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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2024-08-27 15:51:25

토해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나레이 베이>

눈부시게 슬프고 아름다운 위로와 치유의 과정에서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레이 베이 Hanalei Bay , 2018 제작 

일본, 드라마, 97분 

감독: 마츠나가 다이시



토해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나레이 베이>

 

 

경찰관이 죽은 타카시의 잘려 나간 오른 다리를 사치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커다란 상어에 다리를 뜯겨 죽었습니다.” 사치는 무표정으로 아들의 유류품을 받고, 유골함을 고르고, 아들이 묵었던 호텔비까지 계산한다. 그리곤 아들을 빼앗은 하나레이 해변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하나레이 베이>의 포스터를 봤을 때부터 그녀가 절대 쉽게 울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사치는 정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오직 바다만을 바라봤다.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도에 꽂힌, 초점 없는 눈동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치의 공허에 상실이 자리한 걸 본 순간, 우린 그녀의 상실을 채운 게 자식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 때문만이 아님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사치는, 아들만 떠나보낸 게 아니었다.

 

출처: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그녀는 평생 엄마로만 살아왔다. 예상했듯, 행복만이 가득한 생활은 아니었다. 마약쟁이 남편의 폭력과 불륜은 사치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끝내 망가트렸다. 사치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자아(위치)가 한때 꿈꿨던 피아니스트도, 남편에게 맞는 아내도 아닌 타카시의 엄마임을 가슴 깊이 새겨야만 했다. 아들만 있는 엄마의 역할과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일도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그녀를 숨 막히게 한 건 증오하는 남편을 닮은 아들을 ‘사랑만’ 하는 일이었다. 사치는 실패했고, 시간이 갈수록 아들과 멀어졌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아들은 사치를 이기적이고 억척스러운 엄마로 여기며 밀어냈고 하와이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고 싸늘한 주검으로 사치 앞에 나타났다. 아들의 죽음은 아슬아슬한 곡예처럼 흘러가던 모자 관계를 단번에 끝냈고, 진짜 혼자가 된 그녀에게 남은 거라곤 아들을 죽인 하나레이 해변, 아니 아들이 ‘사랑한’ 하나레이 해변뿐이었다.  

 

하나레이 해변, 그곳은 무려 10년 동안 사치의 휴가 장소로 이용됐다. 사치는 일본에서 일상을 보내며 살다, 매년 아들이 죽은 날이 가까워지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와이로 떠났다. 해변에서 책을 읽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또 바다를 앞에 두고 책을 읽고, 가끔 바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정으로 특별한 것 없는 휴가였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을 모조리 외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치는 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섬 주민들도 여전히 멀리했다. 타카시는 분노로 휩싸인 전쟁 때문이 아닌 불가항력의 힘으로 인해 자연으로 돌아간 거라며 섬을 원망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아버지를 전쟁으로 잃은 경찰관과 타카시의 손도장을 건네며 애도의 끝을 강요하는 여자의 마음은 그녀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다. 사치의 시선은 계속 바다를 향했고, 표정 역시 아들의 잘린 다리를 봤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출처: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수동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사치를 변화시킨 건, 두 청년이었다. 그들이 사치의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 건, 주민들과 달리 그녀의 비극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서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온 가난한 서퍼들이 타카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빨간 보드를 든 외다리 서퍼를 봤다’라는 말 한마디로 사치 옆에 아들을 존재하게 했다. 사치는 그 외다리 서퍼를 찾기 위해 해변을 헤집기 시작한다. 외다리 서퍼가 타카시라고 굳게 믿으며 찾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치는 외다리 서퍼를 만나지 못하고 결국 참았던 분노를 터트린다.

"난 아들을 싫어했어요. 그래도 사랑했어요. 난 이 섬을 받아들이려 했는데 이 섬은 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요. 그럼 그것도 전 받아들여야 하나요?" 

사실 사치는 10년 동안 하나레이 해변을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무책임하게 죽어버린 남편과 다를 바 없는 아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릴 수 없는 아들을 자각하며 원망했다. 어느 날엔 아들과의 관계를 놓아버렸던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한없이 가여웠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억울해했다. 늘 거친 태풍에 흔들리며 사는 나와 어떤 파도도 유연하게 넘기며 살았을 서퍼(아들)를 같은 선상에 두고 곱씹기도 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딱 잘라 정의할 수 없었고, 그것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도 가늠하지 못했다. 아들과 함께 잃어버린 ‘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 긴 혼란의 시간 동안, 사치는 빛 한 줌 허용치 않는 어둠과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는 파도 속에서 곡예를 먼저 중단해 버린 자를 끝내 가려내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자신이 진짜 애도 중인 건지 아닌 건지도 판단하지 못했다. 대신 부정과 외면을 택했다. 분노, 슬픔, 고통, 미움, 외로움, 그리움을 매 순간 침묵으로 바꾸고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으며 하나레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는 척했다. 그렇게 고립을 자처했다. 이미 일어난 비극을 회피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닌, 떠난 아들과 화해는 물론 남겨진 나를 용서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과거에 갇힌 채 말이다. 사치에게 하나레이 해변은 처음부터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독하게 가혹한 곳이었고 그녀가 품은 혼돈의 근원일 수밖에 없었다.      

 

출처: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모든 감정을 토해낸 사치는 마침내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손도장을 가슴에 품으며 긴 침묵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타카시가 사랑한 해변에 서서 고백한다, 떠난 네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기에 가혹하다. <하나레이 베이>는 가혹함을 조금도 덜어내지 않고 ‘가혹’하다고 말하며 사치의 애도를 응원했다. 섬을 거부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고, 비극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책망하는 걸 멈추길 기다렸다. 말없이 파도만 보는 모습도, 외다리 서퍼를 찾느라 혈안인 모습도, 결국 참았던 울분을 모조리 토해내는 모습도, 전부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잔잔한 파도의 형태를 빌려 끝까지 함께 했다. 상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옭아맨 혼란을 마주하는 과정은 곧 치유의 발판이었으니까. 사치가 토해내지 못했던 것들은, 전부 토해내야만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그녀의 눈과 마음에 가득 들어찬 하나레이 해변이 전하는 깊은 위로가 이제야 한없이 보이듯이.

 

출처: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햇빛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사치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내는 빨간 보드를 든 타카시. 그런 아들을 보며 미소 짓는 사치까지‥. 참으로 아름답고 눈부신 작품이다. 영상미도 뛰어나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편집이 무엇보다 예술이다. 사치의 고요가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오는 장면 전환은 그녀의 몸의 언어를 만나 완벽한 한 장면, 장면을 만들어 낸다.     

 

<하나레이 베이>는 『상실의 시대』, 『1Q84』를 집필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도쿄기담집」에 실린 단편)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이 주는 감동을 충분히 담아낸 작품이니 꼭 보길 추천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이창동 감독의 <버닝>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로 출발했다)

 

 

 

작성자 . 우란

출처 . https://brunch.co.kr/@dkdnfk91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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