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4-07-21 15:49:56
누구를 위한 피날레인가
드라마 '스위트홈 3' 리뷰
길고 길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시즌까지 정주행 완료하면 '스위트홈'이 달라 보일 것이라고 이응복 감독이 큰소리쳤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혹평 세례를 면치 못했던 시즌 1이 제일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위트홈'은 시즌 3까지 이어오면서 굵직한 이야기를 담아왔다. 시즌 1이 욕망의 씨앗에서 탄생하는 괴물을 선보이며 'K-크리처물'의 시작을 알렸다면, 시즌 2는 장기화된 괴물화 사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며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이 바통을 이어받은 시즌 3은 신인류의 탄생까지 다루며 최종장을 향해 달려 나간다.
동시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전 시즌에서 무리하게 확장시킨 세계관과 빌드업이 망가진 캐릭터들, 회수 없이 떡밥 뿌리기에만 치중에 둔 스토리 전개 등으로 혹평받았던 부분을 만회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시즌 3은 시즌 2에 심어뒀던 복선 회수를 하는 데에 집중했으나, 회수 방식이 마구잡이였다. 회수에만 포커싱 했는지 개연성 또한 없고, 막상 복선이 공개됐을 때에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놀라운 반전 등은 없었다.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복선들을 잔뜩 깔아 뒀는지 제작진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무리하게 확장시킨 세계관 매듭짓기 또한 허술했다. 괴물화와 다른 MH(몬스터휴먼)라고 부르는 특수감염인에 모자라서 신인류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등장했으나, 막상 '스위트홈 3'에서 비중이 크진 않았다. 신인류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은혁(이도현)의 컴백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고, MH는 편상욱(이진욱)과 서이수(김시아) 부녀 간 관계성에 묻혀버렸다.
이와 함께 등장인물들을 무분별하게 죽여나가며 급하게 마무리하는 느낌도 지을 수 없었다. 개연성 없이 캐릭터들이 퇴장하는 과정을 봐야 하는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 따윈 없었다.
시즌 3까지 다 보고 나면 '과연 이 작품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왜 스위트홈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게 된 것일까?' 등 물음표도 붙는다. 새 시즌이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결이 너무나도 달라져 같은 작품인지도 혼란스럽고, 시즌 1에서 조명했던 주요 메시지 '욕망과 인간성에 대한 고민' 또한 희석되어 간다.
아, 장점도 있다. 시즌 2에서 차현수(송강)의 적은 분량이 불만이었던 시청자들에겐 이번 시즌에선 100% 만족할 것이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원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갈망했던 이은혁, 이은유(고민시) 남매의 재회도 이번 시즌에서 그려진다. 다만, 깊이감은 없으니 이 점 참고해 주시길.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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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극장판으로 개봉예정인 <유미의 세포들>
4월 1주차 개봉예정작 시작합니다!
댓글부대
Troll Factory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한국 | 93분
감독: 김다희
출연: -
개봉: 2024.04.03.
배급: CJ CGV, 롯데컬처웍스(주)롯데시네마
시놉시스
“사랑이의 마음이 나를 웃음 짓게 했고 불안이의 걱정이 나를 나아가게 했어” 오랜 꿈이던 작가가 되기 위해 퇴사 후 공모전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유미. 완벽한 글쓰기 일정을 만드는 ‘스케줄 세포’부터 글감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작가 세포’와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린고비 세포’까지 모두가 유미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유미의 ‘불안 세포’를 점점 자라나게 하고 바비와의 흔들리는 관계로 흑화한 ‘사랑 세포’까지 세포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며 세포 마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는데…
CINE PICK!
네이버 웹툰과 드라마로 인기를 끈 ‘유미의 세포들’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합니다. 원작의 드라마판의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로커스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고, 당시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김다희 감독이 본작을 연출했습니다.
비키퍼
The Beekeeper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모험, SF | 스페인, 프랑스 | 115분
감독: 애덤 윈가드
출연: 댄 스티브슨스, 레베카 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개봉: 2024.03.27.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시놉시스
법 위에 있는 비밀 기관 '비키퍼' 그곳의 전설로 남은 탑티어 에이전트 '애덤 클레이'는 기관의 눈을 피해 자취를 감추고 양봉가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 보이스 피싱 조직으로부터 유일한 친구 '엘로이즈'를 잃게 된 그는 피의 복수를 위해 잠재웠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전 세계가 열광할 NEW 킬링 액션 유니버스가 시작된다!
CINE PICK!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각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퓨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2024년 작품으로 전세계 박스오피스 7주 연속 1위를 석권하며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비밀기관 비키퍼 요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설정으로 ‘인간병기’의 모습을 선사하며 짜릿한 액션을 보여준다 합니다.
오멘: 저주의 시작
The First Omen
ⓒ 네이버영화
개요: 공포 | 미국, 이탈리아 | 119분
감독: 아르카샤 스티븐슨
출연: 넬 타이거프리, 타우픽 바롬, 소냐 브라가, 랄프 이네슨, 빌 나이 등
개봉: 2024.04.03.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수녀가 되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된 ‘마거릿’(넬 타이거 프리).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그때, 믿음을 뒤흔드는 어둠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서서히 조여오는 끔찍한 공포가 마침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 6월 6일 6시 사탄의 아이가 태어나고, 믿음이 향하는 곳이 뒤바뀐다!
CINE PICK!
<오멘>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오멘: 저주의 시작>은 ‘666’이라는 숫자로 대표되는 악마의 자식, 데미안이 탄생한 과정을 다룰 예정이라고합니다. 미드 <왕좌의 게임>으로 주목을 받은 넬 타이거 프리와 영국의 명배우 빌 나이가 주연을 맡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키메라
LA CHIMERA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이탈리아 | 132분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
출연: 조쉬 오코너, 알바 로르와처, 이사벨라 로셀리니, 캐롤 두아르테
개봉: 2024.04.03.
