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6-05 12:04:42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넋을 기리며
현충일
❣️Cinelab Curation❣️
6/6(금)은 현충일입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며,
오늘은 영화를 통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의 순간을 돌아보려 해요.
어떤 순간들은 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때 더욱 마음 깊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영화와 함께 마음 깊이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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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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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viction of Everyone, 영화 <브이 포 벤데타>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해 주던 친구가 있었다. 영화 초반에 나오던 독백을 적어서 편지에 적어주면서. 추천받으면 제때 보지 않는 이상한 습관이라도 있었던 건지, 한참이 지나고 이제서야 봤다. 이비의 목소리로 Remember, Remember the 5th of November로 시작되는 대사를 들으면서 그 친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라고 했을까 궁금해졌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그 친구를 마음 한 켠에 두고 시작되었다.
유쾌한 사이다 영화다. 이상적인 전개지만 배경은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미래의 국가이지만 익숙하다. 역사는 패션보다는 좀 더 큰 주기로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리라. 세계대전과 테러, 질병을 겪으면서 등장한 전체주의 국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질병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2차 세계대전은 강렬하며, 생체실험은 저 멀리 일제강점기까지 떠오르게 한다. 히틀러를 떠올리게 만든 것 같은 미래엔 서틀러가 있고 언론을 포함해 수많은 통제가 있다. 늦은 밤엔 통금이 있고, 하나가 되기 위해 다양성은 배척된다. 서틀러와 크리디는 일부러 질병을 퍼뜨려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넣었다. 생화학무기를 만들겠다던 생체실험은 본래 목적 대신 유일무이한 질병을 만들고 치료제를 갖고 있다가 적시에 풀고 이익을 얻는데 쓰였다. 얼마나 짜릿했을까. 온 나라를 내 손에 넣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기분이란.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 조금씩 틈이 생기는 게 보일 때마다. 그래서 자꾸 통제하게 되었겠지.
사람들은 서틀러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불만은 있지만 그들에게 서틀러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차악이다. 다시 고통받고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도 그냥 듣고 있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서 그런대로 산다. 때 되면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TV도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허전하다면 그건 사람들의 어딘가 결핍된 표정 때문일 것이다. 미술과 음악 등 예술은 물론 음식까지 제한했다니 서틀러는 정말 고약하기 짝이 없다. 예술은 자유롭게 자신을 비판하는 게 싫어서 그랬던 모양이고, 본인 입에만 넣으라고 있는 버터가 아닌데.
그때 나타난 게 브이다. 이비를 포함해 사람들이 가면을 쓴 그를 마음에 담게 된 건 그는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놓고 이 나라는 뭔가가 제대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권력자들이 가장 큰 잘못을 했지만, 사실은 거울 속에 비치는 당신들이 가만히 있었던 걸 되돌아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놀라워서 귀 기울인 건 아닐까. 당장 나와 함께 하자고 하지 않고 1년 후에 함께 하자는 그 말에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궤변론자나 과대 망상가라고 평가받지 않게 되는 건 정말 세상이 문제가 있고,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을 때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억압적으로 느껴질수록 브이에게 설득력이 생긴다. 누군가에겐 그럴듯하고, 누군가에겐 헛소리가 되어버릴 땐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이상하지, 하나가 되자고 할수록 하나같이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게.
브이의 '11.5 선언'은 묘하게 교훈적이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밉상일 때도 있는데 이상하게 수긍이 가는 건 그는 사람들과 다르게 도전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그 방송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소를 시원하게 폭파하면서 1812 서곡을 들려주었고, 언론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정규 방송을 차단하고 비상 방송을 장악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였다. 방송국에서는 황급히 그를 검거한 것처럼 내보냈지만 이미 사람들은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내년 11월 5일을 기대하게 만든 것이다. 1년 후 11월 5일이 다 되어선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렸다. 모든 집에 자신과 똑같은 가면과 망토를 선물하면서 사람들은 거리에 나올 준비가 되었다. 그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한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났을 때, 400여 년 전 가이 포크스의 생각처럼 시원하게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렸다.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해 준 건물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잃었을 때 쓸모를 다 한다. 국가나 정부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이쯤 되면 다가오는 느낌을 알다마다. 뭔가 술술 풀리는 게 좋으면서도 불편하다. 음악과 함께 펑펑 터지는 건물에 하늘 위를 수놓는 폭죽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러면서도 그 광경이 잠잠해지면 이비가 처음 브이를 만났을 때 경계했던 생각이 그대로 소환된다. 이상은 어디에나,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었지만 왜 우리의 현실은 늘 그러지 못했을까? 한바탕씩 뒤집어지면 이제는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다시 사람들은 무기력해질 것이고 누군가는 권력이나 이익을 위해 기상천외한 일을 벌일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신념(이데아, Idea)에 답이 있다고 하는 건 안도해야 할 부분인지 모르겠다. 개인의 마음속 신념은 절대적일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에 신념은 너무나 다른 의미다. 각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거나 빼앗기까지 하며, 그럼에도 그 신념은 끈질기게 살아있다. 인간이 때론 신념의 숙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내가 잘 사는 것과 우리가 잘 사는 방향은 다를 때가 많다. 국가나 정부가 있는 한 그 부분이 충돌하는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나 정부 없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혼란과 변화 속에서 안정을 찾고 싶어 할 테니까. 둘 다 우리를 공포와 무기력에 잠식하게 만들기는 충분하다.
