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9-23 07:31:08
다시 〈부당거래〉의 세계에 갇힌 류승완
영화 〈베테랑2〉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류승완이 가진 위상을 고려했을 때, 〈베테랑2〉는 아쉬움을 남기는 영화다. 먼저 주제다. 〈베테랑2〉는 수년 전부터 범람하는 사적 제재물의 연장에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 이후 공동체 붕괴 속도는 가팔라졌고, 법과 공권력은 시민들의 법 감정을 충족하기에는 솜방망이처럼 가벼웠다. 단지 능력과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권력 친화적으로 뼛속까지 썩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적 제재 장르물은 법과 공권력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집행된다는 믿음이 깨진 곳을 파고들었다. 〈베테랑2〉와 직접 비교되는 〈비질란테〉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하나하나 언급하기도 벅찰 정도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이 문제를 다루었다. 심지어 2022년 작 〈경관의 피〉는 법의 테두리에서 범인을 잡는 경찰과 수단과 방법을 가라지 않고 악인을 검거하는 경찰의 대립을 다뤘다는 점에서 〈베테랑2〉의 문제의식을 한참 앞서 선보인 바 있다. 대중의 원한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찰이 마주한 딜레마라는 〈베테랑2〉의 문제의식이 영화 초반부터 도드라졌을 때 실망스러웠던 이유다. 이미 익숙한, 심지어 자극적‧선정적으로 활용되다 소진된 소재에 왜 굳이 류승완까지 뛰어들었을까 싶어서다. 몇몇 인상적인 액션신과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기시감을 내내 떨칠 수 없었다.
정작 흥미로웠던 건, 이 영화가 류승완이 지향하는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는 점이었다. 〈부당거래〉에서 그는 감히 손댈 수 없는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구축한 법 기술자의 문제를 다뤘다. 체념과 무력감을 자아내는, 우리가 어떤 세계를 살고 있는지에 대한 냉소적 조망이었다. 그러나 〈베테랑〉에서는 이를 통쾌함과 짜릿함이 깃든 분노로 전환했다. 조태오(유아인)라는 희대의 악역과 그를 때려잡는 평범한 경찰 서도철(황정민)의 이야기는 〈부당거래〉가 그려낸 세계와는 분명 달랐다.
〈베테랑〉에서 류승완이 ‘무엇’으로 〈부당거래〉의 닫힌 세계를 돌파했는지에 주목해보자. 서도철이 거악 조태오와 맞설 때 가진 무기는 몸과 깡뿐이었다. 대중문화 담론으로 영역을 확장해보자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착취와 경쟁 격화로 초토화된 기존의 남성 연대를 지탱해온 건 ‘의리’였다. 굳이 김보성 배우의 캐릭터로 자리 잡은 ‘의리’ 열풍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즈음의 한국영화는 구원을 갈구하며 고뇌하는 남성 캐릭터의 독무대였다. 우정, 민족, 돈, 정의, 여성을 매개로 한 남성 연대를 모색한 이 시기의 영화는 이른바 ‘두 글자 영화’, ‘세 글자 영화’ 등으로 불리며 범람했다. 그중에서도 류승완의 〈베테랑〉이 천착한 건 몸과 깡이었다. 조태오에 비해 모든 게 열세인 서도철이 이들을 무기로 끝내 승리하는 영화의 서사에서, 평범한 남자라면 ‘누구나’ 단련하거나 가질 수 있는 몸과 깡은 분명 길 잃은 채 좌절하는 남성 주체에게 짜릿하고 통쾌한 위무로 다가갔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러 〈베테랑2〉가 나왔다. 서도철은 여전히 몸과 깡으로 싸운다. 그러나 류승완은 그에게 하나의 무기를 더 준다. 바로 소시민의 평범한 윤리다. 전작에서는 하나하나 규정을 지켜가며 수사해야 하는 상황에 서도철이 답답함을 느끼고 이를 은근슬쩍 위반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 심지어는 누군가의 규정 '악용'으로 서도철이 곤경에 몰리는 장면도 있었다. 그런 서도철이 이번에는 원칙과 상식의 수호자로 돌아왔다. 서도철은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데 불만인 평범한 소시민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공권력의 일원으로서 이 조류에 휩쓸리기보다는 원칙에 입각한 직업윤리를 택한다. 공권력을 사적 제재의 수단으로 삼는 경찰(정해인)에 대적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부당거래〉의 검사들이 그러하듯 서도철이 기성 체제의 수호자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부당거래〉의 검사들이 지키고자 한 건 자기 기득권이었지만 서도철은 법과 공권력에 담긴 상식을 옹호하고자 한다.
