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4-10-17 21:36:12
영화 '쑤저우강', 환상과 현실에 얽힌 두 개의 사랑
영화 <쑤저우강> 리뷰
영화 <쑤저우강(蘇州江)>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매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쑤저우강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인 소주(蘇州)에서 상하이의 황포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강입니다. 쑤저우강의 물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마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유영하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로우예(婁燁) 감독은 1965년 생으로 상하이가 고향입니다. 이 영화는 3O대 중반에 익숙한 장소에서 찍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비디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에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쓴듯합니다. 영화는 이름도 얼굴도 나오지 않는 비디오 촬영기사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화자(話者)의 시선은 관객이 무대 뒤를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로 인해 영화는 어딘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감독은 영화를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영상을 구성했습니다. 핸드헬드 촬영으로 흔들리는 영상이 주는 불안정한 감각은 등장인물들의 혼란을 관객이 느끼게 하며, 영화 전체에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해 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을 영화에 빠져들게 합니다.
여주인공 저우쉰은 1인 2역(메이메이와 무단 역)을 맡아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서로 다른 캐릭터로 풀어냅니다. 각기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두 사람의 공통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두 사랑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1인 2역의 여주인공을 보며 두 사람이 결국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화자(話者)는 우리의 생각을 깹니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하나도 안 닮았다."라고 말하며 상황을 모호하게 남겨둡니다.
남자 주인공 자홍성(마다 역)은 쑤저우강의 탁류처럼 혼란스러운 청춘의 내면을 절제된 연기로 담아냅니다. 말보다 눈빛과 몸짓으로 많은 것을 전달하며, 이루지 못한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씨네랩의 영화 크리에이터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좋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시사회 이후 정성일 평론가가 진행한 라이브러리 톡도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아날로그 필름 원본을 디지털로 변환해 24년 만에 고품질 영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스크린을 통해 쑤저우강의 풍경과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경험하면 감동은 배가될 것입니다. 핸드헬드 촬영으로 전달되는 불안하면서도 환상적인 감정을 극장에서 직접 느껴보시기를 권합니다.
Relative contents
-
- <프레디의 피자가게> 리뷰 - 무섭지 않은 공포 영화 추천
스포일러 주의!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남동생을 잃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여동생 애비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마이크 슈미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자신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남동생이 납치를 당하는 사건을 겪고 난 후 어른이 된 마이크는 동생 또래의 아이가 어른에게 강제로 붙잡혀 가는 듯한 낌새만 보여도 곧장 달려들 만큼 폭력적인 성향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러한 성향 때문에 마이크는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되고 애비의 양육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마이크는 자신과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은 애비의 소망에 따라 어떻게든 양육권을 지켜내기 위해 유일하게 남은 직장인 '프레디의 피자가게'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따분하게 시간을 보내며 졸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형들이 이상한 낌새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신과 지인을 해치려고까지 하자 마이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프레디와 인형들을 막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는 과정을 그린 엠마 타미 감독의 호러 영화다.
