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8-27 15:51:25
토해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나레이 베이>
눈부시게 슬프고 아름다운 위로와 치유의 과정에서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레이 베이 Hanalei Bay , 2018 제작
일본, 드라마, 97분
감독: 마츠나가 다이시
토해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나레이 베이>
경찰관이 죽은 타카시의 잘려 나간 오른 다리를 사치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커다란 상어에 다리를 뜯겨 죽었습니다.” 사치는 무표정으로 아들의 유류품을 받고, 유골함을 고르고, 아들이 묵었던 호텔비까지 계산한다. 그리곤 아들을 빼앗은 하나레이 해변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하나레이 베이>의 포스터를 봤을 때부터 그녀가 절대 쉽게 울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사치는 정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오직 바다만을 바라봤다.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도에 꽂힌, 초점 없는 눈동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치의 공허에 상실이 자리한 걸 본 순간, 우린 그녀의 상실을 채운 게 자식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 때문만이 아님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사치는, 아들만 떠나보낸 게 아니었다.
그녀는 평생 엄마로만 살아왔다. 예상했듯, 행복만이 가득한 생활은 아니었다. 마약쟁이 남편의 폭력과 불륜은 사치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끝내 망가트렸다. 사치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자아(위치)가 한때 꿈꿨던 피아니스트도, 남편에게 맞는 아내도 아닌 타카시의 엄마임을 가슴 깊이 새겨야만 했다. 아들만 있는 엄마의 역할과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일도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그녀를 숨 막히게 한 건 증오하는 남편을 닮은 아들을 ‘사랑만’ 하는 일이었다. 사치는 실패했고, 시간이 갈수록 아들과 멀어졌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아들은 사치를 이기적이고 억척스러운 엄마로 여기며 밀어냈고 하와이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고 싸늘한 주검으로 사치 앞에 나타났다. 아들의 죽음은 아슬아슬한 곡예처럼 흘러가던 모자 관계를 단번에 끝냈고, 진짜 혼자가 된 그녀에게 남은 거라곤 아들을 죽인 하나레이 해변, 아니 아들이 ‘사랑한’ 하나레이 해변뿐이었다.
하나레이 해변, 그곳은 무려 10년 동안 사치의 휴가 장소로 이용됐다. 사치는 일본에서 일상을 보내며 살다, 매년 아들이 죽은 날이 가까워지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와이로 떠났다. 해변에서 책을 읽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또 바다를 앞에 두고 책을 읽고, 가끔 바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정으로 특별한 것 없는 휴가였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을 모조리 외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치는 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섬 주민들도 여전히 멀리했다. 타카시는 분노로 휩싸인 전쟁 때문이 아닌 불가항력의 힘으로 인해 자연으로 돌아간 거라며 섬을 원망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아버지를 전쟁으로 잃은 경찰관과 타카시의 손도장을 건네며 애도의 끝을 강요하는 여자의 마음은 그녀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다. 사치의 시선은 계속 바다를 향했고, 표정 역시 아들의 잘린 다리를 봤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수동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사치를 변화시킨 건, 두 청년이었다. 그들이 사치의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 건, 주민들과 달리 그녀의 비극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서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온 가난한 서퍼들이 타카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빨간 보드를 든 외다리 서퍼를 봤다’라는 말 한마디로 사치 옆에 아들을 존재하게 했다. 사치는 그 외다리 서퍼를 찾기 위해 해변을 헤집기 시작한다. 외다리 서퍼가 타카시라고 굳게 믿으며 찾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치는 외다리 서퍼를 만나지 못하고 결국 참았던 분노를 터트린다.
"난 아들을 싫어했어요. 그래도 사랑했어요. 난 이 섬을 받아들이려 했는데 이 섬은 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요. 그럼 그것도 전 받아들여야 하나요?"
