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1 16:34:50
아침이 오고 우주는 넓어진다
영화 <위국일기> 리뷰
SYNOPSIS.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POINT.
✔️ 러블리한 웃음으로 알려져 있던 아라가키 유이가 보여주는, 전혀 다른 얼굴. 내가 알던 그 배우가 맞나 한참 바라보게 할 만큼 캐릭터를 철저하게 그려내는 연기력!
✔️ 서로 다르게 어긋난(違), 나라와 나라(國)의 경계만큼 선명한 타인과 관계 맺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다정한 영화
✔️ 풋풋한 십대 시절부터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마음들까지, 따뜻하게 끌어안아 주는 영화
✔️ 찡한 포인트도 있지만, 무해한 웃음 포인트도 많은 영화
✔️ 미술도 아름답습니다. 특히 주인공 직업이 작가라 그런지 문구 맛집... 보고 나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일기를 쓰고 싶어지기도.
✔️ 10월 2일 개봉합니다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의문이었다. 왜 학생 때는 장례식장에서 교복을 입으면 된다고 하는 걸까. 검은색 옷을 찾아 입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매일매일 입는 일상의 옷인데, 내 옆에 친구들도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나란히 앉아 있는 것도 평소와 같은데, 우리는 평소답지 않게 흑흑 울고 있다. 더없이 비일상스러운 감각이 일상의 옷에 스미는 게, 자꾸 슬픔과 역방향으로 툭툭 부딪쳤다.
이 영화에도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아이가 나온다. 사고로 한날한시에 사망한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자신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의 어둠에 갇힌 아사를, 이모 마키오가 구해 데려온다. 일반적인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마키오는 언니와 절연해 호칭조차 '그 사람'이라고 건조하게 말하고, 타인과 함께 지낸다는 것에 적당한 선을 그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너를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너를 짓밟지는 않"는다는 말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된다.

가족의 죽음을 시작점에 둔 영화지만, 마냥 슬픈 톤으로 꾸려져 있지는 않다. 마키오는 애초에 언니와 절연한 사이였고, 아사는 그 슬픔을 바로 직시하기엔 아직 어안이 벙벙할 뿐 아니라 눈앞에 다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갈 곳이 없었던 것도, 졸업식과 입학식이라는 큰 이벤트를 거치면서 친구들에게 어떤 스탠스로 말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마키오라는 새로운 사람과 알아가야 한다는 것도.
무엇보다 이 영화가 아주 슬프지 않았던 것은, 은은하게 다정한 관계망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키오와 아사와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를 정 들 때까지 세심하게 보여주는데, 이들 중 누구도 과장되게 노력하지 않는다. 무리해서 다정하게 대하려고 하거나, 억지로 감정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대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관계를 맺는다. 서투르면 서투른대로.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거절하지 않으면서.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존심을 드러내면서. 각자의 불안을 상대에게 투영하지도 않고, 감정을 서로에게 전가하지도 않으면서, 서로에게 가 닿는다.

어른이 되면 성숙해질까
어른이 되면 성숙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나는 그 착각의 정도가 유난히 심해서, 바느질이나 요리, 재봉틀 같은 것도 어른이 되면 저절로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한 친구가 "우리 엄마 요리는 맛이 없어" 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한 요리는 맛이 없을 수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선생님을 포함해 모든 어른들을 NPC로 취급했던 것 같다. 엄마라면 이럴 것이고, 교사라면 이럴 것이고... 으레 대충 그렇겠지 뭐. 그때 내 눈엔 나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아사의 모습들을 보며 감탄했다. 어쩜 저렇게 저 시절을 잘 표현했을까. 어른에게 친구가 있는 걸 처음 본다고 말하는 것도, 어른이 되면 뭐든 다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도. 내가 받는 사랑은 안 보이고, 남들이 받는 사랑만 커 보여서 그게 억울하게 느껴지는 것도. (내 세상의 중심은 나인데!) 친구가 한 말에 모처럼 용기를 내어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그것조차 서투른 것도. 지우개로 글씨를 곱게 지우기보다는, 흑연이 사그라드는 감정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마구마구 그어 버리고 싶어지는 순간도.

미성숙해도 '에코'가 된다면
이미 애진작에 어른이 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처럼, 영화 속 마키오와 친구들도 어른이 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성숙해지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른이 되면서 이들이 이룬 성숙은 딱 하나,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정도. 성격이 너무 다른 친구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자기 색깔대로 시간을 펼치고, 서둘러 관계의 이름을 규정하려 애쓰기보다는 존재로서 힘이 되어주는 것을 우선하며 모르는 걸 서서히 알아가 보기로 하는 정도다. 세상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램프의 요정 같은 건 없지만, 모르는 건 하나씩 더듬더듬 삶으로 익혀야 한다는 걸 알게 된, 딱 그 정도의 성숙. 서로에게 기대며 조금씩 나아간다는, 그 은은한 다정함.
하나하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각자의 고민과 불안과 생각들이 있다. 어떤 아이는 자기 사랑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어떤 아이는 부당한 대우에 화를 낸다. 어떤 아이는 멋있게 잘 하면서도 기대 후에 실망하기 싫다고 말한다. 각자의 세상에 불안과 고독과 무력감과 분노 같은 것들이 있다. 서로 다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는 노력조차 서투르지만, 그래도 조금씩 함께 서 보고 이야기를 해보면서, 다정한 마음이 서로에게 '에코'가 된다.

성장, 그 은은한 다정함
<위국일기>의 은은한 다정함은 이 영화가 인물 개인의 성장이라기보다, 관계 안에서 성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지점에서 온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작은 우주를 보는 기분이었다. 자라면서 스스로가 중심에서 빛나는 태양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딸려서 빛나는 달도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가는 것. 나는 작은 행성이며 다른 행성들과 나 사이에는 인력과 척력이 적당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내 위치에서 나로 존재하는 것, 어쩌면 그게 성장이 아닐까?
