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4-09-08 13:00:44
우주를 넘은 우정
<숀더쉽 더 무비: 꼬마 외계인 룰라!>(2020)
2024년 9월 7일 토요일 20시에 은평 롯데몰 9층 스카이필드 야외 풋살장에서 잔디극장 야외 상영회가 개최되었다.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선착순 무료로 진행한 상영회였다. 영화는 <숀더쉽 더 무비: 꼬마 외계인 룰라!>(2020)이 상영되었다. 여름의 끝자락을 부여잡은 바람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품으며 날아가는 밤이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숀더쉽 더 무비: 꼬마 외계인 룰라!>는 아드먼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최신작이자 ‘숀더쉽’ 두 번째 시리즈 영화다. 점토를 사용하여 스톱 플레이 모션을 활용하는 연출 방식은 아드먼 애니메이션의 아이덴티티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우주를 넘나드는 내용이므로 점토 방식을 넘어 UFO나 로봇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다. SF 소재 활용뿐만 아니라 작품 전반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E.T>(1982), <월-E>(2008), <아마겟돈>(1998) 등 SF 영화의 오마주를 영화에 담아낸다. 특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OST와 함께 표현하는 오마주 연출 방식과 <월-E>의 오마주 캐릭터는 직관적이다. SF영화 오마주를 통해 제작자는 고전 영화의 존경심을 전하고, 어른들에게 친숙한 장면을 전하며, 아이들에게 재미를 전한다.
소재의 활용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영화는 캐릭터의 시너지를 더한다. 꼬마 외계인 룰라의 신비스러운 능력과 귀여운 외모는 ‘숀더쉽’ 시리즈에 어울리는 캐릭터로 소화된다. 초반부, 숀과 친구들이 벌이는 엉뚱한 장난과 사고들이 무색하게 룰라의 사고 역시 만만치 않다. 숀이 피곤한 안색을 보일 정도로 벌이는 룰라의 장난과 ‘에이전트 레드’ 일당의 추적을 피하며 UFO를 찾기 위한 여정에서 둘은 우정을 쌓아간다. 한편, 비처의 우정은 특별하다. 숀과 친구들의 장난을 제어하는 양치기 개로 숀과 대립 관계를 이룬다. 하지만, 룰라를 함께 집으로 데려가 주겠다는 공통된 목표로 대립자에서 협력자로 변하는 과정은 관객의 감정도 변한다. 숀과 비처는 피자를 통해 룰라를 만난다. 룰라를 무사히 집으로 바래다주는 결말처럼 피자로 처음 연을 닿은 이들의 둥근 우정은 달처럼 아름답다.
※본 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으로 참석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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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혁의 '절찬 상영중' - 아이리시맨
[김태혁의 ‘절찬 상영중’ – 아이리시맨]
평등한 덧없음에 대하여
- 갱스터에게도 봄날은 간다
총(銃)은 칼보다 평등하다. 칼을 무기로 잘 사용하려면 완력이 좋아야 하지만, 총은 방아쇠를 당길 정도의 힘만 있다면 누구나 격발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상대를 총으로 제압할 수 있다. 총이 개입하는 순간 육체적 우위는 드라이아이스처럼 순식간에 기화(氣化)된다. 총싸움에서는 근육의 무게보다 아무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배짱의 무게가 중요하다. 누구나 총을 쏘려면 쏠 수 있겠지만, 무심하게 총을 갈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상상과 실행 사이에는 총신(銃身)의 수억 배에 달하는 까마득한 거리가 있다. 갱스터 무비의 주인공들은 누군가에게 발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책감과 양심에 발포한다. 그들의 사격은 늘 두 번씩 이루어진다. 그 태연한 반복 동작을 보며 관객은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를 느끼게 된다.
