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28 14:19:33
10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베놈: 라스트 댄스> 시리즈 최저 오프닝 스토어 기록

<베놈: 라스트 댄스>가 국내 개봉 첫 주 약 79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시리즈 최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습니다. 2018년에 개봉한 시리즈의 1편인 <베놈>은 첫 주 누적 관객 수 약 209만 명을 기록했으며, 2021년 개봉작인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첫 주에 약 109만 명을 동원한 바 있습니다.

북미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기존에 6,500만 달러로 예상되었던 수치를 훨씬 밑도는 약 5,100만 달러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1편의 8,000만 달러와 2편의 팬데믹 당시 9,000만 달러의 기록에도 크게 뒤처집니다. 소니 측은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가 관객의 발길을 집에 머물게 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출처: Variety)

이러한 부진에도 <베놈: 라스트 댄스>는 64개 시장에서 53,700개의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며, 중국에서는 4,600만 달러를 기록하며 가장 큰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이는 2019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이후 중국에서 개봉한 슈퍼히어로 영화 중 가장 큰 오프닝이며 멕시코(730만 달러), 한국(580만 달러), 영국(570만 달러), 인도(470만 달러) 등 많은 나라에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한편, 여전히 순위권에 안착해 있는 <와일드 로봇>은 79개 시장에서 1,750만 달러를 추가해 해외에서 총 1억 2,09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는 2억 3,2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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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개막식 방문기
<제12회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방문기>
개막작 '라스는 웃음버튼' 감상까지
씨네랩 관계자분들 덕분에 이번에는 12회를 맞이한 ‘서울 국제 어린이 영화제(이하 SICFF)’ 개막식에 참석했습니다. 개막식은 지난 5일(목) 롯데시네마 은평구에서 진행됐습니다. 이번 SICFF는 전 세계 124개국, 3338편의 영화를 출품받을 정도로 높은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어린이, 유아, 아동 관련 영화를 모았습니다. 그 많은 출품작 중에서 특히 상상력과 어린이에 대한 시각을 담는 다양한 관점의 영화 128편을 온-오프라인에서 9일까지 선보입니다. 온라인 상영의 경우, 씨네랩 공식 홈페이지 ‘온라인 스크리닝’에서 10일(화)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개막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이미 상영관 안팎으로 영화제 관계자, 은평구청 관계자, 부모님과 아이들 등 많은 분이 환한 미소로 영화제의 시작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다!’라는 태그 구호와 알록달록한 색감과 귀여운 그림체로 가득한 포토존은 아이들을 사진 찍는 부모님으로 대기 줄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식이 시작하기 30분 앞서 상영관으로 들어가 얼마나 많은 가족이 들어오는지 지켜봤습니다. 예상대로 상영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해졌습니다. 이제 막 옹알이, 걸음마를 시작했을 꼬마 아이부터 어딘가 듬직한 초등학생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 연령대의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관객석에 자리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처럼 개막식과 함께 배우나 감독님의 레드카펫 행사는 없었지만, 영화관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청량한 목소리가 더욱 밝게 느껴졌습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님의 개회식 연사와 김한기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장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이번 제12회 SICFF 작품의 수상을 위해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김다민 감독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박재범 감독님 외 4인의 심사단이 인사를 전했습니다. 다시, 김미경 은평구청장님께서 큰 목소리로 영화제 개최를 선언하며 식장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여느 개막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부분은 개막식 이후 개막작 관람 시간이었습니다. 보통 구청장님, 위원장님의 경우, 개막식이 끝나면 악수를 하시며 다들 자리에서 물러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님은 물론, 개막식에 참석한 모든 관계자분들이 관객석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불이 켜지자 영화가 재밌지 않았냐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영화제 고위 관계자분들이 단순한 지역 영화제가 아닌, 더 진정한 가치에 관심을 두고 어린이를 주제로 한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다들 어떤 장난이나 정치적인 모습이 아니라 영화에 진심이라고 생각하며 감동했습니다.
