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8-26 07:51:24
난민 영웅의 탄생
영화 〈이오 카피타노〉
바다와 사막 위의 인간을 익스트림 롱숏으로 잡을 때, 그 안의 피사체는 작디작다. 극도로 작아진 그의 형태로 인해 그가 어떤 고난을 겪는 중인지, 몸과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 그의 운명이 얼마나 가혹한지는 사소해진다. 파도와 모래의 흐름만이 장관처럼 펼쳐져 점처럼 작은 사람과 그의 고통스러운 현재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데서 익스트림 롱숏의 역설적 미학이 도출된다. 카메라 속 그들은 수많은 다른 고통받는 인간처럼 어려운 시기를 겪는 중일 뿐이지만, 고통받는 인간 모두가 알고 있듯이 개별적 고난은 그리 쉬이 제쳐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네갈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난민 세이두와 그의 사촌 무사의 이야기가 그렇다. 성공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가족 몰래 고향을 떠나는 두 청소년은 유럽, 즉 ‘낙관적 미래’를 향한 여정의 잔혹함을 온몸으로 겪는다. 국경을 넘는 과정에는 내내 돈을 뜯어내려는 온갖 브로커들만 득시글거리고, 불안정한 정세의 틈새를 파고들어 먹고사는 경찰과 반군 역시 두 사람의 생존을 위협한다. 몸값 요구, 고문, 노예 시장에서의 거래……. 탈락하는 순간 죽는 이 가혹한 여정의 목표는 이제 유럽이 아닌 생존 그 자체다.
그러나 세이두는 이 과정에서도 같은 처지의 난민을 포기하지 않는다. 경찰에 붙잡힌 무사를 구하기 위해 먼저 유럽에 갈 기회를 마다하고, 수많은 난민을 태운 배를 직접 운전하여 우여곡절 끝에 아무도 죽지 않은 채로 이탈리아에 도착한다. 난민 영웅의 탄생이다. 각자도생을 강제하는, 죽음과 맞닿은 꿈(생존)을 향한 여정에서 세이두는 같은 처지의 난민을 버리고 혼자 생존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 역시 이 여정에서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 생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숨 빚을 갚는 소박한 행위는 그 행위가 놓인 처참한 현실에서 영웅의 조건으로 거듭난다.
영화가 종종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연결된 존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세이두의 죄책감을 위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침내 도달한 유럽은 아마도 세이두가 기대한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사막과 바다 위에서 방치된 생명으로 근근이 생존한 삶은 유럽에서도 별다르지 않게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라고 환희에 젖어 외치는 세이두의 마지막 얼굴은 이 청소년 난민 영웅과 그가 관계 맺은 사람들의 운명에 다른 가능성을 싹틔운다. 극우가 득세한 유럽과 난민에 대한 반감이 점점 커지는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상상하고 그러모아야 할 것은 바로 이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주조한 극한의 생존 여정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난민을 양산하는 기울어진 글로벌 정치 경제의 맥락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영화의 제목 IO CAPITANO는 ‘나는 선장입니다’의 이탈리아어다.
Relative contents
-
- [럭키, 아파트] 좌표지평계를 고정하는 방법
<럭키, 아파트>
수많은 작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독립 영화계에서 유명한 작가나 감독님도 계실 것이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예쁘고 멋진 배우님도 계셨을 것입니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가 놓쳤던 일상의 무지개를 발견한 영화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쟁쟁한 작품들을 이기고 ‘전주시네마 프로젝트’ 마크를 당당하게 걸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랜만에 독립영화의 색을 진하게 간직하면서 대중의 재미를 자극하는 요소로 가득한 영화였습니다. 흥미롭고, 실험적이며, 재미있습니다.
저는 오전 10시 30분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을 장맛비를 뚫고 50분 지하철로 이동했습니다. 의미심장한 장대비가 공간의 온도를 잠식하며 스산했죠. 피곤과 어려움이 몰려왔으나 영화가 시작하고 이어지는 서스펜스와 스릴이 긴장의 끈을 다시 잡게 해주었죠. 아마도 2011년 <모래>를 시작으로 <자, 이제 댄스타임>, <이태원>, <우리는 매일매일> 등 꾸준히 작품을 활동하시는 ‘강유가람 감독’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13년의 긴 세월이 전해주는 시나리오 자체의 재미와 계속해서 주어지는 인물의 과제, 입체적인 시점 자체가 좋았습니다. 관람하는 내내 이 작품은 이미 뼈대부터 탄탄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립 영화는 자신만의 강점과 특색이 매우 강력하게 확고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때론 대중의 반발을 살 수도 있고, 비난이나 불호를 받을 수 있죠. 본 작품을 관람하며 그런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외된 모든 자들에 대한 시를 쓰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줄무늬가 화려한 얼룩말이 초원에서 죽지 않고 머나먼 땅으로 여행을 떠나는 영화 같았습니다.