영화 <아이리시맨(The Irishman, 2019)>을 연출한 마틴 스콜세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갱스터 무비의 대가다. <아이리시맨>은 <디파티드(The Departed, 2006)>, <좋은 친구들(Goodfellas, 1990)>, <비열한 거리(Mean Streets, 1973)> 등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름을 영화사에 아로새겼던 그의 대표적 갱스터 무비들과 같은 듯 다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전 그의 페르소나였던 로버트 드니로(프랭크 시런 역)가 조 페시(러셀 버팔리노 역)와 함께 예전처럼 극의 중심을 든든하게 지켜준다. 여기에 <대부> 시리즈와 <스카페이스(Scarface, 1983)> 등 여러 갱스터 무비에서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연기로 관객들을 겁박했던 알 파치노(지미 호파 역)까지 가세했다. 이처럼 갱스터 무비의 전설들이 힘을 합쳐 범죄, 우정, 배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사실은 일견 <아이리시맨>이 갱스터 무비의 성공 방정식을 재현(再現)하는 영화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리시맨>은 이러한 단편적인 해석을 배반하는 영화다. 1942년생, 한국 나이 79세로 소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1943년 생), 알 파치노(1940년 생), 조 페시(1943년 생)는 동년배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풍화작용은 그들의 얼굴에도 깊은 주름의 지류를 형성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금언(金言)을 비웃으면서 살인을 비롯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밤의 세계에서 군림했던 갱스터도, 늙는다. 사실은 법이 아니라 '시간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처럼 늙은 갱스터를 위한 밤거리는 없다. 시간의 절대적인 힘에 저항해 보려는 걸까. <아이리시맨>은 최첨단 영화 기술 중 하나인 'de-aging'을 활용해 세 주연 배우의 얼굴 주름을 펴서, 마치 초혼(招魂)하듯, 그들의 더 젊었던 시절을 스크린에 소환한다. 그렇게 과거의 영광을 복기해 본들 밤거리를 휘젓던 갱스터의 두 다리는 속절없이 좌표를 휠체어로 옮길 수밖에 없다.
(CG로 도배된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라고 비판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de-aging' 활용했다는 것은 영화가 당대 최첨단 기술과 친구일 수밖에 없음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아이리시맨>은 갱스터에게도 봄날은 가기 마련이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인생의 황혼을 지나 밤을 향해 걷고 있는 갱스터 무비의 전설들이, 밤의 고요 속에서, 누구나 '평등한 덧없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나직하게 읊조린다. 총성으로 밤의 고요를 깨는 장면들로 점철되기 일쑤인 갱스터 무비가 오히려 밤의 고요를 느끼게 해 준다는 아이러니야말로 <아이리시맨>의 핵심이 아닐까. <아이리시맨>의 엔딩 크레디트를 채우는 'The Five Satins'의 'In the Still of the Night(밤의 고요 속에서)'를 들으며 나는 침묵한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태혁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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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맣게 순수한 아이들의 누아르
언프레임드 - 반장선거 (Unframed, 2021)
개봉일 :2021.12.08. (왓챠 공개)
감독 : 박정민
출연 : 김담호, 강지석, 박효은, 박승준
까맣게 순수한 아이들의 누아르
프레임 안에서 연기를 펼치던 4명의 배우들이 프레임을 넘어,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서 각자가 품어온 이야기를 펼치는 새로운 프로젝트 <언프레임드>.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배우까지. 그들이 바라본 세상의 조각들이 이토록 애틋하고, 원초적인 빛깔을 띠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언프레임드>에 담긴 4편의 단편영화를 보면 그들이 영화와 이야기를, 이 세상을 얼마나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지 깊이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감정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꼭 긴 시간을 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든다.
언프레임드의 첫 번째 에피소드 <반장선거>. 처음 만나는 초등학생 누아르
언프레임드의 에피소드 1은 박정민 배우가 연출한 <반장선거>다. 초등학생이라 하면 가장 먼저 순수한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순수하지 않았다.’고 말하던 그는 힙한 초등학생 누아르를 내놓기에 이른다.
