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9-18 18:08:41
이것은 제사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장손> 리뷰
SYNOPSIS.
3대 대가족이 모두 모인 제삿날 일가의 명줄이 달린 가업 두부공장 운영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는 와중, 장손 ‘성진’은 그 은혜로운 밥줄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 갑작스레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이별로 가족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는데…
핏줄과 밥줄로 얽힌 대가족의 70년 묵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진다!
POINT.
✔️ 익숙한 한국 가족 관계, K-유교 문화와 제사와 명절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풀어냈나 싶을 만큼 섬세하게 풀어내는 영화
✔️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까지 당신을 데려갈 영화. 볼 때도 좋았는데 보고 나서도 자꾸 떠올라요.
✔️ 연기 경력이 어마무시한 배우들이 더없이 자연스럽게 펼치는 가족 연기 (정말 명절 풍경 같아서 사람에 따라서는 트라우마가 올라올 수 있을 정도...)
✔️ 작년도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작으로 이미 인정 받은 영화
✔️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한국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와중에 매우 아름답고 섬세한 로케이션과 미술! 촬영이 정말 아름다우니까 꼭 극장에서 보아주세요.
*아래 리뷰에는 <장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세요.

영화 <장손>은 얼핏 제사와 명절 풍경, 그 안에 얽히고설킨 가족 갈등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인다. ‘장손’에 대한 조부모 대의 굳건한 믿음이 손녀에게는 분배되지 않는 모습, 차분하게 굄돌처럼 역할을 다하는 며느리와 큰소리만 뻥뻥 치는 아들, 큰 재산 없이 부모 곁을 지키는 큰딸과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느지막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딸의 역할 차이 또한 더없이 익숙한 풍경이다. 영화 <이장>을 비롯해 우리는 이런 가족 드라마에도 꽤나 익숙해져 왔다. 지고지순 금슬 가족애 이런 단어들 아래서 누군가에게는 안온함을 또 누군가에게는 숨이 턱 막히는 시간을 안기는, 원앙 금침 같은 이 한국식 가족 관계.
연기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초반부는 그야말로 명절 풍경 그 자체이고, 아직 철없는 ‘장손’을 포함해 적당히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노인은 두부 맛에 깐깐하게 굴고, 장손이 나타나니 그제야 에어컨을 켜거나 제사 시간을 바꾸는 (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행위마저 은근슬쩍 눈감아 줄 만큼 익숙한 공기를 내뿜는다.

그 익숙한 풍경 안에는 유머러스한 장면만 있지는 않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의 고성 뒤로, 할머니는 익숙한 듯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한글로 쓰는 연습을 흥얼흥얼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 눈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장면들이, 가족 안에서는 적당히 넘어가진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를 장손은 괴로워하지만, 어머니는 지긋지긋할 만큼 익숙한 솜씨로 이불을 가지고 내달려 오고, 할머니는 베개를 놓고 선풍기를 돌려 놓는다. 어둑한 집안, 가족이기에 그 태연함이 이해되는 장면이다.
기실 가족 관계란 절대 단편적인 색깔로 칠해질 수 없다.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 인간과 인간이 맞부딪는 순간 또한 완벽할 수 없기에. 오랜 세월을 머금은 관계는 어디에선가 반드시 삐걱이기 마련이고, 사건은 각자에게 다른 생채기를 남기고,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된다. 가족 간에는 그런 사건이 지근거리에서 너무 많이 쌓이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감정이 실꾸리처럼 돌돌 말려 그 끝을 파악하기 어렵다. 대충 애증이라고 눙치고 지나가기 쉬운 관계 속 감정이나 사건들을, <장손>은 훌륭한 솜씨로 풀어낸다. 기나긴 대하소설을 읽으며 파악할 법한 정보들을 잘 녹여내어, 한 가족의 전사를 관객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다.

영화의 결이 뚝 바뀌는 것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이다. 마치 배우 이정은의 얼굴이 영화 <기생충>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뚝 갈랐던 것처럼, 배우 손숙의 얼굴이 담긴 영정 사진이 불에 오그라들면서 <장손> 또한 제사와 갈등 이면으로 관객을 깊이 데려간다.
이전에도 자식들은 서로 처한 상황이 달랐고 이해 관계도 달랐지만, 할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고모의 갈등을 주축으로 이해는 더욱 멀어져 간다. 다만 영화 <괴물>의 경우와 달리, 보면서 진실이 무엇일까 궁금해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흑 혹은 백으로 명확하게 정리되는 문제보다 입장의 차이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문제가 훨씬 많고, 가족 관계 안에서는 특히 그러하기에. 증조부 증조모의 무덤이 비어 있어도,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해도, 범죄 스릴러처럼 범인을 찾기에 급급한 마음 같은 건 올라오지 않는다. 뭔가 이유가 있었으려니. 그리고 그런 이유의 가닥들을 하나하나 모아 틀어 쥐고 있던 것이, 이 집안 안에서 할머니가 해온 역할이려니.

제사의 아우라를 부여하려고 아무 말이나 하거나 장손이 올 때서야 에어컨을 켜주는 귀여운 일면도 있지만, 할머니는 분명 이 집안의 구심점이었다. 꼬장꼬장하게 두부 맛을 보며 가풍을 지키고, 통장이며 모든 대소사를 관할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펼쳐내는 돌봄의 모양새가 그렇다. 큰고모네 의료비를 대주거나 월급을 조금씩 여투어 놓는 일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든 장미꽃을 잘라 솥 아래 불에 쓸어 넣을 만큼 알뜰살뜰하게.

이 내내 ‘장손’ 성진은 관찰자처럼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본다. 장녀였다면 갖지 못했을 거리감이다. 기묘한 죄책감과 불편함 안에서 갈수록 무거워지는 표정으로, 그럼에도 충실한 인터뷰어처럼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씩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듣는다. 고모와 어머니, 누나까지 한 명씩 만나 속마음을 각각 듣게 되는, 서술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오직 성진뿐인데, 독특한 점은 집안 식구 중 여성들만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고모부, 툭하면 고주망태가 되는 아버지와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착실한 성품의 (그래서 누나 말대로 공장을 “신경 쓸” 예정이며 사실상 이미 쓰고 있는) 매형은 공장을 물려받을 대상으로는 거론되지 않아 사실상 집안 식구라 보기 어렵다. 성진과도 역할을 분담하는 동료 느낌의 대화만 주고받는다.