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시놉시스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도굴꾼 이야기 도굴꾼 아르투에겐 땅속 유물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부의 꿈에 도취된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잃어버린 연인, 베니아미나를 찾아 헤맨다.
CINE PICK!
제 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행복한 라짜로> 영화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감독은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여성 감독으로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본인만의 창의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입니다. .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cin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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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솔한 에세이, 자기 구원의 문을 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더 웨일>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 ‘찰리’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끼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웨일>은 불편한 영화다. 엄청난 거구의 찰리가 포르노를 보며 자위하는 초반부 장면부터 그렇다. 자기 몸을 지탱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높은 칼로리를 자랑하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입에 밀어넣는 걸 보다보면 팝콘과 콜라를 내려놓고 싶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마치 베일을 하나 하나 벗기듯 찰리가 막무가내로 사는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면 그를 지켜보기가 더 어렵다.
그에게는 삶의 의지가 없다. 그는 1주일 안에 죽을 수 있는 걸 알고도 초콜릿과 피자, 치즈를 추가한 미트볼 샌드위치와 탄산 음료를 계속해서 먹는다. 그에게 폭식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거식증에 걸렸던 연인을 돕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죽이려 한. 또 이는 동성애자였던 연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세상에 분노하는 마지막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깊은 자기 혐오에 빠진 채 자기 방에 틀어박힌 그의 모습은 거북하고, 보기 불편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더 웨일> 또 한 번 대런 아로노프스키다운 영화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는 대체로 우울하다. 염세적인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기독교적 가치나 상징을 부정적으로 활용하기로도 유명하다. 평범한 구원이나 행복 대신 인간의 모순과 광기를 보여주는 게 그의 장기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 등장 인물을 인간을 환멸하는 염세주의자로 만들어 버린 영화 <노아>처럼. 얼핏 보기에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더 웨일>은 찰리와 토마스의 만남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자기혐오에 빠진 채 죽어가는 한 남성은 구원 받으려면 신을 믿으라는 전도사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한다.
지옥, 현실을 부정한 대가
하지만 <더 웨일>은 예상했던 전개와 결말을 절묘하게 빗겨 나간다. 영화는 구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더 웨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게 구원의 길이 존재한다고 선언한다. 단지 그 길이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찰리와 그의 주변 사람은 본인들이 만들어 낸 지옥에 빠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지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한다. 다 각자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 우선 찰리는 자기 존재를 부정한다. 그는 자기가 허락한 몇몇 사람(~~와 토마스)을 제외하면 자기 존재를 숨긴 채 살아간다. 집 밖으로 나서지도 않고 바깥 사람에게 자기 존재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당장 본인은 대학 강사지만, 노트북 카메라를 가린 채 줌으로 강의한다. 매일 저녁 피자를 배달시키지만, 자기 안부를 물으며 걱정해주는 피자 배달부에게 단 한번도 자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새생명 선교회 소속 전도사 토마스는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처음부터 전부 거짓말이다. 그는 새생명 선교회 소속이 아니다. 한때는 소속 전도사였으나,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선교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망쳐 나왔기 때문이다. 믿음이 강해서 찰리에게 전도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는 선교 방식이 전정으로 옳다는 걸 증명하려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찰리를 간호하는 리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찰리가 곧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찰리가 폭식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알면서도 부정한다. 음식을 한 번만 잘못 삼켜도 심장에 무리가 가는 찰리에게 리즈는 고칼로리 음식을 꾸준히 가져다 준다. 이처럼 영화 속에는 자기가 처한 현실을 부정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 가득하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자기도 믿지 않는 방식으로 남들을 도우려 한다. 찰리는 그의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에세이를 쓰라고 가르친다. 화려한 수식어를 빼고, 그럴듯한 명언도 빼고 오직 자기만의 생각과 느낌을 담아서 글을 쓰라고 한다. 정작 본인은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으면서. 속했던 교회에서 도망쳐 나온 토마스는 성경을 읽고, 신을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찰리를 설득한다. 리즈의 태도도 모순이다. 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그의 자기 파괴적 행동을 돕다가도, 그가 치료 받지 않고 병원도 가지 않으려 한다며 크게 화낸다. 오랜만에 찰리를 만난 전처 메리도 찰리와 화해하는 듯 하다가 결국 다투고 만다. 자기가 엘리를 잘못 키운 것 같다면서도, 다른 방법은 없다며 찰리의 도움을 무시해버린다. 그 결과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다 상처로 가득하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 구원을 남들에게 강요하고 있으니 진정으로 도움이 될 리가 만무하다.
진솔한 에세이의 힘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지옥 속에 남겨두지 않는다. 그들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방법이 '진솔함'이다. 본인들이 천국이 아닌 지옥에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지옥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학생들에게 에세이를 진솔하게 쓰라고 강조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찰리도 내심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엘리의 에세이를 애지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증거다. 그는 아프거나 힘겨울 때마다 소설 <모비 딕>을 비판하는 엘리의 에세이를 소리 내어 읽는다. 그 에세이는 솔직해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사실 <모비 딕>은 읽기 어려운 소설이다. 고래에 대한 설명이 매우 길게 나올 뿐만 아니라 분량도 많다. 또 여러 방면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 주제를 다루기에 난해하다. 하지만 <모비 딕>이 형편없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극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모비 딕>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에세이는 다른 사람의 평가나 관점은 의식하지 않는 매우 솔직한 글이다. 바로 엘리의 에세이가 그렇다.
