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24 10:06:37
10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미국판 <오징어 게임>, 데이비드 핀처 참여

국내에서는 <나를 찾아줘> 등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미국판 <오징어 게임>에 참여합니다.
<오징어 게임: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리메이크가 아닌 미국을 배경으로 한 스핀오프 시리즈로 변경되어 원작의 캐릭터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으며, 2025년 말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초 The Playlist의 로드리고 페레즈는 핀처가 2021년부터 이 스핀오프를 구상해 왔으며, 이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시기와 맞물린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핀처는 <차이나타운> 프리퀄 프로젝트를 뒤로 미루고 <오징어 게임>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넷플릭스는 아직 이 프로젝트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페레즈에 따르면, 지난해 핀처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드라마 <유토피아>의 작가 데니스 켈리를 영입해 각본을 맡겼으나, 켈리가 여전히 참여 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CGV아트하우스 20주년 기획전

CGV아트하우스가 20주년을 맞아 기획전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프로그램은 연도별 한국 독립영화 화제작과 국외 예술영화 화제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수꾼>, <잉투기>, <우리들>, <홀리 모터스>, <문라이트> 등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들은 물론이고, 관객 수 역대 1위 작품인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시네마톡의 첫 작품인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도 상영될 예정입니다.
정식 개봉을 놓쳐서 아쉬웠던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닐까요?
한스 짐머 <듄: 파트 2>, 오스카 레이스 탈락

<라이온 킹>과 <듄>으로 두 차례의 오스카를 거머쥔 바 있는 음악감독 한스 짐머의 올해 수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카 아카데미 규정에 따르면, 후속작이나 프랜차이즈 작품의 경우 기존 음악의 20% 이상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듄: 파트 2>의 경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한스 짐머는 Variety와의 인터뷰에서 상을 위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듄: 파트2>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러운 결말을 향해 테마를 확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쓰여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차기작 화려한 배우 캐스팅

<레버넌트: 죽음으로 돌아온 자>로 오스카를 수상했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차기작에 캐스팅된 화려한 배우 라인업이 화제입니다. 톰 크루즈를 필두로 산드라 휠러, 리즈 아메드, 존 굿맨, 마이클 스털버그, 제시 플레먼스 등이 출연할 예정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냐리투의 영화는 "세상의 가장 강력한 인물이 자신이 인류의 구세주임을 입증하려고 미친 듯이 나서지만, 자신이 촉발한 재앙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전에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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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퀴어 영화가 필요하다
1980년대 계엄령이 해제된 직후의 대만. 장개석은 죽었고,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으로 바뀌었다. 즉, 세상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자한과 버디를 힘들게 하는 동성애혐오적 세상은 그대로다.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이들의 사랑은 주변의 시선, 자기 검열, 회의와 비관으로 얼룩져 어긋나 버린다. 그들은 '수십 년 후'라는 설정 속에서만 유예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스틸컷 ⓒ넷플릭스
하지만 '수십 년 후'에라도 서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건 판타지다. '수십 년 후'라는 설정은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온전히 만끽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장치다. 지나간 시간을 쓸쓸히 추억하든 아름답게 재연하든, 오래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어떤 식으로든 복권하기 위한 장치 말이다.
퀴어 영화나 퀴어 소설에서 이러한 장치의 효과가 더 두드러지는 건 이 때문이다. '보편적' 사랑 담론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기에, 대부분의 퀴어는 사랑에 실패한다. 그 실패의 아픔은 먼 미래에야 치유될 수 있는 것으로 상상된다. 즉 퀴어들은 '수십 년 후'라는 장치의 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퀴어 영화나 소설의 '수십 년 후'라는 설정이 싫다. 이것이 현실적 제약에 더럽혀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패배주의적으로 복기하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박탈당한 현재의 아픔을 '환상적인' 미래에 던져버림으로써 지금을 포기해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자한과 버디의 재회가 대만이 아닌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이뤄지는 것도 불만이었다. '수십 년 후'가 '지금'의 시간성을 박탈한다면, '몬트리올'은 '여기'의 장소성을 박탈한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의 낭만적 결말이 공허한 이유다. 수십 년 후 몬트리올에서 재회하는 자한과 버디는 '지금 여기'를 빼앗긴 비참한 존재들일뿐이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스틸컷 ⓒ넷플릭스
자한과 버디가 '지금 여기'를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힌트를 주는 장면이 있다. 영화 중간에는 괴로워하는 자한을 달래주는 노인이 나온다. 그는 인자한 모습으로 자한을 위로해준다. 그러나 어느덧 돌변해 자한을 애무하기 시작한다. 자한이 소리친다. "전 그런 사람 아니에요.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요!"
