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9-18 18:08:41
이것은 제사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장손> 리뷰
SYNOPSIS.
3대 대가족이 모두 모인 제삿날 일가의 명줄이 달린 가업 두부공장 운영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는 와중, 장손 ‘성진’은 그 은혜로운 밥줄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 갑작스레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이별로 가족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는데…
핏줄과 밥줄로 얽힌 대가족의 70년 묵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진다!
POINT.
✔️ 익숙한 한국 가족 관계, K-유교 문화와 제사와 명절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풀어냈나 싶을 만큼 섬세하게 풀어내는 영화
✔️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까지 당신을 데려갈 영화. 볼 때도 좋았는데 보고 나서도 자꾸 떠올라요.
✔️ 연기 경력이 어마무시한 배우들이 더없이 자연스럽게 펼치는 가족 연기 (정말 명절 풍경 같아서 사람에 따라서는 트라우마가 올라올 수 있을 정도...)
✔️ 작년도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작으로 이미 인정 받은 영화
✔️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한국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와중에 매우 아름답고 섬세한 로케이션과 미술! 촬영이 정말 아름다우니까 꼭 극장에서 보아주세요.
*아래 리뷰에는 <장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세요.

영화 <장손>은 얼핏 제사와 명절 풍경, 그 안에 얽히고설킨 가족 갈등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인다. ‘장손’에 대한 조부모 대의 굳건한 믿음이 손녀에게는 분배되지 않는 모습, 차분하게 굄돌처럼 역할을 다하는 며느리와 큰소리만 뻥뻥 치는 아들, 큰 재산 없이 부모 곁을 지키는 큰딸과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느지막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딸의 역할 차이 또한 더없이 익숙한 풍경이다. 영화 <이장>을 비롯해 우리는 이런 가족 드라마에도 꽤나 익숙해져 왔다. 지고지순 금슬 가족애 이런 단어들 아래서 누군가에게는 안온함을 또 누군가에게는 숨이 턱 막히는 시간을 안기는, 원앙 금침 같은 이 한국식 가족 관계.
연기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초반부는 그야말로 명절 풍경 그 자체이고, 아직 철없는 ‘장손’을 포함해 적당히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노인은 두부 맛에 깐깐하게 굴고, 장손이 나타나니 그제야 에어컨을 켜거나 제사 시간을 바꾸는 (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행위마저 은근슬쩍 눈감아 줄 만큼 익숙한 공기를 내뿜는다.

그 익숙한 풍경 안에는 유머러스한 장면만 있지는 않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의 고성 뒤로, 할머니는 익숙한 듯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한글로 쓰는 연습을 흥얼흥얼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 눈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장면들이, 가족 안에서는 적당히 넘어가진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를 장손은 괴로워하지만, 어머니는 지긋지긋할 만큼 익숙한 솜씨로 이불을 가지고 내달려 오고, 할머니는 베개를 놓고 선풍기를 돌려 놓는다. 어둑한 집안, 가족이기에 그 태연함이 이해되는 장면이다.
기실 가족 관계란 절대 단편적인 색깔로 칠해질 수 없다.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 인간과 인간이 맞부딪는 순간 또한 완벽할 수 없기에. 오랜 세월을 머금은 관계는 어디에선가 반드시 삐걱이기 마련이고, 사건은 각자에게 다른 생채기를 남기고,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된다. 가족 간에는 그런 사건이 지근거리에서 너무 많이 쌓이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감정이 실꾸리처럼 돌돌 말려 그 끝을 파악하기 어렵다. 대충 애증이라고 눙치고 지나가기 쉬운 관계 속 감정이나 사건들을, <장손>은 훌륭한 솜씨로 풀어낸다. 기나긴 대하소설을 읽으며 파악할 법한 정보들을 잘 녹여내어, 한 가족의 전사를 관객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다.

영화의 결이 뚝 바뀌는 것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이다. 마치 배우 이정은의 얼굴이 영화 <기생충>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뚝 갈랐던 것처럼, 배우 손숙의 얼굴이 담긴 영정 사진이 불에 오그라들면서 <장손> 또한 제사와 갈등 이면으로 관객을 깊이 데려간다.
이전에도 자식들은 서로 처한 상황이 달랐고 이해 관계도 달랐지만, 할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고모의 갈등을 주축으로 이해는 더욱 멀어져 간다. 다만 영화 <괴물>의 경우와 달리, 보면서 진실이 무엇일까 궁금해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흑 혹은 백으로 명확하게 정리되는 문제보다 입장의 차이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문제가 훨씬 많고, 가족 관계 안에서는 특히 그러하기에. 증조부 증조모의 무덤이 비어 있어도,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해도, 범죄 스릴러처럼 범인을 찾기에 급급한 마음 같은 건 올라오지 않는다. 뭔가 이유가 있었으려니. 그리고 그런 이유의 가닥들을 하나하나 모아 틀어 쥐고 있던 것이, 이 집안 안에서 할머니가 해온 역할이려니.

제사의 아우라를 부여하려고 아무 말이나 하거나 장손이 올 때서야 에어컨을 켜주는 귀여운 일면도 있지만, 할머니는 분명 이 집안의 구심점이었다. 꼬장꼬장하게 두부 맛을 보며 가풍을 지키고, 통장이며 모든 대소사를 관할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펼쳐내는 돌봄의 모양새가 그렇다. 큰고모네 의료비를 대주거나 월급을 조금씩 여투어 놓는 일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든 장미꽃을 잘라 솥 아래 불에 쓸어 넣을 만큼 알뜰살뜰하게.

