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15 22:55:14
모성애의 다양한 형태들과 연대감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리뷰
이 영화는 다양한 여성의 모습과 다양한 어머니의 형태를 보여준 영화였다. 1999년도에 나온 영화인데 요즘에서야 다루어질 수 있는 이슈를 담았다. 또한 영화 속에선 다양한 소수자들이 얼마나 차별적인 환경에서 살았는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 다른 영화와 다를 바 없이 등장 하였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다른 퀴어 영화랑은 다른 점이었다. 영화를 볼 때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지기도 하였다. 여성으로 성 전환을 하는 트랜스 젠더인데 여성과의 아이를 낳는 점도 그렇고 내가 아직 많이 보지못한 사람들이 영화 속에 등장해서 이 영화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상식 밖의 내용과 설정이 담겨있던 영화였다.
아들을 잃어버린 미누엘라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 치유를 하는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치유 받는 대상이 아들의 아빠가 아닌 오히려 우연히 만난 여성들이 었다. 자신의 남편이었던 사람의 아이를 가진 로사와의 연대감이 돋보였다. 과연 나 였다면 로사를 돌봐주고 곁에 있어 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배우의 싸인을 받으러 갔다가 아들이 죽은 것인데 그 배우를 찾아가 원망을 할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 배우를 도와주고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 그 배우 또한 에스테반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에스테반의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어머니라는 큰 틀로 포용이 되는 것 같았다. 어찌보면 미누엘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관계들인데 그렇게 그리지 않고 연대의식으로 그려낸 점이 인상깊었다.
하지만 롤라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미누엘라가 용서 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보면서 가장 민폐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소수자로써 존재 한다고 하더라도 롤라가 한 행동이 이해가 되거나 용서 받을 행동은 아니었다. 모성애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지만, 미누엘라가 과하게 희생을 한 것 처럼 보여졌다.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여성의 다양한 이미지를 담고 싶어했고 어머니의 다양한 형태와 그로 인해 이어지는 여성들의 연대를 담고 싶어한 영화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캐릭터나 내용을 하나 하나 생각해보면 충격적인데 너무 자연스러운 것으로 영화 속에 담겨있어서 나에게는 낯설고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감정이 생겼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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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로 발달된 모순은 정의와 구별할 수 없다
*이 해석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디피컬트] 속 캑터스는 사회운동가다. 거리를 통제하기도 하고, 맨몸에 메시지를 적어 시위를 하기도 하고, 블랙프라이데이에 마트를 막아서기도 한다. 그러한 그녀의 소망은 지구의 환경이 나아지는 것.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환경 보호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환경 염려증인 그녀는 자신이 환경오염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병적으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맹신한다.
사회가 변화하며 수많은 사회단체가 생겨왔지만, 그중 대부분은 캑터스의 이런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이 모임 속의 수많은 인원들은 개개인의 욕심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모였다. 브루노와 알베르가 그 대표격이다. 당장 빚에 허덕이고 개인 회생만을 바라고 있는 그들은 환경 문제 따위는 관심 없다. 그저 공짜 맥주와 감자칩을 받기 위해 회의에 참석하고, 활동을 통해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고 꾀를 쓰고 있을 뿐.
과거 블랙 프라이데이에 캑터스와 정면으로 충돌했던 알베르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활동에 앞장선다. 장인어른에게 돈을 빌려서 파산 직전의 브루노는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향수를 선물한다. 아내의 진짜 냄새보단 비싼 브랜드가 주는 돈냄새가 좋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들의 사랑과 정의는 진심일까? 진심이 아니라 한들 우리에게 이들을 쉽사리 욕할 자격은 있을까? 우리 또한 그들처럼 살아가지는 않는가?
"브루노, 부자가 되고 싶니?"
기부를 받기 위해 찾아간 부잣집 할머니는 브루노에게 지폐를 보여주며 뭐가 보이냐고 묻는다. 숫자밖에 보지 못하는 브루노에게 할머니는 지폐 속에 숨은 다리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사람은 모두 다리이며,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곤 낡은 박제 개 인형을 선물로 준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라, 이것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다.
영화는 정책, 환경, 금융 등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듯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하고 '디피컬트'한 문제들의 해결법은 의외로 '이지'하다. 그저 관심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진심을 경청하고,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 영화가 진짜 꼬집고 있는 것은 문제에 대처하는 척, 허울 뿐인 정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이중성이다.
"펌킨..."
"캑터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캑터스는 알베르를 그동안 알아왔던 닉네임으로 부른다. 알베르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의 '지폐 이론'에 따르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닉네임은 숫자이고 실명은 다리를 뜻한다. 닉네임은 허례허식으로 치장한 정의의 모습, 즉 모순을 의미한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마지막까지 닉네임을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연출한 '허황된 꿈'이라는 해석이 맞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외출조차 하지 않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거리에는 차 대신 사슴이 뛰어다니고...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소망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감독의 강경한 태도가 엿보인다.
