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8-19 10:05:22
8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주말 관객 수 1위 <에이리언: 로물루스>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공개 첫 주말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파일럿>은 개봉 3주 차에도 장기 흥행을 보이며 4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게 되었고
광복절을 맞이해 개봉했던 <행복의 나라>는 3위, <트위스터스>는 4위 <빅토리>는 6위에 머물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도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4150만 달러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으며 <데드풀과 울버린>이 1조 4564억원을 벌어들이며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R등급 영화가 됐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식민지를 떠난 청년들이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도착한 후, 에이리언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하며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전작들과 달리 민폐를 부리는 인물이 적다는 점과 적재적소에 삽입되고 오마주 된 에이리언 시리즈의 레퍼런스, 떡밥 회수 등 에이리언 골수 팬들을 충분히 만족시킨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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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하지 않는 <그레타 툰베리>
오는 6월 17일 개봉을 앞둔 <그레타 툰베리>는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시작으로 해외 다수의 영화제뿐만 아니라 전주국제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들에서도 상영된 스웨덴의 15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현존하는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만큼, 이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그레타의 모습은 어떤 부분이었을까. 2019년,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레타 툰베리는 역대 타임지 올해의 인물 최연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인 줄은 알았지만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그녀의 명확한 행보는 알지 못했었다. 영화는 기후 변화 법안 마련 촉구를 위해 금요일마다 의회 앞에서 홀로 결석 시위를 하며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eature)’을 외치던 평범한 소녀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녀를 향한 반응은 갈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니?'부터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라는 차가운 시선까지. 만약 그녀가 후자의 말대로 결석 시위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면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31만 명이 캐나다 몬트리올에 모이고 전 세계 106개국에서 청소년 기후 활동가들을 움직이도록 할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 나의 눈에 가장 돋보였던 점은 그레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었다. 일정의 압박과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 때로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그레타의 모습에선 여느 전문가과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레타를 둘러싼 논란에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그리고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해줄 전문성을 보여줄 뿐이다.영화에서 나의 눈에 가장 돋보였던 점은 그레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었다. 일정의 압박과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 때로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그레타의 모습에선 여느 전문가과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레타를 둘러싼 논란에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그리고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해줄 전문성을 보여줄 뿐이다.
'유능한 환경운동가가 되려면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보기 싫어하는 행위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풍파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열 받게 해야 되죠. 그러지 않으면 제 역할을 못하는 거예요.' 그린피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시셰퍼드의 창립자인 폴 왓슨 선장의 말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한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이 다수에게 불편한 소리가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한 이 기록물은, 환경을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부터 자신만의 외침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까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그레타의 행동들이 설사 퍼포먼스라 할지라도 그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생각만 많고 용기 없는 어른들보다 먼저 소리를 낸 그레타 툰베리에게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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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if)으로 써 내려간 매력적인 문항들
2016년 5월 9일. 전역을 16일 정도 앞둔 시점에 진지 공사를 하다가 간부님에게 "전문하사"를 제안받았다.
결국, "NO(아니요)"라는 대답으로 없던 일이 되었지만 고민을 안한 건 아니다.
첫 번째, 복학까지 9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고 두 번째, 다가올 실사격 훈련에 "HE(고폭탄)"아니라 "RAP(로켓추진 고폭탄)"을 쏜다고 하니 혹하더라 - 근데, 유격은 싫다.
만약에 그때 "군인"을 했었다면, 지금의 블로거 "파천황" 혹은 "간호사(예비)"는 없지 않았을까?<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 이후 "MCU"의 테마는 "멀티버스"인데, 공교롭게도 "루소 형제"가 나간 시기와 맞물린다.
"마블"의 최전성기를 이끈 이들이기에 엉망진창인 "멀티버스"에 늘 마음이 걸렸다.
제작에 참여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미국으로 이주해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블린"이 혼란에 빠진 멀티버스를 구해야 하는 내용을 다룬 작품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첫 극장 수입 1억 달러를 안겨주었다. - 최근 <그레이 맨, 2022>을 포함해 "스트리밍"이 많았다.1. 왜, 안 보세요들?
