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7-15 12:18:50
7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인사이드 아웃 2> 꺾지 못하는 <탈출> <탈주>
개봉 당일 예매율 1위를 기록했지만 주말 관객수 34만여명을 동원하며 2위로 내려 앉은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국내 영화들이 <인사이드 아웃 2>를 제치지 못하고 있는데요.
7월 2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시작합니다!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인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 주연의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호불호가 크게 갈리면서 1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2위에 머물렀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2>는 누적 관객 수 76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픽사 흥행 1위에 올랐습니다.
<탈주>는 누적 관객 수 130만 명을 돌파하며 3위로 내려왔습니다. <탈주>의 누적 관객 수는 200만 명으로, 이번 주까지는 개봉작들에게 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다음 주 <슈퍼배드 4>와 <데드풀과 울버린>의 개봉으로 200만 명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북미박스오피스에서는 <슈퍼배드 4>가 1위,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공포 영화 <롱 레그스>가 2위, <인사이드 아웃 2>가 3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럼 다음주 3주차 박스오피스로 찾아뵙겠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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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정직했던 뮤지컬의 영화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와 가족의 품을 떠나 일제와의 전투에 나선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정성화)'. 몇 차례의 전투에서 패전을 맛본 후 그는 다른 동지들과 한가지 맹세를 한다.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며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이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결의한 것.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안중근은 오랜 동지 ‘우덕순(조재윤)', 명사수 ‘조도선(배정남)', 독립군 막내 ‘유동하(이현우)',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박진주)'를 만나 이토를 죽일 거사를 획책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안중근은 이토에게 접근한 독립군의 정보원 ‘설희(김고은)'로부터 이토가 하얼빈에서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는 첩보를 입수한다. 1909년 10월 26일,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긴 안중근은 이토를 사살하는 데 성공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법정에 선다.
<영웅>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아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본래 2019년에 촬영 후 2020년 3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에 개봉이 연기되었고, 3년 만인 2022년 12월에 마침내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원작이 있는 영화는 언제나 같은 시험에 빠진다. 영화의 작법과 다른 예술의 작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간과하면 욕심이 너무 과해지고, 영화로 재해석된 결과물로 인해 원작의 매력을 잃을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원작을 의식하면 그저 아류작에 불과해진다. 원작의 가치는 느껴질지 몰라도 굳이 영화로 만든 이유를 알 수 없다. JK 필름에서 제작한 윤제균 감독의 <영웅>은 후자에 부합하는 영화다. 가지고 있는 장단점 모두 원작 뮤지컬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라는 매체로 극을 옮기는 과정에서 붉어진 문제점도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영웅>은 클리셰를 남발하고 수많은 웃음과 눈물 포인트를 삽입하는 JK 필름의 익숙한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시아주의자 안중근을 조명하는 입체성
<영웅>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안중근의 의거가 목표한 바와 배경, 그리고 의의를 전달하는 기본적인 목적에 충실하다. 예를 들어 그가 의병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으며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군사 작전의 일환이었음을 강조한다. 특히 이 작전의 의의를 설명하는 데 예상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게 눈에 띈다. 흔히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독립투사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의거는 의외로 더 큰 목적을 지닌 작전이었다. 안중근은 단순히 조선의 독립을 바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협력을 희망하는 아시아주의자였다. 그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 한중일 3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협력하여 동양의 평화를 일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마치 지금의 유럽 연합과 비슷한 형태의 공동체를 이루어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의 존재감 덕분에 '아시아주의'라는 이상을 둘러싼 두 인물의 사상적 대립은 더욱 부각된다. 이토가 부르는 넘버 '출정식'과 안중근이 노래하는 '동양평화'의 대조가 단적인 예시다. 이토는 하얼빈 시찰이 "극동의 평화와 문명을 여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라면서 "평생을 바쳐왔던 꿈 아시아는 낙후되었다. 아시아는 위태롭다. 막강한 일본을 만들어 아시아를 통일하는 것. 그것이 나의 꿈, 대동아공영!"이라고 노래한다. (비록 '대동아공영'이라는 표어 자체는 태평양 전쟁 당시부터 사용되었지만) 이는 일본이 아시아를 무력으로 통합하여 서구 열강에 대적해야 한다는 제국주의자 이토의 사고를 잘 보여준다.
