보여준다. 아시타카가 이런 행동을 보여주는 이유는 처음 나고신이 재앙 신으로 돼서 마을에 피해를 입을까 봐 어쩔 수 없이 수호신을 죽여야만 했던 자신의 잘못을 치르기 위한 회개일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지켜야 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죽음과 태도
<모모노케 히메>는 죽음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시타카가 활과 칼로 적의 머리와 팔이 떨어져 나가는 걸 서슴없이 보여주고, 숲의 수호신인 사슴 신마저 생명을 불어넣고 앗아갈 수도 있다는 설정을 보면 생명의 순환이라는 고리에서 죽음은 당연히 다가올 수 있는 절대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걸 드러내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나오는 건 역시 인간의 모습이다. 특히 에보시 마을의 지도자 에보시가 그렇다. 자연의 입장에선 자연을 훼손하고, 무기와 화약으로 계속해서 공격을 해오는 일종의 테러집단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에보시 마을 주민의 입장에서는 사철을 녹여 철을 만들며 여성들까지도 일자리를 만들어준 은인이자 마을의 현자와 다름없는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 때문에 두 집단의 중립자인 아시타카는 에보시를 죽이는 거보단 에보시를 챙기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에보시가 저지른 잘못이 있기 때문에 목이 잘린 사슴 신의 폭주 속에서 목이 잘린 모로가 최후의 일격으로 그녀의 팔을 앗아가는 공격을 한다. 죄에 대한 벌을 내린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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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광복절에 개봉한 <오펜하이머>가 벌써 70만명을 돌파했다고 하는데요!
한국인들의 크리스토퍼 놀란 사랑이 대단합니다..! 반면 정우성 배우의 첫 연출작 <보호자>는 언론과
국내 감독들의 호평에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영화, OTT소식 같이 알아볼까요?
<보호자> 박스오피스 7위, 이틀 내내 부진한 성적
배우 정우성의 연출 데뷔작 <보호자>가 흥행 부진의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말에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오펜하이머>에 관객이 몰리면서 <보호자>는 지금까지 5만여 명의 관객수를 기록했고, 현재 추세라면 20만 명도 채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오펜하이머> 첫 날 55만명 1위
한국인이 사랑하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공개 첫 날인 광복절 휴일 5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여름 극장가 선두주자였던 영화 <밀수>의 오프닝 스코어 31만 명을 뛰어넘는 놀라운 흥행 저력을 실감케 합니다. 또한 이 수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의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갈아치운 성적이기도 합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7일 만에 관객 200만 돌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 7일 만에 누적 관객 2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김숭늉 작가가 2014년에 내놓은 웹툰 <유쾌한 왕따> 2부인 <유쾌한 이웃>이 원작으로 연출은 <잉투기> <가려진 시간>등을 만든 엄태화 감독이 맡았습니다
디즈니+, 가입자 수 감소 속 가격 인상
디즈니플러스 구독자 수 감소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가격을 인상하고, 비밀번호 공유 단속에도 나섰습니다. 월트디즈니는 오는 10월12일부터 광고 없는 디즈니플러스의 구독료를 기존 요금에서 3달러 추가한 월 13.99달러(약 1만8400원)로 인상합니다. 디즈니플러스는 지난해 12월에도 가격을 월 7.99달러에서 월 10.99달러로 올린 이력이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 걸작 10편 극장상영
전설의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을 아트나인에서 16일부터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2023 찰리 채플린 특별전’ 행사에서 영화 <키드> <파리의 연인> <황금광 시대> <서커스>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살인광 시대> <라임 라이트> <뉴욕의 왕> 총 10편이며
오는 31일까지 진행됩니다.
허진호 감독 <보통의 가족> 토론토국제영화제 진출
영화 <보통의 가족>은 서로 다른 신념의 두 형제 부부가 우연히 끔찍한 비밀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토론토 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받았습니다. 허진호 감독, 설경구·장동건·김희애·수현 등의 배우들이 토론토 국제영화제 참석을 확정하며 영화제에서 최초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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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 봄의 공기로 꽉 채운 사랑
다시 다가온 봄을 축하하며 안판석 감독의 <봄밤> 을 꺼내본다. 안판석 감독은 <하얀거탑>,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 다수의 히트작을 보유하고 있는 드라마/영화 감독이다. 특히 김은 작가와 함께한 드라마에서는 연애 초의 설레는 분위기를 계절의 단상과 함께 유려히 담는데, 이런 연출방식은 안판석표 멜로만이 주는 특유의 설레임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안판석표 멜로의 설레임과 몰입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김은 작가의 대사, 이남연의 음악, 이국적인 수록곡 등 여러 공신이 있겠지만 본 포스트에서는 안판석 감독이 카메라를 다루는 방식을 중심으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대부분의 드라마 최근작들은 깔끔한 배경 오디오와 많은 수의 샷으로 씬을 구성한다. <봄밤>은 특이하게도 그와는 정반대의 방식을 택한다. 가감없이 드러나는 배경소음, 간소하고 호흡이 긴 샷구성, 그리고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16:9의 화면비까지.