개막식 이후 10분의 휴게 시간을 갖고, 이후 개막작 <라스는 웃음버튼>을 감상했습니다. 노르웨이 작품이라는 점에서 대중 영화로는 만나기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이국적인 나라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또 영화제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는 노르웨이 영화감독, 각본가 ‘에이릭 새터 스토르달’이 감독한 작품입니다. 개막작 <라스는 웃음버튼>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하며, 2024년 유럽 어린이 영화 연합(Europe Children's Film Asociation)에서 대상을, 제41회 뮌헨 국제영화제에서 ‘시네킨들상’을, 지포니국제영화제에서 수상 받는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입니다. 영화 <라스는 웃음버튼>은 주인공 아만다를 중심으로 다운증후군 전학생 ‘라스’와 주변 친구들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놉시스 : 11살 아만다는 새로 전학 온 다운증후군이 있는 라스를 특별히 돌봐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놀랍게도 아만다는 라스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지만, 친구들 사이에 속하기 위해 라스를 배신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아만다는 라스와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잃게 되는데…
영화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확실히 영화제 개막작에 어울리는 감동과 교훈, 여기에 흥미를 가미하는 재미까지 갖고 있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여자 아이 ‘아만다’의 행동이나 심리가 여느 또래 아이들이 충분히 갖고 있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별일 아닐 일도, 11살 아이 입장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사건일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라스’가 전학을 오면서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의 권유로 아만다는 라스의 단짝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라스에 대한 다른 친구들의 좋지 않은 시선이었습니다.
종이에 낙서만 해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친구들까지 함께 낙서를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는 멋진 용사, 공주였죠. 영화를 관람하며 즐거운 학창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귀가하며 실내화 가방을 둔기 휘두르듯 날리며 걸었죠. 그런 와중에 우리는 우리끼리 별명을 지어주고 놀곤 했습니다. 울음이 많은 아니는 울보, 말괄량이 소녀에겐 조폭마누라 같은 괴팍한 별명까지 지어주었죠. 영화 속 라스는 남들에게 가릴 수 없는 ‘다운증후군’에 대해 주목받으며 악몽 같은 별명과 따돌림을 당합니다. 짝꿍인 아만다는 ‘해리포터’라는 공통점과 호기심에 이끌려 라스의 진면목을 알아봅니다.
영화를 관람하며 여전히 아이들의 세계는 연약하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들 자체가 작고 소중하며 지킴 받을만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스스로 그것을 모른다는 점이요. 어른의 입장에서 쉽게 해결할 것 같은 일도, 아이에겐 일생의 문제일 수 있죠. 또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짓누르거나 다수가 소수를 사냥하는 모습도 충분히 영화에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키며, 아만다와 라스의 관계는 급격하게 무너집니다. 심지어 라스의 다운증후군에 대한 ‘사이버 불링’도 영화는 다룹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너무 무겁거나 너무 어두운 분위기가 짙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특히 주인공 ‘아만다’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 깔끔한 기승전결을 보여줘서 흐름적으로도 완벽했습니다. 과연, 아만다와 라스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추후 국내 상영이 결정되면! 영화관에서 관람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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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포레스트> 여름의 맛, 오이 콩국수
보고 나면 뭐라도 먹고 싶어 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여름 장면은 하나로 기억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먹는 오이 콩국
혜원의 신나는 표정과 면대신 만든 오이의 초록이 오버랩 되어,
더운 여름이면 생각만으로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혜원의 오이 콩국수는 냉장고에 만들어 둔 콩국만 있다면,
불을 쓰지 않고 10분도 걸리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정말 간단 요리이다.
뜨거운 물에 팔팔 끓여야 하는 밀가루 면 대신
오이를 길게 채 썰어 넣은 것은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사실 이 요리에서 가장 큰 고민은 ‘콩국물을 직접 (!)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인데,
콩국물을 준비하는 세가지 방법을 보고, 각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 하면 될 것 같다.
첫번째, 콩국물을 직접 모두 만들기
이 때는 일정을 한나절 정도는 넉넉히 잡아두는 것이 좋다.
메주콩을 깨끗하게 씻어 물을 넉넉히 넣고 냉장고에서 8시간 정도 불려준다.
적당히 불려진 콩을 센 불에서 삶다가 포르르 끓으면 거품을 걷어내고 중불로 10분 정도 더 삶아준다.
너무 오래 삶으면 메주냄새가 나기도 하기 때문에 비린 맛이 나지 않게 삶아 주는 것이 중요 하다.
삶은 후엔 찬물에서 콩껍질을 벗겨 준 뒤,
삶은 콩, 콩 삶은 물, 생수 기호에 따라 소금을 넣어주고. 믹서에 갈아주면 콩국물이 완성된다.
두번째, 두부로 콩국물 만들기
콩을 불려서 콩국을 만드는 것 보다는 간단하지만, 고소한 별미가 되는 방법이다.
