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21 12:29:33
10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보통의 가족>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 달성!

설경구, 김희애, 장동건, 수현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로 주목받은 <보통의 가족>이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습니다.
당초 10월 9일이었던 개봉 예정일을 10월 16일로 변경한 이유가 <대도시의 사랑법>, <조커: 폴리 아 되> 등 타 작품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많았는데요. 약 28만 명에 달하는 오프닝 스코어를 달성하며 좋은 선택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개봉 후 꾸준히 상위권을 지켜온 <베테랑 2>는 누적 관객 수 약 740만 명을 기록하며 여전히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 수 감소 추이가 눈에 띄고 있어, 천만 관객 돌파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 역시 안정적인 성적으로 3위를 유지하며 애니메이션 장르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유의 상상력과 감성적인 스토리로 가족 관객을 끌어들이며 꾸준히 관객 수를 확보하고 있어, 향후 몇 주간의 성적이 주목됩니다.

한편,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공포 스릴러 장르가 강세입니다.
국내에서도 개봉해 누적 관객 수 3만 명을 돌파한 <스마일 2>가 북미에서 1위를 기록하였고, 지난주 깜짝 1위에 올랐던 슬래셔 무비 <테리파이어 3>가 3위로 순위가 하락했지만, 여전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와일드 로봇>은 북미에서도 2위를 지키며 글로벌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북미 모두 장르의 다양성이 돋보이는 박스오피스 흐름 속에서, 앞으로의 영화 시장 경쟁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봐서는 안될 욕심을 눈에 담다.
기가 막히는 코믹 연기로 늘 웃음을 주었던 유해진 배우가 '왕'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특히 유해진 배우의 인터뷰 중에 첫 등장부터 웃으면 어쩌나 라는 말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기존의 친숙한 이미지와 왕의 이미지가 매치가 되지 않아 이질감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기대되는 가운데, 좋은 기회를 얻어 미리 시사회를 볼 수 있었다. 소현 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영화 ‘올빼미는 11월 23일 개봉 예정이다.
뛰어난 침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수, 그는 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형익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어의가 되어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궁에 들어가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동생과 떨어져야 했던 경수는 그럼에도 동생의 약값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매사에 입조심을 해야 하는 궁중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 8년 동안 청나라에 갇혀있던 소현세자가 돌아오며 굴욕적인 역사를 마주한다. 아들이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인조의 불안감은 극도로 고조되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에 띄지 말아야 할 올곧은 시선과 알 수 없는 시선이 교차하지만 좁혀지지 않는다. 조선의 존폐보다는 그때의 치욕이 앞서는 모습이 그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형태를 비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권력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인조는 변화라는 낯선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선의 존폐가 달린 문제에 서로 다른 욕망이 비치며 갈등이 극대화된다. 한편 보이지 않는 탓에 소리에 집중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밤이 되며 스산한 분위기로 변한다. 그날 밤, 보지 말아야 할 핏빛 욕망을 눈에 담게 되며 그의 운명 또한 많은 변화를 맞이 한다.
욕심에 눈이 먼 자, 진실에 눈을 뜬 자의 영화의 갈래가 나뉘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진실을 감출 것인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본 것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저울질이 시작된다. "안 보는 게 좋다고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더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는 말과 자신을 믿어주던 두 눈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 선명함에 온 힘을 다하여 진실을 지키지만 자신의 지키려 했던 진실이 권력의 힘에 짓눌린 모습을 마주한다. 무모함을 이길 정도로 그가 믿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권력에 눈이 먼 한 왕의 탐욕적인 모습을 그려 기존의 왕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왕으로서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끊임없이 손에 쥐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이용하면서도 내내 불안한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다만 근엄함과 중후함은 사라진 열등감과 욕망으로 점철된 광기 어린 왕만이 남아있어 조금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에도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미스터리 스릴러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펼쳐 그 단점을 감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틈 없는 연기가 영화에 잘 녹아들었기에 극의 몰입을 높였다. 특히 경수와 소현세자가 어둠 속에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 잠이라는 도피처를 선택한 아이들
줄거리
일곱 살 소녀 다리아(다샤)는 여느 또래처럼 엘사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잘 타는 활동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5개월째, 침대에 누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증상은 다리아 가족의 망명 신청이 거부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감상 포인트
1.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
2. 어른들의 갈등으로 인해 언제나 피해 입는 것은 아이들이다.
3. 체념 증후군에 빠진 아이들은 희망이 생기면 언제든 다시 깨어날 수 있다.
감상평
체념 증후군은 정신적 외상을 입고 극도의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아이들, 특히 난민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질병이다. 2003년부터 사례가 보고되었으니 비교적 역사가 짧은 질병이라 할 수 있겠다. 나타나는 증상은 똑같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면서 누워만 있다가 먹는 양이 줄어든다. 그리곤 이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만 자게 되는 것이다.
