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2024-08-19 21:06:19
지금 우리가 뭘 하는지 보라
조나단 글레이저, <존 오브 인터레스트> 리뷰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들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내면은 진정으로 선하다고 믿어". 이 말들은 우리에게 '모종의 영감'을 주는데, 그건 그 말들이 우리 귀에 좋게 들린다는 뜻이다. 이 말들은 살해된 소녀들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이는 걸 용납하는 우리 문명의 타락에 대해 용서받은 기분이 되게 해준다. 그리고 만약 그 말들이 살해된 소녀에게서 나왔다면, 글쎄, 그렇다면 그 말들은 틀림없이 진실일 테니 우리는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게 틀림없다. 살해된 유대인이 내려주는 그런 은총과 사면이라는 선물이야말로(정확히 기독교 사상의 핵심에 자리 잡은 선물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안네의 은신처에서, 그가 쓴 글에서, 그가 남긴 '유산'에서 너무도 간절히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죄 없는 죽은 소녀가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었다고 믿는 것이 다음과 같은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운 일이다. 안네가 '내면이 진정으로 선한' 사람들에 관해 쓴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이었다. 그 문장을 쓰고 3주 뒤, 그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어떤 사람들이 살아 있는 유대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보여주는 사실이 여기 있다. 그 사람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이 사실은 안네 프랑크의 글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되풀이해 말할 가치가 있다. 그의 일기를 읽는 독자들은 작가가 집단 학살에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것이 그의 일기가 집단 학살에 관해 쓴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런 작품이었다면 그 일기는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우리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생생하고 자세하게 연대기순으로 정리해 쓴 글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 기록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안네의 일기가 얻은 명성 같은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 그런 무언가에 가까이 갔던 기록들은 오직 은폐라는 똑같은 규칙, 자신을 박해한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예의 바른 피해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규칙을 준수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었다.이디시어판은 <나이트>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자들에 대한 그리고 제목이 암시하듯 무관심으로(혹은 적극적인 혐오로) 그런 살해를 가능하게 했던 세상 전체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위젤은 후에 프랑스인이자 가톨릭 신자이며 노벨 상 수상자였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도움을 받아 '나이트 La Nuit’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프랑스어판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젊은 생존자의 분노를 신학적 고뇌로 전환한 작품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속한 사회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떤 독자가 듣고 싶어하겠는가? 신을 비난하는 것이 낫다. 이런 접근법은 위젤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세월이 흐른 뒤에 이 책이 미국이 베푸는 호의의 전형인 오프라 북클럽 선정작이 되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접근법도 일본의 십 대 소녀들이 안네의 일기를 읽었듯 이 책을 읽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되려면 위젠은 많은 것을, 훨씬 더 많은 것을 은폐해야 했을 것이다.<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주의: 참사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
현시점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라기엔 너무 참여-미디어 아트의 영역으로 나아가 버린 것도 같다. 대부분의 글로벌 관객들에겐 영화보다도 먼저 사회적 책무를 인지하고 유의하는 행동주의 예술가의 수상 소감 영상이 전해져왔다.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오스카에서 유대계 정체성(Jewishness)과 홀로코스트를 또다른 전쟁/학살을 위해 오용하지 말 것을 촉구한 후, 곧장 전세계 시오니스트의 돌을 맞는다. 그 자신 역시 유대계이면서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정면으로 반대한 그가 손을 덜덜 떨며 준비해온 ‘선언’을 수행할 때 우리는 일종의 경외를 느낀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가 선 곳에 가장 먼저 균열을 내며 우리 인간의 자격을 되묻는 모습. 그렇듯 순교를 불사한 지성인의 결기는 어떤 이에게나 강렬한 전율로 다가오니까.
한편 미디어 아트로서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흥미로운데, 우선 이 영화가 전시하는 풍광은 오프닝부터 경박하리만큼 경쾌하고 그늘 없다. 르누아르의 사랑 넘치는 가족 연작을 떠올리게 할 만큼 밝은 햇볕 속, 떼죽음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며 안전한 부귀를 누리는 가족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는 ‘건전한 수용소 미관 조성’을 위해 라일락 관목을 꺾지 말라고 엄숙하게 공지 방송을 하고, 아이들은 곧 도살될 유대인들처럼 아버지 루돌프의 눈을 가리고 그를 정원으로 데려가 깜짝 생일 파티를 선물한다. 어머니 헤트비히가 정성껏 돌보는 아름다운 정원과 윤기 나는 검은 개와 건강한 5남매까지, 완벽한 소품을 둔 듯 잘 가꿔진 이 삶이 평범할수록 도리어 벽 너머의 - 어쩌면 이미 삶이 아닐 - 삶(들)에 대한 암시가 숨을 죄여온다.
헤트비히를 포함한 장병 부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잔머리 하나는 대단한’ 유대계 희생자들을 비웃고, 그들로부터 갈취한 밍크 코트와 보석들을 두르고 힘을 과시하지만 이 과시는 절대 노골적이거나 공개적이지 않다. 다른 부인의 거대한 코트를 두고 다른 여자들과 “여제 같다”며 부러워하고 비꼬았던 헤트비히는 강아지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은 문 안에서 제게 떨어진 코트를 몰래 입어보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값비싸고 보드라운 코트는 헤트비히가 평소에 입던 평범한 원피스에 비해 너무나 어울리지 않고 어딘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또 헤트비히는 코트 주머니 안에서 나온 립스틱 - 그러니까 이것이 원래는 살아 있었던 누군가의 소유임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끔찍한 소품 -을 발라봤다가 이내 쓱쓱 문질러 지워버린다.
이 은근함, 이 비밀스러움은 회스 부부를 포함한 독일인 전범 가족들이 그 시점 도달한 삶이 절대 처음부터 그들 소유가 아니었단 사실을 제시한다. 그들이 부유했었고 똑똑했던 유대인들을 멸시하거나, 장모가 과거의 유대인 고용주를 떠올리고 “그 여자도 지금 저기 있으려나?” 상상하며 어딘지 고소해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이전에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을 갖고 있었던 이들에 대한 질시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상위 계층을 ‘몰아냄’으로써 계급 이동에 성공한 하위 계층의 승리감, 도취감 내지는 자족과 뿌듯함이 이들의 얼굴에 부드럽게 퍼져있는 것이다.
“그이는 저보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라며 수줍은 듯 의기양양한 듯 말하는 헤트비히, ‘불합리한’ 전출에 항의하다가 결국 “이런 ‘희생’을 감수하는 게 삶이란다”라고 애마에게 말하는 루돌프. 우습고 불쾌한 기분이 정점을 찍는 것은 부부가 강가에 서서 발령 소식에 대해 논의하는 씬에서다.
난 죽어도 여기 안 떠나.우리가 열일곱 살 때부터 꿈꿔온 삶이잖아.총통도 그렇게 연설하셨잖아.동쪽으로 가서 보금자리를 찾으라고.