극에서는 현재 2024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논쟁거리가 가득합니다.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시거나 사회적인 논란에 예민하신 분이라면 관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논쟁거리가 결국 ‘사람’이라는 실타래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하시면 왜 그렇게 모질게 구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주제가 동시에 함께 다뤄지기 때문에 보시는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영화는 다른 색깔로 변신할 수 있는 카멜레온이 됩니다.
이제 이사를 하면 떡을 돌린다는 이야기는 늙어버린 추억의 전유물이 된 상황입니다. 이웃의 얼굴을 모르고 사는 경우는 당연한 것이죠. 그만큼 삶 자체가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그것을 느끼기엔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부족하죠. 극의 전반부는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노년층의 고독사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웃, 사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웃의 상태나 상황을 유심히 바라보기 이전에, 이미 우리 집 문 앞에 던져진 대출이자 통지서에 시선이 갈 뿐입니다. 그것도 지극한 일상이죠. 영화 전반부를 관람하며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카메라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너무 일상적인 소재인데, 어쩌면 우리 집 근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전해주는 평범함의 폭력이 어두운 아파트 복도를 따라 흘러갑니다.
영화는 풀어도, 풀어도 끝나지 않는 기출 문제집입니다. 본 작품도 고독사에 대한 답안지는 전해주지만, 그것을 접근해 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부딪힘’이란 문제는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선량한 마음을 동 대표를 시작한 누군가의 어머니는 사건이 지남에 따라 악인으로 변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아픈 다리를 들고 움직이는 주인공 선우는 눈초리를 맞기 시작하죠.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역할인 경찰 역시 본 작품 속 이야기는 단지 퇴근 전에 빠르게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 아픈 기억일 뿐입니다. 영화를 관람하시며 흥미롭게 보셨으면 하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특정한 이권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상응하는 대적자가 존재합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전망 좋은 언덕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어딘가 날카로운 부분을 만들고 있었죠.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영화는 그 모든 문제에 대해 정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시선과 점점 타들어 가는 담뱃불 그리고 빨갛게 눈을 아리는 경고등만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관람하며 영화 중반부 일어나는, 시나리오상 가장 중요한 대목, 미드 포인트 사건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조심했습니다. 대게 영화는 6분의 2지점, 절반 지점에서 극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본 작품은 중반부 사건 이후, 시점 자체의 변화를 꾀합니다. 전반부에서 다룬 고독사에 대한 묘사나 이웃과의 갈등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존재에서 눈앞의 존재로 옮겨 집니다. 지금까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을 장내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희생당한 사람으로 변신시킵니다. 극이 두 가지 이야기를 가졌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쉬웠습니다. 전반부 분위기나 주제를 끝까지 숨기거나 가져갔다면 너무 무리였을까 싶었습니다. 영화는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소재를 풀어가는 어려움이나 반전보다는 문자 그래도 거리적으로 전반부와 가까운 이야기를 선택하죠. 취향적으로 아쉬운 행보지만 그렇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몰입도를 깨트리지는 않습니다. 중반부 이후 영화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바라보시는 것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선우와 희서는 계속해서 삐걱거리다가 결국 폭발합니다. 두 사람이 주인공인데 주인공끼리 서로 물고 뜯고 해하는 방식은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까지도 인간은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약간의 행동이나 목소리의 톤 등으로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죠. 말로 전해야만 하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당기시오/미시오 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릴 적 도덕 시간에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위치와 모습은 달라진다는 구절도 생각났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천대받거나 소외되거나 약자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교육받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존재하죠. 애초에 그런 것에서 자유롭고 태어나는 순간 사랑받는 것이 확정받은 진실이 있는데 말이죠. 영화가 가장 기초적으로 만들어둔 물질 만능주의와 자유에 대한 개념은 아파트 지하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애초에 문제는 해결하는 소소한 흥미를 가져야 합니다. 문제니까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고는 그 다음이죠. 말도 안 되는 인생 최대의 문제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고 도움을 받거나 조언을 구하는 과정은 그 어린 시절 작았던 흥미에서 시작합니다. 문제 자체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동일하다고 관람 중 생각했죠. 이집트 신화의 괴물처럼 우리의 삶을 탄생과 죽음 사이에 두고 의도치 않게 껴안은 문제가 얼마나 무거운지 재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졌습니다. 촬영은 물로이요, 연출과 편집, 특히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발색은 긴 여운을 안겨주기에 좋았습니다. 씁쓸하지만 가장 익숙한 이야기를 재치 있게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자체가 영화가 추구하던 욕 먹을 때 웃으려고 노력하는 굳은 미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참석 후 작성 되었습니다.