자한과 버디가 빼앗긴 시간성과 장소성을 회복하는 일은 이 노인과 자한의 관계를 복원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한이 스스로를 노인과 구분 짓지 않을 때, 그와 자신이 연결된 존재임을 자각할 때, 노인을 밀어내는 대신 "당신은 이 슬픔을 어떻게 견뎌오셨나요?"라고 물을 때, 자한과 버디의 사랑은 '지금 여기'의 가능성을 되찾아 올 수 있다. 대만 퀴어의 역사성·계보에 자한과 버디의 사랑이 추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잉태되는 미래의 가능성은 '수십 년 후의 몬트리올'이 표상하는 미래보다 단단하다. 구체적 현실에 발 디디고 있기 때문이다. 퀴어의 행복한 미래는 더 이상 먼 미래 혹은 '퀴어 친화적인 서구'라는 현실도피적 시공간성에 갇혀선 안 된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스틸컷 ⓒ넷플릭스
"넌 어디도 갈 수 없어"라는 자한의 말은 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개별적 존재로 찢겨 방치된 퀴어들의 연결성을 회복할 때 "갈 수 있어"라는 버디의 말로 나아갈 수 있다. 고립된 채 방치된 존재들은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연결됨으로써만 집단적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연결의 매개는 이성애규범적 사회를 살아가는 퀴어들이 실패의 슬픔을 품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의 아름다운 정서는 먼 미래의 환상적 공간에 내팽겨질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다. 말랑말랑한 영화의 결말은 '지금, 여기'에서 완결되어야 할 자한과 버디의 사랑을 이성애규범적 사회보다도 더 가혹하게 방치한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에는 '지금, 여기'의 퀴어 정치성을 촉구하는 더 좋은 결말이 필요했다.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이 영화가 아쉬운 이유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ewr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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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거야
SYNOPSIS.
“빅밴드 재즈? 그게 뭐하는 건데?”
지루한 보충수업을 째고 싶었을 뿐, 토모코(색소폰)
야구부 선배에게 홀딱 반했을 뿐, 요시에(트럼펫)
남들보다 폐활량이 뛰어났을 뿐, 세키구치(트럼본)
어쩌다 친구 따라왔을 뿐, 나오미(드럼)
심벌즈가 적성에 안 맞았을 뿐, 나카무라(피아노)
짝사랑하는 재즈 덕후일 뿐, 수학 선생님(지휘)
대단한 이유 없음! 눈부신 재능 없음! 거창한 목표 없음!
그래서 우린 스윙한다♬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POINT.
✔️ 우에노 주리가 실제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촬영한 영화. 조금 엉뚱하고 풋풋한 매력이 빛납니다.
✔️ 그러나 배역 준비는 풋풋하지 않음. 실제로 배우들이 악기를 배워서 연기했다고 해요.
✔️ 교복 입고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우는 청춘 영화... 안 좋아하는 법 아시는 분?
✔️ <워터 보이즈>로도 사랑받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 작품입니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해맑게 나와서 각자의 청춘을 향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사실 이렇게 말한다는 자체가 특정 시대 콘텐츠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다. 요즘 교복 입은 애들은 해맑게 청춘 타령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괴생명체랑 싸우고, 좀비 바이러스 퍼진 학교에 고립되고, 성매매에 연루되고, 온갖 폭력에 맞서고, 기껏 공부 좀 해보려는 애도 타고난 재능이 싸움이고 뭐 그렇다... 다시 말해 학원물 또한 액션물과 장르물의 파도를 타는 시대다. 갖은 욕망들이 드글드글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빨간 맛 드라마가 각광 받는 시대. 다이나믹한 스토리에 강한 K-콘텐츠 특성이기도 하고, 다이나믹한 현실을 노련하게 담아낸 창작물이라는 뜻도 되겠지만, 유순하고 말간 학원물이 이따금 그리울 때가 있다.
