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1 16:34:50
아침이 오고 우주는 넓어진다
영화 <위국일기> 리뷰
SYNOPSIS.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POINT.
✔️ 러블리한 웃음으로 알려져 있던 아라가키 유이가 보여주는, 전혀 다른 얼굴. 내가 알던 그 배우가 맞나 한참 바라보게 할 만큼 캐릭터를 철저하게 그려내는 연기력!
✔️ 서로 다르게 어긋난(違), 나라와 나라(國)의 경계만큼 선명한 타인과 관계 맺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다정한 영화
✔️ 풋풋한 십대 시절부터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마음들까지, 따뜻하게 끌어안아 주는 영화
✔️ 찡한 포인트도 있지만, 무해한 웃음 포인트도 많은 영화
✔️ 미술도 아름답습니다. 특히 주인공 직업이 작가라 그런지 문구 맛집... 보고 나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일기를 쓰고 싶어지기도.
✔️ 10월 2일 개봉합니다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의문이었다. 왜 학생 때는 장례식장에서 교복을 입으면 된다고 하는 걸까. 검은색 옷을 찾아 입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매일매일 입는 일상의 옷인데, 내 옆에 친구들도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나란히 앉아 있는 것도 평소와 같은데, 우리는 평소답지 않게 흑흑 울고 있다. 더없이 비일상스러운 감각이 일상의 옷에 스미는 게, 자꾸 슬픔과 역방향으로 툭툭 부딪쳤다.
이 영화에도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아이가 나온다. 사고로 한날한시에 사망한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자신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의 어둠에 갇힌 아사를, 이모 마키오가 구해 데려온다. 일반적인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마키오는 언니와 절연해 호칭조차 '그 사람'이라고 건조하게 말하고, 타인과 함께 지낸다는 것에 적당한 선을 그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너를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너를 짓밟지는 않"는다는 말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된다.
가족의 죽음을 시작점에 둔 영화지만, 마냥 슬픈 톤으로 꾸려져 있지는 않다. 마키오는 애초에 언니와 절연한 사이였고, 아사는 그 슬픔을 바로 직시하기엔 아직 어안이 벙벙할 뿐 아니라 눈앞에 다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갈 곳이 없었던 것도, 졸업식과 입학식이라는 큰 이벤트를 거치면서 친구들에게 어떤 스탠스로 말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마키오라는 새로운 사람과 알아가야 한다는 것도.
무엇보다 이 영화가 아주 슬프지 않았던 것은, 은은하게 다정한 관계망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키오와 아사와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를 정 들 때까지 세심하게 보여주는데, 이들 중 누구도 과장되게 노력하지 않는다. 무리해서 다정하게 대하려고 하거나, 억지로 감정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대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관계를 맺는다. 서투르면 서투른대로.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거절하지 않으면서.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존심을 드러내면서. 각자의 불안을 상대에게 투영하지도 않고, 감정을 서로에게 전가하지도 않으면서, 서로에게 가 닿는다.
어른이 되면 성숙해질까
어른이 되면 성숙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나는 그 착각의 정도가 유난히 심해서, 바느질이나 요리, 재봉틀 같은 것도 어른이 되면 저절로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한 친구가 "우리 엄마 요리는 맛이 없어" 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한 요리는 맛이 없을 수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선생님을 포함해 모든 어른들을 NPC로 취급했던 것 같다. 엄마라면 이럴 것이고, 교사라면 이럴 것이고... 으레 대충 그렇겠지 뭐. 그때 내 눈엔 나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아사의 모습들을 보며 감탄했다. 어쩜 저렇게 저 시절을 잘 표현했을까. 어른에게 친구가 있는 걸 처음 본다고 말하는 것도, 어른이 되면 뭐든 다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도. 내가 받는 사랑은 안 보이고, 남들이 받는 사랑만 커 보여서 그게 억울하게 느껴지는 것도. (내 세상의 중심은 나인데!) 친구가 한 말에 모처럼 용기를 내어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그것조차 서투른 것도. 지우개로 글씨를 곱게 지우기보다는, 흑연이 사그라드는 감정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마구마구 그어 버리고 싶어지는 순간도.
미성숙해도 '에코'가 된다면
이미 애진작에 어른이 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처럼, 영화 속 마키오와 친구들도 어른이 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성숙해지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른이 되면서 이들이 이룬 성숙은 딱 하나,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정도. 성격이 너무 다른 친구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자기 색깔대로 시간을 펼치고, 서둘러 관계의 이름을 규정하려 애쓰기보다는 존재로서 힘이 되어주는 것을 우선하며 모르는 걸 서서히 알아가 보기로 하는 정도다. 세상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램프의 요정 같은 건 없지만, 모르는 건 하나씩 더듬더듬 삶으로 익혀야 한다는 걸 알게 된, 딱 그 정도의 성숙. 서로에게 기대며 조금씩 나아간다는, 그 은은한 다정함.
