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퓨처 2
줄거리
미래에서 돌아와서 제니퍼와 감격의 포옹을 하는 순간, 갑작스레 마티를 찾아온 브라운 박사.
박사는 그들의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빨리 미래로 가자고 한다.
왁자지껄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더니, 마티가 살던 세상이 변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1985년을 바로잡기 위해, 마티는 다시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행복은 자본 순일까?
숨은 의미 찾기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마티를 보고 있노라면 혈압이 오른다. 하지만 어쩌겠어, 주인공이니 참아야지. 네가 그렇게 사고를 쳐야 영화가 진행이 되는 거지, 그렇지? 활발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마티 덕분에(?) 영화는 예측불허로 흘러간다.
1편이 타임머신으로 역사의 흐름을 유지해서 ‘미래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주력했다면, 2편은 타임머신이 만들어낸 오류를 잡아 ‘미래의 상황을 보존’하는데 주력한다. 어쨌든 꼬여버릴 뻔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2편은 1편의 빌런이기도 했던 ‘비프’의 활약으로 뒤죽박죽이 된 미래를 보여준다. 악인의 손아귀에 들어간 타임머신은 어떻게 악용되는지, 브라운 박사가 우려했던 점을 제대로 짚어낸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방영된 ‘대탈출 4’에서도 타임머신 이야기가 나왔었다. 과학자의 탐구심과 호기심의 산물이 개인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도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의 이야기가 2020년대에도 똑같이 활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타임머신으로 인류문명의 발전에 힘쓴다는 이야기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라면 타임머신이 눈앞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로또 번호를 외운다느니, 테슬라 주식을 산다느니, 비트코인을 넣는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내가 작품 속 악인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왕 살 거 부자로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돈과 행복은 비례한 것인가.
물론 부유함이 빈곤함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어쨌든 가난에 찌들어 사는 것보단 적당한 부가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맞으니까. 때로 너무 많은 부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례를 보긴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런 이야기조차 사치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유하지 않음이 곧 불행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먹고 살만큼의 돈으로도 인생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이 말은 부자면 불행하고 가난해야 행복하다,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자면 행복하다는 식의 극단적 비유가 아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든, 내가 행복하고자 하면 얼마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소리다.
1편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마티가 과거로 가기 전, 마티의 가족은 가난했다. 가난한 가족은 화목함과 거리가 멀었다. 서로를 돌보지 않으며 각자의 비전조차 없는 마티의 가족은 암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티가 과거에 다녀와서 다시 구성된 가족은 조금 달랐다. 화목하기 그지없었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부유함이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부자인 가족만이 완벽하고 완성된 형태인 것일까.
이전 리뷰에도 말했지만 마티는 가난했던 자신의 가족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자신이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애써 자신의 부모가 다시 만나도록 노력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런 가족, 처음부터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2편 역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지만, 1편에서 느꼈던 씁쓸함을 더 크게 느끼도록 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나라고 비프의 상황에서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악용하는 것은, 부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아닌 당신을 부정해가면서 부자가 되려 하지는 마라.
그것이 백 투 더 퓨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아닐까?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2015년
감상평
전에 한 번 보고 리뷰 직전에 또 봐도 여전히 질리지가 않는 영화.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 시대에 상상했던 ‘2015년’의 모습. 하늘을 떠다니는 자동차와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 말 한 마디면 척척 알아서 움직이는 가전제품,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커지는 음식, 버튼만 누르면 젖은 옷을 말려주는 기능까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과학 상상화 대회 같은 게 열리면 꼭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옛날 옛적 생각이 나면서 묘하게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달까. 우리가 상상하고 열광하고 설레며 미래를 기다리던 그 시절의 향수 말이다. 물론 2015년은커녕 2021년에도 이렇게나 불편하게 살 거라는 걸 과거의 인간들이 알면 어떨까 궁금하다. 당신들은 인간의 과학문명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아, 그리고 그런 패션은 영원히 유행하지 않아, 유행해선 안 돼.
따지고 보면 뻔하고 유치한 내용이다. 하지만 과거에 말했던 미래가 현재로 닥쳐오고 나니, 우리는 더 먼 미래를 꿈꾸고 상상한다. 2050년의 모습은 어떨까, 미래의 내가 과거에 써 두었던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는 것은 유치하거나 나쁜 게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자, 어쩔 수 없는 욕구다.
그래서 이 영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