어른이 되면서 타인에게 나의 울퉁불퉁한 면면 중 서로 다른 일면만 보일 수 있음도, 그래서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걸 꼭 맞출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와 타인과의 거리감을 가늠하며, 그렇게 우리 중 누구도 예외 없이 인력과 척력 안에서 은은하게 다정한 우주를 산다. 가끔은 매정하리만큼 '타인'과의 거리감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힘차게 문을 닫아걸어 보기도 하지만, 이미 문 안에는 서로의 흔적이 가득하다. 상대가 내어준 노트에 글자와 그림을 채워 넣으며 나의 내핵을 향하는 중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한 단어에서 연상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더 넓히기도 하면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우주는 조금씩 더 팽창한다. 적당한 인력과 척력 안에서 시간이 흐르면, 어둠을 가르고 정돈하며 아침이 온다. 아사(朝)라는 이름처럼. 뒤늦게 터지는 눈물처럼. 어깨를 감싸는 손처럼. 그렇게 아이도 어른도, 우리 모두 조금씩 자라면서, 우주는 한 뼘씩 넓어진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
넷플릭스 오리지널 <퀸메이커> 리뷰감독] 오진석, 문지영
출연] 김희애, 문소리, 류수영, 서이숙, 이경영, 진경
시놉시스]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던 황도희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스포일러 유의#
이토록 여성을 강조하는 정치물이 있었던가
퀸메이커를 보는 내내 상당히 이질감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여성’에 대한 강조였다. 과연 현실 정치판에서 여성에 대한 공약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선거가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만큼 현실 정치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앞세운다기 보다는 보통의 인권을 주력하고, 당장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개발 및 유치와 같은 경제 중심의 정책이 앞세우곤 한다. 하지만 퀸메이커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공약 설명이나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의 1분 발표 시간에는 여성을 위한 서울시라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부분이 기존 정치물과 상당히 달랐던 요소였다.
기존 정치물에서는 남성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정경유착을 주로 보여주면서 현실과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을 보며 관객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면, 퀸메이커에서는 현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정치의 주요한 쟁점이 되면서 오히려 시청자들이 이렇게까지 쟁점화되고 전면에 나올 수 있는 요소들이 왜 현실에서는 부각되지 않는 것일까? 그저 편을 가르고 서로를 비난하는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황도희의 복수는 왜 시작되었을까은성그룹의 전략기획실장 황도희. 그녀는 여론을 주무르는 이미지 메이킹 전략의 귀재다. 기업의 골치 아픈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면서 오너 일가의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충성을 바쳐왔던 은성그룹을 배신하고, 그들의 적이었던 오경숙 인권변호사를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 캠프의 단장을 도맡는다. 황도희는 그간 오너 일가의 수많은 범죄행위들을 무마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었던 적이 없진 않았으나 한이슬의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왜일까?
그 동일한 궁금증을 은성그룹의 사위 백재민 상무도 황도희에게 물어본다. 이제까지 수많은 리스크들을 처리해왔으면서 왜 갑자기 이젠 못하겠다고 하는지. 자신 역시 활도희 당신이 지켜야하는 오너그룹의 일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작품을 보는 내내 활도희가 왜 은성그룹을 돌아섰는지, 이제껏 이보다 더한 일들도 해온 그녀가 이 일로 돌아설만큼 정말 큰 일이고,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백상무라는 캐릭터를 통해 짚고 넘어가주고 있었다.
백상무는 어찌보면 오너일가로 편입된 사람이다. 본인도 그것을 느꼈기에 항상 황도희와 개인적으로 술을 마실 때면 자신은 황도희와 같은 입장이고 상황이라며 우리는 이 은성그룹 안에서 유일한 동지와도 같다는 표현을 자주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은성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실질적인 힘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의 은성그룹의 사위라면서 저지른 성폭행을 무마해달라고 황도희에게 노골적으로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저지른 살해 행위에 대해 거짓으로 황도희에게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황도희에게 들키게 되고, 황도희는 이런 백상무에게 윤리적인 경멸과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배신감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은성그룹 일가에게서는 느끼지 않았던 배신감이 기폭제가 되었고, 성폭행이라는 같은 여성으로서의 모멸감이 작용하여 백상무에 대한 복수심으로 은성을 떠나 오경숙에게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를 희망하며
전략가 황도희를 잃은 은성그룹은 사위의 과오를 덮고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전설적인 킹메이커로 유명한 칼 윤을 섭외해 온다. 그 과정에서 아주 다양한 음모와 범죄행위가 발생하는데, 황도희는 이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고 만다. 그저 백재민 상무를 시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은성그룹을 망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복수로 확장된다.
아내 은채령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백재민은 회사 주변의 여성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이용했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더 높은 자리에 앉혀주면서 그에 대한 보답을 했다. 국지연은 이러한 관계에 만족하면서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무기로 백재민을 잡고자 하지만 권력에 눈이 먼 백재민은 국지연을 살해하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 불륜과 혼외자는 너무나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지연을 자살로 위장하려 하지만 이를 알아챈 황도희와 오경숙은 결국 국지연을 살려내며 백재민의 추악한 모습을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만천하에 알린다.
어쩌면 드라마기에 짜릿한 권선징악으로 끝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이었다면 권력과 자본을 가진 백재민과 같은 캐릭터가 국지연이라는 인물을 자살로 위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퀸메이커는 계속해서 백재민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선택할 때마다 그 모든 행위를 하나씩 하나씩 벗겨나가면서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론을 통해서 우리 사회 속에서도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희망을 넌지시 심어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퀸메이커는 남성이 강조되었던 기존 정치물과 달리 캐릭터와 소재 모두 여성을 내세우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 정치와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준 웰메이드 작품이었다.
-
- 국내 OTT 웨이브 영화/드라마 30편 라인업 공개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영화계 안팎의 다양한 소식과 영화 개봉작들의 이벤트 소식과 굿즈 일정을 소개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이번 주 영화계 소식을 다 같이 알아보실까요?
1. OTT 웨이브, 첫 오리지널 영화 <젠틀맨> 제작
OTT,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웨이브(wavve)가 올해 영화와 드라마, 예능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30여편 선보인다고 합니다.
국내 OTT 업체인 웨이브는 “자체 기획·개발 스튜디오인 스튜디오웨이브에서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할 것”이라며 “방송사·제작사·영화사·엔터사 등 주요 파트너와 연대해 콘텐츠 IP(지적 재산)개발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고 합니다. 웨이브를 그동안 이용해왔던 계신 분들이나 혹은 앞으로 어떤 OTT를 구독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관심가질만한 소식인 것 같습니다. :)
우선 웨이브는 올해 초 선보인 임시완, 고아성 주연의 드라마 <트레이서> 시즌2 전편을 오는 18일 공개한다고 합니다.
또한 올여름에는 권상우와 성동일이 출연하는 <위기의 X>를 선보일 예정이며, <약한영웅> <귀왕> <미션 투 파서블> 등 웹툰인 원작인 드라마도 하반기에 공개한다고 하니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웨이브는 올해 처음 오리지널 영화를 선보인인다고 하는데요. 주지훈, 박성웅 등이 나오는 <젠틀맨>, 김희애, 조진웅이 출연하는 <데드맨>, 신혜선, 이준영이 주연을 맡은 <용감한 시민>이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2.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1330편 출품, 역대 최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부문에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다 작품이 출품됐다고 합니다.
