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08 15:18:33
[BIFF 데일리] 느릿한 이별을 이해하는 마음
영화 <나 홀로 여행하기> 리뷰
[BIFF 데일리] 느릿한 이별을 이해하는 마음
영화 <나 홀로 여행하기> 리뷰
감독 : 이시바시 유호
출연 : 오카모토 레이, 오사무라 코키, 사카노우네 아카네, 이와타 카나데
나 홀로 여행하기>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로 오사카아시안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이시바시 유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으로 너무 소중하기에 오히려 자주 열어볼 수 없었던 기억의 서랍을 정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작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가 그늘에서 햇빛을 향해 걸어가는 영화였다면 <나 홀로 여행하기>는 그 햇빛 아래서 묵은 이불 먼지를 털어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도쿄에서 10년 동안 바쁘게 일만 해온 주인공 미사키는 일과 사랑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미사키는 동료들이 준 꽃다발 속 카드, 끝이 좋지 않았던 전 애인과의 연결고리들을 모두 도쿄에 버려두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 고향에 도착한 미사키는 여전히 그대로인 장소들을 누비며 가족,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마침 중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미사키는 첫사랑 소년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한다. 하지만 중학생 미사키와 어른 미사키를 설레게 만든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고 그가 사고로 죽었다는 동창들의 대화만 들려온다. 미사키는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소년을 잊지 못하고 소년과 함께했던 장소들을 다시 찾는다.

미사키의 이야기엔 빈 부분들이 있다. 대부분의 동창들이 미사키와 소년이 사귀었다고 생각할 만큼 두 사람은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의 공유 받지 못하고, 미사키가 소년에게 어떤 노래를 선물하고 싶었는지 소년은 미사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주었는지도 알 수 없다. 관객은 그저 미사키의 마음만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그가 상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이 간혹 지난하고 느리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나 홀로 여행하기>는 이에 개의치않고 정직하게 나아가며 끝내 그 빈 부분을 채워줄 다양한 상상과 감정들을 손에 쥐어준다.
[상영 시간]
10월 3일 (목) 16:30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10월 5일 (토) 17:00 CGV센텀시티 5관
10월 6일 (일) 1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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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이 기지개를 켜다 말고 갑자기 퇴근한다면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형제 페드로(에지킬 로드리게스)와 지미(데미안 살로몬)이다. 살인사건을 추적하고 있던 형제. 맨 정신으로 볼 수 없는 시체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에 경악하는 형제. 형제는 연이은 살인사건의 원인을 찾아보기로 한다. 멀리 가지 않아 도착한 결론. 마을 안에 악령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본거지로 찾아가 보기로 한다. 한 할머니의 집에 찾아간 형제. 노인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악령에 씐 채로 썩어가고 있었다. 끔찍한 모습. 형제는 노인의 아들 우리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한다. 하지만 악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퇴장하지 않는다. 금기를 어기는 사람들 때문에 서서히 봉인이 풀린다. 서서히, 그리고 잔혹한 지옥도가 형제를 기다리고 있다.
진짜 도사리고 있을 때
이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을 활용하기 위해 사용된 연출방식은 흥미로웠다.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템포조절이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끔찍한 장면이 나타나는 데 있어 규칙이 없다. 카메라가 영화의 배경을 멀리서 찍는다. 시점쇼트로 형제의 관점이 영화의 카메라가 된다. 여기서 형제가 인식하는 대상을 보여주고 싶으면 사체를 그냥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게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래에서 위로 형제와 사체를 함께 보여준다. 이게 되게 별 거 아닌 연출 같아 보이지만 이 영화가 가진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악을 대단하지 않게 묘사한다. 그런데 제목 그대로 인물들 근처에 도사리고 있다.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돌리기만 해도 악이 드러나고 있다는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비극에서도 이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초반부에 해당하는 장면인데, 카메라에 영화의 핵심인물 중 하나 루이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동물이 있다. 동물을 살해하려는 루이스. 아내가 루이스를 만류한다. 이유는 금기를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세 문장만 읽으면 영화가 ‘루이스가 금기를 어길 것인가’에 대한 서스펜스를 만들 거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예상을 세련되게 빗겨나가며 초장부터 기선을 제압한다. 구체적으로, 루이스가 선택하는 과정이 굉장히 짧았다. 그리고 그 이후 상황을 짧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테이크를 최소한으로 잡았다. 금기를 어길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가 영화 후반부에도 이어지는데 이것에 비하면 이 과정이 굉장히 짧다. 이 연출이 후반부의 서스펜스에 있어 ‘언제부턴가 도사린 악이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라는 공포감을 주기 충분했다. 또 이 장면을 촬영하는 방식도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핵심인 ‘선을 넘는다’라는 점에 있어 거리를 두고 대상을 포착한 것이 종반부 다다르기에 충분한 초석이 됐다.
