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9-18 18:08:41
이것은 제사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장손> 리뷰
SYNOPSIS.
3대 대가족이 모두 모인 제삿날 일가의 명줄이 달린 가업 두부공장 운영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는 와중, 장손 ‘성진’은 그 은혜로운 밥줄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 갑작스레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이별로 가족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는데…
핏줄과 밥줄로 얽힌 대가족의 70년 묵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진다!
POINT.
✔️ 익숙한 한국 가족 관계, K-유교 문화와 제사와 명절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풀어냈나 싶을 만큼 섬세하게 풀어내는 영화
✔️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까지 당신을 데려갈 영화. 볼 때도 좋았는데 보고 나서도 자꾸 떠올라요.
✔️ 연기 경력이 어마무시한 배우들이 더없이 자연스럽게 펼치는 가족 연기 (정말 명절 풍경 같아서 사람에 따라서는 트라우마가 올라올 수 있을 정도...)
✔️ 작년도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작으로 이미 인정 받은 영화
✔️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한국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와중에 매우 아름답고 섬세한 로케이션과 미술! 촬영이 정말 아름다우니까 꼭 극장에서 보아주세요.
*아래 리뷰에는 <장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세요.

영화 <장손>은 얼핏 제사와 명절 풍경, 그 안에 얽히고설킨 가족 갈등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인다. ‘장손’에 대한 조부모 대의 굳건한 믿음이 손녀에게는 분배되지 않는 모습, 차분하게 굄돌처럼 역할을 다하는 며느리와 큰소리만 뻥뻥 치는 아들, 큰 재산 없이 부모 곁을 지키는 큰딸과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느지막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딸의 역할 차이 또한 더없이 익숙한 풍경이다. 영화 <이장>을 비롯해 우리는 이런 가족 드라마에도 꽤나 익숙해져 왔다. 지고지순 금슬 가족애 이런 단어들 아래서 누군가에게는 안온함을 또 누군가에게는 숨이 턱 막히는 시간을 안기는, 원앙 금침 같은 이 한국식 가족 관계.
연기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초반부는 그야말로 명절 풍경 그 자체이고, 아직 철없는 ‘장손’을 포함해 적당히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노인은 두부 맛에 깐깐하게 굴고, 장손이 나타나니 그제야 에어컨을 켜거나 제사 시간을 바꾸는 (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행위마저 은근슬쩍 눈감아 줄 만큼 익숙한 공기를 내뿜는다.

그 익숙한 풍경 안에는 유머러스한 장면만 있지는 않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의 고성 뒤로, 할머니는 익숙한 듯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한글로 쓰는 연습을 흥얼흥얼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 눈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장면들이, 가족 안에서는 적당히 넘어가진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를 장손은 괴로워하지만, 어머니는 지긋지긋할 만큼 익숙한 솜씨로 이불을 가지고 내달려 오고, 할머니는 베개를 놓고 선풍기를 돌려 놓는다. 어둑한 집안, 가족이기에 그 태연함이 이해되는 장면이다.
기실 가족 관계란 절대 단편적인 색깔로 칠해질 수 없다.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 인간과 인간이 맞부딪는 순간 또한 완벽할 수 없기에. 오랜 세월을 머금은 관계는 어디에선가 반드시 삐걱이기 마련이고, 사건은 각자에게 다른 생채기를 남기고,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된다. 가족 간에는 그런 사건이 지근거리에서 너무 많이 쌓이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감정이 실꾸리처럼 돌돌 말려 그 끝을 파악하기 어렵다. 대충 애증이라고 눙치고 지나가기 쉬운 관계 속 감정이나 사건들을, <장손>은 훌륭한 솜씨로 풀어낸다. 기나긴 대하소설을 읽으며 파악할 법한 정보들을 잘 녹여내어, 한 가족의 전사를 관객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다.

영화의 결이 뚝 바뀌는 것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이다. 마치 배우 이정은의 얼굴이 영화 <기생충>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뚝 갈랐던 것처럼, 배우 손숙의 얼굴이 담긴 영정 사진이 불에 오그라들면서 <장손> 또한 제사와 갈등 이면으로 관객을 깊이 데려간다.
이전에도 자식들은 서로 처한 상황이 달랐고 이해 관계도 달랐지만, 할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고모의 갈등을 주축으로 이해는 더욱 멀어져 간다. 다만 영화 <괴물>의 경우와 달리, 보면서 진실이 무엇일까 궁금해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흑 혹은 백으로 명확하게 정리되는 문제보다 입장의 차이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문제가 훨씬 많고, 가족 관계 안에서는 특히 그러하기에. 증조부 증조모의 무덤이 비어 있어도,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해도, 범죄 스릴러처럼 범인을 찾기에 급급한 마음 같은 건 올라오지 않는다. 뭔가 이유가 있었으려니. 그리고 그런 이유의 가닥들을 하나하나 모아 틀어 쥐고 있던 것이, 이 집안 안에서 할머니가 해온 역할이려니.

제사의 아우라를 부여하려고 아무 말이나 하거나 장손이 올 때서야 에어컨을 켜주는 귀여운 일면도 있지만, 할머니는 분명 이 집안의 구심점이었다. 꼬장꼬장하게 두부 맛을 보며 가풍을 지키고, 통장이며 모든 대소사를 관할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펼쳐내는 돌봄의 모양새가 그렇다. 큰고모네 의료비를 대주거나 월급을 조금씩 여투어 놓는 일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든 장미꽃을 잘라 솥 아래 불에 쓸어 넣을 만큼 알뜰살뜰하게.