이 내내 ‘장손’ 성진은 관찰자처럼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본다. 장녀였다면 갖지 못했을 거리감이다. 기묘한 죄책감과 불편함 안에서 갈수록 무거워지는 표정으로, 그럼에도 충실한 인터뷰어처럼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씩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듣는다. 고모와 어머니, 누나까지 한 명씩 만나 속마음을 각각 듣게 되는, 서술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오직 성진뿐인데, 독특한 점은 집안 식구 중 여성들만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고모부, 툭하면 고주망태가 되는 아버지와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착실한 성품의 (그래서 누나 말대로 공장을 “신경 쓸” 예정이며 사실상 이미 쓰고 있는) 매형은 공장을 물려받을 대상으로는 거론되지 않아 사실상 집안 식구라 보기 어렵다. 성진과도 역할을 분담하는 동료 느낌의 대화만 주고받는다.

‘무능한 아버지’ 대신 현명했고 인내했던 어머니(들)를 하나하나 마주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은 조부다. 마치 퀘스트를 하나하나 깬 후 최종 보스를 마주하듯이. 이 엄숙한 대화를 마무리하며 그는 무언가를 건네받는다. 최종 보스를 지나는 주인공이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열쇠처럼.
이것은 계승이다. 그동안 한 걸음 밖에서 관조적으로 맴돌던 장손은 이제 손에 쥐어진 것을 들고 계승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구한 현대사 속에서 인물들의 삶을 찾아온 이리저리 꼬인 사건들, 그 안에서 서로 주고받은 말과 애정과 상처들, 그것들의 흔적을 손에 쥔 채, 그는 햇살 아래 눈을 찌푸린다. 영화 첫 장면이 연기로 희뿌연 공장 내부(“문 열어라, 문! 이러다 죽겠다!”)였음을 생각할 때, 영화 <장손>은 제사의 계승이나 갈등의 표출만이 아닌, 그보다 더 깊은 뿌리의 계승을 둘러싼 이야기다. 계승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뿌리에 빛을 비추어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건 아름다운 원경이다. 할머니의 장례 행렬에 꽃상여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눈 내리는 겨울 산으로 자분자분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 폭 그림처럼 펼쳐진다. 꽃상여는 불에 타오르고, 눈 내리는 소리는 어쩐지 불을 닮아 있다. 무언가의 죽음 뒤에는 불이 뒤따른다. 타고 남은 재를 앞에 두고, 우리는 이제 다음 걸음을 고민해야 한다. <장손>이 한 경상도 가정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세대의 어떤 것으로 읽히는 이유다.

Relative contents
-
- 넷플릭스 11월 신작!
넷플릭스 10월! 신작 추천5편
지옥
11월 19일 시즌1 공개
장르: 스릴러
크리에이터: 연상호, 최규석
출연: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어느날 기이한 존재로부터 지옥행을 선고받은 사람들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인 도시에 대혼란의 시대가 도래한다.
신의 심판을 외치며 세를 확장하려는 종교단체와 진실을 파헤치는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느데...
예고편 보러가기▼
카우보이비밥
11월 19일 시즌1 공개
장르: 액션
크리에이터: 안드레 네멕
출연: 존 조, 무스타파 샤키어, 다니엘라 피네다
스타일은 차고 넘치는데 주머니느 텅텅 비었다.
돈을 벌기 위해 태양계를 누비며 범죄자를 쫓는 현상금 사냥꾼 스파이크, 제트, 페이
세 사람은 스파이크의 과거로부터 도망 치려하는데...
예고편 보러가기▼
구경이
10월31일 시즌1 공개
장르: 범죄, 스릴러
크리에이터: 이정흠, 성초이
출연: 이여애, 김혜준, 김해숙
경찰 출신의 보험조사관 구경이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던 그녀가 세상에 나와 연쇄 살인마를 쫓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사고로 위장된 사건, 범인을 찾아라
예고편 보러가기▼
싱크홀
11월 19일 공개
장르: 코미디, 블록버스터
감독: 김지훈
출연: 차승원, 김성균, 이광수
서울 한복판에 발생한 거대 싱크홀
빌라 한 동이 통째로 땅속으로 꺼져 버렸다
폭우로 인한 추가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 더 큰 일 나기전에 나가야 하는데...