또 한 가지 짚어볼 것은 비영리단체의 할아버지다. (이름이 생각 안 남) 그는 사람들에게 줄곧 과소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라고 조언한다. 그래 놓고는 정작 자신은 카지노에 출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엔딩 크레딧의 추가 장면에서 그는 결국 카지노 입성에 성공하고 잭팟을 터트린다. 어떻게? 수정액으로 신분증을 위조해서.
이 방법은 브루노와 알베르가 프랑스 은행에 잠입해 자신들의 개인 회생 서류에 승인을 받기 위해 꾀한 방법이었다.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호통을 치더니, 정작 자신도 그 방법을 사용해서 카지노에 출입한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수정액으로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가리고 정의를 외치는 수많은 모순자들에게 일침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브루노가 그토록 거부하던 여인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결말처럼 말이다. 그 여성도, 브루노 자신도 결국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래를 한 셈이다.
이런 식의 타협점이 과연 그들이 부르짖는 정의에 부합하는가?
한편, 엔딩 크레딧의 추가 장면에는 박제된 개 인형의 진실이 등장한다. 개 인형은 브루노에게서 알베르로, 알베르에게서 알베르의 조카에게 건네졌다. 그런데 인형을 갖고 놀던 조카가 열어본 인형 속에 돈 뭉텅이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동생이 힘들면 무엇이든 도와주겠다던 알베르의 누나는 돈을 박박 긁어 가슴속에 숨긴다. 개의 내면에는 결국, 돈이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사람의 내면을 보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도 내면에 돈을 숨기고 있었다는 모순. 그녀가 브루노에게 건넸던 첫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라.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냐고 묻지 않았다. 부자가 되고 싶느냐고 물어보았다. 부자가 되려면 내면을 봐야 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말을 하던 할머니 자신도 사실은 돈이 더 우선적인 가치임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지혜롭다고 자칭하는 노인들이 많은 젊은이에게 위선을 떨고 있음을 한 번 더 풍자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한 편의 모순이다. 더할 나위 없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모순. 치밀한 계산으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모순은 얼핏 보아서는 정의와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슬프지만 이 세상에는 정의로 포장된 모순들이 즐비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면의 진실을 보기 위한 노력뿐이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은 존재하지 않을까.
*이 리뷰는 씨네랩을 통해 초청받은 시사회를 보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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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T행을 택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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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냥의 시간', '콜', '서복' 포스터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 박신혜, 전종서 주연의 <콜>, 차인표 주연의 <차인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 그리고 이용주 감독의 <서복>까지. 이들 영화들의 공통점은 당초 극장 개봉을 염두하고 제작되었으나 결국 OTT 공개 혹은 동시공개를 택했다는 점이다. (<서복>의 경우 당초 2020년 12월 개봉을 염두했으나 무기한 연기되었고, 결국 4월 중 티빙(TVING)과 극장 동시 공개를 택했다.) 앞선 다섯 편의 영화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거나 공개 예정이며 <서복>처럼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이상 새삼스럽지는 않게 되기도 했지만 다시 떠오르는 질문. 극장은 앞으로 괜찮을까?
이 글은 본격적인 분석이나 전망을 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나 그럼에도 통계자료는 살펴야겠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0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영화시장 극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 감소한 5,104억 원에 불과했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수준. 관객 수 역시 전년 대비 73.7% 감소한 5,952만 명이었다. 국내 극장 연간 관객 수는 2013년 이후 줄곧 2억 명을 넘어선 수치를 기록했었다. 지난 10년간 계속 증가해왔던 극장 수 역시 2020년에는 일부 휴관 및 폐관 등 영향으로 2019년 513개(3,079개 스크린)에서 2020년 474개(3,015개 스크린)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국내 OTT 시장 규모가 2020년 7,801억 원 정도일 것으로 전망했으며 PwC에 따르면 글로벌 OTT 시장 규모는 2020년 584억 5,600만 달러, 한화로 약 66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와 왓챠는 물론 네이버 시리즈, 티빙, 시리즈, 시즌 등 여러 플랫폼들이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한 만큼 앞으로도 극장 밖 플랫폼을 통한 영화의 최초 공개는 여럿 있을 것 같다. 당장 HBO Max(워너브러더스), 디즈니 플러스(월트디즈니컴퍼니) 등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OTT를 통한 독점 공개 혹은 극장과의 동시 공개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서 이런 추세는 국내와 국외를 구분하지 않고 당분간 이어질 듯.
*워너브러더스는 2021년 신작 열일곱 편 모두를 극장과 HBO Max 동시 공개할 것이라고 지난 12월 발표했고, 그 시작은 <원더 우먼 1984>였다.