즉 헤트비히와 루돌프는 “그동안 꿈꿔왔던 삶”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들여왔으며 그 삶을 ‘부당하게’ 뺏기지 않기 위해 더한 노력도 불사할 거란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 노력이란 건 물론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탈취하고 강간하는 일에 일조하거나 “태우고, 식히고, 비우고, 채우고”의 반복을 직접 설계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루돌프의 ‘일’은 사람을 분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일정하게 먼 거리에 고정된 다중 시점의 카메라를 통해서만 그려지고 있는데, 헤트비히가 일궈온 꽃밭과 온실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손만 까딱하면 네 명의 하녀들이 벌벌 떨며 궂은 일을 대신해주고 전시 중에도 케이크와 비싼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벽 뒤에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게 죽든 나머지 가족들이 알게 뭐란 말인가.
“초콜릿 같은 거 있으면 꼭 챙겨줘”라며 남편에게 당부하는 씬을 통해 공범임을 입증한 헤트비히의 몸과 움직임은 ‘어쩔 수 없이’ 루돌프의 그것에 비해 비인간성의 일상화에 더 깊게 일조한다. 루돌프는 수용소장이고 헤트비히는 그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사람을 죽이고 처리하는 효율적 프로세스를 직접 설계하는 자고 헤트비히는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 그럼으로써 당시에 침묵하거나 적극 가담한 일반적인 독일인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루돌프가 참석한 나치 장교들의 회의보다도 헤트비히의 신경질적 짜증이 극 전반에 긴장감 도는 중력을 더한다. 그는 결코 상냥하거나 일관된 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 기분이 상하면 “너 하나쯤 재로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라며 하녀를 위협하는 여주인이다. 무의식적인 듯해서 더 공포스러운 무시. 힘을 제대로 다루는 법도 모르고 뒤따르는 책임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갑자기 쥐어진 타인의 생사여탈권. 성실한 군인이고 좋은 아버지였던 루돌프가 창녀를 사는 위선이나, 헤트비히가 남편보다 집을 선택하는 자기중심성은 그래서 놀랍지도 기이하지도 않다.
상실 없는 상실과 공포 없는 공포, 무게감 없는 무게를 전달하는 작품을 ‘보며’ 관객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는지를 계속 의식하게 된다. 벽 뒤에서 무언가 가동되는 소리. 간헐적인 총소리와 희미한 통곡과 비명 소리. 게르만 아기의 울음과 유대인 아기의 울음은 기묘하게 뒤섞이고 개들은 담장 안팎에서 하울링을 주고받는다. 헤트비히의 어머니처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이 모든 불길한 소리를 못 견뎌 말없이 떠나버릴 정도지만, 내부인들은 백색소음 정도로 치부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우리 눈에 푹푹 박혀오는 풀꽃의 선명한 빛깔, 새빨갛고 예쁜 수영복과 희디흰 게르만족 피부의 조화, 맑은 강물 앞 단란한 가족이 노니는 풍경이란 얼마나 아름답게 다가왔을 것인가.
눈과 귀의 기이한 간격을 최대한으로 유지하며, 눈을 극적으로 속이고, 클로즈업 없는 원경으로 눈이 해석하는 정보값을 어긋나게 하길 의도하던 영화는 돌연 마지막 5분간 오류 없이 명확한 장면을 송출하니, 바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관을 열심히 쓸고 닦는 현대의 풍경이다. 80년의 간극을 뛰어넘게 해줄 통로는 암전 속 빛이 새어 들어오는 좁은 바늘구멍이다. 이는 원시적인 카메라를 즉각 은유한다.
루돌프 회스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돌연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찍는 카메라를 직시하고, 블랙박스가 ‘보여준’ 미래를 감지한다. 이 응시는 영적이고 마술적이다. 루돌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역시 루돌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그날 밤 자기 공적을 치하하는 파티에서마저 ‘이 사람들을 가스로 몰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전화 너머 헤트비히에게 즐거이 말한다. 즉 그는 ”당신은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필사의 합리화로도 보호받지 못할 괴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붙잡혀 구타로 앙갚음당하고 결국 교수형을 당할 자신의 운명을, 악인 하나를 징벌하는 것으론 복구되지 않을 수십만의 생명을, 시원하게 토해내지도 못할 만큼 무거운 죄악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짊어진다.
드문 고요 속 루돌프는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간다. 아우슈비츠의 집에서 온 방 불을 끄고 문을 잠그며 침실로 올라갈 때와 같은 속도로.
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의 우릴 반성하고 직면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그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뭘 하는지 보라'.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걸 보여줍니다.조나단 글레이저
그때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과, 지금 여기에서 내 눈앞이 아닌 곳에서 담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고 말할 사람들. 어쩌면 이미 늦어버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다를 것인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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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아픔의 경계선 위에서...
개봉 전 스크리닝 시사로 먼저 영화를 본 후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순간들을 만난다. 평범한 일상 중에서 특별한 사람이나 순간을 만나기도 하고, 또 지독히 아픈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인생의 희로애락을 누구나 겪으며 산다. 각각의 성향이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은 비슷한 듯 하지만 모두 그 깊이가 다르다. 누군가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분출하려 애쓸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감정을 마음 깊숙이 묻어 놓은 채 다음 일상을 이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우울함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무수한 감정의 순간들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은 그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글로 써 나간다. 이렇게 무언가를 새롭게 창작하게 하는 건, 인생에서 겪는 다양한 희로애락의 감정일 것이다.
빈 종이에 그런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쓰려하지만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어쩌면 글을 쓰는 삶을 택한 사람들이 겪는 숙명적인 순간일 것이다.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의미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우울감이 마음을 괴롭게 만들고 더욱 깊은 늪으로 빠지게 만든다. 무언가를 글로 창작해 나간다는 것은 어떤 날은 잘 될 수도, 어떤 날은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영감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래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온갖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무언가 써지지 않는 핑곗거리를 찾게 된다. 주변 환경을 탓하고 옆사람을 탓한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변 사람은 떠나고 결국 혼자 남아 모든 고민을 떠안게 된다.
영화 <보더라인>은 그런 창작의 고통을 사랑이야기와 함께 화면으로 담아낸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작가 지망생 안나(안나 알피에리)는 우연히 로빈(아가트 페레)을 만나 끌리게 되면서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 담겨있다. 영화가 그들의 모습을 담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들의 만남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로빈과 헤어진 안나의 모습, 첫 만남과 데이트 장면들을 중간중간 보여주고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도 섞여있다. 아마도 연인과 헤어진 이후 안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지난 추억들, 그리고 흘러가는 상상의 모습들이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시기를 그런 방식으로 보여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관객은 안 나와 로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대략적으로 짐작하며 영화를 따라가게 된다. 실제 연인과 헤어진 이후 남겨진 사람의 고통과 상실감이 화면에서 느껴진다. 안나가 길을 걸을 때 들려오는 거리의 소음,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 그가 떠올리는 과거의 추억들은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더욱 잘 보여준다. 영화는 특히 그가 하는 행동에 따라 과거와 연계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플래시백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혼자 샤워하는 장면에서 바로 로빈과 함께 샤워했던 순간들을 보여주거나 다른 데이트 상대를 찾을 때, 로빈과 데이트하는 장면과 이어지는 장면이 그렇다.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특별히 플래시백의 효과가 없이 바로 장면 전환이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또한 그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데이트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역시 이것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모호하게 구성되어 있다. 사실은 안나의 상상으로 보이는데 그 화면 안에서 안 나와 로빈은 매우 행복한 연인으로 그려진다. 여행지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와 몸짓들에는 현실에서의 고민이나 아픔이 드러나 있지 않다. 그야말로 안나가 꿈꾸는 이상향의 모습이 화면으로 펼쳐지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런 완벽한 모습은 너무 이상향에 가까워 오히려 이것이 비현실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안나의 일탈 장면도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인지 경계선이 흐릿하다.