당시엔 이런 소문들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속이는 거다, 아픈 척하는 것이다'
(중략)
모든 테스트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외부의 조작은 전혀 없었던 거죠.
정말로 아주 심각하게 아픈 아이들의 얘기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순수함의 결정체로 보는 동시에 가장 악한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상처받고 아픈 아이들에게서 어른들은 꾀병일 것이라는 의심부터 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정말로 아팠다. 극도로 공포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완전한 잠의 세계로 빠져든 것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느끼는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는다.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즉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죽음의 공포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체념 증후군으로 잠들었다.
[체념 증후군의 기록]은 40분가량의 다큐멘터리다. 처음에는 흔한 우울 증세를 겪는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도 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아니다. 아이들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아픔을 잊고 있으니까. 현실의 아픔과 고통이 끝나면 아이들은 깨어날 것이다.
아이들을 진찰할 때 부모님들께 말하죠.
아이의 상태 때문에 고통받는 건 부모님들이라고요.
아이는 아프지 않아요.
백설 공주처럼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에요
주변의 모든 것이 너무 끔찍해서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거죠.
아이는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깨어나면 다시 원래대로 활기차게 살 수 있어요.
체념 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은 꿈을 꿀까? 꿈을 꾼다면 그 안에서는 행복할까? 혹여라도 그 아이들이 꿈속에서마저 고통받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제발 그 꿈에서라도 행복하길 비는 것만이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판의 미로]가 생각났다.
다큐멘터리는 체념 증후군을 겪는 세 아이의 가정을 보여준다. 각자 다른 이유로 쫓기듯 스웨덴에 도착했지만, 아이들이 잠들어 버렸다는 공통적인 결과를 얻었다.
난민 문제에 대해서 쉽사리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단순한 해결책이라면 갑자기 강력한 마법사가 나타나 세계 평화를 이뤄준다는 허무맹랑한 방법 밖에는 없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인류가 완전히 멸종해버리고 지구가 폭발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치적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도 고통 때문에 자신을 잠재워버린다는 병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어쩌면 눈에 보이는 바이러스만 막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마음을 침투하는 것은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왜 문제는 어른들이 일으키는데 고통은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가.
나는 고스란히 그 아픔을 물려주고도 뻔뻔하게 '미래는 너희가 책임지렴'하고 말할 수 없다. 내가 받기 싫은 고통은 남도 받기 싫다. 그리고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라고 해서 더 강하지 않다. 아이는 오히려 약하다. 더 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
줄거리에 소개했던 다리아의 가족은 다행히 스웨덴에 무사히 정착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리아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예전처럼 활발하게 지낸다고 한다. 이렇듯 아이들은 가족에게서 희망의 기운을 느끼면 언제고 다시 일어날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반면, 11개월째 체념 증후군을 앓고 있는 '레일라'의 가족은 여전히 망명 신청 중이고,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 암울한 현실에 이젠 레일라의 언니마저도 체념 증후군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환하게 웃는 다리아의 모습에 안심이 되는 한편, 레일라와 그 언니가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픔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아픔을 물려주지 않을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
- 지금 우리가 뭘 하는지 보라
-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들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내면은 진정으로 선하다고 믿어". 이 말들은 우리에게 '모종의 영감'을 주는데, 그건 그 말들이 우리 귀에 좋게 들린다는 뜻이다. 이 말들은 살해된 소녀들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이는 걸 용납하는 우리 문명의 타락에 대해 용서받은 기분이 되게 해준다. 그리고 만약 그 말들이 살해된 소녀에게서 나왔다면, 글쎄, 그렇다면 그 말들은 틀림없이 진실일 테니 우리는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게 틀림없다. 살해된 유대인이 내려주는 그런 은총과 사면이라는 선물이야말로(정확히 기독교 사상의 핵심에 자리 잡은 선물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안네의 은신처에서, 그가 쓴 글에서, 그가 남긴 '유산'에서 너무도 간절히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죄 없는 죽은 소녀가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었다고 믿는 것이 다음과 같은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운 일이다. 안네가 '내면이 진정으로 선한' 사람들에 관해 쓴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이었다. 