초등학생과 누아르? ‘에이 초등학생들이 해봤자~’라고 생각한다면 섭섭하다. 카메라에 담긴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들엔 어른들 못지않은 서늘함과 긴장감이 팽팽하게 들어차있다. 특히 주연인 강지석 배우와 김담호 배우의 연기가 가히 압권이다. 서늘한 눈빛과 목소리를 뽐내는 강지석 배우와 귀여운 외모와 단단한 집중력을 갖춘 김담호 배우의 상극에 위치한 매력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케미가 상당하다.
<반장선거> 스토리
반장선거는 제목 그대로 한 학기 동안 학급을 관리할 반장을 뽑는 ‘반장선거’를 주제로 한다. 반장 후보로 각각 남자,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유장원, 주선영과 수줍은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정인호가 등록되고, 아이들은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노래를 부르고 간식을 돌리고 열심히 공약을 뽐내고 심지어 싸우기까지 한다. 장원, 선영의 지지자들이 요란하게 싸우는 동안 지지자 없이 단독으로 출전한 인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거나 책상과 천장의 중간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다. 어떠한 비밀을 숨긴 채 말이다. “너 반장할래?” 유장원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리며 선거의 전말이 밝혀진다.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감
<반장선거>의 배우들만큼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매력 포인트를 꼽자면 리듬감이 아닐까 싶다. 쉴 틈 없이 변화하는 컷들과 그 안에 꽉 채워진 어린 배우들의 순수하고 뜨거운 숨결, 마미손의 힙한 음악이 합쳐지며 만들어내는 리듬감과 긴장감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귓가와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봤을 ‘기호N번 000!’이라는 아이들의 선거 송과 세련된 음악의 만남이라니. 여태껏 상상해 본 적 없었지만, 상상 그 이상으로 찰떡 그 자체였다.
순수하지 않았던, 또는 너무 순수했던 초등학생 시절
공교육의 범위를 벗어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나의 초등학생 시절도 박정민 배우의 그 시절처럼 딱히 새하얗게 순수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말이다. 순수하긴 했으나 새까맣게 순수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초등학생 시절을 너무 순수해서 본능에 한 발짝 더 가까웠던 순간들로 기억한다.
본능적으로 강자의 편에 서고, 그를 믿고 따르며 무언가 떨어지길 기대하는 본능. 그렇게 편을 가르고 서로의 세력을 뽐내고 견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았다. 특히 ‘이거 선영이가 주는거다-’라며 간식을 돌리던 컷에서 내면의 웃음이 터져버렸다. 반장선거가 가까워질 때면 왠지 간식이 풍족하게 뿌려졌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 ‘기분 탓’이 아니었구나,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인생은 역시 누아르
어른이 되어 다시 들여다본 아이들의 세계가 참 흥미롭게 느껴진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말 한마디도 한껏 진지하게, 온 힘을 다해 싸우던 그때. 그놈의 반장이 뭐라고.. 선생님도 아니고 반장인데.. 하지만 그땐 그 자리가 그렇게 대단해 보였더랬다. 국회의원도 대통령 선거도 아닌 반장선거지만 이 선거는 나름 진지한 투쟁이자 세력 다툼이다. 어른들의 다툼을 축소해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선거 한 판이 이토록 흥미로울 줄은 몰랐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가뿐하게 씹어먹고 있는 까맣게 순수한 영혼들을 보며 우리의 인생은 역시 판타지보단 누아르에 가까운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역시 강한 자의 편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인생이지!
하지만 마지막 결과를 보자면..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한발 떨어져서 투표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투표, 다시 하고 싶다.. 그래도 이렇게 인호가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면 그걸로 된 건가? 아니다. 역시 조금 쓰다.
상대적으로 큰 키에 그늘진 얼굴로 문밖에 올라서있는 강지석 배우와 빛을 받고 있는 동그란 얼굴로 강지석 배우를 올려다보는 김담호 배우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유장원과 정인호라는 캐릭터에 어쩜 이렇게 잘 맞는지.. 두 배우가 보여준 집중력과 연기에 감탄했다.