엘리는 <모비 딕>이 지루하고 어려운 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신 자기 경험을 살려 소설을 읽어나간다. 그녀는 소설 속 고래를 찰리에 비유하고, 고래를 죽이고 싶어하는 애이햅의 입장에서 에세이를 써 내려간다. 어린 시절 엄마와 자기를 떠난 찰리에 대한 미움을 고래에 투영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엘리의 첫인상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는 찰리에게 상처를 주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시를 읽고 감상을 써보라는 이야기에, 엘리는 말도 안 되는 욕을 써놓는다. 찰리가 아빠로서 호소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다가, 그가 모은 전재산 14만 달러를 주겠다고 하자 찰리의 부탁을 들어준다. 찰리의 집에 와서 학교 숙제인 에세이를 쓸 때도 찰리가 추천한 시가 엉망이라고 욕한다. 또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 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심지어 SNS에 올려 그를 조롱한다.
하지만 찰리는 엘리를 다르게 본다. 이미 그녀의 에세이에서 진짜 그녀의 모습을 읽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만의 주관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엘리를 본다. 또 자기 행동 때문에 딸이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도 안다. 그래서 그는 딸의 독한 말들을 듣고서 화를 내기는 커녕 솔직함을 마음에 들어한다. 계속해서 이상한 사진을 찍는 엘리의 행동을 두고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사고뭉치 딸 엘리에게서, 찰리는 자신이 강조하던 '솔직함'의 미덕을 본다. 그래서 그것이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엘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지 못했으므로. 찰리는 앨런과 함께 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솔직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험상 솔직한 것, 자기만의 시선과 관점을 유지하는 게 삶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내심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단순하고 맹목적인 부성애가 아니다.
구원을 향해 내딛는 고통스러운 발걸음
하지만 엘리의 에세이는 찰리에게 위안을 줄지언정 그를 구하지는 못했다. 찰리가 실천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떳떳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를 실천에 옮기자니 찰리는 용기가 없다. 또 무섭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런다 한들 자기가 진짜 구원받을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약함은 피자 배달부를 만났을 때 온전히 드러난다. 매일 같이 피자를 가져다 주던 배달부는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찰리가 궁금한 나머지 호기심에 가는 척하다가 피자를 받으러 나온 찰리를 목격한다. 그는 거구의 찰리를 마주한 후 혐오스러워하며 자리를 뜬다. 이에 찰리는 미친듯이 폭식한다. 배달부의 호기심이, 찰리에겐 크나큰 불행이었고, 그의 자기 혐오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파괴적인 순간을 거치면서 찰리는 역으로 용기를 얻는다.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을 외부에 공개한 상황이 되었으므로. 솔직해질 수 있는 계기가 원치 않게 생긴 셈이다. 그래서 찰리는 노트북을 켜서 수강생들에게 제발 솔직하게 글을 쓰라며 욕설 섞인 메시지를 보낸다. 마지막 에세이 수업에서는 자신의 메시지대로 진정성 있는 글을 쓴 학생들을 칭찬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트북 카메라를 키고, 자기 모습을 공개한다.
마침내, 고래는 구원받았다
그러나 찰리가 자기 모습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엘리다. 어느 날, 찰리가 잠자는 사이 토마스와 솔직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생긴 엘리. 그녀는 자기가 교회 소속 전도사도 아니고 가족과의 불화 때문에 집에서 가출했다고 털어놓은 토마스의 이야기를 몰래 녹음한다. 또 SNS를 뒤진 끝에 그의 가족을 찾아내 연락한다. 그 결과 토마스는 마침내 가족에게 돌아간다.
혹자는 이 장면을 보면서 엘리를 배신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속사정을 어렵게 털어놓은 친구를 신고한 셈이니까. 찰리는 다르다. 엘리의 에세이를 읽어 본 찰리에게 이 사건은 다른 의미다. 자기에게 미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듯이, 엘리가 토마스에게도 동정심을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이해한다. 또 솔직함이 구원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예상과 달리 가족과 빠르게 화해하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어서 행복해하는 토마스를 보면서 더욱 확신한다. 그래서 찰리는 자기혐오의 끝을 찍은 뒤에 엘리에게 에세이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가 에세이를 읽을 때, 찰리는 마침내 깨달음과 확신을 실천에 옮긴다. 깊은 검은 화면에 스스로를 가뒀던 고래가 드디어 밝은 세상을 마주하고 일어나 걷는다. 그렇게 고래는 자기 혐오를 버리고 구원 받는다.
더 나아가 진솔함이라는 깨달음은 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구원의 문을 열어준다. 자기에게 진솔해진다는 것은 곧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깨닫는다는 의미다. 이는 타인에게 간섭하고, 구속하고, 원하는 바를 강제하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후반부에 리즈는 과거 찰리가 자기 오빠인 앨런을 도와주었듯이, 자기도 찰리를 돕고 싶었다고 말한다. 설령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오빠 대신 애정을 쏟을 사람으로 찰리를 고른 셈이다. 동시에 자기 욕심을 직시하면서 찰리와 화해한다. 그녀는 찰리가 병원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그가 병원비를 낼 수 있는 돈을 엘리에게 주겠다고 결정하자 크게 화를 낸 것이 모두 본인의 욕심과 바람 때문이었다고 인정한다. 이처럼 <더 웨일>은 찰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있던 모든 이들이 문을 열고, 스스로 채운 족쇄를 마침내 풀어버리는 구원의 이야기다.