만약 누군가가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잠깐 망설이고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한 가지 전제를 반드시 달고 말이다. 원작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원작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즐겁게 시청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게임 속 존재들을 영화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원작을 좋아해야만 가능한 이야기일 뿐, 영화 자체로는 억지로라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호러 영화로서의 완성도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일단 무섭지가 않다. 소위 무서운 영화로 꼽히는 <컨저링>, <유전> 같은 영화에는 어림도 없고 굳이 따지자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보다는 아주 살짝 나은 정도의 호러다. (근데 이건 애초에 호러 영화가 아닌지라...) 애비와 폭시의 숨바꼭질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애초에 영화가 긴장감을 끌어올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찰나의 점프 스케어에만 의존한 채 관객이 깜짝 놀라기를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원작의 숨 막히는 긴장감 같은 건 도저히 느낄 수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어린이들도 볼 수 있는 호러 영화를 지향점으로 삼았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낮은 호러 강도는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를 보게 되면 내용도 뻔하디뻔한 가족 드라마고,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중간에 인형들과 함께 테이블과 의자를 활용하여 간이집을 만드는 장면은 호러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신나고 귀엽게 연출되었다. 다른 부분의 완성도는 낮은데 유독 인형 애니매트로닉스의 퀄리티만 신기하게 높은 것까지, 애초에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저연령층과 게임의 팬들을 주 타깃으로 삼았음을 대놓고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영화가 얄팍하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는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저연령층과 팬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서 작품의 질까지 낮으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마이크의 트라우마가 형상화되는 꿈 장면은 너무 많이 반복돼서 지루함을 준다. 프레디가 여성의 허리를 깨물어서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키는 장면이나 컵케이크에 의해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저연령층을 노리겠다는 의도가 무색할 만큼 수위가 높다. 후반부에 스프링 보니를 등장시키는 선택은 오히려 프레디의 존재감을 옅어지게 만들고, 아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하고 그에 따른 원한이 생기는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복하기에 썩 좋은 선택이라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중반까지의 신선함마저 잃어버린 것 같았다. (어차피 3부작인데 이후에 나와도 괜찮지 않았을까?) 직업상담사인 스티브 래글런이 사실 모든 일의 원흉인 윌리엄 애프튼이라는 반전 역시 호러 장르에서 너무 많이 쓰인 트릭인데다가 초반 이후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라 반전의 황당함은 더욱 커진다. 그나마 스프링 보니의 첫 등장 장면은 굉장히 강렬하게 연출된 덕분에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는 게 위안거리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그럭저럭 즐겁게 볼만한 작품이지만 그 외에 관객에게는 만족을 주기 힘든 영화다. 심지어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도 호러의 약한 강도, 지루한 드라마, 뻔한 엔딩 등에서 불호를 느낄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 많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고 오히려 애정이 가는 지점도 있었으나 상업성에 눈이 먼 탓인지, 감독 고용을 잘못한 건지는 몰라도 결국 낮은 완성도로 무너진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더 재밌는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였는데 여러모로 많이 아쉽고 아깝다.
별점: ★★
-
- 두 남자의 활어회 같은 입담여행, <트립 투 그리스>
- 트립 투 그리스(The Trip to Greece, 2020)
제작 : 영국, 코미디 │ 감독 : 마이클 윈터바텀
출연 :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03분"소소한 행복감을 계속 선사하던 시리즈를 그리스에서 제대로 마무리한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영국 대표 배우 스티브 쿠건 & 롭 브라이든
환상의 팀워크로 완성한 낭만 가득 여행기
여행이 한결 다채로워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그리고 여행에 대한 풍부한 교감으로 그 깊이를 확장할 때. 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두 남자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떠나는 여행은, 그 두 가지 여건을 충족시키는 여행이 아닌가 싶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영국의 내로라하는 배우이자 입담꾼들이다. 그들이 함께 여행을 시작한 건 <트립 투 잉글랜드>에서였다.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은 이 영화의 영감을 실제 두 배우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얻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유머와 풍부한 지식은 그렇게 ‘트립’ 시리즈가 되어, 잉글랜드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이번에는 그리스로까지 넘어왔다.
중년 남자 두 명이 떠나는 여행이 그리 재밌을 줄은 미처 몰랐다. 마치 다듬어지기 전의 비방용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주고받는 서로를 향한 짓궂은 장난과 성대모사 등은 기본이고, 그때 그때 여행지에서 떠올리는 노래와 상황극 등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이어진다.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던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해박한 지식 또한 영화를 보는 재미에 한 몫한다. 두 배우의 나이는 50대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오는 동안 켜켜이 그들의 삶에 쌓여온 문화예술과 역사, 미식에 대한 잡다한 지식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농담 같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적극 활용된다. 물론 영화 촬영을 위해 사전에 전달된 상황과 정보들은 몇 가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소수의 사전 정보를 제외한다면 절반 이상이 거의 두 배우의 즉흥적인 티키타카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바로 그 날 것의 힘에 있었다. 여행지를 다니면서, 빼어난 음식을 맛보면서, 두 배우가 떠오르는 대로 아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대화가 곧 씬이 되고 영화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트립 투 그리스>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그들이 가족의 구성원이자 가장이라는 느낌을 선뜻 느끼게 하는 대목도 존재한다. 스티브의 아버지는 여행 중 병세가 심해지시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상황을 아들로부터 듣는 스티브의 모습은 영락없는 50대 가장이자,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롭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종일관 스티브를 놀리고 개구진 성대모사를 하다가도, 아내나 딸과 통화할 때면 영락없는 애처가 기질을 드러낸다. 두 배우의 사회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면을 둘 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묘미가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배우가 함께 ‘트립’ 시리즈로 호흡을 맞춘 지도 어언 10년. 두 배우의 어디서도 본 적 없던 활어회 같은 형태의 여행을 보고 있자니,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호흡을 맞추며 보낸 두 사람의 시간 또한 커다란 의미에서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 50대가 된 두 배우, 두 사람의 관록, 여행과 우정,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라는 뻔하지 않는 여행 테마, 날 것의 대화. 이 모든 요소들이 트립 시리즈를 관통하는 색이자 매력이 아닐까.