강지석 배우는 최근에 <좋은 사람>을 통해 발견한 이효제 배우와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언젠가 두 배우가 같은 프레임 안에 있는 모습도 꼭 보고 싶다. 오늘부터 소원 빌어야지. 앞으로 쑥쑥 클 일만 남은 배우님들.. 랜선 이모가 응원할 예정이니 바르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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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멈출 수 없는 투쟁, 실패라 말할 수 없기에 더욱 숭고했다.
시놉시스
2024년, 수배자 신분이었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기리시마 사토시는 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긴 뒤 사망했다. <도주>는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이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아다치 마사오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병치시키면서 기리시마의 번민과 투지를 묘사한다.
영화정보
아다치 마사오 ADACHI Masao
Japan
2025
114min
DCP
Color
Fiction
12세 이상 관람가
International Premiere
영화리뷰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도주>는 기리시마 사토시의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기리시마 사토시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소속의 테러리스트이자 지명수배자였다. 그는 50년간 도주하여 생을 마감하기 전 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긴 뒤 사망했다.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 만큼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도주를 선택한 삶의 무게, 결정의 대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투쟁을 위한 도주가 지금 바로 시작된다. 위 영화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스 섹션에서 상영된다.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은 과거 일본이 한국, 중국, 대만을 포함한 여러 동아시아 국가를 식민지화하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그를 도왔던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 오리엔탈메탈사, 한국산업경제연구소를 테러한 조직이다. 이 조직은 크게 늑대부대, 대지의 어금니 부대, 전갈 부대로 나뉘어 각자의 임무를 맡았다. 비밀스럽고 신속하게 ‘테러’ 후 범죄를 도운 이들을 처단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인해 앞으로의 활동도 쉽지 않아보였다. 명백한 실패라고 생각했기에 작전을 종료하려 했으나 반성 후 다시 투쟁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이들은 ’테러‘를 감행한다.
이들도 ’실패’라는 것을 인지했듯이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이들의 행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들에겐 투쟁이었지만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테러에 불과한 행위라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각 부대의 리더들이 체포되었고 남은 조직원들도 체포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기리시마는 ’도주‘를 결심하지만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해야 했던 탓에 막막하기만 하다. 친하게 지냈던 동기와 헤어지며 매년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간 그 자리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세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도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체포된 소식을 듣게 된 기리시마는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과연 기리시마는 어떤 결말을 맞게될까.
기리시마는 ‘도주’를 곧 ’투쟁‘으로 생각했다. 체포된 동지들을 위해 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오로지 숨고 도망치는 것에 열중했다. 모든 것을 경계하고 의심의 여지가 있을 경우에는 또 다른 곳에 가는 등 치밀하게 행동했다. 그는 번뇌가 찾아올때마다 도주하는 것이 투쟁이며, 잡히지 않는 것이 곧 투쟁을 지속하는 것이라 되뇌었다. 하지만 투쟁에는 끝이 없었고 고독을 홀로 삼켜야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끝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결국 그는 투쟁의 이름으로 도주했고, 그 끝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찾는다. 외롭고 고된 길이었지만, 동지들의 꿈과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한 ‘도주‘였던 것이다.
혁명을 위해 그리고 함께한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욕망은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투쟁을 위해 도주했다. 문장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사투였다. 투쟁은 짧고 도주는 길었다. 주인공은 어떻게 신념 하나만으로 혁명의 길을 계속해서 가게 되었을까? 그는 테러행위로 인해 죽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비난 받기도 하고, 과거의 자신에게 몰아부쳐지며 끊임없이 자신의 번뇌와 싸우게 된다. 자신이 바라왔던 진정한 투쟁과는 거리가 먼 ‘도주’의 삶으로 인해 ‘투쟁’의 의미가 희미해져갈때마다 자신을 꾸짖는다. 그만큼 엄격하고 반성하는 그 태도야말로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다.