영화 '원더 우먼 1984' 스틸컷
다만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극장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2020)이 국내에서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후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 되었으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 발표를 앞두고 주요 작품으로 거론 중인 <미나리>(2020) 역시 국내에서는 2주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누적 관객 5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21주째 상영되며 매출액으로는 역대 1위, 관객 수로는 역대 2위에 오르는 등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을 찾고 있고, 극장에서만 가능한 종류의 경험을 여전히 소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바타>(2009)가 재개봉해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 내주었던 글로벌 역대 흥행 1위를 탈환하기도 했다. (마블 스튜디오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아바타>의 1위 탈환을 축하하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미나리' 스틸컷
일단 국내에서는 3월 말 <고질라 VS. 콩>과 <자산어보>를 비롯해 4월 <모탈 컴뱃>과 <서복>, 5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등 개봉 예정작들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도 일부 극장이 제한적으로 영업을 재개하는 등 각 국가와 지역별 상황은 다르지만 조금씩 극장 업계도 다시 관객들을 불러들일 채비를 하고 있다. 쓰고 보니 다소 용두사미급의 결론이 된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극장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걸음하게 할 만한 화제작들이 있는 한.
영화 '고질라 VS 콩', '자산어보' 포스터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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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핀처 감독은 최근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했으며,
<비터루트> 외에도 오징어게임 리메이크 <스퀴드 게임: 아메리카>와 <차이나타운> 스핀오프 시리즈 등 다른 여러 프로젝트들도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핀처 감독 몸이 10개인가요?
9월 첫째주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엔야 테일러 조이, <겨울왕국> 실사판에서 엘사역 하고싶다 언급
안야 테일러 조이가 최근 인터뷰에서 만약 <겨울왕국> 실사 영화가 제작된다면 엘사 역을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엘사 역할을 맡고 싶은 이유로 자신의 조카들을 언급하며, “우리 고모가 엘사야”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겨울왕국 실사판은 정말 멋질 것이며, 손에서 얼음 조각을 쏘아내는 것은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데이비드 핀처 서부극 범죄 스릴러 <비터루트> 연출
데이비드 핀처가 넷플릭스를 위해 서부극 범죄 스릴러 <비터루트>를 연출할 예정입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될 예정이며 영화의 줄거리는 노년의 목장이 자신의 전 재산을 도둑맞은 후, 은행을 털고 도둑들을 추적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돈을 되찾기 위해 이러한 모험을 떠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보안관으로 일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쫓기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길복순> 스핀오프 <사마귀> 제작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의 스핀오프 영화 <사마귀> 제작을 발표했습니다. <사마귀>는 살인 청부 업계의 모든 룰이 무너진 혼란 속에서 A급 킬러 '사마귀'가 긴 휴가 후 컴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는 훈련생 시절의 동기이자 라이벌인 '재이', 그리고 은퇴한 레전드 킬러 '독고'와 함께 1인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이번 영화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이 각본에 직접 참여하며, 임시완, 박규영, 조우진이 출연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기 영화 <디 어프렌티스> 포스터 공개
트럼프 전기 영화 <디 어프렌티스>의 포스터가 공개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젊은 시절을 다룬 전기 영화로, 그의 부동산 사업가로서의 초창기 뉴욕에서의 활약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트럼프는 냉혹한 변호사 로이 콘의 지도 아래 자신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 분투하며, 미국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 사고방식의 형성 과정을 탐구합니다. 영화는 알리 아바시가 감독하고 세바스찬 스탠이 트럼프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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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호적 사고, 긍정기운 넘치는 봉준호 감독 어록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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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자체가 곧 장르다
-BBC-
그의 영화를 일단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인 동시에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봉준호는 정말 국가적인 보물이다.
-제이크 질렌할-
"영화를 한 지 이제 24년이 됐지만, 나는 여전히
영화 작업이 버겁다. 왜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한 편
한 편 완성하고 있지, 이걸 손 안에 넣고 만만하게
요리하는 날이 오긴 오는 걸까.
우리가 흔히 거장이라고 불러왔던
이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증이 들 때도 많다.
-봉준호-
영화도 유머도 말도 못하는게 없는 준호 감독님 귀여워...
저는 앞으로 '준호적 사고'로 살아가겠습니다.저는 앞으로 '준호적
사고'로 살아가겠습니다.
"본인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하세요"
"오늘 아침 행복했습니다.
기자들이 오프닝 시퀀스를 두 번 볼 수 있었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영화를 공부하며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란 말인데요.
그 말을 한 분이 바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입니다"
"진정한 독창성은 외로워야 나옵니다."
"스토리 자체보다 스토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반대를 자극으로 받아 들이세요."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 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컷은 다 먹고 나서도 찍을 수 있지만,
면은 불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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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 가이> - ‘내 손으로 찾아가는 나의 이름과 진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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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가이 (Free Guy, 2021)
개봉일 : 2021.08.11 (한국 기준)
감독 : 숀 레비
출연 : 라이언 레이놀즈, 조디 코머, 타이카 와이티티, 조 키어리, 릴렐 호워리
‘내 손으로 찾아가는 나의 이름과 진짜 세계’
‘NPC’ 게임의 배경이 되는, 항상 그 자리에서 머물고 있는 존재이자 최근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를 비유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 단어.
