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8-27 15:51:25
토해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나레이 베이>
눈부시게 슬프고 아름다운 위로와 치유의 과정에서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레이 베이 Hanalei Bay , 2018 제작
일본, 드라마, 97분
감독: 마츠나가 다이시
토해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나레이 베이>
경찰관이 죽은 타카시의 잘려 나간 오른 다리를 사치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커다란 상어에 다리를 뜯겨 죽었습니다.” 사치는 무표정으로 아들의 유류품을 받고, 유골함을 고르고, 아들이 묵었던 호텔비까지 계산한다. 그리곤 아들을 빼앗은 하나레이 해변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하나레이 베이>의 포스터를 봤을 때부터 그녀가 절대 쉽게 울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사치는 정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오직 바다만을 바라봤다.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도에 꽂힌, 초점 없는 눈동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치의 공허에 상실이 자리한 걸 본 순간, 우린 그녀의 상실을 채운 게 자식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 때문만이 아님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사치는, 아들만 떠나보낸 게 아니었다.

그녀는 평생 엄마로만 살아왔다. 예상했듯, 행복만이 가득한 생활은 아니었다. 마약쟁이 남편의 폭력과 불륜은 사치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끝내 망가트렸다. 사치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자아(위치)가 한때 꿈꿨던 피아니스트도, 남편에게 맞는 아내도 아닌 타카시의 엄마임을 가슴 깊이 새겨야만 했다. 아들만 있는 엄마의 역할과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일도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그녀를 숨 막히게 한 건 증오하는 남편을 닮은 아들을 ‘사랑만’ 하는 일이었다. 사치는 실패했고, 시간이 갈수록 아들과 멀어졌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아들은 사치를 이기적이고 억척스러운 엄마로 여기며 밀어냈고 하와이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리고 싸늘한 주검으로 사치 앞에 나타났다. 아들의 죽음은 아슬아슬한 곡예처럼 흘러가던 모자 관계를 단번에 끝냈고, 진짜 혼자가 된 그녀에게 남은 거라곤 아들을 죽인 하나레이 해변, 아니 아들이 ‘사랑한’ 하나레이 해변뿐이었다.
하나레이 해변, 그곳은 무려 10년 동안 사치의 휴가 장소로 이용됐다. 사치는 일본에서 일상을 보내며 살다, 매년 아들이 죽은 날이 가까워지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와이로 떠났다. 해변에서 책을 읽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또 바다를 앞에 두고 책을 읽고, 가끔 바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정으로 특별한 것 없는 휴가였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을 모조리 외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치는 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섬 주민들도 여전히 멀리했다. 타카시는 분노로 휩싸인 전쟁 때문이 아닌 불가항력의 힘으로 인해 자연으로 돌아간 거라며 섬을 원망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아버지를 전쟁으로 잃은 경찰관과 타카시의 손도장을 건네며 애도의 끝을 강요하는 여자의 마음은 그녀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다. 사치의 시선은 계속 바다를 향했고, 표정 역시 아들의 잘린 다리를 봤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수동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사치를 변화시킨 건, 두 청년이었다. 그들이 사치의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 건, 주민들과 달리 그녀의 비극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서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온 가난한 서퍼들이 타카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빨간 보드를 든 외다리 서퍼를 봤다’라는 말 한마디로 사치 옆에 아들을 존재하게 했다. 사치는 그 외다리 서퍼를 찾기 위해 해변을 헤집기 시작한다. 외다리 서퍼가 타카시라고 굳게 믿으며 찾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치는 외다리 서퍼를 만나지 못하고 결국 참았던 분노를 터트린다.
"난 아들을 싫어했어요. 그래도 사랑했어요. 난 이 섬을 받아들이려 했는데 이 섬은 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요. 그럼 그것도 전 받아들여야 하나요?"