또 다른 불안감의 원인은 브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후에 브이처럼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해 줄 존재가 있을까? 브이는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불렀지만 영화 속의 그는 적잖이 멋진 영웅이었다. 위트가 넘친다. 문학은 셰익스피어, 영화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좋아하며, 총보다 칼을 선호하고, 재즈를 즐겨 듣고, 자신만의 갤러리를 갖췄다. 심지어 앞치마를 곱게 두르곤 아침엔 몰래 구한 버터에 계란 넣은 토스트도 만들어주지 않나. 이비에겐 첫 만남부터 핑거맨에게 붙잡혀 있는 걸 구해줬을뿐더러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만큼의 온갖 V를 가져와 언어유희를 펼쳤다.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전신이 불타 있는 걸 알고도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면 왜일까? 흔들리지 않는 신념 혹은 그 신념을 내뱉는 깊은 목소리의 덕일까? 부정하지 말자. 브이는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만큼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팬텀이 크리스틴에게 한 것처럼 이비에게 소유욕을 보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물론 브이 역시 팬텀 못지않게 몹쓸 구석도 많다. 애초에 이비를 이 모든 사단에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처음 만났는데 재판소를 터뜨리는 그 자리에 데려가서 공범으로 만들지 않았나. 이비가 일하고 있는 BTN 방송국에서 때마침 '11.5 선언'을 하면서 건물을 장악했고, 이비가 그를 구해주자 예상에 없던 전개인지 고민을 하다가 자신의 집에 데려와 안전하게 내년 11월 5일까지 나갈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 이비의 신분증을 제 것처럼 훔쳐서 자신의 복수에 이용했고 두려움을 없애주겠다는 이유로 그녀를 고문하고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기에 고문을 해줬어. 머리를 밀고, 물에 집어넣었지. 왜 그렇게 오래 고문했냐고? 네가 굴복하지 않았잖아. 용서를 바라진 않지만 넌 덕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되었다면서. 가만 보면 상당히 뻔뻔하다.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 건 고문 장면 이후에 이비가 브이를 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둘 사이에 애틋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좀 더 시간을 할애하며 전달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제삼자가 보기엔 방금 전까지 자신을 고문했던 브이를 이비가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에라도 걸린 것처럼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물론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초반부터 이비는 모두가 11월 5일을 기억하지만, 자신은 한 남자, 브이를 기억하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한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사랑도 깊어졌다. 심지어 두려운 게 없다던 브이는 막판에 이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들은 통했다.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이 확고한, 단단한 존재가 되었다. 11월 5일 전날 밤 그들은 마지막으로 Cry me a river을 듣고 춤을 추었다. 사랑을 느낄 수 없으리라고 했던 브이에게 이비는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그렇다고 브이가 이비를 고문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 둘이 애초에 결사단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넘치던 증오가 갑자기 진정된다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사랑을 전하려 했던 발레리의 편지가 아니었으면 이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장담할 수도 없다. 둘이 애틋해지는 걸 보고 함께 100퍼센트 애틋해지진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브이가 이비를 무척 아꼈기 때문에 고문까지 했겠다 싶다. 브이는 왜 그녀에게 빠져들었을까. 그가 우연을 믿지 않아서는 아닐까. 브이로 현란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이 이비(Evey)라는 이름에 v가 들어가서? 혹은 E-V라고 생각하니 너무 인연처럼 느껴져서? 마침 재판소를 터뜨리러 가는 저녁에 Eve라는 뜻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혹은 그녀에게 고마워서는 아닐까? 마침 방송국에서 위기의 순간 이비가 자신을 구해줘서?
혹은 얄팍하게도 그의 곁을 먼저 떠나서는 아닐까. 브이가 복수를 위해 그녀를 미끼로 썼을 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도망쳐 일하던 방송국의 PD 고든에게 찾아갔다. 고든은 묘하게 브이와 닮았다. 재즈를 틀은 채로 계란 넣은 토스트를 해주고, 집에 자신만의 위험한 갤러리가 있다. 그가 자신이 브이라고 장난칠 때, 왠지 그게 장난이 아닌 것도 같았다. 좀 더 평범하고 힘이 세지 않다고 해서 그가 브이와 다른 것은 아니다. 고든은 간판 프로그램의 PD고 무슨 바람인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풍자적인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브이에게 고든과 그의 결정적 차이점은 이비가 고든의 집에서는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단 점은 아닌가? 고든이 프로그램 내용으로 붙잡혀 가고 나서 도망치던 이비를 붙잡아 고문을 시작한 걸 보면, 지극히 공적인 이유만으로 고문을 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궁금했겠지. 그에게서 도망치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지 않을지 확인하고 싶었을 갓이다.
Ideas are bulletproof.(My turn!)
고문 후에 이비가 브이를 떠난 걸 보면 브이가 준 교훈과 별개로 이비가 다행히(?) 완전히 그를 용서한 건 아닌 듯싶다. 이비와 브이는 복수라는 지점에서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복수를 하는데 피를 흘려야 하는가. 이비는 자신의 온 가족을 이 나라에 빼앗기고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영화를 보고도 복수에 눈이 멀어 외면당한 메르세데스가 안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만약 브이가 복수할 대상이 마침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때도 우리는 지금처럼 브이를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가 복수할 대상들이 이제는 힘을 잃은 약자가 되었다면 애초에 그는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도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들의 힘을 빼앗고 모든 것을 정상화하는 방법이 브이에겐 죽음뿐이었다.
한 가지 더 아쉬웠던 건, 이비가 그저 브이를 기억하는 어느 특별한 누군가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만약 그 고문이 이비가 자신을 대신할 또 다른 브이가 될 수 있는 걸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해도 설득력은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이비에게 집과 심지어 10년을 넘게 노선을 깔고 만들어놓은 지하철 폭탄을 넘기는 걸 보면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브이는 복수가 삶의 목표였지만, 이비는 복수가 목표인 사람이 아니다. 그녀에겐 이름처럼 삶이 있고, 그 삶은 국회의사당이 폭파된 이후에도 이어진다. 원작에선 실제로 이비가, 이후에는 도미닉이 브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그 부분이 살아났어도 좋았을 것이다.