하지 말라는 걸 하는 편
영화의 핵심 테마는 금기다. 금기라는 테마가 두 가지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다. 첫째. 플롯에서 금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플롯을 끌고 가는 방식은 과제를 연이어서 주는 것이다. 악령이 씐 우리델을 어떻게 처리할 지부터 시작한다. 이 우리델을 둘러싸고 있는 금기가 있다. 이 금기에 금기를 물어 서서히 영화가 이야기의 품을 넓힌다. 이것은 영화가 장르적인 문법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가 2부로 넘어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을 둘러싼 형제의 개인적 일화가 특별하다. 살짝 작위적인 것 같지만 일반적인 선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밀도 있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인물은 심지어 영화 내에 다른 금기를 제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누군가의 입을 통해 금기가 제시된다. 한 가지만 빼고 말하는데, 이 인물이 그 빼먹은 하나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금기를 다룬다는 테마를 충실하게 이행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시각적으로도 영화가 금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꼼꼼했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열광할 것 같으면서도 '이거 별로야' 싶은 것이 같다. 바로 폭력성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호러영화가 있다. <쏘우> 시리즈,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큐브> 같은 영화다. 이 영화(내지는 시리즈)들의 공통점. 다 큰 성인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건 할리우드 내지는 전 세계의 영화시장이 룰처럼 지킨 것이다. 사실 굳이 이 룰 외의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윤리적으로 '굳이 아이들까지 폭력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이 금기를 널뛰기한다. 이게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이질적이면 굉장히 비겁해 보이기 쉽다. 단순히 자극적인 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라면 감독이 미학적으로 뭘 고려했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이 영화는 후반부 폭주하는 이미지와 플롯을 보여주기 위해 전초를 잘 깔았다. 그리고 앞 문단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줄거리부터 금기를 다뤘기 때문에 소모적이지 않다. 글쓴이가 이렇게 써도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여러분은 쉽게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외로, 나름 창의적인(?) 잔혹함을 보여준다.
변화무쌍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리듬감이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보여주고 싶은 것을 힘주어 보여주지 않는다. <스마일> 같은 영화가 있다고 해보자. <스마일>은 저주에 걸린 사람들을 힘 빡 줘서 보여준다. 점프 스케어를 통해 사운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기괴한 웃음으로 저주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아니면 <곡성>처럼 템포를 빠르게 전달하는 것도 호러영화의 문법과도 같았다. 이 영화는 반대다. 금기를 넘는다는 테마에 적합하게, 하지만 내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유효타를 적절하게 먹인다. 영화가 중후반부에서 템포가 루즈해지기 전까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끌고 갔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디에서 자극적인 게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인물들을 덮치는 것이다. 끝까지 이야기를 몰입시키는 힘이 영화의 장면을 기획하는 데 있다는 점이 '이 영화는 노작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다.
편의적으로 기대다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아쉽다고 느끼는 것. 주인공이다. 주인공 페드로는 공포영화의 클리셰 그 자체인 인물이다. 다른 인물들은 금기를 넘니 마니 하는데 이 인물은 굉장히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간다. 대표적으로 중반부. 이 인물이 공간을 두 번 옮긴다. 첫 번째로 공간을 옮길 때 이 인물이 누군가와 함께 동행한다. 이 일행을 구성하는 방식이 굉장히 안일하다. 이 선택은 영화의 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영리한 것이 핵심인 영화에 인물은 바보 같은 선택을 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이 두 번째 공간 이동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그렇게 감독이 의도했다). 변화무쌍한 리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것과는 정반대로 이 장면에서 인물들에 감정이입할 토대가 빈약하다. 서서히 집중했다가 후반부의 광기로 이어져야 하는데, 중반부까지 쌓아놓은 플롯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렇게 상투적으로 대처할 거라면 동생이 누굴 짝사랑했고, 이 인물이 현실적으로 처한 상황이 뭐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모티브를 내내 반복해서 보여주면 뭐 하나?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그걸 거부했는데.
또 이 영화에서 마무리 짓기 위해 마무리지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주인공의 가족과 관련된 부분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이 주인공의 어머니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이질적으로 행동한다. 가령 형제는 이 마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다. 어머니도 어렴풋이는 들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악마의 존재에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걸 굳이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작위성을 덧붙이는 선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극후반부 이 인물의 행방을 보여주는 방식도 뒷심이 부족했다. 페드로가 굳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는 인과관계가 희미해서 대충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글쓴이가 한국 영화 팬이라는 것이 조금 얄궂게도 느껴졌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특정 한국 영화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국 팬들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후반부가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단점은 치명적이다.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분비하며 질주하던 플롯이 후반부가 되어 '에이 이거 그거 아닌가'로 끝나기 때문이다.
뭉뚱그린 악
전체적으로 흥미로웠지만 후반 마무리에서 힘이 빠졌다는 게 총평이다. 어떤 걸 생각하고 각본을 쓰고 이 영화를 위해 장르적인 문법을 어떻게 연구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위해 파격적인 수위로 폭력을 묘사한 것도 나름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에 힘이 빠지다 못해 전면적으로 대치되는 선택을 해 중반부까지의 서스펜스가 얕아지는 선택지를 뒀다. 그래서 악이 도사린다는 게 설명하려다 말았다. 전지전능한 악의 존재가 중반부까지 계속 등장하다 갑자기 카메라를 반대편으로 돌렸으니 선택과 집중에 있어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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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 WEB에서 선정한 여성감독 최고의 공포 영화
미국의 영화 웹 사이트 MOVIE WEB에서 선정한 여성감독 연출 최고의 공포영화들.