영화 <도주>는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새겨주는 작품이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그후에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꾸짖을 ’갈’한다. 과거 독일 나치의 전쟁범죄로 인해 지금까지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반면,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고국이 저지른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그 역사에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에 의해 피해국이었다고만 생각했던 우리의 시선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을 마주하며 다시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반성하고 있었는가. 상대적으로 힘의 차이가 나는 상대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시점으로 이동하는 영화의 시선에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만큼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시간의 틈 사이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건 좀 엉뚱한 상상이지만 영화 속에서 미래의 나, 과거의 나를 만난 것처럼 나도 나를 그렇게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불안을 걷어내주고 확신을 심어주는 존재를 만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존재는 다름아닌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나’이기 때문이다.
상영시간표
2025.05.01
2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2025.05.02
18:00
CGV 전주고사 5관
2025.05.03
13:30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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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아픔의 경계선 위에서...
개봉 전 스크리닝 시사로 먼저 영화를 본 후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순간들을 만난다. 평범한 일상 중에서 특별한 사람이나 순간을 만나기도 하고, 또 지독히 아픈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인생의 희로애락을 누구나 겪으며 산다. 각각의 성향이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은 비슷한 듯 하지만 모두 그 깊이가 다르다. 누군가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분출하려 애쓸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감정을 마음 깊숙이 묻어 놓은 채 다음 일상을 이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우울함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무수한 감정의 순간들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은 그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글로 써 나간다. 이렇게 무언가를 새롭게 창작하게 하는 건, 인생에서 겪는 다양한 희로애락의 감정일 것이다.
빈 종이에 그런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쓰려하지만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어쩌면 글을 쓰는 삶을 택한 사람들이 겪는 숙명적인 순간일 것이다.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의미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우울감이 마음을 괴롭게 만들고 더욱 깊은 늪으로 빠지게 만든다. 무언가를 글로 창작해 나간다는 것은 어떤 날은 잘 될 수도, 어떤 날은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영감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그래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온갖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무언가 써지지 않는 핑곗거리를 찾게 된다. 주변 환경을 탓하고 옆사람을 탓한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변 사람은 떠나고 결국 혼자 남아 모든 고민을 떠안게 된다.
영화 <보더라인>은 그런 창작의 고통을 사랑이야기와 함께 화면으로 담아낸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작가 지망생 안나(안나 알피에리)는 우연히 로빈(아가트 페레)을 만나 끌리게 되면서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 담겨있다. 영화가 그들의 모습을 담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들의 만남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로빈과 헤어진 안나의 모습, 첫 만남과 데이트 장면들을 중간중간 보여주고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도 섞여있다. 아마도 연인과 헤어진 이후 안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지난 추억들, 그리고 흘러가는 상상의 모습들이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시기를 그런 방식으로 보여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관객은 안 나와 로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대략적으로 짐작하며 영화를 따라가게 된다. 실제 연인과 헤어진 이후 남겨진 사람의 고통과 상실감이 화면에서 느껴진다. 안나가 길을 걸을 때 들려오는 거리의 소음,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 그가 떠올리는 과거의 추억들은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더욱 잘 보여준다. 영화는 특히 그가 하는 행동에 따라 과거와 연계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플래시백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혼자 샤워하는 장면에서 바로 로빈과 함께 샤워했던 순간들을 보여주거나 다른 데이트 상대를 찾을 때, 로빈과 데이트하는 장면과 이어지는 장면이 그렇다.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특별히 플래시백의 효과가 없이 바로 장면 전환이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또한 그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데이트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역시 이것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모호하게 구성되어 있다. 사실은 안나의 상상으로 보이는데 그 화면 안에서 안 나와 로빈은 매우 행복한 연인으로 그려진다. 여행지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와 몸짓들에는 현실에서의 고민이나 아픔이 드러나 있지 않다. 그야말로 안나가 꿈꾸는 이상향의 모습이 화면으로 펼쳐지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런 완벽한 모습은 너무 이상향에 가까워 오히려 이것이 비현실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안나의 일탈 장면도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인지 경계선이 흐릿하다.