안나는 로빈과 만나면서 점점 자신의 창작이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나가지 못하고 우울한 기분에 빠진다. 그들이 헤어지기 직전 했던 대화에서 로빈은 긍정적인 생각과 활동을 계속 전달하려 하지만 안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의 안나는 창작을 할 수 있는 영감을 받았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안나는 여전히 종이 위에 무언인가를 쓰지 못하고 있다. 그는 글을 쓰는 대신 로빈의 페이스북 피드를 확인하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망하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에게는 창작의 영감이 필요하지만 그의 연인이 떠났다는 것이 그에게 아픔을 더욱 선사하고, 그것은 그의 글쓰기를 방해한다.
영화 <보더라인>은 연인과 헤어진 직후, 사랑과 아픔의 경계선 상에 놓여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지만 영화 안에서 그들의 사랑이 특별하게 그려지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두 사람의 반응을 보여준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캐롤> 같은 영화들이 조금 전통적 방식으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사랑을 망설이고 그럼에도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줬다면, <보더라인>은 막 헤어져 남겨진 사람의 방황을 중점적으로 담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가진 애틋한 감정보다는 상실감과 혼란스러운 감정에 더 무게중심이 놓여있다.
안나가 느끼는 그 감정은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그의 곁을 떠나버린 로빈도, 그에게 다른 방식의 관계를 선사하는 다른 친구도 그가 느끼는 감정을 덜어줄 수 없다. 글을 쓰는 안나가 그 감정을 이겨내거나 그것을 통해 어떤 글을 써나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다. 영화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연인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그 시점보다는 그 이후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생각을 정리하고 그 아픔을 글로 표현해 나가는 것으로 감정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영화 <보더라인>의 이야기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이 깨진 직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안나 알피에리 감독은 이탈리아 국적으로 영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다 첫 장편 <보더라인>을 만들었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로 그 자신이 겪었던 이별의 아픔과 창작의 고통 속에서 느끼는 감정적 소용돌이를 영상으로 담아냈다. 또한 주인공 안나 역으로 출연하여 좋은 연기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일정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상으로 구성한 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다소 난해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연인의 만남과 사랑, 이별 그리고 극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담겨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보더라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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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뷸런스>의 질주에 담긴 치유의 드라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암에 걸린 아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윌(야히아 압둘 마틴 2세)'. 그러나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막대한 치료비를 구할 길이 막막해지자 그는 외면한 채 지냈던 이복형 '대니(제이크 질렌할)'를 찾아간다. 배 다른 동생의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들은 대니는 역으로 그에게 한 가지를 제안한다. 자신이 계획한 은행 금고 털이에 참여하라는 것. 이에 함께 자랐지만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형제는 오랜만에 한 팀을 이룬다. 그러나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계획이 엉망이 되자 두 형제는 앰뷸런스를 강탈해 탈출을 시도하고, 부상당한 경찰을 치료하기 위해 앰뷸런스에 타 있던 구급대원 '캠(에이사 곤살레스)'을 인질로 삼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LA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진주만>과 <트랜스포머> 시리즈, <6 언더그라운드>를 만든 마이클 베이는 할리우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스타 감독이다. 카메라 워킹, 구도, 공간감과 조명 등을 이용해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놓는데 탁월한 그의 영화는 설령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하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언제나 보는 재미가 있다. 2005년에 공개되었던 동명의 덴마크 영화를 리메이크한 그의 신작 <앰뷸런스>도 마찬가지다. 제이크 질렌할,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에이사 곤살레스와 같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격렬한 액션과 휘몰아치는 추격전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그러나 <앰뷸런스>가 유달리 인상적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마이클 베이 감독에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앰뷸런스'라는 소재의 특성을 살려낸 드라마와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앰뷸런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액션이다. 최소한의 도입부와 마무리를 제외한 러닝타임이 앰뷸런스를 쫓는 추격전으로 가득하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변화, 혹은 초심으로의 회귀가 자아내는 재미다. 사실 베이 감독은 난장판을 뜻하는 단어 'Mayhem'과 그의 이름 'Bay'를 합친 'Bayhem'이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폭발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히트작인 <트랜스포머> 시리즈나 가장 최근작인 <6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폭발하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눈이 피로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앰뷸런스>에서는 폭발씬의 비중이 크지 않다. 대신 영화를 가득 채운 것은 베이 감독의 또 다른 전매특허인 카 체이싱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찍을 때도 매번 한 차례 이상 선보였던 그의 카 체이싱 시퀀스는 계속되는 폭발과 액션, 화려하나 어지러운 CG의 향연 속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번에도 그의 특기는 빛을 발한다. 특히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구도와 장면을 더한 점이 인상적이다. LA 도심 상공과 지상을 1인칭 시점으로 자유롭게 오가면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추격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고, 앰뷸런스나 다른 차들에 직접 타고 달리는 듯한 속도감을 체감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걸음 더 발전한 카체이싱 액션에 집중한 덕분에 폭발씬의 비중이 적은 <앰뷸런스>는 전작들에 비해 피로감이 덜할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된 폭발 그 자체의 임팩트를 더 강렬하게 선보인다.
이러한 <앰뷸런스>의 액션은 구급차 안에서 운전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캐릭터와 그들의 드라마가 단단하게 받쳐주기에 더욱 빛난다. 특히 액션이 이동수단으로서의 앰뷸런스에 주목했다면, 드라마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수송하는 앰뷸런스의 기능을 조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구급차를 타고 거친 추격전을 펼친 끝에 세 주인공이 제각기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받는 이야기이기에 그들의 앙상블은 인상적인 것이다.
실제로 본격적인 사건의 시작인 은행 침입이 시작되기 전에 영화는 그들이 품은 상처를 짧지만 확실하게 짚어주고, 앰뷸런스가 병원으로 향하는 마무리는 그 상처가 어떻게 치유됐는지를 간명하게 드러낸다. 일견 프로페셔널한 구급대원인 캠의 경우, 그녀는 의사를 꿈꿨지만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과거를 품고 있었다. 한 맺힌 과거 때문인지 캠은 다른 대원들과 일절 교류를 하지 않고, 본인이 목숨을 구한 이들에 대해서도 직업적인 관심 그 이상은 결코 주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는 납치된 앰뷸런스 안에서 수술 집도를 통해 직접 생명을 구하는 경험이라는,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날 분기점을 마주한다.