이 내내 ‘장손’ 성진은 관찰자처럼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본다. 장녀였다면 갖지 못했을 거리감이다. 기묘한 죄책감과 불편함 안에서 갈수록 무거워지는 표정으로, 그럼에도 충실한 인터뷰어처럼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씩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듣는다. 고모와 어머니, 누나까지 한 명씩 만나 속마음을 각각 듣게 되는, 서술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오직 성진뿐인데, 독특한 점은 집안 식구 중 여성들만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고모부, 툭하면 고주망태가 되는 아버지와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착실한 성품의 (그래서 누나 말대로 공장을 “신경 쓸” 예정이며 사실상 이미 쓰고 있는) 매형은 공장을 물려받을 대상으로는 거론되지 않아 사실상 집안 식구라 보기 어렵다. 성진과도 역할을 분담하는 동료 느낌의 대화만 주고받는다.

‘무능한 아버지’ 대신 현명했고 인내했던 어머니(들)를 하나하나 마주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은 조부다. 마치 퀘스트를 하나하나 깬 후 최종 보스를 마주하듯이. 이 엄숙한 대화를 마무리하며 그는 무언가를 건네받는다. 최종 보스를 지나는 주인공이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열쇠처럼.
이것은 계승이다. 그동안 한 걸음 밖에서 관조적으로 맴돌던 장손은 이제 손에 쥐어진 것을 들고 계승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구한 현대사 속에서 인물들의 삶을 찾아온 이리저리 꼬인 사건들, 그 안에서 서로 주고받은 말과 애정과 상처들, 그것들의 흔적을 손에 쥔 채, 그는 햇살 아래 눈을 찌푸린다. 영화 첫 장면이 연기로 희뿌연 공장 내부(“문 열어라, 문! 이러다 죽겠다!”)였음을 생각할 때, 영화 <장손>은 제사의 계승이나 갈등의 표출만이 아닌, 그보다 더 깊은 뿌리의 계승을 둘러싼 이야기다. 계승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뿌리에 빛을 비추어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건 아름다운 원경이다. 할머니의 장례 행렬에 꽃상여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눈 내리는 겨울 산으로 자분자분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 폭 그림처럼 펼쳐진다. 꽃상여는 불에 타오르고, 눈 내리는 소리는 어쩐지 불을 닮아 있다. 무언가의 죽음 뒤에는 불이 뒤따른다. 타고 남은 재를 앞에 두고, 우리는 이제 다음 걸음을 고민해야 한다. <장손>이 한 경상도 가정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세대의 어떤 것으로 읽히는 이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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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마 다음 생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다들 연애들 많이 하고 산다. 시샘 반 부러움 반의 목소리 톤으로 혼잣말을 한다. 누구는 결혼을 해 애까지 낳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제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것 같기도 하다. 몇몇은 나이 차이가 꽤나 나는데도 연애를 한다. 나는 컴활 어려워서 졸업이 빡센데도 어느새 다른 사람들은 제2,3막의 삶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나 할 일 하는 것도 바빴는데 다들 연애는 언제 했대? 인스타그램 속 피드 안을 들여다보면 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웃픈 거리감이 든다.
근데 사실 이것도 내가 야기한 것이라 할 말이 없긴 하다. 나의 인간관계는 거의 위기탈출 넘버원과도 비슷하다. '결별 플래그'라고 하면 이상하려나? 아무튼 이런저런 사람과 다방면으로 틀어져봤기 때문에 요즘도 이불을 발로 뻥뻥 걷어차곤 한다. 허튼 마음을 품지 않았는데도 상대방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만한 행동을 해서 언팔로우당한 적도 있고. 내가 가진 마음이 돌이켜보면 짝사랑이었던 적도 있었으며 그 사람도 나를 어쩌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있기도 했다. 뭐 그거 아니어도 은근히 폐쇄적인 나라 친구도 새로 사귈 기회가 없는 건 맞지만 거의 대부분의 나는 '와 나 진짜 미친놈이었구나' 싶기도 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누구와 새로운 인연을 싹 튀워서 행복하게 사는 청사진을 그리기엔 난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아이. 지금 카페에서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앞자리는 솔로인데 옆자리는 커플이다. 저 혼자서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는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펀치 트렁크 러브>처럼 사랑의 힘을 받고 성장하는 미래가 머릿속에 있을까? 여자 없이 잘 살고 있는 나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삶에서 그런 요소들이 있으면 더 풍요롭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 아쉬움을 채워주는 대리만족이 영화인 거지 뭐. 알고 보면 사랑 영화 잘 만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이런 솔로들을 위한 신작을 갖고 온 듯하다. 정식 개봉일은 2월 16일인데 나는 개봉날 전에 미리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10대와 20대 청춘들이 돌고 돌아 마주한 사랑 이야기를 극장에서 보도록 하자.