-
- “믿으세요. 굶으면 구원받습니다.” 극단주의의 메커니즘
6★/10★
몇몇 사람이 집단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배경에 대한 온갖 말과 추측이 난무할 것이다. 명확한 것은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뿐이니까. 사람들은 금세 혀를 찰 것이다. 파편화된 채 흩뿌려진 근거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집단 자살을 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죽은 자들은 곧 ‘극단주의자’, ‘정신이상자’ 등으로 불릴 것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은 금세 그들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테다. 그러나 그리 간단치가 않다. 집단 자살에 동참한 사람 중 그들처럼 ‘상식적인’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면? ‘상식적인’ 사람을 정신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어 위험한 신념을 품게 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죽은 자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성급히 단정 짓는 일은 왜 그들이 그런 선택에 이르렀는지 질문할 기회를 박탈한다. 〈클럽 제로〉는 상상력을 발휘해 왜 누군가가 극단주의의 강력한 추종자가 되는지, 그 과정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질문한다. 다양한 형태의 극단주의가 난립하는 요즘 시대에 긴요한 상상력이다.
상류층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에 노백이 영양교사로 임명된다. 노백은 늘 끝까지 단정하게 단추를 채운 카라티를 입고 다니며 흥분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한다. 옷차림부터 언행까지, 노백이 특정한 형태의 완벽주의/극단주의의 상징임이 암시된다. 그는 다양한 이유로 식이법을 고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개설하고, 그들에게 ‘의식하며 먹기’를 제안한다. 처음에는 심호흡하며 먹기 등의 간단한 요법만 제시하던 노백은 점차 식사량을 줄이고 마침내는 아무것도 먹지 않음으로써 얻게 될 자유를 설파한다. 학생들을 자신의 신념에 동참시키기 위해 노백이 사용하는 기술들은 기묘하고 절묘하다. 이런 유의 얼토당토않은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참고할 만하다.
먼저 학생 개별에 밀착하여 각자의 사연에 맞는 계몽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 호명은 주체화의 조건이다. ‘너는 새로운 식이법의 주인공이야’라는 속삭임은 자기 쓸모와 미래를 고민하는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 방황하는 인간이 갖기 어려운 주체로서의 역능과 효능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체성의 토대가 마련되면, 그에 반하는 행동(즉, 먹기)에 죄책감을 느끼게끔 한다. 힘에 부칠 때는 의지로 돌파해야 한다고 북돋는다. 이탈자나 회의자가 생기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계몽으로 이것이 자유를 향한 고난의 길임을 강조한다. 당연하게도 기성 사회의 상식에 반하는 가치, 즉 진정한 자유의 추구에서 과학적 사고는 거부된다. ‘옳은 일’에는 과학 따위가 들어설 곳이 없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신념을 잘 따라오는 자에게는 포상이 주어진다. ‘클럽 제로’라는 비밀 조직에 입회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클럽 제로 입회가 자유를 성취했다는 증거라는 사고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비밀 임무를 주어 내부자들의 결속과 소속감을 다지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선민의식을 낳는다. 진짜 자유를 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위계가 생기는 것이다.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총화總和하면서는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신념을 재확인한다. 내부 구성원 이외의 관계망을 약화시키거나 끊는 건 필수다. 이 영화에서는 자녀의 거식拒食을 걱정하는 부모가 그 관계망의 핵심이다. 부모의 애정 어린 간섭의 의미를 자유에의 훼방으로 뒤바꿔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조차 구성원 간 신념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이 신념 공동체를 완전히 이탈하지 못한다. 먹지 않아 쓰러지는 친구 옆에서 몰래 먹으며 눈치를 볼 뿐이다. 구성원들에게 이 신념 공동체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사망 선고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건 이때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부모, 학교 당국이 논의를 시작하지만 이미 늦었다. 노백을 해고해도 아이들은 바뀌지 않는다. 그의 신념은 아이들에게 이미 깊숙이 새겨졌다. 식이법에 대한 학생들의 간절함에서 시작된 노백의 극단적 신념 공동체는 그들이 클럽 제로 입회 후 ‘위대한 길’로 갔다는 말과 함께 사라지는(혹은 ‘구원’받는)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그 아이들이 정말 ‘낙원’으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족‧학교에 머물며 만들어갈 미래가 사라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부모와 학교(사회)는 진작 더 촘촘하게 아이들(구성원)의 마음을 살폈어야 했다.