예고편 보러가기▼
레드노티스
10월 12일 공개
장르: 액션, 코미디
감독: 로슨 마샬 터버
출연: 드웨인 존슨, 라이언 레이놀즈, 갤 가돗, 리투 아리아, 크리스 디아만토풀로스 등
전 세계에 지명 수배가 내려진 미술품 도둑과 그를 추적하는FBI 프로파일러,
늘 한발 앞서 도망치는 사기꾼을 잡기 위해 둘은 어쩔 수 없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예고편 보러가기▼
-
- <돈 룩 업> 진짜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박사는 한 혜성이 100% 확률로 지구와 직접 충돌할 것이라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한다. 이에 두 사람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의 집무실 방문부터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인기 토크쇼 출연에 이르기까지 불편한 진실을 전달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대 IT 기업의 회장 '이셔웰(마크 라이런스)'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진실을 곡해하며 극심한 갈등을 빚고, 그 사이 지구와 인류는 하루하루 종말에 가까워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돈 룩 업>의 겉모습은 애덤 맥케이 감독의 전작인 <빅쇼트>와 <바이스 중 후자와 매우 유사하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부통령(vice president)이었던 딕 체니를 '악(vice)'으로 규정하고 신랄하게 비꼬았던 <바이스(Vice)>처럼 <돈 룩 업>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당장 올리언 대통령이 철저히 표에 따라 혜성에 대비하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이나 정치적 능력이 전무한 아들 제이슨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트럼프의 포퓰리즘 정책과 가족 인사에 대한 풍자라고 할 수 있다. 올리언이 명백한 자연재해인 혜성의 접근을 부정하는 것도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력을 평가절하했던 그의 실책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 룩 업>을 정치 풍자 영화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정치 비판은 외관과 달리 단순히 한 개인의 실정을 비난하거나 좌우 진영 논리에 빠지는 대신, 더욱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때문이다. <돈 룩 업>이 진정으로 문제시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 사회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각의 기능에 따라 분화된 현대 사회의 시스템들 사이에 가교가 부재한 현실의 결점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각자 고유한 기능을 전담하는 시스템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중세 시기만 하더라도 사회의 모든 기능은 종교와 도덕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치와 법, 경제, 문화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신성하지 못하거나 악마적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은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렇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나 도덕은 부정선거, 주가 조작, 논문 표절, 스포츠 선수의 도핑처럼 정치, 경제, 법의 시스템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렇지 않은 경우 각각의 시스템은 철저히 자신의 영역 내에서만 작동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권력의 크기와 경제적 이윤이 직접 연관될 수는 없으며, 돈이 많다고 재판에서 무조건 이기지는 못하며, 정치적 이유로 예술 창작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
문제는 이처럼 독립된 시스템들이 각자 영역 내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 전체 사회 구조의 유지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협력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경제나 과학기술의 영역에서는 암호화폐의 등장과 같은 새로운 혁신이 발생하고, 학문이나 문화의 영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각 시스템 간의 소통의 부재는 법과 정치의 시스템이 그 변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게 하며, 더 나아가 빠르게 발전한 시스템이 뒤처진 시스템의 기능을 침범하게 한다. 그 결과 현실에서는 자본이 사회적으로 유일한 진리가 되거나, 정책 설계에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보다도 정치적 유불리가 중시되는 등 사회 전체의 구조가 무너진다. <돈 룩 업>은 바로 이 대목을 풍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환기하려 한다.
실제로 <돈 룩 업>은 사회적 시스템 간 소통 부재와 그로 인한 문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혜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게이트와 민디 박사가 올리언 대통령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민디 박사가 천문학적 용어를 동원해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말해도 정작 해당 언어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전무한 백악관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그저 평온하다. 참다못한 케이트가 지구와 혜성이 부딪히면 모든 생명체가 죽을 것이라고 가장 쉬운 방식으로 경고해도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과학적 발견은 정치의 시스템 안에서 철저히 득표를 위한 수단으로 치환되고, 실질적으로 정치인과 과학자 간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과학자는 언론인과도 소통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반응에 실망한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차선책으로서 언론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 여론을 움직여 보려 한다. 그러나 토크쇼에서는 그들의 발견을 그저 수많은 가십 중 하나로 취급할 뿐이다. 정작 토크쇼에서 건져낸 것은 아무도 그 진실과 미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 경악하고 분노한 케이트를 조롱하는 각종 밈과 짤, 그리고 랜들의 외모에 주목하는 인기에 불과했다. 신문사에서도 자체적인 팩트 체크를 이유로 그들의 과학적 발견을 기사화하는 것을 거절한다. 이에 더해 과학과 경제, 정치와 시민사회 사이에서도 시스템의 소통 부재가 여실히 드러난다. 혜성 충돌마저도 경제적 효용으로 계산하는 거대 IT 기업의 회장 이셔웰은 민디 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는다. 정부가 좀처럼 혜성 관련 정책 변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의심이 자라나고, 이는 폭동으로 이어진다.