‘무능한 아버지’ 대신 현명했고 인내했던 어머니(들)를 하나하나 마주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은 조부다. 마치 퀘스트를 하나하나 깬 후 최종 보스를 마주하듯이. 이 엄숙한 대화를 마무리하며 그는 무언가를 건네받는다. 최종 보스를 지나는 주인공이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열쇠처럼.
이것은 계승이다. 그동안 한 걸음 밖에서 관조적으로 맴돌던 장손은 이제 손에 쥐어진 것을 들고 계승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구한 현대사 속에서 인물들의 삶을 찾아온 이리저리 꼬인 사건들, 그 안에서 서로 주고받은 말과 애정과 상처들, 그것들의 흔적을 손에 쥔 채, 그는 햇살 아래 눈을 찌푸린다. 영화 첫 장면이 연기로 희뿌연 공장 내부(“문 열어라, 문! 이러다 죽겠다!”)였음을 생각할 때, 영화 <장손>은 제사의 계승이나 갈등의 표출만이 아닌, 그보다 더 깊은 뿌리의 계승을 둘러싼 이야기다. 계승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뿌리에 빛을 비추어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건 아름다운 원경이다. 할머니의 장례 행렬에 꽃상여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눈 내리는 겨울 산으로 자분자분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 폭 그림처럼 펼쳐진다. 꽃상여는 불에 타오르고, 눈 내리는 소리는 어쩐지 불을 닮아 있다. 무언가의 죽음 뒤에는 불이 뒤따른다. 타고 남은 재를 앞에 두고, 우리는 이제 다음 걸음을 고민해야 한다. <장손>이 한 경상도 가정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세대의 어떤 것으로 읽히는 이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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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이여~ 따봉! <스턴트맨>
라이언 고슬링, 에밀리 블런트, 애런 존슨, 해나 워딩엄, 테레사 팔머, 스테파니 수, 원스턴 듀크. <스턴트맨>의 주요 출연진은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과 함께 엔딩크레딧을 수놓은 이들 또한 주요 출연진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한 작품을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린 이들의 노고가 만든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을 위한 헌사! <스턴트맨>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플롯 부분에 덜컹거림은 있지만, 끝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그건 영화가 가진 그 진심이 와닿기 때문이다.
언제나 ‘따봉’을 추어올리며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는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 하지만 할리우드 액션 톱스타 톰 라이더(애런 존슨)의 대역으로 고난도 추락 액션 장면을 촬영하다 큰 사고를 당한다. 이후 그는 잠적한다. 촬영 당시 연인이었던 촬영 감독 조니(에밀리 블런트)의 연락에도 잠수를 탄 그의 새 직장은 한 레스토랑. 어울리지도 않는 발렛 일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그에게 프로듀서 게일(한나 워딩업)이 연락한다. 조디의 감독 데뷔작 <메탈스톰>에 스턴트맨으로 도움을 달라는 것. 그 즉시 호주 시드니로 향한 콜트. 조니와 운명적인 재회는 했지만, 싸늘한 기운만 감돌기만 한다. 한편, 게일은 콜트에서 실종된 톰을 찾아달라 부탁하고, 콜트는 조디의 첫 장편에 도움을 주기 위해 톰을 찾아 나선다.
<스턴트맨>의 원제는 <The Fall Guy>다. 1980년대 TV 시리즈 <The Fall Guy>(한국 방영 시 제목은 <스턴트맨>)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철저히 그 시대 만들어진 작품의 콘셉트와 분위기를 오롯이 가져온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액션. <데드풀 2> <불릿 트레인>의 데이비드 리치 감독이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지만, 최대한 CG를 배제하고 몸으로 부딪치고, 뒹구는 리얼 액션을 보여준다.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와이어 추락 장면은 물론, 극중극인 <메탈스톰> 해변 차량 전복 장면, 도심 차량 액션, 후반부 <메탈스톰> 촬영지에서 벌어지는 카체이스 장면 등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이제는 자주 볼 수 없는 리얼 액션을 선사한다. 중요한 건 액션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은 와이어 추락 장면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면서 스턴트맨이 하나의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의 긴장감은 물론, 다양한 감정선을 다룬다. 이처럼 액션 전에 전사를 삽입하면서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로 인해 액션이 액션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리고 액션을 통해 다양한 감정선을 전하는 데도 성공하며 몰입감을 증대시킨다.
