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8-26 07:51:24
난민 영웅의 탄생
영화 〈이오 카피타노〉
바다와 사막 위의 인간을 익스트림 롱숏으로 잡을 때, 그 안의 피사체는 작디작다. 극도로 작아진 그의 형태로 인해 그가 어떤 고난을 겪는 중인지,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 그의 운명이 얼마나 가혹한지는 사소해진다. 파도와 모래의 흐름만이 장관처럼 펼쳐져 점처럼 작은 사람과 그의 고통스러운 현재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데서 익스트림 롱숏의 역설적 미학이 도출된다. 카메라 속 그들은 수많은 다른 고통받는 인간처럼 어려운 시기를 겪는 중일 뿐이지만, 고통받는 인간 모두가 알고 있듯이 개별적 고난은 그리 쉬이 제쳐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네갈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난민 세이두와 그의 사촌 무사의 이야기가 그렇다. 성공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가족 몰래 고향을 떠나는 두 청소년은 유럽, 즉 ‘낙관적 미래’를 향한 여정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겪는다. 국경을 넘는 과정에는 내내 돈을 뜯어내려는 온갖 브로커들만 득시글거리고, 불안정한 정세의 틈새를 파고들어 먹고사는 경찰과 반군 역시 두 사람의 생존을 위협한다. 몸값 요구, 고문, 노예 시장에서의 거래……. 탈락하는 순간 죽는 이 가혹한 여정의 목표는 이제 유럽이 아닌 생존 그 자체다.
그러나 세이두는 이 과정에서도 같은 처지의 난민을 포기하지 않는다. 경찰에 붙잡힌 무사를 구하기 위해 먼저 유럽에 갈 기회를 마다하고, 수많은 난민을 태운 배를 직접 운전하여 우여곡절 끝에 아무도 죽지 않은 채로 이탈리아에 도착한다. 난민 영웅의 탄생이다. 각자도생을 강제하는, 죽음과 맞닿은 꿈(생존)을 향한 여정에서 세이두는 같은 처지의 난민을 버리고 혼자 생존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 역시 이 여정에서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 생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숨 빚을 갚는 소박한 행위는 그 행위가 놓인 처참한 현실에서 영웅의 조건으로 거듭난다.
영화가 종종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연결된 존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세이두의 죄책감을 위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침내 도달한 유럽은 아마도 세이두가 기대한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사막과 바다 위에서 방치된 생명으로 근근이 생존한 삶은 유럽에서도 별다르지 않게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라고 환희에 젖어 외치는 세이두의 마지막 얼굴은 이 청소년 난민 영웅과 그가 관계 맺은 사람들의 운명에 다른 가능성을 싹틔운다. 극우가 득세한 유럽과 난민에 대한 반감이 점점 커지는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상상하고 그러모아야 할 것은 바로 이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주조한 극한의 생존 여정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난민을 양산하는 기울어진 글로벌 정치 경제의 맥락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영화의 제목 IO CAPITANO는 ‘나는 선장입니다’의 이탈리아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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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세상을 거부한 외톨이들의 세상을 향한 도전을 담은 <아만다>와 2차 세계대전 직전 스탈린의 공포 정치 속 이야기를 그린 <볼코노고프대위 탈출하다> 영화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초청받은 영화부터 해양 블록버스터 영화<더 버닝 씨>까지 같이 알아보아요!
아만다
AmandaMask Girl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코미디 | 이탈리아 | 94분
감독: 캐롤라이나 카발리
출연: 베네데타 포르카롤리, 갈라테아 벨루지 등
개봉: 2023.08.23.
배급: (주)이놀미디어
시놉시스
무대뽀 돌+I & 히키코모리 안하무인 ‘아싸’들의 진정한 홀로서기! 인생사 내 멋대로, 내 맘대로! 남의 시선 따위는 개나 줘버린 채, 무대뽀 일상을 살아가는 ‘아만다’. 히키코모리 옛 친구 ‘레베카’와 재회하여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려 맘 먹은 그때! 이들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가 나타나는데… 세상을 거부한 외톨이들의 세상을 향한 도전이 시작된다!
CINE PICK!
<아만다>감독 카발리는 세계 4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네치아국제영화제와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습니다. “장난기 많고 자신감 넘치는 데뷔작”, “Z세대에게 내재된 불안의 울림을 포착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더 버닝 씨
The North Sea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 노르웨이 | 106분
감독: 존 안드레아 앤더슨
출연: 크리스틴 쿠야트 소프, 헨리크 비엘란 등
개봉: 2023.08.23.
배급: (주)엣나인필름
시놉시스
북유럽 해양, 차가운 바닷속 뜨거운 붉은 재앙이 다가온다! 석유산업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노르웨이. 어느 날, 바다 위의 시추탑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수중 로봇 원격 조종사 ‘소피아’는 무너진 시추탑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는 비밀스러운 임무에 투입되고, 실종자 수색 중 시추탑 붕괴의 원인이 대규모 해저 산사태라는 무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저 산사태로 판단한 노르웨이 정부는 350개 유정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바다를 불태우기로 결정하는데… 인부들의 철수와 대피 과정에서 마지막 유정을 수동으로 폐쇄하던 소피아의 연인 ‘스티앙’이 바닷속에 갇히게 된다.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랑하는 연인 ‘스티앙’을 구출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소피아. 과연 ‘소피아’는 ‘스티앙’을 구출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CINE PICK!
<더 버닝 씨>는 노르웨이 해안에서 발생한 석유 시추선 붕괴 사고에서 비롯된 재앙을 담은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2018년 개봉한 <더 퀘이크: 오슬로 대지진> 재난 블록버스터 3부작의 완결편으로 존 안드레아 앤더슨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aptain Volkonogov Escaped
ⓒ 네이버영화
개요: 스릴러 | 러시아연방 | 126분
감독: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츄포브
출연: 유리 보리소프, 티모페이 트리분체프, 알렉산드르야트센코
개봉: 2023.08.23.