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15살 남자 주인공 개리. 아마 한국 나이로 치면 중학교 2학년쯤 됐을 것이다. 학교 졸업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잘 나와야 한다. 그렇게 사진사가 학교에 왔고 그 조수인 여직원도 촬영장에 도착했다. 개리는 그 사진사의 조수 여직원을 보고 반하게 된다. 그 조수의 이름은 알리나다. 알리나는 25살이라고 한다. 15살 개리는 무작정 알리나에게 대시하기 시작한다. 저랑 데이트 어때요?부터 시작해 얘가 대체 무얼 알고 하는 말일까?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무려 10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받는 관심에 '너 데이트할 돈은 있니?'라고 응수하는 알리나. 그렇게 개리를 애 취급하는 알리나지만 왜인지 데이트 신청은 받아들였다. 한 식당에서의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개리는 지금 아역배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또 집안도 잘 산다고 한다. 그뿐인가? 자기 이름으로 된 사업체도 있는 CEO다. 심지어 배우 일이 자기 천직이라고까지 말한다. 보기 드물게 자기 확신과 자존감이 높은 10대인 셈이다. 다음 알리나는 그 반대다. 25살이 됐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고 꿈도 없다. 집안이 잘 사는 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집에서 나고 자란 알리나다. 둘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계급차에 알리나는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애들 사진이나 찍어주고 있겠지'라며 자조한다. 첫 만남은 나이 차이라는 격차 때문에 애 취급을 했던 알리나지만 정작 데이트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해보니 입장이 역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엇갈린 처지 때문에 개리는 알리나를 직원으로 고용하게 된다. 영화는 이 둘의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언제는 물 침대를 팔고, 또 언제는 핀볼 사업장도 하며 어떤 정치인의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자기의 마음을 알기도 하고, 질투가 느껴지게끔 다른 애인이 생기기도 하며 싸우고 화해하는 일이 반복된다. 영화는 이 것을 소재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코미디와 달달함(?)이 일품이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 잘 만드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한 땀 한 땀 장인정신 플롯 구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어떤 식의 장인정신이냐면. 영화 안에서 '오인'이라는 키워드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냥 철없고 발랑 까진 15살 소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금수저였고. 나랑 맞는 줄 알았던 남자가 알고 보니 큰 결함이 있었고.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정의하지 못해 방황하고. 이렇게 오인하고 오해하며 두 주인공은 서로를 사랑하는 과정 속에 놓인다. 근데 이게 사랑의 속성과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나는 극본이 이 영화의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속성이라. 한 200개쯤 되겠지만 그중에서 몇 개만 뽑아보자면 역시 짝사랑이 대표적일 것이다. 짝사랑이라고 하면 한 사람이 누군가를 혼자서 좋아하는 것을 뜻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랑은 이것이 선행되어야 이뤄진다. 이 짝사랑이 극에서도 나타난다. 남자 주인공 개리가 알리나를 짝사랑하기 시작하고 나서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닌다. 자기 동생한테도 말하고 다니는 둥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다. 그런데 이후로 바로 개리가 어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갈 뻔한 장면이 나온다. 사랑에 빠지고 난 다음, 오인으로 인해 감옥에 가는 것이다. 중간에 물침대라는 키워드가 숨어있긴 하지만 이 둘의 논리관계만 봐도 어느 정도는 사랑에 대한 키워드로도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짝사랑은 감옥에 빠지는 것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못 나와 사람을 영원히 가둬놓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유는 개리가 혐의가 없는 쪽으로 결론이 난 다음 알리나에게 가는 것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인식해서 용의자가 아닌 것을 알게 됨 - 바로 또 다른 감옥/사랑인 알리나에게로 향함'이라는 것은 왠지 감독 PTA가 두 사건을 동일시해서 배치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전적으로 나의 해석에 달려있긴 하지만, 영화는 이런 식으로 사랑에 대한 은유를 다양한 장면과 장소에 배치해놨다. 그 메타포는 결국 마지막 엔딩신에서의 알리나의 선택이 어떤 것을 근거하고 있는지와도 이어진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사랑의 속성을 비즈니스와 대인관계에서 탐구한 영화.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감독의 전작 <팬텀 스레드>는 조용한데 강했다. 마지막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압박하는 듯한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또 <마스터>의 경우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만 극에 나온다. 와킨 피닉스와 필세호의 퍼포먼스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둘은 뭔가 극이 무겁다. 그런데, 이 세 작품을 연출한 사람이 같은 감독이라고 하는 점은 놀랍다. 이 영화는 앞 두 작품과는 다른 통통 튀는 소소한 유머와 달달한 로맨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장점은 2에서 언급한 사랑에 대한 은유다. 이게 쉽게 생각하면 '과연 사랑이 어떤 것일까' 결론 내리는 게 어렵지 않다. 근데 극을 두 번 세 번 생각하다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지점이 있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석이 많은 것이다. 세번째 장점은 색감이다. 내가 예전 영화를 자주 보던건 아니라서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색감이 70년대 영화를 본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코디의 느낌과 뒤 세트장의 조화도 좋았다. 또 빨강-초록이라는 색을 통해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은유한 듯 한데, 이런 연출도 효과적이었다. 네 번째 장점은 5에서도 언급할 것 같으니 5번으로 넘어간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크게 어렵지는 않을 듯. 아. 난 영화 보다가 살짝 딴생각을 해서 잠깐 끊어진 부분이 있었다. 극에서 한국의 산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여러분은 집중해서 보길 바란다;; 난 왜 갑자기 저게 튀어나오지? 싶었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완전 초짜 배우들이다. 여자 주인공 알리나 하임은 그냥 본업이 가수다. 당연히 노래와 연기는 다른 분야다. 그런데 왠지 배리 키오건을 연상케 하는 '얼굴이 시네마'를 잘 구현해냈다. 그렇게 예쁜 편도 아니고. 성격이 엄청나게 착한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평범한 20대 중반 청춘의 사랑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결론 낸다는 것은 배우의 본인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다른 주인공 개리 역을 맡은 쿠퍼 호프만 역시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동글동글한 비주얼로 무작정 들이대지만 자존감은 높은 10대 청소년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앞에서 쓴 바와 같이 전적으로 평범한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다. 근데 이 둘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배우들이 호연도 이유가 되겠지만 감독 PTA의 디렉팅도 탁월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외에도 브래들리 쿠퍼의 코미디 연기는 반짝반짝 빛났으며 숀 펜의 액션 연기도 훌륭했다. 베니 샤프디와 마야 루돌프도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물 같은 느낌이 있다.
