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24 10:06:37
10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미국판 <오징어 게임>, 데이비드 핀처 참여

국내에서는 <나를 찾아줘> 등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미국판 <오징어 게임>에 참여합니다.
<오징어 게임: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리메이크가 아닌 미국을 배경으로 한 스핀오프 시리즈로 변경되어 원작의 캐릭터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으며, 2025년 말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초 The Playlist의 로드리고 페레즈는 핀처가 2021년부터 이 스핀오프를 구상해 왔으며, 이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시기와 맞물린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핀처는 <차이나타운> 프리퀄 프로젝트를 뒤로 미루고 <오징어 게임>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넷플릭스는 아직 이 프로젝트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페레즈에 따르면, 지난해 핀처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드라마 <유토피아>의 작가 데니스 켈리를 영입해 각본을 맡겼으나, 켈리가 여전히 참여 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CGV아트하우스 20주년 기획전

CGV아트하우스가 20주년을 맞아 기획전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프로그램은 연도별 한국 독립영화 화제작과 국외 예술영화 화제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수꾼>, <잉투기>, <우리들>, <홀리 모터스>, <문라이트> 등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들은 물론이고, 관객 수 역대 1위 작품인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시네마톡의 첫 작품인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도 상영될 예정입니다.
정식 개봉을 놓쳐서 아쉬웠던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닐까요?
한스 짐머 <듄: 파트 2>, 오스카 레이스 탈락

<라이온 킹>과 <듄>으로 두 차례의 오스카를 거머쥔 바 있는 음악감독 한스 짐머의 올해 수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카 아카데미 규정에 따르면, 후속작이나 프랜차이즈 작품의 경우 기존 음악의 20% 이상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듄: 파트 2>의 경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한스 짐머는 Variety와의 인터뷰에서 상을 위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듄: 파트2>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러운 결말을 향해 테마를 확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쓰여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차기작 화려한 배우 캐스팅

<레버넌트: 죽음으로 돌아온 자>로 오스카를 수상했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차기작에 캐스팅된 화려한 배우 라인업이 화제입니다. 톰 크루즈를 필두로 산드라 휠러, 리즈 아메드, 존 굿맨, 마이클 스털버그, 제시 플레먼스 등이 출연할 예정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냐리투의 영화는 "세상의 가장 강력한 인물이 자신이 인류의 구세주임을 입증하려고 미친 듯이 나서지만, 자신이 촉발한 재앙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전에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
- 현실에서 미웠을 법한 인물을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의 힘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로스트 도터>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그런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극중 인물에 이입하며 느낀 복잡한 감정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영화를 보며, 그리고 보고 난 후 느낀 감정이 마구 요동쳐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이 복잡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어 극장을 떠난 후에도 내 머릿속과 마음 속을 사로잡고 있는.
<로스트 도터>가 내겐 그런 영화였다.
영화관을 떠난 뒤에도 영화 속 주인공인 레다와 니나라는 인물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로스트 도터>는 참 복잡한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각자 얻어가는, 생각하게 되는,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다를 것이다.
본 리뷰에서는 내가 유독 깊이 생각하고 집중했던 점들에 주력해볼 예정이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레다(올리비아 콜먼)'의 그리스 휴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레다는 이전에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고 키우다가 '엄마'로서 요구되는 모성애가 깃든 역할들을 견디기 어려워서(혹은 견뎌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녀는 남편과 어린 두 딸을 두고 몇 년 간 집을 떠나 있었고, 그리고 바람도 폈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레다는 휴가로 온 그리스에서 어린 딸을 가진 젊은 여자 '니나(다코타 존슨)'를 보고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린다.
레다는 자신의 과거(제시 버클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그리고 닮은 모습을 보이는 니나를 보고 휴가 내내 자유롭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죄책감에 쌓여 있는 모습을 보인다.
- 자식들은 끔찍한 부담이에요.
영화의 초반부에 그녀가 자신의 딸들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첫째 딸은 자신을 흡수해버리고, 둘째 딸은 자신이 예쁜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두 딸을 소개하는 레다의 모습에서는 왜인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레다는 '나는 내 자식들이 나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예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니까.' 라는 말을 남긴다.
나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나를 안 닮은 것이니까, 즉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니까.
영화 속에서 꾸준히 교차되어 보여지는 어린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젊은 레다는 가족보다 '나 자신의 삶'을 더 중요시여겼던 사람이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요구되는 역할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나의 꿈', '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로서 요구되는 희생을 견뎌내지 못한다. 혹은, 그 희생을 견뎌내는 것을 포기한다.
영화의 주요 사건은 레다가 니나가 잃어버린 딸을 찾으면서, 그리고 니나의 딸의 인형을 훔치면서 시작된다.
레다는 니나의 딸의 인형을 보고 젊은 시절, 첫째 딸 비앙카에게 건넨 자신이 아끼던 인형을 떠올린다.
젊은 시절의 레다는 자신이 아끼던 인형에 비앙카가 낙서를 하자 욱해서 그 인형을 창문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젊은 시절의 레다는 딸에게 종종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녀에게 자꾸 말을 걸고 장난을 치는 딸의 행동이 거슬린다고 느끼곤 했다.
과거에 욱해서 딸이 보는 앞에서 인형을 냅다 던져버린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아끼던 인형에 대한 미련에서 비롯된 것인지, 정신을 차린 순간 레다는 자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니나의 딸의 인형을 가져왔음을 깨달았다.