현재(10.14 기준)까지 국내 누적 관객 수 19,211명을 기록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익숙한 작품은 아니다.
"멀티버스"와 "루소 형제", 그리고 "양자경"까지 이름을 올렸지만 "루소 형제"가 직접 감독한 작품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양자경"이라는 배우는 알긴 할까?
"마블"때문이라도 "멀티버스"의 개념이 익숙할지 몰라도, 어느 관객들이 '139분이나 되는 영화를 선택할까?'싶다.
그렇기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작품이다.결국, 해당 작품에서 관객들의 흥미를 좌우할 부분은 '멀티버스를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확장되면 될수록 재밌는 이야기의 강점을 살펴보자!
극 중. "에블린"과 남편 "웨이먼드"는 아버지와 딸 "조이"까지 겉으로 보기엔 화목한 대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 국세청의 압류에 처했고 딸 "조이"는 성적 취향을 포함해 모든 것이 불만이고 아버지는 혼자선 아무런 일도 못하는 "설상가상" 시퀀스를 보여준다.2. 극장에서 상영하는 가장 재밌는 영화!
그래서, 이후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만약(if)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미련 가득한 말인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물론, 결과가 정해진 전체 하에 진행되는 가정 하에 진행되나 이만해도 "이블린"을 비롯해 악당의 동기를 설명해 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이야기만 들어도 이의가 없지만, 영화는 이 과정에서 8-90년대 홍콩 영화들이 보여주었을법한 액션들로 설득한다. - 실제로, "양자경"은 <예스 마담 시리즈, 1985-87>로 그 시기에 활약한 배우이다.결과만 본다면, "성룡"의 영화들에서 볼법한 사물 액션들로 최근 이들이 선보였던<그레이 맨, 2022>보다 더 박진감이 느꼈을 정도로 훌륭하다.
어찌 보면, "독립 및 예술 영화"로 분류되긴 하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 더 오락 영화를 표방한다.
물론, '15세 관람가'치고는 성인 용품들을 비롯해 잔인함(종이의 면으로 손가락을 베려 한다. 으으...)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또 있을까?3.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라는걸,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된 기회들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갖는 기회 자체 또는 그러한 기회가 갖는 가치를 "기회비용"이라 한다.
마지막에 다다른 악당은 "에블린"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말로 회유하려 들지만, 끝내 실패만을 고집하는 현재를 선택한다. - 배우와 요리사, 사랑까지 어떤 것이든 지금보다 나을 텐데 왜 그럴까?
앞서 언급한 "기회비용"의 주체는 가장 큰 가치를 선택하고, 나머지들은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는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 속한다. - 재밌는 건, 다른 차원에서는 딸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다.독신을 선언했던 어머니만 하더라도, 아버지와의 만남으로 나와 동생을 낳았다.
그리고, 자식의 입장에서 기억하기에도 정말 고생도 많이 하셨음에도 "만약"과 "후회"란 단어는 입 밖에 내놓질 않는다.
물론, 누가 보기에 따라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선택은 자기 자신에게 결정된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에서 말이다!· tmi. 1 - 당초 예정된 주인공은 "성룡"이었지만, 불발되며 그의 아내로 캐스팅된 "양자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보다 풍성해져서 만족스러웠다는 후문이...
· tmi. 2 - 극 중. "이블린"의 아내로 등장하는 "웨이몬드"역의 "키 호이 콴"은 <인디아나 존스>에서 주인공 "존스 박사"의 조수 "쇼티"를 맡았던 그 배우가 맞다!