청춘 영화가 좋은 이유
콘텐츠조차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맹한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영화는 그냥 그 자체로 귀엽다. 특히나 <스윙 걸즈>는 2004년에 개봉한 영화다. (한국에서는 2006년 개봉했다.) 불과 20년 전이지만 분명 다른 시대 정신이 그 안에 분명 있다. 그 시절 시골에는... 정말 <스윙 걸즈> 같은 느낌의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가 그저 타성에 젖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교 풍경,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이라고 그 타성조차 늘어진 날들. 학교에서 덥다는 생각으로 교복 깃을 풀풀 흔들며 매미 소리나 듣고 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래서 외국 영화임에도 <스윙 걸즈>의 풍경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그다지 치열하지 않아도 되는 (관념 속의) 학교와 교복, 지방의 작은 열차를 타고 다니는 푸릇푸릇한 (관념 속의) 시골 풍경, 바쁘기보다는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운 날들, 거기에 반짝 빛을 더해주는 친구들과의 시간, 집 전화로 서로를 부르던 시절의 감각, (역시나 관념 그 자체인) 여름 쓰르라미 소리, 기분 좋아질 수밖에 없는 음악까지... 이 영화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동양권 청춘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청춘의 파릇파릇 예쁜 면을 가득 보여주고, 조금씩 배경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일본-대만 정도의 권역에서는 무리 없이 그 감성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나라 애들은 수능 말고 무슨 시험을 보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청춘의 표면만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20여년 전 일본 영화, 10여년 전 대만 영화 등 이런 "청춘물"이 우수수 쏟아지던 시절을 한 번 훑고 나면 그건 시대의 기억이 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나도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봐서, 내 청춘의 기억과 중첩되어 더욱 푸릇푸릇하게 느껴진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 중에는 이렇게 기억의 중첩으로 감각이 더 진하게 우러난다는 점도 있구나.
나이 들어 좋은 점은 하나 더 있다. 그 시절 '언니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였던 <스윙 걸즈>는, 얼추 두 배의 나이가 되어서 보니 마냥 귀엽기만 하다. 기껏 정 붙은 악기를 내어주고 자리를 비켜 주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나, 친한 친구여도 옆자리 친구와 기묘하게 경쟁하게 되는 마음, 꿈 같던 여름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묘하게 어색해진 친구와의 거리감 같은 것들이 죄다 귀엽다. 그 시절에 가장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쁜 일이나 정해진 일정 같은 것들에 얽매이는 삶을 아직 시작하기 전, 그 시기 특유의 감각.
우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무료하리만큼 고요한 날들도, 그 시절의 청춘도 모두 아름답지만... 오랜만에 본 이 영화가 옛날과 달리 마음에 남긴 것은 또 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되는 것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름에 우연히 손에 쥔 관악기들이 아이들을 전혀 다른 겨울로 데려갔듯이, 우연한 시작은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길에 데려다 놓는다. 그런 마법은 어릴 때만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 새로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비록 시작이 마법 같다고 그 여정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악기를 갖고 준비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들인 시간과 공이 있었듯,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언제나 지난하고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씩 해냈을 때의 즐거움도 있으니까. 이 아이들처럼, 그렇게 그 길을 가게 된다.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과 함께 은은한 유머 감각이 빛나는 장면이나, 모로 가든 어찌됐든 문제가 얼렁뚱땅 해결되는 뻔뻔한(positive) 전개, 타카하시 잇세이나 키노 하나, 에구치 노리코(악기점 점원이었다!) 같은 배우들의 한껏 젊은 시절을 보는 일, 뭐 그런 것도 즐겁긴 했지만... 이 영화가 가장 산뜻하게 즐거웠던 이유는 역시 그 우연한 시작을 정말로 무언가 '되게' 만드는 여정을 담았다는 지점이 아닐까.
우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몰라도, 그 길을 박수 짝짝 치며 친구들과 즐겁게 걷다 보면 우린 어딘가에 다다른다. 그 지점은 청춘 영화에서 계속 본 그 싱그러움을 닮아 있다. 어쩌면 청춘의 외피를 더덕더덕 붙여 바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는, 그 속살을 따라갈 때 가장 싱그러운 청춘에 도달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치면 청춘은 나이의 개념이라기보다, 마음의 상태에 더 가까운 개념인지도. 고등학생 귀엽고 나이 들어 좋은 점이 있다고 글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싱그러운 자리의 빛에 가슴이 뛰고 있으니까.