갓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고객을 마주하는 매장관리 또는 서비스 제공 아르바이트를 주로 했었다. 매장을 지키고 있다 보면 여러 손님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가끔 나를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기라도 하는 듯 자신의 비밀 얘기와 남들이 들으면 안 될 듯한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누군가의 핫한 비밀 이야기를 퍼트리며 “다 들릴만한 거린데, 이 사람들한테 나는 매장 지키는 NPC쯤으로 느껴지나 봐”하며 웃곤 했다. 우리에게 NPC란 그런 존재다. 분명 같은 세상,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존재. 항상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특성상 모든 게 뻔하게 느껴지고 가끔은 여기 있다는 것조차 잊게 되는 존재.
<프리 가이>는 ‘프리 시티’라는 게임 안에 존재하는 NPC중 한 명인 ‘가이’와 현실 세계에 있는 게임 개발자 밀리와 키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게임 안에서 살고 있으며 이 모든 걸 현실로 인식하고 있는 은행 NPC 가이는 매일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은행 강도 미션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마주한다. 구김 없이 밝고 착한 은행 NPC. 프리 시티의 배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 또는 병풍. 그게 바로 이 세계에서 가이의 역할이다.
밀리와 키스는 현실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오래된 친구인 두 사람은 함께 힘을 모아 게임을 완성했지만, 게임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묻혀버린다. 밀리는 게임을 산 게임회사 사장 앙투안이 자신의 게임 일부를 훔쳐 갔을 거라 의심하며 진실을 찾으려 하고 키스는 앙투안의 밑에서 자신의 재능을 조용히 묻어놓고 개발팀이 아닌 유저들의 문의를 해결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오며 만들어낸 소중한 게임이 흔적도 없이 묻혀버린 후, 키스는 위축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간다. 현실을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 앙투안은 고렙 플레이어, 밀리와 키스는 그의 눈에 ‘뭘 하든 상관없는’ 저렙 플레이어 정도려나.
<프리 가이>는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흔한 히어로물이 아니다. 흔히 히어로라 함은 당당하고, 멋지고, 희생정신이 빛나는 강한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 ‘가이’는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저 착하고 힘없는 NPC다. 가이의 마음 깊이 내재된 알고리즘과 그것을 변화시킬 강력한 사랑과 진실이 만난 순간, 스쳐 지나가는 NPC 정도 일뿐이었던 가이는 프리 시티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 가이의 이러한 성장기는 자신이 가이와 밀리, 키스처럼 존중받지 못하는 NPC, 무시당하는 저렙 플레이어로 분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가이가 살고 있는 프리 시티란 게임은 어떤 관점으로 보든 일단 폭력적인 세계다. 사람을 때려서 돈을 얻고 은행을 털며 별거 아니라는 이유로 수많은 NPC를 해쳐도 괜찮은 세계. 타인을 해치고 돈과 레벨을 쌓아가며 끝없이 경쟁하는 세계. 더 격할 뿐이지 어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닮은 게임 속 세계에서 가이는 유일한 착한 사람이자 히어로가 되고 사람들은 흔치 않은 그의 등장에 놀라며 그를 주목한다. 은행털기 미션을 위해 한 번쯤 지나치게 되는 의미 없는 NPC였던 그가 ‘가이’라는 다소 의미 없는 느낌의 이름을 넘어 ‘블루 셔츠 가이’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고 내 뜻대로 옷을 고르고, 마음을 따라 밀리와 만나고 프리 시티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내게 묘한 감동을 선사했다. 무한 경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닌 가이 같은 사람이 아닐까.
화려한 시각 효과, 라이언 레이놀즈의 능청스럽고 능란한 연기, 가벼운 개그코드가 버무려져 만들어낸 <프리 가이>의 매력은 내 기대감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진지한 시선으로 뜯어봐도 좋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도 좋다. 어떤 시선으로 보든 이 영화에 불만족할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네 삶의 주인공은 너야!’라는 아주 익숙하고 새롭지 않은 이 주제를 현대적으로 무겁지 않게, 게임과 현실을 오가며 재해석한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다.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봐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밌고, <프리 가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던 영화 <트루먼쇼>를 알아도 좋고, 몰라도 괜찮다.
웃음, 감동, 사랑과 우정. 그리고 나와 이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메시지까지. 이 모든 게 담긴 히어로물이자 성장물. 그리고 달달한 로맨스물이기도 한 영화 <프리 가이>. 후회 없는! 아주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프리 가이 시놉시스
“내 안의 히어로가 깨어난다!”
평범한 직장, 절친 그리고 한 잔의 커피. 평화로운 일상 속 때론 총격전과 날강도가 나타나는 버라이어티한 ‘프리 시티’에 살고 있는 ‘가이’.
