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9 16:57:54
[BIFF 데일리] 고립과 정박, 그러나 실재
영화 <생존자의 땅> 리뷰
DIRECTOR. 루루 헨드라(Loulou HENDRA)
CAST. 셰니나 시나몬(Shenina CINNAMON), 아르스웬디 베닝 스와라(Arswendy BENING SWARA), 앙가 유난다(Angga YUNANDA), 유수프 마하르디카(Yusuf MAHARDIKA) 외
PROGRAM NOTE.
마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다 위에 부유하는 허름한 수상가옥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래전 땅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다약 원주민인 그녀는 광산 개발로 인해 땅을 빼앗기고 한 노인에 의해 구조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도 잃고 친척들과의 연락도 끊기게 된다. 십 년 넘게 바다 위에서 생존하지만 뭍에는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땅에 발이 닿기만 해도 혼절해버리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불길한 장소가 돼버린 땅이지만 그녀는 땅과 그 위의 생명들을 그리워한다. 낡고 무너져가는 집이 언제까지 물 위에서 버텨줄지도 알 수 없다. 인도네시아의 신예 루루 헨드라 감독의 <생존자의 땅>은 트라우마에 갇힌 인간의 몸부림과 내면적 성장에 대한 영화적 고찰이다. (박성호)
감독은 탄광 지역 개발로 삶이 불안해진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를 보며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불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졌다. 영화는 소음에 가까운 거대한 기계음만 들어간 까만 화면으로 시작해, 이내 기울어진 물 위의 집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그 불안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힘을 세밀히 흘려 보낸다.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집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마이와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대다수의 한국인은 자신이 섬에 속한 존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한 면이 막힌 반도에서의 삶은 이따금 섬의 생활을 그려보게 하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온전히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 사는 삶과는 분명 감각이 다르다. 여기에 재해처럼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일들까지 더해지면 불안은 배가된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인공 마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물러난 곳에 있다. 땅을 밟으면 코피를 쏟으며 기절하는 마이의 증세는 심리적 사유 외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영화는 이러한 증세가 찾아오기까지 마이의 삶에 있었던 굴곡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따금 대화에서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삶과 마이 부모님의 죽음 이야기를 통해 막연하게 짐작하게 할 뿐이다. 확실한 건 현재 마이가 거의 유령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인간들이 쉽고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위에 제약을 얻은 존재.
그 때문에 마이의 집은 물 위에 배로 떠올린 곳이다. 기본적으로 고립을 특성으로 하는 공간이다. 키우는 닭 또한 흙 없이 갑판 위에 뿌린 모이를 쪼는 것밖에 할 수 없고, 많지 않은 마이의 대사는 대부분 할아버지를 향해 집에 대한 불안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내용으로, 거칠고 짤막하게 구성된다. 마이의 세계는 말로 재구성되는 양이 많지 않다.
할아버지 친구의 손자이자 마이에게 계속해서 친절한 손을 뻗어 오는 유스, 인도네시아의 군사문화 잔재의 기운이 드러나는 제복을 입고 외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와, 두 사람을 만날 때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마이의 욕구는 단순하다. 다친 물소를 돌보고 싶고, 땅을 밟고 싶다. 이외에 대사로 발화되지 못한 마이의 마음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 만날 수 있는 고목에 속삭임으로 전달된다.
고목 옹이에 입을 대고 마음을 전하는 마이는 결국 뭍의 존재들을 믿지 말라던 할아버지의 손녀다. 조상을 향한 할아버지의 기도는 비록 원하는 방향으로 응답된 적이 없지만, 조상들이 자신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현실에 손길도 미치고 있다고 믿는 마음 또한 실재(實在)를 중시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물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야기할 때 사진을 보여주는 라와와 달리, 실재만을 믿고 증거로 채택하는 유스 또한 같은 할아버지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땅 너머로 몰아낸 자들의 존재는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탄광 회사는 두어 장면을 제외하면 말 속에서만 존재하고, 영화는 그들을 묘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실재를 믿는 사람들의 영화에 실재하지 않음으로써 탄광 회사의 위치는 명확해진다. 그리고 더더욱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존재감을 갖게 된다. 마이와 할아버지가 처한 답답한 고립과 정박의 상황을 그들은 알지도 못한다. 검은 화면에 기계음만 들어가 있던 첫 장면과, 바로 이어진 마이의 집 장면의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사진으로 증거를 삼는 라와, '자기 인생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면서 할아버지의 결정은 들어주지 않는 삼촌의 존재는 마치 그 탄광 회사의 그림자 같다. 자기 이득을 위해 말을 이리저리 가져다 붙이고, 실재하는 것을 직면하기보다는 말이나 사진으로 재구성된 것들을 믿고 싶어 한다.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무고해 보이는 선택들이지만, 이 선택들이 누군가를 땅 끝으로, 땅 너머로 몰아내고 있음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탄을 가득 실은 거대한 콘테이너 배가 스크린을 가로지를 때, 그 앞에 작은 조각배를 띄우고 두 다리 단단하게 선 사람의 뒷모습이다. 마치 이 영화 자체 같은 장면이었다. 환상의 악기 연주와 아름다운 춤처럼, 이 영화처럼, 불안을 흩뿌리는 탐욕에 맞서 고립되고 정박된 존재들은 늘 유약하다. 그러나 인간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고립되고 정박되었어도 이들은 두 다리로 여기에 실재한다. 현실 속의 마이와 같은 존재들이 어디 있는지, 나는 또 어디에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였다.