2021년 11월24일부터 올해 2월3일까지 72일 동안 진행한 한국영화 공모에 총 1330편이 접수됐다고 하는데 이는 역대 최다 출품 편수를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을 소개하는 '한국경쟁'과 다양한 장르의 국내 단편영화를 선보이는 '한국단편경쟁', 그리고 전북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공모' 등 세 분야에서 한국영화 공모를 진행했고, 공모 결과 각각 한국경쟁은 124편, 한국단편경쟁은 1169편, 지역공모는 37편이 접수됐다고 합니다.어려운 시기에도 출품작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내 영화인들이 코로나 팬데믹의 거리두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화 촬영 방법과 대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편 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작 공모를 마감하며, 전주국제영화제는 접수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예심을 진행하여, 본선 진출작을 차례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올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전라북도 전주시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라고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3. 배우 조현철과 천우희, 단편영화에서 만나다
2021년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 인상적이었던 배우 조현철이 단편 영화 <부스럭>을 연출한다고 합니다. 단편 영화 <부스럭>은 배우 조현철이 연출과 주연을 맡고, 천우희가 출연하여 이 두 배우의 만남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소식인데요.
영화 <부스럭>은 커플이었던 현철과 미진이 헤어진 후, 그들의 이별 사유를 파헤치고자 직접 나선 세영이 겪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전해집니다.
배우 조현철의 연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이미 대학시절 연출을 전공하며 단편 영화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구축해온 내공있는 연출자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젊은 배우로 평가받는 조현철과 천우희의 연기 호흡을 보여줄 단편 영화 <부스럭>은 오는 4월 티빙 오리지널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에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4. 이번 주 (2월 16일~2월 20일) 영화계 이벤트 &굿즈 증정 일정
2월 16일(수)
2월 17일(목)
2월 18일(금)
2월 19일(토)
2월 20일(일)
2월의 셋째 주 영화계 소식과 이벤트(굿즈) 소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씨네랩은 다음 주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소식과 함께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
- 사상적 재난을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고지를 받았다. “너는 10월 25일 16시(한국 시간)에 <지옥> 시즌 2를 볼 것이다!” 하긴 이 고지는 나만 받은 건 아니니까. 2년 전 <지옥>의 신도가 된 전 세계 모든 구독자와 함께 받았을 터. 언젠가 시리즈가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연상호, 최규석이 만든 지옥도를 기다린 1인으로서, 시즌 1 이후 2년 동안 다수의 콘텐츠에 눈이 돌아간 죄를 시연하는 마음을 담아 시즌 2를 기다렸다. 전 시즌보다 더 큰 혼돈이 펼쳐지고, 한 줌의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은 절망뿐인 이번 시리즈는 과연 어떤 것을 보여줬을까?
첫 고지와 시연이 벌어진 이후 한국은 혼돈의 시대가 이어진다. 정진수(김성철)의 시연 이후 힘이 약해진 종교 집단 새진리회, 점점 세력을 넓혀가는 화살촉, 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민혜진(김현주)의 소도,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어떻게든 통제하려는 정부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청와대 정무수석 이수경(문소리)은 세력이 커지는 화살촉을 견제하기 위해 새진리회가 숨겨둔 부활자 박정자(김신록)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부흥회를 계획한다. 이때 정진수는 부활하고, 이를 주시하고 있던 소도는 화살촉에 빠져 아내 지원(문근영)을 잃은 세형(임성재)을 통해 그를 포섭하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틀어진다.| <지옥> 시리즈, 사상적 재난을 다룬 작품
<지옥> 시리즈는 물리적 재난이 아닌 사상적 재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연상호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지옥> 시리즈를 이렇게 설명했다. 말 그대로 이 작품은 거대한 사건이 벌어진 근원적 이유보다 사건 이후,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즌 1에서는 고지가 내려지고, 죄인으로 명명된 이들이 해당 시간에 맞춰 지옥의 사자들로부터 개죽음을 당하는 현상을 자세히 비춘다. 인상적인 시연 장면만큼이나 시선을 현혹하는 건 정진수. 신이 인간의 죄를 벌하는 것으로 선동하는 새진리회, 그리고 나약한 마음에 이 사이비종교에 몸을 맡긴 광기 어린 사람들의 모습이다. 세 치 혀로 내뱉은 정진수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 그들을 이용해 권력을 강화하는 종교 집단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유일하게 인간으로서 올곧은 신념을 가진 민혜진의 눈을 통해 보이기에 그 여파는 오래 간다.
시즌 2에서도 이 사상적 재난은 계속된다. 그 중심축은 각 집단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이다. 부활한 박정자를 놓고 대립하는 각 집단의 싸움은 어지러운 세상의 왕좌를 되찾기 위해 아등바등 싸우는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촉발된다. 새진리회, 화살촉 등 모두가 신의 뜻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신은 없다. 신의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자기 합리화에 빠진 우매한 인간들뿐이다.| 재난 속에도 꿈틀대는 권력욕, 그리고 거짓말
시즌 1은 고시와 시연, 그리고 정진수의 존재와 영향력을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시즌 2에서는 그 현상으로 도래한 어지러운 세상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진수의 바통을 이어받는 이는 바로 이수경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인 그녀는 세력 간의 혼란 속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지옥 불에 뛰어든 것 같지만, 그건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녀가 계획한 건 각 집단 간의 견제를 통해 정부 측에 힘을 싣는 것뿐.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부활한 박정자를 메시아로 만든다.
“좋은 주인공을 가진 이야기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라 말하는 그녀는 교리보다 캐릭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캐릭터가 가진 힘으로 와해된 국민들을 정부 측으로 끌어모으려는 거짓된 야심은 정진수 못지 않다. 그녀의 모습은 현실 속 사이비 종교나 부패한 정치인들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거짓말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이를 동력 삼아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의 행태는 재난 속에서도 인간들의 사회라면 계속된다는 걸 보여준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부활한 정진수 또한 이수경에 뒤지지 않는다. 정진수의 거짓말은 아내를 잃은 세형, 정진수의 부활만 기다린 화살촉, 새진리회, 이수경에게까지 뻗쳐 나간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지속 가능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아는 그의 머릿속에는 나약한 이들을 어떻게 이용해먹을지만 생각한다. 다시 태어난 후 얻게 된 공포감을 없애기 위한 개인적인 욕심에 이들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모습은 부활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소도 또한 내부 분열에 휩싸인다. 박정자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민혜진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 간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는다. 민혜진을 반대하는 이들은 소신과 신념을 저버리고 집단의 힘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뜻이라도 사람들이 모이고 집단이 커지면 권력의 파워에 무릎 꿇는 게 인간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셈. 연상호 감독 각 집단의 내외적 문제를 수면위로 올리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벌이는 인간의 이기심이야 말로 지옥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새롭게 투입된 배우들의 활력!