사실 사치는 10년 동안 하나레이 해변을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무책임하게 죽어버린 남편과 다를 바 없는 아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릴 수 없는 아들을 자각하며 원망했다. 어느 날엔 아들과의 관계를 놓아버렸던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한없이 가여웠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억울해했다. 늘 거친 태풍에 흔들리며 사는 나와 어떤 파도도 유연하게 넘기며 살았을 서퍼(아들)를 같은 선상에 두고 곱씹기도 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딱 잘라 정의할 수 없었고, 그것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도 가늠하지 못했다. 아들과 함께 잃어버린 ‘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 긴 혼란의 시간 동안, 사치는 빛 한 줌 허용치 않는 어둠과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는 파도 속에서 곡예를 먼저 중단해 버린 자를 끝내 가려내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자신이 진짜 애도 중인 건지 아닌 건지도 판단하지 못했다. 대신 부정과 외면을 택했다. 분노, 슬픔, 고통, 미움, 외로움, 그리움을 매 순간 침묵으로 바꾸고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으며 하나레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는 척했다. 그렇게 고립을 자처했다. 이미 일어난 비극을 회피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닌, 떠난 아들과 화해는 물론 남겨진 나를 용서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과거에 갇힌 채 말이다. 사치에게 하나레이 해변은 처음부터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독하게 가혹한 곳이었고 그녀가 품은 혼돈의 근원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감정을 토해낸 사치는 마침내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손도장을 가슴에 품으며 긴 침묵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타카시가 사랑한 해변에 서서 고백한다, 떠난 네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기에 가혹하다. <하나레이 베이>는 가혹함을 조금도 덜어내지 않고 ‘가혹’하다고 말하며 사치의 애도를 응원했다. 섬을 거부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고, 비극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책망하는 걸 멈추길 기다렸다. 말없이 파도만 보는 모습도, 외다리 서퍼를 찾느라 혈안인 모습도, 결국 참았던 울분을 모조리 토해내는 모습도, 전부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잔잔한 파도의 형태를 빌려 끝까지 함께 했다. 상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옭아맨 혼란을 마주하는 과정은 곧 치유의 발판이었으니까. 사치가 토해내지 못했던 것들은, 전부 토해내야만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그녀의 눈과 마음에 가득 들어찬 하나레이 해변이 전하는 깊은 위로가 이제야 한없이 보이듯이.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햇빛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사치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내는 빨간 보드를 든 타카시. 그런 아들을 보며 미소 짓는 사치까지‥. 참으로 아름답고 눈부신 작품이다. 영상미도 뛰어나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편집이 무엇보다 예술이다. 사치의 고요가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오는 장면 전환은 그녀의 몸의 언어를 만나 완벽한 한 장면, 장면을 만들어 낸다.
<하나레이 베이>는 『상실의 시대』, 『1Q84』를 집필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도쿄기담집」에 실린 단편)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이 주는 감동을 충분히 담아낸 작품이니 꼭 보길 추천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이창동 감독의 <버닝>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로 출발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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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는, 때론 최고의 상처 치료제
표면적이거나 내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아이들보단 어른들이 상처가 빨리 아물고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생각하곤 한다. 아무래도 유년기, 청소년기에 접어든 이들보다 부서지는 상황을 더 많이 겪어왔고 이로 인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을 것이라는 경험적 측면 때문이다. 종종 연장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선경험했기에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지 않은가.
일리 있는 말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잘못된 추측이다. 어른들도, 하늘이 갑자기 무너지거나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들 중 상당수 이상은 몸만 컸을 뿐 여전히 유아기적 정체성에 머물러 미성숙하다. 일부 어른들은 자신이 한번 깨지고 부서지면서 큰 상처를 입고 회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트라우마라고 명명하는 마음을 갉아먹는 족쇄로 자라나 끝까지 고통받기도 한다. 그래서 트라우마로부터 괴롭힘을 받지 않으려고 상처로부터 멀찍이 회피하거나 분리하는 등 동떨어진 삶을 택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과 짐 캐리가 만난 드라마 '키딩'도 상처 입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키딩'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다들 어딘가 결핍, 상처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감정이입이 쉽게 됐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이 남자, 제프 피키릴로(짐 캐리).
제프 피키릴로는 어린이 TV쇼 프로그램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서 주인공 피클스 아저씨를 30년간 맡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글로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치 종이접기 장인 김영만 아저씨가 오랜 세월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해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는 매해 크리스마스트리 점등 행사에 참여해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신을 보고 자란 어른들에게는 동심과 추억을 선물했다.