반면에 안중근은 "서로서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서로 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사는 것. 그게 바로 동양 평화 모두가 더불어 사는 지혜"라고 읊조린다. 현실에서 아시아주의를 실천하는 것만이 한중일 모두의 이익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던 셈이다. 즉, 안중근의 시각에서 보면 이토 히로부미는 진정한 아시아주의를 왜곡해 조선 침략의 수단으로 사용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토는 죽어야만 했다. 조선의 독립은 물론,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는 인물이기에 처단 대상이었다. 이처럼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길을 걷지 않은 덕분에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에는 강력한 당위성과 설득력이 생긴다. 평범한 반일 영화나 평면적인 프로파간다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인이나 일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일본의 일부 제국주의자가 싫다는 안중근의 말은 1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충분히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를 간과한 결정적인 실수
하지만 <영웅>의 장점은 온전히 빛나지 못한다. 뮤지컬의 배경을 확장, 확대하는 데 그친 전반적인 구조와 구성이 <영웅>의 매력을 가리기 때문이다. 거사 직전, 등장인물 모두의 감정선이 고조되는 "그날을 기약하며"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안중근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마진주 등 작전에 참여할 인물들은 차례대로 거리에 등장한 후 각자의 심경을 노래한다. 마치 어벤져스처럼 원을 그리며 노래하는 그들 주변에는 수많은 한인이 등장한다. 그렇게 그들은 다 함께 거리를 행진하면서 거사의 성공과 조국의 독립을 염원한다. 이때 영화의 카메라는 뮤지컬 관객들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노래하는 배우들의 담아낼 뿐이고, 도시의 거리 역시 뮤지컬 무대 배경이 넓어진 것에 불과하다.
분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다른 시퀀스도 마찬가지다. 오프인 시퀀스인 "단지동맹" 장면이나 또 다른 하이라이트인 "영웅" 시퀀스에서도 배경인 설원과 자작나무 숲은 그저 인상적인 배경에 불과하고, 무대장치의 확장일 따름이다. 클라이맥스인 "장부가" 시퀀스도 뮤지컬을 재현하고 카메라에 옮겨 담는 데에만 주력한 영화의 지향점을 재확인시켜준다. 이 대목에서 카메라는 교수대에 올라선 안중근을 그저 정면에서 담아내며, 사형집행을 지켜 보는 이들은 뮤지컬 객석 관객들처럼 느껴진다. 영화 관객들도 뮤지컬 관객의 연장선상에 위치할 따름이다.
따라서 <영웅>이 원작 뮤지컬 무대를 영상화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영화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영화'로서의 특이점이 없다는 점이다. 넘버의 연속으로 구성된 뮤지컬은 근본적으로 노래마다 응축된 감정이 터져 나와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도 중요하지만, 그 지점에 다다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따라서 뮤지컬 영화는 뮤지컬의 한계를 영화적 내러티브 구조나 다른 방식의 장치들을 더해 해결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웅>의 한계점은 명확하다. 어색한 화면분할이나 조악한 추격전, 하얼빈역 전경이나 설원처럼 과장된 CG의 활용 등으로는 이야기 사이 사이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 즉, 뮤지컬의 영화화에 실패한 <영웅>은 '뮤지컬' 영화일지언정 뮤지컬 '영화'는 아니다.
장점마저 퇴색시킨 수많은 의문점
결국 <영웅>은 곳곳에서 문제를 노출하며 무너진다. 노래 전후로 시퀀스와 시퀀스, 장면과 장면이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까닭이다. 안중근과 설희, 동지들의 넘버는 그들의 기개를 보여줄 뿐, 이야기 전개를 위한 디테일을 담지 못한다. 실제로 하얼빈역과 채가구역으로 나누어 작전을 준비하는 것 외에 거사를 위한 계획이나 이토의 눈앞에서 정보를 캐내는 설희의 활약 등은 자세히 묘사된다고 보기 어렵다. 일례로 설희가 민비의 죽음 때문에 이토를 향한 원한을 키웠다면, 원한 자체는 노래에 담더라도 이토에게 접근하고 그의 신임을 얻는 과정은 더 정교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하다못해 이토가 당시 일본인들도 비판할 정도로 여색을 밝히는 인물이었다는 점만 언급했어도 설희의 스토리가 더 입체적이고 구체적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대신 영화는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는 입장을 취한 채 빈자리를 윤제균 감독 특유의 유머로 채운다.