〈베테랑2〉는 이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유독 공을 들인다. 이 영화에서 범죄자보다 더 악질적인 존재로 제시되는 인물군은 자극적인 가짜뉴스만 유포하며 수익을 내는 유튜버,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방식으로 범죄자를 사적으로 처벌하고자 하는 ‘의인’ 등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에 마땅한 죗값을 치르지 않는 건 문제지만, 그들을 합법적인 방식을 거치지 않고 처벌하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소시민 서도철의 가족 이야기가 전편에 비해 더 자주 등장하고, 극의 서사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맡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전작에서 가족은 서도철이 현실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부수적 장치 정도로 활용됐지만, 이번에는 서도철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핵심 대상이라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서도철이 직업윤리를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가족을 지켜내고 체제를 교란하는 악인을 검거하는 데서 직업적 상식을 지키는 일이 사회의 ‘근간’인 가족을 지키는 일로 확장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사건을 해결한 서도철이 냉랭하던 아들과 라면을 끓여 먹고, 그의 아내가 무심한 듯 부자父子에게 다가와 어우러지는 장면은 서도철이 고군분투 끝에 지켜낸 직업윤리가 가족을 지키는 일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강하게 환기한다. 불합리하더라도 자기 영역에서 직분에 맞는 윤리를 지키며 가정을 지키는 어느 소시민 남자의 윤리는 이렇게 몸과 깡 이후 서도철의 새로운 무기가 된다.
단순한 선악 구도에서 몸과 깡만을 무기로 강자를 들이받는 소시민의 이야기는 판타지일지언정 쾌감을 안겨준다(〈베테랑1〉). 하지만 칼로 무 자르듯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에서는 자기 윤리를 붙잡고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베테랑2〉). 그런 서도철에게 류승완은 소박한 정의로 소박한 삶을 지키는 남자야말로 가장 위대한 남자라는 위안을 건넨다. 일상의 작은 정의야말로 〈부당거래〉의 폐쇄적 세계와 〈베테랑〉의 판타지적 승리가 채워주지 못하는 허탈함을 온전히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영화가 치열하게 모색한 남성성의 길이 돌고 돌아 다시 도달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가 평범한 남성 가장이 답으로 제시될 수 있는 시대인가? 〈부당거래〉의 부조리한 세계는 과연 그토록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감독이 전작 〈밀수〉에서 선보였듯 여성들의 억눌린 목소리와 가려진 노동이 이제 막 포괄적 사회 공론장에 진입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류승완 감독이 그토록 돌파해내고자 한 〈부당거래〉의 세계는 〈베테랑2〉로 인해 출구 없는 세계임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서도철에게는(그리고 남성들에게는) 다른 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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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 키싱부스
넷플릭스에서 유명한 하이틴 영화들이 몇 개 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키싱 부스 등등. 하이틴 영화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에는 나름의 이유는 있지 않을까 싶어 보았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예전에 후기를 남긴 적이 있고, 키싱 부스는 출퇴근 때 가볍게 보기 좋았다.
하이틴 영화에 늘 나오는 관계답게 주인공인 엘과 엘이 짝사랑하는 노아는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이다.
노아는 엘의 오랜 절친인 리의 형으로 엘과 리는 친한 친구의 법칙으로 서로의 가족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게 엘은 노아를 짝사랑하고 노아도 알고 보니 엘을 짝사랑한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 늘 나오듯 남자 주인공은 싸움만 하고 여자관계가 복잡한 문제아지만(그런데 하버드를 간다.) 여주인공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이다. 여느 영화와 똑같이 축제나 자선행사 같은 이벤트가 벌어지고 그 와중에 여주인공에게 위해가 되는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그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가 노아다. 그러니 둘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대외적으로 사귀는 사이임을 공표하지 못한다. 리의 존재 때문이다.
엘과 노아의 관계만큼이나 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친구와의 관계이다. 엘은 리에게 "사실 너의 형과 사귀고 있어. 너와의 약속은 깨버렸어."라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계속 리에게 관계를 숨기지만, 우리 모두 이 노래의 끝을 알고 있다시피 당연히 관계는 들킨다. 관계를 들킴으로 리는 형과 엘에게 실망하고 셋의 관계는 파국을 마주한다. 파국을 마주했지만 긴장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이 노래의 끝이 무엇일지 알고 있다.
주인공은 친구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사랑도 중요함을 리에게 말하고, 리도 그 관계를 존중해 줌으로 우정도 지키고 사랑도 지킨다.
영화의 제목이 '키싱 부스'이지만 키싱 부스가 제목으로 자리매김할 만큼 영화에서 특출나게 하는 역할은 없다.
영화 제작자는 아마 키싱부스를 플롯의 전환, 추억을 환기시켜주는 매개체 또는 10대들에게 운명적인 사랑 혹은 불타는 사랑의 매개체쯤으로 삼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중간중간 억지로 집어넣은 설정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리와 형의 관계 설정
"항상 형은 내 모든 것을 뺏어갔어. 그런데 이제는 너(엘)도 뺏어갔지."