· tmi. 2. 1 - 이후 <구니스>까지 출연했으나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가 출연하는 데에 힘듦을 느껴 은퇴하고, 스턴트 감독으로 활동했으나 "양자경" 배우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을 관람하면서, 배우 복귀를 선언했다! (3번 봤는데, 3번 다 울었다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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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로치가 말하는 '민족'
켄 로치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보여주듯, 민족은 단결의 이름이자 분열‧적대의 이름이다. 먼저 단결이다. ‘민족’은 아일랜드인들이 독립이라는 공동의 꿈을 가졌음을 표지하는 범주다. 아일랜드인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독립을 꿈꾸며 ‘하나’가 된다. 하지만 민족은 아일랜드인 사이의 차이를 보이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아일랜드인에게는 독립 이후에 대한 다양한 꿈이 있었다. 누군가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누군가는 전통적 권위에 기댄 사회를 꿈꿨다. 그러나 민족의 독립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동안 이 차이는 논의되지 않는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는 치열하게 조정‧경합되었어야 할 차이들이 민족이란 이름 아래 억눌린 채 쌓여 있다가 끝내 폭발해 버리고 마는 과정이 담겼다. 우리와 비슷한 아일랜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민족’이 무엇을 가능케 했고 또 무엇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는지를 숙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난민, 이주민 혐오의 시대에 굉장히 시급한(혹은 이미 늦은) 작업이다.
1920년대 아일랜드의 한 마을. 영국 군인이 불시에 들이닥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하키를 치는 게 집회를 금지한 조치에 위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과정에서 17살 청년 미하일이 영국군에게 반항하다가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하일의 죽음은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공통의 비애를 느끼게 한다. 모두의 슬픔 속에서 주인공 데미엔의 고민은 깊어진다. 데미엔은 의사 자격증을 딴 시골 마을의 드문 엘리트인데, 이제 막 런던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곧 마을을 떠날 참이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품은 채 런던행 기차를 기다리던 기차역에서, 데미엔은 영국군에게 두드려 맞는 아일랜드인 기관사를 본다. 그리고 미하일과 기관사, 자신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아일랜드가 자유를 얻지 못하는 이상, 아일랜드인은 어디서든 구타당할 수 있다. 이 깨달음이 데미엔의 인생 경로를 바꾼다. 데미엔은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아일랜드인의 ‘공통의 비애’를 극복하는 일에 자신을 투신하기로 한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뛰어든 데미엔은 게릴라 부대를 꾸려 영국과 치열하게 싸운다.
영화가 의미심장해지는 건 이 공통의 비애가 위기에 빠지기 시작하면서다. 첫 번째 사건은 어릴 때 함께 자란 동네 꼬마 크리스를 밀고자란 이유로 처형한 일이다. 망설임‧괴로움 끝에 크리스를 총으로 쏜 데미엔은 이 사실을 직접 크리스의 어머니에게 전한다. 데미엔 일행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던 크리스의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다시는 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리숙하고 순박한 동네 소년이었던 크리스의 죽음은 모든 아일랜드인을 ‘민족’이란 이름으로 묶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드러낸다. 크리스 총살과 그 어머니의 슬픈 눈빛은 모든 아일랜드인의 자유를 위한다는 데미엔의 정당성을 마구 뒤흔들어 놓는다.
두 번째는 고리대금업자와 가난한 노파의 대립이다. 둘은 모두 아일랜드인이다. 하지만 계급이 다르다. 마을 사람들은 고리대금업자가 노파를 착취하도록 둬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고리대금업자가 독립군에 무기 자금을 대는 사람이기에 그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나뉘어 갈등한다. 데미엔과 그의 동지이자 친형인 테디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데미엔은 가난한 노파의 편에, 테디는 고리대금업자의 편에 선다.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다른’ 사회적 조건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민족이라는 ‘동질적’ 집단이 무엇을 배제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인지를 고민케 한다.