니나는 레다의 젊은 시절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자식의 보챔을 거슬려 하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종종 우울해 보이고, 그리고 바람을 피고.
자유와 사랑을 찾아 3년간 자식과 남편을 떠나 있던 레다가 잠시 집에 돌아오자 첫째 딸 비앙카는 이전처럼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장난을 치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녀에게 과일껍질로 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과일껍질을 끊기지 않게 길게 잘라서 뱀 모양을 만드는 것은 예전부터 레다가 자주 해주던 것이었다.
레다는 과일껍질을 다 자르고 슬픈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황급히 떠난다.
아마도 비앙카가 조심스레 건넨 이 말은 과일껍질로 뱀을 만드는 그 긴 시간 동안 엄마가 떠나지 않았음 싶어서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직 어리지만 또 엄마가 떠날 것을 알아버렸기에 최대한 그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
니나와 니나의 딸, 그리고 그녀의 남편, 그녀의 지인들은 영화 내내 (레다가 가져간) 니나의 딸의 인형을 찾는데 온 신경을 쓴다.
레다는 그 인형을 돌려주려다가도 자꾸 타이밍을 놓치고, 선반에 넣어둔 인형이 잠시 없어져서 혼자 전전긍긍하곤 한다.
레다가 인형을 가져간 것을 들킬 것 같은 마음에 스크린 너머의 관객인 나도 계속 불안하곤 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리스를 떠나기 전 레다는 니나에게 인형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이 인형을 가져갔다고 말한다.
왜 인형을 가져갔냐는 니나의 질문에
나는 버릇없는 엄마니까.
라고 대답한다.
이전까지는 계속 자신이 인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자꾸 상황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던 레다는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변명을 하지 않았다.
휴가 내내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들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고, 공허해보였던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인지했다.
그리스를 떠나던 중, 해변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레다는 잠에서 깬 뒤 비앙카에게 전화를 건다.
동생과 함께 있던 비앙카는 그녀의 엄마에게 이런저런 일상을 이야기한다.
레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오렌지 껍질로 뱀을 만들며 전화기 너머에서 두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레다를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레다'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비난적이지 않다.
100%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을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드라진다.
레다에게 그저 담담하고 심심한 위로 한 마디를 전하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라고.
레다를 바라보는 주된 시선이 비난적이지 않아서 관객들도, 나도 마냥 그녀를 질책하지 않을 수 있던 것 같다.
참 많은 생각이 복합적으로 드는 영화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남편과 두 아이에게 상처를 준 레다는 이기적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자유와 사랑을 찾아 떠난 것이라는 자신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그녀를 마냥 칭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또 마냥 질책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내가 부모라면, 부모로서 주어지는 그 역할들을 성실히 이행해낼 수 있을까?
희생을 감수하면서 꾹 참고 그 책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까지는 '아니오'이다.
나 자신을 향하지 않는 맹목적인 희생이란 마냥 쉬운 것이 아니다.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특히 나의 역할이 '부모'라는 것은 더더욱.
그래서 아직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레다를 더 질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죄책감과 아픔을 뒤늦게 절실히 느낀 레다를 향한 이 영화의 위로 어린, 담담한 시선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다.
현실에서 마주했다면 마냥 미웠을 인물도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을 마냥 비난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영화가 그런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인 그녀의 행동을, 그리고 그녀가 느낀 죄책감과 고통을 이 영화는 보듬어준다. 그녀를 토닥여준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그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스트 도터>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
- 드디어 마블이 오답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최근 마블 스튜디오 성적이 부진했던 것, 특히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개봉하는 작품들 거의 모두 마블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영화를 좋아하는 씨네필들에게도, 평단에게도 실망감을 선사한 것은 통계적으로도 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억지스러운 PC주의, PC주의가 들어간 영화는 무조건 실패한다.'와 같은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마블이 새로운 장을 열면서 전과는 또다른, 조금 더 깊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PC주의를 영화 속에 넣은 것으로 추측되나, 의도가 어찌되었든 모든 이들에게 실망감을 사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마블의 이러한 연이은 실패의 이유에 PC주의에 대한 무분별한 탓, 무조건적인 비난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마블이 지금처럼 부진한 성적을 받고 있는 데엔 '설득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단순 우주에서 다중 우주로 뻗어져나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설득 못 시켜서, 세대 교체를 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배우,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던 이유에 대해서 설득하지 못해서, 영화팬들에게 영화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OTT 서비스를 사용해서 자신들의 이야기 템포를 따라와줄 것을 설득시키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마치 마블의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고, 오답노트를 작성하면서 본인들의 과오를 하나씩 수정해나가는 영화로 보인다.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그 점을 보완하고, OTT 서비스를 무조건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고 싶게 만드는, 마치 마블의 영광스러웠던 시대의 희망 의 뿌리를 보는 것 같은 작품이었다.