<지옥> 시리즈의 동력 중 하나는 바로 캐릭터다. 특히 이번 시즌에서는 새로운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각 인물로 하여금 독특한 세계관에 따른 이야기를 설득시킨다. 표면적으로 가장 눈에 띈 건 바로 지원 역을 맡은 문근영이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은 강한 열망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가 연기한 햇살반 선생 지원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뭔가 행동하지 않았던 게 자신의 죄라 말하며 몸 바쳐 이를 고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이전 드라마 <가을 동화>의 은서 영화 <장화, 홍련>의 수연을 잊게 만든다. 기괴한 분장과 광신도의 말투로 연기하는 모습도 좋지만, 박정자 시연을 직접 보면서 짓는 엷은 미소와 차 안에서 남편의 농담을 듣고 분노하는 모습이 오랜 잔상을 남긴다.
최고의 거짓말쟁이인 이수경으로 분한 문소리는 권력을 향한 투철한 목적의식을 갖고 많은 이들을 쥐락펴락하는 카리스마와 극에 달하는 이중성을 드러내는 연기가 눈에 띈다. 특히 후반부 폐온천에서 역사적으로 사회의 안정을 꾀하고 권력을 지속하는 방법을 소개하며 숨겨왔던 야욕을 보여주는 장면은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들고 설득력 있게 그린다.
어려운 상황에서 정진수 역을 맡은 김성철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기존 유아인이 구축한 캐릭터와 다른 결의 정진수를 만날 수 있는데, 그만의 가스라이팅 실력으로 세형과 화살촉, 이수경 등을 조종하는 야비함이 돋보인다. 특히 6부에서 벌어지는 정진수의 말로를 기대하면 좋을 듯싶다.| 그럼에도 희망의 태양은 떠오른다.
시리즈의 특성상 이번 시즌 2는 영역 확장을 꾀했다. 전편보다 이야기와 몸집이 커진 시즌 2에서는 각 집단의 대립과 이합집산 등을 통해 현대 사회를 향한 비판의 강도를 세게 가져간다. 더불어 어려운 상황일수록 죄를 사하고 신에게 맹목적으로 의존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초기작 <돼지의 왕> <사이비> 정도의 깊어진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 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끝없는 검은 터널만 이어진 건 아니다. 시즌 1에 이어 시즌 2에서도 작은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 시즌 1에서는 부모의 희생으로 부활한 갓난아기에 이어 시즌 2에서는 어렵게 조우하는 박정자와 그의 아이들, 그리고 민혜진이 돌보고 있었던 생존한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고지를 받고 시연을 받는 이들이 넘쳐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이기심을 불태우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부모의 희생과 사랑은 빛을 더 발한다. 6부에서 정진수와 박정자는 같은 부활자임에도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박정자가 아이들을 위해 희생했다는 점이다. 부활한 아기 또한 부모의 희생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셈. 시즌 2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민혜진의 결심과 떠오르는 태양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연상호 감독은 또 한 번 희망을 심는다. 누군가는 <부산행> <반도>처럼 진부한 설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옥 같은 세계관에서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은 꼭 필요하다. 아기에게 ‘쏠라 트레인(sola train)’이라는 장난감이 필요하듯이.덧붙이는 말: 감독님 이번 시즌이 마지막은 아니죠? 제발 시즌 3 만들어주세요. 넷플릭스도 다음 시즌 바라고 있을 겁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평점: 3.5 / 5.0
한줄평: 사상적 재난에서 대피하는 방법은 ‘사랑’!
-
- 하이재킹 | 역사와 상상 사이에서 항로를 지켜내는 뚝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9년, 동해 상공을 비행하던 공군 파일럿 '태인'(하정우)은 비상사태를 맞이한다. 남파 간첩이 납치한 한국 민항기가 휴전선을 넘기 직전이 되자 민항기를 사격해 엔진을 멈추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것. 하지만 그는 전역한 자기 사수가 파일럿임을 확인한 후, 승무원과 승객의 안전을 우려해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결국 비행기는 그대로 북한에 억류되고, 태인은 군복을 벗는다.
2년 후 민항기 부기장이 된 태인'(하정우)은 기장 '규식'(성동일)과 함께 속초 공항에서 김포행 비행에 나선다. 승무원 '옥순'(채수빈)의 안내에 따라 승객들이 탑승한 후 이륙한 비행기. 그러나 '용대'(여진구)가 사제폭탄을 터뜨리자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용대는 조종실을 장악한 후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 협박한다. 폭발 충격으로 규식마저 한쪽 시력을 잃은 가운데, 태인은 비행기와 승객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과거의 힘을 살린 항공영화
하이재킹. 운항 중인 항공기를 불법으로 납치하는 행위. 미 연방항공청에 따르면 하이재킹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유난히 자주 발생했다. 5년간 325건에 달할 정도. <1987>의 김경찬 작가가 각본을 맡고, 당시 조감독이었던 김성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하이재킹>은 바로 그 시기에 발생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71년 1월, 속초공항발 김포공항행 여객기가 이륙 30분 만에 홍천 상공에서 납치범 김상태에게 납치당했고, 이강흔 기장과 전명세 조종사는 협박범의 요구대로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비행기는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 무사히 비상착륙했고, 승객도 전원 생존했다. 이강흔 기장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를 북한의 미그기라고 속이는 기지를 발휘하고, 전명세 조종사가 폭탄을 몸으로 덮는 희생정신을 보여준 결과였다.
<하이재킹>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1987> 느낌이 물씬 나는 역사적 상상력이다. 사람보다 이념이 우선시되던 시대의 그림자와 과거라서 오히려 신선한 당시 시대상을 버무려 기존 항공 영화의 한계를 피하려 했다. 과하지 않게 감정선을 살짝 '넛지(Nudge)'하는 화법도 관객을 승객 중 하나로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덕분에 <하이재킹>은 난기류를 만나고도 목적지까지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의 것은 역사에게, 상상의 것은 상상에게
실화 사건을 다룬 작품의 관건은 각색의 정도와 방향성이다. 상상과 왜곡은 한 끗 차이니까. 그런데 <하이재킹>은 그 어려운 일을 비교적 잘 해냈다. 역사적 사실을 부각하는 대목과 상상력을 발휘할 대목을 철저히 분리한 선택이 장르적인 측면과 스토리텔링 양쪽에서 득이 됐다.