배급: (주)슈아픽처스
시놉시스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 소련(러시아)을 저격하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밀경찰 조직 vs 볼코노고프 대위 희망 없는 세상, 영혼을 구하기 위한 대탈출! 숨막히는 서스펜스 스릴러! 2차 세계대전 직전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 수십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밀경찰 조직 NKVD의 볼코노고프 대위는 조직원들에게 행해지는 심문을 이상하게 여긴다. 곧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한 그는 비밀문서를 들고 탈출을 감행한다. 동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볼코노고프 대위는 자신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저지른 충격적인 만행을 뉘우치고 피해자들의 유가족을 찾아 용서를 구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기 위한 여정은 쉽지 않고, NKVD의 추격은 점점 더 숨통을 조여온다.
CINE PICK!
21년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화제작이었던 <볼코노프 대위 탈출하다>는 2차세계대전 직전인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로 이 비극 속 주인공은 어떤 의지와 신념으로 움직이는지 궁금해지는 영화입니다.
에릭 클랩튼: 어크로스 24 나이츠
Eric Clapton: Across 24 Nights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영국 | 113분
감독: 데이비드 바나드
출연: 에릭 클랩튼
개봉: 2023.08.23.
배급: (주)케빈앤컴퍼니
시놉시스
기타의 신,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기타 연주자인 에릭 클랩튼의 전설적인 공연이 영화관에서 펼쳐진다. 1990년과 1991년, 에릭 클랩튼은 영국을 대표하는 공연장 로열 앨버트 홀에서 락, 블루스, 풀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다양한 라인업과 명곡으로 콘서트를 진행하였다. 그의 다섯 번째 라이브 앨범 <24 nights>는 두 해에 걸친 42번의 공연들로 구성된 것이다. <에릭 클랩튼: 어크로스 24 나이츠>는 그중 최고의 공연만을 선별하여 5.1 서라운드 사운드로 리마스터된 공연 실황으로, 30여 년 전 공연 현장 속 뜨거운 열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CINE PICK!
1960년대부터 현대까지 영국의 “기타의 신”이라고 불리는 에릭 클랩튼은 최고의 음악적 성취를 거둔 기타리스트를 꼽을 때 항상 거론되는 전설의 인물입니다. 이 공연은 그의 다섯 번째 라이브 앨범 <24 nights>는 두 해에 걸친 42번의 공연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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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플래쉬>(데미언 셔젤, 2014)에 관한 길고 장황한 글.
<위플래쉬> (데미언 셔젤, 2014)
자기 증명을 향한 외력과 내력의 주도권 전쟁
<위플래쉬>는 2014년에 개봉한 데미언 셔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고, 단연 빛나는 두 배우 J.K. 시몬스와 마일스 텔러의 연기력과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데미언 셔젤의 장기인 영화의 리듬에 재즈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에 있어서, 그리고 음악을 중심으로 인물의 성장과 그 과정에서의 서스펜스를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게 담았다는 점에서 필자도 현재까지 나온 데미언 셔젤의 최고작이자 한 해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영화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필자는 이 작품의 스릴러적인 요소가 이 작품을 ‘아주 재밌는 영화’로 만드는데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내게 이 영화가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가 파멸로 향해 가는 반성장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하고 싶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위플래쉬>의 메인 서사를 따라가되, 마지막 장면을 포함해 짚고 넘어가 볼만한 장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볼 것이다. <위플래쉬>는 관객에게 크게 어렵게 다가오는 영화도 아니기에 구태여 주요 장면들에 달아보는 해설같다는 느낌이 들어 재미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이 영화를 ‘파멸로 향해 가는’이라고 한만큼 엔딩 이후의 ‘앤드류’도 한번 해볼 생각이다. 다만 그 뒷얘기는 꽤나 삐딱한 이야기일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위플래쉬>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 속 재즈 음악이나 무대 공연에 대해 나름의 조사를 하면서 작성했으나, 이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기에 전문적인 지식을 알고 계신 분들의 수정과 첨언을 부탁드린다.
오프닝 장면부터 짚어봐야겠다. <위플래쉬>의 첫 번째 쇼트는 연습하는 앤드류를 복도에서 열려있는 연습실을 향해 롱 쇼트로 바라보다가 달리 인으로 점차 가까이 가서 컷으로 플레처 교수(J.K. 시몬스 분)가 등장할 때까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이보다 더 이전에 이미 시작된다. 암전된 상태에서 점차 템포를 올려가는 드럼 소리를-그리고 엔딩에서 다시 듣게 될- 들려주며 제목 ‘위플래쉬’가 나오는 게 첫 번째 쇼트다. 이 오프닝이 사실상 영화 <위플래쉬>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려주는데, 템포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드럼 소리는 앤드류가 광기에 사로잡혀가는 과정,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리듬과 일치한다. 이를 인지하고 다시 이야기를 진행하자. 앤드류는 플레처 교수 앞에서 연주를 보여준 뒤 무시당하고,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간다. 앤드류의 아버지는 앤드류가 음악을 공부하는 것을 것을 아마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앤드류는 플레처 교수를 처음 만났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들어봤고, 그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선망을 품고 있다.
이후 단체로 연습이 진행 중이던 강의실에 플레처 교수가 난입한다. 플레처 교수는 두 번째 등장에서 그의 카리스마와 동시에 얼마나 청각이 예민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이때 앤드류는 본인이 연주를 잘했는지, 못 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뜬금없이 플레처에게 교내 최고인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듣는다. 앤드류는 아무튼 ‘그에게 간택을 받았다’라는 자신감으로 평소 마음에 두던 영화관 아르바이트생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앤드류의 파멸은 이제부터 진짜로 시작된다.