10/04 16:00 영화의전당 소극장 (상영코드 078)
10/05 10:00 CGV센텀시티 3관 (상영코드 157)
10/09 10:00 CGV센텀시티 7관 (상영코드 447)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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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9일 토요일의 팜 스프링스, 여름이었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니 귀신같이 아침의 하늘색이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래졌고, 저녁의 풀벌레 소리가 ASMR로 자동 재생된다. 24절기의 정확함에 이번 환절기도 소름이 돋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팜 스프링스는 사막 지역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여름 기간은 너무 덥다. 대신에 11월부터 5월까지의 날씨가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하와이안 셔츠와 찢어진 청반바지, 그리고 시원한 물놀이가 잘 어울리는 11월 9일 토요일에 탈라와 에이브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포스터의 단서들을 보며 영화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도록 하겠다.
영화 <팜 스프링스> 한국어 포스터
위에서부터 살펴보면,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95%의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 공개된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대상으로 하는 제78회 골든글로브의 작품상과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쉽지만 수상에는 실패하였고, 둘 다 <보랏 속편>에 영광이 돌아갔다. 이 외에도 제37회 선댄스 영화제의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 대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이는 <미나리>가 수상하게 되었다.
'타임 루프 썸머 로코'라는 친절한 설명처럼 포스터 속의 두 주인공은 11월 9일 토요일에 갇혀버린다. 신랑 하객인 나일스가 먼저 끝도 없이 반복되는 11월 9일 토요일을 지겹도록 겪는다. 나일스가 걱정되었던 신부의 언니 세라는 그를 따라 동굴로 들어가다가 함께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버린다.
'내일을 원하는 여자' 세라는 양자역학을 마스터하며 11월 10일 일요일로 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늘만 사는 남자' 나일스는 반복된 날들 속에서 안전한 일탈을 하며 작은 변화를 만끽한다. 세라는 날짜가 제대로 넘어가는 세상에서 나일스 없이 지루할 것을 두려워하고, 나일스는 세라가 없는 11월 9일 토요일 속에서 아무런 기쁨을 얻지 못하여 괴로워한다. 또한 왼쪽에 있는 표지판에 그려진 염소는 세라의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고, 오른쪽에 있는 경비행기는 안전한 일탈의 최고점을 선사해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수영장은 이들이 겪어온 11월 9일 토요일의 시간을 의미하는데, 무한대를 의미하는 기호가 개봉 날짜 옆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앉아있다.
'여름이었다'라고 해도 캠핑하는 밤에는 겉옷이 필수이다.
'wake up'
영화밖에 살고 있는 우리도 휴대폰 알람의 성화에 번쩍 눈을 뜬다. 지금처럼 특히 일상이 제약된 환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혀 반복된 일과를 해내다 보니 매일매일 달력의 숫자는 넘어가도 마치 유사 타임 루프에 빠져버린 것 같은 착각을 느낄 때가 많다. 어제와 오늘이 너무 똑같아 지루함을 떨쳐내 버리려는 몸부림으로 끊임없이 놀거리를 탐색하고 실행하지만, 이내 의미 없다는 허무로 마무리해 본 적도 많다. 나일스와 세라가 11월 9일 월요일을 가장 진심으로 대한 날은 마지막이라는 각성이 있을 때이다. 그 각성은 놀만큼 충분히 놀아봐야 비로소 찾아오는 얄궂은 손님이다. 머물다가 금세 또 떠나면 다시 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영화 <팜 스프링스>는 OTT 서비스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적절한 재미와 일상에 대한 명상이 훌륭하게 배합되었다는 칭찬을 이렇게 간단한 말로 표현해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마침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만 서비스되고 있는 훌루(Hulu) 오리지널 영화이기도 하다.
2021년 8월, 영화 <팜 스프링스>를 보았다. 여름이었다.
* 해당 리뷰는 씨네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원본 글 및 더 많은 글은 브런치 삐뚜로빼뚜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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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힘과 책임을 깨닫는 피터 파커의 이야기
이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성인으로 성장한다. 성장의 과정은 쉽지 않다. 호르몬의 변화로 신체도 변해가고 생각도 복잡해진다. 그래서 그 성장의 시기는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은 모든 청소년들이 겪는 과정이고 성인이 된 사람들도 그 과정을 거쳐 어른이라는 새로운 시기로 접어든다. 아직 주변에는 자신을 책임져 줄 수 있는 부모나 어른이 있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친구들과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아이 자신의 탓도 있겠지만 부모가 그 책임을 대신하기도 한다.