이는 콜트와 조디의 재회와 관계 봉합 과정에서 도드라진다. <메탈스톰> 첫 와이어 액션 장면에서 조디가 가진 그동안의 서운함을 콜트에게 퍼붓는데, 그 방식은 계속 ‘컷’을 외치며 바위에 부딪히는 장면을 찍게 하는 것. 분이 풀릴 때까지 컷을 외치는 조디와 이를 수긍하면서도 힘들어하는 콜트의 모습은 액션으로 감정선을 전달하는 좋은 예로 보인다. 더불어 가라오케에서 콜트를 기다리며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를 부르는 조디와 그녀에게 가기 벌이는 콜트의 카체이싱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보이는 장면도 영화가 추구하는 액션 기조를 잘 보여준다.액션만큼 중요하게 다룬 건 역시 멜로. 콜트와 조이의 관계를 보면 1980~90년대 <로맨싱 스톤> <전선위의 참새> 등 할리우드 액션 로맨스 영화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즐비하다. 사랑하지만 오해를 거듭하고, 싸우고 하는 가운데에서도 절명의 위기에 진심을 고백하고, 끝내 찐한 키스로 사랑에 골인하는 이 공식을 영화는 그대로 차용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분할 컷을 통해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을 조성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와해된 관계가 다시 좁혀지는 그 과정을 그린다. 물론, 배를 몰며 조이에게 진심을 고백하는 콜트의 모습이 올드함을 주고,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이 이뤄지는 결말이 다소 식상하긴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잘 구현했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스턴트맨>은 영화에 관련된 직업인들의 애환과 직업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콜트와 조이 등 주요 인물들은 카메라 앞이 아닌 뒤에 선 이들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화라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한다. 관객들의 박수를 받지는 못하지만, 자기 일에 자부심을 하나로 일을 하는 이들이다. 와이어 추락 사고 이후 콜트가 촬영장에 돌아가지 않는 건 일에 대한 자부심에 스크래치가 났기 때문이다. 부끄러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콜트가 다시 촬영장에 돌아간 건 저버릴 수 없는 영화를 향한 사랑, 그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해내며 얻는 그 기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는 열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이를 ‘영화’로 바꿔 본다면 콜트의 이같은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감독은 후반부 영화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톰과 게일의 수난사를 통해 이를 부각한다. 이 장면은 조이의 전두지휘 아래 펼쳐지는 액션 장면처럼 보이는데, 카메라는 톰과 게일뿐만 아니라 적재적소에 기민하게 움직이는 스턴트맨 이하 스탭들의 모습을 담는다. 이들의 노력이 없다면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즐기는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턴트맨>은 마지막까지 이 메시지를 전한다. 성룡 영화 엔딩크레딧에서 자주 봤던 액션 NG 장면이 등장, 손에 땀을 쥐게 한 놀라운 액션의 비하인드가 나온다. 어찌 보면 그 촬영 현장들이 더 영화 같은 생각이 들 정도. <스턴트맨>은 세련되거나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지만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건,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진 진심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CG로 딥페이크로 구현할 수 없는 오로지 사람이 만드는 액션과 영화의 진심. 그 진심이 더 그립고 빛이 나는 시기에 우리에게 당도한 연서와도 같다. 가능하다면 그 진심이 많은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덧붙이는 말: 콜드 역은 라이언 고슬링이 맡았지만, 고난도 액션은 총 4명의 스턴트맨이 담당했다. 드라이빙 대역은 로건 홀리데이, 격투 대역은 저스틴 이튼, 불에 타고 차에 치이는 장면 대역은 벤 젠킨, 낙하 연기 대역은 트로이 브라운이 그 주인공. 그들은 스크린 속 영웅이 아닌 스턴트맨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영웅이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있는 호쾌한 액션의 영웅들. 영화를 본다면 이들도 기억하길~~
사진출처: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3.5 / 5.0
한줄평: 몸 하나로 만드는 액션 서사만으로도 따봉(엄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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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서울의 봄'
영화 '서울의 봄'은 '태양은 없다', '비트' 등을 감독한 김성수가 만들었다. 그의 학창 시절 들었던 총성의 본류를 찾아들어간 짧은 시간 안의 긴 이야기다.
서울의 봄, 오랜 기간 유신통치를 통해 장기간 집권을 유지했던 박정희 정권이 김재규의 암살 사건으로 막을 내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거라 여겼던 서울 시민과 전 국민들의 기대와 바램과 무관하게 이른 새벽 자신의 집 앞 골목 길을 지나는 탱크와 마주한다.
평안할 밤, 시내 중심가는 총성이 울렸고, 나라를 지킨 충무공 이순신 동상 앞을 지나는 수경부 사령관의 마음은 착잡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소신있는 자의 말과 기회를 틈타 자신의 배 속을 채워가는 이들 간의 대립은 결과를 알고 보더라도 반란군에게 넘어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함을 담아 스크린을 바라보게 된다.
서울의 봄은 국민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고, 사회 각료층 또한 반란군의 반란은 그저 박영효 등이 이끌었던 삼일천하 정도로 치부할 법했다. 그래서 그들은 업무에 태만했다기 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는 관객 또한 많지만) '설마?'라는 마음이 컸을런지도.
영화 '헌트'와 비슷한 캐릭터라 출영을 고사했다는 정우성 배우도 시나리오를 읽는 즉시 출연을 오케이했던 황정민 배우도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을 관객 자신에게 빙의 시킬 만큼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특히 정우성 배우의 경우 실제 삶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품고 세심하게 돌보는 성품으로 유명한 가운데 맡은 고지식하면서도 욕심없는 청렴결백한 또한 국민과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이 역할과 잘 어우러져 마음 속 상남자의 진한 여운을 남겼다.
때론 역사의 한 장면으로 시간을 돌려 들어가 다른 선택을 하라고 종용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령 을사조약이나 뒤주 속 사도세자의 일, 혹은 우매한 리더십 안에서 눈먼 장님처럼 추종하는 세력이 형성되기 전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드는 마음은 '그것을 되돌린다고 그 이후에 동일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다.
사회적 흐름,시대상, 전 세계적 조류라는 것이 쓰나미처럼 물밀 듯 밀려올 때가 있다. 그 때는 깨어있는 몇 몇의 말은 묵살되고 '어찌 저렇게까지 어리석은 일을 할 수 있을까?'싶을 만큼의 부끄러움이 깃든 판단과 결정이 내려진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반면교사삼아 현재와 미래는 좀 더 지혜롭고 후회없는 결정을 내리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이러한 역사적 순간은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구나! 싶을 때가 있곤 하다.
서울의 봄 속 이야기 역시 누군가가 무능하거나 우매해서 용기없어서가 아닌,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는데 지나가야할 필연적 장면은 아니었나 싶다.
역사란, 있는 그대로의 사실 기술보다 그것을 해석한 후대의 기록이란 말이 있기에 조선왕조실록은 그 가치를 더한다. 부조화의 오류처럼 역사가가 그리고 그 시대가 자신을 알리고 싶었던 모습대로만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아닌, 입체적인 역사의 현장을 알아가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것은 사건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객관적 잣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어떠한 힘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현장 안에서 무력감을 느낀 역사를 알았다면, 앞으로는 그 쓰나미를 막아내고 그것이 뒤로 물러갈 만큼의 힘과 의식의 조류가 생겨나길!