정갈한 5대 5 가르마를 탄 단발머리, 단정한 초록색 넥타이와 흰색 셔츠, 항상 활짝 웃는 미소로 제프 피클스를 기억하고 있으나 이는 본체 제프 피키릴로를 가리고 있는 가림막이라는 걸 '키딩'이 보여주고 있었다. 본캐 제프 피키릴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태. 1년 전 교통사고로 일란성쌍둥이 아들 필을 잃었다. 불의의 사고는 아내 질(주디 그리어)과 이혼 위기로 몰아넣었고, 남은 아들 윌(콜 앨런)과 소통은 점점 어려워졌다. 본캐 제프의 삶은 엉망진창 망가지고 있어 한시라도 상처 치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제프는 상처 입은 자신과 감정들을 분리시키고 억눌러야만 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캐 피클스 아저씨로 출근해야만 했기 때문. 또 제프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하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 피클스 아저씨로 영원히 남기를 갈망해왔다. 그 결과 진작에 치료해야 할 자기 상처와 슬픔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피클스 아저씨로부터 격리시킨 부작용이 발생했다. 인형극장을 통해 아이들에게 슬픔과 죽음을 이야기하겠다고 나서면서 30년간 평화로웠던 피클스 세계관이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돌발행동을 하는 제프가 더 이상 정상이 아닌 걸 인지한 아버지 셉(프랭크 란젤라)과 누나 디어드러(캐서린 키너)는 대체물을 찾으러 나섰고, 제프가 부캐에 매달려있는 동안 집에서 그의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갔다. 제프 피키릴로와 피클스 아저씨 세계관 둘 다 유지하려고 애쓰는 제프의 노력,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마치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하는 광대의 모순처럼 제프의 애환만 부각될 뿐이었다.
시즌 1 후반부가 돼서야 제프는 마침내 인간 제프 피키릴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필이 죽은 날 운전대를 잡았던 질에 대한 원망과 아내를 용서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했다. 또 세상을 떠난 필에게 자신이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오랫동안 신처럼 부각됐던 제프 피클스에 가려진 솔직함이었고,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키딩'에서 재밌는 건, 분노라는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분노와 평화를 이분법적으로 표현해 대립시켰고,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키면 분노의 화신으로 탄생하는 것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키딩'에선 조금 달랐다. 그가 상처로 인해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드러내면서 무작정 삐뚤어진 인간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인간은 계속 바람을 불어넣으면 크게 부풀어지다 터져버리는 고무풍선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시즌 1 마지막에서 제프가 질의 남자친구 피터(저스틴 커크)를 차로 들이받으면서 제프가 분노의 화신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 2에 접어들면서 제프의 극단적인 돌발행동은 단순한 폭발이 아닌 진심으로 피터를 싫어했고 가족을 아끼고 있었다는 걸 '키딩'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터에게 악의를 숨기지 않고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이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닌 것도 받아들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삐뚤어진 인간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키딩' 시즌 2 내내 제프는 자기 자신과 과오를 시인함과 동시에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랑하는 아내와의 별거를 인정하고, 이혼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그런데도 자신을 억누르고 괴롭혔던 문제들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과거 질과, 쌍둥이 아들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왜일까.
변화를 받아들이고 보내는 것 또한 그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욕망과 이를 위해 '희생'으로 인식해서였을 것이다. 과오를 순순히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떠난 필은 아름답고 그리운 존재로 남아버렸고, 질을 놓아주는 건 여전히 그를 사랑하나 자신을 떠나려는 아내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질의 새 출발을 하나의 권리로 존중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선한 희생으로 남았다. 그렇게 자기 안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원망하는 것'을 집어삼켰고, '나쁜 사람'들을 제거했다. 교통사고가 전부 아내 탓이라고 원망하기엔 너무나도 그를 사랑했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인위적인 평화는 결국 제프 피키릴로를 기괴한 제프 피클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제프 또한 절대선이 아닌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말이다.
시즌 2 후반부에 윌이 제프와 질, 그리고 필과 행복했던 시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마법에 집착하는데, 시즌 2 마지막에 일어났다. 그런데 되돌리는 게 아닌 시간이 멈췄다. 제프도 윌도, 괴로운 현실에서 회피해 행복했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판타지 원하나,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판타지는 무엇이든 가능하나 아무것도 이뤄주지 않는다는 한계도 알려줬다. 제프는 아이들에게 집에 있는 시계를 한 시간씩 앞당겨 가족들과 보내라고 하나, 아이들 또한 이 속임수를 깨달았다. 상상은 현실로 향해야 한다고 미셸 공드리가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프는 상처를 마주하면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떠나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내면을 스스로 통제하고 마음을 붙잡고 있으면 고요히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음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통제할 수 없고, 이 때문에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것들이 떠나갔다. 원망하고 싶지 않았는데, 감정을 드러냈고 아파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랑은 떠나가지 않고 남았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언제든 소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특별한 물건을 깨트려 다시 금으로 붙이는 예술 기법인 긴츠키처럼 치유된 것이다. 비로소 모든 걸 내려놓고,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며 새 출발선에 섰다.