사실 사치는 10년 동안 하나레이 해변을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무책임하게 죽어버린 남편과 다를 바 없는 아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릴 수 없는 아들을 자각하며 원망했다. 어느 날엔 아들과의 관계를 놓아버렸던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한없이 가여웠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억울해했다. 늘 거친 태풍에 흔들리며 사는 나와 어떤 파도도 유연하게 넘기며 살았을 서퍼(아들)를 같은 선상에 두고 곱씹기도 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딱 잘라 정의할 수 없었고, 그것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도 가늠하지 못했다. 아들과 함께 잃어버린 ‘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 긴 혼란의 시간 동안, 사치는 빛 한 줌 허용치 않는 어둠과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는 파도 속에서 곡예를 먼저 중단해 버린 자를 끝내 가려내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자신이 진짜 애도 중인 건지 아닌 건지도 판단하지 못했다. 대신 부정과 외면을 택했다. 분노, 슬픔, 고통, 미움, 외로움, 그리움을 매 순간 침묵으로 바꾸고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으며 하나레이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는 척했다. 그렇게 고립을 자처했다. 이미 일어난 비극을 회피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닌, 떠난 아들과 화해는 물론 남겨진 나를 용서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과거에 갇힌 채 말이다. 사치에게 하나레이 해변은 처음부터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독하게 가혹한 곳이었고 그녀가 품은 혼돈의 근원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감정을 토해낸 사치는 마침내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손도장을 가슴에 품으며 긴 침묵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타카시가 사랑한 해변에 서서 고백한다, 떠난 네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기에 가혹하다. <하나레이 베이>는 가혹함을 조금도 덜어내지 않고 ‘가혹’하다고 말하며 사치의 애도를 응원했다. 섬을 거부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고, 비극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책망하는 걸 멈추길 기다렸다. 말없이 파도만 보는 모습도, 외다리 서퍼를 찾느라 혈안인 모습도, 결국 참았던 울분을 모조리 토해내는 모습도, 전부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잔잔한 파도의 형태를 빌려 끝까지 함께 했다. 상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옭아맨 혼란을 마주하는 과정은 곧 치유의 발판이었으니까. 사치가 토해내지 못했던 것들은, 전부 토해내야만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그녀의 눈과 마음에 가득 들어찬 하나레이 해변이 전하는 깊은 위로가 이제야 한없이 보이듯이.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햇빛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사치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내는 빨간 보드를 든 타카시. 그런 아들을 보며 미소 짓는 사치까지‥. 참으로 아름답고 눈부신 작품이다. 영상미도 뛰어나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편집이 무엇보다 예술이다. 사치의 고요가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오는 장면 전환은 그녀의 몸의 언어를 만나 완벽한 한 장면, 장면을 만들어 낸다.
<하나레이 베이>는 『상실의 시대』, 『1Q84』를 집필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도쿄기담집」에 실린 단편)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이 주는 감동을 충분히 담아낸 작품이니 꼭 보길 추천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이창동 감독의 <버닝>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로 출발했다)
Relative contents
-
- <세자매> 이유 있는 완벽 연기 앙상블!
개봉 첫날부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극장가를 사로잡고 있는 영화 <세자매>
<세자매>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인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네 자매의 모습을 통해 잔잔한 힐링을 보여줬다면, 올해 한국 극장가에서는 김선영 배우의 배우자로 잘 알려진 이승원 감독이 우리와 어딘가 닮아있는, 리얼리티와 공감으로 똘똘 뭉친 세 자매의 모습을 통해 묵직한 울림과 감동을 보여준다.
한편, 믿고 보는 배우들의 빈틈없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완성된 영화 <세자매>가 영화 <박하사탕>, <어쩌다, 결혼>, <배심원들>에서부터 이어진 배우들의 재미있고 아주 특별한 인연을 공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연기 호흡을 맞추며 명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과거 재미난 인연들을 함께 살펴보자!