로튼 토마토 선정 2014 올해의 영화 2위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 최근 몇 년간 최고의 공포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바바둑>도 2위에 올라와있는데요. 틀에박힌 뻔한 공포가 아닌 다양한 컨셉의 영화들 같이 만나 보아요
(2012) #아메리칸메리
(2021) #캔디맨
(2021) #티탄
(2021) #피어스트리트트릴로지
(2022) #피기
(2019) #세인트모드
(2022) #부화
(2023) #토탈리킬러
(2014) #밤을걷뱀파이어소녀
(2016) #로우
(2014) 바바둑
(2000) 아메리칸 사이코아메리칸 메리
핸드폰 요금도 내지 못할 정도의 어려운 형편의 의대생 인턴 메리. 그래도 기본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고 있는 똑똑한 의대생이다. 어느날 밀린 공과금 납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물색하던 중, 급여가 괜찮은 아르바이트를 찾아내고, 그곳으로 향하는 메리. 알고보니 그곳은 스트립클럽. 그런데 그곳에서 예고치 못한 수술을 집행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고문받던 한 남자가 죽지 않도록 긴급수술을 하는 것. 이에 죄책감과 두려움에 고통스러워 하던 그녀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며 인생의 (광적인)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캔디맨
들어봤니? 미지의 존재 캔디맨 비주얼 아티스트 ‘안소니’는 새 작품 구상을 위해 어릴 적 살던 도시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오래 전부터 떠돈 괴담을 듣고 매혹되면서 ‘캔디맨’에 대한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는데... 불러봤니? 죽음을 부르는 남자 캔디맨 세상을 뒤흔든 미지의 존재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한 번만 더 부르면 그가 나타나게 되는데… 용기가 있다면 그의 이름을 불러봐
티탄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고 살아가던 여성이 기이한 욕망에 사로잡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다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던 슬픈 아버지와 조우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
피어 스트리트 트릴로지
셰이디사이드의 과거는 과거로 머물지 않는다. 1978년 여름 캠프. 두 마을 아이들 사이에 긴장과 묘한 끌림이 들끓던 곳. 하지만 끔찍한 사건이 터지며 무시무시한 생존 싸움이 시작된다.
피기
내 이름은 사라. 나를 돼지라 부르며 괴롭히던 친구들이 납치당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작은 마을에서 살인 사건도 벌어졌다.끔찍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신고한다 VS 안 한다
세인트 모드
젊은 간호사 모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은 후 세상을 등진 채 극단적으로 기독교에 몰두해 살아간다. 모드는 심각한 암에 걸린 은퇴한 무용수 아만다의 호스피스를 맡게 된다. 모드의 독실한 믿음은 아만다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지고, 모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만다를 구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부화
행복한 가족들과의 일상을 블로그에 공유하는 엄마. 티니아는 겉모습에 집착하는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매사에 필사적이다. 어느 날 티니아는 숲에서 다친 새를 발견하고, 기이하게 생긴 새알을 집으로 가져온다. 엄마의 꿈을 위해 매일같이 체조 연습에 매달리는 그녀는, 가져온 알을 침대에 소중히 모셔놓고 힘들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위안을 얻는다. 어머니의 욕심이 커져갈수록 티니아가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존재는 알뿐이다. 좀처럼 맘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 속상함을 털어놓던 밤, 알이 부화하고 티니아 가족 근처에서 연신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토탈리 킬러
1987년 10월 평화로운 노스 버넌 마을에서 티파니, 마리사, 페더가 잔인하게 학살당한다. 세 명의 여고생을 죽인 일명 ‘달콤한 16세 살인마’는 수사망을 피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나는 당신의 눈에서 슬픔을 봤어요” 죽음과 고독의 냄새가 풍겨나는 곳 ‘Bad City’. 한 뱀파이어 소녀가 밤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고요한 길거리를 누비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소녀는 우연히 만난 소년에게서 슬픔을 느끼는데… 외로운 뱀파이어 소녀와 고독한 인간 소년의 핏빛로맨스가 시작된다.
로우
쥐스틴의 가족은 대대로 채식주의자이자 수의사 집안이다. 쥐스틴은 가업을 잇기 위해 수의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 수의학교는 똥군기를 부리며 채식주의자인 쥐스틴에게 토끼 생간을 먹게 한다. 생간을 먹은 쥐스틴은 생살과 인육에 대한 욕망에 시달리고, 자신의 욕망이 가족의 비밀과 연계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바바둑
출산 차 병원으로 가던 중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당시 태어난 아들 ‘사무엘’과 힘겹게 살아가는 워킹맘 ‘아멜리아’. 과행행동장애가 있는 아들은 퇴근하고 돌아온 그녀에게 아빠의 창고에서 발견한 그림책 ‘바바둑’을 읽어달라 조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동화책이 아닌 악령의 저주가 담긴 금서임이 드러나고, 바바둑은 두 모자의 외롭고 고단한 일상 속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결국 아멜리아는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바바둑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데…
아메리칸 사이코