엘과 리의 부모님의 관계 설정
"나는 너의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주 다투었지만 나중에는 왜 다투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살면서 정말 좋은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야"
이 외에 OMG 걸스나 리의 사랑이라든지 절친의 법칙 등등. 2020년에 키싱 부스가 공감이 갈만한 매개체인지, 자선행사나 학교 축제, 졸업파티가 설렘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미국인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술술 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최근 콘텐츠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따랐다는 점이다.
이제 대중들은 갈등관계가 매우 복잡하거나 사건사고가 질질 늘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극이나 심각한 사건사고를 다룬 스토리 혹은 깊이 생각해야 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것들은 깊이 생각할 수 있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넷플릭스에도 "결혼 이야기" 나 "아메리칸 팩토리"를 비롯한 영화, 다큐 등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콘텐츠들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마음먹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선뜻 플레이 버튼을 잘 누르지 않는다.
키싱 부스는 플레이 버튼을 단순히 누를 수 있게 만든 영화다. 사람들이 플레이 버튼을 쉽게 누를 수 있도록 갈등구조는 단순하게, 설정이 억지 같지만 대충 납득할 수 있게 (이거 알지? 어차피 중요한 거 아니니까 대충 넘어가자 식), 판타지는 적절하게 실현시켜주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도 플레이 버튼은 쉽게 눌렀지만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건 내 나이 문제다. 애초의 나와 같은 연령대를 겨냥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10대를 비롯한 20대 초반들을 겨냥했다. 보통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중요해지지 않는 "우정과 사랑을 양립할 수 있는가" 다. 거기에 빠른 교차편집, 단순한 갈등구조, 그들에게는 상식이지만 나에게는 공부해야 할 밈들이 애초부터 커트라인인 것이다.
나는 리의 어머니나 엘의 아버지 이 외 많은 등장인물들이 조명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는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들의 역할은 그 정도까지 인 것이다. 나는 스토리에서 쓸데없는 등장인물들은 없다고 생각하고 만약 등장한다면 당위성과 개개인의 특성을 잘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10대들은 그렇지 않다.
10대들은 주변 인물들이 중요하지 않다. 주변 인물들이 내뱉은 말이나 상황이 중요하지 그 인물 자체가 꼭 있어야 할 당위성 같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속편이 제작되어 이미 개봉했다는 것도 보았다. 심지어 키싱 부스 3로 그 후속작까지 제작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좀처럼 공감할 수 없는 문화의 상대성이 혼란스러운 영화였다. 이제 나도 구시대의 반열에 한 다리 정도는 걸쳐있는 것 같다.
"아저씨. 꼭 설명해야 해요? 대충 알자나요... 넘어 갑시다. "
키싱 부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까마구의 까망책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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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넷> 운명은 원래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1. 테러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었던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작전 도중 벽에 박혀 있던 총알이 총으로 다시 들어가는 현상을 목격한다. 작전이 종료된 후 그는 테넷이라는 조직을 찾아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inversion)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러시아 무기 밀매업자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음모를 파악한다. 이에 주인공은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가진 요원 '닐(로버트 패틴슨)'과 미술품 감정사이자 사토르로부터 벗어나려는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을 만나 미래의 공격에 맞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으려는 새로운 작전에 나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어렵다. 단지 엔트로피의 흐름을 바꿀 때 시간의 역행이 가능하다는 인버전 개념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이 불친절하다.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들은 안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상황을 가능케 하는 인버전에 대한 설명은 초반부에만 짧게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그 와중에 인물들의 동기, 행위와 인과관계 등 스토리 전개를 쫓아가는 것도 상당히 벅찬 데, 씬들이 전체적으로 짧아서 화면 전환이 잦은 데다가 장소도 금방 바뀌는 등 영화의 리듬이 빠르기 때문이다. 또한 이름이 없는 주인공이나 극단적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사토르처럼 그저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 느껴지는 캐릭터들은 쉽게 공감하거나 마음을 붙이기 어렵다. 그 결과 <테넷>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값을 해내지 못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2. 하지만 <테넷>을 물리학의 이론을 빌려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로 이해할 때, <테넷>의 어려움, 난해함, 불친절함은 영화가 의도한 서사와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작중 인버전 현상이 암시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인버전 될 때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과관계는 사라진다. 원래 과거의 사건은 미래의 원인이며, 미래는 과거 행위의 결과여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역행하면서 그 순서는 뒤바뀌고, 역행하는 시간이 현실에 공존할 때 원인과 결과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캣이 요트에서 다이빙하는 여인을 보며(원인) 자유롭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결과), 정작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으로 인해(원인) 요트에서 다이빙한 것처럼(결과).