그 문장을 쓰고 3주 뒤, 그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어떤 사람들이 살아 있는 유대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보여주는 사실이 여기 있다. 그 사람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이 사실은 안네 프랑크의 글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되풀이해 말할 가치가 있다. 그의 일기를 읽는 독자들은 작가가 집단 학살에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것이 그의 일기가 집단 학살에 관해 쓴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런 작품이었다면 그 일기는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우리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생생하고 자세하게 연대기순으로 정리해 쓴 글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 기록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안네의 일기가 얻은 명성 같은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 그런 무언가에 가까이 갔던 기록들은 오직 은폐라는 똑같은 규칙, 자신을 박해한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예의 바른 피해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규칙을 준수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었다.이디시어판은 <나이트>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자들에 대한 그리고 제목이 암시하듯 무관심으로(혹은 적극적인 혐오로) 그런 살해를 가능하게 했던 세상 전체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위젤은 후에 프랑스인이자 가톨릭 신자이며 노벨 상 수상자였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도움을 받아 '나이트 La Nuit’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프랑스어판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젊은 생존자의 분노를 신학적 고뇌로 전환한 작품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속한 사회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떤 독자가 듣고 싶어하겠는가? 신을 비난하는 것이 낫다. 이런 접근법은 위젤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세월이 흐른 뒤에 이 책이 미국이 베푸는 호의의 전형인 오프라 북클럽 선정작이 되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접근법도 일본의 십 대 소녀들이 안네의 일기를 읽었듯 이 책을 읽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되려면 위젠은 많은 것을, 훨씬 더 많은 것을 은폐해야 했을 것이다.<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주의: 참사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
현시점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라기엔 너무 참여-미디어 아트의 영역으로 나아가 버린 것도 같다. 대부분의 글로벌 관객들에겐 영화보다도 먼저 사회적 책무를 인지하고 유의하는 행동주의 예술가의 수상 소감 영상이 전해져왔다.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오스카에서 유대계 정체성(Jewishness)과 홀로코스트를 또다른 전쟁/학살을 위해 오용하지 말 것을 촉구한 후, 곧장 전세계 시오니스트의 돌을 맞는다. 그 자신 역시 유대계이면서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정면으로 반대한 그가 손을 덜덜 떨며 준비해온 ‘선언’을 수행할 때 우리는 일종의 경외를 느낀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가 선 곳에 가장 먼저 균열을 내며 우리 인간의 자격을 되묻는 모습. 그렇듯 순교를 불사한 지성인의 결기는 어떤 이에게나 강렬한 전율로 다가오니까.
한편 미디어 아트로서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흥미로운데, 우선 이 영화가 전시하는 풍광은 오프닝부터 경박하리만큼 경쾌하고 그늘 없다. 르누아르의 사랑 넘치는 가족 연작을 떠올리게 할 만큼 밝은 햇볕 속, 떼죽음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며 안전한 부귀를 누리는 가족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는 ‘건전한 수용소 미관 조성’을 위해 라일락 관목을 꺾지 말라고 엄숙하게 공지 방송을 하고, 아이들은 곧 도살될 유대인들처럼 아버지 루돌프의 눈을 가리고 그를 정원으로 데려가 깜짝 생일 파티를 선물한다. 어머니 헤트비히가 정성껏 돌보는 아름다운 정원과 윤기 나는 검은 개와 건강한 5남매까지, 완벽한 소품을 둔 듯 잘 가꿔진 이 삶이 평범할수록 도리어 벽 너머의 - 어쩌면 이미 삶이 아닐 - 삶(들)에 대한 암시가 숨을 죄여온다.
헤트비히를 포함한 장병 부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잔머리 하나는 대단한’ 유대계 희생자들을 비웃고, 그들로부터 갈취한 밍크 코트와 보석들을 두르고 힘을 과시하지만 이 과시는 절대 노골적이거나 공개적이지 않다. 다른 부인의 거대한 코트를 두고 다른 여자들과 “여제 같다”며 부러워하고 비꼬았던 헤트비히는 강아지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은 문 안에서 제게 떨어진 코트를 몰래 입어보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값비싸고 보드라운 코트는 헤트비히가 평소에 입던 평범한 원피스에 비해 너무나 어울리지 않고 어딘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또 헤트비히는 코트 주머니 안에서 나온 립스틱 - 그러니까 이것이 원래는 살아 있었던 누군가의 소유임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끔찍한 소품 -을 발라봤다가 이내 쓱쓱 문질러 지워버린다.
이 은근함, 이 비밀스러움은 회스 부부를 포함한 독일인 전범 가족들이 그 시점 도달한 삶이 절대 처음부터 그들 소유가 아니었단 사실을 제시한다. 그들이 부유했었고 똑똑했던 유대인들을 멸시하거나, 장모가 과거의 유대인 고용주를 떠올리고 “그 여자도 지금 저기 있으려나?” 상상하며 어딘지 고소해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이전에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을 갖고 있었던 이들에 대한 질시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상위 계층을 ‘몰아냄’으로써 계급 이동에 성공한 하위 계층의 승리감, 도취감 내지는 자족과 뿌듯함이 이들의 얼굴에 부드럽게 퍼져있는 것이다.