하나하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각자의 고민과 불안과 생각들이 있다. 어떤 아이는 자기 사랑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어떤 아이는 부당한 대우에 화를 낸다. 어떤 아이는 멋있게 잘 하면서도 기대 후에 실망하기 싫다고 말한다. 각자의 세상에 불안과 고독과 무력감과 분노 같은 것들이 있다. 서로 다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는 노력조차 서투르지만, 그래도 조금씩 함께 서 보고 이야기를 해보면서, 다정한 마음이 서로에게 '에코'가 된다.
성장, 그 은은한 다정함
<위국일기>의 은은한 다정함은 이 영화가 인물 개인의 성장이라기보다, 관계 안에서 성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지점에서 온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작은 우주를 보는 기분이었다. 자라면서 스스로가 중심에서 빛나는 태양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딸려서 빛나는 달도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가는 것. 나는 작은 행성이며 다른 행성들과 나 사이에는 인력과 척력이 적당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내 위치에서 나로 존재하는 것, 어쩌면 그게 성장이 아닐까?
어른이 되면서 타인에게 나의 울퉁불퉁한 면면 중 서로 다른 일면만 보일 수 있음도, 그래서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걸 꼭 맞출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와 타인과의 거리감을 가늠하며, 그렇게 우리 중 누구도 예외 없이 인력과 척력 안에서 은은하게 다정한 우주를 산다. 가끔은 매정하리만큼 '타인'과의 거리감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힘차게 문을 닫아걸어 보기도 하지만, 이미 문 안에는 서로의 흔적이 가득하다. 상대가 내어준 노트에 글자와 그림을 채워 넣으며 나의 내핵을 향하는 중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한 단어에서 연상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더 넓히기도 하면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우주는 조금씩 더 팽창한다. 적당한 인력과 척력 안에서 시간이 흐르면, 어둠을 가르고 정돈하며 아침이 온다. 아사(朝)라는 이름처럼. 뒤늦게 터지는 눈물처럼. 어깨를 감싸는 손처럼. 그렇게 아이도 어른도, 우리 모두 조금씩 자라면서, 우주는 한 뼘씩 넓어진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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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사람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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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1 : 엄마와 꿈 사이에서
예체능은 부모님에게 언제나 홀대받는 장래희망이다. 소위 말해 밥 빌어먹기 힘든 직업. 노래하고, 춤추고, 글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 그렇다. ‘이나’는 비트를 믹스하고 가공해 들려주는 DJ를 꿈꾸는 이다. 어르신들이 듣기에 기괴하고 난해할 뿐인 디제잉 음악은, 더구나 교회를 다니는 엄마에게는 이른바 ‘사탄의 음악’에 가깝다. 예체능은 그래서 외롭다. 이나도 그래서 외롭다. 평범하게 살라는 엄마의 말과, 같이 음악을 하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이나를 꿈에서 멀어지게 한다. 결국 이나는, 콜센터에서 영혼 없이 일을 하며 엄마와 현실이 원하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잉 비트에 이나는 발길이 멈춘다. 사랑하고 열망하던 일이 있던 사람의 마음에서, 그 일이 사라지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설상가상으로, 같이 음악을 했던 친구 ‘민기’가 거기에 있다. 이나가 빠듯한 현실을 사는 동안 이미 슈퍼스타가 된 민기의 모습이, 또 이나를 자극한다. 그대로 포기하기엔 아직 가득한 열망과 후회. 이나는 그렇게 고민하다, 다시 마음을 먹어본다. 음악을 시작해보기로.
갈등 2 :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모든 일에는, 특히 예체능에는, 이런 딜레마가 존재하나 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조금 마이너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밀고 갈 것이냐. 물론 둘 중에서 중간 정도로 타협하는 방법도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이나는 마이너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테크노를 지향하는 쪽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별 갈등 없이. 하지만 다시 이나가 음악에 발을 디뎠을 때의 상황은 예전과는 달랐다. 돈을 벌어야 하고 엄마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현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은 물론, ‘핫’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는 대중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젊은 세대는 현란하고 빠른 것을 쫓고 있었고, 그런 탓에 디제잉의 대세는 이미 EDM이 된 지 오래였다. 약삭빠르고 회전이 빠른 동료 민기는 이미 그것을 좇아 성공을 일군 상태.
이나는 고민한다. 그리고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미혼모의 몸으로 아이를 키우려면 돈 안 되는 테크노보다는 민기처럼 EDM을 쫓아야 할까, 아니면 같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선배의 곡 파일을 휴지통에 넣어 참가를 망쳐버려야 할까. 그렇게 이나가 갈등하는 모습을 쫓다 보면, 꿈이라는 것의 원형이 무엇이었는지를 자꾸만 잊게 되는 기분이었다.