성장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은 자신이 가져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각자가 가지는 책임은 다를 수 있다. 아주 큰 힘을 가지게 된 경우에는 그 힘을 어떤 방식으로 써 나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힘은 공부를 잘하는 노하우가 될 수도 있고, 부모로 부터 얻은 재력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신체적인 힘이 그 힘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각자가 가진 힘을 활용하는 것은 청소년 시기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많은 청소년들은 그 책임의 범위와 자신이 가지는 힘이 어디까지 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장기 피터 파커의 고민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피터 파커(톰 홀랜드)의 이야기를 담는다. 피터는 우연히 거미에 물려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힘을 친구들에게 신체적 우월함을 돋보이는 도구로만 사용했지만 주변에 나타나는 악당들을 처치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에서 자경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피터는 알지 못한다.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피터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이었는데 그를 직접 만나면서 다른 영웅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고 어벤저스의 일원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 그동안 마블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의 역할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그저 조금 어린 청소년 영웅으로서 어벤저스에서 감초 역할을 하고, 토니 스타크와 유사 부자 관계를 만들게 되면서 그저 어린 영웅 정도로 다뤄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토니 스타크의 죽음을 경험하고 본격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면서 심적 괴로움이라는 고난을 맞게 된다. 전편이었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본격적으로 마블의 스파이더맨이 정신적 고뇌를 겪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는 아버지 같은 영웅인 아이언맨이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를 통해 대체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스테리오는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는 정체를 공개함으로써 피터를 혼란의 정점으로 끌고 간다.
피터 파커라는 인물은 늘 청소년이었다. 나이가 어린 영웅이었기 때문에 가족의 죽음을 겪었고, 자신의 잘못으로 주변 사람을 잃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과거 샘 레이미 감독 버전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도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벤 삼촌을 잃게 되었고, 마크 웹 감독 버전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의 피터 파커(앤드류 가필드)도 벤 삼촌과 여자 친구 그웬을 잃는 상황을 맞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 안에서 심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는 과정이 영화 내내 이어졌다. 그 혼란은 어쩌면 그들이 얻게 된 힘을 쓸 때의 무게감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마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피터 파커가 겪는 혼란
마블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의 피터 파커는 그런 혼란을 제대로 겪지 않았다. 토니 스타크를 잃기는 했지만 그 주변에는 그의 마음을 챙겨줄 사람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의 여자 친구인 MJ(젠데이아 콜먼), 절친 네드(제이콥 베털런)과 큰 엄마 메이(마리사 토메이)는 피터의 옆에서 그를 돕거나 그가 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그가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력이 뻗어나가게 된다.
아마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는 마블 유니버스 시리즈 중에서 피터 파커라는 인물이 겪는 가장 힘든 고통이 담긴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는 자기 자신이 가진 힘이 가져올 안 좋을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고 자신이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의 축 처진 어깨는 그가 짊어진 짐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영화 내내 피터는 그가 가진 힘으로 파생된 부정적 영향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서는 피터가 자신이 겪을 부정적인 일들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비치)를 찾아가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는 주문을 부탁한다. 기억을 지우는 행위는 영화 속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어찌 보면 피터에게 가장 간단하게 자신이 가진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 주문에 문제가 생기면서 영화 속 세계는 붕괴 직전에 놓이고, 피터에게는 자신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여러 문제들이 닥쳐온다. 각종 빌런들의 등장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피터의 모습이 담기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피터 파커가 가지고 있는 ‘선함’이 이 영화에서도 핵심적인 내적 도덕적 갈등으로 발현된다.
지금까지 여러 배우가 연기한 세 종류의 피터 파커가 있지만 이 캐릭터들이 가진 고민은 모두 자신이 가진 책임에 대한 것이었고, 그들이 가진 특유의 선함을 활용한 해결 방식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고수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선하고 악당들도 다시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핵심적인 기재로 깔고 있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이 분노에 가득 차 누군가를 살인하게 되거나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고민들이 영화적 긴장으로 발현된다.