“그이는 저보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라며 수줍은 듯 의기양양한 듯 말하는 헤트비히, ‘불합리한’ 전출에 항의하다가 결국 “이런 ‘희생’을 감수하는 게 삶이란다”라고 애마에게 말하는 루돌프. 우습고 불쾌한 기분이 정점을 찍는 것은 부부가 강가에 서서 발령 소식에 대해 논의하는 씬에서다.
난 죽어도 여기 안 떠나.우리가 열일곱 살 때부터 꿈꿔온 삶이잖아.총통도 그렇게 연설하셨잖아.동쪽으로 가서 보금자리를 찾으라고.즉 헤트비히와 루돌프는 “그동안 꿈꿔왔던 삶”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들여왔으며 그 삶을 ‘부당하게’ 뺏기지 않기 위해 더한 노력도 불사할 거란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 노력이란 건 물론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탈취하고 강간하는 일에 일조하거나 “태우고, 식히고, 비우고, 채우고”의 반복을 직접 설계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루돌프의 ‘일’은 사람을 분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일정하게 먼 거리에 고정된 다중 시점의 카메라를 통해서만 그려지고 있는데, 헤트비히가 일궈온 꽃밭과 온실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손만 까딱하면 네 명의 하녀들이 벌벌 떨며 궂은 일을 대신해주고 전시 중에도 케이크와 비싼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벽 뒤에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게 죽든 나머지 가족들이 알게 뭐란 말인가.
“초콜릿 같은 거 있으면 꼭 챙겨줘”라며 남편에게 당부하는 씬을 통해 공범임을 입증한 헤트비히의 몸과 움직임은 ‘어쩔 수 없이’ 루돌프의 그것에 비해 비인간성의 일상화에 더 깊게 일조한다. 루돌프는 수용소장이고 헤트비히는 그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사람을 죽이고 처리하는 효율적 프로세스를 직접 설계하는 자고 헤트비히는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 그럼으로써 당시에 침묵하거나 적극 가담한 일반적인 독일인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루돌프가 참석한 나치 장교들의 회의보다도 헤트비히의 신경질적 짜증이 극 전반에 긴장감 도는 중력을 더한다. 그는 결코 상냥하거나 일관된 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 기분이 상하면 “너 하나쯤 재로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라며 하녀를 위협하는 여주인이다. 무의식적인 듯해서 더 공포스러운 무시. 힘을 제대로 다루는 법도 모르고 뒤따르는 책임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갑자기 쥐어진 타인의 생사여탈권. 성실한 군인이고 좋은 아버지였던 루돌프가 창녀를 사는 위선이나, 헤트비히가 남편보다 집을 선택하는 자기중심성은 그래서 놀랍지도 기이하지도 않다.
상실 없는 상실과 공포 없는 공포, 무게감 없는 무게를 전달하는 작품을 ‘보며’ 관객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는지를 계속 의식하게 된다. 벽 뒤에서 무언가 가동되는 소리. 간헐적인 총소리와 희미한 통곡과 비명 소리. 게르만 아기의 울음과 유대인 아기의 울음은 기묘하게 뒤섞이고 개들은 담장 안팎에서 하울링을 주고받는다. 헤트비히의 어머니처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이 모든 불길한 소리를 못 견뎌 말없이 떠나버릴 정도지만, 내부인들은 백색소음 정도로 치부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우리 눈에 푹푹 박혀오는 풀꽃의 선명한 빛깔, 새빨갛고 예쁜 수영복과 희디흰 게르만족 피부의 조화, 맑은 강물 앞 단란한 가족이 노니는 풍경이란 얼마나 아름답게 다가왔을 것인가.
눈과 귀의 기이한 간격을 최대한으로 유지하며, 눈을 극적으로 속이고, 클로즈업 없는 원경으로 눈이 해석하는 정보값을 어긋나게 하길 의도하던 영화는 돌연 마지막 5분간 오류 없이 명확한 장면을 송출하니, 바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관을 열심히 쓸고 닦는 현대의 풍경이다. 80년의 간극을 뛰어넘게 해줄 통로는 암전 속 빛이 새어 들어오는 좁은 바늘구멍이다. 이는 원시적인 카메라를 즉각 은유한다.
루돌프 회스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돌연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찍는 카메라를 직시하고, 블랙박스가 ‘보여준’ 미래를 감지한다. 이 응시는 영적이고 마술적이다. 루돌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역시 루돌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그날 밤 자기 공적을 치하하는 파티에서마저 ‘이 사람들을 가스로 몰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전화 너머 헤트비히에게 즐거이 말한다. 즉 그는 ”당신은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필사의 합리화로도 보호받지 못할 괴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붙잡혀 구타로 앙갚음당하고 결국 교수형을 당할 자신의 운명을, 악인 하나를 징벌하는 것으론 복구되지 않을 수십만의 생명을, 시원하게 토해내지도 못할 만큼 무거운 죄악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짊어진다.