아이가 어릴 때 자주 해 준 간식이기도 한데…
국내산 두부 1모에 두유와 견과류를 조금 넣고 믹서에 갈면 아주 고소한 콩국이 만들어진다.
세번째, 시판 제품 구입하기
몇 년전에 비하면 다양한 제품이 정말 많이 나와있다.
입맛에 맞는 브랜드 제품을 찾아두면 여름이 든든해진다.
콩국을 어떻게 준비 할 것인가 결정이 끝났다면
요리 순서는 아주 간단하다.
1. 오이 끝을 크게 다음, 오이를 면처럼 길게 채 썰어 준다.
2. 슬라이스나 스파이럴 같은 도구를 사용하면 더 쉽고 간단하게 채 썰기가 가능하다.
3. 오이의 아삭한 식감을 위해 얼음물에 오이를 담궈 주면 좋다.
4. 그릇을 준비해, 오이를 담고
5. 준비된 콩국물을 부어 준다.
6. 고명으로 삶은 계란, 토마토등을 올려주면 끝 !
이번 주말엔, 리틀포레스트 영화를 보며, 시원한 콩국을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게 바로 여름이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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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 신화에 우리의 이야기를 담으면
제가 추천할 작품은 바로 비스트 오브 아시아 시리즈 입니다!
비스트 오브 아시아 시리즈는 EBS에서 기획한 아시아 12개국 국제공동제작 어린이청소년 시리즈물입니다. 각 나라의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제가 본 작품은 한국의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페어 트레이닝, 인도의 선악신화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 핸드폰, 인도의 부탄의 검은목 두루미 신화 모티브로 가족의 부재를 위로하는 새엄마를 관람했습니다.
비스트 오브 아시아 시리즈에서 가장 연출적으로 인상깊게 보았던 부분은 바로 위의 사진처럼 애니메이션이 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중간중간에 신화 내용이 나올 때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신화를 표현한 것이 신기했습니다. 또 세가지의 신화들이 끊기지 않고 사람의 모습을 한 동물들을 찾는 탐정단이 있고 제보를 받아서 진행된다는 스토리 전개 방식도 새로웠습니다.
페어트레이닝의 경우 아이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양궁과 페어트레이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견제와 비교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친구가 나를 더 성장시키는 존재와 함께 나아가는 존재로 인식되면서 아이들의 성장을 담은 작품입니다.
세 편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나라의 신화를 만나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온라인으로 나머지 비스트 오브 아시아의 시리즈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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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살아 있는 <여성국극>
일본에서 생활 할 당시 ‘다카라즈카’ 문화를 알게 되었다. 전 배역 모두 여성들이 맡으며, 그들은 어릴 적부터 양성되고 그 명맥이 아직까지 탄탄하게 이어져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도 이와 같은 문화가 있는지 몰랐다. 그 명맥이 얇고 희미했기 때문일까?
<정년이>라는 웹툰과 드라마를 통해 여성국극 문화에 대해 어느정도 인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웹툰과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에 그 문화가 현재까지 있는 지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명맥은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해보였다.
여성국극 제작소의 박수빈, 황지영 배우는 무형문화재 조영숙 선생님의 배움 아래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유수연 감독은 처음에는 조영숙 선생님의 이야기로 다큐를 만들려고 하다가 그 옆의 젊은 여성 국극 배우 박수빈, 황지영 배우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번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다큐는 과거보다는 현재 여성국극이 ‘어떠한 상황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그 상황은 좋지 않다. 두 배우들의 무대는 민속촌, 마을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잔치 등 여성국극을 불러주는 곳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러나 관객들은 공연을 보다가 나가거나 무심하게 지나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안쓰러운 장면이면서 또한 현실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굴하지 않고 여성국극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여성국극의 영광의 시대 때 활약했던 배우들과 함께 ‘레전드 춘향전’ 무대를 기획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접대 장면이었다. 박수빈 배우는 이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접대를 한다. 그 과정은 매우 녹록치 않아보였다. 바로 앞에서 여성국극을 비판하기도 하고 이 공연을 만드는 이유 조차도 회의적인 반응들이었다. 그러나 박수빈 배우는 굴하지 않고 그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이 공연을 만들기 위해 여성국극 공연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줬다.