지난 <스파이더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팬들을 위한 헌사
피터 파커라는 인물이 하는 고민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청소년 시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을 슈퍼히어로 영화 안에 녹여놓았을 뿐이다. 이제 성인이 되기 직전인 청소년이 가지게 될 책임과 자신의 힘 때문에 받게 될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이라는 시리즈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청소년들이 거미 능력을 가지게 되지는 않겠지만 모든 청소년은 그 자신이 가진 능력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를 반드시 거친다. 그런 성장기의 고민이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도 잘 담겼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과거에 제작된 토비 맥과이어 버전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나 앤드류 가필드 버전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만족할 만한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전 버전의 <스파이더맨>에서 등장했던 빌런들인 닥터 옥토퍼스(알프레드 몰리나), 그린 고블린, 일렉트로(제이미 폭스) 등이 모두 등장하고 과거 시리즈의 대사,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 팬들을 추억에 잠기게 할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명대사가 이번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또한 영화 음악도 기존 OST의 노래들을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빌런이 등장할 때 각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빌런들의 테마가 배경으로 흘러 예전 영화를 보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를 연출한 존 와츠 감독은 <스파이더맨 홈 커밍>,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을 연출했었는데, 이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 연출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블에서 시작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향후 대학생 버전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이어진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지만 연출자가 바뀔지 어떤 방식으로 시리즈가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피터 파커가 가진 고뇌와 책임을 제대로 정리했기 때문에 향후에 마블에서 시리즈가 더 이어진다면 그가 어떤 방식의 삶을 택했는지, 주변 사람들과는 어떤 식으로 생활하게 될지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와 이야기들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를 관람할 계획이 있다면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야기의 플롯은 간단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용을 먼저 알기보다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영화의 재미를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FZkg4Fdi4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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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 크라이스트> - ‘성경의 실수를 되짚는 이브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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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크라이스트 (Antichrist)
개봉일 : 2011.04.14 (한국 기준)
감독 : 라스 폰 트리에
출연 : 윌렘 대포, 샤를로뜨 갱스부르, 스톰 아체체 살스트롬
‘성경의 실수를 되짚는 이브의 광기’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올해의 가장 폭력적인 경험을 한 영화는 <사울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흐리게 처리되긴 했지만 충분히 폭력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영화를 통해 경험한 그 시대의 한 조각이 내 마음을 흠씬 후려 팬 영화였다. 근데, <안티 크라이스트>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올해.. 아니 어쩌면 내 20대의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는 이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영화의 뜻과 장점들을 제외하고 온전히 ‘영혼에 입은 대미지’만 따진다면 <안티 크라이스트>가 1등이다.
지난여름이던가, 메가박스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전을 할 때, 이 감독님의 작품에 입문을 해볼까 고민했다. 그때는 ‘마니아층은 있으나 호불호가 극히 나뉘는 스타일의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과감하게 다른 기대작들을 먼저 감상하고, 감독전을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현명한 결정이었다 싶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다면 더 큰 대미지를 입고 울상으로 집에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미드 소마>를 보고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멘탈인데.. <안티 크라이스트>는 힘들었다. 유리 멘탈이신 분들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피해 가시라고 경고하고 싶다. 궁금하다고 막 볼만한 작품 색은 아닌듯하다.
음울함이 감도는 색들을 한계점 없이 풀어놓은 영화 <안티 크라이스트>는 제목처럼 반기독교적인 요소가 있는 영화다. “성경은 말도 안 돼!”라는 식의 반감을 표했다는 건 아니고,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성스러운 그 이야기에 눈치채지 못한 또 다른 힘이 있지 않았는지.. 결함이 있진 않은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담과 이브가 아니지만 두 사람이 갈등하는, 고통으로 가득 찬 장소의 이름은 ‘에덴동산’이다. 고통을 모두 정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와 마녀가 되어버린 그녀는 에덴동산에서 각자 다른 방법으로 고통과 삶을 정의하려 한다. 이들은 실존에 의미에 맞서고 또 무너진다.
욕망으로 인해 시작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서서히 어두움에 눈을 뜨고 욕망의 시작점을 잘라내려 한다. 그는 그녀의 고통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하고 억제하기 위해 손에 더 강한 힘을 준다. 실존하는 고통, 욕망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 그리고 결국엔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끝을 맺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써 내려간 에덴동산의 이야기. 여전히 해석되지 않는 부분도, 상당히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언젠가.. 새로운 질문이 떠오르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한 번쯤은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안티 크라이스트 시놉시스
눈발이 아름답게 흩뿌려지고 있는 깊은 밤, 그와 그녀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들의 어린 아들은 잠에서 깨어나 열린 창가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다 창밖으로 추락하고 만다. 아들을 잃은 그녀는 깊은 슬픔과 자책감으로 점점 병들어 가고 그는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에덴'으로 함께 떠난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현대판 아담과 이브의 애증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경악스러운 결말이 그들 앞에 펼쳐지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그와 그녀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눈다. 마치 성스러운 의식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흘러가고, 잠에서 깬 아이가 엄마 아빠의 눈에서 벗어나 집안을 누빈다. 책상을 지키고 있던 PAIN, GRIEF, DESPAIR. 고통, 슬픔, 절망의 이름을 가진 3개의 장식품을 손으로 밀어낸 아이는 창밖으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비탄에 잠긴다. 그는 슬픔과 비탄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을 낚아채 모두 괜찮아질 것이라 포장한다. 슬퍼하는 그녀를 비추던 카메라는 그가 슬픔의 무력함을 강요할 때마다 그의 힘에 강제로 이끌리듯 시점을 바꾼다. 심리 치료사인 그는 슬픔에 빠진 그녀를 치료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가족은 치료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며 그의 치료를 은근히 거부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두려운 게 뭔지 모르겠어.”