그렇기에 마지막 작전을 끝낸 후 그의 선택이 의지인지 운명인지 묻는 주인공에게 닐은 현실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그 운명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신이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했다 해도 우리는 살면서 이를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만약 운명이 있다면,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은 미래를 결정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선행을 하든 악행을 하든 이미 정해진 운명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래에 일어날 일 또한 과거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니깐.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지, 곧 <테넷>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재를 살겠다는 닐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주인공처럼 자신의 운명에 대한 확신을 가진 채 삶을 최선을 다해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3. 이에 더해 작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주인공과 캣, 그리고 사토르의 서사 간의 대비 또한 <테넷>이 결국 운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주인공과 캣은 자신들의 미래와 그 미래를 가능케 하는 사건을 마주하고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처럼 그들은 변하지 않을 예정된 미래에 대해 조금도 알지도 못하지만, 그 미래에 자신들은 원하는 바를 이룰 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실제로 원하는 바를 이뤄낸다. 반면에 사토르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미래를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순응하나 정작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이러한 대조는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망, 자유의지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사토르를 막기 위한 작전에서 이용당하고 있음을 깨달은 후 작전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주인공과 사토르에게 잡힌 약점에서 벗어나 인생의 고삐를 되찾으려는 캣의 모습은 사토르에게서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의식은 놀란 감독의 초기 작품인 <메멘토> 혹은 <인터스텔라>를 연상케 하는, 직선에서 벗어난 구조인 <테넷>의 플롯 때문에 더욱 강조된다. 작중 과거와 미래의 사건들은 중반부, 즉 주인공이 직접 인버전 하는 순간부터 서로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전반부가 후반부의 복선이자 후반부는 그 결과이고, 결말을 보고 나면 전반부와 후반부의 인과가 또 한 번 뒤집히는 것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두 시간대가 합쳐지고 한 장면 안에 서로 다른 시간대를 공존시키는 시나리오 덕분에 영화는 앞서 뭔가 어려웠던, 놓친 거 같았던, 그리고 이해가 안 되었던 장면들을 후반부에 직관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는 영화가 과학적 설정과 관련된 내용들을 세심하게 이해시키지 않은 채, 스토리 전개를 빠르게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알 듯 모를 듯한 난해함과 복잡함을 경험할 때,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운명과 삶을 체감하는 영화적 경험의 전율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4. 한편 첩보와 SF 영화라는 장르 간의 만남은 <테넷>의 운명과 주체적인 삶에 대한 메시지를 새로우면서도 가장 놀란 감독다운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의 첫 첩보물인 <테넷>은 냉전과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용어를 직접 언급할 정도로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두 진영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첩보원의 고뇌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근래 <본> 시리즈나 <007: 스카이 폴> 같은 첩보 영화들도 타인을 믿기 어려운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의 고뇌와 외로움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서사는 이러한 장르적 특징과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에 완성도를 더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인과 미국인을 비교하는 유머가 곳곳에 포진한 것 역시 <테넷>이 영국의 상징이자 놀란 감독이 많은 애정을 드러냈던 007 시리즈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첫 첩보 영화라는 새로움은 놀란 특유의 SF 영화스러운 상상력을 만나면서 놀란 감독만의 스타일로 귀결되기도 한다. <테넷>은 엔트로피를 통해 시간을 역행할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운명을 가능한 한 과학적인 상상력의 범위 안에서 풀어낸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우주의 섭리, 혹은 신의 명령으로 여겨질 정도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인 운명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려는 그 시도만으로도 놀란 감독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초현실적, 초자연적인 현상을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돌파하는 SF 영화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미 꿈과 시간, 유령 등의 의미를 풀어내기 위해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에서 과학적인 상상력을 뽐낸 바 있다.
5. 더 나아가 놀란 감독 특유의 단점들이 <테넷>에서 보여준 일부 진일보한 성과들은 메시지와 주제를 더욱 깊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놀란 감독 작품에서 여성은 주로 남성 주인공의 목표, 트라우마 혹은 이상으로 존재했다.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전작들의 여성보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묘사된 캣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있어 최소한 반발짝이나마 변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고, 이는 영화의 메시지가 입체적으로 제시되는 데 힘을 보탠다. 또한 평면적이고 도구화되었다고 비판받는 주인공도 최소한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데는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영화는 주인공의 이름을 마지막까지 밝히지 않는데, 이는 운명을 마주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결국 모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전작들에서 다소 무기력했던 액션 연출의 경우에는 한 단계 진보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작중 액션은 이탈리아에서의 카 레이싱과 오슬로 프리포트에서 펼쳐지는 액션처럼 과거와 미래, 현재의 사건 간의 아귀가 맞아 들어갈 때 전율을 일으켜야 하는 순간인 경우가 많다. 이때 빠르고 리드미컬한 컷들로 이루어진 <테넷>의 액션은 현실감과 타격감이 극대화된 결과 몰입감을 잔뜩 끌어올리고, 그 순간의 충격을 최대로 만든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공존시키는 상상력으로 무장한 <테넷>은 분명 난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영화다. 놀란 감독의 단점들도 여전히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수작이기도 하다. 두뇌를 자극하는 놀란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공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운명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느끼게 되는 충격과 전율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O(Outstanding, 특출남)
아무리 이해가 안 돼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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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 / 激突! ラクガキングダムと ほぼ四人の勇者, 2020
작년 현장실습이 끝나고, 극장에서 못 보던 영화들이 한 번에 몰아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 영화들을 기대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영화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이었습니다.