가장 결정적인 세 번째 사건은 아일랜드의 자유국 지위 확보 이후에 일어난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평화 협정을 맺고 아일랜드의 자유국 지위에 합의했다. 아일랜드가 일정 정도의 자치를 보장받은 것이다. 평화협정 이후, 데미엔과 테디 그리고 아일랜드인들은 둘로 쪼개진다. 제한된 자유나마 수용하자는 사람과 완전한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자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된다. 둘 사이의 대립은 격화되어 영국군이 아일랜드인을 핍박할 때와 다름없는 정도의 폭력이 오고 간다. 아일랜드인들은 절망한다. 어제까지 밥을 지어 주고 무기를 숨겨 주었던 자국의 군대가 둘로 나뉘어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에 그들이 느낀 분노와 슬픔, 좌절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일지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급진적 자유를 갈망하던 데미엔은 결국 온건한/제한된 자유에 만족하자는 테디의 군대에 붙잡히고, 무기의 위치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살당한다. 데미엔 총살 명령을 내리는 건 그의 친형 테디다. 영화는 테디가 죽은 데미엔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같은 꿈'을 꾸던 형제가 정작 ‘내부’의 차이를 조율하지 못해 마주한 비극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역사의 특정한 국면에서 민족은 분명 저항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범주가 된다.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이 모이고, 경험‧감정을 공유하며, 투쟁할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면이 전환되고 민족이 더 이상 저항의 범주로만 작동하지 않을 때, 문제는 시작된다. 동질성을 강조하는 민족 담론이 내부의 차이를 삭제하고 진압하는 폭력의 명분이 되는 것이다.
폭력을 극복하자는 명목하에 부상한 민족 범주가 폭력의 주체가 된다는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테디와 데미엔의 갈등이 본격화되기 전, 데미엔은 연인 시네드가 영국군에게 고초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데미엔은 시네드를 구하려 하지만 테디가 막는다. 위치가 노출될 경우 전 부대원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데미엔은 결국 형 테디의 말을 따른다. 그리고 주저앉아 “느끼는 법을 잃었다”며 오열한다. 데미엔의 눈물은 위기에 빠진 연인을 향한 공감보다 ‘합리적 선택’을 우선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좌절감의 표현이다.
앞서 언급했듯, 데미엔은 마을 청년 미하일의 죽음과 아일랜드인 기관사가 영국군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와 슬픔을 ‘느꼈고’ 이를 동력 삼아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정작 투쟁의 과정에서 그는 느끼는 방법을 잃고 말았다. 이는 데미엔만의 문제가 아니다. 데미엔이 동네 청년 크리스를 총살한 후 괴로워했듯, 테디도 친동생 데미엔을 총살한 후 눈물을 흘린다. 분명하게만 보이던 자유의 길이 점차 어렵고 불투명해진다.
이 모든 비극과 혼란은 느낌에 기반한 열린 공동체가 민족이라는 이름의 닫힌 공동체로 전환될 때 일어난다. 느낌의 공동체는 포용적이다. 아일랜드인을 향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에 분노한다면, 영국인도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족 공동체는 이 분노한 영국인을 포용하지 못한다. 나아가 ‘민족적 대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 내부 구성원들을 ‘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민족 범주는 저항의 공동체로 출발한 스스로가 억압의 이름이 되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 데미엔과 테디가 비극을 비껴가지 못한 건 모두 이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슬펐던 건, 이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익숙해서였다. 지금 우리의 민족 담론은 어디에 와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도 힘든데 무슨 난민이고 이주민이냐는 말이 횡행하는 지금, ‘한민족’의 서사에 이 슬프다는 ‘느낌’의 자리가 보장되길, 그럼으로써 열린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기에는 너무 늦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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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당신께
<헤어질 결심>과 <미쓰 홍당무> 그 사이 어드메를 노니는 영화가 2024년에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재소환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그 전에 그런 혼종적인 게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레 존재할 수 있을까?