그에겐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우연히 마주친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기 전까지는…
갖은 노력 끝에 다시 만난 그녀는 ‘가이’가 비디오 게임 ‘프리 시티’에 사는 배경 캐릭터이고, 이 세상은 곧 파괴될 거라 경고한다.
혼란에 빠진 ‘가이’ 그러나 그는 ‘프리 시티’의 파괴를 막기 위해 더 이상 배경 캐릭터가 아닌, 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선글라스 낀 사람들(플레이어)은 뭘 해도 되지만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사람들(NPC)은 무엇도 할 수 없는 게임 속 세계 ‘프리 시티’. 프리 시티에서 착하고 친절한 은행원을 맡고 있는 NPC 가이는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좋은 하루 말고 최고의 하루 보내세요.”
밀리와 키스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인 그는 자신을 인식하고 변화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있으나 앙투안이 두 사람의 게임 위에 새로운 세계와 코드를 덮어버리면서 앞서 설정됐던 자신의 설정값과 발전 가능성을 잊어버리고 살게 된다. 가이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말과 같은 인사를 반복하고 같은 위치에 걸린 같은 옷을 꺼내 입는다. 하지만 밀리와 키스가 설정해둔 알고리즘이 완벽하게 묻힌 것은 아닌지 그는 설정된 값인 ‘좋은 하루’가 아닌 ‘최고의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말을 건네고 크림과 설탕이 들어간 뜨거운 커피가 아닌 카푸치노가 먹고 싶다고 말한다.
가이와 프리 시티 사람들은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따라 그저 배경으로 존재하거나 경험치를 위해 희생되는 존재다.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하는 강도고 NPC는 엎드려서 당하기만 하면 되는 구조다. 가이는 정해진 구조를 깨는 유일한 NPC였다. 정해진 옷이 아닌 헨리넥 셔츠를 꺼내 입고 새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서는 가이는 이제 아무도 모르는 은행원 NPC가 아닌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주목을 받는 '블루 셔츠 가이‘다. 새로운 이름과 자아가 생긴 것이다.
프리 시티 속 NPC들은 자신만의 이름을 갖지 못한다. 가이는 남자를 뜻하는 GUY, 가이의 친구 버디는 친구를 뜻하는 Buddy, 또는 초미녀와 바리스타 등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한 NPC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게임 개발자들이 입력한 값을 따라 살아가거나 플레이어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희생된다. NPC는 플레이어들의 재밌는 플레이를 위해 없어선 안될 꼭 필요한 존재지만 어떤 플레이어도 NPC를 존중하거나 인식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이가 ’블루 셔츠 가이‘로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고 있을 때도 플레이어들이 가이가 매일 마주치던 NPC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걸 보면서 이들이 얼마나 가이와 NPC들에게 무심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주어진 삶만 살아야 하는 법은 없잖아.”
가이는 선글라스를 쓰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성장한다. 모든 걸 파괴하고 남이 가진 걸 빼앗는 세상에서 죄 없는 사람은 때리지 않는다며 평화를 지키며 내 뜻대로 사랑을 이뤄가는 인물. 밀리와 플레이어들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인물의 등장에 집중한다. 가이는 나아가 게임 속 NPC들과 플레이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시선을 바꿔놓는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이유 없이 희생됐던 수많은 존재들을 생각하게 됐고, NPC들은 매일 반복하던 일이 아닌 다른 커피를 만들고, 스스로 회고록을 써 내려가며 개발자가 주입해놓은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고,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았던 이들이 스스로 나의 삶을 찾고 발전해나가는 모습은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더 감동적이었던 건 이들은 이 세계가 현실이 아닌 게임 속 세상인 것을 알게 됐음에도 개의치 않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진짜‘라는 의식을 갖고 한마음으로 프리 시티를 지켜나간다는 것이다. 다른 이가 보기에 가짜인지 진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닌 ’내 삶은 진짜‘라는 믿음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을 사랑하는 우정. 무한 경쟁과 불신으로 가득 찬 현실보다 이 NPC들로 가득한 가상 세계가 더 아름다워 보인 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나도 너처럼 병풍처럼 살았어. 그런 삶은 끝이야.”
“우린 삶의 관중으로 살 필요 없어요.”
커다란 게임 회사의 사장인 앙투안에게 밀리는 ’신경쓸 것 없는 사람‘이고 키스는 그저 ’재능이 아까운 직원‘ 정도다. 밀리는 가이와 데이트를 하며 지금껏 노력해온 삶에 대해 말한다. 끝없이 경쟁을 해왔으나 앙투안에게 게임을 빼앗긴 그녀는 잘나가는 개발자도 돈 많은 게임의 주인도 아니다. 키스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한때 떠오르는 개발자로 주목을 받았지만 앙투안이 게임을 인수하고 빌드를 훔쳐 새로운 게임을 내자 그들의 ’라이프 잇 셀프‘ 게임은 그대로 잊히고 만다. 항상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프리 시티라는 게임 내에서도 다른 공간은 돌아보지 않고 주어진 미션만을 열심히 돌파하며 레벨을 키워왔는데, 그럼에도 이 세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것 같다.
