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빌 에반스(Bill Evans)라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베스트 음악을 모아 놓은 앨범으로 처음 재즈 음악을 접했습니다. EDM이 큰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던 터라, 재즈 음악은 아주 낯선 미지의 영역이었죠.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한동안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인 재즈 음악,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빌 에반스의 음악에 꽂혀 지냈었죠.
기억 한구석에 파묻혀 있던 빌 에반스를 다시 떠올린 것은 한 재즈 애니메이션 덕분이었습니다. 낯섦과 편안함이 공존했던 재즈 음악의 첫인상처럼, 재즈와 애니메이션의 만남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빌 에반스에게 꽂혀 지냈던 것처럼, 지금은 재즈에 꽂혀 지내고 있죠. 마성의 재즈 음악을 그려내는 작품, <블루 자이언트>를 감상했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블루 자이언트>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블루 자이언트>는 2023년 10월 18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블루 자이언트
Blue Giant
포스터 하단의 'JAZZ ON CINEMA'라는 문구는 <블루 자이언트>를 묘사하는 아주 적절한 세 단어입니다. 영화는 말 그대로 재즈 음악을 통째로 스크린에 옮겨왔습니다. 마치 재즈 라이브 공연을 현장에서 직관하는 것처럼, 재즈 뮤지션들의 땀과 노력과 열정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내죠.
원작 만화도 재즈 음악의 세계를 잘 표현한 것으로 호평받았는데, 애니메이션은 독자의 상상력에 달려있던 음악까지 실체감 있게 표현하며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네댓 차례의 재즈 공연 장면은 반복되는 화면 구성으로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었으나, 애니메이션과 3D 영상 효과 등을 통해 음악을 다채롭게 시각화하면서 지루함을 없앴습니다. 소리의 높낮이, 강도, 길이는 색의 명도, 채도, 밝기와 선의 굵기, 길이 등으로 표현했죠. 좋은 음악을 감상할 때면 형체 없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어떠한 전율 같은 것이 눈앞에서 영상으로 펼쳐지는 기분은 정말이지 색다른 경험입니다. 재즈와 애니메이션이 만났기에 가능한 방식입니다.
<블루 자이언트>는 'JASS'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하는 세 명의 10대 재즈 뮤지션 이야기를 담은 원작 만화의 1부 내용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부의 주제는 뜨거운 젊음의 열정인데요. 열정의 온도 역시 음악이 시각화되는 과정에서 더욱더 뜨겁고 강렬해집니다. 재즈 연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인물들의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날 때가 많았는데요. 인물들의 스토리, 강렬한 재즈 음악,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강화하는 영상적 표현의 시너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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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 3년 만에 엄청난 실력을 갖춘 재능 있는 테너 색소폰 연주자 '미야모토 다이', 재즈 음악을 소생시키고자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사와베 유키노리', 이제 막 드럼 채를 잡은 '타마다 슌지'는 팀을 결성합니다. 팀은 하나지만, 목표는 서로 다릅니다. 한 명은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 한 명은 서로의 이름을 발판 삼아 성장하기 위해, 또 다른 한 명은 그저 함께하기 위해 팀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10대라는 점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전력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와해될 팀이라는 것을 알지만, 세 명은 모두 노력과 열정을 담아 전력으로 팀에 임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최고의 재즈 클럽 '쏘 블루'에서 공연하는 날을 꿈꾸며 연습과 실전을 반복하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쏘 블루' 무대에 올라 온 힘을 다 바친 공연을 해냅니다. 영화는 그들이 '너무 뜨거워 푸른빛을 내는 뛰어난 재즈 플레이어', 블루 자이언트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벅차오르는 감정과 핑 도는 눈물을 억누르기가 어렵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슌지'가 드럼을 칠 때 특히 더 그랬죠.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은 갈망이 있던 그는 친구 '다이'의 연주를 듣고 재즈 드러머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천재적 재능이 있는 '다이', '유키노리'와 달리, '슌지'는 유일하게 타고난 재능이 없는 인물입니다. 초보자 '슌지'와 함께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지만, '다이'는 재즈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슌지'와 팀을 꾸립니다.
천재들 사이에서 초짜 드러머가 살아남기란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슌지'는 드럼 연습에 매진합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양동이를 두들기고, 초등학생들과 함께 학원에 다니며 드럼을 배우죠. 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미스(miss)를 줄여나가도록, 그렇게 'JASS'의 어엿한 드러머가 되도록 말입니다.
어릴 적에 "재능이 없어 그저 노력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위인들을 보며, '저런 것이 겸손이구나' 생각했던 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알게 되죠. 노력도 또 하나의 재능이라는 걸요. 벽에 부딪히고 좌절해도 꿋꿋이 일어나 다시 달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처음엔 박자를 제대로 끌고 가는 것조차 버거워했던 '슌지'였지만, 재즈 클럽 '쏘 블루'의 마지막 공연에서 그는 놀라운 드럼 솔로까지 연주해 냅니다. 노력만으로 비로소 제 몫을 해낸 '슌지'의 모습은 노력에 기대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격려가 되어줍니다. 저는 그의 드럼 솔로 장면에서 결국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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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자이언트>, 다시 한번 재즈 음악의 강렬한 매력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주인공 '다이'는 "감정을 그려내기에 날마다 다른 음악"이 바로 재즈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는 재즈 음악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영화가 만족스러웠다면, 우레하라 히로미 음악 감독의 유튜브 채널에서 <블루 자이언트> 삽입곡을 플레이리스트로 들어보세요.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블루 자이언트>의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Summary
언제나 강가에서 홀로 색소폰을 불던 고등학생 ‘다이’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에 도전하기 위해 도쿄로 향한다. 우연히 재즈 클럽에서 엄청난 연주 실력을 뽐내는 천재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를 만나 밴드 결성을 제안하고, ‘다이’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평범한 대학생이던 ‘타마다’가 열정 가득한 초보 드러머로 합류하면서 밴드 ‘JASS 재스’가 탄생한다. 목표는 최고의 재즈 클럽 ‘쏘 블루’! 10대의 마지막 챕터를 바친 JASS 재스의 격렬하고 치열한 연주가 지금,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타치카와 유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