과학의 영역 안에서도 세부 분과별로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케이트의 발견을 두고 나사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나, 이셔웰이 혜성을 파괴하고 혜성에 존재하는 여러 광물 자원을 활용할 대책으로 제시한 신기술이 동료평가(peer review)도 거치지 않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진정한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심지어 종말이 임박한 순간 올리언 대통령이 아들인 제이슨 비서실장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은 위에서 열거한 모든 문제점을 한 장면에 함축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가 후반부에 종교적 심성으로 회귀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민디 박사의 가족과 친구가 모두 모여 마지막 식사를 할 때, 그들은 모인 이들 중 종교를 믿는 이가 없는데도 케이트의 남자 친구인 '율(티모시 샬라메)'의 도움을 받아 신에게 기도한다. 이는 기도하는 방법도 모를 만큼 과거와 달리 탈종교화된 현대 사회의 일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개선하지 않으면 현대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모든 체계가 실패하고 끝내 종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은 혜성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자연재해나 특정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막을 수 있는데도 막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체계적 문제라고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 룩 업>은 애덤 맥케이 감독의 장점이 잘 발휘된 작품이자 <바이스>보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을 착실하게 추적한 <빅쇼트>에 가까운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빅쇼트>는 비판의 대상을 철저히 미국 경제 시스템의 모순과 병폐에 국한한 영화였다. 애덤 맥케이 감독은 특정 개인의 사악함이나 불행함에 초점을 두고, 악한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거나 분노를 터뜨리며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길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케이트 블란쳇이나 티모시 샬라메처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들을 제각기 언론인, 정치인, 과학자와 같은 조연으로 캐스팅한 선택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여러 스타 배우의 존재가 특정 캐릭터에게 쏠릴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 영화는 친숙한 스타의 얼굴을 통해 정치, 언론, 과학, 경제와 같은 서로 다른 시스템 간의 단절된 관계성을 직관적으로 제시하고 메시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다만 몇몇 단점으로 인해 사회적 시스템 자체를 풍자하려는 <돈 룩 업>의 의도는 다소 희석되는 감이 있다. 일단 과학자들이 재난을 경고하며 울분을 토한 뒤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무시하는 전개가 몇 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것은 결코 짧지 않은 영화의 러닝타임(139분)을 고려할 때 다소 과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애덤 맥케이 감독이 SNL 작가로 일한 경력이 있는 만큼 이는 SNL의 한 코너를 가능한 길게 늘여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토크쇼 출연처럼 전체적인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으로 인해 극의 집약도와 완성도를 전체적으로 하락시킨다.
또한 앞서 보았듯이 지나치게 일차원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풍자의 방식도 호불호가 갈릴 여지를 남겨놓는다. 해당 묘사 자체는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영화의 주제와 통찰에 쏠려야 할 주의와 관심이 분산되면서 영화의 의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면 공감할수록 그 전달 방식은 역으로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애덤 맥케이 감독 특유의 코미디 연출 센스, 시간선을 꼬아놓는 식의 화려한 편집과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가 만난 케미스트리보다 크지는 않기에 <돈 룩 업>은 여전히 호평이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바보야 진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야
-
- 100kg의 짐을 지고 걸어도, 좋다
-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가사만 읽어도 음이 저절로 떠오르는 이 노래는 2001년에 발매된 지오디(GOD)의 '길'입니다. 20년 전 노래지만, 요즘도 인생에 확신이 없을 때면 이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습니다. 갑자기 웬 노래 이야기냐고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소개해드릴 ‘이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지오디의 ‘길’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하염없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여서였을까요? 오늘은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의 속도>가 왜 지오디의 ‘길’을 연상케 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11월 11일(목)에 진행된 <행복의 속도> 특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행복의 속도>는 2021년 11월 18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행복의 속도Speed of Happiness<행복의 속도>는 일본의 '봇카'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봇카는 등에 진 물건을 도보로 운반하는 일본의 옛 직업 중 하나입니다. 운송 수단이 발달하면서 사라진 직업인데요. 일본에는 여전히 봇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군마, 후쿠시마, 니가타, 도치기에 이르는 4개의 현에 걸쳐있는 오제 국립공원입니다.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넓은 고지대 습원으로, 자연경관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생태계가 엄격히 보존되는 특별보호구역인 만큼, 오제에는 차량이 드나드는 길이 없습니다. 나무판자로 이어진 좁고 기다란 길 하나가 외부와 국립공원 안의 산장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산장에 물건을 운송하는 방법 역시 이 길을 통하는 방법 뿐이죠. 그것이 이곳에 봇카가 필요한 이유입니다.관광객들이 오제의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 산장을 방문하는 4월부터 11월까지 봇카는 이곳에서 짐을 나릅니다. 산장 운영에 필요한 제철 식자재부터 맥주통, 가스통 등 안 나르는 물건이 없죠. 지게에 켜켜이 물건을 쌓아 올린 다음, 푹신한 것을 잔뜩 덧댄 어깨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오직 두 다리의 힘으로 100kg 상당의 짐을 번쩍 들어 올립니다. 신장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짐을 들쳐 멘 봇카는 오제 깊은 곳의 산장으로 물건을 나릅니다. 짧게는 3km 남짓, 길게는 왕복 20km에 이르는 여정이죠. 