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7-09 16:45:24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원래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을 유추할 수 있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My Salinger Year, 2020
드라마 / 12세 이상 관람가 / 101분
감독: 필립 팔라르도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
꿈은 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있다. 현실이 꿈보다 매번 먼저 우릴 찾아와 문제지.
슬프지만, 현실은 늘 꿈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다. 그래서 우린 매 순간 현실과 꿈 사이에 표류하면서 안전지대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현실도, 꿈도 모두 포함된 이상적인 공간. 그 공간을 단 한 뼘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혼을 팔아도 좋을 만큼 꿈은 우리에게 절실하며 애틋하다. 꿈꾸던 시절이 곧 '나'의 찬란한 인생의 한 겹이며, 그 투명하고 얇은 겹이 하나둘 겹쳐지면 앞으로의 나를 예견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니까. 현실에서 꿈꾸는 일은 언제나 가치 있다.
조안나의 꿈은 뉴욕에서 시작된다. 그것도 아주 즉흥적으로.
남자 친구에게 버클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일방적인 말에서 왜 활기찬 희망이 느껴지는 걸까. 그렇다, 그녀는 작가란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을 선택했다. 싸구려 아파트에 살면서 카페에서 글 쓰는 유명 작가들의 노선을 경험하기 위해, 진정한 작가는 바로 그런 사소하면서도 운치 있는 환경에서 탄생한다는 학습된 환상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라면 갖고 있는, 특별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조안나에겐 그게 결정적으로 필요했다.
조안나는 작가 지망생이란 신분을 숨긴 채 전통 깊은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마가렛의 첫 번째 업무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샐린저에게 온 편지를 빠짐없이 읽고 정해진 형식에 맞춰 답장하는 일. 첫 만남에 딱 잘라 작가 지망생은 비서로 뽑지 않으며 오로지 내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마가렛의 말에 조안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마가렛의 비서가 냉정하다 못해 서늘한 직업이라 느껴졌지만, '작가의 세계에 다가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기에 만족했다. 그러니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일도 자신의 글쓰기에 분명 좋은 영감을 줄 거라 막연하게 여겼던 그녀였다. 아주 긍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독자들의 편지를 분쇄기에 넣을 때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을 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원초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짓밟고 무시하고 있다는, 나아가 '작가'로서 독자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독자인 동시에 작가였기 때문이다. 정해진 양식으로 독자에게 답장하는 일은, 독자가 존재함으로써 살아 숨 쉬는 작가로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정말 못 할 짓이었다. 그때부터 조안나는 마가렛이 준 임무를 말도 안 되는'허튼소리'라 명명한다.
그러나 조안나는 새내기였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을 것을 과감히 선택했으나 사회생활이라 말하는 사회 구조의 한 일원으로서의 경험이 부족했다. 자신의 뚜렷한 기준 갖고 마가렛의 비서로 일하는 건 나쁘지 않은 자세였지만, 그녀는 직원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왜 작가 에이전시에서 독자에게 똑같은 편지 형식을 고수하는지, 왜 소속된 작가의 작품을 '감상'이 아니라 '판매'에 중심을 두는지, 왜 슬러시 파일(개인 출판사가 없이 활동하는 작가들의 원고)을 대부분의 헛소리로 평가하는지... 조안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고 강압적이며, 열정적인 마음을 식게 하는 부정적 시선만을 눈여겨봤을 뿐이다. 그녀는 작가 에이전시가 지금까지도 그런 메마르고 인정머리 없는 감성을 고수하고 있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직원으로서 말이다.
조안나가 못 박은 허튼소리는 법률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수많은 경험과 데이터가 쌓아 올린 최소한의 울타리이자, 가장 안전한 지침이었다. 답장 하나를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의 처지를 '비서일 뿐'이라고 깎아내렸지만, 애석하게도 조안나는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비서'가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해야 할 일을 잘 해냈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히란 말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킬 길이 있다면 바꾸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는 말인데, 다들 알다시피 뭐... 그게 어디 쉽나. 다 실수를 해봐야 아는 거지.
고심하던 조안나는 결국 회사의 타자기를 훔쳐, 허튼소리 대신 자신의 이름을 쓰고 독자에게 정성스럽게 답장한다.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기둥처럼 받쳐주던 관계들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새로 사귄 남자 친구(돈)와의 관계, 냉정한 사장 마가렛과의 관계, 전 남자 친구(칼)와의 관계 마지막으로 내 꿈과 내 현실의 관계까지. 귀중한 관계들이 하나씩 엉키면서, 그녀는 자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드는 샐린저의 전화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또 반응한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내가 뭘 하려고 했었더라?'
점차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언제부터 제멋대로 선을 넘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감정이 확 솟잖아요!'라 소리치던 독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답장이 기계적인 편지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불이 꺼지기 시작한 관계는 다시 보살피고 필요 없는 관계는 단호히 잘라내면서 마침내 "그들의 편지가 저를 바꿨죠."라고 읊조릴 수 있게 된다. 과거의 나를 책임질 줄 아는 '내일의 조안나'가 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자기만의 속도로, 또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매력이 폭발하는 지점이다.