아무리, 전성기 시절만큼의 폼은 아니더라도 해왔던 것들이 있기에 차마 발길을 끊을 수는 없었고요.
그렇게 보게 된 <신혼여행 허리케인~ 사라진 아빠!>은 '사라진 제 짱구를 찾습니다!'라는 단말마와 같은 평가만을 남기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속았음에도 이번에 다시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을 다시, 극장에서 보게 된 이유는 이번 극장판이 기존 극장판과는 다르게 원작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최초는 아닙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극장판들은 원작이 있던 반면에 이후 극장판들은 오리지널 이야기를 가지고 만들었으니 일본 개봉 기준으로는 25년 만에 원작을 가지고 만든 극장판인 것이죠.
그러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봉하는 극장판으로 역시 기대를 품게 만들었는데, '과연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은 어땠는지?' -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아이들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낙서로 에너지를 받는 '낙서 왕국'은 사라진 아이들의 낙서로 어느새 멸망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에 왕국은 기존 국왕에게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주는 자신의 부하에게 '미라클 크레용'을 건네며 '낙서 왕국'을 구해줄 용사를 찾을 것을 부탁하고 지상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낙점된 "짱구"는 먼저, '미라클 크레용'으로 자신을 도와줄 동료들을 그리는데...원작을 모르는데, 익숙하다?
1. 강도 높은 웃음을 어떻게 대체하나?
앞서 말했듯이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눈치채고서 보는 관객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도 그럴 것이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을 저와 같은 성인 관객들이 보는 이유는 단, 하나 "얼마나 웃겨주는지?"일겁니다.
근데, 이 웃음의 기준이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전 극장판 <신혼여행 허리케인~ 사라진 아빠!>의 리뷰를 살펴보면, '"성기"가 노출되는 표면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헨더랜드의 대모험>에서 인형이 된 부모님을 향해 "아빠! 맘모스가 없어요.. 엄마! 가슴이 커졌어요!"는 대사가, <암흑 타마타마 대추적>은 구슬을 삼킨 짱아에게 짱구가 '하나만 더 삼키면, 남자가 된다'라는 대사, 그리고 <불고기 로드>에서는 유부남 상사를 좋아하는 여성의 상황'까지 이처럼 성인이 봐도 헉! 할 만큼이죠.이제는 'PG 등급'이니까!
그렇기에 한껏 순해진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의 '웃음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냐?'에 해당 작품의 만족도를 달라질 겁니다.
물론, 해당 작품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은 그때만큼 높은 수위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해당 작품의 유머에 큰 불만이 없는 이유는 "낙서"라는 소재를 통해서, 어른과 아이을 대치하는 것도 있으나 이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다분한 작품입니다.2. 이걸 애들 보는 만화에서 보여줘도 되나요?
이번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국내에서 "국방장관"으로 나오는 캐릭터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악당"으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저와 같은 성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악당"으로 바라볼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낙서로 에너지를 받는 '낙서 왕국'의 특성상 낙서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어른들이 곱게 보이지 않음과 동시에 손을 놓고 바라보는 국왕의 모습을 보자니 그가 "쿠데타"를 일으킨 동기는 확실하게 설득되었거든요.
이후 이야기에서 아이들을 어른들로부터 격리시켜, 재우지도 않고 낙서를 시키는 모습은 삐뚤어진 애국주의자의 모습과도 꽤 겹쳐 보였습니다.이렇게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마지막에는 "제발, 낙서를 해달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애결하는 모습까지 악당을 떠나서 완벽한 캐릭터의 기승전결을 지는 유일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도 "가짜 이슬이 누나"라든지 "부리부리 자에몽"과 같은 캐릭터들도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들의 경우. 극에서 눈물을 담당하는 역할들로 특히, "부리부리 자에몽"는 "오마주"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돼지발굽>을 연상시키는 장면은 저와 같은 관객들에게는 때아닌 향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3. 나의 가장 보편적인 악당들
앞서 말했듯이 이번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은 원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아는 사람들은 있을지'가 걱정일 정도로 그 어느 극장판처럼 낯설겠지만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은 그 어떤 극장판보다 가장 익숙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는 앞에서 언급한 "부리부리 자에몽"의 마지막 모습에 <돼지발굽>을 연상시켰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외에도 낙서를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원숭이"들과 대결했던 <정글>을, 초반 왕국의 추격전 구도와 "판타지"적인 요소는 <헨더랜드>의 장면들이 떠오르니 여러분들도 그 어떤 극장판보다 가장 익숙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나요?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작품?