앤드류는 잘못 알려준 시간 때문에 지나치게 일찍 도착한 뒤 9시 약 5분 전에 단체로 몰려오는 밴드 팀원들을 보게 된다. 모든 것이 초짜인 앤드류의 시선에서 이들은 교내 최고의 밴드의 일원인 만큼 제각각은 분주하지만 꽤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이를 빠르고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보여주면서, 9시가 다가오고 있다는 시계의 쇼트는 이 분주한 와중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9시가 된 순간 플레처 교수는 이 장면의 리듬을 완전히 박살 내면서 등장하여, 모든 것은 플레처 교수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군생활 중 생활관에 등장한 대대장을 방불케 하는 이 장면은, 뒷 이야기를 위해 한 번 이렇게 설명해보겠다. 플레처 교수는 자신이 위치한 공간의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자신의 ‘템포’에 맞춘다. 오로지 그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이 밴드는 플레처의 등장 이후 분주함은 사라지고 조화를 이룬다.
플레처가 밴드를 장악하는 방식, 사람을 다루는 방식, 모든 것을 자신의 템포에 맞추도록 자극하는 방식은 대체로 정서적 학대다. 필자는 이 글의 부제를 ‘자기 증명을 향한 외력과 내력의 주도권 전쟁’이라고 했다. 여기서 외력이란 플레처 교수의 자극이고 내력은 앤드류의 욕망과 감정이다. 플레처 교수는 사람을 자극하는 면에서, 사람을 자신의 템포에 맞추도록 다루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꽤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음악을 하는 순간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까지 불사하는 분노의 화신으로 변한다.
이 대목에서 짚고 가야 할 대사는 “찰리 파커가 위대한 뮤지션이 된 건, 조 존스가 그의 머리에 심벌즈를 던졌기 때문이야”라는 대사다. 그리고 꼭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인 듯, 앤드류의 머리를 향해 의자를-심벌즈와 꼭 닮은- 집어던진다. 앤드류는 이 자극에 엉망으로 무너졌다가, 그의 템포에 맞추기 위해 말 그대로 피나는 연습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앤드류의 감정이라는 내력이 끌려 나오기 시작하는데, 피를 흘리면서 연습하는 장면의 무시무시함은 거의 호러 영화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앤드류는 태너의 악보를 잃어버리는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밴드의 메인 드러머 자리를 꿰차게 된다(이 대목은 이 영화의 몇 안 되는 미스테리로, 영화가 정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앤드류가 악보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그럭저럭 괜찮은 미래가 기대되는 와중에, 영화 초반에 암시되었던 새로운 외력이 등장한다. 앤드류의 가족 중엔 예술을 하는 사람이 없고, 신입생치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앤드류의 행보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앤드류의 친아버지조차도. 이 무렵부터 자기 증명을 향한 앤드류의 내력은 점차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게 되는데, 이를 보여주는 것은 세 가지다. 즐겁다기보단 어딘가 살짝 나사가 빠진 듯한 눈으로 연주하는 앤드류를 담은 로우 앵글, 그리고 코넬리가 자기 자리를 뺏었다는 생각에 보이는 격렬한 감정적 반응, 여자친구와의 결별 선언이다. 이쯤부터 앤드류는 자기 증명 말고는 그 어떤 가치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는 드럼을 부수고 욕설을 내뱉으며 연주를 해나가는데, 이때 주의 깊게 봐야 할 반복되는 쇼트가 있다. 처음으로 피 흘리며 연습하는 장면에서 외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심벌즈에 밀려있던 앤드류의 얼굴이 이제는 완전히 나와 있다. 지금의 앤드류를 움직이는 동력은 분노라는 내력이다.
첫번째 피나는 연습 장면.
두번째 피나는 연습 장면
영화 중반부까지를 외력과 내력으로 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는 자극하면서 자신의 템포에 맞추도록 외력을 가하며, 자극받은 앤드류는 그 템포에 맞출 수 있도록 내력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템포의 기준은 점점 높아지면서 자극의 강도 또한 강해지고-플레처 외의 요인과 함께- 앤드류의 내력은 성취욕이라기보단 분노에 훨씬 가까운 부정적인 감정으로 변하면서 더 강력해진다. 그러니까 <위플래쉬>는 오프닝에서 점점 빨라졌던 템포처럼, 앤드류의 외력과 내력이 엔딩을 향해 달리는 지옥의 밸런스 게임이다.
다음으로 나오는 플레처와 앤드류(외 2명)의 광기 어린 연습 장면은 이 지옥의 밸런스 게임을 한 장면으로 압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분에 330 더블 타임 스윙’ 템포의 기준을 제시한 뒤, 내력과 외력의 밸런스가 맞을 때까지 플레처는 계속 외력을 가한다. “빠르게! 더 빠르게! 멈추지 마!”
플레처의 템포에 맞춘 앤드류에게 벌어진 아주 뜻밖의 사건. 영화 <위플래쉬>의 전체의 리듬은 이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 변주된다. 첫 번째는 물론 악보를 잃어버리는 사건이었고, 이 사건은 앤드류가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되었다. 두 번째 사건, 타이어 펑크로 경연에 늦는 불상사는 첫 번째처럼 플레처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건으로 본인이 간신히 얻은 기회에서 추락하는 계기가 된다. 간신히 내력을 끌어올려 맞춘 ‘더블 타임 스윙’을 보일 기회가 사라지려 하자, 앤드류는 피투성이로 무대에 오르는 기괴한 선택을 한다. 이 대목은 한 사람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며, “넌 끝이다”고 선언하는 플레처에게 앤드류는 분노를 표출한다. 왜? 한계치까지 오른 앤드류의 내력, 분노가 마땅히 분출되어야 할 지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적당한 앤드류가 마주한 뜻밖의 진실(사건이 아니다). 플레처 교수가 눈물까지 보이며 들려줬던 음악의 주인공 ‘션 케이시’는 사고사가 아니라 자살을 선택한 것이고 그 원인은 플레처 교수의 지도를 받던 시절부터 나타난 불안과 강박 증세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확정되는 사실은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에게만 이런 외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심벌즈나 의자를 던졌다는 말로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이전의 앤드류’가 있었으며, 그는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앤드류의 반응이 묘하다. 앤드류는 자신이 당한 가혹 행위에 관해 ‘그는 잘못이 없다’며 그를 감싼다. 왜? 그를 폭행할 정도로 분노를 표출해 제적을 당했으면서?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에게 외력으로 다가왔으나, 앤드류가 음대에 입학하면서 필요로 한 것은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은 정신적 지지였다. 그러나 앤드류의 친아버지는 앤드류의 진로를 지지해주는 것이 아니라 늘 탐탁지 않아 했고, 아들이 다른 사촌들처럼 예술 외의 진로를-그가 진정 ‘재능’으로 생각하는- 택하길 바랐다. 앤드류는 친척뿐 아니라 자기 직계가족인 아버지로부터 그의 행보에 대한 지지를 전혀 받을 수 없었고, 지옥 같은 자극을 줄지언정 그의 재능을 발굴하고 ‘Whiplash’, 채찍질해주는, 가끔은 격려를 통해 따뜻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플레처 교수를 자신의 아버지로 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그를 감싸주는 행위를 하지만 자신을 아끼는 친아버지를 보고 끝내 앤드류는 그를 고발하는 데 동참한다. 여기서 이 장면을 플레처를 고발하는 앤드류, 어린 시절 영상을 보는 앤드류, 개인 연습실을 정리하는 앤드류로 교차편집했다. 나눠서 보여줘도 이상한 것이 없는 이 장면을 교차편집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무엇일까?