그외에도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지 말라는 연로 배우들의 말과, 춘향 역은 누구보다 여성스럽고 살을 빼야한다는 이야기에 머쓱해지는 순간들도 많았지만 공연의 결과는 멋지고 아름다웠다. 확실히 레전드 배우들은 시간이 많이 지났고 체력도 예전같지 않지만 그 힘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둘은 안산시에 협력을 받아 전문 예술인단으로 소속되어 활동하고 현재까지도 활동중이다. 여성국극이 현재 어떠한 상황인지 알려주고 그 명맥을 이어가려는 두 배우와 감독의 노력이 좋았다. 영화적으로 아쉬운 점은 중간 중간 나오는 배우들의 그다지 큰 연관성을 느낄 수 없는 인터뷰와 ‘레전드 춘향전’ 공연이 꽤 길게 느껴졌다. 공연실황이 유튜브에 전부 올라와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공연 실황을 보여주기 보다는 여성 국극이 그래서 판소리랑 다른 것이 무엇이고 현재까지도 여성국극이 살아남아야하는 이유를 좀 더 알려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전작은 여성국극에 대한 설명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현재 여성국극의 배우들의 이야기에 집중을 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초반에 등장만 살짝 등장하는 여성국극에 대한 유래와 각 역할에 대한 설명으로는 이번 다큐멘터리로 여성국극을 알게된 관객들에게는 깊은 몰입감을 주기 어려웠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여성국극이니까 좀 더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 방점을 찍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마지막으로 남겨본다.
*씨네랩 초청을 통해 관람 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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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진실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The Last Duel, 2021)
개봉일 : 2021.10.20. (한국 기준)
감독 : 리들리 스콧
출연 : 맷 데이먼, 아담 드라이버, 조디 코머, 벤 애플렉, 해리엇 월터
숨겨진 진실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프로메테우스>, <마션>, <바디 오브 라이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과 맷 데이먼, 아담 드라이버, 조디 코머, 벤 애플렉 등 짱짱한 배우 라인업을 보고 개봉날만을 기다린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이하 편의상 <라스트 듀얼>과 혼용 표기)
<마션>에 이은 리들리 스콧 감독과 맷 데이먼의 만남, 그리고 <스타워즈>를 통해 아주 자연스레 스며들어 버린 배우 아담 드라이버와 최근 <프리가이>로 눈에 들어온 조디 코머, <나를 찾아줘>를 통해 알게 된, 항상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배우 벤 애플렉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라니. 그것도 시대극?! 얼마나 멋진 작품이 나올까 잔뜩 기대했다.
<듄>과 <베놈> 같은 대중적이고 커다란 작품들에 밀려 개봉 전부터 상영관 배정이 많이 부족해 보여 크고 좋은 관에서 보긴 그른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기에 개봉 전에라도 미리 보자며 프리미어 상영을 다녀왔다. 심지어 <라스트 듀얼>을 보려고 평소 팔자에도 없던 중세 시대와 봉건 제도에 대해 나름 공부까지 하고 갔다. (이 부분은 이동진 평론가님의 영상을 통해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라스트 듀얼>은 근세(1500년)가 시작되기 전, 1000년 정도에 이른, 아주 길었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극 중 배경은 중세 시대 중에서도 유럽에 창궐한 흑사병이 진정된 지 얼마 안 된 혼란한 시기였으며, 그 혼란함을 추스를 후세를 낳기 위해 주인공인 장이 두 번째 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장의 두 번째 아내 마르그리트가 장의 절친 자크에게 겁탈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영주와 왕은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심판을 내리지 않는다. 각자의 억울함과 분노를 표하던 장과 자크는 마지막 재판 방법인 결투 재판을 신청하게 된다.
잘잘못을 따질 수 없을 때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됐던 결투 재판은 재판장에서 내리지 못한 결론을 하늘이 내려줄 거라, 하늘이 선한 자를 살려줄 거라 믿으며 둘 중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재판이다. 말이 좋아 재판이지 사실 야만적이고 처절한 결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지배계급 사이의 주종 관계가 확연하게 정립되는 봉건 제도가 있던 시기이자 하늘과 신의 존재를 받들며 온 국민에게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던 그 시기에 전투 재판은 하늘의 뜻을 묻는 정당한 재판에 속했다.
영화의 제목이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인 이유는 영화 속 인물들이 벌이는 결투가 실제 프랑스에서 행해진 마지막 전투 재판이기 때문이다. 봉건 제도의 몰락과 왕권의 확립,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믿음에 앞서 합리적인 부분을 먼저 찾기 시작한 사회와 인식의 변화와 일어나기 시작했고, 지독하게 처절했던 이 마지막 결투의 영향으로 전투 재판 제도는 사라졌다고 한다. <라스트 듀얼>은 마지막 전투 재판의 기록을 인용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라스트 듀얼>은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권력과 자존심 다툼을 하는 두 남성의 까칠한 민낯을 보여주며 그 사이에서 용기를 내 무고함을 소리치는 여성의 시선을 함께 담아낸다. 겉으로 보면 한 여성을 둘러싼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두 남성의 운명을 건 마지막 싸움 정도의 느낌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실상은 다르다.