갈등 3 : 꿈의 원형
그토록 열망하던 이나의 독일 오디션은 결국 불발되었다. 그것만 붙으면 이나도 관객도 환호를 지르며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나에게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와의 갈등은 용암처럼 치솟고, 여전히 막막한 미혼모의 삶이 이나를 재촉하고 있다. 마음이 아팠고, 심히 답답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 이나는 진정한 삶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엄마가 내 음악을 싫어해도 엄마를 저버릴 수 없다는 사실, 아무리 대중이 원하는 것이 돈을 가져다준대도 내가 원하는 테크노를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괴롭고 비정한 것이 어쩌면 ‘꿈’이란 것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하지만 꿈은, 그래서 꿈이 아닐까. 손에 미처 주어지지 않은 상태로 사람을 계속 어디론가 이끄는 것. 목마르게 하는 것. 목마름 그 자체로서 가슴을 뛰게 하는 것.
이나가 독일에서 간지나는 디제잉을 하며 이 영화가 끝났더라면 나는 기뻤을까. 물론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개운치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독일에 가지 않은 채 한국에서 미혼모 DJ의 삶을 살아갈 이나가 대단히 행복했을지 또한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기쁨은 있었다. 성공이라는 쾌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된 이나를 보아서. 이나의 곁에는 더 이상 자신의 음악을 ‘사탄의 음악’으로 규정하지 않는 엄마가 있었고, 아기가 있었고, 테크노가 있었으니까. 그것 말고 중요한 게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듯한 이나의 미소에서, 오히려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중이 원하는 글쓰기와 내가 원하는 글쓰기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게, 이나가 묻는 듯하다. 네 꿈의 원형이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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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휴머니즘 시각 차이
포스트휴머니즘 시각 차이
: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
1. 들어가며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와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2017)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그려낸다. 약 40년 전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나, 개봉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후속작에서 다루는 소재는 모두 현대적 관점으로 보아도 여전히 유효한 담론을 생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논하기 전에 포스트휴머니즘에 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17-18세기의 근대 혁명은 근대적인 개인과 사회를 탄생시켰고, 이로 인해 개인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사상인 휴머니즘이 태동한다.[1] 포스트휴머니즘은 역사적으로 휴머니즘 이후에 등장한 사상적 조류이고 휴머니즘의 핵심 전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거나 수정하거나 폐기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2]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21세기도, 현재 인간이 몸담은 2020년에도 모두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을 무시해서는 안 될 상황에 놓여 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의 탈경계화는 다방면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나 인간과 기계로 대표되는 인간-비인간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대 사회는 포스트휴먼과 관련한 사안들이 대두되는 사상적 전환기이자 과도기에 직면해 있다. 포스트휴먼은 말 그대로 인간 이후 등장하게 된 존재이다. 생물학적으로 정립된 전통적 개념의 인간이 아닌, 기존 인간을 대체하게 될 존재이고 인공지능이나 유전적 변이를 통해 새로운 성질을 갖게 되는 미래적 인류인 셈이다.[3]
두 편의 영화에는 ‘레플리컨트(Replicant)’가 등장한다. 이들은 단순한 로봇이 아닌, 유전적 기반이 인간과 동일한 복제 인간이다. 이 글에서 다룰 두 영화는 이 레플리컨트와 인간 사이의 갈등을 통해 드러나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데는 다른 접근 양상을 보인다. 두 영화의 서사적 설정은 모두 비인간이 인간의 영역을 대신하여 또 다른 인간적 면모를 생산하게 한다는 점에서, 데카르트로부터 촉발된 근대적 인간 중심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이때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 중심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해체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인간을 최우선으로 하여 휴머니즘을 재생산하는 양상을 드러낸다. 결국, 이 글은 유사한 소재와 주제 의식을 공통적으로 내포한 두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그것을 풀어내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2. 포스트휴머니즘 시각
2.1 <블레이드 러너>: 인간 중심 사고에서의 탈피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복제 인간 레플리컨트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1984), <엑스 마키나(Ex Machina)>(2014), <조(Zoe)>(2018) 등 많은 영화에서 다뤄왔던 인간형 로봇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외연은 인간과 같거나 비슷하지만 신체 내부를 기계로 채운 로봇들과 다르게,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컨트는 DNA 염기 서열 구조를 기반으로 하며 인간처럼 혈액과 근육 등을 지닌 유기체이다. 레플리컨트는 포스트휴먼으로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행위를 통해 관객은 ‘인간다움’에 관해 고찰할 수 있고, 인간이라는 관념을 재정립하는 기회를 얻는다.