노백이 아이들을 휘어잡는 과정의 서스펜스 강도가 더 높았다면 좋았겠다 싶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여기서 영화 속 극단주의와 우리 주변의 극단주의를 면밀히 비교해볼 적당한 비평적 거리가 생기기도 한다는 점은 감안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극단적 신념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던(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람으로서, 영화는 적당한 객관화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극단적 신념의 메커니즘을 미스터리 장르로 버무려내는 시도는 장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끝끝내 남는 질문도 있다. 어떠한 극단적 신념이 정말 옳은 것이라면? 그 신념으로 부조리한 세계를 뒤집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역사는 때때로 극단주의가 옳았음을 증명한다. 때문에 ‘극단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 ‘좋은’ 극단주의인지를 감별하는 안목과 구성원이 ‘나쁜’ 극단주의에 거리를 둘 수 있게끔 하는 사회의 자정 능력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짧은 만남 - 밀회
짧은 만남 - 밀회
데이비드 린 감독 작품. 1945년 작품. 원작 희곡인 Still Life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영어 제목은 Brief Encounter로 '짧은 만남'이라는 뜻이지만, 한국에서 개봉할 때는 '밀회'라는 제목이었다. 희곡 제목인 '스틸 라이프'나 영어 제목인 '짧은 만남'은 담백하고 중립적인 느낌인데, '밀회'는 불륜을 연상케 하는 자극적 제목이라는 점에서, 배급사에서 흥행을 노리고 지은 제목임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194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니, 당시 유럽 관객이나 평론가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시나리오는 감독 데이비드 린과 원작 희곡 작가인 노엘 코워드가 함께 썼는데, 그래서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훌륭하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 점잖고, 결말도 윤리적, 도덕적 선을 넘지 않는 일탈에 불과하지만, 당시의 관객이 볼 때는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평범한 가정주부 로라(셀리아 존슨)은 매주 목요일이면 혼자 외출해서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기차역 대합실에서 한 남성을 보게 되고, 역 플랫폼에 나갔다가 눈에 티끌이 들어가서 괴로워한다. 이때 그 남성이 다가와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하고, 로라의 눈에 들어간 티끌을 닦아준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함께 차를 마시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로라가 나들이를 하는 목요일이면 두 사람은 편하게 만나 차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한다. 그렇게 친구처럼 만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끌린다. 하지만 로라는 남편이 아닌 외갓남성에게 끌리는 자기의 마음에 죄의식을 갖고, 남편을 둔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가정주부가 가져야 할 현숙함에 대해 갈등한다. 머리로는 당연히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의사 알렉(트레버 하워드)에게 깊이 빠져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알렉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음에도 로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확인하지만, 마지막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과 번민을 계속한다. 그러다 알렉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난다고 말하고, 로라는 처음 알렉을 만났던 기차역 대합실에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다.
로라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영화는 처음과 끝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영화의 극적 반전을 보여준다. 짧은 만남, 긴 여운, 식지 않은 사랑의 감정과 이별의 아픔, 가정이 있는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의 경계에서 팽팽한 긴장을 느끼는 날카로운 감정 등 이 영화는 '불륜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릴만 하다.
1984년에 개봉한 영화 '폴링 인 러브' 역시 많은 부분에서 '밀회'와 비슷하다. 무대는 뉴욕,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이 영화는 마치 '밀회'를 리메이크한 느낌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바뀐 것이 계기인데, 기차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몰리(메릴 스트립)은 디자이너지만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일을 쉬고 있는 가정주부로, 남편은 의사지만 부부의 애정은 깊지 않다. 프랭크(로버트 드 니로)는 건축기사로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좋은 남편이자 아빠다. 몰리는 프랭크를 만나면서 남편에게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낀다. 두 사람은 기차에서 만나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지만, 몰리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몰리가 더 이상 기차를 탈 기회가 없어지면서 두 사람은 다시 남남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몰리는 애정 없는 결혼생활,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마음이 변하고, 프랭크 역시 몰리를 만난 이후 결혼생활이 흔들리게 된다. 서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두 사람은 1년 뒤 크리스마스에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다. 이미 서로의 배우자에게 새로 만나는 이성이 있다고 밝힌 뒤여서 두 사람이 결합할 가능성을 보이며 영화는 끝난다.
1995년 개봉한 영화 '매디스 카운티의 다리'도 비슷하다. 같은 제목의 소설이 베스트셀러였고, 이 소설을 바탕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매디슨 카운티에 도착해 로즈만과 할리웰 다리를 찍으러 돌아다니다 길을 잃는다. 그러다 우연히 한 농가주택에 멈춰 길을 묻는데, 나온 사람이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이었다. 우연히도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은 일리노이주 박람회 구경을 하느라 나흘 동안 프란체스카 혼자 있게 된 것이다. 길을 알려주게 된 인연으로 두 사람은 나흘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로버트가 비가 오는 날, 차를 몰고 다시 프란체스카의 집에 도착해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차의 문을 열려는 떨리는 손과 남편과 아이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이성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흐느끼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불륜이지만 아름답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창작은 많은 경우 작가의 상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예술 분야마다 창작의 결과물이 다르게 드러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물질화, 구체화, 현재화한다는 것은 같다. 소설은 문자를 통해, 영화는 영상을 통해 창작자의 상상을 구체화한다. 이때 창작과 현실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추상 작품의 난해함을 해석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듯, 문학이나 영화에서 창작을 해석하는 방식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 관객마다 다른 것은 당연하다.