오제에는 이렇게 산장에 짐을 나르는 베테랑 봇카 6명이 활동 중입니다.나무판자로 된 길 위를 우직하게 걸으며 짐을 나르는 봇카들. <행복의 속도>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봇카는 빠르게 걷지 않습니다. 한 발짝 한 발짝 신중하게, 일정한 속도로 걸어갑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에 여차하면 넘어질 수도 있거든요. 덕분에 그들은 매일 달라지는 오제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습니다.영화는 클로즈업 촬영과 슬로우 모션을 통해 흘리는 땀, 내뱉는 숨, 내리누르는 고통에 비례하여 정직하게 돈을 버는 봇카의 1년을 진솔하게 담아냅니다. 카메라를 통해 어깨가 다 닳아버린 옷과 가방끈 모양대로 짙은 멍이 든 몸, 굳은살로 채워진 발가락을 한참 동안 응시하죠. <행복의 속도>는 이렇게 '봇카'라는 낯선 직업을 따뜻하게 조명합니다.⊙ ⊙ ⊙<행복의 속도>에는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두 명의 봇카가 등장합니다. 20년째 오제에서 짐을 나르며 살아가는 '이가라시'와 봇카를 널리 알리려는 일본청년봇카대 대표 ‘이시타카'가 그들이죠. 같은 봇카인데도 두 사람은 짐을 이는 방식부터 걸음걸이, 가방끈의 모양까지 모두 다릅니다. 봇카라는 직업을 대하는 마음가짐마저요.‘이가라시’는 자기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아낍니다. 일주일에 6일을 100kg가 넘는 짐을 이고 걷는데도, 그는 매일 같이 달라지는 오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만으로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의 부인과 어머니는 베테랑 봇카의 삶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그의 아들은 아빠처럼 배낭을 짊어지고 오제를 걷곤 합니다. 가끔은 헬기가 순식간에 냉동 식자재를 산장에 배달하는 모습을 보곤 하지만, 그럴 때도 소박하게 자기 일을 해나가면 된다고 믿습니다. ‘이가라시’는 그저 오늘도 봇카로서의 자긍심으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반면, '이시타카'는 사양화되는 봇카라는 직업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증명이라도 해 보이려는 듯, 봇카 일을 하면서도 영업 활동에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등산할 때 짐을 대신 들어주는 봇카 이벤트와 같은 활동도 마다하지 않죠. 이처럼 ‘이시타카’는 봇카로 미래를 꿈꾸는 청년입니다.한 명은 봇카로서의 오늘을 살고, 한 명은 봇카로서의 내일을 준비합니다.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4월이 되면 오제에서 만나 언제나처럼 짐을 이고 걷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으며 행복을 찾는다는 점입니다. 남들처럼 빠르게 걷지 않아도, 그들은 충분히 행복을 느낍니다.언제부턴가 ‘최연소’ 타이틀을 단 영재들이 세상에 많이 보입니다. 남들보다 빨리 무언가를 해낸 사람들이죠. 우리는 그들을 향해 대단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성취의 속도와 행복의 속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목적지엔 일찍 도착할 수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느낄 순 없는 것처럼 말이죠.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아닙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풍부한 행복과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죠. 여기, 오제의 봇카들처럼요. 남들보다 앞서지 않아도 됩니다. 빠르게 달려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주위에 오제와 같은 천혜의 자연경관은 없더라도 천천히 걷다 보면 분명 그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지오디의 노래처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이 정해진 길을 걷는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천천히 속도에 맞춰 걷다 보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 <행복의 속도>입니다.⊙ ⊙ ⊙겨우내 봇카의 발소리는 잠잠해집니다. 12월부터 3월까지 오제의 봄을 기다리며 봇카의 시즌도 잠시 끝이 나거든요. 지난 2020년 초부터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과연 6명의 베테랑 봇카들은 지금도 계속 봇카의 일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부디 오제를 누비는 봇카들의 ‘행복의 속도’가 지금도 여전하기를 바라봅니다.Summary꽃, 바람, 새 그리고 나뭇길... 해발 1,500미터 천상의 화원 ‘오제’. ‘이가라시’와 ‘이시타카’는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카’이다. 70~80kg의 짐을 지고 같은 길을 걷지만, 매 순간 ‘오제’의 길 위에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는 '이가라시'. 반면, 봇카'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이시타카’.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건네는 이야기. 지금, 당신은 어느 길 위에 있나요? (출처: 씨네21)Cast감독: 박혁지
-
- 작품 속 '드 윈터 부인'을 닮은 <레베카>(2020)
소설 속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나', 1940년 영화에서는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라고 명명하는 주인공. 2020년 작품에서는 '드 윈터 부인'이라고 칭한다. 예나 지금이나 작품 <레베카> 속 화자는 이름이 없다. 이렇게 작품 밖에서부터 레베카의 위력이 느껴진다.
작품 특성상, 이 글에서 작중 화자를 지칭할 때 결혼 전은 '나', 결혼 후는 '드 윈터 부인'이라고 지칭하겠다.1. 순진함: 4점 _ 순진함을 앞세운 눈새의 정석.
2. 매력: 2점_ 설득력을 취하고 매력을 버렸... 나?
3. 로망: 4점_ '해본 것' < '해보고 싶던 것'
4. 자존감: 0점_ 유령은 믿지 않지만
5. 서포트력: 5점_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존재감
순진함, 순진함을 앞세운 눈새의 정석
화자는 '반 호퍼 부인'의 말동무이자 길동무로 동행할 때도 순진한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맥심 드 윈터'와 몬테카를로의 호텔 인근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들이었다.반 호퍼 부인 말마따나, 정말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할 줄 알았던 걸까?
옆방에 있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까내리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말동무로 일하면서 이렇게까지 경계심이 없었다니.
좋게 말하면 순진함, 나쁘게 말하면 눈새.
매력, 설득력을 취하고 매력을 버렸... 나?
1940년 작 <레베카>에서 맥심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반한 건 당신의 외모가 아니라 꾸미지 않은 순수함이 좋아서였어"
그 대사를 들으며 생각했다.뻥 치시네. 저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해? 못 믿을 사람이네.1940년 작에서 '나'는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맥심의 말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그러나, 2020 작에서는 '드 윈터 부인'의 외모가 아름답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관객들에게 고구마를 퍼 먹이듯 답답한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어 '레베카와는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는 맥심의 말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다이아 수저에게만 예뻐 보이는 매력인가 보다.