이에 더해 자기 손으로 자기 장점을 퇴색시키기도 한다. 영화는 안중근이 조선의 독립보다 더 원대한 이상을 좇게 된 이유를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그가 함경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펼치다가 크게 다치는 장면 이후로 영화의 배경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전환된다. 이 시점부터 안중근은 거리 연설에서 아시아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이토를 죽이기 위한 작전에 몰두한다. 하지만 다시 등장한 안중근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물처럼 느껴진다. 안중근이 어떻게 동양평화론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괴리감을 피할 수 없다. 변화의 연속성을 부각할 수 있는 시퀀스를 중간에 하나 추가하는 스토리텔링의 디테일이 부족한 결과인 셈이다.
스토리의 한쪽 기둥을 맡고 있는 설희를 다루는 방식도 아쉽다. <영웅>은 안중근과 동지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와 설희가 각기 한 축을 이루는 영화다. 특히 설희의 경우 단독 넘버를 두 개나 가져갈 정도로 주역인 안중근과 이토와 맞먹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런데 그녀가 다른 캐릭터들과 호흡을 맞추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설희의 비중은 조금 조절되더라도 전개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설희의 비중을 줄이고 안중근의 비중을 좀 더 늘려 주인공의 내면을 더 깊이 묘사하는 게 어떨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빈약한 스토리를 음악과 배우의 열연으로 덮는 것보다는 영화적으로 더 적절한 선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웅>은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은 무대 뮤지컬 같다는 인상을 좀처럼 깨지 못한다.
부족한 디테일이 낳은 신파
이처럼 허술한 만듦새는 끝내 감정의 과잉과 신파로 이어진다. 그래도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신파가 적절히 활용된 듯 보인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항소와 아들의 목숨을 포기하는 어머니의 아픔과 그 결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아들의 고통을 애절한 선율 속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또 지극히 인간적이고 사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아내와의 갈등과 사별은 모든 독립 운동가의 숭고함을 오히려 감정적으로 부각해 준다.
반면에 안중근을 제외한 다른 인물은 대부분 신파를 위해 희생되고 만다. 당장 진주의 오빠인 '마두식(조우진)'의 운명이나 진주와 동하의 로맨스에서는 관객을 울음바다에 빠뜨리기 위한 목적이 강하게 느껴진다. 앞서 보았듯이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디테일이 부족하다 보니 그 허술함을 신파로 대신한다는 인상이 진하게 남는다. 그러면서 정작 신파적 연출이 일관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또 다른 조력자인 우덕순과 조도선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웃음을 위해 단편적으로 활용되고 소비될 뿐 진중하게 조명될 기회를 잡지 못한다. 채가구역에서 거사를 준비하던 이들이 안일하게 작전을 철회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는 개그성 장면이 대표적이다. 안중근과 달리 법정에 선 우덕순과 조도선의 모습이 어색할 정도다.
<영웅>의 기술적 성취는 본작의 장단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웅>은 기존 한국 영화에서 시도된 바 없는 촬영 방식이 도입된 영화로 알려졌다. 촬영 현장에서 직접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 방식을 채택해 70% 이상의 분량을 현장 녹음 버전으로 담아냈다. 이 대목은 뮤지컬을 단순히 촬영했을 뿐인 영화의 본질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가상의 현실감을 살리되, 더 커지고 정제된 형태로 다시 태어난 뮤지컬 영화 <영웅>의 필연적인 장점이자 한계가 고스란히 노래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P(Poor, 형편없음)
뮤지컬 '영화' 대신 '뮤지컬' 영화를 선택한 안일함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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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와 상상을 품은 마음에 피어난 기적
“당신은 산타를 몇 살까지 믿었나요?”
산타는 연말이 다가오면 한 번씩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이다. 이 흐뭇한 주제는 의외로 열띤 대화를 만든다. 산타를 기다리며 지새우던 밤에 대한 기억, 선물을 주던 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던 기억, 산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했던 착한 일에 대한 기억 등 ‘산타’라는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존재가 자신에게 남긴 기억에 관해서 말이다.