찰리의 집이 인상적인 이유
물론 <더 웨일>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자아 성찰의 이야기. 이는 누구에게나 익숙할만한 메시지다. 그러나 <더 웨일>의 진가는 메시지에만 있지 않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찰리의 집을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몇몇 대목을 제외하면 모든 장면은 찰리의 집 안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집이 매우 좁다보니 찰리의 거구와 대비를 이루면서 유달리 답답하고 음울하다. 덕분에 이 공간에 담긴 여러 의미가 잘 드러난다. 찰리를 감싸고 있는 죽음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고, 이 집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의 트라우마나 상처가 더 강조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고해소 같기도 하다. 자기 밑바닥을 마주하면서 진실을 깨닫는 공간도 되기 때문이다.
촬영 방식 덕분에 공간적 특성은 더 잘 살아난다. 1.33:1의 화면비를 선택한 게 대표적이다. 가로로 좁은 화면비에서 좁은 공간과 거구의 몸은 전체 화면을 거의 다 차지한다. 그 결과 공간의 분위기와 다층적인 의미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클로즈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협소한 공간을 주된 배경으로 삼고 있기에 영화는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때 클로즈업 컷은 대화의 흐름에 따른 각 인물의 감정선 변화를 보여주기에 적절하다. 인물의 표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공간 미술, 촬영, 각본에 이르는 모든 영화적 선택을 최선의 결과로 엮어낸다. 찰리는 사실상 영화의 모든 장면에 등장해 혼자 힘으로 감정 굴곡이 심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다. 브랜든 프레이저는 이러한 캐릭터가 버겁지 않고, 그의 심경 변화가 충분히 이해되는 연기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동성 성추행 피해, 과도한 스턴트 연기로 인한 혹사, 이혼과 같은 배우 본인의 사연이 더해지면서 더 짙은 호소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크리틱스 초이스와 미국배우조합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력 남우주연상 후보로 꼽히는 이유를 궁금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내 모습을 직시할 때, 비로소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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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 진짜 바다 괴물을 찾아가는 성장담 <루카>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다 밖 세상을 궁금해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바다괴물 소년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우연히 만난 친구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를 따라 물 밖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인간세상 전문가를 자칭하는 알베르토에게 걷는 법 등을 배우며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아름다운 해변 마을을 구경하는 루카는 잔뜩 흥분하지만, 동시에 언제든 물에 닿아 인간의 모습에서 바다괴물로 돌아갈까 걱정하며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러던 중 새로운 친구 ‘줄리아(엠마 버만)’를 만나 수영, 사이클, 파스타 빨리 먹기 3종 대회에 참가하게 된 루카와 알베르토. 그들은 우승 상금으로 꿈에서도 바라던 스쿠터를 사서 자유롭게 멀리 여행할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루카>에서는 여러 영화들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당장 루카가 지상 마을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장면이나 지상과 수중 사람들 간의 갈등과 대립이 기본 구도인 것은 제임스 완 감독의 <아쿠아맨>을 떠올리게 한다. 바다 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상이한 태도를 묘사하는 점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와도 유사점이 있다.
다만 <루카>의 중심 플롯이 결국 한 소년의 성장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루카>는 티모시 샬라메를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와 특히 닮았다. 단지 두 소년이 자전거를 타면서 나른한 햇살이 내리쬐는 이탈리아의 오후를 즐기는 공통의 장면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두 영화 모두 한 소년이 다른 소년, 소녀와 사랑과 우정을 쌓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세상과 그 세상 속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성장담을 다루는 점이 같아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는 마르치아와 올리버 둘 모두와 사랑에 빠진다. 그와 마르치아의 사랑은 청소년기에 접어든 소년만이 느낄 수 있는 달콤한 첫사랑이다. 한 소년이 성인으로 발돋움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깨닫게 되는 상징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그와 올리버의 사랑은 달콤함 사이에 감춰져 있는 씁쓸한 맛의 사랑이다. 특히 성적인 긴장감이 도드라지는 그들의 사랑은 첫사랑의 상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한 소년이 넓어진 세상 안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영화 속에서는 동성애라는 성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루카>에서 루카와 알베르토, 루카와 줄리아의 우정은 엘리오, 마르치아, 올리버 간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마르치아와 사랑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올리버와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엘리오처럼, 루카도 알베르토와 지상 세계를 경험하고 줄리아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당장 알베르토는 루카를 바다 밖으로 이끌어 준 첫 친구이고, 그래서 루카는 세상을 알베르토의 시선을 공유한다. 엘리오와 마르치아의 사랑이 호기심 왕성한 십 대의 사랑인 것처럼 루카의 마음속은 그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 탐험가의 흥분으로 가득해진다. 한편 루카에게 줄리아는 올리버와 같은 존재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올리버처럼 줄리아는 바다 괴물과 사람이라는 정체성의 충돌로 괴로워하던 루카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준다. 그녀는 바다괴물이 갈 수 있는 학교로 그를 초대하면서 두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알려주며 그의 성장을 돕는다. 이러한 주인공 삼인방의 관계성 덕분에 <루카>는 특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와 닮았다.