영화의 이야기는 물론 마블 시리즈의 한 작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작들의 이야기에서 이어지고,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작품들에서도 이어진다. 마블 스튜디오 또한 영화 <아이언맨1> 개봉 이후 1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동안 쌓여왔던 작품들이 꽤 많고, 또 그만큼 이야기가 매우 깊어졌다. 이에 더해,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가 가세해 마블 스튜디오의 전반적인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있어 그 양은 갈 수록 비대해졌다. 그렇기에 최근 많은 이들이 마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면 설레는 기대보다 "전작들 못 봤는데, 못 따라가면 어떡하지? 돈 낭비하는 거 아니야?"라는 우려 섞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점을 과소평가했던 것인지, 실제로 최근 마블 스튜디오는 이런 점에서 날 선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를 드디어 깨달은 것인지,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작품 내에 전작들의 설정들을 친절하고, 설득력있게 제시했고, 전작들을 보지 않았던 관객들에게도, 전작들을 모두 섭렵한 관객들에게도 꽤나 만족스러운 작품을 제시했다. 또한 이전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매력까지도 불어 넣어, 이전 작품들에 대한 반성문만이 아닌 개선과 포부가 담긴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 액션 영화에 비법 양념을 더해 마블만의 맛을 내다.
장르가 액션인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울 때는 바로 액션마저 별로일 때이다. 액션 장르 영화에서 이야기가 아무리 엉망이어도 액션이 수준급이라면, 최악은 면할 수 있는 것이 액션 장르의 힘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전에 먹어봤던 맛있는 맛의 액션에 새로운 맛을 한 숟갈 더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는 이전 작품들의 "스티브 로저스"의 캡틴이 아니라 "팔콘"의 캡틴이기 때문에, 전작들의 시원하고 파워풀한 액션씬보다는 윙슈트를 이용한 화려한 곡예비행과 날개 및 기타 파츠들을 이용한 볼거리 많은 액션을 보여준다. 또한 빌런으로서 2008년 작품,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에 등장한 "사무엘 스턴스"와 "썬더볼트 로스"이자 "레드 헐크"를 등장시키는데, "캡틴 아메리카"의 아쉬운 파워풀한 액션을 "레드 헐크"가 채워준다는 데에서 빌런과 히어로이지만 작품의 깊이감을 위해 상보적인 존재로서 장면들을 만들어간다. 또한 '서펀트 소사이어티'라는 새로운 집단을 등장시키면서 "캡틴 아메리카"의 액션을 선보이기 위한 발사대로서 꽤 좋은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는 또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스파이물, 추리물과 같은 장르적 특징을 띄기도 한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억울한 이의 누명을 벗겨주어야 한다는 "캡틴 아메리카"의 사명감과 친구와의 의리로 임무를 수행하는데, 여느 스파이 장르 영화가 그렇듯 정부와의 갈등을 보여주게 된다. 또한 단순 빌런과 입체적인 면을 지닌 빌런을 공존시키고, 빌런의 등장을 지속적으로 암시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더해갔다. 이 과정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슈트를 입지 않은 채 맨몸 액션을 선보이는데, 별다른 초능력은 없지만, 영웅으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강력한 악당들에게 맡서는 한 인간의 의로운 모습을 영화는 강조한다.
마블 시리즈 내에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인물들은 많지만 실제로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액션을 펼치고, 임무를 수행했던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그동안 못했던 한을 푸는 것인지, 고공 액션을 굉장히 훌륭하게 선보이고, 그의 슈트를 최대한 활용한 액션씬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마블의 창의력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액션의 화려함, 그 창의성을 더욱 돋보이기 위해 중간 슬로우 모션을 활용하였는데, 이 또한 멋있으면서 재밌게 다가왔고, 이를 남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었다 보여진다.
'팔콘'의 "캡틴 아메리카"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팔콘과 윈터솔져>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때부터 그가 "캡틴 아메리카"가 된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의 걱정거리였다. "갈수록 강력했지는 빌런들을 아무리 방패와 최첨단 윙슈트가 있다고 한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영웅이 이길 수 있을까?" 영화는 이런 의문을 부정하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맞서 싸운다. 영화 속엔 '혈청 맞을걸'와 같은 대사가 빈번히 등장한다. 작품 내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아 그 한계에 아쉬움을 표하고, 영화 자체적으로도 그의 갈비뼈가 부려졌다는 대사를 빈번히 사용하거나, 팔에 깁스를 한 것을 보여주면서 히어로 영화에서 잘 볼 수 없었던 히어로의 신체적 아픔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히어로에 대한 응원과 공감으로 승화시키고, 힘이 강력해서 영웅인게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영웅이기 때문에 영웅인 인물에게 그를 기대하게 한다.
- 마블이 생각했던 '영웅이란', 소를 잃은 후에야 설득의 시간을 가지다.