익숙한 것도 있지만, 이번 극장판에서 악당으로 출연하는 "국방장관"의 동기에 납득한 것처럼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극 중 후반부에 "낙서 왕국"이 떨어져 마을에 위험이 닥치자 사람들이 "미라클 크레용이 어딨냐고!"면서, 다그치는 장면은 불안과 이기심을 엿볼 수 있었거든요.
분명히, "낙서 왕국"을 다시 끌어올릴 방법을 인지했음에도 도망치는 모습과 애결하는 악당은 모습은 이번 극장판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절대적인 악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악이라는 것을 그것도 아동만화에서 보여주었으니까요.4.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줄까?
그렇기에 마지막 엔딩에서 "아동 만화"스러운 급하게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모습과 극 중 쿠데타를 일으킨 "국방장관"외의 다른 캐릭터들의 설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활용되지 않는 것도 아쉬움으로 적용됩니다.
그토록 흔했던 "오카마", 여장 남자들도 사라지고 성인들이 헉! 할 만큼의 유머도 사라진 이 마당에 올드팬들에게 오늘날의 극장판들은 분명히 실망스러운 점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로 큰 만족감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성인 관객들에게는 다음을 혹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을 이어나갈 새로운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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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만에 엄마의 첫사랑에게서 편지가 왔다
요즘 날씨를 보면 곧 봄이 올 것 같습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올 겨울의 끝에 눈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를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모’의 임 대형 감독이 한국과 일본 오타루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 ‘윤희에게’입니다
영화 ‘윤희에게’에서 윤희 역을 맡은 배우 김희애.
이야기는 윤희(김희애 분)의 집으로 온 편지 한 통으로 인해 시작됩니다. 이 편지는 윤희의 딸 새봄(김소혜 분) 이 먼저 발견 하 죠.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라고 시작되는 이 편지에 새봄은 별안간 엄마가 궁금해졌습니다. 사진관을 하는 삼촌과 이제는 이혼해 따로 사는 아빠에게 차례차례 엄마에 관해 묻죠. 엄마와의 이혼 사유를 묻는 딸에게 아빠는 “너희 엄마는 사람을 참 외롭게 하는 사람이야”라고 알 수 없는 대답을 합니다.
한편 윤희는 사내 식당에서 일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견디며 사는 듯 삶에 지쳐버린 중년 여성인데요. 그런 자신에게 날아든 편지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졌죠. 직장 상사에게 밀린 휴가 좀 쓰겠다며 넌지시 묻었지만 책임감 운운하며 못 기다려준다는 말에 그만둬 버립니다.
극 중 윤희의 딸로 등장하는 새봄 역의 김소혜 배우(왼쪽)와 새봄의 남자친구 경수 역의 성유빈 배우(오른쪽).
윤희는 딸 새봄과 함께 일본 오타루로 향합니다. 이는 편지를 먼저 읽어본 새봄의 계획된 여행이었는데요. 남자친구 경수(성유빈 분)를 대동하고 엄마 몰래 개인 미션을 수행합니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쥰(나카무라 유코 분)을 찾기로 하죠. 편지에 적힌 주소대로 찾아간 새봄은 경수의 도움으로 쥰의 고모 마사코(키노 하나 분)가 하는 카페까지 알아내는데요. 새봄은 마사코에게 쥰을 직접 만나보겠다는 의사를 전
다음날 카페에서 쥰을 만난 새봄은 그녀에게 같이 저녁 먹자는 제안을 하는데요. 동시에 엄마에게도 저녁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죠. 오작교가 된 새봄 덕에 만나게 된 윤희와 쥰. 오랫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던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요.
새봄이의 계략으로 20년 만에 만나게 된 쥰(나카무라 유코 분)과 윤희.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윤희 역의 김희애 배우는 감독이 이 영화 대본을 쓸 때부터 생각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엄마 이야기보다는 독립된 개인으로서 윤희만의 개성과 취향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김희애 배우가 표현한 윤희는 윤희 그 자체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 윤희의 삶이 마치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면 쥰을 만나고 온 뒤 달라진 그녀의 상반된 모습을 잘 담아냈습니다.