사실 항공 영화는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시간대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렇다. 숱한 사고를 겪으면서 보안 규정이 나날이 철저해졌기 때문.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만 해도 '류진석'(임시완)이 비행기 표를 사는 첫 장면부터 기내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전개가 어색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하이재킹>은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함정을 피했다. 항공 보안 관련 규정이 미비했던 70년대를 배경 삼아 자칫 억지스러울 상황을 납득시켰다. 선착순으로 비행기 자리를 고르거나 용대가 보안 검사를 뚫고 폭탄을 반입하는 장면은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빈틈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실제로는 없었던 민항기 격추 명령, 알려진 바 없는 범인의 범행 동기 등을 잘 짜 맞춰서 태인과 용대 사이에 진한 감정선을 불어넣었다. 그 덕분에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는 '이한열'(강동원) 열사와 '이연희'(김태리) 사이의 가상 로맨스를 활용해 6월 민주 항쟁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한 <1987>의 장점과도 유사하다.
피해자 VS 피해자
그 덕분에 <하이재킹>은 단순한 항공기 납치 스릴러 이상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 전혀 접점이 없는 태인과 용대의 이야기는 대조될 때 함의가 드러나기 때문. 용대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전형이다. 6.25 전쟁 때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 때문에 반공분자로 몰려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 사이에 어머니까지 죽은 그는 2년 전 납북 사건 주동자가 북한에서 영웅 대우를 받는다는 소식에 착안해 하이재킹 범죄를 저질렀다.
반면에 태인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는 되지 않았다. 그는 2년 전 휴전선을 넘어가는 민항기의 엔진을 쏴서 착륙시키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군에서 사수였던 파일럿과 승무원, 승객 모두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 대가로 강제전역 당한 후에도 그는 군복을 벗긴 휴머니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전투기 사격을 피하고, 한쪽 손만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면서 2년 전과는 달리 승객도, 승무원도, 자기 부사수도 지켜냈다.
이렇게 보면 두 주인공의 공통점과 차이는 분명하다. 국가 권력의 횡포로 인해 피해자가 됐지만 전혀 다른 답을 볼 수 있으니까. 용대는 피해의식과 정부를 향한 불신에 사로잡혀 자기 인생은 물론 무고한 이들의 인생까지 파괴하려 든다. 반면에 태인은 그 불이익을 오롯이 감내하면서 자기 신념을 증명해 보인다. 북한에서 송환을 거부한 파일럿 사수의 가족을 자기 자족처럼 돌보고, 부기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그래서일까? 두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순간은 <하이재킹>에서 볼 거라 예상한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처럼 피해자로서 고통받은 이를 마주한 후에야 가해자가 된 피해자는 마침내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용대는 자기처럼 무고한 피해자는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태인의 설득에 비로소 흔들린다. 여기에 다소 잔인한 과감한 연출이 더해지면 둘의 관계는 의외로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압축과 절제의 미학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사건에만 집중하는 구성도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담긴 감흥을 극대화한다. <하이재킹>은 압축과 절제의 미학을 살려 이야기를 러닝타임 100분 안에 눌러 담고, 빠른 템포로 전개하면서 사건과 주인공 둘에게만 시선이 쏠리게 한다.
사실 <하이재킹>의 구성은 자칫 익숙한 신파로 빠지기 십상이었다. 갑작스레 납치된 승객 하나하나의 사연을 풀어놓으면 눈물을 짜내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신혼여행 가는 부부, 아픈 딸 병간호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할머니 등. 하지만 영화는 승객에게 그다지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타이밍마다 장면 하나하나를 알뜰하게 활용하면서 분위기를 고조한다.
감정을 강요하는 대신, 관객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만 조성하고 뒤로 물러나는 셈이다. 사법고시 붙은 아들과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검사가 된 아들이 자랑스러운 어머니와 수화 쓰는 어머니를 창피해하는 아들. 납북을 대비해 신분증을 파괴해야 상황에서 아들은 차마 검사 신분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오히려 신분증을 찢으려 하고, 잘 찢어지지 않자 아예 삼켜 버린다.
부메랑이 된 상상력
다만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상상력은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특히 과욕처럼 보이는 볼거리가 적지 않다. 물론 인상적인 대목도 있다. 용대가 폭탄을 터뜨려 조종실을 장악하는 장면은 마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속 뉴욕 타임스 스퀘어 장면을 연상시키는 슬로 모션 효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록 같은 퀄리티는 아닐지언정 한계를 극복하려는 대담한 시도 자체는 놀랍다.
하지만 비행 시퀀스로 서스펜스를 쌓는 장면은 다소 무리수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기체에 구멍이 나서 비행기가 급낙하 할 때나, 한국 공군이 민항기를 사격하고 이를 피하는 장면이나, 여객기가 배면비행을 보여주는 것까지. 영화적으로는 긴장감을 극대화하지만, 잠깐이라도 현실성을 따지는 순간에는 맥이 뚝 끊길 수 있는 상황이다. 마치 <비상선언>에서 항공자위대가 민항기에 위협사격을 가하는 순간처럼.
또 비행기 내부 전개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승객들이 용대를 덮치고, 부기장이 휴전선을 넘은 척 용대를 속이고, 어떻게든 난기류를 이용해 보려는 식으로 여러 사건을 만들어내고자 애쓴다. 하지만 결국 큰 틀에서는 겁에 질린 승객과 난폭한 납치범이라는 구도를 벗어날 변곡점이나 제3의 인물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중반부는 같은 장면이 반복되어서 비교적 지루할 수 있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하정우와 성동일만이 이름값을 해냈다. 배우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극본의 한계가 드러난 지점에 가깝다. 여진구가 맡은 용대의 경우 태인과 대조되는 사연만 돋보일 뿐, 악역으로서의 카리스마나 매력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채수빈이 연기한 옥순은 단순히 시나리오의 도구에 불과하다. 없어도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없을 정도다.
이에 더해 <하이재킹>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기술적인 아쉬움도 크다. 대사가 잘 안 들리는 한국 영화의 고질병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비행기 외부 소음과 대사가 섞이거나 파일럿끼리 무전을 할 때는 OTT 자막 기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배급사가 아닌 컬럼비아 픽처스가 직접 배급하는 작품인데도 고쳐지지 않은 문제라 더욱 안타깝다.
Acceptable 무난함
실화에 상상을 더해 어찌어찌 목적지에는 착륙하다
-
- <레벨 문> | 차라리 스타워즈 스핀오프였다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변방 행성 벨트의 한 농촌에 마더월드의 군대 임페리움을 이끄는 '노블'(에드 스크레인) 제독이 나타난다. 그는 촌장을 때려죽인 후 다시 돌아올 때까지 군대를 먹일 식량을 준비하라고 협박한 뒤 떠난다. 농촌 주민들이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자, 과거 마더월드의 장교였던 자기 신분을 숨긴 채 지내던 '코라'(소피아 부텔라)가 마침내 목소리를 낸다. 어차피 노블 제독이 우리를 모두 죽일 테니, 그전에 그들과 싸울 준비를 하자고.