이제 <블레이드 러너>를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앞서 나는 <블레이드 러너>가 인간 중심의 사고를 탈피하려는 영화라고 말했다. 이 주장은 영화가 제작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출발하여 극중 주요 인물인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통해 구체화된다. 우리는 <블레이드 러너>와 당대 유행하는 SF 영화들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F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기계 등의 미래 기술과의 대립을 주 소재로 삼는다. 이때 ‘비인간적 존재가 구현하는 인간다움의 궁극적 승리’라는 아이러니로 수렴시키는 전략[4]을 사용하여 인간 중심적 가치를 강조하는 방식이 선호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비인간의 갈등을 드러내지만, 두 세계를 동시에 점유하는 데커드가 극을 이끌어 가는 영화다. 즉, 대립 구도의 강화보다는 그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작업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데커드는 그 존재를 규정지을 수 없는 모호한 인물이다. 데커드는 불법으로 지구에 들어와 있는 레플리컨트를 처단하는 일종의 형사 같은 존재(블레이드 러너)다. 그가 만약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있는 레플리컨트라면 동족을 살해하는 존재인 셈이고, 인간이라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데커드를 끊임없이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두 영역을 동시에 점유하도록 유도한다. 데커드는 레플리컨트와 싸울 때 대등하게 겨루지 못하고 인간처럼 연약해 보일 때도 있지만, 화면 속 단서를 찾을 때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이중적으로 표현되는 데커드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척도와 기준을 재검토하고 인간 중심적인 편향된 사고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전통적인 인간-비인간의 관계를 해체하는 포스트휴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커드는 포스트휴머니즘 시각으로 볼 때 중요 임무를 맡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2.2. <블레이드 러너 2049>: 인간 중심 주의의 재생산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와는 다소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30년이 지난 세계에서는 인간과 레플리컨트가 표면적으로는 공존하고 있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가. 이 세계의 블레이드 러너 레플리컨트 K(라이언 고슬링)는 각성을 통해 새롭게 자아를 확립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K는 전작의 데커드나 베티(룻거 하우어)와 다소 다른 속성을 내포한 존재이다.
전작의 베티는 수명이 다 되어 뒤틀리는 손에 주변에 있던 대못을 꽂아 발작을 진정시킨다. 이후 스스로의 죽음을 온전히 수용하는 그의 모습과 비둘기와 같은 상징적 요소들까지 종합하여 고려한다면 영화에서 그는 마치 예수처럼 묘사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새로운 접근이 아니라 기존 담론에서 충분히 도출되어 온 텍스트이다. 비인간인 베티를 예수로 읽어낸다는 말은, 기독교 교리로 점철된 서구 문명의 근간을 뒤흔드는 시도이다. 초월적 존재가 포스트휴먼 격인 베티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가. 데커드는 포스트휴먼으로서 인간의 존재적 정체성을 뒤흔드는 존재로 그려지고, 베티는 서구권의 인간 중심 사고와 그 근간을 파고드는 표상으로 자리매김한다.
K는 사실 지극히 평범한 신모델 레플리컨트였으나, 우연한 계기로 인간-비인간으로 이분화된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가 된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마치 베티와 같은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실 데커드를 살리고 그의 딸을 지켜내는 K의 행동은 이분화된 세계의 논리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는 단지 본인이 생각했을 때 더 인간적인 방식이 적합할 것이라고 여겨 실천에 옮긴 것이 아닌가. 오히려 K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는 가족성의 회복과 인간을 최상층의 존재로 전제하는 휴머니즘의 재생산이다. 데커드와 레이첼(숀 영)의 딸인 스텔린(카를라 유리)은 레플리컨트에게서 태어났다. 스텔린은 인간-비인간의 대립 상황에서 비인간의 지위를 새롭게 재정립하는 존재이다. 생식이 가능한 레플리컨트를 통해 생명의 탄생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인간이 보유한 근본적인 시스템과 동일하다. 즉, 비인간이 인간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포스트휴머니즘을 비인간이 인간화를 겪은 뒤 전개되는 새로운 인간 중심의 근간을 재생산하는 과정에 기초하여 바라본다. 레플리컨트 K의 각성은 두 세계를 동시에 꿰뚫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기존의 논리 속에서 확장 및 변주를 통한 휴머니즘의 새로운 재생산을 유도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베티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스텔린
3. 나가며
이 글은 두 편의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다루는 소재나 설정, 주제의식과 관련하여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에서 두 영화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두 영화는 동일한 세계관과 인물 설정에서 비롯된 공통적인 주제 의식을 담고 있지만 영화 속 텍스트를 포스트휴머니즘적 시선으로 파고들었을 때는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이 명확하게 포착된다. 그 차이를 이 글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베티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 스텔린의 사례를 통해 구체화했다.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나 베티는 포스트휴머니즘적으로 보면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배제하려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들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영화의 서사적 방향성은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를 맞이한 현실 속 인류에게 일종의 판단적 준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작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것처럼 문화적, 정치적, 윤리적 행위의 원동력을 비인간도 인간과 동일한 수태(受胎) 능력을 갖게 된다는 데서 찾는 서사적 가정은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자못 퇴행적으로 보인다.[5] 결국, 전작과 다르게 이 작품은 기존의 인간 중심적 관념 체계를 해체하려는 시도보다는 인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를 유지한 채로, 여전히 인간의 지위를 우선하여 담론을 형성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영화 속 레플리컨트는 포스트휴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이들을 통해 인간은 휴머니즘의 구조화된 틀 속에 머물 것인지 벗어날 것인지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포스트휴머니즘과 관련하여, 21세기에 들어서는 관련 논의들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는 이러한 변화의 동향과 더불어 심도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는 영향력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참고문헌
[1] 강미정 외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머니즘』, 이중원 엮음, ㈜이학사, 2020, p.5.