6.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무조건 알아야 하는 것들은 아니다. 사실 모른다고 해서 크게 이해에 무리가 있지는 않다. 첫 번째는 주인공 개리 역의 쿠퍼 호프만이 PTA의 페르소나 필립 셰어 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또 제목 <리코리쉬 피자>의 의미가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작품에서 나왔던 가게 이름이라는 점이나 인물들이 죄다 실존인물이었다는 것도 알고 가면 좋긴 할 듯. 근데 뭐 앞에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꼭 무조건 알아야 이해가 쉬운 것은 아니다.
7.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이게 상영관이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킹메이커>를 보고 <나이트메어 엘리>를 대기하고 있으며 <더 배트맨>을 기대하기 이전에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들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깔끔하게 볼 수 있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다. 킬링타임 용으로도 제격이라는 뜻이다. 또 나와 같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연애세포가 깡그리 죽은 사람들은 이것이라도 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우리 이거라도 보면서 분발해야 한다;; 아무튼 관객 분들은 어디에도 없는 사랑이야기에 흐뭇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분들도 좋은 영화가 될 것 같다.
우리 근데 언제 연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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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탈과 이탈, 도피와 탈피 사이를 나지막하게 가로지르는 선율.
하스미 시게히코의 저서 [영화장화]에서는 ‘영화는 활극이어야만 한다. 활극이란 숏의 반복, 거듭되는 숏이 새로운 숏으로 바뀔 때마다 커다란 충격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충격은 완만하다. 부드럽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마지막은 액션이 연결돼서 아주 부드럽게 흘러간다.’라고 <도쿄 소나타>를 평한다. 정적인 숏 속에서 <도쿄 소나타>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행동한다. 어떠한 결심을 하고 몸을 움직인다. 그 속에 큰 목적성은 없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지배적인 무의식이 행동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사사키 가족은 일탈과 이탈, 도피와 탈피를 경험한다. 네 명의 인물들은 각자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메구미는 일탈하는 인물이다. 오프닝 시퀀스, 열린 문 사이로 빗줄기가 들이친다. 서둘러 문을 닫고 바닥에 고인 빗물을 닦던 메구미는 다시금 문을 열어 허공을 응시한다. <도쿄 소나타>에서 집이란 정돈되어 있는 안락한 곳, 사사키 가정을 의미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가정을 위협하는 폭풍우는 앞으로의 갈등을 암시하는 듯하다. 여기서 문을 다시 여는 메구미의 행동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관객은 가정의 갈등이 외부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균열을 만들고 고통을 내부로 들이는 것은 메구미임을 알 수 있다. 류헤이의 실적에서부터 비롯된 폭풍우는 애써 모른 척해주는 메구미가 문을 닫기 때문에 집에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고인 빗물처럼 균열을 감지한 메구미는 다시 문을 열고, 결국 폭풍우는 사사키 가정을 침범하게 된다.
작중 메구미는 수많은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도쿄 소나타>의 주배경인 집은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그렇기에 집의 구조와 가구의 배치 같은 공간적 특성은 모두 의도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는 사사키 가족을 결코 허투루 잡지 않는다. 힘을 준 숏이라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 기요시가 메구미를 보여줄 때는 필수적으로 장애물을 배치한다. 책장, 찬장, 창틀 사이로 보이는 메구미는 언뜻 철창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이중 프레임은 메구미에게 있어 평온한 가정이 얼마나 감옥처럼 느껴지는지를 가시화한다.
메구미가 일탈하고자 하는 시도는 영화 전반적으로 등장한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자동차를 보러 가는 것이 그러한 예시이다. 류헤이의 이탈을 알아챈 것도 바로 일탈의 과정 속에서다. 메구미는 애써 전업주부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좋은 엄마이자 아내이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가정의 불화에 심한 염증을 느끼는 인물이기도 하다. 류헤이의 권위가 하락하며 자아를 되찾은 메구미는 납치범에게 잡힌 인질일지라도 가정을 떠난다는 선택을 내린다. 결정권이라고는 메뉴를 고르는 것뿐이던 메구미가 처음 적극적으로 행동한 순간이다. 정해진 삶에서 벗어나 도착한 곳은 어떠한 프레임도 없는 망망대해다. 쓸려가 버릴 듯 파도를 느끼는 메구미는 도로로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강인한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강렬한 햇빛. 메구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엉망이 된 집은 예전처럼 정돈되어 있진 않지만 따스한 햇볕이 들어온다. 다시 밥을 짓는 메구미는 이전과 같지 않다. 균열을 느끼고 받아들인 순간부터 메구미는 일탈을 통해 변화했기 때문이다.