영화는 장, 자크 두 남성의 시선과 사건의 중심에 있는 마르그리트의 시선으로 나눠 진행된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 아내는 남편의 재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상이 박혀있던 그 시기에 살아온 장과 자크는 마르그리트를 지키거나 그녀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결투 재판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의 소유물을 건든 자를,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 자를 심판하기 위해 나의 운명을, 내 소유물인 아내의 운명을 함께 건 것이다. 아내는 물론 선택권이 없다.
하나의 사건을 둔 세 사람의 시선은 모두 다르다. 특히 유일한 여성인 마르그리트의 시선은 이 사건을 다르게 보고 있다. 영화는 마르그리트의 시선을 통해 그 시절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잔인할 만큼 투명하게 보여준다.
불합리와 야만의 시대에서 여성은 아내의 도리를 다해야 했고, 집안에 틀어박혀 식모 살이와 온갖 수모를 견뎌야 했고, 아이를 잉태하는 수단에 불과한 취급을 받아야 했다. 모든 여성들이 포기하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마르그리트는 불명예를 감수하고 남편 장에게 호소한다.
나는 마르그리트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다른 분위기이긴 하지만 마르그리트를 보며 올해 7월에 개봉했던 <오필리아>의 주인공, 오필리아가 떠오르기도 했다. 남성이 절대적이었던 사회에서 일어난 남성들의 권력 싸움과 여러 사건 뒤에 묻혀있던 여성 주인공, 그리고 그들의 시선으로 새로운 사실들을 담아낸 두 영화의 모습이 얼핏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 개의 시선에 따라 정의롭던 사람이 강압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희대의 바람둥이가 순수한 사랑에 미쳐버린 청년으로 변하고, 무고한 여성의 외침이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 되기도 한다. 사건의 진실은 신이 내려줄 수 있는 것인가. 왜 여성의 무고함을 증명할 수 있는 건 남성뿐인가, 그리고 무고함에 박수받는 것 또한 왜 남성인 것인가. 마르그리트의 시선을 보는 내내 불편함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속이 답답할 정도로 불편했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굉장히 높다. 중세 시대를 충실하게 복원해낸 세트와 의상, 미술,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그 긴 시간마저도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관객을 끌어당기는 배우들의 힘. 그리고 각자의 시선을 따라 조금씩 비틀어낸 카메라의 시선. 같은 사건을 3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건 같은 시간을 3번 반복해 보는 일인데, 그럼에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던 게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라스트 듀얼>이라는 영화의 제목만 보고 중세 시대의 웅장한 전투를 기대한다면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인물들의 위엄을 보여주는 짧은 전투 장면과 두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벌이는 마지막 결투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두 사람의 결투는 충분히 처절했고, 단시간에 나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 결투 뒤에 숨겨진 진실들은 끝까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라스트 듀얼 시놉시스
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시대, 14세기 프랑스. 유서 깊은 ‘카루주’ 가의 부인 ‘마르그리트’는 남편 ‘장’이 집을 비운 사이, 불시에 들이닥친 ‘장’의 친구 ‘자크’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자크’는 ‘마르그리트’에게 침묵을 강요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감내해야 할 불명예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크’의 죄를 고발한다. 권력을 등에 업은 ‘자크’는 강력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장’은 승리하는 사람이 곧 정의로 판정 받게 되는 결투 재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장’이 결투에서 패할 경우, ‘마르그리트’는 즉시 사형에 처해지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데… 단 한번의 결투가 세 사람의 운명을 가른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하나의 사건과 세 개의 시선
세 사람을 둘러싼 사건은 여러 가지가 아닌 단 하나다. 하지만 세 사람은 모두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보고 있다.
장은 영주의 눈에 든 자크가 목숨을 살려준 자신과의 우정을 배신하고 아첨을 반복하며 권력을 얻은 놈이라 생각한다. 장은 자크가 아내 마르그리트의 결혼 지참금이었던 땅을 빼앗고, 나아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 예정이었던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며 무지향성으로 분노를 터트린다.