20년을 걸었던 도미노
영화는 브이의 원맨쇼이자 이비와 브이의 콤비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팀워크였다. 그래서 더더욱 반드시 브이라는 '한 남자'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브이였고, 브이이며, 브이가 될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이제서야 그 영화를 보게 된 게 현실과 무관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우리의 과거는 지구 상 어딘가에서 되풀이된다. 그 과거는 누군가의 현재이자 미래다. 조금 가깝고 먼 나라들에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억압에 맞서 저항하려 하지만 영화처럼 속 시원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브이는 피의 복수에 성공했지만 현실엔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흐른다. 마음이 아파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대리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역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초인적인 힘을 가졌던 영화 속 브이를 찾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건 브이가 아닌, 이비, 발레리, 핀치 경감, 고든 PD, 그리고 안경잡이 소녀다. 이비가 브이가 방송국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돕지 않았다면, 발레리가 고문당하면서도 모두를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당에 27년이나 충성해 온 핀치 경감이 이 나라가 권력을 위해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알고 이비가 레버를 당길 때 말리지 않았다면, 고든 PD가 사람들에게 코미디를 가장해 서틀러를 풍자하지 않았다면, 안경잡이 소녀가 브이의 상징을 스프레이로 그리지 않았다면, 술집과 식당, 집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한 곳에 모여있지 않았다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1812 서곡이 그렇게 통쾌하게 들릴 리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끝까지 브이와 이비를 뒤쫓다가 걸음을 멈췄던, 모든 걸 알고 밤잠을 설쳤던 핀치 경감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그의 촉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고, 언제 총을 내려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V가 들어가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남는 건 모두(everyone), 그리고 신념 혹은 유죄(conviction)이란 단어다. 신념이자 유죄라는 뜻을 가진 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반드시 처벌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더라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유죄다. 신념 없이 살아서 유죄가 되기도 하고, 신념이 있더라도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유죄가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특정한 정치체제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목격한 건 통제와 억압 사이에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었다. 어떤 해결 방법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영화도 무조건적인 답을 주진 않는다. 브이 역시 완전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느 누구도 완전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가 남긴 말들 중 스스로에 마음에 남았던 말을 기억하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뭔가가 제대로 잘못되었을 때, 그 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으면 된다. Voil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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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홀한 세계관만으로도 충분히 한 몫하는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독자적인 세계관과 매력을 겸비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이다.
그래서 흔히 어떤 작품을 설명할 때 "지브리 애니메이션 같다" 라고 부르는 이들도 존재할 정도이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사슴의 왕>은 실제로 감독과 스태프가 지브리 스튜디오 출신이므로 이 말에 충분히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스타일도 말이다.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안도 마사시, 미야지 마사유키 공동 감독 작품으로 두 감독 모두 스튜디오 지브리 출신으로 유명하다.
또한 스태프들도 스튜디오 지브리 출신이라 실제로 본 영화의 스타일을 보면 지브리 느낌이 많이 나는 편이다.
소수민족의 전사부대 외뿔의 단장 반은 유일하게 살아남아 제국의 소금 광산에서 노예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광산에 검은 맹수들이 습격해오고, 늑대에게 물리는 상처를 입었지만 버려진 여자 아이를 구해내게 된다.
한편 검은 맹수들로부터 퍼지는 전염병이 제국에 퍼지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 여정의 이야기.
제작사는 그동안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프로덕션 I.G.인데다가 두 명의 감독 또한 지브리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확실히 영상미와 연출은 더할나위없이 훌륭하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디자인과 세계관을 살려내는 영상미는 황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장황한 소설을 2시간 조금 안되는 러닝타임에 담는것은 역시 무리였는지, 원작의 고유 명사에 대한 설명의 미흡이라던가 일부 장면들의 인물 감정 묘사가 급진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도 TVA 연계 극장판과는 다른게 원작을 안 본 관객도 즐기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며, 앞에 서술한 영상미와 연출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애니메이션임은 부정할 수 없다.영상미와 세계관의 시청각적 미(美) 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애니메이션.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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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영국 첩보국 일명 '서커스'의 국장, 컨트롤은 부하 짐 프리도에게 밀명을 내린다. 서커스 안에 숨어있는 러시아 스파이 '두더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헝가리 장군을 만나보라는 것. 하지만 짐이 만난 장군은 일종의 함정이었고, 그는 살해된다. 그 후, 사건에 책임을 지고, 컨트롤과 함께 물러난 조지 스마일리는 러시아의 첩보국장 카를라가 숨겨놓았다고 전설처럼 언급되곤 했지만 모두가 믿지 않았던 두더지 잡기 작전에 돌입한다. 그러던 와중에 변절했다고 알려져 있던 리키 타르가 그를 찾아와 자신에게 벌어졌던 자초지종을 토로하고, 자신의 보고를 묵살한 서커스를 의심하는 발언을 그에게 쏟아낸다. 이 때, 조지는 리키 타르의 증언을 토대로 서커스의 일원 4명 중에서 누가 스파이일까 고민하게 되는데, 과연 그는 러시아에서 보낸 스파이를 깔끔하게 잡아낼 수 있을까?
1. 액션 신이 없어도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
"아무도 믿지 말게, 짐. 특히 수뇌부 사람들은 말이야."
짐 프리도에게 내려진 컨트롤의 밀명은 서커스 멤버 중에서 두더지가 있으니, 그를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컨트롤은 짐에게 두더지가 앨러라인일 경우, 암호명으로 팅커, 헤이든일 경우에는 테일러, 블랜드일 경우, 솔져, 에스터 헤스일 경우, 푸어맨으로 지정해 주었다. 그나마 컨트롤이 신뢰하는 서커스 멤버였던 것으로 보이는 스마일리는 자신의 동료를 의심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은밀히 진행한다. 단 한 번의 무력적인 충돌 없이. 그 결과, 그저 남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 스파이를 찾아낸다.