[2] HORIZON, https://horizon.kias.re.kr/12989/ (검색일자: 2020년 12월 18일)
[3] 강미정 외, op. cit., p.133.
[4] 김소연, 「포스트휴머니즘 영화에서 (탈)육체성과 기술-환상의 문제설정: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중심으로」, 『씨네포럼』 제33호,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2019, p.18.
[5] Ibid.
이미지 출처: IMDb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드플레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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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2021)
* 이 리뷰는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정보
감독: 오키타 슈이치 (요노스케 이야기, 모리의 정원)
출연: 다나카 유코, 아오이 유우, 히가시데 마사히로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38분
국가: 일본
노인에 찾아온 홀로 라이프, 자유를 통해 되돌아본 나의 과거
일흔 다섯의 노인 "모모코(다나카 유코)"는 남편 "슈조(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먼저 떠나보낸 후, 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도서관과 병원을 순회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삶은 특별함이나 흥미로울 것이 전혀 없다. 모모코에게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는데, 아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고 딸도 함께 살고 있지 않아 그녀는 줄곧 혼자다. 그래서인지 영화 초반의 모모코는 어딘가 아프고 우울해 보인다.
말년에 혼자가 된 사람들의 외로움을 반영하듯 모모코의 혼잣말, 또다른 자아를 의미하는 듯한 세 남자의 환영이 등장한다. 이들과 모모코의 대화는 곧 내적 대화를 의미하며 그녀가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이들이 나타난다. 모모코는 정략결혼을 피해 고향에서 도시로 도망온 자신의 과거부터 남편과의 연애, 결혼 생활 등을 떠올리며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을 다시 마주한 지금, 그녀는 자신의 뜻대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 의식의 흐름에 따른 회상의 연속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70대의 모모코 역할을 연기한 '다나카 유코'와 20대 시절을 연기한 '아오이 유우'가 교차되어 등장한다. 과거 회상 장면들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기 보다는 무작위로 떠오르는 모모코의 기억이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가기 때문에 전개 방식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대의 모모코는 정략 결혼을 뿌리치고 가족과 고향을 버려둔 채 무작정 짐을 싸서 도쿄로 떠났다.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분명 신여성적인 행동이었고 그녀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꿈꾸며 일자리를 구하고 주도적인 삶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게 하는 슈조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버렸고 결국 자신의 꿈을 뒤로한 채 사랑을 택한다. 신여성으로서의 삶을 꿈꿨던 그녀는 결국 평생을 주부로 살았고, 남편이 죽은 후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인생이 마냥 행복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오이 유우'와 '다나카 유코'는 주체적인 성향의 모모코와 수동적인 현실 삶에 무력화 된 노년의 모모코를 대비토록 하며 모모코가 걸어왔을 세월의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젊은 시절의 모모코가 굉장히 밝고 적극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과거의 퍼스널리티를 잃은 현재의 모모코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긴 러닝타임 속 다소 지루한 전개
본작은 취향을 강하게 탈 만한 영화다. 일본 영화 특유의 오글거림과 유치한 감성이 깃들어 있으며 전개 속도도 굉장히 느리고 시종일관 잔잔하다. 특히나 모모코의 머릿 속에서 벌어지는 판타지 어린 장면들은 일본식 B급 코미디의 성격이 강한데, 해당 시퀀스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다. 평이한 전개 속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해주기 위해 가미된 장면들이었을 테지만 적어도 내겐 작위적이고 재미도 없었다.