난 도무지 부인이 왜 매력적인지 모르겠어....
로망, '해본 것' < '해보고 싶던 것'
부인이 되기 전, '나'는 호텔에서 맥심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한 날 이래로 황홀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예쁘게 차려입고 호텔 로비며 테라스로 향하면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맥심의 쪽지를 건네준다.
쪽지에는 오늘의 데이트 코스가 적혀 있다. 그러고 나서 맥심과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나'가 맥심과 시간을 보내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가본 곳보다 많고, 해본 것보다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
맥심으로부터 받은 쪽지를 모아 두고 다시 쪽지를 받을 때로 돌아간 듯, 행복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나'.
"For me?(저한테요?)" 하고 쪽지를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면 예측해볼 수 있다.
'나'는 귀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구나. 꿈꾸는 듯하겠구나.
자존감, 유령은 믿지 않지만
맥심을 따라 맨덜리 저택으로 간 드 윈터 부인은, 유령 따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별한 전 부인 '레베카'에 대해서는 도통 말해주질 않는 맥심, 드 윈터 부인 앞에서 레베카를 회상하고 비교하듯 언급하는 고용인들과 맥심의 친척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레베카의 존재감에 압도된다.무엇보다도, 저택에 처음 왔을 때부터 위기 상황이거나 평화로운 분위기이거나 상관없이 레베카의 이니셜 "R"이 표기된 물품들에 둘러싸여 있다.
실체는 없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저택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레베카와 마주하는 드 윈터 부인은 시종일관 주눅 들어있다. 자신이 아닌 레베카를 '드 윈터 부인'이라고 칭하는 집사 '댄버스'에게도 "이젠 내가 드 윈터 부인이야"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한다.
서포트력,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존재감
드 윈터 부인의 전 직업은 나이 든 귀부인의 말동무 겸 심부름꾼. 그래서였을까?
맥심과 결혼한 후, 저택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내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드 윈터 부인이 영화 후반부에는 돌변한다.
맥심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화끈한 행동력까지 보여준다.
영화를 직접 감상하실 분들을 위해 이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때에만 초능력처럼 발휘되는 냉철함, 판단력, 행동력. 그 모든 능력들이 드 윈터 부인을 더 이상 무기력한 인물이 아닌 존재감이 강한 캐릭터로 자리 잡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히치콕 감독의 동명 영화 1940년 작 <레베카>,
그 영화의 원작인 소설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위협적인 아우라로 유명한 뮤지컬 <레베카>,
그리고 이 작품,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벤 휘틀리 감독의 2020년 작 영화 <레베카>.1940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리메이크 작품을 깐깐한 시선으로 감상했다.
아쉬운 점이 많았다.1940년 작과 비교하며 혹평만 가득 담은 리뷰를 작성하게 되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그래서 대작을 리메이크할 때 느꼈을 법한 고충을 상상해봤다.
'스릴러에서 중요한 요소인 발생 에피소드는 이미 알려져 있는 상황. 더군다나 스산한 스릴감을 멋지게 전달해준 작품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겠지. 힘들었겠다.'라고 생각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풍성해진 사운드와 볼거리
인물들의 대화 뒤에 잔잔히 깔리는 파도소리, 드 윈터 부인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비트 등 청각 효과가 풍성해져 상황 전달이 잘 된다.
게다가 시각적으로 볼거리도 굉장히 많아졌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맨덜리 저택 가면무도회 장면이었다.
레베카를 아는 듯 한, 저택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그 속에서 유일하게 레베카를 모르는 드 윈터 부인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독함, 불안함을 1940년 작품보다 설득력 있게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유일하게 옛 영화보다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는다.
훨씬 친절해진 상황 설명, 그러나 비교적 약해진 스릴감.
줄거리를 완전히 혹은 대충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감상할 때 연출, 즉 상황 표현에 집중케 된다.
그런데, 영화 전체를 통틀어 1940년 작에 비해 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분위기가 많이 약해졌다.1940년 <레베카>에서는 댄버스의 침묵과 시선처리, 인물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화면 연출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에 비해, 2020년 <레베카>에서는 침묵, 화면 연출보다 인물들의 대사 비중이 늘었다.
말이 많아진 댄버스, 처음 보는 캐릭터인 시할머니 등 여러 인물들의 대사로 상황을 설명해주니 편리하다.
하지만, 아무 정보 없는 상태에서 작중 화자와 시선과 정보 공유를 함께하며 느끼던 스릴감은 현격히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컬러, 사운드 등의 기술적 발전은 했으나 연출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생각이 든다.스릴러도 로맨스도 아닌 채 어중간한 곳에서 오락가락하는 영화.
그래서, 언제나 맨덜리의 파도소리가 따라다닌다는 음향 표현이 이해는 가도, 인상 깊지 않았다.
오히려 뮤지컬 음원을 통해 듣는 파도 소리가 훨씬 더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에서는 파도 소리보다도, 히치콕 감독의 <새>를 오마주한 듯한 '철새들의 움직임'이 더 인상 깊었다.
시대 배경 표현에 있어서 안 꾸민 듯, 꾸민 듯?
초반부를 감상할 때는 시대 배경을 현대로 재해석한 작품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등장하는 자동차 디자인과 '얼마 전 찍었다'는 결혼사진이 흑백 가까운 세피아 빛인 것을 단서로 삼아, 소설 레베카의 시간을 따르고 있다고 이해했다.그러나, 시대상에 대한 단서를 몇 가지 발견한 뒤에도 어색함이 느껴져 이상했다.