포스터만 보고는 노인 성폭행 피해를 다룬 <69세>의 임선애 감독이 묵직하고 깔깔한 전작에 비해 산뜻하고 푸근한 사랑 영화를 만들려던 줄로만 알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당도한 것은 숨이 턱 막힐 만큼 밀도 높은 감정의 홍수다. 둘러가지 않고 변명하지도 않아서 선명도가 아주 높은 서사와 대사들, 박찬욱이나 이경미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한 스토리텔링, 천재적인 리듬감, 두 눈의 연기만으로 일렁이는 마음들에 함께 올라탈 수 있게 해주는 매력적인 배우들까지. <세기말의 사랑>은 정말이지 감탄밖에 안 나오는 영화다. 그리고 임선애 감독은 단순 '유망주'로만 불리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아깝다. 연차만 낮을 뿐 (한국에서 여성 감독의 권위가 아직 없다는 것은? '그런' 감독의 '이런' 영화에만 유독 젠체하고 가르치려 드는 이들의 저평가를 몇 년이고 버텨야 한다는 의미) 이미 한국 영화계 거장의 반열에 성큼 올라설 수 있는 포텐셜을 다 갖추었기 때문. 윤가은, 이옥섭, 김초희에 이어 이지은과 임선애를 차세대 한국 영화의 희망으로 믿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정말로 간만에 너무 좋은 사랑 영화였다(지금의 여성 관객에게 국내 제작+로맨스 영화가 좋게 다가오기란 거의 바늘구멍 뚫는 일에 가까운데도). 그리고 이때 사랑은 영미와 도영 사이 이상하고 풋풋한 긴장, 유진과 영미의 아웃사이더 연대를 거쳐와서, 기어이 도영과 유진의 눈물로 완성되는 삼각관계 속 연인 간의 애달픈 감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유전병 발현으로 목 아래 몸이 모두 굳어 혼자 힘만으론 꼼짝할 수도 없는 조유진에겐 친한 푼수떼기 동생 오준과 가출한 조카 미리와의 투닥대는 사랑이 있다. 못나고 외롭고 놀림받기 일쑤인 데다 튀어나온 앞니를 목도리 사이에 푹 파묻고 다녀 '미쓰 홍당무' 양미숙을 연상시키는 회계과장 '세기말 Miss Apocalypse' 김영미에겐... 원래는 아무도 없었다가, 유진과 오준 그리고 도영이 생긴다. 또 영미의 실패한 (줄 알았던) 사랑은 도영만을 향하지 않으며, 부모 잃은 그애가 평생 돌보았던 큰엄마와 그 큰엄마의 짝사랑이던 사촌오빠가 보답해주지 않은 가족 간의 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토록 다양한 사랑이 영화 내내 말 그대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며, 그 사랑들은 자주 내 눈과 뇌가 성급히 직조했던 적당한 상식선의 예상을 배반하기도 한다. 미리의 친아빠와 친엄마가 누구인지 너무나 갑작스럽게 툭 던져지던 씬처럼. 유진의 명품 구두가 왜 모두 '짭'이었는지, 누가 유진의 장애 '덕'을 봤는지, '지랄 1급'이라던 유진에게 들러붙어 있었던 처연한 체념의 그림자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까지, 역시 예고도 없이 우르르 한 방에 깨닫게 해주던 오준의 미용대회 시퀀스의 폭풍우 같은 흐름처럼.
어쩌면 이런 예측 불가성을 즐기지 않는 이에게, 혹은 특정한 '부류'의 돌출성을 불편해하는 이에게 영화의 화려한 곁다리들은 일면 산만하거나 심지어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곁다리' 즉 삼각관계와 무관하면서도 구구절절 늘어지는 각 인물들의 사연은 모두 하나의 다정한 진리로 수렴한다.
타인에게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치러내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사랑(들)의 경중을 가리면서 너무 많은 인물의 너무 많은 이야기가 혼란스러우니 어떤 것은 받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복잡한 일이므로. 같은 남자를 사랑한 영미와 유진이 처음엔 너무 다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도영에게 부인이 있다는 형사의 말에 절망으로 물들던 영미의 표정과, 들들 볶이던 자원봉사자 학생의 “우리 엄마 죽었다 미친년아”에 남몰래 무너지던 유진의 표정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 보면 그 둘이 얼마나 닮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미리의 이기적인 가출과 카드 도용을 힐난하더니 실은 저도 유진의 장애 등급을 이용해 몰래 차를 샀다던 오준의 욕심과, "지금 누나한텐 나밖에 없으니까" 곁을 지켜야 한다는 오준의 강인한 책임감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처럼. 각자의 바닥은 다 너무 깜깜하고 처량해서 가끔 거기 떨어진 채로 만난 사람에겐 뭐든 다 말하고 날 내맡기고 싶어질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계하되 타인을 밀어내지 않을 수 있고, 이해하되 섣불리 다 안다고 말하지 않는 신중함을 발휘할 수 있다.