류헤이는 이탈하는 인물이다. 가족을 지키는 권위적인 가장, 류헤이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앵글은 류헤이를 권위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기요시가 메구미를 이중 프레임 속에 가둔다면, 류헤이는 거대한 헤드룸으로 짓눌러버린다. 필요 이상으로 긴 헤드룸은 류헤이를 불안정하고 왜소하게 만든다. 영화 초반부 오피스에 뜬금없이 자리한 나무 모형은 류헤이와 닮았다. 가정을 지키는 가장 같기도 하고,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하는 공간 속에 섞여 들지 못한 이물질 같기도 하다. 그런 나무에는 거대한 옹이가 자리하고 있다. 속이 텅 비어 버린 구멍을 품은 류헤이는 끝내 무리에서 이탈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류헤이는 이탈할지언정 도망치지는 않는다. 여자와 아이, 젊은이들만 태우고 가버린 구명보트, 즉 출근하는 행렬에 섞여 들지는 못하지만, 사회적으로 혹은 가정적으로 도망쳐버린 망자들의 행렬에도 동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직으로 인한 이탈은 곧 권위의 상실로 이어진다. 메구미가 문을 열어 균열을 받아들일 때, 류헤이는 켄지의 가방을 잠가주며 균열을 외면한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기요시는 류헤이의 권위를 식사 장면에서 주로 다룬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사사키 가족 내 류헤이가 가지고 있는 위치를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모두가 밥 먹을 준비를 마쳤음에도 류헤이가 맥주를 마시는 걸 기다리는 모습을 통해서는 서사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류헤이의 권위 싱실은 메구미가 류헤이의 실직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항상 높은 곳 혹은 동일선상에 위치해 있던 류헤이가 메구미보다 낮은 층고에 위치함으로써 전복이 일어난다. 이후로 류헤이는 백화점에서 메구미를 마주했을 때 아니라고 소리친다. 자신이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청소하다 발견한 목돈을 탐냈다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켄지를 2층에서 1층으로 밀어버린 시점에서부터는 그 어떠한 가장 노릇도 하지 못한다. 그런 류헤이는 차에 치인 후 일종의 부활을 겪는다. 비로소 류헤이는 권위를 내려놓는다. 엉망이 된 몰골로 청소부 복장을 한 채 집으로 돌아온 류헤이를 메구미와 켄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식사 시간은 온기를 되찾는다.
타카시는 도피하는 인물이다. 타카시는 작중 내에서 가장 분량이 없는 인물이다. 그가 도피하는 인물이기에 그렇다. 타카시는 본인 스스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불황의 일본 사회 속에서 취업도 하지 못하고, 행복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할 뿐이다. 타카시는 일본의 평화를 지켜주는 건 미국이라고 말하며, 일본에 회의감을 가지고 미군에 지원한다. 하지만 국경을 그어 놓은 채, 메구미와 류헤이가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기대 사는 건 오히려 타카시다. 국경을 벗어난 타카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버스 창틀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이다. 그러나 기요시는 도망친 곳에 결코 낙원은 없다고 말하진 않는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지도 그 과정에서 타카시는 새로운 시야를 얻는다. 도피보다 삶을 마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메구미가 이혼하지 않고 다시 밥을 짓는 것처럼, 류헤이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켄지는 탈피하는 인물이다. <도쿄 소나타>는 선형적 내러티브 구조로 진행되다가, 영화의 중반 지점부터는 역순행적 회상 내러티브로 바뀐다. 플롯이 변화한 그 시점, 백화점에서 메구미와 류헤이가 마주한 뒤부터 사사키 가족은 각자의 사건을 겪기 시작한다. 만남 이후 메구미는 화면상 오른편으로 운전하고, 류헤이는 화면상 왼편으로 달린다. 켄지는 타구치를 만나 전에는 메구미처럼 오른쪽으로 걷는다. 이후, 켄지는 가출한 타구치가 아빠에게 잡히지 않게 도와주다 결국 타구치를 지키지 못한다. 류헤이가 가정을 지키지 못한 것처럼 켄지도 관계의 상실을 겪는다. 그때부터 켄지는 류헤이처럼 왼편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계단 갈등 이후 켄지가 류헤이를 이해하게 된 순간이다. 그럼에도 가정으로 가장 먼저 돌아온 건 켄지이고, 류헤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도 켄지의 연주이다. 켄지는 방어적이던 자신의 모습에서 탈피해 설익은 위로를 전하기보다, 진심으로 공감하고 곁에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메구미와 켄지, 류헤이와 타카시는 각각 궤를 같이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사사키 가족은 각자의 여정 끝에 다시금 식탁 앞으로 모인다. 그렇게 반복되는 식사 장면은 관객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사사키 가족은 자신들이 어떤 일을 겪고 왔는지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다시 밥을 먹을 뿐이다. 하스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던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도록 만드는 것이 영화이다.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되는 순간이 살아있는 현재를 뒤흔드는 아주 현실적인 체험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도쿄 소나타>를 통해 관객은 무엇을 느꼈을까. <도쿄 소나타>는 사회가 머금고 있는 수많은 아픔을 일상적으로 살아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충격이 되어주었을까, 혹은 나지막한 선율로 위로가 되어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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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프링 블라썸(2020)> 리뷰
- 얼마 전 극장에서 영화 <스프링 블라썸>의 예고를 보았다. 내 흥미를 자극한 건 트레일러 속 짧게 스쳐 지나간 안무 영상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을 대사로써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몸짓이라는 은유를 사용한 것이 제법 전위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던 것이다. <사랑은 부엉부엉(2016)> 등에서 보여준 프랑스 영화 다운 참신함에 대한 기대감도 물론 있었겠지만.일단 영화 외적인 것을 짤막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수잔 랭동 감독의 데뷔작이다. 하지만 그저 감독이라고 부르고 넘어가기엔 찝찝하다. 만일 <스프링 블라썸>이 하나의 음악이었다면, 수잔 랭동은 원 맨 밴드라는 말을 들었을 테니. 그는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 주연배우를 맡았고, 각본을 쓴 사람이기도 하며, 엔딩 크레딧곡마저 직접 불렀다. 그야말로 영화계의 루키다. 다만 영화 각본을 쓰기 시작한 것이 15살이며 자전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 다시 말하자면, <스프링 블라썸>은 결과적으로 첫사랑의 시작과 끝을 다루면서도 첫사랑을 회고하는 데에서 나오는 쌉싸름함이나 약간의 안타까움이 누락되어 있으며, 주인공 수잔(수잔 랭동)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묘사는 퍽 서툴다. 그래서인지 <스프링 블라썸>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라이트한 버전에 가까워보인다.