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양남규2024-07-16 08:22:13

[탈주] 달리는 것만으로도 재밌지만, 그 이상은

영화 <탈주> 관람 후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문보다 재밌다였다. 인친분들의 평도 많이 보았고, 실제로 지인들과 대화 중에 탈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공통적으로 대부분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만났거나 최대한 빠르게 보았다면 지금 쓰는 이 리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극장을 나오며 네이버 평점은 얼마인지, 소문보다 재밌다고 느꼈으나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건 그에 대한 나만의 고민이자 리뷰다.

 

 

 

영화가 생각보다 흥미로웠던 첫번째 이유는 늪지대와 달리기전략 덕분이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주인공이 생각을 멈추거나 행동을 느리게 하는 순간은 극히 일부 장면만 존재한다. 설령 캐릭터가 침착한 태도를 일관한다 하더라도 상황 자체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약간의 움직임을 눈치채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흐름에 이탈하기 쉬운 전개였다. 주인공이 탈주하고자 숨 가쁘게 달리다가 지뢰밭 앞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인 것처럼, 영화도 동일하게 전반적으로 몰아치는 러닝타임 속에 몇몇 지뢰를 숨겨두고 지그시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략 중 늪지대라고 말한 이유도 동일하다. 늪지대에서는 달릴 수 없다. 달린다 하더라도 오히려 늪에 더 빨리 빠지는 멍청한 행동이다. 주인공이 탈주범이라는 사실을 관객은 시작과 동시에 알게 된다. 덕분에 다양한 상황에서 서스펜스와 스릴을 즐길 수 있지만, 오히려 빠른 전개와 반대하는 자체 브레이크 장치다. 관객이 이미 진실을 알고 있기에,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불안감과 무거운 압박감이 달리기를 짓누른 것이다. 스스로 발목에 쇠사슬을 묶은 죄수가 열심히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을 전략이라 판단했다. 꽤나 어렵게 결정했을 전략이었다.

 

 

 

 

두번째로 영화가 재밌었던 이유는 연출이다. 영화 내내 얼마나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느껴졌다. 남쪽으로 탈주하려는 주인공의 입장을 대변하듯 화면 자체가 세로선 보다는 가로선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눈치채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주인공의 처음 달리기와 마지막 달리기는 굉장히 대조적이고 결과에 대한 의도가 다분하다. 캐릭터들이 바라보는 방향과 시선 자체도 노골적인 수준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었다. 한예종 영화과를 졸업하신 이종필 감독님의 날카로운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감독님의 바로 전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일부분 TV에서 본 적 있으나 전체 관람을 못 했는데, 이번 작품으로 더 궁금해졌다. 다시 탈주로 돌아와 이야기를 하자면, 어딘가 유쾌하지만 무서운 연출이 능청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제훈, 구교환과 만나면서 꽃을 피운다. 아쉽게도 이 부분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부분이다. 하지만 시나리오상 두 배우가 꽤나 맛깔나는 수준 높은 연기를 선보인 것은 분명하다. 캐릭터와 캐릭터를 재창조하는 힘, 연출은 이 작품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존재한다. 앞서 설명했듯, 극장을 나오는데 어딘가 공허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밤새 나를 괴롭혔다. 언제나 그렇듯 곰곰이 생각하니, 이 공허함을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평면적 캐릭터의 한계다. 영화 모가디슈가 나름 흥행한 이유는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과 숨 막힐 듯 조여오는 압박감이 시원하게 터진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남북한 주인공 모두 이념이란 경계에서 생존이라는 공동 목표로 변하며 성격이나 행동이 입체적으로 변한다. 반대로 본 작품에서는 성격이나 행동, 목표가 변화하는 캐릭터는 없었다. 이것 또한 북한 정권의 획일성과 사고의 결핍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면 인정이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처음부터 독종이자 능청거리는 주인공과 어딘가 사이코패스 성향의 주연은 점점 익숙해지고 계속해서 더 큰 자극을 주어도 제자리에 우뚝 선 초소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죽음의 이지선다를 몇 번이고 운으로 지나가는데, 성격이나 행동의 변화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재미보다는 아이러니했다. 두번째는 떡밥은 미끼가 아니라는 것이다. 떡밥은 고기가 모이게 해주는 역할을 할 뿐, 고기를 낚으려면 바늘에 걸린 미끼를 고기가 물어야 한다. 초반부에는 작은 반전이란 떡밥을 구교환 배우님이 뿌리고, 중반부에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활약한 배우님이 깜짝 등장하며 뜬금없는 떡밥을 뿌린다. 결말부에는 다시 구교환 배우가 해외에서 만났을 인연(?)에 대한 알 수 없는 떡밥을 뿌린다. 애초에 처음부터 커다랗고 맛있는 미끼를 날카로운 바늘에 걸어두었지만, 어지러운 떡밥들 속에서 미끼는 가려질 뿐이다. 분명 쉬어 가는 타이밍도 좋지만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구교환 배우와 이제훈 배우의 과거 이야기를 다시 밟는 것이 나아 보였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필요한 서사인 피아노 형이 왜 피아노 형인지, 어린시절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으나 개인사, 가정사는 보아야 한다니.

 

 

 

이미 개봉한 국내 영화를 다 보진 못했지만, 그리 나쁘게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흥행한다면 또다시 영화제에서 수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훈 배우와 구교환 배우의 합작이 성사됐다는 점에도 만족스럽다. 작년 이맘때 영화 밀수를 관람하고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었다. 당시에 밀수를 여러 번 재차 관람하시고 좋아하시는 분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본 작품을 관람하고 그분들이 떠오르며 공감했다. 어떤 사람은 영화 전체를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영화의 특정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색감, 향기, 서사를 좋아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마케팅 상품이자 거대한 자본의 역할이 아닌 예술로 남는 듯하다. 그런 생각과 고민으로 밤잠을 설쳤다. 결론적으로 둘 중 하나는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게 내 결론이다. 

 

 

 

P.S 죽어 나가는 조연들 그리고 멧돼지

작성자 . 양남규

출처 . 네이버영화포토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