돌봄노동에 최적화된 영미의 성실한 다정과 경청 그리고 손길이 필요했던 거면서 오로지 돈 때문에 같이 있는 거라고 처음부터 스스로를 속이던 유진이의 위악을 나는 알고,
“끝까지 버텨보는 거 나쁘지 않던데요. 그래서 저는 감옥엘 갔지만. 후회는 안 해요.”라며 이상하리만치 끝까지 가보고 싶은 충동을 참지 않는 영미의 달콤한 자포자기도 나는 알지.
그래서 내겐 유진의 영미를 향한 “화상이 맨드라미 닮았네”가 이 시대 최고의 인류애를 함축한 대사 같았다. “그 화상 만져본 적 있어? 내가 한 번 만져봐도 돼?”라는 유진의 묘한 요청. 물렁한 영미의 수락에 유진이 상처를 보듬으며 "생각보다 부드럽네"라고 말하자 영미는 설핏 웃으며 “하여튼 이상해”로 화답한다. 그 욕조 옆에서, 또 미용대회 대기실에서 넘어진 유진의 휠체어 옆에서, 영미는 몸을 낮추어 유진과 시야의 높이를 맞춘다. 제 몸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여자가 멸시받던 여자를 똑바로 바라볼 때, 그늘진 유진의 앞에 놓인 건 환히 쏟아지는 빛처럼 다가오는 영미의 옅은 눈동자와 상냥한 미소다.
회사 돈을 빼돌리는 남자가 제게 조금 다정했단 이유만으로 지구가 망하기 전날 밤에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이상하고 대책 없는 외로운 여자. 그런 여자를 두고 맨드라미의 꽃말이 '치정'인 걸 아느냐고 놀려대던 역시 이상하고 화가 많아진 외로운 여자. 소시지 반찬, 모기 물린 자국 위의 십자가, 그게 뭐라고. 그게 다 뭐라고, 사랑하는 이를 구하지도 못하는 내가 나인 게 너무 싫었을 여자들이 서로를 죽어라 질투하면서도 그 '구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줄 유일한 상대를 마음 속으론 악착같이 갈구한다.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사의하고 어려운 일인지, 결국 영미의 '저 사람 나 아니면 어떡하나'가 유진의 짐을 덜고 유진은 도영에게 "그 여자 보니까 처음으로 네가 마음 놓이더라"라고 말한다. "저는 아직 유진 씨가 마음 놓이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도영의 말은 온라인 접견 시간 종료로 뚝 끊기고 말지만, 그 이후로 유진은 완전히 퇴장하고 도영과 영미가 꾸준히 재회해 채무 관계를 핑계로 '다시' 친해지는 에필로그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도영과 영미처럼 유진은 잘 살아갈 것이다 꿋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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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젊은이를 몰아세우는 법
야간 청소부 일을 하며 엄마를 돌보는 취준생 케일라.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 아이작의 집에 처박혀있던 '커서(curser)'라는 80년대 비디오게임을 찾게 된다.
아직 이 게임의 상금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친구는 함께 게임을 해보기로 하는데...
Choose or Die?
감상 포인트
선택지가 나올 때의 긴박감이 보는 사람마저도 초조하게 함
자꾸만 주인공에게 고나리질 하게 되는 몰입감
공포 영화라기보단 오컬트+스릴러에 가까움
감상평볼 거 없나, 하고 뒤지다가 우연히 찾은 공포영화.