그러면서도 <루카>는 디테일한 측면에서 애니메이션다운 시각적 상상력을 뽐내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그림자를 벗어난다.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줄 때 이 영화는 주인공의 외적 변화 혹은 깊은 상실감이나 아픔이 담긴 표정 등을 비추지 않는다. 대신 매 순간마다 주인공의 세계 그 자체가 확대되는 모습을 펼쳐 보인다. 예를 들어 알베르토와 함께 오토바이로 세계를 여행하는 루카의 상상은 오토바이와 인간 사회에 대한 정보가 늘어갈수록 세부 묘사가 조금씩 달라진다. 루카가 표현하는 밤하늘과 우주가 달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알베르토와 만난 직후 루카의 하늘에는 별과 달 대신 물고기가 떠 있지만, 줄리아에게 우주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그의 밤하늘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특히 루카의 세계가 변하는 과정은 성장담에 독특한 시각적 재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와 관련된 중요한 대목을 보여주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루카의 상상과 밤하늘의 변화는 그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그는 만나고 느끼고 배우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세계에 접목시키면서 인식을 확장시킬 줄 안다. 그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것,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경계나 두려움보다 그것들을 알아가려는 의지와 배웠을 때의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는 루카의 세계가 확장되는 첫 발걸음을 이끌어 주지만 정작 본인은 분리된 두 세계를 연결하려는 의지가 약한 알베르토, 바다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날뛰는 에꼴레의 모습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더 나아가 바다괴물 본래의 모습을 한 채 제노바에 있는 학교로 향하는 그의 모습이 감동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 어떤 장벽, 경계, 장애물도 없는 루카의 태도와 세계는 <루카>가 괴물 영화의 기존 문법을 뒤엎는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 많은 괴물 영화는 인간의 시점에서 낯선 존재인 괴물이 누구인지를 정의하고, 정의에 따라 괴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주된 내용이자 캐릭터들의 목적으로 삼는다. 앞서 언급한 <셰이프 오브 워터>만 하더라도 양서류 인간이 여주인공인 엘라이자에게는 사랑의 대상이고, 미국 정부에게는 탐구의 대상이자, 그를 연구하는 스트릭랜드 박사에게는 증오의 대상으로 비추어지며,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갈등을 유발한다.
이러한 괴물 영화의 공통된 태도의 뿌리는 리처드 커니가 쓴 <이방인 신 괴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대부분의 이방인, 신, 괴물은 인간 심리의 심연에 존재하는 균열의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에 따르면 괴물과 같은 존재는 "친숙한 것과 낯선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분열되는지 말해준다". 더 나아가 그는 인간은 낯선 것에 대한 경험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대신, 주로 그들을 배제하고 아웃사이더로 치부하며 거부해왔다고도 덧붙인다. 야만인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βάρβαρος(barbaros)'가 그리스어를 쓰지 않아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인 이방인으로부터 유래했듯이. 그 결과 어떠한 정의로도 붙잡히지 않고,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된 규범들에 도전하며, 세계에 대한 이해의 한계에서 탄생하는 존재인 괴물은 여러 신화와 이야기를 거쳐 영화에 이르기까지 살아 숨 쉴 수 있다.
<루카>는 이러한 괴물 영화의 오래된 기제를 뒤집는다. 인어와 용을 닮은 바다괴물을 주역으로 삼고 인간을 이방인으로 만들면서 친숙함과 낯섦, 같은 것과 다른 것,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뒤바꾼다. 이렇게 괴물과 인간이 서로의 자리를 맞바꾼 상황에서 주인공 루카의 행보는 긴 시간 동안 인간이 낯섦과 다름을 대한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위험한 괴물이자 증오의 대상으로 알려진 인간이지만, 루카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파스타를 먹으면서 인간을 탐구하며 그들의 세계에 적응해 나가고 줄리아와 줄리아의 아빠를 도와주면서 공존할 수 있는 공감의 대상으로까지 인식한다.
이러한 루카의 개방성 및 포용성은 괴물, 곧 타자와 이방인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는 에꼴레와 같은 일반 사람들의 고정관념, 편견 및 자기중심적 태도와 대조를 이루며 보는 이들마저 낯부끄럽게 한다. 또한 자신과 다른 이들을 두려워하고 내쫓으려 하는 이들이야말로 바다괴물인 것은 아닌지를 성찰하게 만들면서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메시지에도 힘을 싣는다. 커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카>는 바다 괴물을 통해 "우리 안의 지옥을 끄집어내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영화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 외부의 시점으로 인간 세계를 관찰하는 작업은 사실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낯설지 않다. 픽사는 괴물들의 회사,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 사람의 기분을 조종하는 감정들, 사후 세계의 영혼들, 천방지축 물고기, 요리하는 쥐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일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개봉했던 <소울>만 하더라도 일상적인 삶의 의미를 무너뜨리면서 진짜 삶의 목표에 대해 재고할 기회를 준 바 있다. 이렇게 영화를 보는 관객 스스로의 일상과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적 메시지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모두 매혹시키는 픽사만의 특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픽사의 전작들과 비해 <루카>의 완성도는 더러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루카가 인간과 지상 세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기발하고 세심하게 묘사한 것에 비해 그의 주변 인물들이 인식을 바꾸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철인 3종 경기를 기점으로 루카의 가족들, 친구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한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는데, 이 과정은 픽사가 흔히 보여주는 반전 없이 예상대로 평이하게 전개된다. 그러다 보니 애니메이션 영화임을 감안하더라도 결말에서 맥이 풀리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또한 통상적으로 픽사 영화 속 주인공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펼치는 것과 달리 주인공이 특정 장소에 적응하는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느낌이 짙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루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힘과 감동에 비하면 연출이나 스토리텔링 상의 아쉬움은 그리 크지도 않고, 길게 남지도 않는다. 모든 장벽과 경계 없이 다양함이 동등하게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루카의 성장담과 엔리코 카라로사 감독의 전작, 단편 애니메이션 <라 루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아름다운 영상미는 모든 단점을 가리고도 남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셰이프 오브 워터>가 픽사스럽게 만난 9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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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과 성장에 관하여
첫 장면은 속임수이다. 아이가 건물 옥상에서 도시 전경을 바라보다가 이내 훌쩍 뛰어내린다.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안전하다. 다만 영화는 아이가 어쩌다가 옥상에서 삶의 막막함을 토로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소일기>의 이야기는 옛날 물건이 담긴 상자에서 나온 이 소년의 일기장에서 시작된다. 고등학교 교사인 주인공은 오래 좋아한 사람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는 중이고, 관료제 안에 머물면서 학교폭력 사례의 소극적인 처리에 제대로 항변하지도 못한다. 회의에 빠진 주인공이 발견한 옛날 물건은 그가 지금껏 회피해왔던 기억을 불러 온다.