이복형제인 윌과 대니에게도 마음의 흉터가 있다. 범죄 조직을 운영하던 양부로부터 벗어나고자 군 입대를 선택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윌.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암조차 치료하지 못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대니가 계획한 은행털이에 가담한다. 한편 오랜 기간 자신과 연을 끊고, 아내와 조카조차 만나게 하지 못한 이복동생에게 말 못 할 서운함을 느끼던 대니. 그에게 은행 강도 침입은 자신의 사업 수단이자 동시에 뒤틀린 방식으로나마 윌과의 관계와 가족애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렇듯 세 주인공이 제각각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한 치료를 받는다는 점에서 구급차가 보여준 136분간의 질주는 모두에게 해피 엔딩은 아니어도 충분히 치유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치유의 드라마는 감정적으로 영화의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주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의 상처와 치유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면, 앰뷸런스 안에서 펼쳐지는 인질극은 자신의 상처를 승화시켜서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이들과 상처를 분노로 폭발시키고자 하는 이들 간의 갈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갈등이 중심에는 윌이 위치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의 위험한 계획에 휘말린 윌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 그리고 형제지간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동시에 그는 부상당한 경찰관, 의도치 않게 인질이 됐지만 그저 옳은 일을 하려는 캠과도 감정적 관계를 맺는다. 그러다 보니 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주인공의 심경 변화는 액션 못지않게 흥미를 자아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앰뷸런스>가 어디까지나 리메이크 작품이기에 마이클 베이 감독도 전작들과 달리 단단한 드라마를 보여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케일도 작고, 각본도 단순한 가운데에서도 영화의 구성이나 연출력이 진일보한 점을 고려할 때, 원작이 있다고 해도 캐릭터성과 드라마를 적절히 살려낸 것은 충분히 유의미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사소한 설정으로도 순간적으로 위기를 조성하고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뛰어난 연출력을 과시한다. 예를 들어 캠이 의사들과 화상통화로 응급수술을 진행하던 중 화상 연결이 갑작스럽게 꺼지고,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속출하면서 극의 흐름이 요동치는 식이다.
또한 인물의 특징을 상황적 맥락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대니의 경우, 무엇이든 저지르며 일을 키우는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성을 지닌 인물이다. 영화는 그런 그를 앰뷸런스에 탄 사람들을 압박해오는 상황에 집어넣으면서 아이러니한 장면들을 만들고, 덩달아 상당한 긴장감도 조성한다. 당장 경찰에게서 벗어나야 하지만 경찰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인질로 잡힌 부상당한 경관을 치료해야 하고, 그로 인해 오히려 구급차의 속도를 늦춰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대니와 윌을 압박한다. 또 그 경관을 치료하기 위해 대니는 자신이 캠을 인질로 잡고 이용하는 와중에도 그녀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물론 <앰뷸런스>는 단점들도 많은 영화다. 일단 완급 조절에 실패하고 있다. 영화 내내 카체이싱 액션이 쉴 틈 없이 몰려오는 데다가, 평범한 대화 장면에서도 화면 전환이 매우 많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과하다 보니 분명 피로감이 적지 않다. 단순한 각본을 2시간 11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으로 다루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덜하다는 게 위안일 뿐이다.
초반부의 범죄극에서 중반부 인질극으로 넘어갈 때 잔뜩 조여진 서스펜스에 순간적으로 구멍이 나기도 한다. 이전까지는 대니와 윌, 그리고 캠에게만 포커스를 맞췄다가, 그들을 쫓는 경찰에게까지 초점을 넘기다 보니 극의 흐름이 늘어지는 것이다. 경찰의 대사나 분량이 베이 감독 특유의 과한 유머로 점철된 것도 문제를 악화시킨다. 또한 응급 구조 요원이 구급차 안에서 응급수술을 집도하는 것처럼 언뜻 생각해 보아도 납득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전개도 몰입을 방해한다.
그러나 위의 단점들은 다행히도 <앰뷸런스>를 즐기는 데 결정적인 방해가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우선 기본적으로 전격전을 펼치듯 직선적인 에너지로 무장한 영화이기에 강렬한 액션을 기대할 경우 단점이 오히려 장점도 될 수 있다. 또한 영화의 선택과 집중이 탁월하기도 하다. 당장 범람하는 액션 사이사이에 깊숙이 스며든 세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함께 앰뷸런스의 뒷문을 열고 순식간에 드라마의 끝을 맞이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예상치 못한 선물, <앰뷸런스>의 매력은 뇌리에 깊이 남는다.
A(Acceptable, 무난함)
줄어든 스케일과 제작비에 반비례해서 늘어나는 만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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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을 위한 안녕
- *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으로 4월 29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해피엔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존재합니다.<해피엔드>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일본 도쿄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시간, 그 공간에서 생기는 그 순간을 포착한다. 그저 흘러갈 것처럼 보이는 자그마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순간들. 하지만 그 순간은 누군가에게는 특별했다. 적어도 ‘코우’와 ‘유타’, 두 사람에게 그 순간은 잊혀지지 않았다.흔들림을 따라영화 속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지진이다. 조그마한 흔들림과 지진경보에도 두려워하는 사람들. 하지만 단 한 사람, 코우만은 다른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코우는 흔들림을 두려워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지진을 두려워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 앞에 놓인 책상을 계속해서 흔든다. 마치 지진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코우는 재일교포 4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코우 본인은 분명 태어난 곳부터 시작하여,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까지 완벽한 일본인이지만 사회는 그를 일본인, 그리고 그들의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 디제잉 공연을 보러간 코우와 유타. 클럽에 경찰이 들어 닥치게 되고, 공연은 중단된다. 그리고 경찰들은 고등학생인 코우와 유타의 신원을 묻는다. 경찰은 일본인인 유타의 신원을 확인하고 나서 유타에게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만, 코우에게는 휴대의무도 없는 체류 허가서를 요구한다.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고, 같은 감정을 느꼈던 사람이지만 코우와 유타는 외부인과 내부인으로 구분된다.재일조선인인 코우를 비롯하여 대만 혼혈인 밍, 그리고 흑인 혼혈인 톰까지 이들은 모두 그 사회에서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극우 정치인이 권력을 잡고, 총리의 권한을 집중시키는 해피엔드 속 사회, 그리고 그곳에서 철저하게 외면받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느 순간 ‘비국민’이라는 경멸적인 호칭까지 붙게 되었다. 함께 음악 감상 동아리를 하고, 서로가 함께 있는 것만 해도 좋았던 친구들. 하지만 사회는 잔인했다. 권력은 자신들의 두려움과 위기를 돌리기 위해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강조하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피부색과 종이에 적힌 출신성분. 그것들은 차별이라는 금을 조금씩 만들고, 금은 공고해 보였던 코우와 유타의 우정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자리잡은 금을 보며, 코우와 유타는 흔들림에 대해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두가지 외로움어차피 망해버리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끼리 남은 시간을 즐기자고 말하는 유타, 그리고 망해버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나서자는 코우. 세상이 망해버릴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은 서로가 같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너무나도 달랐다. 