그러니 오늘도 좋아하는 걸 마음껏 좋아하고, 그 길이 우리를 어떤 싱그러운 자리로 데려다 주는지 기쁘게 바라보자. 잘하든 못하든, 기회가 있든 없든.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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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설픈 트리거 남발에 실패해버린 드라마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이기는 하지만, 〈물랑 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를 연출한 바즈 루어만은 화려한 비주얼과 극적인 드라마를 결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다. 그런 그가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자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렸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스크린으로 소환한다니 당연히 많은 영화 팬이 그 결과물을 기대했을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2018), 〈로켓맨〉(2019), 〈주디〉(2020) 등 가수·배우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근래에 계속 제작되어왔다는 점도 호재였다. 이전 작업을 비판적 참조물 삼아 자신만의 개성인 더 화려한 볼거리, 더 진득한 드라마를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엘비스〉는 엘비스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배우 오스틴 버틀러를 캐스팅해 엘비스의 노래와 춤, 비주얼 등을 재연하려 고군분투한다. 그리하여 엘비스를 다시 무대로 올려놓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다. 하지만 바즈 루어만의 또 다른 장기인 드라마의 농도는 형편없다. 〈물랑 루즈〉와 〈위대한 개츠비〉는 화려한 비주얼과 치명적 드라마를 적절히 맞물리게 연출했기에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여러 등장인물 간의 갈등, 사랑, 우정 등 다양한 요소를 가장 본질적이고 주가 되는 드라마를 뒷받침하는 데 활용해 영화의 핵심 감정선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엘비스〉가 실패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이 영화에는 여러 드라마 요소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을 뿐이어서 무엇이 메인 드라마인지 파악할 수가 없다. 각각의 요소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다 금세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는 내레이터의 대사로 어떻게든 여기저기 널린 드라마 요소를 갈무리하려 하지만 유기적 연결 없이 대사만으로 이들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자신의 산만함을 자백하는 꼴이다.
영화가 최종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드라마는 팬들을 향한 엘비스의 사랑인 듯 보인다. 죽기 얼마 전까지 무대에 올라 열창하는 엘비스, 가족의 친밀감보다 공연할 때 팬과 호흡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더 아끼는 엘비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상업주의적 착취를 거스르는 엘비스의 열정과 의지, 사랑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는 끝내 메인 드라마와 결합하지 못한 다양한 드라마 요소가 남아 있다. 엘비스의 재능(혹은 ‘상품성’)을 알아보고 매니저가 되어 그를 착취하는 톰 파커, 러브 스토리, 극적인 상승과 하강, 사치와 약물중독, 흑인 뮤지션과의 관계 등등. 이 중 몇몇은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와 어우러지지만, 대개는 다소 튀는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진지한 대사를 하기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까 싶었는데 그 부분은 살짝만 비추고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 식이다. 이와 같은 유기적이지 못한 이야기의 반복은 영화 중반부에서부터 내내 반복되어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많은 이야기와 드라마 요소를 갖추었다고 감동이 더 커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밀도와 농도다. 영화의 헐거움은 자신이 발견한 엘비스의 모든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한 바즈 루어만의 욕심이 패착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물랑 루즈〉와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의 얼굴과 대사가 떠올라 아쉬움이 생길 정도였다.
엘비스가 흑인 음악과 맺었던 긴장 관계를 재현하는 영화의 방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 가정 형편상 흑인 마을에서 자란 엘비스는 어릴 때부터 흑인 커뮤니티에서 그들 음악의 수혜를 입으며 자랐다.* 백인 가수 중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흑인 음악 로큰롤을 부른 엘비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한편에는 영화 〈드림걸즈〉(2006)에 나오듯 엘비스가 흑인 음악을 도둑질해갔다며 잔뜩 분노한 사람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그가 아니었으면 흑인 음악이 주류로 부상하지 못했을 거라며 엘비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구심이 들었던 건 엘비스가 보수주의적 검열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장면을 인종 정의와 연결한 연출이었다. 바즈 루어만은 엘비스를 흑인을 위해 싸운 투사로 만들고 싶었던 걸까? 엘비스가 인종 간 교류 등 변화하는 시대의 정수를 체화하여 보수적 연예계에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불러왔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를 엘비스의 의식적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엘비스의 문화정치적 의미는 그가 흑인 음악을 차용해, 딱 달라붙는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입고, ‘선정적인’ 춤으로 소화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엘비스를 인종 정의를 위한 활동가로까지 만들었을 필요는 없단 소리다.