1장, 장의 시선으로 보면 자크는 분명 아첨꾼이자 배신자가 맞지만 자크의 시선으로 본 순간들은 사뭇 다르다. 자크가 난봉꾼인 건 맞지만, 그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리모주 전투에서 다른 병사들이 장의 뒤를 따르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장을 뒤따라가야 한다고 선봉에 선 사람은 자크였고, 자크는 영주에게 장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두둔한다. 자크는 권력을 얻으려고 영주와 함께 어울리긴 하지만, 꼭 장을 배신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성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 권력
하지만 막강한 권력 앞에서 두 인물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우정과 이성을 가볍게 내버린다. 장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옳음 따윈 없어. 사내들의 권력만 존재하는 거야.”
장은 영주에게 인정받고, 좋은 땅을 받고, 본인 대신에 성을 물려받게 된 자크에게 분노와 열등감을 느낀다.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기로 했던 진짜 주인은 나인데,. 나는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이 없어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오가고 있는데, 기사 집안도 아니었던 친구 놈이 성에서 잘 놀고먹고 있다니. 앞서 자존심의 스크래치를 입은 장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거다.
그래서 장은 자크를 이길 유일한 방법으로 자신의 아버지처럼 기사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전쟁을 끝마치고 영주에게 보고를 하러 간 자리에서 장은 자신을 가볍게 부르는 자크에게 자신은 이제 기사니 존칭(Sir)을 하라고 명령한다. 자크는 공격적으로 나오는 장을 이해할 수 없지만 우선 그가 기사인 것은 맞으니 존칭을 붙여 대답한다.
기사가 되어 존칭을 받음으로써 이제 자크를 이긴 걸까 싶었는데, 장이 다시 분노할 일이 생긴다. 자크가 자신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겁탈한 것이다. 아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나의 후세를 낳아줄 값진 암말, 나의 소유물을 말이다. 장은 마르그리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보다 자크를 벌하는 것에 더 열을 내며 마지막 전투 재판까지 참여한다. 마르그리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장이 결투에서 지면 화형에 처해질 운명을 부여받고, 두 남성이 자유롭게 칼을 휘두를 동안 발목이 묶인 채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본다. 남성들의 권력싸움 앞에서 여성이었던 마르그리트는 무력하게 묶여 그들의 싸움에 희생되고 있을 뿐이었다.
여성을 부조리한 시선으로 바라본 남성들
중세 시대 여성들은 인권을 존중받지 못한다. 사회적 지위가 없기에 남편 없이는 재판을 열 수 없었고, 여성은 무슨 일을 당하든 입을 열 수 없었으며 후세를 잇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 또는 집안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다른 집안에 보내지는 뇌물 정도로 인식된다. 여성은 그저 남편, 남성의 권력과 욕망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이자 소유물일 뿐이다.
영화의 초반, 장의 시선으로 본 장의 모습은 마치 아내를 아껴 재판까지 참여한 꽤 멀쩡한 남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마르그리트의 시선으로 본 장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사건을 알게 된 순간엔 마치 자신의 물건을 뺏겨 화가 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아내가 상처 입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기보단 “나의 소유물을 건드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감히 내거를 가져가려고 해?” 이런 마음과 비슷한 분노였다. 장은 마르그리트의 말을 듣자마자 “그놈은 왜!”라고 소리치며 나의 소유물을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는 듯 마르그리트를 침대에 눕힌다.
여성 편력이 굉장하다고 소문난 자크 또한 여성을 육욕의 대상으로만 인지한다. 그는 축하파티 자리에서 처음으로 본 마르그리트의 미모에 홀려 혼자만의 착각에 빠진다. 욕심내면 안된다는 부하의 말에 자크는 “나를 향한 저 눈빛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박하며 일방적이고 사랑, 사랑보단 폭력에 가까운 욕망을 키워간다. 자크는 재판장에 서서도 끝까지 그것은 강제적인 관계가 아니었으며 마르그리트 또한 자신을 사랑했다고, 사랑에 빠진 것이 죄는 아니라고 소리친다.
거기에 얹어지는 남성 법조인들의 수치스러운 질문 퍼레이드를 보며 어이가 없다 못해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이 시대는 대체 얼마나 야만적이고 지저분했던 걸까. 중세 시대라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위엄과 무게감 따위가 모두 사라져버리는 장면이었다.
우리에 갇힌 암말과 같은 여성의 지위
영화의 세 번째 시선, 드디어 마르그리트의 시선이다. 마르그리트는 국가적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아버지의 딸이다. 나름 돈도 많고 괜찮은 집안이었지만 배신자 딱지가 붙자 아무도 마르그리트의 집안과 연을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마르그리트와 혼인을 약속한 건 바로 장이었다.