넷플릭스에서 '스릴러'라고 분류를 하고 있는데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이라기보단 정말 긴박함을 조성하는 스릴러에 훨씬 가깝다는 생각이다. 뒤로 갈수록 오컬트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데, 그런 부분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주인공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겪는 일들에 완전 몰입할 수 있게 긴박감을 조성한다.
사실 허무하게 끝났다는 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가볍게 즐기는 팝콘무비라고 생각하면 꽤 괜찮았다고 본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케일라의 상황은 암담하다. 어린 동생은 자신의 부주의로 죽었고,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약에 취해 집주인에게 휘둘리는 상황.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봐도 취업은 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야간 청소부 일밖에 없다. 자신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건, 히키코모리처럼 집에 처박혀 있는 괴짜 친구 아이작 뿐.
하지만 케일라는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함께 청소하는 임신한 직원에게 상사가 심한 말을 하면 나서서 변호하고, 약에 취해서 헤롱거리는 엄마에게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취업이 되지 않아도 틈틈이 친구의 게임 프로그래밍을 손봐주는 등. 그녀는 남들이라면 신경쓰지 않는 일에도 신경쓰고 짜증낼 법한 일에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어찌보면 답답한 면모도 있다.
커서라는 게임은 이러한 케일라의 가려운 부분들을 자꾸만 긁으며 그녀를 부추킨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지?
다 짓밟고 너 혼자 살아남으면 되잖아!"
첫 번째 저주 대상은 밤새 일을 하는 카페 종업원이다. 종업원 역시 케일라처럼 불안정한 고동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케일라가 임신한 직원을 위해 한 마디 했던 걸 생각해보면, 종업원도 케일라와 크게 다른 처지가 아니다. 그런 종업원을 공격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게임은, 항상 남들만 챙기는 케일라에게 '네 밥그릇 뺏기지 말고 짓밟고 일어서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두 번째 저주 대상은 엄마다. 케일라의 엄마는 아들 리키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다. 그는 벽에 사는 쥐들이 굶주렸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건 이 집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일지도 모른다. 게임은 케일라에게 엄마를 공허함과 굶주림 속에 던져버리라고 말한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엄마를 버리면 훨씬 편할 거라는 유혹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 저주 대상은 아이작이다. 게임은 영리하게도 케일라가 리키와 아이작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케일라에게 현실을 잊고 도피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케일라는 아이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때 빨간문과 파란문은 영화 #매트릭스 의 빨간약과 파란약을 생각나게 한다.
"때로는 저주가 선물일 수도 있다."
케일라 대사 중
이 끔찍한 '커서'라는 게임은 이 게임의 플레이어가 상대방에게 저주를 내리면 혜택을 얻는다는 설정이다.
마지막 게임에서 살아남은 케일라는 이 게임을 최초로 개발한 '벡'에게 전화를 받는다. 그가 케일라에게 다음엔 누가 괴로울지를 묻자, 케일라는 "괴로워도 싼 인간들만요."하고 대답한다. 결국 이 잔인한 게임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줄곧 지켜오던 자신의 신념을 깨버린다. 이 저주로 인해 자신도 혜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컬트와 스릴러의 탈을 썼지만,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자신을 잃고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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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이게 프레데터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늘 인류의 마음속에 있었다. 원시부족 시절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그것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두려움은 우리 주변에 늘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은 안전한 곳에 있으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두려운 것에 도전해왔다. 새로운 땅에 탐험을 하거나 주변의 맹수와 대결을 벌인다. 현대에는 지구 밖의 미지의 공간으로까지 탐험을 나간다. 이렇게 도전이 멈추지 않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어쩌면 인간이 가진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프레이>는 1700년대를 배경으로 코만치 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직 야생과 가깝게 생활하는 그들은 주변의 두려운 존재인 곰이나 사자 등이 나타나면 그것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려고 팀이 꾸려진다. 하지만 그곳에 외계의 존재인 프레데터(데인 딜리에그로)가 나타나면서 코만치 부족이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한다. 그에 대항하는 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 나루(엠버 미드썬더)다. 끈이 달린 작은 손도끼와 화살을 이용해 두려움에 맞선다.