트릭 베이트만은 뉴욕 월스트리트 중심가의 금융사 P&P의 CEO이다. 상류계급인 약혼녀 에블린이 있으며, 자신의 친구 약혼녀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가 근무하는 곳은 아버지의 회사인 탓에 단지 자리만 채우면 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소일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예약에 실패한 최상류층 레스토랑의 단골 고객인 친구 폴에게 적대감을 느낀다. 더군다나 자기 것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세련된 명함을 가진 폴을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팝송을 들으며 그를 도끼로 난자한다. 시체는 패트릭의 옷장에 걸려진다. 패트릭이 수집한 아르마니 셔츠들과 함께. 행방불명된 폴의 행방을 찾기 위해 형사(윌렘 데포 분)가 찾아온다. 그러나 패트릭은 형사의 수사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타난다. 거리에서 만난 매춘부, 콜 걸, 파티장에서 만난 모델, 심지어 옛 애인까지. 그는 격렬한 정사 후 전기톱으로 난자를 하거나, 갖가지 도구를 이용해 살인을 한다. 물론 지나가던 행인을 아무 이유없이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의 심리는 점점 더 분열되고, 그의 살인은 점점 더 무차별적, 비현실적으로 잔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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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수유천이 도망친 레베카에게 뭐라고 하니
<그 자연>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스크린 뒤쪽의 힘이다. 이 영화에서 동화의 아버지와 오령의 어머니는 대화 속에서 언급되기만 할 뿐 등장하지 않는다. 동화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살고 있으며 그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기 싫어한다. 동화가 화를 내는 부분도 능희가 ‘뒤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할 때이다. 오령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하지만 오령은 동화와 달리 공간을 통해 어머니를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한다. 그는 집 뒤편에 어머니의 무덤도 만들어두었고 직접 가꾼 흙길을 걸으며 매일 어머니 생각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오령의 어머니는 영화 전반에 걸쳐 흥미로운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그 방식은 히치콕의 <레베카>나 PTA의 <팬텀 스레드>와 같은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오령의 집은 죽은 어머니의 기운이 서려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레베카>적 설정을 떠올렸을 때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힘이 주인공에게 작용되는 방식은 조금 특이하다. <레베카>적 설정이 적용된 영화들에서 통상적인 경우라면 주인공은 집에 서린 죽은 어머니의 기운에 불안함을 느낄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 동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화는 어머니에 대한 오령의 효심에 감복하며 무덤에 절을 올리기까지 한다. 대신 그 불안은 집안의 다른 인물들로부터 발현된다. 우선 능희. 영화 초반 준희가 쭈뼛거리며 제공하는 그녀에 대한 설명, 멀리서 들리는 가야금 소리와 같은 정보들은 어딘가 께름칙한 분위기를 풍긴다. 능희가 등장한 뒤에도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대화들은 언젠가 터질 듯 위태롭고, 결국 실제로 능희는 후반부 저녁 식사 장면에서 갈등을 촉발하기도 하다. 다음으로, 영화의 첫 숏에 등장하는 선희는 이후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저녁 식사 장면이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얼굴을 비추는 인물이다. 그동안 오령은 전화를 통해 꾸준히 그녀의 복귀를 예고하는데, 말하자면 어머니의 복귀 불가능함을 선희가 대신 채우게끔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사실 선희로부터 야기되는 불안은 더 은밀하다. 동화를 자극하는 말을 뱉으면서도 그것은 악의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능희와 달리, 저녁 술자리에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이후 오령과의 대화를 통해 동화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직접적으로 뱉는 인물은 바로 선희이다. <레베카>의 집에 없는 어머니로부터 오는 불안은 이 영화에서 집에 상주하나 늦게 도착하곤 하는 다른 여자들로부터의 불안으로 분산, 변주되는 양상이다. 홍상수의 자연에 대한 매혹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홍상수가 자연의 아득함에 매혹되는 순간들은 이전에 비해 소박해지고 감성적으로 변한 2020년대 영화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빈번하게 등장하고(특히 영화의 마지막에서), 사실 2008년작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주인공이 아득히 바라보는 바다를 비추며 마무리했다(<도망친 여자>의 마지막에서 감희가 보는 영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자연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언급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인상을 풍기는 이 영화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이 자연에 매혹되는 순간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자연을 담아내는 데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자연에 매혹되는 주체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철저하게 주인공 동화라는 점이다. 영화는 종종 아웃포커싱된 저화질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밝은 녹음, 보여주지 않을 줄 알았던 붉게 저무는 노을까지 카메라에 정말 아름답게 담아내지만 그 자연을 철저하게 매혹의 피사체가 아니라 배경으로서만 다룬다(이를테면 <인트로덕션>과 <물안에서>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순간이 이 영화에는 없다. 또 이 영화에서는 나무나 풀, 혹은 풍경에 줌인을 가하는 순간이 없다). 그런데 이 자연은 단지 배경으로서만 치부하기엔 비중이 꽤 커서, 혹은 그 자연에 대한 동화의 반응이 너무나도 커서 종종 장면 전체를 장악하곤 한다. 배경의 위치에 있으나 그 힘이 튀어나와 스크린을 지배하는 이 영화의 자연은 자연스럽게 지금 이곳에 없으나 공간과 상황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상들, 즉 오령의 어머니와 동화의 아버지의 존재를 환기한다. 그렇다면 <그 자연>의 뒤쪽에서 감지되는 불안의 근원은 무엇인가? 위에서 이 영화는 스크린 뒤쪽에서 작용하는 힘의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이 힘의 근원을 프레임 안의 후경이나 서사의 뒤편을 넘어서 말 그대로 스크린 너머에서 찾아보자면, 홍상수의 다른 영화들, 그중 특히 <도망친 여자>를 떠올려 볼 수 있다. <그 자연>은 산을 배경으로 찍었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이 산에서 오령은 산길을 가꾸고 닭도 키운다.