70대 노인이 자신이 여태껏 살아온 흔적들을 돌아보고, 외로움을 견뎌내 가는 과정은 작품의 느린 전개를 동반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지루해질 수 있는데, 2시간 2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으로 인해 따분함은 배로 늘어난다. 시퀀스 하나하나가 길게 늘어지고 불필요한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굳이 러닝타임을 이렇게까지 길게 설정해야 했는지 의문점이 생겼다. 전개가 늘어지기 때문에 감동이나 여운을 느낄만한 스토리가 있더라도 감성에 젖어들기가 쉽지 않다.
고령화+1인 라이프 시대, 당면한 미래의 모습들
영화 줄거리 자체에 대해서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영화 전반에 걸쳐 흩뿌려진 일본식 감성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다만, 주인공 모모코가 처한 삶의 모습은 고령화 시대로 향하고 있는 현 사회의 양상과 굉장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은 물론, 현재의 젊은 세대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삶을 맛보기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유발한다. 실제로 1인 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노년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모모코와 같이 외로움과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물론 모모코처럼 가족과의 시간을 오래 보낸 후에 혼자가 된 것이 아닌 젊은 시절부터 1인 라이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노인이 됐을 때의 우울감이 적을 수도 있지만 젊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과 나이 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극 후반부에 새로운 결심이라도 한듯 취미를 찾아가고 삶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모모코의 모습은 고령화 시대 속 그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태도에 대한 변화를 자극한다. 물론, 현재의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변화를 위한 의지를 발휘할 힘이 남아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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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성장통을 그리다
성장통을 그리다, 영화 ‘낮은 목소리’의 박영광 감독
박영광 감독의 ‘낮은 목소리’는 어린이 합창반의 맑은 목소리와 아이의 불안이 대비되면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음 페이지의 악장을 넘기는 아이의 성장통을 담은 영화다. 8월 15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박영광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영화 ‘낮은 목소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낮은 목소리’는 11살 동윤이라는 합창단 솔로이스트가 자신의 변성기와 가정의 붕괴가 함께 겹치면서 어떻게 보면 하나도 힘든 성장통을 동시에 두 개를 겪으면서 변화하는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고 거기에 저항하는 그런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낮은 목소리’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낮은 목소리’는 어린이 영화이면서 합창이라는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영화인데요. 성장 영화이지만, 성장을 막연히 아름답게만 그리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제목을 ‘낮은 목소리’로 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이가 변성기를 겪으면서 목소리 음계가 낮아진다는 의미도 있고요. 또 ‘목소리가 크다’라는 표현을 하잖아요. 이를 층위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이 아이가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요’, 혹은 ‘우리 집이 이렇게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라는 표현을 해도 힘이 없다는 의미에서 ‘낮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아역 배우의 연기와 합창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는데요, 혹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배우에게 특별히 요청하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무심함’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던 것 같아요. 우리 일상이 어떤 감정이나 표정으로 차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그사이 빈 공간들에서 더 마음에 와닿는 순간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이 영화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심하게 목적성을 갖지 않고 하는 반응과 표현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속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동윤이라는 인물이 합창단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아이들이 하얀 옷을 입고 다 모인 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솔로이스트를 뺏기는 장면이에요. 물론 합창을 같이 만드는 모든 파트에 있는 아이들이 다 훌륭하고 좋지만, 동윤이에게 있어서 솔로이스트의 자리는 좀 남다르기 때문에 저는 그 장면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의 성장기 중 변성기를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두가 ‘변성기’ 같은 시기를 겪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변성기를 중요한 소재로 선택했고, 보시는 분들도 ‘내가 그때 그랬지’ 그리고 ‘그때의 그 일들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한 번씩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과거의 성장통이 지금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무섭고 그게 굉장히 커다란 일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통을 끄집어내서 다시 고통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고, 그런 상황들을 기억하고 곱씹어 보는 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영화 ‘낮은 목소리’는 변화의 기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전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영광 감독은 머지않은 시간에 장편 영화를 찍고 싶다는 계획을 전했다. 앞으로 그가 그려나갈 또 다른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문숙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혜지, 신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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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주 최신 개봉영화!
끝나지 않는 코로나 속에 8월도 끝나가지만
어김없이 돌아온 개봉영화 소개!
88월 4주차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하는지 한번 볼까요?
8월 4주 개봉영화 5편!
귀문 GUIMOON: The Lightless Door , 2021
1990년 집단 살인사건 이후 폐쇄된 귀사리 수련원
영화 "귀문"은 1990년 집단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 폐쇄된 귀사리 수련원에 무당의 피가 흐르는
심령연구소 소장과 호기심 많은 대학생들이 발을 들이며 벌어지는 극강의 공포를 그린 작품입니다.
끔찍한 살인 사건 이후 괴소문이 끊이지 않는 폐건물을 주 무대로 괴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찾아간 이들의 공포 체험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데요
2018년 정신병원에서의 공포 체험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곤지암'을 이을 체험 공포 영화로 거듭날 예정입니다.