일기장 속에 남은 것은 다름아닌 학대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의 기록이다. 입신양명한 아버지가 지배하는 가족 안에서 형제는 사립학교에 다니며 쉴 새 없이 무언가 훈련한다. 동생은 학교 성적도, 피아노도 수준급으로 해내지만 형인 요우제는 다르다. 좋고 싫은 게 무엇인지 알아내지도 못한 나이에 요우제는 동생과 비교당하면서 일과를 견딘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한 열등감이 들 때도, 성적을 잘 못 받아 왔을 때도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이고 언어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던 어머니도 부족한 성적을 더이상 참아 주지 못한다.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없는 요우제는 인형과 대화하고 옥상에 올라가 소리치고, 일기를 쓴다.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그래도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쓰는 아이를 보면서 관객은 점점 <연소일기>가 주는 정서에 감화된다.
영화는 순식간에 초반부에 보여준 작은 반전을 다시 한 번 뒤집는다. 일기와 주인공의 현재를 오가고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하다가 영화는 자연스럽게 일기의 끝과 현재 시점을 연결하고, 부러 잊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경험은 주인공의 삶에 있어 변곡점이 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예상 가능하지만, 중요한 점은 노진업 배우가 연기하는 주인공, 즉 죄책감이나 트라우마를 안고 어른이 된 사람이 삶을 반추하면서 마침내 상실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소일기>는 학대를 고발하는 것처럼 시작하여 결국 상실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언어 폭력, 심지어는 학교 폭력과 자해 이미지까지 그대로 드러내는 연출은 다소 불필요하게 보이기도 한다. 후반부에 가서 눈물을 흘리게 할지언정 관객의 마음에도 죄책감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이런 연출은 관객까지 이것을 목격해야 하는 이유를 묻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 연출이 필요한 이유는 어린 아이의 유년기가 이런 힘든 성장만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두 체험하고(또는 목격하고) 그런 적 없던 것처럼 과거를 외면하면서 살았던 주인공은 <연소일기>가 다루는 이야기 속에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함으로써 진짜로 ‘멋진 어른’이 되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연소일기>는 8-90년대의 홍콩 영화에 대한 향수도,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한 야심을 품은 영화도 아니다. 그저 상실과 성장을 이야기하고 좋은 어른이 되는 것, 목격하고도 방관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목격해야 하는 사건, 헤아려 보아야 하는 일기로 마음에 남는다.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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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양연화 리뷰 / 花樣年華 / In The Mood for Love
화양연화 / 花樣年華 / In The Mood fo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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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첸 부인’과 ‘차우’.
이사 첫날부터 자주 마주치던 두 사람은
‘차우’의 넥타이와 ‘첸 부인’의 가방이
각자 배우자의 것과 똑같음을 깨닫고 그들의 관계를 눈치챈다.
그 관계의 시작이 궁금해진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고
감정이 깊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에게 점점 빠져들기 시작한다.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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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_ 감상 전 나의 해석
1. 이중프레임 : 쇠창살
이 영화에는 이중프레임이 모든 씬에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계속 등장한다.
특히, 첸부인과 차우가 은밀한 밀회를 하는 골목씬이 가장 인상깊은 이중프레임이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절묘하게 걸쳐져있는 쇠창살이 지독한 불륜과 애틋한 감정 사이의 선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불륜의 선에 걸쳐진 그들의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달까.
그리고 그렇게 둘 사이에 쇠창살이 놓여질때면, 차우와 첸부인의 의견이 약간씩 엇나가는 것을 보고 그 것이 조금씩 삐끗거리는 그들의 사이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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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들의 배우자
첸부인과 차우는 식당에서 가방과 넥타이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배우자들의 바람을 '짐작'한다.
그리고 그 짐작이 확신이 된다.
그러나 사실 첸부인의 남편과 차우의 부인이 불륜을 저지렀다는 것을 증명할 확증은 단 한개도 없다.
물론, 차우는 부인의 불륜을 알게되지만, 그 대상이 첸부인의 남편이라는 증거는 없다.
과연 진짜 그 둘이 먼저 불륜을 저질렀던 것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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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명
그들은 밀회를 할 때면 "우리는 그들(본인들의 배우자들)과 달라요."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근데 보다보면 '과연 그들이 자신들의 배우자들과 뭐가 다르다는거지?'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들이 뭐가 다를까?
그냥 그들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하는 변명아닌가.
2 + 3 = 결국 이 모든게 그들이 불륜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왜곡된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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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감상
이 영화를 보기 전 나에게 화양연화가 중경삼림보다 별로라고 프영이가 알려줬다. 이 말을 듣고, 난 '이 짜쉭이 너가 뭘 알아!' 하며 화양연화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려 갔다.
그리고 결론을 말하자면 그 프영이의 말이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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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불륜'영화를 싫어하는 타입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영화자체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불륜행위를 하는 캐릭터들을 보면 그냥 토할 것 같달까.
이 영화는 불륜을 정말 잘 다룰 줄 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캐릭터들이 계속 "우리는 잘 못 없어. 그들처럼 되지 말자."라고 변명을 깔아놓고, 육체적 교감을 하지 않으며, 손 한번 잡는 것조차 매우 뜸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있어서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고 그들도 매우 조심스럽게 그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보고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네..'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이것들도 결국 불륜이면서 아름다운 척하네'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감과 동시에 영화의 몰입이 박살났다.