흑사병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장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 명성과 집안을 이어줄 후세를 낳는 일이었다. 장은 마르그리트 집안의 돈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마르그리트의 몸을 이용하기 위해 마르그리트를 아내로 맞이한다.
장은 수차례 관계 후에도 임신이 되지 않는 마르그리트를 보며 첫 아내와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며 마르그리트를 압박한다. 장의 어머니 또한 아내의 의무를 다하라고, 여성은 겁탈을 당해도 아무 말 없이 집안에 있는 거라고 다그친다. 마르그리트의 친구 마리 또한 결혼의 무게감을 느끼며, 여성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감, 사회가 말하는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희생한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려던 여성, 마르그리트
마르그리트는 장이 꽁꽁 묶어둔 그의 번식용 값진 암말을 보며 자신 또한 그 암말의 존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혼 후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고립된 상태로 살아온 마르그리트는 장이 긴 전투를 떠나고 스스로 집안일을 처리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새하얀 얼굴이 아닌 조금은 탄 얼굴, 하인인 알리스는 얼굴이 타지 않았냐고 묻는 마르그리트에게 “얼굴에 색이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죠.”라고 답한다. 스스로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마르그리트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남성들의 욕망을 채워줄 도구 따위가 아니다.
여성의 침묵의 대가는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뿐이고, 만일 침묵하지 않는다면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
장도 친구 마리도, 마르그리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모두가 마르그리트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욕하며 자크의 편을 든다. 하지만 마르그리트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장의 어머니는 자신도 겁탈을 당했지만 꾹 참고 견뎌 겨우 살아있다고, 재판을 진행하지 말라며 마르그리트를 말린다.
부조리한 일을 겪었음에도 여성은 침묵해야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그저 살아갈 수 있는 찬스를 얻는 것뿐이다. 삶을 영위한다는 건 고귀한 일이지만, 여성은 그저 살아있을 뿐, 명예, 지위, 돈 같은 것들을 절대 탐할 수 없는 아이를 낳는 도구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마르그리트가 침묵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마르그리트는 장과 자크의 결투 재판에 끼인 채 목숨을 걸고 진실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고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그것도 자신의 손이 아닌 장의 손에 쥐어진 자신의 목숨을 반강제로 걸게 된다.
피 튀기는 마지막 결투
사실 점점 더 처절해져가는 결투를 보며 장과 자크 두 사람이 다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두 인물이 모두 미웠으니까. 하지만 발목이 묶인 채 결투를 지켜보는 마르그리트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장을 조금은 응원했던 것 같다.
처음엔 말을 타고 꼿꼿한 자세로 시작된 두 사람의 싸움은 점점 처절하게 변한다. 장과 자크는 말의 죽음과 동시에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이내 괴성을 내며 무기를 휘두른다. 긴 창에서 도끼, 검, 그리고 단검까지. 두 사람의 거리가 짧아질수록 싸움은 더 치열하고 본능적인 모양새로 바뀐다. 장과 자크, 두 사람은 본인의 권력을 위해 한 명이 죽을 때까지 미친 듯이 싸운다.
신의 손, 신의 심판인 결투 재판의 결과를 결정하는 건 결국 남성이었다.
신의 손, 신의 은총이라 불리는 결투 재판이지만 사실 결투 재판은 싸움을 하는 남성이 언제 지치느냐, 언제 죽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남성들에 의해 내려지는 이 재판은 사회에서 남성이 가진 절대적인 힘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만든다.
남성들의 힘이 모든 걸 결정하는 그 결투에 자신의 목숨마저 걸라니. 마르그리트는 장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그대로 쥐여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며 말한다.
“이게(아이를 낳는 것) 내 삶이었어요.”
“엄마에게 정의가 필요한 것보다 더, 아이에겐 엄마가 필요해요.”
마르그리트는 이러한 재판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재판은 과연 누굴 위한 재판이며 이 재판이 말하는 거짓과 진실은 제대로 된 것이었을까?
장이 결투에서 승리하고 마르그리트의 발목에 묶여있던 족쇄가 풀리지만 세상은 여전히 마르그리트가 아닌 신의 재판에서 승리한 장에게 집중하고 박수를 보낸다. 누구도 마르그리트의 무고함엔 관심이 없다. 이게 바로 그 시대의 진정한 민낯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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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본] 마지막에서야 빛을 봤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벤져스, 2012>의 등장은 "슈퍼 히어로"장르를 대세로 올리기도 했지만, "협업" 일명 "크로스오버"를 통한 세계관의 설정은 업계 관계자를 떠나 해당 작품을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기획의 중요성을 와닿게 만들었다.