이에 친구 '군나르'(미힐 하위스만)와 함께 노블 제독에 맞설 전사를 찾아 나선 코라. 그녀는 항구 도시에서 만난 '카이'(찰리 허냄)의 도움을 받아 은하계 각지에 흩어진 숨은 전사들을 발견한다. 노예가 된 왕자 '타라크'(스타즈 네어), 갓을 쓴 검사 '네메시스'(배두나), 임페리움에 반기를 든 전설적인 장군 '타이투스'(자이먼 혼수), 저항군의 리더 '다리안 블러드엑스'(레이 피셔)까지.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나선다. 마더월드의 폭정에 맞서 벨트를 구할 영웅들과 함께.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 <레벨 문>
<스타워즈>. 스페이스 오페라의 고전. 첫 등장 이후 40년이 지나도 인기를 유지 중인 미국의 신화. 사실 <스타워즈> 이야기는 명성에 비해 그다지 참신하지 않다. 좋게 말하면 왕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클리셰로 가득하다. 조지 루카스가 조지프 캠벨의 연구를 차용한 결과물이기 때문. 캠벨은 여러 신화가 공유하는 모티브를 정리했고, 그 내용은 루크 스카이워커와 다스 베이더의 서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신 <스타워즈>는 다른 영역에서 독자적인 매력을 구축했다. 이야기는 평범해도,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관은 특별했다. 다양한 행성과 생명체, 제다이와 시스의 갈등, 현실세계로 역수입된 광선검 결투, 임페리얼급 스타 디스트로이어와 X-윙 같은 전투기, 여러 외피의 드로이드까지. 익숙한 이야기를 따라가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은하계를 탐험할 수 있는 게 <스타워즈>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는 넷플릭스의 <스타워즈>를 꿈꾼 잭 스나이더 감독 신작 <레벨 문: 파트 1 불의 아이>의 실수이기도 하다. 본래 스나이더가 <스타워즈> 스핀오프로 기획한 <레벨 문>. 이 프로젝트는 디즈니의 루카스필름 인수 후 취소됐고, 넷플릭스에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이상하다. <레벨 문>은 더 이상 <스타워즈> 세계관에 속하지 않는데, 여전히 <스타워즈>를 답습한다. 그 결과 <레벨 문>은 <스타워즈>의 강점 대신 약점만 노출하고 말았다.
첫 번째 실수: <스타워즈>의 세계를 답습하다
할리우드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가 <스타워즈>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유사한 세계관 속에서 참신한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가? 가렛 에드워즈의 <크리에이터>는 전자라 할 수 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감독인 그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근간인 '프런티어 정신'과 '오리엔탈리즘'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그렸다.
<레벨 문>은 후자다. 이름과 외양만 다를 뿐,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이어받았다. 마더월드와 은하 제국은 전 우주를 억압하는 군국주의 권력이다.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찬탈한 섭정 벨리사리우스는 황제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사이보그인 노블 제독은 다스 베이더의 변형이다. 그들의 관계도 유사하다. 황제가 다스 베이더를 겁박하고 이용했듯이, 섭정 역시 노블 제독을 장기짝으로 다룬다.
주인공 삼인방인 코라, 군나르, 카이는 루크, 레아, 한 솔로 삼총사를 연상케 한다. 루크와 레아의 성별과 신분을 맞바꾸고, 한 솔로를 더 비열하게 만든 게 전부다. 마더월드에 대항하는 저항군과 은하 제국에 맞서는 반란 연합은 규모도, 위상도, 역할도 유사하다. 일반 함선으로는 맞설 수 없는 함선 '킹스 게이즈'의 존재 역시 <스타워즈> 속 스타 디스트로이어의 대체재나 다름없다.
문제는 <스타워즈>의 본래 장점도 세계관이라는 것. 달리 말해 <스타워즈>가 40년이 넘도록 쌓아 올린 세계관을 답습한다면, 그 작품은 결코 <스타워즈>로부터 차별화될 수 없다. 실제로 <레벨 문>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스타워즈>와의 비교를 끝끝내 피하지 못한다. 왜 이 영화가 <스타워즈>가 아닌 다른 제목을 달고 제작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두 번째 실수: 또 다른 고전을 답습하다
그렇다면 <레벨 문>은 스토리텔링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스타워즈>의 도식적인 이야기와 확연히 다른, 참신하고 치밀한 이야기로 관객을 매료해야 했다. <레벨 문>은 그러지 못했다. <스타워즈>라는 클래식에 또 다른 고전, <7인의 사무라이>를 더했다. 자연히 <레벨 문>의 러닝타임 148분은 모두가 이미 알고, 예측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로 가득 차 버렸다.
물론 잭 스나이더의 의도는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연출작은 한 가지 경향성이 있다. '에픽'을 좋아한다는 것. 그는 자기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인물의 투쟁을 웅장하고 장엄한 서사시로 그려내는 데 관심이 많다. <300>,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왓치맨>, <저스티스 리그> 모두 마찬가지다. 바로 여기서 <스타워즈>를 배경으로 <7인의 사무라이>를 보여주려 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사실 명작이라는 점과 별개로 <7인의 사무라이>는 스케일이 큰 영화가 아니었다. 한 농촌을 배경으로 도적 떼와 사무라이 7명이 싸우는 이야기였다. 잭 스나이더는 이 이야기를 서사시로 바꾸려 한다. 자유의 투사들이 정의롭지 않고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우주적 대서사시를 꿈꾼 셈이다. 그래서 그는 스타워즈를 빼닮은 세계관을 더해 도적 떼를 마더월드로, 7인의 사무라이도 마더월드에 복수하려는 영웅들로 바꿨다.
문제는 잭 스나이더의 큰 그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선악을 딱 잘라 나눈 이분법적인 구도는 이제 소구력이 없다. 당장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도 은하 제국을 퍼스트 오더로, 반란 연합을 저항군로 변형했다가 발전한 게 없다는 비판을 못 피했다. 파시즘, 공산주의 같은 거악과 싸우는 시대가 아닌 상황에서 이분법적 구도는 구시대적이니까. 근래 히어로 영화, 첩보 영화가 괜히 선악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 게 아니다.