그러니까,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의 감정이 화양연화에서는 느낄 수 없다 라는 말이다.
내가 영화를 보며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의 깊이가 얕았다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보며 1~10 까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중경삼림은 9~10정도의 감정을 느꼈고, 화양연화는 4정도까지밖에 못느낀 것이다.
이 사랑이 미쟝센과 배우들의 특출난 연기로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져도
결국 '불륜'이기 때문에 4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캐릭터에도 공감이 안되고, 영화도 여운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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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웃기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을 꼽자면 바로 '불륜'이다.
내가 영화 감상 직후 메모장에 남긴 글귀이다.
" 그들은 선의 경계에 정확히 서있다.
그 선을 넘지도, 그렇다고 거기에 모자라지도 않는다.
흐트러지지 않음의 미학.
그래서 더 아름다운거 아닌가 싶다. "
그렇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주인공들의 옷차림부터 말투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다.
가장 완벽한 상태에서 그려내는 불륜 혹은 사랑.
간질간질한 사랑의 느낌은 없지만 그것 나름대로의 매력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완벽함이 이 영화의 삽입곡과 잘 어우러져
이 영화 특유의 매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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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초반인 나에게 이 영화는 그렇게 와닿지도, 여운이 남지도 않은 밋밋한 느낌의 영화지만,
30대 혹은 40대때 다시 보면 매우 다른 감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삶이 무르익을 때까지 묵혀놓았다가 다시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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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
영화를 본 이후 몇개의 영상들과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나는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바로 이 영화 자체가 곧 차우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첸부인이 문을 여는 영화의 시작 순간부터 모두 차우의 기억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완벽한 모습이었던 것이고.
계속 변명의 말을 하였던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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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게 차우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보면,
감상직후에는 뭔가 아쉬워 보였던 엔딩이
사실은 가장 완벽한 엔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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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이 불륜관계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 마음대로 기억을 아름답게 왜곡시킨 불륜남의 추억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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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
진짜 궁금한데 영화 후반부에 나온 첸부인의 아들은 누구의 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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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당하는 것들마저 꿋꿋이 사랑할 용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데칼코마니 같은 엄마와 딸
- 엄마와 딸의 위치, 심경 변화
- 수박의 의미
- 덮어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의외의 인물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2024)
부정당하는 것들마저 꿋꿋이 사랑할 용기
개봉일 : 2024.09.04.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6분
감독 : 이미랑
출연 :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본문에서 인물의 이름은 극 중에서 사용되는 이름인 그린, 레인, 제희(노인)와 엄마로 표기 (엄마의 이름이 잠시 스쳐 지나가듯 나오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엄마의 이름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고 느껴져 그대로 ‘엄마’로 표기하겠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다른 것 같지만 닮아있는 엄마와 딸. 그리고 딸의 연인과 유한한 삶의 끝에 서있는 노인. 네 여성들의 아픔과 사랑을 재료로 찍어낸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다.
영화는 외적으로 폭발하는 지점 없이 주인공인 엄마의 내면에 집중하며 진득하게 나아간다. 외부 사건의 자리를 대신 채운 짧은 침묵과 방문 사이를 들여다보는 눈, 사랑 위로 자라난 아픈 말들엔 엄마의 두려움과 슬픔이 깃들어있다.
<딸에 대하여>의 주인공인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의 딸인 그린은 7년 동안 만난 동성 연인 레인과 동거를 하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수박은 숟가락으로 대충 떠먹으면서도 딸이 먹을 수박은 예쁘게 썰어 준비하는, 딸을 사랑하는 엄마지만 딸이 함께 데려온 동성 연인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엄마는 인생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보며 살고 있다. 그녀는 연고 하나 없이 요양원에 방치되어 있는 노인 제희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제희는 한 어린이 제단의 설립자로 어린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희생한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제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노인이다. 제단 사람들과 언론인들의 관심이 끊긴지는 한참이고 가정을 이루지 않아 찾아올 자식도 없다. 제희에게 남아있는 건 작은 손가방 하나와 곧 끊길 예정인 제단의 지원금뿐이다.
엄마는 이런 제희가 가엾다. 그리고 제희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안에 자신과 그린의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아 두렵다. 남편, 아이 하나 없이 버려진 노인의 미래가.
그래서 엄마는 딸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 동성 연인과의 사랑을 반대한다. 딸을 사랑한다면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지만 차분히 앉아 대화를 나누기엔 엄마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극 중에서 엄마는 그린의 엄마, 요양보호사 여사님으로만 그려진다. 그녀의 이름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지원군도 없다. 서서히 나를 잃어가는 중년 여성의 불안감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 앞에서 더욱 짙어진다. 영화는 떨리는 중년의 마음을 따라가며 엄마와 딸의 두려움. 그리고 여전히 엄마의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것을 재조명한다.
<딸에 대하여>는 동성 연인과 엄마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퀴어 영화이기도 하지만 꼭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늙어감과 외로움,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모녀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걸 느낄 수 있으니 꼭 성소수자인 딸이 아니어도 20대 이상의 딸이 있는 모녀관계라면 혼자보단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 (어린 딸과 엄마보다는 어른인 딸과 엄마에게 추천!)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데칼코마니 같은 엄마와 딸
엄마는 딸이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길 바란다.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엄마의 바람대로 그린은 자신의 행복을 찾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린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성소수자를 위해 투쟁한다.
엄마의 눈엔 딸의 사랑과 정의감이 소꿉장난과 오지랖으로 느껴진다. 적당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그렇게 모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동성연애에 관계도 없는 다른 강사의 부당 해고 집회에 얼굴을 팔고 다니다니. 엄마는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붙잡고 대체 왜 그러냐며 소리친다.