작품을 보면 유독 유타는 환하게 웃는 장면이, 코우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무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더라도, 유타는 환하고 넓으며 편안해 보이는 새하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에 반해 코우는 땀냄새와 음식냄새, 그리고 낯선이들의 고성이 오가는 식당에 살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개별적 삶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차이는 우리가 잠시 놓친 것들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그들이, 또는 우리가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하고 평생을 약속할 정도의 영원한 사랑과 우정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바로 그것이 그들 개인의 삶에서 천천히 커져간 가치관과 생각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은 누군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 속 끝에 남아, 결코 채워줄 수 없는 그들 개개인의 것이었다.영화의 초반부, 경찰이 오니까 클럽에서 나가자는 코우. 하지만 유타는 여기까지 왔으니 더 즐겨야겠다면서 음악에 몸을 맡긴다. 그러자 코우는 고민하는 듯 하지만 유타의 말을 따른다. 그렇게 작품 처음부터 유타는 굉장히 주도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한다. 유타는 유독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인지 유타는 자신의 집에서 친구들을 자주 부른다. 이에 반해 코우는 친구들을 자신의 집에 부르지도 못하며, 엄마와 교장의 말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연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어떤 외로움을 가졌는지이다. 만약 코우가 느낀 것이 ‘사회 속 개인으로서의 외로움’이라면 유타가 느끼는 외로움은 ‘개인들 속 개인으로서의 외로움’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자신들의 외로움의 심연 속에 빠져들었다.뒤집어진 우리이미 조금씩 흔들리던 그들의 세상에 지진이라는 개념이 가시화되어 나타난 것은 뒤집혀진 무언가였다. 디제잉 공연을 보고 학교로 돌아온 유타와 코우, 그리고 친구들. 그들은 평소 수직적이고 권위적이었던 교장의 스포츠카에 장난을 친다. 그런데 그날 우연히도 지진이 일어나고, 교장의 차는 뒤집힌다. 다음날 뒤집혀진 차를 본 교장은 노발대발하며 학교에 인공지능을 이용한 감시 카메라 체계를 도입하게 된다. AI로 학생들을 감시하고, 벌점을 매기는 감시카메라. 이것이 학교에 도입이 되자, 학교와 사회를 나누던 얇은 벽마저 무너졌다. 학문을 위한 곳을 넘어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는 곳인 학교. 하지만 이곳에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순간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다는 학교의 가치는 희미해지게 된다. 누구나 실수하고, 싸우고, 무너지고 눈물 흘리면서 배우는 사람들. 그러한 과정들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사람다운, 아니 사람다운 척조차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고결해보이는 말로 그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순간. 그들은 배움의 과정조차도 평가받고 제한된다.학교 밖에서는 수많은 시위가 발생하고, 정부와 국민이 충돌했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 속에서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해줬던 것은 그들이 결과보단 ‘성장’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무너져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우린 더 나아질거야’라는 그 가치들. 그 가치들은 안전과 같이 편리를 위해 지어진 허황된 말과는 다르게 고귀했다. 그러나 감시가 시작되고 결국, 그들이 성장을 위해 무너지고 실수하는 과정들조차 모두 실패로 여겨지게 되었다. 성장이라는 말은 결국 뒤집혀졌고 실패라는 꼬리표가 매시간, 매분, 매초에 붙여졌다.조금씩 일어나는학교 안과 학교 밖,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에 상처내며 일어나는 불합리적인 일들. 어른들과 사회에게 들려오는 사회부적응자, 양아치, 꼴통, 불량아라는 말들. 그렇게 아이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그 누군가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힘이 되던 것은 같이 있던 그들, 그리고 우리였다. 학교에 어느날 한 자위대 청년이 찾아온다. 잘생긴 청년의 외모에 웅성거리던 그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안보교육을 해야 하니 일본 국적이 없는 이들은 교육을 들을 필요가 없다며 다른 교실로 이동하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분리시킨다. 학교 밖에서만 일어났던 차별과 계급화. 그것이 학교로 들어온 순간. 아이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시위에 참여했다며 원래 담임선생님이 교체되고,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참아왔던 아이들도 하나의 세대를 의미하는 하나의 반이 두 눈 앞에서 분리되는 순간을 견딜 수 없었다. 어쩌면 하나의 반의 분리가 결국, 우리 세대의 분리를 의미할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들은 교장실에 찾아가 감시카메라 제도 철폐를 요구한다. 그러나, 교장은 안전이라는 이유로 거부한다. 하지만 점거시위까지 하면서 단호했던 아이들. 교장은 어차피 감시카메라가 철폐되어도 너희들이 졸업하고 나서 철폐된다고, 이럴수록 너희들만 손해라고 말한다. 교장의 회유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건네는 초밥을 통해 부각된다. 달콤하지 맛있어보이는 초밥. 그 값비싼 초밥이 갖는 의미는 명확했다. 그렇게 조금씩 무너지고 고민하는 아이들. 하지만 그 순간, 교장실로 오토바이 헬멧을 든 누군가가 나타난다. 김밥을 가지고 말이다.흔들리며 피어나“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꽃은 흔들리며 핀다는 그 말, 그리고 흔들려야 꽃이 핀다는 그 말. 그 말을 아이들도 알고 있었을까. 아이들은 흔들리고 또 흔들려도, 그리고 너무나 흔들려 뒤집혀져 버렸을지라도 꽃 피우고자 했다. 김밥을 들고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로 나타난 사람은 코우였다. 그리고 그 김밥은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결국 감시카메라 제도의 폐지를 이끌어낸다. 기득권층의 양심으로 요구가 관철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후미. 하지만 이럴 때는 웃어도 된다고 말하는 코우. 그는 늘 웃던 유타처럼 웃었다.졸업식날, 교장은 감시카메라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자신의 자동차를 뒤집은 범인이 나와야지 감시카메라 철폐를 검토해보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러자, 후미와 코우를 비롯한 아이들은 반발한다. 그 순간 자신들은 안전을 위해 감시카메라 철폐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나타난다. 그 결과를 분명 어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일본인과 외국인을 구분하고, 내부인과 외부인을 나눈 것이 만들어낼 당연한 결과는 졸업식장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누군가. 바로 유타였다. 그리고 유타는 자신이 교장의 자동차를 뒤집었다고 말한다. 시위와 감시 카메라 철폐 요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타. 망해버릴 이 사회에서 남은 삶이라도 즐기자는 유타. 하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유타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결국 감시카메라를 없애고 이 사회를 바꾸는 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유토는 그 선택을 한다. 그리고 유타는 언제나처럼 웃는다.유타의 희생으로 아이들의 바램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유타는 퇴학당하고, 유타가 그렇게 두려워했던대로 친구들은 하나 둘씩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늘 헤어지던 그 육교 앞에 선 유타와 코우. 그들은 언제나처럼 작별한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장난치고 또 웃으며. 영원히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렇게 하나가 된 그들, 아니 우리는 ‘안녕’을 말한다.결국 해피엔드<해피엔드>는 네오 소라 감독의 첫번째 극영화이다. 자신의 아버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피스>를 통해 섬세한 연출과 시선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극영화가 이렇게까지 좋은 작품일지 예측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 극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품의 음악이나 비주얼적 요소들 모두 탁월했다.그러나 결국 영화가 이토록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큰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해피엔드만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본 여러가지 사건들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반원전 시위나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이 그러했다. 또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과 같은 역사들도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사건과 역사를 통해 감독은 해피엔드를 만들었고, 과거에 대해 반성 하지 않는 일본의 미래를 그려냈다.