1700년대에 찾아온 외계 헌터 프레데터
주변의 사람들은 나루를 전사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보호해야 할 존재로 대하고 실제로 맹수를 퇴치하다 기절한 나루를 집으로 옮겨 두기도 한다. 하지만 나루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치 인류가 계속 무언가에 도전해 나가는 것처럼 조금은 서투른 전투 실력으로도 자신 앞에 나타난 두려움과 맞선다. 영화 속 프레데터와 나루의 모습은 그 덩치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또한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는 프레데터와 원초적인 무기를 가진 나루가 대결을 벌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영화는 그런 큰 차이를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부족에게 전투 능력을 무시당하는 나루는 외계 존재 프레데터에게조차 위협적인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 초반 곰을 처치하던 프레데터는 나루의 존재를 보게 되지만 그에게 표시되는 화면에서 나루는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고정관념이 사냥 전문가인 프레데터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다. 나루는 여러 가지 상황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으로 프레데터에게 반격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영화 <프레이>는 1987년에 개봉한 <프레데터>와 1990년에 개봉한 <프레데터 2>의 이야기와 맞닿아있는 후속 편이다. <에어리언> 시리즈와 함께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외계 존재인 프레데터는 2010년에 <프레데터스>, 2018년에 <더 프레데터>의 후속 편이 만들어지면서 이야기의 설정을 확장시키며 재등장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긴장감을 영화 안에 담지는 못했다. 원작의 1편과 2편이 미지의 존재로부터 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잘 표현하여 영상에 담아냈다면 그 이후의 후속 편에는 그런 위압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인기 있는 외계 존재인 에어리언과 프레데터를 함께 등장시킨 영화 <에어리언 vs. 프레데터>는 영화적 완성도보다는 캐릭터의 인기에 기댄 이벤트성 영화로 소비되어 버리고 만다.
프레데터라는 존재가 여전히 인기가 있는 건, 기술적인 우위와 괴상한 얼굴을 비롯해 우람한 몸집에서 오는 위압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투 전문가로서 그가 여러 맹수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냥꾼으로 보인다. 영화 <프레이>는 그런 프레데터의 위압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아직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 나타난 프레데터는 아직 인간이 제압하기에는 어려운 존재다. 현대의 무기로도 제압하기 어려운 존재가 무기조차 열악한 시기에 등장하면서 전달되는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다.
원작의 설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물을 이용해 만들어낸 위압감
무엇보다 주인공이 성인이 되지 않은 여성인 나루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은 원작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설정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나루가 프레데터와 대항하고 자신만의 전투 아이디어로 대등한 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꽤 흥미진진하다. 마치 자신이 부족을 지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다친 몸을 이끌고 혼자 숲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두려움에 계속 도전하는 인류의 모습과 닮아있다.
사실 과거 <프레데터> 시리즈에서 프레데터에 대항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군인이거나 경찰 혹은 악독한 범죄자들이었다. 하지만 <프레이>에서는 전투전문가라고 할만한 인물이 없다. 짐승을 사냥하고 초기 소총을 쓰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프레데터에게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하고 만다. 그래서 아직 전투가 서투른 나루가 프레데터와 대결을 벌이는 모습을 끝까지 볼 수밖에 없다. 기존의 프레데터가 가진 설정을 잘 유지하고 이해 가능한 범위의 전투 전략을 이용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꽤 훌륭한 <프레데터> 프리퀄을 완성해냈다.
영화를 연출한 댄 트라첸버그 감독은 과거 <클로버필드 10번지>를 통해 벙커에 갇히게 된 인물들이 겪게 되는 공포심을 잘 영상화한 바 있다. 많지 않은 등장인물이지만 잘 짜인 상황과 연출로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던 그는 이번 영화 <프레이>에서도 기존 시리즈의 설정을 잘 활용하면서도 한정된 등장인물을 이용해 위압적인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루나 역을 맡은 배우 엠버 미드썬더도 조금은 여리게 보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여전사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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