자기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즐겁게 춤추고 뛰어다니며, 끝까지 나를 잃지 않는 힘까지 갖게 된 조안나.
이제 그녀는 샐린저의 외투에 몰래 독자들의 편지를 넣어버리는 걸 들켜도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게 됐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도 마가렛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듣는 사람이 됐다. 그녀는 처음 뉴욕에 눌러앉으면서 평범한 사람이 되기 싫다 말했었다. 반드시 특별해지고 싶다 했다. 하지만 더는 자신이 평범하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됐으며 이를 불안해하지 않게 됐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나를 이끌어낼 방법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린 언제든 특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 평범하다는 말속에 잠시 나를 위로하고 돌보는 거지.
조안나,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자기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지금도 열심히 꿈꾸고 있는 자들을 위한 작품이다. 조안나를 통해, 꿈을 위해 현실을 이용하는 당차고도 용기 있는 자의 현재와 현실과 꿈의 괴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을 구현해낼 줄 아는 자의 미래를 모두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긴 여운을 남기는 좋은 응원이 될 것이다.
현실이든 영화든 당연한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당연하지 않은 게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처럼, 조안나처럼, 앞으로의 우리처럼, 그리고 오늘의 나처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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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없는 갈등은 없다
지금 우리 학교는
줄거리
과학 선생님에게서 나는 수상한 냄새.
과학실에 감금되었다고 말하는 친구.
그리고, 사람들을 물어뜯는 학생들...
지금 우리 학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본 리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유없는 갈등은 없다
숨은 의미 찾기
드라마 내에서 좀비 사태가 발발한 가장 큰 원인은 ‘학교폭력’이었다.
아들이 왕따를 당하며 고통받는 것을 보기 힘들었던 이병찬이 아들에게 좀비 바이러스를 주입해 그를 좀비를 만들어 버린다. 아들과 아내는 집에서 관리했으면서, 그놈의 실험 쥐는 왜 과학실로 가져온 건지. 하여간 그 쥐에 물린 학생이 보건 선생을 물고, 응급실에 가서는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물어버리면서 좀비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사실 드라마는 전개되는 내내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각종 다양한 사회문제를 이야기한다.
임대 아파트 주민에 대한 차별적 대우, 미성년자 미혼모, 체육계 폭력사태, 대학 입시제도까지. 언뜻 보면 학교는 모든 사회 문제를 가두고 키워나가는 양식장과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했던 것은,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한 언급만 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연과 경수는 결국 화해하지 못했고, 미혼모는 홀로 공중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하리는 국대에서, 미진이는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좀비가 되어버렸고, 간신히 좀비 떼들로부터 벗어난 아이들은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이러한 산발적인 사회문제 나열을 두고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이 많다. 많을 수밖에. 지지부진한 전개는 그렇다 쳐도, 이유도 없이 이토록 많은 인물들이 낭비되기만 하는 사태에 대해 짜증이 나지 않을 시청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드라마가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고발하고자 했다면 이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명확한 주제의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논의를 끌어냈어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좀비와 사회문제에 시달리며 12화 내내 몸부림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문제들을 “어떻게” 다뤘어야 하는가가 아닌, “왜” 다뤘는가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시즌제’라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시즌 2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다. 이는 일반 방송사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전개 속도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떡밥을 던져놓고도 시즌 1에서 굳이 회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크다. 그렇게 되면 시즌 1을 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시즌 2를 기다리게 되는데, 이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낸다. 그러니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일단 시즌 1에서 엄청난 어그로를 끌어줘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일단 좀비라는 소재, 자극적이다. 웹툰 원작으로 인한 홍보효과도 확실하다. 하지만 시즌 1에서 원작대로 깔끔하게 끝내버린다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매우 아쉽다. 그러니 여기에 '떡밥처럼 보이는 다양한 갈등상황'을 중간중간 섞어서 전개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이리저리 틀어준다면? 인물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이 유발되고 문제가 터지는 와중에 시청자들은 이리저리 문제상황과 다툼에 휩쓸리며 정신을 팔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해결책을 내놓지도 않을 문제들을 나열하며 상관도 없는 문제들을 꺼내놓은 게 아닌가.
하지만 시청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서, 그런 눈속임 수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좀비 바이러스가 갈등을 조장하는 어떤 악의 세포라거나, 이러한 문제들도 생사의 기로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등의 의미만 부여했어도 이 정도로 참혹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 좀비물도 이제는 변화할 때다.
단순 재미만 추구하는 것도 때론 필요하지만,
정말 차별성 있는 좀비물을 만들고 싶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쩐지 찝찌입한 결말
감상평
원작을 봤는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전에 뜨문뜨문 봐서 그런 듯하다. 흐름을 주도하는 몇몇 인물과 특별한 상황들은 알지만, 그 외에는 전혀 모른 채로 봤다. 워낙 좀비물을 좋아하는 터라 재밌게 보긴 했지만, 이건 좀비물이라기보단 연애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애씬이 많았던 드라마.