<해피엔드>는 미래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분명 SF 영화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했던 SF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가까운 미래를 그렸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영화 속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의 일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보이는 도시 전경에 섞인 사이버펑크적인 요소를 볼 때가 되어서야 이 영화가 SF 영화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만약 먼 미래를 그렸다면 감독의 상상력이 더욱 가미될 수 있었고, 영화의 가치와 철학에 대한 반박들에서조차도 훨씬 자유로웠을텐데 왜 감독은 가까운 미래를 영화의 시점으로 택한 것일까. 아마 그것은 영화가 다루고 싶었던 것은 결국 개인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변하고 가치는 달라진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은 바로, 모든 것들 안에 개인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가 원하는 것은 그 개인의 안녕, 그들만의 ‘해피엔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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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엉키고 뿜어져 나오는 계급간의 간극과 위선
세계 3대 영화제, 그중에서도 위상이 제일 높기로 유명한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영화를 사랑하는 씨네필이라면 누구라도 관심가질수 밖에 없는 작품일것이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는 것만으로도 평생 영화를 찍어도 될까 말까한데, 이곳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것은 평생에 한번 수상하는 것도 엄청난 명예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에 이야기할 본 영화, <슬픔의 삼각형>의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전작 <더 스퀘어>로 제7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즉, 이번 수상이 두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인것.
황금종려상을 두번 수상한 감독은 이전에도 몇명 있었지만, 알프 셰베리,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빌 아우구스트, 에밀 쿠스트리차, 이마무라 쇼헤이, 다르덴 형제, 미카엘 하네케, 켄 로치 감독밖에 없을 정도로 정말 드문 수상 이력이다.그렇기에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에 적합한 영화이냐 아니냐로 수상 당시에도 그렇고 영화가 개봉한 지금도 그렇고 많은 갑론을박이 이루어지는 논란의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논란을 뒤로 하고, 이 영화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전작 <더 스퀘어>는 개인적으로 지지를 표하는 작품이다.
더 스퀘어라는 전시를 앞둔 현대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를 주인공으로 꼬이고 꼬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여러 위선들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혹성탈출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가 유인원 연기를 파티장에서 선보이는 등 현대 미술의 시청각적 미학적 요소들과 독특한 음악들이 잘 어울러지는 흥미로운 블랙 코미디였다.
즉 필자가 확실하게 느낀건 참으로 신랄하고 웃픈 영화였다는것,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호화 크루즈에 오르게 된 모델 커플, 사업가 부부, 선장과 선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그러나 사고로 배가 전복되고 일부만 겨우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누군가'가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크루즈라는 상류층, 브루주아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자 밀폐된 공간에서 계층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전복은 불가능하다.
밀폐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와 연결된, 단절된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소가 무인도로 바뀐다면 어떨까?
이곳에서는 외부에서의 지위와 재산은 따위가 되버리며, 계층의 역전이 일어나게 된다.
흔히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이 과연 진짜 평등할까, 평등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지는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남녀의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직업 특성상 소득의 차이나 근본적인 신체의 차이가 있음을 망각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젠더, 재산 등의 계층은 우리 현대 사회를 매번 뜨겁게 분쟁시키는 주제이다.
그리고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러한 계층을 마구잡이로 휘저어 놓으며 관객을 웃기고도, 슬프게도 한다.
황금종려상 2회 수상, 그것도 무려 연속 수상이라는 화제의 감독인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자신의 외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도 화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현대 아트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관심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마성의 감독이다.
이런 뜨거운 작품을 지금 극장에서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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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시간을 돌아 도착한 어디에도 없던 여행
난 <아사코>를 좋아한다. 뭐랄까, 난 이 이야기가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과정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같은 순간이 조금씩만 다르게 벌어진다고 해서 사람이 더 나은 선택지만 고른다는 보장이 없다. 굉장히 멀리서 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길만 걷는다. <아사코>는 이것이 삶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더 나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두 인물의 미래를 어마장장하게 긍정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비틀었다는 것이, 바라는 대로는 이뤄진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삶은 기회를 준다는 걸 표현한 것이다. 작품 자체가 워낙 탁월하니 막연하진 않더라도 현실적인 희망을 얻고 싶은 분들은 이 영화를 추천한다.
난 강박이 있는 편이라 사소한 것도 잘 기억하는 성격이다. 이런 나도 이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사람 이름 외워야지' 싶어 암기하는 경우도 몇 있긴 하겠지만 그건 내가 방금까지 하다 온 자격증 공부에나 해당하는 일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경우가 대다수겠지? 한국인이라 그런가? 다른 나라의 감독 작품을 볼 일이 없으니 내 입장에서도 일본 감독들의 이름을 친근하지 못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오며 가며 일본의 제작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퀄리티가 있는 작품을 못 뽑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 나라의 작품 만드는 질 자체도 요즘 영 시원찮은 부분이 있는 셈이다. 자, 이렇게 맞이한 2021년에서, 올해 한 명의 일본 감독이 세 편의 각본을 썼다. 올봄에 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가 첫 번째고, 이 글에서 다룰 <드라이브 마이 카>가 두 번째이며 이제 개봉을 앞둔 <우연과 상상>이 세 번째다. <스파이의 아내>는 역사와 개인 사이의 딜레마를 아오이 유우의 연기력을 200% 뽐내는 디렉팅으로 마무리했다면 이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인간 내면이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직접 들여다보게끔 도와준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무려 봉준호 감독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난 이 일주일 남짓 남은 올해 개봉작 중 최고로 뽑고 있고 이는 나뿐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위대하고 젊은 아티스트가 우리를 데리고 세 시간짜리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한번 같이 출발해보자.
1. 어떤 영화인가요?