먼저, 대한민국 대표 명작 영화 <박하사탕>(2000)에 함께 출연했던 문소리와 조한철이 20년 뒤 <세자매>에서는 부부로 만나 흥미를 더한다. 문소리가 첫사랑 ‘윤순임’ 역으로 열연을 펼쳤던 <박하사탕>을 통해 조한철이 첫 스크린 데뷔를 치르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작품 말미의 소풍 장면 중 서로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끼는 ‘김영호’(설경구)와 ‘윤순임’ 사이에서, 통기타를 치며 함께 [나 어떡해]를 열창하던 인물이 바로 조한철이다.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뒤 문소리와 조한철이 <세자매>의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둘째 ‘미연’과 그녀의 완벽해 보이는 삶의 일부인 교수 남편 ‘동욱’으로 변신했다. 두 배우는 긴 시간 쌓아온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완벽한 연기 호흡을 선보이며 극의 재미를 더했다.
다음으로, 김선영과 김의성이 영화 <어쩌다, 결혼>(2019) 이후 두 번째 부부 인연을 맺었다. 두 배우는 <어쩌다, 결혼>에서 서로 이혼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부부 ‘조수정’과 ‘채기장’ 역으로 분해 관객들에게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이어, <세자매>에서도 순탄치 않은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김선영이 맡은 괜찮은 척하는 소심덩어리 첫째 ‘희숙’에게 다달이 돈만 타가는 남편 ‘정범’을 특별출연한 김의성이 짧고 굵게 그려내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범접 불가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두 배우가 선보이는 연기 앙상블은 관객들에게 작품을 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명품 연기의 맛을 고스란히 느끼게 할 것이다.
마지막은 바로 영화 <배심원들>(2019)부터 이어온 문소리, 김선영, 조한철의 끈끈한 연이다. 시민들이 첫 국민 참여 재판에 배심원으로 나선 이야기를 그린 영화 <배심원들>에서 문소리는 재판장 ‘김준겸’ 역, 조한철은 배심원 ‘최영재’ 역, 김선영은 ‘청소요정’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2018년 촬영 당시부터 지금까지 교류하며 남다른 우정을 뽐내는 <배심원들>팀이 이번엔 <세자매>의 자매와 부부로 만나 환상적인 연기 호흡을 자랑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실제 배우들 간의 합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완성된 첫째 ‘희숙’, 둘째 ‘미연’, 그리고 둘째의 남편 ‘동욱’은 현실 가족 같은 모습에 더해 관객들에게 알고 보면 더 재밌는 깨알 포인트까지 선사하고 있다.
스크린을 장악하는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의 열연과 흡입력 넘치는 이야기로 관객들의 뜨거운 호평을 얻고 있는 영화 <세자매>는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
- 음악으로의 끝없는 도피
26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
* 본 게시글은 시사회를 통해 개봉 전 관람한 후 작성한 후기이며,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크리에이터로써 참여하였습니다. 줄거리의 일부가 기재되어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감상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나는 도망친다. 광신도 엄마와의 주일 봉사에서 도망쳐 어린 딸을 보러 가지만, 때로는 짐짝처럼 느껴지는 딸로부터 도망치기도 하고, 고객의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헤드셋을 버리고 도망치기도 한다. 이나는 미혼모가 된 이후에는 음악으로부터 도망쳤고, 위탁 가정에서 딸을 데리고 오기 위해 엄마로부터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대회에서 우승해 베를린으로 가고 싶은 열망 또한, 성취보다는 도피에 가까운 감정임을 이나는 알지 못한다.
이나에게 대화는 고통과 동의어로 작용한다. 말을 건네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억압하고, 때로는 벼랑 끝으로 내몬다. 갖은 불평을 토해내는 엄마와, 빨리 아이를 입양보내자는 위탁 아주머니의 말들은 언제나 너무 아프다. 서로가 피로해지는 대화는 단절되는 편이 낫다. 그래서 그는 전화를 피하고, 헤드셋을 쓴다. 콜센터의 한가운데에 앉아 파티션에 입이 가려진 동료들을 보며, 이나는 마치 그들도 자신과 함께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바닥이 울릴 만큼 선명한 음악만이 이나를 붙잡아세운다. 그러니 이나는 계속해서 외면하고, 도망친다.