안나는 로빈과 만나면서 점점 자신의 창작이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나가지 못하고 우울한 기분에 빠진다. 그들이 헤어지기 직전 했던 대화에서 로빈은 긍정적인 생각과 활동을 계속 전달하려 하지만 안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의 안나는 창작을 할 수 있는 영감을 받았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안나는 여전히 종이 위에 무언인가를 쓰지 못하고 있다. 그는 글을 쓰는 대신 로빈의 페이스북 피드를 확인하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망하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에게는 창작의 영감이 필요하지만 그의 연인이 떠났다는 것이 그에게 아픔을 더욱 선사하고, 그것은 그의 글쓰기를 방해한다.
영화 <보더라인>은 연인과 헤어진 직후, 사랑과 아픔의 경계선 상에 놓여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지만 영화 안에서 그들의 사랑이 특별하게 그려지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두 사람의 반응을 보여준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캐롤> 같은 영화들이 조금 전통적 방식으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사랑을 망설이고 그럼에도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줬다면, <보더라인>은 막 헤어져 남겨진 사람의 방황을 중점적으로 담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가진 애틋한 감정보다는 상실감과 혼란스러운 감정에 더 무게중심이 놓여있다.
안나가 느끼는 그 감정은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그의 곁을 떠나버린 로빈도, 그에게 다른 방식의 관계를 선사하는 다른 친구도 그가 느끼는 감정을 덜어줄 수 없다. 글을 쓰는 안나가 그 감정을 이겨내거나 그것을 통해 어떤 글을 써나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다. 영화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연인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그 시점보다는 그 이후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생각을 정리하고 그 아픔을 글로 표현해 나가는 것으로 감정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영화 <보더라인>의 이야기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이 깨진 직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안나 알피에리 감독은 이탈리아 국적으로 영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다 첫 장편 <보더라인>을 만들었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로 그 자신이 겪었던 이별의 아픔과 창작의 고통 속에서 느끼는 감정적 소용돌이를 영상으로 담아냈다. 또한 주인공 안나 역으로 출연하여 좋은 연기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일정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상으로 구성한 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다소 난해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연인의 만남과 사랑, 이별 그리고 극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담겨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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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라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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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의 cine pick
봉블리, 디테일 봉 등 수많은 별명을 갖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세계에서 인정받은 말이 필요 없는 거장인데요. 최근 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인터뷰어로 나서, 100분에 달하는 영화 문답을 이어나가며 찐 영화광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저는 12살의 나이에 영화 감독이 되기로 마음 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고,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라는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한국 영화계에 많은 충격을 안겨 왔던, 그리고 이젠 세계에 그 충격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이 지난 2019년, 북미 매체 인디와이어에서 발표한 '영화감독 35인' 중 한 명이 되어 그해의 베스트 무비를 선정하였습니다. 특히, 35명의 감독 중 유일한 한국 감독으로 자리를 빛낸 '봉준호 감독'은 그해 개봉작을 포함하여 총 8편의 영화를 선정하였는데요.
출처 : IndieWire
과연, 봉준호 감독이 선정한 최고의 영화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으며, 어떤 작품들이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을지 지금부터 같이 만나볼까요?
잇츠 CINE PICK!!
<아이리시맨> (2019.11.20 개봉)
범죄, 드라마, 스릴러 | 미국 | 209분 |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 마틴 스코세이지 |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 95% ? 86% (로튼 토마토)
전후 미국에 드리운 범죄 조직의 그림자.
이제 한 거물 암살자가 입을 연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가 선사하는 장대한 범죄 드라마.
봉 says : "영화 공부하던 시절, 책에서 보고 가슴에 새긴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은 바로 마틴 스콜세이지다."