앞서 이야기 했듯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를 강력한 영웅일 때에는 멋지고, 힘쎈 인물처럼 묘사하지만, 슈트나 방패가 없을 때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굉장히 의도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심지어 영화의 종반부 마지막 액션씬에선 "레드 헐크"에게 붙잡혀 날개를 뜯기는 "캡틴 아메리카"는 영웅에게 좀처럼 들기 힘든 감정인 '불쌍함'이 생각났다. 영화는 영웅의 어쩌면 나약해보일 수 있는 장면을 과감하게 보여주면서 단순히 힘이 세거나, 무술을 잘하거나, 최고의 기술력이 있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응한다. "스티브 로저스"의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의 캡틴 아메리카를 비교하면서 앞선 이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희망을 주었다면, 그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는 대사를 통해, 본인들이 해석한 "캡틴 아메리카"를 관객들에게 설득시킨다. 또한 "캡틴 아메리카"의 불굴의 의지를 언급하면서 그가 영웅인 이유를 대사를 통해 설명하는데, 이 또한 관객들의 우려와 걱정을 아주 말끔하게 씻어내는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블은 앞선 작품들에서 관객들의 걱정과 우려를 어찌 보면 이해해줬으면 하는 식의 태도를 갖췄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은 만들고 싶은 세계관을 만들테니 이를 그저 관객들이 이해하고, 따라만 와줬으면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말이다. 하지만 본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이해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을 설득시키고, 그들의 손을 붙잡고 세계관을 안내시켜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영화는 또한 이야기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치의 플롯을 곁들였다. 영화 <이터널스> 이후 등장한 새로운 광물을 두고 세계 강국들이 이를 차지하기 위해 협의하고, 조약을 맺으려 하며, 광물 때문에 전쟁까지도 이어질 뻔했던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을 제시하는데, 이는 실제 강국들의 석유와 석탄을 두고 경쟁했던 시기를 다루는 것 같아 서사의 깊이감이 더해졌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눈치싸움, 비자금을 사용했다는 정황 등의 이야기들을 히어로 영화에 접목시켰으며, 이를 "캡틴 아메리카"가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직접 투입하여 몸을 던져 싸우기도 하면서 동시에 작중 빌런이자 누구보다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인물의 입체적인 면을 덧붙여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이 묘미는 단순히 나쁜 이가 세상을 어지럽히자 조국의 영웅이 무찔러 해결한다는 데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기본 바탕에 '친구', '가족', '스파이', '신념과 의지' 등을 붙인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본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킥을 통해 친구를, "썬더볼츠 로스"를 통해 가족과 최종 빌런의 묘략에도 조국에 대한 신념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은 것이다. 빨리 시작하길 바란다."라는 개그맨 박명수의 명언 모음집 중 하나가 생각난다. 어쩌면 마블은 정말 늦은 것일지 모른다. 너무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고, 팬 유망주들 또한 너무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나서지 못하고 있고, 평단마저 더이상 마블 영화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필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을 달리 생각한다. 잃었더라도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외양간을 고치는 점에 위안을 보낸다는 입장이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완벽히 장점만을 지닌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속도가 너무 빨랐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그 메시지들이 너무도 의도적이라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그 나머지 점들을 챙기지는 못했다는 장점이자 단점도 있었고, 영화의 종반부를 너무 성급하게 끝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럼에도 본 작품을 통해 그들이 드디어 외양간을 고치려는 의도를 볼 수 있었고, 스스로 오답노트를 작성하면서 곧 있을 최종장을 향해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 또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필자는 마블에게 희망을 걸고, 그들의 행보에 기대를 걸어본다.
어느날 친구가 필자에게 아직도 마블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냐고 물어본 적 있다. 이에 필자는 아직 머리를 밀봉하기 전이라고 대답했다. 아직 필자는 머리를 밀봉하고 싶지 않다. 마블의 그간 행보가 맘에 들어서도, 그들의 연이은 악수를 무조건 응원해서도 아니다. 그저 마블 스튜디오 작품엔 필자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고, 함께 성장해나갔다는 생각에 메타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블은 이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아직 필자와 같은 팬들이 남아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 팬들을 더이상 실망시키지 않아줬으면 한다. 그들의 행보를 꾸준히, 계속해서, 아직까지도 응원한다.
-
- 모든 진실은 사실과 맥락의 만남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유럽을 탈환하려는 영국군은 시칠리아 상륙을 앞두고 마치 그리스가 작전 목표인 것처럼 히틀러를 기만할 작전을 궁리한다. 이미 독일군의 방어선이 시칠리아 배치된 가운데, 그들을 꾀어내려는 영국군의 수많은 작전들은 모두 실패로 귀결된다. 그러던 중 해군 정보장교 ‘이웬 몬태규(콜린 퍼스)’와 ‘찰스 첨리(매튜 맥퍼딘)’는 부관인 '이언 플레밍(자니 플린)'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이른바 ‘민스미트 작전’을 계획한다. 익사한 해군 장교로 위장한 시체에 가짜 작전 계획을 흘려서 독일군이 자연스럽게 영국군의 기만책에 속도로 만들자는 것. '고드프리(제이슨 아이삭스)' 제독의 부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처칠(사이먼 러셀 빌)'은 민스미트 작전의 시행을 지시한다. 이에 몬태규와 첨리는 '진(켈리 맥도널드)'과 '헤스터(페넬로페 윌턴)'의 도움을 받아 런던의 한 창고에서 발견된 노숙자의 시체를 영국의 해군 장교 ‘윌리엄 마틴’ 소령으로 위장해낸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었던 듯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 개인적인 사진과 공연 티켓도 준비하며 빈틈없는 첩보 작전을 준비한다.
'민스미트 작전'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지중해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서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인 시칠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낸 작전이다. 흔히 민스 파이로도 알려진 영국의 전통 음식인 '민스미트(Mincemeat)'라는 이름에서 이 작전은 그 목적이 드러난다. 고기(meat)라는 이름과 달리 말린 과일과 스파이스, 으깬 사과, 시트러스, 견과, 그리고 (때때로) 약간의 브랜디로 속을 채운 음식처럼, 연합군의 공격을 예측해 시칠리아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독일군을 유인하기는 미끼를 던지는 작전인 것이다.