영화 <위플래쉬>, 그리고 앤드류를 중심으로 한 내력과 외력의 주도권 경쟁엔 ‘부자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교차편집 장면을 부자 관계를 통한 설명으로 바꿔보자. 끝없이 채찍질 받으며 자신도 성장했던 애증의 아버지 플레처를 고발하는 앤드류,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한때 자신을 지지했던 친아버지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앤드류, 애증의 아버지 플레처를 배신하고 원래의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앤드류. 한 장면에서 현재, 과거, 미래의 부자 관계를 충돌시키면서 앤드류가 느끼는 공허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음악을 관둔 앤드류가 위치한 환경은 온갖 소리들로 가득 차 있고 화려했던 학교와 무대와 다르게 조용하고 공허하다. 공간과 청각 감각의 대비. 목표나 자기 증명을 향해 자신을 자극하던 외력도 없고 자신을 이끌었던 내력도 사라진 상태의 앤드류. 사실상 앤드류는 자신의 성취를 향한 갈망을 거세당한다. 물론 이쯤에서 영화가 끝날 리가 없다. 여기서 영화가 끝났다면 관객들은 스크린에 팝콘 통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마지막 뜻밖의 사건. 세 번째 사건이 다시 이 영화의 리듬을 바꾼다.
앤드류는 길을 걷다가 아주 우연히 작은 재즈 바의 공연에서 플레처 교수를 다시 만난다. 애증의 대상이었던 플레처가 직접 보여주는 연주. 강압적인 선생이-혹은 아버지가- 아닌 재즈를 사랑하는 뮤지션의 면모. 앤드류는 자신이 배신한 과거의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플레처는 바를 나서려는 앤드류를 붙잡고 자리를 마련한다.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자신이 강단에서 물러났음을 말하며 자신이 학교에서 했던 역할은 학생들이 ‘한계를 뛰어넘도록 몰아붙이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사가 퍽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말은 ‘그 정도면 잘했어’(Good Job.)야.” “제2의 찰리 파커라면 좌절하지 않지.” 플레처는 재즈가 죽어가는 이유가 사람들이 쉬운 것만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고, ‘버드’ 찰리 파커와 같은 스타 탄생엔 조 존스의 심벌즈처럼 한계를 뛰어넘도록 몰아붙이는 자극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마음이 매우 복잡해지는 앤드류에게 재즈 페스티벌의 공연 자리를 제안하며, 코넬리는 앤드류를 자극하려고 데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네가 제2의 찰리 파커이길 기대하고 있다’와 같은 발언. 플레처는 사람을 가지고 노는 데는 도가 튼 인간이다.
다시금 가슴이 불타오르는 듯한 앤드류. 앤드류는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된 그날처럼 니콜에게 전화를 건다. 카메라는 방문 프레임 안에 앤드류를 두고 바라보다가 니콜이 새로운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클로즈업으로 전환된다. 전화가 끊어지고도 계속 앤드류를 바라보고 있는 롱테이크. 관객들은 앤드류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앤드류는 한 번 선택한 일은 되돌릴 수 없다고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꿈을 선택하면서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버리겠다고 선언한 순간,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과 꿈을 두고 양자택일하는 주제는 데미언 셔젤의 이후 영화들에서 계속 반복된다)
JVC 무대는 누군가의 커리어 혹은 인생을 아주 긍정적으로나 아주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큰 무대다. <위플래쉬>에서 첫 번째 사건은 기회였고, 두 번째 사건은 몰락이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사건은? 세 번째 사건은 둘 다다. 앤드류에겐 기회지만 플레처에겐 앤드류의 몰락이다. 자신을 고발한 사람이 앤드류인 것을 눈치챈 플레처는 이 업계에서 앤드류를 완전히 끝장내려고 부른 것이다. 플레처가 이제 바라는 것은 앤드류의 성장이 아니라 파멸이다. 이 동기라기보다 악의에 가까운 행동은, 앤드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그리고 가장 강력한 외력이 될 것이다. 물론 앤드류는 플레처가 지휘하는 ‘Upswingin’’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연주를 망친다. 그리고 플레처의 한 마디 “아무리 생각해도 넌 아니야.” 플레처가 기다리던 제2의 찰리 파커가 아니라는 말이자, 너는 더 이상 관심 대상이 아니라는 배신에 가까운 아버지의 선언. 앤드류에게 이보다 더 끔찍한 말이 있을까? 공포에 가까운 관객의 시선을 뒤로한 채 앤드류는 무대를 나서고 친아버지는 앤드류를 안아주며 “집으로 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앤드류는 이 말을 듣고 눈빛이 바뀌어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 지나치게 자기 계발 격언으로 사용되곤 하는 니체의 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플레처의 악의 가득한 외력은 앤드류를 끝장내지 못한 것일까? 혹시 앤드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죽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 소리도 화려함도 없는 공허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플레처가 가하는 그 가혹한 외력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여튼 앤드류는 자신을 배신한 애증의 아버지에게 플레처에게 복수해야 한다. 앤드류의 내력은 이제 분노라기보단 집념에 가까워 보인다. 앤드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복수는 자신이 제2의 찰리 파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증명은 플레처의 인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백미이자 마지막 장면의 진행은 이러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따라가야 한다.