<트립 투 그리스>를 끝으로 트립 시리즈는 마무리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 덕에 알게 된 두 배우의 남은 발자취는 두고두고 응원하게 될 것 같다. 삶이라는 여행이 언젠가 끝난다던 이상은의 노래처럼, 두 배우는 서서히 노년이 되어가겠지. 하지만 두 사람을 보고 나면 인생이든 진짜 여행이든,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아진다.
성격도 꿈도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 메이트가 되어주었던 두 사람을 보는 103분 동안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감사하다.
-
- 이 소재들을 감당하기엔 좀 얕은 듯한데
사이버 세상의 올드보이
이 영화의 주인공 ‘오태경’은 <올드보이>에서 최민식 배우가 맡았던 ‘오대수’의 아역 연기자 출신이다. 한 나라의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의 아역배우였다는 점은 어마어마하다가도 사소하다. 이 때문일까. 오태경이 유튜브 시장에 뛰어든 일도 역시 쉽지 않다. 배우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는 경우는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다. 또 한 사람의 배우로서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남아있다. 언젠가 박찬욱 감독님에게 다시 전화 올 날 있겠지? 희망을 품고 있지만 눈앞에 있는 것들이 이뤄지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마음먹고 시작한 유튜브. 시청자는 한 자리 수다. 새로운 수를 찾는 오태경. 그가 내린 결론은 ‘구독자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오대수 분장을 하고 시청자가 하라는 대로 하는 오태경. 산 낙지 먹는 건 당연하다. 어느 날에는 구독자를 괴롭히는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뿅망치를 때리는 일을 하기도 한다. 온갖 잡다한 일은 다 하고 있다. 진정성을 보인 덕에 구독자가 하나, 둘씩 늘어난다. 어느새 만 명대가 되었다. 물 들어올 때 모터사이클을 만들어 손수 지어야 한다. 라이브 방송을 켜는 오태경. 그런데 어떤 인물에게 슈퍼챗이 왔다. “광화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있는 남자가 있는데, 이 남자가 왜 그러고 있는지 알아와라”라는 말을 전한다. 처음엔 거절했던 오태경. 하지만 거절하기엔 너무 큰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 번 말 걸어보기로 한다. 광화문으로 간 오태경. 그의 호기심은 점점 커져 구독자들을 빨아들이기까지 이른다. 과연 그는 온라인 세상에서 <올드보이>만큼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팬데믹과 유튜브
영화가 주로 담고자 했던 부분은 세태 반영이다. 우선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건 유튜브다. 주인공 태경이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럼 이 영화를 이야기로 담으려면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유튜브라는 배경과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의 사이버 세상 묘사다. 전자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서치> 시리즈에서 봤었던 것 같은 시각효과를 가지고 왔다. 카메라도 전형적으로 누가 누군가를 찍는 형태가 아니라 컴퓨터 캠코더로 자기 스스로를 찍는 방식이다. 이 덕에 영화 자체가 평범한 스릴러/코미디물이 아니라 약간 떨어진 시각에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연출 요소가 된다. 또 이야기 자체가 유튜브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소재가 영화의 흐름을 깨면 어색해진다. 영화 전체적으로 실제 유튜브 콘텐츠를 보는 것처럼 빠른 템포로 진행됐다는 점도 사소한 디테일을 살리는 좋은 수가 되었다. 형식이랑 이야기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다음 시간적 배경에 깔려있는 전제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 코로나19라는 소재를 갖고 온 건 사실 영화의 핵심과도 닿아있다. 영화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야만성에 대해 꼬집고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극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시간적 배경으로 주파한 셈인데, 어떻게? 에 대해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분명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냥 단순히 마스크만 달랑 쓰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야기에 중요하게 사용했다. 이 시도는 영화에서 충분히 강점으로 뽑을 만 하다.