그마저도 완전한 도피는 불가능하다. 엄마의 망치질 소리는 신경을 긁고, 음악으로 가득찬 공간에서 휴대전화 진동음은 맥락을 끊어 버린다. 이나를 음악으로 대표되는 인물로 상정했을 때, 엄마의 전화는 불편하고 이질적인 장애물로 작용한다. 어쨌거나 이나의 최종 도피처는 돌고 돌아 결국 음악이다. 음악은 존재 자체로 숨을 틔우고 자유를 만끽하게 해 주는 듯 보인다. 그토록 바라던 음악으로 다시금 돌아왔건만, 그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음악이 즐겨지지 않는다"며 베를린으로 꼭 가야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이나는 이러한 괴리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음악이 즐겨지지 않는 이유는 이나가 음악을 '꿈'이 아닌, '도피처'로 택했기 때문이다.
내내 도망치기만 하던 이나는 미친 것 처럼 보이던 엄마가 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사건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엄마에 대한 모난 감정들은 점차 깎여 나가고, 음악에 자전적인 요소들을 녹여냄으로써 둘의 갈등은 해결되는 듯 보인다.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나는 마지막에 걸려온 전화가 베를린 컴피티션의 합격 전화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나가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음악을 도피처로 여기지 않고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똑바로 마주보고자 다짐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나는 현재 아이와 엄마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기에 베를린은 더 이상 이나에게 해결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나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졌을까?
<둠둠>은 이나와 엄마의 갈등으로부터 점철된 한국 사회 내 미혼모의 위치에 관한 메세지를 계속해서 던진다. 나는 이나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이나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에 와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찾았다고도 할 수 없다. 이나는 여전히 미혼모 가정 지원금을 받지 못할 것이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양육비를 대기 위해 더 힘겹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국적과 연령이 서로 다른 세 여성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엮인다. 이나가 베를린으로 갔다면, 태국인 여성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 것이고, 이나가 나이가 든다면 엄마와 유사한 사회적 지위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나는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 엄마 또한 이나가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나는 엄마의 애정을 거부하고, 어긋난 애정은 독이라 치부한다. 엄마는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이나가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지안이(이나의 딸)의 존재를 부정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었기에 이나와 엄마는 끝없이 상처를 낸다.
<둠둠>에서는 플래시백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객은 현재의 사건들만 두고서 이나를 응원하거나 탓할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일들은 책임지기로 한 이의 잘못이 아니기에, 논외의 것으로 밀린다. 계속해서 문제상황이 제공되고, 건조하다못해 바스라지는 이나를 보며, 관객은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자꾸만 도망치는 그에게 자연스레 이입하게 된다. 무엇이 그를 도망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는지 사유하는 과정에서 <둠둠>이 단순히 꿈을 찾아 떠나는 유토피아적 스토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 말 없는 주인공은 흥행 보증 수표?!
대사 없는 주인공을 내세워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있다.
<늑대소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그리고 <소리도 없이>는 말 없는 주인공으로 흥행에 성공해 주목받은 작품으로, 대사 없이 캐릭터의 표정과 몸짓으로 내용을 풍부하게 채워준 캐릭터들에 대한 호평도 쏟아졌다.
대사 대신 더 다양한 눈빛과 표정 연기, 때로는 절제된 감정선 등을 녹여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 영화 3편의 주인공을 알아보자.