창작에서 불륜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건, 현실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를 의도적으로 건드리는 행위다. 이런 작품을 보면서 누군가는 몹시 불편한 마음이 되고, 누군가는 주인공의 처지를 안타까와 하며, 누군가는 주인공들을 비난한다.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저마다 윤리, 도덕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소재의 창작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르게 드러나는 것이다.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창작물은 시대의 경계를 걷는다. 예술과 외설, 도덕과 비도덕,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를 드러내는 것이 창작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윤리의식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듯, 창작물도 시대의 인식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간다. 소설 '롤리타'나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 같은 작품은 당대에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작품으로, 지금도 문제 작품으로 이름을 남긴 작품이다.
윤리나 도덕적 기준을 넘나드는 작품은 자칫 선정적, 포르노적 이미지로 남기도 하는데, 예술작품과 외설의 경계 역시 미학의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당대의 윤리를 뛰어넘는 작품이라도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그렇다면 미학적 기준은 변하지 않는 걸까. 당연히 변하지만, 인류의 문명이 본격 시작된 2천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가치관, 철학적 질문, 세계관, 사상의 흐름은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외부의 영향에 쉽게 흔들리고, 자신의 생각 조차도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면서 지극히 개별적 존재이며,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지닌 양면적 존재이고, 프로이트와 융의 해석처럼 개인의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인간들이 동물적 충동과 이성적 판단을 동시에 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는 것은 당연하고, 동시에 두 사람 이상을 사랑하거나, 사랑하는 감정과 증오하는 감정을 동시에 갖게 되는 것 역시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
- 나에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
개봉 당시 런닝맨에 나와 어리버리한 매력을 뽐냈던 이동휘. 그 기억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 <어린 의뢰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제목이 '어린 의뢰인'이어서 이동휘가 변호사고 의뢰인이 어린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의뢰가 아동학대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어린 의뢰인> 시놉시스
“제가 동생을 죽였어요”
당신에게 찾아온 뜨거운 질문! “당신은 이 아이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인생 최대 목표는 오직 성공뿐인 변호사 정엽. 주변에 무관심한 그에게 다빈과 민준 남매가 자꾸 귀찮게 얽힌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형 로펌 합격 소식을 듣게 된 ‘정엽’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살 소녀 다빈이 7살 남동생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자백 뒤늦게 미안함을 느낀 정엽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다빈의 엄마 지숙에게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어린 의뢰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무서웠던 어른들
영화 <어린 의뢰인>을 보면서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빈과 민준이의 주변에 있었던 어른들이었다. 남매가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말리는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애를 심하게 잡네. 또 시작이네. 남의 집일에 신경쓰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며 그저 외면을 하고, 다빈이 동생을 죽였다 하여 경찰에 잡혀 갈 때도 어느 누구도 다빈이의 편에서 걱정해주는 이가 없었다. 다빈이는 이에 "어른들은 믿는거 아니야."라고 킹콩 인형에게 말을 하고, 재판에 가서도 어른들을 믿지 못해 입을 닫는 상황이 펼쳐지고 만다. 그저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참혹한 광경을 방관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그 주변 사람이었던 선뜻 나설 수 있을까 반성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방관자의 얼굴과 내 얼굴이 겹쳐지면서 남매에게 굉장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들의 시각을 엿보다
아동학대에 관련된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관객을 방관자적 시각으로 거나 가해자의 시각으로 두게된다.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등장하기에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끔 연출이 대부분 이뤄진다.
하지만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는 계모의 결정적인 증거로 인형 속의 카메라를 제시하면서 피해 동의 입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계모의 얼굴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단시간 내에 보여준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직접적인 연출 뿐 아니라 정엽과 함께 햄버거를 난생 처음먹는 남매의 모습을 통해서도 학대아동의 슬픈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엄마는 어떤 느낌이에요?” 그저 순수하게 묻는 것 같지만 결국 계모로부터 엄마의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사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호기심이 넘치는 말투로 물어봐서 더욱 가슴이 저렸던 부분이었다.
내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고 계모의 행동에 화가 나고 무관심한 주변 어른들에 분노하다가 이른 결론은 혹시 나에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였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 넘어간 일이 없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특히 마지막 크래딧이 올라갈 때 한 해 아동학대 피해 신고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고,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도 학대받는 아동이 있다는 문구를 읽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졌다. 더는 방간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핑계로 무시하진 않았는지 살펴보게 되는 영화였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학대 아동의 초점에서 영화를 풀어내 어른들의 반성을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
- 찌질한 남성 서사마저 '예술'로 만드는 거장의 저력
표면만 보자면, 레오 카락스 감독의 신작 〈아네트〉는 다소 뻔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남성 예술가(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 맥헨리)가 여성 예술가(오페라 가수 안 델그레코)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아내는 승승장구하는 데 반해 자신은 정체되고 퇴보한다는 생각에 열등감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는 점차 폭력적으로 행동하며 아내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열등감이 해소되지 않자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한다. 아내뿐 아니라 딸도 자기 욕망에 따라 마음대로 휘두르려 한다. 파국 이후에 또 다른 파국이 닥친다. 점점 꼬여만 가는 그의 삶은 철저한 외로움, 고독으로 귀결된다.