그렇게, "디즈니"와 "마블"의 성공에 "워너"가 "DC"를 인수하며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결과는 아시다시피 좋지 않았다.
이번 <플래시>를 마지막으로 10년간의 작업은 막을 내렸다. - 아니, 내리지도 못할뻔했지만...영화는 온갖 일을 도맡는 "베리, "플래시"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들을 구하던 와중에 "베리"는 뜻하지 않게 빛보다 빠르게 달리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과거로 날아가 살해당한 어머니를 구하는 데에 성공하나 그 일로 과거와 미래가 바뀌게 되고 마는데...1. 멀티버스마저 늦다니!
앞서 줄거리에서 소개한 "시간 여행".
이는 해당 영화에서 "멀티버스"로 소개되는 소재이나 이 자체만으로도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든다.
이런 이유에는 경쟁사 "마블"에서는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라는 부제로 쓰여있듯이 '먼저'를 빼앗긴 점도 있겠지만, 질리도록 쓰고 있기 때문이다. - 물론, "DCEU"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개념이지만...
무엇보다 "멀티버스"를 차용한 작품을 보기 위해선 해당 작품뿐만 아니라 별개의 작품들까지 선행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장르이다.그러나, 이런 걱정과 다르게 영화 <플래시>의 진입 장벽은 높지 않다.
이번 <플래시>에서 언급되는 영화들로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 1989>, <맨 오브 스틸, 2013>,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 2017>가 있지만 해당 캐릭터들의 관계만이 인용된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 자체의 허들이 높지 않아 여느 슈퍼 히어로 영화처럼 즐기는 데에 무리는 없지만, 이런 부분이 "클리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결국, 영화 <플래시>도 영웅의 탄생 이야기로 우연한 사고와 실수를 덮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아냈다.그럼에도, 해당 작품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에는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있다.
해당 소재부터 "정사(正史)"에서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부여해 약간의 변화를 주는 데에 있다.
밝힐 수 있는 부분만 말해보면, 극 중. "벤 에플렉"이 아닌 "마이클 키튼"이 "브루스 웨인"이 되었으며 "슈퍼맨"이 아닌 "슈퍼걸"이 등장하는 차이는 똑같은 장면임에도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이외에도 영화에서 말하는 <백 투 더 퓨처>와 <풋루스>의 주인공이 다르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모든 게 흥미롭다.2. 그래서, 진짜로?
결론을 짓는다면, 영화 <플래시>는 "멀티버스"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슈퍼 히어로의 탄생담을 가장 "DC"스럽게 끝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 건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멀티버스"는 "정사(正史)"에서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부여한 상상에 불가하다.
실체하지 않는 역사를 실제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패러독스"가 관객들에게 남는 것인데,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배트맨과 슈퍼맨을 맡은 배우들의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혼란스러운 점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tmi. 1 - 쿠키 영상은 1개로 마지막에 나온다.
· tmi. 2 - 2022년 10월. <플래시 2>의 각본이 완성되었다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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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의 솔직한 연애이야기 ❤ 근데 이제 거기다 영화 얘기를 곁들인...(500일의 썸머, 건축학개론) ?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마사지 비주얼 특집!?
YG 케이플러스의 비주얼 모델들이 떴다!
모델돌 ATO6의 현우와 용국, 모델 출신 배우 고이진 그리고 여연희 까지~
훈훈한 남녀들을 모아놓고 달달한 연애영화를 주물러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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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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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랑스인> 예고편
1957년 프랑스 학생 피에르 듀란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인턴을 위해 모스크바로 왔다.
여기서 그는 볼쇼이 극장의 발레리나 키라 갈키나와 사진가 발레라우펜스키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으로 인해 피에르는 모스크바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음지 문화에도 빠져들게 된다.
모스크바에서의 1년 동안 피에르는 그가 아는 모든 것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인턴과 다양한 소비에트 사람들과의 교재는 피에르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다.
그는 1930년대 말 체포된 자신의 아버지인 백군 장교 타티쉐프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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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플라워 킬링 문> 국내 리뷰 예고편
"역시 마틴 스코세이지" 결코 늙지 않는 거장의 마스터피스 [플라워 킬링 문] 지금 극장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