우리가 이토록 이 주제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타가 아이들의 마음에 가져다주는 기대와 설렘,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아이의 상상력을 지키기 위한 선의, 순수함에 대한 애정, 돌아갈 수 없는 마음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 이것을 모든 사람이 공통되게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산타의 존재를 말한다.
“산타는 여러 사람에게 의미 있는 상징이오!”
크링글은 산타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한다. 산타를 믿지 않는 워커에게 산타라는 존재, 즉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이기심과 증오를 누를 수 있는 인간 능력을 상징하는 인물이죠.”
영화는 크링글의 입을 빌려 말했듯, 산타를 믿을 마음의 여유 한 줌 남기지 않은 사회는 이기심과 증오만 남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잔은 어른처럼 말하는 아이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이 없는, 아이 같지 않은 아이. 그녀는 퍼레이드의 썰매 위 손을 흔들고 있는 남자가 엄마의 선택으로 고용된 남자라는 것을 알고, 원하는 선물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엄마가 사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느 날 나타난 진짜 산타 같은 크링글은 계속해서 수잔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다. 수잔은 크링글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조금의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산타는 그런 존재다.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를 품게 하는. 그리고 기대는 사람들의 일상에 원하는 미래를 상상할 힘을 갖게 한다. 크리스마스에 트리 아래 놓인 선물을 기대하고, 이루어질 소원을 기대하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에 피어나는 작은 여유이자, 기쁨일 것이다. 그렇기에 크링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들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었다. 돈과 경쟁, 그 외의 현실은 그에게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익스프레스 백화점 직원들은 본인이 진짜 산타라 주장하는 크링글을 믿지 않았다. 그저 연기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미치광이 취급한다. 그러고는 산타를 보기 위해 모인 아이들에게 모인 아이들 앞에서 산타는 거짓이라 말하고, 폭행을 사주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크링글을 악으로 끌어내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위한 마음은, 그가 보여준 미소를 사랑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은 전혀 없다. 경쟁사를 끌어내리며 그를 발판 삼아 그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이기심과 증오, 경쟁과 대립뿐이다.
믿는다는 것
크링글의 재판에서 브라이언은 “웃음을 자아내는 거짓을 선택할 것인지, 눈물을 자아내는 진실을 선택할 것인지.” 판사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크리스 크링글이 산타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믿음’을 가진 마음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통해 유약하고 보잘것없던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힘은 바로 '상상력'이었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은 비웃음당할 일이 아니다. 그 자체로 살아갈 동력을 주는 일이다. 영화 속 산타를 믿지 않는 어른들은 자신이 진짜 산타라고 말하는 크링글을 비웃고, 미쳤다고 말하고, 심지어는 정신 병동에 가둔다. 하지만 그를 믿는 어른들과 아이들은 달랐다. 그를 믿고, 믿음이 실현되는지 기대하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를 응원하며 ‘I BELIEVE’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드리운 표정은 매우 달랐다. 검사와, 익스프레스 사장의 얼굴에는 당장의 경쟁에서 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의 다정함을 증언하는 증인들, 응원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본인의 믿음에 대한 기대와 생동감이 담겨 있었다.
냉소는 현실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미래로 나아가게 만들지는 못한다. 돈과 힘이 정의인 세상은 윤택한 삶을 보장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술을 사 먹을 수 있는 하루를.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24일 밤에 산타로부터 받을 선물을 기대하기 위해 1년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행위가 가치를 잃는다면, 우리의 삶에 어떤 선(善)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동전과 명함만 남는 세상에는 온기가 없다.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온기를 주는 행위다. 삶에서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혼자는 외로울 뿐이다. 부모들이 산타의 도움을 받았듯, 워커가 브라이언의 도움을 받았듯, 산타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듯, 타인을 믿는 다정함,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다정함은 선(善)이 다른 선(善)을 낳도록 도왔다.
믿음이 준 온기는 워커와 수잔에게도 역시 동일했다. 워커는 환상과 신화를 믿는 건 불행을 가져다줄 뿐이라며, 자신이 믿던 것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불행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도 어렸을 때는 산타를 믿었다. 하지만 살면서 믿음을 주었던 것으로부터 상처를 입었기에 그녀는 믿음을 지웠다.