영화 "귀문"은 한국 영화 최초 2D, ScreenX, 4DX 동시 제작과 상영 포멧별로 결말이 다른 두 버전으로 제작했는데요
또한 국내 및 전 세계 2,000여 개관 이상 동시 개봉 글로벌 프로젝트 라고 합니다
호러에 도전한 베테랑 김강우와 영화계가 주목하는 김소혜, 이정형, 홍진기의 열연!
첫번째 추천영화 "귀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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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니센스 Reminiscence , 2021
휴 잭맨! 4년 만에 스크린 복귀
영화 '레미니센스'는 가까운 미래, 사라진 사랑을 찾아선 남자가 기억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에 얽힌 음모와 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세계적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인 조나단 놀란이 제작을,
그의 부인이자 '천재적 이야기꾼'이라고 불리는 리사 조이가 각본과 연출을 맡아서 더 기대가 되는 작품이죠
2017년 ‘위대한 쇼맨’과 ‘로건’ 개봉 이후 4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휴잭맨과
SF,미스터리, 감성과 로맨스가 조화된 놀라운 결말의 기억추적 미스터리!
두번째 추천영화 "레미니센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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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 인스팅트 Duelles , Mothers’ Instinct , 2018
내가 옆집 아이의 위험을 목격했다면?
영화 "마더스 인스팅트"는 바바라 아벨 작가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데리어 라 하인(Derrière La Haine)'을 원작으로 탄생한 영화인데요
비극적인 사고로 자매처럼 친한 친구 ‘알리스’와 ‘셀린’의 완벽한 삶과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옆집 아이의 위험을 목격한 이웃과 아이 잃은 엄마의 파국을 그린 스릴러 영화인데요
벨기에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리는 제10회 마그리트 어워드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주요 9개 부문을 석권하며 마그리트 어워드 사상 단일 영화로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운 화제작입니다.
벨기에의 아카데미상을 비롯한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 받은영화!
세번째 추천영화 "마더스 인스팅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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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우리 你的婚礼 , My Love , 2021
원작 ‘너의 결혼식’ 리메이크
영화 "여름날 우리"는 요우 용츠에게 풍덩 빠져버린 저우 샤오치가 그녀에게 닿기까지
수많은 여름을 그린 첫사랑 소환 로맨스입니다.
지난 4월 30일 중국에서 개봉 후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 노동절 연휴 흥행 1위를 비롯, 누적 수익 약 7억 8,900만 위안(한화 약 1,400억 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여름날 우리"는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너의 결혼식'의 리메이크 작 인데요
그동안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리메이크작 중 역대 최고 흥행 기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눈호강을 부르는 비주얼로, 환상 케미를 보여줄 허광한과 장약남의 첫사랑 영화!
네번째 추천영화 "여름날 우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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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볼 Cannonball , 2019
군대 총기사건의 모티브
자신의 형을 죽인 가해자의 누나가 담임 선생님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캐논볼"이 개봉을 합니다.
"캐논볼"은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군대 총기사건을 모티프로 서사를 전개합니다.
하지만 군대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겨진 가족들의 입장에서 서술하죠
"캐논볼"은 '건우와 덴마크' 등 단편 영화를 연출한 정승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백한 영상미로 담아내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나빌레라', '허쉬', '스타트업' 등과 개봉 예정 영화 '쇼미더고스트' 등에 출연한 배우 김현목과
'파도를 걷는 소년', '더스트맨', '혼자 사는 사람들' 등에 출연한 배우 김해나의
현실같은 연기로 관객들을 빠지게 할
다섯번째 추천영화 "캐논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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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따뜻함
혼자 사는 사람들 (2021)
홍성은 감독
무심한 개인주의자. 진아(공승연)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4시간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집에서 나오면 곧바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틀고 이어폰을 꽂는다. 카드회사 콜센터 상담원인 진아는 일터에서도 헤드셋을 끼고 있다. 동영상을 보며 혼자 점심을 먹고, 업무 외에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 진섭과의 통화도 용건만 묻는다. 이런 진아에게 신입사원 수진(정다은)을 가르치는 일은 기운이 배로 드는 불편한 업무다. 진아의 생활 방식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 일상 속의 끊임없는 음성정보에 둘러싸여 사람에게 무심한 장면들과 겹치기 때문이다.
혼밥, 혼영 등 온갖 활동에 '혼자'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이제는 무색해졌다. 혼자는 특별한 무엇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이 됐다. 혼자 살아가는 1인 가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주변만 둘러보아도 혼자 사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들의 생활이 어떤지 정말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속 독신생활자들의 생활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지난달 아내와 사별한 진섭, 외로움에 발버둥 치고 있는 옆집 청년, 춘천에 가족과 친구들을 둔 채 서울로 올라온 수진,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성훈. 같은 1인 가구지만 삶에 대한 태도도 삶을 지탱하는 힘도 모두 다르다.