아이돌 그룹 IOI 출신인 새봄 역의 김소혜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시니컬 하면서도 통통 튀는 모습을 매력적으로 잘 살렸습니다. 영화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서 사실 그녀에 대해 찾아보지 않았으면 그냥 연기 잘하는 신인 배우가 나타났다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윤희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쥰 역의 배우 나카무라 유코
좋았던 장면은 너무 많아서 그냥 이 영화 전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중에서도 윤희와 새봄이 노천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눈싸움을 하는 장면. 윤희가 새봄에게 불을 빌려달라 하고 새봄은 윤희에게 담배 한 개만 달라는 장면 등 엄마와 딸의 케미가 돋보인 소소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다른 힐링 포인트라 한다면 사람 키만큼 쌓인 눈 사이를 걷는 소리나 눈의 도시라 불리는 오타루 곳곳을 화면을 통해 둘러보는 것도 대신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오랜 시간 동안 꺼내볼 수 없었던 윤희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 화를 추 천해 드 립니다.
추신. 이 영화를 볼 예정이시라면 팁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실내온도를 약간 서늘하게 맞춰주세요.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 무릎 담요와 함께 플레이 버튼을 누르신다면 최상의 상태로 영화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수리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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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약함은 연대한다 ‘디피컬트’
블랙 프라이데이, 환경 단체가 대형 쇼핑몰을 점거하며 외친다. “1도, 2도, 3도, 오르는 기후. 소비는 반인륜적 범죄” 싼값에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들과 소비를 막으려는 사람들은 과격하게 대치한다. 격렬한 시위 장면으로 시작하는 <디피컬트>는 기후 위기와 환경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원제 ‘A difficult year’가 암시하듯 이 영화는 삶의 힘듦과 우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환경 운동가 캑터스는 기후 우울증으로 무력감을 느낀다. 브루노와 알베르는 대출을 반복하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 거주지도 불분명한 신세가 됐다. 브루노는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까지 했고, 알베르는 공항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물건을 되팔아 근근이 돈을 마련한다. 환경 운동가와 리셀러,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세 사람이 환경 운동으로 엮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는 것은 환경 운동과 가난이 맞닿는 지점들이다. 알베르와 브루노는 공짜 맥주와 음식에 혹해서 환경 단체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기후 위기에 코웃음 치지만, 자선 바자회가 물건을 빼돌려 되팔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환경 운동에 가담한다. 환경 운동에서 떨어지는 콩고물과 캑터스에 대한 알베르의 호감, 시위 현장이 주는 묘한 흥분 등은 이들로 하여금 환경 운동에 가담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유가 된다.
빈곤과 환경 운동은 또한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캑터스는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한다. 하나의 물건을 들일 때는 하나의 물건을 버리는 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유지한다. 알베르와 브루노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 전문가는 물건을 사기 전에 세 번 생각해 보라고 강조한다. ‘꼭 필요한가? 정말 필요한가? 지금 당장 필요한가?’ 최소한의 소비는 환경 문제와 재정적 문제에 봉착한 개인들의 실천이자 투쟁이다.
이는 기후 위기와 빈곤이 끊임없이 달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루노가 자본의 중심지인 프랑스 은행을 점거하자고 설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이 화석 연료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기후 재난을 가속화한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는 채무 변제 서류에 접근하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환경 운동과 연결되는 의외의 상황들은 삶의 취약함이 여러 지점에서 우연히 연결됨을 보여준다. 우리의 우울이 결코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때 취약함은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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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하는 모든 다큐들에게.
N년차 OTT 구독자로서, 넷플릭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다양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를 제일 좋아하는데, 항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볼 때 어딘가 아쉬운 몇 % 의 부분들을 마저 채워주는 느낌이다. 그동안 봐왔던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겠다.
1. 섹스토피아(2017)
원제_Liberated: The New Sexual Revolution
미국 대학생들의 성에 대한 인식과 문화의 민낯을 확실히 알려준 다큐. 감독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 대학교 봄방학을 즐기는 모습을 촬영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성에 대해 다소 개방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가벼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것에 사실 좀 많이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사랑'의 개념과는 많이 멀어진, 그저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하루를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보내는 것이 다반사 된 그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람을 한 인격이 있는 개체로 보지 않고, 그저 자신을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보는 비정상적인 생각이 일반화되고 있다. SNS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에서 비추는 고정적인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게 되고, 소외되지 않기 위해 평소에는 하지 않을 법한 행동들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어딘가 씁쓸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바닷가에서 페스티벌을 즐기는 내내 그들은 남자들의 무차별적인 접촉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하고, 너무 대놓고 이상한 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맞서 대항하고, 당황해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진정한 해방이란 외적으로 무언가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치와 몸을 되찾고 심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이런 실상을 촬영하고 있던 시기, 해당 구역에서 집단 강간 사건이 일어나 큰 파장을 일으킨다. 오히려 피해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 그 상황을 촬영하고 방관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크게 분노한다. 정말 점점 미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최근에 봤던 다큐멘터리 중에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은 작품이다.