<늑대소년>의 '철수'
2012년 개봉해 700만 관객의 선택을 받은 <늑대소년>은 순수한 시골 소녀 ‘순이’와 늑대소년 ‘철수’의 아름답고 깨끗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극 중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습득하지 못한 ‘늑대소년 철수’를 맡은 송중기는 대사 없이 눈빛으로 표현하는 연기가 힘들게 느껴졌지만, 늑대소년을 표현하기 위해 마임을 배우면서 늑대의 움직임과 호흡을 연구하고, 영화 <반지의 제왕>부터 <동물의 왕국>까지 수십 번 반복하며 탐구했다고 한다. 많은 탐구와 노력으로 거칠고 야생적이면서도 속은 순수하고 여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흥행에 힘을 더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엘라이자'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목소리를 잃은 청소부 ‘엘라이자’와 비밀 실험실에 갇힌 괴생명체와의 만남을 그린 로맨스 판타지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환상적인 연출과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애틋함을 섬세하게 표현한 배우 샐리 호킨스의 열연으로 국내 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소리도 없이>의 '태인'
<소리도 없이>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소리 없는 청소부 ‘태인’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말을 하지 않는 인물로 배우 유아인이 연기 인생 최초로 대사 없는 캐릭터에 도전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태인의 생활 연기를 위해 삭발을 하고 15kg 증량을 감행하며 캐릭터를 완성시키는데에 많은 열정을 녹여낸 배우 유아인은 어쩌다 맡은 의뢰로 계획에도 없던 범죄에 휘말리게 된 ‘태인’의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 감정을 단 한마디의 대사 없이 오로지 눈빛과 몸짓만으로 200% 표현해 내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
- 여름, 소녀가 자란다
이번 주말 태풍 링링이 왔다.(이 글의 초안은 2019년 9월에 작성 됐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잠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 커피를 내리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프로코피예프와 창 밖의 바람 소리를 동시에 들었다. 몇년에 한번 꼴로 유난히 많은 피해를 남기는 이 9월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얼마나 청명하고 맑은 가을 하늘이 되어있을지 상상한다.
가을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관문 같다. 매년 느끼지만 겨울은 깔끔히 사라지지 않고 3월이고 4월이 될 때까지 차가운 바람으로 길게 꼬리를 드리우며 물러가는데, 여름은 하룻밤을 기점으로 언제 그런 계절이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춰 버린다. 그래서 어느 날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때리면 허망한 기분마저 든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며 한 분기를 살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야 갑자기 그 계절을 그리워하며, 여름이 어떤 의미였는지 차분히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계절에 대해 총체적 감각을 버무린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나에게 몇년 전부터 여름은 영화 <콜럼버스> 속 계절이었는데, 오늘은 거기에 <벌새>까지 더해졌다.
<콜럼버스> 속 케이시는 고향인 콜럼버스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떠나고 싶어한다. 콜럼버스의 모더니즘 건축물들을 사랑하고 아직은 자신이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도시에서의 삶이 얽매여 있는 것인지 자신이 선택한 것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답답하기도 하고 괜찮기도 한 일상 속에서 그녀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진을 우연히 만나며 새로운 기회를 마주치게 된다. 가족, 현재의 일상, 지나온 삶들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는 두 사람은 푸른 잔디밭과 울창하게 잎사귀를 드리운 나무 아래에서 사리넨의 건축물을 바라본다. <콜럼버스>는 두 주인공 케이시와 진이 각각 선택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성장 서사인 동시에, 두 사람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선택을 격려한다는 점에서 버디 무비이기도 하다. 두 동료는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쏟아지는 장대비를 머금고 있는 콜럼버스의 녹음 속에서 앞을 향해 나아간다.
<벌새> 속 중2 은희의 여름은 1994년 대치동이 무대다. 은희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소녀다. 미도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과 언니와 오빠와 대치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보편적인 은희의 이야기는 가능한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묘한 향수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은희처럼 흰 반팔 블라우스와 체크 치마로 구성된 여름 교복을 입고, 머리는 학칙에 맞춰 단발로 자르고 발목을 덮는 흰 양말과 장식이 없는 검은 구두를 신고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영화에 나온 진선여중과 대청중을 졸업한 친구들과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고,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에는 미취학 아동이어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시에 삼풍 백화점과 세월호라는 사회적 비극의 간접 목격자다.