※ 스포일러 주의<스프링 블라썸>이 포착하고자 한 것은 삶의 한 순간이다. 따분한 일상이 급작스레 반짝이게 되는 어떤 순간. 이야기는 학교와 집, 관심사가 맞지 않는 주변인과 같은 일상에 질린 주인공 수잔의 눈에 우연히 연극 배우 라파엘(아르노 발로아)이 들어오는 순간 시작된다. 라파엘이 일하는 극장이 수잔이 좋아하는 하교길에 있다보니 둘의 동선은 거듭 겹친다. 자꾸만 시야에 들어오는 알 수 없는 남자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수잔은 점차 그의 영역에 자신을 들여보내고, 안면을 트며,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간다.두 사람의 관심사는 꽤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수잔과 라파엘이 가장 크게 공통점을 느낀 부분은 권태로움이다. 다만, 수잔과 라파엘의 권태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언정 속사정이 꽤 다르다. 작품이 재현하는 수잔의 권태는 기실 수잔이라는 인물의 자아/독특함을 부각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예컨대 수잔의 대사, "나는 또래 남자애들이 따분해요"는, 기실, 자신의 특별함을 인지하는 상대의 부재에서 비롯된 불만이다. 그가 말하는 '남자애들'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또래 전체를 뜻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그는 여자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파티에서 어울리지 못하며, 수업 시간 중 수준 낮은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큰 애정을 베풀지 않는다. 즉 수잔이 겪는 일상의 무료함은 평균적인 또래 집단과 수잔 본인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영화는 해석한다.반면 라파엘이 겪는 권태로움은 일종의 번아웃으로 보인다. 같은 배역이 반복됨으로써 작품을 계속하고픈 열정이 희미해진 시간만이 지속되고 있다. 넌덜머리가 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오페라 아리아곡과 같은 작은 요소에 기대어 일상을 이어나간다. 이런 순간 만난 사람이 바로 수잔이다.수잔 랭동 감독은 <스프링 블라썸>을 찍는 동안, '러브 스토리 자체보다 사랑에 빠지는 감정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명확하게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는 모습을 끊김없이 그리기보단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두 사람의 흔들리는 감정을 충실하게 묘사한다. 속절없이 라파엘에게로 향하는 수잔의 시선이나, 잠들지 못하는 새벽 따위의, 사랑에 휩싸인 선명한 순간을 꾸밈없이 모아둔 것 같단 생각마저 든다.하지만 동시에, 영화의 두 주인공은 (첫)사랑의 열병에 빠져 일상의 리듬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토록 지난한 일상이었음에도 그것을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으며 특별한 순간을 공유한다. 두 사람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플라토닉적 관계에 기초한 둘의 감정은 일상을 조금쯤 살 만한 것으로 변화시킨다. 이렇듯 기존의 로맨스와 다른 문법을 사용하기 때문일까. 감독은 두 사람의 교감을 무용 시퀀스를 차용하여 표현하였다. 트레일러에서 보았던 장면이었음에도 영화를 통해서 만난 카페 씬은 두 사람의 감정을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로 재단하기엔 너무 얕지 않은지, 인간이 맺는 무수한 관계를 고작 몇 개의 단어로 가두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 만큼 훌륭했다.영화의 모든 장면은 놀라우리만큼 감각적이었으나 이외 부분에 있어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자전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수잔을 제외한 주변인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담겨 영화의 설득력이 반감된다는 점이나, 또래 집단과 수잔의 다름을 표현하는 데에 보다 적절한 소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첫사랑으로 인해 생기는 주인공의 변화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면모가 있어 수잔의 스탠스가 흔들릴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조금의 고민과 주저함이 없었던 점이 퍽 아쉬웠다. 사랑은 일상을 반짝이게 수놓기도 하지만, 수놓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니까. 수잔이 경험한 변화를 한 두 발짝 물러나 깊이 있게 묘사했다면 보다 좋았을 듯 하다.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수잔 랭동을 알게 된 건 분명 큰 기쁨이었다. 그가 펼쳐보일 또다른 시네마를 기대해본다. 그때 즈음엔 <스프링 블라썸>이 내게도 첫사랑처럼 남을 지도 모른다. 어설퍼보이더라도 훗날 돌이켜보았을 때엔 결코 지울 수 없는 역사로 남고야 마는 첫사랑처럼.★★*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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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라는 도피처를 선택한 아이들
줄거리
일곱 살 소녀 다리아(다샤)는 여느 또래처럼 엘사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잘 타는 활동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5개월째, 침대에 누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증상은 다리아 가족의 망명 신청이 거부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감상 포인트
1.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
2. 어른들의 갈등으로 인해 언제나 피해 입는 것은 아이들이다.
3. 체념 증후군에 빠진 아이들은 희망이 생기면 언제든 다시 깨어날 수 있다.
감상평
체념 증후군은 정신적 외상을 입고 극도의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아이들, 특히 난민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질병이다. 2003년부터 사례가 보고되었으니 비교적 역사가 짧은 질병이라 할 수 있겠다. 나타나는 증상은 똑같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면서 누워만 있다가 먹는 양이 줄어든다. 그리곤 이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만 자게 되는 것이다.
당시엔 이런 소문들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속이는 거다, 아픈 척하는 것이다'
(중략)
모든 테스트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외부의 조작은 전혀 없었던 거죠.
정말로 아주 심각하게 아픈 아이들의 얘기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순수함의 결정체로 보는 동시에 가장 악한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상처받고 아픈 아이들에게서 어른들은 꾀병일 것이라는 의심부터 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정말로 아팠다. 극도로 공포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완전한 잠의 세계로 빠져든 것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느끼는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는다.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즉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죽음의 공포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체념 증후군으로 잠들었다.