근데, 이 세계의 주인공이란 누가 정하는 기준인 걸까? 꼭 유명하고 잘나가는 유능한 사람만이 주인공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주변을 맴도는 NPC나 관중 정도인 걸까? 아니다. 가이와 버디가 말한 것처럼 남들이 볼품없는 가짜라고 말해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은 항상 진짜고,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 다른 이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다. 누군가가 시킨 대로, 정해 진대로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 언제든 내 길을 선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게 바로 우리다. 누구나 가고 싶은 길로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가이는 이 모든 메시지를 담고 있는 프리 시티의 히어로다.
앙투안이 밀리와 키스에게 프리 시티를 넘기고, 프리 시티의 NPC들은 두 사람이 새로 만든 ’프리 라이프‘ 속에서 살게 된다. 경쟁과 폭력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계에서 NPC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조화롭게 살아간다. 프리 시티를 통해 파괴와 경쟁을 즐기던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레 프리 라이프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지막 작전을 앞두고 NPC들과 밀리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 가이가 밀리에게 묻는다. 현실에서 시체를 보거나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냐고. 밀리는 거의 없다고 답한다. 가이가 다시 묻는다. 총기 사고는 얼마나 발생하냐고. 밀리는 사실 현실에서도 그건 꽤 큰 문제라고 답한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게임 프리 시티는 현실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는 게임이다. 정도나 빈도가 높을 뿐이지 경쟁, 폭력,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게임 속 자극과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가이를 보고 깨닫는다. 우리가 얼마나 생각 없이 주변을 헤치고 무시해왔는지. 얼마나 오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고 살았는지. 그리고 이 세계에 필요한 진정한 히어로는 어떤 모습인지. 이에 대한 정답을 찾은 플레이어들은 NPC들이 자유로운 삶을 꾸려가는 프리 라이프를 보며 위로와 편안함을 얻게 된다. 우리의 세계도 프리 시티보단 프리 라이프에 가까우면 좋을 텐데, 아직 멀었겠지.
“난 당신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예요.”
프리 라이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지금껏 프리 시티와 가이에 대해 실컷 이야기했으니 이젠 밀리와 키스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가이는 모로토프 걸(밀리)을 만난 후 선글라스를 쓰고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그 순간, 친절한 은행원이라는 덮개 밑에 가려져있던 ’짝사랑 남‘의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키스가 가이에게 심어놓은 그 알고리즘은 밀리를 지켜주기도 하고, 그녀와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며 관계를 끈끈하게 발전시킨다.
키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밀리의 조각들을 게임 속 세계에 심어놓는다. 밀리가 좋아하는 풍선껌 아이스크림과 그녀의 좋은 추억이 담긴 그네, 밀리의 취향대로 맞춰 타는 크림과 설탕 두 스푼이 들어간 커피. 그리고 밀리가 좋아하는 파란 셔츠의 남자. 가이는 알고리즘에 의해 밀리에게 끌리게 되고 밀리는 자신과 잘 맞는 남자 가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프리 가이>에서 현실과 게임 세계를 오가는 건 밀리가 유일하다. 키스는 게임 속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현실에서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자신이 만들어둔 가이라는 짝사랑 남을 통해 게임 속 모로토프걸(밀리)을 돕는다. 이 게임의 중심을 바치고, 게임 속 세계를 구할 수 있었던 건 게임을 향한 두 사람의 사랑과 밀리를 향한 키스와 가이의 사랑이 가진 힘의 역할이 꽤 크지 않았을까.
‘플레이어들에게만’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가 주어진 도시 프리 시티는 일부 사람들만 자유를 느끼며 살아가는 장소였다. 가이와 키스, 밀리는 프리 시티 너머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냈고 게임은 ‘프리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새로 탄생한다. 누구도 타인을 조종하지 못하며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발전하는 평화로운 세상. 밀리와 키스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세상이 이제 완성됐다.
내가 이 삶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고, 내 앞에 펼쳐진 바다를 건널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내가 나를 정의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있을 때 <프리 가이>를 한 번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기분 좋아지는 영화는 참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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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 피부, 돼지로 그려낸 일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셸 프랑코 감독의 신작이자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썬다운>의 첫인상은 여유롭고 느긋하다. 동생 '앨리스(샤를로뜨 갱스부르)'와 조카들과 함께 멕시코 해안 리조트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닐(팀 로스)'은 문자 그대로 평화롭다. 그가 칵테일에 위스키를 추가로 넣어 마시는 조카와 장난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이 가족의 휴가에 함께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도 느껴진다. 어울리지 않는 타이밍에 삽입된 죽어가는 물고기의 눈빛, 뭐가 보이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스크린에 비치는 닐의 피부는 보이지 않는 불안감을 자극한다. 활달한 조카들과는 대조적으로 묘하게 무기력한 닐의 모습은 그 불안감에 물음표를 더한다.