<봄밤> 속에서 카메라는 대부분의 시간 인물들의 감정을 관조할 뿐,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거나 이야기 전개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런 연출의 방식은 극의 초반부에 두드러진다. 미디움샷~익스트림 롱샷으로 구성된 롱테이크 안에서 인물들은 컷의 방해 없이 대화를 나누고 움직이며, 이는 인물 간 다이내믹의 전달을 극대화한다.
인간의 대부분의 몸짓은 무의식에서 비롯되기에, 때로는 표정보다 우리의 몸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안판석의 연출은 롱테이크와 넓은 크기의 샷에서 드러나는 배우의 몸의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차마 숨기지 못한 인물의 속마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인물의 비언어적 표현을 관조함으로써 감정선과 인물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포착하는 연출은 <봄밤> 특유의 여백을 빚어낸다. 유독 긴 대사 사이의 쉼표와 와이드한 구도 속에서 인물과 어우러진 '배경' 이 빚어내는 여백은 시청자들에게 화면 속 계절의 공기마저 체험하게 만들며, 안판석 드라마 특유의 입체적 질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안판석 감독의 연출은 결국 드라마란 '우리 주변에 즐비한 삶의 단면을 그린 매체' 임을 깨닫게 만든다. 삶에 화려한 카메라 무브먼트나 유려한 편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온전히 우리들의 감각과 상대와의 다이내믹으로만 채워지는 하루하루를 우리는 꽉 채워 견뎌내고 받아들이며, 매순간 어떤 곳에 신경을 쏟을지 스스로 결정한다. 안판석 감독의 절제된 샷과 관조하는 카메라는 마치 우리가 삶을 인식하는 방식을 화면에 충실히 복사한 듯 하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대화의 풍경 속 '어디를 바라볼지' 선택권을 부여하며, 시청자들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듯 자연스레 드라마의 이야기 속에 녹아들게 한다.
가끔 치고 들어오는 타이트한 샷 (CU, ECU)이 전달하는 감정의 파급력이 더욱 큰 것은 덤. 멀리서 가만히 인물들을 바라보던 카메라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순간, 시청자들은 속절없이 인물의 감정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심장소리를 닮은 OST, 애정해 마지않는 레이첼 야마가타의 허스키한 목소리, 이남연의 마법같은 스코어, 김은 작가의 직설적인 대사, 그리고 안판석 감독의 연출.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봄밤> 은 타인에게 속절없이 빠져들던 어떤 순간의 설렘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 봄밤은 넷플릭스, 왓챠에서 감상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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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다섯 번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개봉 전부터 높은 예매율을 자랑하고 있는 <범죄도시3> 부터
김선영 X 이윤지의 <드림팰리스> 까지!
다채로운 이번주 개봉작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범죄도시3
THE ROUNDUP : NO WAY OUT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개요: 범죄, 액션 | 대한민국 | 105분
감독: 이상용
출연: 마동석, 이준혁, 아오키 무네타카, 이범수, 김민재, 이지훈, 전석호, 고규필
개봉: 2023.05.31.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대체불가 괴물형사 마석도, 서울 광수대로 발탁! 베트남 납치 살해범 검거 후 7년 뒤, ‘마석도’(마동석)는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살인사건을 조사한다. 사건 조사 중, ‘마석도’는 신종 마약 사건이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고 수사를 확대한다. 한편, 마약 사건의 배후인 '주성철'(이준혁)은 계속해서 판을 키워가고 약을 유통하던 일본 조직과 '리키'(아오키 무네타카)까지 한국에 들어오며 사건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가는데... 나쁜 놈들 잡는 데 이유 없고 제한 없다. 커진 판도 시원하게 싹 쓸어버린다!
CINE PICK!
2017년 '범죄도시', 2022년 '범죄도시2'로 이어진 '범죄도시' 시리즈
세 번째 영화 <범죄도시 3>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천만 영화를 달성한 <범죄도시 2>를 만든 이상용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마동석과 함께 이준혁·이범수·김민재·이지훈·전석호·고규필 등이 출연하고, 일본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가 출연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라이드 온
Ride On
© (주)NEW
개요: 액션, 코미디, 드라마 | 중국 | 126분
감독: 래리 양
출연: 성룡, 류 하오춘, 곽기린
개봉: 2023.05.31.