이해에 관한 영화다. 과연 나는 나를 이해하고 있을까? 아마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25살의 크리스마스를 맞은 지금 난 그제야 내가 외롭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타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평생을 살면서도 자신을 알기 어렵다. 이렇게 되니 타인까지 안다고 하면 붙는 조건이 많아지기 때문에 점점 성공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을 쉽게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쉽게 바라고. 쉽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판단하고. 쉽게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근데 우리는 복잡한 겹겹이로 이루어져 있어서 무슨 행동의 동기가 하나가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다. 영화는 이렇게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존경심. 사랑. 분노. 애증. 이런 감정의 뒤죽박죽 속에서 어떤 게 인간에게 가까운 지를 탐구한다. 언제는 A처럼 행동했다 다음번에는 B를 취하는 인간의 마음 중 어떤 것에 가까운 지를 제시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 질문의 답을 알게 된다. A와 B 둘 다 그 사람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정말 중요한 건 A 거나 B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을 품고 있는 마음 그 자체지. 그리고, 그 행동의 원인에 집착하다간 그 사람을 놓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이 작품은 이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별. 어렵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이별한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또 평범해지는 게 두렵다. 난 그 사람이 특별해서 그분도 나를 특별하게 여겨줬으면 좋겠는 맘이다. 나는 평범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시해지면 끝인 <꿈의 제인> 속 대사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공포가 너무너무 싫은 것이다. 이 마음을 곧이곧대로 다 전하는 건 좀 느닷없을 것 같아서 이걸 카톡으로 말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근데 이런 마음을 품고 살게 되면, 이 잔여물 덕에 사람이 더 아프게 되는 것 같다. 회한이나 궁금증, 풀지 못한 슬픔이 남아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처 떠나보내지 못했던 마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또 이 상처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지점에 대해서 질문하는 부분이 있다. 이 영화는 아마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솔직함이라고도 답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그 솔루션에 동의했다. 우리가 슬픈 터널 안에 있다면, 더 정면으로 부딪히자. 어차피 이 인생이란 길에 낙원이란 없다. 끝없는 긴긴밤과 낮의 연속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에게 한마디라도 더 하는 삶을 보내자. 이게 하마구치 류스케가 말하는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감독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키워드를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며 관객을 설득하니 관객이 두 번째 승객이 된 것처럼 마음의 진동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전에 알고 가야 할 지식이 있나요?
바로 안톤 체호프가 1889년 집필한 <바냐 아저씨>라는 희곡이다. 사실 나는 이 것에 대한 정보를 단 1도 모르고 가긴 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근데 확실히 이 정보를 알고 나서 봤다면 작품의 이해가 쉬웠을 것 같다.
<바냐 아저씨>는 희곡이다. 주인공 바냐 아저씨가 나오고 그의 매형이 있다. 바냐 아저씨는 문화예술계와 학계에 입문하고 싶어 하는 그냥 소시민 1이다. 근데 막상 본인이 창작을 하라고 한다면 겁이 나서 두려운 바냐 아저씨.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쓸 거라고 믿었던 바냐 아저씨는 매형에게 뒤통수를 맞게 된다. 매형은 그냥 돈과 여자를 좋아하는 속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삶의 동기부여까지 잃은 그. 희망을 잃어 자살을 시도하지만 결국 그 마저도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바냐가 거의 딸처럼 키웠던 쏘냐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때 위로받으며 했던 대사는 이 것이다. '어떡하겠어요. 살아야죠! 바냐 외삼촌,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 휴식이란 걸 모른 채 지금도 늙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해요. 그러다가 우리의 시간이 오면 공손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내세에서 말하도록 해요.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슬펐는지 말이에요.'다.
이 대사는 영화 전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그렇게 나름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도 후원했던 바냐 아저씨. 어떤 벽에 부딪혀 모든 걸 포기하고자 했다. 이때에 자기 자신을 내려놔 쏘냐에게 위로를 받았으니 희곡의 전체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단연 소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출자 가후쿠는 이 연극의 캐스팅을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인부터 시작해서 일본인, 그리고 필리핀 사람까지 아시아에서 모인 사람들이 연극부의 일원이 된다. 심지어는 수어로 대화하는 사람도 합류하게 된다.- 심지어 이 수어로 대화하는 역의 배우는 한국인이다!- 이렇게 소통을 키워드로 하는 연극을 만들며 딱딱한 시나리오 테스트에서 벗어나 배우와 배우가 자연인으로 만나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 영화 전부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알게 되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연극 신이, 또 다키츠키와 가 후쿠가 술집에서 벌이는 대화가 이해가 쉬울 것이다.
3. 3시간의 러닝타임! 보는 게 어렵진 않나요?
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봤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첫 번째 봤을 때는 졸지 않았다. 깔끔하게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네이버에서 이런저런 후기를 보니 내가 놓친 구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영화 후반부의 엔딩 바로 직전 시퀀스에서 주는 감동과 내가 놓친 부분을 다시 보기 위해 오늘(25일) 극장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졸았다. 아침 9시의 조조영화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사실 느릿느릿한 편이 맞다. 천천히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근데 그 감정선이 대놓고 분출하는 쪽은 아니다. 주인공 가후쿠는 내면을 드러내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갖고 있는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후반부에 보여준다. 그래서 마블 영화라던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와 같이 로맨스 코미디물에 익숙한 관객들은 지루하다고 느낄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첫 번째 관람 때 영화관을 나오며 느꼈던 기분이나, 두 번째 관람 때 초반부를 졸았음에도 영화에게 가졌던 감정은 그 어떤 작품으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러닝타임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대사량이 많다는 게 영화 초보자분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자체의 플롯, <바냐 아저씨>라는 희곡, 또 가후쿠의 아내가 만든 스토리라인이 있다. 이 뿐인가? 차에서 대화하고, 술집에서 대화하고, 눈 밭에서 대화하고, 대화량이 쏟아지기 때문에 집중 잘 못하면 내용에 못 따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 이 작품 상영관이 정말 적다는 말이 있다. 걸려 있을 때 보시길! 그리고 풍광이 아름다운 신이 몇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는 걸 추천한다.
4.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어떤가요?
일단 난 한국인이다. 한국인으로 살고 (자칭) 씨네필로 살다 보면 한국인 배우들에 익숙해진다. '너 <낫아웃>의 정재광 배우 아냐?'같이 모를 법한 분들의 이름을 아냐고 물으면 당연히 모르겠지만 난 나름 잘 아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구교환, 이주영 배우 둘 다 <DP>나 <이태원 클라스> 이전에도 알았는걸? 암튼,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배우들을 잘 안다는 이점이 무색하다.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국제적으로 호평받는 감독에 '박유림'이라는 아예 처음 들어보는 배우가 캐스팅됐다! 그리고 심지어 사랑스러운 연기 지망생 역을 꽤나 잘 소화했다! 그뿐일까? 이 사람은 수어로, 눈빛으로 대화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무리가 없다! 중간에 밖에서 어떤 인물과 대화하는 신 보면 '연기하는 연기'가 생동감이 있다. 이렇게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연출력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배우들의 연기력을 뽐내는 디렉팅을 통해 잔잔해 마음이 함께 이동하는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미사키-가후쿠 두 배우의 연기 합도 괜찮지만 나머지 조연들도 아주 훌륭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 몰입이 깨질 일은 없을 듯. 난 미사키 역을 맡은 배우가 기억에 남는다. 뚱한 표정으로 깊은 슬픔을 가진 사람은 연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잘 소화해내는 배우가 해내는 것 보면 신기하다. 어쩜 저렇게 연기를 하지?