영화에는 엘비스가 ‘발이 없어 땅에 앉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는 대사가 나온다. 끊임없는 날갯짓은 새를 더 높은 곳에 올려주기도 하지만 쉼을 허락하지 않는다. 엘비스의 삶을 잘 압축한 표현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탁월한 비유에 맞춰 엘비스 삶의 다양한 요소를 조율하지 못한 채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의 과잉 나열에 그치고 만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바즈 루어만의 다른 히트작과는 달리 어설픈 트리거 남발에 실패해버린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엘비스는 당시 보수적인 백인들이 ‘여성스럽다’고 느낄 만한 패션과 몸짓을 체화한 자이기도 했다. 엘비스의 흑인성과 여성성은 곧 그의 ‘상품성’이 되었다.
**영화를 본 후 찾아보니, 로튼 토마토에 비슷한 평이 있었다. 평론가 Marcelo Stiletano는 “루어만은 모든 실존적 디테일에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들은 끝내 허위의 제단에 희생되었을 뿐이다(Even though Luhrmann seems really interested in all the existencial details, they end up sacrificed on the altar of pretension)”라고 이 영화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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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왕비의 삶, 보통 여성의 삶 <코르사주>
영화의 제목과 같이 주인공인 엘리자베트는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 역할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지성과 신체력은 ‘여성'이라는 미명하에 국가라는 옷에 달린 왕비라는 코르사주가 되어버린다. 왕비라는 신분은 구속이나 억압 없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엘리자베트는 영화 초반부터 흉부를 꽉 조이는 코르셋 때문에 호흡곤란으로 귀빈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기절한다. 지난 역사 속 여왕의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보통 여성의 삶과는 다르지 않았다. 영화는 여왕이 자신의 코르셋을 조이는 하녀에게 ‘더 조여'라며 엘리자베트가 겪었을 숨 막히는 삶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비극적인 삶에도 희로애락은 있다. 작고 소소한 일상이 공유될 때 그 사람의 미소와 눈물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솔직한 욕망이 드러날 때 우리는 주인공에게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덕분에 한 여왕의 일대기가 아닌 한 여성의 삶을 공유하는 영화로 다가온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의 결말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현실성 있는 삶이기에, 죽음만큼은 자유로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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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 여름(2023)> 리뷰
최은영 작가는 『쇼코의 미소』로 처음 만났다. 이 책이 좋은 인상을 남겼음에도, 본디 나는 한 작가의 모든 책을 독파하겠다는 멋진 목표를 세우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므로, 애써 그의 작품을 찾아 읽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인 <그 여름(2023)>을 감상한 후 오랜만에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고 ‘찜 목록’에 『그 여름』을 빠르게 추가했다. 원작이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 스포일러 주의
<그 여름(2023)>은 로맨스/드라마 장르의 애니메이션답게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고등학생인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살 여름 처음 만난다. 기실 첫 만남이 썩 좋진 않았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수이가 찬 공에 이경의 안경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으로 색칠된 사건은 사랑으로 확대된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수이는 딸기 우유를 매일같이 사 왔다. 염려와 걱정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몸은 좀 괜찮니,’라는 서투른 한마디가 만남을 위한 구실로 변했을 때 둘은 자연스럽게 이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수이와 이경, 두 사람이 마주한 사회는 그다지 녹록지 않다. 비교적 ‘일반적’이라 여겨질 수 있는 요소마저 약간의 ‘다름’이 첨가되는 순간 공격 대상으로 둔갑하는 곳이므로. 예컨대 이경이 자연적으로 타고난 갈색 머리카락과 눈은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악의에서 비롯된 공격을 막아주거나 돕는 이도 적은지라, 수이의 부상은 다시금 아프게 벌어진다. 게다가 수이 개인이 품었던 기나긴 인생의 꿈이 순식간에 지워졌음에도 그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것뿐, 제대로 된 치유 과정조차 묘사되지 않는다. 고작 십 대 소녀 두 명에게 세상의 부조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싸우라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 수이와 이경의 대응은 자그맣다. 스쿠터를 타고 길을 달린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저수지의 조그마한 안식처로. 그곳에서 꾸는 꿈은 무엇보다도 달고 찬란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나 과거와의 시공간을 잠시 끊어냈을 때, 봄이 흐르고 여름이 되었을 때 약속하는 먼 미래에서 이경은 불안을 감지한다. 우리가 그때까지, 그때까지 정말 함께일 수 있겠는가. 고대 그리스의 프시케 신화에서도 지적했듯 한 차례 의심이 깃든 자리에 사랑이 자리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 생활은 모든 걸 바꾸어놓았다. 서로가 공유하는 시간부터 인간관계를 비롯한 전반적인 문화는 물론, 털어놓는 꿈의 내용까지. 그저 습관 같은 사랑만 남아 존재한다. 비슷한 공간과 제약에 시달렸던 때엔 몰랐던 차이가 점차 거대해져 무겁게 이경을 압박한다. 이경은 결국, 간호사로 일하는 은지를 만나며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제목은 '그 여름'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두 사람이 실로 안정되어 있던 시간은 겨울이다. 영원하길 바랐던 한 순간을 꼽아야 한다면 겨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궁금할 만큼 안정적이고 따스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그리고 소설의 제목이 여름에 주목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십 대 마지막에 시작하여 이십 대 초반에 끝난 연애의 찬란함과 쓰라림이 모두 환한 빛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기 직전에 이런 풍경만 기억하겠지,라고 독백한 이경이 묘사한 시간은 여름철의 몸짓이었다. 다만 그렇기에, <그 여름(2023)>은 다분히 이경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이경만의 이야기이며 미숙했던 시절에 대한 헌시이다.