배급: (주)NEW
시놉시스
한때 잘 나갔던 전설의 스턴트맨 ‘루오’(성룡). 유일한 파트너마 ‘레드 헤어’가 경매에 부쳐질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소원했던 딸 ‘바오’(류호존)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바오’는 자신의 변호사 남자친구 ‘미키’(곽기린)와 이를 해결하고자 하고, 조금씩 ‘루오’에게도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루오’가 ‘레드 헤어’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콤비 액션 영상이 SNS를 통해 화제를 모으게 되고, 유명 영화에 참여할 기회까지 찾아오는데…! 스턴트 생활을 청산하길 바라는 딸 ‘바오’와 인생 역전의 기회에서 고민하는 ‘루오’. 과연, 그는 가족과 커리어를 모두 지킬 수 있을 것인가?!
CINE PICK!
세계적인 액션 배우 성룡의 귀환! '루오'(성룡)과 스턴트마 '레드헤어'의 코믹 팀플레이어를 그린 영화로 세계적인 액션 스타 성룡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국에서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중국의 라이징 스타 류호존과 관기린이 함께 참여해 유쾌한 케미를 기대케 한다.
드림팰리스
Dream Palace
©인디스토리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12분
감독: 가성문
출연: 김선영, 이윤지, 최민영, 김용준
개봉: 2023.05.31.
배급: 인디스토리
시놉시스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과 ‘수인’은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싸운 사이다. ‘혜정’은 합의금을 받고 싸움을 멈췄지만, ‘수인’은 다른 유가족들과 아직도 농성 중이다. 남편 목숨 값으로 분양받은 아파트 ‘드림팰리스’에서 새 삶을 시작한 ‘혜정’은 ‘수인’에게 새 집을 꿈꾸라고 부추긴다. 처음엔 단칼에 거절하던 ‘수인’도 어느새 ‘드림팰리스’를 꿈꾸게 되는데… 맞잖아요? 행복은 아파트 분.양.순.
CINE PICK!
김선영 X 이윤지의 웰메이드 영화 <드림팰리스>!
남편의 목숨값으로 장만한 아파트를 지키려는 두 여자의 고군분투를 담은 소셜 리얼리즘 드라마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묵직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각본뿐만 아니라 흡입력 높은 연출력까지 주목받으며 걸출한 신예 감독의 데뷔를 알린 바 있다.
말없는 소녀
The Quiet Girl
©(주)슈아픽처스
개요: 드라마 | 아일랜드 | 95분
감독: 콤 바이레드
출연: 캐서린 클린치, 캐리 크로울리, 앤드류 베넷
개봉: 2023.05.31.
배급: (주)슈아픽처스
시놉시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가난한 집의 어린 소녀 코오트는 여름 동안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다. 낯선 환경도 잠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다정함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어느새 이들 사이엔 떼어놓기 힘든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CINE PICK!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7관왕을 석권한 '말없는 소녀'는 전 세계 매체가 앞다투어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하는가 하면, 해외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기대작!
'말없는 소녀'는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어린 소녀 코오트가 인생을 바꾸는 짧고 찬란한 여름을 보내면서 사랑받는 것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내는가를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이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Last Dance
©티캐스트
개요: 드라마 | 벨기에, 스위스 | 83분
감독: 델핀 리허리시
출연: 프랑수와 벨레앙, 라 리봇, 케이시 모텟 클레인
개봉: 2023.05.31.
배급: 티캐스트
시놉시스
사랑하는 아내를 갑자기 잃고 홀로된 제르맹은 자식들의 지나친 걱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시간표까지 짜서 자신을 돌보는 자식들의 극성에 시달리던 제르맹은 아내와의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몰래 현대 무용단에 입단한다. 그의 어설픈 몸짓은 뜻밖에도 무용단을 이끄는 세계적인 무용가의 관심을 끌게 되고, 급기야 공연을 불과 4주 남기고 제르맹을 주역으로 한 새로운 안무가 만들어진다. 한편, 공연 사실을 비밀로 하고픈 제르맹의 행동은 그를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CINE PICK!
제75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 <사랑하는 당신에게>. 현대 무용을 통해 이별의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세계적인 무용가 라 리보트와 생애 첫 현대 무용에 도전한 제르맹의 유쾌한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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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기록과 역사의 경계에서 풀뿌리 기억을 말하다.