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보면 이 영화는 마치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망친 여자>의 저편에서 일어난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영화는 극중에서도, 엔딩크레딧에서도 경기도 여주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도망친 여자>의 각 챕터가 시작할 때 느린 줌아웃으로 비춰지는 창밖의 산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서울 북촌과 여주 산속에서 벌어지는 두 이야기는 닭으로 매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서울 북촌에서 창문 너머 여주 산속으로까지 힘을 뻗치고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도망친 여자>에는 있고 <그 자연>에는 없는 것, 바로 김민희다. 김민희는 서울 북촌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으므로 여주 산속에 있을 수 없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부터 이번 영화까지 세면 홍상수는 총 1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중 12편의 영화에 김민희가 주연으로든 조연으로든 등장한다. 김민희가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등장하지 않은 영화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당신얼굴 앞에서>, <탑>, <여행자의 필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까지 총 5편으로 생각보다 꽤 있는 편이고, 그러므로 김민희 없는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이 사실 그리 낯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그 자연>에서는 유독 김민희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김민희의 부재가 드러나는 지점들은 특수하고도 흥미로운데, 우선 첫 번째로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김민희가 있었더라면 맡았을 배역이 꽤 명확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박미소가 연기한 능희는 평소 홍상수 영화에서 김민희가 맡던 역할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시종일관 은은한 불안감을 풍기는 이 능희라는 인물은 술자리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히스테리와 약간의 표독스러움으로 영화 전체에 지속되던 평화를 깨는 인물이다. <풀잎들>이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같은 영화들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인물을 떠올려보면 <그 자연>에서 이 점은 꽤 분명하게 보인다. 다음으로 김민희의 부재가 드러나는 지점은 결말인데, 결말은 이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 자연’은 동화에게 상처만 남길 뿐 뭐라고도 하지 않는다. 고장나버린 낡은 차 안에서 쓸쓸히 담배연기를 뿜는 동화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자의식에 가득찬 채 낡은 차를 마냥 찬미하는 동화의 태도는 말하자면 자연에 대한 태도와 동일시되므로 거창해보이는 이 영화의 제목은 사실 자조 섞인 맥거핀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인트로덕션>, <물안에서> 같은 영화들의 결말과는 확실히 이질적이다. 이 점에서 <그 자연>은 최근작인 <수유천>과 궤를 같이 한다. <수유천>의 마지막에서 전임은 수유천의 발원을 찾겠다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프레임에서 사라지지만 곧이어 환한 미소를 띤 채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프레임 안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전임의, 혹은 김민희의 그 해맑은 미소에서 일시정지하며 영화는 끝난다. <그 자연>의 결말을 <수유천>의 결말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에 감도는 불안감의 근원이 사실은 후경으로서의 자연, 혹은 극중에서 부재한 인물을 넘어 영화 자체의 바깥에 있다는 것과 그것의 정체가 김민희의 부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유천>의 개봉 이후 홍상수 영화 속 김민희의 존재에 대해서 흥미로운 담론들이 오갔다. 그의 영화에서 김민희는 점점 정물화되어가고 있고 <수유천>은 그 흐름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 자연>은 홍상수 필모그래피 안에서 <도망친 여자>, <수유천>과 이을 수 있는데, 자연에 대한 태도와 김민희의 존재 여부라는 두 축을 세 영화를 동시에 관통하며 또 각 영화들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삼아볼 수 있다. <도망친 여자>는 자연을 긍정하면서 영화 표면에 항상 존재하는 김민희에 의해 작동되었고, <수유천>은 자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면서도 정물로서의 김민희는 무한 긍정했다. 이번 <그 자연>은 자연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김민희마저도 없는 상태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는 텅 빈 자연, 분산된 불안, 한숨 쉬는 남자라는 증상으로 발현된다. 그래서 <도망친 여자>와 <수유천> 이후 <그 자연>은 정물화에서 블랙코미디로의 회귀, 몇몇 부분은 탈속에서 세속으로의 회귀이고, 역설적으로 김민희 없는 김민희에 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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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크로이처의 <코르사주>
본 글은 씨네랩을 통한 시사회 관람 후 리뷰를 요청받아 쓴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이 쓴 <트라우마>에는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관해 언급한다. 그는 강제 수용소에서 최악의 상태는 자살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악의 상태는 아무런 능동적 행위 없이 수용소의 흡수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상태”에 관한 이야기다.
<코르사주>는 엘리자베트 황후에 대해서 다룬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엘리자베트가 프란츠 요제프에게 발탁(?) 된 까닭은 오로지 그녀의 외모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옆에서 인형처럼 서있기를 바랐다. 누구라도 황후에 대한 환상은 있겠지만, 알려진 것처럼 왕이나 왕비는 생각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서론에서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대해 언급한 이유 중 하나가 신체적 자유에 대한 문제다.