너무 인물을 이유 없이 죽여버린다는 느낌이 많았다. 애초에 살려둔 인물이 너무 많아서 급하게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인물의 서사가 필요한데, 이놈의 드라마는 굵은 줄기는 없이 잔가지만 가득... 원작 볼 때는 분명 엄청나게 여운 남고 감동도 있었는데 드라마는 아닌 걸 보니 확실히 원작이 뛰어났던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에서 의아했다. 시즌 2로 넘어가지 않고 그냥 깔끔하게 끝냈으면 했는데 결국 시즌 1에서 마무리가 되지 않고 끝났다. 대체 폐허가 된 곳에서 또 무슨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러다가 '서울역'이나 '반도' 꼴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즌 2를 보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이 정도면 제작사에서 의도한 대로 이득 본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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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조커가 된 것일까? 사회가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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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크나이크를 보지 않았기에 조커라는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영화 <조커>를 보는 것이 많이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커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었던 한 편의 다큐와 같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조커> 시놉시스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짜 ‘조커’를 만나라!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 하지만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는 그가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조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스펙타클보다는 한 편의 다큐같았던 작품
매력적인 악당 조커.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어서 솔직히 굉장히 스펙타클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이 어째서 사회적인 제도라는 틀 속에서 악당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조커라는 인물 자체에 궁금증이 많았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좋아할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보니 집중이 잘 됐던 것은 사실이나 단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설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일이 다 설명을 해주다보니 굳이..? 이런 감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특히, 소피와의 관계가 플렉의 환상이었다는 점은 소피의 표정과 태도를 통해서도 바로 알 수 있었음에도 구디 화면에서 소피를 지우는 방식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나름 반전이었는데 그 효과가 상쇄하는 느낌이어서 안타까웠다.
결국 개인의 탓인가?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영화는 전반적으로 두 가지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문제 혹은 사회 구조의 문제 둘 중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 경계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엇던 작품이었다.
영화는 고담시의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다는 것을 뉴스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광대가 되어 일을 하지만 불량배드이 판치는 고담시에서 아서 플렉은 그들에게 된통 당하고 만다. 이렇듯 초반에는 사회구조적으로 문제가 많은 고담시를 조명하면서 구조의 영향에 무게를 실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이 될수록 아서 플렉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과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어린시절을 보여주면서 고담시의 구조적 문제는 배경으로 밀려나고 초점을 개인의 트라우마로 옮겨간다. 그렇게 개인의 트라우마로 조커가 된 아서 플렉이 시위가 판치는 고담시에서 영웅으로 추앙되면서 다시 사회 구조 속으로 편입된다.
뮤지컬 넘버의 차용
조커를 보다가 눈이 한 순간에 커졌던 장면은 지하철에서 3명의 술주정뱅이들이 아서 플렉을 향해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는 사실 내요이 남을 조롱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다. 뮤지컬 <Little night music>에서 여주인공이 20년 전 배우로서의 경력을 위해 헤어졌던 남자 주인공과 재회하면서 다시 사랑을 이어가고 싶지만 벽에 부딪히면서 부르는 넘버다. 자신을 조롱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의지하고 싶은 감정이 낭낭한 이 넘버가 영화 조커에서 남을 조롱할 때 가장 먼저 쓰인다.
이 역설에 귀가 트였고, 아서 플렉이 조커 분장을 한 채 그들의 노래를 따라부를 때는 뮤지컬 속 여자주인공처럼 자조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뮤지컬에서는 현시에 없는 어릿광대라는 존재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지만 영화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실제 광대가 되면서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조커>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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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상실을 위하여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한 영화 <로스트 도터>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많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모성'에 대한 착각
'모성 신화'의 역사는 유구하다. 인간이 언어를 구사한 이래, 우리는 끊임없이 '어머니'라는 존재를 아가페적 사랑의 원천으로 숭배해 왔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그를 귀애해 마지 않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도록 칭송 받아온 바 있다. '어머니'는 현명하고 자애로우며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불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자식만을 평생토록 바라보며 자신의 꿈마저 저버리는 자기 희생적인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사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숱하게 남아있는 이러한 '모성 신화'에 대한 숭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릿적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성애'는 타고난 것이므로 아이를 낳기만 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터득될 것이라고.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세상의 어느 동물인들 없으랴마는, 인간들이 오래도록 쌓아온 '모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뭍 주장들과는 상반되게도, 다분히 개인의 본능과 욕망을 인위적인 방식으로 억압하고 제약함으로써 '만들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 사회의 '어머니'들은 단순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만인의 인정을 받는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소리다.
올리비아 콜먼 주연의 <로스트 도터>는 이러한 모성 신화의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2. '엄마'라는 이름의 족쇄
레다는 일견 성공한 중년 여성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이탈리아어문학 교수로 일하고, 홀로 며칠씩 해변이 딸린 리조트에 휴가를 올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의 소유자다. 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는 품위있고 고상하다. 휴가를 와서까지 하루종일 육아에 시달리는 '니나'가 더 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그를 부러워하며 '당신 처럼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적하게 책이나 읽으며 휴가를 즐기는 레다와는 달리,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은 '니나'는 한시도 쉴 틈이 없다. 그의 귀여운 딸이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기 때문이다. 남편과 남편의 가족들은 저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바쁘고, 육아는 언제나 그의 몫이 되고 만다. 딸아이는 집착적으로 니나에게 매달린다. 마치 그가 제 세상의 전부라는 듯이. 제 인형에 제 엄마를 투영하고, 엄마와 꼭 같은 자리에 타투를 그리고 그를 성심껏 돌보는 딸아이의 모습은 가히 광적인 수준이다.