내면의 상처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아파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좋았던 감정까지 잃어버리지 않는다. 행복했던 시간들은 어떻게 해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기억이나 추억 등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새로운 행복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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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남 못 준 제 버릇
[주의사항]
이 글은 영화 [엘리멘탈]과 비교하는 영화인 [에에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구독과 댓글은 미천한 리뷰어에게 참 많은 힘이 됩니다.
어린이들에게도 다양성, 혹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는 보편화되어야만 하는 가치를 가르쳐줘야 할 때가 있다. 꽤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무거울 수도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안내자의 역할은 애니메이션이 도맡고 있었다. 물론 메시지보다 포장이 재빨리 가닿는 바람에 거의 모든 아이들이 푸른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렛잇고를 열창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애니메이션만큼 아이들에게 빠르게 메시지가 흡수될 수 있는 매체는 아직까지는 없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스펀지에 비유되곤 하는 아이들의 습득력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다른 작품들보다 꽤 혹독한 검열을 거쳐야 했고. PC(Politically Correct)라 불리는 많은 "넘어야 할 산"들을 다루느라 고전적으로 내려오는 동화들도 다시 들여다보는 기회들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픽사에서 만들어낸 [엘리멘탈]은 과감하게도 이민 2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메인 줄거리로 내세웠다.
언뜻 보면 [에에올]의 애니메이션 버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픽사의 이번 선택은 그다지 현명하지도. 그렇다고 새롭지도 못했다.
소수자, 혹은 이민 2세로의 삶
그림출처:다음 영화비록 원소의 형태를 빌리긴 했지만. 엠버의 가족은 앞 구르기를 하면서 보아도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부모(이민 1세대)의 모습, 옮겨 온 새 터전 안에서도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하는 불꽃의 정수가 집에서 타오르고 있는 장면들에서는 일종의 슬픔마저도 느낄 수 있다.
부모 세대의 인생을 남김없이 빨아먹고 자란 가게인 파이어 플레이스는 불이라는 족속(?) 들에게야 쉼터처럼 보일 수 있었겠지만, 사실 도시에서 주류의 삶을 살았을 다른 원소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흔한 잡화상에 불과한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소수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았을 도시에서의 기회들은 엠버에게도.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보이지는 않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벽이 되어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넘을 수 없는 좌절감과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는 아버지의 자긍심은 주류를 향한 날카로운 칼이 되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기도. 또한 가족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엠버가 사는 동네가 물난리가 났을 때 가장 취약한 곳이라는 점에서는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기도 한다. 삶의 터전이 배 한 척의 움직임 한 번으로도 완벽하게 몰락해 버릴 수 있는 곳. 다수를 상징하는 물이 소수민족인 불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는 설정만 보더라도 엠버의 주거 환경이 화려한 도시 속에서도 슬그머니 응달에 위치하고 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소수자의 삶을, 더 정확하게는 엠버의 일상을 브이로그 마냥 보여주는데 쏟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가뜩이나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 가진 이 단점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치명적인 결점을 갖게 한다.
바로 주인공의 매력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K-) 장녀?:주인공의 매력 없음에 대하여.
그림출처:다음 영화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
엄마 없으면 네가 엄마야. 그러니 (주로) 남동생 챙겨야 해.라는 말에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위치. 자신을 제대로 돌보거나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 사춘기가 20대를 훌쩍 넘겨서 격하게 찾아오는, 부모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절대 아파서는 안 되는 손가락인 장녀.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엠버의 모습은 K-장녀의 삶을 고대로 빼다 박은 듯하다.
상대적으로 나약해 보이는 웨이드와 비교를 했을 때 모든 일들을 해결하는 듯 보이는 엠버의 모습이 씩씩하고 당차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엠버의 모습은 자신이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영화 내내 뛰어다닐 뿐. 자신의 미래나 감춰진 능력을 알아내기 위한 고뇌를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엠버의 미래, 혹은 적성이 "정해지는"과정 또한 조금은 의문스럽다. 엠버의 능력이 정말로 특별한 것인가.라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엠버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력에 대한 비교 대상조차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았으며 반드시 그녀만이 지닌 능력인가.라고 물어보았을 때조차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해 단념하는 엠버와 같은 소수 집단을 소개하지도 않는다.
자신과 정 반대인 남자친구와는 절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주류가 선사해 준 사다리를 얼떨결에 부여잡는 것을 보며, 과연 엠버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주체적으로 한 일이 있기는 한 걸까.라고 생각해 보면. 정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그저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엠버의 마음에 동질감 정도는 느낄 수도 있겠으나. 동화되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K장녀인 나조차 스스로의 기억에 기반한 공감의 눈물은 흘릴 수 있었지만. 감동의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여전한 신데렐라 이야기;행복에 대하여.