시놉시스
호루몽: ‘버리는 것'이라는 어원을 가진 곱창구이의 일본 말. 도축하고 남은 쓰레기 내장을 주워다 먹은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간 한국인들. 일본인들은 내장을 주워다 구워 먹는 모습을 보며 멸시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사랑하는 음식이 되었다. 호루몽은 일본에서 살아온 자이니치에게 삶과 역사이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이일하
출연: 신숙옥, 케이코
리뷰
역사학과 고고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과거 사건을 추론하는 방식에 있다. 고고학이 토기나 건축물, 뼛조각 등 물질적인 흔적을 바탕으로 과거를 추론한다면, 역사학은 기록된 문헌에 기반하여 과거를 탐구한다. 교육과정은 물론이거니와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훨씬 더 친숙한 단어는 역사다. 달리 말해 인간은 대부분 기록에 의존하여 과거를 재구성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기록할 권한을 지닌 자는 언제나 힘 있는 자였으며, 그러므로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쉽게 스러졌다. 그것이 21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가능해진 풀뿌리 기억의 정의다. 역사 속에 미처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 망각된 사건과 잊힌 기억들. 그리고 이름없이 쓰러진 사람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관동 대지진 당시 사망한 조선인의 수는 231명이지만,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독립 신문 특파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각지에서 6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러나 일본어를 못하는 조선인 여성을 묶어놓고 트럭으로 깔아뭉개 죽였다는 생존자의 증언이 존재함에도 이제와서 정확한 피해자 수를 집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어디서,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뿐이다. 다만 그들은 조선인이라서 죽었다. 이름도, 무덤도, 기록도 없이.
<호루몽>은 러닝타임 내내 자신의 역할을 주인공인 자이니치 3세, 신숙옥의 목소리를 빌려 천명한다. DHC TV와 명예훼손 재판을 추적하는 이 영화의 목적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기록이 없어 한국인도, 일본인도, 심지어는 북한 사람도 될 수 없었던 자이니치들의 삶을 지켜본 그로서는 본능적으로 기록 없는 역사의 서러움을 체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신숙옥은 오키나와 평화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소위 우파 논객들의 발언을 일본 법정의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소송을 시작한다. 그러나 풀뿌리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참혹했다. 신숙옥은 이 사건으로 가족들이 공격 받을까 봐 거의 연을 끊다시피 살았고, 그 자신도 만연한 협박과 미행 때문에 도망치듯 독일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자이니치와 우익, 일본인과 조선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이러한 구분선의 틈새에 사는, 또는 살았던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이러한 구분선 자체를 지울 수 있음을 말한다. 신숙옥은 독일에 있는 동안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한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따라 마시며 오직 자이니치만을 위해 싸우는 대신 일본의 공식적인 기록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연대를 택한다. 마지막 대법원 재판에서까지 일본 사회는 신숙옥을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또는 조선학교(일본에 있는 북한계 민족학교) 출신으로 규정하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정체성이 그렇게 단순하게 네, 아니오로만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기꺼이 똑같이 억압받는 풀뿌리 기억들을 위해 맞서 싸운다. 단 하나의 들풀은 바람에 쉬이 쓰러지지만, 땅 속 뿌리로 단단하게 얽힌 들판은 짓밟히고 짓밟혀도 또다시 새싹을 틔울 수 있기에.
실제로 자이니치나 한국인에 대한 혐오 감정이 얼마나 만연하냐는 관객의 질문에 신숙옥은 영화 속에서 열정적으로 자이니치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여중생이 사실은 BTS의 팬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일본 내 K-POP 및 K-Drama의 인기와 혐한 감정은 절대 배타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너와 나를 구분지으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그들의 혐오는 모순 위에 세워진 모래탑과도 같다. 그래서 신숙옥은 그 모든 원색적인 비난과 협박 속에서도 한 걸음 더 내딛기를 멈추지 않는다. 일본 사회의 아주 작은 양심이라도 함께 손을 잡고 전진한다면, 그것이 비단 5mm에 불과할 지언정 다음 세대를 위한 전진의 발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호루몽>을 보는 내내 영화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는 근대 러시아 영화인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관객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현실의 일부분을 잘라내어 확대하는 돋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호루몽>은 영화의 또다른 가능성을 외친다. 대 생성형 AI의 시대에, 영화는 망각된 자들을 위한 기록으로서 역사,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상영스케줄
2025.05.01(목) CGV 전주고사 3관 14:00 (상영코드:125)
2025.05.03(토) CGV 전주고사 4관 17:00 (상영코드:345)
2025.05.04(일)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10:30 (상영코드:412)
2025.05.07(수) CGV 전주고사 8관 17:30 (상영코드:721)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2025.04.30~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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