드문 고요 속 루돌프는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간다. 아우슈비츠의 집에서 온 방 불을 끄고 문을 잠그며 침실로 올라갈 때와 같은 속도로.
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의 우릴 반성하고 직면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그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뭘 하는지 보라'.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걸 보여줍니다.조나단 글레이저
그때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과, 지금 여기에서 내 눈앞이 아닌 곳에서 담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고 말할 사람들. 어쩌면 이미 늦어버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다를 것인가.
-
- 파일럿 | '조정석'만 남은 어설픈 젠더 역전 코미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숱한 대형 항공사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실력파 파일럿 '한정우'(조정석). 그는 유명 TV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각종 강연에 초청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범한 한순간의 잘못 때문에 한정우는 해고당해 빚더미에 나앉고, 설상가상으로 아내와도 이혼한다.
항공사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도 불가능한 상황. 이에 한정우는 여동생 '한정미'(한선화)를 돌파구로 삼는다.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 정미의 도움을 받아 여장을 하고, 한정미 신분으로 각종 서류를 위조해 파일럿으로 취업한 것. 하지만 그는 이내 또 한 번 난관에 부딪히고 만다. 동료 '윤슬기'(이주명)와는 친분을, 선배 '서현석'(신승호)과는 악연을 쌓는 사이 여장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질 위기에 빠진다.
면죄부를 놓친 코미디
코미디라는 장르는 면죄부를 하나 갖는다. 웃기면 그만이라는 것. 장르의 목적 자체가 기존 상식을 의도적으로 뒤틀어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기 때문. 그래서 코미디 영화는 개연성이 중요하지 않다. 복선을 회수하지 못해도, 스토리텔링이 매끄럽지 않아도 충분히 웃기면 호평받는다. 2019년 <극한직업>을 시작으로 최근 개봉한 <핸섬가이즈>까지 웃음에만 집중한 코미디 영화가 사랑받은 트레드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면죄부는 한순간 독이 든 성배로 바뀌기도 한다. 웃음이 나오지 않으면 유머 뒤에 숨은 단점들이 한순간 튀어나오기 때문. 관객들이 선웃음 후감동이라는 한국 코미디 영화 공식을 갈수록 외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도 공식을 답습한 <드림>으로는 100만 관객을 간신히 돌파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장 보통의 연애>의 김한결 감독이 스웨덴 영화 <Cockpit>(2012)를 리메이크한 <파일럿>은 면죄부를 받기 어렵다. 이유는 명확하다. 코미디와 스토리가 따로 놀면서 웃겨야 할 부분이 안 웃기다. 특히 젠더 이슈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는 깊이가 너무 얕은 나머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2024년 여름을 책임질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텐트폴 영화라기에는 실망스러운 지점이 많다.
웃기긴 하다
물론 <파일럿>이 전혀 안 웃기드면 거짓말이다. 여장한 한정우가 남자라는 사실을 들킬 뻔한 중반부는 더러 큰 웃음을 자아낸다. 엄마의 칠순잔치 전후로 한정우와 한정미 남매가 보여주는 티키타카가 대표적이다. 한정우가 서현석 면전에서 욕을 뱉거나, 클럽에서 진짜 여성인 줄 알고 집적대는 남자들을 제압하는 장면도 돋보인다. 코믹 연기와 트랜스젠더 연기 경험이 많은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역량이 극대화된 결과물이다.
나름 근래 트렌드를 반영한 초반부의 빌드업도 꽤 안정적이다. 여장을 선택한 이유와 과정을 요즘 속도감으로 빠르게 밀어붙여서 몰입감을 높였다. 개연성이 부족하려는 순간에는 오히려 더 뻔뻔하게 코미디로 승부한다. 여동생으로 위장한 한정우가 면접장에서 궤변과 패기로 기어코 합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할 때마다 장르적으로 먼저 선수를 치는 듯하다.
빠른 전개로 인한 빈틈도 열심히 채우려고 한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예능이나 다른 유튜브 크리에이터,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 덕분에 과장되거나 어색한 지점이 있어도 초중반부에는 적당히 수긍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일례로 한정우의 여장은 그다지 정교하지 않지만, 이 역시 코미디를 표방하는 시도로서 암묵적으로 용인되기에는 충분하다.
블랙 코미디로의 확장
이에 더해 한국 사회의 젠더 이슈를 다방면으로 비판하며 블랙 코미디 영역도 항로에 포함시킨다. 우선 <파일럿>은 여성의 관점에서 직장 내 성차별을 다룬다. '노정욱'(현봉식) 상무나 서현석 기장 등의 외모 품평이나 성희롱은 근무 중에도 프로페셔널한 영역을 벗어난 상황을 맞닥뜨리는 여성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한정미가 된 한정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 역시 여성으로서 크고 작은 수모를 피하지 못한다.