물음표에서 태어난 모호함은 닐이 겪는 일련의 사건, 그리고 그의 선택 때문에 더욱 커져 간다. 갑작스레 전해진 어머니의 임종 소식에 공황에 휩싸인 앨리스와 조카들을 데리고 급히 공항으로 향한 닐. 그런데 그는 갑자기 여권이 없다면서 호텔에 돌아가 여권을 찾은 뒤 다음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공항을 빠져나온 닐은 가족과 머물던 호텔이 아닌 다른 호텔로 향하며, 호텔방에서 짐을 푸는 그의 캐리어에는 여권이 보인다. 이후 핸드폰을 아예 끈 다음 유유자적하는 닐은 해변가 상점 주인인 '베리디세(이아주아 라리오스)'와 함께 밤을 보내고, 해변에서 난데없이 총살이 발생했음에도 닐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휴식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닐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비윤리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잔혹하기에 충격적이다.
이때 영화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닐의 동기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힌트를 제시한다. 바로 태양이다. 작중 닐의 시점에서 태양을 보는 숏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런데 태양을 대하는 닐의 태도가 미묘하다. 일반적으로 해변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이들에게 태양은 반가운 존재다. 반면에 닐은 시종일관 태양빛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태양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더욱 부자연스럽다. 예로부터 인간에게 태양은 언제나 가장 긍정적인 요소들의 집합이었다. 어둠을 이기고 떠오르는 태양은 세상의 창조와 생명의 시작, 그리고 희망을 뜻했다. 또한 태양에서 나와 어느 곳이든 공평하게 비추어주는 햇빛은 정의였다. 이집트의 태양신인 라, 아몬, 프타 등이 창조신이고, 그리스의 태양신인 아폴론이 광명의 신이었던 이유다.
따라서 닐은 태양을 거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신경 쓰지 않고, 희망도 품지 않은 채 무기력하고, 아들과 가족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의무를 외면하며 정의와 질서를 무시한다. 그저 자신만의 휴가와 안식만을 지키고자 한다. 닐은 늘 사회적 통념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처럼 닐의 기이하고 이해 불가능한 행동이 서스펜스의 주재료다. 장례식과 뒷수습을 홀로 마친 앨리스가 잠적한 채 자신 만의 루틴으로 휴가를 즐기는 닐의 앞에 나타났을 때 닐이 보여준 태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자신의 거짓말을 전부 인정한다. 가족이라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며 그저 월급만 받으면 된다며 손쉽게 계약서에 서명한다. 앨리스가 그들의 재산을 노린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평정심을 유지한다. 용의자로 지명되어 교도소에 갇힌 후에야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지만, 이마저도 여동생을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베레디세의 안위만 걱정하고,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그녀를 만나 섹스를 하는 모습이 그 증거다.
평화로운 휴가 이면에 깃든 불안함과 모호함을 잔뜩 끌어올린 후에 비로소 영화는 닐이 태양을 거부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답은 그의 피부에 있다. 교도소에서 나와 베리디세와 함께 장을 보고 그녀의 집에 방문한 닐은 갑작스레 계단에서 굴러 기억을 잃는다. 베리디세 덕분에 무사히 멕시코시티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이송된 닐. 그러나 의사는 피부에 생긴 악성 종양이 이미 온몸으로 전이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닐도 본인의 남은 삶이 시한부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제야 영화 초반부터 등장했던 태양과 클로즈업된 피부 간의 관계에는 의미가 생긴다. 남은 삶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닐의 입장에서 밝은 태양은 자신의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태워버릴 듯한 태양과 햇빛에 의해 타오를 듯한 피부 이미지의 유사성은 남은 삶에 대한 닐의 집착을 암시한다.
그 순간 태양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셸 프랑코 감독은 작가노트에 "태양은 태곳적 공간을 지배한다. 햇빛은 항상 무자비하고 직접적으로 사물을 때린다. 태양의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를 반영한다. 인물들의 정서적 상태, 그리고 그 주위의 만연한 폭력"이라고 적었다. 마치 이집트 사람들이 태양의 호의적인 측면과 포악한 측면을 각기 암소의 모습을 가진 하토르 여신과 암사자의 모습을 한 세트메트 여신으로 생각한 것처럼, 영화 속 태양 역시 양가적 측면을 모두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 햇빛이 유달리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밝은 태양은 아름다운 휴가를 빛내지만,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따갑고 강렬하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접했던 태양이 삶을 의미했다면, 이제 태양은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닐은 남은 삶에 집착하면서도 그 삶을 무기력하게 소비하는 아이러니한 태도를 취한다. 죽어가는 자신과 대비되는 태양은 물론, 죽어가는 자신과 유사한 햇빛마저도 밀어내려는 것이다.