젊은 엄마는 눈에 띄게 지쳐 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이, 레다의 눈에 들어온다. 보지 않으면 그만일텐데, 아이의 높은 웃음 소리, 혹은 울음 소리가 자꾸만 귀에 스미고, 피로한 니나의 낯이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다.
그것은, 서로 너무나 다를 것만 같던 두 사람이 실상은 같은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레다는 니나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진 엄마'가 아니다.
그는 여느 엄마들처럼 딸들을 사랑했으나 그 처참한 육아의 현장을 숭고하게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는 못했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보채고 울고 떼를 썼다. 유일한 공동 양육자인 남편은 스스로의 커리어를 빌미로 모든 육아를 그에게 떠안겼다. 그 또한 꿈과 욕망이 있지만 그의 가정은 그것을 충족시키기는 커녕 도리어 박탈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이의 울음 소리는 사이렌처럼 귓가에 울렸다. 제 엄마와 다르게 일과 육아, 모두를 해내고 싶었던 그는 마침내 폭발했다.
'이상적인 어머니'의 틀을 벗어나 일탈을 감행한 것이다. 레다는 부도덕해졌다. 육아로 인해 채 완전해지지 못했던 논문은 저명한 학자와의 하룻밤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잠시나마 육아의 현장 밖에서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펼친다. 그것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엄마'가 아닌 '사람'인 레다는 훨씬 생기 있고 사람다웠다. 그러나 그 부정한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날, 레다는 비로소 깨닫는다. 이 집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한, 자신은 그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또 떠나면 아이들은 네 어머니에게 맡길 거야.
레다의 남편은 말했다.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남편은 처음부터 그의 '공동' 양육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육아는 두 사람 모두에게 끔찍했을테지만, 남편은 그것을 또다른 '어머니'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고자 했다. 마치 본래 제 일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그래서 레다는 딸들을 떠났다. 무책임해졌다. 그 족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을 떠나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 ...라는 이야기였다면 무정할지언정 레다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레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애들이 보고 싶었던 그는 끝내 몇 년만의 일탈 끝에 그들의 품으로 돌아갔노라고 고백한다. 그는 끝내 육아에서 해방되지 못했고 젊은날 저를 괴롭히던 육아의 단면들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토록 그를 괴롭힌다. 그렇다, 마치 채 떼어내지지 않는 혹이나 종양처럼 말이다.
이런 레다가 '엄마'라는 비슷한 처지의 니나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레다에게 '니나'는 자신의 과거의 단편과도 같다.
3. '엄마'를 훔치다
두 사람은 '니나'의 딸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가까워진다. '니나'는 딸을 찾아준 '여유로운 중년 부인'인 레다를 기꺼워하고, '실은, 엄마로 산다는 게 너무나도 지치고 괴롭'노라고, 차마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런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제 눈 앞의 상대가 바로 그를 이번 휴가 내내 괴롭게 한 사건의 원흉이라는 점이리라. 니나의 딸은 아끼던 애착 인형을 잃어버려 몇 날 며칠 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그 인형을 훔쳐간 이가 바로 '레다'였던 까닭이다.
부족할 것 없는 레다가 왜 하필 아이의 인형을 훔쳤을까? 그것은 이 영화에서 '인형'은 '엄마'를 투영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레다도 딸인 '비앙카'가 어릴 적에 제가 소중히 여기던 인형을 선물한 바가 있었다. 그는 제 딸에게 말했다. '자, 내 소중한 인형이야. 이게 이제부터 네 엄마라고 생각해.'라고. 소중하게 돌보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몇 시간 후 인형의 꼴은 처참했다. 온 몸에 낙서가 그려져 있고 만신창이가 된 인형의 모습은 시종 아이에게 시달려 망가져 가는 레다 본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니나의 인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니나의 딸 역시 인형에게서 제 엄마인 니나를 본다. 아이는 한시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듯 엄마를 비춰보는 인형 역시 제 품에서 떨어트려 놓지 않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를 귀애하듯 인형을 귀애한다. 인형은 망가져 간다. 레다의 인형이 그러했듯이.
레다가 인형을 훔친 것은 어쩌면 이러한 까닭에서인지도 모른다.
레다는 아이에게서 '엄마'를 빼앗고, 빗질하고, 옷을 갈아 입히고, 뱃속 깊숙이 채워진 구정물과 벌레 따위를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아주 소중하게 찬장에 넣어두고 그것을 보살핀다. 그러나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는 불안해진다. 아이는 끊임없이 '엄마'를 찾아 헤메고, '엄마'는 다른 무엇(예컨대 다른 인형)으로도 대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형은 본래 제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레다가 결국은 제 딸아이에게로 돌아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는 그럼에도 엄마이기 때문에. 그 견고한 '어머니'라는 이름의 족쇄를 그럼에도 차마 끊어내지 못했으므로.