수잔 역시 믿음을 지웠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상상력의 공간을 지웠다. 워커의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산물이었지만 아버지가 없는 상처를 안은 아이의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진짜 갖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없는, 엄마가 주는 ‘가능성’ 안에서만 마음을 키우는 편이 더 이상의 상처를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것들로부터 상처받고, 주변을 돌아볼 정신이 없던 워커는 크링글을 통해 잊었던 미소를 되찾는다.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어 믿고 싶은 것을 믿지 못하게 된 수잔 역시 어린아이의 마음을 되찾았다. 크링글이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에 심은 기대의 씨앗이 믿음이라는 온기를 품고 자라난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게 뭐니?’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원하는 것을 생각할 틈을, 그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키워준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믿었던 것들은 우리를 배신한다. 하지만 그 사랑과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자명하다. 사랑하고 믿는 동안 나를 채우는 행복,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것을 사랑하고 믿을 용기.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충만한 삶을 만들기에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 수잔이 원했던 집과 워커와 브라이언이 함께하는 소원이 이뤄진 모습을 보며, 기적을 만드는 연금술은 사실 무척 간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의 상상력과 그것을 믿을 용기, 이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상상한 미래 앞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ditor. H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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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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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웅>, 12월 21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현장 라이브 녹음 방식으로 배우들의
열연을 생생하게 담았다. 영화는 12월 21일 개봉을 확정하였다.
<아바타: 물의 길>, 한국 최초 개봉 기념 내한
ⓒ 네이버 영화
13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 <아바타>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이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
개봉을 한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내한한다고 한다.
2003년 화제작, 극장 재개봉
ⓒ 네이버 영화
CGV에서 2003년에 개봉한 화제작 8편을 모아 '한국영화 리덕스' 상영회를 12월 2일부터
5일까지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상영회에서는 <올드보이>,
<장화,홍련>, <지구를 지켜라!> 등을 상영한다.
황정민·염정아 주연 <크로스>, 크랭크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배우 황정민, 염정아, 전혜진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크로스>가 약 4개월간의 여정을
마치고, 지난 11월 13일(일) 크랭크업했다.
<헤어질 결심>, 청룡영화상 6개 부문 수상
ⓒ 네이버 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은 지난 25일에 열린 제43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각본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6관왕을 차지하였다.
해외
<유포리아>, 독일판 제작 진행 중
ⓒIMDB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HBO 드라마 <유포리아>가 독일에서 리메이크가 될 예정이다. 아직
캐스팅과 관련된 소식은 전해진 바가 없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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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가지 위에 남은 두터운 온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스스로 가지를 끊어내는 잎새, 마사.
- 마사를 통해 죽음을 알아가는 잉그리드
- 잉그리드가 남긴 온기
- 엔딩 결말 해석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2024)
빈 가지 위에 남은 두터운 온기
개봉일 : 2024.10.23.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7분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존 터투로, 알렉산드로 니볼라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는 친구를 통해 젊은 시절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 마사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간다.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젊은 시절엔 상상할 수 없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사의 병은 점점 깊어지고,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해달라’고 부탁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젊은 시절엔 주로 사랑, 예술을 향한 도발적이고 뜨거운 욕망과 파격적인 여성의 삶을 그리는 감독이었다.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욕망, 삶의 뿌리가 되는 어머니와 예술, 고통으로 이야기의 범위를 넓고 깊게 확장해왔다. 이젠 노년의 나이가 된 그가 만든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부당함과 남성 권력이 넘치는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가는 한 여성과 그의 곁을 지킨 따스한 여성에게 바치는 헌시이기도 하다.
이별,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삶의 불씨를 찾아냈던 전작들에 비해 <룸 넥스트 도어>는 강렬한 붉은빛과 치열함을 조금 덜어낸 미적지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영화의 끝에서 고요하게 마지막을 담아내고 그 뒤에 남겨진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눈은 여느 때보다 영별하고 다정하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스로 가지를 끊어내는 잎새, 마사
의학의 발전, 안정된 사회 등의 이유로 기대수명과 평균 수명 모두 80세가 넘어가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노화와 죽음을 피해 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직 정확히 정의되진 않았지만 우리의 몸은 보통 25세~30세쯤이 되면 노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자라나는 건 길어야 30년, 늙어가는 건 50년. 게다가 낡은 몸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다니. 살아간다는 건 참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이다.