즉, 〈아네트〉는 다소 뻔한 방식으로 남성 예술가 서사를 재현한다. 〈아네트〉에 레오 카락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부분적으로나마 담겼다는 점도 감독이 ‘고독한 남성 예술가’라는 구닥다리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케 한다.
하지만 영화 심층의 주제의식을 파고들어 가다 보면 표면의 주제의식을 전복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선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았던 레오 카락스의 전작 〈홀리 모터스〉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홀리 모터스〉 스틸컷
주인공은 매일 다른 역을 연기하는 배우 오스카다. 그는 구걸하는 노파, 3D 모션 연기자, 흉측한 광인, 괴팍한 아빠, 악기 연주자, 살인자, 부자 노인, 원숭이 등으로 분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짜’ 오스카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무대 뒤에 ‘진짜 오스카’와 무대 위의 ‘배우 오스카’를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 오스카는 그가 연기하는 배역 그 자체다. 배역이 바뀔 때마다 변주된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홀리 모터스〉는 인간의 주체성이 본질적인 자아에 근거한다는 전통적 철학 명제에 반기를 든 수행성 이론을 강력하게 환기한다. 우리는 무대 뒤에 ‘진짜 나’가 따로 있고, 사회생활(무대 위) 중에는 필요로 하는 자아를 상황에 맞춰 연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행성 이론은 이런 구분을 거부하며 본질적 주체·자아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흔히 우리가 본질적 자아라 일컫는 것이 상황에 따른 수행적 이미지의 연속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수행성 이론을 〈홀리 모터스〉에 대입해 보자면, ‘진짜 오스카’가 배역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매일 오스카가 연기하는 다른 배역의 연속이 오스카 그 자체다.
수행성 이론은 인간을 상황적·맥락적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본질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일례로,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에서 우리가 본질적이라고 여기는 ‘남자’와 ‘여자’라는 범주가 ‘남자답게’, ‘여자답게’ 반복적으로 행동한 결과 만들어진 상상적 구성물일 뿐이라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젠더 역할의 수행적 반복이 성별 범주를 '본질'로 착각되게끔 만든다. ‘남자’와 ‘여자’라는 본질이 있어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있는 게 아니라,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강제하는 사회가 남녀라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아네트〉 스틸컷
〈홀리 모터스〉가 수행성 이론을 다소 불친절하게 영화화한 작품이었다면, 〈아네트〉는 이를 더욱 극적으로(동시에 암시적으로) 드러낸 영화다. 인기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주인공 헨리 맥헨리는 자신의 쇼에서 “코미디는 살해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유일한 방법”이라 익살스레 말한다. 그가 아직 안 델그레코를 만나 열등감에 무너지기 전의 일이다. 자신은 '무대 위'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헨리의 자기재현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헨리는 범죄가 탄로 나 재판을 받으며 진실을 말할 것을 추궁받자 전혀 다른 말을 한다. 그는 “(진실을 말하면) 날 죽일 테니까”라고 중얼거리며 입을 열지 않는다. 이 대사는 이제 헨리가 더 이상 무대 위에 있지 않음을, 즉 그가 무대에서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무대 위의 헨리는 진실을 말해도 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무대 위에서 추방당한 그는 이제 더 이상 진실을 말할 수 없다. 무대 밖의 헨리는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수행성 이론으로 돌아가 보자. 수행성 이론에서 ‘무대 밖’은 없다. 우리는 모두 ‘무대 위’의 연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헨리의 두 번째 말은 그가 삶의 바깥으로 튕겨 나갔음을 의미한다. 그가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공간, 즉 무대 밖에 있음을 인정하는 건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패배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아네트〉 스틸컷
영화는 헨리의 딸 아네트의 대사를 통해 무대 밖으로 내쳐진 헨리의 ‘죽음’을 확언한다. 마지막 장면 직전까지 아네트는 내내 인형으로만 등장한다. 아네트가 자기 의지를 가지지 못한 채 헨리의 비뚤어진 예술욕에 수동적으로 이용되었음을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형으로만 나오던 아네트가 사람으로 바뀌는 장면이 있다. 바로 그가 헨리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때다. 아네트가 자기 의지를 갖고 처음 말하는 순간 그녀는 인형에서 사람이 되었고(생명을 얻었고), 사람이 된 후의 첫 대화를 통해 아버지를 무대(삶) 밖으로 완전히 추방했다. 거만하게 군림하다 아내와 딸, 아내의 또 다른 연인에게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가했던 헨리에게 이제 남은 삶(무대)은 없다. 이처럼 〈아네트〉는 〈홀리 모터스〉에 이어, 다시 한번 무대 밖 삶은 없음을, 모든 것은 무대 위의 수행적 구성물임을 보인다. 무대 밖은 삶으로부터 추방된 곳, 즉 '죽음'의 영역이다.