세 번째 실수: 허점이 많은 플롯
큰 그림의 매력이 부족한 가운데, <7인의 사무라이>를 차용한 플롯도 안일하다. 벨트의 한 농촌을 구하기 위해 전사를 모으는 게 주된 내용이지만, 정작 코라가 조력자를 모으는 과정이 빈약하게 제시된다. 일례로 코라가 무슨 수로 타이투스 장군과 블러드엑스 남매를 찾을 것인지 그 계획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항구 도시 술집에서 타이투스 장군을 아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 이상의 비전을 못 보여준다.
대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카이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주선도 카이에게 빌리고, 티라크와 네메시스라는 전사도 카이에게서 추천받고, 벨트로 돌아가는 항로도 카이가 정한다. 즉, 마더 월드의 폭정에 저항하는 투사로서도, 섭정의 양녀이자 엘리트 군인으로서도 코라는 걸맞은 능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니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연속성도 부족한 코라의 여정에는 재미가 붙지 않는다.
각 캐릭터의 매력도 못 살렸다.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각 인물을 소개하고 그들이 한 팀이 되는 과정만 잘 보여줘도 <레벨 문>은 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레벨 문>은 그저 캐릭터를 나열할 뿐이다. 그들의 전사, 능력, 심경 변화, 팀에 합류하기로 한 동기 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노블 제독의 입을 빌려 그들의 프로필을 하나하나 읊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코라와 군나르가 그들을 한 명씩 만나는 내용은 그저 다음 시리즈를 위한 발판 같아 보인다.
마지막 실수: 본연의 장점마저 잃었다
물론 잭 스나이더를 위한 변명이 있기는 하다. 그의 장점은 본래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분량 제한이 없는 스트리밍 환경에서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아미 오브 데드>도 개연성이나 완급 조절 문제를 못 피했을 정도다. 대신 비주얼과 액션 연출은 특출 난 장점이었다. 그가 기획한 DCEU의 비주얼은 만화책을 찢고 나왔다는 평을 받았고, <300>과 <맨 오브 스틸>의 액션은 다른 블록버스터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레벨 문>에서는 잭 스나이더 본연의 장점을 찾기 어렵다. 비교적 저예산으로 스페이스 오페라에 걸맞은 비주얼을 보여주기는 했다. 렌즈 플레어 효과를 적극 활용한 총격씬과 폭발씬은 시선을 사로잡을만하다. 그러나 몇몇 장면에서는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한 티를 숨기지 못했고, 잭 스나이더의 특징인 슬로 모션도 남발돼 몰입도를 저해한다.
또 합을 맞춘 티가 많이 나는 액션씬도 기대 이하다. 코라가 마더월드 군인들과 싸우는 초반부, 네메시스가 광선검 비슷한 검을 든 채 거미 괴물과 맞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슬로 모션을 남발한 결과 생동감도 살지 않는다. 그나마 타라크가 배누를 길들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지만, 진부함을 피하지는 못했다.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가 히포그리프를, <아바타>에서 제이크가 이크란과 교감하는 장면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스타워즈> 스핀오프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스타워즈>의 일부라면 익숙하거나 진부한 설정도 '<스타워즈>니까'라는 이유로 용인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로그 원>이나 디즈니+ 드라마 <안도르>처럼 호평을 받았을 수도 있다. 제다이와 시스의 대결, 광선검 액션을 반복하는 대신 색다른 이야기를 보여준 것만은 확실하니까.
애초에 기획과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스타워즈> 자체가 서부극에 근간을 뒀고, 조지 루카스도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흔적이 많기 때문. 그러니 '초심에 가까워진 시리즈' 같은 식의 평가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스타워즈>가 아니면서 <스타워즈>를 닮으려 애쓰고 있으니, 모두 무의미한 가정일 뿐이다.
종합하면, <레벨 문>은 넷플릭스의 <스타워즈>라는 야심만 있을 뿐, 야심을 실현할 방법론은 볼 수 없는 영화다. 잭 스나이더에게 과제를 잔뜩 안겨준 듯 보이기까지 한다. 언뜻 흥미로워 보이는 아이디어의 스케일만 키우는 대신,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는 근본적 쇄신이 먼저라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 그래야 잭 스나이더와 넷플릭스가 각각 삼부작으로 계획한 <아미 오브 데드>와 <레벨 문> 시리즈도 안정적으로 확장될 수 있을 테니.
Dreadful 끔찍한
<스타워즈>를 기대해도, 잭 스나이더를 기대해도 실망스러운 2시간 반
-
- 인간의 손에서 탄생하고 그 손으로 파괴되는 <지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한국. 어느 날 불가사의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유아인)'는 이를 시연이라고 부르며, 죄를 지어도 제대로 벌주지 않는 세상에 불만을 가진 신이 인간을 직접 단죄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형사 '진경훈(양익준)'과 변호사 '민혜진(김현주)'처럼 새진리회의 해석과 설명을 믿지 않는 이들이 등장하고, 정진수는 자신의 교리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지옥행을 고지받은 박정자의 시연을 생중계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실제로 시연이 고지된 시간에 이루어지자 새진리회가 새롭게 정의한 죄와 그 해석은 새로운 사회의 진리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의심을 끈을 놓지 않은 민혜진과 '배영재(박정민)'로부터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구축한 진리, 정의, 질서에는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감독의 전작인 <반도>와 유사한 작품이다. 좀비 영화의 외관을 한 <반도>가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대상이 좀비가 아니라 좀비로 가득한 땅에서 생존한 인간 군상이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옥> 역시 신과 천사, 사자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판타지 영화의 외관을 갖추지만, 정작 보여주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비현실적 존재를 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의도는 정진수와 민혜진의 대화에 함축되어 있다. 신의 존재, 더 나아가 종교가 대체 무슨 효용이 있냐는 민혜진의 비판에 정진수는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게 아닐까요? 원래 인간들이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버리는 족속이잖아요"라고 응수한다. 신의 존재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신을 내세워 만들어진 종교의 의미에 주목하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다. 실제로 <지옥>은 6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질서를 부여하며, 또 사람들은 그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염세주의적이면서도 도발적으로, 더 나아가 희망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지옥>의 내용은 크게 1-3부와 4-6부,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전반부의 내용은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가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낮에 좀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연'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고, 수년 전부터 이 현상을 경고해온 정진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이때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핵심적으로 언급하는 기제가 있다. 바로 죄와 죄책감이다. 그는 시연이 스스로를 엄격히 정죄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신이 직접 벌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며 사람들을 죄책감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이는 그가 고지를 받은 박정자와 시연을 중계하는 것을 두고 협상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없다며 그녀가 불륜 내지는 성매매를 저질렀을 것으로 기정 사실화하는 이유다. 또 자신의 해석과 사람들의 죄책감에 힘을 싣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시연당한 것으로 가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진수의 일련의 행동과 발언, 고지와 시연에 대한 그의 해석이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로이트가 자신의 저서인 <문명 속의 불만>에서 분석한 종교의 구조 및 작동 양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에로스(사랑과 성욕)와 타나토스(죽음과 파괴)의 욕동이 있으며, 종교는 이 욕동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에로스적 욕동은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지만 지나치게 탐닉하면 문명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고, 타나토스적 욕동 역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이기에 문명을 위협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두 욕동의 발현과 실천을 죄로 규정하고 개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기제다. 이러한 종교 이해는 제사장이 의미를 부여해 인간의 파멸을 막았다는 정진수의 대사, 그리고 그가 성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암시되거나 가장 파괴적인 욕동인 살인을 저지른 이들을 자신의 설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희생자로 선택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곧 정진수에게 신의 존재와 시연의 대상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종교는 단지 사람들에게 죄와 죄책감이라는 삶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회를 유지하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할 뿐이다.