그림 출처: 다음 영화[엘리멘탈]은 앞서 잠시 언급한 에에올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극 중 에블린(양자경)은 쿵후 마스터가 될 수도, 유명한 배우로서의 삶도, 하다 못해 소수자로 치자면 이보다 더한 소수자가 있을까 싶은 손가락이 소시지로 된 인종(?)의 삶도 살 수 있었지만. 코인 세탁방을 하고 있는 현재의 삶 그대로 그 어떤 것도 바꿀 것 없이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에올은 행복의 전형적인 조건을 구걸하지 않는다.
또한 삶의 변화가 필요할 때 누군가의 허락도 구하지 않는다. 또한 내 인생이 변화해야 할 때 필요한 것이 나를 구하러 와 줄 완벽한 왕자님이 아님을 명백하게 못 박는다.
아무리 거의 모든 동화의 끝이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이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소수자의 삶에 대해 애니메이션에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결말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각오는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행복의 조건으로 반드시 이성으로 이뤄진 커플이어야 할 것. 또한 주류의 삶으로 편입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일 것. 임을 결말에서 전시하듯 보여준다. 정 반대의 누군가에게 끌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에 불과 물이라는 원소의 형식을 빌리고는 있지만.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이 아니다.
현재를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줄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 이 비루하고 못나 보이는 현재의 자신만이 조부 투바키와 싸워야 하는 유일한 사람임을 알고 무서워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갈 뿐.
행복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알려줘야 한다.
마치면서
영화관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꽤 좋은 시간대였기에 아이들이 많은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더빙판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더빙판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였기에 나의 무신경함에 조금 짜증이 났고, 한 편으로는 과연 이 아이들이 금쪽이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슬그머니 내 옆자리에 앉힌 채 영화를 보아야 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지킬 수 있는 매너를 최대한 지키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영화를 즐겼다. 머릿속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바보 같음을 느낌과 동시에. 과연 이 결말을 아이들이 보아서 되는 것인가. 에 대한 의문도 떠올랐다.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 어느 정도의 필터링이 되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싶)지만. 이 아이들이 과연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약간의 두려움도 들었다.
찝찝한 마음을 마음 한 구석에 담은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의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나 역시 자라는 동안 몇 번이고 내가 읽은 동화에 담긴 의미를 곱씹고, 때로는 깨부수며 어른이 되었으니까.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이 아이들 역시. 영화를 보았을 때의 행복함과 즐거움은 오래 가지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이 영화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픽사의 게으른 선택에 조금은 입맛이 쓴 주말이었다.
[이 글의 TMI]
1. 대장 용종 떼내서 커피도 없이 영화를 봤다.
2. 이제 겨우 보식 끝나가는 중
3. 다행히 다음 주부터는 밥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엘리멘탈 #픽사 #피터손 #레아루이스 #마무두애시 #웬디맥렌던커비 #애니메이션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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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본] Mother Knows Best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주인공 '보'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조우한다"라는 내용의 작품이다.
그래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이를 맡은 감독 '아리 에스터'의 전작 <유전, 2018>과 <미드소마, 2019>는 아시려나?
이것만으로도 이번 <보 이즈 어프레이드> 또한 예사로운 영화는 아닐 것이며, 그저 깜짝 놀래는 공포 영화가 아니라 어딘가 불편한 느낌을 줄 거라고 말이다. -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1. Mother Knows Best - 라푼젤 (Tangled, 2010)
사람이 "성장" 하는 데에 있어 먼저, 만나는 사람은 "엄마"이고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데, 이를 "모성애(母)"라고 말한다.
근데, 해당 작품을 비롯해 외적인 부분에서 "모성애(母)"는 성경에서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Agape)"로 묘사된다.
단적으로 "임신"만 보더라도, 10달이라는 시간 동안 먹고 싶은 것은 물론이고 하고 싶은 것도 제한되고 신체에 대한 변화를 겪는 무조건적인 희생이 강요되니 정의에 들어맞는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꼭,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영화 <케빈에 대하여, 2012>를 보면, 주인공 "에바"는 "케빈"을 낳고서 침대에서 황망하게 앉아있는 모습과 우는 아이를 공사장으로 데려와 울음소리를 소음에 묻히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들을 통해서, 영화는 "여성에게 모성애(母)는 본능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후천적이고 학습적인 부분이라면 우리는 누굴 통해서 이를 배우는 걸까?