은희의 구체적인 일상은 그래서 비슷한 시대를 지나온 이들의, 그리고 그 나잇대를 지나온 모두의 성장 이야기다. 영화의 끝에서는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춘추복을 입은 여러 소녀들의 얼굴이 비춰진다. 10대 소녀들에게 세상은 어떤 존재일까. 이해할 수 없고, 폭력적이고, 갑갑하지만 때로는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있고, 즐겁고 행복하고, 그러다 또 갑자기 비극적이기도 한 세상. 비단 10대 소녀들에게만 그런걸까? 대학생인 영지에게도, 아이를 셋 낳은 숙자에게도, 여전히 세상은 그런 곳이다. 살아남은 우리는 그렇게 복잡한 세상을 응시하며 자라간다.
누군가는 여름을 축제의 계절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여름밤의 낭만이나 해변의 불꽃놀이로 기억할지 모른다. 케이시와 은희처럼, 나에게 여름은 도시의 녹음 속에서 차분하게 주시하는 계절이다. 자신을 주시하고 세상을 주시하는. 뜨거운 햇빛과 숨막히는 수분을 양분삼아 소녀들은 나무처럼 가만히 자라난다. 계절이 바뀌면서 햇빛은 한층 기울고 습도는 사라진다. 갑작스러운 찬바람에 당혹스럽고 허전한 기분이 들면 그제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여름 사이 우리의 키가 한뼘 자라있음을.
* 본 콘텐츠는 브런치 Good night and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중국 사회주의에 맞서는 러우예의 영화!
시놉시스
상하이의 쑤저우강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다. 고독한 사람,자식과 부모,일을 하는 사람,다리에 몸을 던지는 사람 등등... 그중에 비디오 촬영기사는 사람들에게 촬영 의뢰를 받고 일을 한다. 그런데 해피바라는 유흥주점에 있는 사장에게 의뢰가 들어오고 비디오 촬영기사에 눈에 들어온 건 인조 어항에서 춤을 추는 인어쇼를 본 것이다. 인어의 정체는 바로 메리메리라는 여자였고 둘은 커플이 된다.
하지만 메리메리에게는 사연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비디오 촬영기사가 할 수 있는 건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기거나 전화를 하는 건데...
러우예 감독은 중국 정부의 감시와 블랙리스트 추가에도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의 입맛에 맞게 만드는 중국 영화들은 수면에 올라왔고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수면 아래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중국 공안의 감시에도 러우예 감독은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중국의 사회주의 사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렇게 중국에 맞지 않는 서방 세계의 자유로움과 다양성이 묻히는 게 20세기 말과 21세기 이후를 살아가는 중국 영화감독들의 큰 골칫거리였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비디오 촬영기사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과 핸드헬드 캠코더로 자신의 연인 메리메리뿐만 아니라 마다라는 인물과 메리메리와 닮은 무단이라는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무슨 의미를 주는 걸까라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양한 관점들이 있다. 감독이 1980년대 당시 쑤저우강의 혼탁함을 비유하며 중국 인민들의 혼란스러운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메리메리가 없는 것에 대해 가지는 환상과 그걸 채워주는 욕구 그 이후에 나타나는 불만 같은 관점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관점은 허구와 현실이 반이 섞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비디오 촬영기사가 사실은 마다 역할도 했고 메리메리도 무단 역할을 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다.
이 영화가 끝나고 정성일 평론가님이 해석하신 다양한 관점들을 후기로 적어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영화감독들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씨네필이 되는 걸 주저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중국 공안의 감시도 너무 강해서이기도 하고 씨네필이 될 수 없게 만드는 환경도 한몫했다고 한다.