니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영화가 보여주는 그의 많은 면모는 레다의 과거와 무척 닮아 있다. 레다가 제 딸인 비앙카들에게 결국 돌아갔던 것처럼 그 역시 그 지긋지긋한 독박 육아의 세계를 차마 박차고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부정을 저지를지라도, 부도덕을 감내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그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 '엄마'가 되거나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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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이 영화를 떠올리느라 리뷰를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도 엄마의 딸이었고 나도 '비앙카'로서 엄마를 내 세계의 전부로 여기며 내 엄마가 '엄마답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엄마가 내 엄마이기 때문에 내 갖은 투정과 슬픔을 당연히 감당해야하노라고,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소위 '잘못된 훈육'을 했던 일을 곱씹으며 '엄마는 그래선 안 됐어'라며 당신을 비난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배은망덕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변명하자면, 그것이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고 세뇌시킨 모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성인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던지라 때때로 내게 성을 내기도 하고, 실수를 하거나 슬퍼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그래도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레다'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자꾸만 엄마를 떠올리게 된 것은 나의 엄마 역시 '모성 신화'의 피해자면서 '엄마'로 살아간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은 <로스트 도터>에 대한 분석 및 감상이자 '엄마'의 딸로서 쓰는 일종의 반성이기도 하며, 이 지독한 모성 신화의 세계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우리는 엄마에 대한 색안경을 좀 벗을 필요가 있다. 엄마는 거창한 존재가 아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인데 우리는 오래도록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곤 한다.
나는 이제 엄마를 그만 애틋해 하고 싶다. 이 세상의 엄마들이 스트레스, 경력 단절 따위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들이 엄마이기 이전에 개인으로서의 욕망과 야망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가부장 문화와 '모성 신화'가 실재하는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서 이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고, 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엄마를 꿈꿔 본다. 어제의 엄마보다는 오늘의 엄마가 더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의 엄마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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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쾌한 주먹 뒤에 자리한 일말의 씁쓸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리봉동 소탕작전 후 4년 뒤,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가 현지 영사관에 자수했으니 그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이에 베트남으로 향한 부반장 ‘마석도(마동석)'와 반장 ‘전일만(최귀화)'. 그들은 영사관에 갇힌 것을 꽤 만족스러워하며 하루빨리 한국으로 인도되기를 바라는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느낀다. 찝찝한 마음에 베트남에 자리 잡은 한국인 조폭들 사이에서 수상한 사건이 없는지 수소문하던 마석도는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손석구)'의 존재가 자수 이유였음을 알게 된다. 그는 더 큰 사달이 나기 전에 강해상을 체포하려 하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실패하고, 결국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은 과거의 인연인 '장이수(박지환)'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국으로 되돌아온 강해상을 본격적으로 쫓는다.
2017년에 개봉한 <범죄도시>는 688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역대 청불 영화 흥행 TOP3에 등극해 범죄 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쓴 바 있다. 당시 <범죄도시>는 강력한 주먹으로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한국형 슈퍼 히어로 마석도를 비롯해 그 잔혹함과 악랄함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장첸(윤계상), 깨알 같은 감초였던 장이수 등과 같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무장했었다. 통쾌한 액션과 묵직한 한 마디에서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유머는 그 매력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 형사들이 다시 한번 범죄조직 소탕에 나서며 5년 만에 돌아온 속편 <범죄도시2>도 마찬가지다. 전편의 장점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데 이어 예상치 못해 깊이까지 겸비한 <범죄도시2>는 성공적인 시리즈, 한국형 슈퍼 히어로 프랜차이즈의 미래에 청신호를 밝히는 듯 보인다.
진일보한 유머와 액션의 매력
우선 <범죄도시2>는 전편의 매력을 그대로 남기면서도, 그 매력을 보다 대중적인 형태로 탈바꿈시켰다. 일례로 전편에서 나쁘지 않은 타율을 자랑한 유머를 시작부터 더욱 강조한다. 물론 사무실에서 강력반 형사들이 주고받는 대사처럼 웃음을 노리는 게 분명한 초반 대사들은 다소 작위적인 인상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베트남으로 떠난 전일만과 마석도 콤비의 상반된 캐릭터성이 빚어내는 갈등을 풀어내는 대목부터 영화의 유머 타율은 급격한 상승세를 탄다. 베트남 영사관에서도 오픈한 마석도의 '진실의 방'이 대표적이다. 또한 8편까지 계획된 시리즈물답게 전편의 등장인물과 명대사를 적재적소에 오마주한 대목도 웃음벨로는 충분하다.