앤드류는 플레처의 지휘 사인 없이 혼자서 연주를 시작하고 옆에 있는 콘트라베이스부터 자신의 신호에 따르게 한다. 앤드류는 플레처에게 복수하기 위해 모든 것이 그에게 맞춰진, 플레처의 템포, 플레처의 자장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강의실이라면 뭐라도 던졌겠지만, 공식적인 무대이므로 플레처는 이미 시작된 연주에 따르면서 ‘팔이나 휘두르며 박자를 맞추는’ 지휘자가 된다. 우리는 앤드류가 그리도 지독하게 연습한 더블 타임 스윙, Caravan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과연 프로 밴드답게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연주가 만족스러운 플레처는 이 무대에 합세하기로 한다. 이때 앤드류와 플레처, 다른 말로 앤드류의 내력과 외력이 얼마나 조화로운지는 데미언 셔젤 감독의 시그니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화면이 주고받는 패닝 쇼트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앤드류와 플레처 둘 다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 플레처는 연주를 마친다는 사인을 보내는데 앤드류는 멈추지 않고 독주를 이어 나간다. 왜? 앤드류에게 아직 할 일이 더 있는 것일까?
앤드류는 이 밴드의 주도권을 플레처로부터 빼앗아 오긴 했지만, 아직 자신이 제2의 찰리 파커라고 증명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어지는 앤드류의 드럼 솔로 독주는 자신이 제2의 찰리 파커라고 애증의 아버지 플레처에게 일갈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앤드류의 행동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것인지 뜯어보는 일도 꽤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앤드류의 독주는 플레처, 밴드 단원들, 공연 스태프들, 모두를 당황시킨다. 첫 번째로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개인 지도를 한 적도 없으며, 독주 버전의 ‘Caravan’을 지도한 적 역시 없다. 앤드류는 자신의 방에 걸려 있던 버디 리치가 실제로 드럼 솔로가 부각되게 편곡한 버전처럼 독주를 시작한다. 두 번째, 플레처는 곡 소개를 하면서 ‘Upswingin’’이 ‘익숙한 명곡이 아닌 새로운 레퍼토리’라고 하였다. 앤드류가 자신의 주도로 Caravan을 시작하는데, 앤드류와 달리 ‘프로’인 연주자들은 악보 없이도 최상의 연주를 들려준다. 다들 손에 익을 정도로 연습이 된 곡이라는 소리이자 뒤집어 말하면 누구나 아는 명곡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곡 뒤에 누구와의 합의도 없이 '독주'를 시작한다. 세 번째로 무대의 조명은 플레처의 지휘 사인과 함께 꺼졌다가 앤드류의 독주 시작과 함께 다시 켜진다. 지금은 페스티벌의 오프닝이고 그들은 한 팀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 밴드는 플레처가 지휘하는 밴드지, 앤드류의 밴드가 아니다. 앤드류는 이 밴드의 메인은커녕, 마지막에 들어온 일원일 뿐이다. 지금 앤드류가 하는 행동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행동이다. 앤드류는 무대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무대 자체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무대로, 모든 템포를 자신에게 맞추도록 바꾼다. 이것이 앤드류가 플레처에게 ‘내가 제2의 찰리 파커가 맞다’고 복수하는 방법이자 증명하는 방법이다.
피를 봐야만 가능한 수준의 연주, 앤드류는 정말 광인처럼 드럼을 두들긴다. 여기서 앤드류의 친아버지의 시점 쇼트와 클로즈업이 등장하는데, 아버지의 표정이 무척 복잡하다. 필자는 이 클로즈업이 ‘아들을 지지해주지 못한 죄책감’이라기보단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표정 같다. 끝내 앤드류를 집에 데려오지 못한, 플레처라는 악마에게 아들을 빼앗기고 만 아버지의 괴로움. 앤드류와 친아버지는 그 시점 쇼트의 거리감만큼이나 멀어진 것 같다. 시점 쇼트 직전에 잠시 사운드가 사라지고 프레임 속에 앤드류의 상체만 잡았다가 다시 사운드를 키우는 장면은 충분히 과잉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필자는 이 부분이 자신을 욕망을 거세하려 하는 애증의 아버지와 친아버지 둘 앞에서 자신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절정에 이르는 장면같다고 느낀다. 아까 2번째 사건에서 앤드류의 내력이 ‘분출’할 곳을 잃었다고 했듯이, 지금 이 장면은 앤드류 내력의 거대한 분출 장면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오프닝에서 끝까지 듣지 못했던 부분은 이 하이라이트에서 마저 듣게 된다.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속주 다음, 이 격렬한 영화의 마지막 분출 이후 프레임이 입까지 잡고 있지 않기에 정확하지 않지만,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뭔가를 말한다. 이 영화의 맥락상 그 발언은 높은 확률로 "Good job"이다-“네가 제2의 찰리 파커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맥락상 Good job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앤드류는 이 처절한 자기 증명에 성공한 듯하다. 영화 <위플래쉬>는 딱 이 부분에서 끝난다. 하지만 이런 영화라면 영화가 끝난 다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위플래쉬>를 파멸로 향해가는 반성장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생각한다고 했다. 앤드류가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를 논하는 것은 개인적 가치관의 문제다. 그런 얘기는 영화 이야기가 모두 끝난 다음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앤드류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보다는 <위플래쉬> 이후의 앤드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앤드류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다. 영화는 이미 끝났고 카메라로 찍히진 않았으니 사실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기반으로 해서 필자가 작성한 속편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하겠다.