삶을 지탱할 힘을 잃고 사라져 버린 옆집 청년은 히키코모리, 고독사와 같은 사회적 문제처럼 제시된다. 우리는 바로 옆집의 삶도 알지 못하는데 사회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사회 속에서 고립되어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 그만은 아니다. "인사라도 해주"기를 바랐으나 자기만의 장벽 안에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과는 연결될 수 없다. 옆집 남자가 만들어낸 커다란 진동은 진아에게 전달되었지만 진아는 놓았던 숟가락을 무심하게 다시 들어 올릴 뿐이다.
타인에게 무심하듯 스스로에게도 무심하다. 지독히도 효율적으로 체계화된 진아의 하루는 편의점 도시락을 데워 먹고 텔레비전 소리와 함께 잠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편리함과 효율성이 우선이다. "전 혼자가 편해요." 편의를 택하고 그가 버린 것은 무엇일까.
진아에게 편한 것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전화기 너머, 화면 너머의 사람들뿐이다. 우리는 타인과 거리를 두기 위해 '나를 건드리지 말아 달라'는 표시로 귀를 막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너무나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인 것이다. 사실 진아에게 불편한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의 이별과 상실이다. 아픈 엄마를 걱정하며 홈캠으로 살피는 진아의 원거리적 염려는 홀연히 집을 떠난 아빠 진섭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진아가 느낀 커다란 진동과 악취는 타인의 존재감 그 자체다. 시답지 않은 말을 걸던 그 별것 아닌 옆집 남자의 존재를 온 감각으로 느낀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인이 영향력 아래에 놓일 만큼 좁아져 버린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무심해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진아의 존재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무엇이 그를 살게 하는지 의아할 정도로 삶의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 진아의 일상은 메뉴얼대로 작동한다. 아내를 잃은 진섭은 교회에도 나가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진아에게도 계속 연락을 시도한다. 진섭이 추구하는 삶에는 주변 사람들이, 그리고 진아가 있다. 하지만 상속 포기 각서까지 해치워 버리듯 도장을 찍은 진아에게 사람은 해결해야 할 문제에 가깝다. 자신을 지키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은 저마다 다른 모양과 넓이를 가지고 있다.
혼자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설픈 오지랖이 아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사회가 이 문제를 알아주고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기보다 아파트 한 층 정도의 마음이 느슨하게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감독이 '우리 이 정도는 하고 살아요' 혹은 '이 정도만 하고 살아요'라고 말하는 건 제대로 된 '인사'다. "인사라도 해주지"라는 옆집 청년의 말처럼 어쩌면 '안녕'을 묻는 한 마디가 말 그대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아는 수진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건넨다. 이것이 우리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고, 받고 싶은 최소한의 따뜻함이다. 성훈이 죽은 이를 위해 올리는 제사 역시 제대로 된 작별인사다. 인사는 타인과의 첫 접촉이자 마지막 정리다. 인사를 통해 우리가 된 '너'와 '나'는 인사를 통해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다. 어렵게 건네진 작별인사는 마침내 텔레비전의 전원이 꺼진 것처럼 낯선 고요와 평화의 세계로 진아를 이끈다.
혼자 잘 살기 위해서는 남들과 잘 지내야 한다. 잘 지낸다는 모호한 말 안에는 타인과 나의 적당한 거리감을 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진아가 아빠에게 통보한 "이 정도"의 관계는 중요하다. 그것이 진아가 정한 당신과 연결되는 공간과 시간이다. "이 정도"면 우리는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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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 피해자, 아줌마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지난 20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공동 대상을 수상한 영화 갈매기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씨네랩의 초청으로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하고 왔는데요.
김미조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데 인디 영화임에도 매우 흥미롭게 본 영화입니다.
한 중년 여성이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그 이후에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을 세심히 보여주는데요.
피해를 당하는 모습은 영상에 담지 않고 오로지 피해자의 모습을 통해 모든걸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줌마라고 불리는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중년 여성이라서 그의 피해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어려워하는 장면도 나오는데요.
결국 꿋꿋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그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우리가 흔히 아줌마라고 부르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이 많이 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 하세요!
영화는 7월 28일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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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후에 1개 총 2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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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벨만스> 2차 예고편
아카데미 7개 부문 노미네이트 & 골든 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수상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파벨만스] 2차 예고편 대공개❇︎ 자, 이제 우리의 모든 순간이 영화가 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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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대가 조국> 티저 예고편
사냥이 시작됐다!
언젠가는 '내'가 될 수 있는 갈등과 저항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