[체념 증후군의 기록]은 40분가량의 다큐멘터리다. 처음에는 흔한 우울 증세를 겪는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도 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아니다. 아이들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아픔을 잊고 있으니까. 현실의 아픔과 고통이 끝나면 아이들은 깨어날 것이다.
아이들을 진찰할 때 부모님들께 말하죠.
아이의 상태 때문에 고통받는 건 부모님들이라고요.
아이는 아프지 않아요.
백설 공주처럼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에요
주변의 모든 것이 너무 끔찍해서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거죠.
아이는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깨어나면 다시 원래대로 활기차게 살 수 있어요.
체념 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은 꿈을 꿀까? 꿈을 꾼다면 그 안에서는 행복할까? 혹여라도 그 아이들이 꿈속에서마저 고통받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제발 그 꿈에서라도 행복하길 비는 것만이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판의 미로]가 생각났다.
다큐멘터리는 체념 증후군을 겪는 세 아이의 가정을 보여준다. 각자 다른 이유로 쫓기듯 스웨덴에 도착했지만, 아이들이 잠들어 버렸다는 공통적인 결과를 얻었다.
난민 문제에 대해서 쉽사리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단순한 해결책이라면 갑자기 강력한 마법사가 나타나 세계 평화를 이뤄준다는 허무맹랑한 방법 밖에는 없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인류가 완전히 멸종해버리고 지구가 폭발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치적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도 고통 때문에 자신을 잠재워버린다는 병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어쩌면 눈에 보이는 바이러스만 막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마음을 침투하는 것은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왜 문제는 어른들이 일으키는데 고통은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가.
나는 고스란히 그 아픔을 물려주고도 뻔뻔하게 '미래는 너희가 책임지렴'하고 말할 수 없다. 내가 받기 싫은 고통은 남도 받기 싫다. 그리고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라고 해서 더 강하지 않다. 아이는 오히려 약하다. 더 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
줄거리에 소개했던 다리아의 가족은 다행히 스웨덴에 무사히 정착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리아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예전처럼 활발하게 지낸다고 한다. 이렇듯 아이들은 가족에게서 희망의 기운을 느끼면 언제고 다시 일어날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반면, 11개월째 체념 증후군을 앓고 있는 '레일라'의 가족은 여전히 망명 신청 중이고,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 암울한 현실에 이젠 레일라의 언니마저도 체념 증후군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환하게 웃는 다리아의 모습에 안심이 되는 한편, 레일라와 그 언니가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아픔을 물려주지 않을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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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오늘도 어김없이 씨네픽과 쉽고 유익한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를 알아보는 시간이 왔습니다!
10월 29일, 30일, 31일의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를 알아보고,
또 씨네픽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유저분들의 예측 결과도 비교하는 시간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11월의 첫째 주,
씨네픽과 함께하는 첫째 주의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시작해볼까요?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듄>(▲1)
▶10월 20일 개봉한 <듄>이 저번 주 박스오피스 2위에서 이번 주 1위를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24만명의 관객 수를 동원하며, 총 누적관객 수는 76만 명을 돌파했는데요.
155분의 긴 러닝타임의 피로도와 더불어서 할리우드 초호화 캐스팅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다소 어렵고 지루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에 총 누적관객 수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2위.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1)
▶주말 박스오피스 2위는 10월13일 개봉한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가 차지했습니다.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저번 주 박스오피스 1위에서 한 계단 하락한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관객분들이 관람하고 있으며, 누적관객 수 190만명을 돌파했는데요.
이번 주 200만명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3위. <고장난 론>(▲52)
▶주말 박스오피스 3위는 10월 27일 개봉한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고장난 론>이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6만명의 관객 수, 총 누적관객 수 84,650명을 기록했습니다.
<고장난 론>은 <인사이드 아웃>과 <인크레더블2> 제작진이 선사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첨단 디지털 기능과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다른 비봇들과는 달리,
네트워크 접속이 불가능한 고장난 '론'의 우정과 특별한 모험을 다룬 작품입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듄>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추이를 보면
여성 46%, 남성 54%로 남성 관객들이 더 많은 비율로 관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연령대 별로는 20대와 30대의 비율이 77%를 차지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씨네픽은 29일~31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하고 정답자분들에게 상금을 드리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듄>의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예측한 20,30대 비율은 전체 참가자 수의 78%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20,30대 관람비율 77%와도 거의 흡사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씨네픽 이벤트 참가자 중의 48% 수치로 <듄>을 박스오피스 1위로 예측했습니다.
또한 참가자 수의 33%는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박스오피스 2위 랭킹을 예측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박스오피스를 예측하고 상금도 받아가는
씨네픽의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를 맞혀라!' 이벤트에 참여하여
1위, 2위, 3위 순위를 모두 예측한 정답자 분들을 알아볼까요?
▶씨네픽 박스오피스 1,2,3위 순위예측 이벤트의 정답자는
총 54명으로 이는 참가자 중 총 14%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답을 맞히신 모든 분들께 우승자 상금의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모든 참가자분들과 정답자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재밌고 유익한 씨네픽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4위. <보이스>(▲1)
▶주말 박스오피스 4위는 지난 주 5위에서 한 계단 상승한 변요한, 김무열 주연의 <보이스>가 차지했습니다.
지난 9월 15일 개봉한 작품으로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데요.
이번 주도 위드코로나가 시행되면서 관객들이 꾸준히 찾아주신다면
총 누적관객 수 150만명도 돌파할 수 있지않을까 기대해봅니다.
5위. <007 노 타임 투 다이>(▼2)
▶지난 주 박스오피스 3위에서 2계단 하락한 주말 박스오피스 5위는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10,597명의 관객 수를 동원했습니다.