5.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각본이 가진 강점을 뽑아보자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면,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서다. 난 많이 외로운 사람이다. 말이 많은데 그 대화의 욕구
(?)를 해소할 창구가 없어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다. 책 쓰면 그 나름대로 좋겠지? 아무튼 나는 이런 욕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목적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 내가 느낀 걸 그대로 오롯이 쓰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의식해서 쓰는 것이다. 그럼 보통 읽는 사람들이 알더라고. 집중이 안된다는 걸. 나는 각본을 써본 적이 없어 각본가들의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근데 각본가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딜레마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로 돌아가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사람이 천천히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형상화했다. 그니까 '나는 이 영화로 사람의 마음을 묘사할 거야'라고 마음을 먹었겠지? 글을 쓰기 전에? 나 같으면 '이리저리 해서 저렇게 마음이 변하더라고'라고 써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던 과정을 각자가 생각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구린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각본을 쓴 감독은 주인공의 잔잔한 일상을 보여준다. 그 일상을 자세하게 풀어줌으로써 인물들의 성향 내면에 있는 한 부분을 보여준다. 정공법이 아닌 비스듬히 스치는 방식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함께 따라가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각본의 힘으로 하마구치 류스케는 '상처와 치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이러저러해서 그렇게 됐어'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보법이 어떤지를 제시해 알아서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난 이걸 따라가다 보니 그런 걸 느꼈다. 후회와 미련으로 나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 것,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중요한 건 나의 마음 다른 부분을 쳐다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걸. 영화를 보는 분들에게 100% 확신한다. 아마 많이 다를 것이다. 기존의 문법과는. 극복이라는 키워드를 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치유한 인물들을 보여주는 것도 맞다. 그런데,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어떻게? 각본의 힘으로. 여러모로 고민한 티가 난 각본이 관객에게 그 힘을 보여준다.
6. 어떤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가요?
생각이 많은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사람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이들에게 더도 없는 시네마 여행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올해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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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4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5월 4주 개봉영화!
안녕하세요 Good morning , 2021
국민 배우 이순재와 신들린 아역배우 김환희의 만남
영화 "안녕하세요"는 세상에 혼자 남겨져 의지할 곳 없는 열아홉 수미가 죽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호스피스 병동 수간호사 서진을 만나
세상의 온기를 배워가는 애틋한 성장통을 휴먼 드라마 입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든 서진에게 죽음을 앞두고도 누구보다 활기차고 열심히 사는 호스피스 병원 사람들과 생활하며 마음이 점차 바뀌는 내용인데요
성년이 된 ‘천재 아역’ 출신 김환희와 ‘국민 배우’ 이순재가 만났습니다
'곡성'에서 '뭣이 중헌디'라고 악을 쓰며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김환희의 성인연기자 모습을 볼수 있는 첫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해 말하기 위해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풀었다는 차봉주 감독의 신작!
이번주 추천영화 "안녕하세요" 입니다.
첫번째 추천영화 "안녕하세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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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The Goblin , 2022
K-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
영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조직의 전설적인 해결사, 일명 도깨비였던 두현과 그런 두현을 동경했던 후배 영민의 지독한 악연을 담은 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영화 입니다.
제1회 아산충무공 국제액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김희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드라마 '나쁜 녀석들' 제작진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조동현, 이완 그리고 임정은, 윤철형, 이천은, 최기섭, 최왕순 등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출동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더했습니다.
거친 액션과 섬세한 감정으로 철저히 무장한 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
두번째 추천영화 "피는 물보다 진하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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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 Hommage , 2021
1962~2022 시네마 시간여행
영화 "오마주"는 한국 1세대 여성영화감독의 작품 필름을 복원하게 된 중년 여성감독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네마 여행을 그리는데요
1962년과 2022년을 잇는 아트판타지버스터로 일상과 환상을 오가는 위트 있고 판타스틱한 여정을 담았습니다.
신뢰의 연기자인 이정은 배우가 첫 단독 주연을 맡아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의 색다른 연기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삶과 예술을 사랑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보여주는데요
도쿄국제영화제, 트라이베카영화제, 호주시드니영화제, 영국글래스고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워싱턴한국영화제 초청과 함께 피렌체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중년의 여성감독이 '여판사'를 복원하는 액자식 구성과 시간여행이 흥미를 자아내는 ‘오마주’는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은원에 관한 이야기이며 한국의 모든 여성 영화감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수원감독은 우리가 모르는 여성감독들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모험적으로 살아온 분들의 기운을 ‘오마주’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요
여성영화인뿐만 아니라 영화인과 예술인, 그리고 세상의 모든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가 될
세번째 추천영화 "오마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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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조국 The Red Herring , 2022
내 주변의 누군가가 조국이 될수있다
영화 "그대가 조국"은 조국이 법무부장관에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직을 사퇴한 10월 14일까지 67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정의를 잃어버린 검찰이 무참한 사냥을 벌이던 그때,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지를 다루는데요
그대가 조국은 언젠가는 ‘내’가 ‘내 주변의 누군가’가 ‘조국’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달팽이의 별’로 아시아 최초이자 한국 최초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경쟁부문 대상 수상과
‘부재의 기억’으로 한국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다큐멘터리상 노미네이트와 뉴욕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승준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조국사태의 비밀!
네번째 추천영화 "그대가 조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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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그라운드 UN MONDE , PLAYGROUND , 2021
전 세계 영화제 30개 트로피 휩쓴, 올해의 무비
영화 "플레이그라운드"는 일곱 살 ‘노라’와 오빠 ‘아벨’이 맞닥뜨리게 된 ‘학교’라는 세상을
아이의 눈높이와 심리 상태에 초밀착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담은 영화입니다.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수상한 이래
현재까지 전 세계 영화제 30개의 트로피를 휩쓸었고, 지난 3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벨기에 출품작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학교’라는 집단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이고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데요
플레이그라운드는 오빠가 당하는 괴롭힘을 통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동생 ‘노라’의 시선과 감정을 통해 폭력의 내밀한 전이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다섯번째 추천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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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이은정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이은정 감독님 본격 탐구! ?♀️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이은정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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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게임) 6가지게임 위주 완벽정리/몰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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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학교 가는 길> 메인 예고편
전국 특수학교 재학생의 절반은
매일 왕복 1~4시간 거리를 통학하며
전쟁 같은 아침을 맞이한다
장애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특수학교
아이를 위해 거리로 나선 엄마들은
무릎까지 꿇는 강단으로 맞서는데…
세상을 바꾼 사진 한 장,
엄마들의 용기 있는 외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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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죽을 때까지> 티저 예고편
호화스러운 별장, 다이아몬드 목걸이, 아름다운 자미..
완벽한 결혼 기념일을 보낸 엠마와 남편.
다음 날, 사랑하는 남편이 엠마의 눈 앞에서 죽어버린다.
죽은 남편과 단 둘이 별장에 고립된 엠마.
곧이어 정체 모를 괴한까지 들이닥치고
미쳐버릴 정도로 끔찍한 상황이 연속되는데..
미칠 틈도 혼란스러울 틈도 없다!
지금 당장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