슬픔에 빠져있는 그녀에게 그가 묻는다. 무엇이 가장 두렵냐고. 쉽게 특정 대상을 떠올리지 못하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머물며 논문을 준비했던 ‘에덴동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꼽는다. 그는 두려움을 깨 부셔야만 그녀의 슬픔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에덴동산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에덴동산에 머물며 논문의 주제인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마녀사냥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여자의 본성도 악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녀는 그렇게 에덴동산에서 악에 물들고 미쳐간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에 손을 댔던 이브처럼.
그녀는 고통, 슬픔, 절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들이 오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의 죽음과 동시에 고통, 슬픔, 절망을 모두 떠안게 된 그녀는 점점 병들어가고 다음으로 다가올 죽음의 제물을 고르듯 그를 속박한다. 그녀는 그가 숨어들어간 나무뿌리를 미친 듯 파헤치고 발목에 무거운 돌을 단다. 그리고 아이를 죽게 만들고 고통, 슬픔, 절망을 불러온 욕망의 시작점(성기)을 짓이기고 잘라내며 광기를 표출한다.
“혼돈이 지배하리라.”
고통, 슬픔, 절망.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쏟아낸 강요와 폭력. 에덴동산에 머물던 그와 그녀는 광기와 폭력에 휘청이다 결국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든 것이 파멸한다. 그는 결국 그녀를 목졸라 죽이고 마녀를 처리하듯 화형을 진행한다. 슬픔으로 인해 먼저 미쳐가기 시작한 건 그녀였지만 슬픔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는 그녀에게 슬픔으로부터의 도주를 강요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대로 그녀의 운명을 정리한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무신론자)으로서 성경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여전히 배우고 따를만한 점들이 많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성경을 근거로 행해지는 폭력들도 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폭력을 정당화했던 십자군 전쟁과 성경 구절의 예언서를 기준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죄 없는 여성들을 화형 시켰던 마녀사냥.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성 억압과 동성애 혐오 등.. 예수에 대한 그릇되고 광적인 믿음으로부터 발생한 폭력들을 언제까지나 부정할 수만은 없다.
<안티 크라이스트>는 에덴동산에 떨어진 그와 그녀를 통해 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마녀사냥이라는 여성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악한 감정을 품은 그녀를 마녀처럼 화형 한 그와 에덴동산으로 모여드는 수많은 얼굴 없는 여성들, 나무뿌리 밑에 깔려있는 수많은 손들을 보며 완벽할 것만 같았던 성경의 오류를, 그로 인한 죽음을 한 번 더 되짚어본다.
우울하고 기운 빠지는 색채와 그녀의 광기에 휩쓸려 무릎을 꿇고 있다가 마지막 불꽃이 타오를 때가 돼서야 희미하게 정신이 들었다. 찾아보니 <안티크라이스트>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 중 그나마 약한 축(?)에 속한다는데.. 대체 약하지 않은 작품은 어느 정도일지 기대되고 두렵다. 솔직히 연달아 볼 만한 작품들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충격이라..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멘탈이 짱짱하게 회복되었을 때 그의 다른 작품에 슬쩍 발을 담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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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사람이 살면서 단 한 번 밖에 경험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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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크로스 아이콘 김환희 배우의 작품 <안녕하세요>. 영화 <안녕하세요> 상영 이후 액터스 토크가 예정되어 있어서 사실 작품보다 이후 진행될 액터스 토크를 기대하며 보러간 작품이었는데, 작품 자체를 보면서 너무 많이 감동을 받고 공감했던 영화였다.
영화 <안녕하세요> 시놉시스
보육원에서 자란 고3 학생 수미. 어느 한곳 기댈 데 없는 수미가 희망을 등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순간, 호스피스 간호사 서진이 이를 극적으로 막아선다. 이후 갈 곳 없는 수미는 죽는 법을 찾으려 서진이 일하는 호스피스 병원을 찾아가고, 삶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처음으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위로를 받는다.