짜기라도 한 듯이
영화의 핵심 소재가 유튜브이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는 장치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이 유튜브라는 소재가 좀 안 좋게 작용하는 경우가 몇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채팅창 리액션이다. 인터넷 방송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았다. 이 영화의 큰 아이디어가 됐을 <서치>부터 시작해 <곤지암> <웅남이> <롱디> 등 많은 사례들이 이미 개봉했다. 최근 인터넷 방송과 관련한 문제들이 갑자기 많이 보였던 건 사실인 듯하다. 팬데믹 전후로 유튜브 시장이 활성화가 됐고 이에 따라 저지 않은 사람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공급자가 됐다는 의미는 그만큼 수준 낮은 사람도 관객으로 참여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일까? 극 중에서 오태경이 라이브 방송을 할 때마다 나오는 채팅창 메시지들이 조악하게 느껴졌다. 요즘 누가 그런라는 말을 쓰나? 뭔가 예전에 썼던 말들이 채팅창에서 계속 나오는데 집중할 수 있는 흐름을 깨는 듯했다. 극 중에서 ‘~남’
또 이야기에서 적지 않게 유튜버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부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크리에이터가 나오는 방식이 살짝 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중후반부에 이 사람들이 떼거지로 등장하는 부분을 보면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리적으로도 이 분량이 없어도 그만이고 이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 전개가 갑자기 두세 단계씩 확 비약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무슨 말이냐? 인물들이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작위적으로 행동하는 듯하다. 영화 후반부에서 이야기가 좀 얕아지다 보니 이야기보다 이 부분이 더 들어오는 것 역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최고 단점이다.
앞 문단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설정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직업에 기댄 감이 있다. 이 이야기 끝까지 전부 말이 되려면 어떤 인물이 굉장히 전지전능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굉장히 멍청해야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 인물이 완전 절 속에 있다가 나오는 수준이어야 한다. 물론 모든 영화가 다 완벽하게 개연성이 맞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튜브에 너무 기댔기 때문에 이 모든 이야기가 흘러갔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작중에는 필요 없는 이야기 소재도 몇 있기 때문이다. 오락성을 잡는다? 그러기엔 몰입감이 아주 살짝 부족하다. 메시지를 잡는다? 그렇기엔 깊이가 얕아 보인다. 맹숭맹숭했다.
얕은 깊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문제는 하나 더 있다.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미스터리를 잡는 데에 있어 이 요소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이 문제가 대두가 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이 문제의 특성상 피해자는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영화가 좀 더 신중해야 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냥 단지 이야기 그냥 그렇게 끝난다고 해서 정리되는 문제는 또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적어도 고뇌하는 사람이나, 처벌을 받는다던가 하는 장면은 있어야 했지 않을까? 적어도 쿠키라도?
이런 사회문제애 대한 관점은 이야기가 메시지를 잘 못 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다 과장되게 행동한다. 그냥 단지 크리에이터로서 인지도를 얻어야 하니까. <올드보이> 아역인 거 그냥 들어가면 안 되니까. 이야기 전개 이렇게 짜야 후반부가 말이 되니까. 유명해지는 거? 유명해지고 싶으면 유명해질 수도 있지.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카메오와의 통화? 이 장면도 이 사람이 뭘 해서 그 전화를 받아야 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분이 그런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 전화를 하는 분은 아닐 것이다. 이런 얕은 깊이가 이야기가 품고 있는 문제의식을 옅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 완다 막시모프가 내 시간을 없애버렸어
그토록 기다리던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팔콘 앤 윈터 솔저>나 <로키>가 한창 방영중일 때 국제적으로 들려오는 평판만 확인할 정도였는데 실제로 볼 수 있게 됐으니 완전히 감개무량이다. 나는 사실 이 <완다비전>이 너무 궁금해서 나무위키로 슬쩍 읽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개봉했던 영화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이나 <블랙 위도우>와는 다르게 인물의 깊은 내면묘사가 이뤄져 알고 봐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아마 직접 보면 알 것이다. 내면묘사가 단순히 인물의 양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꼭 가져야 할 연출 지점과 어우러져 신기했다. 과연 <오징어 게임>과 자웅을 겨루는 글로벌 드라마답다.