흔히 첩보 영화라면 시원한 액션을 기대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액션 신이 없다. 하지만 충분히 긴장감이 있다. 특히, 스마일리를 돕고 있는 피터 길럼이 리키가 보고하던 날의 업무 일지를 빼돌려 오라는 지시를 행하는 장면에서의 배우는 문서를 유출하는 자신을 보호해야만 하는 그의 급박함과 침착함을 잘 표현해내었다고 생각하며, 그런 연기에 긴장감 넘치는 빠른 템포의 음악을 덧입히니, 급박한 상황을 잘 표현하는 음악과 그의 침착한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 멋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제이슨 본, 007시리즈처럼 요원들의 멋있는 액션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것을 타겟으로 잡지 않았다. 스마일리는 사람을 잘 이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무기인 캐릭터이다. 무표정 속에서 그는 동료를 수없이 의심하고, 정보원들이 물어다주는 정보도 철저히 그만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그를 보고 있으면 첩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액션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다.
2. 변절자를 대하는 스마일리의 모습
"전 선택해야만 했어요. 도덕적 선택 못지 않은 미학적 선택이었죠. 하지만 전 그의 수하가 아닙니다."
영화 말미에 스파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스마일리가 동료들을 추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자신이 러시아 첩보국의 스파이가 된 것은 미학적인 이유였다는 대사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 미학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혹시 이미 스파이라고 탄로난 상황에 썩을대로 썩은 서방 세계를 떠나 뜨고 있는 다른 국가의 스파이가 되는 것이 폼나지 않느냐 라는 것일까. 입을 삐죽거리며, 자신의 폼생폼사를 논하는 그를 보니, 조금 찌질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관객의 입장에서 칙칙한 필터로 그려진 한 인간이 배신으로 몰락을 바라볼 때, 모호하지만 강렬한 감정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호함이 짠함일 수도 있고, 경멸일 수도 있고, 오묘한 감정의 총합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동료를 배신한 자가 이유랍시고 한 말은 그저 추해 보일 뿐이었는데, 그 추함은 아마도 자신의 변절을 멋있음으로 포장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마일리의 추궁은 감정적이지 않았다. 추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호통을 치면서 추궁을 하고 있긴 하지만 크게 표정을 일그러트린다거나 동료의 배신에 눈물 흘리며 감정적 호소를 하지 않는다. '네가 어떻게 나를 배신할 수가 있어' 같은 신파적인 요소가 없다. 그저 건조하지만 힘있는 말투, 서늘한 눈빛으로 그저 질문할 뿐이다. 정보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 굳이 화를 내지 않고도 정보로만 승부를 보고, 차분히 취조하는 그의 태도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두더지의 손아귀에
"실패와 추문만 난무할 뿐 쓸만한 요원이 없어요"
두더지가 잡혔지만 모두가 공범이었고, 결백함을 주장하기엔 너무 멀리와 있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충성한다는 명분 아래 정보를 유출시키고 있었다. 영국에는 믿을 만한 정보원이 없다면서 자국 디스를 했지만 결국 그들도 변절까지는 아니지만 국가의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두더지의 농간에 놀아나는 요원으로서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또한, 그들은 두더지가 짜놓은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짐 프리도에게 조용히 살 것을 종용하고, 러시아 첩보원에 대해 아는 사람들을 해고시켜가면서 서커스를 곪게 만들었다. 그들의 의도는 영국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겠지만 말이다. 충성심을 역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다니, 카를라라는 캐릭터는 단 한 번의 얼굴 등장도 없이, 참 존재감이 크다.
그들의 충성심은 영화 막판에 두더지의 정체를 알게 되고, 두더지의 소재지에서 나오며 스마일리와 마주쳤을 때, 그의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는 한 실패자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고, 또다른 실패자는 스마일리의 추궁 장면에서 그가 울먹일 때, 조금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변절자가 아니라 속아넘어간 사람들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잘난 척들을 했지만 결국 스파이의 농간에 놀아난 사람들임이 탄로나버린, 작전에 실패한 요원들의 말로를 보니, 첩보 세계의 냉정함이 보였고, 첩보원들은 참 치열하고, 치밀해야 함을 느꼈다. 스마일리의 무표정하고, 치밀한 일처리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인간으로서 동정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인간적인 이해보다는 철저한 요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깊은 인간적 이해는 그만두도록 하자.
4. 총평
한국에도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보고, '공작'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는데, 정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첩보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액션을 위한 좋은 몸이 아니라 눈치와 머리 싸움이라는 것도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라는 점이 비슷하다. 공작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내부에 숨어있는 적을 색출해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첩보 세계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린 영화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이 두 영화를 추천한다.
이런 영화들을 볼 때면, 애국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애국은 다른 이들에게 변절일 수도 있는 첨예한 단어이기 때문일까.
※ 해당 영화는 Netflix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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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 속임수와 혼란 사이에서 고개를 드는 신의 본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자연의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는 전통 신앙이 남아 있는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에서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싸와니 우툼마)’. 신의 힘을 빌어 다른 존재의 혼을 침범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제사를 드리며 지내던 그녀는 언니인 '노이(시라니 얀키띠칸)'의 남편 장례식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이 마치 신병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인 것. 밍의 증상이 날이 갈수록 점점 심각해지자 님은 그녀가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다. 이에 님과 동행하며 무당을 취재하던 촬영팀은 신내림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들의 가족까지 카메라에 담기고 결정하고, 이들 모두는 밍에게 빙의한 존재로 인해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린다.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기획/제작하고, <셔터>로 유명한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을 맡은 <랑종>은 개봉 전부터 매우 잔혹하고 섬뜩한 작품이라는 후기로 인해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직접 마주한 <랑종>에서 가장 눈길이 간 곳은 예상외의 대목이었다. 그것은 바로 영화 전반을 장악한 테마인 '속임수'와, 그 눈속임의 연속이 조성하는 혼란과 공포,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개를 드는 신과 종교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었다.