진일보한 액션도 인상적이다. 우선 로케이션과 CG를 통해 구현해낸 베트남이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스케일이 커졌다. 또 강력반 식구들의 합이 맞아떨어지는 카체이싱 시퀀스는 자칫 간과될 수 있었던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강조해주며, 이는 마석도와 강해상 사이에서 험악해질 수 있었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무엇보다도 상극의 액션 스타일을 한 데 붙여 놓은 선택이 인상적이다. 마석도의 액션은 전편 그대로, 또 마치 <이터널스>에서 길가메시가 그러했듯이, 비교조차 되지 않는 파워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형태로 묘사된다. 유달리 강하게 느껴지는 효과음은 마석도의 주먹 한 방에 담긴 징벌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반면에 강해상의 액션은 날렵하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죄책감이나 도의를 피 한 방울만큼도 느끼지 못하며, 시신을 훼손하는 반인륜적인 행위에도 거침이 없는 그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녹여낸 날렵함이다. 다르게 말하면, 어떤 환경이든 간에 순전히 살아남겠다는 동물적인 본능이 느껴지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동물적이라는 의미에서는 표범처럼 움직이는 블랙 팬서의 액션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강해상의 액션 시퀀스는 주로 롱테이크로 이어지기에 그의 동물적, 본능적 감각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액션이 유달리 맛있는 이유
이러한 액션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더 거대해진 마석도와 달리 분량이 전작보다 15분가량 줄어든 영화의 짜임새 덕분이다. 사실 <범죄도시>는 마석도의 존재로 인해 이전의 형사물과는 사뭇 다른 볼거리를 선보인다. 이전까지의 형사물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주인공과 빌런 사이에서의 팽팽한 서스펜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에 반해 <범죄도시>는 마석도의 초인적인 힘, 빌런이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하여 범죄자를 벌하는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에 몰두한다. 이는 속편인 <범죄도시2>에서 더욱 극대화된 포인트다. 그래서 전편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범죄조직 간의 알력 싸움과 같은 요소는 전무하고, 마석도 일행의 수사 과정과 강해상의 악행만 담백하게 대비되어 묘사된다.
물론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끝날지 쉽게 예측 가능한 영화이기에, 영화의 흐름 자체가 심히 단순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마석도의 극단에 위치한 강해상의 캐릭터를 철저히 악마화하면서 징벌의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이를 극복한다. 이는 전작의 빌런이었던 장첸과 강해상의 차이점으로, 강해상에게 장첸처럼 밈(meme)이 될 여지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장첸과 강해상은 모두 철저히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범죄자를 미화시킬 여지를 간편하게 차단하고 있다. 다만 나름의 서사를 부여받아 매력적인 대사나 캐릭터성을 보여준 장첸과 달리, 강해상은 앞서 말했듯이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악행만을 자행한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전편 속 장첸(윤계상)과 위성락(진선규), 양태(김성규)는 저마다 매력이 있는 캐릭터였다. 영화 역시 악당들의 행각에 시간을 투자하며 경찰과 대결구도를 형성했다. 반면 강해상과 그의 동료에게는 그 어떤 서사도 없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활동했다는 짤막한 그의 행적을 제외하면 범죄자가 된 동기나 개인사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더 많은 돈과 피를 원하다는 것 외에 그를 특징 지을 수 있는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영화는 그의 악행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간접적인 묘사로도 그 전모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므로 강해상의 잔혹함은 더 강조되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서사의 빈자리를 온전히 액션으로 대체된 이 캐릭터에게는 이입할 여지가 전무하고, 강해상은 단지 마석도의 샌드백으로서 처절히 응징당할 때만 의의가 있다. 따라서 철저히 마석도의 활약상에 포커스를 맞춘 선택은 비록 단순하지만 의도한 효과를 120% 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로서의 <범죄도시2>
여기까지만 보면 <범죄도시2>에게는 단점도, 아쉬운 점도 없어 보인다. 성공한 전편을 넘지 못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충분히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진일보한 매력들은 이후의 시리즈를 더욱 기대케 만든다. 다만 호쾌한 주먹으로 강해상을 때려잡은 마석도의 존재와 그에게 열광하는 영화 내외의 반응은 약간의 씁쓸함도 남긴다. 특히 마석도를 한국형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할 때, 그 씁쓸함은 더욱 진하다. 왜냐하면 슈퍼 히어로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동시대의 대중들의 상실감이나 결핍을 환상으로나마 치유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어로의 활약상이 많은 공감을 사고 큰 환호를 받을 때, 그 히어로가 활동하는 사회에는 깊은 흉터가 남아 있기도 하다.
실제로 2000년대 미국의 슈퍼 히어로들은 테러가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아이언맨은 슈트를 만들어 아프가니스탄 테러 집단으로부터 탈출한 후 자기를 납치했던 테러리스트에게 복수를 가하는데, 이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이 9.11 테러라는 트라우마가 낳은 보복성 공격이었던 현실의 반영이나 다름없다. <다크 나이트> 속 배트맨의 영웅적 활약이 역설적으로 더욱 강력한 악당인 조커를 끌어들이는 것도 중동에서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미군이 오히려 ISIS와 같은 또 다른 테러 집단의 등장 원인이 되어버렸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유비라 볼 수 있다.