통상적인 첩보영화와는 다른 <민스미트 작전>
그래서인지 <미스 슬로운>으로 이름 알린 존 매든 감독과 <1917>, <이미테이션 게임>의 제작진이 만난 <민스미트 작전>은 전쟁에는 보이는 전쟁과 그렇지 않은 전쟁이 있다는 독백을 통해 첫 장면부터 서로 속고 속이는 첩보작전의 내막, 그 회색 지대의 전쟁을 펼쳐 보일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즉, 앞으로 두 시간 동안 '민스미트'를 만드는 과정에 주목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민스미트는 바로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윌리엄 소령의 스토리다. 문제는 스토리라는 민스미트가 누군가에게는 예상과 달리 달고 맛난 반면에,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실망만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민스미트는 단지 독일군만 속일 뿐만 아니라, 작중 주인공들도 낚고, 심지어는 관객들까지도 낚아채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스미트 작전>에서는 흔히 첩보영화가 흔히 가지고 있는 공식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거대한 전투씬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스파이 간의 치열한 정보전이나 속고 속이는 간계나 음모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작전을 세우고, 상대가 속아 넘어오도록 기다림을 가지고 미끼를 흔드는 과정보다는 윌리엄 소령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드는 과정에 더 주목한다.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 군인인 것처럼 속이기 위해 그의 가짜 신분을 만들고, 닮은 사람을 골라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그의 성향과 성격도 가정하고, 있을법한 연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만드는 세세한 과정이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민스미트 작전>에는 소설이나 영화 속 캐릭터를 만드는 고충으로 가득하며, 이는 통상적인 첩보영화에 가득한 팽팽한 긴장감과는 다른 결의 긴장감이 러닝타임 내내 감도는 이유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사실과 맥락
흥미로운 것은 몬태규와 첨리가 독일군을 속일 진실을 만드는 방식이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이 지적한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리프먼은 그의 저서 <여론>에서 "진실의 기능은 감춰진 사실들을 밝혀내 그 사실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은 개별적인 사실을 파악하는 것과 그것들의 조합을 찾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즉, 사실이 눈에 보이는 텍스트(text)라면 그 텍스트들이 모인(con) 연관성, 곧 맥락((context)을 파악해야만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민스미트 작전' 역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사건이나 사안은 윌리엄 소령을 통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그 사건들이 위치한 맥락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물에 빠져 익사한 시체와 작전 계획, 연애편지가 텍스트라면, 그것들의 조합은 특정한 맥락 안에서만 의미가 생긴다. 이 작전의 본질은 각각의 사실이 갖는 취약성과 위험성을 간파해 역이용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사실과 맥락의 관계성을 그저 독일군을 상대할 작전의 영역에만 국한시키지 않는 대신, 독일군을 낚을 미끼를 만드는 주인공들의 삶으로 확장시킨다. 그렇기에 영화의 진면목은 그저 독일군을 속일 진실을 만들어 내는 과정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사실을 어떠한 맥락 안에서 풀어낼 것인지 고뇌하는 대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때 인물들의 고충은 두 가지 형태로 묘사된다. 우선 하나는 첩보영화에 걸맞은 몬태규와 첨리의 갈등이다. 직속상관인 고드프리 제독으로부터 몬태규의 동생이 소련의 첩자로 의심된다는 사실을 듣고 몬태규를 감시하게 된 첨리. 이제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실과 사건은 몬태규도 첩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의해 지배된다. 반대로 동생이 그저 한량이라고 생각하는 몬태규는 첨리가 증거로 내세운 동생의 각종 활동 사항이 그저 유흥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첨리에게 날을 세운다.
다른 하나는 로맨스다. 윌리엄 소령을 창조해야 하는 몬태규는 직원인 진의 사진과 실제 사연을 빌리고, 그녀가 직접 쓴 연애편지를 이용해 윌리엄의 가짜 연인을 만든다. 이 로맨스에 개연성을 더하기 위해 몬태규는 그의 약혼반지를 구매한 후 약혼녀의 모델인 진의 손가락에 끼워보기도 하고, 그녀와 함께 클럽에 드나들면서 생생한 연애 감정을 만든다. 문제는 몬태규와 진의 업무라는 단편적 사실이 서로 다른 맥락 안에서 세 개의 이야기와 삼각관계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진을 짝사랑하는 첨리는 상관과 부하 직원의 관계 이상으로 보이는 둘을 보면서 질투에 사로잡힌다. 첨리에게 몬태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진은 그간 봐온 몬태규의 모습과 그로부터 로맨틱한 감정도 가짜라고 단정 짓는다. 자신이 그저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몬태규는 뒤늦게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영화는 독일군이 볼 사실과 맥락의 관계를 왜곡시켜야 할 이들이 정작 눈앞에 놓인 퍼즐 조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로 다른 맥락 안에서 사실이 자아내는 긴장감과 감동
<민스미트 작전>은 사실과 맥락의 관계 앞에서 눈물 흘려야 했던 이들의 개인적 고뇌와 실패를 다시금 군사 작전을 둘러싼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윌리엄 소령의 시체를 스페인 해안가에 보냄으로써 입안한 작전을 모두 실행에 옮긴 몬태규와 첨리. 이제 본인들도 독일군이 보여주는 파편적인 사실만을 통해 나치의 계획을 간파해야 하는 만큼, 그들은 제한된 사실만 볼 수 있는 독일군이 의도한 대로 잘못된 맥락을 추론하기만을 기도한다. 이때 그들이 독일군의 반응과 시칠리아 상륙 작전의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그들의 개인적 경험을 맛 본 이상 그들이 완전히 잘못된 판단에 빠질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나치의 스파이를 모두 파악하여 감시하고 있다고 자신하던 차에 난데없이 등장한 새로운 스파이의 존재가 몬태규와 첨리의 갈등과 삼각 로맨스, 그리고 그들의 작전 계획에 종지부를 찍는 이유다.