* 해당 내용은 서울국제영화제 공식홈페이지 소개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안녕하세요>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김환희의 연기력은 정말 최고였다
이렇게 꺼이꺼이 운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사실 극 중 등장인물이 죽으면 눈물 수도꼭지가 열리는 타입이라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기에 당연히 울 것이라 예상을 했으나 이렇게 펑펑 울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마 그 이유는 김환희의 연기력 때문이었다. 고아로 보육원에서 자라온 수미는 원장의 폭력과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받은 핍박, 그리고 학교에서의 따돌림으로 인해 지옥같은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 수미 역할을 한 환희는 정말 얼굴이 암흑 그 자체여서 정말 그런 경험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 캐릭터에 빙의돼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사랑을 받아오지 못한 수미의 모습과 그래서 소심하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잘 살렸고, 점차 수간호사 서진과 함께하고 호스피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들의 사랑을 받으며 밝아지는 수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 걸음걸이 부터 달라지고 움츠리고 있던 어깨가 펴지는 모습을 보면서 김환희 배우가 정말 연구를 많이 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행복이라는 감정을 알아가면서 슬픔의 고통을 함께 알아가고 이별 후에도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깨우쳐가는 감정의 성장기를 너무나도 잘 풀어내고 있어서 절로 수미라는 캐릭터에 이입됐고, 그래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관심은 해결이 아닌 공감이다
서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영화 <안녕하세요>는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관심은 무엇일까?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관심은 공감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수미는 고아라는 이유로 보육원에서도 학교에서도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수미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왜?? 왜 폭력을 당하는데 가만히 있니? 내가 어떻게 해줄까?이다. 그럴 때마다 수미는 고아이기 때문에라고 설명을 하고, 이렇게 말하는 과정에서 수미는 더더욱 상처를 받을 뿐이다.
그런 수미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준 이들은 바로 호스피스 병동의 사람들이었다.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고, 혹은 묻지 않고 그저 옆자리를 지켜줌으로써 수미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고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공감이 전제되지 않는 해결은 그저 피상적인 문제를 없애버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시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고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주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진실된 공감과 함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 <안녕하세요>는 수미가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를 호스피스 병동에서 제공해주고 있었고, 수미가 그토록 원했던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서 아팠던 마음을 치료해나갈 수 있었다.
마지막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죽는 법을 알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수미는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인데 너무나도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라면 시한부 판정을 받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까? 반문을 하게 만들기도 했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박노인은 수미에게 죽는 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이 대사는 꼭 시한부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기한이 정해지면 그 남은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무한이라면 그 가치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쯤은 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매 순간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서 그 긴장을 이완하고 쉬어가는 타임이 분명 필요하지만 솔직히 열심히 해야 하는 순간에도 게으르고 나태한 자세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하루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에 따라서 죽을 때 얼마나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고 말하는 박노인을 보면서 ‘과연 나는 오늘 나의 하루에 최선을 다했는가. 후회가 남지 않는 하루를 보냈는가’ 생각을 하게 됐다. 언제 맞이할지 모르는 죽음이지만 후회없는 죽음을 위해, 인생에 단 한 번만 경험할 수 있는 죽음을 아름답고 찬란하게 맞이하기 위해 이 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지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해서 무섭고 슬픈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면서 오직 한 번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었던 영화 <안녕하세요>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전환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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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들의 '계보 (없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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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도터〉는 많은 여성에게 당연한 역할로 기대되는 동시에 너무도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감히 다른 결의 이야기를 보태기가 어려운 모성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영화다. 나아가 모성이 여성을 괴롭히거나 두렵게 하는 무언가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매개로 여성 간 연대의 불/가능성 역시 논한다. 영화를 감독한 매기 질렌할은 〈로스트 도터〉가 ‘여성의 정신이 깃든 영화’*라 말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이 표현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레다는 혼자서 그리스의 한 해변으로 휴가를 온다. 한적한 해변에서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던 레다. 그런데 한 대가족이 레다가 있는 해변에 오면서 변화가 생긴다. 그들은 해변이 자신들의 것인 양 행동하고 이에 불편함을 느끼는 레다에게 모욕적인 말을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레다는 그중 어린 딸아이를 둔 니나에게만은 호감을 느낀다. 아이를 잃어버린 줄 아는 가족에게 외딴곳에서 혼자 놀던 니나의 딸을 데려다주고 나서는 니나와 부쩍 가까워지기도 한다.
레다가 니나에게 느끼는 호감은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딸이 니나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귀찮게 구는 모습을 보며 레다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사랑스럽지만 때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자신을 괴롭히며 애정을 갈구했던 딸과의 과거가 니나의 모습에 겹쳐진 것이다. 레다는 딸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온갖 어려움을 홀로 떠맡아야 했다. 레다가 ‘여자’이자 ‘엄마’였기 때문이다. 이는 레다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와는 큰 관계가 없다. 설령 그가 ‘좋은 남자’일지라도 젠더에 따라 다른 노동이 기대되는 사회에서 레다의 짐이 줄진 않았을 것이기에.