고전영화 <레베카>에 너무 익숙해져 그런가? 하고 반문해보다가 떠오른 영화가 있다.바츠 루어만 감독의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유행했던 재즈 음악들을 2013년에 맞추어 리메이크했다.
또한, 당대 파티 문화, 의상, 배경이 되는 공간들과 소품들까지 '이 시대가 아니라 그 시대 이야기'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해줬다. 영화가 컬러인가 아닌가는 아무 상관없었다.
시대 배경을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그에 반해 2020작 <레베카>는 시대 표현이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당대 시대상이 개츠비만큼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도, 지금과 다른 시대적 특성을 더 살려줬다면 좋았을 텐데.
리뷰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레베카>가 '두 번째 드 윈터 부인'이 되어 버렸다.
작중 '나' 또는 '드 윈터 부인'처럼, 2020년 <레베카>는 1940년 <레베카>와 힘겨운 싸움을 했다.취향 따라 결과 판정은 달리 할 수 있지만,
일단 내게 있어서 이 싸움의 결과는 1940년 작품의 압승!
-
- <엘르>, <할로우맨>, <블랙북> 폴 버호벤 감독의 화제작 <베네데타> 영화리뷰
작품명 : 베네데타
감독 : 폴 버호벤
출연 : 비르지니 에피라, 샬롯 램플링 등
어린 베네데타는 부모님과 함께 수녀원에 간다. 평생을 주님의 신부로 살기로 결심한 베네데타는 올곧은 믿음과 자신감을 지녔다.
왠지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 같은 원장 수녀를 비롯해 수녀원의 냉랭한 분위기가 조금 섬뜩하기는 하지만, 베네데타는 열심히 기도해 이곳에서 잘 적응한다.
성인이 된 베네데타는 어느 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쫓기다 수녀원으로 달려 들어온 바르톨로메아라는 여성과 마주친다.
바르톨로메아는 아버지의 학대와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녀가 되고자 한다. 베네데타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정착한 바르톨로메아는 모범적인 수녀 베네데타를 은밀하게 자극한다.
서로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낀 둘은 당시의 온건한 가톨릭에서 금기시된 사랑을 시작한다.
한편 베네데타는 뜻 모를 환각과 환시에 시달리게 된다.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보게 되는가 하면, 다른 수녀들과 함께 미사를 위해 찬송가를 합창할 때도 별안간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점차 베네데타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성흔을 얻게 되고, 신부와 수녀들은 이 성흔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논박하면서, 베네데타는 수녀원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관객 또한 베네데타의 불가해한 경험들을 마주하는 동시에, 평생을 섬겨온 성직자로서와 숨겨진 사랑의 행위자로서의 그의 삶에서 어떤 곳에 방점을 두고 바라봐야 할지 의문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로써 <베네데타>는 기록되지 못하고 발견된 적 없었던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게 되는 영화가 된다.
<베네데타>는 <토탈 리콜> <할로우맨> <엘르> 등을 연출한 폴 버호벤 감독의 신작이다.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소개된 후 여러 논란이 된 바 있을 만큼 주제와 묘사에 있어 강렬한 폴 버호벤 감독의 스타일이 여일하게 이어진다.
두 여성의 성애는 물론이고 고문이나 자학 등 폴 버호벤 감독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말초적이면서도 가학, 피학적인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감독이 여러 번 언급한 대로 <베네데타>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모두가 부정하고 싶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베네데타>는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비롯해 가부장중심적이면서 이성애중심적인 세계의 관습에 전복적으로 대항하는 영화이다.
폴 버호벤은 이전에도 폭력적인 세계에서 여성이 느끼는 경험들을 극한으로 치달아 보여준 바 있다.
<블랙북>의 레이첼(캐리스 벤허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유대인으로서 겪는 엄혹하고 살벌한 시대의 풍경을 홀로 견디는 여성이며,
<엘르>의 미셸(이자벨 위페르)은 어느 날 정체 모를 남성의 침입에 성폭력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살해 전력으로 살인자의 딸이라는 눈초리를 얻으며 살아온 여성이었다.
물론 폴 버호벤은 이들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피해자의 위치에 놓거나 또는 정확한 답을 준비해두기보다는 그들이 겪어오고 또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거의 정답이 없다는 듯 우리의 눈앞에 실행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폴 버호벤의 영화가 더욱 입체적이고 풍부하면서 때로는 논란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영화<엘르>
영화<블랙북>
씨네랩 에디터 Hezis
씨네픽 다운로드 받기
씨네랩 확인하러 가기
-
-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좇아서
언제나 미디어는 여성의 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어릴 적부터 미디어 중독자였다. 유이의 ‘꿀벅지’를 기억하고, 설현의 완벽한 뒷모습을 기억한다. 한 통신사의 설현의 입간판은 숱한 남성에게 도둑을 맞기도 했다. 지금의 흐름은 양분화되어 있다. 누가 봐도 마른 몸의 슬렌더형 여성상과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성상은 함께 유행한다. 취향의 차이라지만,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성 또한 사실은 마른 몸을 가진 여성이다. 카메라 뒤에 서는 일을 꾸준히 해왔기에 방송용 카메라가 가지는 한계를 안다. 카메라는 피사체를 현실보다 조금은 부하게 비추며, 화면상의 모습은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 서는 여성들은 미디어에 보여질 기준에 맞춰 자신의 몸을 옥죄여 관리한다.