주연은 두 명이다. 아이언 맨이 만든 똑똑한 AI 비전과 하이드라가 만들어낸 초능력자 완다(스칼렛 위치)다. 이 둘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만든 커플로 깊은 사랑에 빠졌다. 배우 둘이 워낙 연기를 잘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올슨과 폴 베타니는 MCU의 히어로들 중에서 제일 몰입이 필요한 역할일 텐데 이번에도 무난하게 각자의 롤을 잘 소화해냈다. 나는 초능력자가 된다던가 AI가 된다던가 하는 생각을 단 1분도 해본 적이 없다. 근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 답게 어떻게든 하는 걸 보면 역시 프로는 다른가보다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엘리자베스 올슨 진짜 예쁜 것 같다. 같이 나오는 캣 데닝스도 물론 예쁘다. 근데 엘리자베스 올슨은 고상하게 아름답다. 심지어 연기까지 잘한다.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랑스러움부터 연이은 좌절로 인한 어두운 내면까지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내가 배우면 이렇게 멋있게 연출해놓은 판 안에서 연기할 맛 날 것 같다. 또 폴 베타니 목소리 너무 섹시하다. 얼굴도 잘생겼다. AI 의상에선 몰랐는데 과거 미국에서 유행했던 코디를 입혀놓으니 '와 진짜 멋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튼 드라마는 배우들의 호연과 깔끔한 색감, 또 과거 미국 드라마들에 대한 오마주까지 아다리가 맞아떨어지는 삼박자 연출로 깔끔하게 잘 뽑혔다. 나는 이 장점들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드라마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단순히 마블 팬이라서 재미있는 작품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1. MCU 정주행, 필요한가요?
네!!!!!!!!!!!!!!!!!!!!!!!!!!!!!!!!!!!!!!!!!!!!!!!!!!!!!!!!!!!!!!!!!!!!!!!!!!!!!!!!!!!!!!!!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
- 이 이하부터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 보신 분들, MCU 정주행하고 옵시다 -
2. 앞으로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작품인가요?
일단 이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할 정도라면 인류 반이 날아갔었다는 극의 설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타노스는 생명체 반을 날리기 위한 준비물을 모두 구하는 데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인피니티 워>에서 그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비전이 갖고 있던 마인드 스톤이 뽑히는데 이것을 계기로 그가 죽게 된다. 결과적으로 어벤저스는 타노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완다 역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멘토 스티브 로저스와 나타샤 로마노프까지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이다. 가족, 친구, 사랑 모든 걸 다 잃은 완다. 그녀에게 기댈 곳이라곤 단 1도 없다. 그런데 드라마 1화부터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비전이 살아서 완다와 함께 등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아니, 비전 죽은 거 아냐? 와 아니, 갑자기 느닷없이 평범한 시트콤이 되어버린다고? 다. 이 두 가지가 이 드라마의 기본 설정이다. 작품은 이 두 가지의 미스터리에 대해 설명해주며 왜 주인공 둘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완다에게 비전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이는 곧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로키>와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에서 다룰 '멀티버스' 세계관이 열렸던 개연성을 보여준다. - 아, 이것을 설명해주는 건 스포일러가 아니다. 왜냐면 케빈 파이기가 완다비전이 멀티버스랑 관련 있다고 오피셜을 내렸기 때문이다. - 또한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하는 듯한 암시도 있었으니 MCU의 팬이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셈이다. 아, 포스터에도 나오듯 완다 막시모프라는 인물이 '히어로냐 빌런이냐'의 양자택일 안에서 어떤 선택을 고르는 지도 굉장히 중요하니 새로운 안티 히어로의 등장을 지켜본다는 점에서도 볼 이유가 분명하다. 아, <앤트맨>에서 나왔던 지미 우와 <캡틴 마블>에서의 모니카 램보, <토르 : 천둥의 신>에서의 달시 루이스, <엑스맨>의 피에트로도 나오니 마블의 팬들은 즐겁게 보기 좋을 것 같다.