* 서울의 봄과 연결해 감상할 수 있는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 - 임상수 감독, 한석규 주연 < 그 때 그 사람들 > / 우민호 감독, 이병헌 주연 < 남산의 부장들 > / 장준환 감독, 김윤석 하정우 주연 < 1987 > / 장훈 감독, 송강호 주연 < 택시운전사 > / 정지영 감독, 박원상 이경영 주연 < 남영동 1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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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석도 3편'이 아닌 '범죄도시 3'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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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인천시. 사람들이 화가 나있다. 아마 차가 막혀서 그런 것 같다. 빼곡히 모여있는 사람들. 갑자기 차에서 남자들이 내린다. 시비가 붙었다. 화가 난 사람들. 몇몇 인간들이 엄한 시민들 서로 삿대질을 한다. 바로 주먹다짐이 벌어진다. 차를 타고 등장하는 한 남자. 왠지 이 걸음걸이는 두 번 본 적이 있다. 차에서 내리는 마석도. 마석도는 의외로 경찰이다. 싸움을 말려야 한다. 마석도에게 싸움을 말리는 일이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가볍게 두들겨 패고 행패 부리는 부랑자들을 잡아넣는 마석도. 마석도의 팀원이 바뀌었다. 새로운 반장 장태수가 부랴부랴 도착한다. “석도야. 고생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버스에서 강해상을 두들겨 팬지 7년이나 지났다. 많은 것이 변했다. 일단 마석도의 부서가 변했다.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가 아니다. 무려 건축물 안에 있다. 하지만 시설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은 마석도가 지켜야 할 것도 더 생겼다는 의미다. 잡아온 범죄자들을 수사하던 마석도. 말을 더럽게 안 들어도 진실의 방을 외치기엔 약간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야 할 일의 난이도가 올라갔다.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냥 나이트클럽에 놀러 갔던 20대 초의 여자가 마약 과다복용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다. 원인을 추적하는 광수대. 몸통을 찾아올라 가는 마석도 일행.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몇 가지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7년 만에 터진 대형 사건. 마석도는 이번에도 나쁜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까?
시리즈의 3편
1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작년 <범죄도시 2>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였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2편의 장점은 전편을 잘 승계했다는 것이다. 1편 왜 재미있었지? 마동석 배우의 캐릭터성과 코미디를 잘 살렸다는 점이다. 우선 마동석 배우가 1편 이전에 쌓았던 이미지는 ‘마블리’였다. 이 마블리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폴라로이드를 이용한 개그, 장이수와의 캐미 등등이 영화의 소소한 킬링포인트가 됐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서 장첸과의 액션신도 빼놓을 수 없다. 그전부터 마석도의 강력한 무력을 꼼꼼히 보여주다 하이라이트에서 힘을 빡 주는 연출로 액션에 강점을 준 것이다.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액션(장소적인 특성), 주고받는 방식, 이를 촬영하는 모습까지 장르물로서 잘 갖춘 영화가 <범죄도시 1>였다. 2편은 이거 그대로 살렸다. 다시 등장하는 장이수, 마석도의 원펀치 액션, 전일만 캐릭터를 코미디로 활용하는 방식까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은 잘 준비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이 선택지들은 적중해서 기록적인 흥행기록을 만들었다.
3편은 이 공식을 어느 정도는 승계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액션 강화했다. 2편에서 마석도 갖고 있던 액션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원펀치였다. 초반 짱구를 상대하는 액션 신부터 중후반부까지 웬만한 사람들을 한방 멋 내는 마석도의 괴력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동했다. 이를 위해서 영화 자체적으로 사운드가 굉장히 중요했다. 3편 역시 소리가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운드가 잘 구현됐는가 와는 별개로 소리는 영화에서 두드러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연속기를 구성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극 중 초반부에서 마석도가 이 운동을 배웠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를 보여주듯 영화는 격투게임 커맨드 누르듯 피하고 때리는 운동행위가 자연스럽게 설정되어 있다. 무술감독님의 열일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며 극에서 두 번째로 큰 장점이라고도 뽑을 수 있다.
또 2편만큼은 아니지만 3편이 시리즈를 연계한 부분이 있다. 영화의 공간적인 배경을 통으로 바꿨기 때문에 2편을 그대로 갖고 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서 전작을 오마주 한 흔적이 있다. 글쓴이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주성철과 마석도의 개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선에서 한번 더 들어온 느낌? 그러나 이 장면이 오히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2편의 '어 싱글이야' '맞다가 죽을 것 같으면~'을 살짝 의식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 된 장점
2편에서 좋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사운드였다. 영화가 마석도의 주먹 한 방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이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것은 작품의 핵심 과제였다. 영화는 초반 첫 장면부터 이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도입부에 짱구를 제압하는 장면에서 얼굴에다 주먹 꽂고 시작한다. 한 방 맞고 전치 몇 줄을 끊는다. 이걸 뭐 디테일하게 일일이 다 촬영할 수도 없는 일. 소리 한번 시원하게 들려주면 설득력이 생긴다. 2편은 좀 비현실적이긴 한 마석도의 무력을 어렵지 않게 묘사했다.
그러나 3편에서 이 부분이 아쉽게 느껴진다. 일단 초반부. 마석도가 난장판인 길바닥을 수습한다. 시비 붙은 사람들. 여기서 마석도의 첫 번째 액션 신이 있다. 이 장면에서 사운드가 너무 인위적으로 편집된 느낌이 있다. 글쓴이만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대충 때리는 듯한 연출이 몇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 끝나고 공간을 이동해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이 장면에서 후시녹음의 티가 너무 대놓고 나서 몰입을 방해하는 감이 있다. 뭐 단순히 초반부뿐만 아니라 귀를 할퀴는 듯한 사운드 연출은 영화 내내 발목을 잡는다. 물론 이게 작품 몰입에 방해가 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서 지장이 있다고는 느낄 수 있다.
또 2편에서 소소하게 말장난으로 웃음을 줬던 부분이 있다. 영화의 공간을 활용한 방식이었다. 대표적으로 마석도가 라꾸의 도박장에 급습하는 장면이다. 라꾸의 고객 중 하나가 마석도에게 말 거는 장면을 보면 '버스 타고 왔어' '까불인데요'같이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3편에서 나이트클럽이라는 장소를 작위적으로 사용한 느낌이 있었다.