그래서 결국 레다는 3년간 남편과 두 딸을 떠나 혼자 지냈다. 그녀에게는 자기 일을 중시하는 남편만큼이나 학자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이를 키우며 잊고 있었던 내면의 존재를 다시금 자각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다시 돌아오라고 무릎 꿇고 간청하는 남편의 절망적인 눈빛 앞에서 레다가 지어 보이는 단호하고도 평온한 표정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질식시키는 방식으로 삶을 이어갈 수 없었던 레다가 온전한 삶을 향한 과감한 도피를 감행하고자 결심한 그 슬픔이 깃든 자유로운 표정을 말이다.
그 후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레다는 교수가 되었고 자녀들과도 다시 가까이 지내지만 과거 자신의 행동이 아이와 가족에게 상처를 남겼음 역시 잘 알고 있다. 젊고 매력적인 여성인 니나가 자신이 젊었을 때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데서 레다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레다가 니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를 바라보는 표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대로라면 그 시선은 분명 안타까움이 깃든 연대의 시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니나를 바라보는 레다의 시선은 오히려 관음에 가깝다. 나는 레나의 젊은 시절 영상이 나오고 영화의 주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이 영화가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다. 아마도 성애적 욕망만큼이나 강력한 연대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연출이었을 것이다.
레다와 니나의 연결은 쉽지만은 않았다. 레다는 니나의 가족들에게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그들은 니나가 ‘불온한 여자’임을 본능적으로 감각한다. 그래서 니나가 레다와 함께 있는 걸 못마땅해하고 레다를 이상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만든다. 영화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남자들에게 레다가 항의하자, 관리인이 올 때만 다시 조용히 있으면서 레다를 골탕 먹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니나 역시 레다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결혼과 육아에 지친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레다가 딸과는 만들어내지 못했던 여성 간 연대가 같은 경험을 한 낯선 여성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질 참이다. 하지만 레다가 관계 초반에 충동적으로 한 행동으로 인해 어렵게 만들어진 연대의 가능성은 또 한 번 좌절된다. 니나가 마냥 행복한 줄로만 알았던 레다가 분노, 질투, 과거에 대한 회한 등이 뒤얽힌 충동적 감정으로 저지른 일이 모든 걸 망쳐버린 것이다.
이처럼 〈로스트 도터〉는 모성, 양육이 여성에게 끔찍한 굴레일 수 있음을 굉장히 섬세한 연출로 보여줌과 동시에 엄마와 딸 혹은 같은 경험을 가진 여성들의 연대가 왜 이리 어려운지를 고민하게끔 한다. 나아가 영화는 모성‧양육에 짓눌린 그들의 경험이 왜 아직도 주변부 담론으로만 취급되는지를 성찰하도록 요청한다. 왜 많은 사람이 같은 경험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도, 주류 담론은 그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자기 경험과 어긋나는 주류 담론에 질식하기 직전인 여성의 삶에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걸까? 레다는 끝내 딸과 니나 모두와 연결되지 못하고 혼자인 채 방치되어야 할까? 〈로스트 도터〉는 여성 경험의 ‘계보 (없음)’에 관한 슬픈 질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양육해본 적이 있거나 아이를 출산할 계획이 있는 여성의 정신이 깃든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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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그들이 유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그루(탕준상)'는 모든 유품에는 생전의 삶이 깃들어 있으며, 따라서 작은 흔적도 세심히 챙겨야 한다는 아버지 '정우(지진희)'의 교훈을 실천에 옮기며 아버지와 함께 유품 정리 업체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루 앞에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삼촌 '상구(이제훈)'가 법적 후견인으로 등장한다. 정식 후견인이 되기 위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상구는 본래 직업을 숨긴 채 그루와 함께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겠다고 나서고, 이에 그루는 새롭게 만난 삼촌 상구, 평생을 함께한 절친 '나무(홍승희)와 함께 고인의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다.
의학 혹은 법정 드라마의 서사에는 두 개의 축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개인적인 서사와 환자 혹은 의뢰인(혹은 범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주인공들은 새로운 환자를 치료하거나 의뢰인 혹은 범인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을 깨닫거나 인생을 관통하는 교훈을 배우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의 완성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새롭게 등장하고 또 퇴장하는 외부인의 이야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비록 의학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 두 장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엄연히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그루와 상구가 죽은 이들이 미처 전하지 마지막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만큼, 주인공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고인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공장에서 사고사 당한 대학생을 비추며 시작되는 드라마는 뒤이어 노모와 절연한 아들, 스토킹 피해 여성, 퇴직한 노부부, 동성애자 커플, 미국 입양아 등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다양한 죽음을 보여준다.