3. '빌런 혹은 히어로'? 갑자기?
'완다가 빌런이냐 히어로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고?'라고 포스터를 보고 의문점이 들 수 있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아니 한번 히어로면 영원한 히어로지 빌런이 된다고? 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의문점은 내가 지극히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완다비전>까지 오기 전, 그녀의 처지를 살펴보자. 주인공이 사랑했던 인물들이 자기 의사랑 상관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경험상 이럴 땐 누군가의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막상 아무도 없으니 그녀가 감당하기엔 슬픔은 너무 컸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그녀의 처지를 복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데 드라마는 그녀의 섬세한 내면묘사를 바탕으로 이 인물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공감하게 만든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로 남을지. 강한 내면을 되찾음으로써 그녀의 자아를 다른 쪽으로 비틀지, 드라마는 철저한 미스터리로 우리들의 시간을 없애버린다. 결국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인물의 양면성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
4. 이야기의 완성도는 어떤가요?
일단 1회독을 끝낸 지금 생각해 보니 딱히 구멍은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색감이 은근히 좋아서 이야기에 몰입하기 좋다. 또 도입 3화까지 살짝 지루한 구석이 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그게 플롯의 누수때문이 아니라 천천히 내용을 만들어 가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5번에서도 썼지만 빌런에게 읭? 싶은 구석이 있긴 하다. 근데 보기에 페널티가 있고 이런 건 아니다.
5. 빌런의 묘사는 어떠한가요?
기존에 마블의 빌런들을 돌이켜 봤을 때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았다.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의 만다린,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의 벌처가 생각난다. 전자는 담당 배우의 엄청난 카리스마가 만든 느낌이 강하고 후자는 생활밀착형 빌런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쉬웠다. 이 <완다비전>에서의 빌런은 이들과 살짝 다른 맥락이다. 이 빌런(들)은 엄브릿지형으로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재수가 없다. 또한 밑도 끝도 없는데 인물의 성격 자체가 그럴 법해서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의 지모 대령의 정확히 반대 기능을 하는 악역인 셈이다. 현실에 저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거나 직장상사거나 후배면 진심으로 싫을 것 같다. 이런 가까이 가기 싫은 캐릭터를 잘 묘사해 나름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6. 다른 히어로의 탄생? 무슨 뜻인가요?
이는 3번의 질문과도 이어진다. 완다는 앞으로 히어로가 될지 빌런이 될지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이 인물이 후의 MCU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가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을 꼼꼼히 지켜보면 알 수 있다. MCU의 방향성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새로운 능력자와 함께 지켜보도록 하자.
7. 고전 미국 시트콤을 오마주 했다던데?
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떤 드라마를 본떠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시트콤에 대한 오마주가 이 극에서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무조건. 오마주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 작품을 위한 오마주가 된 것이다. 또한 이런 연출 방식이 드라마의 호러, 스릴러 향 첨가에 도움을 준다. 기존에 장르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다른 재미요소가 될 것이다. MCU의 작품이 평단에서 호평받았던 경우가 드문 걸로 아는데 이 작품은 이 지점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오징어 게임>과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
8. 액션 맛집 마블, 이번에도 닉값 하나요?
액션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한 화에만 나오는 정도? 두 주인공 폴 베타니와 엘리자베스 올슨이 워낙 연기를 잘했고 CG도 매끄럽게 잘 뽑아서 극을 이끄는 흡입력이 좋다. 굳이 액션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액션의 퀄리티가 별로냐? 난 좋았다. 등장인물의 특색들을 잘 살렸다.
4.5/5.0
강력추천!
디즈니 플러스를 처음 구독한 분들이라면 부담없이 볼 만 하다.
-
- 그 많은 여성 예술가는 어디로 갔을까?
‘힐마 아프 클린트’. 이 예술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서양미술사와 친하지 않은 이들은 물론, 이 분야에 박식한 사람들도 이 예술가의 존재를 알리 없다. “20년 동안 내 작품을 공개하지 마라”라는 유언으로 100여 년간 미술계에서 사라졌다가 이제야 세상에 나온 화가이기 때문. 실제 존재했던 예술가임에도 왜 우리는 그녀의 존재를 이제야 알았을까?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은 그 이유를 소개하는 작품이다.