마석도의 주먹에 담긴 쾌감이 내심 씁쓸한 이유
그렇다면 마석도의 활약 기저에 깔린 한국 사회의 흉터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형량을 나날이 강화하는 데서 알 수 있는 엄벌주의에 대한 갈망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엄벌주의는 사회문제를 형사처벌로 대응하고, 처벌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해결되지 않는 것은 강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가해자만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해당 문제의 진실이 규명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며, 재발방지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정인이 법'의 내용 중에는 처벌 강화도 있지만, 입양아가 죽는 사건이 또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즉, 문제를 초래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범죄자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그 자체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이처럼 엄벌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법과 제도에 대한 믿음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처벌과 후속 대책이 미흡하기 때문에, 법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시스템이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의는 실현되지 못하는 듯 보이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부조리가 만연하면 누군가 강력한 힘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기를 바라는 열망과 환상은 필연적으로 강해진다. 그래서 강하면 강할수록, 그 타격감이 좋으면 좋을수록, 효과음이 크면 클수록, 강해상과 범죄자들이 아파하면 아파할수록 마석도의 주먹을 향해 큰 탄성과 환호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현지 경찰과 영사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나쁜 놈은 잡아야 한다는 사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며 범죄 소탕에 일조하는 마석도의 모습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현실에서는 국제적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열망을 채워주는 마석도의 뚝심이 주는 쾌감이 유머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에서 <범죄도시2>를 보면 마석도를 향한 환호와 응원이 자칫 변질되면 나타날 수 있는 악몽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강해상에게 납치당해 죽은 아들 '최용기(차우진)'의 복수를 하려는 '최춘백(남문철)'의 행적이다. 그는 아들의 실종신고를 하는 대신 직접 사람들을 보내 강해상을 죽이려 한다. 경찰과 형사로 대변되는 원칙을 믿는 대신 금융회사 회장인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경제력을 동원해 사적 제재에 나선다. 엄연한 피해자이지만, 그 또한 작중 도시 한복판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의 행동에 대해 마석도와 동료들의 입을 빌려 그의 선택에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영화 말미에 그가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단신을 제외하면 그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또한 법과 경찰의 시스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표출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락적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마석도의 주먹이 러닝타임 내내 화끈한 통쾌함으로 가득한 것도 사실이지만, 유달리 큰 주먹의 효과음 잔상에서 그 주먹이 필요한 이유가 남긴 씁쓸함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슈퍼 히어로인 마석도가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아닌 엄연히 형사라는 점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희망도 엿보이는 게 위안일 것이다.
<범죄도시2>는 분명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숱한 한국 영화의 속편들 중 이 작품만큼 명확한 로드맵을 지진고, 전편과 연계가 잘 이루어지며, 캐릭터들도 유지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단적으로 연초에 개봉했던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전편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범죄도시2>가 보여준 시리즈의 가능성이 영화 내외적으로 얼마나 큰 성취인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심지어 그 슈퍼 히어로가 단순히 오락으로 소비되지 않고, 속한 사회를 반추할 수 있는 거울도 되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다. 단지 앞으로 만날 마석도의 액션에서는 일말의 씁쓸함도 없이 온전히 쾌감이 깃들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다음을 기대케 하면서도, 마냥 기쁠 수 없는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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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크루즈 벌써 11번째 내한! 레전드 작품 모아보기
톰크루즈 <미션 임파서블> 밖에 모르신다구요??
톰크루즈 배우는 블록버스터부터 작품성 있는 작가주의 감독 영화에도 출연하는 올라운더 배우인데요. 7월 12일 개봉하는 <미션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아주셨습니다! 벌써 11번째 방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엄청난것 같아요 수많은 명작들을 남긴 톰크루즈의 영화들 같이 살펴봐요!
<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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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멋진 항공기술과 끝내주는 OST
탐크루즈의 전성기 외모와 그 외배우들의 훌륭한 비주얼로
1980년대를 상징하는 할리우드 영화중 하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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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역에 캐스팅된 톰 크루즈를 원작 작가는 맘에 들어 하지
않았고 캐스팅 논란까지 일었지만 개봉하자마자 미모뿐만 아니라
연기로도 ‘레스타’역을 깔끔히 소화해 개봉 후 이러한 논란은
쏙 들어가고 급기야 작가가 사과까지 했다고...
<바닐라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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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좋고 톰과 최전성기의 페넬로페 크루스와
카메론 디아즈의 케미를 엿볼 수 있는 미스터리 로맨스
"당신을 만났던 순간부터 매순간 1분 1초가 삶이 바뀌어질 수 있는
기회였다는걸 깨달았다"는 작 중 마음을 울리는 명대사.
<레인 맨>
CINEPICK
로드 무비 장르로 선과 악으로 구분지어지지 않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을 그려낸 탐크루즈. 특히 60년대의 베트남 전쟁
참패 후 혼란스러웠던 시기 영화에도 엄청난 격변이 있었는데 미국
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담고 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면서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매그놀리아>
CINEPICK
PTA 감독의 영화로 엄청난 배우들을 한 데 모아놓은 작품.
연기, 작품성 모두 인정받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제 2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작에 여럿 이름을 올린 걸작.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톰크루즈 인생 최고의 연기로 꼽기도 하는데 후반부
아버지에게 죽지 말라며 오열하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명장면이다.