2.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2019)
원제_Fyre
FYRE, 이 축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용두사미이다. 셀럽 모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제껏 경험할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축제인 양 홍보를 해놓고, 막상 초대받은 인플루언서들이 도착했을 때는 기본적인 주거시설조차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음악 페스티벌 하나를 준비하는데 드는 사람들의 노력과 수많은 비용을 한 사람의 무지와 우매함으로 인해 물거품으로 만든 최악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최근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고, 처음 균열을 발견했을 때에도 그저 강압적으로 축제만 진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마구 밀어붙인 대표의 태도에 말을 잃게 된다.
직장인으로서 개인적으로 사건의 흐름보다는 이 페스티벌을 담당하게 된 수많은 직원들이 겪는 심적인 고통과 스트레스에 나도 모르게 이입하면서 보게 되었다. 마치 마감일이 다가왔는데도 기본적인 틀조차 무시한 채 그저 마무리만 하면 된다는 상사에게 시달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심지어 급여 문제도 있어서 기존에 받기로 했던 금액조차도 받지 못하고 일을 진행해야 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 사건이 끝난 후 지금까지 트라우마와 심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그 축제에 초대받은 인플루언서들에게는 정말 인생에 몇 없을 비극적인 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최고급 숙박을 제공한다는 것과 엄청난 게스트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한껏 기대하고 도착한 곳은, 왠 짓다 만 텐트였던 것이다. 심지어 방수시설도 되어 있지 않아 물이 새고,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었다고 한다. 대표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기꾼인 게 분명하다. 제일 화가 나는 포인트는 이 모든 사건에 대한 판결 이후이다. 결국 이 대표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고, 지금은 또 다른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제2의 Fyre 사기극을 준비할지도 모르는 법이다. 오히려 핵심 사건보다 그 이후의 근황을 보는 게 더 힘 빠지는 일인 것 같다.
3. 슈퍼맨 각성제(2018)
원제_Take Your Pills
각성제라고 불리는 '애더럴'을 포함한 약물들의 남용 사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 또한 고등학교 입시 생활을 할 때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적은 있지만, 각성제를 주기적으로 먹어본 기억은 없다. 이미 지나치게 경쟁을 하고 있지만, 일종의 부스터로 각성제라는 옵션을 추가하게 된 사회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런 것에서도 사회 구조가 드러나는 점이 흥미롭다.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여러 가지 과외를 받으면서 좋은 점수를 받을 기회가 비교적 많아지는데, 소득이 낮은 부모의 자녀들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성적을 감당해내야 한다. 좋은 점수는 받고 싶은데, 자신이 없을 때에는 이런 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아이들의 인터뷰가 놀라웠다. 이 또한 어떻게 보면 부정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또한 ADHD가 있는 아이들이 애더럴을 섭취하게 되면 집중력이 좀 더 좋아진다고 믿는 부모들도 있다. 한 어머니는 아들의 예술적 재능이 약을 통해서 더 잘 발현되었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약을 먹어야 하는 게 정말 싫었다고 말한다. 그 아이는 거의 10년간 약을 먹어왔는데, 실제로 이렇게 약에 의존하는 아이들의 수가 상당하다고 한다. 너무 어릴 때부터 약에 길들여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보다는, 순간의 완화 효과 때문에 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제법 많은 것 같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애더럴은 필수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증권사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먹는 약들 중 하나라고 한다. 대체 경쟁에서 이기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길래 다들 이렇게까지 하는지, 경각심까지 들게 한다. 심지어 어떤 제약회사에서는 업무 효율을 증가시켜주는 약을 개발 중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약으로까지 경쟁하는 시대라니, 다음엔 뭐가 될지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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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영화정보
제작사: 20세기 폭스, 마브 스튜디오, 클라우디 프로덕션
배급사: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매튜 본
제작: 매튜 본, 데이빗 리드, 애덤 볼링
각본: 매튜 본, 칼 가이듀섹
원안: 매튜 본
출연진: 해리스 디킨슨, 레이프 파인스, 젬마 아터튼, 다니엘 브륄, 자이먼 혼수, 스탠리 투치 외
음악: 헨리 잭맨
개봉일자: 2020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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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30초 예고편
언제 죽을지 몰라도 뜨거운 사랑은 하고싶은 마르타.
데이트 앱을 켜 운명의 남자를 찾기 시작하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째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포기 직전의 마르타에게도 기적은 있었으니.. 이시대의 완벽남 아르투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르타는 아찔한 흑역사를 생성하고,
그 대가로 단 한번의 저녁 식사 기회를 얻게 되는데..!
우리가 사랑에 빠질 확률 9.5%
마르타의 목숨을 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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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재개봉 예고편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가요?
어김없이 홀로 새해를 맞은 서른두 살 ‘브리짓’
그런 그녀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정반대의 두 매력남.
내 여자에게만 다정한 스윗남 ‘마크’와
사랑에 직진하는 ‘다니엘’ 사이에서
그녀의 다이어리는 행복한 상상으로 채워지는데…
‘브리짓 존스의 일기’ 첫 페이지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