물론 황후의 자리와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을 비슷한 처지라고 볼 수는 없다.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았을 때 그들은 저항해야 한다. 저항해야만 주체적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여성 서사들은 주체성이 가장 큰 이슈처럼 보인다. <코르사주>도 어김없이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코르사주>가 여타 영화와 다른 점은 주체적 인간의 자리에 가는 방법을 죽음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엘리자베트는 첫 번째로 낳은 딸이 세상을 떠났고, 시어머니와 깊은 갈등이 있었으며, 1889년 아들 황태자가 자살했고, 60세에 살해당한 비운의 황후로 알려져 있다. 다만 영화에서 그녀는 40살에 생을 마감했고, 그 이후의 삶은 그녀의 대리자가 이어간 것으로 그린다. 마리 크로이처 감독이 40살의 엘리자베트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 시기부터 그녀가 자신의 삶을 위해 투쟁한 시기라고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도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녀는 정신병에 관심이 많았고, 영화 속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축일 선물로 완벽한 시설을 갖춘 정신 병원을 원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디테일을 계속해서 쫓아가야 한다. 영화 속에서 정신 병원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아마 시기적으로도 히스테리가 주목을 받기 직전의 시기였을 것이고, 고증을 위한 설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죽음의 문턱으로 향하는 처절한 몸부림의 설정이다. 정신병원에 누워있는 두 여자 중 한 명은 간통으로 정신을 놓았고, 또 다른 여자는 아이를 잃었다. 엘리자베트는 두 여자가 각각 겪은 경험을 지금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일부러 말에서 떨어진다. 죽음에 대한 첫 몸부림. 그리고 그녀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딸과 여행을 가겠다는 요청에서 딸을 데리고 가지 못하게 하자 창밖으로 투신한다. 죽음에 대한 두 번째 몸부림. 하지만 그녀는 미치지 않고 끝내 정신을 붙들고 있다. 히스테리란 무엇인가. 정서적 충격을 해소할 수 없을 때 우리의 몸이 그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증상을 발현하는 방어기재라고 프로이트가 말해주지 않았던가. 엘리자베트는 정서적 충격을 온전히 주체적 몸짓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 그런 방식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것은 충동적인 것이며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전적으로 의식적인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의 욕망을 정면으로 대면하고 끊임없이 투쟁하여 행위 자체를 이성적 판단에 의해 끌어올렸을 때 우리는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이성적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윤리라고 한다.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마약을 하는 것 또한 주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런 비관적인 행동이 어떻게 주체성을 위한 과정이라고 묻는다면 영화가 대답해 줄 것이다. 엘리자베트가 단발머리를 하고 마당에 앉아 다른 이들과 음악을 들을 때 그녀가 느끼는 해방감을 바람으로 표현한다. 그 바람은 그곳에 앉아있던 이들 중 엘리자베트에게만 향한다. 이 쇼트에서 느껴지는 해방감과 처연함은 그녀의 선택이 그녀의 몸을 파괴할지라도 그건 그녀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아니, 어쩌면 그 선택은 그녀에게는 의무라고 일컬어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세 번째 자살 시도는 성공으로 끝난다(고 생각 한다). 영화가 따라온 것은 그녀가 진정한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 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자살 시도는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 자살 시도에서는 황제이자 남편에게, 그리고 딸과의 작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 직후에 시도하지 않는다. 편안하고, 우아하게 그녀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나면 그녀의 우아하고 자유로운 춤이 이어진다.
2022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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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우리는 늘 선을 넘지, 전주국제영화제
여러분, 오늘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일입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우리는 늘 선을 넘지 Beyond the Frame'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요.
이번 슬로건을 통해 전통적인 영화 형식과 상영 방식에서 탈피하여 프로그램, 공간, 이벤트를 통해 영화를 중심을 장르 간 통섭을 이뤄온 전주국제영화제의 도전적 정신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전주국제영화제를 개막작부터, 폐막작까지! 샅샅히 톺아볼 예정입니다.
# 개막작 : 토리와 로키타 Tori and Lokita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시놉시스 : 저마다 홀로 아프리카를 떠나 벨기에로 온 어린 소년과 사춘기 소녀는 어려운 이민 생활에 맞닥뜨리지만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우정으로 맞선다.
CINEPICK : 올해 개막작은 전 세계 영화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장 피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 뤽 다르덴(Luc DARDENNE) 감독의 <토키와 로키타>가 선정되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진수 프로그래머는 "다르덴 감독이 공식적으로 한국에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년 전에도 다르덴 감독을 초청하려고 했으나 팬데믹으로 결국 성사되지 않았는데, 올해 개막작으로 모시게 되었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상영 시간표
2023.04.27 19:30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2023.04.28 19:30 CGV전주고사 4관
2023.04.29 10:00 CGV전주고사 6관
# 폐막작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Where Would You Like to Go?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시놉시스 : 중학교 교사인 도경은 자신의 반 학생인 지용이 물에 빠지자 그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 들었다가 함께 목숨을 잃게 된다. 세상에 외로이 남겨진 도경의 아내 명지와 지용의 누나 지은은 그들에게 닥친 비극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명지는 슬픈 현실을 피해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나고, 옛친구를 만나지만 선뜻 친구에게 남편의 소식을 전하지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도 못한다.
CINEPICK : 영화는 김희정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이자, 김애란 작가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 했습니다. 영화는 반복되는 사회적 재난, 사고 앞에 망자를 잘 애도하는 동시에 산 자를 구하는 길은 무엇일지를 보여주며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 그 죽음을 함께 기억해줄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상영 시간표
2023.05.05 19:0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 심사위원
1)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 5인
: 마리아노 지나스 감독, 아시아 수석평로낙 매기 리, 부지영 감독, 에리카 발솜 평론가, 배우 옥자연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2) 한국경쟁 부문 심사위원 3인
: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마이알렌 벨로키 베라사테귀, 평론가 손희정, 도쿄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이치야마 쇼조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3) 한국단편경쟁 부문 심사위원 3인
: 이혁상-제시카 사라 린랜드 감독, 조은지 감독 겸 배우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4) 넷팩(NETPAC)상 심사위원 3인
: 아이균 아슬란리 영화편론가,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김형석, 바른손랩스 콘텐츠 총괄 이사 최윤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 ISSUE
1) 국제경쟁 공모 83개국 604편 출품. 역대 최고 기록!