본 작품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모나'는 '보'에게 '보'의 할머니이자 자신의 어머니에게 학대받은 기억과 함께 '나는 저렇게 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런 다짐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걸 알 수 있다.
'집'을 비롯해 관객들이 보는 카메라 즉, 꽉 막힌 스크린의 4면은 극 중. 선택에 주저하는 "보"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선택'이라는 행동부터 자신의 주관이 투영되는 행동인데, 언급하자마자 "모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녀의 이상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자신의 상담 내용을 듣는 장면들까지 "엄마"라는 이유로 모른체했던 수많은 폭력들로 영화는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에 확답을 내린다!· tmi. 1 - 당초, 4시간으로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흥행 때문에 3시간으로 합의했다.
· tmi. 2 - 'A24'에서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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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젊은이를 몰아세우는 법
야간 청소부 일을 하며 엄마를 돌보는 취준생 케일라.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 아이작의 집에 처박혀있던 '커서(curser)'라는 80년대 비디오게임을 찾게 된다.
아직 이 게임의 상금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친구는 함께 게임을 해보기로 하는데...
Choose or Die?
감상 포인트
선택지가 나올 때의 긴박감이 보는 사람마저도 초조하게 함
자꾸만 주인공에게 고나리질 하게 되는 몰입감
공포 영화라기보단 오컬트+스릴러에 가까움
감상평볼 거 없나, 하고 뒤지다가 우연히 찾은 공포영화.
넷플릭스에서 '스릴러'라고 분류를 하고 있는데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이라기보단 정말 긴박함을 조성하는 스릴러에 훨씬 가깝다는 생각이다. 뒤로 갈수록 오컬트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데, 그런 부분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주인공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겪는 일들에 완전 몰입할 수 있게 긴박감을 조성한다.
사실 허무하게 끝났다는 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가볍게 즐기는 팝콘무비라고 생각하면 꽤 괜찮았다고 본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케일라의 상황은 암담하다. 어린 동생은 자신의 부주의로 죽었고,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약에 취해 집주인에게 휘둘리는 상황.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봐도 취업은 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야간 청소부 일밖에 없다. 자신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건, 히키코모리처럼 집에 처박혀 있는 괴짜 친구 아이작 뿐.
하지만 케일라는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함께 청소하는 임신한 직원에게 상사가 심한 말을 하면 나서서 변호하고, 약에 취해서 헤롱거리는 엄마에게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취업이 되지 않아도 틈틈이 친구의 게임 프로그래밍을 손봐주는 등. 그녀는 남들이라면 신경쓰지 않는 일에도 신경쓰고 짜증낼 법한 일에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어찌보면 답답한 면모도 있다.
커서라는 게임은 이러한 케일라의 가려운 부분들을 자꾸만 긁으며 그녀를 부추킨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지?
다 짓밟고 너 혼자 살아남으면 되잖아!"
첫 번째 저주 대상은 밤새 일을 하는 카페 종업원이다. 종업원 역시 케일라처럼 불안정한 고동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케일라가 임신한 직원을 위해 한 마디 했던 걸 생각해보면, 종업원도 케일라와 크게 다른 처지가 아니다. 그런 종업원을 공격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게임은, 항상 남들만 챙기는 케일라에게 '네 밥그릇 뺏기지 말고 짓밟고 일어서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두 번째 저주 대상은 엄마다. 케일라의 엄마는 아들 리키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다. 그는 벽에 사는 쥐들이 굶주렸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건 이 집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일지도 모른다. 게임은 케일라에게 엄마를 공허함과 굶주림 속에 던져버리라고 말한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엄마를 버리면 훨씬 편할 거라는 유혹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 저주 대상은 아이작이다. 게임은 영리하게도 케일라가 리키와 아이작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케일라에게 현실을 잊고 도피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케일라는 아이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때 빨간문과 파란문은 영화 #매트릭스 의 빨간약과 파란약을 생각나게 한다.
"때로는 저주가 선물일 수도 있다."
케일라 대사 중
이 끔찍한 '커서'라는 게임은 이 게임의 플레이어가 상대방에게 저주를 내리면 혜택을 얻는다는 설정이다.