빌런의 존재감
기존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장점으로 뽑을 수 있었던 건 역시 빌런의 존재감이다. 위성락과 장첸을 연기한 윤계상과 진선규, 강해상을 손석구는 두 편의 영화에서 아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우선 1편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동했던 부분은 빌런 무리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기였다. 진선규와 윤계상은 감정전달에 있어 때에 따른 임팩트를 줘 효과적으로 극에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가령 위성락이 잠깐 풀리고 난 다음 장첸과 나누는 대화 연기를 보면 진선규 배우가 얼마나 몰입했는가를 알 수 있다. 장첸 역을 맡은 윤계상 배우는 연기에 있어 핵심이 여유라고 생각한다. 이 인물은 그냥 대놓고 CCTV에 찍히고 횡단보도 있든지 말든지 신경조차 안 쓰는 인물이다. 후반부에 도망갈 생각은 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느슨했던 장첸. 이 인물의 여유과 악랄함선을 잘 지켰던 윤계상의 새로운 얼굴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2편의 강해상은 어린아이 같은 빌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냥 기분 나쁘다고 애 먼 의경을 칼로 찌른다던지, 자기감정에 휩쓸려서 인간관계를 그르치는 것이 그 근거다. 손석구 배우는 목소리 톤을 낮게 유지하는 식이나 돌발행동을 중심으로 한 액션을 깔끔하게 소화하는 등 빌런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을 아주 잘 이해한 듯 보였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주성철/리키의 존재감이 1,2편의 악당들과는 살짝 떨어지다고 느끼는 분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글쓴이는 이것이 의도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최종보스급 빌런이 두 명이나 필요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우선 윤계상, 손석구 두 배우가 악당 역 연기를 너무 잘했다. 둘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악역을 해석했다. 그러나 두 캐릭터 세팅에는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 글쓴이는 '영화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나?'라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 두 편은 '마석도가 까부는 장첸과 강해상을 두들겨 팼다'로 요악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이 재미있어서 글쓴이도 좋았지만 스릴러물로서는 영 부실한 느낌? 이야기가 단면적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3편에서 주성철, 리키를 묘사하는 방식은 이 영화가 스릴러, 범죄물로서의 역할을 한 다고 본다. 나쁜 놈들 때려잡을 때의 순간에 임팩트를 준 연출과 과정에 주안점을 둔 이야기가 차이점을 갖는 것이다. 본 작은 3편이니까 후자에 대해서만 써 보겠다. 영화는 이것저것 들어간 것이 많다. 우선 첫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빌런들이 아니다. 강해상과 장첸이 사람 죽이는 걸 제지했던 전작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둘째. 주성철의 캐릭터 세팅이다. 영화관을 예고만 보고 그냥 들어간 분들은 이 사람의 설정에? 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또 세 번째로 리키의 등장 시점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고려했을 때 글쓴이는 이상용 감독이 빌런의 존재감들을 장르적인 특성으로 치환시키려고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것들이 매끄럽게 연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인 주성철의 캐릭터 세팅에서 현실감이 살짝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시리즈가 5편이나 남았고, 이 모든 영화들을 악당 역 배우의 열연으로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이야기의 변주가 필요했다. 시리즈를 위한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저런 거 다 따져서라도 이준혁 배우의 열연은 어마어마했다. 본인이 가진 선한 이미지와 캐릭터 비주얼로 풍기는 악랄함의 선을 잘 탄 셈이다.
그러나 살짝 아쉬운 점은 역시 초반부에 있다. 첫 장면. 이 장면은 기본적으로 강해상의 '너 납치된 거야' 신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시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시퀀스에서 주성철에게 힘이 안 실렸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임팩트를 주려고 했는데 밋밋한 것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극의 최고 단점은 이 부분이다. 시작이 밋밋해서 별로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캐릭터로 들어와서 리키라는 인물도 액션 시퀀스가 더 들어갔으면 이야기가 박진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린 팀이야
이 3편이 전작들에 비해 추가된 부분은 동료 캐릭터들이다. 2편에도 경찰들의 액션 신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마석도만큼 강력해 보이지는 않았다. 장 씨 형제들을 펀치 셋방으로 제압한 마석도와는 다르게 가까스로 악당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작품에서 경찰 캐릭터들은 2편만큼 무능력하지는 않다.
특히 글쓴이가 영화에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김만재 캐릭터다. 적당히 현실감 있으면서 영화의 안전지대 같은 역할이었다. 전작의 오동균, 강홍석, 전일 만보다 훨씬 유능했고 파트너십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김민재 배우가 마동석 배우와 합을 맞춰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극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사람을 캐스팅 한 건 좋았다. 또 초롱이 역을 맡은 고규필 배우는 이 영화 모든 캐릭터들 중에서 연기를 가장 잘했다. 인터넷상에서 밈처럼 소비되는 건달 이미지가 있다. 이를 구현하며 건들거리는 말투와 행동으로 범죄도시 시리즈를 연계받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장태수 역을 맡은 이범수 배우는 뭔가 아쉽다. 글쓴이는 너무 전형적으로 연기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 친근한데 전일 만이랑 공통점 있다!!'를 강조하는 느낌? 이 이질감은 초반부 경찰서에서 뭔가를 먹는 신에 더 두드러진다. 안 그래도 작위적인 장면 전개에서 더 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물의 분량조절에 있어서도 의문점이 드는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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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열차: beyondness
“제자리를 지키고 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그 모든 게 합쳐서 무엇이 되나? 열차야. 각기 있어야 할 자리를 엄격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합치면? 그게 인류야. 열차는 세계 우리는 인류야”
“이제 자네는 전 인류를 이끄는 성스러운 임무를 얻었어. 자네는 저들을 구원할 수 있어.”