이번 주 하반기 기대작인 <이터널스>가 11월 3일 개봉하게 되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는 멀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누적관객 수 12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지난 주에 이어서 10월 22일 개봉한 <듄>이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15,530,000(한화 약 182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지금까지 총 누적 매출액(북미에 한정하여)은$69,401,232(한화 약 816억)입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 새롭게 4위로 진입한 작품이 있는데요.
바로 일본 '도호'사의 애니메이션 작품인 <My Hero Academia: World Heroes's Mission>입니다.
주말동안 $6,403,286(한화 약 75억) 의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씨네픽이 준비한 11월 첫째 주의 박스오피스 순위 분석 시간은 이것으로 마칠텐데요.
혹시 재밌게 보셨나요? :)
다음 주도 더욱 유익하고 재밌는 콘텐츠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럼 11월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맞이하시고 한 주 동안 건강하세요!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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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복수를 위한 한 어린 칼춤
김은숙 작가님의 드라마가 다시 돌아왔다. 신데렐라가 아니라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실 소재에 이끌려 작가님의 전작을 보긴 했지만 지루함에 이탈했었는데 이번 드라마는 왠걸 한 순간의 정지 없이 봤다. 그만큼 흡인력 있었다는 얘기다
김은숙 작가님의 강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다양한 세상에서 살 법한 신데렐라를 그려 여자들의 환상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배경과 인물만 달라질 뿐 비슷한 스토리 포맷은 지루함을 낳는다. 전작 '더 킹: 영원의 군주'가 그 지루함의 한계에 도달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작가님은 돌파구가 필요했던 시점에 제대로 한 방을 선사해 주셨다. 아직까지 작가님의 작품 중 인생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이지만 이 작품도 못지 않은 멋있는 작품이다.
1.신데렐라 스토리에서 한 단계 발전한
주인공 동은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고데기로 지져진 그녀의 몸이 폭력의 증거였기에 동은은 자신의 몸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자신을 괴롭혔던 범인들을 처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쉬운 방법들을 포기하고 동은은 돌고 돌아 18년을 기다린다.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폐부를 찌르기 위해서.
이번 드라마는 로맨스가 뒤로 빠져 있는 복수극이다. 로맨스보다는 복수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기승전 '왕자님의 도움으로 동은이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전개가 아니다.
작가님의 시그니처인 왕자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동은에게 왕자와 같은 주여정은 동은에게 관심이 있지만 '칼춤 추는 망나니'가 필요한 동은을 위해 망나니가 되기로 한다. 이번 드라마 에서는 왕자가 주인공에게 조력자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왕자가 주인공의 삶에 등장해 로맨스를 강제 주입시키지는 않는다.
2. 남자 캐릭터들의 매력 대결이 예고된 다음 시즌
다음 시즌에도 동은의 왕따 주동자 박연진의 파멸은 자명해 보인다. 더 비참해질 것이다. 하지만 다음 시즌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캐릭터가 있다면 하도영이다. 하도영은 동은의 조력자인지 악인인지 스탠스가 명확하지 않다. 동은을 보호할 만한 모습이 드러나긴 했지만 동은을 공격할 만한 요소도 갖춘 양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정의 감춰진 폭력성이 다음 시즌의 드러날 것으로 예고되어 그 폭력성이 동은을 위해 쓰여지긴 할지. 쓰여진다면 어떻게 발현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만큼
다음 시즌은 동은의 이야기에 가려져 소극적으로 보였던 남자 캐릭터들이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남자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것은 작가님의 주무기이기에 기대가 된다.
하지만 이들의 매력 대결이 동은의 복수의 의미가 퇴색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으면 좋겠다.
3. 남성상의 변화
확실히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남성상이 바뀌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결혼의 현실을 겪어내면 '동화 속 왕자는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어도 여전히 내 남자에게서 끝까지 나를 보호해주는 왕자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우울을 느끼는 기성 세대 분들을 꽤나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확실히 세대가 바뀌며 왕자는 환상의 결합체임을 인지하고 조금은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왕자가 등장해야 한다면 나를 보호하고 간지럽게 사랑해주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캐릭터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랑의 표현 방식이 폭력, 살인이더라도 상관없다. 결국 여자 캐릭터의 삶의 방향을 제멋대로 바꾸지 않는 '최소한의 매너'를 보이는 캐릭터라면 환호를 받는다.
이런 남성 캐릭터의 다각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매너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생각도 좋지만 어떤 일을 하지 않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매너의 한 부분임을 상기시키며.
사설이 길었다. 하여간 사이다 전개의 통쾌함, 다음 시즌을 향해 기대감 혹은 긴장감 등 꽤나 다채로운 매력이 많은 드라마인 만큼 한 번쯤 볼만하다. 바둑이 등장하는 점도 매력적인데 바둑이 침묵 속 치열한 암투를 보여주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한 명의 전사와 같은 동은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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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7] 물회와 함께 펼쳐지는 남녀의 느와르- 낙원의 밤
신세계, 마녀의 박훈정 감독이 신작 낙원의 밤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 배우와 함께 돌아왔는데요.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가 되었어요.
박훈정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 영화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엄태구 배우나 전여빈 배우의 연기는 좋은데, 이야기를 보면서 관객들에게 주인공들의 감정들이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고 중얼거리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불편했어요.
느와르 장르의 색깔은 들어가 있지만 일단 어색하게 만나서 연대의 끈이 생기는 남녀의 드라마가 중점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평은 영상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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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외계+인 2부> 메인 예고편
새해를 열 강력한 클라이맥스가 온다! [외계+인] 2부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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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웬디> 티저 예고편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의 All New ‘피터팬’!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는
내면에 차오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나타나고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를 이끌고 여정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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