다큐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여성 예술가는 이런 유언을 남긴다. “20년 동안 내 작품을 공개하지 마라!” 이후 100년 동안 그녀의 작품은 봉인되었다. 이후 1,500여 점의 그림과 2만 6천 페이지의 작업 노트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19세기 말에 활동한 힐마 아프 클린트라는 이름의 독일 예술가의 이야기다. 칸딘스키, 몬드리안보다 앞서 추상회화를 선보인 이 여성 예술가의 등장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미술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다큐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은 알려지지 않았던 한 여성 예술가의 작품과 삶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다. 귀족 가문 출생 엘리트로서, 꾸준히 그림을 그린 힐마는 추상회화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예술가다. 그녀의 추상회화 시작점은 19세기 말 과학이 발전한 시대상에 있다. 과거 기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원자, 우주 등 과학의 발달로 인해 더 넓은 세계가 펼쳐진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조한다.
단순히 북유럽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자연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의 것들을 그려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나선형, 원형의 선과 면이 특징인데, 생명체의 본질을 우주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이를 그림으로 옮기려는 부분이 돋보인다. 더불어 신지학 운동 등의 영적 연구까지 예술로 승화하려는 힐마의 노력도 나온다.다큐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다큐는 단순히 알려지지 않은 여성 예술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왜 그녀가 살아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고, 이제야 그녀의 이름과 작품이 알려지게 되었는지 소개한다. 19세기 말. 힐마 또한 그 시대를 산 여성들처럼 양지가 아닌 음지의 삶을 살아간다. 능력이 있고, 누구보다 자신만의 특색을 담은 작품을 그렸지만, 사회는 그녀의 진출을 반기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갤러리에 전시해야 하고, 예술적 동지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야 하는 등 제반 여건이 갖춰져야 했는데, 힐마에겐 그런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고흐 등 사후에 인정받은 예술가들도 있지만, 힐마의 경우에는 ‘가난’이 아닌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기회가 박탈되었다는 차이가 있다.다큐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감독은 힐마가 남긴 작업 노트와 그녀의 작품과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던 조카의 증언을 토대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한 예술가의 고뇌와 좌절을 소개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술 및 미술 산업 관계자들을 통해 과거 재능있는 여성 예술가들이 많았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아스라이 사라진 이유, 그리고 힐마 아프 클린트의 출현으로 서양미술사는 다시 작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전한다.다큐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런 점에서 ‘미래를 위한 그림’이란 부제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그녀의 그림이 시대를 앞선 추상회화라는 점에서의 ‘미래’라는 의미는 물론, 과거와 달리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작가가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길 바라는 ‘미래’라는 의미도 느껴진다. 힐마 아프 클린트 뿐만 아닐 것이다. 과거 사회의 장벽에 부딪히면서도 자신의 작품 세계를 견고하게 가져갔던 여성 예술가들은 지금도 누군가 그 봉인을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쪼록 이 작품이 그 봉인의 첫 열쇠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말: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은 영화에서도 사용되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 중 춤추는 주민들의 동심원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그림에서 착안되었고,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퍼스널 쇼퍼>에서도 작가의 그림이 등장한다. 이 다큐를 보고, 힐마 아프 클린트 작품에 매료되었다면 두 영화를 만나보길 바란다. 더불어 과거 인정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의 고뇌를 담았다는 점에서 다큐 <밤쉘>도 함께 보는 걸 권한다.
평점: 3.0 / 5.0
한줄평: ‘그 많은 여성 예술가는 어디로 갔을까?’에 대한 답변
-
- 광기에 사로잡힌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서브스턴스> 줄거리
화려했던 시절을 지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사람들이 원하는 어리고 아름다운 스타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행하던 쇼에서도 해고를 당한다. '어리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다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은 엘리자베스는 약물에 의해 추구하는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낸다. 수는 단번에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며 규칙만 잘 지킨다면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더 누리길 원하는 수의 욕심으로 이 평화는 깨지고 만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수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점점 추해져 가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극명하게 보인다.