<서브스턴스>는 여성의 몸과 노화에 대한 이야기다. 인기 에어로빅 쇼를 진행하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중년을 맞이한 스타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선망이 될만한 몸을 가졌음에도, 노화는 어쩔 수 없다. 남성 프로듀서들은 그녀의 모습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 그 역학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왕년의 스타’가 되어 쇼에서 내쳐진다. 이 영화는 그 순간에 절망하는 중년의 여성을 비추는 쇼가 아니다. 바디호러라는 장르를 이용해 그녀에게 새로운 젊음의 몸을 주는 특이한 양태를 취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서브스턴스’라는 도구를 통해, 엘리자베스는 젊은 몸을 얻는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일주일은 엘리자베스의 몸으로 살아야 하고, 일주일은 젊은 몸을 가진 ‘수’로 살 수 있다. 앞은 조건이고, 뒤는 가능이다. 그 룰을 어기면, 균형은 무너진다.
그렇게 얻게 된 젊고 아름다운 몸으로 수(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수)의 자리를 빼앗는다. 소프트웨어는 같은 사람이기에, 보여주는 에어로빅은 다를 바 없을 것임에도 남성 프로듀서들은 수는 무언가 다르다며 열광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수의 신체를 파편화해서 재현한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들을 여성의 몸에서 주로 대상화되는 ’부위‘들을 중심으로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수의 에어로빅 씬은 ’소프트 포르노‘와 다를 바 없다. 이전의 영광을 누리게 된 엘리즈베스는 수의 몸을 탐하고, 규칙을 어기게 된다. 그렇게 바디 호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의 시간을 늘릴수록 엘리자베스의 시간은 줄어든다. 그렇게 수의 신체에서 엘리자베스의 신체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노화를 넘어 붕괴를 겪고 있는 자신과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못하는 욕심은 결국 엘리자베스의 신체를 부식시키고 영화는 파국으로 흘러간다.
결말부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 영화는 끝까지 가는 영화다. 멈출 때가 됐다고 생각할 때에도 영화는 브레이크를 절대 밟지 않는다. 이 작품은 결국 중요한 것은 외면이 아닌 내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든지 하는 교훈적인 영화가 아니다. 끝까지 가는 이 작품의 방향성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한, 젊음과 미에 대한 추구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중요한 건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악몽의 세계가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작품은 바디 호러라는 장르를 빌렸을 뿐, 그 어떤 작품보다도 현실적인 작품이다.
앞서 여성의 몸에 대해 주로 얘기한 바 있다. 하지만 요즘 가장 눈길이 가는 이슈는 ’중안부‘ 이야기다. 과거 작은 얼굴, 큰 눈, 높은 코, 브이라인 턱에 대한 추구가 컸다면, 이제는 ’중안부‘라는 말도 안 되는 영역까지 미에 대한 기준은 침범했다. 여성들은 그렇게 매일 거울 앞에 앉아 그녀들과 다른 자신의 얼굴에 절망한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화장을 한다. 그럼에도 덜어지지 않는 부족함은 시술로, 수술로 이어지며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추구미’ 를 좇는다. 끝없이 바뀌는 미의 기준 속에 우리는 어디를 좇아가야 하는가.
나는 여타 여성들보다는 외모 강박이 심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설 일이 있었다. 카메라 앞에 비춰진 나의 모습 속에 나의 단점들이 보였다.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는 작은 턱으로 인해 납작한 편인 옆모습이라든지, 좁은 어깨에 비해 큰 얼굴이라든지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변화시킬 의지는 없지만, 더 아름다운 나를 원하지 않냐고 물으면 말끝을 흐리게 될 것 같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공허한 말만을 외쳐서는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이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낼 수 있을까.
로라 멀비는 일찍이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라는 저작에서 미디어 속 ‘Male gaze’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여성 감독이 ‘Male gaze’를 갖고 놀며, 그 시선이 망쳐놓은 세상의 끝의 끝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녀가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
- 당신은 이 영화를 보면서 스커트를 하게 됩니다 [영화리뷰/결말포함]
-
SUBSCRIBE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
- 왓챠 2022년 1월 1주 신작 영화
[WEEKEND CHOICE MOVIE] #왓챠#왓챠신작 #왓챠영화#왓챠2022
#브로드처치 #니시아적영요 #월광변주곡 #나의직장상사는코미디언 #러덜리스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
- 넷플릭스 <소년심판> 티저 예고편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그 나이에. 감히.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소년심판》 2월 25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
- 영화 <뱅퀴시> 메인 예고편
단 하룻밤, 5번의 픽업을 완수하라!
국가 영웅이었던 전직 경찰국장은
도시를 장악한 5대 조직과 사건에 휘말린다.
그는 마약 운반책이었으나 손을 씻은 그녀의
딸을 볼모로 잡고 위험한 미션을 제안한다.
단 하룻밤, 5대 조직으로부터 5번의 픽업을 하라!
그녀의 킬러 본능이 폭발하고, 도시는 전쟁으로 치닫는데…
오늘 밤, 그녀의 분노가 폭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