우선 <랑종>의 테마인 속임수는 영화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당장 님이 무당이 된 이유부터 눈속임에서 비롯된다. 본래 무당이 될 운명이 아니었던 님은 언니인 노이가 자신에게 부적을 몰래 붙이고 본인은 성당에 나가는 등의 꼼수를 부린 결과 바얀 신을 모시게 되었다. 이렇게 한 명은 속고, 한 명은 속이는 자매의 역사는 영화에서 반복된다. 노이와 큰오빠 '마닛(야사카 차이쏜)'의 불협조로 인해 밍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었던 님은 그녀의 증상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삶이 그 자체로 다른 이들을 속여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한다. 노이도 예전에 바얀 신을 속였듯이 자신과 딸을 괴롭히는 악령을 속이려고 한다. 이에 더해 퇴마사 싼티와 밍, 마닛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속인다.
영화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랑종>은 분명 공포 영화의 외관을 가지고 있다. 악령이 빙의한 밍이 갑작스레 생리하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장면은 불쾌감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애완견을 죽이고, 자해하고, 섹스를 갈구하는 등의 행위는 스크린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이 무섭다. 그런 그녀를 옆에서 보는 가족들의 심정, 악령으로 인해 자신이 모시는 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님의 모습도 두려움과 공포를 부추긴다. 이때 <랑종>은 악령들에 의해 일가족이 고통받는 끔찍한 비극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야싼티야'라는 밍의 가문명이 적힌 인형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랑종>이 보여준 공포영화의 겉모습은 속임수로 밝혀진다. 님과 밍의 가족이 아닌 밍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악령들의 관점에서 볼 때 <랑종>은 기본적으로 처절하면서도 짜릿한 복수극이 되기 때문이다. 보험금을 노리고 공장을 방화한 밍의 할아버지로 인해 죽은 노동자들과 동식물의 혼, 노이가 불법인 장사를 지속하면서 도축한 개들의 혼은 그저 자신들이 당한 일을 가해자들에게 그대로 되돌려줄 뿐이다. 이는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화장실까지 따라오며 관음적으로 촬영하는 것을 불쾌해하던 밍이 악령에 사로잡힌 뒤 카메라맨을 역으로 촬영하면서 공격하는 것으로 복수하는 장면과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이처럼 속임수가 겹치고 겹친 결과 주인공들은 혼란에 휩싸이고, 혼란 속에서 선과 악의 경계선까지 모호해지자 그들은 이내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에 빠져든다. 밍의 가족과 님의 입장에서 밍에게 빙의해 자신들을 공격하는 악령들은 악이고, 바얀 신은 그들을 무찔러 줄 선한 존재다. 하지만 악령들이 정작 자신들과 조상들의 업보로 인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보니 과연 그들을 순전히 악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자연히 의문스러워진다. 공포 영화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였던 악령과 밍의 가족 간의 관계가 복수극에서는 역전이 되고, 그 결과 악령이라 부르는 존재에 대한 선악의 구분은 이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령이 무조건적인 악에서 벗어나자 악령을 퇴치하려는 노력의 정당성도 미약해지고, 주인공들은 악령 앞에 무력해진다.
작중 바얀 신의 역할에도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바얀 신은 밍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것 외에 철저히 침묵한다. 신을 자신의 몸에 모시는 님은 뛰어난 신통력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밍이 보이는 이상 증세의 원인을 착오하고, 악령들에게 농락당한다. 악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도 바얀 신은 마치 죽은 듯이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다만 바얀 신의 침묵은 신을 철저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해한 결론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은 바얀 신이 자신들의 가문을 지켜주는 선한 존재이기에 이번에도 악령을 물리치거나 그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믿었다. 야싼티야 가문의 시점을 탈피하면 그들의 비극이 단지 그간 지은 업보를 되돌려 받는 것에 불과하며, 조상신인 바얀 신이 주인공들을 온전히 지키고 보살피는 것을 선한 일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는 악령에게도 그러했듯이 인간의 선악관이 신이라는 존재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작중 바얀 신이 죽은 것처럼 묘사되는 것은 사실 인간이 상상하는 신의 형상과 이미지가 파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얀 신의 석상은 그저 인간이 만든 상징일 뿐, 그의 존재와 힘은 석상 밖에 온전히 존재한다. 이는 한평생 바얀 신을 모셔온 님이 마침내 신의 본질을 마주하고 깨달은 순간 두려움에 휩싸이고 퇴마의식이 효과가 있을지 의심하며, 무당으로서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랑종>은 신이 인간의 관념을 넘어서는 존재이고, 그 앞에서 인간은 신의 의지를 이해하기는커녕 그의 힘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선함'의 껍데기를 벗고 드러난 신의 본질은 그 자체로 두렵고 공포스럽다고 이야기하는 영화다.
사실 이러한 신에 대한 고찰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 속 등장인물인 욥에게서도 님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고 살았던 욥은 신에 의해서 난데없이 재산과 가족, 자신의 건강을 모두 잃는다. 이에 마지막까지 신의 선의를 믿던 욥도 끝내 왜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신에게 따진다. 하지만 신은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폭풍 속에서 모습을 잠시 드러낸 그는 힘으로써, 두려움과 공포로 압도할 뿐이다.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신의 힘 앞에서 욥은 인간적 관점에서의 도덕적 우위를 내세워보지도 못한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왜 자신이 아닌 딸에게 이런 불행을 주냐고 절규하는 노이, 선한 신이 악령들을 물리칠 거라 기대하지만 그 기대를 배신당하는 님과 닮았다.
다만 욥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과 달리, <랑종>의 주인공들은 새드엔딩을 맞는다. 그 이유를 영화는 믿음의 차이에서 찾는다. 욥은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 성경 속 다른 예언자들, 쿠란 속 무함마드처럼 끝까지 신을 믿었다. 그러나 작중 등장인물들은 신이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들은 성당을 다니면서도 밍에게 신내림을 받게 하려 하고, 퇴마사를 믿지 못해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며, 바얀 신의 도움을 바라면서도 그에 대한 믿음이 없다. 회색 자동차에 '이 자동차는 빨간색이다'라는 스티커를 붙이면 자동차가 빨간색이 된다고 여기는 것처럼, 합리적이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듯 보이더라도 결코 믿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한 결과 끝내 비극을 피하지 못한다.