<결혼 이야기> (2019.11.27 개봉)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37분 | 15세 관람가
감독 : 노아 바움백 | 출연 : 스칼릿 조핸슨, 아담 드라이버, 로라 던
? 94% ? 85% (로튼 토마토)
파경을 맞았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을
예리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봉 says : "올해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
<아사코> (2019.03.14 개봉)
드라마 | 일본 | 120분 | 12세 관람가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 출연 : 히가시데 마사히로, 카라타 에리카
? 78% ? 72% (로튼 토마토)
I. 강렬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그렇듯…
첫사랑 ‘바쿠’와 함께하는 모든 날이 특별했던 ‘아사코’.
설레지만 불안하고 뜨겁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바쿠는
어느 날, 다시 돌아온다는 짧은 말만 남긴 채 아사코를 떠나갔다.
II. 편안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우연일까? 운명일까?
첫사랑 바쿠와 똑같은 외모의 ‘료헤이’를 만나게 된 아사코.
겉모습만 같을 뿐 공통점 하나 없는 모습에 혼란스럽지만,
자상하고 따뜻한 료헤이의 사랑으로
아사코는 다시 설레는 사랑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떠나간 첫사랑 바쿠가 갑자기 나타나고
아사코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봉 says : "내가 불안의 감독이라면, 하마구치 감독은 확신의 감독"
<퍼스트 카우> (2021.11.04 개봉)
드라마 | 미국 | 122분 | 12세 관람가
감독 : 켈리 라이카트 | 출연 : 존 마가로, 오리온 리
? 96% ? 63% (로튼 토마토)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표적이 되어 쫓기는 킹 루를 구해준다.
몇 년 후 정착한 마을에서 재회한 이들은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돈을 벌기로 하는데…
“우리에게는 지금이 기회야”
봉 says :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답고 시적인 영화"
이외에도 <미드소마>, <강변호텔>, <언컷 젬스>, 그리고 드라마 [마인드헌터](시즌 2)까지 총 8편의 봉준호 감독의 pick이 앞서 국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처럼, 이후 개봉작 또한 기대되는데요.
코로나 이전 개봉작들을 돌아보며,
그리고 위드 코로나 시대 개봉작을 바라보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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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사랑에 빠졌을 뿐인데, 영화 주인공이 되었다
1996년 여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학교에서 믿기 힘든 스캔들이 일어납니다.
교사 메리 케이 르투어노는 당시 만 13살에 불과했던 학생 빌리 푸알라우와 사랑에 빠진 사실인데요.
르투어노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네 아이의 엄마였고, 푸알라우는 가족과 함께 사모아에서 이민을 왔으며,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르투어노는 그날 밤의 일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너무 그를 사랑했어요. 그리고 키스 정도면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 체육관과 교실에서 지속적인 관계를 맺은 두 사람은 같은 해 결국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르투어노는 2급 아동 강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개월 후 조기 석방되었죠. 두 사람의 첫 딸은 1997년 아동 성폭행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 성범죄 사건은 지금도 여교사 남제자 성범죄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고 있는데요.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메이 디셈버>입니다.
제목의 <메이 디셈버>는 ‘나이차가 많은 커플’을 가리키는 영어 관용구입니다. 계절의 끝과 끝인, 봄과 겨울 같다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표현인데요. 5월은 젊은 상대를 봄에 비유하고, 장년 상대를 12월인 겨울에 비유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실제 피해자였던 빌리 푸알라우는 <메이 디셈버>가 자신과의 상의 없이 제작되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편, 국내 개봉 전부터 <메이 디셈버>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데요.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및 런던, 뉴욕, 시카고 비평가협회상 등 무려 30관왕을 휩쓸고 국내에 상륙했습니다.
실화의 메리 케이 르투어노에 해당하는 '그레이시' 역은 줄리안 무어가, 그리고 작중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려는 인기 배우 ‘엘리지베스’는 나탈리 포트만이, 빌리 푸알라우에 해당하는 '조' 역은 찰스 멜튼이 맡았습니다.