그린은 엄마가 자신에게 부당한 거, 싫은 거는 말하라고 가르쳤다고 답한다. 엄마는 몰랐지만 딸은 엄마의 가르침대로 잘 자랐고 엄마도 여전히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엄마는 손발이 묶인 제희와 그것을 방관하는 동료를 향해 소리친다.
“어떻게 저게 남의 일이야. 우리라고 저렇게 안 될 줄 알아?”
부당 해고 사건에 대해 말하던 그린도 엄마와 똑같이 우리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전여전 그 자체인데 엄마는 그걸 모른다.
한숨 쉬어가며 나와 우리를 이해하다.
문밖을 서성이던 엄마, 문안에서 자고 있던 딸. 두 사람의 위치 변화 / 결말 해석요양원 과장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던 엄마는 제희와 함께 요양원에서 쫓겨난다. 엄마는 제희를 찾아 깊은 산속 병동을 방문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엄마보다 더 어린 딸들은 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식구를 받아들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희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와 그린, 레인은 함께 장례식을 진행한다. 엄마는 제희를 떠나보내며 자신이 지독하게 붙잡고 있었던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그린이 어르신이나 자신처럼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웠다고.
그런데 엄마는 이제 인정하려고 한다. 그린의 곁에는 레인이 있고 두 사람과 함께 웃고 싸워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딸이 자신의 등 뒤를 지켜줄 수 있을만큼 자랐다는 것을.
그린은 엄마 대신 상주에 이름을 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킨다. 그 덕분에 항상 문밖에서 전전긍긍하며 딸의 방을 바라보던 엄마는 이제 방 안에서 편하게 잠에 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횡단보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가는 또 다른 딸들의 앞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엄마는 딸에게 예쁜 수박만 주고 싶다
수박의 의미엄마는 그린이 집에 오기 전, 그린을 위해 커다란 수박을 산다. 엄마는 홀로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겹게 수박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수박을 반으로 뚝 잘라 절반은 예쁘게 썰어 그린을 위해 남겨두고 절반은 TV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는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대신해 홀로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푹푹 파먹다 금세 비어버린 수박처럼 어느덧 엄마의 인생도 탄생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위치에 다다른다. 엄마는 이제 나이 먹는다는 게, 혼자가 된다는 게 두렵다. 그리고 2층 집에 사는 세입자 가족처럼 이상적인 가족을 이루지 못할 딸이 걱정된다.
내 수박은 아무렇게나 팍팍 퍼먹어도 괜찮지만 딸은 예쁘게 썰어진 수박을 먹이고 싶은 게, 내 삶은 모나게 흘러가도 괜찮지만 딸의 인생은 예쁘게 꾸며주고 싶은 게 엄마다. 엄마의 말대로 그린과 레인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결혼, 법적 보호자, 아이를 가진 가정.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엄마는 동성애자의 삶이 이성애자의 삶보다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린을 말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엄마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어른이자 믿음을 나누는 연인이다. 그린과 레인은 커다란 수박을 반반 나눠 들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설령 무겁고 쉽지 않은 인생이라 해도 두 사람은 지금처럼 인생의 무게를 나눠들고 함께 웃으며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엔 그린과 레인이 들고 온 수박이 부서지거나 소비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굳이 필요 없어서 해당 장면을 넣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나는 이걸 이유 삼아 영화가 두 사람이 함께 짊어지고 갈 인생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덮어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레인
치매 증상이 심해진 제희는 수시로 배변 실수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인지 기저귀를 차는 것은 한사코 거부한다. 엄마는 어르신이 편한 게 제일이라며 귀찮은 빨래와 목욕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요양원 과장과 관계자들은 비품을 너무 많이 쓰고 빨래도 너무 자주 한다며 엄마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눈칫밥을 먹던 엄마는 제희에게 억지로 기저귀를 채우는데 제희는 그것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몰래 침대를 벗어나 자신을 찾으러 온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실수까지 한다.
엄마의 2층 집에 세 들어 사는 부부는 여전히 싱크대 위에서 물이 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전에 불렀던 분들 말고 진짜 전문가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엄마는 그들의 요청대로 다시 전문가를 부르고 물이 새는 걸 잡으려면 천장을 다 뜯는 대공사를 해야 한다는 답변을 듣는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억지로 채워놓은 기저귀, 임시로 해결해 놓은 누수는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사람의 마음도, 사람과 사이의 문제도 그렇다. 평범하지 않다고, 나와 다르다고 억지로 막고, 시간이 지나면 상대의 마음도 바뀔 거라고 대충 덮어놓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있다.
그린은 몰라도 레인은 이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에 떠밀려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레인이 엄마와의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편한 건 말씀해달라, (그린에게) 우리만 참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하는 거다. 관계에 확신을 갖고 있다.. 레인은 차가운 엄마 앞에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고 갑작스레 등장한 제희를 정성껏 보살피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마 레인이 없었다면 엄마는 더 오래 아니 어쩌면 평생 딸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레인은 미움이 뚝뚝 새어 나오고 있던 모녀 관계를 지붕부터 뜯어 싹 고쳐낸다.
처음엔 당연히 엄마와 딸 그린의 갈등이 중점으로 그려지고 레인의 비중이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레인이 모녀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고 이야기를 봉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그려져 더 좋았다.
생각보다 더 곱고 어른스러웠던 레인과 빛나는 눈으로 레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하윤경 배우의 모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엄마의 마음속주름 하나까지도 모두 느끼게 해준 오민애 배우와 반질반질하고 예쁘고 단단한 자갈 같은 그린을 보여준 임세미 배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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