한편, 역사가 스포일러인 영화의 끝은 사실과 맥락의 관계를 비틀어 뭉클한 감동을 안기기도 한다. 성공적인 기만 작전 덕분에 시칠리아 섬에 상륙하는 데 성공한 연합군. 경미한 희생이 있었을 뿐이라는 처칠의 전보는 이를 두고 기뻐하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그러나 전보의 글자 사이사이에는 검은 연기로 가득한 가운데 사망자와 부상자를 수송하는 시칠리아 해변의 풍경이 숨어있다. 몬태규와 첨리도 긴 시간 매달린 작전이 성공했는데도 소소하게 자축한다. 이렇게 영화는 동일한 사실도 다른 맥락 사이에 놓인다면 기쁨과 슬픔, 또 허망함이라는 상이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짜 윌리엄 소령의 무덤을 비추는 엔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국가적 시점에서는 영웅이지만, 가족에게는 그저 실종된 남매이자 아들이다. 사회 공동체 입장에서는 희생정신의 상징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전쟁의 희생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묘비를 비추는 장면에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정반대로 갈릴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민스미트 작전>은 적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운다는 절박함 만큼이나 마치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듯 보이기도 한다. 그 중심에는 해군 정보국장 부관이자 <007> 시리즈의 작가인 ‘이안 플레밍’이 있다. 영화는 ‘민스미트 작전’의 초안이 된 ‘송어 메모’를 작성한 바 있는 그가 마치 007 시리즈의 일부 구절을 집필하는 듯 독백하는 장면으로 수미상관 구조를 이룬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은 어떠한 맥락 안에 사실의 조각들을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예술가의 고뇌와 번민을 전쟁영화의 틀을 빌려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전부 작가라고 외치는 첨리의 대사나, 'M'과 MI6의 존재를 비롯해 해군 장교 출신인 제임스 본드의 유래를 암시하는 대목들도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문제는 이처럼 사실과 사실을 엮는 맥락, 그리고 사실을 통해 진실을 유추하는 이야기가 일관된 주제를 전달하는 것과는 별개로, <민스미트 작전>이라는 제목을 보고 관객들이 기대할 장르적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영화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집필해 독자들이 납득하는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듯한 주인공들의 행보에 주목한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의 고뇌를 다루는 영화의 감동은 첩보 영화 특유의 긴장감과는 무관하다. 실제로 첩보 장르 치고는 쫄깃한 장면이 그리 많지 않고,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과정에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많다. 즉, <민스미트 작전>은 예고편과 포스터, 공개 전 정보라는 사실을 통해 관객들이 만들어낸 첩보 영화 내지는 전쟁영화라는 콘텍스트와는 다른 진실을 선보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독일군을 속이려는 영국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연적을 속이는 주인공, 그리고 전쟁영화와 첩보영화의 탈을 썼지만 실제로는 로맨스와 예술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민스미트는 상반된 반응을 낳을 수밖에 없다. 간파한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탄탄하고 깊은 메시지로 가득한 파이를, 기대와 다른 내용에 속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실망 가득한 파이를 선물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꽤나 시원시원한 전개와 템포가 상당히 빠른 편집 덕분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전자의 재미만으로도 러닝타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사실, 맥락, 진실의 관계로 속을 가득 채운 민스 파이
-
- 40주년이 지난 둘리는 과연 진짜 어른이 된 걸까?
시놉시스
둘리는 1억 년 전에 부모님을 잃고 빙하 속에 갇혀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남극의 펭귄 무리가 실수로 건드려서 둘리가 있는 빙하가 서울로 가게 된다. 빙하가 서울에서 발견되었다는 특보로 인해 사람들은 빙하를 캐가기 시작하고 남겨진 건 뿌리만 남은 빙하와 둘리였다.
한창 여름철에 영희와 철수는 청계천에 버려진 공룡 인형(둘리)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아빠인 고길동의 반대로 둘리는 쫓겨나려고 하는데...
과연 둘리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둘리를 만나면서 고길동은 더 불행해졌다. 둘리가 평범한 동물이 아닌 초능력을 가진 아기공룡이여서이다. 고길동은 단지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고 한 것뿐인데 둘리가 나타나 망쳐버린다.
이 둘과의 신경전은 계속되는데 정말 고길동이 안타까우면서 둘리가 미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귀여운 공룡인 둘리의 행보를 보며 코믹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둘리의 주변 등장인물들도 매력이 있었는데 서커스단에서 온 또치와 밤하늘에서 별똥별로 떨어져 오게 된 도우너 그리고 언젠가 슈퍼스타가 되길 바라며 기타 연주를 열심히 하는 마이콜까지 전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었다.
도우너가 가진 타임 코스모스로 시간 여행을 해서 어린 고길동을 만나 혼내주려는 장면과 우주로 나가게 되면서 바요크라는 우주 해적단에게 쫓기는 이들의 사투를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잠시 스포일러를 말하자면 얼음별이라는 설정이 영혼들만이 가는 사후세계인데 그곳에는 죽은 둘리의 색시와 엄마가 있었다. 바요크 우주 해적단이 얼음별을 차지하면서 영혼들을 노예로 부리는데 이들을 풀어줄 인물이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바로 그건
우주를 구하는 건 고길동이었다. 이 예언을 우주 가시고기가 말하면서 마지막에 소드 마스터 고길동이 세상을 구한다. 결국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아기공룡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시사회를 보면서 40주년을 맞은 둘리의 모습에 너무 감동받았다. 옛 추억이 되살아나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이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세로 지금의 10대들은 많이 모를 것이다.