앤드류는 JVC에서 무지막지한 연주를 보여줬고, 그는 친아버지가 조롱하던 링컨 센터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가 앤드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까닭은 더 이상 앤드류에게 외력이 없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이제 늘 자기 자신과 사투해야만 한다. 애증의 아버지 플레처에게 인정받았으니 앞으로도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까? 라고 질문할 수 있겠으나, 플레처는 공교롭게도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말’을 해버렸다. 그는 이제 긍정적인 의미에서 앤드류에게, 제2의 찰리 파커에게 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플레처는 앤드류가 선택한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오로지 제2의 찰리 파커를 위해 자극시키는 법만 아는 인간이다. 플레처는 아버지나 선생의 위치에서 자식이나 제자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므로 아주 부정적인 의미에서 앤드류는 아버지로부터 곧바로 독립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과연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있다. 플레처는 바에서 만난 앤드류를 다시 자극시키면서 퍽 인상적인 대사를 몇 마디 내뱉는다. ‘요즘 세상은 뭐든 쉬운 걸 원해. 그러니 재즈가 죽어가지. (…) 그런 제자를 키워보려고 누구보다 노력했어. 그래서 내 노력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전혀 없어.’ 플레처는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노력을 계속해나간다면 언젠가 제2의 찰리 파커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 영화 속에서-아마 현실 또한 마찬가지로- 재즈는 죽어간다. 그러니까 재즈라는 장르가 아예 종말을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재즈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필자의 생각엔 재즈의 시대를 풍미할 스타는 그때 이미 탄생했고 지금은 탄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들 수도 없다. 그런데 플레처는 이 불가능한 일을 한계 이상의 외력을 통해, 정서적 학대를 통해 해내겠다고 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이런 끔찍한 인간이 있을까? 영화의 내용이 꼭 도덕이나 윤리에 부합할 필요는 없고, 가치판단에 그다지 중요한 요소도 아니다. 하지만 <위플래쉬>는 확실하게 끔찍한 이야기다. 필자는 이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만, 개봉 당시에 <위플래쉬>를 보고 자극받았다는 몇몇 네티즌들의 평가에는 다소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앤드류의 내력이 점점 더 높아져 가면서 소위 말하는 ‘인간미’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앤드류는 성공 가도를 걷든, 걷지 못하든 그는 스스로 파멸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것은 앤드류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성공에 대한 갈망이 있긴 했지만, 과연 플레처를 만나기 전에도 ‘이름만 남길 수 있다면 약물중독으로 단명하는 삶’을 바라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플레처를 만나기 전의 앤드류는 성공했을지 못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영화 <위플래쉬>는 앤드류가 플레처를 만나면서 시작하고, (아마도) 함께하는 마지막 무대에서 끝난다. <위플래쉬> 이후의 앤드류는 확실히 파멸할 것으로 보인다. Whiplash… 채찍질이란 뜻의 영어단어다. 플레처는 채찍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이쯤에서 영화가 시작될 무렵의 장면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암전이 끝난 이후 앤드류가 연습을 시작하자 천천히 달리 인으로 앤드류에게 다가가는 카메라. 앤드류가 누군가 왔다는 것을 인지하자 플레처 교수로 컷이 되지만, 앤드류로 향해 가는 카메라는 플레처의 시점 쇼트가 아니다. 명백하게 앤드류가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가 일치하지도 않고 플레처의 눈높이와 카메라의 아이 레벨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카메라 이동은 뭘까? 내 생각엔 앤드류에게 ‘플레처라는 채찍’으로 ‘불행’이 서서히 다가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앤드류와 플레처의 더블 타임 스윙 연습 부분에서 주목해 볼만한 것은, 플레처가 외력을 가하는 대상이 앤드류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태너와 코넬리, 그 외의 밴드의 구성원들 또한 플레처의 자장 안에 있는 동안은 이 외력의 객체가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위플래쉬> 속 세상에서 꽤 시간이 지난 다음, 플레처 교수는 뭘 하고 있을까? 그는 아마도 제3의 찰리 파커를 위해, 아니 어쩌면 너무 빨리 떠난 제2의 파커를 다시 찾기 위해서 의자를 집어던지고 있을 것이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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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이 장기 이식을 한 사람의 성격까지 닮는다고 하는 무서운 이야기
시놉시스
김규종(정진운)은 18살에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로 성격이 이상해지면서 식당에서 알바를 하던 중에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는 자신의 친구들 중 한 명을 식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다. 선두(조한선)는 후배 형사(정태우)와 함께 이번 살인 사건의 경위를 알아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바로 자신이 과거에 검거하려 한 강철웅이라는 살인자가 죽기 직전에 김규종(정진운)에게 심장을 이식했다는 거다. 과연 강철웅과 김규종(정진운) 이 둘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김규종(정진운)에겐 여자친구인 예리가 있었다. 살인 사건의 발단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친구들이 성희롱을 하면서 강간을 계획하려고 하자 참지 못해 친구들 중 한 명을 죽이게 되고 나머지 두 명까지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게 된다. 또한 석두(조한선)도 과거에 강철웅을 잡으려다 강철웅에게 칼에 찔려 중태에 빠졌고 폐 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그 공여자가 강철웅이라는 걸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에게 듣고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공여자가 수혜자에게 장기를 이식하게 되면 성격까지도 닮게 된다는 걸 이 영화가 설명해 주고 있는데 사실인지 낭설인지는 필자는 잘 모르겠다.
사실 김규종(정진운)의 친구들은 폭행, 사기 전과 7범이었고 배달 일을 한다. 그중 한 명은 일하는 시간에 경마장을 갔다 왔고 불량한 태도로 일을 했으면서 사장에게 큰소리를 치며 월급을 주라는 말 때문에 해고를 당한다. 뻔뻔하면서 막장 인생인 이들에게 김규종(정진운)의 여자친구인 예리는 자신들의 타깃이 되었고 예리가 편의점 알바를 끝나는 틈을 타 범행을 계획하려고 한 것이 결국 살인이 되어 돌아왔다. 후배 형사(정태우)가 이들에게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까지 했을 만큼 악독하고 거짓말까지 하는 걸 보면 정말 자업자득이고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나는 여기에 있다는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이 장기 이식을 한 사람의 성격까지 닮아가게 된다는 걸 다루고 있다. 공여자가 했던 습관들이나 행동들이 수혜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한 번의 장기 이식이 평생을
좌우한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명언(?)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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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스 오브 구찌> 영화리뷰 - 아이러니한 구찌 가족의 흥망성쇠
<하우스 오브 구찌>는 최근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를 선보였던 리들리 스콧의 신작이다.