마지막 게임에서 살아남은 케일라는 이 게임을 최초로 개발한 '벡'에게 전화를 받는다. 그가 케일라에게 다음엔 누가 괴로울지를 묻자, 케일라는 "괴로워도 싼 인간들만요."하고 대답한다. 결국 이 잔인한 게임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줄곧 지켜오던 자신의 신념을 깨버린다. 이 저주로 인해 자신도 혜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컬트와 스릴러의 탈을 썼지만,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자신을 잃고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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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틈에 자란 독버섯
이 글은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표시해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또 한 번 뿌리내릴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찰스(에디 레드메인)는 살인자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사람을 살리는 일의 최전방에 서 있는 간호사일 테니까. 그것도 경력 많고 훌륭한. 그는 이 상충되는 두 개념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회색 틈 사이에서 단단히 틀어박힌 채 조용히 살았다. 물론 이번에도 발각되기 전까지만 이겠지만.
죽음이란 것은 참으로 이상했다. 그는 죽음에 다다른 사람이 가진 특유의 축축한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그 냄새는 저승사자의 부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찰스는 그 친절이 마치 죽음을 향한 마중처럼 느껴졌다. 기꺼이 베풀 수 있는, 희생자를 위한 자신만의 담담한 장송곡.
옮긴 병원에서는 비집고 들어가야 할 틈새를 찾기 위해 조금 덜 두리번거려도 되는 행운도 맞이했다. 이미 경계에서 사는 삶을 경험하고 있는 에이미(제시가 차스테인)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에이미의 심장 박동은 그녀가 가진 삶에 대한 의지만큼이나 거세고 힘찼지만. 그녀의 현재 상태는 그녀의 심장벽처럼 압력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얇고 약해져 있었다. 넉 달가량 더 버텨야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현실도. 견디지 못할 만큼 위태로운 딸들과의 불화도.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녀의 재정 상태도 자꾸 에이미를 두드려댔다. 그녀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매번 그녀를 쓰러뜨렸다.
에이미의 인생은 죽음을 향해 달음박질치는 냄새를 온몸으로 뿜어대고 있었고. 그 냄새는 찰스를 안정시킴과 동시에 그녀를 향한 목적 없는 친절의 원인이 되었다. 이번에 맞이할 틈새의 삶은 혼자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러나 찰스는 자신이 꾸준히 행해 온 틈새를 이용한 살인을 멈추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눈치채지도 못할 작은 구멍은 인슐린이나 디곡신을 흘려 넣기 충분한 자리였고. 그 독은 서서히 퍼져 찰스의 살인을 몇 번이고 완성시켰다.
찰스는 언제나처럼 도처에 깔린 죽음을 가림막처럼 이용했다. 그를 향한 안개빛 의심은 있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명확한 의심은 그를 향하지 못했다. 자신이 행하는 이 느린 살인의 묘미였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채 무럭무럭 자라는 버섯 같은 삶은 이번에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먹고 조용하고 축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사진출처:다음 영화그러나 에이미는 자신과 달랐다. 자신처럼 죽음에 중독되어 있지도 않았고. 틈새에서 잠시 쉬고 있을 뿐. 그곳을 탈출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찰스가 풍기는 죽음의 체취를 닦아냈다. 그리고 기어코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쳤다. 이곳에 독버섯이 자라고 있노라고.
찰스는 이제 친절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 자신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알았다. 애써 웃어주고. 애써 보살펴 주어야 하며. 죽음의 장송곡을 불러줘야 할 대상. 이제 죽음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자신의 존재.
때가 되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찰스는 자신의 손을 놓은 에이미에게 음침하지만 화려하게 자란 독버섯의 마지막 친절을 베풀었다. 그 친절은 결국 자신을 끝없는 징역형으로 이끌겠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마치 자신이 살해한 모든 환자들이 그랬듯이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찾아온 죽음처럼.
틈.
그 작은 것이 만들어낸 모든 변화를 찰스는 자신의 남은 생을 다 바쳐서야 겨우 깨달을 것이다.
마치면서
사실 영화 자체는 건조하다 못해 삭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롯이 인물들의 연기만으로 서서히 퍼지는 약물 같은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모든 연기가 소름을 돋게 한다.
또한 실존 인물이자 범죄자에게 그다지 큰 서사를 부여하지 않은 것도. 또한 찰스와 에이미의 관계를 정말 담백하게 그린 것도 좋았다. 덕분에(?) 에디 레드메인은 정말 공허한 눈을 가진 살인자의 역할과. 살인자의 텅 빈 껍데기, 혹은 알 수 없는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한 연기를 두 시간 내내 펼친다.