마사는 이 부당함을 거부한다. 대부분의 사회는 환자에게 스스로 죽을 권리를 주지 않고 심장 또한 주인의 마음에 맞춰 멈춰주지 않는다. 모두가 마사가 죽기보단 병과 싸워 이겨내길 최선을 다하길 바라고 그의 심장은 지나치게 열심히 뛰고 있다. 마사는 암 환자에겐 ‘암과 싸워 이기면 대단한 것, 지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회의 시선이 따라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과 튼튼한 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마감할 계획을 세운다.
마사는 열려있던 빨간 문을 닫은 후 초록 선베드에 누운 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는 가지에서 떨어질 날만을 기다리는 시든 잎새가 되는 것 대신 스스로 몸을 털며 가지를 벗어나는 생생한 잎새가 되길 선택한다. 마사는 원색인 노란색 옷을 차려 입고 스스로 생을 마무리한다. 그 어떤 색을 섞어도 흉내 낼 수 없는, 더 분해하려 해도 분해되지 않는 고유한 샛노란 색의 옷을 입고 말이다. 이 노란색 옷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마사의 확고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평생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전쟁에 뛰어들며 치열하게 살아온 여성 마사는 투병이라는 전쟁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병이 할 일을 빼앗으며 끝내 승리를 거머쥔다.
마사를 통해 죽음을 알아가는 잉그리드
처음 카메라에 담긴 마사의 얼굴엔 밝은 빛과 그늘이 반반 공존하고 있다. 마사를 만나러 온 잉그리드는 햇빛 반, 그늘 반으로 구성된 병원 로비로 들어오고 직원의 안내를 따라 그늘진 복도 방향으로 걸어간다. 항상 인생의 밝은 면. ‘삶’만을 생각하며 살던 잉그리드는 그늘 진 복도의 끝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마사를 만나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지금껏 미지의 영역이었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간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기도 하다.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죽어가는 이인 마사와 집 밖에서 자라나는 푸른 풀이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도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기 전까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종군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봐온 마사와 다르게 지금껏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없는 잉그리드는 여전히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싶어 한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함께 숲속 집에 머물며 죽음을 준비하고 삶을 기대한다. 마사가 삶이라는 빨간 문을 스스로 닫을 준비를 하는 동안 잉그리드는 보색(반대색)인 녹색 스탠드. 즉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며 죽음이 만든 그늘을 두려워하고 내일도 우리가 살아남길 바란다.
하지만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고 잉그리드는 마사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후 경찰 조사를 마치고 마사의 딸 미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잉그리드는 2층에 올라간다. 삶만을 생각했던 자신이 머물던 1층이 아닌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했던 마사가 머물던 2층에. 그리고 그곳에 앉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죽음과 마사를 생각한다.
다음 날 잉그리드는 미셸과 함께 선베드에 누워 마사가 죽음을 결심하며 읊었던 [죽은 사람들]의 구절을 변주하여 읊는다. “눈이 내린다. 네 딸과 내 위로.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그는 열려있는 문 너머와 마사와 똑닮은 젊은 생명인 미셸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자신도 언젠가 마사처럼 죽음에 가까워질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함께 고독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마음
죽음을 앞둔 마사는 고독하다. 치료를 중단한다고 했을 때 미셸은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무심한 반응을 보였고 남편이었던 프레드는 미셸이 어릴 때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건 친구들뿐이다. 그래서 마사는 친구들에게 ‘죽음의 순간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자주 왕래했던 친구들은 모두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남에 가까웠던 잉그리드만이 마사와 함께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잉그리드는 왜 자신이 마사의 부탁을 수락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숲 속집에 머물면서도 매일 마사가 죽지 않길 바랐고 생판 모르는 트레이너 앞에서 죽어가는 친구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왜 부탁을 들어주었냐는 데이미언의 질문에 그럴싸한 답변을 하지도 못하고 스스로도 마사와 자신이 ‘죽음을 함께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잉그리드는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마사의 손을 잡고 그의 옆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다. 마사는 옆자리에 누운 잉그리드의 기척을 느끼며 슬쩍 웃어 보인다.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의 고독을 함께 바라보고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마음. 그 마음이 남기는 온기는 가히 두텁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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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썩기 직전의 수박같은 사람
이 글은 영화 [미세리코르디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마 후에 과일을 사면 맛이 없다고들 한다.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을 주고 수박 한 통을 기어이 집으로 들였다. 식칼의 끝에서 작은 파열음과 함께 쪼개진 수박의 속은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둥그런 여름 속의 한쪽에 시선이 간 것은 그 순간이었다. 타오르다 못해 녹아버리기 시작한 과육에서 들큼한 냄새가 풍겨왔으니까. 절정의 단맛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는 순간이자 이제는 썩는다 라는 표현이 더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겠지.