그래서 선과 악이라는 인간적 관점에서 벗어나 신과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랑종>의 공포는 일반적인 공포영화의 그것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 종교와 신이라는 이미지에서 일반적으로는 고려되지 않는 공포, 신비함 안에 내재되어 있는 두려움, 강력한 힘 앞에서 무력한 인간상을 끄집어 올리기 때문이다.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가 <성스러움의 의미>에서 말한 대로 “절대적으로 엄청난 것, 거의 악령적인 것,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 영원한 창조력의 수수께끼와 불가해성, ‘전혀 다른 것’으로서 우리의 모든 개념적 사고를 조롱하는 것, 그러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심층에서 움직이며 매혹하고 동시에 깊은 공감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영화 경험 그 자체로 표현된 것이다.
실제로 <랑종>의 구조나 형식은 이러한 주인공들의 경험과 체험, 그리고 주제의식을 온몸으로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선 영화는 바얀 신이라는 선을 따르는 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그녀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한다. 바얀 신과 악령이라는 명확한 선악 구도 안에서 악령을 퇴치하는 이야기에 빠지게 만드는 것으로, 이는 영화의 길잡이였던 님이 퇴장하는 순간의 임팩트를 극도로 높이는 장치다. 비 내리는 정글 안에 홀로 남아 길을 알 수 없는 것 마냥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종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등장인물들은 물론 관객들도 함께 빠트리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영화는 중반부까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현실성과 사실성을 극도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페이크 다큐에서 벗어나는 장면을 꾸준히 삽입하며 기괴함과 두려움을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낸다. 뒤이어 후반부에서는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여러 극한의 잔혹함과 공포감을 본격적으로 체험시켜준다.
다만 페이크 다큐 형식은 영화의 힘을 잃게 만드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원인은 두 가지다. 우선 영화가 갈수록 아무런 설명 없이 우연과 운에 기대는 다소 극적이고 억지스러운 전개를 선보이다 보니 후반부의 내용은 현실감을 강조하는 형식이 소화하기에는 과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연상케 하는 카메라 구도로 밍을 관찰하는 장면이나 마지막 퇴마의식에서 카메라가 카메라맨들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도록 세팅되는 상황에서는 해당 화면을 애써 사실적으로 만들려는 작위적 장치가 숨겨지지 않는다. 또한 보기 드물었던 점프 스퀘어를 비롯한 여러 호려 영화의 클리셰가 후반부에 집중된 것도 원인이다. 너무 짧은 순간에 강렬한 자극이 반복해서 등장하다 보니 피로함을 주고, 더 나아가 영화의 전반부와의 이질감을 키우면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중반부까지 조성되는 으스스함, 언캐니(uncanny)함과 서스펜스에 비해 후반부는 다소 맥 빠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결과 <랑종>은 기대한 바가 무엇인지, 영화의 촬영 방식과 형식에 동의하는지, 주제의식과 메시지가 얼마나 강하게 느껴지고 다가오느냐에 따라서 평가와 호불호가 극과 극을 오갈 수밖에 없는 영화다. 누군가는 나홍진 감독과 <곡성>의 명성에 비하면 최소한의 장르적 재미조차도 잡지 못한 조잡한 공포 영화라고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쓸데없이 잔인하고 관음적인, 개인의 신념과 사상에 따라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쾌한 영화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랑종>이 신의 본질과 종교를 구성하는 근간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것만은 분명하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상황을 조성하는 힘에 비해 풀어내는 기교가 부족했던 신과 종교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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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관 | 폐허 위에 클리셰로 쌓은 애환과 사명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화재 현장, 교통사고, 자살 소동 등 끊이지 않는 사건 현장에서 하나의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119 구조대 반장 '정진섭'(곽도원)과 그의 팀원들. 여느 때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그들 앞에 신입 소방관 '최철웅'(주원)이 등장하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구조 대원에게 답답함과 애정이 반씩 담긴 질타를 날리며 다시 사고 현장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섭과 철웅, 그리고 그의 팀에 돌연 위기가 닥친다. 한 화재 현장에서 철웅의 실수로 인해 선배 '안효종'(오대환)이 등 전체에 화상을 입은 것. 여기에 더해 진섭의 절친한 후배이자 철웅의 가장 친한 동네 형인 '신용태'(김민재)도 무리해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가 현장에서 사망한다. 이에 진섭과 철웅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그들 간의 갈등의 불씨도 커지기 시작한다.
뻔한데, 다르다
실화를 다루는 작품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린다. 영화적 재미 대신 실화의 힘을 선택하기 쉽다. 영화화해도 되겠다고 판단되는 실화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기 때문. 이처럼 쉬운 길을 걷는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누가 죽고 살 지 뻔한 클리셰의 향연. 운과 우연에 의존한 전개. 대부분의 캐릭터가 기억나지 않는 평면적인 묘사. 사건의 사회적 함의보다는 일차원적인 감정 분출에 집중한 각색까지.