그와 동시에 본질을 잃은 여성 우월주의나 페미니즘 마케팅도 풍자의 대상이다. 극 중 흑막으로 등장한 '노문영'(서재희) 이사는 회사 내 여성 파일럿 비중을 무조건 50%로 끌어올리는 역차별적 여성 할당제를 밀어붙인다. 또 직장 내 성희롱을 폭로한 제보자를 보호하는 대신 회사 이익을 위해 방패막이로 던져 버린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타인의 인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방향성을 알 수 없는 풍자
하지만 <파일럿>은 블랙 코미디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추락하기 시작한다. 예민한 사회 이슈를 모호한 태도로 건드린 대가라고 볼 수도 있다. 한정우는 회식 자리에서 노정욱 상무의 성희롱적 발언을 적당히 무마하려다가 실언을 한다. '다들 본업에서 고생하는데도 이 정도 외모면 예쁜 편'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것. 회식에 참석했던 윤슬기가 이 발언을 녹음해 폭로하자 한정우는 노 상무와 함께 가해자로 몰려 해고된다.
문제는 한정우의 문제 발언에 대한 영화의 태도가 오락가락한다는 것. 일각에서는 그를 두둔하고 윤슬기의 행위를 비난하는 듯 보인다. 상황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의 발언은 성차별로 보기 어렵다거나 그가 감내해야 하는 대가가 너무 과하다는 식의 언급이 반복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윤슬기의 행동을 두둔한다. 한정우는 해당 발언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윤슬기라는 캐릭터는 끝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즉, <파일럿>은 젠더 이슈에 대한 평가나 해석을 관객에게 떠맡기고 관망한다. 여장이라는 소재 특성상 젠더 이슈를 안 다룰 수는 없으니, 논란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셈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역효과를 낸다. 블랙 코미디답지 않게 조심스러워하니 웃음 대신 도리어 이슈만 부각된다.
다른 블랙 코미디와 비교하면 <파일럿>의 실수는 더 명확하다. 일례로 애덤 맥케이 감독의 <바이스>나 <돈 룩 업>은 정치적으로 확실하게 한 쪽 입장을 정한 뒤에 예민한 주제를 다뤘다. 그 덕분에 관객은 영화의 관점에 동의하든 안 하든 코미디임을 인지한 채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웃음을 만들지 못한 <파일럿>의 '모두 까기'는 한국 사회 이슈를 용감하게 고발하는 풍자보다는 비겁한 회피 기동에 가까워 보인다.
도박수를 던질 배짱이 있었더라면
더 나아가 젠더 이슈를 다루는 방식 또한 아쉽다. '여자는 꽃이 아니다' 혹은 '왜 외모 칭찬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처럼 일차원적이고 교조적인 대사나 연출 때문에 흐름이 자주 깨진다. 분명 웃긴 한정우의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단발적으로 불타올랐다가 꺼지기를 반복하는 이유다. 코미디와 풍자가 조화되지 않다 보니 역지사지로 여성들의 어려움에 공감한다는 한정우의 대사에도 힘이 실릴 수가 없다.
캐릭터 구축도 어설프다. 주인공 한정우를 제외하면 기억에 남을만한 캐릭터가 없다. 예를 들어 서현석은 운항 때마다 여성 파일럿에게 성적인 농담을 하고 집적대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아마 구시대적인 남성들의 인식을 과장해 꼬집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유머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서현석이라는 인물은 부자연스럽고, 과하며, 불필요하다는 인상만 남긴다.
윤슬기 역시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양성평등 교육자료에서 볼법한 교과서적인 대사를 주로 내뱉는다. 그 결과 분명 한정우와 함께 각본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단지 한정우의 원맨쇼를 받아주는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결말에서 두 인물의 갈등이 해결되거나 관계가 정리되지도 않았기에 문제가 더 크다.
차라리 윤슬기와 한정우의 악연에 주목하면 어땠을까 싶다. 여성이 된 한정우는 윤슬기와 친구가 되면서 자기 말의 무게감을 실감하고, 윤슬기는 한정우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이해하는 식으로. 그 과정에서 여성이 마주한 현실적 난관도, 그 여성을 악용하는 이들도 같은 선상에 두고 비판했다면 <파일럿>의 모두 까기는 더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은 건 조정석뿐
그나마 주인공 한정우의 서사는 안정적이다. 자기 커리어에만 몰두하던 한 사람이 역경 속에서 역지사지를 깨닫는 이야기이라서 보편적인 감성을 지녔다. 파일럿이라는 꿈에만 열중한 채 자기 아내가 수술했는지, 엄마가 칠순인지, 아들이 발레리노를 꿈꾸는 지조차 모르던 한정우. 그는 실직과 이혼, 여장 생활을 거치면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법을 배워나간다.