: 전주국제영화제가 국제경쟁 공모에 83개국 604편의 작품이 출품되어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춤품작 중 극영화가 357편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다큐멘터리 188편, 애니메이션 6편, 실험영화 30편, 기타 23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이중 다큐멘터리는 전년 대비 20편 증가한 점이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팬데믹과 전쟁 등 역사적인 큰 사건이 연이었던 것이 영화인들의 창작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2) 멕시코국립시네테카 개봉지원상 신설
: 전주국제영화제는 멕시코국립시네테카와의 협약을 체결하고, 멕시코국립시네테카 개봉지원상을 신설키로 했습니다. 앞으로 전주국제영화제는 매년 한국 장편영화 1편을 선정하여 개봉지원상을 시상하고, 멕시코국립시네테카에서의 상영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3) 한.중.일 3개국의 새로운 영화들을 소개하는 '동아시아 특별전'
: '동아시아 영화특별전'은 매년 각 나라의 문화적 전통을 대표하는 도시를 선정하여 연중 문화예술 협력 및 교류사업을 추진하는 국제행사인 '2023 동아시아문화도시 전주'사업과 연계하여 진행됩니다. '동아시아 특별전'을 통해 독창적이고 기획력 있는 한.중.일 신진 감독 혹은 거장들의 신작을 선보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이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의 특징적 영상 미학의 최신 경향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4) 종합예술가 백현진,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올해의 프로그래머
: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며 류현경 배우가, 두 번째는 연상호 감독이 맡아 전주국제영화제의 대표 섹션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하였는데요. 올해 세 번째를 맞는 'J 스페셜 : 올해의 프로그래머' 섹션을 맡을 영화인은 배우, 연출가, 음악가, 미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백현진 배우가 맡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네, 지금까지 전주국제영화제를 샅샅히 톺아보았는데요. 더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https://www.jeonjufest.kr)를 방문해보세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4월 27일(목) 부터 5월 6일(토)까지 진행되며, 영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씨네랩 뉴스 카테고리 (https://cinelab.co.kr)에서는 데일리 기획기사가 업로드 될 예정이니 놓치지 말고 영화제의 열기를 함께 느껴요!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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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사랑을, <러브 달바>
* 본 리뷰에는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러브 달바> 2024
프랑스 / 드라마 / 88분
감독: 엠마누엘 니코
사랑으로 사랑을, <러브 달바>
사랑을 받는 일이 먼저일까, 사랑을 주는 일이 먼저일까. 사랑이란 ‘세상’ 안에서 영원히 표류하며 사는 우리에겐 즉답하긴 어려운 질문이다. 애초에 명확한 답이나 확실한 태도를 요구하는 물음도 아니기에 생각의 바다에 빠지기도 쉽다. 동시에 우린, 사랑에 한없이 주관적이기에 거침없이 답한다. 서둘러 사랑을 하고 이를 게을리하거나 포기하지도 않는다. 답안지를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보다, 사랑하고 싶은 열망이 더 진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고받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만큼 강한 의지도 갖기에, 두 개의 물음표 중 한 개를 선택하는 과정은 과감히 축소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랑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뜻한다. 사랑은 삶을 계속 흐르게 하는 강력한 동기이자, 귀중한 배움 그 자체다. 출발선과 도착점이 구분 없이 이어진, 단 하나의 (사랑하는) 트랙을 끝없이 달리는 러너들, 그게 바로 우리니까.
사랑하는 방식보다 사랑‘하는’이 더 중요해진 일상에 <러브 달바>가 핀 조명과 함께 모두의 시선을 가로채며 등장한다. 거대한 트랙이 사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고, 상당수가 형태를 알 수 없게 변했거나 얼마 못 가 뚝 끊어져 있다는 진실과 함께 말이다. <러브 달바>는 사랑을 귀하게 여기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앞선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방법이 사랑 중인 상태보다 주요하고, 사랑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까닭은 사랑을 받는 일보다 받은 사랑을 ‘주는’ 일이 늘 선행되기 때문이라고. 영화는 이 친절하면서도 강단 있는 답안지를 모두에게 널리 공유하기 위해, 열두 살 달바의 사랑 이야기를 시작한다.
출처: 영화 <러브 달바> 스틸컷(다음)
달바는 집에 들이닥친 경찰관들로 인해 하루아침에 자크와 강제 분리된다. 의사는 달바를 조심스럽게 대하며, 궁금한 게 있다면 다 말해주겠다고 약속하고 검사를 진행한다. 특수 교사 제이든은 달바를 집과 가까운 쉼터로 데려가며 이제 안전하다고 말한다. 검사는 수감된 자크를 근친상간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알려준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충격적인 진실에도 달바는 흔들리지 않는다. 낯선 환경에 놓여 조금 두렵고 무서울 뿐, 아빠의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다시 아빠를 만나 함께 살면 다 해결될 거라 믿는다. 영화는 달바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달바가 자크가 만든 인형의 집에서 ‘타의’로 탈출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란 점을 조금도 덜어내지 않고 담아낸다.