중국에 가보면 해적판 DVD방이 많다고 한다. 결국에는 중국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들은 음지로 갈 수밖에 없는 걸까? 영화 <쑤저우강>은 이러한 사회주의에 대한 중국의 방식을 영화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 기류의 혼탁함을 영화화하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제임스건만 할 수 있는 영화
MCU에서 감초 같은 매력을 뽐내는 우주의 수호자들이 마지막 편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가 개봉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히어로답지 않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우스꽝스러운 면모는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이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2>(2017)은 전편보다 더 휴머니즘이 녹아들고, 어울리지 않았던 이들의 케미가 화려한 폭죽처럼 폭발했던 시리즈였다. 그리고, 이번 마지막 편은 여태껏 메가폰을 잡은 제임스 건 감독의 가히 '걸작'이라고 표현해도 될 법한 영화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틸컷
제임스 건 감독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각본, 감독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캐릭터들의 매력과 장단점을 확연히 알고 있을뿐더러, 제임스 건 특유의 B급 개그와 휴머니즘 정서에 매우 잘 맞는 영화가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다. 이번 영화를 끝으로 제임스 건 감독은 마블에서 떠나기 때문에 영화는 그가 쏟아낼 수 있는 능력을 마음껏 쏟아붓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온전히 다 드러낸다. 특히, 하이 에볼루셔너리 전투선에서 선보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멤버들이 펼치는 롱테이크 전투 장면은 캐릭터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그 밖에도 영화 전체적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담당했던 감독답게 캐릭터의 매력과 개성을 남김없이 활용한다.
영화 개봉 전부터 제임스 건 감독은 이번 영화는 '로켓'을 메인으로 잡았다고 언급했었다. 확실히, 로켓의 과거와 함께 플롯이 진행한다. 필자는 영화를 접하기 전, 감독의 의도를 로켓이 희생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오히려 로켓이 새로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리더가 되는 시리즈의 마무리이자 새 시작을 알리는 '가오갤'만의 '엔드 게임'이었다. 애초에 로켓이 리더가 될 거라는 복선은 영화 초반부터 있었다. '퀼'(크리스 프랫)을 상징하는 낡은 미디어 플레이어 '준'을 로켓이 처음부터 들고 노래를 트는 장면부터 로켓이 나중에 저 '준'을 갖게 될 것이다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준'은 욘두가 퀼에게 준 유품이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뮤직 플레이어다. 그전에 사용했던 '소니 워크맨'만큼이나 퀼이 전투를 할 때나 우주선을 비행할 때 등 늘 그의 곁에 같이 있는 소중한 물건이다. 그런 물건이 로켓한테 갖고 있다는 것은 퀼에게 어떤 이유로 가오갤에 함께할 수 없게 되고 더불어 비어있는 리더의 자리를 로켓이 맡을 것이라는 복선이 된다. 그리고, 퀼은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은퇴와 그 자리를 로켓이 맡게 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2>(2017)에서 욘두가 퀼에게 남긴 '준' 플레이어는 전부터 사용했던 '소니 워크맨'보다 최신 기종이었기에 이번 영화는 보다 다양한 시대와 장르 음악이 등장해 다채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가오갤'의 시작을 알렸던 퀼을 등장 음악 'Redbone-Come and get your love'을 들려주며 가오갤 시리즈의 수미상관을 선보인다. 니체가 말한 '음악 없는 삶은 실수다.'라는 말처럼 영화는 음악으로 영화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휘어잡는다. 모두가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춤추는 장면은 가오갤만의 재미와 각 캐릭터들의 연대가 어우러져 여운을 남겨준다.
-
- 밝혀지는 라이온 킹의 대서사 / 무파사: 라이온 킹 / 라이온 킹의 프리퀄 / 형제에서 적으로 / 감춰진 스카의 이야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무파사: 라이온 킹"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따로 없네요~
-
-
- 영화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 메인 예고편
쥬라기 시리즈의 압도적 피날레! 6월 1일 대한민국 전 세계 최초 개봉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메인 예고편
-
-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공식 예고편
새로운 힘, 새로운 질서, 새로운 캡틴🔥 2025년, 모든 것이 새로워진 세계를 확인하라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2025년 2월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