영화는 딱 그런 냄새를 풍긴다.
축축하고 질척거리는 경계에서 관객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등을 돌려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고 있다. 그 통에 영화가 밟고 서있는 희미한 경계선마저 지저분하게 자취를 감춘다. 영화는 그렇게 넓어졌다 불러야 할지, 혹은 영역침범 되었다 해야 할지 머뭇거리기 딱 좋은 장소가 된다. 그리고 그 속의 등장인물들은 영화 속 기후에 알맞게 익어 각자의 매력을 뽐내지만, 어딘가 퀴퀴하게 골아드는 부분도 품고 있다.
과연 어디부터 도려내야 할 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찬찬히 들여다봐도 그 시작점을 찾을 수가 없다. 손에 든 칼날의 행방은 정처 없이 허공에서 맴돌고, 눈은 다시 한번 바삐 인물들을 쫓아보지만 겨눈 칼날은 단 한 조각도 들어내지 못한다.
그때치고 들어오는 감정은 허탈함이 아닌 동질감이다. 사람이란 게 이토록 복잡한 존재이며, 과연 쩍 갈라진 단면만을 보았을 때 내가 평가해도 될 것인가.라는 생각도 함께 밀려온다. 내가 품고 있을 뭉그러진 부분에 대한 연민이 밀려오는 순간 영화 제목에 대한 이해와 등장인물들에 대한 너그러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제야 영화가 우왕좌왕하며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영화가, 그리고 인물들이 밟고 있는 것은 뱅상(장-밥티스트 뒤랑)으로 상징할 수 있는 도덕, 혹은 양심의 마지노선이었겠지. 이미 벌어진 일들이 있으니 그 앞으로도, 그렇다고 뒤로도 후퇴할 수 없이 초조해하는 마음을 안은 채 애써 발을 비비며 그 선을 지워댔던 것이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이 세계와 저 세계 모두 같은 것이었던 것처럼 보여야 자신들이 서 있는 곳도, 그리고 서 있다는 사실 자체도 합리화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은 당연히 제레미(펠릭스 키실), 마르틴(캐서린 프로트), 그리고 필리페(자크 드블레)의 식사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숨기고 묻어버린 욕망 위에서 피어난 버섯을 요리해 먹는 장면. 그리고 그 불쾌함을 삼키는 의식을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제레미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친절한 금자 씨]에서의 식사장면이 오버랩되는 것만 같았다.
똑같은 인간. 똑같은 흠. 그리고 서로에게만큼은 그 썩은 부분을 들켜도 괜찮을 것이라는 것만 같은 동질감을 느끼는 눈빛들. 집으로 돌아가면 따로 보관해 두었던 물컹해지기 시작한 수박을 남김없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내 입가에도 비릿한 웃음이 슬그머니 지어졌다.
[ 이 글의 TMI]
1. 회사에서 파는 샐러드 1만 원 돌파... 안 먹어....
2. 다들 비 피해 없는 한 주를 보내시길 바란다.
3. 브런치 멤버십 글을 써야 하는데... 하.. 시간 너무 걸려...