엘리자베스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수를 증오하고 수는 집에 틀어박혀 엉망으로만 만드는 엘리자베스를 경멸한다. 하지만 그들은 몸이 두 개일 뿐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수'와 영광은 모두 과거에만 존재하는 늙은 '엘리자베스' 모두 나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서로에게 드러내는 경멸, 적대, 증오는 결국 자기혐오이다. 엘리자베스는 수의 욕심이 자신을 고립시킨다 여기지만 이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젊고 아름다운 수로 계속 존재하고 싶다는 엘리자베스의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시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더 악화되기 전에 중단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로 중단을 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수, 모두가 찾는 수가 없어지고 퇴물이 된 늙고 추해진 엘리자베스만 남는 것을 견딜 수 없기에 가장 원래의 버전인 엘리자베스를 포기한다.
노화에 대한 공포. 늙음에 대한 혐오는 현실의 사회에서도 만연하다. 이런 분위기가 단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하기에는 사람들은 위험한 수술이나 건강에 좋지 않은 약을 먹기도 하며 젊음을 유지하려 한다. 이렇게 모두가 갖고자 노력하는 젊음은 사실 젊음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엘리자베스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자신의 늙은 신체를 부끄럽게 생각하며 더 늙어갈수록 본인의 신체를 최대한 가라기 급급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수를 포기하지 못한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서브스턴스> 속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 만든 이조차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약을 먹고 자신의 신체를 산산이 조각내고 일부를 도려내가는 모습은 우리가 과정을 보지 못해서 모를 뿐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아름다움, 젊음을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들을 생생하게 눈에 담는다. 그럼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끔찍하고 괴기하며 자신을 망치는 행위를 끝내지 못하는 엘리자베스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서브스턴스의 진짜 의미는 이런 감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왜 엘리자베스는 고통을 감내해가면서까지 '수'를 원했는지, 왜 그들의 간단한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는지, 왜 서로를 경멸했는지. 이제는 이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미의 기준은 끝도 없이 높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에게도 이 기준은 잔인하게 적용되며 그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내쳐진 그에게 다시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압박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약을 사용할지 말지 중단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엘리자베스에게 주어진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게 현실이라며 팔짱을 낀 채 여성의 신체를 평가하고 탐닉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시선이 계속해서 엘리자베스의 선택을 종용한다. 아름다운 수를 모두가 사랑하고 원하고 있다는 달콤한 말은 엘리자베스가 그렇지 못한 자신을 파괴하게 만든다. <서브스턴스>는 이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결국 망가져버린 한 사람의 피를 뿌리며 비난한다.
<서브스턴스>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아름다움을 충족하다 파괴되는 내면을 바디호러무비만의 그로테스크함으로 풀어낸다. 진짜 '나'와 이상적인 '나' 사이의 간극과 그로 인한 자기혐오를 드러내기 위해 실제로 두 신체로 분리하여 그들 간의 갈등으로 나타내며 종국엔 사회가 바라는 아름다움을 충족하다 자신의 내면이 황폐해지고 파괴되는 것을 정말 그들의 신체를 부서뜨리며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서브스턴스>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
-
- 그리스 로마에 최고의 장군 과연 당신의 ONE PICK은 [ONE PICK/결말포함]
#그리스신화#로마신화#전쟁영화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https://toon.at/donate/63724555002223...
-
-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티저 예고편
2025년 첫 마블 영화✨ 2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캡틴 아메리카가 온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티저 예고편 최초공개!
-
- 영화 <잘리카투> 리뷰 예고편
푸줏간(도축장)에서 도망친 물소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닌다. 마을 남자들은 폭주하는 물소를 잡기 위해 나서고 이웃 마을 남자들까지 몰려들자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진다. 평화롭던 마을은 물소를 제압하려는 남자들로 인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버리고, 인간과 짐승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물소 사냥은 점차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광기로 변해간다.
※ 잘리카투(또는 살리카투) JALLIKATTU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수확축제인 퐁갈에서 진행하는 전통있는 집단 경기다. 황소를 남자들 무리 속에 풀어놓으면 참가자들은 황소의 등에 올라타서 최대한 오래 버티거나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데, 이 과정에서 살벌한 장관이 펼쳐진다. 리조 조세 펠리세리 감독의 <잘리카투>는 잘리카투 경기를 묘사하는 영화는 아니다. 확실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