〈아네트〉는 찌질한 남성 예술가 서사를 철학적 메시지로 내파함으로써 ‘예술’이 되었다. 여기에 강렬한 음악과 실험적 연출, 뮤지컬 영화의 장르적 성격 등이 잘 어우러져 영화의 격을 높인다. 무엇보다 헨리 역의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는 카리스마적 예술가와 딸에게 애정을 구걸하는 아버지 사이의 간극을 체화한 연기로 몰입감을 높인다. 마리옹 꼬띠아르와 사이먼 헬버그의 연기도 영화를 탄탄히 받쳐준다. 여러모로 매혹적인 영화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제95회 아카데미 후보작 미리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현지 시각으로 다음 달 3월 12일에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기대가 뜨겁습니다.
시상식을 기다리는 국내 영화팬들을 위해 CGV, 롯데시네마,씨네큐브등에서 후보작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하는데요, 상영 일정을 먼저 알려드릴게요 :-)
<CGV 2023 아카데미 기획전> : 2월 11일(일) ~ 3월 21일(화)
<씨네큐브 2023 아카데미 화제작 열전> : 2월 15일(수) ~ 3월 28일(화)
<롯데시네마 2023 아카데미 기획전> : 2월 22일(수) ~ 3월 12일(일)
그럼 이제 어떤 작품들이 상영될 예정인지 함께 알아볼까요?
더 웨일
The Whale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7분
감독: 대런 아로노포스키
출연: 브렌든 프레이저, 세이디 싱크, 홍 차우 등
배급: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개봉: 2023년 3월 1일
시놉시스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 ‘찰리’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끼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CINE PICK!
A24가 제작 및 배급까지 맡은 <더 웨일>은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가 9년 만에 만난 10대 딸과 쓰는 마지막 에세이를 담은 작품으로, <블랙 스완>, <마더!> 등으로 유명한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신작입니다. <미이라>의 전설적 스타 브렌든 프레이저가 272kg 대학 강사 ‘찰리’ 역을 맡고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의 '세이디 싱크'와 아시안계 배우 '홍 차우' 등이 가세하며 더욱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로 떠올랐습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분장상) 후보에 오른 <더 웨일>은 남우주연상과 분장상 부문 수상이 유력한 것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니셰린의 밴시
The Banshees of Inisherin
ⓒ 네이버 영화개요: 미스터리, 서스펜스, 스릴러, 코미디 | 영국, 미국 | 109분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콜린 패럴, 브렌던 글리슨 등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개봉: 2023년 상반기
시놉시스
파드레익은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누나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가 교류하는 사람은 오랜 절친 콤과 마을 유일한 경찰의 아들 도미닉뿐이다. 어느 날, 콤이 파드레익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일방적인 절교를 받아들일 수 없던 파드레익은 계속해서 그의 주변을 맴돌고, 이에 콤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서 둘의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CINE PICK!
골든 글로브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 등을 휩쓸었던 <쓰리 빌보드>의 마틴 맥도나 감독이 연출을 맡고, <더 배트맨>, <신비한 동물 사전>부터 <킬링 디어>, <더 랍스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기 내공을 가진 콜린 파렐이 주연을 맡은 '이니셰린의 밴시'는 평생 친구였던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그들의 우정을 끝내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감독 본인이 과거에 집필했던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공개 이후 엄청난 호평이 쏟아졌고 국내 관객들에게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상반기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올해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브렌단 글리슨, 배리 케오간), 여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음악상 등 총 9개 후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클로즈
Close
ⓒ 네이버 영화개요: 드라마 |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 104분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라인, 구스타브 드 왤레 등
배급: 찬란
개봉: 2023년 예정
시놉시스
온 가족이 함께 사는 목가적인 시골의 한 마을. 13세 소년 레오와 래미는 무엇으로도 깰 수 없어 보이는 친밀한 우정을 나누며 지낸다. 하지만 학교의 또래 아이들이 던지는 냉담한 시선과 조롱은 그들 사이를 점점 갈라놓고 결국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CINE PICK!