차이가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
온난화를 막기 위해 살포한 CW-7으로 인해 지구는 빙하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얼어붙은 세상을 17년 동안 달리는 긴 열차가 있죠.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에는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앞 칸과 꼬리 칸으로 나누어 살아갑니다. 앞 칸은 표를 구입해서 열차에 오른 사람들, 꼬리 칸은 혹독한 추위를 피해 표 없이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격차는 17년 동안 크게 벌어졌습니다. 달리는 열차라는 사실만 빼면 얼어붙기 전 세상에서 살던 것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앞 칸 그리고 그런 앞 칸을 꿈꾸며 살아가는 꼬리 칸은 먹는 것부터 매우 차이가 납니다. 스시도 먹을 수 있는 앞 칸과 다르게 꼬리 칸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단백질 블록만을 먹고살죠.
꼬리 칸 사람들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7인의 반란, 맥그리거 폭동 등 밖으로 나가거나 앞 칸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이 있었죠. 그들의 끊이지 않는 도전은 영화의 주인공 커티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이미 실패한 전례가 있기에 그들은 더욱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앞 칸에서 그들을 돕는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단백질 블록 안에 메시지를 써 보내주니 더욱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경비병들의 총에 총알이 없다는 걸 알아챈 커티스가 반란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반란은 시작되었고 반란이 혁명으로 번지기까지 촛불을 휘두르며 쉬지 않고 뛰어갔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는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급수 칸 앞에서 폭도 진압을 위해 모인 복면인들과의 전투는 매우 잔혹하고 그들의 죽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울려서 싸우는 동안 열차의 간부 메이슨은 히죽 거리며 마치 재미있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 마냥 구경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커티스를 잘 따르던 에드가도 죽었습니다.
곳곳에 뿌려지는 피와 날선 도끼에 맞아 눈을 부릅뜬 시체, 꼬치 꿰듯 꽂힌 꼬리 칸 사람들의 비명 없는 외침을 보며 그들의 전투가 잔혹하다는 걸 무척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 생각이 들게 하죠. 서로 죽고 죽이는 이 싸움이 누굴 위한 것일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싸울 뿐입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꼬리 칸과 앞 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복면인들은 각자의 신념이 있지만 그 신념을 유발하는 ‘차이와 차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요.
질서를 지키려는 자와 무너뜨리려는 자
앞 칸의 주요 인물들은 질서(order)를 중요시합니다. 질서는 영화 속 영문 표기에도 나온 것처럼 order, 다른 의미로는 명령이며, 이 명령은 신성한 엔진을 수호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나오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영화 초반 메이슨이 “앞 칸이 머리면, 꼬리 칸은 신발이다.”라며 신발을 가리키며 이건 ‘무질서’ 또는 ‘죽음’이라고 표현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질서는 ‘생명’이 되죠. 즉, 질서(명령)는 열차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명시하는 겁니다. 그런 메이슨의 신념은 앞 칸의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윌포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황홀감에 눈을 부르르 떠는 교사와 그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윌포드는 위대하다! 엔진은 영원하다!‘고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릴 때부터 광기 어린 ’절대적인 명령(질서)‘을 주입하는 독재자의 그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절대적인 명령은 ‘열차가 달려야 한다.’는 명제입니다. 이 명제 안에서 누구나 역할이 바뀔 수 있습니다. 길리엄을 추억하던 윌포드의 모습은 자신도 길리엄도 열차를 수호하기 위한 같은 역할임을 말하는 듯합니다. 이는 그들의 역할이 열차를 위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죠. 윌포드가 자신의 자리를 커티스에게 물려주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윌포드 역시 열차를 달리도록 해야 하는 자신의 위치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다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앞 칸 사람들 역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지만 그 자리가 차이와 차별을 만들고 차별로 꼬리 칸과 앞 칸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앞 칸 사람들은 단지 꼬리 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멸종된 열차의 부품 대용으로 사용해버리죠.
부품을 대체하는 꼬리 칸의 모습은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회사에 자신이 없어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나이가 들고 쓸모가 없어지면 더욱 젊고 튼튼한 부품으로 바꿔 버립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소위 말해 갈려나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앞 칸은 늘 권리를 누려왔고 꼬리 칸은 권리를 얻기 위해 늘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 온도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앞 칸 사람들은 생존이 아닌 보다 높은 삶의 질에 대해 고민(커티스와 일행이 열차를 지나가면서 보는 모든 장면들이 그렇습니다)하지만 꼬리 칸 사람들은 늘 단백질 블록 하나만을 먹으며 매 순간 생존을 위해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꼬리 칸 사람들은 앞 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꿈꾸며 그들을 향해 반란의 횃불을 들게 되는 거죠.
그러하기에 앞 칸은 더욱더 꼬리 칸을 강하게 억압합니다. 그리고 그 억압을 열차 내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죠. 윌포드는 늘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동안 실패했다던 7인의 반란, 맥그리거 폭동은 그들의 작품이었고, 영화의 주 내용이 되는 꼬리 칸의 반란 ‘커티스 대혁명’마저도 윌포드와 길리엄이 합작해서 만든 큰 계획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늘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생겨나는 겁니다. 윌포드와 길리엄 그 누구도 작은 변수들이 모여 질서를 어지럽히게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변수는 커티스 대혁명에서 조금씩 쌓여서 큰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횃불을 들고 싸우거나 니느웨를 구원한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요나의 신비한 능력, 내내 골칫거리였던 크로놀이 폭탄으로 사용된다거나 자신의 팔이 잘리는 걸 무서워했던 커티스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팔을 희생하는 행동 등 변칙적인 요소들이 묶여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연 같았던 모든 변수들이 결코 우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꿈꾸었기에 변수들을 발생시킬 수 있었던 거죠. 예로 남궁민수는 감옥에 갇히기 전부터 열차 밖을 상상했습니다. 마약 하는 것처럼 하면서 크로놀을 챙겼고, 그중 좋은 질의 크로놀을 골라내 폭탄을 제조했죠. 그 결과 열차는 무너지고 비로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열차 안 또는 열차 밖
윌포드는 열차를 세계라고 했지만 그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대가 잉태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아담과 이브처럼 아무것도 없는 하얀 열차 밖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죠. 그들이 비교적 차별받는 황인과 흑인의 조합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그들의 조합은 하나의 거대한 질서인 열차를 벗어나게 되었고 북극곰을 보며 열차 밖에도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열차 밖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면 좀 더 쉽게 유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거대한 사회의 질서를 벗어나게 된다면, 거대한 흐름에서 튀어나간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열차 안의 삶과 열차 밖의 삶.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할까요? 새하얀 설원에서 엔딩을 맞은 영화처럼 그 답은 스스로 내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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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주 최신 개봉영화!