<그 여름(2023)>은 기본적으로 이경이 수이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사건을 회고하는 이야기지만 수이는 연인임에도 잘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말과 감정으로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혀오는 사건에 몸으로 버텨내고 생존을 증명함으로써 단단해지는 부류의 사람. 이런 수이를 이해하고 포용하기에 이경은 어렸던 듯하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며 헤어져선 안된다는 것을, 헤어진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 두 사람에게 상처가 될 것이며 후회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하게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운동을 하며 한 사람의 몸으로 모든 것을 감내해 왔다고 묘사되는 수이는, 이별을 고하는 이경에게 말한다. 어차피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니까 괜찮다고.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니까, 괜찮으니까 가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물건을 돌려주고자 수이의 월세방에 온 이경에게, 수이는 말한다. 왜 돌려줘, 그냥 갖거나 버리지. 헤어지게 되면 이경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들을 수 없게 된다는 것에 슬퍼하는 수이에게, 이경은 그야말로 전부였다. 전부였기에 전부를 내어줬고 삶으로 말했다.
다른 때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며, 자신이 이별을 후회하리라는 것을, 이경 역시 알고 있었다. 이렇듯 알면서도 하는 선택은 어리석지만 한편으로는 숙명적이기도 하다.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자기 충족적 예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따금 그 흐름에 스스로를 맡기며 기꺼이 자멸한다. 이 시절이 흐른 후 수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은지와 고작 일 년가량에 불과한 연애를 끝마쳐야만 했다는 이경은 또 어떤 삶을 살았을까. 후회하지 않았을 리 없는 삶이지만 충실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 혹은 사랑은 긍정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어차피 실패와 성공은 다분히 자의적인 것이기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경의 선택은 삶이 유혹하는 어떠한 불가항력에 대한 수긍이라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시계가 반사하는 그 반짝임, 순간의 일렁임에 눈을 돌리고 마는 천진한 실수에 대해 무어라 하겠는가. 다만 이것 혹은 저것, 이라고만 세계를 확정 짓고 분류했던 어른들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사랑 혹은 이별이라는 이분법적 세계에 이경마저 침식당한 것이 내게 남은 한 줄기 안타까움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엔 끔찍한 폭력과 혐오가 없다는 점이 적지 않게 위안이 되었다. 이경이 지새운 여름은 그저 미숙함으로 점철된 시간이다. 어쩌면 여름은 그런 미숙함마저 감싸안는 계절일지 모른다. 여름은 어디로 가지를 펼쳐야 할지 모르는 나무들이 펼치는 신록의 계절, 어디로 불어야 할지 모르는 비바람이 재앙처럼 닥쳐오는 장마와 태풍의 계절이기도 하니까.