이렇게 양가적인 닐의 태도는 마지막 힌트, 난데없는 돼지의 등장에 집약되어 제시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외면하고, 여동생의 슬픔을 짓밟으며, 조카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파괴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채 그저 자신만의 시간과 쾌락에만 몰두하는 그. 그런데 교도소에서 닐은 영국 축사에서 키우는 돼지 한 마리가 보이는 환시를 겪더니 작중 처음 심리적으로 흔들린다. 심지어 장을 보고 베리디세의 집 계단을 오르던 중 피투성이가 된 돼지 사체 환시를 보더니 기겁하면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외부의 그 어떤 사건과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던 닐이기에 그의 리액션은 더 의미심장하다. 축사에 갇힌 돼지들에게 주어진 운명이 '죽음' 밖에 없다는 걸 고려하면, 죽어가거나 죽은 돼지를 본 닐은 그 역시 돼지처럼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격렬한 반응은 자신의 쾌락만을 생각하며 지냈지만 결국은 죽음을 외면할 수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숙명을 마주한 좌절과 절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썬다운>의 끝을 장식하는 간접적인 일몰의 이미지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고요함으로 가득하고, 자조적이고 체념적이다. 마지막 순간 카메라는 바다를 배경으로 테라스에 놓인 의자를 비춘다. 이 장면 속에서는 어떠한 생명도 느껴지지 않는다. 햇빛은 가득하지만 정작 화면에는 죽음의 이미지만이 가득하다. 태양의 따뜻함을 담당하는 하토르 여신이 역설적으로 죽음과 망자를 돌보는 '아름다운 서방의 여신'으로도 여겨졌듯이, 마지막 장면에는 일몰이 없어도 일몰이 느껴지는 태양의 양가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는 평화와 불안함이 동시에 느껴지던 초반부를 환기하는 서늘한 수미상관과도 같다.
더 나아가 <썬다운>이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 너머를 말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태양, 피부, 그리고 돼지라는 부자연스러운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모호하고 상징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사이에는 더 다양한 해석의 공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셸 프랑코 감독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투쟁을 다루었던 디스토피아 스릴러 <뉴 오더>로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차지했던 바 있음을 고려하면, 닐의 이야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몰락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로도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닐의 집안이 축산업으로 상당한 자산을 축적한 가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맥없는 그의 모습은 돈에 신물이 난 사람처럼 보인다. 또 축산업처럼 다른 대상을 수단적으로 이용하는 돈벌이에 실망하고, 그 과정에서 트라우마 혹은 죄의식에 빠진 사람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를 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그의 발악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의 표출로 느껴진다. 하지만 여동생과 조카들이 끝내 그를 찾아내고, 그들 간의 대화가 결국 돈과 계약서로 귀결되는 것은 닐이 죽음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듯이, 계속해서 죽은 돼지를 보듯이 시스템 밖으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닐이 영국인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영국에서 최초로 탄생했기에 어머니의 죽음은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를 말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일몰을 기다리는 닐의 모습은 해답을 찾지 못한 이들의 자조이자 한탄에 가깝다. 달리 말해 <썬다운>은 현대 사회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위한 시인 셈이다. 이렇게 <썬다운>은 평화로운 해변의 일몰에 담긴 죽음이 과연 누구의 죽음 일지 거듭 고민할 공간을 열어 놓은 채 싸늘하게 마무리된다.
E(Exceed Expectations, 기대 이상)
죽어가는 것들을 위한 시. 죽지 않을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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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직한 후보2> 메인 예고편
거짓말 못하는 ‘진실의 주둥이’ 컴백! 이번엔 2명?! 서울시장 선거에서 떨어지며 쫄딱 망한 백수가 된 ‘주상숙’은 우연히 바다에 빠진 한 청년을 구한 일이 뉴스를 타며 고향에서 화려한 복귀의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정직하면 할수록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지지율 앞에 다시 뻥쟁이로 돌아간 그 순간, ‘주상숙’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진실의 주둥이’! 이번엔 ‘주상숙’의 비서실장 ‘박희철’까지 주둥이가 쌍으로 털리게 되는데... 재미도 2배! 웃음도 2배! 주둥이 대폭발 코미디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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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웬델&와일드> 공식 티저 예고편
헨리 셀릭(《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코렐라인: 비밀의 문》 감독)과 조던 필(《놉》 《어스》 《겟 아웃》)의 유쾌하고도 짓궂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작품. 과거에 시달리는 고민 많은 청소년 캣(리릭 로스)은 옛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내면의 악마들인 웬델과 와일드(키건마이클 키, 조던 필 연기)를 마주해야 한다. 《웬델 & 와일드》에는 앤젤라 바셋, 제임스 홍, 빙 라메스도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