하지만 한정우의 이야기만 기억에 남는 것은 코미디 영화로서 만족할만한 귀결이 아니다. 코미디 영화가 장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을 기존의 감동 코드로 감춘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 이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웃음으로 승부를 보는 최근 한국 코미디 영화 트렌드와는 다소 동떨어진 전개다. 또 젠더 이슈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결말을 보다 보면 그의 이야기가 진정으로 해피엔딩인지 의문이기도 하다.
결국 <파일럿>은 여름 영화에 걸맞은 수준으로 시원한 웃음을 선사하지도 못하고,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풍자하지도 못했다. 대다수 관객이 공감할 법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들려주지도 못했다. 결국 조정석의 원맨(?)쇼만 남은 셈이다. 좋은 개봉시기를 선점한 텐트폴 영화치고 <파일럿>을 향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Poor 형편없음
논란을 우회하려다가 장르의 본질마저 피해 가다
-
- 직업으로 가져야만 꿈을 이룬 것일까?
교수님께서 좋은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추천해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와 결이 맞지 않아서 보는 내내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언젠가 다시 보면 그 의미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의문덩어리인 작품인 듯 싶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시놉시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 밴드를 전전한다. 팀의 리더 성우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 일자리를 얻어 팀원들과 귀향한다. 수안보로 가던 중 섹스폰 주자 현구는 밤무대 밴드 생활에 희망을 버리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수안보에 도착한 성우는 고교시절 밴드를 하며 꿈을 나눴던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순수했던 친구들은 어느새 생활에 찌든 생활인으로 변해있다.
약국을 하고 있는 민수는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고, 시청 건축과에 근무하는 수철은 환경운동가가 되어있는 인기와 시위가 있을 때마다 마찰을 겪으며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다. 성우에게 음악의 지표였던 음악학원 원장은 알콜 중독에 빠져 출장밴드를 하는 폐인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성우의 첫사랑이었던 인희는 남편과 사별하고 트럭 야채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고 있다. 성우는 어린 시절의 꿈과 사랑을 되새기며 이들의 변화에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여자를 좋아하는 올갠주자 정석은 여전히 여자들을 꼬시며 문제를 일으킨다. 강직한 드러머 강수는 목욕탕의 때밀이 아가씨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정석만큼의 재주가 없어 데이트 한번 변변히 못하는데. 정석이 때밀이 아가씨에게 접근한 사실을 알게 된 강수는 정석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껴 큰 싸움을 벌이고, 급기야 대마초에 손을 대게 된다. 결국 강수는 밴드를 떠나고 밴드가 해체 위기에 놓이자 성우는 급하게 음악학원 원장을 팀에 합류시킨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계속 골치를 앓는 정석과 알콜 중독이 심각한 원장과 팀을 이끌어가는 것은 성우에게 버겁기만 하다.
부산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현구나 마을버스 운전기사를 하게 된 강수 역시 밴드 생활을 접고 살아가는 것이 간단치만은 않다. 고단한 현실에서 어린 시절의 꿈 맞닥뜨린 성우에게 이제 선택이 남아있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빛바랜 이야기에서 찾을 수 없었던 긴장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크게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이유는 긴장감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 작품을 영화관이 아닌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집이라는 환경 속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그간 봐왔던 작품들은 조금 집중이 흐트러지다가도 긴장 포인트를 잡아서 순간적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어떠한 긴장감도 불어넣지 못하는 단조로운 카메라 무빙과 정말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들. 뭔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그 무언가가 전혀 내재되어 있지 않아서 보는 내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밴드영화에서 왜 사로잡는 음악이 없을까?
변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큰 주제로, 그 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 밴드를 이용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재로 밴드를 선택했다면 적어도 밴드 씬만큼은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적어도 한 컷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치기엔 내 귀를 사로잡는 연주가 단 한 개도 없었다.
영화 속에서 비춰지는 밴드 씬들은 그저 직장인 아침이 돼서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하듯이 노래와 의상만 바뀌고, 시작하는 장면도 끝나는 장면도 똑같다. 카메라 구도도 달라지는 것이 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사람들이 나이트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밴드가 굳이 소재로 쓰였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속세에 적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왜 밴드가 사용되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은 해결되지 않았다.
과연 꿈을 버린 것일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엔딩이었다. 영화의 엔딩은 여수로 내려간 성우와 성우의 첫사랑 인희가 보컬로 들어오면서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끝이 난다. 너무나도 힘든 현실이지만 어떤 환경 속에서도 어렸을 적 꿈꿔왔던 ‘밴드’라는 굼을 꾸고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자를 두둔한다.