12월 2주차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하는지 한번 볼까요?
12월 2주 개봉영화 5편!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The King's Man , 2020
킹스맨이 돌아왔다!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협할 전쟁을 모의하는 역사상 최악의 폭군들과 범죄자들에 맞서,
이들을 막으려는 한 사람과 최초의 독립 정보기관 ‘킹스맨’의 기원을 그린 작품입니다.
100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킹스맨’ 조직이 어떻게,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다루는데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에 이어 ‘매튜 본’ 감독이 또 한 번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007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의 ‘랄프 파인즈’ 그리고 신예 해리스 딕킨슨 이 두 배우의 콤비가 탄생을 했는데요
각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부자 사이에서 생기는 깊은 애정, 갈등, 화해 등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 극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최초의 킹스맨의 이야기
첫번째 추천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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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저렉션 The Matrix Resurrections , 2021
18년만에 다시 돌아온 매트릭스 시리즈
매트릭스1은 1999년, 매트릭스2와 매트릭스3은 2003년에 개봉
그리고 18년만에 신작으로 다시 돌아온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인류를 위해 운명처럼 다시 깨어난 구원자 네오가 더 진보된 가상현실에서 기계들과 펼치는 새로운 전쟁을 그리는데요
기억을 잃은 네오는 다시 빨간약과 파란약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이번 매트릭스에서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인간들이 대결을 펼치는 '매트릭스'만의 독보적인 드라마가 그려질 예정입니다.
18년이 지났지만 기존 출연진들이 이번 작품에도 출연합니다.
네오 역할은 키아누 리브스가 그대로 맡았고, 트리니티 역 역시 캐리 앤 모스가 그대로 맡았습니다.
다시 새롭게 돌아온 매트릭스!
두번째 추천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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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ドライブ・マイ・カー , Drive My Car , 2021
일본의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죽은 아내에 대한 상처를 지닌 연출가 겸 배우 ‘가후쿠’가
그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와 만나 삶을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 입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2021 시카고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관객상 2관왕 수상, 2021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2관왕 수상, 2021 덴버국제영화제 외국어영화상 수상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2014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2014년 8월 발간된 '여자 없는 남자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9년 만에 펴낸 단편소설집으로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6주 1위를 차지하며 국내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칸, 베를린 그리고 전세계를 사로잡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걸작
세번째 추천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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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2: 마법에 걸린 왕자 Cinderella and the Spellbinder , 2021
신데렐라 이야기의 재해석
영화 '신데렐라2: 마법에 걸린 왕자'는 용감하고 당찬 공주 신데렐라가 마법에 걸린 왕자를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신비한 생명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입니다.
이번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신데렐라: 마법 반지의 비밀'의 후속작입니다.
'라이온킹', '알라딘', '뮬란2' 등 디즈니 출신 제작진이 만들어낸 전편의 환상적 비주얼의 장점들은 유지하면서
'겨울왕국', '라푼젤' 작업에 참여한 작화가에 의해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화가 더해져
전 편보다 더욱더 기대가 큰 애니메이션 입니다.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새롭게 재해석한
네번째 추천영화 "신데렐라2: 마법에 걸린 왕자" 입니다.
예고편 보러가기▼
호두까기인형 THE NUTCRACKER , 2021
이틀만 진행하는 호두까기 인형 공연실황
크리스마스이브, ‘마리’와 그녀의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트리 주위에 모였고
‘마리’의 대부 ‘드로셀마이어'가 그녀에게 마법의 선물을 주게 되면서 이번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녀에게 예기치 않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마리’의 새 인형이 살아나서 그녀를 돌풍 같은 모험의 세계로 빠트리는영화 "호두까기 인형"이 개봉을 하는데요
공연실황 영화입니다 25일과 27일 단 이틀만 개봉한다고 합니다.
특별한 날 영화관에서 공연을 보는 또 하나의 추억
다섯번째 추천영화 "호두까기 인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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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갑을관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괴생명체의 공격으로 일상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인 '리(조 크래신스키)'의 희생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은 '에블린(에밀리 블런트)', '마커스(노아 주프)', '리건(밀리센트 시몬스)'. 갓 태어난 막내까지 소리 낼 수 없는 사투를 이어가던 네 가족은 집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고요함만이 무겁게 깔린 가운데 그들은 자신만의 은신처에 숨어 지내던 과거 이웃 '에밋(킬리언 머피)'을 만나지만, 깊은 상실감에 빠진 그는 도와달라는 이들의 요청을 거절한다. 이에 리건은 자신이 파악한 힌트를 조합해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고, 더 큰 위험을 마주한다.
2018년에 개봉한 존 크래신스키 감독의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힘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규칙 덕분에 이전까지의 공포영화와는 차별화된 환경을 조성하는 게 가능했고, 그 안에서 가족애로 무장한 주인공들이 펼치는 명료한 생존기는 모두를 몰입시킬 수 있었다.
3년 만에 돌아온 속편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조금 다르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여전하다. 단, 그 규칙이 활용되는 방식이 달라졌다. 전편에서 주인공들을 옭아매고, 그들을 위기로 밀어 넣었던 그 규칙은 이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보다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위계를 세우는 강력한 힘이자 도구로 작동한다. 구체적으로는 영화 안에서나 현실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은 갑과 을의 관계를 전복시킨다.