줄리안 무어와 나탈리 포트만의 만남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며, 언제 이 두 배우를 한 작품에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더불어, <원더스트럭> <다크 워터스> 그리고 <캐롤>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감독 ‘토드 헤인즈’의 신작이라는 점도 눈에 띄는데요. <캐롤>에서 보여줬던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출이 이번 <메이 디셈버>에서도 녹여졌을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개봉 전 시사회로 미리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관람 전,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영화가 실화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실화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해 가면 더욱 매끄러운 관람이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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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전 세계를 뒤흔든 전무후무의 만남, 줄리안 무어 X 나탈리 포트만
<메이 디셈버>의 핵심 감상 포인트는 두 배우의 열연인데요.
너무 두 대배우라 영화를 보기 전에 이 두 배우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오히려 부딪히면 어떡하지?라고 생각도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걱정은 싹 사라졌습니다.
줄리안 무어가 맡은 ‘그레이스’는 굉장히 미묘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자신의 스캔들 그리고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가십거리들에 매우 의연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한 듯한데요. 자신의 스캔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고, 자신을 연기하게 될 ‘엘리자베스’가 찾아오면서 더욱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참았던 울분이 언제나 남편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반면, 나탈리 포트만이 맡은 ‘엘리자베스’는 마치 그레이스를 망치러 온 구원자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요. 그레이스를 연기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매일 방문하고, 조사하고, 일상을 함께 보내면서 점점 그레이스의 가족에 스며들게 됩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불청객 같은 등장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그레이스 부부 관계의 진실도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는데요.
두 배우의 같은 듯 다른, 고요함 속 폭발하는 에너지의 흐름이 영화 전반에 걸쳐 퍼져 있으며, 긴장감을 수시로 놓치지 않게 만듭니다. 과연 그레이스와 엘리자베스의 관계는 끝내 어떻게 남을지, 두 배우의 연기에 압도되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 사랑, 그 이면의 것들에 대하여
<메이 디셈버>는 어쩌면 실화의 자극에 이끌려 보게 됐더라도, 오히려 그 이면에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한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외모, 말투,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것은 시간의 힘과 노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지만, 딱 한 가지 연기할 수 없는 게 있는데요. 바로 그 사람의 생각, 즉 내면입니다.
엘리자베스의 입장에서는 초등학생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된 그레이스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레이스도 온전히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엘리자베스에게 드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심을 숨긴 채 의연한 척 연기하는 듯한 그레이스, 그리고 그런 그레이스를 연기하려고 하는 엘리자베스. 이런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심리학, 정신분석학 등 다방면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해설도 꼭 들어보고 싶네요.
또한 삶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레이스. 그녀에게 과연 사랑은 무엇일까요? 그레이스와 조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얻을 수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미국 전역을 뒤흔든 세기의 스캔들, 그레이스와 조의 사랑. 그 이면에 남겨진 잔상들 또한 영화를 보면서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3월 13일 개봉 예정인 <메이 디셈버>에서 확인하세요.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해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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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주 최신개봉영화(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도쿄 리벤저스, 어나더 라운드드, 아이스틸 빌리브, 미싱타는 여자들)
[WEEKEND CHOICE MOVIE] 2022년 1월 3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레지던트이블#라쿤시티 #도쿄리벤저스 #어나더라운드 #아이스틸빌리브 #미싱타는여자들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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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런칭 예고편
서기 2043년,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을 세우려는 국가 에머슨.
인간병기를 양성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을 납치하고,
외딴 숲에서 칩거하던 ‘니스카’도 결국 사랑하는 딸을 빼앗긴다.
10개월 후, 예기치 못한 비밀이 하나둘 드러나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니스카’는
딸을 되찾고자 국가의 중심부를 습격하기로 결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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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테러 라이브 : 스쿨 어택> 메인 예고편
엄마를 잃고 세상과 담을 쌓은 조이.
졸업 파티를 앞둔 교내는 설렘으로 가득하지만,
조이는 좀처럼 분위기에 섞이지 못한다.
그러던 중, 총을 든 학생들이
교내 식당에 침입해 학생들을 인질로 붙잡고,
가까스로 학교에서 빠져나온 조이는
학교에 남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