곽택 감독의 신작인 <소방관>도 마찬가지다. <소방관>은 홍제동 방화 사건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가 사망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재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쉬운 길을 선택했다. 클리셰로 가득하다. 누가 사망할지, 각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누가 방화범이고 피해자인지 등을 영화 시작 10분 안에 전부 알 수 있다. 각 소방관의 개인사, 가족사를 부각하며 눈물을 흘리게 하는 신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방관>은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마냥 뻔하지는 않다. 신파는 많지만, 일반적인 한국 영화의 신파와는 결이 다르다. 모든 캐릭터가 스트레오 타입이지만, 최소한의 생동감은 있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이 아닌 구조대원 전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골고루 돌리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 덕분이다. 그 결과 <소방관>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고, 마냥 실화에만 의존한 신파극이라는 오명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클리셰 범벅
겉보기에 <소방관>은 특별할 게 없다. 한국 영화 특유의 클리셰로 가득하다. 주인공 최철웅의 서사만 보더라도 예측가능한 범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군대를 전역한 후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한다. 소방관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와도 알고 지낼 정도로 각별한 형 신용태의 권유로. 하지만 함께 출동한 화재 현장에서 용태가 사망하고, 철웅은 PTSD에 시달리며 방황한다. 재난 영화 등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상이다.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사실상의 주인공인 정진섭은 하필이면 소방관 근무 마지막 날에 홍제동 화재를 진압하다가 건물에 깔려 사망한다. 아빠를 기다리는 초등학생 아들, 은퇴한 남편과 함께 운영할 치킨집을 막 오픈한 아내를 남겨둔 채로. 철웅의 선배 구조대원인 안효종도 마찬가지다. 그는 곧 매제가 될 후배 '송기철'(이준혁)과 그의 아이를 임신한 여동생을 남겨둔 채로 사망한다. 가족관계가 나오자마자 예측가능한 결말이다.
주인공 따로, 중심인물 따로
그러나 <소방관>에는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과 중심인물이 다르다는 것.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최철웅이다. 카메라는 그의 시점에서 소방관의 일상을 비춘다. 그런데 정작 그는 러닝 타임 내내 주인공다운, 영웅적인 활약을 거의 못한다. 사고 치고, 덤벙대고, 혼자 괴로워하고, 막말하기 바쁘다. PTSD를 떨치지 못해 구조 대원 복귀도 망설인다. 거칠게 말해서 이보다 찌질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객들은 소방관들의 내면을 깊이 살펴볼 수 있다. 관객에게 신입 구조 대원인 최철웅은 소방관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돕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첫 등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이등병처럼 곧장 사고 현장에 투입되어서 실수를 남발하고, 선배들에게 온갖 꾸지람을 들으면서 소방관들의 일상과 업무에 녹아든다. 이때 관객은 최철웅의 눈을 통해 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이처럼 주인공의 눈을 통해 다른 대원들을 살피면서 관객들은 그들이 소방관으로서 지닌 고민과 책임감에 서서히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정진섭은 그중에서도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명감 하나만으로 무장한 채 불길 속에 뛰어드는 베테랑 구조대원이다.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아끼는 동료도, 자기 목숨마저도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섭의 주변을 보면 소방관이 견뎌야 하는 딜레마를 명확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아내는 생명보험에도 가입 못하는 그를 걱정하면서도 원망하고, 아들도 아버지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같이 시간을 못 보내서 미워한다. 그는 가족을 이해하면서도 쉽사리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이는 진섭이 철웅을 미워하는 듯 챙기는 이유다. 그가 보기에 철웅은 이 딜레마를 버텨낼 준비가 안 된 햇병아리이니까.
과한데, 억지스럽지 않은
진섭 외의 다른 소방관들도 비슷하다. 곧 가족이 될 효종과 기철이 서로 구조대원을 그만두고 행정직에 지원하라고 떠미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한 집에 구조대원이 둘이나 있으면 다른 가족들이 편히 잘 수 없다는 공감대가 무겁지 않게 새어 나온다. 이처럼 자칫 철웅에게만 쏠릴 법한 분량을 적절히 조정한 덕분에 각 캐릭터에게는 예상보다 더 많은 분량이 분배되고, 그들의 삶과 고뇌는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긴장감 가득한 화재 진압 장면은 진정성을 더해준다. 극 중 화재 시퀀스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하나씩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 시퀀스만으로도 소방관이 감내해야 할 위험은 명확히 전달된다. 소방관의 시점에서 화재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는 드문 경험을 세밀히 묘사한 덕분이다. 갑자기 무너지는 계단과 벽, 폭발하는 가스통, 급격히 줄어드는 산소량 등은 관객들의 두려움을 극대화하기 충분하다.
그 덕분에 <소방관>의 신파는 과할지언정, 억지스럽지 않다. 눈물은 흘려도, 눈물을 짜내는 장치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일상 속 소방관의 사명감과 그들의 애환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담담한 연출 덕분에 <소방관>의 신파는 더 인상적이다. 소방관이 사망하는 순간을 슬로 모션을 길게 끄는 식의 연출은 없다. 그저 필요한 장면만 담백하게 전달한다. 자연히 결말을 장식하는 철웅의 오열도 작위적이지 않다.
더 나아가 엔딩 크레디트도 전형적이라는 인상이 옅다. <소방관>은 여러 실화 기반 작품처럼 실제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막으로 부연 설명을 말미에 덧붙인다. 사실 이러한 마무리는 사건 자체를 조명하는 효과와는 별개로 영화 자체의 재미나 완성도를 감추려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방관들의 노력과 사투를 깊이 있게 묘사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본말이 전도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부족한 디테일과 불운
다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우선 홍제동 화재 사건 그 자체보다는 사건 이후를 다루면 어땠을까 싶다. <소방관>은 결국 소방관의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익 메시지에 힘을 주는 영화다. 불법 주차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어렵거나, 사비로 보호 장비 등을 갖추는 묘사가 반복되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사건 이후 소방관 처우 개선 과정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게 소방관의 헌신과 희생을 더 돋보이게 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자막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화재 상황을 묘사할 때는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의 소음이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또 소방관들도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기 때문에 대사가 전달되는데 한계가 명확한다. 따라서 전투 시퀀스에만 자막을 삽입한 <한산: 용의 출현>이나 <노량: 죽음의 바다>처럼 화재 진압 장면만이라도 자막을 통해 대사를 보여주는 게 관객 입장에서는 더 편리하지 않았을까 싶은 측면이 있다.