국내에서 연달아 극장을 찾은 그의 이번 신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에게 익숙한 명품 브랜드 ‘구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아름다운 명품을 만드는 가문 뒤편에는 무지막지한 권력 다툼과 심지어는 살인 모략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진 적이 없다.
영화의 주인공은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레이디 가가). 그녀는 아버지의 트럭회사 사무실에서 경리로 일한다.
아버지가 쓴 영수증을 정리하는 그는 아버지의 서명을 감쪽같이 따라 쓸 수 있을 정도로 눈썰미가 좋으며 유능한 감각을 지녔다.
언제나 자신만만한 그녀는 어느 날, 클럽에서 우연히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를 마주친다.
그의 이름을 듣고 그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파트리치아는 이후로 마우리치오의 주변을 맴돌며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작한다. 결국 둘은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마우리치오의 아버지 로돌포(제레미 아이언스)는 밝고 상냥한 파트리치아가 마음에 들면서도, 구찌의 격과 맞지 않는 그녀의 초라한 가문을 반기지 않는다. 로돌포는 아들 마우리치오에게 파트리치아와는 연애만 하라며, 절대 결혼은 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그런 아버지의 고루한 가치관에 동감할 수 없는 마우리치오는 그 길로 집을 나와 처가살이를 시작한다.
시아버지의 트럭회사에서 일하며 평소보다 조금 부족하게 살아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은 어느 날, 로돌포의 형인 알도(알 파치노)의 연락을 받고 그의 생일잔치에 초대된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제목 그대로 구찌 가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포스터는 레이디 가가가 연기한 파트리치아 레지아니의 강렬한 단독 스틸로 이뤄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토록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 된 한 명품 가문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스피디한 편집과 촘촘한 서사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의 불같은 사랑을 주되게 그리던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그들이 알도의 영향을 받아 구찌 사업에 동참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권력을 향한 욕구, 미신에 대한 집착, 상대에 대한 의심, 그리고 마침내 일그러진 사랑을 하나씩 그려나간다.
마우리치오는 점점 파트리치아가 마치 ‘선을 넘듯이’ 구찌에 집착하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그러던 찰나에 친구였던 파올로에게 애정을 느끼며 파트리치아와 점점 멀어진다.
영화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수십 년간 구찌 가문 내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일화를 그린다.
그리하여 우리가 동경하고 사랑해 마지 않는 이 명품 뒤에는 얼마나 사람답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는지 톺아보면서,
사실상 이들의 세계를 과도하게 풍자한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교도소에 오래 복역한 뒤 출소한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는 이 영화를 두고
거세게 비난한 바 있다. 물론 구찌 가문 또한 이 영화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그려졌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신이 만든 작품에 관한 생각을 바꾸지 않고, 이 영화의 이야기가 오로지 그들만의 개인사라고만 여겨질 수 없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반길 만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오락영화다.
구찌를 비롯하여 즐거운 눈요깃거리의 화려한 명품들이 즐비하게 등장한다.
톰 포드와 칼 라거펠드 등 저명한 디자이너들의 옛 모습도 잠깐 나타나기 때문에, 패션에 관심 있는 관객에게는 매우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또한 현재 오스카 레이스에서 여우주연상 부문의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레이디 가가의 도발적인 연기 또한 흥미롭다.
최근 <아네트>와 <라스트 듀얼>로 계속해서 극장을 찾은 아담 드라이버 또한 반가운 얼굴이며, 제레미 아이언스, 알 파치노와 같은 훌륭한 배우들 또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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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유불급(過猶不及)
영화를 모두 관람한 후 우선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본 작품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나오겠구나.'였다. 개인의 성향, 개인의 신념, 생각 등에 의해 판단이 모두 갈릴 수 있을 법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지금과 같이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는 데에는 영화가 이처럼 객관적인 영화의 뚜렷한 잣대로 평가받기 보단 주관적 개인의 판단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뮤지컬 영화라는 특성을 지닌다. 대사를 하는 중 뮤지컬 넘버로 이어져 군무와 각종 안무들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넘버의 리듬과 가사의 주제를 통해 해당 씬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개봉하기 전 본 작품의 OST와 넘버에 관해서도 큰 이슈가 되었고, 칸 영화제에서 이에 관해 찬사가 이어졌다고 들은 바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도 굉장히 인상적인 넘버가 많았으며, 그 안에서의 주제나 군무를 통해 인물의 변화나 상황의 변혁으로 인해 인물이 위치가 변했을 때 행할 수 있는 행동의 변화를 알아가는 점이 영화의 큰 매력이었다.