그래도 둘리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뻤고 좋았다!
둘리는 과연 어른이 된 것일까?
하니엘의 그것이 알고 싶다 <둘리 얼음별 대모험 편>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
- 명확한 메시지가 담긴 쥬라기 세계관의 마침표
인간의 등장은 생태계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모든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생태계에서 인간은 소중한 존재였고 무조건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대상이었지만 다른 생물들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서로 싸우고 죽이는 과정에서도 주변을 보호하면서 결국 그 수를 늘려갔다. 인간은 자신의 수를 늘려가면서 수많은 동식물을 대량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약을 만들었고 편리함을 위해 수많은 플라스틱과 여러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 주변의 자연환경을 소비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심지어 동물들을 잡아서 동물원 같은 시설을 만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인간 중심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어떤 생물이든 자신의 생존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생존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 좀 더 재미있는 걸 찾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동식물을 모아놓고 구경하는 시설일 것이다. 특히 동물원에는 수십 가지의 동물들이 갇혀서 인간의 구경거리가 된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인간은 재미를 느끼지만 정작 동물들은 본인들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동물들에게도 자유에 대한 권리가 있는지 여러 의견이 있지만 자연 상태에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가장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인간 중심의 생태계가 지구 전체의 생태계에 미치는 여러 악영향은 결국 인간이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쥬라기 공원> 세계관의 마지막 이야기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90년대부터 시작된 <쥬라기 공원> 세계관의 마지막 이야기다. 시리즈 전체에 걸쳐 공룡이라는 생명체의 신비로움과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과거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어낸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는 공룡을 바라보는 경이로움이 잘 담겨있다. 이미 멸종한 생명체를 재탄생시켜 현실화하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주로 악당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통제 시스템의 오류로 발생한 공룡들의 탈출과 반란이 이 시리즈 전체에 반복해서 담긴다. 2015년부터 이어져온 <쥬라기 월드> 시리즈도 이런 패턴을 똑같이 반복한다.
특히나 전작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공룡이라는 생명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있다. 이 시리즈 안에서는 공룡이지만 살짝 생각을 바꾸면 이 관점은 다른 지구의 생명체 문제로 확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영화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공룡이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 인물이었지만 그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그것을 통제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의 말미에 갇혀있던 공룡을 세상에 풀어놓는다. 공룡을 강제로 죽여서 사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도 있다. 바로 이안 말콤 박사(제프 골드블럼)다. 그는 공룡과 인류가 공존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다시 멸망하도록 놔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방법은 공룡들의 구역을 정해놓고 자연스럽게 소멸되도록 하는 것이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 내내 이 두 주장은 반복된다. 하지만 이번 마지막 편에서는 자연스럽게 공룡을 세상에 풀어놓고 그들이 적응해가던 소멸해가던 그것을 자연스럽게 놔둬야 한다는 쪽으로 무게추를 옮긴다. 그것은 인간과 공룡의 공존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한쪽의 멸망이 될 수도 있다. 그 결과가 어떨지에 대해선 영화가 결론을 짓고 있지는 않다. 대신에 영화는 다른 대립 축을 추가로 제시한다. 영화에는 악당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주인공들과 대립각을 세운다. 악덕 유전 공학자와 악덕 기업이 공룡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서고 그것을 막기 위해 주인공인 오웬(크리스 프랫)과 클레어, 그리고 오리지널 멤버인 그랜트 박사(샘 닐), 엘리 박사(로라 던), 이안 박사가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을 총동원한다. 공룡을 이용하는 쪽과 공룡을 놔둬야 한다는 쪽의 대결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이번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전체 쥬라기 시리즈를 통합하여 결론을 내린다. 이번에 등장하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오리지널 멤버들은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멤버들과 함께 등장해 시리즈의 대단원을 책임진다. 이들은 영화의 처음부터 등장해 꽤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하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공룡과 다시 조우한다. 과거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멤버들의 모습을 굉장히 반갑게 지켜볼 것이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건 바로 인간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지금 현재 주변에 있는 동물과 식물들에 인간들의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자생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완성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명확해진 메시지
공룡을 처음 등장시킨 <쥬라기 공원>이 보여준 경이로움은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그 강도가 많이 희석되었다. 그래서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는 점점 많은 수의 공룡을 등장시켜 그것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이번 마지막 영화에서 그런 경이로움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는 티라노를 비롯한 육식 공룡들이 대결을 벌이고 익룡이나 랩터 같은 다양한 공룡이 등장하지만 모두 그저 액션을 위한 등장으로 짧게 소비되어버리고 만다. 사실상 공룡의 추격이나 싸움에 인간이 개입할 요소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계속 지속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더 커졌다.