원작이 있었기 때문일까, 영화의 기본적인 뼈대에 있어 크게 부족한 점을 느끼진 못했다. 말했듯 애니메이션 <그 여름(2023)>은 최은영 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을 만큼 매력적인 화면을 당당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한국인이기에 찾을 수 있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동안 이스터 에그와 같은 즐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다만 소설을 영화로 전환하며 소설 속 독백을 지나치게 고스란히 가져온듯한 몇 부분이 다소 아쉽다. 소설의 문법은 영화 대본의 문법과 다르다. 문자로만 가득한 세계에서 골라야 하는 어휘는 영상과 음악이 공존할 때 사용하는 어휘와 1:1 대응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점을 다소 간과하여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던 도중 귓가에 부자연스럽게 와닿았던 대사가 몇 있었다. 또한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을 듯한 관계 묘사가 오로지 61분에 압축되며 원작보다 투박해진 듯하였던 점이 미련처럼 내 마음에 남았다. 이것이 내가 작가의 책에 손을 뻗고자 하는 이유이니 어떤 의미로는 장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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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기억 속에는 실사로 남다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기억 속에는 실사로 남다
영화 리뷰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감독]호아킴 도스 산토스, 켐프 파워스, 저스틴 K. 톰슨
출연] 샤메익 무어, 헤일리 스테인펠드
시놉시스] 여러 성장통을 겪으며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스 모랄레스. 그 앞에 다른 평행세계의 스파이더우먼 그웬이 다시 나타난다. 모든 차원의 멀티버스 속 스파이더맨들을 만나게 되지만, 질서에 대한 신념이 부딪히며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긴다. 상상 그 이상을 넘어서는 멀티버스의 세계가 열린다.
#스포일러 유의#
실사 영화를 보고 있는걸까??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본지 거의 3주가 다 되어 간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으면서 영화를 떠올리면 디즈니나 지브리와 같은 애미네이션을 봤다는 느낌보다 실사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작품이었다. 분명히 2D와 3D 그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애니메이션이 분명했음에도 마일스와 그웬, 그리고 다른 스파이더맨들까지 이들을 연기한 배우가 누구였지? 하고 떠올리면 그제서야 아,, 이거 애니메이션이었구나 뒤늦게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나서도 해당 작품이 실제 배우들로 연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 보다는 이건 애니메이션이어서 가능했던 작품이었다는 확신에 찬 감상평을 내릴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만화이기에 표현할 수 있었던 캐릭터의 움직임을 강조할 수 있는 부분, 그리고 오히려 뚝뚝 끊어지는 연출을 통해서 박진감이 더 살 수 있었던 부분 등 만화적인 요소를 부각하면서 영화의 집중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던 만화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잘 살린 작품이었다.
결국에는 희생을 해야 되는가?
영화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감정은 스파이더맨이 참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평행 세계 속 존재하는 아주 많은 스파이더맨들은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세계에서 다른 얼굴과 성격, 가정 환경에서 자라가지만 결국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희생을 통해서 다른 모든 이를 구하는 그런 희생적인 캐릭터였다.
이러한 과정이 없으면 진정한 스파이더맨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스파이더맨 세계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에서라면 절대 스파이더맨이 되서는 안됐었던 마일스가 ‘스팟’의 농간으로 스파이더맨이 됐고, 평행세계의 대장 미겔 오하라는 이를 정상화하기 위해 마일스에게도 동일한 스파이더맨의 루트를 걷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이를 피해 마일스는 도망치면서 파트1은 끝이 난다. 영화를 보면서 과연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왜 스파이더맨으로써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한 세계가 사라진다고 설명은 되고 있지만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가가이 들었다. 마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희생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따라야만 한다는 게 성격상 이해가 되지는 않아서 도망친 마일스를 속으로 응원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과연 마일스가 파트2에서는 어떻게 기존 스파이더맨들을 저지하고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지 기대가 되는 포인트기도 하다.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비주얼, 설정, 사운드, 음악 등 영화의 모든 요소가 궁합을 잘 이루고 있었고, 화려함 속에서도 캐릭터의 서사를 잘 풀어내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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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4년 영화 '듄' 기초 요약
- 1984 영화 '듄' 비하인드 스토리 소개
- 듄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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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 티저 예고편
아이들의 낙서가 사라져 붕괴 위기에 처한 낙서왕국은
낙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지구 침공을 시작한다.
낙서왕국의 위험한 작전을 막기 위해
지상의 용사로 선택 받은 짱구는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미라클 크레용’을 얻게 된다.
쓰윽 쓰윽~ 그려 그려~!
짱구가 미라클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자
브리프, 가짜 이슬이 누나, 부리부리 용사가
스케치북 밖으로 튀어나오는데..!
과연, 크레용 용사 짱구는 낙서 용사들과 함께
위험에 빠진 떡잎마을과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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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설강화> 하이라이트 예고편
정해인&지수의 [설강화 : snowdr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