특히 각각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가 된 후로도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이슈를 담고 있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흡입력이 강하고, 가슴 아프다. 당장 비정규직의 산업재해는 본래 의도에서 적잖이 후퇴한 채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안을, 스토킹범에게 살해당한 유치원 교사는 올해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가해자 처벌에 비해 피해자 보호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은 스토킹 처벌법을 둘러싼 논쟁을 연상시킨다. 이에 더해 십수 년 전에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에서도 심금을 울리는 소재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관심을 필요로 하는 국외 입양아 문제, 동성애 커플의 이별에 담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급변하는 가운데 당장 눈 앞에 닥친 노인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때 작중 단편적이고 분리되어 있는 듯한 일련의 죽음들을 잘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모두는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한 기준선을 충족시키지 못한 실패자 내지는 사회가 규정한 경계에서 제외된 소외자의 삶을 공유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난 몇십 년간 한국 사회의 거시적 목표이자 과업이었고 동시에 현재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두 축인 산업화와 민주화 신화에 속하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드라마는 녹여낸다.
드라마의 시작을 맡은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 늙은 어머니를 외면한 아들의 회한,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갑질의 피해를 온몸으로 떠안은 할아버지의 말년은 산업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람을 공장 기계와 같은 도구로 여기고, 인륜보다도 눈에 보이는 현금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동등한 사람을 서열과 계급으로 나뉘어 차별하는 잘못된 인식, 가치관, 관행을 꼬집는다. 한편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취했으나,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정립되지 못한 한국 사회의 한계를 비판한다. 동성애부터 입양아, 스토킹 피해에 이르기까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라는 이유로, 또 약하다는 이유로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수없이 차별과 피해를 경험한 가운데 과연 실질적으로 다양한 삶과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생활로서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의 배경은 두 주인공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상구가 형과 가족을 등지고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며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그는 이윤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비롯해 책정할 수 없는 가치마저도 돈과 숫자로 치환시켜온 사회와 가정이 낳은 또 한 명의 피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그루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면서도 친구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당당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동시에 입양아이면서도 아버지의 큰 사랑 속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상구와 남부럽지 않은 가족을 이루어 나간다. 이렇게 드라마는 그루의 삶을 통해 목적지향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삶을 요구하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제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무브 투 헤븐>이 말하는 메시지는 사회적 기준선에 속하지 못해 소외된 주인공 그루와 상구의 직업이 유품 정리사이기에 더욱 풍성해진다. 작중 그루와 상구가 하는 일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의 작업은 오염된 장소를 청결하게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달리 말해 오염과 청결을 가르는 기준선을 해체하고 다시 긋는 것이 본질이다. 또한 그들은 삶과 죽음의 마지막 기준선을 지키는 이들이자, 고인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어내고 전달하면서 삶과 죽음의 기준선을 일시적으로 넘을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특정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유품 정리사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오염과 청결의 범주가 단지 위생의 측면이 아니라 도덕과 사회 질서, 체계의 근원을 이루었다는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녀는 특정 영역의 경계나 기준을 상징하는 존재들, 특히 특정 존재의 오염 혹은 청결 여부는 문화적 분류와 사회 질서의 가장 기초가 된다고 파악했다. 경계 밖에 위치한 것으로 상정되는 존재들을 더럽고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는 과정을 통해서 기준선 안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 질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통합된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무언가 더럽고 불결하다고 인식되는 것을 정리 정돈하거나 청소하면서 청결과 더러움의 기준선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이 넓게는 사회 질서의 범주와 영역, 경계까지도 바꾸는 함의를 포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사망한 이들의 공간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루와 상구의 작업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분위기, 인식, 제도의 변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은 혈흔과 체액, 벌레와 쓰레기들로 더럽혀진 장소를 깨끗하게 만듦과 동시에 일원화된 기준선을 맞추지 못해 사회로부터 배척받고 낙오된 개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투영하면서 보듬어 안는다. 그렇게 상구와 그루는 주변 주민들로부터 더럽고 불결한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받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의뢰받은 공간을 청결의 영역으로 다시 옮겨 놓는 것에 정성껏 최선을 다한다.
사실 <무브 투 헤븐>의 구성이 의학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와 유사하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아주 새롭고 기발하면서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못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브 투 헤븐>이 넷플릭스에서 공개 직후부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은, 지나치기 아까울 만큼 뭉클하고 따뜻한 휴먼 드라마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유품정리사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착잡한 사연들을 차분히 제시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의 진정성을 모자이크를 채워 나가듯이 전달하며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룬 단단한 이야기의 힘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유언을 남긴 이와 유언을 들으려는 이의 진심이 한데 모여 그려낸 희망의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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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쳤다! 그 시대 야만족을 그냥 진짜같이 표현한 영화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에취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llwey01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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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선균 배우의 유작 "탈출" / 더운 여름 시원한 액션 영화 / 이선균 주지훈의 티키타카 / 탈출 스릴러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탈출"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딱히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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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공식 예고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죽거나 혹은 마지막까지 살아남거나 456억 원을 차지하게 될 단 한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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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지는 의심, 깊어지는 관심" 박찬욱 감독X탕웨이X박해일, 가장 매혹적인 만남 [헤어질 결심] 1차 예고편 드/디/어/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