영화 전체에 관통하는 메시지는 꽤 명확해졌지만 나머지 부분은 아쉬운 점이 많다. 액션의 강도가 높아졌지만 이미 과거 시리즈에서 봤거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많아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또한 오리지널 멤버들의 등장을 위해 영화 초반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그들의 서사를 보여주게 되는데, 그래서 이야기가 조금 늘어진다는 느낌이 있다. 악덕 기업의 사장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바보 같이 묘사되어 있고 아무 대책이나 계획이 없는 것처럼 보여 허무하게 활용되고 퇴장해 영화적 긴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번 영화는 90년대부터 사랑받았던 <쥬라기 공원>과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통합하고 또 닫는다. 이제는 여려 영상기술의 발달로 공룡을 포함한 다양한 것들을 그래픽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까 공룡을 화면에서 보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한 경험이 아니게 된 것이다. 공룡이 나오는 쥬라기 시리즈는 더 이어질 것 같지 않다. 이 시리즈가 줄곧 주장해왔던, 인위적인 인간의 개입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만든다는 메시지는 아주 명쾌하게 전달하고 있고 영화의 마지막에도 그 메시지는 반복적으로 전달된다. 결국 이 시리즈가 보여주고자 했던 그 결말, 바로 인간과 공룡의 공존이다. 영화적 완성도는 조금 아쉽게 느껴지지만 과거부터 이어져온 전체 쥬라기 시리즈를 끝맺음하기 위한 결말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
- 아하! 우리 안의 특별함을 깨닫는 신호
뉴저지주 패터슨에 살고 있는 패터슨(애덤 드라이브)은 어김없이 오전 6시 눈을 뜬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직장인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직장으로 향하는 도중엔 아침에 본 성냥갑에서 받은 영감으로 시를 구상한다. 사실 패터슨은 버스기사이자 시인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중에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내인 로라(골시프테 파라하니)뿐이다. 로라는 패터슨이 언젠간 위대한 시인이 될 거라 굳게 믿지만 자신을 드러내기 꺼리는 남편의 모습에 답답해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내고야 마는 로라의 성격으론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오늘도 반려견인 마빈과 밤 산책을 마친 후 돌아온 패터슨은 다음 날을 준비하며 잠자리에 든다.
<패터슨>은 참 굴곡이 없는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패터슨이라는 평범한 개인의 하루가 7번이나 반복돼서 나열되니 굴곡이라는 것이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루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 짐 자무시는 같은 인물의 하루를 극한으로 파고들어 간다. 한 우물만 파는 것만큼 지겨운 것은 없고 영화에서 지겨움만큼 힘겨운 적(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면 자무시 감독이 남겨 놓은 평범한 개인의 삶에 담긴 ‘특별함’을 만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특별함이란 TV나 유튜브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정작 자신은 평범하다고 주장한다. 패터슨의 본업은 평범한(?) 버스기사다. 하지만 그의 비밀 노트엔 여느 시인들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시들로 가득하다. 아내인 로라만이 패터슨의 특별함을 알고 끊임없이 격려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아내의 칭찬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아내의 꿈에 진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로라의 꿈은 일주일 동안 여러 번 바뀐다. 컵케이크 집 사장에 기타리스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인테리어 업자까지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번 바뀌는 로라의 산만한 모습에 패터슨은 언제나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지만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의심이 무색하게 행동의 결과를 내는 것은 언제나 로라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자신이 맛없어 남긴 컵케이크는 대박이 났다. 패터슨은 영화 속에서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지만 로라를 향한 그의 표정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보인다.
분출되지 못하는 패터슨의 감정은 반려견 마빈을 통해 드러난다. 패터슨과 마빈은 사이가 안 좋다. 산책을 가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기본이고 집 안에선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갈등이 펼쳐진다. 이는 이성과 본능의 충돌을 패터슨과 마빈의 모습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양분된 패터슨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은 세탁소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래퍼를 만났을 때다. 노랫소리를 따라간 세탁소에서 패터슨은 문 뒤에 숨어 조용히 노래를 듣지만 마빈은 래퍼 앞에서 대놓고 자신을 드러낸다. 장소에 상관없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래퍼를 향한 두 캐릭터의 상반된 태도를 통해 이성과 본능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를 놓고 보면 마빈이 패터슨의 비밀 노트를 찢어버린 것은 어느 정도 그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패터슨은 복사본을 원하지 않았다. “번역본을 만드는 것은 우비를 입고 샤워를 하는 기분”이라고 말한 일본 시인의 말에 공감하는 패터슨의 모습으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패터슨은 스스로 시인보다는 버스기사라고 생각한다. 버스기사는 시인이 될 수 없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 시인과의 대화를 통해 위대한 예술가들은 현재 기억되는 것과 다른 과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시인이 반복하는 ‘아하!’는 평범함에 빠져 확신을 갖지 못하던 패터슨에게 자신이 지닌 특별함을 상기시켜주는 신호인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한 번쯤은 자신을 평범하다고 소개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으로 통일하지 않고 홀로 짬뽕을 시키는 것조차 튀는 행동으로 간주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함이 지나치면 참된 자신의 모습은 점점 잊혀지기 마련이다. 스스로 평범함의 늪에 빠져 자신을 잃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짐 자무시 감독은 <패터슨>으로 꺼지지 않는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
- 레전드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제아와 함께 리뷰하는 음악 영화 코다! ??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레전드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
브아걸의 리더 제아를 만나고 왔습니다!
레전드 보컬 제아와 함께 파헤쳐 본 영화 코다!
------------------------------------------------------------------------------------------------------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
- 영화 <인어가 잠든 집> 메인 예고편
우리 아이는 살아있어요” 절망 끝에 피어난 간절한 희망! ⠀ #히가시노게이고 소설 원작 [인어가 잠든 집] 메인 예고편 공개!
-
- 웨이브 <랜드스케이퍼스> 공식 예고편
크리스토퍼는 아내 수전과 프랑스에서 생활고에 처하자 의붓어머니한테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15년 전 영국을 떠난 이유를 털어놓으면서 경찰이 부부를 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