그럼에도 필자의 생각에 다만 아쉬운 점은 물론 모든 넘버를 끝낼 때에 있어서 무조건 화려히 끝내거나 넘버의 엔딩을 깔끔히 마무리시킬 필요는 없지만 좀처럼 모든 많은 넘버들이 마무리된지도 모를만큼 순식간에 다음 씬으로 넘어가 종료되거나 디졸빙을 통해 화면을 암전시킨 후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데, 이런 부분만큼은 영화를 진심으로 즐기는 데엔 지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몇몇 넘버의 등장 또한 다소 무리가 되었다고 생각될 만큼 예상치 못한 구석이 있는데, 이 또한 그런 뮤지컬의 문법적인 것들을 영화가 100% 따라줄 필요는 없지만 이 점 또한 필자에게 있어 영화를 충분히 즐기기엔 제한되었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트렌스젠더와 LGBTQ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되었고, 최근 그래미 시상식에서의 레이디 가가의 트렌스젠더 지지 수상소감 또한 또다른 논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기본적으로 이 지점을 가리켜 주제를 형성하였고, 그 주제를 통해 인간의 인생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트렌스젠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듯한 영화적 자세를 취한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속 '에밀리아 페레즈'는 과거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었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 "리타"를 만나 여자가 되었을 때 만든 이름이다. "에밀리아"로서의 인생을 스스로 꿈꿔왔고, 온갖 역경을 헤쳐나가며 이루어냈지만 남자였을 때 낳은 아이들과는 함께 하고 싶지만 아빠나 엄마의 칭호가 아닌 고모의 칭호로만 지낼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과 전 아내에게도 죽음을 위장하였기에 스스로의 변화된 모습을 그녀에게 말할 수도, 더 가까이할 수도 없는 복잡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트렌스젠더인 인물이 처한 상황, 뭐든 할 수 있는 동시에 뭐든 하기 애매해져버린 한 인간을 보여주게 되는데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처연하게 보여준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흥미로운 점은 트렌스젠더이면서 레즈비언인 "에밀리아"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무작정 두 가지 소재를 이용한 돌림노래를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밀리아"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행하고자 스스로 멕시코의 시신을 수습하는 협회를 만들어낸다. 협회 활동을 하면서 과거의 어두웠던 삶을 청산하려 했지만, 남아있던 지난 삶의 흔적들은 작품이 종료될 때까지 그녀의 발목을 잡고, 그녀가 바라고 행하고자 하는 것들에 제약을 걸고자 했다. 작품 속 "에밀리아"를 성전환시키기 위해 "리타"가 찾은 의사가 "리타"와의 대화를 통해 전한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의사는 "리타"에게 단순히 몸을 변화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말을 전한다. 영화는 이 지점을 기점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드러내는데, 작품은 과거 삶을 청산하고자 몸과 신체를 변화시킨 그 인물이 과연 그 삶을 청산할 수 있는지, 그 삶의 흔적들과 발자취들에게서 벗어나 용서를 빌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리타"의 존재와 역할이 또한 굉장히 작품 내에서 인상적이다. 멕시코인이면서 동시에 여자라는 이유로 내려진 사회의 수갑은 변호사가 되었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일에 깊은 회의감을 가졌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에밀리아"의 과거 삶의 이름인 "마니타스"의 의뢰는 그녀를 멕시코시티에서의 동네 변호사에서 런던 상류층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성공한 변호사로 변신시켜주었다. 어쩌면 "에밀리아"만큼이나 영화는 "리타"에게도 2번째 삶을 제시하고, 그렇게 바뀐 상황 속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식의 이야기를 펼친다. 이후 장면 속 과거 삶 속 사람들을 다시 만난 "리타"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자 알랑방귀 뀌는 그들에게서 인간혐오심을 느끼며 본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넘버를 선보인다.
결국 영화는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인간이 과연 달라질지, 그 말로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마무리로 던진다. "에밀리아"의 전처인 "제시"는 "에밀리아"가 남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녀에게서 벗어나 새 살림을 차리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하다 그녀가 모든 계좌를 동결시키자 "에밀리아"를 납치하여 협박한다. 그러자 "리타"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무장한 이들을 동반해 협상 장소로 찾아가지만 총격전이 벌어지고 말았고, 어지러운 상황 속 정신을 차린 "에밀리아"는 "제시"에게 사실을 고한다.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제시"는 결혼 예정자가 "에밀리아"를 차량에 싣고 운전을 해 함께 도망치려 할 때 차를 세우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게 되고, 차량은 결국 전복되어 모든 이들이 사망하게 된다. 결국 모든 이들이 사망하고, "에밀리아"의 자식들은 "리타"에게로 향했고, 멕시코 시티의 많은 사람들이 멕시코 시신 수습 협회를 이끌었던 "에밀리아"의 비고를 함께 추모하며 영화가 막을 내린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전 삶의 흔적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갱생받은 삶을 통해 결국 그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영화는 이런 질문에 인물들의 말로를 보여주면서 관객 스스로 그 선택지들을 통해 답을 내리게끔 유도한다. 영화적으로 한번쯤 다루었으면 했던 것들, 다룸으로써 전세계 관객들이 한번쯤 이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영화는 거침없이 달려나가 임무를 수행한다.
다만 필자가 본 작품에 대해 심히 고민이 되고, 생각이 많아졌던 이유는 바로 영화의 복잡성 때문이다. 마치 몸에 좋고, 맛에 좋은 수 만가지의 식재료를 모두 긁어모아 음식을 만들려했지만 결과적으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거 같은 느낌을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잊을 수 없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좋은 영화, 명작의 반열에 들어설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와 주제를 관객에게 내던지고, 그저 제시함으로써 그만일 것이 아닌 관객의 손을 꼭 잡고 주제를 안내하고, 메시지까지 관객이 지치지 않고 도달할 수 있게끔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본 작품의 경우 전자에 속한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너무 좋은 소재이고, 파격적인 소재였으며, 그 안의 OST나 넘버들이나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장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이 굉장히 어색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위의 언급과 같이 호불호의 영역이고, 개인적 견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의 기대가 컸던 것인지 다소 아쉽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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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봐도 뻔하지 않은 초능력 영화 5선
슈퍼 히어로, 초능력 영화가 이젠 너무 익숙해진 요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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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는 티키타카! 류승룡이 다시 돌아왔다!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장르만 로맨스가 개봉했습니다.
배우인 조은지 감독의 상업장편 영화 데뷔작이죠.
주요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가 매력적이고, 특히 류승룡 배우의 코믹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물론 진중한 연기도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따뜻하게 볼 수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니 주변 관계들을 생각하며 보시면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전체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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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7개 부문 노미네이트 & 골든 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수상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파벨만스] 2차 예고편 대공개❇︎ 자, 이제 우리의 모든 순간이 영화가 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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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마이펫들의 일상이 공개된다!
고양이 벨라와 앵무새 앨빈, 개 베이글은 한 집에 사는 반려동물들이다.
사람들이 없을 때면 세 친구는 따분해하면서도 텔레비전 앞 소파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셋은 툭하면 서로 장난 삼아 말다툼을 벌이고 서로를 놀리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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