달바를 둘러싼 문제들은 삶에 멋대로 끼어드는 어른들보다 훨씬 더 달바를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게 한다. 무엇보다 자크(사랑)를 믿는 나를, 의심하는 내가,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을 노려보니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울 속 달바는, 달바가 주장하는 '여자애가 아닌 여자'가 아니었다. 제이든의 단언처럼 여자가 아닌 '어린애'였고, 어린애는 달바가 이를 인정하기만을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똑같은 패턴으로 정해진 트랙에서 어긋나지 않고 달렸던 달바는, 자크를 향한 사람들의 변하지 않는 태도가 계속될수록 자기도 모르게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 어린애를 끊임없이 부정하면서도 마주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달바는 외면은 물론이고 내밀한 내면까지 또래 친구들과 달랐다. 짙은 눈화장과 붉은 작은 입술, 중년 여성이 할 법한 성숙한 머리 스타일, 가슴과 등이 깊게 파인 속옷용 원피스와 드레스. 평생 자크를 위한 여자로 살았던 달바는, 자신과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동요한다. 재미있게 노는 친구들 무리에 끼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자신을 발견한다. 친구들이 자크를 소아성애자라고 부르는 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어떤 색을 좋아하고, 어떤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고,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어제와 오늘을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출처: 영화 <러브 달바> 스틸컷(다음)
단번에 치유되는 아픔은 존재하지 않듯, 달바는 계속 혼란 속에서 허우적댄다. 아무런 고민도 생각도 필요치 않았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또다시 기행을 벌이며 자크와의 만남을 요구한다. 고대하던 면회 날, 달바는 교도소에서 완전히 변해버린 아빠를 마주하고 얼어붙는다. 자크는 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예쁘게 꾸민 달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벌벌 떨며 본인이 저지른 범죄를 시인한다. 달바는 자신이 진짜 버림받았음을 직감한다. 믿었던 사랑에 버림받아, 더는 어떤 사랑도 받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과 당황스러움. 달바는 어른들이 자크를 변하게 했다며 날카롭게 반응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달바의 절규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한다. 아빠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 폭력이며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범죄라고.
<러브 달바>는 달바가 품은 혼란을 직면하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아이의 삶에 개입한다. 어른들을 통해, 달바에게 단호하면서도 다정하게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사랑을 주입한다. 당연히 사랑받아야 할 권리, 당연히 치유될 현재, 받은 사랑을 남에게 줄 수 있는 희망찬 미래까지, 영화는 피해자를 절대 혼자 두지 않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르듯 오직 달바의 새 시작을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온 마음을 다해 기꺼이 돕는다. 달바에겐 강제 동행으로 느껴졌을지 몰라도, 반드시 습득해야 할 배움이자 품어야 할 희망이었으니까. 룸메이트 사미라도 달바가 허우적댈 때마다 회피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달바를 위로한다. 때론 못된 언니로, 어설픈 친구로, 똑같이 마음을 다친 동료로 달바에게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사미라 또한 주변 이들에게 달바처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출처: 영화 <러브 달바> 스틸컷(다음)
오랜 고민 끝에 달바는 제이든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묻는다. 혼자 있는 게 두렵고 모두가 날 하찮게 보는 게 싫다고도 고백한다. 아이가 진정 가졌던 공포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랑을 잃는 것이었다. 달바는 집으로 도망쳐 자기 방 옷장에서 숨어든다. 쉼터 안에서도 옷장에 자신을 가뒀던 아이였다. 옷장은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어막이었다. 어둠 속에서 파묻혀 있던 달바는 문틈 사이로 들어온 햇빛에 눈을 뜬다. 당연히 그래야 함을 깨달은 듯 옷장을, 자크의 인형집을 박차고 나와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자크의 가스라이팅을 상징하는 염색된 파마머리를 거침없이 자르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불어오던 따뜻한 봄바람이 마침내 달바의 마음을 온전히 감싼 것이다.
달바에게 별 하나 없는 어둠이었던 자크의 서사는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러브 달바>의 목적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달바가 피해자란 어둠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빛을 뿜어내는 열두 살 소녀가 되는 것. 따라서 감독은 근친상간이란 충격적인 소재를 적극적 또는 자극적으로 노출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벽 뒤에 이야기 내내 버려뒀다. 달바를 짓누르는 고통도 직접 보여주지 않고, 달바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아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아이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도록 했다. 달바가 거울을 볼 땐, 거울을 바라보는 달바가 아니라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의지가 담긴 거울 속 달바를 의도적으로 비췄다. 그 결과 달바는 거울에 비친 영락없는 열두 살 소녀를 보며 사랑을 건넨 자들의 미소를 따라 짓는 데 성공한다. 모두가 간절히 기다린, 제이든의 딱딱하지만 따뜻한 말과 기다렸던 엄마의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눈빛, 까칠하지만 다정한 사미라의 욕설이 버무려진 환한 웃음이었다.
출처: 영화 <러브 달바> 스틸컷(다음)
우리가 믿는 아름답고 눈부신 사랑은, 사랑을 받아본 자의 사랑으로 시작되어, 온 세상에 퍼진 사랑이다. 축소보다 압축이 더 어울리는 사랑이랄까, 재판장에서 달바가 자크를 당당히 보며, 엄마의 손을 꽉 잡아주는 순간이랄까. 물론 이따금 자크가 남긴 상처가 달바를 또 욱신거리게 할 것이다. 하지만 달바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곁에서 서로를 사랑으로 지켜주는 이들과 충분히 견뎌낼 수 있으리라.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원 없이 사랑할 시간만 남은 달바를 응원한다.
우리의 사랑엔 그늘은 있어도 어둠은 없다, <러브 달바>에 여전히 사랑만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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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태일이> 메인 예고편
1970년 평화시장,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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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며 바쁘게 살아온 캐나다의 자동차 회사 CEO 마크.
문득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 그는 자신의 신념에 반대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이탈리아 아체렌자로 떠난다.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서 순수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던 마크는 할아버지가 남긴 포도밭을 되살리고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무모한 도전에 마을 주민들은 꿈 깨라며 만류하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부딪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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