이 대목은 사실 <지옥>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억압한다고 비판한 종교의 모델이 기독교인데다가 작중 정진수의 모습에서는 예수의 알레고리로 느껴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진수가 성인이 되길 기다렸다가 향한 티베트 고원에서 시연을 목격하고 깨달음은 얻은 후 새진리회를 만든 것은 예수가 광야로 나가 신의 가르침을 깨달은 후 신의 말씀을 전하는 공생활을 시작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진수가 사이비로 취급받는 것, 그가 꾸준히 선행을 베풀어 온 것, 심지어 그가 일찍이 자신의 운명과 최후를 알고 있던 것 모두 예수의 공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티브다. 그러다 보니 종교는 그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제이고,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가 인간을 죄책감으로 억누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다분히 도발적인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반면에 후반부에서 <지옥>은 사회의 유일한 질서로 거듭난 종교와 그로 인해 강림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진리회가 만든 질서와 진리에 순응한다. 또한 종교가 지나치게 효과적으로 인간의 욕동을 통제한 나머지 심리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는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고지를 받은 이는 곧장 범죄자로 몰리고, 자신의 가족까지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며, 아이들이 부모의 죄를 대신 자백하며 용서를 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처럼 카메라는 인간을 자멸로부터 구한다는 종교가 역으로 만든 지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하지만 드라마는 작중 묘사되는 모습이 프로이트가 제시한 인간상과 유사한 배영재를 등장시키면서 지옥을 비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할 때 신경증에 시달리게 하는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당대의 확신이나 진리, 믿음을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근본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PD인 배영재는 새진리회 다큐멘터리 제작을 두고 새진리회 덕분에 범죄율이 줄어들었다는 사제의 주장을 화살촉 범죄를 포함하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반박하기도 한다. 새진리회에 저항하는 조직 '소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더 나아가 소도의 도움을 받아 시연이 인간의 죄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현상임을 간파하는 등 '의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언론인의 책무에 충실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의심으로 가득한 배영재라는 인물의 존재는 획일화된 정의와 진리로서 종교의 구조를 만드는 정진수와 대립항을 이루고, 전혀 다른 전후반부의 이야기를 연결해준다. 작중 죄와 죄책감 못지않게 중요한 키워드가 자율성인데, 배영재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율성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면서 정진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극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에 더해 드라마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배영재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에 힘을 실어준다. 새진리회의 폭거에 온몸을 던져 싸운 민혜진에게 한 택시기사가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라고 말하며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것은 <지옥>의 주제의식이 단지 종교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한국 사회의 병폐와 구조적 문제, 어두운 면을 비판하고 했던 연상호 감독답게 <지옥> 역시 한국의 현실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의 믿음과 진리, 확신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관하고 언제나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의 여러 측면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는 특정 정치인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팬덤 정치 현상이나 특정 담론의 논리에만 의지하는 정치 활동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작품 내에서는 언론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작중 언론은 그저 받아쓸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진실을 추구할 것인지 이지선다를 강요받으며, 전자를 선택하며 스스로의 책무를 저버린다. 정진수가 박정자의 시연이 중계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메라 구도로 등장해 자신의 교리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뉴스 앵커가 압도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새진리회의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새진리회 측의 요구를 방송국이 그저 수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허위정보와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인한 혼란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언론이 마주하는 병폐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측면을 지적한다.
하지만 후반부의 주인공인 배영재의 직업이 PD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옥>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새진리회가 강조해온 죄와 죄책감, 처벌의 교리가 부정되는 현상은 개개인, 평범한 시민의 핸드폰과 sns를 통해서 중계된다.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정보를 만들고 공급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서 어젠다를 세팅할 힘이 개인에게 넘어간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며 밝은 미래를 그려낸다. 아무리 강력한 프레임이 사회를 지배하더라도 이성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의심할 때 그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그 원인도, 그 해결책도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지옥이다.
사실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지옥>이 마냥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사자를 묘사하고 시연의 모습을 그려내는 CG의 퀄리티는 부족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연기력 역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다는 인상은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라는 연장선상에서 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대목도 찾을 수 있는데, 신파의 활용이 대표적이다.
전작인 <부산행>이나 <반도>에서 그러했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눈물겨운 모성애와 부성애, 곧 사랑의 힘이 한 생명을 구하는 내용이 결말을 이룬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해당 장면이 상당히 담백하게 연출된 결과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염세적이고 어둡고, 잔인한 작품 분위기를 뚝심 있게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을 "에로스가 자신처럼 불멸하는 맞수와의 투쟁에서 자기를 당당하게 드러내기를 기대한다"는 구절로 마무리하는 것을 고려하면, 억압적 기제로서의 종교에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눈물은 서사와 메시지 측면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과 종교를 빌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비극과 일말의 희망을 속삭이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인상적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신과 종교라는 거울에 비춰 보는 한국 사회의 절망과 희망
-
- 그리스 로마에 최고의 장군 과연 당신의 ONE PICK은 [ONE PICK/결말포함]
#그리스신화#로마신화#전쟁영화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https://toon.at/donate/63724555002223...
-
-
- 티빙 <샤크: 더 비기닝> 액션 예고편
뜻밖의 사고로 소년 교도소에 수감된 학폭 피해자 차우솔(김민석)이
종합격투기 챔피언 정도현(위하준)을 만나 자신의 한계를 하나씩 부숴나가는 리얼 생존 액션
-
- 영화 <쁘띠 마망> 메인 예고편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 ‘마리옹’과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온 ‘넬리’.
어린시절 엄마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
‘넬리’는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마리옹’을 만나게 된다.
단숨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넬리’와 ‘마리옹’!
하지만 ‘넬리’는 이 우연한 만남 속에서 반짝이는 비밀을 알게 되는데…
“나 비밀이 있어.
내 비밀이면서, 네 비밀이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