이에 더해 영화 개봉도 밀리게 한 주연 배우 이슈도 안타깝다. 상술했듯이 곽도원이 연기한 정진섭은 주원이 연기한 최철웅보다 더 중요한 캐릭터다. 소방관들이 어떤 생각으로 자기 직업을 대하는지가 주로 곽도원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 그의 목소리로 되새겨지는 소방관의 기도가 대표적이다. 또 주인공이라기에는 매력이 부족한 철웅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데도 정진섭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해당 배우가 물의를 빚다 보니 영화의 메시지나 연출 의도가 어쩔 수 없이 곡해되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고, 자연히 완성도를 낮추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뻔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의외의 울림과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방관>은 분명 불운한 작품이다.
Acceptable 무난함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르는 다큐멘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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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일주일 중 가장 힘든 수요일 Hump Day에
활기를 더해줄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한눈에 정리해 드릴게요 :)
그럼, 4월 셋째 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정세랑 작가, <스타워즈: 비전스> 시즌 2 집필
ⓒ 디즈니+<보건교사 안은영> <지구에서 한아뿐> <시선으로부터,> 등을 쓴 정세랑 작가가 디즈니+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타워즈: 비전스> 시즌 2의 작가로 합류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스타워즈: 비전스>는 옴니버스 단편 형식의 애니메이션으로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정세랑 작가는 스튜디오 미르와 루카스 필름과 함께 <어둠의 머리를 벨 수 있다면> 에피소드에 참여하였습니다. 시즌 2는 한국, 영국, 프랑스 등 9개국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참여한 작품입니다.
정유미X이선균 <잠>, 칸영화제 초청
ⓒ 네이버 영화17일 오전 11시(현지 시각) 비평가주간 집행위원회에서 영화 <잠>을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잠>은 유재선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이며, 이야기는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으로 시작됩니다.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은 <잠>을 "센세이셔널한 영화"라고 평했습니다. 이로써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상영하는 한국 영화는 <잠>,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 홍사빈과 송중기 주연의 <화란>까지 총 3편입니다.
공포 영화 <컨저링>, 드라마로 제작
ⓒ 네이버 영화한국에서 226만 관객을 기록하고 그 해 최고의 공포 영화로 선정되었던 <컨저링> 시리즈가 드라마로 제작됩니다. 드라마에 대한 세부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에서 확립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영화 <컨저링> 시리즈의 경우, 지난해 10월 시즌 4 제작을 발표했으며, 지난 1월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갔습니다.
생 로랑, 영화 제작사 설립 발표
ⓒ Saint Laurent
패션 브랜드 생 로랑이 영화 제작을 위한 자회사 '생 로랑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짐 자무시, 데이빗 크로넨버그, 페드로 알모도바르, 왕가위, 아벨 페라라, 가스파 노에,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신작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포함해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생 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안토니오 바칼렐로는 "옷보다 더 영구적인 매체인 영화를 통해 생 로랑의 비전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이다. 어떤 면에서는 시즌 컬렉션보다 더 큰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허광한 주연 <메리 마이 데드 바디>, 대만 박스오피스 1위
ⓒ ㈜리안컨텐츠
배우 허광한이 신작 <메리 마이 데드 바디>로 기존의 이미지를 180도 뒤엎는 연기 변신을 선보였습니다. 영화는 혈기 넘치는 형사 우밍한(허광한)과 억울하게 죽은 영혼 마오마오(임백굉)의 본 적 없는 인간과 귀신의 독특한 공조 수사를 다룬 코믹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영화는 대만 현지에서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메리 마이 데드 바디>는 오늘 5월 17일 CGV에서 단독 개봉됩니다.
<퀸메이커> TOP 10 TV(비영어) 부문 1위
ⓒ 넷플릭스
<퀸메이커>가 공개 후 3일간 1,587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TOP 10 TV(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하고, 12개국 TOP 10 리스트에 오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배우 김희애, 문소리 주연의 <퀸메이커>는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던 황도희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 서울-부산-제주까지 재내한
ⓒ 네이버 영화
2023년 개봉작 흥행 1위에 오르며 관객들의 압도적인 호평을 얻고 있는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300만 관객이 넘으면 다시 한국을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는 4월 27일(목)부터 30일(일)까지 한국을 찾을 예정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국내 관객들의 열띤 성원에 보답하고자 서울, 부산, 제주까지 방문할 예정입니다. 또한, 서울 GV 행사에는 5월 개봉 예정인 한국어 더빙판 성우가 깜짝 등장을 예고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씨네랩이 들려드리는 오늘의 씨네뉴스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일주일에 반절이 지나갔네요. 곧 주말이 다가오니 조금만 더 힘내서 시간을 보내봅시다!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HIZY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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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주 최신 개봉영화(베놈2, 졸트, 실: 인연의시작, 십개월의 미래, 푸른호수)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0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베놈2 #졸트 #실 인연의 시작 #십개월의미래 #푸른호수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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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더라인> 메인 예고편
“어디에 있어도 네가 보여”
런던에 살고 있는 작가 지망생 ‘안나’ 앞에
평범한 삶을 원하는 그녀 ‘로빈’이 나타난다.
첫 만남부터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낀 그들은
생애 단 한 번, 처음 겪는 사랑을 시작한다.
“날 사랑해줘. 원하든 원치 않든”
창작에 대한 집착과 갈망이 심해진 ‘안나’는 점점 현실 감각을 잃어가고
‘로빈’은 변해가는 ‘안나’의 행동에 괴로워한다.
사랑을 시작할수록 늘어가는 고통에 평온했던 ‘안나’의 일상은 뒤흔들린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마주한 그날, 나에게 가장 위험한 첫사랑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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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한강> 티저 예고편
한!강! 디즈니+에 한강경찰대가 떴다!? 물 흐리는 놈은 우리가 잡는다! 안전한 한강을 위해 오늘도 출동? 권상우X김희원X이상이X배다빈X신현승 그리고 성동일! 막강 캐스팅 조합이 완성한 극강의 水펙터클 코믹액션 [한강] 9월 13일, 오직 디즈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