그런데 과연 어렸을 적 꿈궈왔던 것을 꼭 직업으로 선택해야만 그 꿈을 이룬다고 볼 수 있을까?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그 꿈을 버린 것으로 그 사고를 제한하는 프레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 환경이 있고 어렸을 적 꿈을 모두가 이루며 살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꿈을 버.렸.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안타까웠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제와 나의 가치관이 꽤 맞지 않아서, 그리고 영화의 진행방식이 나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보는 내내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
- 디즈니 어트랙션이 영화로! <정글 크루즈>
북미 기준, 30일 금요일 개봉을 앞둔 디즈니의 <정글 크루즈>가 박스오피스 1위에 손쉽게 다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드웨인 존슨과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판타지 모험 <정글 크루즈>는 주말 동안 4200개의 북미 지역에서 최소 2,500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며, 일부 매체는 3,000만 달러의 수익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지 않고 제작비에만 2억 달러가 투입된 영화로서는 ‘쾌조의 출발’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글 크루즈>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극장 흥행 수익에만 의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영화가 디즈니 플러스에 프리미엄 가격과 함께 동시 개봉하는 만큼, 디즈니 스튜디오는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소비자 지출’에 대한 부분도 감안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디즈니 플러스 프리미어 액세스에서는 엄선된 영화를 월 30달러에 구입하며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입장에서는,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상륙이 지연되었기에 그림의 떡과 같을 수 있겠네요.
디즈니는 7월 초, <블랙 위도우>를 통해 디즈니 플러스에서 첫 주말에만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공개했습니다. 이는 디즈니가 스트리밍 서비스와 관련된 재무 수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첫 사례였는데요. 이러한 점으로 보아, <정글 크루즈>의 디즈니 플러스 판매량도 공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서비스 초기 단계이기에, <정글 크루즈>가 디즈니 플러스에서 어느 정도의 수치를 달성할지는 불확실합니다. 디즈니 테마파크 놀이기구를 기반으로 한 이 PG-13 영화는, 마블 영화를 따르는 충실한 팬들과 같은 팬덤이 없기에 <블랙 위도우>를 필적할만한 결과를 보여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디즈니 플러스와 극장 동시 개봉을 진행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과 <크루엘라>를 통해 창출한 수익은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글 크루즈>는 코로나로 인해 몇 번의 개봉 연기를 끝으로, 크고 작은 영화관에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코로나 유행이 다시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확진자가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영화 상영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죠. 이러한 가운데, <정글 크루즈>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국가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정글 크루즈>는, 영국에서 온 용감한 식물 탐험가 릴리 박사(에밀리 블런트)와 그녀의 제안을 받아 함께 모험을 시작하게 된 크루즈 선장 프랭크(드웨인 존슨)가 의학의 미래를 바꿀 치유의 나무를 찾는 여정에 함께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커뮤터>와 <언더 워터>를 감독한 자움 콜렛 세라가 이 영화를 연출했는데, 현재 <정글 크루즈>는 엇갈린 평을 받으며 로튼 토마토 평균 66%를 기록하고 있죠.
국내 29일 기준,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한 <정글 크루즈>는 <모가디슈>와 <보스 베이비 2> 그리고 <방법: 재차의>까지 다양한 작품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 중인데요. 8월 4일 개봉하는 제임스 건 감독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까지, 과연 <정글 크루즈>가 박스오피스 경쟁 속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
- 리볼버 - 전도연, 임지연 배우 두 명 빼고 모두 오발탄
-
“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리볼버 #전도연 #지창욱
“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
-
-
-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1차 예고편
모든 것은 악마가 시켰다!
1981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잔혹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악마가 살해하도록 시켰다고 주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그리고 사건의 배후에는 악마에게 빙의된 소년이 있었는데…
초자연 현상 연구가 워렌 부부의 사건 파일 중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실화!
진실 혹은 거짓? 살인사건의 범인, 인간인가 악마인가...
-
- 넷플릭스 <미래일기> 공식 예고편
《미래 일기》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담긴 러브 다이어리다.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두 사람에게 건네진 다이어리. 드라마처럼 짜여진 이벤트지만, 그 안의 대사는 두 사람의 몫이다. 다이어리에 적힌 대로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며 점점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두 사람. 정해진 미래가 있는데도, 둘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20년 전 방영된 전설의 연애 리얼리티 시리즈가 다시 돌아온다. MC: 다이고 / 스튜디오 패널: 사토 타이키(EXILE/EXILE TRIBE의 FANTASTICS 멤버), 사야(LALANDE), 스미 레이나, 나쓰나 테마송: SEKAI NO OWARI "Diary"