<미션 임파서블>
CINEPICK
톰 크루즈의, 톰 크루즈를 위한, 톰 크루즈에 의한 영화. 톰 크루즈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작품을 고르라면 바로 <미션 임파서블>시리즈!
할리우드 액션 첩보물의 간판 시리즈 중 하나며 20년이 넘게
제작되고 있다. 언론, 대중들의 평가가 대체적으로 좋으며 시즌을
거듭할수록 작품의 퀄리티, 평가가더 좋아지는 레전드 작품.
오는 12일 개봉하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벌써 톰 크루즈의 7번째 미션입니다. 이미 수많은 미션을 성공 시키고도 어떤
말도안되는 미션이 기다리고있을지 기대가되는데요
오랜만에 태블릿은 잠시 접어두시고 방에서 나와 시원한 극장에서
팝콘도 먹고 짜릿한 액션 즐겨보는게 어떤가요?
AMY였습니다 :) 매주 수,금 큐레이션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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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이별부터 공존까지 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일부.
한국단편경쟁 6은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어내었다. <너에게 닿기를>, <작별>,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곰팡이>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시놉시스
학급반장 수진은 의도치 않게 같은 반의 청각장애인 주연을 다치게 한다. 수진은 친구들과 함께 주연을 찾아가 사과하려고 하지만, 주연은 사과를 받지 않고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뷰
여러 가지 수단으로 전달되는 말과 표정의 중요성.
반장인 수진이 같은 반 청각장애인인 주연을 다치게 했다. 그로 인해 주연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려 하지만 주연은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수진은 '수화'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도무지 전달되지 않는다. 무표정 때문일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사과를 건네고 오해가 풀리길 바랄 뿐이다.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건넨다고 해서 나의 모든 말이 누군가에게 닿는 것은 아니다.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다 알아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무언의 목적으로 인해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에게 닿는 그 순간은 어떤 ‘오해’에서 벗어나 다시 진심이 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유하는 건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작별
공선정 감독
시놉시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영주는 외상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중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영주는 치료와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해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와 작별한 지 1년째 되는 10월, 영주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하게 되었을까.
리뷰
누군가의 슬픔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굉장히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 대한 위로와 추모보다는 원인에 대한 책임이 우선시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과 추측만이 남아있다. 사회에서 수많은 슬픈 일들이 반감을 일으키는 일이 된 건 무엇 때문일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전찬우 감독
시놉시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연인의 집에 모르는 남자아이가 텔레비전을 고쳐 달라며 찾아온다.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치는 남자와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서 아이와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리뷰
두 사람이 외출한 사이, 모르는 남자아이가 집에 앉아있다.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의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이 되어 아이 엄마가 연인의 집에 찾아왔고, 아이와 다시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가 중요해서 떨어질 수 없지만 함께 할 수도 없는 사이에 대한 어떤 정의를 보여주는 영화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던 영화였다. 장면이 조각조각 연결되며 같은 시간 속 다른 대화는 더욱 희미하게 흩어진다.
곰팡이
박한얼 감독
시놉시스
30대 여자 J는 배우자의 유골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곰팡이를 밥에 올리자, 곰팡이가 스스로 움직여 음식을 찾아간다. J는 곰팡이 핀 음식을 욕조에 넣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리뷰
J의 상황이나 과거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배우자의 존재는 J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에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듯 보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검은색 자국을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J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곰팡이가 핀 음식을 욕조로 옮겨 담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 속의 자신을 담근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일까. 진짜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하는 상실의 마무리가 참으로 무섭게 여겨졌다.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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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바디 리뷰 - 영화 노바디의 4가지 감상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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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시작에 앞서...
01:21 1. 액션
03:10 2. 사운드 트랙
04:48 3. B급 유머코드
06:03 4. 떡밥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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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착하게 살고 싶었다. 참으려고 했다.
이제 나 건드리면 X된다!
비범한 과거를 숨긴 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한 가정의 가장 ‘허치’
매일 출근을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일과 가정 모두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아들한테는 무시당하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강도가 들고 허치는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당한다.
더 큰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모두 무능력하다고 ‘허치’를 비난하고,
결국 그동안 참고 억눌렀던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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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임 유어 맨> 티저 예고편
페르가몬 박물관의 고고학자 ‘알마’는 연구비 마련을 위해
완벽한 배우자를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을 테스트하는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오직 ‘알마’만을 위해 뛰어난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래밍된
맞춤형 로맨스 파트너 ‘톰’과
3주간의 특별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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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 : 인연의 시작> 메인 예고편
열두 살에 만난 첫사랑 '렌'과 '아오이'. 한눈에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어주며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함께 있어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아오이' 가족이 쫓기듯 떠나면서 헤어지고 만다. "운명의 실이 있다고 생각해" 아오이가 준 소원팔찌를 8년 동안 간직한 '렌' 어느 날 소원팔찌가 끊어지고 두 사람은 운명처럼 재회한다. 그 후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서로의 곁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있어 엇갈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