#미세리코르디 #알랭기로디 #펠릭스키실 #캐서린프로트 #장밥티스트뒤랑 #프랑스 #코미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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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잡은 내 손에 흉터가 있을지라도
맞잡은 내 손에 흉터가 있을지라도, <태어나길 잘했어(2022)>
필름소피_김희연
주인공 춘희는 중학생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외삼촌 가족이 사는 집에 얹혀살게 된다. 춘희는 괜한 혹 하나를 달게 되었다는 듯한 외삼촌과 외숙모의 티 나는 눈치와 구박, 동갑내기 사촌 유라와의 불편한 마찰을 뒤로하고 다락방 한 칸을 겨우 쓸 수 있게 된다. 좁은 계단을 오르면 있는 창문과 깔고 잘 이불 하나를 겨우 펼칠 수 있는 공간은 곧 춘희의 안식처가 된다. 난방도 되지 않아 옷을 껴입어야 하는 다락방이지만 나름 춘희가 꾸민 장식들로 채워지고 빛을 낸다. 처음엔 애정을 가지고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표현으로 다락방을 꾸미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더 보다 보니 애정보단 이런 곳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의지였던 것 같다. 옆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곳에서 민달팽이 한 마리를 만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등에 껍데기를 이고 있는 달팽이가 아니라 굳이 민달팽이로 연출한 이유는 민달팽이와 춘희 모두 집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옆에 자신과 비슷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아마 춘희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민달팽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쳐다보는 메인 포스터 속 춘희의 모습이 모든 것을 거스른 채 자신만의 우주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저는 좀 쩔어있어요, 땀에’ 춘희는 어렸을 때부터 다한증이 있어 언제나 손뿐만 아니라 발에도 땀이 흥건하다.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구박과 미움을 사는 이유에는 춘희의 땀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들었을 타인의 따가운 시선에 스스로 이것을 오점이라 생각하고 활활 타고 있는 불에 손을 가까이 대어 흉터를 남기기도 하였다. 어른이 된 춘희는 마늘을 까 사촌 오빠의 식당에 가져다 주고 받은 돈을 모아 다한증 수술을 하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면서 보게 된 상담 센터에서 다양한 사연과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보게 된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춘희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주황을 만난다.
주황은 어렸을 때부터 당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말을 더듬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주황에게 말을 잘한다고 말해준 유일한 인물이 바로 춘희였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제가 춘희 씨 지켜드릴게요.’라며 마음을 표현하는 주황에게 춘희는 ‘주황 씨,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에요’라고 거절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이 컸던 만큼 지켜주겠다는 주황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지할 수도 없었던 춘희의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주황의 말이 결코 쉽게 뱉은 가벼운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황은 가정폭력을 겪은 인물로 폭력과 위험으로부터 자기 자신 하나만 지키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주황이 춘희에게 지켜주겠다는 말을 꺼내기까지는 많은 생각과 결심을 거친 진심 어린 위로였다는 생각이 든다.
비 오는 날 우연히 번개를 맞게 된 춘희는 어린 시절 자신을 만나게 된다.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본인을 보는 춘희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 기대지 못하고 가라앉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따뜻한 말은 따로 있었지만 항상 말은 마음과 같이 나가지 않는다. 내가 쏘아붙인 모진 말들은 결국 나에게 돌아오고 우리는 모두 흉터를 안고 살아간다. 이렇듯 맞잡은 내 두 손에 흉터가 크게 느껴질 때쯤 이 영화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 잘 커주셔서 감사하다는 최진영 감독님의 말씀에 이 영화에도 봄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씨네랩 크레이터로서 시사회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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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 1부] 감상평 - 팝콘무비로써는 합격이지만, 어딘가 헐거운 l 아주 약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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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팀업무비의 특성상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몇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매력적인 빌런, 혹은 적대자일 것,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능력들을 최소 한 번이상 임팩트있게 연출할 것.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관이 관객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될 것. 그밖에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제가 말씀드린 이 세가지만 갖춰져도 분명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일정 부분 긍정하게 만들 수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는 어땠을까요? 오늘 영상은 스토리보다는 전체적인 감상평으로 이뤄져있으나, 리뷰의 특성상 캐릭터, 혹은 개연성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시는데 큰 무리가 없는 선에서 작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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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와로 VS 11명의 용의자 ✨ 나일강 위 여객선에서 벌어진 완벽한 살인 사건! 2월 9일,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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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존자들: 더 레스큐> 메인 예고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의 격렬한 전쟁 속에서
수없이 많은 전투기들이 격추되고,
이에 미국은 '항공구조대'를 조직,
보다 빠르게 군인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선다.
세상의 판도를 바꾼 위대한 임무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