우선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리건과 다른 이들, 리건과 사회와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괴생명체가 등장한 세상에서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는 리건은 큰 핸디캡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본인이 소리를 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괴생명체의 습격으로부터 가장 취약하다. 당장 그녀의 시점인 장면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먹먹함은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괴생명체가 등장하기 전부터 등장인물들 중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다. 사회언어학자 데이비드 모랜드(David Morand)는 권력과 언어 예절에 관한 연구에서 언어적 행동에 따라 권력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화에 참여할 때 평등하거나 불분명한 권력관계에 놓인 상황이라면 언어적으로 더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화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말을 걸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리건은 거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명백한 약자다. 야구 경기를 구경하는 오프닝 장면에서 리건과 에밋의 대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약자다.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정보를 수용하고, 가공하여 자신의 고유한 의견을 생성하는 프로세스가 타인에 비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는 역사적으로 글자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약자였고, 인쇄술의 발달로 교육기회가 늘자 문맹이 줄면서 시민혁명이 촉발되었던 이유다. 최근에 백신 접종 예약 시 인터넷이나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중년층이 고생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귀를 통해 듣는 것은 그 어떤 수단보다도 기본적이고 직관적인 정보 수용 방식이라는 점에서 특히나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귀는 존재 자체로 소통 과정을 방해하는 잡읍(noise)인 것이다. 이는 괴생명체가 막 지구를 습격한 오프닝 장면에서 리건이 항상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지시를 받아야만 움직이는 이유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바로 이러한 리건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키며 그녀를 약자에서 강자로 바꾸고,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올려놓는다. 우선 공간적 배경이 집과 그 근방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된 결과, 말을 해서도 소리를 내서도 안 되는 규칙의 중요성은 더 강조되고 그녀의 발언권은 오히려 강화된다. 리건의 입장에서는 불공평한 환경이 비로소 동등해진 것이기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간다. 그녀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마커스가 듣던 라디오 음악이 피난처를 암시하는 힌트라는 사실을 추론해낸 뒤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은신처를 떠나 피난처를 찾으러 나서고, 다시 은신처로 데려가려는 에밋에게도 끝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한다.
이 관계의 역전은 리건의 보청 장치 노이즈가 활용되는 방식에도 멋지게 반영되어 있다. 사실 전편에서도 보청 장치의 잡음은 괴생명체들에게 약점으로 작용했고, 리건의 가족은 이를 무기로 활용했다. 다만 이 시점까지 노이즈는 괴생명체로부터 벗어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수동적으로 활용되는 도구였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위에 선 리건은 이제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녀는 라디오를 통해 그 잡음을 가능한 한 멀리 퍼뜨리면서 이를 괴생명체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다르게 활용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는다. 듣지 못하고 말 못 하는 이가 세상에 처음으로 먼저 외치는 소리에 지구를 구할 가장 강력한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특히 보청 장치의 노이즈가 그녀를 세상과 단절시켰던 귀를 상징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이러한 전개는 인상적이다. 사회적 약자의 약점을 강점으로 치환하는 아이디어의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등장인물의 구성을 들여다봐도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흥미롭다. 전편과 달리 괴생명체를 주도적으로 물리치는 이들은 모두 청소년, 학생이고 그들에게 보호받는 이들이 성인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나 학생은 아직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만 여겨지는 경우가 흔하다. 꼭 십 대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리가 1편에서 아버지 리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이번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리건을 보호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구른 이유이기도 하다. 에블린이 두 아들들이 안전한 지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 유사 부녀관계를 이루는 에밋이 리건의 목숨을 수차례 구해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서 리건과 마커스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리건은 본인이 음악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라디오 음악이 피난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을 추론해낼 수 있었고, 그 추론을 뚝심 있게 실행으로 옮긴다. 이처럼 소통의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녀는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져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에밋이 세상을 향해 다시 문을 열도록 마음을 고쳐 먹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리건은 에밋을 괴생명체로부터 구해내고, 마커스도 남은 가족을 보호해낸다. 괴생명체로부터 지구를 되찾을 가능성과 그 세상을 채워나갈 미래도 지켜낸다. 그 결과 가족애와 기성세대의 희생을 통한 구원으로 끝맺은 전편과 달리 신세대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결말은 명백한 대조를 이루며 강렬히 뇌리에 남는다. 많은 속편들이 전편과의 차별점을 두려는 시도를 하곤 하는데,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기능적으로나 메시지적으로나 그 과제를 훌륭히 수행해낸 셈이다.
이처럼 장애인과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약자에게 놓인 두 개의 갑을관계를 뒤집는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전편에 비해 전통적 호러 영화보다는 호러 영화의 요소가 삽입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로 느껴지는 이유다. 단지 집과 그 주변만을 오가던 동선이 더 넓어지고 주인공 가족 외에 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기존의 질서와 체계가 사라진 공허한 세계(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와 체계로 채우는 과정을 짜임새 있게 제시한 덕분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새로운 등장인물 중 에밋을 제외하면 생산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없다. 부둣가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기도 전에 휘발적인 위기를 만든 후 바로 퇴장해버린다. 괴생명체가 없는 섬사람들의 행적도 세계관과 따로 노는 듯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안일해 보이는 측면이 있어서 몰입을 저해한다. 장르 영화의 관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편에서 괴생명체의 약점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난 나머지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는 점도 만족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이상 신선하지도 않을뿐더러, 호러 영화를 표방하는 작품치고 그렇게까지 강렬한 스릴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본 메시지와 주제의식 외에도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대목들이 즐비하기에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매우 잘 만들어진 후속 편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괴물들의 괴력을 묘사하며 어떻게 전 지구가 그토록 빨리 초토화되었는지, 전편이 남긴 의문을 해소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그중 <칠드런 오브 맨>을 떠올리게 하는,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자동차 장면은 압권이다. 서로 다른 공간으로 주인공들이 흩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는 공통된 장면을 이리저리 이어 붙이면서 극의 간장감을 유지하는 편집도 눈을 사로잡는다. 결말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데도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자칫 난잡해질 수도 있는 영화에 끈끈한 통일감과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A(Acceptable, 무난함)
폐허 속에서 역전된 권력관계가 선사하는 묘미와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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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감춘 채 런던과 모스크바를 오가는 ‘그레빌 윈’과 ‘올레그 대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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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평범한 사람의 가장 위대한 첩보 실화
때론, 한 사람의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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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족을 잃은 상처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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