만약 병원과 권력을 둘러싼 암투, 혹은 치열하게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무조건 실망할 테지만. 영화가 가진 “틈새”라는 모티브를 따라 생성되는 갈등과 서스펜스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면 두 사람. 아니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의 연기가 한 장면 한 장면 피부로 와닿을 것이다.
모호한 틈 사이에 도사리고 있었던 범죄를 잘 그려낸 영화다. 만약 넷플릭스를 통해 봤더라면. 이만큼 집중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의 TMI]
1. 약간 힘든데 질질 끄는 삶의 연속인 거 같은 요즘.
2. 그렇다고 포기하는 일은 없겠지만 또 그렇다고 힘내는 건 좀 힘든 거 같다.
3. 하지만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고 피자나 먹어야징(?)
#그남자좋은간호사 #토비아스린드홀름 #에디레드메인 #제시카차스테인 # 배우3 #헐리우드영화 #서스펜스 #실화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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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익만 잘하면 진급시켜주는 회사가 있다?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혹시 영어 잘하시나요?! I can do it, You can do ti 을 외치며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로 진급 시켜주는 회사가 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90년대의 여성 노동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던 시대에 세 주인공은 영어 공부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풀어내고 있어요
흔한 로맨스, 가족사가 없이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코미디, 미스터리
감독 : 이종필
각본 : 홍수영, 손미
출연진 : 고아성, 이솜, 박혜수
개봉일 : 2020년 10월 21일
평점 : 9.01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웨이브, 쿠팡
기획 의도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 우먼"
1995년,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다!
입사 8년차 동기인 말단 직원들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모인다!
실무 능력 퍼펙트, 현실은 커피 타기 달인인 생산관리 3부 오지랖 '이자영'(고아성)
추리소설 마니아로 뼈 때리는 멘트의 달인 마케팅부 돌직구 '정유나'(이솜)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 실체는 가짜 영수증 메꾸기 달인 회계부 수학왕 '심보람'(박혜수)
대리가 되면 진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다.
여담
영화는 실제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주연 배우였던 고아성, 이솜, 박혜수의 연기한 캐릭터들의 개성만점 각 개개인마다의 개성과 케미를 잘 짜이면서 뻔한 스토리임에도 귀엽게 잘짜여져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결말을 살펴보자면.
회사의 페놀 방류를 목격하게 된 세 사람은 심각한 사건을 쉽게 덮어버리고 주민과의 자체적인 합의로 묻어가려고 하는 회사를 의심하며 세 친구가 중심으로 사건을 다시 조사하여 하나씩 진실에 다가가게 됩니다. 기업의 세계화를 시키겠다는 사장의 검은 속내가 밝혀지게 되며 회사의 회장이 등장과 함께 빌런을 퇴치하며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여사원들의 잘못된 사회적인 개념을 바꾸는데 일조하며 대리로 승진하게 되면서 해피엔딩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화를 리뷰해 주는 유튜버들 사이에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호불호가 굉장히 심하게 나눠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 결말 부분에서 판타지스러운 결말이 호불호가 나눠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오히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판타지를 살짝 가미하여 재미있게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봤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리뷰였습니다!
한줄평 :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 나도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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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애니를 잘 못만든다고?
#애니메이션 #한국 #리뷰
#떠돌이 까치
1987/KBS1#아기공룡 둘리
1987/KBS1#달려라 하니
1988/KBS2#2020 우주의 원더키디
1989/KBS2#옛날 옛적에1
1990/KBS2#영심이
1991/KBS2#옛날 옛적에2
1991/KBS2#날아라 슈퍼보드
1991/KBS2#마법사의 아들 코리
1993/KBS2#초롱이의 옛날 여행
1993/KBS2#리뷰문의
adonai0919@gmail.com#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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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 메인 예고편
콜롬비아의 깊은 산 속, 놀라운 마법과 활기찬 매력이 넘치는 세계 '엔칸토'. 그 곳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드리갈 패밀리가 살고 있다. '엔칸토'의 마법 덕분에 초인적 힘, 치유하는 힘 등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마드리갈 패밀리. 하지만 '미라벨'은 가족 중 유일하게 아무런 능력이 없다. 어느 날, '엔칸토'를 둘러싼 마법의 힘이 위험에 처하자 '미라벨'은 유일하게 평범한 자신이 특별한 이 가족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평범한 '미라벨'은 과연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전 세대 관객들에게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마법같은 영화! 디즈니의 매직이 또 한 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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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악몽의 멀티버스' 60초 예고편
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극강의 몰입도, 멀티버스의 악몽이 펼쳐진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악몽의 멀티버스’ 60초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