영화 <클로즈>는 2022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 2023 골든글로브시상식 ‘외국어영화상’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화제작입니다. 셀린 시아마, 배리 젠킨스, 션 베이커 감독과 함께 언급되고 있는 이 시대의 스토리텔러 루카스 돈트 감독 작품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은 첫 장편 <걸>로 2018 칸영화제 4관왕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 32관왕, 40회 노미네이션으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어린 소년들이 마주해야 했던 변화의 계절을 시리도록 아름답게 표현한 이 작품은 “<400번의 구타>, <보이후드>가 자리한 영화의 신전에 이 아름다운 영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Time Out), “부정할 수 없이 뛰어난 루카스 돈트 감독의 탁월한 작품”(BBC.com), “모든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 울림”(IndieWire) 등의 극찬과 함께 현재까지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2%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TAR 타르
Tar
ⓒ 네이버 영화개요: 드라마 | 미국 | 158분
감독: 토드 필드
출연: 케이트 블란쳇, 노에미 메를랑 등
배급: UPI 코리아
개봉: 2023년 2월 22일
시놉시스
무대를 장악하는 마에스트로, 욕망을 불태우는 괴물,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 이 이야기는 그녀의 정점에서 시작된다.
CINE PICK!
<TAR 타르>는 베를린 유력 교향악단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수석 지휘자로 선출된 저명한 지휘자이자 작곡자인 리디아 타르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클래식 업계와 더불어 혼란스러운 사생활과 창작의 고통 등 타르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북미에서 개봉한 'TAR 타르'는 IMDB 7.1, 로튼토마토 신선도 90%, 메타크리틱 91점이라는 호평을 얻었으며, 독일어 말하기와 피아노 연주, 지휘 기술을 완벽히 소화해 극찬을 받았던 케이트 블란쳇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밖에도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촬영은 드라마 <파친코>를 촬영했던 플로리안 호프마이스터가 맡았으며, 편집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를 작업했던 모니카 윌이 함께했습니다. 특히 <조커>에 이어 의 음악을 맡은 힐더 구드나도티르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어 더욱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말없는 소녀
The Quiet Girl
ⓒ 네이버 영화개요: 가족 | 아일랜드 | 95분
감독: 콤 바이레아드
출연: 캐서린 클린치, 캐리 크로울리 등
시놉시스
1981년,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 카이트는 가난으로 당장 그녀를 돌볼 수 없게 된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 당분간 거의 남이라고 할 수 있는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지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생전 처음 본 부부와 함께 살게 된 카이트는 새로운 환경이 낯설기만 하다.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아내 에이블린과는 그런대로 잘 지내지만, 무뚝뚝한 남편 션은 이 모든 게 못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션도 카이트의 순수함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어느새 이들 사이엔 떼어놓기 힘든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CINE PICK!
<말없는 소녀>는 베를린영화제를 필두로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올해 최고의 아일랜드 영화’라는 찬사를 받은 영화입니다. 많은 관객의 눈물을 자아낸 가슴 시리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로 온 가족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EO
EO
ⓒ 다음 영화개요: 드라마 | 폴란드, 이탈리아 | 86분
감독: 토드 필드
출연: 사만다 드지말스카, 이자벨 위페르 등
수입: 찬란
개봉: 2023년 예정
시놉시스
동물의 눈으로 본 세상은 신비로운 곳이다. 우울한 눈빛의 회색 당나귀 ‘EO’는 삶의 여정에서 선한 사람과 나쁜 사람들을 만나고,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며, 행운을 재앙으로, 또 절망을 예상치 못한 행복으로 바꾸는 전화위복의 굴레를 겪는다. 하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CINE PICK!
영화 <EO>는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 및 각본의 2022년작 폴란드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제75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며, 로베르 브레송의 1966년작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로 한 폴란드 서커스단에서 태어난 당나귀의 일생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80대의 노장 감독이 선보이는 자연 다큐 스타일과 아방가르드풍 실험 영화와 VR 체험을 능숙하게 오가는 완숙한 솜씨와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연출은 EO가 갈망하는 해방을 고스란히 옮겨놓아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애프터썬>,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 등 총 11개 부문 후보에 올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분장상/시각효과상/음향상 후보에 오른 <더 배트맨>, 의상상/미술상/음악상 후보에 오른 <바빌론> 등의 기개봉작도 함께 상영한다고 하니 아쉽게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들도 이번 기회에 함께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
<애프터썬> 스틸컷, ⓒ 네이버 영화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
- 영화 <범죄현장> 메인 예고편
거리의 고양이들을 ㄷ로보느라 빚까지 지게 된 마음 약한 람 형사, 어느 날 살인 사건 현장에 투입되게 되고 그곳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말하는 앵무새를 발견하며 이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람 형사의 상사인 입 팀장은 지난 번 벌어진 리슨 금은방 강도사건 주범인 션 왕이 이 사건의 주범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촉에 의지한 채 입 팀장을 의심하게 된 람 형사는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
-
- 디즈니+ <폭군> 티저 예고편
차지할 것인가, 제거할 것인가 마지막 샘플을 향한 쫓고 쫓기는 추격전💥 [신세계] [마녀] 박훈정 감독 작품 [폭군] 8월 14일 디즈니+ 단독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